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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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추위 눕듯이 그 위에 폭설 엎디듯이 그 위에 긴 추위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겨울 밑 더 파이고 눈이 한참 불어난들 한거울 위 그 하늘에 까치 푸드득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헤어지면 어때 총신과 총회가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기도하는 걸...
 
‘크리스마스캐럴’이라고 하면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년 3월 17일 ~ 1965년 2월 15일)의 저 유명한 ‘더 크리스마스 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놀랍게도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시원한 생각으로 시원하게 있고자’ 만든 노래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여름에 만든 캐럴을 겨울에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여름의 열기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2026년 1월 5일(월) 오전 11시 한겨울 총회 신년회에서 전한 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영광의 찬송'처럼.
 

뛰어난 설교가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영광의 찬송(엡 1:11-12)'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 계획을 따라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각 사람을 넉넉함으로 존중함으로 조심스러움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바꾸고 계십니다. 열매가 없는 총회, 교회, 목사, 장로라면 왜 존재해야 하는가요? 한 생명을 구원하시고 꾸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결과인 영광의 찬송이 되는 내 존재를 우리 삶 가운데서 확인하고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성 얘기를 하면 “방송은 어차피 다 연출 아닌가” “화면을 통해 보는데 어떻게 진정성을 알아챌 수 있는가”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신문이나 TV 방송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무언가 어설프거나 꾸민 듯한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이 바로 알아채서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처럼 요즘 시청자들은 ‘방송국 관계자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이때 뭐가 진짜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버섯 같은 가짜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진짜 콘텐츠가 가짜보다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인간을 비롯해 공동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공정성이란 개념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공정성은 집단생활의 경쟁구도 속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2003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 '원숭이들도 부당한 대우를 거부한다'(Monkeys reject unequal pay)에 명확한 사례가 나온다. 똑같은 과제를 수행한 두 원숭이 중 한 마리에게는 맛이 밍밍한 오이를, 다른 한 마리에게는 달콤한 포도를 줬다. 그런데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어느 순간 실험을 진행하던 사람에게 오이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매체의 발달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다루는 사극이나 공상 과학물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그 나름의 진정성, 즉 정확한 고증이나 그럴듯한 설정을 통해 독자나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이를 설명하는 문학 비평 용어가 핍진성(逼眞性)이다. 핍(逼)에는 핍박하다, 강제로 받아내다 등의 뜻이 있다. 핍진성은 쉽게 말해 ‘진실성을 짜내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성질’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동전 크기만큼만 모발을 남기고 머리를 미는 청나라 초기의 변발이나 지나치게 넓어 보이는 도포의 소맷자락 등 고증의 정확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작품의 사실성이 높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교회의 하나님 살아 계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굽어보고  계시다.
 
눈주름 골진 데 꽃샘 바람을 날리니  문득 스멀스멀 기어드는 사막의 침묵들. 뜨겁디뜨거운 해나래를 접고 향내 나는 침묵 번져 꿈처럼 금강석 별 흐르는 시내산 사막 한 귀퉁이에서 이제 딱 하나 믿음만 남기고 다 잊을 때가 됐다. 솔로몬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지나갔다. 어떤 의미로는 아니 언제나 하나님 은혜 고마웠고 감사했다. 딱 하나 남길 그 고마움의 씨앗을 골라 심기로 하자. 씨앗을 심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테니. 
 
2026년 3월 31일 오후 2시 새길교회에서 이길찬 목사를 만났다. 그는 10여 년 전 기존 교회 분쟁을 해결하느라 새길교회를 개척해 50여 명의 성도들을 목양하고 있다. 작은 교회이지만 다음세대를 포기하지 않고 교육부서 사역까지 하고 있다. 목회는 늘 바쁘고, 교회와 가정 상황은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개혁주의가 저물고 있는 교단을 향해 횃불을 들고 새길을 비추고 있다.

새길의 이길찬 목사는 요즘 뜬금없는 여성강도사와 여성목사 문제는 성경과 헌법에 명백히 위배되므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이 아니라 평등하게 지음을 받은 구별된 존재이며, 문화명령과 지상명령과는 달리 여성의 성직권은 교회의 직분과 관련된 것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정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 역시 어떤 여성도 교회 직분자로 세운 일이 없음으로 성경 진리와 헌법을 수정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과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성의 가르침과 남자를 주관할 권위를 부정하고, 장로 및 감독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당시 문화적 영향에 힘입은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창조원리로 설명하는 것이기에 교회 직분자로 여성을 세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거믄 성경의 권위와 교단의 헌법과 전통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차라리 교단을 떠나서 여성안수를 허락하는 교단을 만들든지 아니면 이미 허락한 교단에 가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3월 31일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이해중 장로)는 "여성강도사헌법개정안"이 성경과 헌법 그리고 총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정통성에 어긋나므로 결연한 각오로 전국교회에 호소하는 성명서를 '장로신문'에 발표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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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봉생 목사 '영광의 찬송'과 이길찬 목사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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