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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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
    제1과 삶의 목적 문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_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관련성구】 1)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2)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한 청년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 대답을 아는 현자가 네팔에 있다는 걸 알았다. 청년은 소유를 다 팔고 네팔로 갔다. 그는 아주 거친 땅을 여행했다. 그는 아주 기본적인 음식들을 먹고 맨 땅에서 잠잤다. 그는 현자가 사는 높은 산기슭에 도착했다. 청년은 산을 올라갔다. 그의 발이 부르트고 피가 났지만 계속 올라갔다. 그는 정상에 올라 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현자에게 엎드려 물었다. “현자님, 인생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현자가 청년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그리고?” “내 아들아, 그리고는 없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청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현자님,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 현자님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나는 온갖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그런데 현자님이 고작 하신다는 말이,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라니 그게 말입니까 뭡니까?” 현자는 눈을 꿈쩍거리며 입술을 비죽 내밀고 말했다. “좋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 아니다!” 인생이란 아주 단순하다. 인생에 대해 당신이 명심할 첫 번째 사실은 인생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걱정할 것은 단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공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성공했다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그것은 건강하냐 그렇지 못하냐이다. 건강하다면 걱정할 게 무어냐?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사느냐 죽느냐다. 죽는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행선지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다. 천국이라면 신나는 일이다. 지옥이라면 당신의 모든 옛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너무 바빠 걱정할 틈이 결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인생은 복잡하지가 않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사람이란 무엇일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7 사람은 흙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존재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동물의 본성까지 내려갈 수 있는 동시에 성자의 영혼까지 올라갈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은 동료 인간을 죽이기 위하여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고 동시에 그 죽음의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머리를 똑바로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거나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다. 사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던 에덴동산을 쫓겨난 이래 사람은 살아남는 게 삶의 목적이 되었다. 목적이란 이루거나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나 방향이다. 사람의 목적은 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간명하게 일깨워주신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이 진리를 깨우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원히 사는 부활에 이르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7-9 바로 이러한 바울의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영화(榮華)라는 말의 본뜻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그 빛이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생의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워한다거나 즐기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여 거기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마음을 쏟게 된다. 이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쾌락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 쾌락은 근본적으로 삶의 성취목적이 될 수 없다. 즉 쾌락은 사람이 삶의 의미를 실현하고 삶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면 그 결과에 따라서 부차적으로 자연히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쾌락을 얻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으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쾌락은 목표의 대상이 아니라 목표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도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을 때 얻게 되는 열매와 결과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게 된다. 그 결과 그 사람은 만족과 즐거움을 부산물로 얻게 된다. 과일 나무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듯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제일 되는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늘 많고 여러 가지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5-33 지금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하고 구할 때 우리가 기쁨은 물론이고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것도 부산물로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삶의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일에서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삶의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과 같은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빌 3:8).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추구하기 위하여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의 습관을 가지고 살았다. 이러한 삶의 습관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는 삶의 태도이다. 그 이유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진리를 배워야 한다. 즉 인생의 목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핵심개념정리】 1. '제일 되는'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_그것은 먼저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늘 많고 여러가지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2. 영화롭게 하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_영화(榮華)라는 말의 본뜻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그 빛이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3. 즐거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_즐거워한다거나 즐기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여 거기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을 때 얻게 되는 열매와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게 되고 그리고 그가 주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고 즐거워하게 된다.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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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
    인생과 신앙의 참맛을 맛보고 싶은가 그러면 소요리문답을 알라 우리가 믿든 안 믿든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삶의 충만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사과나무에서 무르익은 사과가 어린 사과나무 옆에 떨어졌다. 어린 사과나무는 무르익은 사과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과님. 당신도 하루 빨리 썩어서 나처럼 싹을 틔워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군요.” 그러자 익은 사과가 말했다. “이 바보야. 썩는 게 좋으면 너나 썩으렴. 그래, 네 눈에는 내가 얼마나 빨갛고 곱고 단단하고 싱싱한지 뵈지도 않는다는 말이니? 난 썩기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하지만 당신의 그 젊고 싱싱한 몸은 잠시 빌려 입는 옷에 불과해요. 거기에는 생명이 없어요.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생명은 오직 당신 안에 있는 씨 속에 있어요.” “씨는 무슨 씨가 있다는 거야. 바보같이!” 무르익은 사과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자신의 내부에 영적인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동물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땅에 떨어진 이 무르익은 사과와 같다. 그러나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도 사과와 마찬가지로 나이와 함께 시들어 자신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던 육체가 쇠약해지면 쉬지 않고 성장하는 씨앗과 같은 참된 생명의 존재가 더욱 더 확실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예 처음부터 언젠가는 소멸해버리는 생명이 아니라 쉬지 않고 성장하며 소멸하는 일이 없는 생명에 의지하여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람은 신자가 된 뒤에도 계속 죄에 허덕이게 된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죄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리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4-26 우리는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허약한 인간적인 노력을 그만두고 그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우리의 돈, 명예, 결혼, 직업, 생각, 계획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부인해야 한다. 칼빈은 이에 대한 견해를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그 순종이 주는 유익을 얻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가장 빨리 파멸시키는 질병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의 유일한 안식처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최상의 본보기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삶이 공허하다거나 의미가 없다거나 추구할 목표를 상실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했을 때 그것을 돕기 위한 책이 바로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날마다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허덕이게 만드는 죄의 망상에서 벗어나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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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6
  • 맨돈 소강석의 사랑
    이 가을 끝 들으면 범죄에 관한 한 우뭉한 배광식과 교회 안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줄 정도로 장모 사랑이 지극하다는 친공파 맨돈 소강석의 가슴이 저밀 것이다. 코미디언과 살다가 헤어진 가수의 애절한 노래다. 미운 사랑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는 사랑 어제는 기다림에 오늘은 외로움 그리움에 적셔진 긴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등소평을 다윗에 비유하는 맨돈 소강석 목사가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12번째 시집을 최근 출간한 모양이다. 생활이 아닌 멋으로 시를 쓰는 것 같은 친공파 소강식은 이런 말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신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집은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기도의 시간에 시를 쓰는 소강석 목사님의 음성이 낙엽과 함박눈 소리처럼 들린다.' 그렇다. 시는 영혼의 기도다. 이 시집은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절대적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022년 10월 4일 94세로 별세한 김동길 교수는 생전에 말했다.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5천 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 그의 삶은 94년에 걸친 직언(直言)의 한평생이었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날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묵직하게 설파했다. 지면과 방송, 유튜브를 가리지 않았고 유신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세상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여겨졌음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주사파들에 대해 “백성을 이끌고 섶을 지고 불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종북(從北)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뿐 늘 사랑하고 살았고 여성을 떠나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와 달리 맨돈 소강석은 결혼했지만 장모를 지극히 사랑해 새에덴교회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주고 축복과 치유를 원해 봉투를 든 교인들 머리에 안수기도도 같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총회나 교계 부패자나 주사파를 사랑해서인지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을 한 번도 질책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그런 갸륵한 행태는 시인 정호승이 말하듯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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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2
  • '북한과 함께 춤을' 출간
    맨돈 소강석이 눈 내리깔고 악수하는 사진이 찍힌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어떤 정부보다 친북적이고 주사파적이고 종속적이었다. 오죽했으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외쳐 재판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을 정도였을까. 북한이 2022년 10월 4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2017년 9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지역에 한때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가운데 10월 4일 어제 핵 무력 도발 협박을 실제로 과시하는 당사자는 문제를 삼지 않고 문재인은 딴 나라에 사는 자처럼 뇌까렸다. “남북한 모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멈추고 대화 모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참으로 이재명처럼 북한을 낯 뜨겁게 짝사랑하는 낯 두꺼운 자다. 그런 와중에 통합 측 언론인 겸 법학자 황규학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정권과 정분이 나 부정하게 함께 놀아난 비행을 밝히는 책 '북한과 함께 춤을' 출판사 '에셀 나무'를 통해 10월 7일 발간 예정이다. 표지는 문재인이 김정은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목은 1990년 미국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 및 제작, 주연을 맡았던 서사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Dances with Wolves) 패러디했다. 맨돈 소강석이 외치는 목회생태계 개선과 북한 실체를 알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구입 문의/ 에셀 나무 한 권 값/ 10.000원(배송비 무료) 문의/ 010-6642-4131 부정한 금품수수의 대가 맨돈 소강석이 최근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시집을 내고 시인 정호승이 "이 시집이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라는 추천사를 써줬다고 자찬하는데 문재인처럼 뻔뻔하기 그지없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특히 그렇다.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으니 너는 딴생각 말고 내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면 존중이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미성년에 대한 존중은 경청과 공감으로 나타난다. 내가 주고 있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그 안에 존중이 있는지 체크 해 보라.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므로. 문재인과 김정은이 함께 춤을 추는 사랑에 그런 존중이 있는가. 전혀 없다. 김정은의 여동생은 공개적으로 방송을 통해 문재인을 '삶은 소 대가리'라고 이죽거렸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애걸복걸 사랑을 고백하고 북한을 위해 세계를 다니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그 오빠 김정은은 올해 들어 그 문재인이 살고 있는 영토를 향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3-34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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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5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사람을 돕는 쾌락
    사람을 돕는 쾌락 오랜만에 광화문 근처의 파스타 집에서 몇몇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동해바닷가에 살아도 대학 동기회에는 더러 참석한다. 묘하게도 그곳은 훈훈한 정이 고여있는 저수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똑똑한 아이가 있는데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성적을 알아보니까 4.5 만점에 4.3을 받은 거야. 성실하다는 증거지.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몰래 2천만 원을 보냈어. 돈은 그렇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고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른 친구들이었다. 수입이 없어 돈에 집착할만한데도 의외로 돈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아파트를 팔았을 때 값이 오른 차액의 절반을 기부하는 걸 봤다. 그런 성품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더 늙기 전에 한번 푸드트럭을 운전해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직접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줬으면 좋겠어. 조금씩 투자를 해서 같이 해 보지 않을래?” 그는 경제적으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건 틀림없었다. 그날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가 최근 자기가 하는 일을 털어놓았다. 대학동기회의 강점은 제각기 자기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단점이나 실패를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마음들이 활짝 열리곤 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곳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 해. 그런데 그 아이들이 뭔가 해 보려면 돈이 없으니까 사채를 쓰기 마련이야. 사채라는 게 원래 이율이 높아서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더라도 갚을 길이 없는 거야. 내가 그런 젊은 청년들에게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어. 사채를 나의 거의 무이자 대출로 바꾸어주는 거지.” 그렇게 도와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돈 없는 고아 출신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건 사실 못 받을 확률이 많아. 사채업자들은 돈을 회수하려고 협박부터 별짓을 다 하지만 나는 내 밑의 직원들과 함께 그런 청년들의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고 있어.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커피점을 하겠다고 하면 관련된 경험자들을 불러 가르치게 하기도 하고 실습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친구가 물었다. “요새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도 떼먹으려고 하고 복지라고 하면서 정부의 공짜 돈만 바라는 세상인데 담보도 없이 그렇게 빌려주는 돈이 회수가 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열 명에게 담보 없이 그냥 돈을 빌려주면 그중 여덟 명은 이자와 함께 돈을 갚아. 회수율이 팔십 퍼센트를 넘고 있어. 처음에 심사를 할 때 담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보는 거야. 성실하게 일을 하려는 사람인지 정직한지 그런 걸 보는 거야. 담보보다 그게 더 정확할 수 있어.” 그는 신용정보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국내 각 은행이 일정한 금액을 갹출해서 그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집행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의 인품이 금융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대부분이 고시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청계천 빈민가에 들어가 남몰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김진홍 목사의 두레교회 마당에서 야학교실을 운영했던 주인공이었다. 그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드러난 시민운동을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가 퇴직한 후 금융권에서 그에게 일을 맡긴 것 같았다. 숨겨진 저력은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았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쾌락이 있다.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을 인생 최대의 쾌락으로 삼는 경우를 봤다. 그들은 정치나 종교의 구호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았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을 찾아내 그런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데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건 오히려 그를 망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모임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배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모임에 간다. 다음번에는 그런 친구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기로 했다.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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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BOOK_ 꿈꾸는 사람_ 김진하 목회 칼럼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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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5

실시간 G.CULTURE 기사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
    제1과 삶의 목적 문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_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관련성구】 1)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2)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 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한 청년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 대답을 아는 현자가 네팔에 있다는 걸 알았다. 청년은 소유를 다 팔고 네팔로 갔다. 그는 아주 거친 땅을 여행했다. 그는 아주 기본적인 음식들을 먹고 맨 땅에서 잠잤다. 그는 현자가 사는 높은 산기슭에 도착했다. 청년은 산을 올라갔다. 그의 발이 부르트고 피가 났지만 계속 올라갔다. 그는 정상에 올라 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현자에게 엎드려 물었다. “현자님, 인생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현자가 청년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그리고?” “내 아들아, 그리고는 없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청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현자님,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 현자님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나는 온갖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그런데 현자님이 고작 하신다는 말이,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야, 라니 그게 말입니까 뭡니까?” 현자는 눈을 꿈쩍거리며 입술을 비죽 내밀고 말했다. “좋다. 인생이란 과일 한 사발이 아니다!” 인생이란 아주 단순하다. 인생에 대해 당신이 명심할 첫 번째 사실은 인생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걱정할 것은 단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공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성공했다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그것은 건강하냐 그렇지 못하냐이다. 건강하다면 걱정할 게 무어냐?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사느냐 죽느냐다. 죽는다면 걱정할 게 두 가지다. 행선지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다. 천국이라면 신나는 일이다. 지옥이라면 당신의 모든 옛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너무 바빠 걱정할 틈이 결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인생은 복잡하지가 않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사람이란 무엇일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7 사람은 흙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존재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동물의 본성까지 내려갈 수 있는 동시에 성자의 영혼까지 올라갈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은 동료 인간을 죽이기 위하여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고 동시에 그 죽음의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머리를 똑바로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거나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다. 사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던 에덴동산을 쫓겨난 이래 사람은 살아남는 게 삶의 목적이 되었다. 목적이란 이루거나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나 방향이다. 사람의 목적은 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간명하게 일깨워주신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이 진리를 깨우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원히 사는 부활에 이르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7-9 바로 이러한 바울의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영화(榮華)라는 말의 본뜻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그 빛이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생의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워한다거나 즐기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여 거기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마음을 쏟게 된다. 이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쾌락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 쾌락은 근본적으로 삶의 성취목적이 될 수 없다. 즉 쾌락은 사람이 삶의 의미를 실현하고 삶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면 그 결과에 따라서 부차적으로 자연히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쾌락을 얻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으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쾌락은 목표의 대상이 아니라 목표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도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을 때 얻게 되는 열매와 결과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게 된다. 그 결과 그 사람은 만족과 즐거움을 부산물로 얻게 된다. 과일 나무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듯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제일 되는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늘 많고 여러 가지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5-33 지금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하고 구할 때 우리가 기쁨은 물론이고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것도 부산물로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삶의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일에서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삶의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과 같은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빌 3:8).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추구하기 위하여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의 습관을 가지고 살았다. 이러한 삶의 습관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는 삶의 태도이다. 그 이유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진리를 배워야 한다. 즉 인생의 목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핵심개념정리】 1. '제일 되는'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_그것은 먼저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늘 많고 여러가지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2. 영화롭게 하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_영화(榮華)라는 말의 본뜻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그 빛이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3. 즐거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_즐거워한다거나 즐기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여 거기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을 때 얻게 되는 열매와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마음을 쏟게 되고 그리고 그가 주신 모든 것을 귀히 여기고 즐거워하게 된다.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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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BOOK
    2022-11-22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
    인생과 신앙의 참맛을 맛보고 싶은가 그러면 소요리문답을 알라 우리가 믿든 안 믿든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삶의 충만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사과나무에서 무르익은 사과가 어린 사과나무 옆에 떨어졌다. 어린 사과나무는 무르익은 사과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과님. 당신도 하루 빨리 썩어서 나처럼 싹을 틔워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군요.” 그러자 익은 사과가 말했다. “이 바보야. 썩는 게 좋으면 너나 썩으렴. 그래, 네 눈에는 내가 얼마나 빨갛고 곱고 단단하고 싱싱한지 뵈지도 않는다는 말이니? 난 썩기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하지만 당신의 그 젊고 싱싱한 몸은 잠시 빌려 입는 옷에 불과해요. 거기에는 생명이 없어요.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생명은 오직 당신 안에 있는 씨 속에 있어요.” “씨는 무슨 씨가 있다는 거야. 바보같이!” 무르익은 사과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자신의 내부에 영적인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동물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땅에 떨어진 이 무르익은 사과와 같다. 그러나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도 사과와 마찬가지로 나이와 함께 시들어 자신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던 육체가 쇠약해지면 쉬지 않고 성장하는 씨앗과 같은 참된 생명의 존재가 더욱 더 확실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예 처음부터 언젠가는 소멸해버리는 생명이 아니라 쉬지 않고 성장하며 소멸하는 일이 없는 생명에 의지하여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람은 신자가 된 뒤에도 계속 죄에 허덕이게 된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죄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리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4-26 우리는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허약한 인간적인 노력을 그만두고 그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우리의 돈, 명예, 결혼, 직업, 생각, 계획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부인해야 한다. 칼빈은 이에 대한 견해를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그 순종이 주는 유익을 얻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가장 빨리 파멸시키는 질병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의 유일한 안식처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최상의 본보기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삶이 공허하다거나 의미가 없다거나 추구할 목표를 상실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했을 때 그것을 돕기 위한 책이 바로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날마다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허덕이게 만드는 죄의 망상에서 벗어나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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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6
  • 맨돈 소강석의 사랑
    이 가을 끝 들으면 범죄에 관한 한 우뭉한 배광식과 교회 안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줄 정도로 장모 사랑이 지극하다는 친공파 맨돈 소강석의 가슴이 저밀 것이다. 코미디언과 살다가 헤어진 가수의 애절한 노래다. 미운 사랑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는 사랑 어제는 기다림에 오늘은 외로움 그리움에 적셔진 긴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등소평을 다윗에 비유하는 맨돈 소강석 목사가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12번째 시집을 최근 출간한 모양이다. 생활이 아닌 멋으로 시를 쓰는 것 같은 친공파 소강식은 이런 말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신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집은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기도의 시간에 시를 쓰는 소강석 목사님의 음성이 낙엽과 함박눈 소리처럼 들린다.' 그렇다. 시는 영혼의 기도다. 이 시집은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절대적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022년 10월 4일 94세로 별세한 김동길 교수는 생전에 말했다.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5천 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 그의 삶은 94년에 걸친 직언(直言)의 한평생이었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날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묵직하게 설파했다. 지면과 방송, 유튜브를 가리지 않았고 유신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세상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여겨졌음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주사파들에 대해 “백성을 이끌고 섶을 지고 불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종북(從北)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뿐 늘 사랑하고 살았고 여성을 떠나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와 달리 맨돈 소강석은 결혼했지만 장모를 지극히 사랑해 새에덴교회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주고 축복과 치유를 원해 봉투를 든 교인들 머리에 안수기도도 같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총회나 교계 부패자나 주사파를 사랑해서인지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을 한 번도 질책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그런 갸륵한 행태는 시인 정호승이 말하듯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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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2
  • '북한과 함께 춤을' 출간
    맨돈 소강석이 눈 내리깔고 악수하는 사진이 찍힌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어떤 정부보다 친북적이고 주사파적이고 종속적이었다. 오죽했으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외쳐 재판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을 정도였을까. 북한이 2022년 10월 4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2017년 9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지역에 한때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가운데 10월 4일 어제 핵 무력 도발 협박을 실제로 과시하는 당사자는 문제를 삼지 않고 문재인은 딴 나라에 사는 자처럼 뇌까렸다. “남북한 모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멈추고 대화 모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참으로 이재명처럼 북한을 낯 뜨겁게 짝사랑하는 낯 두꺼운 자다. 그런 와중에 통합 측 언론인 겸 법학자 황규학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정권과 정분이 나 부정하게 함께 놀아난 비행을 밝히는 책 '북한과 함께 춤을' 출판사 '에셀 나무'를 통해 10월 7일 발간 예정이다. 표지는 문재인이 김정은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목은 1990년 미국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 및 제작, 주연을 맡았던 서사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Dances with Wolves) 패러디했다. 맨돈 소강석이 외치는 목회생태계 개선과 북한 실체를 알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구입 문의/ 에셀 나무 한 권 값/ 10.000원(배송비 무료) 문의/ 010-6642-4131 부정한 금품수수의 대가 맨돈 소강석이 최근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시집을 내고 시인 정호승이 "이 시집이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라는 추천사를 써줬다고 자찬하는데 문재인처럼 뻔뻔하기 그지없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특히 그렇다.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으니 너는 딴생각 말고 내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면 존중이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미성년에 대한 존중은 경청과 공감으로 나타난다. 내가 주고 있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그 안에 존중이 있는지 체크 해 보라.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므로. 문재인과 김정은이 함께 춤을 추는 사랑에 그런 존중이 있는가. 전혀 없다. 김정은의 여동생은 공개적으로 방송을 통해 문재인을 '삶은 소 대가리'라고 이죽거렸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애걸복걸 사랑을 고백하고 북한을 위해 세계를 다니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그 오빠 김정은은 올해 들어 그 문재인이 살고 있는 영토를 향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3-34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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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5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사람을 돕는 쾌락
    사람을 돕는 쾌락 오랜만에 광화문 근처의 파스타 집에서 몇몇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동해바닷가에 살아도 대학 동기회에는 더러 참석한다. 묘하게도 그곳은 훈훈한 정이 고여있는 저수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똑똑한 아이가 있는데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성적을 알아보니까 4.5 만점에 4.3을 받은 거야. 성실하다는 증거지.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몰래 2천만 원을 보냈어. 돈은 그렇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고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른 친구들이었다. 수입이 없어 돈에 집착할만한데도 의외로 돈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아파트를 팔았을 때 값이 오른 차액의 절반을 기부하는 걸 봤다. 그런 성품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더 늙기 전에 한번 푸드트럭을 운전해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직접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줬으면 좋겠어. 조금씩 투자를 해서 같이 해 보지 않을래?” 그는 경제적으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건 틀림없었다. 그날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가 최근 자기가 하는 일을 털어놓았다. 대학동기회의 강점은 제각기 자기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단점이나 실패를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마음들이 활짝 열리곤 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곳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 해. 그런데 그 아이들이 뭔가 해 보려면 돈이 없으니까 사채를 쓰기 마련이야. 사채라는 게 원래 이율이 높아서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더라도 갚을 길이 없는 거야. 내가 그런 젊은 청년들에게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어. 사채를 나의 거의 무이자 대출로 바꾸어주는 거지.” 그렇게 도와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돈 없는 고아 출신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건 사실 못 받을 확률이 많아. 사채업자들은 돈을 회수하려고 협박부터 별짓을 다 하지만 나는 내 밑의 직원들과 함께 그런 청년들의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고 있어.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커피점을 하겠다고 하면 관련된 경험자들을 불러 가르치게 하기도 하고 실습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친구가 물었다. “요새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도 떼먹으려고 하고 복지라고 하면서 정부의 공짜 돈만 바라는 세상인데 담보도 없이 그렇게 빌려주는 돈이 회수가 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열 명에게 담보 없이 그냥 돈을 빌려주면 그중 여덟 명은 이자와 함께 돈을 갚아. 회수율이 팔십 퍼센트를 넘고 있어. 처음에 심사를 할 때 담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보는 거야. 성실하게 일을 하려는 사람인지 정직한지 그런 걸 보는 거야. 담보보다 그게 더 정확할 수 있어.” 그는 신용정보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국내 각 은행이 일정한 금액을 갹출해서 그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집행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의 인품이 금융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대부분이 고시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청계천 빈민가에 들어가 남몰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김진홍 목사의 두레교회 마당에서 야학교실을 운영했던 주인공이었다. 그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드러난 시민운동을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가 퇴직한 후 금융권에서 그에게 일을 맡긴 것 같았다. 숨겨진 저력은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았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쾌락이 있다.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을 인생 최대의 쾌락으로 삼는 경우를 봤다. 그들은 정치나 종교의 구호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았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을 찾아내 그런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데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건 오히려 그를 망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모임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배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모임에 간다. 다음번에는 그런 친구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기로 했다.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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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BOOK_ 꿈꾸는 사람_ 김진하 목회 칼럼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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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5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노동은 고역인가?
    노동은 고역인가?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목욕탕에는 때를 밀어주는 분과 이발사가 있다. 두 사람 다 나이가 육십 대 중반은 넘은 지긋한 나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마치 노동이 취미라도 되는 듯 조금만 시간이 나면 다른 일을 한다. 실버타운의 잔디를 깎기도 하고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더러는 밭에 심은 감자를 수확해 내게 주기도 했다. 내가 때를 밀어주는 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노동을 합니까?” 갑자기 그가 표정이 근엄해지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도인들에게는 노동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민족종교를 믿고 있다고 했다. 노동이 수행으로 바뀌는 순간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노동을 신성시하고 있다. 기독교의 한 성자는 그가 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동은 고역이라고 말하지만 내게 노동은 쾌락이다. 나는 돈으로서의 보수가 없더라도 노동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세상에서의 최대의 쾌락은 날마다 하는 나의 노동이다.” 사도바울은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라고 했다. 묵묵히 일해서 자기 양식을 벌어먹으라고 했다.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남자가 있다. 그는 시골에서 곡괭이 한 자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임금에 상관없이 매일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은 남의 일터로 가서 공짜로 일을 해 주었다. 한겨울 땅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도 그는 공사장을 찾아가 돈을 받지 않고 언 땅에 곡괭이질을 하고 삽으로 흙을 팠다. 노동이 우상이고 일에 미친 것 같아 보였다. 상대적으로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는 크루즈 선을 탄 적이 있다. 그 배는 승객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바다 위의 천국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승객 중에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 정도인 것 같았다. 내가 중학 시절 교과서에 그 배의 이름이 나왔었다. 언젠가는 그 배를 타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배는 환상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무리를 해서 그 배에 올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일을 한다는 자체가 지겹기도 했다. 그 배 속에서의 처음 1주일은 화려한 천국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대에서 최고의 쇼와 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식당에는 기름진 음식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은촛대에 불이 켜지고 투명한 와인글라스가 놓인 테이블 옆에서 웨이터들이 식사 시중을 했다. 작은 천국이 검푸른 태평양을 미끄러지면서 하와이와 타이티 섬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2주일쯤 흘렀을 때였다. 북적거리던 파티장도 레스토랑도 풀장도 다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승객들의 표정에 무료함과 권태가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들에게 그 배는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한 영국인 중년여성이 나를 보고 셰익스피어를 공부하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 자기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 안이지만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가 출신 같아 보이는 여성은 놀이에 참가하지 않고 갑판의 구석에서 계속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영국인 노인은 배 안 어두컴컴한 작업실의 한쪽에서 둥근 테두리의 나무 틀에 천을 끼워놓고 굵은 바늘로 십자수를 놓고 있기도 했다. 인간은 단순한 놀이보다는 그날그날 어떤 성취감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배 안에서 보던 책 속의 주인공 희랍인 조르바는 내게 인생은 허리띠를 쥐고 말썽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일하다가 발생하는 말썽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료한 천국 속에서 나는 갑자기 일이 가득한 지옥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그 배가 잠시 정박한 뉴질랜드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다음 날부터 즐겁게 일을 했다. 삶의 소재인 일 자체가 감사고 축복인 걸 알았다. 평생 노동의 관념을 모르는 사람을 봤다.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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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엄상익의 미셀러니_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어제저녁 밤하늘에 별이 뜰 무렵 오랜만에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 겸 물었다. “요새 뭐 하고 지내나?” “명리학을 공부해 보고 있어. 서양문화에 젖어서 그랬는지 사주팔자나 음양오행 그리고 관상 주역 같은 걸 시답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진리의 세계인 것 같아. 여러 책을 구입해서 고시 공부하듯 읽어보고 있어.” 우리에게는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깊이 박힌 정신적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검찰의 고위직을 지낸 고교 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 역시 최고 명문 여고와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교회에 나가는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논현동에 정말 앞날을 잘 맞추는 분이 있어요. 저는 매년 정초에 그분에게 신수를 보러 가는데 금 년에는 우리 집에 망신살이 있다고 했어요. 걱정이예요.” 그 부인은 점쟁이에 대해 본능적인 믿음이 있어 보였다. 대통령의 꿈을 꾸는 가까운 정치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집안의 방의 위치나 가구의 배치까지 모두 도사에게 물어서 그대로 하는 것 같았다. 재벌그룹의 회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업상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국내는 물론 인도에까지 가서 점을 친다고 했다. 그런 게 우리 한민족의 내면에 뿌리박힌 깊은 인식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합천의 깊은 산골에 있는 절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옆 방에 기도를 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절을 창건한 지주 집안의 며느리라고 했다.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울긋불긋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당 사주’책을 가지고 와서 친구와 나의 운명을 보아주었다. 친구는 과거에 급제해서 판사가 될 팔자라고 했다. 할머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된다는 소리였다. 그 얼마 후였다.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나타났다. 법서만 봐도 토할 것 같이 그런 생활이 싫었다. 나는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시를 포기하고 장기 직업 장교 시험을 쳐서 군에 입대해 버렸다. 같이 공부하던 그 친구는 예언대로 그해 합격을 하고 판사가 됐다. 인간이란 정해진 팔자가 있는 것 같았다. 팔자 도망은 못 한다는 속담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의 몇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성적이 내가 지망하는 법대에 합격하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최고의 명문 법대를 나온 사람들도 고시 낭인들이 쌓이고 쌓였는데 네가 도전한다고 되겠니?” 나는 한 단계 낮춘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목수인 작은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되는 집안이 따로 있지 아무나 되겠니?” 우리 집안은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한 걸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비 집안이 아니었다. 운명론에 젖으니까 그런 말들이 모두 맞는 것 같았다. 직업 장교 생활이 4년쯤 흐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팔자에 순응하려고 해도 나는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고시에 합격한 걸 보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러들고 있었다. 나 스스로 열등의식이 가득 찬 마음 지옥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면의 병든 마음이 육체를 통해서 밖으로 번져 나오는 것 같았다. 두 살짜리 귀여운 딸을 봐도 아내를 봐도 무덤덤했다.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세상이었다. 여름의 어느날 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열려진 창으로 별이 떠 있는 검은 하늘이 보였다. 갑자기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다. 종교적 믿음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도라기보다는 그냥 세상을 주재하는 어떤 존재에게 통사정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틀어진 내 심성으로는 주변이나 가족들에게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판검사가 되어 출세하려는 야망은 아예 가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한번 합격시켜 주시기만 하는 것으로 일그러진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일생 연탄 수레를 끄는 노동자로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했다. 그 기도를 한 후 나는 바로 좋은 성적으로 고시를 통과했었다. 이상했다. 나는 능력이 부족했다. 집중력이 없고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둔한 머리인 걸 잘 알고 있었다. 합격할 사람이 아니었다. 고시합격은 팔자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됐다. 아무래도 운명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중언부언하는 기도같지 않은 기도가 그분에게 도달한 것 같았다. 간절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 후 갑자기 내가 성경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성경 뒤에 그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은 나의 영에 들어와 사주팔자의 경계선을 넘게 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가치관과 삶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동양의 명리학이나 주역도 진리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하나님 영이 들어오면 팔자도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십자가는 상징과 은유일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를 요즈음 생각한다.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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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오래전 금강산으로 가서 그 일대를 둘러볼 때였다. 나는 북한의 여성 안내원과 둘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계곡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 같이 가던 북한 여성이 말했다. 갑자기 뭔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뭔데요?” 그녀는 대한민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남조선 인민들은 왜 그렇게 대통령을 씹어 돌리듯 함부로 욕을 합니까? 별명을 붙여 말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기도 하는 게 일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의 일상 속 대화 중에 대통령을 존중하는 걸 본지 오래된 것 같았다. 대통령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불렸고 술자리 안주감인 경우가 많았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성 대통령을 성 비하하는 욕을 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다 대통령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런 욕을 먹는 걸 전해 들으면 일할 의욕이 줄어들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여성이 말을 계속했다. “대통령은 집안으로 치면 가장인 아버지 격 아닙니까? 그런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하는 게 예의에 맞는 일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은 공인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듯 막말을 하는 게 나 역시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북한 여성의 잣대로 치면 대한민국 국민은 대부분 패륜아가 되는 셈이었다. 북한의 초대소 건물을 보면 여기저기 벽에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 붉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길에도 수령이 간 자리에는 비석이 서 있고 그 안에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는 글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북한 여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지도자를 대하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임금도 뒤에서는 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들은 적 있어요?” “그 말은 알아요.” “그렇다면 뒤에서 대통령에 대해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봉건사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죠.” “듣고 보니까 그건 그러네요.” “여기 보니까 건물마다 거리마다 위대하고 전능한 수령 동지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인민들 마음속마다 한점의 회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 깊은 마음속에서는 원망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툴툴거리며 불평도 하고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 좋은 거 아닐까요”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과 눈빛은 내 말을 긍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쌍꺼풀진 눈이 커다란 남성이 우리를 보며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정도에서 말을 그쳐야 할 것 같았다. 한쪽은 입을 틀어막는 사회이고 다른 쪽은 언어의 설사증에 걸린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대통령이던 그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다. 택시를 타도 기사들은 대통령 욕을 했다. 친구끼리 동창 모임에서도 대통령이 안줏감이고 욕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김여정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했다. 북한 여성의 말대로 남의 집 가장 어른을 그렇게 욕하는 건 가정교육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입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솔한 비하나 욕은 한마디도 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를 해 왔다. 변호라는 것은 죄나 단점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살인범에게서도 눈물 날 사연을 찾는 게 나의 일이었다. 단점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점은 숙련이 되지 않으면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도 그렇다. 냉정한 말 보다 인자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빈정거리기보다는 남을 칭찬해 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자나 손녀를 볼 때마다 기회를 잡아 사랑한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말들을 하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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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31
  • 엄상익의 미셀러니_ 걷는다는 것
    걷는다는 것 이웃의 부자 영감님이 있다. 성실한 은행원으로 아내는 약사로 일개미같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 부부는 개미같이 끝없이 걷는다. 아침을 먹고 이웃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점심을 먹고도 걷는다. 그리고 밤에도 걷는 때가 많다. 매일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오늘은 만 보, 다음에는 만오천 보, 이만 보 그런 식이다. 그 부부는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도 넘게 돌았을 것이다. 그 부부에게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고 구원일지도 모른다. 그 부부는 내게 누워있으면 죽음이고 걸으면 산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 걸음에 색깔과 삶의 질감을 넣고 싶었다. 한번은 여의도에서 볼일을 보고 잔잔한 한강길로 걸어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강이 내는 잔잔한 물소리를 듣고 저녁 무렵 튀어 올랐다 철푸덕 떨어지는 물고기가 만드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나는 강에 취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나는 강을 따라 옆을 걸어내려갔었다. 여주 들판에는 노랗고 빨간 여린 가지의 들꽃들이 바람에 손짓하는 것 같이 나를 맞아 주었다. 원주 옆을 흐르는 푸른 강물은 내 가슴으로 시원하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충주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소년 시절부터 혼자 걷는 걸 좋아했다. 함박눈이 골목길에 쌓이는 날 서민 한옥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의 미로 같은 길을 걸었었다. 낮은 담 옆으로 작은 기와집의 장독대 위로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리던 비가 그친 저녁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이따금씩 딸랑거리는 두부 장사의 투명한 종소리가 지금도 영혼 속에서 맑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서울의 뒷 골목길 순례도 많이 한 셈이다. 궁상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뒷골목이 더 마음에 편하게 와 닿았다. 뚝 방 옆에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청계천의 길들을 걸었다. 그 길에는 밤이면 카바이트 불을 켜놓은 리어카 위에 놓인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나 사상서적이 왜 거기서 팔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면 성북동에서 안암동 쪽으로 더러운 물이 흐르는 안암천 변을 걷곤 했다. 냄새나는 시궁창 물도 밤이 되면 달과 별이 비쳐 아늑한 느낌을 주곤 했다. 대학 시절은 절에 묵으면서 산길을 많이 걸었다. 부슬부슬 눈이 내리는 겨울나무 사이를 공허한 마음으로 지나기도 했다. 빈 가지만을 두른 겨울나무들은 내게 뭔가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노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로 옮겨온 나는 요즈음 느릿한 걸음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을 걷는다. 몇 걸음을 걷다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다시 걷다가 물결이 스며드는 고운 모래뻘을 본다. 바다는 수시로 색깔과 표정을 바꾸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대낮의 바다는 내게 에너지 넘치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황혼이 아련하게 구름을 물들이는 저녁 바다는 파스텔톤이다. 물과 하늘의 경계가 서로 스미고 섞여들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지워져 간다. 은자의 표정 같은 저녁 바다는 내게 넌지시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 같다. 영롱한 별들을 거느리고 바다 위 검은 하늘에 하얗게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볼 때가 있다. 달은 번들거리는 검은 바다 위에 길다란 빛의 띠를 만든다. 밤바다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와 모래언덕 사이의 적막 속에 있는 나는 바다가 전해주는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인생은 별 게 아니라고. 잠시 일었다가 스러지는 물거품이라고. 그러니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요나처럼 목적에 삼켜지는 삶은 살지 말라고 말이다. 이따금 은발이 휘날리는 강변의 갈대밭을 지나는 나그네를 화면에서 본다. 그 나그네는 바닷가를 한없이 걷는다. 화면 속의 당당한 있음이 내게 다가와 마음이 저릿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렇게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싶다. 오늘은 한 교수의 산책에 대한 글을 읽고 걷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 교수는 산책은 존재의 휴가이며 구원이라고 했다.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인생이라고 하면서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박자에 따라 걷고 나는 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박자에 맞추어 걸으면 되는 건 아닐까.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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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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