• 최종편집 2024-07-1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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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굶주렸던 중세기 시대에는 배가 나온 남자가 매력적이었고, 인류 역사 대부분 마른 여성은 아름다움이 아닌 빈곤의 상징이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변수’에는 다가온 우연과 우리 의지(선택)와 하나님 은혜가 뒤섞여 있는데, 누군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들 불만이 없다. 그러나 가끔은, 만약 우리에게 저 변수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념에 잠기곤 한다. 우리는 더 행복했을까? 오히려 정반대였을까? 이런 질문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인생에 대한 궁금함에 가까울 것이다.

 

삶은 수시로 어둠이 끼어들어 낯선 곳에 우리를 부려 놓고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질 않는다. 하지만 그 어둠이 우리의 부족함을 촉발(trigger)해준다. 인간은 지나치게 밝은 빛 때문에 시력을 잃는다. 어둠이 눈을 밝게 한다. 어둠이 있어야 밝은 것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늬가 생긴다.


인간을 허물어버리는 절망적 상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끔찍하게 슬프고 두려운 일이 존재한다고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운명을 피할 수 없어 원천적으로 삶은 슬프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20년 전 한 해 500명 넘던 남녀 승려 입문자가 지난 2023년 80명대로 줄었다. 해인사는 출가자 모집 광고까지 냈다. 천주교와 개신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초 발간된 ‘천주교 통계 2023′에 따르면 지난해 세례를 받은 이는 5만1307명으로 2019년 세례자 수의 63%로 줄었다. 급감하고 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우리 개신교계도 신학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총신 총장 박성규 목사와 대신대 총장 최대해 목사는 그 우려와 부족을 메워주는 믿음의 신실한 지도력을 발휘해 주고 있다. 2017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이의 수가 종교인 수를 앞질렀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느헤미야 6장에 보면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기에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사단이 느헤미야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려고 계속 공격하는데 상식적으로 두려워서 못 하겠다는 게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힘든 상황을 말하는 가운데 반전의 키워드가 등장한다.


개역개정성경으로 보면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느 6:9) 하는 구절이다.


영어 성경(NIV)은 다음과 같은데 하반 절 뜻이 사뭇 다르다.


They were all trying to frighten us, thinking, “Their hands will get too weak for the work, and it will not be completed.” But I prayed, “Now strengthen my hands.


한글 성경은 하반 절을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But I prayed, “Now strengthen my hands."라고 번역했다. 다시 말해 한글 성경 하반 절 끝에 '하였노라'고 번역한 부분을 영어 성경은 'But I prayed'(그러나 나는 기도했다)로 번역했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가져야 하는 게 바로 ‘But’(그러나)의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But’이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인 줄 알았는데 이 말씀을 통해 너무나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인생 문제 해결 열쇠를 발견했다. 살면서 절망을 경험하게 될 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내 형편을 묵상하기 때문이다. 내 상황이 딱하고 내 교회 형편이 안 좋고 내 재산이 보잘 것 없고...


그래 다 맞다. 요즘 시대가 이렇게 절망적이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앞날도 부정적이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럴 때 내가 사는 형편을 묵상하지 말고 내가 믿는 하나님을 묵상하길 바란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But I prayed' '그러나 나는 기도했다'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목사와 장로 직분을 지닌 우리의 인생이 성화를 거쳐 완성되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시험이라는 형편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서 말씀과 기도로 이겨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과 보호자이시니까, 형편이 어떠하든 'But I prayed' '그러나 나는 기도했다'. 어떤 유혹이 있든 'But I prayed' '그러나 나는 기도했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든 'But I prayed' '그러나 우리는 기도했다'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를 대표하는 목사 장로 모두가 하나님이라는 나무에 꼭 붙어 있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나무가 아니라 가지인 것을 깨닫는 것이 믿음과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붙어 있을 수 있음에 다시 깨우치고 돌이켜 감사하자. 그리하면 나무 되신 하나님은 가지인 나를 존귀하게 여기고 에녹처럼 동행해 주실 것이다. 

 

총회 목사 장로가 꿈꾸는 총회는 ‘최초이자 최고의 창조자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총회이다. 이 말은 총신대의 "신자가 되어라"는 표어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최초 최고의 설계자이시자 최초 최고의 건축가이시며 최초 최고의 관리자이시기도 하다. 총회 소속 누구나 자기가 바라고 있는 총회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민국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의 헌신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매일 매달려 자신의 변화로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22:20-21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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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목사와 장로가 기도하는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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