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0-02(일)

G.QT
Home >  G.QT

실시간뉴스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주신 말씀_ 마가복음 11:22~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기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다. 믿음 없이 백날 하는 기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하고 달라고 기도해 놓고 설마 진짜 주실까? 하고 의심하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실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니 믿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으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임을 믿으라는 주님의 가르치심 일진 데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유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산이 그렇게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보다 더한 홍해를 갈라지게 한 기도를 하였고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중천에 머물게 했던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는 것을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삶 속 대부분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주기도문’의 중심 테마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겠지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과 고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때의 기도가 사욕을 떠난 순수한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고 올리는 기도라면 구하고 나서 절대 의심치 말고 받은 줄로 믿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까지 살피시며 작은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자녀 된 자가 떡을 달라는데 독을 주실 하나님이 아니시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마 7:9~10;눅 11:11~13) 예수님은 비유까지 들어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밝히셨다. 아들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란 걸출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시며 병 낫기를 간구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징표로 해시계까지 뒤로 움직여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한나가 기도 후 얼굴에 수심이 없이 온전히 믿었듯이 믿음! 곧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의 기도가 전제된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기도’(눅 17:6) 그만큼 기도는 믿음이 뒷 받침 되어야 하리라! 어쨌든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만이다. 다가올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5분 뒤에 죽음조차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직 쉬지않는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환난 날에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고 도우심을 구하고 믿었으며 내 두서없는 중언부언의 기도조차 다 들어주신 하나님을 나는 수없이 체험하였고 그 결과로 지금 인생의 가장 복되고 평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멘.
    • G.QT
    • G.QT
    2022-10-02
  • 성경이 삶이 되다_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주신 말씀_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신앙생활의 중심 중의 중심이며 핵심적인 행위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자 통로로서 하나님께 ‘플러그인’ 되는 고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듯이 기도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기도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창조하셨고 하나님 자신도 지극히 인격체이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크신 뜻에 합하고 옳은 것이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야 그것이 믿음의 실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세상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적’으로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일상적 일이기에 언제나 가능함이라! 그러면 어떻게 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기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기도하라’고 산상수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쳐 주셨다. 모범 기도문을 말씀(마 6:9~13) 하시고 난 뒤 다시 한번 핵심 요점으로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강조하고 계신다. 우리의 필요를 능히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는 ‘나’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의’가 땅 위에 실현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성경 전체의 ‘핵심 과제’를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나’의 문제는 고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전제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모범 기도문을 깊이 의미해 봄으로써 올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는 ‘주기도문’을 암기를 해서 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일상에서 기도할 때 이런 아젠다와 ‘핵심’이 들어있는 내용으로 하라고 모범 기도문을 알려 주신 것이리라! ‘주기도문’의 주목할 핵심 단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데 여기서 ‘아버지’의 본래 뜻은 헬라어인 ‘파테르’라는 말로 아랍어, 아바 곧 ‘아빠’라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아빠와 아버지의 호칭의 의미는 같지만 사뭇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왜 ‘아빠’라 부르라 하셨을까? 예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늘 ‘아이’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모든 것을 기대고 해결해 주며 보호해 주는 무조건적 존재이다. 하나님이 ‘내 아빠’이시면 내가 무엇을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부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에 죽음 직전까지도 하나님을 항상 ‘아빠’로 부르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하리라. 두 번째 주목할 말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세상은 모두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우리가 내 필요와 내 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만 한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를 ‘복’ 그 자체로 창조하셨다. ‘죄’가 복을 가려서 그렇지 예수님이 ‘죄’를 도말 하신 이상 우리는 다시 ‘복의 근원’ 곧 복덩어리가 된 것이다. 내가 복 그 자체인데 내 뜻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실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의 뜻과 꿈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구하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라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공동체로서 각 지체 간 ‘형제’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공동체로서의 필요와 질서로서 하나를 이루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 역시 내 것, 내 문제, 내 자식, 내 필요의 중심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여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천이라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내 주변, 우리 교회, 우리나라, 세계 인의 공통의 문제 등에 대한 기도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거나 진정이 부족하였다. 매우 졸렬하고 병든 기도였음을 이 시간 회개한다. 다음, 용서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다.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몸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런 용서를 받은 자로 우리는 누구든 얼마든지 잘못도 용서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세상 사는 동안 마귀는 끝없이 우리를 시험과 유혹으로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 시험은 예수님도 받은 것으로 말씀으로 반드시 이겨내야 하지만 ‘유혹’은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는데 그러면 기도는 얼마나 하여야 하나?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들만큼 우리는 (나는) 기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나는 부끄러울 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심은 늘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일상에 적용하며 호흡함과 같이 살아가란 것이다. 기도는 먼저 나를 바꾸는 일이며 열방을 가슴에 두고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이고 기도하는 자는 늘 ‘기쁨’에 충만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 넘쳐나면 기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멘. 2022-09-25
    • G.QT
    • G.QT
    2022-09-25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생기
    주신 말씀_ 에스겔 37:5~6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있다. 그 생기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로 택하심을 받은 자의 징표는 하나님의 생기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주셨을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함과 같이 생기가 없는 사람은 그저 땅의 흙일뿐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야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도 인류 최초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기를 빼앗기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생기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오늘 다 멸망하여 골짜기를 가득 메운 마른 뼈로 변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기를 넣어주겠다 하심은 새로운 구원의 약속이요, 무조건적 은혜이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3분의 1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생기를 얻은 은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나님의 생기를 입은 사람은 그 생기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진짜이다. 삶 가운데 ‘하나님의 생기’가 없다면 가짜 그리스도인이요, 살아있다고 하나 실상은 마른 뼈일 뿐이요, 땅으로 돌아갈 흙덩이인 것이다. 생기를 드러내는 삶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곧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사기, 악들에서 떠나야 하며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사람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아멘. 2022-09-18
    • G.QT
    • G.QT
    2022-09-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주신 말씀_ 로마서:26~28 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세상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 특권이란 바로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보혜사(helper) 성령님’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보혜사를 뜻하는 헬라어의 ‘파라클레토스’란 말은 대언자, 중보자, 조력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모든 것을 말씀하여 주시며(요 15:26)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연약함을 도우시며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나를 위하여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여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제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선 제한된 삶의 연수와 질병, 예고 없이 닥치는 사건, 사고, 시련, 풍파 등등 그것들을 넉넉히 이겨내고 사는 사람은 세상엔 없다. 연약함으로 말하면 나도 누구 못지않다. 젊은 시절이나 군 생활 때엔 친구나 동기생들에게 당당하고 강하게 비춰 보이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매우 약하고 여린 마음을 소지하였고 담력, 용기, 남자로서 갖춰야 할 힘, 패기 등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그 많은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온 삶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가 강해서 여기까지 잘 살아온 것일까? 어림없는 소리다. 이제 말씀을 깨닫고 믿음 안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내게는 항상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분이 바로 내 삶의 승리의 원동력이셨다! 내 삶의 가장 든든하신 ‘빽(?)’ 보혜사 성령님이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한 이 세상에서 나의 삶에 두려움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암! 아멘. 2022-09-04
    • G.QT
    • G.QT
    2022-09-04
  • 성경이 삶이 되다_ 절망 속에 이사야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주신 말씀_ 이사야 11:6~9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절망 속에 이사야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전쟁선포에 아하스왕과 남유다 온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사 7:2)함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곡히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칠백 년 후에 오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게 하시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정체성까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한 아이를 주시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기묘자와 모사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사 9:6~7)이시라는 거다. 남유다의 이러한 절망과 완고한 불순종 가운데 이사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확인하여 주신 그 구원자를 바라보며 그분이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그 나라를 지금 그리고 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어린아이 손에 끌리며 해됨도 상함도 없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나라’(본문) 이런 평화롭고 꿈같은 나라가 이 땅에서는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나라는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만드실 ‘새 하늘 새 땅’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사야가 이천칠백 년 전에 꿈꾸던 예수님 탄생과 ‘새 하늘 새 땅’을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약속을 받고 그 나라를 지금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아멘. 2022-08-28
    • G.QT
    • G.QT
    2022-08-28
  • 성경이 삶이 되다_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주신 말씀_ 열왕기상 2:2~3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며 다윗이 왕위를 계승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만 행하라’는 것이다. 아들 솔로몬에게 내린 이 유언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길이며 죽음 앞에서 내린 일생의 결론이다. 성경 속의 인물 가운데서도 다윗만큼 많은 환난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도 드물고 다윗만큼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온 정성과 열심이었던 사람도 없다.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양치기 목동을 하며 초원에서 해와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청소년기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난 후 사울의 시샘으로 그의 대적이 되어 십여 년 동안 그의 칼날을 피하여 죽음의 골짜기를 다녔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고난의 고비 때마다 좌절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오히려 깊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시편의 그의 주옥같은 하나님 찬양의 시들은 그가 그 모든 환난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사람이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겪은 환난 고통은 다윗에게 있어 장애물이 아닌 오히려 그를 더욱 굳건히 세우며 하나님께 신뢰를 얻고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이 되는 디딤돌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의 삶 자체도 수고와 아픔뿐인 연수이며 누구에게나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은 여지없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다윗과 같은 고난에 대한 대치법을 배워야 하리라. 곧 생과 사의 모든 결론은 오직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궁전과 영광만을 사모하며 시련 뒤에 따라올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믿고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멘. 2022-08-21
    • G.QT
    • G.QT
    2022-08-21

실시간 G.QT 기사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주신 말씀_ 마가복음 11:22~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기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다. 믿음 없이 백날 하는 기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하고 달라고 기도해 놓고 설마 진짜 주실까? 하고 의심하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실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니 믿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으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임을 믿으라는 주님의 가르치심 일진 데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유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산이 그렇게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보다 더한 홍해를 갈라지게 한 기도를 하였고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중천에 머물게 했던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는 것을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삶 속 대부분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주기도문’의 중심 테마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겠지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과 고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때의 기도가 사욕을 떠난 순수한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고 올리는 기도라면 구하고 나서 절대 의심치 말고 받은 줄로 믿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까지 살피시며 작은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자녀 된 자가 떡을 달라는데 독을 주실 하나님이 아니시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마 7:9~10;눅 11:11~13) 예수님은 비유까지 들어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밝히셨다. 아들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란 걸출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시며 병 낫기를 간구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징표로 해시계까지 뒤로 움직여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한나가 기도 후 얼굴에 수심이 없이 온전히 믿었듯이 믿음! 곧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의 기도가 전제된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기도’(눅 17:6) 그만큼 기도는 믿음이 뒷 받침 되어야 하리라! 어쨌든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만이다. 다가올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5분 뒤에 죽음조차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직 쉬지않는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환난 날에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고 도우심을 구하고 믿었으며 내 두서없는 중언부언의 기도조차 다 들어주신 하나님을 나는 수없이 체험하였고 그 결과로 지금 인생의 가장 복되고 평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멘.
    • G.QT
    • G.QT
    2022-10-02
  • 성경이 삶이 되다_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주신 말씀_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신앙생활의 중심 중의 중심이며 핵심적인 행위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자 통로로서 하나님께 ‘플러그인’ 되는 고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듯이 기도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기도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창조하셨고 하나님 자신도 지극히 인격체이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크신 뜻에 합하고 옳은 것이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야 그것이 믿음의 실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세상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적’으로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일상적 일이기에 언제나 가능함이라! 그러면 어떻게 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기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기도하라’고 산상수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쳐 주셨다. 모범 기도문을 말씀(마 6:9~13) 하시고 난 뒤 다시 한번 핵심 요점으로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강조하고 계신다. 우리의 필요를 능히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는 ‘나’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의’가 땅 위에 실현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성경 전체의 ‘핵심 과제’를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나’의 문제는 고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전제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모범 기도문을 깊이 의미해 봄으로써 올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는 ‘주기도문’을 암기를 해서 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일상에서 기도할 때 이런 아젠다와 ‘핵심’이 들어있는 내용으로 하라고 모범 기도문을 알려 주신 것이리라! ‘주기도문’의 주목할 핵심 단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데 여기서 ‘아버지’의 본래 뜻은 헬라어인 ‘파테르’라는 말로 아랍어, 아바 곧 ‘아빠’라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아빠와 아버지의 호칭의 의미는 같지만 사뭇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왜 ‘아빠’라 부르라 하셨을까? 예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늘 ‘아이’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모든 것을 기대고 해결해 주며 보호해 주는 무조건적 존재이다. 하나님이 ‘내 아빠’이시면 내가 무엇을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부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에 죽음 직전까지도 하나님을 항상 ‘아빠’로 부르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하리라. 두 번째 주목할 말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세상은 모두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우리가 내 필요와 내 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만 한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를 ‘복’ 그 자체로 창조하셨다. ‘죄’가 복을 가려서 그렇지 예수님이 ‘죄’를 도말 하신 이상 우리는 다시 ‘복의 근원’ 곧 복덩어리가 된 것이다. 내가 복 그 자체인데 내 뜻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실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의 뜻과 꿈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구하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라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공동체로서 각 지체 간 ‘형제’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공동체로서의 필요와 질서로서 하나를 이루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 역시 내 것, 내 문제, 내 자식, 내 필요의 중심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여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천이라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내 주변, 우리 교회, 우리나라, 세계 인의 공통의 문제 등에 대한 기도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거나 진정이 부족하였다. 매우 졸렬하고 병든 기도였음을 이 시간 회개한다. 다음, 용서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다.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몸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런 용서를 받은 자로 우리는 누구든 얼마든지 잘못도 용서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세상 사는 동안 마귀는 끝없이 우리를 시험과 유혹으로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 시험은 예수님도 받은 것으로 말씀으로 반드시 이겨내야 하지만 ‘유혹’은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는데 그러면 기도는 얼마나 하여야 하나?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들만큼 우리는 (나는) 기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나는 부끄러울 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심은 늘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일상에 적용하며 호흡함과 같이 살아가란 것이다. 기도는 먼저 나를 바꾸는 일이며 열방을 가슴에 두고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이고 기도하는 자는 늘 ‘기쁨’에 충만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 넘쳐나면 기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멘. 2022-09-25
    • G.QT
    • G.QT
    2022-09-25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생기
    주신 말씀_ 에스겔 37:5~6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있다. 그 생기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로 택하심을 받은 자의 징표는 하나님의 생기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주셨을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함과 같이 생기가 없는 사람은 그저 땅의 흙일뿐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야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도 인류 최초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기를 빼앗기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생기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오늘 다 멸망하여 골짜기를 가득 메운 마른 뼈로 변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기를 넣어주겠다 하심은 새로운 구원의 약속이요, 무조건적 은혜이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3분의 1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생기를 얻은 은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나님의 생기를 입은 사람은 그 생기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진짜이다. 삶 가운데 ‘하나님의 생기’가 없다면 가짜 그리스도인이요, 살아있다고 하나 실상은 마른 뼈일 뿐이요, 땅으로 돌아갈 흙덩이인 것이다. 생기를 드러내는 삶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곧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사기, 악들에서 떠나야 하며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사람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아멘. 2022-09-18
    • G.QT
    • G.QT
    2022-09-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주신 말씀_ 로마서:26~28 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세상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 특권이란 바로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보혜사(helper) 성령님’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보혜사를 뜻하는 헬라어의 ‘파라클레토스’란 말은 대언자, 중보자, 조력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모든 것을 말씀하여 주시며(요 15:26)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연약함을 도우시며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나를 위하여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여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제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선 제한된 삶의 연수와 질병, 예고 없이 닥치는 사건, 사고, 시련, 풍파 등등 그것들을 넉넉히 이겨내고 사는 사람은 세상엔 없다. 연약함으로 말하면 나도 누구 못지않다. 젊은 시절이나 군 생활 때엔 친구나 동기생들에게 당당하고 강하게 비춰 보이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매우 약하고 여린 마음을 소지하였고 담력, 용기, 남자로서 갖춰야 할 힘, 패기 등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그 많은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온 삶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가 강해서 여기까지 잘 살아온 것일까? 어림없는 소리다. 이제 말씀을 깨닫고 믿음 안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내게는 항상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셨던 것이다. 그분이 바로 내 삶의 승리의 원동력이셨다! 내 삶의 가장 든든하신 ‘빽(?)’ 보혜사 성령님이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한 이 세상에서 나의 삶에 두려움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암! 아멘. 2022-09-04
    • G.QT
    • G.QT
    2022-09-04
  • 성경이 삶이 되다_ 절망 속에 이사야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주신 말씀_ 이사야 11:6~9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절망 속에 이사야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전쟁선포에 아하스왕과 남유다 온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사 7:2)함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곡히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칠백 년 후에 오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게 하시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정체성까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한 아이를 주시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기묘자와 모사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사 9:6~7)이시라는 거다. 남유다의 이러한 절망과 완고한 불순종 가운데 이사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확인하여 주신 그 구원자를 바라보며 그분이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그 나라를 지금 그리고 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어린아이 손에 끌리며 해됨도 상함도 없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나라’(본문) 이런 평화롭고 꿈같은 나라가 이 땅에서는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나라는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만드실 ‘새 하늘 새 땅’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사야가 이천칠백 년 전에 꿈꾸던 예수님 탄생과 ‘새 하늘 새 땅’을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약속을 받고 그 나라를 지금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아멘. 2022-08-28
    • G.QT
    • G.QT
    2022-08-28
  • 성경이 삶이 되다_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주신 말씀_ 열왕기상 2:2~3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며 다윗이 왕위를 계승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만 행하라’는 것이다. 아들 솔로몬에게 내린 이 유언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길이며 죽음 앞에서 내린 일생의 결론이다. 성경 속의 인물 가운데서도 다윗만큼 많은 환난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도 드물고 다윗만큼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온 정성과 열심이었던 사람도 없다.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양치기 목동을 하며 초원에서 해와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청소년기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난 후 사울의 시샘으로 그의 대적이 되어 십여 년 동안 그의 칼날을 피하여 죽음의 골짜기를 다녔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고난의 고비 때마다 좌절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오히려 깊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시편의 그의 주옥같은 하나님 찬양의 시들은 그가 그 모든 환난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사람이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겪은 환난 고통은 다윗에게 있어 장애물이 아닌 오히려 그를 더욱 굳건히 세우며 하나님께 신뢰를 얻고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이 되는 디딤돌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의 삶 자체도 수고와 아픔뿐인 연수이며 누구에게나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은 여지없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다윗과 같은 고난에 대한 대치법을 배워야 하리라. 곧 생과 사의 모든 결론은 오직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궁전과 영광만을 사모하며 시련 뒤에 따라올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믿고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멘. 2022-08-21
    • G.QT
    • G.QT
    2022-08-21
  • 성경이 삶이 되다_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주신 말씀_ 여호수아 6:20~21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여리고성은 그 둘레가 약 3~4km에 이르며 이중으로 된 성벽으로 내벽과 외벽으로 구성되었고 진흙으로 만든 토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옹벽은 무려 4~5m(12~15피트)의 높이에 달하였고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 벽돌로 된 성벽(외벽)으로 건축되었다 한다. 당시 여리고 성내 사람들은 ‘달의 여신’이라는 우상을 섬겼으며 비교적 풍족한 삶 속에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은 타락한 성문화로 약 5천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 함락을 위해 매우 독특한 방법을 지시하였다. 곧 여리고성 둘레를 엿새 동안은 조용히 하루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 번째 날에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 나팔 소리에 맞춰 온 백성이 크게 외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란 것이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믿음의 만나 세대 백성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6일 동안은 소리 없이 한 바퀴씩 그 성을 돌고 난 후 일곱째날에 가서 일곱 번을 돈 후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소리를 외치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고 성안의 남녀노소와 짐승까지 진멸시킬 수가 있었다. 완승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을 정복하는데 왜 이런 방법을 지시하신 것일까, 사뭇 궁금한 일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쟁은 숫자와 무기와 전술에 승패가 달린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실 것이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완전 정복을 위해 무수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만 믿고 따르라는 본보기의 전쟁이었다. 둘째,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도시는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요즘 방송 뉴스만 켜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여차하면 곧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이다. 연일 미국의 위정자들과 북한의 김정은은 전쟁 위기를 고조 시켜 가고 있다. 세계 언론들도 한반도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음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데 반하여 놀라운 사실은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은 나 자신부터 놀랍도록 천하태평이다. 왜일까? 나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렇다면 오죽 좋으련만 수십 년 반복되어 온 ‘전쟁 위기’ 뉴스 등에 아마도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여리고성 함락의 ‘믿음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의 있고 없음도, 승패도, 모두 하나님께 달린 것! 이 시대의 모든 믿는 자들은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멘. 2022-08-14
    • G.QT
    • G.QT
    2022-08-14
  • 성경이 삶이 되다_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주신 말씀_ 신명기 4:9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신명기는 흔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기는 간곡한 고별사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잘못된 선택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출애굽 세대에서 만나 세대로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모세는 비록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혼신을 다하여 앞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갈 만나 세대들에게 출애굽 당시로부터 광야 40년의 생활을 회상하며 저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도리에 대해 철저한 당부를 하고 있다. 참으로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명 자의 모습이자 불세출의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큰 사건과 아픔을 경험했어도 세월이 흐르고 평안 속에 묻히다 보면 지난날의 일들은 점차 잊혀 가고 당시의 감각마저 무디어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그러기에 그 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 영광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고 그 말씀을 청종치 아니했으며(민 14:22) 결국 가데스바데아의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출애굽 세대가 40년간 광야에서 모두 사망하는 동안 만나 세대는 그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치 않기 위해 모세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 등 제사장 나라의 법을 철저히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이 만나 세대에게 모세가 가장 당부하고 있는 말은 ‘눈으로 본 것을 잊지 말라’는 것과 ‘그 본 것들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후손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는 것, 그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 한 분만 인생길에 동행하여 주시면 홍해도 갈라 주시고 반석에서 물도 내어주시며 삶의 온갖 장애물을 걷어주심은 물론,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삶’도 보장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매일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노력하고 믿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최근 몇 년간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기적과 은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며 나아가서 이를 회고록(간증)과 성경 에세이로 남겨 아들과 손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아멘. 2022-08-07
    • G.QT
    • G.QT
    2022-08-07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121:1~8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이 시는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여 첫발을 달에 딛으면서 읊었었다는 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류 최초로 지구에서 동경만 하던 달을 밟으며 지구와 온 우주를 바라본 암스트롱의 감회는 남달랐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미지의 땅을 밟으며 두려움과 호기심과 공포가 같이 하였을 것이고 신비롭고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성과 위엄을 느끼며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과 적막의 고독이 깃든 삭막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찬양하고자 이 시를 노래하였을 것이다. 시인은 출애굽 시 독수리 같은 눈으로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백성을 보호 인도하시며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만나로 먹이시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노래하고 있다. 내 믿음이 지금처럼 확고하기 전 나는 한 때 나 스스로를 흠 많고 부족한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를 주님이 지켜주실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모진 풍파를 겪으며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죽자고 매달렸을 때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심은 물론 상황을 역전시켜 과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고 감격해 하였다. 과연,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며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결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사랑의 끝판왕’이시다. 아멘. 2022-07-31
    • G.QT
    • G.QT
    2022-07-31
  • 성경이 삶이 되다_ 험악했던 야곱의 인생길
    주신 말씀_ 창세기 47:8~10 9. 야곱이 바로에게 이르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험악했던 야곱의 인생길 누구나 살아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따듯하고 평탄했던 꽃길의 세월보다 험하고 고단하였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고 수고와 아픔만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을 듯하다. 사람마다 각각이 다른 삶이니 차이는 있겠으나 그 고단함과 땀 흘림의 여정은 아담 이후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이다. 오늘 창세기에 노년에 아들 요셉을 잘 둔 덕택으로 바로 앞에 선 야곱은 자신이 살아온 삶, 130여 년을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삶은 그렇게 복 받은 자의 인생 같지도 않으며 그의 삶의 방식 또한 바르고 본받을 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험악한 세월’을 살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첫째, 물질의 욕심이 많고 사랑에 집착이 큰 사람이었고 두 번째로 목적 달성을 위해 속임수와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성격 때문으로 보여진다. 형 에서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가로채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의 안수 기도를 교활한 방법으로 빼앗아 젊은 나이 때부터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 라헬에 대한 사랑의 집착으로 네 명의 부인과 열두 아들을 얻었으니 거기서 14년의 머슴살이 삶도 여자들의 질투와 시샘으로 만만한 세월이 아니였을 듯하다. 또한, 20년의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호하심과 은혜로 인하여 열두 명의 자식을 둔 생육 번성의 복을 받고 많은 재산도 축적하였으나 야반도주의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삼촌 라반의 추격에서 위기를 모면한 끝에 찾아온 소식은 형 에서의 복수심 불타는 살벌한 마중이었다. 결국, 얍복강 나루에서 20년 만에 만난 쌍둥이 형제는 역시 하나님의 또한 번의 은혜로 극적인 상봉과 화해로 모든 감정이 풀린 듯 보였으나 먼 훗날 5백 년이 지난 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세일산에 터를 잡았던 에서의 후손들은 그 앙금을 온전히 풀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형제간의 다툼은 이삭과 리브가의 편파적인 자식 사랑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으나 야곱의 삶의 방식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믿음과 순종의 의로운 삶을 따르지 않고 집착과 경쟁심을 앞세운 데에 기인하였던 듯 보인다. 그러나 야곱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기 힘든 ‘끈기’와 ‘성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위기에 처하여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죽기 살기로 매달려 기도하고 ‘날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환도 뼈에 금이 가고’ (창 32:26) 라반의 집에서는 7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여정 130년이 지난 후 마침내 아브라함과 이삭이 물려받은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고 계승하였으며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이 신뢰하는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후손들에게 베푼 ‘축복의 기도’에서 분명히 보여진다. 아무리 험한 인생의 여정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그 보호하심과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가는 것이다. 아멘. 2022-07-24
    • G.QT
    2022-07-2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