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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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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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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육 계명 살인
Cain slaying Abel by Peter Paul Rubens Lesson XVIII제육 계명 살인Sixth Commandment Murder 2018년 3월 2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인생 중 가장 한 맺힌 사건으로 알려진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 주변 갈대숲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채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범인을 단정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를 알아본 결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삼십대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있던 그녀의 애인은 2명의 범인과 격투 끝에 도망을 쳤고 늦은 밤이어서 가해자의 인상착의 등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미제 사건으로 남을 줄 알았던 엄궁동 살인사건의 범인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검거됐습니다. 1991년 11월 경찰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했던 2인조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범행 수법과 장소가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2인조 강조를 범인으로 체포했고 그들 역시 순순히 범행일체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그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자백을 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장동익씨는 이날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보낸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내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재심이 열리기만 한다면 동익씨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바로 장동익 씨의 좋지 않은 시력상태였습니다. 장 씨는 시각 장애 1급 장애인으로 근거리의 사물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안 좋은 시력을 지녔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강으로 사람을 끌고 가서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무죄를 주장하는 장 씨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21년 만에 만난 딸에게 장 씨는 말했습니다. “너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다. 너에게 평생 따라다녔을 살인자의 딸이라는 누명을 꼭 지워주겠다.” 장 씨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내 딸을 만나러 오는데 걸린 시간은 21년하고도 5개월, 그러나 딸은 제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의 상처는 내가 누명을 벗는. 거기서 치유될 것입니다.” 장 씨가 진실을 밝히고 27년 만에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졌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은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변호사로 지냈던 35년 동안 가장 한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가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인간은 살인을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매우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누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산상수훈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살인이란 단지 외적인 행동일 뿐이고 십계명도 그런 행동만을 지적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KILL. 39.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since the Lord has bound the whole human race by a kind of unity, the safety of all ought to be considered as entrusted to each. In general, therefore, all violence and injustice, and every kind of harm from which our neighbour's body suffers, is prohibited. Accordingly, we are required faithfully to do what in us lies to defend the life of our neighbour; to promote whatever tends to his tranquillity, to be vigilant in warding off harm, and, when danger comes, to assist in removing it. Remembering that the Divine Lawgiver thus speaks, consider, moreover, that he requires you to apply the same rule in regulating your mind. It were ridiculous, that he, who sees the thoughts of the heart, and has special regard to them, should train the body only to rectitude. This commandment, therefore, prohibits the murder of the heart, and requires a sincere desire to preserve our brother's life. The hand, indeed, commits the murder, but the mind, under the influence of wrath and hatred, conceives it. How can you be angry with your brother, without passionately longing to do him harm? If you must not be angry with him, neither must you hate him, hatred being nothing but inveterate anger. However you may disguise the fact, or endeavour to escape from it by vain pretexts. Where either wrath or hatred is, there is an inclination to do mischief. If you still persist in tergiversation, the mouth of the Spirit has declared, that “whosoever hateth his brother is a murderer,”(1 John 3:15); and the mouth of our Saviour has declared,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thout a cause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hell fire”(Mt. 5:22).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육 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39. 이 계명의 목적은, 주께서 인류 전체에 일종의 통일성이 있도록 한데 묶어 두셨으므로 우리는 각각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신체를 해할 일은 폭행, 상해 기타 어떤 것이든지 일체 금지하십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충실히 이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라, 해로운 것이면 막아내라, 이웃이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는 이 원칙으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보시며 특히 그것을 중시하시는 분이 육체에만 진정한 의를 가르치신다면,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을 금하며, 형제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살인은 손이 낳는 것이지만, 마음이 분노와 증오심에 감염될 때에 살인을 잉태합니다. 형제에 대해서 노하면서 그를 해하려는 욕망이 치밀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노하지 않는다면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증오심은 지속되는 분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나 증오심이 있는 곳에는 해를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수단으로도 감출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계속 변명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이미 “마음속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고 선언하셨고, 주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선언하셨습니다. 칼빈의 살인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목숨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의 전부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과 태도도 문제를 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내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말조차 살인에 버금가는 죄가 됩니다. 라가라 하는 말의 원래 뜻은 비었습니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가(raca)를 사용해 욕을 하게 되면 속이 빈 놈이나 정신 나간 놈이라는 뜻으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이라 하는 말의 원어 모로스(moros)는 바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들은 도덕적으로 바보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바보짓을 하거나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을 빗대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듣는 사람은 마음과 명예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제육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밝혀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투덜대고 비방하고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러한 행위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3-45 우리는 이웃 사랑과 기도로 자신을 다스려 제육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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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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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오 계명 효도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Lesson XVII제오 계명 효도Fifth Commandment Flial Duty 부모님과 함께하면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걸으면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면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부모님과 보고 싶은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때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그때 내가 부모 되어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과 같이 걷지 않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인생 여행의 시작일까요.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노년의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간 후 노희경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런 소감을 적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쓰는 내내 끝난 후에도 참 많이 미안했다.”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원제 Cherry Blossoms 벚꽃 Hanami 꽃놀이)에 이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대사이자 아내 트루디의 말입니다. 남편 루디와 함께 일본 후지산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고 독백하던 아내 트루디는 남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을 볼 겸 여행을 제안하죠.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사는 집으로 갑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은 각자 게임에 빠져있고, 아들 내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딸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죠. “왜 온 거야. 시간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니 시간을 내 시내 구경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죠. 하지만 부모는 이미 너무 커버린 자식들이 버겁고 자식은 이제 귀찮아진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합니다. 부부는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뜨죠.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화를 냅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죄책감에 눈물짓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을 눈치챈 트루디는 자기들만의 여행을 바다로 가자고 루디를 보챕니다. 도착한 발트해 파도소리에 잠을 못이루겠다고 불평하는 루디. 그리고 그런 루디를 타이르며 함께 춤추고 즐기길 원하는 트루디. 그날 밤을 그렇게 지새고 어젯밤 시끄럽게 쳐대던 파도소리가 고요해졌다며 아내 트루디를 깨우던 루디. 그러나 그 파도처럼 루디는 고요하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또 가족이 모이게 됩니다. 도쿄에 거주하던 막내아들까지요.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들을 아껴봐 주던 아내였기에 루디의 슬픔은 더욱더 큽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바다를 보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정말 고요하군....”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이제 와 자신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눈물 흘립니다. 그러면서 한편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죠. 그들은 바쁘고 엄마는 이제 없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쩌지... 아버지 루디는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은 천국 그래서 그들의 하루 비행은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슬픔을 자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것이 아버지임을 불평하고 서로에게 미루며 마치 짐이 하나 생긴 듯 행동을 취합니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하늘입니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인데도 말입니다. 몸빛이 검고 울음소리가 흉측하여 죽음을 알리는 새로 전 세계에 알려진 까마귀는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상당히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쇠한 부모를 자식이 까마귀처럼 공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미가 좀 쇠퇴한 감이 있기는 하더라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의 의미는 물질과 육체적인 섬김은 물론이고 부모의 뜻과 생각을 존중한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LONG UPON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36. Wherefore, we ought to have no doubt that the Lord here lays down this universal rule--viz. that knowing how every individual is set over us by his appointment, we should pay him reverence, gratitude, obedience, and every duty in our power. And it makes no difference whether those on whom the honour is conferred are deserving or not. Be they what they may, the Almighty, by conferring their station upon them, shows that he would have them honoured. The commandment specifies the reverence due to those to whom we owe our being. This Nature herself should in some measure teach us. For they are monsters, and not men, who petulantly and contumeliously violate the paternal authority. Hence, the Lord orders all who rebel against their parents to be put to death, they being, as it where, unworthy of the light in paying no deference to those to whom they are indebted for beholding it. And it is evident, from the various appendices to the Law, that we were correct in stating, that the honour here referred to consists of three parts,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The first of these the Lord enforces, when he commands that whose curseth his father or his mother shall be put to death. In this way he avenges insult and contempt. The second he enforces, when he denounces the punishment of death on disobedient and rebellious children. To the third belongs our Saviour's declaration, that God requires us to do good to our parents(Mt. 15). And whenever Paul mentions this commandment, he interprets it as enjoining obedience.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36.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한 일반적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즉, 주의 임명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세워진 것을 알면, 우리는 그에게 경외와 순종과 감사를 드리며, 그밖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웃어른이 이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 지위에 있게 된 것이며, 이 일이 우리가 그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자연 자체도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반항이나 고집으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경에 경의와 복종과 감사의 세 부분이 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율법에 첨가된 여러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올바릅니다. 주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처음 부분인 경의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멸시와 박대를 복수하십니다. 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에 대해서 사형을 명령하심으로써(신 21:18-21) 둘째 부분인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부모를 후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 존경의 셋째 부분인 감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을 언급할 때마다 강제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확신』(Confirmatio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두 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돌판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 돌판에는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오 계명을 첫째 돌판에 새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는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웃들도 섬겨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은 세상에서도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오 계명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시할 때 다른 종류의 부모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인 부모(세상의 권좌에 있는 사람들) 영적인 부모(교회의 목사들) 그리고 연륜과 경험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스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오 계명이 특별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부모입니다. 제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있게 하신 이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권위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배우지 아니하면 나중에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은 대상에게도 거역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또한 부모들도 자녀들의 마땅한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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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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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갈라디아서Galatians
- 갈라디아서Galatians는 바울이 현재 터키 지역인 갈라디아의 로마 영역 내에 세운 교회들에 보낸 편지였다. 그 교회들이 거짓 교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회의에서 비난했던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유대주의자들로 불리는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처럼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하나님 백성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런 시가 있다. 손의 문제 _에드워드 마이클 데이빗 수프라노비츠 손은 두 사람을 안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손에 달려 있다 손은 두 사람을 안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은 우리가 그의 것이 되고 더 나아가 오로지 그의 것만 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중심 메시지는 2장 16절의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토의나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선포의 대상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권리와 해방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당신이 마음대로 아무거나 할 수 있는 면허증이 아니다.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속박은 당신 자신을 위해 살고 옛 본성의 욕망들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악을 선택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의 자유를 남용할 따름이다.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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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갈라디아서Gala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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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후서2Corinthians
- 바울의 난파선 고린도후서2Corinthians는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온 좋은 소식에 대한 답장으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썼다. 교회의 문제들이 점점 더 나빠졌다. 할 수 없이 바울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해결하기 위하여 어렵지만 고린도를 방문하려고 했다. 바울은 먼저 디도 편에 심하게 나무라는 편지를 보냈다. 얼마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디도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할 수 있는 한 _존 웨슬리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고린도후서의 한 가지 중요한 단어는 위로와 격려라는 말이다. 바울은 아주 개인적인 이 편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아주 깊은 기쁨과 슬픔을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나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솔직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언제 어디서나 사도 바울처럼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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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후서2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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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 . 아테네와 고린도 고린도전서1Corinthians는 고린도 교회의 특정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도움을 구하는 물음에 대한 바울의 답장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교회를 세우고 1년 6개월을 섬겼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의 장삿길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도시였다. 무역의 중심지라 고린도는 온갖 종교와 철학들의 범람과 도덕적 타락으로 몸살을 앓았다. 바울이 떠난 뒤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모든 영향으로 허우적거리고 여러 문제들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이 편지를 가지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보내는 바울의 편지였다. 이런 시가 있다. 무엇이 성공인가 _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바울은 교회 안의 죄들을 다룬 뒤 교인들의 질문에 답을 한다. 바울은 고린도 도시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그 도시가 그 교회를 삼켜버렸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고린도의 신자들은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도시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후 55년경에 보냈다.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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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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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 로마서Romans는 그리스도교의 헌법이나 그리스도인 선언서라고도 불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완전한 개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무르며 로마로 편지를 보낼 때 3차 선교여행 중이었다. 그는 로마의 신자들을 방문할 계획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가 있다. 싯딤나무의 기도 _소강석 메마른 광야 뜨거운 바람만 불어오는 지평선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사막에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싯딤나무 가지가 구부러져 쓸모도 없고 가시가 많아 사람도 다가오지 않는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싯딤나무 그러나 당신은 그 쓸모없는 싯딤나무를 꺽어 법궤를 만들라 하셨네 세상에서 방황하며 찢기고 상한 영혼 가시로 가득한 쓸모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내게 찾아와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나를 사랑하리라 말씀하여 주셨네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그 쓸데없는 싯딤나무를 꺾어 당신의 제자를 삼아주셨네 나도 싯딤나무가 되게 하소서 이 쓸모없는 죄인 가시로 가득한 교만 당신의 손으로 다듬어 영광의 성전 쓰임 받게 하소서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신자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성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누어주시고 거룩한 성품과 행동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지위와 신분은 사람들 앞에서의 거룩한 생활로 인도한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딸린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즉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마치 쪼개지면 법궤가 되고 하나님의 손으로 다듬어지면 영광의 성전에 쓰임 받게 되는 그런 한 그루 싯딤나무같은 믿음과 행위처럼 말이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 편지는 그가 로마로 가는 길을 예비해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그릇된 비난들에 답을 하고 로마를 더 빨리 방문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주장을 로마서 곳곳에서 제시한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진술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기록된 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은 로마서의 핵심 진술이다. 로마서의 기본 주제는 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포로 의롭게 되고 의롭게 살다 죽는 삶이다.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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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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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 바울의 돗단배 사도행전Acts의 더 나은 제목은 교회를 통한 성령행전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따랐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누가복음의 자매편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3절의 기록이 누가복음 1장 1절에서 4절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젊은 수도자에게 _스와미 묵타난다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인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수도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진리를 보고 만나야 한다. 이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어떤 역할을 맡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처럼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러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임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의 전반부 1장에서 12장까지는 베드로의 사역이 주를 이룬다. 그 다음 사도행전 후반부 13장에서 28장까지 누가는 바울의 사역에 집중한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의 시련과 사역의 체험들이 평행을 이룬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의 믿음의 문을 열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천국의 열쇠들을 사용했다. 바울은 로마 제국 내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사도행전의 밑그림을 그린다. 사도행전은 유대인을 위한 사역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전해졌는지 설명한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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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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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John
- 방탕한 아들 요한John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마음에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가 권능으로 행동하시는 걸 보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말씀과 행동에 반응하는 걸 지켜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가 있다. 그는 _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아무 가치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영원 전부터 기다리신 그리스도 구주이시다. 복음서 저자들은 각기 마음에 둔 독자들이 있었다. 마태는 유대인을 위하여 썼다. 마가는 로마인을 위하여 썼다. 누가는 그리스인을 위하여 썼다. 반면에 요한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썼다. 그래서 요한은 그 사실을 마음에 두고 세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또한 그는 유대인 독자들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구약 성경을 아주 많이 언급하고 있다.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초대장은 와서 들어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의 초대장은 와서 보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역들과 주님의 말씀들은 예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명한다. 물론 그는 구세주와 주님이시기도 하다. 그의 복음서에서 요한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예수께서 영적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상징어를 사용하셨을 때 그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 등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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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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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갈라디아서Galatians
- 갈라디아서Galatians는 바울이 현재 터키 지역인 갈라디아의 로마 영역 내에 세운 교회들에 보낸 편지였다. 그 교회들이 거짓 교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회의에서 비난했던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유대주의자들로 불리는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처럼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하나님 백성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런 시가 있다. 손의 문제 _에드워드 마이클 데이빗 수프라노비츠 손은 두 사람을 안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손에 달려 있다 손은 두 사람을 안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은 우리가 그의 것이 되고 더 나아가 오로지 그의 것만 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중심 메시지는 2장 16절의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토의나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선포의 대상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권리와 해방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당신이 마음대로 아무거나 할 수 있는 면허증이 아니다.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속박은 당신 자신을 위해 살고 옛 본성의 욕망들에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악을 선택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우리의 자유를 남용할 따름이다.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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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갈라디아서Gala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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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후서2Corinthians
- 바울의 난파선 고린도후서2Corinthians는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온 좋은 소식에 대한 답장으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썼다. 교회의 문제들이 점점 더 나빠졌다. 할 수 없이 바울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해결하기 위하여 어렵지만 고린도를 방문하려고 했다. 바울은 먼저 디도 편에 심하게 나무라는 편지를 보냈다. 얼마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디도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할 수 있는 한 _존 웨슬리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고린도후서의 한 가지 중요한 단어는 위로와 격려라는 말이다. 바울은 아주 개인적인 이 편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아주 깊은 기쁨과 슬픔을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나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솔직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언제 어디서나 사도 바울처럼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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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후서2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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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 . 아테네와 고린도 고린도전서1Corinthians는 고린도 교회의 특정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도움을 구하는 물음에 대한 바울의 답장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교회를 세우고 1년 6개월을 섬겼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의 장삿길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도시였다. 무역의 중심지라 고린도는 온갖 종교와 철학들의 범람과 도덕적 타락으로 몸살을 앓았다. 바울이 떠난 뒤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모든 영향으로 허우적거리고 여러 문제들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이 편지를 가지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보내는 바울의 편지였다. 이런 시가 있다. 무엇이 성공인가 _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바울은 교회 안의 죄들을 다룬 뒤 교인들의 질문에 답을 한다. 바울은 고린도 도시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그 도시가 그 교회를 삼켜버렸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고린도의 신자들은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도시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후 55년경에 보냈다.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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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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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 로마서Romans는 그리스도교의 헌법이나 그리스도인 선언서라고도 불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완전한 개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무르며 로마로 편지를 보낼 때 3차 선교여행 중이었다. 그는 로마의 신자들을 방문할 계획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가 있다. 싯딤나무의 기도 _소강석 메마른 광야 뜨거운 바람만 불어오는 지평선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사막에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싯딤나무 가지가 구부러져 쓸모도 없고 가시가 많아 사람도 다가오지 않는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싯딤나무 그러나 당신은 그 쓸모없는 싯딤나무를 꺽어 법궤를 만들라 하셨네 세상에서 방황하며 찢기고 상한 영혼 가시로 가득한 쓸모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내게 찾아와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나를 사랑하리라 말씀하여 주셨네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그 쓸데없는 싯딤나무를 꺾어 당신의 제자를 삼아주셨네 나도 싯딤나무가 되게 하소서 이 쓸모없는 죄인 가시로 가득한 교만 당신의 손으로 다듬어 영광의 성전 쓰임 받게 하소서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신자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성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누어주시고 거룩한 성품과 행동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지위와 신분은 사람들 앞에서의 거룩한 생활로 인도한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딸린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즉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마치 쪼개지면 법궤가 되고 하나님의 손으로 다듬어지면 영광의 성전에 쓰임 받게 되는 그런 한 그루 싯딤나무같은 믿음과 행위처럼 말이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 편지는 그가 로마로 가는 길을 예비해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그릇된 비난들에 답을 하고 로마를 더 빨리 방문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주장을 로마서 곳곳에서 제시한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진술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기록된 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은 로마서의 핵심 진술이다. 로마서의 기본 주제는 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포로 의롭게 되고 의롭게 살다 죽는 삶이다.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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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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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 바울의 돗단배 사도행전Acts의 더 나은 제목은 교회를 통한 성령행전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따랐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누가복음의 자매편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3절의 기록이 누가복음 1장 1절에서 4절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젊은 수도자에게 _스와미 묵타난다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인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수도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진리를 보고 만나야 한다. 이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어떤 역할을 맡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처럼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러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임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의 전반부 1장에서 12장까지는 베드로의 사역이 주를 이룬다. 그 다음 사도행전 후반부 13장에서 28장까지 누가는 바울의 사역에 집중한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의 시련과 사역의 체험들이 평행을 이룬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의 믿음의 문을 열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천국의 열쇠들을 사용했다. 바울은 로마 제국 내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사도행전의 밑그림을 그린다. 사도행전은 유대인을 위한 사역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전해졌는지 설명한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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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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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John
- 방탕한 아들 요한John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마음에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가 권능으로 행동하시는 걸 보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말씀과 행동에 반응하는 걸 지켜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가 있다. 그는 _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아무 가치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영원 전부터 기다리신 그리스도 구주이시다. 복음서 저자들은 각기 마음에 둔 독자들이 있었다. 마태는 유대인을 위하여 썼다. 마가는 로마인을 위하여 썼다. 누가는 그리스인을 위하여 썼다. 반면에 요한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썼다. 그래서 요한은 그 사실을 마음에 두고 세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또한 그는 유대인 독자들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구약 성경을 아주 많이 언급하고 있다.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초대장은 와서 들어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의 초대장은 와서 보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역들과 주님의 말씀들은 예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명한다. 물론 그는 구세주와 주님이시기도 하다. 그의 복음서에서 요한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예수께서 영적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상징어를 사용하셨을 때 그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 등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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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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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누가Luke
- 삭개오 누가Luke는 의사였고 바울의 선교 여행의 동반자였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 누가를 사랑을 받는 의사라고 기록했다. 그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사실 그 두 권은 선교 여행을 기록한 편지 형식의 한 권의 기행문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성탄제 _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겨울 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옷자락은 서늘했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 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 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붉은 색은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명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의 이미지다. 그처럼 누가복음을 읽으면 사람들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주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시는 자비로우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여행 기행문이고 사도행전은 바울의 로마 여행 기행문이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데오빌로에게 보냈다. 데오빌로는 로마인 신자였다. 그는 신앙의 기초를 듣고 싶어 하는 로마 관리였던 것 같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삶이나 초대 교회의 사역에 함께하는 성령을 강조한, 누가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뜻과 사역에 집중한다.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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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누가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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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가복음Mark
- 돼지와 먹이통 마가Mark는 바나바의 사촌이고 예루살렘의 유력한 여성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마가복음은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맨몸으로 홑이불을 걸치고 따라가다 이불을 팽개치고 도망가는 청년이 마가 자신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이런 시가 있다. 인생의 계획 _글래디 로울러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 다른 계획서를 써 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한테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또 다른 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선교여행에 참여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 선교여행을 마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게 만들었다. 바울은 이 문제로 마가를 그의 선교 팀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 마가와 바울은 화해했다. 그리고 마가는 바울의 동료가 되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바울은 마가가 그의 일에 유익하다고 칭찬했다. 결국 모든 일이 다 잘되었다. 마가는 지혜로운 지도자들의 영향으로 폭넓은 선교의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신자들에게 과거의 실패에서 회복할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다. 마가는 그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깨우쳤다. 마가는 복음의 구원과 새 삶의 축복을 듣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도 했다.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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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가복음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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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태복음Matthew
- 동방박사 세 사람 마태복음Matthew,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4중의 관점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의 근본 목적은 구세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읽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영광의 주로 바라본다. 이런 시가 있다. 수업 _작자 미상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통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글로 적어 놓을까요 그리고 안드레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 볼까요 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바돌로메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할까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자 마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 떠날 건가요 그리고 유다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에게 수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우셨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 세무 관리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글을 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 왕위의 적법한 계승자로 기름부음 받으신 다윗의 자손이심을 증명한다. 마태복음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이어주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결해 주고 예언과 성취를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역활로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마태복음을 읽을 때 질병과 마귀와 생활 형편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복종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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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태복음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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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말라기Malachi
- 물세례 물가 말라기Malachi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세기 전에 활동했다. 주전 5세기의 종교적 상황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때와 같았다. 백성은 타락했고 제사장들은 세상의 가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시가 있다. 산 너머 저쪽 _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봤다. 별똥은 산 너머 저쪽으로만 떨어졌으니 거기에 별똥이 많이 있겠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여름내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으니 거기에 바다가 하나 생겼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겠다. 저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는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말라기의 시각도 그 아이의 눈길같다. 말라기의 주제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끝이고 신약성경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가 즉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의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주의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에 불평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과 임무를 소홀히 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나쁜 본보기를 따랐다. 말라기의 이름은 나의 메신저라는 뜻이다. 이름말고는 말라기 개인에 대해 알려진 건 하나도 없다. 말라기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메신저였다. 메신저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그의 메시지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의 축복의 약속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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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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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말라기Mala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