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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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4
    심판의 날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 바깥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날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삶의 환경이다. 날이 덥거나 춥고 가끔은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그저 평범하게 식사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Mario Puzo, 1920년 10월 15일 ~ 1999년 7월 2일)가 집필한 장편 소설. 1969년 3월 10일 출판되었고 출간 직후 무려 67주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고 2년 뒤 1971년까지 미국 내 90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2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제목인 대부(代父/godfather)는 본래 가톨릭 등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의 남자 후견인을 의미하는데, 여기선 마피아 조직의 두목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소설 '대부'(The Godfather)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코니 콜레오네가 결혼식을 한 1945년부터 비토 콜레오네의 뒤를 이은 마이클 콜레오네가 뉴욕을 제패하는 1955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마지막 토요일(26일) 대부의 딸 콘스탄지아 코를레요네의 결혼식에는 이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청첩장을 받았다. 신부의 아버지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롱아일랜드의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었지만 옛 친구나 이웃을 잊는 법이 없었다. 피로연은 자택 안에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었다. 틀림없이 대단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도 막 끝났기 때문에 참전 중인 아들 걱정으로 축제 분위기를 해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전국민 옥쇄를 외치며 항복하지 않는 일본 히로시마에, 3일 뒤 8월 9일 나가사키에 81년 전 당시 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이 들어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마침내 역사적인 출격을 감행한다. 실제 폭탄이 너무나 무거웠던 데다가 가득 채운 연료 때문에 사실상 이륙 중량 초과였으며, 이 때문에 더 충분한 활주 속도를 얻기 위해 티비츠 대령은 활주로 거의 끝에까지 가서야 겨우 이륙을 시켰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에놀라 게이가 이륙을 안하고 계속 달려나가자 활주로 끝에서 충돌하는 것 아니냐며 숨도 못 쉬었다고. 심지어 에놀라 게이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 대위조차도 티비츠(Paul Tibbets, Jr., 1915년 2월 23일 ~ 2007년 11월 1일) 대령이 이륙을 안하자 자신이 조종간을 당길 뻔했다고 술회했다. 이 상황을 히로시마의 시각에서 다시 구성해보면 우선 1945년 8월 6일 아침 7시, B-29 1대(기상관측 임무를 맡은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많은 히로시마 시민들이 고고도에 유유히 떠있는 이 B-29를 목격했다. 공습 경보도 울렸지만 방공호로 대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 시민들은 B-29의 폭격은 보통 수백 대가 들이닥치는 것이고, 한두 대 출현하는 건 정찰 임무 같은 것이라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일본 군부와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미국 공군 폴 티비츠대령이 호위 전투기도 없이 소수의 B-29만 보내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습 작전을 짜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류 최초의 실전 투입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다. 이 빛이 얼마나 강한지 생존자들은 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손으로 앞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였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와 군부는 1945년 8월 10일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계획을 세우면서 조선지도에서 38선을 찾아냈다. 38선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고 남쪽에서는 미군이 항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될수록 조선 북쪽 멀리까지 올라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오키나와 및 필리핀에 있던 미군들이 군함으로 조선에 이르려면 거의 한 달이 걸려야 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부탁한대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미 조선으로 진격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절반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38선에서 멈출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38선 이남이 이북보다 땅덩어리는 조금 작아도 수도 서울 및 인천과 부산 등 큰 항구를 갖고 있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훨씬 더 남쪽까지 내려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하리라 짐작했는데, 소련은 뜻밖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미군이 조선에 들어오지도 않은 터였지만 38선에서 남하를 중지했다. 김장환 목사가 16세가 되는 1950년 6월 25일 전까지... ‘하우스보이’ 김장환 목사 인생역전 이끈 칼 파워스 상사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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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4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3
    칼빈주의 국가 건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했던 신대륙에 1620년 12월 2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칼빈주의 이념에 입각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1630년, 영국 국왕의 칙허를 받아 온 부유한 청교도 1,000명이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존 윈슬롭(John Winthrop, 1588년 1월 12일 - 1649년 3월 26일)이었다. 윈슬롭은 예정설을 주장한 칼빈주의자인데 성경에 근거한 이상적 국가를 만들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620년 런던 지방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매우 신앙심이 두텁고,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 의례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청교도 신앙을 열심히 신봉했다. 1630년 4월 8일 네 척의 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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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2
    미국 청교도 칠면조 미국의 건국 이념과 정치 문화에는 청교도적 개신교 전통이 깊이 스며 있고, 주류 사회 역시 개신교 문화권이 중심을 이룬다. 보수란 무엇일까. “개인의 자유.” 미국 보수의 이념적 출발점이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서 작동하는 사회보다 개개인이 알아서 움직이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단지성이 어느 정치 권력자 한 명 또는 일개 정치 집단보다 낫다는 생각이 보수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자유가 있어야 경쟁이 있고,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추수감사절은 성탄절과 함께 미국의 양대 명절로 꼽히는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븐에 구운 칠면조를 나눠 먹는 것이 전통이다.추수감사절의 핵심은 감사함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매우 미국적인 것이다. 칠면조가 주인공이 되는 전통은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1621년에 맞은 첫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잡아 나눠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북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덩치도 큰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에 주로 먹었던 거위를 대신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미국 땅이 척박해 영국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추수감사절만큼은 없는 살림에도 칠면조를 요리해 다 같이 나눠 먹으며 1년을 무사히 넘긴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추수감사절만큼은 대가족이 모여 앉아 칠면조 고기를 먹으며 굶주리고 힘들었던 조상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66일간의 항해 끝에 1621년 11월 11일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는 케이프코드(Cape Cod)의 프로빈스타운에 입항하였다. 선박을 수리한 후, 1621년 12월 21일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첫 겨울을 맞이한 이민자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그러나 원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농사법과 생존 기술을 배우고, 이듬해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나눈 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유래가 되었다. 칠면조를 뜻하는 영어 ‘터키(turkey)’는 튀르키예(터키) 상인들이 유럽에 들여온 닭(아프리카 뿔닭)과 야생 칠면조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민자들이 부르던 이름이 굳어진 것이다. 미국인들의 칠면조 사랑은 각별하다.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1790년 4월 17일)은 말했다. “다른 새들의 먹이를 빼앗는 흰머리수리가 아니라 농장 도둑에게 용감하게 덤비는 칠면조가 우리의 국조(國鳥)가 돼야 한다.” 미국은 2026년 탄생 250주년을 맞이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년 10월 31일 ~1506년 5월 20일)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당시 15 세기 유럽 국가들은 인도, 중국등 동방과의 해상 무역으로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 그 항로는 주로 지중해를 통한 인도 항해였다. 그러나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 세 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도들의 동방 출입을 가로막았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당시의 통념과는 달리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1세의 지원을 받아, 산타 마리아, 핀타, 니나라는 세 척의 배와 함께 오랜 기간의 항해 끝에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당시 그가 발견했던 이 섬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와틀링섬으로 추정) 바하마(Bahamas) 제도에 위치한 섬이었으며, 신대륙을 인도로 착각했던 콜럼버스는 이 대륙의 원주민을 인도인 즉 '인디언'(India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이 섬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거륵한 구세주(Holy Savior)의 섬이라고 칭하였다.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1492년 10월 12일 오전 2시경은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지(植民地: 본국의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특수한 지배를 받는 지역)화는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시작됐다.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민족이 건너가, 원주민 인디언의 문명을 멸망시키고 유럽 문명과 사회 이식(移植)으로 비롯되었다. 영국의 식민 활동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년 9월 7일 ~ 1603년 3월 24일) 시대에 시작됐다. 엘리자베스 1세는 44년을 통치하며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고, 이 시기는 흔히 엘리자베스 시대로 불린다. 엘리자베스 1세는 수많은 청혼에도 독신을 고집하여 "처녀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엘리자베스 1세에게 헌정되어 영연방 버지니아주(Commonwealth of Virginia)라고 명명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즉위한 국왕 제임스 1세는 1606년, 식민지화 목적을 위하여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를 특허하였다. 1607년, 회사가 보낸 식민지 주민들은 제임스타운에 첫 영구적 영국인들의 정착지를 설립하였다.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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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3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1
    청교도 창세기 "내 인생을 바꾼 건 한 미군 병사의 힘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한 사람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시작됩니다.” 누가 그랬던가. 본향은 원래 잃어버리는 거라고. 잃어버렸기에 영원히 찾아 헤맬 수 있는 거라고.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감 기록은 성경처럼 기억을 지배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You are like light for the whole world. A city built on top of a hill cannot be hidden, and no one would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clay pot. A lamp is placed on a lampstand, where it can give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Make your light shine, so that others will see the good that you do and will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올해 2026년은 대한민국 수립 78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기독교 인물을 소개한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1934-, 92세) 목사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이 겹쳐있다. 김장환 목사(빌리 킴)의 영어 이름 ‘빌리(Billy)’는 6.25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허드렛일)로 일할 때 미군 병사들이 지어준 것이다. 한국전쟁 후 미군 부대에서 일을 도우며 영어를 배웠고, 이때 미국인들이 친근하게 ‘빌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김 목사가 1950년 한국에 온 미군 칼 파워스(Karl Powers, 1928~2013. 9. 21)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 밥존스 대학(Bob Jones University)으로 유학을 갔다. 1959년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당시 ‘빌리 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 그가 1973년 세계적 부흥사 미국 남침례회 목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년 11월 7일 ~ 2018년 2월 21일)의 전도대회 설교 통역을 맡았다.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목사 전도대회’에는 연인원 320만 명이 모였고 한국 개신교계는 하나로 단합했다. 첫날부터 50만 명이 몰려 아현동부터 서울대교(현 마포대교)까지 인파로 채워졌다. 매일 10만 명씩 참가자가 늘어 마지막 6월 3일 예배에는 117만 명이 여의도 5·16 광장을 가득 메웠다. 개신교 신자를 어림잡아 400만으로 계산하던 시절, 닷새간의 전도대회에 연인원 320만 명이 모였다. 개신교 신자는 이 전도대회 이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1980년대를 거치며 1000만 신자 시대를 열었다. 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 못지않게 유명해진 사람이 통역을 맡은 김장환 목사이다. 그래함 목사의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열정적 제스처와 함께 한국어로 옮긴 김 목사의 통역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대회장이었던 한경직 목사는 말했다. "두 빌리(Billy Graham, Billy Kim)는 하나의 영이었습니다." (빌리 킴)김장환 목사는 이 일을 계기로 빌리 그래함 목사와 45년간 우정을 쌓았다. 김장환 목사는 2000년 8월 세계침례교 제19대 총회장에 취임해 2005년까지 전 세계 1억 5천여 명 침례 교인의 리더로 활동했다. 2018년 100세의 그래함 목사 장례식에서 외국인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할 만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위치한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에서 2022년 12월 13일 빌리 킴 홀 개관식이 열렸다.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는 2007년 개관 이래 17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미국의 기독교 명소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William Franklin Graham II, 1952년 7월 14일-) 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말했다. “김장환 목사는 순수 복음만을 전해온 신실한 목회자입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1973년 여의도 집회 때 제 부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최고로 잘했습니다. 그때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에 실수가 있었는데, 김장환 목사가 그걸 잡아주시기도 했습니다.” 김장환 목사의 사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미국과 함께 기독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하나님 축복의 표상이다.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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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 [더굳뉴스] 권순웅 목사 호렙산 불꽃
    권순웅 목사 목회 철학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 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 되어 그의 공약 3R 총회 개혁다시 세우고 존중받게 만들고 모든 목사 장로 애곡 속에 떠나기를 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늦게 오는 것은 저마다 그늘진 사연이 있다. 늦은 것의 쓸쓸함과 고요함과 심란함. 너무 늦게 찾아와 주목받지 못하거나 쓸모없어진 것들. 그러나 누가 그 순서를 정했더라도 더딘 것은 더딘 데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언젠가 소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순웅 목사가 그렇다. 호렙산 불꽃을 보고 뒤돌아선 모세처럼. 2016년 12월 4일 11시 주다산교회 예배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다 일어나고 영상 모니터에 성경 구절이 비치지 않았다. 교인 모두는 성경을 펼쳐 들고 읽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명기 32:7-14 권순웅 목사가 성경을 한 손에 받쳐 들고 강단에 섰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리가 아니라 독수리같이 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광인론(광인이란 말은 그 스스로 지은 말로 미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없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광인론 목회철학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내 목회철학을 이렇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나의 목회철학은 오리지날입니다. 이것은 오리가 지랄하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제가 말씀하는 이 광인론은 절세미인과 같습니다. 절세미인은 절에 세 들어 사는 미친 인간을 말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구호를 외쳤는데 미쳐라였습니다... 우리는 오리 같은 뒤뚱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독수리 같이 날아오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고 바람의 기운을 타면 비상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바람을 탈 때 독수리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독수리 같은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멀리 보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하는 것 같이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본문 신명기 32장 11절과 12절은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암담한 현실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교육에서 일파만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참 안타깝습니다. 저도 아이가 하나뿐이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애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몰랐는데 우리 집사람이 학교에 많이 불려갔습니다. 중3 때 목사의 딸이 노랑머리가 되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계속 감동을 주시는 것은 이삭처럼 모리아산에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녀지간의 인연을 끊고 독수리가 그 새끼를 키우듯이 그냥 던져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데 던져버릴 때 없나 찾았습니다. 그것도 돈 안 들고 말입니다. 탈북자선교회 미션홈이 떠올랐습니다. 중국 신양(허난 성에 있는 도시인데 허난 성은 인구는 가장 많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의 촌 한구석에 있는 곳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너 중국으로 유학가라’고 말했습니다. (큰 웃음) 우리 아이는 북경이나 상해를 생각하고 좋아했습니다. 한번 가볼래 했더니 싱글벙글했습니다. 그 당시 겨울이라 밤이 되면 영하 30도 40도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나도 그곳이 그렇게 어려운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갔더니 화장실이 재래식인데 유리창도 없고 비닐로 휘감아 놓은 곳이었습니다. 영하 30도 40도 되니 볼 일을 보면 그대로 쌓여 탑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해 보니 이게 바로 똥침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숙소는 탈북자나 조선족이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기숙하는 곳이었습니다. 세면은 식당 안에서 물을 데워 얼굴을 씻고 2주에 한번 신양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 목욕탕에 가보니 물이 설렁탕 국물 같습니다. 때가 허옇게 둥둥 떠다녔습니다. 우리 아이가 거기 일 년 있었는데 살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아빠 시키는 대로 다 할테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미국 유학 문을 열어주시고 밥존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컬럼비아 대학교를 거쳐 이번에 총신을 졸업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독수리 같은 훈련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연단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지금 연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고난이 우리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권순웅 목사가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의 형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명문대에 다니던 그는 청운의 꿈을 가진 고시생이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을 했다. 허름한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주변은 가을 산이었다. 단풍색깔도 처량하게 보였다. 친구 어머니의 통곡이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멍하게 장례를 지켜보았다. 끝나고 식사를 했다. 그때 교회 어른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산에 오니 밥맛이 좋다.” 그 한마디가 믿음이 연약한 그에게 비수같이 꽂혔다. 친구 어머니의 애곡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후일 깨달았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셨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아시면서도 우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을 아파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영남대 경제과 재학시절 이념서클을 이끌었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졸업 후 취직해 대기업 마케팅 업무를 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1989년 총신대 신대원에 들어갔다.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한 그는 학교 뒷동산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SPARK(불꽃) 운동’을 목회비전으로 세웠다. SPARK는 S(Scripture 성경) P(Prayer 기도) A(Action 삶) R(Revival 부흥) K(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의 약어다. 그는 보기와 달리 1955년생이라 총신 78회 정도 되어야 하는데 33살 늦깍이 신학생으로 출발해 37살에 졸업한 총신 84회다. 그런 그가 2016년 9월 26일 오후 10시 20분 총회임원 선거로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경선이 이루어진 총회 부서기 선거에서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경쟁자를 제치고 총회 부서기에 당선됐다. 능금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올 가을에 권순웅 목사는 제101회 총회의 New Spark 새 불꽃이 되어 전국 교회와 총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불꽃은 연소(燃燒) 반응 시 빛나는 밝은 바깥 부분이거나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이다. 권순웅 목사는 1992년 5월 서울 방이동 상가건물에 개척했다. 소외된 자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초창기엔 ‘이러다가 교회 문을 닫겠구나’라는 위기감도 들었지만 뿌려진 전도의 씨는 결국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2000년 100명 성도를 넘기더니 이듬해엔 장년만 200명 넘게 출석했다. 그 즈음 이사야서 43장 5절을 통해 확신을 얻은 그는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민족과 세계를 구원하는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려면 좀 더 넓은 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때는 동탄 신도시 발표가 나기 전이었다. 교회 이름도 ‘새술’에서 ‘주님이 많이 낳으신다’는 의미의 “주다산”으로 바꿨다. 2001년 8월 화성시 반월동에서 18가정이 초라한 천막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다 2014년 4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60에 종교부지 2000평 건평 2500평 2500석의 예배당을 최대 저렴하게 최고의 기능을 지향해 세웠다. 그는 교회를 지으면서 건축비 절감을 위해 지하를 파지 않고 세웠다. 그리고 재정 여력이 생기자 옆의 땅을 사들여 지하 공간을 파는 것보다 교회 땅을 더 넓힌 지혜를 발휘했다. 교회에서 좀 떨어진 곳에 32400평의 산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2500명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주다산교회 교인들이 매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한 장짜리 전도지엔 이 같은 축복의 글이 적혀 있다. 권순웅 목사의 매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요약한 것이다. ‘예수 믿으세요’란 소책자나 말 대신 축복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축복전도법이라고 불린다. 효과가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이미 임상실험을 거쳤습니다.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종이 한 장 나눠주고 축복해주는 게 전부지만 10번 이상 계속 만나다 보면 결국 우리 교회 교인이 되더군요.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실 때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불신자와의 최고 접촉점은 바로 축복입니다.” 권순웅 목사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기업체에서는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축복전도법을 굳이 마케팅 개념으로 보자면 탁월한 일대일 마케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도받은 자들을 위해 주다산교회는 셀을 통해 양육을 한다. 또 대공동체 사역을 영적 시스템화하여 연간 진행한다. 신년금식집회, 새기비(새벽기도비전), 블레싱데이, 그리고 매주일 저녁에 드리는 신앙의 명가 세우기 예배, 하나님 나라 금요집회 등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는 역동적인 대그룹사역을 진행한다. 그는 이 중심을 영적리더십으로 보고 있다. 이것으로 주님의 리더십이라는 관점으로 선교학 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예수 스파크셀 리더십 이야기’ ‘스파크 양육교재’ 15권(공저)이 있다. 권 목사는 총신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강의하며 예수 스파크셀 세미나를 연간 2회 진행하면서 전국교회 목회자를 돕고 세우고 있다. 제101회 총회에 뉴 스파크 새 불꽃으로 등장한 총회 부서기 권순웅 목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공약 3R(Reformation 총회개혁, Rebuild 총회 다시 세우기, Respect 총회 존중)을 내세우며 관심을 가지게 된 총회 형편은 어떤가. “이게 총회냐”라는 목사나 장로의 볼멘소리가 가슴을 친다. 그렇다. 이 몰염치한 거짓과 탐욕 만연한 요령과 눈치 온갖 탈법과 불공정이 판치는 곳을 총회라고 할 수 없다고 개탄도 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면서 희망도 가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모두가 그 공범자들이었다. 실은 이 총회도 힘들게 만들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들이 주일마다 한 움큼씩 보태는 성미에 의존해 산다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이 늘어나고 서울역 근처 건물에 세 들어 있다가 지금의 어엿한 건물을 지닌 총회와 총신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총회의 이 모든 것은 그 시절 이영수 목사의 공로가 없었다면 장자교단이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을 것이다. 박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갈려나간 개혁 측의 현실을 보면 감이 잡힐지 모르겠다. 총회가 개교회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하니 노회와 교회도 교인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교인의 노회와 총회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다. 폴란드 공산당이 조직한 반유대주의 축출운동에 의해 1971년 망명한 이후에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11. 19.-)은 나치 박해의 희생자였던 마르틴 니묄러의 사례를 들려준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러 왔다. 니묄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다.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그는 노조와 연관이 없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에는 유대인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잡으러 왔지만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나치는 니묄러를 잡으러 왔지만 그때에는 다른 누군가를 옹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서 총회와 노회와 교회의 크고 작은 불의가 일어날 때 우리가 침묵하고 자신의 안전과 신앙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궁극적으로 위협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전과 신앙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지 않을 신앙의 권리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 일시적인 안전과 보신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양심의 자유와 신앙 인권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본성을 추구하고 지킬 권리가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내가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는 자책보다는 ‘나’와 내 교회를 넘어 ‘우리’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신앙의 바른 삶에 대한 강한 소망이 싹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관이 있는 남원 노봉마을에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계곡의 물을 끌어올려 타고 도는 물레방아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거대한 몸집을 굴리기에는 물이 턱없이 모자라 보이지만 물레방아는 쉼 없이 물을 타고 돈다. 개울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마다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 마다 물레방아 가의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물보라를 흠뻑 뒤집어 남천은 발가벗은 채 얼음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물레방아 주변 대숲에는 물이 흩날려 안개비가 내린다.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간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 “혼불”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은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하나 세울 수 있다면...” 혼불은 일제 강점기 때 사매면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했다.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댓바람 소리와 함께 대실을 건너 노봉 마을과 사매면을 감싸고돈다. 1998년12월 11일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이제 호렙산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느보산에 올라 그 조상들에게 떠났다. 그리고 한낱 소설가도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그처럼 권순웅 목사도 혼을 불사르는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이 되어 그의 공약 3R로 총회를 개혁하고 총회를 다시 세우고 존중받는 총회로 만들고 모든 목사와 장로들의 애곡 속에 떠날 수 있기를 혼불처럼 소망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마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신명기 34:4-8 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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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5
  • [더굳뉴스] 김용대 목사 제110 총회 서기 후보 추천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년 6월 14일~1972년 4월 16일)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팔자 좋은 사내 시마무라의 눈으로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에로틱하게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그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가인의 후예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문화 사명을 이루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인의 후예인 불신자들은 마귀처럼 반역 정신에 물들어 하나님을 대항하고자 과학을 발전시키고 부를 쌓고 문학을 하며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도전해 보려는 바벨탑을 쌓지만 결국 그들의 모든 수고는 언제나 변함없이 실패로 끝난다. 이것이 죄 많은 인류의 역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불신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역하며 바벨탑을 쌓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의 자손 에녹은 365세까지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결국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이는 죽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믿음의 본보기로 제시된다. 에녹의 이야기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20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2025년 5월 24일 한기승 목사가 소천하고 120년 역사의 교회에서 2025년 6월 6일 아들 혼인예식을 치뤘다. 그리고 김용대 목사의 비전은 에녹처럼 하나님 동행하시고 때가 되면 목회 대상인 영광대교회를 떠나 총회 선교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다. 그에게 그런 기회가 느닷없이 왔다. 2025년 9월 23일 충현교회에서 열린 제110회 총회 서기 후보에 추대됐다. 하나님에게 영광 제110회 총회에 영광, 호남에 영광, 오광춘 장로가 목숨을 다해 섬기는 영광대교회에 영광이 될 기적이 일어났다. 할렐루야! 성경은 말씀한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1-24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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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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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4
    심판의 날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 바깥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날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삶의 환경이다. 날이 덥거나 춥고 가끔은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그저 평범하게 식사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Mario Puzo, 1920년 10월 15일 ~ 1999년 7월 2일)가 집필한 장편 소설. 1969년 3월 10일 출판되었고 출간 직후 무려 67주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고 2년 뒤 1971년까지 미국 내 90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2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제목인 대부(代父/godfather)는 본래 가톨릭 등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의 남자 후견인을 의미하는데, 여기선 마피아 조직의 두목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소설 '대부'(The Godfather)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코니 콜레오네가 결혼식을 한 1945년부터 비토 콜레오네의 뒤를 이은 마이클 콜레오네가 뉴욕을 제패하는 1955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마지막 토요일(26일) 대부의 딸 콘스탄지아 코를레요네의 결혼식에는 이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청첩장을 받았다. 신부의 아버지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롱아일랜드의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었지만 옛 친구나 이웃을 잊는 법이 없었다. 피로연은 자택 안에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었다. 틀림없이 대단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도 막 끝났기 때문에 참전 중인 아들 걱정으로 축제 분위기를 해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전국민 옥쇄를 외치며 항복하지 않는 일본 히로시마에, 3일 뒤 8월 9일 나가사키에 81년 전 당시 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이 들어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마침내 역사적인 출격을 감행한다. 실제 폭탄이 너무나 무거웠던 데다가 가득 채운 연료 때문에 사실상 이륙 중량 초과였으며, 이 때문에 더 충분한 활주 속도를 얻기 위해 티비츠 대령은 활주로 거의 끝에까지 가서야 겨우 이륙을 시켰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에놀라 게이가 이륙을 안하고 계속 달려나가자 활주로 끝에서 충돌하는 것 아니냐며 숨도 못 쉬었다고. 심지어 에놀라 게이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 대위조차도 티비츠(Paul Tibbets, Jr., 1915년 2월 23일 ~ 2007년 11월 1일) 대령이 이륙을 안하자 자신이 조종간을 당길 뻔했다고 술회했다. 이 상황을 히로시마의 시각에서 다시 구성해보면 우선 1945년 8월 6일 아침 7시, B-29 1대(기상관측 임무를 맡은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많은 히로시마 시민들이 고고도에 유유히 떠있는 이 B-29를 목격했다. 공습 경보도 울렸지만 방공호로 대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 시민들은 B-29의 폭격은 보통 수백 대가 들이닥치는 것이고, 한두 대 출현하는 건 정찰 임무 같은 것이라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일본 군부와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미국 공군 폴 티비츠대령이 호위 전투기도 없이 소수의 B-29만 보내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습 작전을 짜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류 최초의 실전 투입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다. 이 빛이 얼마나 강한지 생존자들은 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손으로 앞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였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와 군부는 1945년 8월 10일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계획을 세우면서 조선지도에서 38선을 찾아냈다. 38선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고 남쪽에서는 미군이 항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될수록 조선 북쪽 멀리까지 올라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오키나와 및 필리핀에 있던 미군들이 군함으로 조선에 이르려면 거의 한 달이 걸려야 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부탁한대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미 조선으로 진격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절반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38선에서 멈출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38선 이남이 이북보다 땅덩어리는 조금 작아도 수도 서울 및 인천과 부산 등 큰 항구를 갖고 있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훨씬 더 남쪽까지 내려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하리라 짐작했는데, 소련은 뜻밖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미군이 조선에 들어오지도 않은 터였지만 38선에서 남하를 중지했다. 김장환 목사가 16세가 되는 1950년 6월 25일 전까지... ‘하우스보이’ 김장환 목사 인생역전 이끈 칼 파워스 상사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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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4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3
    칼빈주의 국가 건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했던 신대륙에 1620년 12월 2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칼빈주의 이념에 입각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1630년, 영국 국왕의 칙허를 받아 온 부유한 청교도 1,000명이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존 윈슬롭(John Winthrop, 1588년 1월 12일 - 1649년 3월 26일)이었다. 윈슬롭은 예정설을 주장한 칼빈주의자인데 성경에 근거한 이상적 국가를 만들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620년 런던 지방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매우 신앙심이 두텁고,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 의례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청교도 신앙을 열심히 신봉했다. 1630년 4월 8일 네 척의 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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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2
    미국 청교도 칠면조 미국의 건국 이념과 정치 문화에는 청교도적 개신교 전통이 깊이 스며 있고, 주류 사회 역시 개신교 문화권이 중심을 이룬다. 보수란 무엇일까. “개인의 자유.” 미국 보수의 이념적 출발점이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서 작동하는 사회보다 개개인이 알아서 움직이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단지성이 어느 정치 권력자 한 명 또는 일개 정치 집단보다 낫다는 생각이 보수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자유가 있어야 경쟁이 있고,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추수감사절은 성탄절과 함께 미국의 양대 명절로 꼽히는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븐에 구운 칠면조를 나눠 먹는 것이 전통이다.추수감사절의 핵심은 감사함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매우 미국적인 것이다. 칠면조가 주인공이 되는 전통은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1621년에 맞은 첫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잡아 나눠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북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덩치도 큰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에 주로 먹었던 거위를 대신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미국 땅이 척박해 영국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추수감사절만큼은 없는 살림에도 칠면조를 요리해 다 같이 나눠 먹으며 1년을 무사히 넘긴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추수감사절만큼은 대가족이 모여 앉아 칠면조 고기를 먹으며 굶주리고 힘들었던 조상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66일간의 항해 끝에 1621년 11월 11일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는 케이프코드(Cape Cod)의 프로빈스타운에 입항하였다. 선박을 수리한 후, 1621년 12월 21일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첫 겨울을 맞이한 이민자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그러나 원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농사법과 생존 기술을 배우고, 이듬해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나눈 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유래가 되었다. 칠면조를 뜻하는 영어 ‘터키(turkey)’는 튀르키예(터키) 상인들이 유럽에 들여온 닭(아프리카 뿔닭)과 야생 칠면조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민자들이 부르던 이름이 굳어진 것이다. 미국인들의 칠면조 사랑은 각별하다.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1790년 4월 17일)은 말했다. “다른 새들의 먹이를 빼앗는 흰머리수리가 아니라 농장 도둑에게 용감하게 덤비는 칠면조가 우리의 국조(國鳥)가 돼야 한다.” 미국은 2026년 탄생 250주년을 맞이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년 10월 31일 ~1506년 5월 20일)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당시 15 세기 유럽 국가들은 인도, 중국등 동방과의 해상 무역으로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 그 항로는 주로 지중해를 통한 인도 항해였다. 그러나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 세 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도들의 동방 출입을 가로막았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당시의 통념과는 달리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1세의 지원을 받아, 산타 마리아, 핀타, 니나라는 세 척의 배와 함께 오랜 기간의 항해 끝에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당시 그가 발견했던 이 섬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와틀링섬으로 추정) 바하마(Bahamas) 제도에 위치한 섬이었으며, 신대륙을 인도로 착각했던 콜럼버스는 이 대륙의 원주민을 인도인 즉 '인디언'(India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이 섬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거륵한 구세주(Holy Savior)의 섬이라고 칭하였다.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1492년 10월 12일 오전 2시경은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지(植民地: 본국의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특수한 지배를 받는 지역)화는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시작됐다.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민족이 건너가, 원주민 인디언의 문명을 멸망시키고 유럽 문명과 사회 이식(移植)으로 비롯되었다. 영국의 식민 활동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년 9월 7일 ~ 1603년 3월 24일) 시대에 시작됐다. 엘리자베스 1세는 44년을 통치하며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고, 이 시기는 흔히 엘리자베스 시대로 불린다. 엘리자베스 1세는 수많은 청혼에도 독신을 고집하여 "처녀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엘리자베스 1세에게 헌정되어 영연방 버지니아주(Commonwealth of Virginia)라고 명명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즉위한 국왕 제임스 1세는 1606년, 식민지화 목적을 위하여 런던의 버지니아 회사를 특허하였다. 1607년, 회사가 보낸 식민지 주민들은 제임스타운에 첫 영구적 영국인들의 정착지를 설립하였다.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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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3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1
    청교도 창세기 "내 인생을 바꾼 건 한 미군 병사의 힘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한 사람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시작됩니다.” 누가 그랬던가. 본향은 원래 잃어버리는 거라고. 잃어버렸기에 영원히 찾아 헤맬 수 있는 거라고.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감 기록은 성경처럼 기억을 지배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You are like light for the whole world. A city built on top of a hill cannot be hidden, and no one would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clay pot. A lamp is placed on a lampstand, where it can give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Make your light shine, so that others will see the good that you do and will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올해 2026년은 대한민국 수립 78주년이다. 이 기간 신생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기독교 인물을 소개한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1934-, 92세) 목사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이 겹쳐있다. 김장환 목사(빌리 킴)의 영어 이름 ‘빌리(Billy)’는 6.25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허드렛일)로 일할 때 미군 병사들이 지어준 것이다. 한국전쟁 후 미군 부대에서 일을 도우며 영어를 배웠고, 이때 미국인들이 친근하게 ‘빌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김 목사가 1950년 한국에 온 미군 칼 파워스(Karl Powers, 1928~2013. 9. 21)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 밥존스 대학(Bob Jones University)으로 유학을 갔다. 1959년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당시 ‘빌리 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 그가 1973년 세계적 부흥사 미국 남침례회 목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년 11월 7일 ~ 2018년 2월 21일)의 전도대회 설교 통역을 맡았다.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목사 전도대회’에는 연인원 320만 명이 모였고 한국 개신교계는 하나로 단합했다. 첫날부터 50만 명이 몰려 아현동부터 서울대교(현 마포대교)까지 인파로 채워졌다. 매일 10만 명씩 참가자가 늘어 마지막 6월 3일 예배에는 117만 명이 여의도 5·16 광장을 가득 메웠다. 개신교 신자를 어림잡아 400만으로 계산하던 시절, 닷새간의 전도대회에 연인원 320만 명이 모였다. 개신교 신자는 이 전도대회 이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1980년대를 거치며 1000만 신자 시대를 열었다. 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 못지않게 유명해진 사람이 통역을 맡은 김장환 목사이다. 그래함 목사의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열정적 제스처와 함께 한국어로 옮긴 김 목사의 통역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대회장이었던 한경직 목사는 말했다. "두 빌리(Billy Graham, Billy Kim)는 하나의 영이었습니다." (빌리 킴)김장환 목사는 이 일을 계기로 빌리 그래함 목사와 45년간 우정을 쌓았다. 김장환 목사는 2000년 8월 세계침례교 제19대 총회장에 취임해 2005년까지 전 세계 1억 5천여 명 침례 교인의 리더로 활동했다. 2018년 100세의 그래함 목사 장례식에서 외국인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할 만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위치한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에서 2022년 12월 13일 빌리 킴 홀 개관식이 열렸다.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는 2007년 개관 이래 17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미국의 기독교 명소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William Franklin Graham II, 1952년 7월 14일-) 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말했다. “김장환 목사는 순수 복음만을 전해온 신실한 목회자입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1973년 여의도 집회 때 제 부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최고로 잘했습니다. 그때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에 실수가 있었는데, 김장환 목사가 그걸 잡아주시기도 했습니다.” 김장환 목사의 사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미국과 함께 기독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하나님 축복의 표상이다.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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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 [더굳뉴스] 권순웅 목사 호렙산 불꽃
    권순웅 목사 목회 철학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 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 되어 그의 공약 3R 총회 개혁다시 세우고 존중받게 만들고 모든 목사 장로 애곡 속에 떠나기를 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늦게 오는 것은 저마다 그늘진 사연이 있다. 늦은 것의 쓸쓸함과 고요함과 심란함. 너무 늦게 찾아와 주목받지 못하거나 쓸모없어진 것들. 그러나 누가 그 순서를 정했더라도 더딘 것은 더딘 데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언젠가 소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순웅 목사가 그렇다. 호렙산 불꽃을 보고 뒤돌아선 모세처럼. 2016년 12월 4일 11시 주다산교회 예배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다 일어나고 영상 모니터에 성경 구절이 비치지 않았다. 교인 모두는 성경을 펼쳐 들고 읽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명기 32:7-14 권순웅 목사가 성경을 한 손에 받쳐 들고 강단에 섰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리가 아니라 독수리같이 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광인론(광인이란 말은 그 스스로 지은 말로 미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없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광인론 목회철학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내 목회철학을 이렇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나의 목회철학은 오리지날입니다. 이것은 오리가 지랄하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제가 말씀하는 이 광인론은 절세미인과 같습니다. 절세미인은 절에 세 들어 사는 미친 인간을 말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구호를 외쳤는데 미쳐라였습니다... 우리는 오리 같은 뒤뚱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독수리 같이 날아오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고 바람의 기운을 타면 비상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바람을 탈 때 독수리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독수리 같은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멀리 보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하는 것 같이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본문 신명기 32장 11절과 12절은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암담한 현실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교육에서 일파만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참 안타깝습니다. 저도 아이가 하나뿐이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애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몰랐는데 우리 집사람이 학교에 많이 불려갔습니다. 중3 때 목사의 딸이 노랑머리가 되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계속 감동을 주시는 것은 이삭처럼 모리아산에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녀지간의 인연을 끊고 독수리가 그 새끼를 키우듯이 그냥 던져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데 던져버릴 때 없나 찾았습니다. 그것도 돈 안 들고 말입니다. 탈북자선교회 미션홈이 떠올랐습니다. 중국 신양(허난 성에 있는 도시인데 허난 성은 인구는 가장 많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의 촌 한구석에 있는 곳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너 중국으로 유학가라’고 말했습니다. (큰 웃음) 우리 아이는 북경이나 상해를 생각하고 좋아했습니다. 한번 가볼래 했더니 싱글벙글했습니다. 그 당시 겨울이라 밤이 되면 영하 30도 40도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나도 그곳이 그렇게 어려운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갔더니 화장실이 재래식인데 유리창도 없고 비닐로 휘감아 놓은 곳이었습니다. 영하 30도 40도 되니 볼 일을 보면 그대로 쌓여 탑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해 보니 이게 바로 똥침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숙소는 탈북자나 조선족이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기숙하는 곳이었습니다. 세면은 식당 안에서 물을 데워 얼굴을 씻고 2주에 한번 신양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 목욕탕에 가보니 물이 설렁탕 국물 같습니다. 때가 허옇게 둥둥 떠다녔습니다. 우리 아이가 거기 일 년 있었는데 살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아빠 시키는 대로 다 할테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미국 유학 문을 열어주시고 밥존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컬럼비아 대학교를 거쳐 이번에 총신을 졸업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독수리 같은 훈련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연단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지금 연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고난이 우리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권순웅 목사가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의 형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명문대에 다니던 그는 청운의 꿈을 가진 고시생이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을 했다. 허름한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주변은 가을 산이었다. 단풍색깔도 처량하게 보였다. 친구 어머니의 통곡이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멍하게 장례를 지켜보았다. 끝나고 식사를 했다. 그때 교회 어른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산에 오니 밥맛이 좋다.” 그 한마디가 믿음이 연약한 그에게 비수같이 꽂혔다. 친구 어머니의 애곡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후일 깨달았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셨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아시면서도 우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을 아파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영남대 경제과 재학시절 이념서클을 이끌었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졸업 후 취직해 대기업 마케팅 업무를 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1989년 총신대 신대원에 들어갔다.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한 그는 학교 뒷동산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SPARK(불꽃) 운동’을 목회비전으로 세웠다. SPARK는 S(Scripture 성경) P(Prayer 기도) A(Action 삶) R(Revival 부흥) K(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의 약어다. 그는 보기와 달리 1955년생이라 총신 78회 정도 되어야 하는데 33살 늦깍이 신학생으로 출발해 37살에 졸업한 총신 84회다. 그런 그가 2016년 9월 26일 오후 10시 20분 총회임원 선거로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경선이 이루어진 총회 부서기 선거에서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경쟁자를 제치고 총회 부서기에 당선됐다. 능금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올 가을에 권순웅 목사는 제101회 총회의 New Spark 새 불꽃이 되어 전국 교회와 총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불꽃은 연소(燃燒) 반응 시 빛나는 밝은 바깥 부분이거나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이다. 권순웅 목사는 1992년 5월 서울 방이동 상가건물에 개척했다. 소외된 자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초창기엔 ‘이러다가 교회 문을 닫겠구나’라는 위기감도 들었지만 뿌려진 전도의 씨는 결국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2000년 100명 성도를 넘기더니 이듬해엔 장년만 200명 넘게 출석했다. 그 즈음 이사야서 43장 5절을 통해 확신을 얻은 그는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민족과 세계를 구원하는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려면 좀 더 넓은 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때는 동탄 신도시 발표가 나기 전이었다. 교회 이름도 ‘새술’에서 ‘주님이 많이 낳으신다’는 의미의 “주다산”으로 바꿨다. 2001년 8월 화성시 반월동에서 18가정이 초라한 천막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다 2014년 4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60에 종교부지 2000평 건평 2500평 2500석의 예배당을 최대 저렴하게 최고의 기능을 지향해 세웠다. 그는 교회를 지으면서 건축비 절감을 위해 지하를 파지 않고 세웠다. 그리고 재정 여력이 생기자 옆의 땅을 사들여 지하 공간을 파는 것보다 교회 땅을 더 넓힌 지혜를 발휘했다. 교회에서 좀 떨어진 곳에 32400평의 산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2500명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주다산교회 교인들이 매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한 장짜리 전도지엔 이 같은 축복의 글이 적혀 있다. 권순웅 목사의 매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요약한 것이다. ‘예수 믿으세요’란 소책자나 말 대신 축복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축복전도법이라고 불린다. 효과가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이미 임상실험을 거쳤습니다.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종이 한 장 나눠주고 축복해주는 게 전부지만 10번 이상 계속 만나다 보면 결국 우리 교회 교인이 되더군요.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실 때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불신자와의 최고 접촉점은 바로 축복입니다.” 권순웅 목사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기업체에서는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축복전도법을 굳이 마케팅 개념으로 보자면 탁월한 일대일 마케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도받은 자들을 위해 주다산교회는 셀을 통해 양육을 한다. 또 대공동체 사역을 영적 시스템화하여 연간 진행한다. 신년금식집회, 새기비(새벽기도비전), 블레싱데이, 그리고 매주일 저녁에 드리는 신앙의 명가 세우기 예배, 하나님 나라 금요집회 등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는 역동적인 대그룹사역을 진행한다. 그는 이 중심을 영적리더십으로 보고 있다. 이것으로 주님의 리더십이라는 관점으로 선교학 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예수 스파크셀 리더십 이야기’ ‘스파크 양육교재’ 15권(공저)이 있다. 권 목사는 총신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강의하며 예수 스파크셀 세미나를 연간 2회 진행하면서 전국교회 목회자를 돕고 세우고 있다. 제101회 총회에 뉴 스파크 새 불꽃으로 등장한 총회 부서기 권순웅 목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공약 3R(Reformation 총회개혁, Rebuild 총회 다시 세우기, Respect 총회 존중)을 내세우며 관심을 가지게 된 총회 형편은 어떤가. “이게 총회냐”라는 목사나 장로의 볼멘소리가 가슴을 친다. 그렇다. 이 몰염치한 거짓과 탐욕 만연한 요령과 눈치 온갖 탈법과 불공정이 판치는 곳을 총회라고 할 수 없다고 개탄도 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면서 희망도 가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모두가 그 공범자들이었다. 실은 이 총회도 힘들게 만들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들이 주일마다 한 움큼씩 보태는 성미에 의존해 산다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이 늘어나고 서울역 근처 건물에 세 들어 있다가 지금의 어엿한 건물을 지닌 총회와 총신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총회의 이 모든 것은 그 시절 이영수 목사의 공로가 없었다면 장자교단이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을 것이다. 박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갈려나간 개혁 측의 현실을 보면 감이 잡힐지 모르겠다. 총회가 개교회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하니 노회와 교회도 교인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교인의 노회와 총회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다. 폴란드 공산당이 조직한 반유대주의 축출운동에 의해 1971년 망명한 이후에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11. 19.-)은 나치 박해의 희생자였던 마르틴 니묄러의 사례를 들려준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러 왔다. 니묄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다.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그는 노조와 연관이 없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에는 유대인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잡으러 왔지만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나치는 니묄러를 잡으러 왔지만 그때에는 다른 누군가를 옹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서 총회와 노회와 교회의 크고 작은 불의가 일어날 때 우리가 침묵하고 자신의 안전과 신앙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궁극적으로 위협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전과 신앙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지 않을 신앙의 권리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 일시적인 안전과 보신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양심의 자유와 신앙 인권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본성을 추구하고 지킬 권리가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내가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는 자책보다는 ‘나’와 내 교회를 넘어 ‘우리’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신앙의 바른 삶에 대한 강한 소망이 싹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관이 있는 남원 노봉마을에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계곡의 물을 끌어올려 타고 도는 물레방아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거대한 몸집을 굴리기에는 물이 턱없이 모자라 보이지만 물레방아는 쉼 없이 물을 타고 돈다. 개울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마다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 마다 물레방아 가의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물보라를 흠뻑 뒤집어 남천은 발가벗은 채 얼음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물레방아 주변 대숲에는 물이 흩날려 안개비가 내린다.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간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 “혼불”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은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하나 세울 수 있다면...” 혼불은 일제 강점기 때 사매면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했다.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댓바람 소리와 함께 대실을 건너 노봉 마을과 사매면을 감싸고돈다. 1998년12월 11일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이제 호렙산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느보산에 올라 그 조상들에게 떠났다. 그리고 한낱 소설가도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그처럼 권순웅 목사도 혼을 불사르는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이 되어 그의 공약 3R로 총회를 개혁하고 총회를 다시 세우고 존중받는 총회로 만들고 모든 목사와 장로들의 애곡 속에 떠날 수 있기를 혼불처럼 소망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마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신명기 34:4-8 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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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5
  • [더굳뉴스] 김용대 목사 제110 총회 서기 후보 추천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년 6월 14일~1972년 4월 16일)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팔자 좋은 사내 시마무라의 눈으로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에로틱하게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그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가인의 후예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문화 사명을 이루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하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인의 후예인 불신자들은 마귀처럼 반역 정신에 물들어 하나님을 대항하고자 과학을 발전시키고 부를 쌓고 문학을 하며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도전해 보려는 바벨탑을 쌓지만 결국 그들의 모든 수고는 언제나 변함없이 실패로 끝난다. 이것이 죄 많은 인류의 역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불신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역하며 바벨탑을 쌓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의 자손 에녹은 365세까지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결국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이는 죽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믿음의 본보기로 제시된다. 에녹의 이야기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20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2025년 5월 24일 한기승 목사가 소천하고 120년 역사의 교회에서 2025년 6월 6일 아들 혼인예식을 치뤘다. 그리고 김용대 목사의 비전은 에녹처럼 하나님 동행하시고 때가 되면 목회 대상인 영광대교회를 떠나 총회 선교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다. 그에게 그런 기회가 느닷없이 왔다. 2025년 9월 23일 충현교회에서 열린 제110회 총회 서기 후보에 추대됐다. 하나님에게 영광 제110회 총회에 영광, 호남에 영광, 오광춘 장로가 목숨을 다해 섬기는 영광대교회에 영광이 될 기적이 일어났다. 할렐루야! 성경은 말씀한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1-24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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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3
  • [더굳뉴스] 배광식 증경총회장 웨신대 제12대 총장취임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소망하랴. 먼 곳의 불빛은 우리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어느덧 여름은 깊어 들이든 뫼이든 숲이든 모두 다 파랗다. 총회 우에 오뚝히 서서 여우가 짖는다. 염치없게 짖는다. 빈 믿음에 마른 돈 태우는 연기 가늘게 가늘게 떠오른다. 그대여 우리들 머리 숙이고 깊이 기도할 그때가 왔다. 하지만 세상에 돈이 좋고 명예가 좋은 줄 모르고 살았을까. 세속적 욕망이 드세질 때, 누구든 휘청거리며 밤거리를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것 없어 세상에서 홀대받을 때, 교인의 마지막 보루는 오직 ‘별빛’뿐이었다. 저 별빛에게 부끄럽지 않는 한, 교인은 아직 진 것이 아니다. 별만큼 깨끗하지는 못해도 지상에서 가장 덜 더러운 사람이 되겠다, 교인은 마음을 표백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가 2025년 7월 15일(화) 오전 11시 제12대 총장 취임 감사예배를 용인 본교 대강당에서 드렸다. 제12대 총장으로 취임한 배광식 박사는 울산 대암교회 원로 목사로서 풍부한 목회의 영력과 예장합동 제106회 총회장의 정치력 및 대학교수의 경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적임자가 될 것이다. 또한 울산 기도의 바위 배광식 목사는 호남의 별이 된 한기승 목사의 사돈이기도 하다. 배광식 총장은 취임사에서 말했다. "변화와 도전의 시대 속에서 신학교육의 본질을 지키며 다음 세대를 위한 신학, 목회, 교육의 혁신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교회와 사회에 꼭 필요한 일꾼을 세우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은퇴 이후의 자리가 아니라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꼭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신학교로 만들겠습니다. 대암교회를 기도로 세웠듯이 기도로 세워가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이어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은 격려사에서 또박또박 말했다. "목자의 심정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총신대학교에서 8년, 대신대학교에서 10년 등 총 18년을 강의했던 교수님으로 후학들을 잘 지도할 적임자이십니다.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셨으며 대암교회에 시무하실 때는 주일예배 등 주일에 모든 일정을 마치면 반드시 산에 올라 개인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신 기도의 사도이십니다." 대신대학교 최대해 총장은 힘이 되는 격려사를 했다. "배 박사님은 교육에 프로이십니다. 감사한 것은 대신대가 힘들었을 때 강사료를 다시 대신대에 돌려준 참교육자이십니다. 후배들을 사랑하시는 그 귀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웨신대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영성과 지성과 은혜의 전당이 될 것을 확신하며 격려를 드립니다." 배광식 총장은 총신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계명대학교 대학원, 영국 에버딘대학교, 남아공 프리토리아대학원, 영국 셰필드대학원 등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울산신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칼빈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하는 등 목회자이며 학자이고 교단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CTS기독교TV 공동대표이사, 국회조찬기도회 지도 목사 등을 통해 한국 기독교계의 큰 획을 남긴 믿음과 영성의 길을 걸어왔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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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1
  • [더굳뉴스] 강진상 목사 초 한 대의 삶
    거룩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푸른 바닷속으로 뜨겁게. 바닷가에 선교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흑발의 젊은이와 백발의 늙은이가.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저 은혜로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저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이렇게 황홀하게.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말했다. "삶과 나이에 따르면, 모든 하루하루는 단 한 번밖에 오지 않기에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을 얻는다. 존중받지 못할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도 없다. 순간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은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누리려는 강렬한 긴장을 느낀다. 이런 긴장 없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때론 상실감과 후회 속에서 공허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위험도 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인생엔 여러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 여행은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말년의 단계를 밟아 죽음에 이른다. 시기마다 반드시 해결할 과제가 있고 이룩할 가치가 있으며 넘어야 할 위기가 있다. 하나의 시기를 완전히 살아내지 못하면, 즉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성취하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평생 이룩한 가치를 지켜낼 때, 노년의 삶은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진정한 것과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 속에서 통찰, 용기, 평정, 자존 같은 고상한 가치를 실현하는 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고 위기를 건너며 가치를 이룩하지 않으면 누구도 삶의 달콤함, 그 눈부신 기쁨을 알 수 없다." 1968년 10월 1일 로마노 과르디니는 83세로 지인들 기도 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다음날 지인들이 모여 그의 부고 문구에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 논의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 대학교수, 신학자, 종교철학자, 교육자, 청년운동 지도자, 전례개혁자였다. 하지만 그 어느 호칭도 그의 활동과 인물됨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지인들은 '로마노 과르디니-주님의 종(Diener des Herrn)'으로 결정했다. 한평생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받들어 모시며 살았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4시 무렵 양산의 평산교회 카페 비 마이 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에 앉아 있었다. 쾌적한 카페의 창가 햇살을 받으며 핫초코를 홀짝였다. 아파트 단지 초입 대로변에 세워진 평산교회는 4면이 각기 다른 모습을 내는 독특한 구조로 건축됐다.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교회 이미지를 탈피하고 주민들에게 거부감 없는 교회로 다가서기 위한 세심한 관심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산교회는 교인들에게 필요한 시설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배려도 있다. 그것은 교인과 지역 이웃을 향한 목회자의 애정과 사랑이 교회건축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누구든 언제나 교회시설을 이용하거나 지나갈 수 있도록 사방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 바로 뒤편 아파트단지 주민의 주차장 이용과 교회시설 이용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 마당과 아파트를 잇는 계단도 별도로 설치했다. 교회 후문을 통해 1층 교회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황토찜질방이 있다. 성인 10여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황토찜질방은 여느 찜질방 못지않은 좋은 황토와 탈의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주민들이 휴식하며 교제할 수 있는 카페도 마련돼 있다. 일천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진 본당은 극장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교인들에게 편안한 예배와 기도 목적 외에도 평일에는 지역주민을 위해 결혼식장과 발표회 등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3층 유아실은 아이들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화장실과 모유 수유를 위한 별도의 수유실도 마련했다. 4층에는 헬스장도 있다. 이 역시 지역주민을 위한 체력단련장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강진상 목사는 교회 설립 당시 평산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역을 품는 교회 사명을 위해 문화와 복지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을 섬기는 노력 이상으로 선교와 전도를 위한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5시 강진상 목사와의 대담 시간이 돼 카페를 나와 교회에 들어서니 당회장실로 안내를 받았다. 평산교회는 3월 18일 토요일 교회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은퇴식에 강진상 목사도 포함되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의 은퇴는 아직 3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강진상 목사의 은퇴가 아니라 목회에 대한 대담을 나누게 되었다. 부산과 울산 두 개의 광역시를 사이에 둔 경남 양산시에 지역 최대 규모의 교회가 있었다. - "와서 보니 목사님 큰 역사를 이루셨네요." 강진상 목사 - "아니 뭘." -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는데 목사님 은퇴식으로 잘못 알고 미리 찾아뵙게 됐습니다. 지금 평산교회에 몇 년 되신 겁니까." 강진상 목사 - "올해 35년 됐습니다." - "아. 그러시구나. 그럼 평산교회만 35년 되신 거죠." 강진상 목사 - "네 그렇습니다. 이 교회 개척을 35년 전 1988년에 했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 "총신 몇 회세요." 강진상 목사 - "저는 총신을 좀 늦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86회입니다. 제 또래 목사들은 76회죠. 저는 10년 늦게 시작한 거죠." 사모님이 차를 내오셨다. - "어떻게 평산에 평산교회를 시작하시게 됐습니까." 강진상 목사 - "제가 본래 여기 있기 전에 월평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인데 교회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부산의 전포중앙교회 오세광 목사님 그분이 담임으로 계실 때 제가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오 목사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강 전도사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는데 이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분이 그런 도전적인 말씀을 하셔서 계기가 된 것입니다. 5년 뒤 주인이 집을 내달라고 하고 그린벨트이고 수원지 보호지역이라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이쪽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는 1988년 1월 전도사 시절, 양산군 정관면 월평리 280번지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1992년 2월 24일 현재의 양산시 평산동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이전하면서 이름을 평산교회로 바꿨다. 부산시 전포동 소재 전포중앙교회의 오세광 목사의 권면과 후원으로 시작됐다. 평산교회는 개척 초창기부터 제자훈련을 실시하며 알찬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교인 구성원 70% 이상이 초신자들의 회심으로 이뤄져 있을 정도로 건강한 교회상을 세웠다. 강진상 목사의 목회관은 예배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 교육하는 공동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지난 2013년 9월 1일, 한국일보가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자랑스런 한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금 기부, 지역봉사 활동 등 지역공동체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종으로서의 헌신적인 목회를 일관했다. 강진상 목사는 기도로 교회를 세우고 한평생 나눔과 섬김을 실천했다. - "신학을 늦게 하셨다고 했는데 그 전에 다른 일을 하셨습니까." 강진상 목사 -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이 강희성 목사님이셨고 저는 좋은 평신도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부산의 모 교회 안수집사로 있다가 신학을 하게 됐습니다. (아들은 군목 중령으로 연무대교회 담임목사이고 딸은 결혼해 미국 워싱턴장로교회 출석하고 있다.) 늦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평신도를 훈련해 사역을 같이 했습니다.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많이 해왔습니다. 노인대학, 지역아동센터, 장애아 사역, 교회 앞 카페도 기아대책(飢餓對策, Food for the Hungry, FH), 공정무역(개발도상국의 농가에게 덤핑가격이 아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해당 국가의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 운동) 카페 3호점 ‘비마이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입니다. 선교사들 파송해서 커피콩을 거두어 오면 우리가 공정무역 패어 트레이드(fair trade)라고 해서 팔아서 남는 이익금을 선교하는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행사들이 있으면 저희 교회에서 후원을 많이 합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라 불교권 파송 선교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밖에 모르고 목회만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데 노회장을 하고 교회 연륜이 있다 보니까 노회도 섬겨야 되고 총회도 섬기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총회도 가게 되고 총대가 아니라도 영남지역 총신 운영이사로 갔을 때입니다. 우리 노회에 유명한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정연철 목사님, 배광식 목사님, 이성택 목사님, 다 총회 일하신 분들 가서 총회 일 하시도록 보내드리고 우리는 노회 섬기고 그랬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총신 운영이사장을 하게 되면서 총회를 섬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지역 정서도 부정적이라서 교회나 목사의 존재는 뭐랄까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 의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불교와 다른 차별화 스님과 목사가 뭐가 다른가. 교회 다니는 권사님과 장로님하고 절에 다니는 보살이 뭐가 다른가. 좀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교회에서 하기 힘든 지역봉사를 참 많이 해왔죠.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서 인식을 새롭게 할 일을 많이 했습니다." 1988년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기도로 교회를 시작한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불교 영향력이 큰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미 타 교단에서 몇 번이나 교회를 세웠다가 철수를 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이라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강진상 목사는 25년 전 불모지와 같던 경남 양산 월평리에 내려와 부부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을 주민이 되는 것이었다. 사모님은 남편 신대원 학비를 벌기 위해 할머니들과 밤늦게까지 채소를 다듬으며 농촌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고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강진상 목사는 어른들을 만나기에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이 된 부부에게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은 안 나와도 아이들이 교회 다니는 것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교육하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92년 선교원을 시작으로 처음 사역이 어린이 전도였다. 당시 월평초등학교 전교생 80명 중 72명이 교회에 나올 정도였다. 그때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이루어 청년부를 이끌었다고 한다. 잠시 알프스에서 자라는 13가지 허브 추출물이 들어있다는 맛이 깔끔한 리콜라 허브차를 나누었다. - "실례지만 교세가 얼마나 되십니까." 강진상 목사 - "코로나로 좀 침체됐지만 장년은 7백 명 정도이고 주일학교는 3백 명 정도입니다. 교세가 천 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이 회복은 됐지만 저희 교인 70프로는 전도돼서 오신 분들입니다. 수평 이동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전도해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 "처음 보고 규모에 깜짝 놀랐는데 여기에 터를 잡으신 건 언제입니까." 강진상 목사 - "네 번 옮겨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짓고 입당을 했죠. 땅은 주차장까지 해서 2천 평입니다. 2013년에 비전센터를 지었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지은 뒤 2013년 평산교회 비전센터의 완공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20평을 지역사회에 기부해 2~3층에서 강의실과 지역사회를 위한 결혼식장, 주민자치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 "총회를 섬기신 일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진상 목사 - "총회를 위한 일이라면 총신 운영이사회를 10년 넘게 섬겼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운영이사회 이사 노회 1년 분담금이 그 당시 3백만 원이었습니다. 그걸 낼만한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회에서 지원해주지 않거든요. 자비 부담해야 되는데 선배 목사님들이 저한테 총신 운영이사회 좀 섬기라고 등 떠미는 바람에 떠밀려 하게 된 겁니다. 이사로 섬기다 이사장도 맡게 됐습니다. 요즘 총회를 위해 하는 일은 정치부 부장입니다. 총회다음세대운동본부 서기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생겼지만 세계개혁주의부흥협회 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교단과 교류하고 세계교류협회가 있지만 친선관계라면 우리 교단이 갖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주거나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구입니다." - "우리 총회를 위해서 정말 매우 중요한 부분들인데 총신운영이사장이라든지 중요한 직책을 잘 감당해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강진상 목사 - "미력하지만 그래도 호불호가 있지만 권순웅 총회장님 이번 3월 18일 토요일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그분은 총신(김영우가 총회와 총신을 분탕질하던 2010년대) 문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삶에서 실현될 때 개혁이 되는 것이며 부흥이 되는 것'이라 외친 제102회 총회) 서기였고 제가 총신운영이사회 이사장이라 그때부터 같이 비전과 꿈을 갖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총회장 되시면서 제가 정치부서기를 맡게 됐죠." - "권순웅 목사님 그 당시 참 열정적으로 뛰어다니셨죠." 강진상 목사 - "돌이켜보면 민감한 부분이지만 그 당시 개인 돈을 써가면서 TF팀을 30회 이상 모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SRT 고속열차 한 달 요금이 2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울산역에 주차하고 서울 올라가서 일보고 내려오고 했습니다.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랬는데 전계헌 총회장이 항상 외부에 갔다오면 하신 이야기가 교단 쪼개진다고 걱정할 정도로 사실 위기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이 그대로 가면 자칫하면 교단 쪼개질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총신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 "총신이 사유화되는 거였습니다." 강진상 목사 - "결론적으로 그 당시 (김영우를 상대로 한) 총신 문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고 했죠. 여러 가지 과정이 있었지만 총신이 그대로 있고 총회가 갈라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사실 당시 김영우 목사가 총회 부총회장 출마를 안 했거나 아니면 총장 사표라도 냈다면 총신 사유화 되는 거였다. 난공불락의 꾀돌이가 박무용 목사에게 건넨 제 꾀에 빠져 법정 구속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다. 강진상 목사 - "역사가 훗날 평가하겠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이기고 돌아온 장군을 역적으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해한다고 남들은 다 풀어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사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에 임시 이사가 들어오는 건 맞지만 정관이 살아 있으면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로 이사를 세울 수밖에 없어요. 사분위(사립학교에서 구성원 간 분쟁 등으로 인해 학교법인의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 교육부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한 후 정상화하여 정이사 체제로 환원하는데 그 과정에서 임시이사의 선임과 해임 등을 심의하는 정부 기관)도 그 정관을 넘어설 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앞에 있었던 구 이사들(김영우 지지 이사)이 김영우와 정관을 개정하면서 교단의 목사 장로 조항을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자로 바꾸자 여자 이사가 들어오게 되고 아무나 이사가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문구가 이사 선정 기준이 되니 너무 모호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는) 문호를 열어버리게 된 겁니다. 모든 책임은 운영이사회가 지게 됐죠. 사실 제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죠. 그것은 운영이사회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정관을 고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분위가 그 정관대로 이사회를 구성하게 된 거죠." - "사실 김영우 목사가 주도한 거죠. 어쨌든 김영우 총장 체제가 무너지고 이렇게 된 것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된 거죠." 강진상 목사 - "무엇보다도 당시 학내 소요로 신학생들이 양분되어 있었잖아요. 김영우 반대하고 수업 거부하며 데모한 학생들 또 수업받는 학생들. 그래서 그때 제가 수원 라비돌에서 칼빈, 대신, 광신 학생들까지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살다가 헤어졌다. 큰아들은 아빠 따라가고 작은아들은 엄마 따라갔다. 그건 자식들 책임이 아니다. 총신 사태도 마찬가지다. 김영우 목사를 반대하는 학생 측이 있고 찬성하는 측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훗날 졸업하면 같은 기수 동창생인데 친일파, 반일파처럼 서로 상처를 가지게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전부 라비돌에 모아놓고 후원도 받고 자체 경비로 해결하면서 먹이고 재우면서 화합을 촉구했습니다. 학생들이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2년 동안 고시부에 들어가서 그 학생들 다 강도사 고시 보고 목사 고시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총신에 가서 학생들 만나면 총회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총회 믿고 싸우다 희생 당하면 책임지겠느냐는 겁니다. 제가 데모를 충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총회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총회가 책임질 것이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시부에 지원해 들어가서 고시부에서도 안 된다는 학생들을 실력이 아나라면 정치로는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변호했습니다. 영웅 대접할 필요도 없지만 역적 대접할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먼 훗날 졸업하고 단독 목회를 하게 되면 기수가 동기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서로 반대하고 상처받고 나가면 치유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111회, 112회 목사 된 사람들 가끔 만나요. 만나면 그들이 먼저 인사하고 그때 고마웠습니다, 합니다. 총회장은 1년이고 총장은 계속 있으니 학생들은 총회 믿을 수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했죠." 목사 강진상은 평산교회와 양산 주민을 위한 주님의 종인 것처럼 주님의 종이 될 총신 졸업생들을 위해 헌신한 주님의 종도 됐었다. 평산교회는 지난 2021년 4월 18일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 씨엠립 분원 건축을 위해 2천만 원의 헌금을 전달했다. 신학생들의 안정적인 교육을 위해 장학금 5백만 원도 별도로 지원했다.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총장 김재호 목사)는 144개 교회, 292개 기도처, 7899명의 청장년 성도, 1만8436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운영하는 신학교다. 캄보디아 북부의 중추 도시인 씨엠립의 목회자 양성과 훈련을 위해 장로교신학교 지난 2017년 9월 27일에 분원을 개교했다. 총회군선교회는 제23차 정기총회를 2022년 5월 26일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갖고, 신임회장에 강진상 목사를 선출하는 등 새 임원진을 조직했다. 강진상 신임회장을 비롯한 총회군선교회 회원들을 대한민국 전 부대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 아래 군선교에 더욱 진력하기로 다짐했다. 2022년 10월 25일 세계개혁주의부흥협의회가 첫 번째 회의를 총회회관에서 열고 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임원 조직으로는 위원장에 강진상 목사가 세워졌다. 회의에 참석한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단은 가장 큰 장로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세계교회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이 은사 중심이라면 우리 개혁주의는 말씀과 기도, 전도 중심 운동으로 전 세계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일의 적임자가 바로 위원장 강진상 목사님이십니다.” 제자훈련에 있어 양육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평산교회는 교육공동체로서 행복아카데미와 제자대학 그리고 주일학교가 활성화 되어 있다. 확신하는 삶, 회복의 삶, 행복한 삶, 축복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산노인대학은 지역내에서 유명세를 탈 만큼 많은 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증진을 위한 소외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저소득자, 저학력자, 고령자, 장애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자활기회 부여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특성상 노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평산노인대학은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고자 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평생학습도시 만들기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와 지역교육청과 협조, 그동안의 노하우를 컨설팅해주기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발굴, 지원하는 일로 이를 타 지역에도 보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산교회의 또 다른 주력 사역으로는 봉사하는 공동체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바로 지역 섬김을 실천하는 것으로 5년 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교육시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기 위한 일로 비전센터를 세우면서 29명을 50명까지 확대했다. 토요일 전면 휴무제가 시행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토요창의학교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다 2010년부터는 행복한 나눔가게도 운영, 웅산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평산점을 오픈하였다. 기증받은 물품들을 지역민들에게 싸게 공급하고 그 수익금으로 해외 굶주린 이웃과 지역사회를 돕는 기아대책에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목회자 자녀로 가난하지만 영성과 섬김의 정신을 배운 강진성 목사는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며 가장 본질적인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강진상 목사는 2025년 1월18일 양산 복음화를 위해 바친 38년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고 평산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며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샘물을 나게 하신 것처럼 그저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왔습니다. 주민들은 나를 가리켜서 인간 승리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승리하신 겁니다. 무모할 수 있던 교회 건축도 믿음으로 따라준 직분자와 성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개입이었고 섭리였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갈 담임목사와 성도들 앞의 또 다른 시대적 사명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훌륭하게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살면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사회적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모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생의 길을 안내받고 또한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평신교회를 만남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 시인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른 윤동주 시인의 시 '초 한 대'가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의 삶을 기리는 것 같다.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재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12.24.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7:27-29 2023-04-04 수정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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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8
  • [더굳뉴스] 김문기 장로 '신기루' 인생 '촛불' 사명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 종소리같은 복음송 김문기 장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라고 말해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 찬양 앨범 2집 ‘신기루 인생’ 3집 '촛불' 발매 김문기 장로 2018년 한 해만 97회의 찬양간증 간증 시간 모자랄 정도 하나님 사랑 넘치고 또 넘쳐 찬양 신기루 인생 서용봉 작사/장욱조 작곡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의지할 이 주님이라 두 손 들고 주께 왔네무거운 짐 내려놓고 예수님만 의지하리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목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목사의 길을 포기한 김문기 장로는 어느 날 교회의 종탑을 보고 소리를 내는 저 종처럼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되리라 깨달았다고 한다. 사라졌지만 잊지 못하는 것. 갔지만 남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은혜다, 그리고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고 세월이다. 꽃 필 때는 피는 꽃처럼 오고 잎 질 때는 지는 잎처럼 가는 그 사랑과 은혜는 오래된 미래다. 미래의 과거다. 나뭇잎이 떨어져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사라진다 해도 여름이어서 빛났고 가을이어서 서늘했다. 이 서늘한 가슴에 살아남는 것은 세월보다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다. 종탑 아래 그 교회 유리창 빛에 어른거리던 그 은혜의 밤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은혜의 순간은 가고 믿음만 남는 '신기루' 인생 그리고 '촛불' 사명.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대외협력국장으로 교단과 교계,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도(使徒) 소강석 목사 사역을 받드는 복음송 사역자 김문기 장로의 발길은 언제나 그의 노래가 함께한다. 교회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그의 노래를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는 전국 장로와 신자를 일으키는 복음 가수라고 말한다.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전하는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는 믿음의 노래를 겸하여 부르다 2017년 2집 ‘신기루 인생’ 2019년 3집 '촛불'을 냈다.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신기루 인생’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인 장욱조 목사가 작곡자이면서 제작은 물론 김문기 장로의 음악 지도까지 맡아 했다.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 옛사람 간 곳 없다 올리도 없지마는 만날 날 기다리며 오늘이 또 간다...’ 1980년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 40/50대라면 지금도 몇 소절쯤은 읊조릴 수 있는 노래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이자 가수였던 장욱조 씨(일산 한소망교회 선교목사)는 세상에 젖어 살던 유명 가수 시절 보다 교도소 병원 군부대 교회 전도 집회를 매월 20차례 이상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다. 장욱조 목사는 한창 잘나가던 가수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7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하고 ‘상처’(조용필) ‘아니야’(조경수) ‘기다리게 해놓고’(방주연) ‘내 젊음의 빈 노트’(유미리) 등 히트곡의 작사 작곡자로 명성을 떨칠 때보다 지금 목사로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장 목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1986년 3월 30일이다. 그의 가족들은 이날을 집안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먼저 믿은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졸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다했다가 그 날 하는 수 없이 교회를 나갔다. 그런데 인기도 예전 같지 않고 운영하던 업소도 어려워져 절망의 벼랑 끝을 헤매고 있었던 때라 교회의 따스한 분위기가 왠지 맘에 들었다. 장 목사는 그때를 그렇게 회상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항복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더군요.” 1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심령을 갈라놓았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 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믿음이란 자기 목숨까지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죄인이란 사실을 고백하자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일었다. 인기가수로 무대에 서서 환호를 받을 때도 맛볼 수 없었던 감동이었다. 그 감동이 복음성가로 터져 나와 ‘할 수 있다 하신 주’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 등 100여 곡을 지었다. 전국 교회와 신자의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의 2집 앨범은 장욱조 목사의 신곡 ‘신기루 인생’ 외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를 구원하신 아버지’ 등 12곡이 담겼다. 김문기 장로의 노래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이가 장욱조 목사다. 우연히 간증집회에서 만난 장 목사와 의기투합해 1집 앨범에 이어 2집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신곡 ‘신기루 인생’도 장욱조 목사의 작품이다. 김문기 장로는 이 찬양이 자신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 특히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은 나도 그랬다. 그래서 취재를 하게 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 김문기 장로는 전라도 억양으로 구수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주님을 떠나 광야의 잡초처럼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뒤 내 인생에 꽃이 핀다는 가사입니다. 그 가사가 저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아 애착이 갑니다. 원래는 작사가가 부르려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에게는 잘 맞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로 저한테 기회가 왔습니다. 부르면서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곡에는 원 주인이 있다더니 저에게 딱 맞는 맞춤 곡이였죠. 작곡자 장욱조 목사의 배려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랑은 더 말할 수가 없죠.” 신기루(蜃氣樓)는 바다 위나 사막에서 빛이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굴절하여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그 제목의 노래 ‘신기루 인생’이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 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 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 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장맛비가 산골을 후비는 2016년 7월 4일 오후 3시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에서 제38회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김성태) 하기수련회가 3000여명이 모여 개회됐다. 소강석 목사가 은혜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 집회에서 김문기 장로가 “주여 이 죄인이” 라는 복음의 노래를 절절하게 열창해 ‘존경받는 장로가 되자’는 기치 아래 모인 장로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드립니다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김문기 장로는 2집 '신기루 인생'에 이어 2019년 3집 '촛불'을 발매했다. 2017년 2집을 1만장 제작한 데 이어 3집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는 포부다. 3집 앨범은 신곡 2곡을 포함해 총 15곡을 수록했다. 그 중 타이틀 곡 '촛불'은 대한민국 문단의 공인받은 문학상 수상 시인이자 대한민국 대표적 설교자와 목회자인 소강석 목사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교단의 대표적 복음송 가수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이 찬양에 ‘사랑할수록 부족하고 드릴수록 목마르기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목회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이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인데, 나도 부르면서 그 감동과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었을 때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을 70대의 나이에 이뤘어요. 앨범을 내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간증하며 찬양을 부르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 목소리로 복음의 은혜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빛이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약하고 부족한 제게 촛불 같으신 소강석 목사님의 후원 덕이죠...” 성경은 말씀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1-5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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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30
  • [더굳뉴스] 윤석열 변호인 조대현 신앙고백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 로마의 제일 시민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 신앙을 따른 대한민국 제일 법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으로 조대현(74) 전 헌법재판관 합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7기 동기 친목 모임인 ‘8인회’의 일원 조 전 재판관은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2004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그해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 변호인을 맡아 탄핵 기각을 이끌어 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두 번째 공개 변론이 2025년 1월 16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4분 만에 끝난 첫 변론과 달리, 이날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탄핵소추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탄핵소추의 정당성 등을 두고 3시간 20여 분간 열띤 공방을 벌였다. 윤 대통령 측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젖은 눈으로 변론했다. “공산주의 좌익 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권력을 탈취하고 자의적으로 휘두르며 입법권과 탄핵소추권 등을 남용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은 헌법 질서 회복을 위해 헌법에 따라 비상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야당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을 끌어내려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합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겨울 끝물. 때 아닌 천둥소리에 놀라 내린 눈발에 철 지난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그분처럼 저도 말없이 그냥 조용히 내려 잊히지 않는 뇌리 속에 그냥 있다. 생각하면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일까. 그저 마음의 정처가 없는 것인가. 모든 일이 꽉 막혀 손 써볼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냥 있음은 아주 힘없는 상태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참기 힘든 걸 참고 있는 뜨거운 견딤의 시간 같기도 하다.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맥 놓은 이 순간에 미묘한 서글픔이 어린다. 피가 빠져나가 버린 듯 이 쓸쓸한 믿음에 어떤 말도 손길도 부질없는 염려일 것 같다. 그저 슬며시 내려앉는 것, 그 또한 그렇게 있어 볼 길밖에 없어 그냥 있는 믿음의 ‘있음’만이 그 마음의 믿음에 어울리리라.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4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5년 3월 27일자 경향신문 맨 왼쪽 아래 제17회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 60명 중 한 사람으로 ‘고졸=노무현’ 바로 위에는 당시 이화여대 89년사에 첫 사법고시 합격생인 ‘이화여대=전효숙’의 이름도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단국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적을 두고 사시에 합격한 ‘단국대학원=조대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료해야 하는 2년의 사법연수 시절 고졸 출신 사법연수생으로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노무현은 명문 고등학교도 마땅한 대학교도 내세울 게 없어 어울릴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조대현이 노무현을 자신이 좌장격인 7명이 모이는 토론회 멤버로 끼워주었다. 그렇게 사법연수원 시절 같은 반의 비슷한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언론에 의해 ‘8인회’로 명명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대현과 노무현의 인연은 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사석에서 동기 중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조대현은 법관 시절 조용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선ㆍ후배들의 존경과 두터운 신망을 샀으며 변호사 개업 후에도 사건을 가려서 맡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법조인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신문 주필을 지낸 후배 김인모가 한국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이다. 그가 용산고 동창 조대현 판사의 청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조 판사야말로 어떤 경우에도 그럴 정도로 청렴하신 바로 그런 분입니다.”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은 유명한 법조인이었고 지금은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장로이기에 목사들의 소식지 ‘더굳뉴스’에 소개할 마음이 생겨 인터뷰 요청을 하고 세상에 대해 겸손한 그가 쾌히 허락을 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일원동의 개포감리교회(당시 담임 안성욱 목사)에서 만났다. 11시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개포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용산고 20회 동기 동창 사이라 격의 없이 신앙생활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조대현 장로는 87년 말 망우동 살 때 금란교회 다니다가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 개포교회를 다니게 됐다. 개포교회는 1985년 1월 6일 안성옥 목사가 대신교회 개포 구역을 중심으로 일원1동 654-2호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해 1월 20일 일원1동 677-1 소재 건물 지하 35평을 얻어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대현 장로는 판사가 된 지 5년째일 때 교회가 설립된 지 2년 된 개척교회에 다닌 초창기 교인인 셈이다. 그로부터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치고 헌법재판관 재직 중인 24년 뒤 그는 2009년 12월 6일 감리교 교회 권사에서 장로로 피택을 받아 장로안수를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9일 자신의 신앙생활의 변환기에 대해 행한 간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로가 되어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5월 초 아내에게 끌려서 처음으로 기도원에 가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무슨 일을 할까요’하고 기도했는데 두 말씀이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첫날 저녁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었고 다음날 새벽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라’는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 1981년 서른 살이 넘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1주일에 60시간 이상 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일 예배만 간신히 참석할 뿐, 성경을 읽지도 못했고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공직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으니 이제는 열심히 믿으라고 하시는 당연한 말씀이네라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임 후 여행을 다니기로 하고 첫 번째로 2011년 8월 터키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1시간이상 걸을 수가 없어 정작 그렇게 원하던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자 허리 치료를 받느라고 잔뜩 세웠던 여행계획을 모두 접어야 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이제는 제대로 믿으라고 일깨우는 말씀을 2011년 5월 기도원에서 석 달 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가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대로 세운 인생계획을 수정하도록 몰아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치료하느라 돌아다니지 못하니 기도원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제대로 믿는 게 뭐지. 믿는다는 게 뭐지. 무얼 믿는 거지. 왜 믿어야 하지. 그런데 평생 법관을 지낸 제가 아무 것도 대답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공부하던 중 2012년 2월 말경 예수전도단 김지태 대표님으로부터 시니어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12 주간의 강의와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약 12주의 전도여행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전도단의 집중적인 제자훈련 프로그램) 학교가 3월 5일 개학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시니어 DTS학교에 지원했습니다. 60세 이상 성도들이 8개월간 예수제자훈련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니어 DTS학교에 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간사님들이 여호수아 24:14 말씀대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DTS학교에서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을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고, 2012년 8월 10일간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DTS의 전도여행은 여행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고 지갑과 휴대폰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어디로 갈지, 며칠간 머물지, 무엇을 할지 등을 그때그때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그 후 기도를 많이 하는 아들이 2014년 2월부터 3월 복음학교에 가라고 강권했습니다. 복음학교에 가서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순회선교단 복음학교에 가서 복음 공부를 했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혼자서 하루 15시간씩 강의를 하시더군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 일꾼은 저런 분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강의 내용은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살 길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라. 제대로 믿어라.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복음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2014년 6월 11일 제가 형사피고인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제가 대한감리회 재판위원으로 봉사하던 중 2013년 9월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 불복한 당선자가 그 판결이 무효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제가 감리회의 당선무효판결은 정당하다는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감리회 직원이 저의 요청과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지시로 감독회장 부하인 행정실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증거서류를 꺼내왔다는 이유로, 그 직원과 감독회장 직무대행과 제가 공모하여 행정실장 사무실에 무단침입을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제가 기소되자, 모든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받다.’ 빅 뉴스였죠. 그 결과 제가 평생 쌓은 명예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제가 기소된 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마 10:29)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버지를 손대기 시작했으니 기뻐하고 감사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하는 마음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법관의 경력과 명예를 나에게 내놓으려 했느냐.’ 저는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지내면서 저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력이나 명예를 제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나의 공적이라고 내세우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서 거주하며 네 소유가 풍부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살이가 형통할 때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인데 제가 바로 거기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형사피고인으로 세우시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상 명예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니, 형사피고인 처지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졌고, 기자들이 심경을 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명예를 내려놓게 하신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가치 있는 것,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의 깨우치심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앉아 있으면, 목사님을 통하여 필요한 말씀과 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제가 찾던 성경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던 진리가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원고 정리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신앙생활이 너무 부족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합격 판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가 자신의 소속 감리교 교단 교권 다툼 끝에 피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2014년 7월 3일 오전 11시 올곧은 법관 조대현이 서울법원종합청사 522호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모든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나중 무죄가 되었지만 그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심경을 묻는 신문기자에게 전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달리 한국 교회 신앙 역사에 남을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개포교회 장로(長老) 조대현(曺大鉉, 1951년 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1951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 변호사는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학 교사로 시작해 서울 언주중학교 교장을 지낸 헌신적 사랑과 눈물의 기도로 평생 내조한 서외순 권사와 두 아들을 두었다. 조대현 장로가 그 바쁜 법관 생활 속에서도 어릴 적부터 책상을 마주하고 직접 가르친 쌍둥이 아들 둘 다 직업도 쌍둥이 법조인(변호사)으로 활동 중이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는 princeps 즉 제일(第一) 시민(市民)이다. 그렇듯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는 그의 법관 경력이나 기독교 신앙이나 세상 삶에서 대한민국 제일(第一) 법관(法官)이라 말해도 그를 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18-02-25 2025-0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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