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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3-27 제109회 총회에 참석한 박헌성 목사는 LA 소재 국제신학대학(학장 박헌성 박사)을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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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남중 목사 보수 신앙 파수꾼
폭염의 생땅 흙바닥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 좀더 낮게 좀더 아프게 좀더 나아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염결한 신앙을 표상한다.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절과 의리와 청렴 및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공직자의 네 가지 덕목[四維]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마음(心)이 들 때에는 귀[耳]부터 빨개진다. 이걸 나타내는 글자가 ‘치(恥)’이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내적 기준이 이것이다. 염치는 인생 법정에서 채택되는 양심의 증거이자 용기의 원료다. 염치가 있어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친 파렴치, 몰염치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러한 부류는 잘못을 범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적반하장과 안면몰수가 주특기다. 스탕달(Stendhal, 1783년 1월 23일 - 1842년 3월 23일)은 말했다. “수치심은 제2의 속옷이다.” 생전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변할 거냐. 영원히 변해간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변해 가야 되는 거야.” 2020년 별세한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아 2022년 10월 25일 삼성 사내 사이트에는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특강 육성이 담긴 5분여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외부 인사들의 회고도 담겼다고 하는데 “이건희 회장과의 대화는 온통 미래에 관한 내용뿐이었다”라고 한다.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고(故) 윤남중 목사(1920년~2015년) 7주기를 맞아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는 2022년 10월 20일 오전 9시 30분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제7회 신학세미나가 열렸다. 제7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GMS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故 윤남중 목사는 전북노회 제88대와 89대 노회장을 역임하며 노회 발전과 개혁주의 보수신앙 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전주효성교회를 담임하면서 전북노회장, 전북신학교 이사장, 전북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섬겼다. 특히 1980년 총회 분열 당시 남아 있는 교회들을 수습해 전북노회를 지킨 대표적 공로자이다. 1992년 은퇴와 함께 윤 목사를 최초의 공로목사로 추대한 전북노회는 2015년 고인의 소천 후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신학 세미나 개최, 관련 자료 수집 및 출판, 장학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1부 기념 예배에서 사회를 맡은 위원장 김윤경 목사(팔복중앙교회)가 인사말을 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인 윤남중 목사님은 올곧은 신앙과 올바른 신학 사상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목회자와 성도의 사표가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에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파수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해마다 신학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김홍만 목사의 ‘청교도의 신학과 역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신학 세미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원회 회계 이영국 장로(전주팔복교회)가 기도하고 위원회 감사 김석곤 장로(동산교회)가 성경을 봉독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0:31-11:1 2015년 제100회기 21개 상비부장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4명의 후보 윤남철 목사(삼산), 이길우 목사(전북), 노승욱 목사(경기북), 최효식 목사(남서울) 등이 출마를 선언한 정치부에서 당선한 바 있는 이길우 목사(유성교회 원로)가 뜻깊은 추모사를 전했다. “오늘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위원회가 주관한 제7회 신학 세미나에 임해 감개무량합니다. 제1회 세미나를 가지면서 제가 위원장으로 고신대 박영돈 교수를 모시고 ‘일그러진 한국교회 문제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때 서기는 현 위원장이신 김윤경 목사님이셨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읽었는데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봉독한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말씀하셨는데 10장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연결어가 붙어 있어요. 바울 사도는 31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했어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32절에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말씀합니다. ‘거치는 자’는 여러 곳에서 찾아보니까 범죄자 등 여러 해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꼭 필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33절에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11장 1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본받는다’의 ‘본’은 빌립보 3장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본받다'는 '따르다'(follow)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은 '표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너희도 나를 따르라는 권면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앞서 가신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노회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신 그 공로를 높이 기리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서 2015년 10월 13일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왜 이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느냐 하면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업회 정관 제1장에 그 목적이 적혀 있습니다. 그 목적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이를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한 제반 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다.' 이 목적 그대로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는 윤남중 목사님을 높이고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 목사님 뒤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목사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41년 전에 유상교회(1906년 12월 15일 설립)에 위임하면서 당회장이셨던 고 윤남중 목사님을 뵙게 됐습니다. 노회에서 34년을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목사님 밑에서 서기도 했고 노회장도 했고 전북노회 유지재단이사회 윤 목사님 이사장이실 때 서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노회에서 도장 안 찍으면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백색 전화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거 한 대 놓으려면 유지재단 도장이 찍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지재단 이사장은 굉장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 목사님 이사장이셨고 또 정상우 목사님 서기를 하시다가 동전주노회로 가셔서 제가 서기를 했었습니다. 회고해 보면 윤 목사님 참 인자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정직하셨습니다. 청렴하셨습니다. 이 효성교회는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를 짓기 전에 교회당이 있고 옆에 사택이 있고 서재가 있고 그 2층에 또 예배당이 있는데 오른쪽 서재실에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습니다. 윤 목사님이 전라북도에 지도급에 계셨기 때문이죠. 어떤 건에 문제나 고충이 생기면 윤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문을 받거나 지도를 받았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저도 노회 일을 할 때 윤희원 목사님 그 당시 신학을 하시고 황 사모님이 며느리셨는데 참 수고가 많으셨어요. 그때 모든 접대를 사모님이 담당하셨어요. 잊히지 않는게 있는데 당시 사모님이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그때 돈까스 참 맛있었습니다. (웃음) 지금은 돈까스가 별것 아닌데요. (웃음) 35년 전 돈까스는 굉장했어요. 그때 돈까스를 손수 만들어 대접을 했습니다. 윤희원 목사님은 서울에 가 계시고 사모님은 시부모님 모시고 교회 드나드는 수많은 분을 대접하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윤남중 목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자기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전북노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장로교회 분열사를 보면 기장과 분열하고 통합 측과 분열하고 개혁 측과 분열했습니다. 그때 아시는 대로 기장과의 분열은 신학적 분열이었습니다. 김재준 교수가 총회에서 성경 유오설을 주장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걸 계기로 기장이 하나의 교단이 됐습니다. 1959년 통합 측과의 분열은 WCC 문제, 에큐메니컬 문제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대립하다가 합동 측은 반대하는 위치에 섰고 신학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정규오 목사의 개혁 측과의 분열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총회를 주도하는 주류 측과 비주류 측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1979년 9월 대구동부교회에서 총회를 개회하고 있을 때 총회 장소 문을 잠그고 비주류 측 사람들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비주류 측 목사들이 참석도 못 하고 다 돌아갔습니다. 그 후 윤남중 목사님을 통해서 그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때 윤남중 목사님은 비주류 측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셨습니다. 전라남북도 대부분 칠십 내지 팔십 프로가 비주류에 섰던 그런 때 윤남중 목사님 위치는 비주류에 가까운 분이신데다 대구에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비주류로 가자고 갈라질만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가까웠던 분들 북문교회가 나가고 팔복교회가 나가고 서문교회가 나가고 다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이 안 나가고 그냥 주류에 남으셨습니까.' 윤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 신앙적인 문제였고 신학적인 문제였다면 당연히 나는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합동 측에 소속한 목사로서 후손들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난 여기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후손들이 교회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비주류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이 개혁 측에 계셨다면 총회장 되셨을 겁니다. 그러나 윤 목사님은 주류 측에 남으셨습니다. 주류 측 안에서도 갈등이 있을 때도 윤남중 목사님은 정치적인 계산에 초연하셨습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은 총회장이 되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단 분열이 있을 때 윤 목사님은 노회를 수습하고 이끌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어려운 시기에 남아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격려하며 전북노회를 재건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노회는 전북지역 노회의 뿌리 노회였습니다. 79년도에 동전주노회와 북전주노회 그리고 전북노회가 분립 되면서 개혁 교단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탈퇴했습니다. 당시 10여 교회가 남았다. 윤 목사님의 기도와 인내가 전북노회를 지켜냈습니다. 전북노회의 존폐 위기에서 윤 목사님께서 하신 일이 그래서 소중합니다. 연약한 노회를 이끌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모릅니다. 저희는 약하고 경제적으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와 노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정말 윤 목사님은 매사에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셨습니다. 정기노회 때도 맨 앞자리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노회 규칙과 헌법에 따라 회무와 안건을 처리하시면서도 언제나 겸손하셨습니다. 정말 바르게 정말 말씀에 합당하게 교회와 노회를 섬기신 윤남중 목사의 본을 따라 전북노회의 전통을 이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영사에서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신 고(故) 윤남중 목사의 가르침을 회고한 전북노회 노회장 이영익 목사(중화산교회)가 축도했다. 2부 기념 예배에서 제103회 총회장이고 제104회 총회선거관리위원장인 영남의 지도자 이승희 목사가 아끼는 GMS 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가 금쟁반에 사과 같은 축사를 했다. "이제 (윤남중 기념사업회 세미나) 7회가 되도록 저한테 축사가 처음이거든요. (회중 웃음) 어쩐 일인가 생각을 했더니 제가 지난 9월 1일 GMS 총회에서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당선되기까지 전북지역 많은 목사님들 많이 기도해주시고 협조해주셔서 이사장의 자격으로 와서 축사해달라는 뜻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희 GMS는 2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작지 않은 큰 선교 기구입니다. 선교를 잘 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신학적인 바탕이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지도자죠. 우리 장로교는 칼빈이 모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선교입니다. 선교를 감당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되고 신학적인 바탕에 본받고 따라갈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전북지역에서는 바로 그 모델이 윤남중 목사님이십니다.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께서 정말 자세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델이 있고 신학적 바탕이 튼튼하다고 할지라도 따라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7세 나이에 개척해서 여러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북신학교를 섬기시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쓰시고 전주교도소를 통해 대사회적인 교정 선교를 하시고 교회협의회 회장을 하시면서 연합사업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정말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고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회를 통한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후학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고 제7회 행사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고 함께한 여러분에게도 축복이 있어서 교회와 선교와 윤남중 목사님을 따르는 그 길이 하나님께 빛나는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기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후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깨우쳐주는 김홍만 박사의 ‘청교도 신학과 역사’ 특강이 진행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 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성경은 말씀한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7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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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장마는 비를 뜻하는 옛 우리말 ‘맣’이 길 장(長)을 만나 긴 비를 뜻하는 '장맣'에서 '장마'로 축약된 말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발밑 여기저기 초록색 열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실이다. 장마철은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익어서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견’은 들을 수는 있어도 ‘다양한 의견’을 보기엔 적합하진 않다. 이럴 때 책이 좋은 보완재가 되어준다. 내가 모르는 삶과 세계, 인식을 적당한 깊이로 빠르게 습득하는 데 독서만 한 방법이 없다. 책이 괜히 간접 체험 콘텐츠의 최고봉이 됐겠는가. 책으로 쌓은 지식은 성경의 믿음이나 삶의 지혜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서로 보완하며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한 층 드높인다. 2024년 7월 7일 맥추감사주일 오전 11시 30분.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설립 109년 대구대명교회 설교단에 섰다. 시편 136:21-26을 봉독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실로암 찬양대가 찬양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이끄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붙드시네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권세로 기도하고 주의 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고백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우리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장로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성가대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시고 우리도 같은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많은 분들의 십일조와 감사와 여러 예물과 맥추 감사 헌금들을 받아주시고 바친 손길마다 이 땅의 만 가지 복으로 갚아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하나님 베푸신 축복과 은혜가 매일의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삶의 현장에도 자녀들에게도 특별한 모든 일에도 주께서 주시는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장례식을 마치고 슬픔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믿음의 가정도 복되게 하셔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으로 위로받게 해주소서. (회중 아멘)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주의 종이 부탁드립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셨으니 생명의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 시간 임재하여 주시고 능력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너 악한 고통과 질병들아 성도를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아 나사렛 예수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도들의 몸에서 즉시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깨끗하게 나을지어다. (회중 아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주시고 감사로 충만하여 우리 삶이 감사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회중 아멘) 부족한 종에게도 말씀의 은사를 덧입혀 주옵소서. (회중 아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회중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대명(大明)교회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의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오늘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별관 3층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대명성전, 강북성전, 경산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대명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회중 아멘) 오늘 맥추감사주일 '감사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상시 우리의 감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감동을 하느냐. 내가 예기하지 못했던 일과 사건들에 접하거나 선물들을 받을 때 그때 감동받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물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 뜻밖에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마음이라 그렇게 쓰면서 자기 어릴 때와 지금까지의 감동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20대 초 자기가 기차 시간표를 보며 여행 일정표를 짜면서 겪은 감동의 순간들, 비 내리던 날 할 일 없이 따뜻한 방에 들어앉아 마셨던 커피의 감동, 그 당시에는 이런 감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감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들의 반복은 오히려 감동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면서 감동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여기에 공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너무도 많은 감동의 조건과 대상들을 주셨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늘 똑같이 임하니까 그게 감사할 일인 줄도 모르고 감동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그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이 있으니까 감사가 줄어들고 감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예전에 그를 감동하게 했던 그 많은 일들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삶 속에서 감사와 감격,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들이 성도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것 중의 하나가 감사와 기쁨이라고 칼빈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표징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이들 특징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은 야! 와! 감탄과 감사를 참 잘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교회 유치부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물론 제가 세뇌를 시키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하면 불러서 간식을 줍니다. 교육을 한 명에게 시켰는데 요즘은 이게 퍼져서 아이들마다 저를 보면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주려고 제 방에 온갖 간식을 갖다 놨습니다. 캔디나 초콜릿이 해로울까 봐 날마다 갯수를 정합니다. 오늘은 두 개만 가지고 가, 또는 세 개만 가지고 가. 그런데 지난주는 저한테 뭐라 뭐라 말하면서 저를 안아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줬어요. '오늘은 간식 다섯 개야.' 그러자 제 방에 들어온 네 명의 아이들이 '와!' '와!' '와!' '와!' 감탄을 연발하는 겁니다. (회중 웃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저 아이들처럼 살아야 되는데. 그 작은 캔디 하나에도 지금보다 한 개 더 많은 것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지금 사는 삶 속에서도 저렇게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성경에 '어린아이처럼'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서양의 문명 속에서 그들이 발전한 것은 그 속에 믿음이 있었고 기독교 문명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 문명 속에서도 감사와 감탄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그 문화와 그들의 부강함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원더풀(wonderful)과 땡큐(thank you)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수년 전에 제 은사이셨던 톨슨(Dr. Donald Torsen: Azusa Pacific University 조직신학 교수) 박사께서 우리 교회 오셔서 설교도 하셨습니다. 그때 저에게 '패스터 장, 경주를 보여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경주에 모시고 갔습니다. 박물관도 보여드리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톨슨 박사님이 관찰에 집중하시면서도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물건 하나를 보시고도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제가 설명을 해드리면 그 설명 속의 의미를 가지고서도 그저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이런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생각해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말씀하는데 '기묘하심'이라는 독특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으심이 심히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대상이 나를 지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지으셨다는 게 신기한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까. 그리고 이 뉘앙스(nuance 어감) 속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표현입니다. 작든지 크든지 좁든지 넓든지 잘생기든 못생기든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기 자신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와우! 감탄을 하고 야! 이게 어떤 은혜인가 감사하는 이런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조그만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와 감동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감사와 감동이 없습니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내용을 잊어버리면 그 감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인이시면서 저희들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그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교회 절기에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면서 이렇게 뭘 모르는 소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목사님 맥추(이 말은 보리 ‘맥麥’자와 가을 ‘추秋’가 합쳐진 단어 즉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는 뜻) 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보리 추수를 기념하는데 오늘날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교회가 왜 이런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절기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별히 지나간 한 해의 반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자신들과 삶을 지켜주신 은혜를 조금만 생각한다면 충만한 감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고 신학자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캇 펙(Morgan Scott Peck, 1936년 5월 22일~2005년 9월 25일)의 저서 '그리고 저 너머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수많은 걸음과 여정을 바라보면 참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 속에서도 결국 감사도 그 선택에 포함된다고 스캇 팩은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삶의 시간 속에 우리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교회 오면서 야 또 주일이다. 왜 이렇게 빠르지, 말은 안 하지만 시간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설레임을 가지고 이 맞닥뜨린 지난 육 개월을 돌아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감사를 선택합니다. 감사를 선택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모든 삶의 감사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배를 주제로 하는 시편 136편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구절이 그 독특한 형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은 히브리인들이 유월절이나 신년절이나 감사절에 자주 암송을 하고 함께 교독을 하는 아주 대표적인 성경입니다. 성전 뜰은 누구나 들어가지만 성소와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시편 100편 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문이나 궁정은 성소 안의 뜰을 말하는데 이 성소 안에 들어가서 해야 될 제일 중요한 일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제사와 예배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 속에서 지금 앉아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장창수 목사는 오페라에서 언어의 악센트로 이야기하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를 부르듯 독창한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언제까지)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할찌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그 찬양이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3절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4절에서 9절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10절로 20절까지는 여호와께서 내 적을 물리쳐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 시편 136편의 23절에서 26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 우리를 건지시고 비천한 데서 살려주시고 올려주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마음껏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여러분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에서도 지난 한 주간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특별히 맥추감사절 절기를 지키며 지난 육 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이 충만한 감사로써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36편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합니다. 이 감사가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설렘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재미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두근대면 무죄! 설레지 않으면 유죄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설레임을 가지고 감사를 가지고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죄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감동 없이 오늘 감사가 없이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유죄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1부 예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여러 성도들이 둘러서 같이 탔습니다. 그런데 새 가정의 집사님 한 분이 타셨는데 너무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으신 분 같았습니다. 그냥 저한테 쉽게 얘기하시면 되는데 못하시더라고요. 고개를 이렇게 숙이고 말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매주 목사님이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나님에게 설레이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그분이 특별난 게 아니라 이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설레임! 오늘도 나를 통한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이런 것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설레임! 설레임이 식이지는 것은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성전에서 손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배이고 찬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행위입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먼저 찬양대가 이렇게 찬양하면 온 백성이 두 손을 들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온전한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저희들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찬앙대를 대신하고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히브리인을 대신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겁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장창수 목사가 선창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온 회중이 일제히 우렁차게 찬양했다.)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한 번 더 해볼까요.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히브리인들은 성전 앞에서 이렇게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감사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행스텐버그(E. W. Henstenberg)의 책에 보면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형식적인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 은혜와 복을 기억하며 벅찬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행하며 감사 감사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럴 때 기쁨으로 반짝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은혜와 감사의 기름이 부어졌다는 것이며 기쁨과 감사는 신앙의 표징입니다.' 우리가 이 감사로 하나님 앞에서 충만한 은혜를 입을 때 그분이 감사를 받으시고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기름 부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회복도 되고 다시 한번 용기도 얻고 우리가 치료함도 받고 은혜도 받고 밝은 모습으로 이 예배당을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강력한 도우심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의 원천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 우리는 매 주일 왜 예배를 드릴까요.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 그분을 만나고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118편 23절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라' 말씀합니다. 과연 이 세상의 최고의 성자가 누구입니까. 공의로운 사람입니까. 탁월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한결같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22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물론 이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는 바벨론이 '비천함'에서 그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히브리인을 탈출시키시고 해방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무엇일까요. 역사적인 배경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삶들을 돌아보면 비참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보잘것없고 영적으로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셨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자격 없는 저희들이 죄 씻음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됐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의 소망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시편 116편 8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기에 비참함의 세 단어가 나옵니다. 사망입니다. 눈물입니다. 넘어짐입니다. 영적으로는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수많은 고통과 눈물에서 그리고 넘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 어떤 경우에서 심지어 수치스러운 것과 비참함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어떻게요. 천국으로 화하도다.' 천국의 특징을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는 설레임과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지겨운 곳이 아닙니다.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우리 상상 속의 영혼의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소는 실제 거주하고 실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슬픔 많은 이 세상 그 상황이 안 바뀌어도 천국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속삭이듯)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설레임과 기쁨으로 삽니다. 영혼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의 이 땅 오천 년 동안 우리가 초근목피(草根木皮 제대로 풍년이 진다고 해도 반 철 식량밖에 거두지 못했다. 나머지 몇 개월은 역시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을 해야 했다고 한다)를 우리가 피할 수가 없어서 1957년까지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는 아프리카 가나(Republic of Ghana) 수준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 무엇보다 양국의 1인당 GNP 수준이 비슷했으며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 분포도 비슷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거느리고 자동차, 전자장비, 고도로 기술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수준이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88회기 총회장 임태득 목사 후임으로 대명교회에 부임한 장창수 목사는 20여 년 교세는 8배 커졌다. 그럼에도 설교는 여전히 가장 큰 부담이지만 설교만큼 가장 영향력 있고 설교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는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성도들의 삶에 깃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 가난과 차별과 고통과 질병과 특별히 배고픔 속에 살았습니다. 이 험난한 역사에 비참함과 990회 이상의 침범을 당하고 어느 한순간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지내지 못하고 한 번도 마음껏 먹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140년 전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면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에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30년 40년 전만 해도 이 먹는 것은 우리에게 갈급한 기도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러한 시대에는 이러한 우리의 먹을 것들이 감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먹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구나.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게 우리 얘기 아닙니까. 교회 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가 109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1부 2부 예배 참석자를 부교역자를 통해 계수하니까 그때 우리 출석 교인이 340명에서 370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19년 동안 성도들과 행복하게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은혜가 감사합니다. 저는 고속도로 휴계소 갈 때마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나온 옛날을 생각하면 비참했잖아요.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밖에서 돈 안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아요.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비참한 우리나라, 비참한 우리 가정, 비참한 나 자신을 세워주신 하나님 은혜를 헤아려보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그 이름을 말해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한 걸음만 물러나 보고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말씀합니다. (회중 아멘)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 1893~1990)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을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입니다. 야 힘들다. 앞에 이것이 있구나. 저게 있구나. 지금 상황이 이런데 큰일 났다. 저 사람은 있는데 왜 나는 이게 없어. 이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음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 그 상황이 해석이 됩니다. 남들과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대적에게서 건지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아멘) 제가 직역합나다. '그분께서 우리를 우리의 대적들로부터 분리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외적과 사탄과 어둠의 권세와 모든 환난에서 우리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분리시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이슬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벨론과 적군에서 보호해주시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구원 사역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3절 '흑암의 권세' 고린도후서 1장 7절 '죄와 사망' 갈리디아서 1장 4절 '악한 사람들' 사도행전 7장 10절 '모든 환난' 재해나 전염병이나 핍박이나 사고 등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은혜를 망각합니다. 지난 6개월도 당연하게 여기까지 와서 2부 예배 앉아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런 악한 대적에게서 분리시켜주셨습니다. 최근 서울 시청역 교통사고(2024년 7월 1일 21시 27분경 서울특별시 중구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갑작스럽게 인도로 돌진하여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를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홉 명 가장이 죽었습니다. 일곱 명이 다쳤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도 40년 베테랑 버스 기사입니다.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습니다. 이런 사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당연한 것이요, 그분의 지켜주심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반년 동안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에게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회중 아멘) 절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103편 3절에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4절에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4절 본문에서의 '파멸'이라는 단어도 독특합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가 성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파멸’인데 어느 곳에서는 죽음, 구덩이, 함정, 심지어 지옥으로도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 구덩이, 함정, 지옥 등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온갖 대적과 삶의 고통, 시험,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오래됐을지라도 수많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가장 많이 부르는 찬양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입니다. 감탄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주 낮게) 어메이징 그레이스...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가! Amazing Grace How Sweet!’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 추도식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는 '설교는 성도들의 삶의 적용과 성경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확하고 감동적인 예증과 예화들의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설교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박사 과정에서 익힌 성경 본문에 대한 많은 관찰의 시간을 가지고 다음의 실제 사건을 예증으로 사용했다. 2015년 6월 18일 흑백 갈등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비롯해 흑인 9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도식이 2015년 6월 26일 찰스턴 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이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기 위해 참여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찬송가를 부르며 백인의 흑인 증오범죄로 숨진 이들을 기렸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노래하는 이례적인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추도객 모두 기립해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숨진 9명의 이름을 차례로 읊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모두 은총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미국에도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원하는 추도사로 전 미국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감동시켰다. 장창수 목사의 설교는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이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윗(Amazing Grace How Sweet).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지.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끝까지 불렀습니다. 하우 스윗 더 사운드 댓 세이브드 어 레취(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그 중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파멸과 죽음 속에 잃어버렸는데(I once was lost) 벗 나우(But now) 그러나 지금은 아임 파운드(I'm found) 찾았네. 워스 블라인드(was. blind) 눈이 멀었는데 벗 나우 아이 시(but now I see) 그러나 지금은 보네. 이제껏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그러니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대적에게서 건져주시고 흑암의 권세와 죄와 사망과 악함과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은혜이고 지난 육 개월 동안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한다)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회중 아멘) 지금까지도 하나님 은혜로 살고 앞으로도 하나님 은혜로 살다가 장차 나를 본향에 인도해주실 분이십니다. 오늘 한 분의 책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07년에 출판한 '365 땡큐'(365 Thank You)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존 크랠릭은 미국의 변호사입니다. LA 주의 대법원 판사를 하다가 2007년에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너무 힘든 겁니다. 소송 건수가 줄고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벅찹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둘째 아들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세도 못 내고 예금은 바닥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딸마저도 자기 곁을 떠납니다. 두려움과 생활 때문에 지독한 우울증과 외로움과 절망의 마지막 자락인데 할아버지의 반복적인 말이 생각났습니다. '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거야.' 이 말이 뭐냐 자기를 돌아보니까 내가 누려왔던 수많은 일들과 생활에 감사하지 않았는데 결국은 그것을 다 놓쳐버렸지 않았느냐. 이제 감사를 해라. 이것을 깨닫고 그는 하루에 한 사람씩 감사를 하려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365일 매일 있었던 일의 감사 편지를 쓰게 됐답니다. 제일 먼저 큰아들을 찾아가 감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상사였던 론을, 세 번째는 친구 린을, 네 번째는 멋진 모습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고 단골 미용사 에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넥타이를 선물한 딸에게도 감사를 했습니다. 이런 감사를 정말 365일 실행했습니다. 감사 편지 쓰기를 마쳤을 때 말랐던 체중이 정상이 되고 사업도 정상 궤도를 넘어서고 아래 직원들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고 또 다른 사랑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오늘 저는 그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불평하지 않도록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문득 믿음의 눈으로 상황과 사건을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두 번째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내 삶 속에서 내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사 언제나 감사가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지나칠 정도로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서. 2024년 맥추감사절을 드린 성도들에게 정말 남은 인생은 스콧 펙의 말처럼 무엇을 선택하든지 감사 감사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시. (회중 아멘) 감사의 신비는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날마다 시간마다 감사가 넘치게 하고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 다른 기적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문득문득 떠오르게 하시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감사의 삶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상식이 되는 대명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총회 큰 빛 장창수 목사의 설교 자체가 Amazing Grace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대명교회를 2,500여 명, 8배로 성장시킨 그는 그 놀라운 은혜의 설교를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성경은 말씀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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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십자가의 신비
창작의 비법은 ‘고백’이다. 모든 글쓰기는 신앙고백처럼 어떤 외양으로 둔갑돼 있건 간에 고백의 본질을 지닌다. 저마다 몸이 달라도 모두 피가 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고백하는 능력과 용기가 없는 이는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승리의 두 가지 축은 투지와 결단력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같은 하수는‘형(形)’인 숫자(지지율)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 같은 고수는 ‘세(勢)’인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과 그 신앙을 본다. 다만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특히 미리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절대 이길 수 없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믿음에서 우러난 자신감과 용기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이 작곡한 ‘메시아’(Messiah)는 줄거리가 있는 곡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오라토리오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아’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 구절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메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 '할렐루야'이다. 이 곡은 밝고 힘찬 악상과 금방 친숙해지는 멜로디로도 인기가 있지만, 런던 공연 당시 있었던 일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1743년 3월 23일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던 연주에서 당시 참석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이 일어나자 청중 모두가 따라서 일어나서 연주를 들었고 이후 '메시아' 공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부활하신 전능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 교단 총회와 호남의 양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가 ‘2024년 4월 고난주간 기도회 초대의 글’에서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의 신비가 신앙을 인격적으로 직조해 냅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대한 기록은 마태는 21장에서 24장, 마가는 11장에서 15장, 누가는 19장 28절에서 23장, 요한은 12장 12절에서 19장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에서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때 거기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안나스의 집 뜰에서 여종이 로마군에 잡히신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거기에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를 오랫동안 묻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음습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해골) 언덕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도 아니하시고 그저 인간들은 아주 단순히 자기의 역할만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보통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어도 죽음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限界狀況) 속에서는 닫힌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고 무지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한계상황에서 넘쳐납니다. 우리가 이걸 알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과 자립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결국은 자립의 삶이 바닥이 나고 그럼 우리의 자아도 무너져 내립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실되었음에도 더 넉넉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환영하지 아니해도 예기치 아니할 때 우리 속에 이 세상 속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끔찍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그때 거기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 거기의 그들에게나 여기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신앙적 확신도 요한에게 있었던 인간적 사랑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있었던 믿음도 한계상황 속에서는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리는 믿음, 신학적인 확신,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숱한 의문과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를 시작으로 헬라인 몇 사람이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 12:21),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묻는 질문으로부터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묻는 다양한 질문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며 질문하는 것들입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면서 신비를, 질문과 의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합리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의 감정에 신비를 직조해 느끼게 하시고 이성에 신비가 영성으로 스며들게 하여 알게 하시고 의지에 신비가 피어나게 하시어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거기의 사람들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7:2)"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인격적인 신앙으로 신비가 감정에 직조되고 이성이 영성으로 변화되며 의지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신비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 1:24-26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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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의 소강석 목사 설교 예찬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2년 7월 4일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을 역임한 김진표(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 더불어민주당 5선) 국회의원이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김진표 장로의 의원실 책상에는 “Pray First”(먼저 기도하라)는 패가 놓여져 있다. 2024년 5월 28일 여야가 격한 대립을 반복해 온 21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까지 파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등 법안 3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후 6시 22분쯤 선포했다. “여야 및 정부 간 이견이 커서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야당인 민주당에선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3선의 한 의원은 책상을 ‘쿵’ 내리쳤다. 반면 본회의장 오른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국민의힘이 민주유공자법 등에 반발하며 퇴장해서다. 반은 떠나고 반은 고함치는 어수선함 속에 김 의장은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친다. 산회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의 국회 마지막 공식 발언이었다. 그는 1973년 행시에 합격한 뒤 30년 동안 경제 부처 공무원이었고,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년 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고위 경제관료였다는 이력 탓에 ‘민주당 내 보수인사’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당내 논의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한 것을 야당이 됐다고 파괴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없애자”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2024년 4월 25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후진국에 의료와 보건시설을 후원하는 '글로벌 투게더' 임원진과 지구촌 빈곤지역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지역주민의 자립을 지원하는'글로벌에듀'(이사장 소강석 목사) 관계자들과 사회 저명 인사들이 모인 만찬이 열렸다. 그때 김진표 국회의장의 모두 발언에서 소강석 목사의 사회봉사와 국정섬김에 대해 감사를 전하면서 그의 설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제가 알기로 소강석 목사님은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설교자이십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의 아가서 설교는 제 평생에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롭고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여러분도 새에덴교회에 모두 한 번씩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둘째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셋째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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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과 오정현 목사 교회 달란트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옥한흠 목사의 지극한 제자이고 2023년 9월 제108회 총회장이 될 오정호 목사의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조성민 목사가 마지막 모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박수를 요청하며 모두 일어서게 했다. 25주년 케이크 절단 순서가 이어졌다.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4대 교갱협 상임총무 2009. 8)가 마이크 앞에 섰다. “오늘 제가 패널 목사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부적인 면에서는 어떤 면에서 자기에 대해서는 성찰의 칼을 갖는 성찰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교갱을 통해서 지난 90회 총회 때 박윤식 집단이 (총회) 들어오려고 하는 것 (큰소리로) 막은 것만으로도 (톤을 낮추어) 교갱의 공이라고 해도 충분하고 또 여러분 아시지만 지역의 목회 열심히 하는 분들이 대다수가 교갱입니다. 동시에 총신 사태가 발발했을 때 후배들 방문해 애를 쓰게 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현상민 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애를 쓰고 우리 교회도 후원을 했지만 뒤에서 돈을 대고 교갱에 속한 교회들이 많고 김경원 목사님 말씀대로 했습니다. (회원들 웃음 박수)”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한스 큉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청빙을 통해 지난 2003년 8월에 부임하여 사랑의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오정현 목사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으로 삼고 지금까지 제자훈련 사역에 매진해왔다. 더 나아가 2024년 현재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서 ‘제자훈련의 국제화’와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 ‘다음 세대를 위한 글로벌 인재 양성’과 ‘대사회적 섬김’을 위해 쉬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사회 속에서 제자훈련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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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3-27 제109회 총회에 참석한 박헌성 목사는 LA 소재 국제신학대학(학장 박헌성 박사)을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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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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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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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남중 목사 보수 신앙 파수꾼
- 폭염의 생땅 흙바닥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 좀더 낮게 좀더 아프게 좀더 나아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염결한 신앙을 표상한다.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절과 의리와 청렴 및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공직자의 네 가지 덕목[四維]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마음(心)이 들 때에는 귀[耳]부터 빨개진다. 이걸 나타내는 글자가 ‘치(恥)’이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내적 기준이 이것이다. 염치는 인생 법정에서 채택되는 양심의 증거이자 용기의 원료다. 염치가 있어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친 파렴치, 몰염치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러한 부류는 잘못을 범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적반하장과 안면몰수가 주특기다. 스탕달(Stendhal, 1783년 1월 23일 - 1842년 3월 23일)은 말했다. “수치심은 제2의 속옷이다.” 생전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변할 거냐. 영원히 변해간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변해 가야 되는 거야.” 2020년 별세한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아 2022년 10월 25일 삼성 사내 사이트에는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특강 육성이 담긴 5분여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외부 인사들의 회고도 담겼다고 하는데 “이건희 회장과의 대화는 온통 미래에 관한 내용뿐이었다”라고 한다.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고(故) 윤남중 목사(1920년~2015년) 7주기를 맞아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는 2022년 10월 20일 오전 9시 30분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제7회 신학세미나가 열렸다. 제7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GMS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故 윤남중 목사는 전북노회 제88대와 89대 노회장을 역임하며 노회 발전과 개혁주의 보수신앙 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전주효성교회를 담임하면서 전북노회장, 전북신학교 이사장, 전북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섬겼다. 특히 1980년 총회 분열 당시 남아 있는 교회들을 수습해 전북노회를 지킨 대표적 공로자이다. 1992년 은퇴와 함께 윤 목사를 최초의 공로목사로 추대한 전북노회는 2015년 고인의 소천 후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신학 세미나 개최, 관련 자료 수집 및 출판, 장학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1부 기념 예배에서 사회를 맡은 위원장 김윤경 목사(팔복중앙교회)가 인사말을 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인 윤남중 목사님은 올곧은 신앙과 올바른 신학 사상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목회자와 성도의 사표가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에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파수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해마다 신학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김홍만 목사의 ‘청교도의 신학과 역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신학 세미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원회 회계 이영국 장로(전주팔복교회)가 기도하고 위원회 감사 김석곤 장로(동산교회)가 성경을 봉독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0:31-11:1 2015년 제100회기 21개 상비부장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4명의 후보 윤남철 목사(삼산), 이길우 목사(전북), 노승욱 목사(경기북), 최효식 목사(남서울) 등이 출마를 선언한 정치부에서 당선한 바 있는 이길우 목사(유성교회 원로)가 뜻깊은 추모사를 전했다. “오늘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위원회가 주관한 제7회 신학 세미나에 임해 감개무량합니다. 제1회 세미나를 가지면서 제가 위원장으로 고신대 박영돈 교수를 모시고 ‘일그러진 한국교회 문제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때 서기는 현 위원장이신 김윤경 목사님이셨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읽었는데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봉독한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말씀하셨는데 10장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연결어가 붙어 있어요. 바울 사도는 31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했어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32절에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말씀합니다. ‘거치는 자’는 여러 곳에서 찾아보니까 범죄자 등 여러 해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꼭 필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33절에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11장 1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본받는다’의 ‘본’은 빌립보 3장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본받다'는 '따르다'(follow)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은 '표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너희도 나를 따르라는 권면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앞서 가신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노회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신 그 공로를 높이 기리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서 2015년 10월 13일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왜 이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느냐 하면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업회 정관 제1장에 그 목적이 적혀 있습니다. 그 목적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이를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한 제반 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다.' 이 목적 그대로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는 윤남중 목사님을 높이고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 목사님 뒤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목사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41년 전에 유상교회(1906년 12월 15일 설립)에 위임하면서 당회장이셨던 고 윤남중 목사님을 뵙게 됐습니다. 노회에서 34년을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목사님 밑에서 서기도 했고 노회장도 했고 전북노회 유지재단이사회 윤 목사님 이사장이실 때 서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노회에서 도장 안 찍으면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백색 전화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거 한 대 놓으려면 유지재단 도장이 찍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지재단 이사장은 굉장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 목사님 이사장이셨고 또 정상우 목사님 서기를 하시다가 동전주노회로 가셔서 제가 서기를 했었습니다. 회고해 보면 윤 목사님 참 인자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정직하셨습니다. 청렴하셨습니다. 이 효성교회는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를 짓기 전에 교회당이 있고 옆에 사택이 있고 서재가 있고 그 2층에 또 예배당이 있는데 오른쪽 서재실에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습니다. 윤 목사님이 전라북도에 지도급에 계셨기 때문이죠. 어떤 건에 문제나 고충이 생기면 윤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문을 받거나 지도를 받았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저도 노회 일을 할 때 윤희원 목사님 그 당시 신학을 하시고 황 사모님이 며느리셨는데 참 수고가 많으셨어요. 그때 모든 접대를 사모님이 담당하셨어요. 잊히지 않는게 있는데 당시 사모님이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그때 돈까스 참 맛있었습니다. (웃음) 지금은 돈까스가 별것 아닌데요. (웃음) 35년 전 돈까스는 굉장했어요. 그때 돈까스를 손수 만들어 대접을 했습니다. 윤희원 목사님은 서울에 가 계시고 사모님은 시부모님 모시고 교회 드나드는 수많은 분을 대접하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윤남중 목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자기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전북노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장로교회 분열사를 보면 기장과 분열하고 통합 측과 분열하고 개혁 측과 분열했습니다. 그때 아시는 대로 기장과의 분열은 신학적 분열이었습니다. 김재준 교수가 총회에서 성경 유오설을 주장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걸 계기로 기장이 하나의 교단이 됐습니다. 1959년 통합 측과의 분열은 WCC 문제, 에큐메니컬 문제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대립하다가 합동 측은 반대하는 위치에 섰고 신학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정규오 목사의 개혁 측과의 분열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총회를 주도하는 주류 측과 비주류 측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1979년 9월 대구동부교회에서 총회를 개회하고 있을 때 총회 장소 문을 잠그고 비주류 측 사람들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비주류 측 목사들이 참석도 못 하고 다 돌아갔습니다. 그 후 윤남중 목사님을 통해서 그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때 윤남중 목사님은 비주류 측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셨습니다. 전라남북도 대부분 칠십 내지 팔십 프로가 비주류에 섰던 그런 때 윤남중 목사님 위치는 비주류에 가까운 분이신데다 대구에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비주류로 가자고 갈라질만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가까웠던 분들 북문교회가 나가고 팔복교회가 나가고 서문교회가 나가고 다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이 안 나가고 그냥 주류에 남으셨습니까.' 윤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 신앙적인 문제였고 신학적인 문제였다면 당연히 나는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합동 측에 소속한 목사로서 후손들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난 여기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후손들이 교회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비주류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이 개혁 측에 계셨다면 총회장 되셨을 겁니다. 그러나 윤 목사님은 주류 측에 남으셨습니다. 주류 측 안에서도 갈등이 있을 때도 윤남중 목사님은 정치적인 계산에 초연하셨습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은 총회장이 되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단 분열이 있을 때 윤 목사님은 노회를 수습하고 이끌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어려운 시기에 남아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격려하며 전북노회를 재건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노회는 전북지역 노회의 뿌리 노회였습니다. 79년도에 동전주노회와 북전주노회 그리고 전북노회가 분립 되면서 개혁 교단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탈퇴했습니다. 당시 10여 교회가 남았다. 윤 목사님의 기도와 인내가 전북노회를 지켜냈습니다. 전북노회의 존폐 위기에서 윤 목사님께서 하신 일이 그래서 소중합니다. 연약한 노회를 이끌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모릅니다. 저희는 약하고 경제적으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와 노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정말 윤 목사님은 매사에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셨습니다. 정기노회 때도 맨 앞자리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노회 규칙과 헌법에 따라 회무와 안건을 처리하시면서도 언제나 겸손하셨습니다. 정말 바르게 정말 말씀에 합당하게 교회와 노회를 섬기신 윤남중 목사의 본을 따라 전북노회의 전통을 이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영사에서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신 고(故) 윤남중 목사의 가르침을 회고한 전북노회 노회장 이영익 목사(중화산교회)가 축도했다. 2부 기념 예배에서 제103회 총회장이고 제104회 총회선거관리위원장인 영남의 지도자 이승희 목사가 아끼는 GMS 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가 금쟁반에 사과 같은 축사를 했다. "이제 (윤남중 기념사업회 세미나) 7회가 되도록 저한테 축사가 처음이거든요. (회중 웃음) 어쩐 일인가 생각을 했더니 제가 지난 9월 1일 GMS 총회에서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당선되기까지 전북지역 많은 목사님들 많이 기도해주시고 협조해주셔서 이사장의 자격으로 와서 축사해달라는 뜻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희 GMS는 2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작지 않은 큰 선교 기구입니다. 선교를 잘 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신학적인 바탕이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지도자죠. 우리 장로교는 칼빈이 모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선교입니다. 선교를 감당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되고 신학적인 바탕에 본받고 따라갈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전북지역에서는 바로 그 모델이 윤남중 목사님이십니다.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께서 정말 자세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델이 있고 신학적 바탕이 튼튼하다고 할지라도 따라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7세 나이에 개척해서 여러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북신학교를 섬기시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쓰시고 전주교도소를 통해 대사회적인 교정 선교를 하시고 교회협의회 회장을 하시면서 연합사업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정말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고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회를 통한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후학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고 제7회 행사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고 함께한 여러분에게도 축복이 있어서 교회와 선교와 윤남중 목사님을 따르는 그 길이 하나님께 빛나는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기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후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깨우쳐주는 김홍만 박사의 ‘청교도 신학과 역사’ 특강이 진행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 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성경은 말씀한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7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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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남중 목사 보수 신앙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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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 장마는 비를 뜻하는 옛 우리말 ‘맣’이 길 장(長)을 만나 긴 비를 뜻하는 '장맣'에서 '장마'로 축약된 말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발밑 여기저기 초록색 열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실이다. 장마철은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익어서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견’은 들을 수는 있어도 ‘다양한 의견’을 보기엔 적합하진 않다. 이럴 때 책이 좋은 보완재가 되어준다. 내가 모르는 삶과 세계, 인식을 적당한 깊이로 빠르게 습득하는 데 독서만 한 방법이 없다. 책이 괜히 간접 체험 콘텐츠의 최고봉이 됐겠는가. 책으로 쌓은 지식은 성경의 믿음이나 삶의 지혜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서로 보완하며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한 층 드높인다. 2024년 7월 7일 맥추감사주일 오전 11시 30분.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설립 109년 대구대명교회 설교단에 섰다. 시편 136:21-26을 봉독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실로암 찬양대가 찬양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이끄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붙드시네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권세로 기도하고 주의 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고백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우리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장로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성가대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시고 우리도 같은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많은 분들의 십일조와 감사와 여러 예물과 맥추 감사 헌금들을 받아주시고 바친 손길마다 이 땅의 만 가지 복으로 갚아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하나님 베푸신 축복과 은혜가 매일의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삶의 현장에도 자녀들에게도 특별한 모든 일에도 주께서 주시는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장례식을 마치고 슬픔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믿음의 가정도 복되게 하셔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으로 위로받게 해주소서. (회중 아멘)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주의 종이 부탁드립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셨으니 생명의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 시간 임재하여 주시고 능력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너 악한 고통과 질병들아 성도를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아 나사렛 예수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도들의 몸에서 즉시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깨끗하게 나을지어다. (회중 아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주시고 감사로 충만하여 우리 삶이 감사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회중 아멘) 부족한 종에게도 말씀의 은사를 덧입혀 주옵소서. (회중 아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회중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대명(大明)교회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의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오늘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별관 3층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대명성전, 강북성전, 경산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대명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회중 아멘) 오늘 맥추감사주일 '감사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상시 우리의 감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감동을 하느냐. 내가 예기하지 못했던 일과 사건들에 접하거나 선물들을 받을 때 그때 감동받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물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 뜻밖에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마음이라 그렇게 쓰면서 자기 어릴 때와 지금까지의 감동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20대 초 자기가 기차 시간표를 보며 여행 일정표를 짜면서 겪은 감동의 순간들, 비 내리던 날 할 일 없이 따뜻한 방에 들어앉아 마셨던 커피의 감동, 그 당시에는 이런 감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감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들의 반복은 오히려 감동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면서 감동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여기에 공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너무도 많은 감동의 조건과 대상들을 주셨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늘 똑같이 임하니까 그게 감사할 일인 줄도 모르고 감동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그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이 있으니까 감사가 줄어들고 감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예전에 그를 감동하게 했던 그 많은 일들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삶 속에서 감사와 감격,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들이 성도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것 중의 하나가 감사와 기쁨이라고 칼빈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표징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이들 특징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은 야! 와! 감탄과 감사를 참 잘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교회 유치부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물론 제가 세뇌를 시키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하면 불러서 간식을 줍니다. 교육을 한 명에게 시켰는데 요즘은 이게 퍼져서 아이들마다 저를 보면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주려고 제 방에 온갖 간식을 갖다 놨습니다. 캔디나 초콜릿이 해로울까 봐 날마다 갯수를 정합니다. 오늘은 두 개만 가지고 가, 또는 세 개만 가지고 가. 그런데 지난주는 저한테 뭐라 뭐라 말하면서 저를 안아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줬어요. '오늘은 간식 다섯 개야.' 그러자 제 방에 들어온 네 명의 아이들이 '와!' '와!' '와!' '와!' 감탄을 연발하는 겁니다. (회중 웃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저 아이들처럼 살아야 되는데. 그 작은 캔디 하나에도 지금보다 한 개 더 많은 것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지금 사는 삶 속에서도 저렇게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성경에 '어린아이처럼'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서양의 문명 속에서 그들이 발전한 것은 그 속에 믿음이 있었고 기독교 문명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 문명 속에서도 감사와 감탄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그 문화와 그들의 부강함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원더풀(wonderful)과 땡큐(thank you)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수년 전에 제 은사이셨던 톨슨(Dr. Donald Torsen: Azusa Pacific University 조직신학 교수) 박사께서 우리 교회 오셔서 설교도 하셨습니다. 그때 저에게 '패스터 장, 경주를 보여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경주에 모시고 갔습니다. 박물관도 보여드리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톨슨 박사님이 관찰에 집중하시면서도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물건 하나를 보시고도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제가 설명을 해드리면 그 설명 속의 의미를 가지고서도 그저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이런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생각해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말씀하는데 '기묘하심'이라는 독특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으심이 심히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대상이 나를 지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지으셨다는 게 신기한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까. 그리고 이 뉘앙스(nuance 어감) 속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표현입니다. 작든지 크든지 좁든지 넓든지 잘생기든 못생기든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기 자신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와우! 감탄을 하고 야! 이게 어떤 은혜인가 감사하는 이런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조그만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와 감동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감사와 감동이 없습니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내용을 잊어버리면 그 감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인이시면서 저희들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그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교회 절기에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면서 이렇게 뭘 모르는 소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목사님 맥추(이 말은 보리 ‘맥麥’자와 가을 ‘추秋’가 합쳐진 단어 즉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는 뜻) 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보리 추수를 기념하는데 오늘날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교회가 왜 이런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절기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별히 지나간 한 해의 반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자신들과 삶을 지켜주신 은혜를 조금만 생각한다면 충만한 감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고 신학자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캇 펙(Morgan Scott Peck, 1936년 5월 22일~2005년 9월 25일)의 저서 '그리고 저 너머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수많은 걸음과 여정을 바라보면 참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 속에서도 결국 감사도 그 선택에 포함된다고 스캇 팩은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삶의 시간 속에 우리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교회 오면서 야 또 주일이다. 왜 이렇게 빠르지, 말은 안 하지만 시간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설레임을 가지고 이 맞닥뜨린 지난 육 개월을 돌아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감사를 선택합니다. 감사를 선택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모든 삶의 감사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배를 주제로 하는 시편 136편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구절이 그 독특한 형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은 히브리인들이 유월절이나 신년절이나 감사절에 자주 암송을 하고 함께 교독을 하는 아주 대표적인 성경입니다. 성전 뜰은 누구나 들어가지만 성소와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시편 100편 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문이나 궁정은 성소 안의 뜰을 말하는데 이 성소 안에 들어가서 해야 될 제일 중요한 일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제사와 예배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 속에서 지금 앉아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장창수 목사는 오페라에서 언어의 악센트로 이야기하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를 부르듯 독창한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언제까지)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할찌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그 찬양이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3절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4절에서 9절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10절로 20절까지는 여호와께서 내 적을 물리쳐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 시편 136편의 23절에서 26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 우리를 건지시고 비천한 데서 살려주시고 올려주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마음껏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여러분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에서도 지난 한 주간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특별히 맥추감사절 절기를 지키며 지난 육 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이 충만한 감사로써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36편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합니다. 이 감사가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설렘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재미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두근대면 무죄! 설레지 않으면 유죄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설레임을 가지고 감사를 가지고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죄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감동 없이 오늘 감사가 없이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유죄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1부 예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여러 성도들이 둘러서 같이 탔습니다. 그런데 새 가정의 집사님 한 분이 타셨는데 너무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으신 분 같았습니다. 그냥 저한테 쉽게 얘기하시면 되는데 못하시더라고요. 고개를 이렇게 숙이고 말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매주 목사님이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나님에게 설레이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그분이 특별난 게 아니라 이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설레임! 오늘도 나를 통한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이런 것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설레임! 설레임이 식이지는 것은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성전에서 손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배이고 찬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행위입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먼저 찬양대가 이렇게 찬양하면 온 백성이 두 손을 들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온전한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저희들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찬앙대를 대신하고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히브리인을 대신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겁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장창수 목사가 선창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온 회중이 일제히 우렁차게 찬양했다.)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한 번 더 해볼까요.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히브리인들은 성전 앞에서 이렇게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감사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행스텐버그(E. W. Henstenberg)의 책에 보면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형식적인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 은혜와 복을 기억하며 벅찬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행하며 감사 감사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럴 때 기쁨으로 반짝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은혜와 감사의 기름이 부어졌다는 것이며 기쁨과 감사는 신앙의 표징입니다.' 우리가 이 감사로 하나님 앞에서 충만한 은혜를 입을 때 그분이 감사를 받으시고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기름 부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회복도 되고 다시 한번 용기도 얻고 우리가 치료함도 받고 은혜도 받고 밝은 모습으로 이 예배당을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강력한 도우심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의 원천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 우리는 매 주일 왜 예배를 드릴까요.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 그분을 만나고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118편 23절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라' 말씀합니다. 과연 이 세상의 최고의 성자가 누구입니까. 공의로운 사람입니까. 탁월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한결같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22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물론 이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는 바벨론이 '비천함'에서 그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히브리인을 탈출시키시고 해방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무엇일까요. 역사적인 배경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삶들을 돌아보면 비참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보잘것없고 영적으로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셨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자격 없는 저희들이 죄 씻음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됐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의 소망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시편 116편 8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기에 비참함의 세 단어가 나옵니다. 사망입니다. 눈물입니다. 넘어짐입니다. 영적으로는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수많은 고통과 눈물에서 그리고 넘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 어떤 경우에서 심지어 수치스러운 것과 비참함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어떻게요. 천국으로 화하도다.' 천국의 특징을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는 설레임과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지겨운 곳이 아닙니다.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우리 상상 속의 영혼의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소는 실제 거주하고 실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슬픔 많은 이 세상 그 상황이 안 바뀌어도 천국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속삭이듯)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설레임과 기쁨으로 삽니다. 영혼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의 이 땅 오천 년 동안 우리가 초근목피(草根木皮 제대로 풍년이 진다고 해도 반 철 식량밖에 거두지 못했다. 나머지 몇 개월은 역시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을 해야 했다고 한다)를 우리가 피할 수가 없어서 1957년까지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는 아프리카 가나(Republic of Ghana) 수준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 무엇보다 양국의 1인당 GNP 수준이 비슷했으며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 분포도 비슷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거느리고 자동차, 전자장비, 고도로 기술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수준이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88회기 총회장 임태득 목사 후임으로 대명교회에 부임한 장창수 목사는 20여 년 교세는 8배 커졌다. 그럼에도 설교는 여전히 가장 큰 부담이지만 설교만큼 가장 영향력 있고 설교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는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성도들의 삶에 깃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 가난과 차별과 고통과 질병과 특별히 배고픔 속에 살았습니다. 이 험난한 역사에 비참함과 990회 이상의 침범을 당하고 어느 한순간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지내지 못하고 한 번도 마음껏 먹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140년 전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면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에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30년 40년 전만 해도 이 먹는 것은 우리에게 갈급한 기도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러한 시대에는 이러한 우리의 먹을 것들이 감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먹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구나.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게 우리 얘기 아닙니까. 교회 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가 109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1부 2부 예배 참석자를 부교역자를 통해 계수하니까 그때 우리 출석 교인이 340명에서 370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19년 동안 성도들과 행복하게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은혜가 감사합니다. 저는 고속도로 휴계소 갈 때마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나온 옛날을 생각하면 비참했잖아요.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밖에서 돈 안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아요.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비참한 우리나라, 비참한 우리 가정, 비참한 나 자신을 세워주신 하나님 은혜를 헤아려보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그 이름을 말해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한 걸음만 물러나 보고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말씀합니다. (회중 아멘)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 1893~1990)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을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입니다. 야 힘들다. 앞에 이것이 있구나. 저게 있구나. 지금 상황이 이런데 큰일 났다. 저 사람은 있는데 왜 나는 이게 없어. 이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음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 그 상황이 해석이 됩니다. 남들과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대적에게서 건지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아멘) 제가 직역합나다. '그분께서 우리를 우리의 대적들로부터 분리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외적과 사탄과 어둠의 권세와 모든 환난에서 우리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분리시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이슬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벨론과 적군에서 보호해주시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구원 사역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3절 '흑암의 권세' 고린도후서 1장 7절 '죄와 사망' 갈리디아서 1장 4절 '악한 사람들' 사도행전 7장 10절 '모든 환난' 재해나 전염병이나 핍박이나 사고 등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은혜를 망각합니다. 지난 6개월도 당연하게 여기까지 와서 2부 예배 앉아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런 악한 대적에게서 분리시켜주셨습니다. 최근 서울 시청역 교통사고(2024년 7월 1일 21시 27분경 서울특별시 중구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갑작스럽게 인도로 돌진하여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를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홉 명 가장이 죽었습니다. 일곱 명이 다쳤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도 40년 베테랑 버스 기사입니다.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습니다. 이런 사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당연한 것이요, 그분의 지켜주심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반년 동안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에게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회중 아멘) 절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103편 3절에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4절에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4절 본문에서의 '파멸'이라는 단어도 독특합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가 성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파멸’인데 어느 곳에서는 죽음, 구덩이, 함정, 심지어 지옥으로도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 구덩이, 함정, 지옥 등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온갖 대적과 삶의 고통, 시험,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오래됐을지라도 수많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가장 많이 부르는 찬양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입니다. 감탄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주 낮게) 어메이징 그레이스...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가! Amazing Grace How Sweet!’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 추도식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는 '설교는 성도들의 삶의 적용과 성경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확하고 감동적인 예증과 예화들의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설교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박사 과정에서 익힌 성경 본문에 대한 많은 관찰의 시간을 가지고 다음의 실제 사건을 예증으로 사용했다. 2015년 6월 18일 흑백 갈등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비롯해 흑인 9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도식이 2015년 6월 26일 찰스턴 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이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기 위해 참여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찬송가를 부르며 백인의 흑인 증오범죄로 숨진 이들을 기렸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노래하는 이례적인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추도객 모두 기립해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숨진 9명의 이름을 차례로 읊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모두 은총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미국에도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원하는 추도사로 전 미국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감동시켰다. 장창수 목사의 설교는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이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윗(Amazing Grace How Sweet).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지.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끝까지 불렀습니다. 하우 스윗 더 사운드 댓 세이브드 어 레취(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그 중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파멸과 죽음 속에 잃어버렸는데(I once was lost) 벗 나우(But now) 그러나 지금은 아임 파운드(I'm found) 찾았네. 워스 블라인드(was. blind) 눈이 멀었는데 벗 나우 아이 시(but now I see) 그러나 지금은 보네. 이제껏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그러니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대적에게서 건져주시고 흑암의 권세와 죄와 사망과 악함과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은혜이고 지난 육 개월 동안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한다)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회중 아멘) 지금까지도 하나님 은혜로 살고 앞으로도 하나님 은혜로 살다가 장차 나를 본향에 인도해주실 분이십니다. 오늘 한 분의 책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07년에 출판한 '365 땡큐'(365 Thank You)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존 크랠릭은 미국의 변호사입니다. LA 주의 대법원 판사를 하다가 2007년에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너무 힘든 겁니다. 소송 건수가 줄고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벅찹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둘째 아들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세도 못 내고 예금은 바닥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딸마저도 자기 곁을 떠납니다. 두려움과 생활 때문에 지독한 우울증과 외로움과 절망의 마지막 자락인데 할아버지의 반복적인 말이 생각났습니다. '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거야.' 이 말이 뭐냐 자기를 돌아보니까 내가 누려왔던 수많은 일들과 생활에 감사하지 않았는데 결국은 그것을 다 놓쳐버렸지 않았느냐. 이제 감사를 해라. 이것을 깨닫고 그는 하루에 한 사람씩 감사를 하려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365일 매일 있었던 일의 감사 편지를 쓰게 됐답니다. 제일 먼저 큰아들을 찾아가 감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상사였던 론을, 세 번째는 친구 린을, 네 번째는 멋진 모습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고 단골 미용사 에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넥타이를 선물한 딸에게도 감사를 했습니다. 이런 감사를 정말 365일 실행했습니다. 감사 편지 쓰기를 마쳤을 때 말랐던 체중이 정상이 되고 사업도 정상 궤도를 넘어서고 아래 직원들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고 또 다른 사랑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오늘 저는 그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불평하지 않도록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문득 믿음의 눈으로 상황과 사건을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두 번째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내 삶 속에서 내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사 언제나 감사가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지나칠 정도로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서. 2024년 맥추감사절을 드린 성도들에게 정말 남은 인생은 스콧 펙의 말처럼 무엇을 선택하든지 감사 감사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시. (회중 아멘) 감사의 신비는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날마다 시간마다 감사가 넘치게 하고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 다른 기적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문득문득 떠오르게 하시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감사의 삶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상식이 되는 대명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총회 큰 빛 장창수 목사의 설교 자체가 Amazing Grace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대명교회를 2,500여 명, 8배로 성장시킨 그는 그 놀라운 은혜의 설교를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성경은 말씀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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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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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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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십자가의 신비
- 창작의 비법은 ‘고백’이다. 모든 글쓰기는 신앙고백처럼 어떤 외양으로 둔갑돼 있건 간에 고백의 본질을 지닌다. 저마다 몸이 달라도 모두 피가 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고백하는 능력과 용기가 없는 이는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승리의 두 가지 축은 투지와 결단력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같은 하수는‘형(形)’인 숫자(지지율)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 같은 고수는 ‘세(勢)’인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과 그 신앙을 본다. 다만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특히 미리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절대 이길 수 없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믿음에서 우러난 자신감과 용기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이 작곡한 ‘메시아’(Messiah)는 줄거리가 있는 곡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오라토리오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아’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 구절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메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 '할렐루야'이다. 이 곡은 밝고 힘찬 악상과 금방 친숙해지는 멜로디로도 인기가 있지만, 런던 공연 당시 있었던 일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1743년 3월 23일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던 연주에서 당시 참석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이 일어나자 청중 모두가 따라서 일어나서 연주를 들었고 이후 '메시아' 공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부활하신 전능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 교단 총회와 호남의 양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가 ‘2024년 4월 고난주간 기도회 초대의 글’에서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의 신비가 신앙을 인격적으로 직조해 냅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대한 기록은 마태는 21장에서 24장, 마가는 11장에서 15장, 누가는 19장 28절에서 23장, 요한은 12장 12절에서 19장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에서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때 거기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안나스의 집 뜰에서 여종이 로마군에 잡히신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거기에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를 오랫동안 묻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음습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해골) 언덕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도 아니하시고 그저 인간들은 아주 단순히 자기의 역할만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보통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어도 죽음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限界狀況) 속에서는 닫힌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고 무지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한계상황에서 넘쳐납니다. 우리가 이걸 알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과 자립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결국은 자립의 삶이 바닥이 나고 그럼 우리의 자아도 무너져 내립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실되었음에도 더 넉넉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환영하지 아니해도 예기치 아니할 때 우리 속에 이 세상 속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끔찍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그때 거기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 거기의 그들에게나 여기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신앙적 확신도 요한에게 있었던 인간적 사랑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있었던 믿음도 한계상황 속에서는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리는 믿음, 신학적인 확신,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숱한 의문과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를 시작으로 헬라인 몇 사람이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 12:21),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묻는 질문으로부터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묻는 다양한 질문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며 질문하는 것들입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면서 신비를, 질문과 의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합리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의 감정에 신비를 직조해 느끼게 하시고 이성에 신비가 영성으로 스며들게 하여 알게 하시고 의지에 신비가 피어나게 하시어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거기의 사람들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7:2)"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인격적인 신앙으로 신비가 감정에 직조되고 이성이 영성으로 변화되며 의지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신비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 1:24-26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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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십자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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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의 소강석 목사 설교 예찬
-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2년 7월 4일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을 역임한 김진표(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 더불어민주당 5선) 국회의원이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김진표 장로의 의원실 책상에는 “Pray First”(먼저 기도하라)는 패가 놓여져 있다. 2024년 5월 28일 여야가 격한 대립을 반복해 온 21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까지 파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등 법안 3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후 6시 22분쯤 선포했다. “여야 및 정부 간 이견이 커서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야당인 민주당에선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3선의 한 의원은 책상을 ‘쿵’ 내리쳤다. 반면 본회의장 오른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국민의힘이 민주유공자법 등에 반발하며 퇴장해서다. 반은 떠나고 반은 고함치는 어수선함 속에 김 의장은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친다. 산회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의 국회 마지막 공식 발언이었다. 그는 1973년 행시에 합격한 뒤 30년 동안 경제 부처 공무원이었고,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년 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고위 경제관료였다는 이력 탓에 ‘민주당 내 보수인사’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당내 논의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한 것을 야당이 됐다고 파괴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없애자”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2024년 4월 25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후진국에 의료와 보건시설을 후원하는 '글로벌 투게더' 임원진과 지구촌 빈곤지역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지역주민의 자립을 지원하는'글로벌에듀'(이사장 소강석 목사) 관계자들과 사회 저명 인사들이 모인 만찬이 열렸다. 그때 김진표 국회의장의 모두 발언에서 소강석 목사의 사회봉사와 국정섬김에 대해 감사를 전하면서 그의 설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제가 알기로 소강석 목사님은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설교자이십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의 아가서 설교는 제 평생에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롭고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여러분도 새에덴교회에 모두 한 번씩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둘째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셋째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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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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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의 소강석 목사 설교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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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과 오정현 목사 교회 달란트
-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옥한흠 목사의 지극한 제자이고 2023년 9월 제108회 총회장이 될 오정호 목사의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조성민 목사가 마지막 모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박수를 요청하며 모두 일어서게 했다. 25주년 케이크 절단 순서가 이어졌다.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4대 교갱협 상임총무 2009. 8)가 마이크 앞에 섰다. “오늘 제가 패널 목사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부적인 면에서는 어떤 면에서 자기에 대해서는 성찰의 칼을 갖는 성찰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교갱을 통해서 지난 90회 총회 때 박윤식 집단이 (총회) 들어오려고 하는 것 (큰소리로) 막은 것만으로도 (톤을 낮추어) 교갱의 공이라고 해도 충분하고 또 여러분 아시지만 지역의 목회 열심히 하는 분들이 대다수가 교갱입니다. 동시에 총신 사태가 발발했을 때 후배들 방문해 애를 쓰게 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현상민 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애를 쓰고 우리 교회도 후원을 했지만 뒤에서 돈을 대고 교갱에 속한 교회들이 많고 김경원 목사님 말씀대로 했습니다. (회원들 웃음 박수)”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한스 큉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청빙을 통해 지난 2003년 8월에 부임하여 사랑의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오정현 목사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으로 삼고 지금까지 제자훈련 사역에 매진해왔다. 더 나아가 2024년 현재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서 ‘제자훈련의 국제화’와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 ‘다음 세대를 위한 글로벌 인재 양성’과 ‘대사회적 섬김’을 위해 쉬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사회 속에서 제자훈련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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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과 오정현 목사 교회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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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3-27 제109회 총회에 참석한 박헌성 목사는 LA 소재 국제신학대학(학장 박헌성 박사)을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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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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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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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남중 목사 보수 신앙 파수꾼
- 폭염의 생땅 흙바닥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 좀더 낮게 좀더 아프게 좀더 나아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염결한 신앙을 표상한다.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절과 의리와 청렴 및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공직자의 네 가지 덕목[四維]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마음(心)이 들 때에는 귀[耳]부터 빨개진다. 이걸 나타내는 글자가 ‘치(恥)’이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내적 기준이 이것이다. 염치는 인생 법정에서 채택되는 양심의 증거이자 용기의 원료다. 염치가 있어야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친 파렴치, 몰염치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러한 부류는 잘못을 범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적반하장과 안면몰수가 주특기다. 스탕달(Stendhal, 1783년 1월 23일 - 1842년 3월 23일)은 말했다. “수치심은 제2의 속옷이다.” 생전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변할 거냐. 영원히 변해간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변해 가야 되는 거야.” 2020년 별세한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아 2022년 10월 25일 삼성 사내 사이트에는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특강 육성이 담긴 5분여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외부 인사들의 회고도 담겼다고 하는데 “이건희 회장과의 대화는 온통 미래에 관한 내용뿐이었다”라고 한다.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고(故) 윤남중 목사(1920년~2015년) 7주기를 맞아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는 2022년 10월 20일 오전 9시 30분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제7회 신학세미나가 열렸다. 제7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GMS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故 윤남중 목사는 전북노회 제88대와 89대 노회장을 역임하며 노회 발전과 개혁주의 보수신앙 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전주효성교회를 담임하면서 전북노회장, 전북신학교 이사장, 전북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등으로 섬겼다. 특히 1980년 총회 분열 당시 남아 있는 교회들을 수습해 전북노회를 지킨 대표적 공로자이다. 1992년 은퇴와 함께 윤 목사를 최초의 공로목사로 추대한 전북노회는 2015년 고인의 소천 후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윤남중 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신학 세미나 개최, 관련 자료 수집 및 출판, 장학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1부 기념 예배에서 사회를 맡은 위원장 김윤경 목사(팔복중앙교회)가 인사말을 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인 윤남중 목사님은 올곧은 신앙과 올바른 신학 사상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목회자와 성도의 사표가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에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파수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해마다 신학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김홍만 목사의 ‘청교도의 신학과 역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신학 세미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원회 회계 이영국 장로(전주팔복교회)가 기도하고 위원회 감사 김석곤 장로(동산교회)가 성경을 봉독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0:31-11:1 2015년 제100회기 21개 상비부장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4명의 후보 윤남철 목사(삼산), 이길우 목사(전북), 노승욱 목사(경기북), 최효식 목사(남서울) 등이 출마를 선언한 정치부에서 당선한 바 있는 이길우 목사(유성교회 원로)가 뜻깊은 추모사를 전했다. “오늘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위원회가 주관한 제7회 신학 세미나에 임해 감개무량합니다. 제1회 세미나를 가지면서 제가 위원장으로 고신대 박영돈 교수를 모시고 ‘일그러진 한국교회 문제와 해결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때 서기는 현 위원장이신 김윤경 목사님이셨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읽었는데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봉독한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말씀하셨는데 10장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연결어가 붙어 있어요. 바울 사도는 31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했어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32절에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말씀합니다. ‘거치는 자’는 여러 곳에서 찾아보니까 범죄자 등 여러 해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꼭 필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33절에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11장 1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합니다. ‘본받는다’의 ‘본’은 빌립보 3장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본받다'는 '따르다'(follow)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은 '표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너희도 나를 따르라는 권면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앞서 가신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고(故) 윤남중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015년 9월 20일 향년 95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노회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신 그 공로를 높이 기리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서 2015년 10월 13일 전북노회 제160회 정기회에서 공로목사 윤남중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왜 이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됐느냐 하면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업회 정관 제1장에 그 목적이 적혀 있습니다. 그 목적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북노회 공로목사 윤남중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이를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한 제반 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다.' 이 목적 그대로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는 윤남중 목사님을 높이고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 목사님 뒤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목사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41년 전에 유상교회(1906년 12월 15일 설립)에 위임하면서 당회장이셨던 고 윤남중 목사님을 뵙게 됐습니다. 노회에서 34년을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목사님 밑에서 서기도 했고 노회장도 했고 전북노회 유지재단이사회 윤 목사님 이사장이실 때 서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노회에서 도장 안 찍으면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백색 전화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거 한 대 놓으려면 유지재단 도장이 찍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지재단 이사장은 굉장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 목사님 이사장이셨고 또 정상우 목사님 서기를 하시다가 동전주노회로 가셔서 제가 서기를 했었습니다. 회고해 보면 윤 목사님 참 인자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정직하셨습니다. 청렴하셨습니다. 이 효성교회는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를 짓기 전에 교회당이 있고 옆에 사택이 있고 서재가 있고 그 2층에 또 예배당이 있는데 오른쪽 서재실에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습니다. 윤 목사님이 전라북도에 지도급에 계셨기 때문이죠. 어떤 건에 문제나 고충이 생기면 윤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문을 받거나 지도를 받았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저도 노회 일을 할 때 윤희원 목사님 그 당시 신학을 하시고 황 사모님이 며느리셨는데 참 수고가 많으셨어요. 그때 모든 접대를 사모님이 담당하셨어요. 잊히지 않는게 있는데 당시 사모님이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그때 돈까스 참 맛있었습니다. (웃음) 지금은 돈까스가 별것 아닌데요. (웃음) 35년 전 돈까스는 굉장했어요. 그때 돈까스를 손수 만들어 대접을 했습니다. 윤희원 목사님은 서울에 가 계시고 사모님은 시부모님 모시고 교회 드나드는 수많은 분을 대접하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윤남중 목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자기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우리 전북노회는 윤남중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전북노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장로교회 분열사를 보면 기장과 분열하고 통합 측과 분열하고 개혁 측과 분열했습니다. 그때 아시는 대로 기장과의 분열은 신학적 분열이었습니다. 김재준 교수가 총회에서 성경 유오설을 주장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걸 계기로 기장이 하나의 교단이 됐습니다. 1959년 통합 측과의 분열은 WCC 문제, 에큐메니컬 문제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대립하다가 합동 측은 반대하는 위치에 섰고 신학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정규오 목사의 개혁 측과의 분열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총회를 주도하는 주류 측과 비주류 측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1979년 9월 대구동부교회에서 총회를 개회하고 있을 때 총회 장소 문을 잠그고 비주류 측 사람들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비주류 측 목사들이 참석도 못 하고 다 돌아갔습니다. 그 후 윤남중 목사님을 통해서 그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때 윤남중 목사님은 비주류 측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셨습니다. 전라남북도 대부분 칠십 내지 팔십 프로가 비주류에 섰던 그런 때 윤남중 목사님 위치는 비주류에 가까운 분이신데다 대구에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비주류로 가자고 갈라질만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가까웠던 분들 북문교회가 나가고 팔복교회가 나가고 서문교회가 나가고 다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이 안 나가고 그냥 주류에 남으셨습니까.' 윤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 신앙적인 문제였고 신학적인 문제였다면 당연히 나는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합동 측에 소속한 목사로서 후손들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난 여기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후손들이 교회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비주류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이 개혁 측에 계셨다면 총회장 되셨을 겁니다. 그러나 윤 목사님은 주류 측에 남으셨습니다. 주류 측 안에서도 갈등이 있을 때도 윤남중 목사님은 정치적인 계산에 초연하셨습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은 총회장이 되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단 분열이 있을 때 윤 목사님은 노회를 수습하고 이끌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어려운 시기에 남아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격려하며 전북노회를 재건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노회는 전북지역 노회의 뿌리 노회였습니다. 79년도에 동전주노회와 북전주노회 그리고 전북노회가 분립 되면서 개혁 교단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탈퇴했습니다. 당시 10여 교회가 남았다. 윤 목사님의 기도와 인내가 전북노회를 지켜냈습니다. 전북노회의 존폐 위기에서 윤 목사님께서 하신 일이 그래서 소중합니다. 연약한 노회를 이끌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모릅니다. 저희는 약하고 경제적으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와 노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정말 윤 목사님은 매사에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셨습니다. 정기노회 때도 맨 앞자리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노회 규칙과 헌법에 따라 회무와 안건을 처리하시면서도 언제나 겸손하셨습니다. 정말 바르게 정말 말씀에 합당하게 교회와 노회를 섬기신 윤남중 목사의 본을 따라 전북노회의 전통을 이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영사에서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신 고(故) 윤남중 목사의 가르침을 회고한 전북노회 노회장 이영익 목사(중화산교회)가 축도했다. 2부 기념 예배에서 제103회 총회장이고 제104회 총회선거관리위원장인 영남의 지도자 이승희 목사가 아끼는 GMS 이사장 박재신 목사(양정교회)가 금쟁반에 사과 같은 축사를 했다. "이제 (윤남중 기념사업회 세미나) 7회가 되도록 저한테 축사가 처음이거든요. (회중 웃음) 어쩐 일인가 생각을 했더니 제가 지난 9월 1일 GMS 총회에서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당선되기까지 전북지역 많은 목사님들 많이 기도해주시고 협조해주셔서 이사장의 자격으로 와서 축사해달라는 뜻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희 GMS는 2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작지 않은 큰 선교 기구입니다. 선교를 잘 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신학적인 바탕이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지도자죠. 우리 장로교는 칼빈이 모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선교입니다. 선교를 감당하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되고 신학적인 바탕에 본받고 따라갈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전북지역에서는 바로 그 모델이 윤남중 목사님이십니다.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께서 정말 자세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델이 있고 신학적 바탕이 튼튼하다고 할지라도 따라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윤남중 목사님은 27세 나이에 개척해서 여러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북신학교를 섬기시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쓰시고 전주교도소를 통해 대사회적인 교정 선교를 하시고 교회협의회 회장을 하시면서 연합사업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정말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고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윤남중 목사님 기념사업회를 통한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후학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축하할 일이고 제7회 행사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고 함께한 여러분에게도 축복이 있어서 교회와 선교와 윤남중 목사님을 따르는 그 길이 하나님께 빛나는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기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후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깨우쳐주는 김홍만 박사의 ‘청교도 신학과 역사’ 특강이 진행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 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성경은 말씀한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7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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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남중 목사 보수 신앙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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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소강석 목사 설교 준비
- 설교를 연습하기 위해 강의실에 가던 신학생이 길에 쓰러진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이 남자에게 다가가 도움을 줄까. 그냥 자기 가던 길을 갈까.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 신학생의 인품이다. 그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과같다면 도울 것이다. 냉담한 레위인이라면 외면하고 지나칠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금 바쁜가 아니면 여유 있는가.” 사회심리학자들은 그의 인품보다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데 유용하다고 지적한다. 학자들은 전자를 성향주의, 후자를 상황주의라 명명한다. 그러면 상황주의에 입각해 인간 행동이 어떤 상황에 영향 받는지 따져보자. 인간 행동에서 상황(situation)이 지닌 위력은 성경의 요셉을 제외하고 성품의 힘을 능가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행동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무엇인가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반복했다. 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힌트를 받아 신학생을 대상으로 무엇이 선한 행동을 유발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설교 연습 ‘시간에 늦은’ 학생이 쓰러진 남자에게 도움을 준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반면 ‘시간 여유가 있는’ 학생이 도운 비율은 63%에 달했다. 이 실험을 통해 신학생들을 선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한 건 각자의 성품이 아니라 여유 있는 시간이라는 상황임이 드러났다. 칠레 민중의 대변자였던 시인 네루다는 시 ‘양파를 기리는 노래’에서 양파로 허기를 달래는 민중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동감하는 시인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부엌칼에 잘리는 양파 매운 내에 담아 넌 괴롭히지 않고도 우리를 울게 했다 네루다는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지만,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란 명언을 남겼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인 소강석은 분당선 지하철 출입문 위에 하늘색 바탕 액자에 흰 글자로 이런 싯귀를 담았다. 아프다고 말해 보세요 우리가 당신 곁에 있잖아요 네루다가 직설적 민중시를 뛰어넘는 언어의 마술사였다면 시인 소강석은 감성적 신앙시로 민중을 감싸고 마음을 싸매는 뛰어난 언어의 설교자이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되라’(롬 8:5~9)를 주제로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새에덴교회 장년 여름 수련회가 8월 6일 오후 3시 수석장로 서광수의 사회로 시작됐다. 오천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양과 기도와 소강석 목사 말씀 선포의 향내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서광수 장로가 기원했다.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새에덴교회 2019년 장년 여름수련회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3박 4일 집회 기간 좋은 날씨를 주시고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인도해 주십시오. 목사님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쉼과 힘을 주시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해주십시오. (회중 아멘) 성령을 폭포수처럼 내려주시고 영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되게 해주십시오. (회중 아멘) 집회 기간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오며 축복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83장 ‘빈들에 마른 풀같이’ 찬송 뒤 정금성 권사가 기도했다. “만 왕의 왕 되시고 만 주의 주 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버지 이 시간 하늘 문을 여시고 천군 천사를 내려주시어 눈동자같이 지켜주십시오. (회중 아멘) 주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사랑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 목사님 말씀을 통해 영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온전히 변화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회중 아멘) 이 시간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심령에 말씀과 성령의 불을 붙여 주십시오. (회중 아멘) 모든 악은 물러가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은 주님 예수를 보내사 구속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시간 목사님 말씀을 통해 몸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해 주십시오. (회중 아멘) 주님 음성을 들려주십시오. 우리 성도님들 사업과 직장에 축복해 주십시오. (회중 아멘) 복의 근원 되게 해주십시오.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해주십시오. (회중 아멘) 하나님 우리가 복을 받아 언제나 복을 나눠주게 해주십시오. 우리 목사님 말씀 증거하실 때 시간시간 영의 사람이 되게 해주시고 아멘 아멘 복 받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생명수 흐르는 강처럼 넘치는 은혜로 채워주십시오. (회중 아멘) 목사님 말씀 전하실 때 복 주면 복 받고 저주 하면 저주 받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주십시오. 수련회를 위해 봉사하는 심령들에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로마서 8:5-9 봉독과 여러 팀의 찬양 뒤 소강석 목사가 할렐루야를 외치며 설교단에 섰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박수 그리고 헌금자 기도) 하나님 앞에 영광의 박수 올려 드리겠습니다. (회중 박수) 우리가 변함없이 장년 여름수련회에 왔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신선하십니다. 상큼하십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이 자리에 온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저나 여러분 모두 하나님 은혜로 온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내년에도 여기 와서 수련회를 하게 될 텐데 전쟁이 나면 안됩니다. 북한과도 일본과도. 지진이 나도 안됩니다...” 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는 가슴을 쥐어짜는 노래, 구성진 하모니카, 후련한 해학 등이 어우러져 하나님 백성이 웃고 눈물짓고 체증이 뚫리고 말씀을 통한 믿음의 각오로 숙연해지게 한다. 수련회에선 총 8회에 걸친 집회를 통해 은혜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집회가 끝난 날 그 설교준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남진, 조용필, 이선희도 큰 공연 앞두고는 은둔을 합니다. 저도 지난 수목금에 기도원에 있었습니다. 서철원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주제로 8번의 설교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아시나요...” 다음날 이런 메시지가 왔다. “.. 담주는 러시아에 갑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님 기념비 세우러요...” 독일 출신의 유대계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설파한 '악의 평범성'도 상황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이히만이 악마여서가 아니라 나치 하의 독일이라는 환경이 그를 악마가 되게 했다는 아렌트의 견해가 바로 상황주의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가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누군가 명백한 오답을 말해도 집단 내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동조하면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이들조차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답을 말해야 할지 망설인다. 관련 실험에서 적게는 50% 많게는 80%의 실험 대상자가 너무도 뻔한 오류를 비판하지 않고 동조해 버렸다. 그렇다면 상황은 불가항력의 힘을 갖고 우리의 삶을 좌우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성공한 의사·성직자·사업가·연예인들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우정을 쌓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더 나아가 읽을 신문과 책, 보지 않을 TV 프로그램까지 하나하나 결정함으로써 자신이 들어갈 환경을 직접 조성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은 환경을 탓하는 성향이 낮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은 삶이 힘든 이유를 불운 즉 환경 탓으로 돌린다. 성공한 이들은 자식을 가르칠 때 책임감과 자기 통제를 요구한다. 지위가 낮은 이들은 예절과 복종, 타인과의 인화, 훌륭한 매너를 강조한다. 사람은 상황의 힘에 휘둘리지만 그 상황을 만드는 이 또한 사람이란 생각이다. 그런 사람이 소강석 목사다. 시인 소강석 목사에게서 1919년 8월 23일 이런 메시지가 왔다. “낮에는 뛰고 저녁은 독서, 시대 분석 설교준비를 합니다. 지금은 설교준비를 하죠. 이따 보내드린 설교 한번 들어보세요. 얼마나 준비하며 설교하는지요. 지금 거의 두시입니다. 11시에 들어와...” 독립 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고 러시아에서 돌아온 날인 모양이다. 한국 주요 일간지에 갑자기 최재형 선생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문재인이 좋아한다는 영화 밀정의 주인공 북한 괴뢰 김원봉 대신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일대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다.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모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축적한 부를 토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무기 구매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4월 순국했고 유가족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사후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최재형은 1858년 8월 15일에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었던 그는 끝내 자신의 생일과 겹치는 광복일을 보진 못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7일 일본군에 체포돼 연해주 신한촌의 벌판에서 총살됐다. 시신도 찾지 못했고 묘지도 없다. 순국 100년이 되도록 그의 이름 석 자는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1869년 함경도 일대에 홍수가 나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을 때 “두만강을 건너면 비옥한 땅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최재형 일가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로 갔다. 당시 연해주의 한인들은 자녀들을 러시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차별받던 최재형은 오히려 러시아 학교를 택했다. 그는 러시아 학교에 입학한 첫 한국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한 최재형은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며 연해주 최고의 갑부로 성장했다. 한인촌의 권업회장을 맡으며 그는 연해주 한인 민족운동과 의병활동을 지원했다. 최재형의 애국심과 자금력은 대단했다. 나중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될 정도였다.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에서 최재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안중근이 “집집이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연해주 일대의 한인을 학살하던 4월 참변 때 최재형은 결국 죽임을 당했다. 새벽 일본군에 체포된 최재형은 그날로 총살됐다. 당시 62세였다. 근 100년이 지난 2019년 8월 12일 기인 소강석 목사 주선으로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열렸다.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전 안중근 의사가 사격연습을 했던 최재형의 자택(현 최재형기념관)이 있던 장소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목사는 자작시와 함께 기념사를 읊으며 “오늘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최재형 선생의 정신과 삶의 궤적이 민족의 가슴에 별처럼 빛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105회 총회장이 될 총회의 별 시인 소강석 목사는 “우리가 늦게나마 이런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그는 “오늘 추모 건립비,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애국 애족의 정신, 하나님을 위한 믿음이 민족의 광야에 별처럼 빛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프랑스 건축가 랑팡이 골격을 설계한 계획도시 워싱턴은 가장 높은 곳에 국회의사당을, 그다음 백악관을 앉혔다. 그러나 도시의 중심은 사위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워싱턴 기념비’다. 박정양은 자신의 문집 '미행일기(美行日記)'에 썼다. "높이가 550척, 너비가 55척이며 대리석으로 담장을 마련하였는데 돌문과 8개 창을 만들고 그 가운데를 비워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이는 한 나라 인민이 그 독립의 공업을 잊지 않고 이를 새겨 놓은 것이다. 이집트 오벨리스크 형상의 새하얀 기념비를 바라보다 유월절을 떠올렸다. 유대인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이날, 이스라엘 국민은 누룩이 없는 빵과 쓴 나물만 먹는다고 했다. 애급의 노예로 살았던 쓰디쓴 고통을 곱씹으며 다시는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지 않겠다는 다짐에서다. 거기, 우리의 광복절이 겹쳤다. “임정 요인 한 사람에 당이 하나씩이더라”는 독립운동가 장준하의 탄식처럼 분열과 혐오의 역사를 거듭해온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둘로 쪼개져 색출, 응징, 청산을 외쳤다. 이날만큼은 대한민국, 그 고단한 역사를 일궈낸 모든 이의 피·땀·눈물에 경의를 표할 순 없을까. 이날 하루만큼은 선동과 삿대질을 멈추고 치욕도 영광도 우리 모두의 역사였다며 따뜻하게 안아줄 순 없을까. 소가 웃을 일인가. 링컨기념관을 향해 걷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보았다. 야전군인 듯 철모에 망토를 입고 전진하는 군인들 조각상 앞에 붉은 장미꽃이 놓였다. 이름 모를 나라에서 그들이 젊음을 불살라 지키려 했던 자유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목젖이 뜨거워졌다. 나의 짧은 미국 유학 시절 1987년이었다. 비가 쏟아졌다. 어린애 주먹만 한 우박도 떨어졌다.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긴 여행을 다녀오라던 친구의 충고를 떠올렸다. 용서해야만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용서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였다. 멀리 포토맥강변으로 무지개가 떠올랐다. 쌍무지개. 반가운 소식 오려나. 민족과 한국 교회의 지도자 소강석 목사 우리 총회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 26:4-5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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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소강석 목사 설교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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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하 목사 26년 역사 교회 임직식
- 그리스 신화에서 칼은 종종 시간과 동의어다. 질적인 시간의 신 카이로스도, 양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도 모두 칼과 낫을 들고 있다. 그만큼 시간에는 거부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감 시간이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번역은 과장이 아니다. 2015년 11월 7일(토) 오후 2시 화랑대역에서 10분 거리 공릉 2동의 예수사랑교회에서 임직식이 있었다. 총신대 총장 김영우 목사가 즐겨 쓰는 총신대와 총회신학연구원을 나온 총총 출신의 김진하 목사는 1989년 3월 26일 부활주일에 상계동 주공아파트 15단지 앞 상가 4층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12년 만에 600명의 성도로 성장해 2001년 공릉동으로 옮긴 예수사랑교회는 너른 주차장과 특색 있는 교회당을 가지고 있다. 교회당 옆벽에 월계관 모양의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초상이 검은 색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그 검은 초상에 드러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모든 아픔과 괴로움은 사라지고 그 교회의 입술에 입 맞추면 모든 악몽과 미움이 사라질 것 같다. 시무장로 7명, 명예장로 3명, 시무(안수)집사 19명, 집사취임 2명, 시무권사 21명, 명예권사 5명 등 모두 57명이 임직한 제1부 예배에서는 박광원 목사(총신 78회, 가산교회, 평양노회 부노회장)가 기도를 했다. 설교는 노동혁 목사(서로사랑교회, 평양노회 서기)가 읽은 요나서 2:1-10을 본문으로 전 총신대 총장 길자연 목사가 “길은 열려 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날 제2부 임직식에서 당회장 김진하 목사는 인사말을 했다. “저희 예수사랑교회는 26년 전 상계동 상가 4층에서 11명의 성도들과 함께 ‘청년의 꿈을 가진 교회’ 라는 비전을 품고 개척 되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훌륭하신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들을 예수사랑교회의 지체로 붙여주셔서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교회’,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며 오늘날까지 이렇게 부흥 성장케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조국교회를 섬기는 교회’, ‘열방을 복주는 교회’로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주님 손에 붙들린바 되어 달려가고 있습니다. 천사도 흠모할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번에 57명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을 세워주셨는데 이를 기쁨으로 임직합니다.” 평양노회 고참 이성택 목사가 축도를 하고 가브리엘 찬양대의 폐회송으로 임직은 끝났다. 김진하 목사가 개척해 섬기는 교회에 비는 그날 온종일 내렸다. 아내와 함께 서서 바라보던 예수사랑교회 벽에 빗물이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 진득하게 내리는 날 예수 그리움을 섞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짐짓 쓴 커피 맛은 사라지지 않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의 임직식이 아름다운 추억 한 스푼을 넣은 커피 한잔의 그리움으로 가을비 속에 남을 것 같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동안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 이성택 목사도 길자연 목사도 나도 김진하 목사도 강재식 목사도...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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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하 목사 26년 역사 교회 임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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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 장마는 비를 뜻하는 옛 우리말 ‘맣’이 길 장(長)을 만나 긴 비를 뜻하는 '장맣'에서 '장마'로 축약된 말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발밑 여기저기 초록색 열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실이다. 장마철은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익어서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견’은 들을 수는 있어도 ‘다양한 의견’을 보기엔 적합하진 않다. 이럴 때 책이 좋은 보완재가 되어준다. 내가 모르는 삶과 세계, 인식을 적당한 깊이로 빠르게 습득하는 데 독서만 한 방법이 없다. 책이 괜히 간접 체험 콘텐츠의 최고봉이 됐겠는가. 책으로 쌓은 지식은 성경의 믿음이나 삶의 지혜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서로 보완하며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한 층 드높인다. 2024년 7월 7일 맥추감사주일 오전 11시 30분.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설립 109년 대구대명교회 설교단에 섰다. 시편 136:21-26을 봉독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실로암 찬양대가 찬양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이끄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크신 주 은혜로 붙드시네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권세로 기도하고 주의 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고백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우리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장로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성가대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시고 우리도 같은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많은 분들의 십일조와 감사와 여러 예물과 맥추 감사 헌금들을 받아주시고 바친 손길마다 이 땅의 만 가지 복으로 갚아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하나님 베푸신 축복과 은혜가 매일의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삶의 현장에도 자녀들에게도 특별한 모든 일에도 주께서 주시는 복으로 갚아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장례식을 마치고 슬픔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믿음의 가정도 복되게 하셔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으로 위로받게 해주소서. (회중 아멘)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주의 종이 부탁드립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셨으니 생명의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 시간 임재하여 주시고 능력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너 악한 고통과 질병들아 성도를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아 나사렛 예수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도들의 몸에서 즉시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떠나갈지어다. (회중 아멘) 깨끗하게 나을지어다. (회중 아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주시고 감사로 충만하여 우리 삶이 감사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회중 아멘) 부족한 종에게도 말씀의 은사를 덧입혀 주옵소서. (회중 아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회중 아멘)" 총회와 총신을 밝힐 대명(大明)교회 큰 빛 장창수 목사가 주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의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오늘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별관 3층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대명성전, 강북성전, 경산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대명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회중 아멘) 오늘 맥추감사주일 '감사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상시 우리의 감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나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감동을 하느냐. 내가 예기하지 못했던 일과 사건들에 접하거나 선물들을 받을 때 그때 감동받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물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 뜻밖에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마음이라 그렇게 쓰면서 자기 어릴 때와 지금까지의 감동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20대 초 자기가 기차 시간표를 보며 여행 일정표를 짜면서 겪은 감동의 순간들, 비 내리던 날 할 일 없이 따뜻한 방에 들어앉아 마셨던 커피의 감동, 그 당시에는 이런 감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감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들의 반복은 오히려 감동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되면서 감동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여기에 공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너무도 많은 감동의 조건과 대상들을 주셨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늘 똑같이 임하니까 그게 감사할 일인 줄도 모르고 감동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그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이 있으니까 감사가 줄어들고 감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예전에 그를 감동하게 했던 그 많은 일들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삶 속에서 감사와 감격,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들이 성도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것 중의 하나가 감사와 기쁨이라고 칼빈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표징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이들 특징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은 야! 와! 감탄과 감사를 참 잘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교회 유치부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물론 제가 세뇌를 시키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하면 불러서 간식을 줍니다. 교육을 한 명에게 시켰는데 요즘은 이게 퍼져서 아이들마다 저를 보면 '잘 생긴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주려고 제 방에 온갖 간식을 갖다 놨습니다. 캔디나 초콜릿이 해로울까 봐 날마다 갯수를 정합니다. 오늘은 두 개만 가지고 가, 또는 세 개만 가지고 가. 그런데 지난주는 저한테 뭐라 뭐라 말하면서 저를 안아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줬어요. '오늘은 간식 다섯 개야.' 그러자 제 방에 들어온 네 명의 아이들이 '와!' '와!' '와!' '와!' 감탄을 연발하는 겁니다. (회중 웃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저 아이들처럼 살아야 되는데. 그 작은 캔디 하나에도 지금보다 한 개 더 많은 것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지금 사는 삶 속에서도 저렇게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성경에 '어린아이처럼'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서양의 문명 속에서 그들이 발전한 것은 그 속에 믿음이 있었고 기독교 문명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 문명 속에서도 감사와 감탄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그 문화와 그들의 부강함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원더풀(wonderful)과 땡큐(thank you)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수년 전에 제 은사이셨던 톨슨(Dr. Donald Torsen: Azusa Pacific University 조직신학 교수) 박사께서 우리 교회 오셔서 설교도 하셨습니다. 그때 저에게 '패스터 장, 경주를 보여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경주에 모시고 갔습니다. 박물관도 보여드리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톨슨 박사님이 관찰에 집중하시면서도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물건 하나를 보시고도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제가 설명을 해드리면 그 설명 속의 의미를 가지고서도 그저 ‘원더풀’ 하시는 겁니다. 이런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생각해봅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말씀하는데 '기묘하심'이라는 독특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으심이 심히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 대상이 나를 지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지으셨다는 게 신기한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까. 그리고 이 뉘앙스(nuance 어감) 속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표현입니다. 작든지 크든지 좁든지 넓든지 잘생기든 못생기든 그 어떤 경우에서도 자기 자신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와우! 감탄을 하고 야! 이게 어떤 은혜인가 감사하는 이런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조그만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와 감동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감사와 감동이 없습니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내용을 잊어버리면 그 감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인이시면서 저희들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그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교회 절기에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면서 이렇게 뭘 모르는 소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목사님 맥추(이 말은 보리 ‘맥麥’자와 가을 ‘추秋’가 합쳐진 단어 즉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는 뜻) 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보리 추수를 기념하는데 오늘날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교회가 왜 이런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절기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별히 지나간 한 해의 반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자신들과 삶을 지켜주신 은혜를 조금만 생각한다면 충만한 감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고 신학자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캇 펙(Morgan Scott Peck, 1936년 5월 22일~2005년 9월 25일)의 저서 '그리고 저 너머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수많은 걸음과 여정을 바라보면 참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 속에서도 결국 감사도 그 선택에 포함된다고 스캇 팩은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삶의 시간 속에 우리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교회 오면서 야 또 주일이다. 왜 이렇게 빠르지, 말은 안 하지만 시간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은 설레임을 가지고 이 맞닥뜨린 지난 육 개월을 돌아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감사를 선택합니다. 감사를 선택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모든 삶의 감사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배를 주제로 하는 시편 136편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구절이 그 독특한 형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은 히브리인들이 유월절이나 신년절이나 감사절에 자주 암송을 하고 함께 교독을 하는 아주 대표적인 성경입니다. 성전 뜰은 누구나 들어가지만 성소와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시편 100편 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문이나 궁정은 성소 안의 뜰을 말하는데 이 성소 안에 들어가서 해야 될 제일 중요한 일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제사와 예배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 속에서 지금 앉아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말씀합니다." 장창수 목사는 오페라에서 언어의 악센트로 이야기하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를 부르듯 독창한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언제까지)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할찌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그 찬양이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3절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4절에서 9절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10절로 20절까지는 여호와께서 내 적을 물리쳐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 시편 136편의 23절에서 26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 우리를 건지시고 비천한 데서 살려주시고 올려주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마음껏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여러분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에서도 지난 한 주간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특별히 맥추감사절 절기를 지키며 지난 육 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이 충만한 감사로써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36편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말씀합니다. 이 감사가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송정림 작가의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설렘의 습관'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재미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두근대면 무죄! 설레지 않으면 유죄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설레임을 가지고 감사를 가지고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무죄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감동 없이 오늘 감사가 없이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유죄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1부 예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여러 성도들이 둘러서 같이 탔습니다. 그런데 새 가정의 집사님 한 분이 타셨는데 너무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으신 분 같았습니다. 그냥 저한테 쉽게 얘기하시면 되는데 못하시더라고요. 고개를 이렇게 숙이고 말 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저는 매주 목사님이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나님에게 설레이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그분이 특별난 게 아니라 이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설레임! 오늘도 나를 통한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이런 것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설레임! 설레임이 식이지는 것은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성전에서 손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배이고 찬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행위입니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먼저 찬양대가 이렇게 찬양하면 온 백성이 두 손을 들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온전한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저희들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찬앙대를 대신하고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히브리인을 대신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겁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장창수 목사가 선창했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온 회중이 일제히 우렁차게 찬양했다.)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한 번 더 해볼까요.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히브리인들은 성전 앞에서 이렇게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감사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행스텐버그(E. W. Henstenberg)의 책에 보면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형식적인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 은혜와 복을 기억하며 벅찬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행하며 감사 감사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럴 때 기쁨으로 반짝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은혜와 감사의 기름이 부어졌다는 것이며 기쁨과 감사는 신앙의 표징입니다.' 우리가 이 감사로 하나님 앞에서 충만한 은혜를 입을 때 그분이 감사를 받으시고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기름 부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회복도 되고 다시 한번 용기도 얻고 우리가 치료함도 받고 은혜도 받고 밝은 모습으로 이 예배당을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강력한 도우심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의 원천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 우리는 매 주일 왜 예배를 드릴까요.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 그분을 만나고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118편 23절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라' 말씀합니다. 과연 이 세상의 최고의 성자가 누구입니까. 공의로운 사람입니까. 탁월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한결같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22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물론 이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는 바벨론이 '비천함'에서 그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히브리인을 탈출시키시고 해방시키셔서 약속의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무엇일까요. 역사적인 배경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삶들을 돌아보면 비참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보잘것없고 영적으로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셨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자격 없는 저희들이 죄 씻음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됐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의 소망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시편 116편 8절에도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기에 비참함의 세 단어가 나옵니다. 사망입니다. 눈물입니다. 넘어짐입니다. 영적으로는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수많은 고통과 눈물에서 그리고 넘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 어떤 경우에서 심지어 수치스러운 것과 비참함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어떻게요. 천국으로 화하도다.' 천국의 특징을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는 설레임과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지겨운 곳이 아닙니다.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우리 상상 속의 영혼의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소는 실제 거주하고 실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슬픔 많은 이 세상 그 상황이 안 바뀌어도 천국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찬양한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속삭이듯)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설레임과 기쁨으로 삽니다. 영혼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의 이 땅 오천 년 동안 우리가 초근목피(草根木皮 제대로 풍년이 진다고 해도 반 철 식량밖에 거두지 못했다. 나머지 몇 개월은 역시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을 해야 했다고 한다)를 우리가 피할 수가 없어서 1957년까지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는 아프리카 가나(Republic of Ghana) 수준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 무엇보다 양국의 1인당 GNP 수준이 비슷했으며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 분포도 비슷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거느리고 자동차, 전자장비, 고도로 기술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수준이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88회기 총회장 임태득 목사 후임으로 대명교회에 부임한 장창수 목사는 20여 년 교세는 8배 커졌다. 그럼에도 설교는 여전히 가장 큰 부담이지만 설교만큼 가장 영향력 있고 설교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는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성도들의 삶에 깃드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 가난과 차별과 고통과 질병과 특별히 배고픔 속에 살았습니다. 이 험난한 역사에 비참함과 990회 이상의 침범을 당하고 어느 한순간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지내지 못하고 한 번도 마음껏 먹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140년 전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면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국가와 민족의 비참함에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의 비참함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30년 40년 전만 해도 이 먹는 것은 우리에게 갈급한 기도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러한 시대에는 이러한 우리의 먹을 것들이 감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먹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구나.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게 우리 얘기 아닙니까. 교회 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가 109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1부 2부 예배 참석자를 부교역자를 통해 계수하니까 그때 우리 출석 교인이 340명에서 370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19년 동안 성도들과 행복하게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은혜가 감사합니다. 저는 고속도로 휴계소 갈 때마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나온 옛날을 생각하면 비참했잖아요.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밖에서 돈 안내고 화장실 갈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아요.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비참한 우리나라, 비참한 우리 가정, 비참한 나 자신을 세워주신 하나님 은혜를 헤아려보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그 이름을 말해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한 걸음만 물러나 보고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도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말씀합니다. (회중 아멘)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 1893~1990)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을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입니다. 야 힘들다. 앞에 이것이 있구나. 저게 있구나. 지금 상황이 이런데 큰일 났다. 저 사람은 있는데 왜 나는 이게 없어. 이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음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 그 상황이 해석이 됩니다. 남들과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대적에게서 건지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아멘) 제가 직역합나다. '그분께서 우리를 우리의 대적들로부터 분리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수많은 외적과 사탄과 어둠의 권세와 모든 환난에서 우리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분리시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네이슬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벨론과 적군에서 보호해주시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구원 사역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3절 '흑암의 권세' 고린도후서 1장 7절 '죄와 사망' 갈리디아서 1장 4절 '악한 사람들' 사도행전 7장 10절 '모든 환난' 재해나 전염병이나 핍박이나 사고 등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은혜를 망각합니다. 지난 6개월도 당연하게 여기까지 와서 2부 예배 앉아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런 악한 대적에게서 분리시켜주셨습니다. 최근 서울 시청역 교통사고(2024년 7월 1일 21시 27분경 서울특별시 중구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갑작스럽게 인도로 돌진하여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를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홉 명 가장이 죽었습니다. 일곱 명이 다쳤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도 40년 베테랑 버스 기사입니다.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습니다. 이런 사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당연한 것이요, 그분의 지켜주심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반년 동안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에게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회중 아멘) 절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103편 3절에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4절에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4절 본문에서의 '파멸'이라는 단어도 독특합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가 성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파멸’인데 어느 곳에서는 죽음, 구덩이, 함정, 심지어 지옥으로도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 구덩이, 함정, 지옥 등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온갖 대적과 삶의 고통, 시험,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오래됐을지라도 수많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가장 많이 부르는 찬양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입니다. 감탄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주 낮게) 어메이징 그레이스...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가! Amazing Grace How Sweet!’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 추도식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총회와 총신을 밝힐 큰 빛 장창수 목사는 '설교는 성도들의 삶의 적용과 성경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확하고 감동적인 예증과 예화들의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설교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박사 과정에서 익힌 성경 본문에 대한 많은 관찰의 시간을 가지고 다음의 실제 사건을 예증으로 사용했다. 2015년 6월 18일 흑백 갈등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감리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비롯해 흑인 9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인 감리교회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도식이 2015년 6월 26일 찰스턴 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이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기 위해 참여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찬송가를 부르며 백인의 흑인 증오범죄로 숨진 이들을 기렸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노래하는 이례적인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추도객 모두 기립해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숨진 9명의 이름을 차례로 읊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모두 은총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미국에도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원하는 추도사로 전 미국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감동시켰다. 장창수 목사의 설교는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이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윗(Amazing Grace How Sweet). 놀라운 은혜. 얼마나 달콤한지.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끝까지 불렀습니다. 하우 스윗 더 사운드 댓 세이브드 어 레취(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그 중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파멸과 죽음 속에 잃어버렸는데(I once was lost) 벗 나우(But now) 그러나 지금은 아임 파운드(I'm found) 찾았네. 워스 블라인드(was. blind) 눈이 멀었는데 벗 나우 아이 시(but now I see) 그러나 지금은 보네. 이제껏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그러니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대적에게서 건져주시고 흑암의 권세와 죄와 사망과 악함과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은혜이고 지난 육 개월 동안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한다)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회중 아멘) 지금까지도 하나님 은혜로 살고 앞으로도 하나님 은혜로 살다가 장차 나를 본향에 인도해주실 분이십니다. 오늘 한 분의 책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07년에 출판한 '365 땡큐'(365 Thank You)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존 크랠릭은 미국의 변호사입니다. LA 주의 대법원 판사를 하다가 2007년에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너무 힘든 겁니다. 소송 건수가 줄고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벅찹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둘째 아들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세도 못 내고 예금은 바닥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딸마저도 자기 곁을 떠납니다. 두려움과 생활 때문에 지독한 우울증과 외로움과 절망의 마지막 자락인데 할아버지의 반복적인 말이 생각났습니다. '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알기까지는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거야.' 이 말이 뭐냐 자기를 돌아보니까 내가 누려왔던 수많은 일들과 생활에 감사하지 않았는데 결국은 그것을 다 놓쳐버렸지 않았느냐. 이제 감사를 해라. 이것을 깨닫고 그는 하루에 한 사람씩 감사를 하려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365일 매일 있었던 일의 감사 편지를 쓰게 됐답니다. 제일 먼저 큰아들을 찾아가 감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상사였던 론을, 세 번째는 친구 린을, 네 번째는 멋진 모습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고 단골 미용사 에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넥타이를 선물한 딸에게도 감사를 했습니다. 이런 감사를 정말 365일 실행했습니다. 감사 편지 쓰기를 마쳤을 때 말랐던 체중이 정상이 되고 사업도 정상 궤도를 넘어서고 아래 직원들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고 또 다른 사랑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오늘 저는 그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불평하지 않도록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문득 믿음의 눈으로 상황과 사건을 해석하게 해주시옵소서. 두 번째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내 삶 속에서 내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사 언제나 감사가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지나칠 정도로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서. 2024년 맥추감사절을 드린 성도들에게 정말 남은 인생은 스콧 펙의 말처럼 무엇을 선택하든지 감사 감사 감사하게 해주시옵소시. (회중 아멘) 감사의 신비는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날마다 시간마다 감사가 넘치게 하고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 다른 기적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문득문득 떠오르게 하시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감사의 삶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상식이 되는 대명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총회 큰 빛 장창수 목사의 설교 자체가 Amazing Grace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대명교회를 2,500여 명, 8배로 성장시킨 그는 그 놀라운 은혜의 설교를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성경은 말씀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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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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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어메이징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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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십자가의 신비
- 창작의 비법은 ‘고백’이다. 모든 글쓰기는 신앙고백처럼 어떤 외양으로 둔갑돼 있건 간에 고백의 본질을 지닌다. 저마다 몸이 달라도 모두 피가 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고백하는 능력과 용기가 없는 이는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승리의 두 가지 축은 투지와 결단력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같은 하수는‘형(形)’인 숫자(지지율)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 같은 고수는 ‘세(勢)’인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과 그 신앙을 본다. 다만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특히 미리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절대 이길 수 없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믿음에서 우러난 자신감과 용기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이 작곡한 ‘메시아’(Messiah)는 줄거리가 있는 곡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오라토리오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아’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 구절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메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 '할렐루야'이다. 이 곡은 밝고 힘찬 악상과 금방 친숙해지는 멜로디로도 인기가 있지만, 런던 공연 당시 있었던 일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1743년 3월 23일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던 연주에서 당시 참석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이 일어나자 청중 모두가 따라서 일어나서 연주를 들었고 이후 '메시아' 공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부활하신 전능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 교단 총회와 호남의 양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가 ‘2024년 4월 고난주간 기도회 초대의 글’에서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의 신비가 신앙을 인격적으로 직조해 냅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대한 기록은 마태는 21장에서 24장, 마가는 11장에서 15장, 누가는 19장 28절에서 23장, 요한은 12장 12절에서 19장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에서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때 거기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안나스의 집 뜰에서 여종이 로마군에 잡히신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거기에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를 오랫동안 묻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음습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해골) 언덕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도 아니하시고 그저 인간들은 아주 단순히 자기의 역할만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보통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어도 죽음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限界狀況) 속에서는 닫힌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고 무지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한계상황에서 넘쳐납니다. 우리가 이걸 알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과 자립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결국은 자립의 삶이 바닥이 나고 그럼 우리의 자아도 무너져 내립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실되었음에도 더 넉넉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환영하지 아니해도 예기치 아니할 때 우리 속에 이 세상 속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끔찍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그때 거기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 거기의 그들에게나 여기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신앙적 확신도 요한에게 있었던 인간적 사랑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있었던 믿음도 한계상황 속에서는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리는 믿음, 신학적인 확신,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숱한 의문과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를 시작으로 헬라인 몇 사람이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 12:21),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묻는 질문으로부터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묻는 다양한 질문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며 질문하는 것들입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면서 신비를, 질문과 의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합리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의 감정에 신비를 직조해 느끼게 하시고 이성에 신비가 영성으로 스며들게 하여 알게 하시고 의지에 신비가 피어나게 하시어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거기의 사람들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7:2)"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인격적인 신앙으로 신비가 감정에 직조되고 이성이 영성으로 변화되며 의지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신비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 1:24-26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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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십자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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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의 소강석 목사 설교 예찬
- 식탁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쌍 나란히 올려두고 감사의 감동을 기다릴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평안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기댄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믿음이 두 입술에 나란히 맴돈다. 사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나란히 다독일 때 한 끼가 영원과 나란하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 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2022년 7월 4일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을 역임한 김진표(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 더불어민주당 5선) 국회의원이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김진표 장로의 의원실 책상에는 “Pray First”(먼저 기도하라)는 패가 놓여져 있다. 2024년 5월 28일 여야가 격한 대립을 반복해 온 21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까지 파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등 법안 3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후 6시 22분쯤 선포했다. “여야 및 정부 간 이견이 커서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야당인 민주당에선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3선의 한 의원은 책상을 ‘쿵’ 내리쳤다. 반면 본회의장 오른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국민의힘이 민주유공자법 등에 반발하며 퇴장해서다. 반은 떠나고 반은 고함치는 어수선함 속에 김 의장은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친다. 산회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의 국회 마지막 공식 발언이었다. 그는 1973년 행시에 합격한 뒤 30년 동안 경제 부처 공무원이었고,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년 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고위 경제관료였다는 이력 탓에 ‘민주당 내 보수인사’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당내 논의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한 것을 야당이 됐다고 파괴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없애자”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2024년 4월 25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후진국에 의료와 보건시설을 후원하는 '글로벌 투게더' 임원진과 지구촌 빈곤지역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지역주민의 자립을 지원하는'글로벌에듀'(이사장 소강석 목사) 관계자들과 사회 저명 인사들이 모인 만찬이 열렸다. 그때 김진표 국회의장의 모두 발언에서 소강석 목사의 사회봉사와 국정섬김에 대해 감사를 전하면서 그의 설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제가 알기로 소강석 목사님은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설교자이십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의 아가서 설교는 제 평생에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롭고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여러분도 새에덴교회에 모두 한 번씩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3년 4월 3일 오후 2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회장 소강석)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이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이사장 소강석 목사, 원장 안준배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평론가 안준배 박사가 개회사를 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4주년 성령포럼을 개회하겠습니다. 1988년 3월 27일 그해 부활절 다음날 아침 40대 목사 19명이 중심으로 모여 세계성신클럽 창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역 중에 1992년 8월 15일 여의도 광장에서 이틀 동안 연인원 백만 명이 참여하는 성령 운동, 성령으로 인도하는 그런 기도성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 본회 34년 역사 속 세계 성령 운동사에 표지가 되시는 조용기 목사가 2021년 9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영훈 목사를 내세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승계하게 하셨고 또 김삼환 목사(여의도순복음김포교회 담임)를 통해 조용기 목사의 핵심적인 신앙을 정리해 이끌게 하셨고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를 내세워 성령 운동과 말씀전파를 통해 한국 교회를 연합하고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세계 성령 운동 역사 34년 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조용기 목사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성령 사역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2백 석을 가득 채워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테너 박주옥 백석대 교수가 꽃씨가 시랑스러워 천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소강석 작사 작곡 '꽃씨'에 이어 요즘 교회마다 애창하는 '은혜'를 열창했다. 대회장이고 주제 강연자인 소강석 목사가 ‘나는 문학, 음악, 이야기로 성경을 전한다’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곁들인 강연을 펼쳤다. "어제 정말 바쁜 부활주일을 보내시고 쉬시는 날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설교학자도 아니고 설교를 연구하는 전문교수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뛰는 한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준배 목사께서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주제를 주신 겁니다. '나는 문학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전한다.' 제가 들어보니까 굉장히 매혹적이고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비롯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워낙 목회자가 바쁘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탈고를 했지만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목회자에게는 설교하면 강해 설교가 머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강해 설교 창시자로 알려진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 1931년 3월 21일 - 2017년 7월 22일)의 영향일 것입니다." 그는 뉴욕시에 출생하여 미국의 고든 콘웰 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달라스 신학교, 써던 메쏘디스트 대학교에서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설교학의 대가로 2006년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영향력있는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하여 강해 설교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의 강해 설교론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경 본문의 중심사상이 곧 설교의 주제가 돼야 한다는 이론을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교본으로 알려진 저서 '성경적 설교(Biblical Preaching)'는 전 세계 목회자들이 탐독했으며 현재도 1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설교학의 주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강해 설교하면 설교의 구성 방식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설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3대지냐 4대지냐, 혹은 구절을 풀어 설교할 것이냐(주해설교), 그리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대부분 한국 목회자는 여기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해 설교에 대한 이해는 형식이 우선이 아닌 중요한 설교 신학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개혁주의 목사이며 청교도 신학자 조엘 비키(Joel R.Beeke, 1952년- )의 저서 '설교에 관하여(Reformed Preaching)'로 번역되어 있는데 강해 설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도 중요하고 구성 요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그것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청중의 마음으로 어떻게 그 설교 내용이 전달될 것이냐에 포커스를 맞춘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구성방식도 중요하고 콘텐츠(contents) 정말 중요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지 무엇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달방식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문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인지성향 등 여러 가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를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준배 박사가 시인 소강석 목사의 설교에 관해 말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mask이나 인격perso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개인이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연극이나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있는데 가면이라는 뜻도 있고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삼위 3per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감독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기작품 '살인의 추억' 이후 오스카상은 받은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계에선 어떤 감독이 자신의 분신 혹은 상징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뜻한다)로 배우를 썼는데 송강호입니다. 이 배우는 감독의 모든 생각과 뜻을 받아들여 연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그 시대의 성령의 페르소나로 사용하셨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소강석 목사를 성령의 페르소나로 세우셨습니다. 소 목사님은 어디에 가서 어떤 설교를 하든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합니다. 저는 소 목사님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 중에 '상 파울교회'에서의 설교를 들었고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는데 그 현장을 딱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그다음에 2017년 종교개혁 5백 주년 기념대회 때 소 목사님이 주 강사로 설교를 했는데 '말씀의 근원으로' 그러니까 완전히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제와 영 관련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 목사님은 어느 현장, 어떤 대회, 어떤 형식의 모임이 됐든 거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17년 12월 소 목사님과 대만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대만 까오씽이라는 곳인데 그 도시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열차로 타이페이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책을 갖고 다니는데 덩리쥔(鄧麗君,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대만 출신 가수)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 목사님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한테 물어봤습니다. '안 목사님은 이선희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덩리쥔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중화권이 사랑하는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이 노래를 부른 덩뤼쥔이라고 그랬죠. 그러니 소 목사님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이선희야. 이선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나' (회중 웃음) 소 목사님은 별을 참 좋아하세요. 이선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거예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날 저녁 때 타이페이에 5천 명 모이는 따워줘이라는 대만 최고의 교회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소 목사님이 나와 나눈 대화 가운데서 덩뤼쥔의 노래 '첨밀밀' (蜜蜜 '티엔미미' 달콤해요)' '니 샤오 더 티엔미미(笑得蜜蜜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달콤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대단히 감동을 했어요. 대만 사람이 사랑하는 덩뤼쥔 자기들 노래로 불러주니까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다음 해에 한 8천 명 수용할 수 있는 대만에서 제일 큰 허핑체육관에서 열린 성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소 목사님이 그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하모니카로 '위에 량 따이 뺘오 워 더 신'을 연주하니까 대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아니 소 목사님은 우리 대만인이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소 목사님은 시대를 해석하고 말씀으로 치유하는 설교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감사예배에서 소 목사님이 설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소천하신 이후인데 그때 '고래를 위하여'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라는 시를 인용한 설교였습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라고 설교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이 한국 교회 고래였고 그 고래가 국민일보를 낳았고 또 이영훈 목사를 낳았고 또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을 낳았고 또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낳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고래'라는 시적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그때도 이선희 노래를 불렀는데요. (회중 웃음) '그 모든 것 기적이었네. 은혜였네. 눈물이였네. 이렇게 개사를 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 목사님 그 음악을 그 현장에 맞게끔 사용하면서 참, 소 목사처럼 국민일보 창간 33주년 기념 예배에 딱 맞게끔 하면서 설립자 조용기 목사 그리고 이영훈 목사와 국민일보 회장을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을 모두 아우릅니다. 이렇게 해박하고 탁월하게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이 시대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도 같이 가서 성회를 지켜봤고 춘천순복음교회 성회도 지켜봤는데 그때마다 그 현장에 딱 맞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포럼을 통해서 소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우리가 잘 수용해서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설교관을 세 가지로 압축해 말했다. "최근 경영계에선 기업 현장에. 예술가 혹은 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예술적 개입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에도 예술적 개입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문학의 옷을 입혀 성경 말씀을 전합니다. 둘째 음악의 옷을 입혀 성경을 전합니다. 셋째 성경을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로 전합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2-14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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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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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의 소강석 목사 설교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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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과 오정현 목사 교회 달란트
-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옥한흠 목사의 지극한 제자이고 2023년 9월 제108회 총회장이 될 오정호 목사의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조성민 목사가 마지막 모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박수를 요청하며 모두 일어서게 했다. 25주년 케이크 절단 순서가 이어졌다.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4대 교갱협 상임총무 2009. 8)가 마이크 앞에 섰다. “오늘 제가 패널 목사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부적인 면에서는 어떤 면에서 자기에 대해서는 성찰의 칼을 갖는 성찰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교갱을 통해서 지난 90회 총회 때 박윤식 집단이 (총회) 들어오려고 하는 것 (큰소리로) 막은 것만으로도 (톤을 낮추어) 교갱의 공이라고 해도 충분하고 또 여러분 아시지만 지역의 목회 열심히 하는 분들이 대다수가 교갱입니다. 동시에 총신 사태가 발발했을 때 후배들 방문해 애를 쓰게 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현상민 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애를 쓰고 우리 교회도 후원을 했지만 뒤에서 돈을 대고 교갱에 속한 교회들이 많고 김경원 목사님 말씀대로 했습니다. (회원들 웃음 박수)”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한스 큉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청빙을 통해 지난 2003년 8월에 부임하여 사랑의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오정현 목사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으로 삼고 지금까지 제자훈련 사역에 매진해왔다. 더 나아가 2024년 현재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서 ‘제자훈련의 국제화’와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 ‘다음 세대를 위한 글로벌 인재 양성’과 ‘대사회적 섬김’을 위해 쉬지 않고 가정과 일터와 사회 속에서 제자훈련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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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과 오정현 목사 교회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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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웅과 강재식 개혁신학
- 어느 시대나 위기가 있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아도 커다란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도시의 규모는 계속 커져왔다. 2000년 전에는 인구 백만 도시가 로마 하나였지만 지금은 인구 천만 이상 도시가 흔하다. 건축물 하나하나만 비교해보아도, 2000년 전에는 가장 큰 건물이 5만명을 수용하는 로마 콜로세움이었다면 지금 북한의 능라도 경기장은 15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움집을 짓던 인류는 만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점전 더 큰 건물을 지어왔다. 인간은 모여야 했기 때문이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악수를 대체할 수 없다. 악수는 체온을 느낌과 동시에 손에 묻은 병원균을 교환하는 것이기에 상호 신뢰를 뜻한다. 그래서 악수는 장갑을 벗고 한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침을 교환하는 키스를 한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유전자를 교환하는 성교를 한다. 현대과학은 인간을 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은 정신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과 몸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클럽은 붐비고, 텅 빈 극장 한쪽에서는 데이트를 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계속 모일 것이고, 모여야만 한다. 그것이 사피엔스가 사피엔스가 되는 길이다. 1917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배웠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계속 굴러갔다. 해바라기 닮은 또는 햇빛 닮은 개나리 꽃잎 사이로 오늘도 총회를 위한 바람이 불고 있다. 불지 않기 위하여 꽃잎을 잡고 꽃잎이 떨어지면 이파리를 잡고 이파리가 떨어지면 가지를 잡으며 총회를 위한 바람은 믿음의 뿌리를 향해 가고 있다. 2015년 제100회 반야월 총회에서 돈 좋아한다며 돈 다발 흔들어 총회와 총신 판도를 뒤바꾼 허활민 목사에게서 보듯 일만 악의 뿌리 돈 사랑은 하나님과 총회 사랑을 안개에 젖게 한다. 목사의 돈 사랑이 하나님의 빛을 가리고 누군가를 다치는 일이 있음을 우리도 안다. 돈 바람이 불지 않으면서 총회 사랑으로 불어갈 방법이 있을까. 현재 총회의 부패 형편으로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런 마음만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그래도 이제 봄철이라 일만 악의 뿌리 돈보다 이제는 산마늘이랑 땅두릅이 맛있을 때이다. 방풍나물이랑 냉이는 향이 진하니 입맛 없을 때 된장이나 간장 소스 살짝 넣어서 무쳐 먹거나 국 끓일 때 넣어 먹거나 산취랑 쑥과 씀바귀 봄나물 섞어 비벼먹으면 비단 위에 꽃을 보탠다는 말 금상첨화(錦上添花)겠다. 2018년 3월 29일 11시 유성 레전드호텔 11층 대회의실에서 일명 ‘총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총회개혁연대’(총개연)를 발기했다. 신재국 목사 사회, 임성아 목사 기도, 임홍길 목사 사도행전 16:6-10 봉독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른 방향성의 사람’이라는제목으로 신실한 무사 같은 표정의 김진웅 목사(칼빈대 이사장)가 입을 열었다. “총회를 사랑하는 큰 뜻을 가지신 목사님들 참석하셨는데 이 귀한 모임에 저를 설교자로 선정한 것은 진행부에서 뭘 잘못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중 웃음) 사실 저는 어머님한테 많이 맞아서 두드려 부수는 일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우 총장께서 그 말을 인용하셨어요. 그런데 그것이 SNS에 떠가지고 내가 김영우 목사님하고 합력해 일을 그르친다며 요즘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란 게 늘 그렇더라고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 두렵거나 떨어 일을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겠는데 진행자가 시간은 10분 내 내용은 강력하고도 감동 있게 그것도 개혁주의 보수신학으로 (회중 큰 웃음) 하라는 메시지를 내게 보냈습니다. 그건 그분 생각이고 저는 그럴 힘은 없지만 이런 귀한 시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는 잠시 아름다운 총회 안에서 교회와 국가에 봉직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사람이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기사를 신문에 실은 것을 봤습니다. 첫째는 돈을 위해서 둘째는 명예를 위해서 셋째는 가정을 위해서 넷째는 아내나 남편을 위해서 다섯째는 권력을 위해서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삶을 목표라고 합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당선되면 7000개 이상의 일자리 임명권을 가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정치의 묘미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예를 좋아하고 권력 잡기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아 사역을 하기에 명예나 권력이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영적 삶을 사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바램입니다.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도 총회와 총신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갈등을 어떻게 탈피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내 생명을 다해 이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하고 열정을 다해 서 이 세상 권력을 위해 자기 인생을 설계해 오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바울 사도의 전한 복음으로 오늘 우리도 그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의 가장 큰 기적은 사울이 바울 된 것처럼 신앙 안에서 변화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에 이끌려 변화된 바울 사도처럼 바른 방향성을 찾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듣는 것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루터가 그러했고 칼빈도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는 가운데 그 여행까지 성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성령께서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기에 순종합니다.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방향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할 때는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지만 성령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지시를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마게도냐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주장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도 어떤 때는 이것이 정말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삶이냐 나의 개인적인 이성에 따른 삶이냐 하는 궁금함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명상하고 하나님의 뜻의 어디 있느냐를 찾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향을 설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과 다른 하나님의 지시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제 할머님이 37년 동안 무당하신 분입니다. 저는 무당 손자로서 예수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로서 담임목사가 되는 게 제 양심에 허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외국에 나가 공부한 뒤 아프리카나 어디로 가서 선교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개척을 하게 되고 너무 빚을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갈 수가 없게 되어 선교사를 보내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빚져 있으면서도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보건소 5급 공무원으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자녀들 과외 한 번 시키지 못하면서도 내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감격하니까 신학생들을 계속해서 남모르게 도왔습니다. 아내가 이해를 못했습니다. 아내는 형편이 이렇게 어려운데 내가 신학생들을 돕는다고 화를 내 아내가 집 나가버리면 나는 내 동생들을 가르칠 수도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돕는 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 은혜로 칼빈대 이사장까지 됐습니다. 몇 주 전(3월 6일) 돌아가신 이성택 목사님 생전에 제 앞에서 이렇게 말하시곤 했습니다. ‘목사들 이렇게 많이 있는데 김진웅 목사가 칼빈대학 이사장 된 것은 갈릴리 이적 못지않은 기적이다.’ 그분은 평안도에서 1·4후퇴 때 내려오신 분인데 제가 목사인데도 호칭을 욕으로 하시길래 왜 그러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북에서는 친한 사람한테는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이번 돌아가셨을 때도 입관예배 축도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축도에 앞서 축사를 겸했습니다. 제가 그분의 생전의 말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김 목사 어느 목사는 대단하다고 하는데 내가 저것보다 못하냐. 나는 (못나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북에 아내가 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나와 결혼하자고 해도 할 수 없었어. 목사의 입지를 세워가기 위해서 어려워도 견디고 살았어. 밤에 여자 생각이 들 때는 내가 어디 붙잡고 기도하는 줄 아느냐.’ 그러면서 거기 잡는 데를 나한테 말해 주시는 겁니다. (일부 회중 웃음) 그리고 어느 날 어느 목사님이 연소한 저를 축도를 시켰어요. 그래서 왜 그랬는지 그분에게 물어보니 이성택 목사님이 김진웅 목사는 축복권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꿈보다 해석이 좋다고 기분이 좋아서 이성택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말 들으셨죠.’ 이성택 목사님이 ‘그래 나 죽은 다음에 너 축도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이 유언이 되가지고 노회가 분리됐는데도(평양노회가 길자연 목사 측 평양노회와 김선규 목사 측 평양제일노회로 나뉨) 강재식 목사님이 정직한 분이고 해서 제가 입관예배 축도를 맡게 되었습니다(발인예배 축도 평양노회 노회장 박광원 목사). 축도하기 전에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고 총리가 되었다고 장관이 되었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자랑하지 않게 해 주시고 부끄럽게 여기게 해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반세기 이상 넘어가는 세월 동안 통일이 되지 않아 이렇게 한을 안고 통일을 기다리는 가족과 동기간의 이별을 안고 세상을 떠납니다.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이렇게 절개를 지키고 지조를 지키고 절제를 해서 총회장이 되고 한기총 회장이 되고 많은 사람의 본이 되어 이 한국교회를 살려놓았는데 정작 우리 총회와 총신이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분이 세상 떠나시는데 우리 교단의 어려움이 정리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한 뒤 축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갔던 아들이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도 목사이지만 축도가 은혜가 되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여러분. 연령과 상관없이 누가 큰 인물입니까. 나이가 적어도 하나님 뜻을 잘 알고 하나님의 주장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의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증경총회장은 안 오신 것 같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증경총회장도 안 오는데 뭐가 되겠어.’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 사람이 총회장을 했든 안 했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신앙의 각오를 가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한때는 먹을 것 많은 사람이 그 다음에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높이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영적인 깨달음을 갖고 영적인 역사 속에서 그 민족과 사회가 잘 되는 길로 방향제시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5000년 역사 가운데 언제 이렇게 잘 살았습니까. 그런데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100년이 좀 넘는 기간에 우리는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이 나라를 위해서 일했습니까. 이것으로 우리가 얼마나 잘 됐습니까. 우리가 이북에 돈 보내고 의약품 보내고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한과 교류가 되면 정말 꿈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에 물든 북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북한 출신을 신학생으로 키우고 북한과 동족 차원에서의 우애를 나누어야 합니다. 불의한 김정은 정권이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악한 정권을 바라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우리의 주적을 정부가 도와주기 보다는 종교단체나 사회단체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총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떻습니까. 제가 이 자리를 빌려 얘기하는데 총회가 이렇게 하면 총신도 피해가 되고 여러분도 범법자가 되는데 법은 법이고 신앙은 신앙입니까. 정도를 넘는 그런 정치를 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집을 떠나는 게 그 당시 정말 어려웠지만 순종을 해서 믿음의 계보를 잇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끝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좋은 협력자를 얻게 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자기 뜻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루디아라고 하는 좋은 전도의 협력자를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치는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의 주인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을 잡아 고발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바울 사도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주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아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이 인간적 생각과 상황을 넘어서 점점 세계로 전해져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지난 총회에서 몇몇 분들이 불의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을 보고 우리 총회가 완전히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제가 미력하나마 올바른 믿음의 방향을 제시해 우리 총회가 바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또 다시 세상에 톱 뉴스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되고 바르게 나아가게 될 때 우리 총회가 새로운 부흥과 발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 큰 교단에서 소수의 개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성령의 이끌림과 하나님을 통한 하나님의 정직과 공의가 아닌 인간적 사사로움으로 행동하면 반드시 우리 교단은 후퇴할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도 어렵게 될 것을 예감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정의로움으로 우리 총회가 더 살아나고 더 이상 학생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신앙적으로 발전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설교 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강재식 목사 ‘총회를 위해서’ 김근태 목사, ‘총신을 위해서’ 김형훈 목사 등이 특별 기도를 드렸다. 2부 회의는 최동호 목사의 사회로 몇 명의 발표가 있은 뒤 강재식 목사가 총회 입장에서 총신을 진단했다. 길자연 목사의 변함없는 올곧은 제자 강재식 목사가 얼굴에 웃음 가득 머금고 나왔다. “총회 측 입장에서 말하라는 거죠 (회중 웃음) 저희 교회 전도사가 정태진입니다. 정태진은 비대위 부위원장으로 모든 데모에 가장 앞장 서 있는 학생입니다. (회중 웃음) 어제 제가 그 친구 등록금 316만원을 내줘야 되나 갈등하다 등록금을 내줬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목사죠. (회중 웃음) 총신 재단이사 측에서 이제 나와 얘기했지만 제가 잠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총신대 73년에 입학했다가 75년부터 학교를 다녔고 김성태와 김지찬 두 교수 다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내용도 알고 학교도 많이 사랑하고 제가 군대 사병으로 입대했을 때 김영우 목사님은 공군 군목으로 입대해서 부대에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총신에 대한 의견은 이렇습니다. 김영우 목사님이나 재단이사들 나쁩니다. 왜 나쁘냐. 총회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지 왜 안 죽고 버티려고 그래요. 죽었으면 벌써 해결됐을 겁니다. 안 죽으니 이렇게 끌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혁주의 신학 자꾸 얘기하는데 개혁신학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단에 법이 있고 정치가 있는데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개혁연대 모임을 만든다면 법이나 정치보다는 하나님을 앞세우는 교단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중 아멘) 며칠 전 노회 시찰회가 모였습니다. 시찰회 모임에서 저보고 이야기 좀 하래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싸움은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싸움이다. 총신대 재단이사들과 총장님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총장님과 재단이사들 쫓아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느냐. 귀신 하나 쫓아냈더니 일곱 귀신 들어가는 거다.' 그러면 절대 일곱 귀신 줄어들 수 없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제가 재단이사들이나 총장님 나쁘다고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종교 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사유화는 안 됩니다. 글자 그대로 법인화는 되죠. 위탁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립하려는 시도가 없었을 것입니다, 있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거죠. 독립은 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 총신은 M Div를 취득하는데 있어서 우리 교회 장로가 문교부의 교육대학원 인가 선교대학원 인가를 받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총신 학생 수가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한테 강의 한 시간도 안 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총신 상황 속에서 많은 얘기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총신 쪽이 이겨서도 안 되고 총회 쪽이 져서도 안 되고 양쪽 다 잘 버티고 잘 이기세요. 그런데 총회 때 뭔가 확 뒤집었으면 좋겠어요. 개혁하는 사람들이 다 뒤집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모임이 전체를 뒤집고 하나님이 사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런 총회로 만드는 하나의 단초(端初) 즉 총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싸움에 우리가 좋은 놈이 돼서 한번 개혁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회중 박수)” 정해진 발언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자유토론 시간이 되자 김진웅 목사가 발언권을 얻어 여용덕 목사를 추천하는 말 가운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만 예전 김영우 총장의 경우 총장이 재단이사장을 겸임하니 불법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가 선임이 안 되면 총장이 됐어도 재단이사장 직에 있었기 때문에 등기부에서 말소가 안 됩니다. 그런 문제로 김영우 총장을 매도하면 안 됩니다. 강재식 목사가 말했듯이 우리 서로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용덕 목사는 유럽법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청중의 귀를 틔어주었다. 말 바꾸기의 명수 박노섭이 발언권을 얻으려 손을 들고 나오자 사회자가 3분만 발언해야 한다고 했다. 집행부가 모임 명칭 변경 건을 상정하여 만장일치로 ‘총회개혁연대’를 공식 출범시키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는 개혁신학 노선과 장로교 정치 원리에 따라 100여년의 역사를 계승해 왔다. 총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절대 주권 사상을 근간으로 한 개혁 신학과 보수 신앙 및 역사적 칼빈주의를 신학 정체성으로 삼아 왔다. 또한 성경을 기반으로 한 장로교 정치 원리 및 총회 헌법이 총회 경영의 초석이었다. 총회가 개혁 신학의 정체성과 장로교 정치 원리에 따라 한국장로교의 정통성을 유지해 온 것은 100여년의 자랑거리며, 교단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작금 시대 풍조에 따라 총회의 개혁신학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교권에 의해 장로교 정치 원리가 땅에 떨어지고, 헌법이 유린되어 총회의 공교회성과 거룩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로교 정치 원리에 입각한 <총회의 공교회성>이란 “총회 헌법을 준수하고 총회 규칙 및 결의를 준수함으로써 무형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며, 법 정신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총회 헌법이 유린되고, 총회 규칙을 위반했으며, 총회 결의를 외면해 왔다. 교권 남용의 정도 역시 도를 넘어섰고, 재판의 공평함도 무너졌다. 이에 총회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지키고, 총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같이 하는 목사 장로들이 ‘총회개혁연대’를 창립하며 다음과 같이 창립 비전을 선포한다. 1. 총개연은 개혁 신학과 보수 신앙을 지향한다.2. 총개연은 성역없이 헌법과 규칙 및 결의를 준수한다. 3. 총개연은 교권 남용과 금품 수수 행위를 거부한다. 4. 총개연은 총회의 거룩성을 회복하여 세상의 빛이 된다. 5. 총개현은 총회의 개혁과 정화를 위해 상호 연대한다. 6. 총개연은 총회 발전을 위해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돌이켜보면 이런 순수의 시대도 있게 해주고 개혁주의를 입에 물고 살던 김영우가 하냥 그리울 때가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히 11:13-14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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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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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진웅과 강재식 개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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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서권 목사 예수전도
- 전도는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데려오는게 아니다 여러분 몸에서 그리스도라는 영향력이 나타나야 성찬식 빈 잔은 주님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강대상 슬리퍼 한 짝도 주님을 사랑하였다 금식으로 버림받은 접시도 그 낭만적 사랑을 주님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무덤은 주님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그들 모두 긴 그림자를 남기고 예수는 그리스도 사랑으로 되돌아갔다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까닭에 몇몇 국어학자들은 ‘살다’와 ‘사람’을 같은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행복한 삶은 오래된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인연을 곱게 이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서초동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가 입을 열었다. "전도는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데려오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영향을 줘야 합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라는 영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흑암 권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겁니다. 요셉은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겁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유일성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거에 굉장한 신학과 교리를 알고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빌립보서 3장 8절 말씀대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다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최고로 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목사는 나 중심으로 안 살아요. 육체 중심으로 살지 않아요. 나는 교회당 건축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전 세계로 퍼지게 할 겁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여러분이 이웃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기도는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으면 부요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바로 세 가지를 꺾어버립니다. 나는 이것을 오직 할 것이다. 이 사람만이 하나님의 청빙을 받으리라. 이 사람에게는 히브리서 1장 14절의 천사들이 수종을 들 것입니다. (회중 아멘)" 미래는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세상에 닿아 보면 알게 된다. 정말이지 온 마음을 뒤흔들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목련이 풍성한 봄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으면 부요하게 되고 변화되니' 김서권 목사의 예수사랑 믿음으로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할 때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1:14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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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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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서권 목사 예수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