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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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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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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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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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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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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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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실시간 G.QT 기사

  • 성경이 삶이 되다_ 성경 한 권이면 충분한 이유
    주신 말씀_ 여호수아 1: 8, 디모데후서 3: 16~17 8. 이 율법의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 한 권이면 충분한 이유 성경책은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책이다. 구약 39권은 ‘축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가득 차 있다 . 세상 사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무엇이 더 필요하며 생을 다하고 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어 있으니 그런 성경책이야말로 온 세상에 나온 수십 수천억만 권의 책을 다 합친 것보다 얼마나 중하고 귀한 책인가! 여호수아의 하나님도 모세오경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할 것을 말씀하시며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할 것을 약속하셨다. 시편 기자는 1장에서 ‘복 있는 자’는 오직 그 율법의 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자라고 단정한다. 모든 성경 말씀에 통달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말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책이라고 정의하였다. 작년, 작심하고 매일 20장 씩을 통독한 결과 과연 성경책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고 그 사랑과 은혜가 생물처럼 살아 역사하여 내 골수를 후벼 파며 꿀송이보다 더 달콤한 맛이 날로 나를 새롭게 하심을 365일 동안 느끼며 산 날들이었다. 할렐루야! 아멘.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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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8과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8과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10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는가? 답_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 지으시고 모든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다. 【관련성구】 1)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6-28 2)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8:4-5 3)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한 유대인 전설이 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불러 회의를 여셨다. 하나님은 시립하고 있는 천사들에게 말씀하셨다.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 데 어떻게들 생각하느냐?” 정의의 천사가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그는 자신의 동료 인간들에게 온갖 사악한 짓을 범할 것입니다. 그는 거칠고 잔인하고 부정직하고 불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리의 천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는 형제 인간에게는 물론이고 하나님한테까지도 거짓말하고 속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거룩의 천사가 경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하지 않은 것을 따르고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비의 천사가 앞으로 나서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인간을 창조하십시오. 그가 죄를 짓고 정의와 진리와 거룩의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그에게 사랑의 말로 타이른 뒤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성경은 창조의 마지막에 대해 말씀하면서 인간의 지위를 강조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6-28 이 말씀에서 인간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 즉 짐승이나 식물이 갖지 않은 인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음을 나타낸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그런 뒤 하나님은 아담의 몸에서 이브를 창조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1-22 하나님은 아담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다. 왜냐하면 아담이 다음과 같이 외쳤기 때문이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이후에 진화의 과정을 밟았느냐는 문제에 의견을 달리한다. 성경은 진화 과정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진화론과 타협할 수 없는 아주 분명한 이유는 이브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11:8-9 아담과 이브의 특별한 창조는 우리 몸이 여러 면에서 동물과 비슷하긴 하지만 동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정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거대한 우주에 비해 인간을 비하하려는 현대 사상의 경향을 성경은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의 존재를 귀하게 여긴다. 더욱이 하나님은 구원한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핵심개념정리】 1.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_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 즉 짐승이나 식물이 갖지 않은 인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인이 진화론과 타협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_진화론과 타협할 수 없는 아주 분명한 이유는 이브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바울 사도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를 어떻게 말하는가? _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9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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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
    2023-01-11
  • 성경이 삶이 되다_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주신 말씀_ 마태복음 4: 17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맡으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 17)이었으며 설파하시는 복음의 중심은 ‘천국’에 관한 말씀이셨다. 즉 4 복음서의 키워드는 바로 천국이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내 삶과 신앙의 목적이자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자체이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을 닮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거룩하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나같이 자격 없는 자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천국’의 영원한 절대 기쁨과 절대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없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그곳, 새 하늘과 새 땅!! 나는 그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기에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오직 예수만 믿고 예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 나아갈 것이다. 신비한 것은 예수님을 사모하여 그분이 내 안에 와 계시면 이 땅에서도 내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내 가정에 천국의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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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8
  • 성경이 삶이 되다_ 영생
    주신 말씀_ 요한일서 5:11~13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영생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목적지는 바로 영생하는 데 있다. 그 영생은 죄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지옥 불 속에서의 영생이 아닌, 하나님이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가 들어가는 ‘새 하늘 새 땅’의 천국에서 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림을 말한다. ‘영생’이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영생’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다 지키고 나아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16~22)고 말씀하셨다. 이 가르침에서 중요한 영생의 개념은 영생은 무슨 선한 일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명에 들어가는 것’(마 19:17), ‘천국에... 들어가는 것’(23절)이란 말씀으로 볼 때 영생은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곧 무슨 일을 해서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체와 근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들어간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영생에 대하여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어 사도 요한은 그의 공동서신인 요한일서의 본문 기록과 같이 예수를 믿고 내 안에 예수가 함께하고 계신다면 이미 나에게는 ‘영생’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예수를 죽인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고 단언하며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자는 결코 사망이 없음을 말씀하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탄생의 목적은 인간처럼 사시기 위해 태어나신 것이 아니고 오직 ‘죽음을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는 공생애 3년 동안도 죽음의 길을 가시기 위해 걸으셨고 마침내 받으신 사명대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라는 사명의 마침표를 찍으셨다. 그의 ‘다 이루심’은 사망을 멸하신 것이고 그와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는 사망이 없는 ‘영생의 삶’을 은혜로 주셨던 것이다. 요한 사도나 바울 사도의 말처럼 예수님을 살리신 이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면 나는 이미 영생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는 오직 사망을 멸하여 주신 예수님의 은혜로구나!!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부자 청년과 같이 십계명은 물론 온 율법을 다 지키고도 모자라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예수님을 모르니 천국에 들어간다는 보장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 시대의 우리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 믿고 성전 된 내 몸 안에 그의 영만 모시고 있으면 이미 ‘영생에 들어가 있는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수치, 고통을 치루시고 물과 피 모든 진액 남김없이 쏟고 마침내 ‘다 이루시고’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그 은혜 무엇으로 다할 수 있을지 오직 눈물만 앞을 가리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2022-12-31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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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1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주신 말씀_ 누가복음 2:10~14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얼마 안 떨어진(9km) 작은 동네이지만 그곳은 다윗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한편으로는 보아스와 룻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성경 학자의 이야기로는 그곳은 지구를 몸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심인 인간의 배꼽과도 같은 곳이라 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동네이지만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곳 ‘베들레헴’에 드디어 7백 년 전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예언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 5:2 이렇게 7백 년 전에 예언이 되신 메시아 탄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시는 메시아는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소식’ 그 자체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정체는 ‘상고에 영원에’ 있으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신데 그 지극히 귀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으며 그것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낮은 곳, 천한 곳, ‘말구유’ 위에 놓여 오신다는 것이 상상이 될 일인가? 왜? 하나님은 그 천한 곳으로 가장 낮게 오셨을까? 구유 위에 뉘이신 예수님을 그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보자!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람을 포용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세상에 난 자 중에 말구유 위에 놓여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비천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을 안으시며 섬김의 본이 되시기 위해 주님이 말구유 위의 비천함을 스스로 택하심 때문이다. 둘째,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할 ‘대속 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오셨기에 스스로 가장 낮은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구원하실 인간은 귀하게 여기시고 자신은 가장 비천한 죄의 제물이 되려 하셨기에 왕궁의 침대가 아닌 말구유를 택하신 것이다. 셋째, 탄생하시는 자리마저 좋은 곳, 좋은 자리는 사람에게 차지하게 하시고 당신은 말구유를 택하심으로 ‘섬김’의 시작부터 본을 보이신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넷째, ‘이처럼’ 사랑하심의 증표를 보인 것이다. 말라기 때에 자기 백성들에게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 1:2) 하는 냉담한 반응에 서운함을 느끼신 하나님은 그후 4백 년간 침묵하시다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시며 ‘이처럼의 사랑’을 말씀하셨다. 말구유에 뉘어서 오시는 ‘이처럼의 사랑’, 이는 하나님의 세상 사랑하심의 증표요, 확증하심이라. 다섯째,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육신으로 솔선수범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세상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시고 끝내 당신의 몸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심을 보이셨으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4)고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되는 단 하나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중에 속하여 있는가? 단연코 들어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설레이는 그리움 속에 기다림에 젖어 사는 것이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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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8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
    주신 말씀_ 욥기 1:6~12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언급하시며 칭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브라함을 벗이라 부르시며 신뢰하셨고 모세는 칭찬은 하지 않으셨으나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실 만큼 가깝게 대한 사람이였으며 다윗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 종 다윗’이라는 칭함을 받았다. 여기에 비하면 욥은 하나님의 더 큰 절대적 신뢰를 받고 아낌없는 칭찬을 받은 사람인 듯하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들과 세상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사람을 파괴하려고 간계를 부리는 사탄 앞에서 하신 칭찬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내 사탄은 딴지를 걸었다. 그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욥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사탄의 속성이었으며 하나님의 욥에 대한 신뢰를 무색하게 만들겠다는 계교가 발동한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사탄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욥은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신뢰를 지켜낸 것이다. 사람에게는 치명적으로 아픈 곳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과 평생을 일궈 온 재물일 것이다. 사탄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욥이 정신 차릴 기회도 안 주고 다짜고짜 열 명의 딸 아들과 전 재산을 쳐버렸다.이런 상황이 닥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함은 물론 자신도 살 의욕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욥은 오히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지이다”(욥 2:21) 하며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믿음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사탄의 두 번째 공격과 세상 친구들의 조롱과 비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같이 그는 뼛속까지 하나님을 신뢰한 의인이었다. 아멘.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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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1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훈련이다
    주신 말씀_ 요한복음 16:23~24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훈련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세상은 누리고 즐기며 살다가 가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받는 곳이며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 섬기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나는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고된 훈련을 받은 바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받기 위한 사람은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주님 가르치심대로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 훈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기도’ 훈련이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방법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점을 받는 과목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틈만 나시면 ‘기도’의 본을 몸소 보이셨고 기도에 관련된 말씀을 가르치셨다. ‘기도’는 신비한 능력을 보이는 힘으로써 내 마음과 하나님 마음을 소통시키는 유일한 통로이자 수단이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내 필요한 것으로 얻는 것이다. 또한 ‘기도’는 나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며 나를 단련하여 하나님께 ‘쓰임’의 도구로 발탁 받을 수 있는 등용문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나의 삶을 지배하게 하여야 하며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쉼이 없어야 한다. 기도를 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기도가 막힘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첫째, 하루의 가장 소중한 시간에 기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훈련을 하여야 한다. 셋째, 기도의 실력을 키워서 세상의 문제와 도전을 이겨나가야 한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지면 기도는 곧 기쁨이며 유익이며 능력이며 힘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축복의 특권이다. 아멘.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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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4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주신 날을 즐겁게 살자
    주신 말씀_ 전도서 9:7~9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날을 즐겁게 살자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사는 동안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다. 창조 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아담과 하와를 돕는 배필로 직접 맺어주셨으며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에덴의 풍요와 평강을 누리며 영원히 살 터전을 베풀어 주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복을 차버린 것도 인간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죄’의 덫에 빠짐으로 행복이 보장된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은 물론 평생을 수고와 땀을 흘려야 살 수 있는 생을 자초한 것도 우리 인간 자신이다. 그러나 끝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올무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전 세상 삶이 비록 짧고 순례의 길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가 바라시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도서의 말씀을 기준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이 즐겁게 인생을 사는 방법은 첫째, 하루 평범한 세 끼 식사에서 감사하는 마음속에 즐거움과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겠고 둘째, 늘 단정하고 정결한 옷차림과 반듯한 용모를 유지함으로써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경건함 속에 평강을 유지하여야 한다. 셋째, 하나님이 맺어주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안정된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해 아래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헛된 날’을 ‘행복한 날’로 바꾸는 방법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으니 이런 행복한 삶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치와 향락, 쾌락, 정욕에서 찾는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곧 진정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의 마음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항상 빈 마음’으로 주님만 담고 사는 데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롭게 여겨졌다면 지금은 그 삶이 진짜 행복임을 느끼는 것이다. 아멘. 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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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7
  • 성경이 삶이 되다_ 가슴 벅찬 소망, 부활의 몸
    주신 말씀_ 고린도전서 15:42~44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가슴 벅찬 소망, 부활의 몸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없었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없었으면 오늘의 나 또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가치요, 전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날 심판의 때에 있을 부활의 영광에 대한 가슴 벅찬 소망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부활’ 문제를 확증하여 믿지 않는 자는 구원 받은 자라 말할 수 없고 나아가서 참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무섭고 두려운 숙명적 문제인 ‘사망’을 근본적으로 파멸시킨 창조 역사 이래 가장 큰 ‘대사건’이다. 문제는 부활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부활’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하며 저들로 믿게 하여 전도하느냐에 있다 하겠다. 그 해답은 바로 ‘성경’ 속에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과 삶, 그리고 십자가 죽음, 부활의 영광! 오직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기록되어 온 책이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죽으신 후 3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주지시키셨으며 실제 부활하신 후에도 친히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경에 예언되어온 기록을 말씀하시며 당신의 부활을 설명하셨다(눅 24:27). 곧 모세와 선지자들의 예언과 다윗이 기록한 시편을 들어 그 말씀들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기록이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둘째,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등의 기록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열두 제자 외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는 친히 못 자국 난 손바닥과 창에 찔린 상처를 보이시며 손을 넣어 보라고까지 하셨다(요 20:26~30).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이나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 일을 가르치시고(행 1:3) 한 번은 5백여 사람들에게도 보이셨으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다. 셋째, 사울이었던 바울을 변화시킨 다메섹 도상의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울이 누구인가? 스데반 집사의 죽음 옆에서도 살기가 등등하며 교회를 진멸하는데 누구보다 앞장 서 있던 사람 아닌가? 당시 그 어떤 논리나 상황 설명으로도 그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오직 그는 그의 눈으로 하늘로부터 비추인 빛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행 9:1~9) 변화된 것이다. 이 사건은 보통 사람의 변화가 아니다. 바울의 변화는 인류 역사를 바꾸는 시발점이었고 오늘날 전 세계 그리스도인을 양성시킨 전무후무한 이방인의 사도가 탄생하는 순간의 사건이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나를 포함한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천, 수만 개의 교회와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그들은 존재치 않았을 것이고 존재하는 온 그리스도인은 모두 예수님의 뒤를 따를 ‘부활의 영광’에 들어갈 소망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멘.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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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0
  • 성경이 삶이 되다 _ 그리스도 안에서 입술과 혀를 지키자
    주신 말씀_ 야고보서 3:2~10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입술과 혀를 지키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8) 이 말씀은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의 정탐꾼들로부터 보고들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고 옛적부터 끊임없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채 두려움에 떨고 요동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겠다’(민 14:2~3)라고 울부짖는 ‘말’을 들으신 하나님이 분노에 차서 하신 말씀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곧 출애굽 세대는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다가 모두 죽었고 하나님을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만나 세대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입성할 수 있었다. 방정맞고 무분별한 ‘혀’가 그들의 삶의 수레바퀴를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다 듣고 계신 분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다’ (잠 20:12) 우리의 입과 혀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 참으로 혀는 본문처럼 작은 지체지만 길들이기도 지키기도 힘든 것이다. 그 혀는 큰 지체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며 영원히 빠지지 않을 대못을 상대방의 가슴에 박아 놓기도 한다. 말은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품이 되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혀를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으로는 능히 혀를 길들일 수 없다 하였으니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과 혀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잠언을 통하여 주지시키고 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니 네 입의 말로 인하여 네가 잡히게 되었노라’ (잠 6:2)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 16:24) ‘세상에는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은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 80:15) 아멘.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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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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