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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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과 전광훈의 시간
    대붕(大鵬)은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 장자의 저서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새이다. 구만리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날갯짓으로 바닷물도 뒤집는 위력을 가졌기에 곧잘 원대한 꿈, 무한의 자유, 활기찬 패기 등에 비견된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그 실례가 다음과 같은 꿈이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만물을 제일(齊一, 하나 같이)하게 보고 모든 만물은 하나(萬物齊同)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가 깨우친 도(道)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은 무의미하다. 몽상가 장자와 달리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은 이렇게 말했다. 깨진 유리컵은 결코 깨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마치 활시위를 떠난 시간의 화살처럼. 그는 이런 ‘시간의 화살’ 개념을 이야기한 열역학적 시간 화살 외에 ‘심리적 시간 화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시간의 감각이 화살처럼 앞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화살이 지나간 궤적처럼 남는다. 대통령 윤석열의 신년 인터뷰 때 눈길을 끈 장면은 메모지와 연필 세 자루였다.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었는지 윤 대통령은 인터뷰 2시간 동안 막힘 없이 답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국회에서나 언론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예민한 질문에도 ‘정치적 발언’을 통해 우회하기보다 직진했다. 야구로 치면 변화구보다 직구 스타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추미애 사태 때도 그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만든 말이다. 2022년 3월 9일 이재명을 제끼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내치(內治)와 외교에서도 직구다. 민주노총이 총파업같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더라도 기세가 꺾이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정치권이 생각하는 ‘정답’이다. 불법은 눈감아주고 악수하고 손뼉 치고 묻어 버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타협을 거부했고 민주노총은 안전운임제 문제 파업에서 본전도 못 찾았다. 불법과 거대 노총에 대한 대통령의 직구 대처는 지지율 반전의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이 변화구를 못 던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특별법이 기재부 반대로 무력화되자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맺은 불편했던 관계도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가며 위기를 넘겼다. 2014년 5월 25일 사랑제일교회 예배에서 전광훈 목사는 외쳤다. "세월호(2014년 4월 16일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 사고가 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좌파 종북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더라고. 추도 시간마다 나와 가지고 기뻐 뛰고 난리야. 왜냐고. 이용할 재료가 생겼기 때문이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연설 때 눈길을 끄는 장면은 오직 외침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이 구설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지만, 원고나 메모 없이 기억만으로 설득과 공감을 자아내는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를 계승하여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에 있고 국민들이 깨어나야 이 나라를 통일할 수 있다." "기독교는 좌파가 건드릴 수 없는 마지막 보루다." "2024년 4월 10일 우리가 총선에서 200석을 확보할 경우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게 된다." 강속구만 던지면 경기 도중 체력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수를 읽힌다. 강속구 투수가 좋은 투수는 맞지만, 직구를 받쳐줄 다양한 구종을 갖추지 못하면 위대한 투수가 될 수 없다. 일류 투수는 삼진만 고집하지 않고 때론 최동원(崔東原, 1958년 5월 24일~2011년 9월 14일)같이 맞춰 잡는다. 변화구와 느린 볼을 섞어 던질 때 직구는 더 위력적이다. 젊었을 때는 젊었기에 젊음을 모르고 늙어서는 젊음을 잊어서 젊음을 모른다. 시간도 그렇다. 시간은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려준다. 윤석열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의 시간 속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한 헌신과 남북통일의 소명은 어떻게 전개될까.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에겐 이제 막 문재인 시대를 넘어서 윤석열 1년 차 시대가 시작됐을 뿐이다. 민족의 지도자 전광훈 목사의 외침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과 지혜로 분투하는 '광장의 소리'여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3-4 20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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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3
  • 김영우 총신 시절과 토끼
    달의 지형 차이로 생기는 그림자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달과 토끼는 간혹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달 속 그림자는 옥토끼가 전설상의 영약(靈藥)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라고 여겨져 곧잘 사람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성어와 고사에 등장하는 토끼가 적잖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서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참 유명하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서 언젠가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는 위기 대비용 플랜 B, C를 마련해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영리한 동물이다.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의 '동물기'에 '달려라, 솜꼬리토끼'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가 토끼를 발견하고 한 끼 때우기 위해 냅다 달린다. 토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여우는 전력질주해 한걸음에 토끼를 낚아챌 찰라다. 순간 토끼가 급 좌회전해 방향을 틀어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직진하던 여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목장 철조망에 몸을 처박는다. 토끼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듯 욕심에 끌려 이재명과 대장동 패거리처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건 늘 인간이다. 그런 부류의 김영우가 간교하게 총신을 휘어잡고 총회까지 분탕질(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을 했다. 2020년 9월 18일 총신재단이사회는 김영우 총장 시절 개정해 총신 사태의 원인이 된 총신대 정관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 1항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을 ‘본 총회에 소속된 세례교인 중에서 선임’으로 개정했다. 또한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켰다. 이런 짓을 획책한 김영우는 그 일로 총신과 총회에서 사라지는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했다. 현대 신앙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신앙인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resentment:라틴어 집중 접두사에서 '다시re' 그리고 '감정 느낌sentment'을 합쳐 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프랑스어)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인간은 언제나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소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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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0
  • 오정호 총신 살리기 악수
    총신 사랑을 잃어버린 외로운 겨울, 춥고 성긴 눈이 총신에 내리는 저녁, 마음이 쓸쓸한데 믿음마저 춥다. 소망 잃어버린 빈자리를 확인하기에 딱 좋은 날, 오래 기억에 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총신을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우리 뒤를 따르던 믿음 문득 사라지고 소망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젊은 날 우리가 놀고 기도하던 사당동 총신 거친 운동장, 믿음을 가리고 소명 아닌 것들이 우리를 치어다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허나 추위 가득한 저녁 총신에 찬찬히 다듬어진 신학생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한다.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같은 하얀 믿음, 소망, 사랑. 요즈음 총회 행사 때 제107회 부총회장이 된 오정호 목사는 악수하면 "총신을 살려야 합니다" 말한다. 악수(握手)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의식적인 행위이다.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세계 공통의 인사로 그 시초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신성한 힘이 인간의 손에 전해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통치자가 성상의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오른손으로 악수하는 인사법을 그의 장군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 시대 때 기사들이 칼을 차고 다녔는데 적을 만났을 때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 들어서 적의를 표현했다. 하지만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을 때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다. 이것이 악수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에트루리아인(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겼고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북쪽은 토스카나 지방부터 남쪽은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 말에 사에쿨룸(saecul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자리에 있는 가장 나이 든 사람이 산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고 한다. 인간의 사에쿨룸은 때로는 100년쯤 된다. 김영우가 심은 총회와 총신의 사에쿨룸도 비슷할 듯하다. 이 말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는 기억 속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를 뜻하기도 한다. 가령 김영우와 허활민의 총신 쟁탈전에서 싸운 마지막 사람이 가버리면 그 사건의 사에클룸도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저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총대들은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믿음의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리며 짐짓 중년기의 목회를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정치의 늪으로 발을 옮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뜬금없는 총신대 박성규 총장 후보와 한예종 이강석 교수 초대 총장과 비교해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 할 것이다. 2020년 12월 22일 별세한 이강석 서울 음대 교수는 199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당시 초대 총장으로 부임해 2002년까지 만 10년간 총장을 지내며 한예종의 기틀을 다져놓아 ‘행정의 귀재’로 불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특수대학이다. 1993년 국가정책 차원에서 예술 실기 및 이론의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역량 있는 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치령을 제정하여 개교한 4년제 국립 특수대학교로,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영화 등의 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예종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 대학교로서 예술인을 양성하여 대한민국의 문화산업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 개인의 충분한 창의적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정원에 미달 되어도 선발하지 않는 원칙을 통해 창의적 신 인재를 발굴해낸다는 독특한 입시제도는 진정한 예술적 재능과 잠재적 가능성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창조적 소수를 지향하는 교육 철학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과의 경쟁을 뛰어넘어 세계정상급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면 우리 총신 역사와 현실에 맞게 2002년 11월 12일 소천하신 김희보 목사님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한경직 목사 시절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빈신학대 대학원을 마친 뒤 1960년부터 12년간 서울 성도교회 목사를 지냈다. 1972년 달랑 건물 한 동의 어려운 총신대 학장으로 초빙된 고인은 신학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총신대가 오늘날의 규모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협의회가 2023년 1월 4일 기독신문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해 제22대 총장 선출을 공정하고 평화롭게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교수협은 '이사회와 총회의 총장 후보 추천 주도' '학교 구성원 들러리 전락' '특정인의 총장 내정설' '특정 집단의 학교 장악' 등을 지적하며 또다시 총신이 총회 정치세력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교수협은 “제22대 총장 선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형편에서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첫 번째 모임을 하기도 전에 세간에서 오르내리는 우려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다. 이에 결코 소문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소식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목소리는 내고자 한다”며 성명서 발표 취지를 밝혔다. 교수협은 “이번 총장 선출이 총신대와 교단의 미래보다는 또다시 정치판의 야합이나 혹은 대결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진행될 수 있을까를 놓고 심히 염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정인의 총장 내정설도 지적했다. 교수협은 “이미 법인이사회와 총회 임원들은 OO교회 OOO 목사를 차기 총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더군다나 해당 목사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심각한 목회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 인터넷 매체에 의하면 총장에 선출되는 것을 전제로 오는 5월에 사임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분을 총장으로 내정하려 한다.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경영인을 총장으로 내정하는 예도 더러 있지만, 암암리에 내정된 그분은 전문경영인이라고 평가할 만한 근거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교수협은 “총장은 학교 현장을 알아야 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며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총신대 총장은 개혁신학으로 무장된 학자이자 목사이자 난세에 지혜로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이어야 한다. 이것은 제20대 (김영우)총장 시절에 총장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현재 실권을 가진 분들이 사용했던 논리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분(박성규)을 총장으로 내정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 현상이 재현되는 것이고 아전인수 형태가 되는 것”이라고 정확하고 현실성 있는 지적을 했다. 이로써 미루건대 제107회 부총회장 오정호 목사의 총신 살리기 악수(握手)가 예상과 달리 이재서 총장이 기사회생시킨 총신을 자멸에 빠뜨리는 자충수(自充手)의 악수(惡手)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2-13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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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8
  • 윤석열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
    혼돈의 시대에 한국 사회에 ‘혁명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군(軍)과 대학(大學)뿐이었다. 대학은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1년 뒤 군부에 권력을 빼앗겼다. 대학은 조직화 된 세력이 아니었고 군은 조직화 된 세력이었다. 결국 조직된 힘이 이겼다. 그것은 정치 권력이라는 것이 그 시대 필연(必然)의 산물(産物)이라는 데 근거한다. 깨어있는 의식, 조직의 힘, 권력의지, 국민적 요구, 이런 것이 권력을 장악하게 만든다. 군부는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욕구와 효율적 정부를 원하는 정치적 요청을 배경으로 조직적 추진력 그리고 구성원의 권력욕을 잘 조합해 집권에 성공했고 30여 년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5년 후 대학의 좌파 운동권을 조직화한 586(대한민국의 세대 중 하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을 지칭하는 표현. 1990년대 중후반에는 30대여서 '386세대'라고 불렸고, 2022년 기준으로는 50대여서 '586세대'라고 불린다. 인텔의 CPU 80386를 탑재한 386 컴퓨터에 빗대어 1960년대생 전체를 386세대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세력이 마침내 한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 문재인 좌파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러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일조한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니고 검찰 수장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어떤 시대적 요청과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 자신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법치를 앞세웠다. 반면 전광훈은 자유와 신앙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리고 둘 다 국가 안보와 나라의 이념적 정체성 회복을 강조했다. 운동권 정권과 좌파 교계의 내로남불, 유아독존적 비리를 사정(司正)하라는 국민의 요청이 팽배했다. 그래서 검찰이라는 사정 기관 수장이 청소 전문가로 등장하고 세례 요한 같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친북 좌파를 비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 개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국방·노동·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시대적·국민적 요청에 응한 것이다. 또한 전광훈 목사도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자유 민주 통일을 외치고 추구하는 것도 계시적·교회적 사명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21년 6월에는 국민혁명당을 창당하고 의석확보와 남북 자유 통일을 위해 조직을 다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좌·우는 그동안 크게 왜곡돼왔다. 좌는 친북·용공·반일의 늪에 빠져있고 보수·우파는 친미·친일·반북의 프레임에 방치돼왔다. 특히 좌파 운동권이 신주처럼 모셔온 친북·반미 일변도의 이념적 고질화에서 탈피해 좌파 본래의 진보로 복귀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앞세워 공정·정의·법치의 날개로 난다면 문재인과 이재명으로 인해 그 본질과 방향성을 잃은 더불어민주당도 정직과 평등과 분배에 중점을 둔 본래 진보의 날개로 나는 것이 한국의 ‘두 날개’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하에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합병되었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의 기독교 정신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과 국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청교도의 나라 미국과 기독교인 이승만이 그 문을 열고 이끌었음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의 외침처럼 진실이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는 하나님 형상의 인간다운 삶을 부리가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 인민의 현실에서 보듯 믿음이 없이 독재의 압제로 신음하게 되고 미국을 선택하면 미국 국민의 현실에서 보듯 자유 민주주의 국민으로 믿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자기 백성을 압제하는 중국이 숭배하는 마르크스는 영혼이란 기껏 물질적 현상이거나 종교적 환상이라 하지 않았나. 1843년 스물다섯 살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 유물론의 가장 큰 맹점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과연 왜 목숨을 걸고 이타적인 혁명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명감은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이념으로서 요청할 수밖에 없는” 초월적 존재나 형이상학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말기의 혼란 속에서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장남 이반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게 허용된다.” 이 한 마디로 당시 서유럽에 널리 퍼져나가던 유물론적 인간관의 모순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20세기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좌·우파 전체주의 정권의 정치범죄와 인권 유린으로 실현되었다. 영혼이 없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과연 어떻게 혁명적 사명감과 숭고한 도덕심을 불어넣을 수 있겠나. 불멸의 영혼도 없고 초월적 존재도 없고 현생 이상의 그 어떤 세계도 없고 천당도 없고 성령의 거듭남이나 성화도 불가능하다면 인간이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전제는 이재명이나 대장동 무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인간을 더 세속적이고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적으로 더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고매한 이타적 영혼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마르크시즘의 최대 모순이자 맹점은 바로 인간을 물질적 존재라 단정하고 그러한 김만배 같은 인간에게 이재명을 위해 물질적 본성에 반하는 자살을 요구하는 혁명적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의 부조리와 모순 때문에 현실의 공산정권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영혼을 주조하고 인민을 훈육”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영혼 속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세뇌 교육이고 둘째는 반대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공포의 정치 운동이다.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이어지는 70여 년에 걸친 중국의 현대사가 그 점을 웅변한다. 인류 역사에 출현한 모든 공산주의 정권은 예외 없이 국가가 절대 진리를 독점한 후 인민의 의식에 허위로 가린 “올바른” 생각, “올바른” 가치, “올바른” 목적의식을 주입하고 세뇌하는 전체주의 체제였다. 물론 그러한 “올바름”을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은 문빠나 개딸처럼 그 정권의 수혜자들과 용병들밖엔 없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현재 상황을 안정적인 사회로 보고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다. 과거에 축적된 전통과 경험을 존중해 오히려 급격히 변할 경우 부작용을 걱정한다. 반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기존 체제나 제도를 바꿔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그러한 성향이 1843년 스물다섯 살의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라고 외친 마르크스를 문재인이나 이재명 같은 자들이 숭배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런 자들과 가까운 맨돈 소강석과 짝을 이룬 불신자 김현성의 임시체제 한기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평범한 격언을 잊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의도만 강조하면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결과를 마주친다. 그래서 널리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의 도발에 대해 문재인식의 '예의주시’란 말 대신 윤석열 대통령같이 한기총 사태에 대해 ‘일전불사’의 각오로 대응하겠다는 전광훈 목사 측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건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0~12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욥 7:1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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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권순웅 총회장 '샬롬 부흥' 2023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1924년 세상에 나온 동요 '설날'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한 명곡이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우리는 심심찮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말하곤 한다. 매년 우리 사회에는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내년 또한 다사다난할 것이다. 지난 2022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조사에서 한국이 6위에 올랐다고 미국 US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지난 12월 31일 전했다. USNWR은 이날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the planet’s most powerful countries) 순위를 발표했다. 이는 1만7천 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군사력·경제력·외교력 등을 합산해 85개국을 평가한 것이다. 그것을 USNWR이 매년 발표한다. 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1위는 미국이었다. 2·3위는 중국과 러시아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6위를 차지했다. 4위는 독일, 5위는 영국, 7위는 프랑스, 8위는 일본, 9&#8231;10위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이었다. USNWR은 설명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과 빈곤 감소를 경험했으며 현재는 세계 최대 경제국 중 하나이고 세계 최대의 국민 총저축(GNS)과 높은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증가했다. 그리고 유엔, G-20, 동남아국가연합, 세계무역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 가장 강력한 국가’ 6위로 일본을 앞질렀다. 실로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가 외친 '샬롬 부흥'의 은혜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년이 올해인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잃지 않고 뭔가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열심히 따르고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축복이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개척해서 지금의 주다산교회를 이룬 청년 시절 권순웅 목사의 신앙과 용기는 다른 목사나 교인을 위해 반드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신을 다져주는 거울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오직 성경의 진실과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좌절과 패배에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일어서는 힘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믿음의 용기는 힘든 세상에 지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서고 살아가는 힘이다. 기도로 반성하고 예측하고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용기를 투자하는 사람만이 훌륭해진다. 새해 당신은 무엇에 용기를 내려 하는가. 지금까지 미뤘던 일을 2023년에는 기필코 시작이라도 해보려 한다. 그러노라면 내 나이가 80, 90이겠지만 10년, 20년 그 일을 지속할 시간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기운을 내서 새로운 2023년 총회 불꽃 말대가리(말씀 대가리)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샬롬 부흥'을 따라 축복과 은혜의 한 해를 보내기를 기도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 8:20-23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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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 맨돈 소강석 목회생태계 정치
    옛 동양에서 ‘양’의 으뜸은 해다. 그래서 해를 ‘크다’ ‘극한’ ‘첫째’라는 뜻의 글자를 붙여 태양(太陽)이라 적었다.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도 곧잘 ‘태양’으로 불린다. 가난하고 헐벗은 중국을 공산당이 구제했다는 논리가 그 뒤를 따른 탓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인들은 이 ‘양’이라는 글자를 대단히 꺼린다. 코로나19 면역 반응에서 ‘양성(陽性)’ 판정을 받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잘 참고 견디는 중국인이 이제 일어나 불만과 억울함을 외친다. 강압적인 봉쇄와 격리의 ‘제로 코로나’ 때문이다. 살을 저미는 아픔은 누구라도 끝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마음 다잡는 일을 우리는 보통 ‘참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 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는 ‘인(忍)’이다. 그러나 그 초기 글자꼴은 참 사납다. 날카로운 칼날[刃]이 사람 심장[心]을 후벼 파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무시하고 허위로 철저한 봉쇄와 격리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일관했던 중국 당국이 중국 인민의 백지 시위에 화들짝 놀라 그 방향을 180도 전환했다. 그러자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어 중국 인민은 더 참고 참아야 할 것 같다. 살을 저미는 아픔은 누구라도 끝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다고 한다. “정치도 과학처럼 거짓이 없어야.” 일찍이 총회든 세상이든 정치에 나선 사람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청개구리 배를 가르며 가르치던 생물도 과학 과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반면에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그 어떤 사상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진정 자유롭지 않다. 목사의 목회나 신학은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정치적 태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라는 것은 크든 작든, 결국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열망에 근거한 것이다. 대장동 비리가 ‘조국 사태’ 같은 진영 대결로 비화할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맨돈 소강석과 가까운 이재명이다. 대장동 사태를 ‘야당 탄압용 정치적 수사’라고 믿는 40% 국민이 그 자양분이다. 그러나 대장동 수사를 ‘부패범죄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확신하는 50% 국민도 엄존한다. 둘로 갈라진 여론 지형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합리성의 위대함이다.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부정선거와 언론탄압은 척결되어야 하고 도둑정치인은 나라와 총회의 공적(公敵)이다. 도둑정치인(kleptocrat)은 정치 권력을 악용해 공공 자산과 국민 세금을 약탈하는 자다. 군사독재 시대 끝물에 출현했던 전두환·노태우 전(前)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권력을 이용해 천문학적 뇌물을 받은 전·노 두 사람은 실정법과 민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공정한 수사·감사 기구, 언론자유가 살아있는 국가에선 도둑정치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희대의 도둑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뻔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대장동 범죄는 정치 진화의 시계바늘을 무법천지로 되돌린 주사파의 반동적 사태다. 정치의 근본에 대한 신뢰의 기초적 동의가 부재할 때 정치공동체는 붕괴된다. 이재명은 대장동 범죄로 서민 재산을 약탈해 사욕을 채웠다는 도둑정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 도둑정치인 부류와 맨돈 소강석이 레드니 블루니 목회생태계 개선을 빙자해 세상과 교단과 한기총 같은 교계에서 돈을 앞세운 정치 행위는 깨어있는 한국 시민과 믿음으로 사는 교인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에 헌금한 하나님의 돈을 훔쳐 자리 차지 명예욕을 채우는 맨돈 소강석의 ‘교회판 도둑정치’를 추방해야 우리 교단이 살고 더불어 대한민국과 교계도 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맨돈 소강석은 자신이 이재명처럼 얼마나 큰 인물이고 얼마나 큰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고서야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주님도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한국 교회에서 언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붕괴 직전이다.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신앙의 공론 영역이 마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영과 당파에 따라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순식간에 표변하지만 보수·진보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진리에 대한 신앙과 진정한 정치의 가능성도 소멸한다. 총체적 아노미(Anomie: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진리를 믿고 행하는 신앙인 삶의 기본 믿음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 후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온다. 우리는 올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고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온전히 우리 몫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어디 올 한 해뿐이랴. 지금껏 살면서 했거나 하지 않은 일, 서둘렀거나 늦어버린 일, 도전했거나 회피한 일, 좋아했거나 싫어한 것, 우리의 지금 하루하루는 그것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0-13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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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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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과 전광훈의 시간
    대붕(大鵬)은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 장자의 저서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새이다. 구만리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날갯짓으로 바닷물도 뒤집는 위력을 가졌기에 곧잘 원대한 꿈, 무한의 자유, 활기찬 패기 등에 비견된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그 실례가 다음과 같은 꿈이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만물을 제일(齊一, 하나 같이)하게 보고 모든 만물은 하나(萬物齊同)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가 깨우친 도(道)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은 무의미하다. 몽상가 장자와 달리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은 이렇게 말했다. 깨진 유리컵은 결코 깨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마치 활시위를 떠난 시간의 화살처럼. 그는 이런 ‘시간의 화살’ 개념을 이야기한 열역학적 시간 화살 외에 ‘심리적 시간 화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시간의 감각이 화살처럼 앞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화살이 지나간 궤적처럼 남는다. 대통령 윤석열의 신년 인터뷰 때 눈길을 끈 장면은 메모지와 연필 세 자루였다.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었는지 윤 대통령은 인터뷰 2시간 동안 막힘 없이 답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국회에서나 언론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예민한 질문에도 ‘정치적 발언’을 통해 우회하기보다 직진했다. 야구로 치면 변화구보다 직구 스타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추미애 사태 때도 그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만든 말이다. 2022년 3월 9일 이재명을 제끼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내치(內治)와 외교에서도 직구다. 민주노총이 총파업같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더라도 기세가 꺾이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정치권이 생각하는 ‘정답’이다. 불법은 눈감아주고 악수하고 손뼉 치고 묻어 버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타협을 거부했고 민주노총은 안전운임제 문제 파업에서 본전도 못 찾았다. 불법과 거대 노총에 대한 대통령의 직구 대처는 지지율 반전의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이 변화구를 못 던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특별법이 기재부 반대로 무력화되자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맺은 불편했던 관계도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가며 위기를 넘겼다. 2014년 5월 25일 사랑제일교회 예배에서 전광훈 목사는 외쳤다. "세월호(2014년 4월 16일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 사고가 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좌파 종북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더라고. 추도 시간마다 나와 가지고 기뻐 뛰고 난리야. 왜냐고. 이용할 재료가 생겼기 때문이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연설 때 눈길을 끄는 장면은 오직 외침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이 구설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지만, 원고나 메모 없이 기억만으로 설득과 공감을 자아내는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를 계승하여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에 있고 국민들이 깨어나야 이 나라를 통일할 수 있다." "기독교는 좌파가 건드릴 수 없는 마지막 보루다." "2024년 4월 10일 우리가 총선에서 200석을 확보할 경우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게 된다." 강속구만 던지면 경기 도중 체력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수를 읽힌다. 강속구 투수가 좋은 투수는 맞지만, 직구를 받쳐줄 다양한 구종을 갖추지 못하면 위대한 투수가 될 수 없다. 일류 투수는 삼진만 고집하지 않고 때론 최동원(崔東原, 1958년 5월 24일~2011년 9월 14일)같이 맞춰 잡는다. 변화구와 느린 볼을 섞어 던질 때 직구는 더 위력적이다. 젊었을 때는 젊었기에 젊음을 모르고 늙어서는 젊음을 잊어서 젊음을 모른다. 시간도 그렇다. 시간은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려준다. 윤석열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의 시간 속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한 헌신과 남북통일의 소명은 어떻게 전개될까.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에겐 이제 막 문재인 시대를 넘어서 윤석열 1년 차 시대가 시작됐을 뿐이다. 민족의 지도자 전광훈 목사의 외침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과 지혜로 분투하는 '광장의 소리'여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3-4 20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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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3
  • 김영우 총신 시절과 토끼
    달의 지형 차이로 생기는 그림자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달과 토끼는 간혹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달 속 그림자는 옥토끼가 전설상의 영약(靈藥)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라고 여겨져 곧잘 사람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성어와 고사에 등장하는 토끼가 적잖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서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참 유명하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서 언젠가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는 위기 대비용 플랜 B, C를 마련해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영리한 동물이다.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의 '동물기'에 '달려라, 솜꼬리토끼'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가 토끼를 발견하고 한 끼 때우기 위해 냅다 달린다. 토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여우는 전력질주해 한걸음에 토끼를 낚아챌 찰라다. 순간 토끼가 급 좌회전해 방향을 틀어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직진하던 여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목장 철조망에 몸을 처박는다. 토끼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듯 욕심에 끌려 이재명과 대장동 패거리처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건 늘 인간이다. 그런 부류의 김영우가 간교하게 총신을 휘어잡고 총회까지 분탕질(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을 했다. 2020년 9월 18일 총신재단이사회는 김영우 총장 시절 개정해 총신 사태의 원인이 된 총신대 정관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 1항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을 ‘본 총회에 소속된 세례교인 중에서 선임’으로 개정했다. 또한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켰다. 이런 짓을 획책한 김영우는 그 일로 총신과 총회에서 사라지는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했다. 현대 신앙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신앙인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resentment:라틴어 집중 접두사에서 '다시re' 그리고 '감정 느낌sentment'을 합쳐 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프랑스어)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인간은 언제나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소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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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0
  • 오정호 총신 살리기 악수
    총신 사랑을 잃어버린 외로운 겨울, 춥고 성긴 눈이 총신에 내리는 저녁, 마음이 쓸쓸한데 믿음마저 춥다. 소망 잃어버린 빈자리를 확인하기에 딱 좋은 날, 오래 기억에 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총신을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우리 뒤를 따르던 믿음 문득 사라지고 소망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젊은 날 우리가 놀고 기도하던 사당동 총신 거친 운동장, 믿음을 가리고 소명 아닌 것들이 우리를 치어다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허나 추위 가득한 저녁 총신에 찬찬히 다듬어진 신학생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한다.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같은 하얀 믿음, 소망, 사랑. 요즈음 총회 행사 때 제107회 부총회장이 된 오정호 목사는 악수하면 "총신을 살려야 합니다" 말한다. 악수(握手)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의식적인 행위이다.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세계 공통의 인사로 그 시초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신성한 힘이 인간의 손에 전해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통치자가 성상의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오른손으로 악수하는 인사법을 그의 장군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 시대 때 기사들이 칼을 차고 다녔는데 적을 만났을 때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 들어서 적의를 표현했다. 하지만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을 때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다. 이것이 악수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에트루리아인(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겼고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북쪽은 토스카나 지방부터 남쪽은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 말에 사에쿨룸(saecul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자리에 있는 가장 나이 든 사람이 산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고 한다. 인간의 사에쿨룸은 때로는 100년쯤 된다. 김영우가 심은 총회와 총신의 사에쿨룸도 비슷할 듯하다. 이 말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는 기억 속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를 뜻하기도 한다. 가령 김영우와 허활민의 총신 쟁탈전에서 싸운 마지막 사람이 가버리면 그 사건의 사에클룸도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저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총대들은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믿음의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리며 짐짓 중년기의 목회를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정치의 늪으로 발을 옮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뜬금없는 총신대 박성규 총장 후보와 한예종 이강석 교수 초대 총장과 비교해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 할 것이다. 2020년 12월 22일 별세한 이강석 서울 음대 교수는 199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당시 초대 총장으로 부임해 2002년까지 만 10년간 총장을 지내며 한예종의 기틀을 다져놓아 ‘행정의 귀재’로 불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특수대학이다. 1993년 국가정책 차원에서 예술 실기 및 이론의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역량 있는 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치령을 제정하여 개교한 4년제 국립 특수대학교로,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영화 등의 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예종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 대학교로서 예술인을 양성하여 대한민국의 문화산업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 개인의 충분한 창의적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정원에 미달 되어도 선발하지 않는 원칙을 통해 창의적 신 인재를 발굴해낸다는 독특한 입시제도는 진정한 예술적 재능과 잠재적 가능성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창조적 소수를 지향하는 교육 철학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과의 경쟁을 뛰어넘어 세계정상급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면 우리 총신 역사와 현실에 맞게 2002년 11월 12일 소천하신 김희보 목사님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한경직 목사 시절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빈신학대 대학원을 마친 뒤 1960년부터 12년간 서울 성도교회 목사를 지냈다. 1972년 달랑 건물 한 동의 어려운 총신대 학장으로 초빙된 고인은 신학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총신대가 오늘날의 규모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협의회가 2023년 1월 4일 기독신문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해 제22대 총장 선출을 공정하고 평화롭게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교수협은 '이사회와 총회의 총장 후보 추천 주도' '학교 구성원 들러리 전락' '특정인의 총장 내정설' '특정 집단의 학교 장악' 등을 지적하며 또다시 총신이 총회 정치세력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교수협은 “제22대 총장 선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형편에서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첫 번째 모임을 하기도 전에 세간에서 오르내리는 우려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다. 이에 결코 소문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소식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목소리는 내고자 한다”며 성명서 발표 취지를 밝혔다. 교수협은 “이번 총장 선출이 총신대와 교단의 미래보다는 또다시 정치판의 야합이나 혹은 대결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진행될 수 있을까를 놓고 심히 염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정인의 총장 내정설도 지적했다. 교수협은 “이미 법인이사회와 총회 임원들은 OO교회 OOO 목사를 차기 총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더군다나 해당 목사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심각한 목회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 인터넷 매체에 의하면 총장에 선출되는 것을 전제로 오는 5월에 사임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분을 총장으로 내정하려 한다.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경영인을 총장으로 내정하는 예도 더러 있지만, 암암리에 내정된 그분은 전문경영인이라고 평가할 만한 근거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교수협은 “총장은 학교 현장을 알아야 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며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총신대 총장은 개혁신학으로 무장된 학자이자 목사이자 난세에 지혜로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이어야 한다. 이것은 제20대 (김영우)총장 시절에 총장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현재 실권을 가진 분들이 사용했던 논리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분(박성규)을 총장으로 내정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 현상이 재현되는 것이고 아전인수 형태가 되는 것”이라고 정확하고 현실성 있는 지적을 했다. 이로써 미루건대 제107회 부총회장 오정호 목사의 총신 살리기 악수(握手)가 예상과 달리 이재서 총장이 기사회생시킨 총신을 자멸에 빠뜨리는 자충수(自充手)의 악수(惡手)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2-13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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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8
  • 윤석열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
    혼돈의 시대에 한국 사회에 ‘혁명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군(軍)과 대학(大學)뿐이었다. 대학은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1년 뒤 군부에 권력을 빼앗겼다. 대학은 조직화 된 세력이 아니었고 군은 조직화 된 세력이었다. 결국 조직된 힘이 이겼다. 그것은 정치 권력이라는 것이 그 시대 필연(必然)의 산물(産物)이라는 데 근거한다. 깨어있는 의식, 조직의 힘, 권력의지, 국민적 요구, 이런 것이 권력을 장악하게 만든다. 군부는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욕구와 효율적 정부를 원하는 정치적 요청을 배경으로 조직적 추진력 그리고 구성원의 권력욕을 잘 조합해 집권에 성공했고 30여 년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5년 후 대학의 좌파 운동권을 조직화한 586(대한민국의 세대 중 하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을 지칭하는 표현. 1990년대 중후반에는 30대여서 '386세대'라고 불렸고, 2022년 기준으로는 50대여서 '586세대'라고 불린다. 인텔의 CPU 80386를 탑재한 386 컴퓨터에 빗대어 1960년대생 전체를 386세대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세력이 마침내 한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 문재인 좌파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러면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일조한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니고 검찰 수장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어떤 시대적 요청과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 자신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법치를 앞세웠다. 반면 전광훈은 자유와 신앙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리고 둘 다 국가 안보와 나라의 이념적 정체성 회복을 강조했다. 운동권 정권과 좌파 교계의 내로남불, 유아독존적 비리를 사정(司正)하라는 국민의 요청이 팽배했다. 그래서 검찰이라는 사정 기관 수장이 청소 전문가로 등장하고 세례 요한 같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가 친북 좌파를 비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 개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국방·노동·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시대적·국민적 요청에 응한 것이다. 또한 전광훈 목사도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자유 민주 통일을 외치고 추구하는 것도 계시적·교회적 사명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21년 6월에는 국민혁명당을 창당하고 의석확보와 남북 자유 통일을 위해 조직을 다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좌·우는 그동안 크게 왜곡돼왔다. 좌는 친북·용공·반일의 늪에 빠져있고 보수·우파는 친미·친일·반북의 프레임에 방치돼왔다. 특히 좌파 운동권이 신주처럼 모셔온 친북·반미 일변도의 이념적 고질화에서 탈피해 좌파 본래의 진보로 복귀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앞세워 공정·정의·법치의 날개로 난다면 문재인과 이재명으로 인해 그 본질과 방향성을 잃은 더불어민주당도 정직과 평등과 분배에 중점을 둔 본래 진보의 날개로 나는 것이 한국의 ‘두 날개’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하에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합병되었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의 기독교 정신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과 국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청교도의 나라 미국과 기독교인 이승만이 그 문을 열고 이끌었음은 '광장의 소리' 전광훈의 외침처럼 진실이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는 하나님 형상의 인간다운 삶을 부리가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 인민의 현실에서 보듯 믿음이 없이 독재의 압제로 신음하게 되고 미국을 선택하면 미국 국민의 현실에서 보듯 자유 민주주의 국민으로 믿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자기 백성을 압제하는 중국이 숭배하는 마르크스는 영혼이란 기껏 물질적 현상이거나 종교적 환상이라 하지 않았나. 1843년 스물다섯 살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 유물론의 가장 큰 맹점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과연 왜 목숨을 걸고 이타적인 혁명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명감은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이념으로서 요청할 수밖에 없는” 초월적 존재나 형이상학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말기의 혼란 속에서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장남 이반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게 허용된다.” 이 한 마디로 당시 서유럽에 널리 퍼져나가던 유물론적 인간관의 모순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20세기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좌·우파 전체주의 정권의 정치범죄와 인권 유린으로 실현되었다. 영혼이 없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과연 어떻게 혁명적 사명감과 숭고한 도덕심을 불어넣을 수 있겠나. 불멸의 영혼도 없고 초월적 존재도 없고 현생 이상의 그 어떤 세계도 없고 천당도 없고 성령의 거듭남이나 성화도 불가능하다면 인간이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전제는 이재명이나 대장동 무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인간을 더 세속적이고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적으로 더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고매한 이타적 영혼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마르크시즘의 최대 모순이자 맹점은 바로 인간을 물질적 존재라 단정하고 그러한 김만배 같은 인간에게 이재명을 위해 물질적 본성에 반하는 자살을 요구하는 혁명적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의 부조리와 모순 때문에 현실의 공산정권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영혼을 주조하고 인민을 훈육”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영혼 속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세뇌 교육이고 둘째는 반대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공포의 정치 운동이다.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이어지는 70여 년에 걸친 중국의 현대사가 그 점을 웅변한다. 인류 역사에 출현한 모든 공산주의 정권은 예외 없이 국가가 절대 진리를 독점한 후 인민의 의식에 허위로 가린 “올바른” 생각, “올바른” 가치, “올바른” 목적의식을 주입하고 세뇌하는 전체주의 체제였다. 물론 그러한 “올바름”을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은 문빠나 개딸처럼 그 정권의 수혜자들과 용병들밖엔 없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현재 상황을 안정적인 사회로 보고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다. 과거에 축적된 전통과 경험을 존중해 오히려 급격히 변할 경우 부작용을 걱정한다. 반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기존 체제나 제도를 바꿔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그러한 성향이 1843년 스물다섯 살의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비정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라고 외친 마르크스를 문재인이나 이재명 같은 자들이 숭배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런 자들과 가까운 맨돈 소강석과 짝을 이룬 불신자 김현성의 임시체제 한기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평범한 격언을 잊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의도만 강조하면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결과를 마주친다. 그래서 널리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의 도발에 대해 문재인식의 '예의주시’란 말 대신 윤석열 대통령같이 한기총 사태에 대해 ‘일전불사’의 각오로 대응하겠다는 전광훈 목사 측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건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0~12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욥 7:1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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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권순웅 총회장 '샬롬 부흥' 2023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1924년 세상에 나온 동요 '설날'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한 명곡이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우리는 심심찮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말하곤 한다. 매년 우리 사회에는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내년 또한 다사다난할 것이다. 지난 2022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조사에서 한국이 6위에 올랐다고 미국 US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지난 12월 31일 전했다. USNWR은 이날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the planet’s most powerful countries) 순위를 발표했다. 이는 1만7천 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군사력·경제력·외교력 등을 합산해 85개국을 평가한 것이다. 그것을 USNWR이 매년 발표한다. 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1위는 미국이었다. 2·3위는 중국과 러시아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6위를 차지했다. 4위는 독일, 5위는 영국, 7위는 프랑스, 8위는 일본, 9&#8231;10위는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이었다. USNWR은 설명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과 빈곤 감소를 경험했으며 현재는 세계 최대 경제국 중 하나이고 세계 최대의 국민 총저축(GNS)과 높은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증가했다. 그리고 유엔, G-20, 동남아국가연합, 세계무역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 가장 강력한 국가’ 6위로 일본을 앞질렀다. 실로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가 외친 '샬롬 부흥'의 은혜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년이 올해인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잃지 않고 뭔가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열심히 따르고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축복이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개척해서 지금의 주다산교회를 이룬 청년 시절 권순웅 목사의 신앙과 용기는 다른 목사나 교인을 위해 반드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신을 다져주는 거울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오직 성경의 진실과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좌절과 패배에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일어서는 힘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믿음의 용기는 힘든 세상에 지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서고 살아가는 힘이다. 기도로 반성하고 예측하고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용기를 투자하는 사람만이 훌륭해진다. 새해 당신은 무엇에 용기를 내려 하는가. 지금까지 미뤘던 일을 2023년에는 기필코 시작이라도 해보려 한다. 그러노라면 내 나이가 80, 90이겠지만 10년, 20년 그 일을 지속할 시간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기운을 내서 새로운 2023년 총회 불꽃 말대가리(말씀 대가리)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샬롬 부흥'을 따라 축복과 은혜의 한 해를 보내기를 기도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 8:20-23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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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2
  • 맨돈 소강석 목회생태계 정치
    옛 동양에서 ‘양’의 으뜸은 해다. 그래서 해를 ‘크다’ ‘극한’ ‘첫째’라는 뜻의 글자를 붙여 태양(太陽)이라 적었다.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도 곧잘 ‘태양’으로 불린다. 가난하고 헐벗은 중국을 공산당이 구제했다는 논리가 그 뒤를 따른 탓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인들은 이 ‘양’이라는 글자를 대단히 꺼린다. 코로나19 면역 반응에서 ‘양성(陽性)’ 판정을 받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잘 참고 견디는 중국인이 이제 일어나 불만과 억울함을 외친다. 강압적인 봉쇄와 격리의 ‘제로 코로나’ 때문이다. 살을 저미는 아픔은 누구라도 끝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마음 다잡는 일을 우리는 보통 ‘참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 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는 ‘인(忍)’이다. 그러나 그 초기 글자꼴은 참 사납다. 날카로운 칼날[刃]이 사람 심장[心]을 후벼 파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무시하고 허위로 철저한 봉쇄와 격리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일관했던 중국 당국이 중국 인민의 백지 시위에 화들짝 놀라 그 방향을 180도 전환했다. 그러자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어 중국 인민은 더 참고 참아야 할 것 같다. 살을 저미는 아픔은 누구라도 끝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다고 한다. “정치도 과학처럼 거짓이 없어야.” 일찍이 총회든 세상이든 정치에 나선 사람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청개구리 배를 가르며 가르치던 생물도 과학 과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반면에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그 어떤 사상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진정 자유롭지 않다. 목사의 목회나 신학은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정치적 태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라는 것은 크든 작든, 결국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열망에 근거한 것이다. 대장동 비리가 ‘조국 사태’ 같은 진영 대결로 비화할 때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맨돈 소강석과 가까운 이재명이다. 대장동 사태를 ‘야당 탄압용 정치적 수사’라고 믿는 40% 국민이 그 자양분이다. 그러나 대장동 수사를 ‘부패범죄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확신하는 50% 국민도 엄존한다. 둘로 갈라진 여론 지형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합리성의 위대함이다.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부정선거와 언론탄압은 척결되어야 하고 도둑정치인은 나라와 총회의 공적(公敵)이다. 도둑정치인(kleptocrat)은 정치 권력을 악용해 공공 자산과 국민 세금을 약탈하는 자다. 군사독재 시대 끝물에 출현했던 전두환·노태우 전(前)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권력을 이용해 천문학적 뇌물을 받은 전·노 두 사람은 실정법과 민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공정한 수사·감사 기구, 언론자유가 살아있는 국가에선 도둑정치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희대의 도둑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뻔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대장동 범죄는 정치 진화의 시계바늘을 무법천지로 되돌린 주사파의 반동적 사태다. 정치의 근본에 대한 신뢰의 기초적 동의가 부재할 때 정치공동체는 붕괴된다. 이재명은 대장동 범죄로 서민 재산을 약탈해 사욕을 채웠다는 도둑정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 도둑정치인 부류와 맨돈 소강석이 레드니 블루니 목회생태계 개선을 빙자해 세상과 교단과 한기총 같은 교계에서 돈을 앞세운 정치 행위는 깨어있는 한국 시민과 믿음으로 사는 교인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에 헌금한 하나님의 돈을 훔쳐 자리 차지 명예욕을 채우는 맨돈 소강석의 ‘교회판 도둑정치’를 추방해야 우리 교단이 살고 더불어 대한민국과 교계도 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맨돈 소강석은 자신이 이재명처럼 얼마나 큰 인물이고 얼마나 큰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고서야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주님도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한국 교회에서 언어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붕괴 직전이다.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신앙의 공론 영역이 마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영과 당파에 따라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순식간에 표변하지만 보수·진보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진리에 대한 신앙과 진정한 정치의 가능성도 소멸한다. 총체적 아노미(Anomie: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진리를 믿고 행하는 신앙인 삶의 기본 믿음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 후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온다. 우리는 올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고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온전히 우리 몫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어디 올 한 해뿐이랴. 지금껏 살면서 했거나 하지 않은 일, 서둘렀거나 늦어버린 일, 도전했거나 회피한 일, 좋아했거나 싫어한 것, 우리의 지금 하루하루는 그것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0-13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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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6
  • 맨돈 소강석 어떤 시인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 시가 이별가인가 사랑의 고백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2001년 9월 7일 이화여대 고별 강연에서 말했다. "가장 지고한 사랑의 기쁨을 가장 슬픈 이별의 상태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모든 언어의 뜻이 이중적으로 되어 있는 아이러니의 구조임을 알려 줍니다. 다(多) 기호체계인 시의 공화국에서는 흑백 사이에 존재하는 어렴풋한 반원에 해당하는 '회색'이 기회주의자를 상징하는 빛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에서 사랑은 기쁘지만 않고 동시에 이별은 슬프지만 않은 '그레이 존'(gray zone 회색지대)이 만들어집니다. 시의 공화국에서는 그 '그레이 존'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개척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에서 사랑은 기쁘지만 않고 동시에 이별은 슬프지만 않은 '그레이 존'이 만들어집니다. 시의 공화국에서는 그 '그레이 존'(gray zone)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개척지입니다... 이화(대학교)는 내 젊음을 묻은 곳입니다. 눈을 감으면 가을날 샐비어가 여름 햇빛의 기억처럼 붉게 타오르는 교정이 보입니다. 나는 그 뜰을 지나 헤아려 본다, 헤아려 본다 하면서 한 번도 헤아려 보지 못한 교회의 그 길고 하얀 돌계단을 한발 한발 디디며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이 강연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당시 67세)는 암 투병 끝에 2022년 2월 26일 별세(88세)했다. 책을 출판하려고 시를 쓰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 시를 쓴다면 그는 시장 바닥의 시인이고 시를 쓰기 위해서 시를 쓴다면 서재의 시인이요, 진짜 시인이다. 모든 도시는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있어야 빛나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의 위로로 시민들은 반복되는 하찮은 일상도 미소로 살아간다. 독일을 대표하는 문인이지만 괴테가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아닌 행정가와 경영자로서의 경력 덕분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작 손에 쥔 돈은 얼마 안 되었다. 해적출판 때문이었다. 다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으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바이마르공국에 초대되어 군주인 카를 아우구스트의 측근이 되었다. 나이 어린 군주를 도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일원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광산채굴과 공연극장 경영자로도 활약하였다. 현대로 치면 괴테는 장관급 고위 공직자이자 기업 오너 대신에 전문경영인 CEO 역할을 했던 셈이다. 생활을 위해 누군가를 섬길 수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움과 고민은 없었을까. 흥미롭게도 그는 공직에서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답형 비망록을 남겼다. "궁정 근무는 지옥과 같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거기에도 좋은 친구는 있지"라고 뒤집어 생각하고 "남의 신세는 지지 않겠어"라고 자존심이 고개를 들 때면 "돌봐주겠다면 받는 게 좋다"고 현실적 대응구로 응수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주장에 "그러면 너는 방 안에서도 노예 신세"라고 뒤집어 생각하는 식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직장생활은 스트레스가 많고 공직생활은 쉬운 일이 아닌데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 고충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생활인 괴테가 돋보인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도 균형감을 찾으려는 치열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맨돈 소강석도 자신의 시집이나 교회 주보에 인용하는 '아포리즘'이 괴테와 달리 독자의 마음을 적시지 못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책상이 아닌 일터의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테의 글은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비유로 가득하다. "궁정 생활은 음악과 같다. 각자가 박자와 쉼표를 지켜야만 하니까. 궁정 사람들은 이런저런 의식(儀式)으로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지루한 나머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시인이라는 맨돈 소강석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까. 회색일 것이다. 그는 회색 옷에 회색 중절모를 쓰고 회색 거리에서 은밀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 같기 때문이다. 그가 예배까지 드려가며 죽고 못 살던 박지원이 원장으로 재직하던 기관에 적혀 있었다는 말처럼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 하는 일의 성격상 흑과 백, 적과 아군을 가릴 수밖에 없지만 정작 본인들은 늘 회색 이미지로 기억되는 사람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숀 코너리 경(Sir Sean Connery, 1930년 8월 25일 ~ 2020년 10월 31일)처럼 잘 생기면 안 되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큼 맨돈 소강석처럼 흐릿하고 평범해 보여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현실은 맨돈 소강석의 생김새같이 현실을 회색으로 여기고 살 때가 가장 인간적이지 않을까. 인간의 본성이 니편 내편을 가르고 흑백을 가르라고 하지만 좌파니 우파니 뭐든 인간다움을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이어령 교수가 말하듯 회색지대야말로 우리가 추구할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요셉이 그 아비 야곱에게 보내듯 하나님의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는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 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밤이 지나가면) 이윽고 꿈속의 드높은 왕좌로부터 교단의 사설 언론 기자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이 대비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이 아이러니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나를 모욕하는 것들은 높이 나부끼는 깃발이고 나에게 던져지는 비웃음은 내가 새롭게 태어날 새벽을 예고하는 나팔 소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3 2022-12-14
    • G.OPINION
    • G.OPINION
    2022-12-14
  • 전광훈 공로와 소강석 소행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사람은 늘 착잡하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을 푸념하는 표현이 발달했을 듯하다. 순식(瞬息)이 우선 그렇다. 눈 한 번 깜빡이고[瞬] 숨 한 차례 쉬는[息] 시간이다. ‘순식간(間)’, 또는 줄여서 ‘순간(瞬間)’으로 적는다. 눈동자 한 번 굴리는 일은 전순(轉瞬)이자 별안(瞥眼)이다. 우리는 ‘별안간(間)’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가장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라고 한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한자(漢字) 권역에 자리를 잡은 음역(音譯) 단어다. 한 차례의 마음이 일었다 사라지는 일념(一念)도 있다. 고대 인도의 시간 기준으로는 찰나가 가장 짧고 그다음이 일념, 이어 순간의 순서란다. 비의 모습에서 유래한 삽시라는 단어도 있다. 앞글자 ‘삽’은 조금 내리다가 곧 그치고 마는 비다. 따라서 ‘삽시’는 역시 길지 않은 시간의 지칭이다. ‘삽시간’이라는 말로 자주 쓴다. 1989년 1월 한경직 목사는 용공적인 WCC에 맞서 반공을 위한 새로운 개신교 연합기관을 만들기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韓國基督敎總聯合會, Christian Council of Korea, CCK) 약칭 한기총(韓基總)을1989년 12월 28일 공식 출범시켰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44년째고 한기총 탄생이 33년째다. 그에 견주면 최근 1~2년은 ‘삽시’라고 할 만하다. 길지 않은 그 시간에 활력 넘치던 중국이 크게 생기를 잃었고 반공을 기치로 실립된 한기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고 보수적인 신학 사상을 지닌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모는 등 제정신이 아니다. 중국은 절대 독재자 시진핑 황제의 등극으로 개방적인 기조의 후퇴가 큰 원인의 하나이다. 반면 한기총은 맨돈 소강석으로 인한 배금주의가 부패의 뿌리이다. 흥망(興亡)과 성쇠(盛衰)의 고비 또한 어느 한 ‘순간’의 마음먹기에 달렸을지 모른다. 교계 정치에서 무질서만큼 두려운 게 없다. 무질서가 휩쓸고 간 교계에 희망의 싹은 돋지 않는다. 대부분 맨돈 소강석이나 울산 돈바위 배광식이나 돈 살살이 고영기 같은 괴물(怪物)이 교계를 횡행한다. 무질서는 약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무질서가 낳은 괴물들은 무질서에 지치고 시달린 약하고 힘든 사람들의 절망을 양식(糧食) 삼아 몸을 부풀린다. 히틀러·마오쩌둥·스탈린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또는 전쟁 후 적군(敵軍) 숫자보다 많은 자기 국민을 살해했다. 작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을 찬양하지 않는다. 자유·평등·박애라는 깃발을 휘날리던 프랑스 혁명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斷頭臺)에서 목이 잘리고 노동자 천국(天國)을 선포한 볼셰비키 혁명 후 무수한 노동자들이 총살당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무질서와 혼돈(混沌)의 자식인 독재자들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새로운 질서’라고 우긴다. 혁명 귀족, 노동 귀족들은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 위에 멍석을 깔고 저희들끼리 권력과 이익을 분배하는 독식(獨食)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혁명의 타락 과정이고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이 목격한 진실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어떤 혁명, 어떤 촛불은 우러르고 다른 혁명, 다른 촛불은 위험시하는 분류법(分類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거창한 혁명과 반짝이는 촛불에 감춰진 동일한 덫을 뚫어본다. ‘질서 있는 혁명’은 ‘질서 있는 혼란’만큼 역사에 드물다. 국민이 군중(群衆)을 이루면 달뜬 흥분에 등 떠밀려 폭중(暴衆)으로 바뀐다. 인터넷 군중은 더 빨리 폭중이 된다. 선동가들의 평등은 느리게 뛰는 사람 기운을 북돋워 빨리 달리도록 부축하는 평등이 아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 발목에 무거운 쇠뭉치를 매달거나 돈에 목을 매게하는 평등이다. 하향(下向) 평준화나 의식의 배금화가 국가나 교계 기관운영의 기본 원리로 정착하면 사회 모든 부분이 생명력을 잃고 정체(停滯)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쇠락(衰落)의 내리막을 구른다. 어느 흥망사(興亡史)든 줄거리는 비슷비슷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작은 불의(不義)보다 법이 무너진 다음의 큰 무질서를 더 경계한다. 법이 무너진 공백(空白)을 무질서가 메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한 개혁주의자다. 아둔하고 게으른 보수주의자처럼 변화의 때를 놓치고 뒤늦게 과격한 방법으로 혁명을 진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작은 불씨와 불쏘시개를 적시(適時)에 치워 큰불을 예방한다. 가속(加速)페달만 달린 차를 모는 위선적 좌파와 다르다. 변화가 더딜 땐 가속페달을 밟고 속도가 지나칠 땐 브레이크를 밟는 개혁주의자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혁명 구호가 아니라 착실한 실천에 의해서만 진보는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역사 속 실례(實例)가 그들의 자신감을 받쳐 준다. 그러기에 ‘민주화 운동가’라고 찍힌 명함을 들이미는 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설익은 이해찬 류의 ‘20년 계속 집권’ 운운하는 과욕(過慾)도 부리지 않는다. 과욕을 부리지 않기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위에 고위 공직자 수사처 신설, 이단 온상의 한기총이 이단 전문가를 배제하고 이단 감별사를 활용한 이단 정죄 등 곧 철거될 옥상옥(屋上屋)이나 이재명처럼 곧 드러날 거짓을 행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적의 위협을 정시(正視)하지 못하는 유화주의자(宥和主義者)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야만 현실을 깨닫는다. 문재인같이 대한민국의 선출된 대통령임에도 김정은 앞에서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비하(卑下)한다 해서 위협은 줄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동맹의 효용과 그 한계(限界)를 안다. 김정은은 핵무기로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한다. 한미는 북이 서울을 핵 공격하면 북한에 핵 보복을 가하겠다는 확장억제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정말 실행 가능할까. 목회자임에도 문재인의 불의에 당당하게 맞선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 같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이 비극적 시나리오에 질문을 던지며 나라를 지키고 자유 통일을 이룰 현실적 대안(代案)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무질서의 해일(海溢)이 세계에 넘실댄다. 휴전선 이북·대만 해협·우크라이나의 무질서는 ‘냉전(冷戰) 질서’도 질서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만든다. 세계 경제는 ‘힘 있는 나라는 책임감이 없고 책임감이 있는 나라는 힘이 없었다’라던 1930년대 대공황 전후를 방불케 한다. 지난 5년 우리 내부 법치주의·노동 현실·교육 현장은 차례로 무질서에 자리를 내주며 허물어졌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무질서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시덤불 위를 뒹굴며 길을 뚫어온 선인(先人)들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다. 번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나라를 또다시 무질서에 내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이 16일 동안 이어진 뒤 2022년 12월 8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질서'를 앞세운 지도력은 좌파 세력으로 인한 무질서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시덤불 위를 뒹굴며 길을 뚫어온 선인(先人)들의 초심(初心)을 되살렸다. 그러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준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살신성인의 공로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불세출의 허언 달인 허경영을 뛰어넘는 이재명을 도운 맨돈 소강석의 소행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시 101:7 2022-12-13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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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3
  • 맨돈 소강석과 종말론
    차가운 날씨가 머리를 맑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실패와 좌절이다. 그렇듯 겨울은 끝이 아니다. 가려진 것들을 들춰서 가감 없이 바라보며 봄을 준비하고 부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데 20~30대엔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한 일자리(job)이다. 그러나 40대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커리어(career)로 변하고 50~60대엔 하나님 뜻을 추구하는 소명(calling)으로 바뀐다. 70대에는 교단의 빌어먹을 법 70정년제 때문에 은퇴로 교회를 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딘가를 맡아야만 쓸모가 있는 ‘목회자’에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번역이나 저술을 위한 ‘직업인’으로 변신하는 게 중요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70정년제가 없는 교단으로 이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는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가는 북한 김씨 왕조에서 한 수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64대) 올브라이트(Madeleine Korbel Albright, 1937년 5월 15일 ~ 2022년 3월 23일)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국 여배우 최은희도 납치한 김정일은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나 역시 맨돈 소강석이 목회 생태계 어쩌구 하면서 교계와 정치계를 촐싹거리며 다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인지 진정 주님의 교회 때문인지 사뭇 궁금하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곰돌이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고모부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에 의해 왕세자로 급조됐다. 그러나 장성택은 2013년 12월 3일 모든 직위에서 배제되고 출당 조치를 당했으며 같은 달 12일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그 기간이 2천7백 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나 맨돈 소강석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1962년생 이제 갓 60세의 맨돈 소강석은 어떤 꿍꿍이일까. 2022년 12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백 년, 8천 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백 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그런 문재인과 함께 가자며 전광훈 목사에게 다리를 떨며 속삭였을 맨돈 소강석이 회개하고 주님의 교회인 새에덴교회에만 전념하지 않고 목회 정년 70세 2032년을 맞이한다면 그는 주님에게 버림받은 자나 다름없을 것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2022년 2월 24일 공산주의 본산이자 세계 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자기 우방국인 약한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일으킨 것과 같은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 년 전쟁(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 대기근(1845년에서 1852년까지 아일랜드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역병과 집단 해외 이주의 시기를 일컫는다),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 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림프절에 감염되는 선페스트,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혈관에 감염되는 패혈성 페스트, 허파에 감염되는 폐페스트 등으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한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하나님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 년 왕국 주의(千年王國, millennialism, 천 년을 뜻하는 라틴어 밀레니엄/millenium에서 비롯)’가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 이전에 지상에 재림하여 직접 통치하는 천 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죽음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과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려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지상에서 살며 왕처럼 활동하며 지상에서 낙원이 이룩된다는 내용이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최후심판이 있고 이날에 천년왕국에 살고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 요한계시록 20장 1-15절에 가장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예언자이며 하나님의 전사(戰士)라고 자처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순결하게 재생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하찮은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 왕국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해 차라리 폭력을 휘둘러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유사한 사례가 장차 구원받을 사람은 14만4천 명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요한계시록 7:4) 하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처럼 기이한 결론을 얻게 된다. 애초에 이 구절은 12X12=144와 10x10=100의 두 수를 곱한 144,000으로서 완벽함을 상징하는 수 10과 전체를 나타내는 12를 이용해서 믿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종말론의 또 다른 양상은 근거 없는 전승을 이용해 기묘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승 하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모든 천사 중 10%가 함께 떨어져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 수와 천상에 남아 있는 90%의 천사 수가 같아질 때 종말이 온다는 특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기괴한 아이디어는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과격한 이단 교리로 차용되었다. 동시에 교회와 세속 당국이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 그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있어 왔으므로 결국 정해진 숫자가 거의 채워져서 이제 말세까지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들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가까이 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의인이 더 이상 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악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어 세례를 못 받게 만들었다. 세례를 못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녀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임산부들을 돕는 척하면서 신생아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논리로 애꿎은 여성들 수만 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면 사회 전체가 자칫 절망적으로 사악해질 수 있다는 증표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 시민들이 협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시련을 겪는 현재,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치부하던 국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때 문재인 패거리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위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순교적 투쟁과 성숙한 보수 시민 정신의 윤석열 대통령 선출로 비교적 잘 헤쳐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더 발전해 가리라 믿는다. 맨돈 소강석의 맨돈 좌파 목회 생태계가 아니라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정통 신경을 압축한 '서울 고백' 신앙과 반공 외침에 힘입어. 누군가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장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인 왈도파를 보자. 창시자 왈도(Waldo, 프랑스어로는 보데스 Vaudes)는 리옹시(市)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예수가 부유한 젊은이에게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왈도는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두 딸을 수녀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걸식으로 연명하며 설교하고 다녔다. 곧 그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들어 제법 세가 커졌다. 사실 스스로 부(富)를 버리고 청빈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유하고 타락해 가는 기성 교회에 우회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1179년 왈도파가 교황청에 자신들을 수도회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왈도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난 후 이번에는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역시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깨친 바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스스로 걸인이 되어 설교하고 다니다가 교황청에 와서 수도회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왈도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처음에 의심하다가 결국 수도회칙을 승인했는데, 어쩌면 또다시 이단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 반열의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중세 최대 이단 수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성인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단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인 분위기를 타는 여론이나 이단과 부패의 온상 한기총 같은 기관이나 통합 측 대표적 언론인이자 법학자인 황규학 박사가 질타한 이단감별사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쉽게 규정할 게 아니라 기독교계와 신학대학 전문 교수들 중심의 깊고 긴 흐름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맨돈 소강석이나 한기총 이단감별사같이 맨돈이나 세 치 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2022-12-1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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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2
  • 총회 선거 전략
    참 묘한 것이 바둑은 상대가 잘 둬서 지는 경우는 백에 한 판도 없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으로 진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듯 바둑 한 판에도 수많은 실수가 있다. 결정적 실수는 패착(敗着)이고 사소한 건 실착(失着)이다. 그래서 바둑에 지고 나면 자책을 한다. 화가 난다. 이길 수 있었던 판이라고 생각하기에 분한 것이다.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는 기사도 있다. 왕십리 한국기원 화장실은 대국을 마친 기사들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이번 총회 임원 선거를 지켜보면서 기자는 김종철 목사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건 작게는 선거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고 약간 넓히면 승부를 겨루는 모든 게임의 세계, 더 크게 보면 믿음으로 세상을 사는 데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런 깨달음은 선거 자체에 대한 요령과 전략보다도 훨씬 상위의 개념이기도 하고 믿음의 본질이기도 하다. 바둑의 전략과 기술의 압권은 중국 북송시대인 980년께 반신수(潘愼修)라는 사람이 태종에게 헌상한 것으로 전해지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입계의완(入界宜緩), 상대방 세력권에 뛰어들 때는 너무 깊지 않게 완만하게 착수하라.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해라.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피라. 이런 비법 10가지가 있다. 바둑계 프로들에겐 이런 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모두가 다 안다. 물론 실천은 다른 영역이다. 그러나 정작 큰 승부가 펼쳐질 때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다.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겁먹지 않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는 자세. 그게 바둑이 세상 사는 지혜와 연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프로 바둑 기사가 이길 수 있는데 진 뒤 이런 말을 했다.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질까 봐 두려워진 거죠. 전투 바둑이 제 장기인데 복잡한 전투에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삐끗하면 낭떠러지입니다. 그게 두려웠던 거죠. 이길 확률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쉽게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려고 둔 게 아니라 지지 않으려고 둔 것입니다. 움츠러들었습니다. 어리석은 거지요." 교만이 느슨함을 낳았고 느슨함은 패배를 부르기 시작했다. 전략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용 지식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가치를 장려하며 집단에 적응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조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호전적이거나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도록 배워왔다. 남들에게 인기도 못 끌고 고립되는 등의 사회적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조화와 협동을 중시하는 이러한 가치는 불여우 김영우가 좋아하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통해, 의뭉스러운 문재인 같은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 대중에게 보여 주는 평화로운 외양을 통해, 때로는 거짓 변설가 이재명같이 교묘하게 또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 허위를 통해 우리들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는 이런저런 훈련도 받고 준비도 하는데 반해 실제 세상에서 대면하는 것, 즉 인생의 전쟁이나 경쟁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욥 7:1 BC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기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Iliad)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다. 이름은 트로이인들의 왕성인 ‘일리온’에서 유래하였다. '일리아스'란 이름은 '일리온의 노래'란 뜻이다. 오디세이아(Odysseia)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지고 있다. 10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의 50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모두 1만 5693행으로 되어 있다. 주제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뤘다. 그 작품에서 전략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다. 내 아들아. 네 전략을 발전시켜 게임의 상이 네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무나. 힘보다 전략이 더 나은 나무꾼을 만들게 마련이다. 전략은 청포도 빛 바다에 세찬 바람이 몰아치더라도 키잡이가 뱃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주느니라. 또한 전략은 이륜 전차 경주에서도 승리를 안겨준다. 어떤 기수는 말들과 마차를 믿고서 생각 없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경주 내내 고삐를 조이지 못한다. 그러나 더 적을 말로도 이기는 법을 아는 자는 말뚝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모퉁이를 돌 때 바싹 붙으며 처음부터 선두를 주시하면서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군대의 지도자’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strategos'에서 유래한다. 전략은 이런 의미에서 지휘의 기술, 즉 전쟁을 통솔하며 어떤 대형으로 배치하고 어떤 지형에서 싸우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떤 책략을 써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는 병술을 뜻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군 지휘관들은 상대보다 앞서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획할수록 이길 확률도 더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년 7월 20일 ~ 기원전 323년 6월 10일)이 페르시아 군대에 승리를 거뒀던 것처럼 기발한 전략을 동원하면 규모가 더 큰 군대를 격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전략을 활용하는 꾀바른 상대를 맞이하는 경우에는 고전을 겪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장수는 상대편보다 더욱 전략적이고 더운 우회적이며 더욱 영리해져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휘의 기술도 복잡해졌고, 더불어 더욱 많은 전략이 고안되었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그 개념은 전 문화, 전 시대에 걸쳐 나타난다. 전쟁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전쟁은 인간 본성의 악함과 선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적인 격전장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비전통적이고 더 더러운 전략들(게릴라전, 테러 등)로 진화하는 모습은 온갖 것들이 다 통하는 사회의 진화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전쟁에서 성공하는 전략들은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시대를 초월한 심리학에 기반한다. 한편 군사상의 커다란 실패 사례는 어떠한 격전장에도 힘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준다. 전쟁에서의 전략적 이상, 즉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인명 및 자원 손실로 승리를 거두는 전략은 우리 일상의 전투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거기에 적용할 수 있다. 자아는 그 자아를 통해 스스로를 극복한 사람에게는 친구이나 자아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쟁터의 적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3-27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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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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