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굳뉴스] 이스라엘 전쟁의 진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의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동시에 아랍어에서 '힘'과 '열정'을 뜻하는 말)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고 나서, 당시 인근의 ‘노바’ 사막 음악 축제에 참석했던 여성 노아 아르가마니(당시 25세)가 테러범들의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졌다. “죽이지 말아달라”는 노아의 절규가 담긴 피랍 영상은 테러범들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번졌다. 여성은 남자친구에게 손을 뻗었지만, 남자친구도 테러범 2명에 붙잡혀 있었다. 이 테러로, 1200여 명이 죽었고, 25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노아가 245일만에 석방되고 나서, 그의 남자 친구를 붙잡고 있었던 두 남성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5월 15일에는 2025년 이후 가자지구 하마스 조직의 군사령관인 에제딘 알하다드가 사살됐다. 이스라엘 전투기 3대가 가자 시티의 한 아파트와 그곳을 떠나려는 차량에 13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하다드와 아내, 딸, 민간인 여려 명이 죽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율 20일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의 10ㆍ7 테러 관련자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계획자, 전투원, 가담자 모두를 색출해 죽이거나 체포하는 태스크포스 ‘닐리(NILI)’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닐리’는 사무엘상 15장 29절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네차흐 이스라엘 로 예사케르)’는 히브리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略字)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첩보단이 사용했던 이름으로, 2023년의 10ㆍ7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자는 누구도 잊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심지어 그날 이스라엘ㆍ가자 국경 철망을 트랙터로 밀고 넘어간 트랙터 운전기사도 테러 발생 근 2년만에 신원과 위치가 파악됐고, 결국 가자의 한 좁은 거리를 걷다가 공습으로 살해됐다. ‘닐리’ 명단에 오른 이름은 수천 명. 이미 수백 개의 이름이 삭제됐지만, 테러 관련자들은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이 지켜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 명씩 명단에서 지워지고 있다. 하마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의 감시 능력과 보복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테러범들과 가담자들은 10월 7일 자신들의 활동 장면을 휴대폰과 고프로(GoPro) 카메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이 영상 데이터는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무가 됐다. 2023년 10월 15일 오전 11시 창성교회 본당 함성익 목사가 성경 마태복음 5:1-12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신 팔복의 말씀을 중심으로 '행복의 본질'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에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과 테러 집단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하마스의 전쟁 내력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축제의 안식일 새벽 6시 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예상 보유량을 넘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면전 수준의 도발이었습니다. 하마스는 지상으로도 직접 침투,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을 포로로 잡아 가자지구에 억류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날은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50주년 다음 날이었습니다. 당시 아랍 연합군의 공격 징후를 놓쳐 패배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의 트라우마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오래 준비했고 상징성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정치인이자 제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 Listeni, 1942년 11월 20일~)의 말처럼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즉각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알카에다에 기습적으로 당했던 9·11테러를 소환했습니다. 이어 '9·11(나인 원 원)'처럼 '10·7(텐 세븐)'이란 고유명사가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피의 분쟁 역사는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던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 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습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에 세운 도시였습니다. 구약의 유대인 사사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델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돌팔매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 영웅이었습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2천 년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딱 맞지 않습니다. 용맹한 블레셋인은 기원전 4세기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에게 저항하다가 패퇴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블레셋의 후예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습니다.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징벌로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이란 뜻)이라 부른게 시초입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타올랐다. 이 전쟁으로 서안 지구(West Bank)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두 곳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여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인 인티파다(봉기)가 불붙었습니다. 하지만 가자와 서안 지구는 그 후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인티파다로 자치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했습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 테러 단체 하마스가 승리하고 파타가 불복하면서 가자는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수중에 떨어진 가자에서 정착촌을 철수하고 물과 전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가로 10㎞, 세로 40㎞인 강원도 크기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싸움이 격화되면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세력의 팔레스타인 궤멸 논리가 힘을 얻고, 이슬람 극단주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소멸론을 주장하며 이란을 포함하는 반시오니스트 연대를 강화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배척하는 종교의 교리가 담긴 종말론 즉 아마겟돈의 서사(敍事)입니다. 이 서사는 현실이 되면 안 됩니다. 비유로만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 사태 설명을 끝내고 '행복의 본질' 설교를 이어갔다. "이스라엘 전쟁은 종교적인 갈등,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갈등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집안, 내 가족이 어울려 살기 위해 벌어진 다툼입니다. 어쨌거나 전쟁은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이 팔복의 말씀 역시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죠. 유대인의 탈무드(미쉬나-Mischna, 반복/가르침-와 게마라-Gemara, 보완/보충-가 합쳐진 책이다. 미쉬나는 토라인 타낙<히브리 성경>에 대응되는 구전 토라로 AD 200년경 편집된 최초의 권위 있는 종교적 법규 모음집이다. 게마라는 미쉬나에 관한 랍비들의 논구와 해설들의 전승을 지칭하며 이 게마라가 미쉬나와 합쳐져서 탈무드를 형성)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중병을 얻어 눕게 됩니다.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나 차도가 없고 점점 몸만 더 나빠집니다. 어느 날 자녀들이 랍비를 찾아가게 됩니다. 당시의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랍비가 가르쳐 주기를 '나는 정말 행븍합니다'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외투를 빌려 아버지를 덮어주라. 그러면 당신 아버지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온갖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산중의 한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굴속에서 기도하는 한 수도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안식에 들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반가워 굴에 들어가 그의 외투를 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도사는 외투는커녕 걸치고 있는 옷이 속옷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자녀들이 그때 깨우친 교훈은 분명했습니다. 역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안에 있는 것으로 물질로 행복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 가운데 ‘목사님 저는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 저와 함께 읽은 마태복음 5장 1-12절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론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진정한 행복의 교훈을 가르쳐주신 진정한 행복은 갈릴리에 있는 소위 팔복산으로 가야 할 겁니다. 팔복산은 가버나움에서 한 10킬로 떨어진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아주 작은 산입니다. 그 산에 팔복 기념교회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중앙 팔각형 안의 여덟 개 창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창문들에는 라틴어로 팔복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 이스라엘 관광을 제일 많이 가는 줄 아십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라틴어 팔복 말씀이 한글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그림 같은 갈릴리 바다가 펼쳐집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 장소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행복의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주셨다고 합니다.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원문 성경에 보면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행복의 본질을 말씀해주시면서 제자들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오자 예수님이 입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팔복의 교훈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자신을 따르는 예수님 제자들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행복의 본질이 이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람이 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 팔복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심령의 상태 즉 마음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첫 번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만 아니라 두 번째 복, 애통함도 마음의 상태, 세 번째 복 온유함도 마음의 상태, 네 번째 복,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다섯 번째 복 긍휼히 여김도 따지고 보면 다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철저하게 행복은 결코 외적인 상태 즉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의 다스림에 있다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조금만 더 돈을 벌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넓은 집을 가지게 되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출세하고 조금만 더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허상의 바램 속에서 제각각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강조해주고 계십니다. (회중 아멘) 우리의 마음이 참으로 가난해지면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고 사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우리 가운데 새벽에 늘 나오는 분이 계세요. 폐가 안 좋으신데 저하고 얘기할 때 숨을 가쁘게 쉬십니다. 그런데 매 주일 감사헌금을 내면서 ‘하나님 한 주간도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새벽기도 나와서도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가십니다. 하루하루와 매시간이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행복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두 번째로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입니다. (회중 아멘)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팔복은 복이 ‘있도다’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의 축복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영어로 블레스(bless)입니다. 어원은 블리드(bleed) ‘피 흘리다’ 입니다. 이 단어는 피의 제사에서 유래된 단어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피 흘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피 흘려 드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말씀했습니다. 팔복이 바로 이런 하나님하고의 바른 관계를 가리키는 마음의 덕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이 죄지은 것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의 표준만을 기뻐하고 거기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년 11월 6일 ~ 2018년 10월 22일)이라는 유명한 미국의 성경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복음주의 기독교출판협의회로부터 상을 받은 책 ‘메시지 성경’(The Message: The Bible in Contemporary Language)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풀어준 책에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회중 아멘) 애통하는 자의 복,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회중 아멘) 두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맛에 당기는 자는 복이 있다. 평생에 너희 음식이요 음료로다. (회중 아멘) 참 의미 있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늘 애곡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 그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래서 배부름을 얻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포기하고 주 앞에 엎드려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의지하고 거기서 경험하는 것을 영적인 만족으로 추구하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경험하는 창성교회 교우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세 번째 행복의 본질은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팔복의 가장 중요한 점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과의 마음부터의 올바른 관계를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팔복에는 이웃과의 관계도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에 뭐죠. (회중과 함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니까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이 이웃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주 중요한 강조점이고 팔복의 핵심입니다. 이웃 사랑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팔복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다섯 번째 복과 일곱 번째 복을 보십시오. 다섯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 번째 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보면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정성을 들여 돌보는 너희는 돌봄을 받는다. 화평케 하는 자,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야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내 이웃을 배려해주고 섬기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 청교도들은 행복에 관해 이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말입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뭘 하라? 이발하라. 우리가 이발소나 미장원에 다녀오면 하루는 깨끗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한 주간 행복하려면 여행해라.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들뜨고 행복합니다. 신바람이 납니다. 여행 가서 일주일 지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집 생각이 나죠. 한 달 행복하려면 새집으로 이사 가라. 새집으로 이사 가도 수리하고 뭐하고 해도 한 달밖에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한 해 행복하려면 결혼해라. 뭐 처녀하고 총각끼리 평생 사느니 죽느니 해도 결혼하고 일 년 사니까 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회중 웃음) 그러나 일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일생 행복하다는 겁니다. 때로 어려움도 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여러분 예수님 행복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섬기시면서 자신도 무척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우리 예수님은 행복하게 사신 겁니다. (회중 아멘)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시면 떠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여러분 인간 가운데 마지막 순간 ‘다 이루었다’ 하고 떠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분이 있다면 시인 윤동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십자가’라는 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그리스도’ 참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삶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행복을 누리셨습니다. 섬김에는 아픔과 고통도 따르지만, 그 섬김의 건너편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희열과 놀라운 행복이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복을 붙잡고 간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중 아멘)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마음이 가난하셨던 분이요 인류의 죄 때문에 애통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붙잡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행복은 우리의 가진 것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어떻게 옵니까. 주님을 영접할 때 옵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내 모든 삶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회중 아멘)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살고 주님을 섬기며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회중 아멘) 저는 우리 창성교회 교우들이 팔복을 붙잡고 팔복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팔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회중 아멘)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음을 알고 행복한 그리스도인 행복한 창성교회 교우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큰 아멘) 창성교회는 2026년 3월 21일 함성익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고, 강동규 목사를 제3대 담임목사로 위임했다. 함성익 목사는1992년 제2대 담임으로 부임해 창성교회와 황해노회와 총회를 35년간 헌신했다. 함성익 목사는 답사를 통해 그 35년을 회고했다. “정년까지 사역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목회자이셨던 부친 함영진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2026-07-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6-07-19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소나무 박용규 목사
예술가가 돌에 애착을 갖는 까닭은 멈춘 듯 고요하면서도 꽉 찬 밀도의 힘이 느껴지는 비범한 기운 때문이다. 생명 없는 돌도 그 내용을 알려면 그 형식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과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듯 110년 역사의 총회를 책임진 총회장이나 그 청지기 총무도 그래야 할 것이다. 유대인의 풍속을 묘사한 단편집 《굿바이 콜럼버스》'Goodbye Columbus'(1959)로 전미 도서상 시상식에서 '가장 뛰어난 기여 훈장'을 수상하고 당대 4대 미국 작가로 손꼽힌 필립 로스(Philip Milton Roth, 1933년 3월 19일 ~ 2018년 5월 22일)는 말했다.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 그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새기고 ‘영감’이 아닌 ‘마감’의 힘으로 버티는 게 총무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은 이런 힘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님의 섭리는 면죄부 장삿꾼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조를 되찿는 개혁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소나무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나무는 초조해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으며 아우성치지 않고 가만히 인내할 뿐이다. 척박한 바위 사이에도 뿌리내리는 소나무야말로 건너가는 자, 즉 초인(超人)이 아닐까. 소나무의 옛 우리말인 '솔'은 '으뜸'을 뜻하는 '수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장 우두머리인 나무'를 뜻한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아 지조와 절개, 그리고 굳은 의리를 상징한다. 총신의 소나무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소나무 앞에서 누가 거짓을 말할 수 있겠나." 그래서 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단단하며 뒤틀림이 없어 조선 시대부터 궁궐을 짓는 데 사용됐던 모양이다. 고급 목재로 쓰인 소나무같은 박용규 목사는 파란 많은 총회 총무 직무를 3년여 올곧게 수행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 7:9-10 2026-07-18
-
[더굳뉴스] 총신대학교 제5대 총장선거
‘죽음의 수용소’로 불렸던 나치의 아우슈비츠에 오케스트라가 있었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1933년부터 독일 강제 수용소에는 공식 악단이 활동했고 아우슈비츠에도 여러 악단이 존재했다. 단원은 수감자 중에서 선발된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의 편곡자이자 악장이었던 폴란드계 유대인 음악가 시몬 라크스(1901~1983)는 자신의 연주에 감동하는 나치 친위대원들을 보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인류에게 이토록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20살을 갓 넘긴 한 나치 친위대(SS) 병사가 부상으로 죽음을 맞고 있었다. 그는 임시 병원의 간호사에게 수용소의 유대인 한 사람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독일 병사는 처음 보는 유대인에게 자신이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자행했던 끔찍한 만행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유대인 마을에서 독일군이 소련군과의 전투에서 30명이 사망한 후 우리는 유대인 건물에 수류탄을 던져 300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불타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총을 쏘았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독일 병사가 이어가는 이야기를 유대인은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마다 독일병사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제가 한 짓을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 결코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가지 마세요. 제발…” 독일병사는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의 손을 놓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이 유대인은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나온 후 그 독일 병사의 고향집을 찾아간다. 병사의 방에는 맑은 눈의 청년 사진이 걸려 있고 어머니는 착한 아들에 대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유대인은 고민했다. “마지막 순간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 잘 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그는 이런 고민을 가슴에 묻은 채 평생을 나치 전범(戰犯) 추적에 나서게 된다. 그는 3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었고 그동안 일가친척 89명이 나치의 손에 희생됐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이먼 비젠탈(Simon Wiesenthal, 1908~2005)의 저서 ‘해바라기’에 담긴 이런 내용은 그의 나치 전범 추적이 오직 복수와 응징만을 위해 출발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50여 년간 나치의 범죄 증거를 찾아내 1100여 명을 법정에 세운 비젠탈은 “내가 해 온 일의 유일한 가치는 미래의 살인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복수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라는 그의 신념이 그의 작업에 수많은 동참자를 모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게 사이먼비젠탈센터의 존재다. 도대체 어떤 단체길래 1급 나치 전범을 찾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을 하는가. 우리나라처럼 쉽게 망각하는 사회에서 사이먼비젠탈센터의 존재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아소 다로(麻生 太郎, 1940년 9월 20일 ~ )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작년 7월 29일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던졌다.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의 우익 세력이 민주적인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누구도 모르게 무력화시켰던 ‘나치식 개헌’ 수법을 배우자는 제안이었다. 나치의 개헌은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600만 명 대학살의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유럽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소 부총리는 ‘은밀하고 위대하게’ 개헌을 해보자는 취지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속내를 널리 알린 셈이 됐다. 아소는 당시 한국과 중국 정부가 그의 몰역사성을 지적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소는 사이먼비젠탈센터가 강하게 비판하자 서둘러 발언을 취소했고, 일본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다. 사이먼비젠탈센터를 그만큼 무서워한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대학살)에서 살아남아 전후 나치 전범 찾기에 평생을 바쳤던 사이먼 비젠탈이 2005년 8월 20일 96세의 나이로 숨졌다. 비젠탈은 세계대전 당시 12개 나치 수용소를 전전하며 고초를 겪었으며, 일가친척 89명을 잃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1945년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소재 죽음의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건축가가 됐지만, 곧 나치전범 색출과 전 세계에 홀로코스트를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법정에 세운 나치 전범만 약 1100명에 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비젠탈은 나치를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비젠탈은 오스트리아 빈에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비젠탈이 생업을 접고 전념한 결과 ‘유대역사기록센터’는 점차 이름이 알려졌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때 ‘안네의 일기’와 관련해 음모론이 존재했었다. 안네 프랑크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안네의 일기’도 가짜라는 얘기가 퍼졌다. 유대인 오토 프랑크가 홀로코스트를 과장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비젠탈은 ‘유대역사기록센터’의 자료를 바탕으로 안네 가족의 흔적을 역추적했다. 결국 5년만에 안네 가족을 아우슈비츠에 보냈던 게슈타포 카를 질베바우어를 찾아내 음모론을 잠재웠다. 비젠탈이 개인 차원에서 운영하던 ‘유대역사기록센터’는 1977년 미국·캐나다 유대인사회가 기금을 모아 유엔 산하 비정부기구(NGO) ‘사이먼비젠탈센터’로 태어났고 본부를 미국 LA에 두었다. 이후 비젠탈은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 센터 운영과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다. 사이먼비젠탈센터는 현재까지 1100명의 나치 전범을 찾아내 법정에 세웠다. 이 중에는 ‘아우슈비츠의 악마’로 통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이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16년을 숨어 살다 체포되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지부를 두고 있는 것은 나치 전범들이 특히 아르헨티나로 많이 도피했기 때문이다. 사이먼비젠탈센터의 고민은 나치 전범들이 고령이어서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전에 자연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사이먼비젠탈센터는 “나치 전범들이 단죄 없이 자연사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보다 적극적인 추적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이먼비젠탈센터는 독일의 베를린·함부르크·쾰른 3개 도시의 중심가에 생존해 있는 나치 전범을 신고해 달라는 포스터를 붙였다. 어느덧 우리도 ‘나치 미화’는 정신병자의 짓이라 생각하면서 일본 정치인들의 ‘군국주의 미화’ 망언에는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만일 아시아에도 비젠탈처럼 집요한 ‘일제 전범 사냥꾼’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731부대의 세균전, 난징대학살 등에 관여했던 전범들이 잡힐 때마다 세계인들이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을 것이다. 2013년 12월 22일 박춘근 목사가 기독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총신대학교 제5대 총장선거가 끝났다. 총신대 총장선거는 보수신학의 상징이며,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신학교의 수장을 선출한다는 점에서 교단 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만큼 총신대 총장선거는 분명하고 투명하게, 법과 원칙을 준수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 총신대 재단이사와 운영이사들은 명예롭게 총장선거를 진행했는가? 먼저 이번 총장선거는 예전과 비교해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총장선출에 있어서 운영이사회 직전에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결정하고 투표에 들어갔던 지난날 아픔을 거울삼아 후보등록과 검증과정을 가졌다. 또한 총장선거를 앞두고 느슨했던 운영이사의 자격문제까지 심의를 해서 총회총대가 아닌 이사를 교체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또한 예전과 달리 총장후보를 등록받아 교수 5명과 목회자 2명 등 일곱 사람이 출사표를 던졌고, 총장 후보도 모른 채 투표를 하던 지난날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총신대의 발전을 위해 명예로운 총장을 선출하여 잘했다는 평가와 함께 실추된 교단의 위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긍정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제75회 제78회 제98회 총회에서 거듭 결의된 70세 정년 은퇴 규정을 어기는 큰 과실을 범했다. 일부 이사들, 곧 총장추천에 참여했던 이사들은 일괄되게 사립학교법을 거론하고 있지만, 사학법도 지키고 교단의 결의도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법대로 하지 않았는가? 제99회 총회에서 이에 대한 대답과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법은 사학법이든 총회법이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존속하고, 질서 있게 운영될 수 있다. 이번 총장선출을 위한 운영이사회는 이 법과 질서를 깨뜨렸고, 결과적으로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추천위원회는 이번 총장선거에 기준이 된 선거시행세칙을 전체 운영이사회에 보고하고 통과시켜야 했다. 추천위는 운영이사회에서 “총장선임의 건에 대하여 세칙을 만들어 그 기준에 맞게 후보자를 심사한 후 추천하기로” 결의해 주었다며, 시행세칙을 보고하고 통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시행세칙도 정관도 회의자료에 첨부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의도적으로 운영이사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이다. 둘째, 추천위는 총회규칙에는 70세 정년이 있지만, 학교 정관에는 연령 규정이 없어 사학법에 따라 70세 이상 된 사람도 총장후보로 올릴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추천위는 사학법대로 은퇴자의 후보등록은 받고, 검증 추천과정에서 총회규칙에 따라 최종후보로 상정하지 않으면 사학법도 총회법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따라서 이것도 의도적으로 총회 규칙과 결의를 어긴 것이다. 셋째, 운영이사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서도 투표를 했다. 운영이사들이 총회 결의를 지킬 정신만 있었다면, 부표를 던져 추천위원회로 하여금 다시 최종후보를 선임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필자를 비롯해 투표를 한 모든 운영이사들은 총회규칙을 무시하고 불법을 저지른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총신운영이사회는 정관에 ‘본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신대학교의 관리, 운영, 발전을 목적으로 하며, 총회의 감독과 지시를 받는다’(1장2조)고 명시돼 있다. 또 의무로 ‘본교 정관과 이사회 규칙을 준수하며, 총회의 모든 명령을 이행한다. 단, 총회의 지시 건은 그 실행한 바를 다음 총회에 보고하여야 한다’(9조1항)고 규정하고 있다. 총회의 규칙과 결의를 어기고, 감독과 지시와 명령을 따르지 않은 총신운영이사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차제에 나치 전범을 찾아내 형벌을 받게 한 사이먼비젠탈센터와 같은 단체를 만들 힘은 내게 없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내 모교 총신대를 모독하고 오염시키는 인사들을 몰아내기까지는 사이먼 비젠탈처럼 힘을 다할 인물이 필요할 것이다. 총신대학교 이사명단 ▶재단이사 이사장 김영우 목사/서천읍교회 담임목사 부이사장 백남선 목사/광주미문교회 담임목사 부이사장 안명환 목사/수원명성교회 담임목사 이사 정준모 목사/대구성명교회 담임목사 이사 최형선 목사/성남서광교회 담임목사 이사 이기창 목사/전주 북문교회 담임목사 이사 배광식 목사/울산 대암교회 담임목사 이사 김정훈 목사/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이사 유병근 목사/남도교회 담임목사 이사 김승동 목사/구미상모교회 담임목사 이사 고영기 목사/월드상암교회 담임목사 이사 이승희 목사/대구 반야월교회 담임목사 이사 박영종 장로/엘림교회 시무장로 ▶운영이사회 이사장 전대웅 목사 부이사장 김영우 목사 부이사장 송춘현 목사 서기 김종준 목사 부서기 정준모 목사 회계 최형선 목사 부회계 서광호 목사 ▶노회파송이사 강동 양경운 대경 홍동명 서중 배재군 평양 김진하 강원 김미열 대구 남태섭 서평양 황일동 한남 송춘현 경기 김영복 대구수성 장영일 서한서 이은철 한서 김종준 경기남 소강석 평안 정하윤 대구중 박성순 성남 정평수 한성 전주남 경기동부 최승재 대전 정진석 수경 공호영 함남 강태구 경기북 윤두태 동광주 고광석 수도 마순상 함동 김철중 경기서 김충현 동대구 송기섭 수원 고창덕 함북 정원영 경기중앙 최관기 동대전 하재호 순천 이승수 함중 노윤호 경남 이상근 동부산 정동만 안동 김정구 함평 황상길 경남동 서광호 동서 김보석 안주 김정호 호남 박성수 경동 장재덕 동서울 노태진 여수 김성천 황동 이춘복 경북 정희수 동수원 김성길 용인 김종원 황서 서재철 경상 이상렬 동인천 하귀호 용천 배재철 황해 이영민 경서 임영식 동전주 김형주 울산 조인호 충청 김영우 경성 문경태 동평양 신규식 이리 안홍대 광주 백남선 경신 박영배 목포 정용환 인천 최인모 황해 안명환 경안 박병석 목포서 송귀옥 전남 정창수 서대구 정준모 경인 류재훈 목포제일 김경윤 전남제일 박종일 성남 최형선 경일 김경수 무안 정의건 전북 이길우 전주 이기창 경청 김종우 부산 이선유 전북남 유태영 부천 이상빈 서광주 한기승 경평 최명근 전북서 라상기 남울산 배광식 경향 천귀철 북전주 이병선 전북제일 이재승 남부산남 김정훈 고흥보성 이선행 빛고을 김종주 전서 전대웅 남평양 이완수 광주 김상신 산서 허활민 전주 이창남 동서울 유병근 구미 함종수 삼산 윤남철 제주 박창건 구미 김승동 군산 석경식 서경 임창일 중경기 전인식 평양 고영기 중부 윤두환 군산남 이내식 서광주 장종섭 동대구 이승희 군산동 최승국 서대구 전승덕 목포 박영종 중부산 박성규 김제 김찬홍 서대전 오정호 중서울 이상협 김천 김영철 중앙 정운주 서부산 김수철 남경기 김 구 서서울 유선모 중전주 김인원 남광주 이광준 서수원 이인기 진주 송영의 남대구 신용기 서울 장봉생 충남 이광희 남부산남 김정훈 충북 김길수 서울강남 김원삼 남부산동 심욱섭 서울강서 김한성 충북동 임상재 남서울 김홍근 서울남 김희태 충청 정진모 남수원 박춘근 서울동 김윤규 평남 유장춘 남울산 강진상 서울북 류병수 평동 설동욱 남전주 이강석 서울한동 김상기 평북 송활석 남중 진용식 서인천 김영남 평서 조종제 남평양 황정식 서전주 임근석 ▶직무이사 총신대 노회파송이사 총회장 안명환 총장 길자연 총동창회장 김창근 2014-02-24
-
[더굳뉴스] 총회 선거법 실체와 남수원노회 치리
1950년 6월 28일, 인민군은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서울시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남로당 이인자이자 북한 내각 사법상 이승엽은 중앙방송을 통해 담화를 발표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공화국) 깃발과 우리 민족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 영웅이신 공화국 내각 수상 김일성 장군의 영도 아래 통일되어 해방된 영광스러운 공화국 공민으로서 자유롭고 행복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인민군의 잔혹한 동족(同族) 학살은 서울 점령과 동시에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에서 시작됐다.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은 개전 직후 동두천·포천·의정부·수유·길음·미아·돈암 등지에서 국군과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3200여 명의 국군 전상자(戰傷者)가 발생했다. 국군 병원의 수용 능력을 초과한 전상자들은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시내 5개 종합병원에 분산 수용됐다. 서울대병원 800여 개 병상은 물론 복도까지 밀려드는 부상병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서울대병원을 점령한 28일 오후, 인민군 중좌가 “원쑤놈들의 앞잡이들이 여기 누워 있다”고 선동했다. 따발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인민군 병사 50여 명이 병실을 찾아다니며 150여 명의 부상병을 학살했다. 이튿날에는 걸을 수 있는 환자 180여 명을 병원 뒷산으로 끌고 가 집단 처형했다. 수류탄을 던져 살해하기도 했고, 완전히 죽지 않은 환자는 권총으로 확인 사살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Inchon)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 1월 26일~1964년 4월 5일)의 주도로 한반도에서 진행된 상륙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는 75,000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된것에 더불어 나아가 인천이 수복된 후 유엔군은 13일에 걸쳐 서울로 진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인민군의 퇴각이 시작되면서 노동당과 정치보위부는 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던 반동분자를 분류해 북한에 도움이 될 인사는 납북하고, 나머지는 즉결 처형했다. 1955년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8800여 명이 학살되고, 2만여 명이 납치됐다. ‘행복한 새 생활의 시작’이라는 김일성의 약속과 달리, 대다수 서울 시민에게 인민군 점령기는 생지옥이었다. 개혁신학이 타는 욕심 줄기를 따라 부패를 들이킨다. 돈 빛이 여우처럼 믿음보다 뜨겁고 은혜보다 차다. 시 속에는 소리가 없다.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가 대개 그렇듯 뭔가 있긴 하다. 때로 시를 읽다 어떤 실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는 참 조용한 세계다. 언어로 되어 있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청각적 심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속의 소리와 같다. 시는 움직이지 않지만 시를 읽은 마음 안에서는 살아 움직인다. 저 바다도 하늘도 달도 마음에서 그렸다 지울 수 있다. 세계를 나 혼자 만들어 보는 재미, 이것이야말로 시를 읽는 큰 이득이 아니겠는가. 2022년 2월 15일 광주지역장로회연합회(회장 김준석 장로)는 실행위원회를 갖고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2월 22일 검수위원회를 거쳐 확정됐다. 이번 결의문에 대해 회장 김준석 장로는 말했다. “우리 장로들이 세상 불법과 타락한 질서에서 구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구분된 삶의 모습을 보이고 정결하여 스스로 절제된 모습을 보이도록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 교단이 거룩한 성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또 임원 선거마다 과열되어 금품이 돌아다니는 등 세상보다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의문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개혁은 장로 된 우리가 스스로 외쳐야 하고 우리의 작은 외침이 점점 더 큰 외침이 되어서 총회가 바로 서고 모든 주의 백성들이 기뻐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결의문은, - 총회 임원 등 선거직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총회 산하 모든 종사자는 성경의 교훈대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교단 정치를 하며 과열 선거로 금품을 제공하거나 받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 - 선한 일을 도모하여 총회와 노회와 섬기는 교회에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직무를 수행하며 세상의 불법과 불의한 일에 공동대처하기로 결의한다. -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성경적 가치를 훼손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어떠한 법률의 제정도 절대 반대한다. - 총신대학교가 총회의 직영 신학교로서 총회의 지도와 권위에 순복하고 총회결의대로 재단 이사회의 이사 증원과 운영이사회를 복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제105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예산의 위법한 사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원상회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1년 3월 25일 제106회 총회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는 말했다. "저는 정치부나 재판국 서기 및 공천부 임원 등 민감한 부서에서 임원직을 감당했는데 한 번도 불법에 연루되거나 금전적인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이재명 후보가 외친 ‘후보 수락 연설’의 일부다. “저는 실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준비된 대통령’이라 자부합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저를 국민께서 인정해 주신 것도 오로지 일을 잘 해냈기 때문입니다.” 제106회 배광식 총회장과 선거관리위원장 소강석 목사 이름으로 총회 선거규정이 공표됐다. 그 규정 제28조 7항은 다음과 같다. 7. 입후보자 또는 그 지지자는 노회의 추천을 받은 후 일체의 금품 요구 및 수수(주고받음)를 할 수 없다. 제29조 1항은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규제 및 시벌에 대해 규정한다. 1. 허위사실 유포자와 금품 요구 및 수수자는 향후 10년간 총회 총대 및 총회 공직을 제한한다. 그런데 이런 조항은 당선 확정 후 15일 이내에 총회 임원회에 이의가 제기될 경우 총회임원회 3분의 2 이상의 결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총회선거법과 처리 절차가 이렇게 유명무실한데 광주지역 장로회연합회 회장 김준석 장로의 다음과 같은 결의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총회 임원 등 선거직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총회 산하 모든 종사자는 성경의 교훈대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교단 정치를 하며 과열 선거로 금품을 제공하거나 받는 것을 절대 반대합니다." 이 정신에 따라 선출될 제111회 총회 임원과 재판국과 헌의부 임원들은 올바른 치리를 행한 남수원노회를 흔드는 일이 재현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 15:12-18 2027-07-11
-
[더굳뉴스] 총회장 권순웅 목사 시절 김문기 장로 열창
아쉽게도 모든 소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는 않는다. 인정받지 못한 헛수고가 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끝은 어김없이 온다. 남수원노회 치리받은 자의 마지막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이 마지막은 그 마지막의 전주곡일 수 있을 것이다. 네게 자리를 내주마 이제 내가 썩고 네가 꽃피울 차례다. 서른 살 푸시킨의 이 시구는 자식을 향한 유언도, 소명을 다한 자족감의 과시도 아니었다. 언제나 외롭게 분투했기에, 그는 항상 준비하고 연습해야만 했다. 그것이 진짜 ‘좋은 끝’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던 거다. 목사와 장로인 우리는 언제 그 연습을 시작할 수 있을까. 거짓이 드러나면 ‘유감’이라 하고 또 다른 의문을 불러온다. 저지르고 책임지지 않는 일, 세상은 그것을 정치라고 부른다. AD 70년,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성전을 파괴한다. 이때 상당수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중동과 유럽 등으로 흩어진다(디아스포라). 당시 성전에서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겨진 부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이다. AD 134년, 로마 하드리아누스는 이스라엘 반란을 완전 진압한 뒤 "유대"라 불리던 그 지역 이름을 아예 바꿔버린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티나"다. 이때부터 이 지역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앙숙이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교체된다. 반면 유대인들은 거의 100% 고향 땅에서 추방돼 전 세계로 흩어진다. 무려 1814년이 흐른 뒤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유대인들이 본토로 속속 귀환(알리야)해 1948년 건국 당시 8만 명이던 인구가 현재 9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알리야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살던 유대인 수십만 명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고 한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런 건 아니지만, 교인 상당수가 이를 예언의 성취로 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3년 5월 8일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1박 2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서울에서 취재진과 만나 “어제 윤 대통령 관저에 초대받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포함해 (윤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깊게 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 날 땅거미 내린 역삼동 너른 충현교회 마당. 이 색과 저 색의 경계가 흐려지고 이 형태와 저 형태의 분별이 까다로워지면 목사든 장로든 그 어떤 대상도 이해관계 앞에선 함부로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는 의기양양할 수 없다. 잘난 체할 수 없다. 그때 주님이 내리시는 저녁의 시선은 겸허를 알려준다.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음으로 사랑할 때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 같기만 하고 ‘저녁’ 앞에서 노인처럼 어두운 눈을 비비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자 분투하지만 그 노력은 대개 허사로 돌아간다.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의 마음은 ‘저녁’처럼 흐릿해진다. 바꾸어 말해 볼까. 상대의 마음이 너무 환히 비친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 맞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을 꿰뚫고 있다는 확신이 과연 사랑일까. 오만의 다른 이름 아닐까. 사랑은 끊임없는 질문과 발견이다. 알 듯하지만 알지 못하고 닿은 줄 알았지만 닿지 않는다. 저녁의 시선은 사랑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귀하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타인의 아득한 역사를 헤아리려는 태도가 존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흑과 백으로 네모와 세모로 타인의 색과 모양을 규정하고 싶을 때마다 노인처럼 어두운 눈을 비비는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명하지 않은 세상은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우리의 믿음 소망 사랑은 서로의 쓸쓸함 속에 더!! 자랄 테니. 어느덧 제60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대한민국과 일본이 화해하는 2023년 5월 8일 오후 3시부터 교단 신앙 부흥을 견인했던 1970년 제54회 교단 총회장 김창인 목사가 1953년 개척해 예장합동 교단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시킨 강남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샬롬을 누리고 부흥하라’는 주제로 모였다. 1964년 2월 22일 이곳 충현교회에서 시작했던 목사장로기도회가 60주년을 맞이해 2천여 명이 자리를 메운 개회 예배는 단단한 서기 고광석 목사가 인도했다. 부총회장 임영식 장로의 기도 후 김인환 목사가 시편 114:1-8을 봉독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너희 산들아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 같이 뛰놂은 어찜인고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충현교회 찬양대의 은혜가 찰랑이는 찬양 후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이 ‘샬롬부흥기도’란 제목의 말씀을 떨기나무 불꽃처럼 활활 증거했다. “애굽은 고대국가 중 리더십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그들을 야만 국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반 기도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교만한 국가였습니다. 샬롬은 주님을 만나 살아가면서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샬롬의 부흥입니다. 우리는 샬롬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코로나를 맞아 다중위기의 시대에 107회 총회는 샬롬부흥을 갈망하고 극복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자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송영식 목사, 윤영민 목사, 오광춘 장로, 김경환 장로의 특별기도 후 시인 소강석 목사가 축시를 낭독했다. 대한민국 집권당 국민의힘 대표 김기현 의원(울산 대암교회 장로)이 단상에 오르면서 앞에 앉아있는 소강석 목사와 눈인사를 나눈 후 축사를 전했다. 이어서 권순웅 총회장이 총회에 기여한 여러 공로자에게 총회장상을 직접 수여했다. 총회제주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개척해 세운 주다산교회에서 1억 헌금 순서도 가졌다. 직전총회장 울산 기도 바위 배광식 목사의 축도로 목사장로기도회 제60회 개회 예배를 마무리했다. 제60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날 저녁집회는 오후 7시 30분 회록서기 한기영 목사의 인도로 회계 지동빈 장로가 기도하고 안창현 목사가 왕상 18:30-40을 봉독했다.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하매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전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사랑스러운교회 찬양대가 ‘여호와의 불’이라는 곡을 열정적인 지휘로 장엄하게 찬양했다. 사랑스러운교회 배만석 목사가 ‘여호와의 불’이란 제목으로 “주일학교 이후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가 많이 어려워졌는데 탕자가 돌아올 때 맞아준 아버지 같은 역할을 목사가 해야 한다"고 찬찬히 증거했다. 제주수양관 건립을 위한 헌금을 위해 부회계 김화중 장로가 기도했다. 이어서 총회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가 가슴을 적시는 찬양을 애절하게 했다. 전 국정원장 김승규 장로가 ‘저출산 대책과 한국교회’란 제목으로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와 해결책을 흥미롭고 심도 있게 전했다. “일본은 1995년부터 저출산 문제에 대해 대책을 모색해 현재 1.3명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출산률은 0.78명이다. 현재 이슬람이 우리나라에 27만 명이 들어와 있다. 영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무슬림 국가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성애자는 55만 명이다. 이것이 저출산의 한 이유이다. 급진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결혼을 거부하고 비혼주의를 주장한다. 그리고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현재 우리나라 애완동물은 544만 마리이다. 반려동물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학교에서 자유로운 성을 가르친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저출산 해결책은 국가인권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이다. 교회가 돌봄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출산률이 3.8명이다. 교회는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를 자주 설교해 가정과 출산을 독려해야 한다. 2.1명을 낳아야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목장기도회 60주년 기념 케익을 자른 후 뜨거운 기도를 했다. 주다산교회의 기도를 위한 뮤지컬 공연 후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을 첫날 목사장로기도회를 마쳤다. 성경의 27%는 예언서다. 성경의 권위가 예언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근거이다. 예언 가운데 상당수가 역사적으로 성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몰락과 회복이다. BC 6세기, 에스겔과 스가랴는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질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언했다. 그러고는 세상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부활할 것임을 선포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창 15:4-7 2023-05-09
-
[더굳뉴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그리운 모습들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 진심 담겨 적폐 중 적폐와도 화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주여 하늘의 ’거룩한 완전한 태풍‘불어오게 하옵소서 남수원노회 노회장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노회 형편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믿음의 중심이 단단해 보이는 목사였기 때문이다. 그 노회 소속으로 문제가 된 목사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총대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의심하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패,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아쉽게도 모든 소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는 않는다. 인정받지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필요해.” 그래서 그는 그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성경을 들고 길을 걷거나 펼쳐놓고 말씀을 전한다. 짜릿한 겨울날 오후 슬쩍 내리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거나 어찌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쨍하게 갠 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면 기꺼이 필요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값진 필요가 되려면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을 확인한 그는 겁쟁이에 바보가 된다. 사랑의 바보는 난생 처음 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눈 오는 날 그가 눈송이조차도 사랑스러워 하니 아무렴 하나님께서 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를 피해 내리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목사가 몸을 쥐어짜며 구성지게 이 노래를 부르면 회중이 울까 웃을까. 어쨌든 그의 얄궂은 그 노래가 사방에 울리는데 깨는 듯 조는 듯 겨울은 간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추위가 가시고 말리라. 그가 시같이 읊조리고 노래같이 흘리는 해학과 열창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설교에는 재능이나 학식보다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태풍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태풍(颱風, Typhoon)은 북태평양 서쪽 열대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의 한 종류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17.2m/s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7월~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북태평양 동부와 북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018년 5월 8일 오후 4시 김창인 목사가 충무로 언덕에 세웠다는 충현교회를 강남의 언덕 1만평 위에 세운 충현교회에서 시작됐다. 오후 7시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 날 저녁집회가 진행됐다. 장재덕 목사(총회회록서기) 인도로 진행된 저녁집회 합심기도에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가 ‘총신대학교와 교단 산하 신학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회중을 성령의 감동에 젖게 했다. 이어서 새에덴교회 찬양대가 감동의 울림으로 충현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뒤 하나님의 말씀 사도행전 2:1-4 본문이 봉독됐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소강석 목사가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라’ 제목으로 입을 열었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완전한 태풍’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둘 이상의 작은 태풍이 서로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더 큰 피해를 당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재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하였는데요. 이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립니다. 보통의 태풍은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퍼펙트 스톰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폭풍이에요. 그러니 이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세계 기독교는 이 ‘완전한 태풍’ 같은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들이 세계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재난의 폭풍은 지금 한국교회에 더 불어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고 거룩의 능력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회는 자성하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안일한 자세로 자기 성(castle)만 쌓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장만능주의와 세속화, 교권의 욕망 때문에 도덕적, 영적, 거룩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비난과 공격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재난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의 바람이 우리 총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흐름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금기시했지 않습니까. 완전 비정상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성소수자로 보도를 하며 미화를 시키니까 10년이 지나자 대중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거예요. ...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옆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인격과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뭐라고 충고를 한 줄 아세요. ‘소목사님, 절대로 교회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교회 연합사역 같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어차피 유럽과 미국에서 되어진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에 절대로 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잘 전해야지요. 그러나 그러다가 영국교회나 미국교회는 반기독교 악법을 허용해 버리게 되고 목회생태계를 다 파괴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소득과세 등이 법으로 통과되었다면 한국교회는 재난에 완전히 쓰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3년 전에는 하마터면 국회에서 종교인과세가 아니라 종교소득과세로 통과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부족하지만 제가 그것을 뒤늦게 알고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장들과 함께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 의총을 해서 종교소득과세를 종교인과세로 바꾸게 된 거예요. 만약에 그때 종교소득과세로 입법이 되어버렸다면, 한국교회 모든 선교 활동이나 목회자의 목회 활동이 완전히 위축되고 교회가 기업처럼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종교인 과세가 되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으면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교회가 성역화되어야 하느냐,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하는데요. 교회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교회는 절대로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교회는 종교 고유의 목적인 성경의 가치와 예수님의 진리를 실현하는 사역이 보장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인데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어쩌다가 교회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요소가 나오면 그렇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이런 현상들이 엄청난 재난의 바람으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퍼펙트 스톰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작은 바람이 갑자기 엉키고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재난의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총회도 방심할 수 없어요. 총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재난의 바람 ‘완전한 태풍’이 불어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큰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거룩한 홀리 퍼펙트 스톰(Holy perfect storm)을 일으켜야 해요. 우리가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불은 산불을 놓아 끄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에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을 거룩한 하늘의 바람으로 잠잠케 해 버려야 합니다.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으로 이 땅에 불어오는 반기독교적 재난의 바람을 다 날려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셨지만 유대종교로부터 강력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재난의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존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이 '다락방'으로 오역한 마가의 윗층방(upper room)을 향하여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그 재난의 바람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불어온 홀리 퍼펙트 스톰이에요. 본문에서 말씀하는 ‘급하고 강한 바람’(a rushing mighty wind)은 헬라어로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인데 ‘파괴적인 힘을 가진 몰아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지요. 그런데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같이 임한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데 거기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얼마나 불이 잘 번지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이 마가 웟층방에 임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교회를 태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을 급하고 강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날려 버렸어요.” 소강석 목사는 재난의 바람 ‘퍼펙트 스톰’을 예레미야처럼 예언한 뒤 그 대비책을 이사야처럼 제안했다. “오늘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께서 목장기도회로 모이셨는데, 오늘 이 자리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첫째, 먼저 우리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스바 부흥운동, 수문 앞 광장의 부흥운동, 갈멜산의 부흥운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14에서 말씀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회개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날 주님을 배반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맨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행 2:38). 그리고 그 회개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 3:13-15). 그랬을 때, 마가 다락방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퍼펙트 스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총신의 문제와 교단의 모든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기도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회개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말입니다... 둘째,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거룩한 성령의 임함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행1:14). 그들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기도했겠습니까. 적어도 10일 동안 그들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성령의 임함을 사모하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간구했던 거예요. 그럴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거에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심령이 점점 컬컬하고 메말라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몇 사람만 모여도 서로를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파벌싸움을 하고 쪼그라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이 ‘주홍글씨’라는 소설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자기들 스스로 영적 각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흥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바로 이런 영적 각성과 영적인 갈망이 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2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부흥의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부흥의 바람, 하늘의 폭풍이 불어오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녁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고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해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거룩함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불과하고 눈알 빠진 삼손에 불과해요...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눈알이 빠져 나간 채 맷돌이나 돌리는 한국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해요. 그러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성과 완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분리성은 세상, 죄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성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인 정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아가는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생각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말 양심적이고 경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서로 맞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이 서로 합쳐져서 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순결과 거룩의 영성이 서로 합쳐지고 맞닿아서 거룩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설적인 부흥의 폭풍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했다면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행실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제는 시대와 사회 속으로 불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들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들을 무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와 성령의 역사를 이 세상 영역 속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하나 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저 적폐중의 적폐였던 김정은 위원장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시대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소원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한 번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곳에 하늘의 홀리 퍼펙트 스톰 ’거룩한 완전한 폭풍‘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소강석 목사가 병원과 교회를 오가는 자신에 대한 근황을 전했다. "저는 이제 조금씩 수면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잠드는 사이에 꿈을 꾸어도 퇴원하여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미국에 집회를 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보니 현실은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제 정신력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오로지 교회이고 설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금요일인데, 두 날 밤만 지나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이걸 생각하면 가슴이 또 설레고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좀 더 잠자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불면의 밤과 숙면의 밤사이에 있는 제가 온전한 숙면의 밤을 맞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틈에 오래오래 쉬어 있다가 다시 비상하고 솟구치고 웅비하듯이 다시 한번 제 사역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4 2026-07-0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6-07-05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최병남 목사 전국호남협의회 회장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미국은 한국에 인종적·민족적 모멸감을 주지 않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두 가지 모두이다. 이 국가 안보의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나라에는 좌파 한쪽의 목소리만 있다.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다. 친북, 친중의 눈치만 살아있고 균형과 절충의 목소리는 없다. 야당은 지금 세계의 흐름은 안중에 없고 내부 싸움에 영일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북한의 핵보다 더 무섭고 미국의 관세와 압박보다 더 심각하며 ‘중국의 부상’보다 더 두렵다. 1961년 7월 2일 이른 아침, 아이다호주 케첨의 한 주택 앞에서 총성이 울렸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방금 자신의 엽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거의 모든 것의 뿌리를 유럽에 두고 있는 미국이지만(특히 20세기 초까지는 더 그랬다),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이거야말로 미국인이 쓴 미국의 문학이라고 내세울 만했다. 실제로 그는 서부를 개척하는 초기 미국인처럼 하드보일드한 인생을 살았고, 그런 문장과 스토리를 자신의 원고지 안에서 승화시켰다.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군기자였으며 아프리카의 사냥꾼이자 쿠바의 낚시꾼이었던 헤밍웨이는 스페인의 투우를 사랑했다. 이게 작가로서의 세계적 유명세 역시 실컷 즐겼던 그의 겉모습이라면, 정작 그 이면은 처절했다. 두 차례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두개골 골절과 척추 부상을 입었고, 간 질환과 당뇨, 고혈압이 겹쳤다. 친구들을 향한 배신과 독설로 인한 불화로 그의 일상은 고통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편집증과 우울증이 심각했다. 글로는 빙산의 일각만을 드러내고 그 수면 아래 거대한 의미가 잠겨 있어야 한다는 헤밍웨이의 ‘빙산이론(Iceberg Theory)’은, 그의 간결한 문체와 행동 중심의 인물 형상화로 20세기 영미 문학의 스타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어쩐지 삶에 대한 법문(法門)처럼도 느껴진다. 2013년 10월 7일 전국호남협의회(회장:최병남 목사) 호남협의회(회장:장종섭 목사) 재경호남협의회(회장:소강석 목사)는 유성관광호텔에서 호남출신 임원 및 상비부장 당선자 축하환영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협의회 임원들과 부총회장 백남선 목사, 서기 김영남 목사, 회록서기 최우식 목사, 부회계 서병호 장로, 10명의 상비부장 당선자 등 60여 명이 참석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다. 바로 이 호남출신 총회 임원 및 상비부장 당선자축하환영회에 황규철 총무가 나타났다. 황규철 총무에게 물었다. “당선자 같네요.” 그가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날 개회예배는 유태영 목사(전주 서광교회) 사회, 신신우 장로(광주동명교회) 기도, 김문기 장로(새에덴교회) 특송, 최병남 목사(송탄중앙교회) 설교, 전계헌 목사(익산 동산교회)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최병남 목사는 성경을 읽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 그리고 잔잔히 말씀을 전했다. "주의 종이 되었다는 거 큰 영광입니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피곤하고 목마를 때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온 세 용사처럼 총회와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고 몸의 진액을 짜내듯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어조로 강조했다. 증경총회장 김정중 목사, 총회 총무 황규철 목사, 정평수 목사(만남의교회), 박보근 목사(난곡제일교회) 등은 축사와 격려사를 통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선자들을 대신해 대표자로 나선 백남선 목사는 총회와 전국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주최 측은 당선자들을 위한 축하선물과 오찬을 마련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황규철 총무는 강단에 서서 그간의 겪은 어려움과 고향 호남의 지지에 대한 소회와 감사를 전했다. 특별히 서기행 원로목사의 건강을 걱정하며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역대 총무와 달리 화려하고 당당한 황규철 목사가 장자 총회의 위상을 높이고 내실을 기하는 총회 총무가 되기를 기도했다. 2026-07-04
포토슬라이드1 / 3
G.PEOPLE
-
[더굳뉴스] 김한욱 목사 소나무의 푸르름
외교 전략 가운데 ‘대나무 외교’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뿌리는 단단히, 줄기는 곧게, 가지는 유연하게.’ 핵심은 가지의 유연함을 지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 뿌리를 위한 즉 원칙의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유연하게 휘지 않지만 대신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느 계절이 와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소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혹한에도 곧게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하나님의 영광 그 빛을 위한 개혁주의 열망처럼.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 연구실 책상 주위를 배회했지만 두 줄을 넘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초기 사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민족사학을 개척하고 그리고 그 한국사의 대중화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고 이기백(李基白, 1924년 10월 21일 ~ 2004년 6월 2일) 교수의 수필에 나온 한 문장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렇듯 "총회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신앙을 드러낸 목사가 총회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2022년 9월 6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정적인 정견발표를 외친 신예 제107회 총회 부서기 후보 김한욱 목사다. 그는 예전에 제101회 총회 부서기 후보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16년 9월 8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혁, 바로 세우기, 품격 회복 등 이른바 3R을 통해 성숙한 총회가 되는 일에 헌신하겠다'라고 정견발표를 했다. 그리고 9월 26일 부서기 선거에서 신예 권순웅 목사가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관록의 김상현 목사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 뒤를 이어 2022년 9월 7일 푸르른 소나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김한욱 목사의 정견발표다. "저는 정견발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그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 기울였습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네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약을 일단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총회는 정말 일꾼, 정말 총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일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조그만 교회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출석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너무 가난해 열여덟 살에 외항선 선원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외항선을 타고 어둠의 그늘을 지나기 위해서 놓치 않은 것이 있다면 성경책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30명이 탄 배에서 저 혼자 예배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원들을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결국에는 30명 가운데 27명이 모여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 한 달을 쉬게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육지에서 전도 훈련과 영적 사역을 배웠습니다. 22살, 25살 청년의 시대에 거리로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26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어두운 광야에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뜻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24년 전(1998년)에 새안양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제2 새안양교회’를 세우고 안양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 당회가 구성되고 독립했습니다. 저는 총회를 위해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해피데이 전도시스템'을 개발해 불신자를 전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공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107회 '샬롬 부흥'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하여 김한욱을 준비시켜주셨고 총회장 이하 임원들을 잘 섬겨서 제107회 총회를 아름답게 끝맺는 일을 뒷바라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중 힘찬 박수) 신앙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엔 한계가 있지만 신앙은 세상을 감싸고 하나님과의 샬롬이 이루어지고 푸르른기 때문이다. 김한욱 목사에게 어울리는 말씀일 듯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여 저를 기억하시고 은총을 내리소서 느 13:31 2022-09-08
-
[더굳뉴스] 허은 목사 부산의 아우구스티누스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씨는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이재명·박원순 같은 사람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싸가지 없는 소리’였겠지만 이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어쩌면 이해찬씨의 말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한 세 사람 가운데 사법 위기에 허덕이는 이재명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먹은 것도 없이 겨우내 버틴 몸으로 꽃까지 피워내야 하는 것이 봄이다. 새싹이 온몸으로 흙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도 봄이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님이 모든 생명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는 은총이다.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가 말했다.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없는 것을 본다. 소망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은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으로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427년 반달족(게르만족의 한 민족)이 북아프리카를 쳐들어왔을 때 피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아우구스티누스 감독(bishop)이 살고 있던 히포에 쏟아져 들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감독이었으므로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거나 교회에 은둔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 감독은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를 점령하기 얼마 전(반달족의 히포 점령은 431년의 일) 피난민들을 돌보다가 걸린 열병으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전쟁으로 두려움에 빠진 난민들을 돌보며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이는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때 그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행동은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제 자리로 기웁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습니다... 그런 질서가 덜한 곳에는 불안하고 질서가 잡히면 평온해집니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주님 은사로는 저희가 불타오르고 위로 이끌려갑니다. 타오르면서 갑니다." 2023년 3월 16일 오후 2시 부산 연제구 연산 8동에 있는 동현교회의 주민을 위한 무료 카페에서 지용길 목사와 함께 허은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다. 지형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도로여건이 열악하고 인근 주민과의 관계성이 낮아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는 곳이다. 2022년 5월 21일 입당 감사예배 및 헌당식을 드린 산등성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예배당은 아늑했다. 연산동을 아우르는 연건평 511평의 예배당은 주변 개발지역과는 달리 지형적인 한계로 인해 소외받았던 연산8동과 어울려 아담했다. -여기는 언제 자리 잡으셨습니까. "지난해 5월에 입당했습니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총회 부서기 마치고 그해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서기 임기 중(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많이 바쁘셨을텐데. "네. 교회 일과 총회 일이 겹쳤습니다. 교회 장로님들, 집사님들 많이 수고하시고 정말 은혜중에 잘 마쳤습니다. 이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삽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고 도로변에 있지 않아서 불리한 면이 있는데 오히려 동네 가운데 있어 조용하고 지역 주민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좋습니다. 이 카페는 무료 카페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차 빼서 마시고 우리 교회 교역자 집사님들이 순번을 맡아 봉사를 합니다." -이런 교회 카페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여기는 어려운 분들, 독거노인들이 많아 지난해 5월에 입당하면서 전체 100개 가정에 쌀, 라면을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지난 연말 성탄절에 2백 가정에 한 상자에 105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지역민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가니까 교회 안에도 어르신이 많고 교회 주변 이웃에도 어르신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도 잘 키워야 하지만 이 어르신들에게 천국 기실 때까지 여러 가지 책임을 져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집이 나고 교회가 살 여력이 되면 이런 어른들을 1인 1실, 혹은 2인 1실로 30분 정도 천국 가실 때까지 모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복지학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요양시설을 운영하면 외부 시설장을 모셔야 되는데 제가 자격증을 따니까 경비도 줄이게 되죠. 그런데 교회가 작지만 아담하게 세워지니까 주변 지역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어 여기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그랬습니다만 최근에도 우리 장로님들께서 '목사님 꿈꾸고 계시는 그 일을 현실화시켜봅시다. 교회 짓고 1년도 안 됐으니까 준비가 되면 옆에 있는 건물 하나 사 가지고 우리 형편에 맞게 부속건물 지어 청소년, 아이들, 청년들 교회 와서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게 자리 만들어줍시다. 그 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우리가 평생 책임져주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아담하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그런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현교회는 개척하셨나요, 부임하셨나요. "제가 2대 목사입니다. 1대 목사님이 다른 교회를 섬기다가 나오셔서 성도 30여 명하고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그 어려운 시절에 소금공장도 하시고 빌려서 예배드리셨습니다. 제가 보니 전월세를 일곱 군데나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주택을 하나 매입해 예배당을 짓고 IMF가 올 당시 빚이 상당했습니다. 저를 후임으로 오라 했습니다. 당시 목사님이 협심증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습니다. 숨이 차서 설교를 잘못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고 1년 뒤 다 물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임 목사님이 인천 길병원에서 수술하고 좋아지셨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시니 3년 동안 안 물려주시는 겁니다. 3년 뒤 위임투표를 해 물려받긴 했습니다. 물려받은 뒤 있던 교회를 매각하고 다른 교회를 사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에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가 너무 도시 중앙이고 환경이 유흥가라 장기적으로 볼 때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코로나 시국인데 장로님들과 뜻을 모으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 여기 집 네 채가 한 날, 한 시 동시에 계약이 됐습니다. 그 네 집을 한 필지로 묶어 헐어내고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총회 서기 임기 중인 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은혜롭고 순적하게 성전 건축이 됐군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 교회가 제대로 되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왜 이곳으로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환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벽처럼 싹 둘러싸고 있고 딱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주변에 서민들이 사는 고만고만한 건물만 좍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서 있는 겁니다. (나중에 올라가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려운 분들 사는 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좍 서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래 이분들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때 성도들의 생각이 이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 차근차근 우리 힘에 맞게 지역도 섬기고 또 우리 노회 장로회에서 해외 개척 선교를 하겠다 해서 단독으로 하기에는 좀 버거운 게 있고 해서 우리 교회하고 노회장 노회하고 절반씩 힘을 보태 캄보디아에 교회를 하나 세웁니다." 그 관련 기사가 '기독신문'에 다음과 같이 실렸다. 동부산장로회 임원들은 부산 동현교회(담임 허은 목사) 성도들과 함께 2023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천준상, 이숙영 선교사가 사역하는 바탐방지역을 탐방했다. 이 지역에서는 약 20평 규모의 비전교회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고대학생 52명이 생활할 수 있는 EDM선교센터를 증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부산장로회와 동현교회는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 4천만 원을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허은 목사는 지난 2021년 9월 제106회 총회 서기 직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다고 한다. “총회 서기는 총회 소속 노회와 교회의 분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직분이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며 어떤 외압에도 바르게 섬기겠다.” 부산 아우구스티누스 허은 목사는 제107회 총회선거관리워원회 서기로서 제107회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클린개혁을 떠받칠 제108회 총회 임원과 상비부 선거를 깨끗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님, 길러주신 어머님을 다 같이 진심으로 섬겼던 효심을 그리고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따른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동현교회와 총회를 섬길 것이라 믿는다. 그리면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총회 석상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총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4-11-29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5
“미국은 다시 이기고 있습니다. 그 점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가 오늘 밤 이 자리에 있습니다.” 2026년 2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 두 번째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이 시작됐다. 이날 백악관과 민주당은 국정연설에 초청한 ‘특별 손님’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쳤다. 트럼프는 6·25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E. 로이스 윌리엄스를 초청해 그에게 미국 최고 군사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는 1952년 기밀 작전에서 소련 전투기 네 대를 격추했다. 트럼프는 이달 초 윌리엄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훈장 수여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날 윌리엄스는 멜라니아 여사와 나란히 앉았고, 멜라니아가 목에 훈장을 걸어줬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순간은 2차 세계대전의 재현이었다. 제1 세계로 간주되는 대륙에서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영토 문제로 침공하는 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적이 없다. 적어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로는 없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러시아 사주를 받고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되었다.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을 끼쳤고 이후 남북분단이 더욱 고착화하여 아직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군병사 칼 파워스 기념비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1934-) 목사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이 겹쳐있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김 목사가 1950년 한국에 온 미군 칼 파워스(Karl Powers, 1928~2013. 9. 21) 상사의 무조건적 헌신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내 인생을 바꾼 건 한 미군 병사의 힘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한 사람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1934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태어나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5남매 가운데 막내로 자랐다. 어려운 형편이라 늘 끼니가 걱정이었다. 그가 4학년 때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수원의 못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학 온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4대1의 경쟁을 뚫고 6년제 수원농림학교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계속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싶었던 그는 서울의 철도고등학교는 전액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1950년 6월 26일 혼자 서울로 향했다. 그 하루 전의 한국전쟁 발발을 알지 못했던 그는 피난 인파에 휩쓸려 고생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수원으로 돌아왔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인민군이 물러갔으나 여전히 학교 문은 열리지 않아 그는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곤 했다.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경부터 이듬해인 1951년 1월 초 사이, 중국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유엔군의 주력이 서울에서 물러나고 공산군이 서울을 재점령한 1·4후퇴 때 퇴각한 미군들이 수원교도소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가 친구들과 담장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미군이 여러 친구 중에서 김장환을 손가락으로 지목하여 그를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펴달라는 시늉을 했다. 눈치 빠른 그는 재빨리 논두렁에 박아놓은 말뚝을 뽑아와서 난로불을 피워주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거기다 신발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자 영특하고 부지런한 그를 매일 오게 했고, 부대가 경산으로 내려갈 때 그를 데려 갔다. 막내아들을 전쟁통에 타지로 보낼 수 없었던 어머니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영어도 배우고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싶었다. 일을 하고 받은 초콜릿이나 담배는 암시장에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이 되자 수원교도소 자리에 미군 부대가 들어왔다. 갓난아기에게 무언가 먹이려고 애쓰던 어머니들, 전쟁고아의 비참한 삶, 공포에 떨던 민간인들, 그리고 폐허가 된 마을들. 경기도 수원에서 살던 소년 김장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김장환 목사는 수복 후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집은 소작농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60%를 땅 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40%로 살았습니다. 식구는 13명이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 한 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한 가마 반을 갚아야 했습니다. 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보리쌀만 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꿈이 정치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종종 미군 부대로 놀러 갔지요. 운 좋으면 초콜릿이나 껌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소와 마차를 빼앗겨 집안은 빈털터리였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얻어가는 담배와 비누, 통조림 등을 팔아서 집안 생계를 도왔지요.” 하루는 미군이 김장환에게 장작을 구해 난로에 불을 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막사 청소까지 해놓았다. 남달리 똘똘하고 영리한 그는 미군 숙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하우스 보이가 됐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된 어린 소년들은 미군에게 달러로 임금을 받고, 자신이 일하는 숙소의 미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조리 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1인용 통조림 형태의 전투식량이다. 해방 이후엔 C-레이션이 상자당 쌀 1되 값에 시장에서 팔렸다. 그리고 미군이 입지 않은 속옷, 양말, 전투화, 군복 등도 모두 얻어올 수 있었다.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도 배고픔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었다. 경산에 있을 때 어느 미군이 그에게 '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영미권의 남자이름인 윌리엄(William)에서 파생된 이름 혹은 애칭(William→Billy→Bill)이다. 생뚱맞게 윌리엄에서 왜 발음이 전혀 다른 빌리와 빌이란 애칭이 나온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윌리엄'이란 영어식 이름은 원래 게르만식 이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게르만식 언어에서는 자음 W가 영어의 V와 비슷한 음가를 지니기 때문에 나오게 된 형태이다. 실제 동일한 계통에서 파생된 독일식 이름으로 빌헬름(Wilhelm) 또는 빌로헬름(Wilohelm)이 있다. 따라서 양쪽 모두 애칭이 빌리(영어: Billy, 독일어 Willy)가 된다. "단호한 보호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을 지어준 미군은 꼬마 소년 김장환이 아주 똑똑하고 야무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빌리는 그곳에서 일생의 은인인 인사 업무를 담당하던 칼 파워스 상사를 만난다. 당시 22세였던 칼 파워스 상사는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와 생이별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자신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이 전쟁에서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 옆 막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빌리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빌리에게 미국에 가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제안했고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빌리도 선뜻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51년 5월 칼 파워스 상사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 고등학교 입학 허가서를 들고 나타났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는 고심 끝에 아들의 유학을 허락했다. 아들이 7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아들에게 종이봉지에 흙을 담아 주면서 고향생각이 날 때 다려 먹으라는 당부를 하며 보냈다.1951년 11월 12일 전쟁중인 최빈국 한국에서 17세의 고등학생이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1일의 항해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수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번쩍이는 신천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근무연장기간이 끝나지 않은 칼 파워스 상사 대신 먼저 귀국한 동료가 빌리를 마중 나왔고, 며칠 후 드디어 칼 파워스 씨가 사는 버지니아주 단테시에 도착했다. 빌리는 미국에 가서야 칼 파워스 씨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테시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산골짜기에 사는 칼 파워스 씨는 곧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자신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빌리를 데려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기독교 사립학교인 밥존스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칼파워스 씨가 빌리를 학비가 싼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대신 기독교 사립학교에 넣은 것이 오늘의 김장환 목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군대에서 한 동료가 "밥존스가 외국학생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 말 때문에 선택한 학교였다. 빌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입학시킨 것이다. 밥존스 재단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 밥존스 1세가 1927년에 설립한 학교로 매우 보수적인 학풍을 고수하고 있다.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기독교 학교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명문으로 꼽힌다. 밥존스 재단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한 울타리에 있는데 중학생부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있다. 엄격한 생활과 함께 매일 아침 채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빌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가운데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중 제리 메이저라는 신학과 학생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영접했다. 지독한 외로움과 답답함에 시달리던 빌리는 한국말로 기도를 하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방과후에 영어를 못하는 빌리를 따로 지도해주었고, 기숙사 동료들도 열심히 도와주어 첫 학기를 낙제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칼파워스 씨에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빌리는 파워스 씨가 군인장학금으로 어렵게 공부하면서 자신의 학비를 댄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빌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영어가 익숙해진 데다 칼 파워스 씨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이다. 반드시 뭔가 이룩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도 한몫 했다 빌리가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웅변대회에 참가하고부터였다. 전국 웅변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칼 파워스 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직접 원고를 써서 선생님께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선생님은 동양학생이 지원한 것을 가상히 여겨 웅변연습을 도와주었다. R과 L 발음을 고치기 위해 입에 구슬을 물고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 교내대회에서 1등을 하고 학교 대표로 주대회와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해 아이젠하워상을 받았다. 그 일로 빌리는 밥존스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방학 때 빌리가 1등 트로피와 부상으로 받은 텔레비전을 안고 칼 파워스 씨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온동네에 화제가 되었다. 칼파워스 씨는 빌리의 학비를 대기가 버거울 때는 지역 신문인 '디킨스니언'지에 빌리의 사정을 알리고 모금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동양학생을 위해 성금을 보내주었고 빌리는 모금 문화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학교생활에 자신이 붙은 빌리는 과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사귀는 여학생이 없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학교 음악회에 언제나 혼자 가야했다. 키가 큰 미국 여학생들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빌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담하고 예쁜 여학생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용기를 내서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트루디는 환하게 웃으며 빌리를 맞아들였다. 만능 스포츠맨인데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기숙사에서 벌점을 단 1점도 받지 않은 모범생 빌리는 이미 학교 내에서 인기스타였다. 두 사람은 음악회에 다녀온 뒤 편지를 주고받다가 2년 후 트루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빌리는 고교 졸업 때 우등상을 받았고 그 소식은 빌리의 학비를 모금해주었던 디킨스니언에 보도되기도 했다. '빌리 김은 모히칸 문학단체의 일원이었고 스포츠 매니저이기도 했다. 또 학급 성가대원이었고 미국 미래교사회 밥 존스 고교 지부의 리더였으며 학생신문 '트라이앵글'지의 스포츠 편집자였다. 그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민주주의의 소리' 웅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빌리를 소개했다. 고교를 졸업할 때 빌리는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선택했다. 미국에 와서 신앙을 갖게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신앙상담자와 신앙관련 모임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믿음을 키워나갔다. 밥존스에서는 정기적으로 채플시간을 통해 바이블 컨퍼런스를 실시한다. 한국의 부흥회와 비슷한 형태인데 빌리는 그 예배를 통해 강한 비전을 받고 주말이면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시골교회에 가서 전도도 하고 간증도 했다. 돈을 모아서 다른 지역에서 열린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에 참석해 강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빌리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쳤을 때 파워스 씨 집과 가까운 롱브랜치 교회에 강단에 서게 되었다. 출석교인이 약 5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 파워스 씨의 외삼촌이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부흥집회 기간을 맞아 서너 명의 강사를 초청할 때 빌리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빌리는 한시간 동안 한국 상황과 미국에 오게된 경위, 학교 생활, 앞으로의 꿈을 조리있게 강연했다. 그날 집회가 소문이 나면서 빌리는 단테시의 여러 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되었다. 뿐만 아니라 라이온스 클럽과 로터리 클럽에서도 빌리를 스피치 강사로 초청했다.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까지 가서 스피치를 하고 돌아왔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한국에서 온 빌리의 흥미로운 스피치는 어디서나 인기였다. 빌리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비 이외의 경비는 스스로 마련하였다. 칼 파워스 씨가 공부에 지장이 있는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고 하여 주말에 강연을 하고 방학 때마다 동급생인 왈리의 집에 가서 일했다. 왈리의 아버지 왈도 예거 장로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닭과 칠면조를 가공하는 회사 코트랜드를 운영했다. 예거 장로는 미국 기독교실업인협회 회장을 3년간 역임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빌리는 방학 때 왈리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미국 기독교인 가정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미국 시골 마을로 전도하러 가는 주말 전도여행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어디를 가든 키 작은 한국 청년의 스피치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4학년 때 빌리는 대학원을 마치면 한국에 가서 복음전도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주말 전도여행을 더 열심히 다녔다. 학교생활이 익숙해져 어려움이 없었지만 배고픔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많았다. 기숙사에서 세끼 밥을 먹지만 용돈이 없어 군것질을 할 수가 없었다. 파워스 씨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빌리는 꼭 필요할 때만 지원을 요청했다. 빌리와 트루디는 좋은 만남을 갖고 있다가 트루디 언니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미시간주 레이크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빌리를 트루디의 아버지는 마음에 들어했다. 빌리를 인근에 있는 프리 감리교회에서 저녁설교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트루디의 아버지는 설교를 들으며 빌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었지만 트루디의 어머니는 딸을 가난한 나라로 보낼 수 없다며 반대했다. 트루디의 어머니는 빌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밥존스 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총장은 "미국 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결혼하려면 빌리 김보다 더 좋은 사람을 고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디를 시골집에 데려 갔을 때 칼 파워스 씨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시골로 시집오려는 여자가 없어 독신으로 지내고 있던 칼 파워스 씨는 트루디 때문에 빌리가 미국에 주저앉게 될까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어려움없이 자란 트루디가 산골집에서 스스럼없이 부엌일을 하는 것을 본 칼 파워스 씨는 빌리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칼 파워스 씨는 빌리가 공부를 마치면 꼭 한국으로 돌아가서 활동하길 바라고 있었다. 빌리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1958년 밥존스를 빛낸 30대 동창생'에 선발되었다. 빌리와 같은 해에 졸업하기 위해 부지런히 방학 때마다 학점을 딴 트루디도 그해 8월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58년 8월 8일 저녁 8일 두 사람은 미시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빌리는 밥존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트루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트루디가 돈을 벌게 되자 빌리는 7년간 학비를 대준 칼 파워스 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빌리는 1년 안에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트루디도 매일 새벽 2시까지 빌리가 과제물 밀리지 않도록 도왔다. 대학원은 32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대학 때 부지런히 학점을 이수하고 섬머스쿨까지 다닌 빌리는 예정대로 1년 만에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2월 단테침례교회에서 빌리가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칼 파워스 씨는 빌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해 11월 빌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트루디의 교사월급과 빌리의 부흥집회 사례비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후원해준 칼 파워스 씨의 고귀한 뜻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일단 고국으로 돌아갈 배표 2장을 일단 마련했지만 가난한 고국에 돌아가서 선교활동을 하려니 모든 게 걱정되었다. 부부는 방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한달에 50달러 씩 도와주는 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고국으로 떠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귀국을 앞두고 캔턴 침례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을 때, 그 교회에서 마침 매달 50달러씩 선교비를 후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곧이어 왈도 예거 장로가 세계기독봉사회를 창설하여 김장환 목사의 한국선교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친구들은 한국 선교 때 사용하라며 모금을 하여 4륜구동 포드 픽업자동차를 선물해주었다. 매달 선교헌금을 하겠다고 약속한 친구들도 있었다. 캔턴침례교회와 친구들은 40년 넘게 후원비를 보내주고 있다. 1959년 12월 불안한 눈빛으로 뱃전을 서성이던 17세의 하우스보이 빌리가 8년 만에 목사 김장환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파란눈의 트루디가 함께 했다. 그리고 포곡제일교회를 세우고 장로가 되고 김종원 목사를 담임교역자로 섬기게 될 공군 병사 빈병옥이 김장환 목사를 만나려고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설립된 오산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 안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1-5 2026-04-06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4
심판의 날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 바깥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날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삶의 환경이다. 날이 덥거나 춥고 가끔은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그저 평범하게 식사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Mario Puzo, 1920년 10월 15일 ~ 1999년 7월 2일)가 집필한 장편 소설. 1969년 3월 10일 출판되었고 출간 직후 무려 67주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다. 2년 뒤 1971년까지 미국 내 90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2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목인 대부(代父, godfather)는 본래 가톨릭 등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의 남자 후견인을 의미하는데, 여기선 마피아 조직의 두목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소설 '대부'(The Godfather)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코니 콜레오네가 결혼식을 한 1945년부터 비토 콜레오네의 뒤를 이은 마이클 콜레오네가 뉴욕을 제패하는 1955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마지막 토요일(26일) 대부의 딸 콘스탄지아 코를레요네의 결혼식에는 이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청첩장을 받았다. 신부의 아버지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롱아일랜드의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었지만 옛 친구나 이웃을 잊는 법이 없었다. 피로연은 자택 안에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었다. 틀림없이 대단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도 막 끝났기 때문에 참전 중인 아들 걱정으로 축제 분위기를 해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전국민 옥쇄를 외치며 항복하지 않는 일본 히로시마에, 3일 뒤 8월 9일 나가사키에 81년 전 당시 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이 들어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마침내 역사적인 출격을 감행한다. 실제 폭탄이 너무나 무거웠던 데다가 가득 채운 연료 때문에 사실상 이륙 중량 초과였으며, 이 때문에 더 충분한 활주 속도를 얻기 위해 티비츠 대령은 활주로 거의 끝에까지 가서야 겨우 이륙을 시켰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에놀라 게이가 이륙을 안하고 계속 달려나가자 활주로 끝에서 충돌하는 것 아니냐며 숨도 못 쉬었다고. 심지어 에놀라 게이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 대위조차도 티비츠(Paul Tibbets, Jr., 1915년 2월 23일 ~ 2007년 11월 1일) 대령이 이륙을 안하자 자신이 조종간을 당길 뻔했다고 술회했다. 이 상황을 히로시마의 시각에서 다시 구성해보면 우선 1945년 8월 6일 아침 7시, B-29 1대(기상관측 임무를 맡은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많은 히로시마 시민들이 고고도에 유유히 떠있는 이 B-29를 목격했다. 공습 경보도 울렸지만 방공호로 대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 시민들은 B-29의 폭격은 보통 수백 대가 들이닥치는 것이고, 한두 대 출현하는 건 정찰 임무 같은 것이라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일본 군부와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미국 공군 폴 티비츠대령이 호위 전투기도 없이 소수의 B-29만 보내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습 작전을 짜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류 최초의 실전 투입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다. 이 빛이 얼마나 강한지 생존자들은 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손으로 앞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였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와 군부는 1945년 8월 10일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계획을 세우면서 조선지도에서 38선을 찾아냈다. 38선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고 남쪽에서는 미군이 항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될수록 조선 북쪽 멀리까지 올라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오키나와 및 필리핀에 있던 미군들이 군함으로 조선에 이르려면 거의 한 달이 걸려야 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부탁한대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미 조선으로 진격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절반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38선에서 멈출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38선 이남이 이북보다 땅덩어리는 조금 작아도 수도 서울 및 인천과 부산 등 큰 항구를 갖고 있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훨씬 더 남쪽까지 내려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하리라 짐작했는데, 소련은 뜻밖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미군이 조선에 들어오지도 않은 터였지만 38선에서 남하를 중지했다. 김장환 목사가 16세가 되는 1950년 6월 25일 전까지... ‘하우스보이’ 김장환 목사 인생역전 이끈 칼 파워스 상사 2026-02-14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3
칼빈주의 국가 건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했던 신대륙에 1620년 12월 2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칼빈주의 이념에 입각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1630년, 영국 국왕의 칙허를 받아 온 부유한 청교도 1,000명이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존 윈슬롭(John Winthrop, 1588년 1월 12일 - 1649년 3월 26일)이었다. 윈슬롭은 예정설을 주장한 칼빈주의자인데 성경에 근거한 이상적 국가를 만들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620년 런던 지방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매우 신앙심이 두텁고,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 의례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청교도 신앙을 열심히 신봉했다. 1630년 4월 8일 네 척의 배는
G.MISSION
-
[더굳뉴스] 권순웅 목사 ‘샬롬 축복’ 전도 십계명
주님께 나아가면 더러운 내 마음을 주님께서 꽃잎 받듯 받으십니다 나는 주님께 흙자국을 남기지만 주님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주님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나가고 주님은 나를 사랑으로 건너십니다 주님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주님은 자꾸 늙어만 가십니다 봄빛처럼 흩어지는 주다산교회 정문 햇살.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잘 묶인 넥타이처럼 교회 앞 뻗은 길에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계절. 시인 서정주는 이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했다. 가수 김광석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고 했다. 그 정도의 감수성이 없더라도 이른 봄 꽃잎을 밟고 걷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 삶의 의미와 환희를 추구하는 수도자가 된다. 열정(passion)의 어원은 ‘고통’이다. 열정이란 고통의 장작더미 위에서만 타오르는 마음의 불꽃이며, 그 자체로 치열한 자기 도전이다. 인생은 슬픔을 내포한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각자 자율적인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사람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엔 습관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나쁜 습관을 정복하지 못하면 결국엔 그 습관이 사람을 정복해 버린다. 2022년 11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에서 전국 노회와 교회에서 ‘샬롬 축복 전도’를 지도할 강사 요원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에는 전국 109개 노회에서 추천한 강사 요원과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 목회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훈련은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강의와 샬롬 축복 전도를 오랫동안 실천해온 주다산교회 현장에서 뜨겁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김진하 목사(샬부흥운동 본부장)가 ‘예수는 네비게이션’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죄로 인해 쫓겨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는 운동이 ‘샬롬부흥’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교회 강단들이 허물어진 이때 교단 적으로 전도 운동이 펼쳐집니다. 전도는 우리에게 맡겨진 고귀한 사명임을 알아 기꺼이 함께 노력합시다.” 예배에는 총회 회록서기 한기영 목사와 총회회계 지동빈 장로가 참석해 격려사와 축사를 전하고 총회 기둥이 돼가고 있는 배만석 목사(샬롬 부흥 운동 전도 선봉 및 총괄지원단장)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총회불꽃 권순웅 제107회 총회장은 107년 총회 역사상 처음일 총회장 자신의 축복 사례를 들어가며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이라는 일목요연한 교재 ‘샬롬 축복 전도 강사 요원 훈련지침서’를 중심으로 또박또박 재미있게 전했다. 그 내용은 30평 개척교회로 시작해 죽다 산 경험에서 우러난 복음전도(evangelism)의 전략이고 실행력 있는 전술을 전하는 것이었다. 전략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택해야 할 실행 계획이다. 반면 전술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개별적인 단계와 행동이다. 권순웅 목사는 “전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막막한 분을 위한 특별한 강의”라고 강사훈련 지침서 표지에서 말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 말하는 전략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손자병법(孫子兵法, Sun Tzu 's Art of War)은 고대 중국의 병법서(兵法書)이다. 원본은 기원전 515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軍師)가 된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손자병법은 조조가 원본을 요약하고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에서 손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리가 어떤 전략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합려가 손자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말했다. “선생의 병법 13편을 모두 읽었지만, 궁녀들은 조금이라도 군의 지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손자는 이것을 승낙했다. 궁녀 180명을 내어주며 훈련시키도록 하자, 손자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지휘관으로 차례차례 세워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킥킥거리며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손자는 군령을 세우기 위해 합려가 아끼는 지휘관 궁녀 둘을 처형하도록 하였다.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다. 손자는 작전 중의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가는 궁녀를 뽑아 지휘관으로 삼고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 일로 합려는 기분이 상했고 손무는 그런 합려를 낮게 평가했으나 이후 합려가 손무를 중용하여 상장군으로 임명했다. 이에 부응해 손무는 오나라의 군대를 훈련시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초나라와 대항할 수 있는 국력을 키울 때까지 무리한 군사 행동을 자제하였다. 기원전 506년 합려는 손무와 오자서를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 원정을 개시하였다. 손무의 전략에 따라 오군은 연전연승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함락하고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이후 진나라의 개입으로 오나라는 철군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패자의 위세를 떨쳤다. 기원전 496년,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합려도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손무와 오자서는 합려의 후계자 부차를 보좌하여 국력을 키운 뒤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부차가 패자가 될 무렵, 손무는 은퇴하여 이후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손자에 따르면 전술이 보다 구체적이고 파악하기 쉽지만, 포괄적인 전략도 똑같이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전략과 전술 중 무엇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전략 그리고 전술 모두를 구사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만약 전략만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과제인 전술이 있어야만 목표한 곳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만 사용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계획만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술만으로는 하나님이 명하신 샬롬 축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전략 없는 전술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은 업무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도 요원들이 전략적 목표 없이 자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의미 없이 단순 반복 작업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장기적으로는 좌절감과 축복 전도 사명에 대한 태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샬롬 부흥 축복 전도’ 창안자 권순웅 목사는 성경에 근거해 전략을 세우고 전술로 실행하는 손자처럼 말한다. “진실로 ‘샬롬 축복 전도’는 주님의 부르심이자 쇠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필요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 가르쳐주신 전략이며 실제로 전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술입니다.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처럼 전도도 전략적이어야 하는데 전도 대상자를 만날 때 ‘샬롬’으로 평안을 비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전도 대상자와 첫 만남 때는 누구나 긴장 관계에 있게 마련인데 그 긴장감을 해소하는 최고의 접근법이 평안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모인 여러분들은 어쩌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참석했습니다. 노회와 교회마다 전도의 불을 지펴주십시오.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가 1000여 교회가 되는데 그 교회마다 전도 셀 100개만 만들어도 전국에 10만 셀이 생깁니다. 10만 셀이 매주 전도하러 나간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의 프로세스는 전술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호감을 주는 전도를 위한 10가지 원칙’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전도자의 교회와 삶을 성장시키는 '샬롬 부흥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샬롬 부흥 전도 운동’의 구체적인 전술은 다음과 같다. 1 항상 기도하라 2 항상 깨끗한 옷차림을 하라 3 항상 첫인상에 승부를 걸라 4 항상 누구를 만나든지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라 5 항상 좋은 표정 짓기를 연습하라 6 항상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라 7 항상 외모보다는 표정에 투자하라 8 항상 웃음 앞에서는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라 9 작은 빈틈을 보여 타인의 마음을 열어라 10 항상 선물을 준비하라 교회 성장과 교인의 삶의 성공 이론이 성경적 전략이고 그리고 그 방법이 실제적이고 성경적 전술로 가르쳐주는 권순웅 목사 같은 전도자를 본 적이 없다. 길을 나서는 사람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갈리는 길인 기로(岐路)에서는 늘 생각에 잠긴다. 좁아지는 길인 애로(隘路)에서는 몸을 뺀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사로(死路)를 피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가는 길인 활로(活路)를 항상 갈구한다. 그러므로 시간을 꽉 붙들어야 한다. 삶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금세 폭발할 것 같은 순간들도 당신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과거의 상실과 미래의 상실을 동시에 아파하는 존재다. 과거의 상실은 잊지 못해서 괴롭고 다가올 미래의 상실은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힌다. 결국 상실에서 오는 고독은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이다. 따라서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가려면 어느 정도 바닥짐이 실려 있어야 하듯, 우리 삶에도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이나 결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2022-11-26
-
[더굳뉴스] 허활민 목사의 길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낸 운동권 대부 이해찬은 2026년 1윌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 시각) 베트남 호치민 탐안 병원에서 7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지난 22일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가, 다음 날인 23일 베트남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도착 후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이 수석부의장은 곧바로 스텐트 시술을 받는 등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로(死路)로 떠났다. 빈 나무들이 겨울 길목을 지키고 있다. 허리 아래 잔 숲 앙상한 갈대들이 마음을 간질인다. 조그만 참새도 가는 겨울을 살핀다. 겨울의 그때가 되면 나무도 갈대도 참새도 그동안 우리가 알던 그들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뜻을 펴기 힘들어 여러 곳을 주유(周遊)하던 시절의 공자가 남녘의 초(楚)나라를 지날 때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모양이다. 제자 자로(子路)에게 밭을 일구던 수도원의 수도사 같은 은자(隱者) 두 사람에게 길을 묻게 했다. 그러나 한 은자는 퉁명스레 공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스스로 잘 알 텐데 뭘 다시 묻느냐”며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돌아와 사정을 알리는 제자의 말을 들은 뒤 공자는 탄식 속에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물었던 것은 옛날 잠실 나루 같은 물길 건너는 나루가 어디냐 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화는 ‘나루를 묻다’라는 뜻의 문진(問津)이라는 유명 일화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루’는 사실 ‘길’이다. 아울러 지향(志向)이자 방향(方向), 마땅히 걸어야 할 ‘도(道)’ 더 나아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까지도 지칭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취향으로 유명했던 기원전 5 세기 초 ~4 세기 초의 인물 양주(楊朱)도 그런 적이 있다. 잃어버린 양(羊)을 찾아 나섰던 이웃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이유를 묻는다. 이웃들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라고 대답한다. 굳은 얼굴로 양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라는 뜻의 기로망양(岐路亡羊)이라는 성어가 유래한 장면이다. 우리는 보통 ‘양 잃고 외양간 고치다’는 뜻의 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를 먼저 떠올리지만, 길에 관한 양주의 깊은 사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주가 주장하는 “나 자신을 위한 삶 爲我”의 목적은 “온전한 삶全生"을 사는 것이다. 중국에는 그렇듯 ‘길’에 관한 모색이 많고 깊다. 사는 길은 활로(活路), 그 반대는 사로(死路)다. 길을 묻는 일은 문로(問路), 길을 가리키면 지로(指路)다. 나아가는 진로(進路)도 살피지만, 물러서는 퇴로(退路)도 중시한다.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오후 2시 한때 총회의 길을 인도한 허활민 목사의 대구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언덕길에 자리한 호렙산교회에서 산서노회(노회장 이재천 목사) 제97회 정기노회가 열렸다. 노회장 이재천 목사의 설교와 증경노회장 허활민 목사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친 뒤 김준영 목사(소서교회)의 집례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개회 선언 후 회무를 진행하다 정회 후 강도사 인허 예배를 드렸다. 인허받은 강도사는 이성규, 홍순재, 황옥철 등이었다. 속회 후 회무를 마치고 폐회하기 전 46세의 사모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회원이 뜨겁게 기도하고 위로금을 전한 눈물이 핑 도는 순간도 있었다. 노회원들이 흩어지는 호렙산교회 좁은 길 비탈에 차들이 지나치고 바람이 불어 갈대들이 휘어지고 흔들렸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세상에는 '나와 너(I-Y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가 존재하는데,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도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대상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인격적으로 마주하는 관계로서,무엇과도 바꿔질 수 없는 유일한 '나'와 대체 불가능한 '너'가 깊은 신뢰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6 2020-10-24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와 나사로
성령 불 들어간다. 아궁이에 들어간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불티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장작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손목 괴고 불이나 쪼여볼까. 불 앞에서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따뜻할 뿐. 주님 몸 된 성도들, 성령 불로 타들어가 성화의 길 간다. 성령 불 들어간다고 알린들 성화되지 않은 몸이 대답할 리가 있나. 믿음의 깊이는 말로 잴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만 있다는 깊은 말씀이 믿음에 온기를 더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Stipetić; 1941~)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 1896년 3월 5일, 베를린 ~ 1983년 11월 25일, 파리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녀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일흔여덟 살의 그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헤어초크는 생각했다. "안 된다, 그녀가 지금 죽을 순 없어, 안 돼.' 서둘러 짐을 싸던 헤어초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거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다면 아이스너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974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그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 ’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걸었던 이야기. 내가 걸을 때면, 한 마리 들소가 걷는 것이다. 내가 쉴 때면, 하나의 산이 쉬는 것이다. 그런 그의 걸음이 신비로웠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도 아름다워야 하고 죽음도 아름다워야 한다. 수많은 삶의 모습이 우리들 곁에 머물것이며 그 순간을 느끼며 또 지나가는 한 순간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삶일 것이다. 정신적 지주를 위해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삶,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희생 정신, 아름다운 삶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쏟아줄 사람이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언덕이 펼쳐진 풍경. 숲은 풍성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매의 울음소리. 내 뒤에 있는 노변 십자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침 일찍 존재했던 것은 밤이 오기 전에 쉬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살며, 끊임없는 죽음의 위험 속에 살아갑니다.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간구하오니 나의 종말을 편안하게 하소서.' 시간은 영원을 향해 흐른다. 그는 무작정 파리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여행길이지만 마땅한 장비도 없이 그저 걷기 시작한 순례에 가까운 여정이었으므로 험난할 수밖에. 게다가 제목처럼 추위가, 눈보라가, 얼음 같은 바람이 불어닥친다. 그렇게 걸어 마침내 도착함으로써 어쩌면 헤어초크는 그 마음, 그저 그 먼 길을 걸어 결국 닿는 그 마음이 아이스너의 병을 어떻게든 치유해주기를, 기이한 방식으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원망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을 피하여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3주 동안 독일 남부와 프랑스 동부의 이름 없는 마을들을 거치며 800여㎞를 걷는다. 겨울의 텅 빈 평원을 걷고, 버려진 헛간이나 빈집에서, 때로는 축사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강풍과 폭설과 겨울비와 우박을 다 겪고, 낯선 주막에 들어가면 동네 사람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차라리 무의미함을 모두 실천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옳고, 계산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걷는 행위는 무모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과 육체를 쏟아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헤어초크 같은 태도가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심장이 세상을 만든 게 아닐까. 이윽고 헤어초크가 파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스너는 아직 살아있었다. 누군가 얼음 속을 걸어 그녀에게 가는 헤어초크 이야기를 해주어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더 쇠약한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그윽하게 미소 지었다. 헤어초크가 혼자 걸어왔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신비롭게 쳐다보며 헤어초크가 말했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저는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왜 당장 가장 빠른 차편으로 파리로 가지 않고 도보 이동을 선택했을까. 그 길 위에서 헤어초크는 순례객이었으니까. 그가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고난에 빠뜨리는 동안, 청컨대 그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다 회생의 말미를 얻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는 얼음 속을 걸어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스너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실제로 그녀는 8년을 더 살았다. 그 후 아이스너가 1983년 11월 25일 죽기 1년 전 1982년 독일 영화계의 공로상인 헬무트 코이트너상이 제정되자, 첫 수상자로 아이스너가 선정되었다. 헤어초크는 그녀를 위한 수상 축하 연설에서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끼는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들소로도, 산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 어느 한 목사의 아픔을 전하는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음에 못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2018년 12월 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가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에는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축사가 임직식을 한껏 빛냈다.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박주선, 천정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정계 지도자들까지 순서를 맡아 축하와 격려를 더한 것은 한기승 목사의 교계와 사회에서의 목회 능력을 입증해주었다. 아울러 그는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광대 소강석 목사의 절친(切親)이기도 하다. 그런 한기승 목사가 나사로처럼 위중하다. 한기승 목사를 아는 총회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나사로를 향한 주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39-44 2025-02-20
-
[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
[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G.SERMON
-
[더굳뉴스] 이스라엘 전쟁의 진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의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동시에 아랍어에서 '힘'과 '열정'을 뜻하는 말)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고 나서, 당시 인근의 ‘노바’ 사막 음악 축제에 참석했던 여성 노아 아르가마니(당시 25세)가 테러범들의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졌다. “죽이지 말아달라”는 노아의 절규가 담긴 피랍 영상은 테러범들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번졌다. 여성은 남자친구에게 손을 뻗었지만, 남자친구도 테러범 2명에 붙잡혀 있었다. 이 테러로, 1200여 명이 죽었고, 25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노아가 245일만에 석방되고 나서, 그의 남자 친구를 붙잡고 있었던 두 남성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5월 15일에는 2025년 이후 가자지구 하마스 조직의 군사령관인 에제딘 알하다드가 사살됐다. 이스라엘 전투기 3대가 가자 시티의 한 아파트와 그곳을 떠나려는 차량에 13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하다드와 아내, 딸, 민간인 여려 명이 죽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율 20일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의 10ㆍ7 테러 관련자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계획자, 전투원, 가담자 모두를 색출해 죽이거나 체포하는 태스크포스 ‘닐리(NILI)’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닐리’는 사무엘상 15장 29절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네차흐 이스라엘 로 예사케르)’는 히브리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略字)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첩보단이 사용했던 이름으로, 2023년의 10ㆍ7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자는 누구도 잊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심지어 그날 이스라엘ㆍ가자 국경 철망을 트랙터로 밀고 넘어간 트랙터 운전기사도 테러 발생 근 2년만에 신원과 위치가 파악됐고, 결국 가자의 한 좁은 거리를 걷다가 공습으로 살해됐다. ‘닐리’ 명단에 오른 이름은 수천 명. 이미 수백 개의 이름이 삭제됐지만, 테러 관련자들은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이 지켜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 명씩 명단에서 지워지고 있다. 하마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의 감시 능력과 보복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테러범들과 가담자들은 10월 7일 자신들의 활동 장면을 휴대폰과 고프로(GoPro) 카메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이 영상 데이터는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무가 됐다. 2023년 10월 15일 오전 11시 창성교회 본당 함성익 목사가 성경 마태복음 5:1-12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신 팔복의 말씀을 중심으로 '행복의 본질'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에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과 테러 집단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하마스의 전쟁 내력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축제의 안식일 새벽 6시 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예상 보유량을 넘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면전 수준의 도발이었습니다. 하마스는 지상으로도 직접 침투,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을 포로로 잡아 가자지구에 억류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날은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50주년 다음 날이었습니다. 당시 아랍 연합군의 공격 징후를 놓쳐 패배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의 트라우마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오래 준비했고 상징성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정치인이자 제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 Listeni, 1942년 11월 20일~)의 말처럼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즉각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알카에다에 기습적으로 당했던 9·11테러를 소환했습니다. 이어 '9·11(나인 원 원)'처럼 '10·7(텐 세븐)'이란 고유명사가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피의 분쟁 역사는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던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 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습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에 세운 도시였습니다. 구약의 유대인 사사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델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돌팔매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 영웅이었습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2천 년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딱 맞지 않습니다. 용맹한 블레셋인은 기원전 4세기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에게 저항하다가 패퇴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블레셋의 후예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습니다.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징벌로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이란 뜻)이라 부른게 시초입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타올랐다. 이 전쟁으로 서안 지구(West Bank)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두 곳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여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인 인티파다(봉기)가 불붙었습니다. 하지만 가자와 서안 지구는 그 후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인티파다로 자치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했습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 테러 단체 하마스가 승리하고 파타가 불복하면서 가자는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수중에 떨어진 가자에서 정착촌을 철수하고 물과 전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가로 10㎞, 세로 40㎞인 강원도 크기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싸움이 격화되면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세력의 팔레스타인 궤멸 논리가 힘을 얻고, 이슬람 극단주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소멸론을 주장하며 이란을 포함하는 반시오니스트 연대를 강화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배척하는 종교의 교리가 담긴 종말론 즉 아마겟돈의 서사(敍事)입니다. 이 서사는 현실이 되면 안 됩니다. 비유로만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 사태 설명을 끝내고 '행복의 본질' 설교를 이어갔다. "이스라엘 전쟁은 종교적인 갈등,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갈등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집안, 내 가족이 어울려 살기 위해 벌어진 다툼입니다. 어쨌거나 전쟁은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이 팔복의 말씀 역시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죠. 유대인의 탈무드(미쉬나-Mischna, 반복/가르침-와 게마라-Gemara, 보완/보충-가 합쳐진 책이다. 미쉬나는 토라인 타낙<히브리 성경>에 대응되는 구전 토라로 AD 200년경 편집된 최초의 권위 있는 종교적 법규 모음집이다. 게마라는 미쉬나에 관한 랍비들의 논구와 해설들의 전승을 지칭하며 이 게마라가 미쉬나와 합쳐져서 탈무드를 형성)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중병을 얻어 눕게 됩니다.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나 차도가 없고 점점 몸만 더 나빠집니다. 어느 날 자녀들이 랍비를 찾아가게 됩니다. 당시의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랍비가 가르쳐 주기를 '나는 정말 행븍합니다'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외투를 빌려 아버지를 덮어주라. 그러면 당신 아버지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온갖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산중의 한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굴속에서 기도하는 한 수도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안식에 들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반가워 굴에 들어가 그의 외투를 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도사는 외투는커녕 걸치고 있는 옷이 속옷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자녀들이 그때 깨우친 교훈은 분명했습니다. 역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안에 있는 것으로 물질로 행복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 가운데 ‘목사님 저는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 저와 함께 읽은 마태복음 5장 1-12절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론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진정한 행복의 교훈을 가르쳐주신 진정한 행복은 갈릴리에 있는 소위 팔복산으로 가야 할 겁니다. 팔복산은 가버나움에서 한 10킬로 떨어진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아주 작은 산입니다. 그 산에 팔복 기념교회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중앙 팔각형 안의 여덟 개 창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창문들에는 라틴어로 팔복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 이스라엘 관광을 제일 많이 가는 줄 아십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라틴어 팔복 말씀이 한글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그림 같은 갈릴리 바다가 펼쳐집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 장소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행복의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주셨다고 합니다.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원문 성경에 보면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행복의 본질을 말씀해주시면서 제자들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오자 예수님이 입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팔복의 교훈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자신을 따르는 예수님 제자들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행복의 본질이 이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람이 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 팔복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심령의 상태 즉 마음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첫 번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만 아니라 두 번째 복, 애통함도 마음의 상태, 세 번째 복 온유함도 마음의 상태, 네 번째 복,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다섯 번째 복 긍휼히 여김도 따지고 보면 다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철저하게 행복은 결코 외적인 상태 즉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의 다스림에 있다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조금만 더 돈을 벌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넓은 집을 가지게 되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출세하고 조금만 더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허상의 바램 속에서 제각각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강조해주고 계십니다. (회중 아멘) 우리의 마음이 참으로 가난해지면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고 사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우리 가운데 새벽에 늘 나오는 분이 계세요. 폐가 안 좋으신데 저하고 얘기할 때 숨을 가쁘게 쉬십니다. 그런데 매 주일 감사헌금을 내면서 ‘하나님 한 주간도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새벽기도 나와서도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가십니다. 하루하루와 매시간이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행복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두 번째로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입니다. (회중 아멘)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팔복은 복이 ‘있도다’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의 축복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영어로 블레스(bless)입니다. 어원은 블리드(bleed) ‘피 흘리다’ 입니다. 이 단어는 피의 제사에서 유래된 단어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피 흘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피 흘려 드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말씀했습니다. 팔복이 바로 이런 하나님하고의 바른 관계를 가리키는 마음의 덕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이 죄지은 것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의 표준만을 기뻐하고 거기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년 11월 6일 ~ 2018년 10월 22일)이라는 유명한 미국의 성경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복음주의 기독교출판협의회로부터 상을 받은 책 ‘메시지 성경’(The Message: The Bible in Contemporary Language)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풀어준 책에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회중 아멘) 애통하는 자의 복,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회중 아멘) 두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맛에 당기는 자는 복이 있다. 평생에 너희 음식이요 음료로다. (회중 아멘) 참 의미 있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늘 애곡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 그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래서 배부름을 얻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포기하고 주 앞에 엎드려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의지하고 거기서 경험하는 것을 영적인 만족으로 추구하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경험하는 창성교회 교우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세 번째 행복의 본질은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팔복의 가장 중요한 점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과의 마음부터의 올바른 관계를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팔복에는 이웃과의 관계도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에 뭐죠. (회중과 함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니까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이 이웃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주 중요한 강조점이고 팔복의 핵심입니다. 이웃 사랑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팔복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다섯 번째 복과 일곱 번째 복을 보십시오. 다섯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 번째 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보면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정성을 들여 돌보는 너희는 돌봄을 받는다. 화평케 하는 자,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야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내 이웃을 배려해주고 섬기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 청교도들은 행복에 관해 이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말입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뭘 하라? 이발하라. 우리가 이발소나 미장원에 다녀오면 하루는 깨끗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한 주간 행복하려면 여행해라.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들뜨고 행복합니다. 신바람이 납니다. 여행 가서 일주일 지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집 생각이 나죠. 한 달 행복하려면 새집으로 이사 가라. 새집으로 이사 가도 수리하고 뭐하고 해도 한 달밖에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한 해 행복하려면 결혼해라. 뭐 처녀하고 총각끼리 평생 사느니 죽느니 해도 결혼하고 일 년 사니까 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회중 웃음) 그러나 일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일생 행복하다는 겁니다. 때로 어려움도 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여러분 예수님 행복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섬기시면서 자신도 무척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우리 예수님은 행복하게 사신 겁니다. (회중 아멘)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시면 떠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여러분 인간 가운데 마지막 순간 ‘다 이루었다’ 하고 떠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분이 있다면 시인 윤동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십자가’라는 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그리스도’ 참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삶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행복을 누리셨습니다. 섬김에는 아픔과 고통도 따르지만, 그 섬김의 건너편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희열과 놀라운 행복이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복을 붙잡고 간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중 아멘)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마음이 가난하셨던 분이요 인류의 죄 때문에 애통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붙잡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행복은 우리의 가진 것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어떻게 옵니까. 주님을 영접할 때 옵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내 모든 삶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회중 아멘)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살고 주님을 섬기며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회중 아멘) 저는 우리 창성교회 교우들이 팔복을 붙잡고 팔복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팔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회중 아멘)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음을 알고 행복한 그리스도인 행복한 창성교회 교우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큰 아멘) 창성교회는 2026년 3월 21일 함성익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고, 강동규 목사를 제3대 담임목사로 위임했다. 함성익 목사는1992년 제2대 담임으로 부임해 창성교회와 황해노회와 총회를 35년간 헌신했다. 함성익 목사는 답사를 통해 그 35년을 회고했다. “정년까지 사역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목회자이셨던 부친 함영진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2026-07-20
-
[더굳뉴스] 히에로니무스 황정길 목사의 칭의론
히에로니무스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보편교회 신학자이자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특히 서방교회에서 중요한 신학자이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 성경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Ἱερώνυμος →신성한 사람)'에서 유래한다. 생전에 폭넓은 학식과 뛰어난 언어 능력, 그리고 빼어난 저술 실력까지 지닌 그는 종교 서적, 역사서, 에세이 등 다양한 글들을 집필함으로써 수많은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중 대표적으로 히브리어, 그리스어, 그리고 아람어로 쓰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훗날 가톨릭 라틴 예법의 국제 표준 번역 성경으로 자리 잡게 된 불가타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성별 상관없이 신앙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무릇 따라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가르쳤고, 특히 배우자를 잃은 여성들에게는 성경 공부와 수도 생활 방식을 교육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서방교회에서는 교부, 동방교회에서는 '존엄한 증거자'라는 칭호와 함께 많은 이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영어 이름으로 알려진 제롬(프랑스어권 변형인 제롬Jérôme, 라틴: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 420, 9월 30일)은 4세기 수도원 운동이 낳은 위대한 성직자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초대교회 신학자이자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라틴어 이름 히에로니무스는 ‘신성한 사람’을 뜻한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예수탄생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은 제롬이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교회 지하의 서재이다. 그는 그곳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한 목회자가 있다. 그는 서울반석교회의 황정길 원로목사이다. 그의 가르침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실어 널리 전하고자 한다. 한국의 '신성한 사람' 히에로니무스 황정길 목사는 말했다. "한국교회는 그간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만 가르친 결과 삶이 없는 교인들을 양산했습니다. 믿음은 말씀의 순종을 동반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어거스틴과 루터로 이어지는 가르침은 법정적 칭의를 강조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안경을 벗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참회하는 심정으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전하려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는 두 가지 증거가 필요합니다.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입니다. 내적 증거는 하나님이 내 구원이 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외적 증거는 내 옆의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삶으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제 내 글이 그런 삶을 실행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삶(행함)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대다수의 성도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전도를 강조하는 많은 분들이 입술의 고백 중심의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가 하면, 전도폭발이나 사영리 책자를 통해 전도를 받고 영접기도를 한 후 순간적인 입술의 고백에 의한 신앙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새신자들을 위한 양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구원의 현재적, 미래적 측면이 소홀히 여겨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전도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고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이 인용하는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란 말씀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 1:9ㅡ11절까지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즉 세상이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예수님)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왕으로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님으로 알아보고 그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로 영접하고 왕의 통치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순종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王)으로 주(主)로 받아드린다는 뜻이며 이를 또한 믿는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3:36절 말씀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믿는다는 말을 순종한다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까지 내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순종)는 믿음과 대립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믿음을 드러내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즉 행위로(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 1:5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 롬 16:26절에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 라고 믿음 = 순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믿습니다.” 가 아니라 자아(自我)가 주인 되어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시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義)라하며 불순종하는 것을 불의(不義) 곧 죄(罪)라 합니다. 지금까지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내 뜻과 내 욕심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삶을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셔 드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언약관계에 신실한 순종의 삶은 사는 것을 믿음이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義)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지식으로 아는 입술의 고백적인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타락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 주의와 공로주의 구원론, 면죄부 판매 등 잘못된 전통을 개혁하는 개혁신학의 주제(主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한국 교회 안에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값싼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는 예수님과 연합의 진리와 함께 바울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느 서신에서도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와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고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主)라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지적 동의나 입술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主)냐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주(主)냐 하는 결단하는 문제이었습니다. 그 결단은 목숨을 건 심각한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날 모슬렘권에서 예수님을 주(主)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공동체에서 추방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는 순간에 선택하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위협도 없고 부담도 없고 책임도 없는 지적(知的) 동의(同意) 만인 입술의 고백으로 하는 “믿습니다.” 라는 오늘의 우리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원초(原初)적인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확인하거니와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한 신학교에서 구원론을 강의 하는 교수들 가운데 일부 교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수들이 우리의 구원을 시간상의 순서로 칭의(稱義), 성화(聖化), 영화(榮華)로 구원의 순서(order of salvation)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구원을 받은 순서로 칭의(稱義) = 구원의 과거,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성화(聖化) = 현재 구원,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 영화(榮華) =미래 구원,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장로교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조직신학자 (박형룡 교의신학 구원론 5권, p.279, 356)에서 “칭의(稱義)”는 신자가 구원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과거적 구원을 말하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현재적 구원으로 구원의 지속을 뜻하며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영화(榮華)”는 신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미래적 구원을 (미래에 일어날 일)의미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에 완성되고 성화는 그 이후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함으로써 시간상의 순서로 가르쳐왔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이상근 박사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 부분(롬3:21-8:39)은 바울의 구원론,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대(大)진리를 설명한 곳으로 로마서의 중심부이다 ...이 부분을 대별하면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간적으로 의인(義認)의 교리를 밝히고(3:21-5:21) 의인(義認)을 받은 자가 계속적으로 힘쓸 성결(聖潔)의 생활을 강조한(6:1-8:17)후, 성도가 미래에 받은 영화에 이르고 있다.”(8:18-39)고 가르쳤고, 21세기 복음주의 조직신학자 에릭슨(M.J.Erickson)도 “칭의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순간적인 사건이지만, 반면에 성화는 완성을 위하여 전 생애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복음주의 조직신학(하), p.15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 성화, 영화를 구원의 시간적 순서로 보고 칭의(稱義)는 순간적이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으로 볼 때 성화 없는, 즉 윤리적 삶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도 이와 같이 배웠고 죄송하게도 한 동안 이렇게 가르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던 가운데 이 순서가 잘못되었으며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참회하는 심정으로 남은 생애 이 성경 진리를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 부인의 삶이 없는 기복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삶(행함)이 없는 구원, 윤리가 실종된 기독교로 오늘의 교회의 윤리의식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텐리 존스가 지적한 대로 교회 안에 있는 자의 2/3는 회심(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돌이킴의 삶을 사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삶)이 필요한 자들이며, 안성모씨가 지적한 대로(시사 저널, 2011년 2월23일) 오늘날의 교회는 윤리가 실종된 맛을 잃은 부패한 교회가 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속지 맙시다. 거룩함을 이루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히12:14 그러면 과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시간적 순서이며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고 순간적(瞬間的)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인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되는 것인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롬 3:21-4:25, 갈 3:6-14, 약 2:21-24).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을 등장 시키고 있습니다(롬 3:21-4:25). 바울은 롬 3:21-2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말하고 롬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롬 4:3절에서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하고 아브라함이 믿으매 하나님께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義)로 여겼다는 말씀은 창세기 15장6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이때 아브라함은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창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 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나에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밖으로 나오라 하시고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義)로 여기 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은 몇 살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가려고 화란을 떠날 때의 그의 나이가 75세라고 했고(창12:4)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라 했으니(창16:16)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아마 75세와 86세의 중간 인 80세라고 가정해 보고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롬 4:19-22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졌느니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칭의(稱義)를 받는 것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7-18장의 내용으로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행하라 하시면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내가 네 아내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으며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가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아브라함이 말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시며 말씀을 마치시고 떠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대로 자기 집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90세나 된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고 또 100세에 칭의(稱義)를 받으므로 두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칭의(稱義)를 얻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주시지 않다가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나 되었고 사라의 나이는 90세로 자손을 가질 수 없는, 즉 생산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죽은 태를 열어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시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롬4:23-24절에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 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과 같이 예수님을 주(主)로 믿는 나도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부활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만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믿음과 우리가 믿는 믿음이 유전자 상으로 같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3:7 야고보 사도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에 성경에 이른바 하고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 내용은 창세기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자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시며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시고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으니 천하 만민이 네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행위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대략 115세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고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갔으니(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6)) 이때 이삭의 나이가 대략 15세 전후는 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115세 때 또 칭의(稱義)를 받습니다. 종합하여 보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창15장에서 자식이 없는 80세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 17-18장에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요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어 생산 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22장에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 하실 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이삭을 제물로 드림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세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0세,100세,115세,)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생애로 보면 칭의(稱義)는 단회적이 아니요 반복적이며 점점 더 믿음이,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구별된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며 시간적 순서로 볼 것이 아니라 논리적 순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롬 5: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였고, 롬6:7절에서는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하고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음으로 성화(聖化)없는 칭의(稱義)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죄 된 생활에서 벗어나 구별된 삶(성화(聖化))을 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믿음)을 살 때 의롭다 하심(칭의(稱義))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화(聖化) 없는 칭의(稱義)는 없는 것이며 성화(聖化) 없이도 칭의(稱義) 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은 성경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또한 칭의(稱義)는 종말론적입니다. 칭의(稱義)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맥그라스(A.E.McGrath)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칭의론'(pp.45-46)에서 “바울 자료에서 칭의는 성도로서의 삶의 시작과 최종적인 완성이 모두 연관된 것이므로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 또한 언급합니다(롬 2:13, 8:33; 갈 5:4-5). 마찬가지로 성화 또한 과거의 사건(고전 6:11)과 미래의 사건(살전 5:23-24)을 언급할 수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칭의(稱義)가 과거의 어떤 한 시점만이 아니고 최종적인 종말론적인 칭의(稱義)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5:5절 말씀에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라고한 말씀과 같이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딤후4:6-8절 말씀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主)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신 말씀과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주님으로부터 최종적인 의의 선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전 5:23-24절 말씀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거룩하고 흠 없게 보전되기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아니며 반복적이요 종말론적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시간상의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로 구원의 양면성을 말하고 있으며, 평생 칭의(稱義), 평생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 종말론적 칭의(稱義)를 얻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에 서있는 칼빈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하여 그의 [기독교 강요]와 [창세기와 로마서 주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은 죄인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칭의(稱義))과 거룩하게 됨(성화(聖化))을 얻게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 고전 6:11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논리적으로는 칭의(稱義)가 성화(聖化)에 앞서지만 이 두 가지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얻어지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구별은 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성령의 이중 사역(고전 1:30, 6:11)으로 성도들 안에서 평생토록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기독교강 Ⅲ.ⅰ.1).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된 성도들과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서 가능케 되는 것 입니(기독교강요, Ⅲ.ⅰ. 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매일 매일 평생토록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가며 가슴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다 같이 상호 구별은 되나 분리될 수 없고 동시적인 것(「기독교강요」Ⅲ.ⅹⅵ .1)과, 참된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증명하게 된다는 것(기독교강요, Ⅲ.ⅹⅶ .12)과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그 안에 항상 살아계신다 갈 2:20는 것(기독교강요, Ⅲ.ⅱ.13)을 고려할 때, 성화(聖化)와 함께 한 칭의(稱義)는 법정적 선언적인 점에서는 단번에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가 회복되는 데는 한 평생이 필요한 (기독교강요, Ⅲ.ⅲ.9)것으로 칭의(稱義)는 성격상 일평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칭의(稱義)의 수단인 믿음과 칭의(稱義)의 근거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칭의(稱義)와 불가분하고 동시적인 성화(聖化)가 평생의 과정인 점에서 칭의(稱義)는 단순히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 아닌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온전히 지켰을 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바울의 말씀(딤후 4:8)에 의하면 칭의(稱義)는 사실상 종말에 되어질 것이 미리 선언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칭의의 직접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요(기독교강요, Ⅲ.ⅹⅰ ⅴ.17), 구원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롬 8:29-30),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 그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稱義)교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 교리의 중심점이기에 이 교리가 왜곡되는 경우 기독교의 구원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칼빈은 기독교강요와 창세기 및 로마서 주석 등에서 특별하고도 섬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둘 간(間)에 구별은 있으나 분리가 있을 수 없고 사실상 동시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불신앙과 육체적인 정욕과 평생토록 싸우는 것이요, 온갖 장애물들을 인하여 평생토록 연단 받는 가운데서 죽는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리는 경주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평생토록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열심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기독교강요, Ⅲ.ⅲ.9). 이 믿음과 회개로 말미암는 칭의(稱義)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죽기까지 평생토록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영원히 사는 것이며 성화(聖化)는 죄에 대하여 죽고 또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 속에서 그리스도를 점진적으로 닮아 죽을 때까지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 입니다. 요약하자면, 평생 믿음과 평생 회개를 통한 평생 칭의(稱義)와 평생 성화(聖化)를 누린다는 것입니다(나용화 박사 “믿음과 칭의에 대한 칼빈의 이해 ”). 이와 같은 칼빈의 칭의론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잘못 가르쳐져 칭의(稱義)가 법정적 선언이요 신분의 변화로서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기에 시간적으로 칭의(稱義)가 완료된 이후 성화(聖化)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왜곡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믿음)이 없어도 믿기만(지적 동의로 입술의 고백)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윤리적 삶이 실종된 기복종교로 전락(轉落)했습니다. 또한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상실한 머리털이 깎이우고 두 눈 뽑힌 삼손이 되어 한국 사회로 부터 신뢰를 상실한 부끄러운 우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말씀처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신 말씀과 같이 진리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고 우리 자신이 바른 삶을 살고 바르게 가르쳐서 거룩성을 회복하여 빛의 삶을 살아 하나님의 더렵혀진 이름을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삶이 배반하지 않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의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고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합니다. 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교사가 되어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음악가는 음 하나로 죽을 수 있다. 비유적 의미에서라도 단 하나의 음, 단 하나의 획,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죽을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창조물 앞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찬미의 경지도 있다. 아름다움이 베푸는 감동의 믿음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감동의 순간 인간은 용감해진다. 몸은 죽어도, 믿음은 죽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믿음의 목적은 ‘하나 됨(union)’이고, 믿음은 감염 능력을 발휘해 사람과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낸다. 좋은 믿음일수록 감염력이 막강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전파력이 크고 빠른 믿음은 인간을 황홀에 빠뜨려 정신까지 마비시킨다. 믿음의 영향 아래서 우리는 자신이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고, 우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2020-04-09 수정 2026-07-17
-
[더굳뉴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그리운 모습들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 진심 담겨 적폐 중 적폐와도 화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주여 하늘의 ’거룩한 완전한 태풍‘불어오게 하옵소서 남수원노회 노회장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노회 형편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믿음의 중심이 단단해 보이는 목사였기 때문이다. 그 노회 소속으로 문제가 된 목사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총대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의심하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패,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아쉽게도 모든 소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는 않는다. 인정받지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필요해.” 그래서 그는 그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성경을 들고 길을 걷거나 펼쳐놓고 말씀을 전한다. 짜릿한 겨울날 오후 슬쩍 내리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거나 어찌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쨍하게 갠 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면 기꺼이 필요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값진 필요가 되려면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을 확인한 그는 겁쟁이에 바보가 된다. 사랑의 바보는 난생 처음 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눈 오는 날 그가 눈송이조차도 사랑스러워 하니 아무렴 하나님께서 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를 피해 내리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목사가 몸을 쥐어짜며 구성지게 이 노래를 부르면 회중이 울까 웃을까. 어쨌든 그의 얄궂은 그 노래가 사방에 울리는데 깨는 듯 조는 듯 겨울은 간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추위가 가시고 말리라. 그가 시같이 읊조리고 노래같이 흘리는 해학과 열창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설교에는 재능이나 학식보다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태풍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태풍(颱風, Typhoon)은 북태평양 서쪽 열대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의 한 종류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17.2m/s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7월~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북태평양 동부와 북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018년 5월 8일 오후 4시 김창인 목사가 충무로 언덕에 세웠다는 충현교회를 강남의 언덕 1만평 위에 세운 충현교회에서 시작됐다. 오후 7시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 날 저녁집회가 진행됐다. 장재덕 목사(총회회록서기) 인도로 진행된 저녁집회 합심기도에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가 ‘총신대학교와 교단 산하 신학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회중을 성령의 감동에 젖게 했다. 이어서 새에덴교회 찬양대가 감동의 울림으로 충현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뒤 하나님의 말씀 사도행전 2:1-4 본문이 봉독됐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소강석 목사가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라’ 제목으로 입을 열었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완전한 태풍’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둘 이상의 작은 태풍이 서로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더 큰 피해를 당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재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하였는데요. 이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립니다. 보통의 태풍은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퍼펙트 스톰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폭풍이에요. 그러니 이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세계 기독교는 이 ‘완전한 태풍’ 같은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들이 세계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재난의 폭풍은 지금 한국교회에 더 불어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고 거룩의 능력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회는 자성하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안일한 자세로 자기 성(castle)만 쌓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장만능주의와 세속화, 교권의 욕망 때문에 도덕적, 영적, 거룩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비난과 공격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재난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의 바람이 우리 총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흐름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금기시했지 않습니까. 완전 비정상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성소수자로 보도를 하며 미화를 시키니까 10년이 지나자 대중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거예요. ...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옆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인격과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뭐라고 충고를 한 줄 아세요. ‘소목사님, 절대로 교회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교회 연합사역 같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어차피 유럽과 미국에서 되어진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에 절대로 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잘 전해야지요. 그러나 그러다가 영국교회나 미국교회는 반기독교 악법을 허용해 버리게 되고 목회생태계를 다 파괴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소득과세 등이 법으로 통과되었다면 한국교회는 재난에 완전히 쓰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3년 전에는 하마터면 국회에서 종교인과세가 아니라 종교소득과세로 통과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부족하지만 제가 그것을 뒤늦게 알고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장들과 함께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 의총을 해서 종교소득과세를 종교인과세로 바꾸게 된 거예요. 만약에 그때 종교소득과세로 입법이 되어버렸다면, 한국교회 모든 선교 활동이나 목회자의 목회 활동이 완전히 위축되고 교회가 기업처럼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종교인 과세가 되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으면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교회가 성역화되어야 하느냐,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하는데요. 교회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교회는 절대로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교회는 종교 고유의 목적인 성경의 가치와 예수님의 진리를 실현하는 사역이 보장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인데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어쩌다가 교회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요소가 나오면 그렇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이런 현상들이 엄청난 재난의 바람으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퍼펙트 스톰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작은 바람이 갑자기 엉키고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재난의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총회도 방심할 수 없어요. 총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재난의 바람 ‘완전한 태풍’이 불어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큰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거룩한 홀리 퍼펙트 스톰(Holy perfect storm)을 일으켜야 해요. 우리가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불은 산불을 놓아 끄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에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을 거룩한 하늘의 바람으로 잠잠케 해 버려야 합니다.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으로 이 땅에 불어오는 반기독교적 재난의 바람을 다 날려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셨지만 유대종교로부터 강력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재난의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존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이 '다락방'으로 오역한 마가의 윗층방(upper room)을 향하여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그 재난의 바람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불어온 홀리 퍼펙트 스톰이에요. 본문에서 말씀하는 ‘급하고 강한 바람’(a rushing mighty wind)은 헬라어로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인데 ‘파괴적인 힘을 가진 몰아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지요. 그런데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같이 임한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데 거기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얼마나 불이 잘 번지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이 마가 웟층방에 임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교회를 태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을 급하고 강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날려 버렸어요.” 소강석 목사는 재난의 바람 ‘퍼펙트 스톰’을 예레미야처럼 예언한 뒤 그 대비책을 이사야처럼 제안했다. “오늘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께서 목장기도회로 모이셨는데, 오늘 이 자리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첫째, 먼저 우리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스바 부흥운동, 수문 앞 광장의 부흥운동, 갈멜산의 부흥운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14에서 말씀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회개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날 주님을 배반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맨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행 2:38). 그리고 그 회개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 3:13-15). 그랬을 때, 마가 다락방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퍼펙트 스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총신의 문제와 교단의 모든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기도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회개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말입니다... 둘째,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거룩한 성령의 임함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행1:14). 그들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기도했겠습니까. 적어도 10일 동안 그들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성령의 임함을 사모하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간구했던 거예요. 그럴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거에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심령이 점점 컬컬하고 메말라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몇 사람만 모여도 서로를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파벌싸움을 하고 쪼그라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이 ‘주홍글씨’라는 소설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자기들 스스로 영적 각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흥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바로 이런 영적 각성과 영적인 갈망이 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2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부흥의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부흥의 바람, 하늘의 폭풍이 불어오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녁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고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해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거룩함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불과하고 눈알 빠진 삼손에 불과해요...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눈알이 빠져 나간 채 맷돌이나 돌리는 한국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해요. 그러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성과 완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분리성은 세상, 죄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성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인 정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아가는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생각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말 양심적이고 경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서로 맞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이 서로 합쳐져서 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순결과 거룩의 영성이 서로 합쳐지고 맞닿아서 거룩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설적인 부흥의 폭풍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했다면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행실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제는 시대와 사회 속으로 불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들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들을 무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와 성령의 역사를 이 세상 영역 속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하나 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저 적폐중의 적폐였던 김정은 위원장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시대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소원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한 번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곳에 하늘의 홀리 퍼펙트 스톰 ’거룩한 완전한 폭풍‘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소강석 목사가 병원과 교회를 오가는 자신에 대한 근황을 전했다. "저는 이제 조금씩 수면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잠드는 사이에 꿈을 꾸어도 퇴원하여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미국에 집회를 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보니 현실은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제 정신력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오로지 교회이고 설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금요일인데, 두 날 밤만 지나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이걸 생각하면 가슴이 또 설레고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좀 더 잠자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불면의 밤과 숙면의 밤사이에 있는 제가 온전한 숙면의 밤을 맞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틈에 오래오래 쉬어 있다가 다시 비상하고 솟구치고 웅비하듯이 다시 한번 제 사역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4 2026-07-08
-
[더굳뉴스] 송태근 설교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천둥번개
시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현재이다. 두 번의 인생은 없다. 오늘이 우리 목사장로의 가장 젊은 날이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1922년 11월 18일)는 말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천둥번개는 우리를 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기원이기도 하다. 빛은 초속 약 30만km로 이동하지만, 소리는 초속 약 340m로 매우 느리다. 이 때문에 번쩍이는 빛(천둥빛)을 먼저 보고 얼마 뒤에 천둥소리를 듣게 된다. 가장 건강한 정신은 어떤 좋은 일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어떤 나쁜 일에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가만히 관찰한 후 다음으로 넘어갈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굉장한 일 같은 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소한 일상조차 실은 굉장한 것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닌가.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2026년 5월 11일 76년 살아서 송태근 목사의 그런 설교를 듣는다는 게 하나님의 천둥번개 같은 은혜와 축복처럼 느껴졌다.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5월 11일 오후 2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에서 개회했다.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1964년 첫 번째 기도회를 시작으로 60년 넘게 교단의 영적 동력이 돼왔다. 전국에서 모인 목사와 장로들은 소속 교회와 교단, 한국교회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무릎으로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구했다. 이번 제63회 기도회도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행 2:42)라는 주제 성구 아래 2천 명이 넘는 목사와 장로들이 참석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영성을 다졌다. 눈물과 통곡으로 부흥의 은혜를 받으라 첫째 날 저녁 집회 송태근 목사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라(삼상 1:15)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무슨 일로 이렇게 성소에 나와서 슬피 깊이 웁니까. ‘얘, 애. 너 낮술 했냐. 뭘 그리 중얼거리니. 하나님 앞에서. 술 취한 줄 알겠다. 주정하는 줄 알겠다.’ 여러분 영적인 지도자가 한 영혼의 깊은 고통을 모르면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인데 한 영혼의 깊은 고통을 모르면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인데 얼마나 성도들의 깊은 슬픔, 깊은 고통을 알고 있는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혹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엘리 제사장은 지나다가 성소 안을 들여다보고 아주 슬피 우는 한나가 술 먹고 주정하는 줄 알고 말합니다. ‘얘, 얘, 끊어라. 지금 대낮인데. 이게 웬일이냐.’ 그러자 한나가 꺼낸 대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아니 나는 마음이 슬픈 자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과 뭘 통해요.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심정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의 해외 석학들의 주석, 주해 다 찾아봐도 이 심정이라는 히브리어가 갖는 그 어휘를 정확하게 해석해 낸 주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 사람은 알아요. ‘심정이 통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 맘 니가 알고 니 맘 내가 알았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명징하게 해석하기는 서구 사람들의 사고 구조 가지고는 어려워요. 저는 오늘 우리 목사님들과 사랑하는 장로님들! 이 밤에 정말 우리가 기도하고자 모인 만큼 한나처럼 하나님과 심정을 통하는 기도의 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우리 전부 아멘은 하셨는데 그러면 심정을 통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제 고향이 경북 영주입니다. 영주 아세요. (회중 네.) 아주 골짜기입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어릴 적 고향을 오가다 보면 굴들이 많아요. 한번은 그 굴 뚫는 것을 오가다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측량을 해 뚫다가 가운데쯤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고 저 굴 끝에서 햇빛이 부서져 들어오면서 펑 뚫어지면 놀랍고도 어마어마한 광경이 출현합니다. 뚫어집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한나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굴이 뚫리듯 하나님과 그런 심정이 통하는 전율이 일어난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가 목회를 하지만, 수 없이 기도하지만, 정말 언제 한번 그렇게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자, 그런데 이 이야기가 놀랍게도 바로 ‘사무엘상’ 그리고 ‘사무엘하’라는 책이 있죠. 원래는 한 권의 책입니다. 학자들이 편의상 그렇게 구분해 놓은 것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무엘서’라는 책은 상당히 큰 책이에요. 그런데 그 큰 책의 첫머리에 왜 하필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여인의 깊은 슬픈 이야기를 비통한 이야기를 성경 기자는 얹어놓았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저 단순하게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기도한 끝에 아이를 응답받았다는 불임의 여인의 간절한 기도가 아이의 출생으로 응답받았다는 그런 이야기일까요. 이 큰 책 첫머리에 이 한나의 불임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 한나의 붙임이 뭘 얘기하는지 그리고 한나의 그 슬픔의 기도가 이 시대의 영적인 리더들에게 뭘 말하고 싶은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 진의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 수고스럽지만, 성경 자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절부터 한 절씩 보도록 합시다. (방송실을 향해) 1절을 좀 띄워주실까요. (성경 자막이 강대상 벽에 뜬다. 설교자가 같이 읽자며 '시작'을 외치자 회중이 읽는다.) (회중 낭독)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1절에 엘가나 정도 외에는 다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낯선 이름들로 이루어진 족보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겠죠. 이 족보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이듯이 역대기라는 모든 족보를 구속사 적으로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그 역대기에 보면 6장에 이런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이 족보의 세 가지를 역대기가 천명합니다. 첫째, 레위 지파의 족보입니다. 당연히 무슨 직책을 평생 살았겠습니까.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을 세울 때는 그중에서도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성호를 성전에서 평생 노래하는 직책을 맡은 찬송하는 가문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성호를 예배 때마다 찬양대원처럼 노래하는 지파입니다. 이건 신앙의 명문가 중의 명문가입니다. 할아버지가 순교자시요 아들이 목사요 또 그 아들도 지금 신대원에서 그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집안입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성경은 문맥과 문맥에서 매우 날카롭고도 슬픈 비결을 남겨놓습니다. 2절을 봅시다. 시작! (회중 낭독)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리얼하게 소개됩니다. 목사에게 세컨드가 있다는 말입니다. (회중 웃음) 장로에게 첩이 있었습니다. 심각한 얘기입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감이 오죠. 그렇습니까.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자 여러분. 문제는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대라는 겁니다. 이 사무엘서가 쓰여진 배경은 정확히 사사시대입니다. 여러분 사사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자 물어보겠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누가 없다고 합니까. (회중 웃음)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셨던 적이 있나요. 대답하세요. 있어요? (회중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그렇게 기록을 남겼을까요. 언어 플레이입니다. 우리 히브리어 배울 때 워드 플레이(word play) 배웠죠. 하나님이 왕이셨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왕으로 공경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게 사사시대입니다. 그 사사시대 배경 속에 얹어진 이 사무엘서 1장을 보면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성호를 멋지게 정교하게 노래하는 찬양대원의 집안인데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구약을 가르쳐주신 김희보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은퇴할 때쯤 되신 분들은 그분한테 배우신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사무엘서 강의를 하시면서 이 이야기를 굉장히 아프게 하셨습니다. 성직자에게 이런 타락의 열매가 있는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던 시대였어요. 그에게 두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 순서를 보세요. 한 사람의 이름이 누구입니까. (회중) 한나.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누구입니까. (회중) 브닌나. 자 순서를 잘 보세요.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옵니까. 첫째 부인 이름이 먼저 나왔고 두 번째 부인 이름이 그 다음에 나왔어요. 그런데 한 절이 바뀌기도 전에 이 서열이 바뀝니다. (회중 낭독)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바뀌었어요? 안 바뀌었어요? 순서가 바뀌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 순서가 무엇을 기준으로 바뀌었습니까. 자식이 있고 없고 기준으로 집안 서열이 바뀌었습니다. 이걸 저희를 가르쳐주신 김희보 박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열매가 있어야 할 여인에게는 열매가 없고 열매를 맺지 말아야 될 여인에게는 열매가 맺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성직자들의 고발을 넘어서 백성들의 타락을 고발하는 문장들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될 삶의 자리에는 열매가 없어요. 열매가 없어야 될 삶의 자리에는 주렁주렁 탐욕의 열매가 있어요. 욕망의 열매가 있어요.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여러분, 이 짧은 구절에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히브리어를 공부하다 보면 성경이 병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병치 구조라는 말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신학교 다닐 때 다 배운 내용인데 똑같은 패턴이 반복됨으로써 메시지를 담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병치 구조라는 것은 똑같은 패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그게 눈에 잘 안 들어와요. 즉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음 절을 올려주십시오. 시작. (회중 낭독)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오죠. 자, 복습합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고. 엘리에게는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있고. 이제 다음에 뭐가 나와야 구조가 맞을까요. 여기는 뭐가 없어야 이 구조가 맞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성경은 괄호치기를 해놓았습니다. 꽁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이 괄호 치기를 해놓고 침묵을 해버린 여기에 누가 뭐가 없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런데 보통 학교에서 어릴 적에 괄호 치기를 하고 괄호 넣기를 하죠. 쓰잘 데 없는 것을 괄호 치기를 합니까. 아니면 중요한 걸 빈칸으로 남깁니까. 다음 절 4절을 봅시다. 시작! (회중 낭독)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그 다음 절은 제가 읽겠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한나에게는 얼마를 주었습니까. ‘갑절을 주니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자 본문을 그대로 두시고 제가 한 가지 여쭤볼게요. 어쨌거나 엘가나는 그래도 한나를 더 사랑했을까요 아니면 브닌나를 더 사랑했을까요. (회중 대답) 한나. 어떻게 아셨어요. (회중 대답) 갑절을 주니. 그렇죠.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회중 웃음) 갑절로 준 것을 보아서 틀림없이 엘가나는 누구를 더 사랑한 게 맞습니까. (회중 대답) 한나요. 그렇죠. 한나를 더 사랑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한나의 저 깊은 슬픔의 정체를 위로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저와 여러분이 밝혀야 될 것은 한나의 슬픔의 정체입니다. 애가 없어서 슬픈 거 아니야. 그럴까요.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 심연 밑에 즉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위로할 수 없었던 한나의 그 슬픔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아이가 없어서일까요. 성경을 한번 보십시다. 방금 읽으신 말씀을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거봐요.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까 슬퍼한 게 아니겠어요. 일단 지나갑시다. 다음 절 다 같이 시작. (회중 낭독)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임신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여기 몇 번 나옵니까. (회중 대답) 두 번. 강조법입니다. 두 번 나온다는 이 말은 한나가 아이가 없어 슬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나가 본인이 아이가 없어 너무 괴로워 너무 슬퍼 이렇게 언급된 대목이 하나도 없어요. 해석이 그렇게 한 겁니다. 그 해석 전에 성경은 뭐라고 말씀할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수천 년 전 언어로 기록된, 관념으로 기록된, 통념으로 기록된 성경을 오늘 시대의 이해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천 년 전 히브리인들은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아는 게 하나 있었어요. 그 시대 개념입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이를 갖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거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디스커넥션(disconnection), 하나님과 끊어진 존재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나를 격분시킬 수 있었던 동기가 가능했던 것이 그런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나는 내가 아이가 없어서라는 기록을 남긴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조가 높아진다) 그러면 한나의 종말은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위로가 안 되는 그 슬픔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불임의 기간이 길어져서 첩마저도 한나를 공격합니다. 아니 저 여자는 뭔가 문제가 있고 죄가 있어서 하나님 징계를 받고있는 중일 거야.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기가 없네. 하나님이 버리셨나. 자, 아기의 문제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까. (회중, 하나님과의 문제) 네. 그게 본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나는 성소에 들어가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저 너무 괴로워요. 너무 힘들어요. 저 정말 버리시는 겁니까. 하나님! 저 외면하셨나요.’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성소를 들여다보고 말합니다. ‘술 끊어라. 때가 어느 때인데 낮술 먹고 주정하느냐.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합니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뭐를 통했다고요. (회중 대답)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심정을 통했다는 건 정확하게 정의를 하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마음을 누가 알았어요. 한나가 알았어요. 당연히 하나님은 누구의 마음을 아셨나요. (회중 대답) 한나요. 뭐 하다가요. 기도하다가. 와! 그런 기도 한번 안 해보실래요. 하늘이 열려요. 우리가 밀어 올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잡아채시는 기도. (회중 아멘)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과 고통을 아시는 기도. (회중 숙연한 아멘)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결국, 우리는 한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죠. 그래서 지금부터 한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9절 띄워주세요. 다 같이 시작. (회중 봉독)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절은 제가 읽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절 다 같이 시작. (회중 봉독)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여러분 혹시 한나의 기도문 읽으시다가 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 없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 한나는 무슨 결핍을 갖고 있습니까. 불임의 결핍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면’이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까지는 이상할 게 없어요. 성경을 보세요. ‘아들을 주시면’ 그런데 그다음의 기도가 이상해요.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뭘로 드리겠다는 겁니까. 나실인,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는 겁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드리겠다는 얘기에요. 이상하잖아요. 아이가 없어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통곡하고 가슴앓이를 했는데. 아들 하나 있으면 게임 끝나는데 그렇게 애원하고 통곡하면서 기도했던 그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 쉬운 말로 내놓을 아들을 뭐하러 그리 간구했노. 도로 내놓을 아들을. 여기에는 뭐가 있을까요. 지금부터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이 본문을 그림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2차원으로 읽었다면 4차원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잊으셨나요. 저를 외면하시는 건가요. 저는 하나님과의 단절이 너무 아파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는데.’ ‘한나야 아프지. 나도 니 맘하고 똑같애. 나도 아파.’ ‘하나님 뭐가 부족해서 아파요.’ ‘얘 한나야. 너도 아들 하나 없으니까 기가 막히지. 가슴 아프지. 내가 그래.’ ‘아니 뭐가 부족해서요.’ ‘이 말씀이 끊어진 깜깜한 세상에 내 심정 하나 옳게 전달할 말씀의 사람이 없단다.’ ‘어머나. 그러세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려고 내게 불임의 고통을 주셨군요. 하나님 그 아들 주세요.’ 어떻게 하겠다고요. 하나님 앞에 내놓겠다는 겁니다. 이게 애 낳지 못하던 여자의 기도입니까. 애 응답받은 사건입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한 사람의 하나님과 심정을 통한 눈물의 기도가 부흥을 가져와요. (회중 아멘) 우리는 그 기도 속에서 도대체 무얼 기도해야 할까요. 저는 한 편의 설교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말씀이 깜깜한 사사 시대에 한 여인의 눈물과 통곡의 기도를 통해서 누구를 그 시대에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말씀이 몰락해 가던 이스라엘에 꿈결처럼 일어나는데 지엔피 4만 불로 일어납니까. 무장된 군사력으로 일어납니까. 아니예요.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 앞에서 자라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몰락해 가던 이스라엘을 꿈결처럼 일으켰습니다. (회중 아멘) 사실 우리는 뭘 기도해야 될지도 잘 몰라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이 밤에 오 성령님! 우리의 기도를 헤집어주셔서 정말 말씀이 덮인 이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들이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회중 아멘) 사람의 말재간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군중을 몰고 다니는 그 군중 몰이가 시대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눈물로 통곡할 수 있는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회중 아멘) 오늘 이 밤에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는 그런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우렁찬 박수) 목사장로회기도회 첫날 저녁 예배 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하나님과 가련한 여인 한나의 심정을 전하는 송태근 목사의 천둥번개같은 말씀 외침에...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26-32 2026-06-12
-
[더굳뉴스] 박형용 박사의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그것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전의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다루고 해방 이후의 한국교회의 성장과 문제점에 관해서는 장로교 중심적으로 다루고 앞으로 나아갈 좌표를 성찰해보려 한다. 1.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중심적 기초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그 이유는 최초의 체류 선교사인 의사 알렌(Horace N. Allen)박사가 1884년 9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했고, 이틀 후 1884년 9월 22일에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시점은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Rev. Horace G.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Rev. Henry G. Appenzeller)가 도착한 1885년이다. 두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훗날 감리교인들이나 혹은 장로교인들이 자기 교파가 먼저 도착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해안으로 뛰어 내렸다는 이야기는 매력 만점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제일 먼저 해안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펜젤러 부인이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중국(Cheefoo, China)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 온 요한 네비우스(Rev. John Nevius)의 선교활동 원리를 수용하여 한국에서도 적용했다. 네비우스 원리는 일반적으로 “3자 원리”(three self principles)로 알려져 왔다. 그것들은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 그리고 “자립”(self-support)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활동의 방법을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으로 수용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주로 우리는 네비우스 방법을 수용하도록 인도 받았다”고 전한다. 네비우스(Nevius)선교정책은 사실상 성경공부가 강조된 정책이었다. “진정한 핵심은 성경공부 제도에 있었다. 이 제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으며 성경공부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곽안련은 네비우스 방법의 성공 비결은 자전 자치 자립이상으로 교회 사역의 각 분야에서 성경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경 위에, 단순한 성경 본문 위에 건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경에 권위를 부여했다. 성경은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확실한 기준이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를 섬겼던 선교사들이 그 당시 한국교회의 상황을 평가한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성경중심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성경은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분명하다... 성경공부와 성경공부 반은 한국교회의 발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들 속에서 신앙과 지식의 기초를 놓아 왔다”(S. A. Moffett, Bible Society Record of ABS, 1916. 11., p.216). “성경은 한국에서 제일 공부가 많이 되는 책이다. 교회생활의 매우 뚜렷한 특징은 성경공부에 있다. 성경공부 반은 겨울에 열흘에서 2주일 동안 중심지에서 열린다. 겨울마다 족히 12만 5천명의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목적은 단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배운 것을 출신 교회에 전달해 주기 위한 것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17, p.32).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관찰한 사람들의 확신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30, p.104).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강조는 그들의 신앙의 삶의 전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선교 보고(북장로교 선교회 25주년 보고서, p. 17)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 자체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처럼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요소로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사역에서는 이 성경이 유달리 독특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한국교회의 능력, 영성, 기도에 대한 큰 믿음, 후한 기부정신은, 전교회가 성경 지식에 깊이 젖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성장해 갔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한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적인 성장과 함께 숫자적인 성장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2.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한 몇 가지 특이한 현상 (1) 천년기 전 재림설과 한국교회 성장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국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한반도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계속적인 충돌의 현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에 합병된 후 36년간 계속적인 억압과 핍박 속에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도 1950-53년 사이 한국동란과 계속되는 군사 구테타 및 군부 통치는 한국 내에서의 고난과 핍박이 계속되었음을 증거 한다. 새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정부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신문과 방송을 철저하게 조종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한의 정치적 민주화는 신문 방송에 상응하는 자유를 가져다주었다”(The New Encyclopaedia of Britannica, p.960)라고 기록한다. 대략적인 역사적 사건만 열거해도 복음의 전파가 고난의 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과거 역사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온 이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복음 전파와 한국교회에 시련의 과정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한국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적어도 한국의 토양은 복음 전파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김영재 교수는 복음이 전파된 이후의 한국의 상황을 천년왕국 신앙과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천년왕국 신앙과 고난을 견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당시부터 6.25동란을 겪을 때까지 줄곧 불안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살아왔으며, 핍박 하에서와 고난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는 백성들은 쉽게 내세 지향적인 종말신앙을 복음으로 받아 들였다”(김영재, 「한국기독교의 재인식」 p.240).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전천년설)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특히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는 옥고를 이기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위로와 활력을 불어 넣어 준 신앙이 되었다”(Ibid). (2) 교회 분열과 한국교회 성장 김의환 박사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사」의 한 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분열”을 다룬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405-458). 김의환 박사는 I. 한국교회의 부흥 요인을 1. 외적인 요인들과 2. 교회의 진취적 정신으로 나누고, 교회의 진취적 정신에서 (1) 대부흥운동 (2) 전도 집회들 (3) 네비우스 선교방법 그리고 (4) 군복음화 계획을 열거한다. 그리고 II. 분열의 원인으로서 신학 논쟁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어떻게 분열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 장로교 분열은 일본의 한국 점령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결국 교회를 분열하는데 일조를 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을 당시 1937년에 한국 기독교인들을 기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1938년에 정부는 모든 교회가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신사에 참배해야한다고 명령했다”(Cf.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January 1939, p.10).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강요를 그대로 순응할리 없다. 결국 신학교가 둘이 되고 교단이 나누이게 된다. 한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의 중심인 평양 신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8년 9월 30일 자진해서 무기휴학 선언을 했고, 1939년 3월부터 조직된 새로운 신학교 설립 기성위원회는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조선신학교를 서울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는 서울 승동교회 하층을 사용했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 444). 조선 신학교가 시작될 당시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라는 이유로 총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945년 남쪽과 북쪽이 38선으로 나누인 이후 조선신학교가 남쪽 장로교 총회에 속한 유일한 신학교가 되었다. 조선신학교는 1946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General Assembly Theological Seminary)로 인준을 받았다(G. T. Brown, Mission to Korea, Board of World Missions, Presbyterian Church, U.S, 1962, p.177). 하지만 조선신학교의 신학적 입장은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남쪽 장로교회의 좌경화를 지켜본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핍박을 받은 옥중 성도들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망명 갔던 보수신학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보수 신학교가 1947년 10월에 부산에서 박형룡박사를 교장으로 모시고 문을 열었다. 이 신학교가 바로 고려신학교였다. 그런데 고려신학교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와 교장 박형룡 박사 사이에 이견이 생기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울 전략으로 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한상동 목사는 과거 평양신학교가 평양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총회의 유일한 신학교로 역할을 감당한 것처럼 고려신학교가 부산에 있어도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고려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박형룡 박사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1948년 6월 옛 평양신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학교로 장로회신학교를 서울에 설립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는 1949년 4월 19일 서울에서 모인 제 35회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 받았다. 이로써 한 총회 내에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가 총회 직영신학교로 존재하게 되었다. 총회의 주도권을 찾은 보수 쪽 인사들이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합동을 제안하였고 조선신학교 쪽 인사들은 합동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알고 신학교 합동을 반대 하였다. 한국동란이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하였다. 6.25 한국동란 직후 1951년 5월 26일 부산 중앙교회에서 제 36회 속개 총회가 모였을 때 총회가 직영 신학교로 인정한 양 신학교를 취소하고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안건의 가결을 보았다. 그래서 총회의 결의대로 총회신학교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교장 감부열 선교사외 교수 박형룡 명신홍 권세열 김치선 한경직 제씨를 모시고 개교하기에 이른다. 총회 내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조선신학교 측 인사들은 1953년 6월 10일 서울 한국신학대학(조선신학교 후신) 강당에 모여 “법통 총회”란 이름하에 제 38회 총회를 속개한 다음 그 다음 해부터 “대한기독교장로회”란 새로운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였다(김양선,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 p. 227). 이렇게 하여 1947년 10월에 창립된 교려신학교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개교한 총회신학교와 1953년 6월 10일 시작한 한국신학대학으로 나누어져 세 개의 장로교 교단이 형성되게 되었다. 자연히 한국의 장로교회의 교단은 고려 측 총회 측 기장 측으로 나누어져 존재하게 된다. 그 이후 한국장로교회는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 44회 총회로 모여 WCC 문제로 정회되었는데 WC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회되는 그날 1959년 9월 28일 서울로 옮겨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고, WCC를 반대한 사람들은 1959년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 452-457). 이로써 한국장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혹은 승동측)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혹은 연동측)으로 둘로 나누이게 되었다. 그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1979년 주류측, 비주류측, 중립측으로 나누어졌고 계속해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장로교만 100여 교단이 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아픔을 통해 숫자적으로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을 사용해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3) 십일조 강조와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십일조 헌금의 강조를 위해 그 근거를 구약에서 찾는다. 특히 목회자들은 헌금 강조를 위해 말라기를 인용하곤 한다. 인용된 성구는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등이다. 말라기 3:8의 내용은 헌금을 강요할 때 사용되고, 말라기 3:10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와 같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의 강조는 교회 안에 이상한 형태의 헌금제도를 낳게 했다. 어떤 교회는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 십일조”(prepaid tithe)를 강조하기도 한다. 선 십일조란 십일조의 금액에 따라 하나님이 수입을 보장해 주신다는 생각으로 수입이 있기도 전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노름을 하는 셈이다. 하나님이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라 명하셨으니 먼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 십일조의 십 배를 수입으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 헌금과 다른 헌금이 한국교회 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근래에는 어떤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상 십일조의 강조는 1950년대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말은 일본의 36년 통치기간에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6.25동란)을 겪으면서 교회 재정은 극도로 피폐되어졌고 재정확충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한국동란은 한국민족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따라서 고통 속에 처한 한국교회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인근 산 속에는 이곳저곳에 불법 기도원이 설립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나라의 고난을 기도로 분출하게 되었다. (4) 교회당 건축과 성전의식 예배당을 구약성전으로 생각하는 관습은 예배당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목사들은 강대상이 있는 곳을 제단(altar)으로 생각하고 안수 받은 목사이외의 다른 성도들은 올라갈 수 없도록 한다. 특히 여자 성도들은 강대상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관습이 시행되는 교회에서는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릴 때 나이 많은 할머니 회장님은 아래 강단에서 사회를 하고 아들정도 되는 젊은 청년 목사는 윗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 이런 관습이 여인은 제단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구약 교훈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교회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예배당 건축에 자극제 역할을 했고 많은 예배당의 건축은 교인 수를 증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 세계 10대 교회 중의 몇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역사적 진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통해서도 교회를 인도해 주셨음을 증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그 잘못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참조 롬 3:5-8)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한국교회가 지키고 취할 것 고등종교의 타락원인을 고찰하면 첫째 성직자의 급증 둘째 종교 기관수의 급증 셋째 기복주의 성향 그리고 넷째 교회 및 교회 기관들이 권익 집단으로 전환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후기 기독교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도 후기 기독교 사회로 들어가는 시기가 곧 다가 올 것이다. (1)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성경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백성을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의 원리에 따르기보다 편의와 실리에 따라 말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나에게 제물은 바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신 상황과 비슷하다고 사료된다. 의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한국교회에 현재 팽배한 것은 “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을 한다.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성경의 원리보다는 교회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성경원리에 맞지 않아도 좋고 심지어 이단적인 방법 일지라도 사용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교에서도 “역사적 비평적 해석방법”(The Historical Critical Method)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히 인간의 합리를 적용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요즈음 여러 가지 명칭으로 등장한 해석 방법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접근보다는 인간 이성 중심적인 접근이 많다.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 갈 때 소망이 있다. (2) 순교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와 같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1938년 2월에 아직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버티는 장로교회를 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일제의 압력에 밀려 1938년 2월부터 9월 총회가 열리기까지 전국의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말았다(김양선, 한국 기독교사 연구, p. 186 이하).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남침으로 인한 공산당 점령기간에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순교한 성도들의 삶은 자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을 바쳐 지킨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3)행사나 프로그램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100주년 기념으로 2007년 7월 8일 상암 구장에서 “2007년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고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외쳤다. “한국교회는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구제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 죄와 회개 거룩함은 할 수 있으면 언급을 피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설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갔습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라 기도해야 합니다”(아름다운 동행 제16호). 옥목사의 이 설교 말씀은 한국 교회 목사들을 대표해서 한 말씀이요 한국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할 내용이다. 박윤선 목사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죄인 됨을 대중 앞에서 고백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회개 운동을 통해 부흥운동이 확산된 것처럼 회개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몰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성장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한국교회의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로 유명하고, 금요일 철야기도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철야기도를 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9시나 10시에 모여 12시 전으로 모든 기도회를 마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수많은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그런 기도처소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미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드시 기도처소에 가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때나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좋은 기도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니 이를 계속 전승시켜야 한다. 4. 한국교회가 버리고 개선할 것 우리는 “나는 나의 싸움에 하나님을 끌어 들이는 욕구중심의 신앙인인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싸움에 나를 헌신하는 소명 중심의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한국교회가 교정해야할 몇 가지를 함께 묵상하도록 한다. (1)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영감의 방법으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교회가 사용할 정경 66권을 주셨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사용할 공적이고 객관적인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또 계속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객관적 계시에 버금가는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존재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감정에 많이 좌우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감정도 객관적 계시에 조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 경험을 중시 할 때 결국 그 결과는 내세 지향적이 되며 윤리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2) 기복신앙의 조장으로 축복받기 위해 헌금하는 경향이 한국교회 내에 많다.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뜻에서 드리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헌금 경향은 축복을 받았음으로 감사해서 바치기보다는 축복을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이다. (3) 한국 교회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예배는 전통적으로 말씀중심의 예배였다. 성도들의 관심이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부터 자신들의 몸 운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운동으로 오순절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박수치는 것 손을 오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 춤을 추는 것 등 육체적인 표현이 빈번하게 되었고,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칠레의 오순절 신자들의 경우) 등의 음성적인 표현도 곁들여 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이재범, “현대 오순절 교회 예배의 특징”, 『성경과 신학』 6권, p. 103).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목사 혼자서 흥행하는 식의 예배는 바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순절식의 예배처럼 성도들이 육체적 표현과 음성적 표현으로 예배에 참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순절 예배의 경우 인간 감정의 촉발을 조장하여 그 자체를 마치 신과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가는 황홀경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예배자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4) 건전한 교회를 정착시켜야 한다.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대형교회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처신하고 다른 교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로 대형교회들이 자만에 빠져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대형교회들 중 장로교회들이 한국 명칭은 장로교회로 사용하면서 영어표기로는 “무슨 공동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명칭을 사용하는 목사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5) 목사의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종교개혁 사상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자숭배를 반대하고 교황주의를 반대하며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교권주의도 반대했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를 집행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다(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 p. 287). (6) 예배드릴 때 설교 본문을 교독하는 관습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근래에 한국 교회의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목사가 설교 본문을 읽을 때 회중의 참여를 의식하여 교독이나 합독할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봉독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봉독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성경봉독은 설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다. 예배드릴 때 시편을 교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설교의 본문을 교독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봉독은 예배 인도자가 낭독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The Book of Church Order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Chapter 50, Verse 1). (7)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는 일과 성찬 집례 시 흰 장갑 끼는 일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어떤 한국교회는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목사와 장로가 모두 가운을 입고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상 매체를 통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는 것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으면 목사와 성도들을 구별하고 목사를 특별 계층으로 인식하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가톨릭의 사제들은 가운을 입으므로 일반 성도들과 자신들을 구별시킨다. 그리고 목사가 성찬을 집례 할 때 흰 장갑을 끼고 집례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예식을 성스럽게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성찬식이 주일 예배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예배가 성찬식보다는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영재, 한국 기독교 재인식, p. 289). 성찬식을 예배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면 중세 교회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성만찬을 제정해 주신 장면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눅 22:13-23). 예수님이 첫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장갑을 끼셨다든지 아니면 그 당시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성만찬 집례를 하셨는지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보통 식사하시는 방법으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다. 목사가 설교할 때는 가운을 입지 않고 성찬을 집례 할 때는 가운을 입으면 성도들이 설교보다 성찬을 더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나 성찬 모두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찬은 구원받은 가족들만이 참여하는 가족 식사이지만 설교는 전도의 역할까지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8) 교회 내에 잔존하는 여러 가지 잘못된 행태를 변혁시켜야 한다. ① 성경은 신약교회의 제도 중에 하나로 제비뽑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교단은 총회장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선거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성경을 경시하는 현상이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교훈을 에누리하고 있는 것이다. ② 무자격 신학교의 난맥상을 개선해야 한다. 일 년에 두 차례 학기 초가 되면 기독교 신문에 신학생 모집 광고가 나온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어떤 신학교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광고도 하지 않고 아름아름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도 많다. 이와 같은 신학교는 어떤 한 개인이 주관하거나 어떤 한 교회가 주관하면서 자격 없는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③ 후임 목회자를 선정하는데 부자 세습을 지양해야 한다. 근래에 한국교회는 1세대 목사가 은퇴하고 후임 목회자를 모시는 과정에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의 의사와는 다르게 거의 강제로 담임목사로 세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할 때 전체 교인들이 아들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겠다고 하여 공동의회를 거쳐 아들 목사를 담임 목사로 모시는 것은 크게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의 형편을 감안할 때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향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되리라 사료된다. ④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직분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들은 봉사의 직분들이다. 교회의 직분들은 벼슬자리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교회의 직분들이 섬기는 자리요, 봉사의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면서도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막 10:45). 나가는 말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경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야 한다. 이것이 130년을 헤쳐 온 우리의 나아갈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만큼 성장하고 쓰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해 성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겸손, 겸손, 또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연약성을 개선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형용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2017-02-13
G.CULTURE
-
[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한 젊은 작가는 한 신문 칼럼에서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그렇듯 대구 대명교회를 우뚝 세운 원숙(圓熟)한 장창수 목사는 모든 문제의 답과 해결은 하나님의 질문에 있다는 글을 썼다. 삶과 신앙의 자리를 빛내는 하나님의 열여섯 가지 질문! 모든 문제의 답은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때 우리 인생에 찾아온 문제의 답이 풀린다.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질문들에 유연하기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며 번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등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부터, 갑작스런 사고나 죽음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끝없이 몰아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넉다운되기 일쑤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고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당황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왔고, 똑 부러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일까? 왜 답을 찾지 못하는가?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일에 소명을 둔 목회자요, 설교가다. 그는 변질되지 않는 원초적 복음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그의 설교 속에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긴박한 순간 하나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 관계를 지속하는 ‘회복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2. 견고한 삶을 위한 ‘믿음의 질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6-11). 3.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정체성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32). 4. 본질을 붙드는 ‘사명의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1-9). 질문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5. 절망을 이겨 내는 ‘희망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19). 6. 간절함을 이루는 ‘소망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15). 7. 은혜를 배우는 ‘용서의 질문’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1). 8. 참된 고백을 요구하는 ‘결단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7). 질문하는 이를 알면 답이 보인다 9. 신실한 마음을 묻는 ‘사랑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20). 10.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는 ‘고난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막 4:35-41). 11.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동행의 질문’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1-18). 12. 능력의 주를 의지하는 ‘기적의 질문’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1-11).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숨겨져 있다 13.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약속의 질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창 18:9-15, 21:5-7). 14. 근심을 안심으로 채우는 ‘돌봄의 질문’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 12:22-32). 15. 무모함을 쓸모 있게 하는 ‘확신의 질문’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눅 5:17-26). 16. 성숙한 믿음을 이루는 ‘긍휼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0-37). 하나님은 인생들이 실패하고 힘들고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찾아오신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세상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우리 기독교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거나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신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은혜를 주기 위한 첫 단초를 질문으로 시작하셨다. 신학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왜 질문을 하시는가’였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왜 문제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며 힘들게 하시는가’였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위로 그리고 그분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과 재난으로 충격과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묵상 중에 인간의 절망의 현장에 나타나 던지신 주님의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시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책망과 경고의 의미가 아니다.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너를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향해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신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앞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삶의 문제 자체를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져 주시고, 문제 있는 나를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셨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 당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이다. 신앙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신앙’과 ‘방주를 짓는 신앙’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산을 오르는 신앙이란, 신앙생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 수준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물에 잠겼듯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맨땅에 방주를 지어도 비가 오면 방주는 떠오르듯이, 고난 가운데서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 것이다. 우리의 형편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라느냐’고 물으신다. 우리가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길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켜보시며,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때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장신구로 전락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은 ‘네가 믿고, 네가 만나고, 네가 체험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인생의 돌파구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교회에 수십 년을 출석했다 해도 결코 구원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 인간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간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신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며 먼저 찾아와 주신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신의 어려움과 형편을 모두 아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심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삶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게 된다. 2026-06-27
-
[더굳뉴스] 법 앞에 선 한국교회
2023-07-08
-
[더굳뉴스] 유지영 디자이너 _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패션쇼 참가
4월 30일 메이퀸 엘리아나호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PGKFW 2026 S/S FRANKERS GLOBAL FASHION WEEK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 HAUTE COUTURE FASHION SHOW 유지영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두 사물, ‘수세미’와 ‘항아리’에서 시작된다. 수세미는 그릇을 닦는 가장 낮은 자리의 도구이고, 항아리는 비우고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두 사물이 지닌 ‘비움’과 ‘반복’의 철학을 패션의 언어로 끌어올린다. 원단은 해체되어 수세미의 섬유적 질감으로 재구성되고, 패턴은 항아리의 둥근 곡선으로 완성된다. 닦고, 덜어내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형태를 완성해가는 시간의 축적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사물은 이 무대 위에서 가장 높은 형태로 올라서며 화려한 빛을 받는다. 이번 작업은 보잘것없던 사물이 하나의 상징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패션적 선언이다. 이 무대는 다가오는 7월 파리에서 펼쳐질 한국적 미학의 확장을 위한 시작이다. 유지영 디자이너 동양의 샤넬, 진정한 오뜨꾸뛰르 유지영 디자이너는 "패션은 옷이 아니라, 한시대의 품격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그녀는 수십 명의 시니어 모델들을 스타일링 하며 어떻게 하면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무대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들이 자기 삶을 발견하고 아름답게 만개하기를 바란다. 4월 30일부터 메이퀸 엘리아나에서 시작되는 패션쇼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MUSEE GUIMET, PARIS)에서 마무리된다. 2026-04-13
-
[더굳뉴스] 제이액터스,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 비액티브 홍보모델 공개 오디션 개최
- 외모가 아닌 ‘스토리와 존재감’ 중심의 모델 선발 - 일상 속 통증 케어를 위한 신개념 라이프 스타일 크림- 바르는 순간, 휴식과 회복을 동시에 경험 제이액터스(J-ACTORS)가 새로운 개념의 뷰티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비액티브 뷰티 모델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다. 이번 오디션은 기존의 정형화된 외모 중심 모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한 ‘비액티브(Non-Active) 뷰티’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오디션에서 합격한 모델은 나노테크 기반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와 후원 계약을 맺고 모델로 활동을 한다. 이번 후원 계약에 따라 모델들은 나오벨르의 기능성 스포츠·관절 케어 제품인 ‘비액티브(B:Activ)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의 공식 홍보모델로 활동한다. 비액티브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은 나오벨르가 보유한 초미세 나노 리포좀 전달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모델들은 직접 제품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의 효능과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제품은 단순 기능성 크림을 넘어 콘텐츠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확장 전략의 핵심 아이템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시장 공략 ● 라이브 커머스 기반 판매 확대 ● 브랜드 모델과 연계한 콘텐츠 마케팅 강화 를 통해 빠른 시장 확장이 기대된다. 나오벨르 관계자는 “통증 관리는 더 이상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며 “비액티브 통증 마사지크림은 ‘관리하지 않아도 관리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2026-04-04
-
[더굳뉴스] 제이엑터스 런웨이 쇼 _글로벌 탑 모델쇼
2026-03-24
G.QT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6-07-19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6-07-05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6-06-28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6-06-21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사무엘하2Samuel
사무엘하2Samuel의 사건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사무엘은 이미 죽었다. 사무엘하의 내용은 다윗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주전 1010년부터 970년경까지의 다윗 왕의 통치를 다룬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라고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사무엘하 7장 16절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다윗의 혈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이른바 다윗의 언약이다. 이런 시가 있다. 하느님에게 _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이 시의 화자는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어달라고 부탁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렇듯 사무엘하의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조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섭리의 기록이 담긴 역사다. 2026-06-14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G.BOOK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요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 1546.2.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12.26. ~ 1546.4.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 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같은 해(1546.2.18.) 죽은 루터보다 두 달(1546.4.7.) 가까이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 심 개 념 정 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6-04-0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6-03-29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6-03-22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셋째 기도
1)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2 ……… 2)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 21:14 ………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이런 시가 적혀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기도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기도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사십 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는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줍니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하면서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 올라오는 기도를 천사가 접수해보면 잠언에서 “다오 다오”하는 즉 “주세요”(give me)가 수북하지 “고맙습니다”(thank you)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 30:15-16 주기문의 셋째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데 여기에서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도 있고 ‘나타난 일’도 있다. 그러므로 ‘뜻이 이루어지다’ 할 때 하나님의 뜻은 두 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을 따라 계획대로 일하신다고 말씀한다(엡 1:11).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단 4:35). 우리가 하나님의 감추어진 일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는 ‘나타난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계시해주셨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사 8:20).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의 ‘내 아버지의 뜻’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욥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병까지 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불행에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욥은 아내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 2:10 욥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입술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형제들이 노예로 팔아넘겨 애굽에 오게 되었다. 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하인이 되었다. 그는 잘 생기고 충직했다. 그런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9 오히려 그 일로 그는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어떤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2026-03-1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둘째기도
1)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8 ……… 2)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롬 10:1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모라비아 교파는 초창기에 그들의 본산지인 체코슬로바키아의 헤른후트(Herrnhut)에 기도단을 두 개 조직했다. 두 기도단은 남자 기도단과 여자 기도단으로 이루어졌다. 각 기도단의 단원은 스물네 명씩이었다. 두 기도단은 매일 한 시간씩 한 명의 남녀 단원이 따로 떨어져서 교대로 기도했다. 그러니까 남자 한 사람이 남자 기도소에서 기도하고 여자 한 사람은 여자 기도소에서 한 시간씩 스물네 시간을 계속 이어서 기도했다. 매일 계속되는 이 남녀 기도자의 기도는 백년을 지속했다. 이 기도 기간에 모라비아 선교 운동은 크게 부흥했다. 해외에 세워진 선교 교회가 본국 교회보다 세 배로 성장했다. 모라비아 교파의 선교사들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에게 성경의 핵심 진리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하고 미국에 감리교단을 설립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효력이 없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자기의 뜻과 소원을 둔다. 그러나 효력이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둔다. 그러므로 신자의 중심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주기도문의 둘째 기도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란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5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 한다.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히 12:27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게 될 것이다.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다시 임하시는 날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게 될 것이다”(계 11:15). 우리는 날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소망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2)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3) 주기도문에서의 이 나라는 무엇으로 통치하는가?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2026-03-08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