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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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태복음Matthew
    동방박사 세 사람 마태복음Matthew,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4중의 관점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의 근본 목적은 구세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읽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영광의 주로 바라본다. 이런 시가 있다. 수업 _작자 미상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통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글로 적어 놓을까요 그리고 안드레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 볼까요 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바돌로메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할까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자 마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 떠날 건가요 그리고 유다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에게 수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우셨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 세무 관리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글을 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 왕위의 적법한 계승자로 기름부음 받으신 다윗의 자손이심을 증명한다. 마태복음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이어주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결해 주고 예언과 성취를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역활로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마태복음을 읽을 때 질병과 마귀와 생활 형편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복종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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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말라기Malachi
    물세례 물가 말라기Malachi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세기 전에 활동했다. 주전 5세기의 종교적 상황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때와 같았다. 백성은 타락했고 제사장들은 세상의 가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시가 있다. 산 너머 저쪽 _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봤다. 별똥은 산 너머 저쪽으로만 떨어졌으니 거기에 별똥이 많이 있겠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여름내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으니 거기에 바다가 하나 생겼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겠다. 저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는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말라기의 시각도 그 아이의 눈길같다. 말라기의 주제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끝이고 신약성경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가 즉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의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주의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에 불평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과 임무를 소홀히 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나쁜 본보기를 따랐다. 말라기의 이름은 나의 메신저라는 뜻이다. 이름말고는 말라기 개인에 대해 알려진 건 하나도 없다. 말라기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메신저였다. 메신저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그의 메시지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의 축복의 약속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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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가랴Zechariah
    바벨탑 공사 스가랴Zechariah는 환상들이 담긴 긴 책을 썼다. 그러나 학개의 기록은 짧고 환상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8개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학개는 사람들의 현재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스가랴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바라보라고 요구했다. 미래의 일을 보여주는 환상의 초점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_렘스톤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고 맨 바닥이었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도 오르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도 올라갔다 그러나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약간 힘들 뿐이고 너도 그걸 곧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나도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단다 난 아직도 오르고 있어 게다가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스가랴의 주요 본문은 1장 14절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과 시온 때문에 아주 심하게 질투한다 예루살렘이 버림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주의 약속들을 지키실 것이다. 스가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때는 이제부터다. 스가랴는 학개와 함께 사역을 했다. 그들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 성전을 다시 짓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 사역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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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바냐Zephaniah
    나귀 타신 예수님 스바냐Zephaniah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왕족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의 왕과의 친족 관계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주도하던 주전 640-60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가 있다. 오빠 생각 _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이 시 속의 오빠는 여름새 뜸북새와 뻐꾹새가 울 때 떠났다. 그런데 오빠는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는 도처에서 오빠를 본다. 누이란 연약하기에 오빠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도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이 참된 신앙의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을 부르짖고 백성이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내용이 없는 겉치레 변화만 있었기 때문이다. 스바냐의 이름은 주께서 숨기신다는 뜻이다. 스바냐는 나훔 이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 같은 시대를 살았다. 스바냐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둘 있다. 그것은 남은 자와 주의 날이다. 스바냐의 주제는 주의 날이다. 주의 날에 바알의 그릇된 남은 자는 죽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들은 멸망당하고 믿음의 참된 남은 자는 구원받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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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하박국Habakkuk
    하박국Habakkuk의 예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아주 독특하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시를 담고 있다. 하박국의 이름은 포용을 뜻한다. 하박국은 바빌론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봤다. 이런 시가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_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징벌하시려고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박국은 자신의 체험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단계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둘째 단계는 믿음의 비전이다. 셋째 단계는 믿음의 인내다. 하박국이 강조하는 말씀은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등에서 인용되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이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한다. 이렇듯 신약 성경의 세 서신서가 구약 성경 하박국의 한 본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의인의 삶이란 마더 테레사의 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껴안고 바라보는 것을 단지 시작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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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나훔Nahum
    나훔Nahum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심판이 급박하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 뒤 니느웨로 파송된 요나의 외침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했다. 이런 시가 있다. 바람만이 알고 있지 _밥 딜런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나훔서 예언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앗수르의 약탈과 횡포에 떠는 유다 백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어 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론에 멸망당했다. 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의 사명은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 왕국에 대한 잔인한 앗수르인들의 위협을 경고하고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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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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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태복음Matthew
    동방박사 세 사람 마태복음Matthew,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4중의 관점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의 근본 목적은 구세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읽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영광의 주로 바라본다. 이런 시가 있다. 수업 _작자 미상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통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글로 적어 놓을까요 그리고 안드레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 볼까요 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바돌로메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할까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자 마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 떠날 건가요 그리고 유다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에게 수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우셨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 세무 관리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글을 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 왕위의 적법한 계승자로 기름부음 받으신 다윗의 자손이심을 증명한다. 마태복음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이어주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결해 주고 예언과 성취를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역활로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마태복음을 읽을 때 질병과 마귀와 생활 형편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복종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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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말라기Malachi
    물세례 물가 말라기Malachi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세기 전에 활동했다. 주전 5세기의 종교적 상황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때와 같았다. 백성은 타락했고 제사장들은 세상의 가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시가 있다. 산 너머 저쪽 _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봤다. 별똥은 산 너머 저쪽으로만 떨어졌으니 거기에 별똥이 많이 있겠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여름내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으니 거기에 바다가 하나 생겼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겠다. 저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는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말라기의 시각도 그 아이의 눈길같다. 말라기의 주제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끝이고 신약성경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가 즉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의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주의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에 불평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과 임무를 소홀히 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나쁜 본보기를 따랐다. 말라기의 이름은 나의 메신저라는 뜻이다. 이름말고는 말라기 개인에 대해 알려진 건 하나도 없다. 말라기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메신저였다. 메신저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그의 메시지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의 축복의 약속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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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가랴Zechariah
    바벨탑 공사 스가랴Zechariah는 환상들이 담긴 긴 책을 썼다. 그러나 학개의 기록은 짧고 환상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8개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학개는 사람들의 현재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스가랴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바라보라고 요구했다. 미래의 일을 보여주는 환상의 초점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_렘스톤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고 맨 바닥이었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도 오르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도 올라갔다 그러나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약간 힘들 뿐이고 너도 그걸 곧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나도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단다 난 아직도 오르고 있어 게다가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스가랴의 주요 본문은 1장 14절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과 시온 때문에 아주 심하게 질투한다 예루살렘이 버림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주의 약속들을 지키실 것이다. 스가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때는 이제부터다. 스가랴는 학개와 함께 사역을 했다. 그들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 성전을 다시 짓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 사역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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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바냐Zephaniah
    나귀 타신 예수님 스바냐Zephaniah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왕족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의 왕과의 친족 관계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주도하던 주전 640-60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가 있다. 오빠 생각 _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이 시 속의 오빠는 여름새 뜸북새와 뻐꾹새가 울 때 떠났다. 그런데 오빠는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는 도처에서 오빠를 본다. 누이란 연약하기에 오빠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도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이 참된 신앙의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을 부르짖고 백성이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내용이 없는 겉치레 변화만 있었기 때문이다. 스바냐의 이름은 주께서 숨기신다는 뜻이다. 스바냐는 나훔 이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 같은 시대를 살았다. 스바냐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둘 있다. 그것은 남은 자와 주의 날이다. 스바냐의 주제는 주의 날이다. 주의 날에 바알의 그릇된 남은 자는 죽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들은 멸망당하고 믿음의 참된 남은 자는 구원받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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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하박국Habakkuk
    하박국Habakkuk의 예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아주 독특하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시를 담고 있다. 하박국의 이름은 포용을 뜻한다. 하박국은 바빌론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봤다. 이런 시가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_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징벌하시려고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박국은 자신의 체험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단계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둘째 단계는 믿음의 비전이다. 셋째 단계는 믿음의 인내다. 하박국이 강조하는 말씀은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등에서 인용되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이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한다. 이렇듯 신약 성경의 세 서신서가 구약 성경 하박국의 한 본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의인의 삶이란 마더 테레사의 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껴안고 바라보는 것을 단지 시작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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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나훔Nahum
    나훔Nahum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심판이 급박하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 뒤 니느웨로 파송된 요나의 외침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했다. 이런 시가 있다. 바람만이 알고 있지 _밥 딜런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나훔서 예언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앗수르의 약탈과 횡포에 떠는 유다 백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어 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론에 멸망당했다. 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의 사명은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 왕국에 대한 잔인한 앗수르인들의 위협을 경고하고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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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미가Micah
    낙타와 양 미가Micah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미가의 이름은 주와 같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라는 뜻이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했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자매 책이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요약이다. 미가 선지자는 그의 책에서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다가올 심판과 미래의 왕국과 하나님의 회개 요청이다. 미가는 유다 백성이 이스라엘의 슬픈 체험을 통해 교훈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교훈을 받지 않았다. 이런 시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_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실 이 시를 쓴 저자 자신이 이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다. 그러나 선지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삶을 산다. 그래서 선지자 미가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다. 미가의 예언이 자비와 소망이 담긴 심판의 메시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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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나Jonah
    리워야단 요나Jonah의 이름은 비둘기를 뜻한다. 대체로 비둘기는 평화와 온순과 순결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이름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의족을 한 남자 _제임스 테이트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남자가 감옥을 탈출하다가 붙잡혔다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빼앗아 버렸다 날마다 그는 한쪽 다리를 한 채로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밭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일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의족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완벽한 탈출 계획을 세웠기에 한쪽 다리로 탈출하는 계획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는 눈은 감상적인 눈이 아니라 불처럼 타오르는 눈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의 영혼은 삶의 여러 장애로 눈이 어두워지기도 하지만 삶의 의욕을 포기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렇듯 선지자 요나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만큼 의지가 약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간다. 그는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풍랑이 넘실대는 바다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큰 물고기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종이 된다. 요나서의 주제는 요나 개인과 선원들과 앗수르 이방 국가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모두의 생명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다.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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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오바댜Obadiah
    오바댜Obadiah는 그의 이름을 빼고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 오바댜는 히브리어로 주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 개인으로보다는 하나님의 선지자 역할로 기억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오바댜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 구약 성경에 12명이나 더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에돔인들은 기뻐했다. 오히려 에돔인들은 그들의 이웃 형제를 돕지 않고 적을 거들었다. 그러한 양상은 옛날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대립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을 지닌 에돔은 이삭의 맏아들 에서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에서가 그의 동생 야곱이 주는 붉은 수프의 값으로 맏아들 상속권을 주고 사먹었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긴 야곱과 에서의 대립은 영혼과 육체 사이의 싸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 _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와 형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멸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오바댜의 예언대로 적들의 소유물들을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빌론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을 불태우기 위한 불이 되고 그 나라는 주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강변에서 사는 엄마와 누나와 형제가 함께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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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아모스Amos
    짐실은 노새 아모스Amos는 목자와 농부였지만 글을 쓴 최초의 선지자였을것이다. 그래서 아모스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모스서에는 목가적인 비유들이 많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전했다. 아모스의 예언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사치와 부패의 본거지 벧엘에서 주로 선포되었다. 그는 권력자와 부자의 배교와 불의를 공격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겉치레나 망설임이 결코 없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디로 _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그들의 뒤에는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내려오고 바람은 꼿꼿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다가온다. 오두막과 작은 사내는 서 있거나 움직이고 물은 흐른다. 우리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디엔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춘다.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내린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아모스는 이 시의 작은 사내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호세아와 이사야와 요나 등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꾼이라는 뜻이다. 그 뜻은 아모스의 주요 메시지에 대한 이해의 열쇠를 제공한다. 아모스의 예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죄에 대해 주께 받아 짊어져야 할 큰 짐과 같았다. 확실히 아모스는 그의 백성의 죄 때문에 주의 말씀의 짐을 짊어지고 어디로 라고 묻지 않고 묵묵히 나르는 하나님의 짐꾼이었다.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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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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