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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 히브리서/ 박경호 헬라어 성경
번역 박경호 신학자 20년 넘게 헬라어 번역 분야만 파고든 원어 성경 연구가이자 강해 설교자. 저자는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후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어릴 적부터 고신측 교단 소속 교회에서 신앙훈련을 받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으나 영어 성경을 통독·번역하며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의 많은 오번역들을 발견하고서 성경 원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원래의 뜻과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자 번역을 하게 되었고, 그 뜻을 파고들면서 원어에 입각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구약 히브리어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생에게서 2년간 과외로 아랍어를 배웠으며,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 헬라어 번역을 위해 20년을 기도하면서 번역과의 지루한 싸움을 해왔다. 저자는 성경해석은 원어에 기반하여야 하고, 이를 토대로 성경을 연구하여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헬라어 한 단어를 한글의 여러 단어가 아닌 오직 한 개의 단어로 직역하여 완벽하게 번역한 저자는 이 번역 성경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면 원어를 모르는 누구도 원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과 같은 뜻으로 쉽게 알게 될 것이라 확언한다. 통합측 복음신학교 총장과 교수진은 저자의 헬라어 번역의 탁월성과 신앙을 인정하였으며, 수많은 목회자도 저자의 번역서들과 원어 강해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그 메시지를 인용하여 목회 현장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요한계시록, NEW마태복음,헬라어 번역 성경을 출간했고, 현재 히브리어&헬라어 베다니 번역원 원장으로서, 창세기 번역 성경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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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복 목사 브라더 로렌스
하나님 임재의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를 연습하는 삶)으로 유명한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1614 – 1691. 2. 12)의 호적상 이름은 니콜라스 헤르만(Nicholas Herman)이다. 1640년 6월 중순 스물여섯 살의 니콜라스는 파리에 있는 맨발(남자는 맨발 여자는 샌달을 신음)의 갈멜 수도회(Discalced Carmelite Order)에 평수사(brother)로 들어갔다. 두 달 뒤 8월 중순 니콜라스는 갈멜 수도사의 갈색 옷과 로렌스('Lawrence'란 '부활'이란 뜻의 성인 이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평수사 부활의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로 불리게 된다. 그는 신실한 성격이라 수도원장의 신임을 받아 여러 보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맞는 일은 타협이나 거래가 없는 식당의 요리사였다. 그는 수도사들의 식사를 해주면서 부엌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식사를 수도사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드신다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했다. 그리고 까다로운 수도사들이 음식을 두고 그를 무시하며 별 말을 다해도 그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로 생각했고 접시 하나 닦는 것도 주님이 사용하실 그릇으로 여겼다. 그는 일과를 마치면 반드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생각해 일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으면 주님께 회개 기도를 하고 내일은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웠으면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은혜를 구했다. 그는 깨어있는 전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평수사 부활의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는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하며 1691년 2월 12일 일흔일곱 살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겼다. 최근 남현교회 이춘복 목사가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쉬운 목회'라는 저서를 내었다. 그 저서에 제4장에 '관계의 달인'이라는 장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평생 실천한 '브라더 로렌스'를 닮은 저자의 성품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저서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춘복 목사는 브라더 로렌스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셨기 때문에 좋은 만남이다. 그러나 만남을 좋은 관계로 이어가는 것은 자신의 역량에 달려 있다. 내가 사십 년 동안 한 번의 분쟁도 없이 평안하게 목회한 것은 모든 만남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마 전 우리 노회에서 삼십 년간 같이 섬기신 목사님을 헌신 예배 강사로 모셨는데 관계라는 주제로 설교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남현교회 이춘복 목사님을 안 지 삼십 년이 넘었는데 이춘복 목사님은 관계의 달인입니다." 나는 그분이 왜 관계의 달인이라고 하는지 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사람도 관계를 나쁘게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노회, 총회에서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힘써왔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러나 원한다고 관계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네 가지가 꼭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이 네 가지를 지키기 위해 힘써왔다. 1. 만남은 하나님께서 2. 상대방을 유익하게 3. 상대방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4. 변함없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삶의 원칙을 몸에 배도록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브라더 로렌스가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몸에 배도록 날마다 연습했듯이 이춘복 목사도 자신이 터득한 좋은 관계 유지법 네 가지를 브라더 로렌스처럼 몸에 배도록 힘써 지켜 '관계의 달인'이 됐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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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 리더여, 스파크가 되라_ 권순웅
책 소개 국내도서 >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앙생활 > 신앙생활/영성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불꽃사명자로 사는 법은 무엇일까? 불꽃같은 리더십의 비밀을 알게 하는 책! 스파크가 되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리더십을 취하라는 것이며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보아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결론이며, 믿음의 결론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든 삶을 이해할 수 있음을 진하게 전해준다. 저자(글) 권순웅 목회자/목사 ㆍ 미션스쿨 계성중·고등학교에서 신앙 입문 ㆍ 영남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며 신앙적 방향과 민족과 이웃에 대한 고뇌 중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ㆍ 새술교회(주다산교회 전신) 30평 상가교회 개척 ㆍ 주다산교회 천막교회(화성)를 거쳐 동탄에 교회를 건축 ㆍ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초빙교수로 후학 양성 ㆍ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서기를 거쳐 제107회기 총회장으로 섬김 ㆍ 주다산교회 30주년 기념으로 『예수의 비행기』 출간 저서 『예수 SPARK CELL 리더십 이야기』(도서출판 소망) 『스파크 양육교재』(공저, gtm) 『코로나 이후, 교회교육을 디자인하다』(공저, 들음과 봄) 『3.1운동 정신과 코로나 극복』(공저, 들음과 봄) 『예수의 비행기』(주다산교회) 목차 - 저자 서문 - PART 1. 리더십의 기초 : 불꽃 사명의 기초 1장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엘리야의 까마귀 2장 구경꾼 성도와 주인공 성도 3장 두려워하는 마음과 건강한마음 4장 견고한 진과 하나님의 능력 5장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 - PART 2.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1 : 불꽃 사명의 믿음 1장. 예배자, 아벨 2장. 동행자, 에녹 3장. 사명자, 노아 4장. 믿음의 소유자, 아브라함 5장. 웃는 자, 이삭 - PART 3.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2 : 불꽃 사명의 행함 1장.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야곱 2장. 꿈꾸는 자, 요셉 3장. 온유한 자, 모세 4장. 용기 있는 자, 여호수아 5장. 충성된 자, 갈렙 익투스 2022년 11월 16일 출간 ISBN 9791186783450 ( 1186783451 ) 쪽수 240쪽 크기 145 * 210 mm 값 18,000원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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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돈 소강석의 사랑
이 가을 끝 들으면 범죄에 관한 한 우뭉한 배광식과 교회 안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줄 정도로 장모 사랑이 지극하다는 친공파 맨돈 소강석의 가슴이 저밀 것이다. 코미디언과 살다가 헤어진 가수의 애절한 노래다. 미운 사랑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는 사랑 어제는 기다림에 오늘은 외로움 그리움에 적셔진 긴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 거야 등소평을 다윗에 비유하는 맨돈 소강석 목사가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12번째 시집을 최근 출간한 모양이다. 생활이 아닌 멋으로 시를 쓰는 것 같은 친공파 소강식은 이런 말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신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집은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기도의 시간에 시를 쓰는 소강석 목사님의 음성이 낙엽과 함박눈 소리처럼 들린다.' 그렇다. 시는 영혼의 기도다. 이 시집은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절대적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022년 10월 4일 94세로 별세한 김동길 교수는 생전에 말했다.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5천 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 그의 삶은 94년에 걸친 직언(直言)의 한평생이었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날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묵직하게 설파했다. 지면과 방송, 유튜브를 가리지 않았고 유신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세상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여겨졌음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는 주사파들에 대해 “백성을 이끌고 섶을 지고 불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종북(從北)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뿐 늘 사랑하고 살았고 여성을 떠나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와 달리 맨돈 소강석은 결혼했지만 장모를 지극히 사랑해 새에덴교회에 사무실과 비서를 대주고 축복과 치유를 원해 봉투를 든 교인들 머리에 안수기도도 같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총회나 교계 부패자나 주사파를 사랑해서인지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을 한 번도 질책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그런 갸륵한 행태는 시인 정호승이 말하듯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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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함께 춤을' 출간
맨돈 소강석이 눈 내리깔고 악수하는 사진이 찍힌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어떤 정부보다 친북적이고 주사파적이고 종속적이었다. 오죽했으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외쳐 재판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을 정도였을까. 북한이 2022년 10월 4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2017년 9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지역에 한때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가운데 10월 4일 어제 핵 무력 도발 협박을 실제로 과시하는 당사자는 문제를 삼지 않고 문재인은 딴 나라에 사는 자처럼 뇌까렸다. “남북한 모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멈추고 대화 모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참으로 이재명처럼 북한을 낯 뜨겁게 짝사랑하는 낯 두꺼운 자다. 그런 와중에 통합 측 언론인 겸 법학자 황규학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정권과 정분이 나 부정하게 함께 놀아난 비행을 밝히는 책 '북한과 함께 춤을' 출판사 '에셀 나무'를 통해 10월 7일 발간 예정이다. 표지는 문재인이 김정은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목은 1990년 미국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 및 제작, 주연을 맡았던 서사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Dances with Wolves) 패러디했다. 맨돈 소강석이 외치는 목회생태계 개선과 북한 실체를 알기 위해 일독을 권한다. 구입 문의/ 에셀 나무 한 권 값/ 10.000원(배송비 무료) 문의/ 010-6642-4131 부정한 금품수수의 대가 맨돈 소강석이 최근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시집을 내고 시인 정호승이 "이 시집이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라는 추천사를 써줬다고 자찬하는데 문재인처럼 뻔뻔하기 그지없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특히 그렇다.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으니 너는 딴생각 말고 내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면 존중이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미성년에 대한 존중은 경청과 공감으로 나타난다. 내가 주고 있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그 안에 존중이 있는지 체크 해 보라.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므로. 문재인과 김정은이 함께 춤을 추는 사랑에 그런 존중이 있는가. 전혀 없다. 김정은의 여동생은 공개적으로 방송을 통해 문재인을 '삶은 소 대가리'라고 이죽거렸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애걸복걸 사랑을 고백하고 북한을 위해 세계를 다니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그 오빠 김정은은 올해 들어 그 문재인이 살고 있는 영토를 향해 30차례 넘게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3-34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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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 꿈꾸는 사람_ 김진하 목회 칼럼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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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7과 제사 계명
- 1)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2-3 ……… 2)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 58:13-14 ……… 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 12:8 1800년대 초반 한 소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하여 뉴욕으로 갔다. 소년은 그가 자란 고향 마을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웠었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고 돈을 버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평범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철저하게 신앙 훈련을 받은 것 말고는 오직 인쇄 기술뿐이었다. 그는 뉴욕의 아주 큰 인쇄소에 취직이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주일날까지 일하지 않고는 마칠 수 없는 큰 인쇄 일거리를 맡게 되었다. 그는 그 일거리를 한 번 보고 혼자 말을 했다. “오늘 자정까지 이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쳐야겠군. 주일 날 일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공장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자네는 일자리를 잃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인쇄 원본을 사장에게 넘겨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표정의 사장에게 그는 말했다. “저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주일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 양심을 어기는 것보다 사직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장은 소년의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사장은 다시는 그 소년에게 주일날 근무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소년이 바로 미국의 가장 훌륭한 문학서들을 출판하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하퍼 브라더스(Harper Brothers) 출판사의 설립자 제임스 하퍼(James Harper, 1795. 4. 13. - 1869. 3. 27.)이다. 안식일의 히브리 원어 사바쓰(Sabbath)는 멈추다, 쉬다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쉬셨지만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교리문답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은 엿새 동안만 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삼는 문제에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안식교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에 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신약의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에 구약의 방법과 똑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 부르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일은 여호와에게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날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의 용무는 미리 정리한 후에 세상일과 오락에 관한 말이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종일 거룩하게 쉬면서 공동예배와 기도와 구제를 행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개혁주의 청교도 신학은 이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셋째,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존 칼빈의 견해이다. 칼빈은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주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날이다. 그러나 안식일과 달리 이 날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날이고 안식일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안식일은 휴식하고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격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기쁨과 활동과 기대로 넘치는 날이다. 주일의 특징은 첫 번째 주님의 날에 있었던 사건인 부활을 기리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을 가르치고, 성령을 주고, 그리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주고 승천하셨다. 안식일이 폐지되고 주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초대교회의 예배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십계명의 제사 계명이 안식일만 아니라 다른 날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이 계명은 사실 모든 날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거룩하게 쉬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2-24 【핵심개념정리】 1)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쉬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쉬시는 날에도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2) 안식일과 관련하여 주일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무엇인가?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3) 그리스도인들은 제사 계명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거룩하게 쉬어야 한다.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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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6과 제삼 계명
- 1)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 138:2 ……… 2)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신 28:58-59 ……… 3)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계 15:4 1743년 3월 23일 런던에서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가 초연되었을 때 왕이 많은 청중 속에 앉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할렐루야 합창”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합창 가운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라는 가사가 우렁찬 합창 속에 울려 퍼지자 왕이 자리에 일어섰다. 따라서 모든 청중도 일제히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왕과 함께 일어난 사람들은 할렐루야 합창이 다 끝날 때까지 서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작품이 어디에서 연주되든지 “할렐루야 합창”이 울리는 대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서 듣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 음악을 서서 듣는 청중들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제삼 계명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제삼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님의 이 권고는 셋째 계명에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있음을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나타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속성에 걸맞게 바르고 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에는 특별한 의미들이 있다. 엘로힘(Elohim)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엘로힘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성경의 첫머리에 나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엘 엘리온(El Elion)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이기고 멜기세덱을 만날 때 사용되고 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 14:18 야웨(Yaweh)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자존성, 자족성, 영원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속자로 계시하실 때 이 이름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 이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 3:14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Jehovah Jireh)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신다. 이 이름은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4 이 각각의 이름들이 지닌 의미에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의 계명을 어기게 된다. 더욱이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고백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 그 방법을 야고보 사도가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2-25 이 말씀은 신자가 왜 성경을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준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성경 속에서 우리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찾기 위해서이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5-18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 속에 드러나는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게 되는가?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고백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여러 이름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나타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속성에 걸맞게 바르고 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이다. 3) 왜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우리가 끊임없이 성경을 보아야 하는 것은 성경 속에서 우리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 속에 드러나는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이다.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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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6과 제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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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5과 제이 계명
- 1)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신 4:15-16 ……… 2)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6 ……… 3)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 †행 17:28-29 색이 바랜 5센티 가량의 송곳니를 4억 불교도들이 지상의 가장 신성한 것으로 숭배한다. 이 치아는 주전 543년 석가모니를 화장할 때 태운 장작더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800년이 지난 뒤 실론(Ceylon)으로 그 치아를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 날에는 그 치아가 실론의 캔디(Kandy)에 휘황찬란하게 건립된 치아 사원 안의 황금 연꽃 위에 얹혀있다. 황금 연꽃 둘레는 수많은 루비와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해마다 여러 나라에서 10만 여명의 신실한 불교도들이 이 신성한 치아를 바라보려고 찾아온다. 그들은 사원에 금과 은과 보석들의 예물들을 가지고 와 바친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가톨릭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도들이 성물이라고 숭배하고 보관하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나폴리와 로마의 교회들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머리털. ● 페루기아 대성당(Cathedral Perugia)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 아의 결혼반지. ● 프라토(Prato)의 교회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거룩한 허리띠. ● 나폴리의 산 가우디오소 에파트리찌오 교회와 로마의 백성들의 마리아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젖 방울들을 담은 젖병. ● 주님의 마지막 만찬 때 사용된 대야가 제노아의 성 로렌조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이 새겨진 베로니카의 면사포, 그리고 안드레 사도의 두개골이 모두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돌기둥 속에 보관되어 있다. ● 예수님의 수의 세마포가 투린에 있는 세례 요한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제이 계명은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알맞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적 예배를 통해 섬겨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제이 계명과 제일 계명은 언뜻 비슷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히 다르다. 제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에 대한 예배를 금하신 것이다. 제이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의 어떤 형상이든지 새겨 섬기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4-6 이 계명에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엄중한 경고가 붙을 정도로 심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선지자와 사도가 잘 증언해주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 라고 반문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다”(렘 10:14-15) 라고 단정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행 17:28-29) 하고 주장한다. 칼빈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육체의 속성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어떤 형상이나 형태를 가져야 만족하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례전을 주신 이유가 우리의 그런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주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신성하게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식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어떤 다른 형상을 원하는 것은 아주 무가치한 일로 생각된다. 칼빈의 가르침에 비추어보건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것을 신앙의 가르침과 예배의 영역에 도입할 때마다 우리는 십계명의 제이 계명을 어기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일이 금해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를 높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전심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이 계명은 잘못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킨 자들에게 세세무궁토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핵심개념정리】 1 ) 제일 계명과 제이 계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제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에 대한 예배를 금하신 것이다. 제이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의 어떤 형상이든지 새겨 섬기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2 ) 왜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는 것이 잘못인가?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된다. 3 ) 어떻게 하나님에게 예배드려야 복을 받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를 높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전심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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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5과 제이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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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4과 제일 계명
- 1)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 28:9 ……… 2)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 3)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힌두교도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물경 3억 3천만에 달하는 신들과 여신들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 세대 당 여덟 신을 섬긴다. 힌두교는 동물의 생명을 신성하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비참하게 가난한 생활을 살면서도 동물들과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동물들을 부양을 한다. 동물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들의 집에서 하인을 둔 부자 주인 노릇을 하며 빈둥빈둥 살아간다. 인도의 4억 5천만 힌두교도들은 거의 7천 5백만에 달하는 소들을 경배하고 섬긴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농작물들을 먹어치우고 해를 주는 원숭이들과 쥐들과 여러 해충들까지도 내버려 둔다고 한다. 제일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는 영역에서 시작한다. 이 계명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2-3 이 말씀은 다른 신이나 현대의 무수한 우상들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섬기는 것도 이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또한 성공, 소유, 명예,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이 말씀을 따르는 태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분은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러한 의무를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는 말씀에 다 담겨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웨 엘로헤카”(Yaweh Eloheka)라고 한다. 우리에게 이 계명을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하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시다. 하나님을 존재하시게 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으시고 스스로 충족하시다. 이렇지 못한 존재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없다. 우리의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완전히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다한 신들을 섬기기보다는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복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1-3 【핵심개념정리】 1) 제일 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한다. 2)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 말씀을 따르는 태도는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어떻게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하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이다.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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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4과 제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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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3과 십계명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1-2 ……… 2)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1:1 ………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한 사람이 뉴욕의 아주 험악한 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 시간이 꿈 같이 지나갔다. 그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마음을 먹었다. 그곳은 몇 블록 떨어져 있었다. 그의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곳은 해가 지면 아주 거친 곳이야. 밖에서 절대 꾸물거리거나 어정거리면 큰 코 다치는 곳이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그냥 뛰어야 돼.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멈춰서는 안 돼. 알았지.” 그 다음 날 그의 친구들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병문안을 갔다. 그 친구는 얻어맞아 온 몸이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한껏 벌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아니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의 친구가 부어터진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말한 대로 문을 나서자마자 냅다 뛰었지. 그럼. 나는 달리고 또 달렸지. 그런데 내가 나처럼 뛰고 있는 한 사람을 따라잡았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뒤에서 습격하는 강도였지 뭔가?” 율법 시대는 모세 언약을 통한 통치를 의미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와 죽음을 계시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하심을 반영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율을 따르도록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율법의 희생 제사들을 통하여 속죄와 구원을 백성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더욱이 율법은 백성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교사가 돼주었다. 율법은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적 지침일 뿐이었다. 이 율법 시대는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십자가의 대속 형벌을 통하여 종식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렘 31:31 율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은 개별적인 죄들을 구체적으로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바로 십계명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십계명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첫째 판의 계명들은 그리스도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둘째 판의 계명들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 요약된 계명들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정의하셨다. 【핵심개념정리】 1 . 율법의 세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2 . 율법에서 십계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율법이 전체적인 죄를 깨닫게 해주는 반면 십계명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개별적인 죄를 인정하게 해준다. 3 .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요약하셨는가? 예수님은 첫째 판의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그리고 둘째 판의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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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3과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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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7과 제사 계명
- 1)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2-3 ……… 2)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 58:13-14 ……… 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 12:8 1800년대 초반 한 소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하여 뉴욕으로 갔다. 소년은 그가 자란 고향 마을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웠었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고 돈을 버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평범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철저하게 신앙 훈련을 받은 것 말고는 오직 인쇄 기술뿐이었다. 그는 뉴욕의 아주 큰 인쇄소에 취직이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주일날까지 일하지 않고는 마칠 수 없는 큰 인쇄 일거리를 맡게 되었다. 그는 그 일거리를 한 번 보고 혼자 말을 했다. “오늘 자정까지 이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쳐야겠군. 주일 날 일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공장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자네는 일자리를 잃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인쇄 원본을 사장에게 넘겨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표정의 사장에게 그는 말했다. “저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주일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 양심을 어기는 것보다 사직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장은 소년의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사장은 다시는 그 소년에게 주일날 근무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소년이 바로 미국의 가장 훌륭한 문학서들을 출판하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하퍼 브라더스(Harper Brothers) 출판사의 설립자 제임스 하퍼(James Harper, 1795. 4. 13. - 1869. 3. 27.)이다. 안식일의 히브리 원어 사바쓰(Sabbath)는 멈추다, 쉬다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쉬셨지만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교리문답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은 엿새 동안만 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삼는 문제에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안식교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에 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신약의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에 구약의 방법과 똑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 부르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일은 여호와에게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날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의 용무는 미리 정리한 후에 세상일과 오락에 관한 말이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종일 거룩하게 쉬면서 공동예배와 기도와 구제를 행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개혁주의 청교도 신학은 이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셋째,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존 칼빈의 견해이다. 칼빈은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주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날이다. 그러나 안식일과 달리 이 날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날이고 안식일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안식일은 휴식하고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격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기쁨과 활동과 기대로 넘치는 날이다. 주일의 특징은 첫 번째 주님의 날에 있었던 사건인 부활을 기리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을 가르치고, 성령을 주고, 그리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주고 승천하셨다. 안식일이 폐지되고 주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초대교회의 예배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십계명의 제사 계명이 안식일만 아니라 다른 날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이 계명은 사실 모든 날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거룩하게 쉬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2-24 【핵심개념정리】 1)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쉬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쉬시는 날에도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2) 안식일과 관련하여 주일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무엇인가?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3) 그리스도인들은 제사 계명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거룩하게 쉬어야 한다.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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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7과 제사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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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6과 제삼 계명
- 1)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 138:2 ……… 2)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신 28:58-59 ……… 3)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계 15:4 1743년 3월 23일 런던에서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가 초연되었을 때 왕이 많은 청중 속에 앉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할렐루야 합창”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합창 가운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라는 가사가 우렁찬 합창 속에 울려 퍼지자 왕이 자리에 일어섰다. 따라서 모든 청중도 일제히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왕과 함께 일어난 사람들은 할렐루야 합창이 다 끝날 때까지 서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작품이 어디에서 연주되든지 “할렐루야 합창”이 울리는 대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서 듣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 음악을 서서 듣는 청중들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제삼 계명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제삼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님의 이 권고는 셋째 계명에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있음을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나타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속성에 걸맞게 바르고 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에는 특별한 의미들이 있다. 엘로힘(Elohim)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엘로힘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성경의 첫머리에 나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엘 엘리온(El Elion)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이기고 멜기세덱을 만날 때 사용되고 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 14:18 야웨(Yaweh)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자존성, 자족성, 영원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속자로 계시하실 때 이 이름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 이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 3:14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Jehovah Jireh)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신다. 이 이름은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4 이 각각의 이름들이 지닌 의미에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의 계명을 어기게 된다. 더욱이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고백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 그 방법을 야고보 사도가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2-25 이 말씀은 신자가 왜 성경을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준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성경 속에서 우리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찾기 위해서이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5-18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 속에 드러나는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게 되는가?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고백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여러 이름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나타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속성에 걸맞게 바르고 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이다. 3) 왜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우리가 끊임없이 성경을 보아야 하는 것은 성경 속에서 우리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 속에 드러나는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이다.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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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6과 제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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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5과 제이 계명
- 1)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신 4:15-16 ……… 2)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6 ……… 3)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 †행 17:28-29 색이 바랜 5센티 가량의 송곳니를 4억 불교도들이 지상의 가장 신성한 것으로 숭배한다. 이 치아는 주전 543년 석가모니를 화장할 때 태운 장작더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800년이 지난 뒤 실론(Ceylon)으로 그 치아를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 날에는 그 치아가 실론의 캔디(Kandy)에 휘황찬란하게 건립된 치아 사원 안의 황금 연꽃 위에 얹혀있다. 황금 연꽃 둘레는 수많은 루비와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해마다 여러 나라에서 10만 여명의 신실한 불교도들이 이 신성한 치아를 바라보려고 찾아온다. 그들은 사원에 금과 은과 보석들의 예물들을 가지고 와 바친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가톨릭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도들이 성물이라고 숭배하고 보관하는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나폴리와 로마의 교회들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머리털. ● 페루기아 대성당(Cathedral Perugia)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 아의 결혼반지. ● 프라토(Prato)의 교회에 안치된 동정녀 마리아의 거룩한 허리띠. ● 나폴리의 산 가우디오소 에파트리찌오 교회와 로마의 백성들의 마리아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젖 방울들을 담은 젖병. ● 주님의 마지막 만찬 때 사용된 대야가 제노아의 성 로렌조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이 새겨진 베로니카의 면사포, 그리고 안드레 사도의 두개골이 모두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돌기둥 속에 보관되어 있다. ● 예수님의 수의 세마포가 투린에 있는 세례 요한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제이 계명은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알맞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적 예배를 통해 섬겨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제이 계명과 제일 계명은 언뜻 비슷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히 다르다. 제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에 대한 예배를 금하신 것이다. 제이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의 어떤 형상이든지 새겨 섬기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4-6 이 계명에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엄중한 경고가 붙을 정도로 심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선지자와 사도가 잘 증언해주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 라고 반문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다”(렘 10:14-15) 라고 단정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행 17:28-29) 하고 주장한다. 칼빈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육체의 속성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어떤 형상이나 형태를 가져야 만족하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례전을 주신 이유가 우리의 그런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주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신성하게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식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어떤 다른 형상을 원하는 것은 아주 무가치한 일로 생각된다. 칼빈의 가르침에 비추어보건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것을 신앙의 가르침과 예배의 영역에 도입할 때마다 우리는 십계명의 제이 계명을 어기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일이 금해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를 높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전심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이 계명은 잘못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킨 자들에게 세세무궁토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핵심개념정리】 1 ) 제일 계명과 제이 계명의 차이는 무엇인가? 제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에 대한 예배를 금하신 것이다. 제이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되 그의 어떤 형상이든지 새겨 섬기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2 ) 왜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는 것이 잘못인가? 그 이유는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된다. 3 ) 어떻게 하나님에게 예배드려야 복을 받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를 높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전심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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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5과 제이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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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4과 제일 계명
- 1)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 28:9 ……… 2)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 3)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힌두교도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물경 3억 3천만에 달하는 신들과 여신들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 세대 당 여덟 신을 섬긴다. 힌두교는 동물의 생명을 신성하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비참하게 가난한 생활을 살면서도 동물들과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동물들을 부양을 한다. 동물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들의 집에서 하인을 둔 부자 주인 노릇을 하며 빈둥빈둥 살아간다. 인도의 4억 5천만 힌두교도들은 거의 7천 5백만에 달하는 소들을 경배하고 섬긴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농작물들을 먹어치우고 해를 주는 원숭이들과 쥐들과 여러 해충들까지도 내버려 둔다고 한다. 제일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는 영역에서 시작한다. 이 계명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2-3 이 말씀은 다른 신이나 현대의 무수한 우상들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섬기는 것도 이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또한 성공, 소유, 명예,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이 말씀을 따르는 태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분은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러한 의무를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는 말씀에 다 담겨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웨 엘로헤카”(Yaweh Eloheka)라고 한다. 우리에게 이 계명을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하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시다. 하나님을 존재하시게 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으시고 스스로 충족하시다. 이렇지 못한 존재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없다. 우리의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완전히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다한 신들을 섬기기보다는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복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1-3 【핵심개념정리】 1) 제일 계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한다. 2)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 말씀을 따르는 태도는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어떻게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하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이다.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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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4과 제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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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3과 십계명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1-2 ……… 2)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1:1 ………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한 사람이 뉴욕의 아주 험악한 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 시간이 꿈 같이 지나갔다. 그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마음을 먹었다. 그곳은 몇 블록 떨어져 있었다. 그의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곳은 해가 지면 아주 거친 곳이야. 밖에서 절대 꾸물거리거나 어정거리면 큰 코 다치는 곳이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그냥 뛰어야 돼.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멈춰서는 안 돼. 알았지.” 그 다음 날 그의 친구들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병문안을 갔다. 그 친구는 얻어맞아 온 몸이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한껏 벌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아니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의 친구가 부어터진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말한 대로 문을 나서자마자 냅다 뛰었지. 그럼. 나는 달리고 또 달렸지. 그런데 내가 나처럼 뛰고 있는 한 사람을 따라잡았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뒤에서 습격하는 강도였지 뭔가?” 율법 시대는 모세 언약을 통한 통치를 의미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와 죽음을 계시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하심을 반영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율을 따르도록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율법의 희생 제사들을 통하여 속죄와 구원을 백성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더욱이 율법은 백성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교사가 돼주었다. 율법은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적 지침일 뿐이었다. 이 율법 시대는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십자가의 대속 형벌을 통하여 종식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렘 31:31 율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은 개별적인 죄들을 구체적으로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바로 십계명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십계명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첫째 판의 계명들은 그리스도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둘째 판의 계명들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 요약된 계명들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정의하셨다. 【핵심개념정리】 1 . 율법의 세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2 . 율법에서 십계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율법이 전체적인 죄를 깨닫게 해주는 반면 십계명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개별적인 죄를 인정하게 해준다. 3 .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요약하셨는가? 예수님은 첫째 판의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그리고 둘째 판의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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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3과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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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2과 기도
- 문98 기도가 무엇인가? 답_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원을 하나님께 고하고 그의 뜻에 합당한 것을 간구하고 죄를 자복하며 그의 자비하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문99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지시하시려고 주신 법칙이 무엇인가? 답_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기도를 지시함에 유용한 것이나 특별히 지시하신 법칙은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니 보통으로 주기도문이라 하는 것이다. 【관련성구】 1)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2)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4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 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습니다.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합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줍니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합니다. 그리고 나는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여론수렴이나 민원접수 수단이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8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뢰를 표현하고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의 표현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14-15 성경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 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의미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죄,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어긴 죄를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날마다 구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요일 1:8-10 【핵심개념정리】 1. 브라더 로렌스는 날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는가? _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 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2.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는가? _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뢰를 표현하고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의 표현이 바로 기도이다. 3.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_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_ 둘째,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_ 셋째,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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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2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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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1과 성례
- 문91 성례가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는가? 답_ 성례가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는 것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베푸는 자의 덕으로 됨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축복함으로 되며 또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자 속에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문92 성례가 무엇인가? 답_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그리스도와 그 새 언약의 유익을 깨닫는 표로써 표시하여 인 쳐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문93 신약의 성례가 무엇인가? 답_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다. 문94 세례가 무엇인가? 답_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합(接合)과 은약(恩約)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조함을 표시하여 인치는 것이다. 문95 세례는 어떠한 사람에게 베푸는가? 답_ 세례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베풀 것이요, 또 입교한 자의 자녀에게 베푸는 것이다. 문96 주의 성찬이 무엇인가? 답_ 주의 성찬은 곧 성례이니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즙을 주며 받는 것으로 그 죽으심을 나타냄이다.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와 정욕으로 참여함이 아니요, 믿음으로써 그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자기의 신령하게 받은 양육과 은혜 중에서 장성함으로 그의 모든 효험을 받음이다. 문97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_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마땅히 주님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것과 주님으로써 양식을 삼는 믿음과 회개와 사랑과 서로 순종함에 대하여 스스로 살 것이니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면 두렵건대 먹고 마시는 것이 정죄함을 자청함이 될 것이다. 【관련성구】 1)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 17:10-11 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3)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19-20 록펠러(John D. Rockefeller, Sr. 1839. 7. 8-1937. 5. 23)는 어렸을 때 힘이 세고 건장했다. 그는 일찍부터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그 한계를 향해 매진했다. 서른셋에 록펠러는 그의 첫 번째 백만 달러를 벌었다. 마흔셋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운영했다. 쉰셋에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고 세계에서 유일한 억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희귀한 질병인 탈모증에 그는 시달리게 되었다. 머리털이 빠지고, 속눈썹과 눈썹이 사라졌다. 그는 몸이 바싹 마른 미이라처럼 오그라들었다. 그의 매주 수입은 백만 달러였다. 그러나 그가 먹는 거라곤 소화 장애 때문에 우유와 파삭파삭한 크래커뿐이었다. 그 메마른 사내는 펜실베이니아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경호원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그에게 인생에서 즐거운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의사들은 입을 모아 그가 일 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신문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해서 그의 사망기사를 미리 써놓고 키득거렸다. 그런데 이런 기나긴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록펠러에게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캄캄한 어느 새벽 그는 밝은 빛이 내려오며 그를 휘감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온 몸이 영적으로 씻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빛이 내려오는 순간 그는 현세에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돈을 내세로 동전 한 닢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깨우침을 받았다. 세상을 사는데 돈이 다가 아니었다. 그는 그 날 새벽 성령을 통해 영적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실로 오랜 만에 어린 아이처럼 오랜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눈뜬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웃음을 되찾았다. 그의 눈은 옛날처럼 밝게 빛났지만 부드러웠다. 그는 여러 교회들에 막대한 헌금을 하여 돕기 시작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어려운 사람들도 무시하지 았다. 그는 록펠러 재단을 설립해서 의약 연구를 하는데 기금을 출연했다. 그 기금으로 페니실린과 다른 특효약들이 개발 되었다. 이제 그는 맛있는 잠을 달게 잤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인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의사들은 록펠러가 쉰 넷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는 아흔여덟까지 살았다.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세 의식을 행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마 28:19 예수님의 이 말씀의 명을 따라 교회는 세례를 행한다. 세례에 관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구원하는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세례다. 성례주의자들은 세례가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이 된다고 주장한다. 세례의 성례와 말씀의 설교를 비교하곤 한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는 귀로 들어가 마음의 믿음을 일깨우고 성장시킨다. 세례는 눈을 통하여 마음에 도달하고 감동시킨다. 둘째, 계약의 표징과 보증으로서의 세례다. 이 견해는 성례전을 하나님의 은혜의 표징과 보증으로 간주한다. 세례는 하나님이 인류와 맺으신 계약을 하나님이 성취하신다는 표징과 보증이 된다. 셋째, 구원의 증거로서의 세례다. 이 견해는 세례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공적인 증거로 주장한다. 세례의 행위는 아무런 직접적인 은혜나 축복을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례를 통하여 중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한 것에 대한 증거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에 대한 사도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세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3-4 세례는 그 자체로 믿음과 헌신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믿음은 세례 없이도 가능하다. 세례는 믿음의 자연적인 열매이고 표시이다.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실제로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례가 입교 내지는 입회 의식이라면 성찬식은 교회 회원임을 계속 나타내고 확인하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로 하나님에게 바쳐진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것의 희생적이고 화해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나게 해준다. 나아가서 이 예식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과 연관성을 상징하고, 그의 재림을 대망하게 한다. 성찬식은 신자들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신자들의 연합과 사랑과 관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성찬식에 참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26-29 우리가 이 말씀대로 성찬식에 참여하면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다시 맡기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세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_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실제로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세례의 세 가지 견해는 무엇인가? _ 첫째, 구원하는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세례다. _ 둘째, 계약의 표징과 보증으로서의 세례다. _ 셋째, 구원의 증거로서의 세례다. 3. 성찬식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 _ 성찬식은 신자들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신자들의 연합과 사랑과 관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성찬식에 참여해야 한다.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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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1과 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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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0과 말씀의 효력
- 문89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가? 답_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특히 강설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신이 효력 있는 방법을 삼아 죄인을 반성시켜 회개하게 하시며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함과 위로를 더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문90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는 방도가 되는가? 답_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게 하려면 마땅히 부지런함과 예비함과 기도함으로써 생각하며 믿음과 사랑을 우리 마음에 두고 행실에 나타낼 것이다. 【관련성구】 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2)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잠 8:34 3)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 4:2 세상에 떠도는 이런 시가 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통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에서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글로 적어 놓으리까? 그리고 안드레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볼까요?" 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를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도마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할까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마태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님에게 수업 계획서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우셨다. _작자 미상 사도 요한은 증거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구원의 역할을 한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의 어려움을 묘사한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치도 없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 주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주를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듣고 믿어야 한다.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에 대한 권면을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도 전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하나님의 말씀의 속성과 능력은 다양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굳은 마음의 반석을 쳐서 부수는 방망이(렘 23:29),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약 1:23-25), 생명으로 자라는 씨앗(눅 8:11), 씨앗을 자라게 하는 비와 눈(사 55:10-11), 영혼의 음식(고전 3:1-2), 꿀(시 19:10), 금과 은(시 119:72), 등불(시 119:105), 불(렘 20:9), 검(히 4:12)의 속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성경뿐만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감동도 동반되어야 한다. 읽거나 선포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방편이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통로가 된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준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핵심개념정리】 1. 구원의 방편은 무엇인가? 읽거나 선포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방편이 된다. 2.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 이외에도 어떤 유익이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딤후 3:16. 3. 복음은 어떤 능력이 있는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롬 1:16.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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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0과 말씀의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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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9과 구원과 결혼
- 문85 우리가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받을 진노의 저주를 피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답_ 우리가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마땅히 받을 진노의 저주를 피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속의 유익을 전하는 여러 가지 나타나는 방법을 힘써 사용하라는 것이다. 문8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무엇인가? 답 _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복음 중에 우리에게 주신 대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그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다. 문87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인가? 답 _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참으로 알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아 자기 죄를 원통히 여기고 미워함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든든하게 결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새로이 순종하는 것이다. 문8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이 무엇인가? 답 _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은 그의 규례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것이 모두 그 택하신 자에게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한다. 【관련성구】 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2)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행 20:21 3)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6-8 지중해에 있는 그리스의 한 외딴섬. 마음만은 청춘인 도나와 스무 살 난 딸 소피 모녀는 바닷가에서 작은 모텔을 경영하며 살고 있다. 결혼식을 앞둔 소피는 엄마가 처녀 시절에 쓴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 자기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남자 세 명에게 엄마의 이름으로 청첩장을 보낸다. 어릴 적 친구들 타냐와 로지가 도착하자 옛 추억에 잠기는 도나. 하지만 곧이어 옛 애인 세 명이 한꺼번에 등장하자 혼란에 빠지는데... 제목이 “어머나, 세상에!”라는 뜻의 뮤지컬 『맘마미아!』의 배경은 그리스의 하얀 섬이다. ‘맘마미아’(Mamma Mia)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내mi 엄마mamma’, 즉 “엄마야!” 하고 놀라는 감탄사이다. 파란 지중해에 떠 있는 하얀 섬. 그 섬에 아빠 없이 살고 있는 두 모녀. 어릴 적 꿈을 접고 미혼모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엄마는 옛 친구들의 방문으로 잠시나마 처녀 시절로 되돌아간다. 결혼을 앞둔 딸은 엄마의 옛 애인들을 불러 자신의 친아버지를 가려내기로 한다. 세 명의 중년 여성과 세 명의 중년 남성이 깜짝 재회를 하면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세 중년 여성은 도나의 침실에서 소녀 시절 결성했던 보컬 그룹 ‘도나와 다이나모스’ 포스터를 꺼내보며 꿈 많고 끼 넘쳤던 옛 시절을 회상한다. 세 아줌마가 10대 소녀로 돌아가 침대 위에서 뛰고 구르며 헤어드라이어와 스노클링 장비를 마이크 삼아 『댄싱 퀸』을 부른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느닷없이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남자가 각기 자기들만의 추억에 잠긴다. 그중에서 샘은 아직도 도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가온 결혼식. 딸의 결혼식 전날 도나가 딸 소피의 머리를 빗어주며 만감이 교차하는 노래 『내 곁을 떠나가네』(Slipping Through My Fingers)를 부르며 눈물에 젖는다. 하지만 소피는 중요한 건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미룬 채 약혼자 스카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생뚱맞은 결혼 무한 연기 발표에 갑자기 주인공을 잃은 하객들은 소란 끝에 샘과 도나를 대신 결혼시키기로 결정한다. 딸의 결혼식에서 엄마가 결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야 되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희귀하고 특이한 데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영적인 특별한 것을 체험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찾아 여기저기 다닌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듣는데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게 되는 믿음은 기묘하거나 특별한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혜의 일상적인 수단을 통해서 생긴다. 그러므로 신실한 신자인지 여부를 알려면 말씀이 선포되는 주일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는지를 물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9). 진정한 성경적 믿음은 지적인 만족을 포함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며 그 믿음은 경건한 무지가 아니라 올바른 지식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믿음은 확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믿음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한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비유해보면 이렇다. 결혼의 첫 단계는 믿음의 첫 번째 요소인 알게 되는 과정에 비유될 수 있다.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상대가 좋은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배우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다. 이 단계에서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결혼의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의 두 번째 요소인 마음의 감동에 비유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단계이다.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결혼의 세 번째 단계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두 남녀는 그 약속이 변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어 믿음의 세 번째 요소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에게 헌신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핵심개념정리】 1.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야 되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업음이라"(행 4:12) 하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2.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듣는데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고 말씀한다. 3. 결혼에 비유해보면 믿음에는 어떤 단계가 있는가? 결혼의 첫 단계는 믿음의 첫 번째 요소인 알게 되는 과정에 비유될 수 있다. 결혼의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의 두 번째 요소인 마음의 감동에 비유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의 세 번째 단계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세 번째 요소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약속하고 주님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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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9과 구원과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