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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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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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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육 계명 살인
Cain slaying Abel by Peter Paul Rubens Lesson XVIII제육 계명 살인Sixth Commandment Murder 2018년 3월 2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인생 중 가장 한 맺힌 사건으로 알려진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 주변 갈대숲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채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범인을 단정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를 알아본 결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삼십대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있던 그녀의 애인은 2명의 범인과 격투 끝에 도망을 쳤고 늦은 밤이어서 가해자의 인상착의 등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미제 사건으로 남을 줄 알았던 엄궁동 살인사건의 범인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검거됐습니다. 1991년 11월 경찰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했던 2인조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범행 수법과 장소가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2인조 강조를 범인으로 체포했고 그들 역시 순순히 범행일체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그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자백을 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장동익씨는 이날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보낸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내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재심이 열리기만 한다면 동익씨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바로 장동익 씨의 좋지 않은 시력상태였습니다. 장 씨는 시각 장애 1급 장애인으로 근거리의 사물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안 좋은 시력을 지녔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강으로 사람을 끌고 가서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무죄를 주장하는 장 씨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21년 만에 만난 딸에게 장 씨는 말했습니다. “너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다. 너에게 평생 따라다녔을 살인자의 딸이라는 누명을 꼭 지워주겠다.” 장 씨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내 딸을 만나러 오는데 걸린 시간은 21년하고도 5개월, 그러나 딸은 제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의 상처는 내가 누명을 벗는. 거기서 치유될 것입니다.” 장 씨가 진실을 밝히고 27년 만에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졌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은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변호사로 지냈던 35년 동안 가장 한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가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인간은 살인을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매우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누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산상수훈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살인이란 단지 외적인 행동일 뿐이고 십계명도 그런 행동만을 지적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KILL. 39.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since the Lord has bound the whole human race by a kind of unity, the safety of all ought to be considered as entrusted to each. In general, therefore, all violence and injustice, and every kind of harm from which our neighbour's body suffers, is prohibited. Accordingly, we are required faithfully to do what in us lies to defend the life of our neighbour; to promote whatever tends to his tranquillity, to be vigilant in warding off harm, and, when danger comes, to assist in removing it. Remembering that the Divine Lawgiver thus speaks, consider, moreover, that he requires you to apply the same rule in regulating your mind. It were ridiculous, that he, who sees the thoughts of the heart, and has special regard to them, should train the body only to rectitude. This commandment, therefore, prohibits the murder of the heart, and requires a sincere desire to preserve our brother's life. The hand, indeed, commits the murder, but the mind, under the influence of wrath and hatred, conceives it. How can you be angry with your brother, without passionately longing to do him harm? If you must not be angry with him, neither must you hate him, hatred being nothing but inveterate anger. However you may disguise the fact, or endeavour to escape from it by vain pretexts. Where either wrath or hatred is, there is an inclination to do mischief. If you still persist in tergiversation, the mouth of the Spirit has declared, that “whosoever hateth his brother is a murderer,”(1 John 3:15); and the mouth of our Saviour has declared,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thout a cause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hell fire”(Mt. 5:22).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육 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39. 이 계명의 목적은, 주께서 인류 전체에 일종의 통일성이 있도록 한데 묶어 두셨으므로 우리는 각각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신체를 해할 일은 폭행, 상해 기타 어떤 것이든지 일체 금지하십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충실히 이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라, 해로운 것이면 막아내라, 이웃이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는 이 원칙으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보시며 특히 그것을 중시하시는 분이 육체에만 진정한 의를 가르치신다면,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을 금하며, 형제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살인은 손이 낳는 것이지만, 마음이 분노와 증오심에 감염될 때에 살인을 잉태합니다. 형제에 대해서 노하면서 그를 해하려는 욕망이 치밀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노하지 않는다면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증오심은 지속되는 분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나 증오심이 있는 곳에는 해를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수단으로도 감출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계속 변명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이미 “마음속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고 선언하셨고, 주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선언하셨습니다. 칼빈의 살인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목숨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의 전부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과 태도도 문제를 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내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말조차 살인에 버금가는 죄가 됩니다. 라가라 하는 말의 원래 뜻은 비었습니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가(raca)를 사용해 욕을 하게 되면 속이 빈 놈이나 정신 나간 놈이라는 뜻으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이라 하는 말의 원어 모로스(moros)는 바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들은 도덕적으로 바보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바보짓을 하거나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을 빗대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듣는 사람은 마음과 명예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제육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밝혀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투덜대고 비방하고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러한 행위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3-45 우리는 이웃 사랑과 기도로 자신을 다스려 제육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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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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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오 계명 효도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Lesson XVII제오 계명 효도Fifth Commandment Flial Duty 부모님과 함께하면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걸으면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면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부모님과 보고 싶은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때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그때 내가 부모 되어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과 같이 걷지 않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인생 여행의 시작일까요.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노년의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간 후 노희경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런 소감을 적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쓰는 내내 끝난 후에도 참 많이 미안했다.”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원제 Cherry Blossoms 벚꽃 Hanami 꽃놀이)에 이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대사이자 아내 트루디의 말입니다. 남편 루디와 함께 일본 후지산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고 독백하던 아내 트루디는 남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을 볼 겸 여행을 제안하죠.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사는 집으로 갑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은 각자 게임에 빠져있고, 아들 내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딸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죠. “왜 온 거야. 시간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니 시간을 내 시내 구경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죠. 하지만 부모는 이미 너무 커버린 자식들이 버겁고 자식은 이제 귀찮아진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합니다. 부부는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뜨죠.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화를 냅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죄책감에 눈물짓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을 눈치챈 트루디는 자기들만의 여행을 바다로 가자고 루디를 보챕니다. 도착한 발트해 파도소리에 잠을 못이루겠다고 불평하는 루디. 그리고 그런 루디를 타이르며 함께 춤추고 즐기길 원하는 트루디. 그날 밤을 그렇게 지새고 어젯밤 시끄럽게 쳐대던 파도소리가 고요해졌다며 아내 트루디를 깨우던 루디. 그러나 그 파도처럼 루디는 고요하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또 가족이 모이게 됩니다. 도쿄에 거주하던 막내아들까지요.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들을 아껴봐 주던 아내였기에 루디의 슬픔은 더욱더 큽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바다를 보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정말 고요하군....”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이제 와 자신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눈물 흘립니다. 그러면서 한편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죠. 그들은 바쁘고 엄마는 이제 없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쩌지... 아버지 루디는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은 천국 그래서 그들의 하루 비행은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슬픔을 자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것이 아버지임을 불평하고 서로에게 미루며 마치 짐이 하나 생긴 듯 행동을 취합니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하늘입니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인데도 말입니다. 몸빛이 검고 울음소리가 흉측하여 죽음을 알리는 새로 전 세계에 알려진 까마귀는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상당히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쇠한 부모를 자식이 까마귀처럼 공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미가 좀 쇠퇴한 감이 있기는 하더라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의 의미는 물질과 육체적인 섬김은 물론이고 부모의 뜻과 생각을 존중한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LONG UPON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36. Wherefore, we ought to have no doubt that the Lord here lays down this universal rule--viz. that knowing how every individual is set over us by his appointment, we should pay him reverence, gratitude, obedience, and every duty in our power. And it makes no difference whether those on whom the honour is conferred are deserving or not. Be they what they may, the Almighty, by conferring their station upon them, shows that he would have them honoured. The commandment specifies the reverence due to those to whom we owe our being. This Nature herself should in some measure teach us. For they are monsters, and not men, who petulantly and contumeliously violate the paternal authority. Hence, the Lord orders all who rebel against their parents to be put to death, they being, as it where, unworthy of the light in paying no deference to those to whom they are indebted for beholding it. And it is evident, from the various appendices to the Law, that we were correct in stating, that the honour here referred to consists of three parts,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The first of these the Lord enforces, when he commands that whose curseth his father or his mother shall be put to death. In this way he avenges insult and contempt. The second he enforces, when he denounces the punishment of death on disobedient and rebellious children. To the third belongs our Saviour's declaration, that God requires us to do good to our parents(Mt. 15). And whenever Paul mentions this commandment, he interprets it as enjoining obedience.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36.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한 일반적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즉, 주의 임명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세워진 것을 알면, 우리는 그에게 경외와 순종과 감사를 드리며, 그밖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웃어른이 이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 지위에 있게 된 것이며, 이 일이 우리가 그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자연 자체도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반항이나 고집으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경에 경의와 복종과 감사의 세 부분이 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율법에 첨가된 여러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올바릅니다. 주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처음 부분인 경의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멸시와 박대를 복수하십니다. 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에 대해서 사형을 명령하심으로써(신 21:18-21) 둘째 부분인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부모를 후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 존경의 셋째 부분인 감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을 언급할 때마다 강제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확신』(Confirmatio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두 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돌판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 돌판에는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오 계명을 첫째 돌판에 새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는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웃들도 섬겨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은 세상에서도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오 계명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시할 때 다른 종류의 부모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인 부모(세상의 권좌에 있는 사람들) 영적인 부모(교회의 목사들) 그리고 연륜과 경험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스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오 계명이 특별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부모입니다. 제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있게 하신 이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권위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배우지 아니하면 나중에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은 대상에게도 거역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또한 부모들도 자녀들의 마땅한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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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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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가이사 아구스도
- Augustuksen mauseleomi 가이사 아구스도 제사장 사가랴가 벙어리 고생까지 하며 늘그막에 어렵사리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냐고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낳은 지 팔 일이 되어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한 뒤로 이제까지 말 못하는 진짜 벙어리가 되어버린 주름이 깊게 패인 늙숙한 아버지가 손짓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쓰게 서판을 달라고 했다. 그는 서판을 받아들자 자기의 성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짓지 않고 요한이라고 썼다. 모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제껏 벙어리였던 아이의 늙은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아니 자네들 왜들 그렇게 어정쩡하게들 서 있나. 그 아이의 이름은 천사가 그렇게 지어준 것일세.” 사람들은 두 번째 놀랬을 때 눈이 커질대로 커졌었기 때문에 세 번째의 놀람에는 눈들이 오므라들고 입이 해벌쭉해졌다. 요한이라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다. 요셉이라는 젊은 목수도 나사렛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고향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요셉의 이 고향 방문길에 동행이 있었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마리아였다. 그녀는 이미 홀몸이 아니었다. 천하에 칙령을 내린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의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BC 63 - AD 14)였다. 그가 약관의 나이에 로마 정치 판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유서에 의해 양자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로 옥타비안이라고 불렸다. 옥타비안은 카이사르 조카의 아들이었다. 이 솜털이 보송거리는 청년은 자세하고 빈틈이 없어서 로마 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공화정의 대의 정치를 숭상하는 키케로의 주목을 받게 된다. 키케로는 이 청년을 이용해 카이사르에 의해 전제정치로 가고 있던 로마를 다시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옹골찬 계획을 세웠다. Cicero Denounces Catiline, fresco by Cesare Maccari, 1882–88 키케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음을 그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의뭉하고 능청스러운 키케로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려다가 솜털 보송거리는 청년에게 오히려 이용당하고 만다. 옥타비안은 젊었음에도 약삭빠르고 처신이 능숙했다. 암살당한 자신의 양부 카이사르의 합법적인 상속자로서 그는 양부의 부하들이었던 퇴역 군인들과 현직 군인들의 동정을 자신에게 결집시키는 수완을 주위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발휘했다.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는 옛날의 명성뿐이었지만 이 애송이 옥타비안은 로마제국의 상당한 병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진정한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입장이 강화되고 확고해지자 타협과 양보의 손을 거두어들였다.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탄핵을 받은 몇 달 뒤 옥타비안은 여세를 몰아 안토니오와 손을 잡고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인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의 군대를 격파했다. Castro Battle of Actium BC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강력한 안토니오의 군단과 이집트 집권자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합친 거대한 연합군을 옥타비안은 행운에 힘입어 쉽사리 패배시켰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선지 먼저는 클레오파트라가 싸움이 시작되자 도망을 가고 다음에는 그녀를 안토니오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끝으로 로마에 평화가 찾아왔고 최초의 황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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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가이사 아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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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자족하는 마음
- 기후 재앙으로 육지에서 살 수 없게 된 부자들은 모든 게 갖춰진 호화 선박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 연예인 자격으로 승선한 개비는 그 안의 뚜렷한 계급 구분에 신물을 느껴 자진해서 바다로 떨어진다. 해안가로 표류한 그를 '베이'가 건져 살린다. 망가진 도시에 남겨진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고립되기보다는 연결되기를 택한다. 핀스커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저는 희망적이기도, 비관적이기도 하다"면서도 "세상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고, 이들에게 더 많은 힘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많은 주검을 목격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역시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인 거란 것이다. 누구나 한번 태어난 인생은 반드시 돌아가야 함은 정해진 사실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람의 운명인 거다. 재산 수조 원을 쌓아둔 채 몇 년째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는 모 재벌회사의 회장님이나, 제대로 한번 손에 쥐인 것 없이 누더기 같은 삶을 살다가는 이름 없는 인생이나, 빈손인 것은 매 한가지인데 살아온 과정은 쌓아두고 싶은 ‘욕심’에 매여 살아 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자족하는 마음’, 이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한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게 하고 자유롭게 하며 경건에 이르게 한다. 그럼 ‘자족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 마음은 오직 위에 것을 사모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생명 연장의 꿈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많은 의학자들은 해부학을 꼽는다. 기원전 4세기 말 고대 알렉산드리아. 당시 세계는 인간의 몸을 신성하게 여겼다. 몸에 칼을 대는 것도, 몸속을 들여다본다는 발상도 금기였다. 인체 구조를 모르니 맥박, 대·소변, 피부 상태 등으로 미뤄 약물을 처방했다. 100년 전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32세였다. 지금은 73세를 넘겼고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기네스북 공인 역대 세계 최고령자는 1997년 122세 나이로 숨진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의학계에서는 인간의 최장 수명을 짧게는 115년에서 길게는 15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잠깐 살아가는 인생! 솔로몬의 회한처럼 헛된 것에 매이지 않고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이 있는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사모한다면 지금의 나는 ‘살아있음’ 만으로도 모든 게 풍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 6~8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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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자족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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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에스라 1:1~3 오늘날 중동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건국된 면적 약 2만㎢ 인구 860여만 명의 작은 나라로서 아직도 이집트를 제외한 인접한 아랍국가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유태계 80%의 신생국가이다. 놀라운 것은 주전 800~1,200년 전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민족이 국가건설을 열망한 끝에, 2천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와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불과 70여 년 전인 1948년에 팔레스타인계를 몰아내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왠만한 민족들은 나라가 멸망하고 나면 수십 년 혹은 아무리 길어도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인종적 혼합으로 민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 사례인데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은 예수님 이후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갖은 수난과 박해 속에 서로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 종교를 지켜오다가 끝내 다시 뭉쳐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다. 끈질긴 민족성도 민족성이지만 생명력과 결집력은 가히 ‘기적’과 같은 일이다. 유대인들의 기구한 운명은 고대사에서도 숱한 전쟁과 멸망을 겪어 왔지만 예수님 탄생 이후 로마 시대의 종교적 박해를 받다가 근대사에 이르러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1945년 4월 30일)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6백만 명이 넘는 대학살을 겪으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정치인으로, 1933년부터 1945년 자살할 때까지 나치 독일의 독재자였다.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전쟁 내내 군사 작전에 긴밀히 관여했으며, 유대인과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지 하나님이 약속한 7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영적 감동을 받은 바사왕 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 입을 통하여 ‘칠십 년이 끝나면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라. 또한 그동안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가 결실 맺는 감격적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 탄생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스라엘의 역사로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오늘의 작은 중동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나라일까. 저들의 민족적 끈기와 강인한 결집력은 출애굽 후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은 선민의식에서부터 비롯되어 유대인이라는 자랑할만한 민족혼을 지켜 온 것은 사실이지만... “평화의 첫걸음은 항상 가장 어렵지만 오늘 우리는 그걸 해냈습니다.” 내년 노벨 평화상을 기대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0월 14일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지구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마침내 중동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습니다.”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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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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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계시록Revelation
- 요한계시록Revelation은 오늘날 터키 해변의 작은 섬 밧모Patmos에서 사도 요한이 로마의 죄수로 갇혀 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의 일곱 교회들에 직접 보내시는 편지들로 시작한다. 이 편지들에는 칭찬과 비평과 위로가 담겨 있다. 그 뒤 악인들의 심판에 대한 일련의 긴 환상들이 이어진다. 그 환상들은 모두 아주 뛰어난 상징어로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를 확증한다. 그 승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천국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이런 시가 있다. 고향의 봄 _이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은 노래로 더 친숙한 동시다. 고향의 봄을 부를 때 우리의 눈시울이 젖는다. 고향은 태를 묻은 태어난 곳이고 가족과 친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곳이다. 고향의 기억은 작은 보람과 기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난마저도 풍요롭게 되살아난다. 불행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행복한 기억은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게 고향에 대한 기억이다. 그렇듯 신자들에게 천국은 그들의 고향이다. 우리가 천국의 개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는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겁게 살 것이다. 신자들은 모두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신자들의 돌아갈 고향 천국에 대해 요한계시록 22:1-5에서 이렇게 전한다.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을 내게 보이셨다. 그 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길 가운데로 흘렀다. 강 양쪽에 생명나무가 있고 12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었다.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모든 인류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의 종들이 주를 섬기고 주의 얼굴을 볼 것이고 주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다시 밤이 없을 것이고 촛불과 햇빛이 쓸 데 없을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원히 다스리리라.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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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계시록Rev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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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유다서Jude
- 베들레헴 유다서Jude는 예수님의 형제 유다가 쓴 편지이다. 유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교회에 몰래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릇되게 해석하고 우리의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다녔다. 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을 계속 두려움과 사랑으로 대하면서 설득하기도 하고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기도 하라고 권면한다. 이런 시가 있다. 사랑하는 별 하나 _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춰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 시는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는 하얀 들꽃처럼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유다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 그릇된 해석으로 전파되는 곤란한 처지에 직면했다. 그것 때문에 교회 안에 분열과 혼란이 일어났다. 유다는 그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교인들이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외친다.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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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유다서J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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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3서3John
- 에스더의 정원 요한3서3John는 요한2서의 그리스도인의 환대에 대해 더 보충해 진술하고 있다. 요한3서는 가이오라는 이름의 한 신자를 칭찬한다. 그는 사도들의 가르침들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가이오는 여행하는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이고 대접했었다. 요한3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자만심이 그들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시가 있다. 힘과 용기의 차이 _데이비드 그리피스 David L Griffith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는 힘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홀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거짓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의 힘이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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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3서3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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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가이사 아구스도
- Augustuksen mauseleomi 가이사 아구스도 제사장 사가랴가 벙어리 고생까지 하며 늘그막에 어렵사리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냐고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낳은 지 팔 일이 되어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한 뒤로 이제까지 말 못하는 진짜 벙어리가 되어버린 주름이 깊게 패인 늙숙한 아버지가 손짓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쓰게 서판을 달라고 했다. 그는 서판을 받아들자 자기의 성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짓지 않고 요한이라고 썼다. 모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제껏 벙어리였던 아이의 늙은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아니 자네들 왜들 그렇게 어정쩡하게들 서 있나. 그 아이의 이름은 천사가 그렇게 지어준 것일세.” 사람들은 두 번째 놀랬을 때 눈이 커질대로 커졌었기 때문에 세 번째의 놀람에는 눈들이 오므라들고 입이 해벌쭉해졌다. 요한이라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다. 요셉이라는 젊은 목수도 나사렛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고향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요셉의 이 고향 방문길에 동행이 있었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마리아였다. 그녀는 이미 홀몸이 아니었다. 천하에 칙령을 내린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의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BC 63 - AD 14)였다. 그가 약관의 나이에 로마 정치 판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유서에 의해 양자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로 옥타비안이라고 불렸다. 옥타비안은 카이사르 조카의 아들이었다. 이 솜털이 보송거리는 청년은 자세하고 빈틈이 없어서 로마 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공화정의 대의 정치를 숭상하는 키케로의 주목을 받게 된다. 키케로는 이 청년을 이용해 카이사르에 의해 전제정치로 가고 있던 로마를 다시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옹골찬 계획을 세웠다. Cicero Denounces Catiline, fresco by Cesare Maccari, 1882–88 키케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음을 그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의뭉하고 능청스러운 키케로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려다가 솜털 보송거리는 청년에게 오히려 이용당하고 만다. 옥타비안은 젊었음에도 약삭빠르고 처신이 능숙했다. 암살당한 자신의 양부 카이사르의 합법적인 상속자로서 그는 양부의 부하들이었던 퇴역 군인들과 현직 군인들의 동정을 자신에게 결집시키는 수완을 주위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발휘했다.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는 옛날의 명성뿐이었지만 이 애송이 옥타비안은 로마제국의 상당한 병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진정한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입장이 강화되고 확고해지자 타협과 양보의 손을 거두어들였다.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탄핵을 받은 몇 달 뒤 옥타비안은 여세를 몰아 안토니오와 손을 잡고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인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의 군대를 격파했다. Castro Battle of Actium BC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강력한 안토니오의 군단과 이집트 집권자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합친 거대한 연합군을 옥타비안은 행운에 힘입어 쉽사리 패배시켰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선지 먼저는 클레오파트라가 싸움이 시작되자 도망을 가고 다음에는 그녀를 안토니오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끝으로 로마에 평화가 찾아왔고 최초의 황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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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가이사 아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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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자족하는 마음
- 기후 재앙으로 육지에서 살 수 없게 된 부자들은 모든 게 갖춰진 호화 선박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 연예인 자격으로 승선한 개비는 그 안의 뚜렷한 계급 구분에 신물을 느껴 자진해서 바다로 떨어진다. 해안가로 표류한 그를 '베이'가 건져 살린다. 망가진 도시에 남겨진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고립되기보다는 연결되기를 택한다. 핀스커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저는 희망적이기도, 비관적이기도 하다"면서도 "세상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고, 이들에게 더 많은 힘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많은 주검을 목격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역시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인 거란 것이다. 누구나 한번 태어난 인생은 반드시 돌아가야 함은 정해진 사실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람의 운명인 거다. 재산 수조 원을 쌓아둔 채 몇 년째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는 모 재벌회사의 회장님이나, 제대로 한번 손에 쥐인 것 없이 누더기 같은 삶을 살다가는 이름 없는 인생이나, 빈손인 것은 매 한가지인데 살아온 과정은 쌓아두고 싶은 ‘욕심’에 매여 살아 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자족하는 마음’, 이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한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게 하고 자유롭게 하며 경건에 이르게 한다. 그럼 ‘자족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 마음은 오직 위에 것을 사모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생명 연장의 꿈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많은 의학자들은 해부학을 꼽는다. 기원전 4세기 말 고대 알렉산드리아. 당시 세계는 인간의 몸을 신성하게 여겼다. 몸에 칼을 대는 것도, 몸속을 들여다본다는 발상도 금기였다. 인체 구조를 모르니 맥박, 대·소변, 피부 상태 등으로 미뤄 약물을 처방했다. 100년 전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32세였다. 지금은 73세를 넘겼고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기네스북 공인 역대 세계 최고령자는 1997년 122세 나이로 숨진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의학계에서는 인간의 최장 수명을 짧게는 115년에서 길게는 15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잠깐 살아가는 인생! 솔로몬의 회한처럼 헛된 것에 매이지 않고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이 있는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사모한다면 지금의 나는 ‘살아있음’ 만으로도 모든 게 풍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 6~8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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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자족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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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에스라 1:1~3 오늘날 중동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건국된 면적 약 2만㎢ 인구 860여만 명의 작은 나라로서 아직도 이집트를 제외한 인접한 아랍국가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유태계 80%의 신생국가이다. 놀라운 것은 주전 800~1,200년 전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민족이 국가건설을 열망한 끝에, 2천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와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불과 70여 년 전인 1948년에 팔레스타인계를 몰아내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왠만한 민족들은 나라가 멸망하고 나면 수십 년 혹은 아무리 길어도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인종적 혼합으로 민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 사례인데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은 예수님 이후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갖은 수난과 박해 속에 서로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 종교를 지켜오다가 끝내 다시 뭉쳐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다. 끈질긴 민족성도 민족성이지만 생명력과 결집력은 가히 ‘기적’과 같은 일이다. 유대인들의 기구한 운명은 고대사에서도 숱한 전쟁과 멸망을 겪어 왔지만 예수님 탄생 이후 로마 시대의 종교적 박해를 받다가 근대사에 이르러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1945년 4월 30일)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6백만 명이 넘는 대학살을 겪으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정치인으로, 1933년부터 1945년 자살할 때까지 나치 독일의 독재자였다.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전쟁 내내 군사 작전에 긴밀히 관여했으며, 유대인과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지 하나님이 약속한 7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영적 감동을 받은 바사왕 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 입을 통하여 ‘칠십 년이 끝나면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라. 또한 그동안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가 결실 맺는 감격적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 탄생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스라엘의 역사로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오늘의 작은 중동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나라일까. 저들의 민족적 끈기와 강인한 결집력은 출애굽 후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은 선민의식에서부터 비롯되어 유대인이라는 자랑할만한 민족혼을 지켜 온 것은 사실이지만... “평화의 첫걸음은 항상 가장 어렵지만 오늘 우리는 그걸 해냈습니다.” 내년 노벨 평화상을 기대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0월 14일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지구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마침내 중동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습니다.”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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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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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계시록Revelation
- 요한계시록Revelation은 오늘날 터키 해변의 작은 섬 밧모Patmos에서 사도 요한이 로마의 죄수로 갇혀 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의 일곱 교회들에 직접 보내시는 편지들로 시작한다. 이 편지들에는 칭찬과 비평과 위로가 담겨 있다. 그 뒤 악인들의 심판에 대한 일련의 긴 환상들이 이어진다. 그 환상들은 모두 아주 뛰어난 상징어로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를 확증한다. 그 승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천국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이런 시가 있다. 고향의 봄 _이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은 노래로 더 친숙한 동시다. 고향의 봄을 부를 때 우리의 눈시울이 젖는다. 고향은 태를 묻은 태어난 곳이고 가족과 친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곳이다. 고향의 기억은 작은 보람과 기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난마저도 풍요롭게 되살아난다. 불행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행복한 기억은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게 고향에 대한 기억이다. 그렇듯 신자들에게 천국은 그들의 고향이다. 우리가 천국의 개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는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겁게 살 것이다. 신자들은 모두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신자들의 돌아갈 고향 천국에 대해 요한계시록 22:1-5에서 이렇게 전한다.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을 내게 보이셨다. 그 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길 가운데로 흘렀다. 강 양쪽에 생명나무가 있고 12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었다.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모든 인류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의 종들이 주를 섬기고 주의 얼굴을 볼 것이고 주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다시 밤이 없을 것이고 촛불과 햇빛이 쓸 데 없을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원히 다스리리라.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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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들레헴 유다서Jude는 예수님의 형제 유다가 쓴 편지이다. 유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교회에 몰래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릇되게 해석하고 우리의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다녔다. 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을 계속 두려움과 사랑으로 대하면서 설득하기도 하고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기도 하라고 권면한다. 이런 시가 있다. 사랑하는 별 하나 _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춰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 시는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는 하얀 들꽃처럼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유다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 그릇된 해석으로 전파되는 곤란한 처지에 직면했다. 그것 때문에 교회 안에 분열과 혼란이 일어났다. 유다는 그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교인들이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외친다.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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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3서3John
- 에스더의 정원 요한3서3John는 요한2서의 그리스도인의 환대에 대해 더 보충해 진술하고 있다. 요한3서는 가이오라는 이름의 한 신자를 칭찬한다. 그는 사도들의 가르침들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가이오는 여행하는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이고 대접했었다. 요한3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자만심이 그들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시가 있다. 힘과 용기의 차이 _데이비드 그리피스 David L Griffith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는 힘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홀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거짓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의 힘이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다.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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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3서3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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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2서2John
- 야자수 요한2서2John는 선택받은 부인과 그녀의 아들딸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녀의 집은 교제와 예배를 위해 만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열려 있었다. 요한2서는 요한1서에서 말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똑같이 경고한다. 사도 요한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을 환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말했다. 거짓 선생들은 요한의 가르침을 받는 신자들을 꼬드기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친절과 환대를 나쁘게 이용했다. 요한의 편지는 이 위험에 대해 말하고 이러한 신앙의 파괴자들에게 집을 개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런 시가 있다. 여섯 가지 참회_젠드 아베스타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 데 생각하지 않은 것 말해야만 하는 데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 데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데 생각한 것 말하지 말아야 하는 데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 데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요한은 요한1서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그것에 더해 신자들이 피해야 될 세 가지 위험을 지적한다. 첫째 위험은 진리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둘째 위험은 진리를 실천하지만 그것을 옹호하지 않는다. 셋째 위험은 진리를 지나쳐 넘어간다. 사실 진리는 아무리 약하게 보일지라도 진리는 언제나 강하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강하게 보일지라도 거짓은 언제나 약하다.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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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2서2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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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1서1John
- 야자수와 장막 요한1서1John는 성육신의 진리에 관해 권위있게 말한다. 거짓 선생들이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신성과 인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확신할 때 구원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시가 있다. 구도자의 노래 _까바르 살아 있는 동안 손님을 맞이하라 살아 있는 동안 경험 속으로 뛰어들고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이해하라 그대가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죽음이 오기 전에만 가능한 일 살아 있는 동안 밧줄을 끊지 않는다면 죽은 뒤에 어떻게 자유를 얻겠는가 육체가 썩은 다음에야 영혼이 하나님과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하나님을 발견하라 지금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면 그대 갈 곳은 죽음의 도시뿐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라 그러면 이다음에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리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친다. 첫째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빛 안에서 걸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 안에서 걸어야 한다. 셋째 성령은 진리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리를 믿고 진리에 복종해야 한다. 홀로 외로이 천국에 가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홀로 돌아다니는 곰이나 사자와 같은 동물과 신자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양들이다. 양들은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양들은 떼를 지어 다닌다.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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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한1서1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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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베드로후서2Peter
- 베드로의 닭 베드로후서2Peter를 쓸 때 베드로는 죽음이 얼마 안 남고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에 몰래 숨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음을 왜곡했다. 그는 복음의 진리가 이단을 막는 예방백신이고 이단에 대한 해독제라고 주장한다. 복음은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다. 이런 시가 있다. 죽음이 집에서 나를 기다린다 _주전 1900년경 이집트 파피루스에 적힌 시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병의 회복 같은 고통 뒤의 산책 같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몰약 향기 같은 바람 부는 날의 천막 아래 휴식 같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연꽃 향기 같은 취기의 웃음 속 휴식 같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비 온 뒤 걷는 길 같은 오랜 전쟁 뒤의 집으로의 귀가 같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구름 낀 하늘이 개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의 열망 같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다 오랜 속박의 긴 해들을 지나 자신의 집을 다시 본 기쁨 같은 모든 나쁜 것들을 잊고 행복에 대해 명상하라 침묵을 사랑하는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죽음이 오늘 내 앞에 있듯 신자들은 하나님의 귀중한 말씀을 굳게 붙들고 영적으로 자라야 한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거짓 선생들을 알아보고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마음속에 소망으로 간직하고 지켜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영적 지혜를 강조했다. 베드로가 1세기에 주의 재림이 그의 시대에 얼마 안 남았다고 느꼈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주의 재림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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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베드로후서2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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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베드로전서1Peter
- 베드로와 닭 베드로전서1Peter를 읽는 독자는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당하는 박해로 당황하고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거듭 깨우쳐 주면서 견디라고 강하게 권면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풍성한 유산과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강조한다. 이런 시가 있다. 인생의 놀라움_ 이누이트족 코퍼 지파의 전통적인 노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까 아니오 나는 신발과 밑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애를 쓰고 속을 태웠습니다 어쩌다 우리 모두가 사용할 만큼 가죽이 넉넉해도 그래요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름에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하느라 늘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래요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 서 있을 때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 기다리며 나는 행복했습니까 아니오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까봐 나는 늘 내 약한 낚시 바늘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봐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내게 말해 주세요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인생이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는지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 있다고 권면한다. 소망의 사도라 불리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전하는 주요 메시지는 세 가지다. 첫째 주님을 신뢰하고 둘째 어떠한 환경에서도 순종의 삶을 살고 셋째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약속을 바라는 소망을 지키라는 것이다.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찬다는 이누이트족의 노래처럼 베드로는 두 편지의 주제를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그러나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이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게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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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베드로전서1Pe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