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25(목)

G.OPINION
Home >  G.OPINION

실시간뉴스
  • [더굳뉴스] 총회장 장봉생 목사 영광의 찬송
    겨울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추위 눕듯이 그 위에 폭설 엎디듯이 그 위에 긴 추위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겨울 밑 더 파이고 눈이 한참 불어난들 한거울 위 그 하늘에 까치 푸드득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헤어지면 어때 총신과 총회가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기도하는 걸... ‘크리스마스캐럴’이라고 하면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년 3월 17일 ~ 1965년 2월 15일)의 저 유명한 ‘더 크리스마스 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놀랍게도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시원한 생각으로 시원하게 있고자’ 만든 노래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여름에 만든 캐럴을 겨울에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여름의 열기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겨울 총회 신년회 '영광의 찬송'처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2026년 신년하례회 및 제2차정책협의회가 2026년 1월 5일(월) 오전 11시 총회회관에서 있었다. 서기 김용대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는 부총회장 홍석환 장로의 기도와 회계 남석필 장로의 성경봉독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설교, 증경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축도와 총무 박용규 목사의 광고 및 인사로 진행됐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영광의 찬송(엡 1:11-12)'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 계획을 따라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각 사람을 넉넉함으로 존중함으로 조심스러움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바꾸고 계십니다. 열매가 없는 총회, 교회, 목사, 장로라면 왜 존재해야 하는가요? 한 생명을 구원하시고 꾸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결과인 영광의 찬송이 되는 내 존재를 우리 삶 가운데서 확인하고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성 얘기를 하면 “방송은 어차피 다 연출 아닌가” “화면을 통해 보는데 어떻게 진정성을 알아챌 수 있는가”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신문이나 TV 방송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무언가 어설프거나 꾸민 듯한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이 바로 알아채서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처럼 요즘 시청자들은 ‘방송국 관계자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이때 뭐가 진짜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버섯 같은 가짜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진짜 콘텐츠가 가짜보다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인간을 비롯해 공동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공정성이란 개념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공정성은 집단생활의 경쟁구도 속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2003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 '원숭이들도 부당한 대우를 거부한다'(Monkeys reject unequal pay)에 명확한 사례가 나온다. 똑같은 과제를 수행한 두 원숭이 중 한 마리에게는 맛이 밍밍한 오이를, 다른 한 마리에게는 달콤한 포도를 줬다. 그런데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어느 순간 실험을 진행하던 사람에게 오이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매체의 발달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다루는 사극이나 공상 과학물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그 나름의 진정성, 즉 정확한 고증이나 그럴듯한 설정을 통해 독자나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이를 설명하는 문학 비평 용어가 핍진성(逼眞性)이다. 핍(逼)에는 핍박하다, 강제로 받아내다 등의 뜻이 있다. 핍진성은 쉽게 말해 ‘진실성을 짜내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성질’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동전 크기만큼만 모발을 남기고 머리를 미는 청나라 초기의 변발이나 지나치게 넓어 보이는 도포의 소맷자락 등 고증의 정확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작품의 사실성이 높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교회의 하나님 살아 계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굽어보고 계시다. 눈주름 골진 데 꽃샘 바람을 날리니 문득 스멀스멀 기어드는 사막의 침묵들. 뜨겁디뜨거운 해나래를 접고 향내 나는 침묵 번져 꿈처럼 금강석 별 흐르는 시내산 사막 한 귀퉁이에서 이제 딱 하나 믿음만 남기고 다 잊을 때가 됐다. 솔로몬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지나갔다. 어떤 의미로는 아니 언제나 하나님 은혜 고마웠고 감사했다. 딱 하나 남길 그 고마움의 씨앗을 골라 심기로 하자. 씨앗을 심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노을 물드는 총신 사당동 뒷산에 눈바람으로 눕고 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2026-01-09
    • G.OPINION
    • G.OPINION
    2026-01-09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의 충성
    “칭찬은 사람을 망치게 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한 사람에게, 논문을 너무 잘 썼다며,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논자가 그에게,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라며, 답례를 했다고 한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돌고래는, 신뢰가 형성되기 전 까지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신뢰가 생겨야지, 신뢰가 깨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련사는, 돌고래의 훈련 과정 속에서, 돌고래가 실수를 하게 되면,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이 아니니, 이 고기를 먹고 힘내서 다시 하자”라며, 돌고래를 쓰다듬어 준다고 한다. 그러면, 돌고래는 조련사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알고는, 기분좋게 성공한다고 한다.칭찬의 역설이 있다. 칭찬만 계속하면 칭찬의 가치가 하락한다. 칭찬만 일삼는 이의 칭찬이 비판을 주로 하는 이의 칭찬과 같은 무게일 리 없다. 계속 칭찬만 하는 사람은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칭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말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하루 일을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은 달라도, 처음 5분을 어떻게 보내는 가를 살펴보면,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알 수 있다는 뜻이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신문을 읽는사람, 아니면 지난 밤에 본TV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라는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1951년, 입소 전에는 평범한 농부였던 슈호프는 독소전에 참전했을 적에 포로로 잡힌것이 간첩으로 오인받아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을 받고는 강제수용소에 입소한 지 8년이 되었다. 어느 때처럼, 슈호프는 아침 5시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그는 작업을 피하기 위해 의무실에 가지만 이미 의무실 정원이 다 차서 그는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식사시간이 되자, 그는 배급받은 빵을 감추고는 작업에 나갔다. 작업은 발전소의 집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였다. 슈호프는 자질구래한 작업을 마치고는 체자리의 잔심부름 대가로 자기 몫에 체자리의 수프까지 두 그릇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운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고는 잠이 든다.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1963년에 발표한 소설의 내용이다. 이 책은 1963년 출간된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솔제니친은 이 소설을 계기로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솔제니친은 반체제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생전의 한기승 목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가? 하루 일을 시작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골로새서 3:23에는"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앞에 놓여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 된 우리들이, 맡은 일을 앞에 두고 하품만 하거나 쓸모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런가 하면, 빌리보서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하는 일은 내가 하기 때문에 나의 일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땅에서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늘의 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일이기에 소중하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은 마음의 자세를 흔드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직원회의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런데 회의장의 제일 높은 자리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주님께서 웃음을 지으시며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당신에게 물어보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현대인들은 습관처럼 "바쁘다"고 말한다. 또 실제로 자기 일에 열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쳇바퀴만 열심히 돌리는 다람쥐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을 맡기셨을 때, 어리석게도 창조의 보람과 기쁨을 포기하고 생존하기 위해 땀 흘려 수고해서 일해야만 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땀 흘려 수고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 땀과 수고와 노력을 들이면, 거기에는 분명히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시편 126:5~6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으로 얻은 열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갔다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일의 보상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열매를 맺는다. 이 땅에서 우리가 보다 좋은 직장을 찾는 것 보다 더 나은 보수를 받는 것, 그리고 자녀를 기업으로 얻는 것까지, 모두 주님이 주시는 열매이자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해야 할,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때로 눈물과 수고로 일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늘에서의 상이 큰 것은 물론, 땅에서 주님이 히릭하시는 상 또한 클 것이다.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일하기로 결심하는가? 그렇다면 "수고함으로 얻은 열매보다 값진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기 바란다. 중국의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송나라 정치가이자 대학자 사마광(司馬光, 1019년~1086년)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역사가, 정치가이다. 그는 자치통감 서두에서 사람을 네 가지로 나눠 풀이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그가 역사 속 인물들을 평가하는 일관된 잣대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총회에도 상당한 유효성을 갖는다. 그는 덕[德]과 재주[才]의 유무(有無)를 들어 네 가지 유형을 추출 해냈다. 먼저 그는 덕과 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무릇 귀 밝고 일을 잘 살피며 강한 것을 일러 재주라 하고 바르고 곧으며 도리에 적중해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일러 덕이라고 한다. 재주란 덕의 밑천이요, 덕은 재주의 통솔자다.” 그래서 재주는 덕을 통해 다듬어질 때라야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재가 승하고 덕이 박하다(才勝薄德) 하여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제시한다. 재주와 덕을 함께 갖춘 이를 일러 빼어난 사람이라 하고 재주와 덕이 모두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며 덕이 재주를 뛰어넘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을 뛰어넘는 사람을 소인이라 한다[才德兼全謂之聖人 才德兼亡謂之愚人 德勝才謂之君子 才勝德謂之小人].” 그의 인물론의 독특함은 재도 없고 덕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보다 재가 덕보다 높은 소인(小人)을 더 경계한 점이다. 사마광은 말했다. “군자란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고, 소인은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한다.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어리석은 이는 설사 나쁜 일을 하려 해도 그 지혜가 두루 살필 수가 없고 힘도 감당할 수가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1)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1-5 2026-01-07
    • G.OPINION
    • G.OPINION
    2026-01-07
  • [더굳뉴스] 제108회 총회 후보 탈락 진상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현관 기둥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명언은 '무지의 자각을 통해 자신의 분수를 알라'는 말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경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 태생으로 유태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상대성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 물리학자로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그는 1950년대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돼 달라는 요청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유태인인 그가 유태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를 거절한다. 그는 거절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나는 평생을 물질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지금까지 행정업무나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일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고위직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오로지 그것에 몸담고자 했던 것으로 자신의 분수를 알았던 것이다.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무능한 대통령이 됨으로써 수없는 어리석은 일들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이 지금처럼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분수를 알라"는 말은 주제를 파악하라는 뜻이다. 분수를 아는 것은 자기 수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때의 분수는 2분의 3, 3분의 2와 같은 분수와 똑같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딱 맞는 표현이다. 분수는 1이 안 되는 작은 부분의 크기를 나타낸다. 설명하기 모호했던 크기를 분명하게 표현해준다. 먹다 남은 피자가 얼마나 되는지 분수를 사용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의미가 확장돼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라는 뜻으로도 사용됐다. 어떤 대상의 크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나 수준을 깨닫는 것도 '분수를 안다'는 의미에 포함됐다. 분수의 의미가 수학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 정도로 분수라는 단어의 역사가 오래됐단 말인가? 그렇다. 수학의 분수는 3000~4000년 전에도 사용됐다. 그런 기록은 한두 개가 아니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 고대 문명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분수의 개념이 있었다. 기원전에 쓰인 중국 수학책 '구장산술'에는 분수가 또렷하게 보인다. 이 책은 삼국 시대 때 우리나라에 도입됐고, 이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중국에서건 우리나라에서건 분수가 주제 파악의 의미로 확장되기까지 시간은 충분했던 셈이다. 분수는 널리 사용됐고 사람들은 분수를 충분히 잘 활용했다. 그랬기에 주제 파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됐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면서 네 분수를 알아라 이런 의미로 쓰이는데 이것은 라틴어를 의역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많이 변질된것이다. 원어 그대로 직역하자면 " 네 자신이 모르는것을 모른다는것을 알라 " 모르는 것을 모른다. 부정의 부정이니 긍정! 그러니 안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 107회기 선관위 위원이 자신에게 선관위 1000만 원 뇌물 책임이 있다고 밝힌 A 장로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허활민 시절 설친 총회 문제아는 “A 장로의 주장은 1000% 믿을 수 없다”라며 “A 장로와 B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 열린 감사부 소환조사에서 A 장로는 “1000만 원은 내 돈이다. B 장로는 무관하다”라면서 “선관위원이 (1000만 원을 주도록) 유도했다. 선관위원이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원은 “A 장로가 코너에 몰리니까 물귀신 작전을 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4일 광주 송정중앙교회에서 열린 선관위 전체회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선관위는 오전 전체회의에서 B 장로와 A 장로를 불러 심의분과장에게 전달된 1000만 원 건에 대한 소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에 선관위원 만장일치로 B 장로의 후보 탈락을 결정했다. 재개발을 앞둔 대치동 우성아파트 총무 관사 매각에 앞장섰던 인사가 A 장로에게 이의가 없냐고 물었지만, A 장로는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B 장로는 교회 앞에서 연좌시위를 했다.) 선관위원은 “A 장로는 선관위 회의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한 번도 B 장로의 후보 탈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라면서 “선관위원 전체는 A 장로와 B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해진다. 이 영화 라쇼몽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처럼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성이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 시각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생각하면 문제가 풀릴 것 같다. 사건은 있고 진실은 사라진 이 해괴한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렸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사는 검사출신 대통령 자신이 내란 주범으로 전락해 감옥에서 법정을 오가고 반대의 인물은 청와대를 들락거리고 있으니...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5-01-06
    • G.OPINION
    2026-01-06
  • [더굳뉴스] 총무 박용규 목사 행로
    주님!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듯이 이 새해에도 우리 총회에 그 빛을 비추어 주소서. 의미 없는 의미들로 이루어진 암호화된 사랑. 여기엔 늘 믿음이 필요했다. 식별 불가한 기도를 하면서도 신자들은 대체 왜 불 꺼진 예배당 한구석에 쪼그려앉아 믿음을 끌어안고 있는 걸까. 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증상이 호전된 환자가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했다. “저랑 약속했잖아요. 힘들어서 오신 거잖아요.” “막상 병원에 누워 있으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하며 견디는 게 낫겠어요.” “죽는다고요. 치료 안 받으면 고통스럽게 죽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괜찮아요.” 진리는 언제나 미래에서 온다. 따라서 과거에 얽매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이룰 미래는 지나간 실패를 닥쳐올 성공을 위한 고난으로 만들고, 뼈아픈 슬픔을 앞날의 환희를 위한 시련으로 만들며, 과거의 잘못조차 미래의 영광을 위한 방황으로 만든다. 미래가 과거를 생성한다. 앞으로 무엇이 되는지에 따라 과거는 얼마든지 변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투표는 가장 공식적인 의사 표현이며 국민이 주권을 발휘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주요한 수단 중 하나다. 이 투표권의 보장은 민주주의 발달을 보여주는 가장 기초적이자 중요한 척도이다. 투표와 선거 방식이 다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공정한 선거와 투표를 법과 행정으로 명확히 보장, 감독하고 있다. 선거 투표를 통해 국가 통치권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므로 국민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다. 삶은 미로(Maze)일까, 미궁(Labyrinth)일까. 미궁은 하나의 길이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은 귀착지에 이르는 구조이지만, 미로는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귀착지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는 구조다. 삶은 미로인가, 미궁인가.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고, 결국 죽음이라는 귀착지에 이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궁을 닮았다. 미로·미궁을 걷는 이의 숙명은 미로·미궁의 전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펼쳐지는 길을 걸어가야 할 뿐, 갈림길이 나오면 선택해야 할 뿐, 그 길이 언제쯤 끝날지 혹은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대체 이 길의 어디쯤 서 있는 건가. 이 질문은 길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답할 수 있다. 나는 대체 이 삶의 어디쯤 서 있는 건가. 이 질문은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삶이라는 미로·미궁을 걷는 일은 마치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大峽谷)이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 그랜드캐니언 속을 걸어서는 ‘그랜드’(Grand 雄壯)함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결코 그랜드캐니언 전체를 볼 수 없다. 만리장성을 걸어서는 ‘만(萬) 리(里)’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만 리 전체를 볼 수는 없다. 거대한 것의 전모를 보기 위해서는 새처럼 조감(鳥瞰)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삶의 행로를 늘 걷고 있다. 그러니 자기 좌표를 알기 어렵다. 우리의 좌표를 알려줄 삶의 지도 혹은 조감도 같은 것이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살아서 삶을 벗어날 수 없기에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조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된 인간은 짐승과 달라서 추상 능력이 있다. 눈앞을 휙휙 지나쳐가는 삶의 국면들에 사로잡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은 때로 삶 전체를 조감하고 싶어 한다. 내 삶의 좌표는 어디인가. 삶 자체를 바라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인간은 인간 나름의 초월을 꿈꾼다. 물에 빠진 이상 젖을 수밖에 없듯이, 태어난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 화가의 궁극적 목표는 그림을 많이 팔아 부자가 되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명예를 얻는 데 있지 않다. 화가의 목표는 결국 삶을 그리는 것이요, 조각가의 목표는 결국 삶을 조각하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겠지만 그 삶을 재현해내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1장 총칙 제2조(목적) 본 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개혁주의 신앙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헌법을 준수하며 교리를 보존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성취케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장 임원 제6조 선거방법 1. 총회 선거규정에 의한다. 2. 총회 임원 선출은 직선제로 한다. 제7조 임무 1. 회장은 본회 회무 일체를 통괄하며 본회를 대표한다. 2.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여 회장이 유고한 때에는 이를 대리한다. 3. 서기 1) 총회 개회를 위한 준비 업무를 주관한다. 4) 총회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인장을 비치, 보관한다. 4. 부서기는 서기를 보좌하며 천서검사위원을 겸임하고, 각 노회록을 검사한 것과 각 노회 상황 보고한 것을 수집하여 총회에 보고하고, 서기가 유고한 때에 이를 대리한다. 제12조 총무 1. 임무와 권한 1) 총무는 상무 직원으로서 회장 지시하에 총회와 관련되는 내외의 사무를 헌법과 규칙 범위 안에서 시행하되 총회를 대표할 수 없다. 2) 총무는 총회와 임원회의 언권 회원이 되어 회의 기간 내에 사무 진행된 경과 상황을 보고한다. 5. 해임 1) 총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시 임원회에서 임원 3분의 2 이상의 결의로 직무를 정지할 수 있으며 본회(총회)에 해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 이상 총회 총칙에서 살펴보면 그 직임과 직무에 있어서 어떤 임원의 선출보다 부총회장과 총무와 부서기의 선출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총무는 3년마다 선출하니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제111회 가장 유력한 총무 후보 올곧은 박용규 목사는 남은 기간 총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분쟁교회 처리 같은 불미스럽고 미숙한 일이 발생해 해임당하거나 후보 탈락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권력에 대한 미련은 질투보다 더 질긴 법이지만, 윤석열처럼 역사의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그걸 통찰하는 사람은 드물거니와 통찰했다 해도 미련을 끊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유권자 총대의 현명함은 어느 후보가 성경 말씀과 총회 법대로 실천할지를 판단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목사 후보의 경우 무엇보다 신앙의 견실함과 목회의 건실함에 있어서 경쟁 후보보다 나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111회 총회 투표는 미로일까 미궁일까.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삶의 치유 가능성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 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진실과의 대면 작업이다.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 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삶보다 오늘의 확실한 말씀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성경은 귀띔해 줬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28-32 2026-01-03
    • G.OPINION
    • G.OPINION
    2026-01-03
  • [더굳뉴스] 장봉생 총회장을 위한 소강석 목사 정책
    주님 말씀대로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게 해주소서. 한자 문화권 국가 중 대통령(大統領) 용어를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중국은 총통이나 링다오(領導)라고 부른다. 프레지던트, (president)가 곧 대통령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프레지던트는 원래 사회자, 의장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권위적 의미를 배제하기 위해 건국 당시부터 우리 총회처럼 총회장(프레지던트)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선 국가 지도자도, 기업 회장도, 학생회장과 스포츠클럽 회장도 프레지던트 즉 회장이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서 일본은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표기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통령'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이 때였다. 1853년 흑선을 몰고 에도만에 도착한 페리 제독은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왔다. 일본은 이 친서의 ‘프레지던트’를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군주, 왕이라 하려다 ‘사무라이의 우두머리’ 뜻으로도 사용됐던 통령(統領) 또는 두령(頭領)에 대(大)를 붙여 ‘대통령(다이토우료)’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위대한(大)이라는 극존칭 의미도 담았다. 철학, 과학, 사회 같은 영어가 한자어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는데, 대통령은 과장되고 왜곡된 조어였다.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 때 공문서로는 처음으로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이 사용됐다. 반면 1882년 우리와 미국의 수호통상조약에는 대통령이 아닌 프레지던트 발음을 한자로 그대로 옮겨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을 사용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몰랐던 일본이 급조한 말 대통령은 임시정부에 이어 우리 헌법에 그대로 차용됐다. 민주국가 미국의 ‘프레지던트’가 태평양을 건너며 왕조 냄새 풍기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말은 일본이 만들었지만 ‘대통령’으로 불리는 리더가 군림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아이러니다. 미국, 프랑스, 멕시코, 칠레, 러시아는 발음은 조금씩 달라도 그냥 프레지던트 president이다.
    • G.OPINION
    • G.OPINION
    2026-01-02
  • [더굳뉴스] 장봉생 총회장 2026 신년사
    평생토록 지은 소망이 못마땅해 부숴 버렸더니 비로소 마음에 드는 소망이 생겼다. 이제 내 안에 소망이 있으니 세상엔 소망이 없어도 되겠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소망. 정신의 뼈대만 앙상한 소망이 없으니까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2026년 1월 1일 국산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지휘 비행을 하고 한반도 전역의 군사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새벽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공군 항공통제기 E-737 피스아이에 탑승해 지휘 비행을 했다. 지휘 비행에는 KF-21을 비롯해 FA-50, TA-50 등 국산 전투기를 포함한 총 6대의 공군 전투기가 엄호 작전을 수행했다. 국산 전투기가 지휘 비행 엄호 작전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장관은 비행 중 동해 상에서 임무 수행 중인 해군 광개토대왕함장, 공중 초계·엄호를 담당하는 공군 비행편대장, 최전방 접적 지역을 사수하는 해병대 6여단 대대장과 육군 22사단 GP장 등 현장 작전 부대 지휘관과 차례로 지휘 통화를 하며 대비 태세 현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고 1927년 추수 봉기를 이끌고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가 된 마오쩌둥(毛澤東, 1893년 12월 26일~1976년 9월 9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종교적 교의(교조)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당신들의 교의는 분(糞)만도 못하다고 말해야 한다.” 표현의 비속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마오는 분명 맞는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던 그 자신조차도 이 금언의 중량감에 끝내 짓눌리고 말았던 것일까. 1966년 참혹한 문혁기(文革期), 손에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천안문 앞에서 마오 찬가 ‘동방홍’(東方紅, The East is Red,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사용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비공식적인 국가)을 부르던 무수한 홍위병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천천히 흔들며 답례하던 마오가 이미 새로운 교조 그 자체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 ~ 1546년 2월 18일)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권위를 혐오하고 그것을 뒤집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원래 권위적이었을 수가 있으며, 권위를 뒤집고 나서는 자신이 다시 권위주의의 화신으로서 군림하게 되기 쉽다." 교조에 대한 저항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교조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한국적 민주주의든, 주체적 사회주의든, 민족적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든, 개혁주의든 한번 머리에 박힌 ‘당연한 생각’은 그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20년 전의 ‘상식’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며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65년 4월)는 이런 말을 했다. “습관에 구속돼선 안 된다. 가끔 습관은 진리를 짓밟기도 한다. 습관보다는 진리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해야만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빈정대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정말 좋아졌다. 당신만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대답이 적절해졌고, ‘법은 멀고 주먹과 돈은 가깝다’는 해결사들에게도 “이젠 주먹보다 CCTV가 더 가깝다”는 남의 말이 아니게 됐다. 대통령 이재명처럼 “여태껏 큰일 날 일을 저지르고 살았는데도 무사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그런 시각으로 보더라도 북한에 대한 가장 정확한 규정은 ‘연극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명실상부한 것은 김씨 권력뿐이고 나머지는 ‘마치 정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다. 평양의 화려한 수십 층 아파트들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부실 공사에다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다. 지방에선 주민들이 “세계 제일로 행복하다”고 노래 부르는데 실상은 헐벗었다. 김정은이 이런 실상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실상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이 자신들 실상에 노심초사한다면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실제보다 겉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부풀려진 분야가 군(軍)이라고 한다. 김씨 권력이 외부 세계에 충분한 경고를 보내는데 북한군의 실제 모습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군의 ‘위력’이 주민들에게 ‘위안’이자 고생해야 하는 이유가 됐기 때문에 군사력은 끊임없이 과시돼야만 한다. 열병식이 자주 열리는 이유다. 그런데 그 열병식 행렬 속 탱크가 고장 난 모습이 노출됐다. 북한군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란다. 실상은 고고도 정찰기, 신형 전차, 정찰 공격 드론, 각종 미사일, 함정 등 김정은이 내세우는 무기들은 모두 한미가 보유한 장비의 겉모습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이 복제품들의 실제 성능은 미지수다. 군 장비는 민간보다 제작 기준이 더 엄격한데 북한의 제조업 능력은 한국의 1970~80년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 기갑부대 장교 출신 탈북민은 “전쟁이 나면 북한 탱크 절반은 고장 나서 설 것”이라고 했다. 북한 군인 20~30%는 영양실조이고 실제 주로 하는 일은 건물 공사다.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하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길을 걷다 언제든 발길을 멈추고 낯선 눈을 들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도시여행자처럼, 우리도 우리 방식대로 총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향유해야겠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배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받아들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부지런하면 피곤을 피하기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일흔여섯 나의 소원은 아흔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때로 우리 앞에 새로운 깨달음이 나타나거나 오래전의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인이 그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그 부분들이 모여 온전한 전신상(全身像)을 만들기 전까지 모든 총체적 평가는 유보돼야 하며, 의심받아야 한다. 보편적 진리란 없다. 다만 인생 행로(行路)에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을 말없이 내밀 수 있는 벗으로서의 지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길을 물을 수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떠안고, 우리는 매일 미지의 세상을 향해 구원의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떠남’은 그 자체로 길을 묻는 과정이며 뇌와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과 설렘과 걱정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추억은 찰나만을 보여주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의 교차점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말이다. 이렇게 춥고 바람이 시린데 봄이 오긴 오는 걸까 하고 의심을 품어 보지만 믿음은 마치 봄의 전령처럼 생명을 이야기한다. 다가오는 봄이, 그 생명의 기운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은혜롭길 기도해 보자. 힘겹고 지칠 땐 목표를 향해 억지로 힘겹게 내딛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하기만 해도 그 너머에 모세 같은 믿음의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총회 지도자 장봉생 총회장, 정영교 부총회장, 김용대 서기 등의 믿음을 다독이길 바란다. 제110회 정책지향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2026년 신년사를 전했다. 부족한 종을 제110회 총회장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110회 총회는 '복음과 함께 주께로', '교회와 함께 미래로', '사회와 함께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모토로 '함께하는 정책총회'가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뢰, 성도들의 신뢰, 사회의 신뢰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다움'과 '섬김'의 그릇에 담깁니다. 이를 위해 총회 역시 공교회로서 사업과 재정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교단 소속 교회 모든 교회들로부터 이 교단에 속한 교인이라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2026-01-01
    • G.OPINION
    • G.OPINION
    2026-01-01

실시간 G.OPINION 기사

  • [더굳뉴스] 총회장 장봉생 목사 영광의 찬송
    겨울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추위 눕듯이 그 위에 폭설 엎디듯이 그 위에 긴 추위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겨울 밑 더 파이고 눈이 한참 불어난들 한거울 위 그 하늘에 까치 푸드득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헤어지면 어때 총신과 총회가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기도하는 걸... ‘크리스마스캐럴’이라고 하면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년 3월 17일 ~ 1965년 2월 15일)의 저 유명한 ‘더 크리스마스 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놀랍게도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시원한 생각으로 시원하게 있고자’ 만든 노래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여름에 만든 캐럴을 겨울에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여름의 열기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겨울 총회 신년회 '영광의 찬송'처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2026년 신년하례회 및 제2차정책협의회가 2026년 1월 5일(월) 오전 11시 총회회관에서 있었다. 서기 김용대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는 부총회장 홍석환 장로의 기도와 회계 남석필 장로의 성경봉독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설교, 증경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축도와 총무 박용규 목사의 광고 및 인사로 진행됐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영광의 찬송(엡 1:11-12)'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 계획을 따라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각 사람을 넉넉함으로 존중함으로 조심스러움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바꾸고 계십니다. 열매가 없는 총회, 교회, 목사, 장로라면 왜 존재해야 하는가요? 한 생명을 구원하시고 꾸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결과인 영광의 찬송이 되는 내 존재를 우리 삶 가운데서 확인하고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성 얘기를 하면 “방송은 어차피 다 연출 아닌가” “화면을 통해 보는데 어떻게 진정성을 알아챌 수 있는가”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신문이나 TV 방송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무언가 어설프거나 꾸민 듯한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이 바로 알아채서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처럼 요즘 시청자들은 ‘방송국 관계자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이때 뭐가 진짜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버섯 같은 가짜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진짜 콘텐츠가 가짜보다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인간을 비롯해 공동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공정성이란 개념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공정성은 집단생활의 경쟁구도 속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2003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 '원숭이들도 부당한 대우를 거부한다'(Monkeys reject unequal pay)에 명확한 사례가 나온다. 똑같은 과제를 수행한 두 원숭이 중 한 마리에게는 맛이 밍밍한 오이를, 다른 한 마리에게는 달콤한 포도를 줬다. 그런데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어느 순간 실험을 진행하던 사람에게 오이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매체의 발달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다루는 사극이나 공상 과학물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그 나름의 진정성, 즉 정확한 고증이나 그럴듯한 설정을 통해 독자나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이를 설명하는 문학 비평 용어가 핍진성(逼眞性)이다. 핍(逼)에는 핍박하다, 강제로 받아내다 등의 뜻이 있다. 핍진성은 쉽게 말해 ‘진실성을 짜내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성질’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동전 크기만큼만 모발을 남기고 머리를 미는 청나라 초기의 변발이나 지나치게 넓어 보이는 도포의 소맷자락 등 고증의 정확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작품의 사실성이 높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교회의 하나님 살아 계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굽어보고 계시다. 눈주름 골진 데 꽃샘 바람을 날리니 문득 스멀스멀 기어드는 사막의 침묵들. 뜨겁디뜨거운 해나래를 접고 향내 나는 침묵 번져 꿈처럼 금강석 별 흐르는 시내산 사막 한 귀퉁이에서 이제 딱 하나 믿음만 남기고 다 잊을 때가 됐다. 솔로몬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지나갔다. 어떤 의미로는 아니 언제나 하나님 은혜 고마웠고 감사했다. 딱 하나 남길 그 고마움의 씨앗을 골라 심기로 하자. 씨앗을 심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노을 물드는 총신 사당동 뒷산에 눈바람으로 눕고 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2026-01-09
    • G.OPINION
    • G.OPINION
    2026-01-09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의 충성
    “칭찬은 사람을 망치게 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한 사람에게, 논문을 너무 잘 썼다며,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논자가 그에게,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라며, 답례를 했다고 한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돌고래는, 신뢰가 형성되기 전 까지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신뢰가 생겨야지, 신뢰가 깨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련사는, 돌고래의 훈련 과정 속에서, 돌고래가 실수를 하게 되면,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이 아니니, 이 고기를 먹고 힘내서 다시 하자”라며, 돌고래를 쓰다듬어 준다고 한다. 그러면, 돌고래는 조련사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알고는, 기분좋게 성공한다고 한다.칭찬의 역설이 있다. 칭찬만 계속하면 칭찬의 가치가 하락한다. 칭찬만 일삼는 이의 칭찬이 비판을 주로 하는 이의 칭찬과 같은 무게일 리 없다. 계속 칭찬만 하는 사람은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칭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말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하루 일을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은 달라도, 처음 5분을 어떻게 보내는 가를 살펴보면,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알 수 있다는 뜻이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신문을 읽는사람, 아니면 지난 밤에 본TV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라는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1951년, 입소 전에는 평범한 농부였던 슈호프는 독소전에 참전했을 적에 포로로 잡힌것이 간첩으로 오인받아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목을 받고는 강제수용소에 입소한 지 8년이 되었다. 어느 때처럼, 슈호프는 아침 5시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그는 작업을 피하기 위해 의무실에 가지만 이미 의무실 정원이 다 차서 그는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식사시간이 되자, 그는 배급받은 빵을 감추고는 작업에 나갔다. 작업은 발전소의 집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였다. 슈호프는 자질구래한 작업을 마치고는 체자리의 잔심부름 대가로 자기 몫에 체자리의 수프까지 두 그릇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운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고는 잠이 든다.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1963년에 발표한 소설의 내용이다. 이 책은 1963년 출간된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솔제니친은 이 소설을 계기로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솔제니친은 반체제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생전의 한기승 목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가? 하루 일을 시작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골로새서 3:23에는"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앞에 놓여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 된 우리들이, 맡은 일을 앞에 두고 하품만 하거나 쓸모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런가 하면, 빌리보서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하는 일은 내가 하기 때문에 나의 일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땅에서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늘의 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일이기에 소중하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은 마음의 자세를 흔드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직원회의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런데 회의장의 제일 높은 자리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주님께서 웃음을 지으시며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당신에게 물어보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현대인들은 습관처럼 "바쁘다"고 말한다. 또 실제로 자기 일에 열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쳇바퀴만 열심히 돌리는 다람쥐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을 맡기셨을 때, 어리석게도 창조의 보람과 기쁨을 포기하고 생존하기 위해 땀 흘려 수고해서 일해야만 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땀 흘려 수고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 땀과 수고와 노력을 들이면, 거기에는 분명히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시편 126:5~6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으로 얻은 열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갔다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일의 보상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열매를 맺는다. 이 땅에서 우리가 보다 좋은 직장을 찾는 것 보다 더 나은 보수를 받는 것, 그리고 자녀를 기업으로 얻는 것까지, 모두 주님이 주시는 열매이자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해야 할,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때로 눈물과 수고로 일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늘에서의 상이 큰 것은 물론, 땅에서 주님이 히릭하시는 상 또한 클 것이다.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일하기로 결심하는가? 그렇다면 "수고함으로 얻은 열매보다 값진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기 바란다. 중국의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송나라 정치가이자 대학자 사마광(司馬光, 1019년~1086년)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역사가, 정치가이다. 그는 자치통감 서두에서 사람을 네 가지로 나눠 풀이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그가 역사 속 인물들을 평가하는 일관된 잣대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총회에도 상당한 유효성을 갖는다. 그는 덕[德]과 재주[才]의 유무(有無)를 들어 네 가지 유형을 추출 해냈다. 먼저 그는 덕과 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무릇 귀 밝고 일을 잘 살피며 강한 것을 일러 재주라 하고 바르고 곧으며 도리에 적중해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일러 덕이라고 한다. 재주란 덕의 밑천이요, 덕은 재주의 통솔자다.” 그래서 재주는 덕을 통해 다듬어질 때라야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재가 승하고 덕이 박하다(才勝薄德) 하여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제시한다. 재주와 덕을 함께 갖춘 이를 일러 빼어난 사람이라 하고 재주와 덕이 모두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며 덕이 재주를 뛰어넘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을 뛰어넘는 사람을 소인이라 한다[才德兼全謂之聖人 才德兼亡謂之愚人 德勝才謂之君子 才勝德謂之小人].” 그의 인물론의 독특함은 재도 없고 덕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보다 재가 덕보다 높은 소인(小人)을 더 경계한 점이다. 사마광은 말했다. “군자란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고, 소인은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한다.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어리석은 이는 설사 나쁜 일을 하려 해도 그 지혜가 두루 살필 수가 없고 힘도 감당할 수가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1)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1-5 2026-01-07
    • G.OPINION
    • G.OPINION
    2026-01-07
  • [더굳뉴스] 제108회 총회 후보 탈락 진상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현관 기둥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명언은 '무지의 자각을 통해 자신의 분수를 알라'는 말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경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 태생으로 유태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상대성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 물리학자로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그는 1950년대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돼 달라는 요청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유태인인 그가 유태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를 거절한다. 그는 거절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나는 평생을 물질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지금까지 행정업무나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일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고위직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오로지 그것에 몸담고자 했던 것으로 자신의 분수를 알았던 것이다.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무능한 대통령이 됨으로써 수없는 어리석은 일들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이 지금처럼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분수를 알라"는 말은 주제를 파악하라는 뜻이다. 분수를 아는 것은 자기 수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때의 분수는 2분의 3, 3분의 2와 같은 분수와 똑같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딱 맞는 표현이다. 분수는 1이 안 되는 작은 부분의 크기를 나타낸다. 설명하기 모호했던 크기를 분명하게 표현해준다. 먹다 남은 피자가 얼마나 되는지 분수를 사용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의미가 확장돼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라는 뜻으로도 사용됐다. 어떤 대상의 크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나 수준을 깨닫는 것도 '분수를 안다'는 의미에 포함됐다. 분수의 의미가 수학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 정도로 분수라는 단어의 역사가 오래됐단 말인가? 그렇다. 수학의 분수는 3000~4000년 전에도 사용됐다. 그런 기록은 한두 개가 아니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 고대 문명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분수의 개념이 있었다. 기원전에 쓰인 중국 수학책 '구장산술'에는 분수가 또렷하게 보인다. 이 책은 삼국 시대 때 우리나라에 도입됐고, 이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중국에서건 우리나라에서건 분수가 주제 파악의 의미로 확장되기까지 시간은 충분했던 셈이다. 분수는 널리 사용됐고 사람들은 분수를 충분히 잘 활용했다. 그랬기에 주제 파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됐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면서 네 분수를 알아라 이런 의미로 쓰이는데 이것은 라틴어를 의역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많이 변질된것이다. 원어 그대로 직역하자면 " 네 자신이 모르는것을 모른다는것을 알라 " 모르는 것을 모른다. 부정의 부정이니 긍정! 그러니 안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 107회기 선관위 위원이 자신에게 선관위 1000만 원 뇌물 책임이 있다고 밝힌 A 장로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허활민 시절 설친 총회 문제아는 “A 장로의 주장은 1000% 믿을 수 없다”라며 “A 장로와 B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 열린 감사부 소환조사에서 A 장로는 “1000만 원은 내 돈이다. B 장로는 무관하다”라면서 “선관위원이 (1000만 원을 주도록) 유도했다. 선관위원이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원은 “A 장로가 코너에 몰리니까 물귀신 작전을 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4일 광주 송정중앙교회에서 열린 선관위 전체회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선관위는 오전 전체회의에서 B 장로와 A 장로를 불러 심의분과장에게 전달된 1000만 원 건에 대한 소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에 선관위원 만장일치로 B 장로의 후보 탈락을 결정했다. 재개발을 앞둔 대치동 우성아파트 총무 관사 매각에 앞장섰던 인사가 A 장로에게 이의가 없냐고 물었지만, A 장로는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B 장로는 교회 앞에서 연좌시위를 했다.) 선관위원은 “A 장로는 선관위 회의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한 번도 B 장로의 후보 탈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라면서 “선관위원 전체는 A 장로와 B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해진다. 이 영화 라쇼몽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처럼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성이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 시각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생각하면 문제가 풀릴 것 같다. 사건은 있고 진실은 사라진 이 해괴한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시시비비를 가렸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사는 검사출신 대통령 자신이 내란 주범으로 전락해 감옥에서 법정을 오가고 반대의 인물은 청와대를 들락거리고 있으니...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5-01-06
    • G.OPINION
    2026-01-06
  • [더굳뉴스] 총무 박용규 목사 행로
    주님!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듯이 이 새해에도 우리 총회에 그 빛을 비추어 주소서. 의미 없는 의미들로 이루어진 암호화된 사랑. 여기엔 늘 믿음이 필요했다. 식별 불가한 기도를 하면서도 신자들은 대체 왜 불 꺼진 예배당 한구석에 쪼그려앉아 믿음을 끌어안고 있는 걸까. 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증상이 호전된 환자가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했다. “저랑 약속했잖아요. 힘들어서 오신 거잖아요.” “막상 병원에 누워 있으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하며 견디는 게 낫겠어요.” “죽는다고요. 치료 안 받으면 고통스럽게 죽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괜찮아요.” 진리는 언제나 미래에서 온다. 따라서 과거에 얽매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이룰 미래는 지나간 실패를 닥쳐올 성공을 위한 고난으로 만들고, 뼈아픈 슬픔을 앞날의 환희를 위한 시련으로 만들며, 과거의 잘못조차 미래의 영광을 위한 방황으로 만든다. 미래가 과거를 생성한다. 앞으로 무엇이 되는지에 따라 과거는 얼마든지 변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투표는 가장 공식적인 의사 표현이며 국민이 주권을 발휘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주요한 수단 중 하나다. 이 투표권의 보장은 민주주의 발달을 보여주는 가장 기초적이자 중요한 척도이다. 투표와 선거 방식이 다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공정한 선거와 투표를 법과 행정으로 명확히 보장, 감독하고 있다. 선거 투표를 통해 국가 통치권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므로 국민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다. 삶은 미로(Maze)일까, 미궁(Labyrinth)일까. 미궁은 하나의 길이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은 귀착지에 이르는 구조이지만, 미로는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귀착지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는 구조다. 삶은 미로인가, 미궁인가.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고, 결국 죽음이라는 귀착지에 이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궁을 닮았다. 미로·미궁을 걷는 이의 숙명은 미로·미궁의 전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펼쳐지는 길을 걸어가야 할 뿐, 갈림길이 나오면 선택해야 할 뿐, 그 길이 언제쯤 끝날지 혹은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대체 이 길의 어디쯤 서 있는 건가. 이 질문은 길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답할 수 있다. 나는 대체 이 삶의 어디쯤 서 있는 건가. 이 질문은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삶이라는 미로·미궁을 걷는 일은 마치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大峽谷)이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 그랜드캐니언 속을 걸어서는 ‘그랜드’(Grand 雄壯)함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결코 그랜드캐니언 전체를 볼 수 없다. 만리장성을 걸어서는 ‘만(萬) 리(里)’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만 리 전체를 볼 수는 없다. 거대한 것의 전모를 보기 위해서는 새처럼 조감(鳥瞰)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삶의 행로를 늘 걷고 있다. 그러니 자기 좌표를 알기 어렵다. 우리의 좌표를 알려줄 삶의 지도 혹은 조감도 같은 것이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살아서 삶을 벗어날 수 없기에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조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된 인간은 짐승과 달라서 추상 능력이 있다. 눈앞을 휙휙 지나쳐가는 삶의 국면들에 사로잡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은 때로 삶 전체를 조감하고 싶어 한다. 내 삶의 좌표는 어디인가. 삶 자체를 바라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인간은 인간 나름의 초월을 꿈꾼다. 물에 빠진 이상 젖을 수밖에 없듯이, 태어난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 화가의 궁극적 목표는 그림을 많이 팔아 부자가 되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명예를 얻는 데 있지 않다. 화가의 목표는 결국 삶을 그리는 것이요, 조각가의 목표는 결국 삶을 조각하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겠지만 그 삶을 재현해내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1장 총칙 제2조(목적) 본 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개혁주의 신앙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헌법을 준수하며 교리를 보존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성취케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장 임원 제6조 선거방법 1. 총회 선거규정에 의한다. 2. 총회 임원 선출은 직선제로 한다. 제7조 임무 1. 회장은 본회 회무 일체를 통괄하며 본회를 대표한다. 2.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여 회장이 유고한 때에는 이를 대리한다. 3. 서기 1) 총회 개회를 위한 준비 업무를 주관한다. 4) 총회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인장을 비치, 보관한다. 4. 부서기는 서기를 보좌하며 천서검사위원을 겸임하고, 각 노회록을 검사한 것과 각 노회 상황 보고한 것을 수집하여 총회에 보고하고, 서기가 유고한 때에 이를 대리한다. 제12조 총무 1. 임무와 권한 1) 총무는 상무 직원으로서 회장 지시하에 총회와 관련되는 내외의 사무를 헌법과 규칙 범위 안에서 시행하되 총회를 대표할 수 없다. 2) 총무는 총회와 임원회의 언권 회원이 되어 회의 기간 내에 사무 진행된 경과 상황을 보고한다. 5. 해임 1) 총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시 임원회에서 임원 3분의 2 이상의 결의로 직무를 정지할 수 있으며 본회(총회)에 해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 이상 총회 총칙에서 살펴보면 그 직임과 직무에 있어서 어떤 임원의 선출보다 부총회장과 총무와 부서기의 선출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총무는 3년마다 선출하니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제111회 가장 유력한 총무 후보 올곧은 박용규 목사는 남은 기간 총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분쟁교회 처리 같은 불미스럽고 미숙한 일이 발생해 해임당하거나 후보 탈락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권력에 대한 미련은 질투보다 더 질긴 법이지만, 윤석열처럼 역사의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그걸 통찰하는 사람은 드물거니와 통찰했다 해도 미련을 끊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유권자 총대의 현명함은 어느 후보가 성경 말씀과 총회 법대로 실천할지를 판단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목사 후보의 경우 무엇보다 신앙의 견실함과 목회의 건실함에 있어서 경쟁 후보보다 나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111회 총회 투표는 미로일까 미궁일까.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삶의 치유 가능성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 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진실과의 대면 작업이다.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 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삶보다 오늘의 확실한 말씀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성경은 귀띔해 줬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28-32 2026-01-03
    • G.OPINION
    • G.OPINION
    2026-01-03
  • [더굳뉴스] 장봉생 총회장을 위한 소강석 목사 정책
    주님 말씀대로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게 해주소서. 한자 문화권 국가 중 대통령(大統領) 용어를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중국은 총통이나 링다오(領導)라고 부른다. 프레지던트, (president)가 곧 대통령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프레지던트는 원래 사회자, 의장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권위적 의미를 배제하기 위해 건국 당시부터 우리 총회처럼 총회장(프레지던트)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선 국가 지도자도, 기업 회장도, 학생회장과 스포츠클럽 회장도 프레지던트 즉 회장이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서 일본은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표기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에 '대통령'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이 때였다. 1853년 흑선을 몰고 에도만에 도착한 페리 제독은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왔다. 일본은 이 친서의 ‘프레지던트’를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군주, 왕이라 하려다 ‘사무라이의 우두머리’ 뜻으로도 사용됐던 통령(統領) 또는 두령(頭領)에 대(大)를 붙여 ‘대통령(다이토우료)’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위대한(大)이라는 극존칭 의미도 담았다. 철학, 과학, 사회 같은 영어가 한자어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는데, 대통령은 과장되고 왜곡된 조어였다.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 때 공문서로는 처음으로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이 사용됐다. 반면 1882년 우리와 미국의 수호통상조약에는 대통령이 아닌 프레지던트 발음을 한자로 그대로 옮겨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을 사용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몰랐던 일본이 급조한 말 대통령은 임시정부에 이어 우리 헌법에 그대로 차용됐다. 민주국가 미국의 ‘프레지던트’가 태평양을 건너며 왕조 냄새 풍기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말은 일본이 만들었지만 ‘대통령’으로 불리는 리더가 군림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아이러니다. 미국, 프랑스, 멕시코, 칠레, 러시아는 발음은 조금씩 달라도 그냥 프레지던트 president이다.
    • G.OPINION
    • G.OPINION
    2026-01-02
  • [더굳뉴스] 장봉생 총회장 2026 신년사
    평생토록 지은 소망이 못마땅해 부숴 버렸더니 비로소 마음에 드는 소망이 생겼다. 이제 내 안에 소망이 있으니 세상엔 소망이 없어도 되겠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소망. 정신의 뼈대만 앙상한 소망이 없으니까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2026년 1월 1일 국산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지휘 비행을 하고 한반도 전역의 군사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새벽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공군 항공통제기 E-737 피스아이에 탑승해 지휘 비행을 했다. 지휘 비행에는 KF-21을 비롯해 FA-50, TA-50 등 국산 전투기를 포함한 총 6대의 공군 전투기가 엄호 작전을 수행했다. 국산 전투기가 지휘 비행 엄호 작전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장관은 비행 중 동해 상에서 임무 수행 중인 해군 광개토대왕함장, 공중 초계·엄호를 담당하는 공군 비행편대장, 최전방 접적 지역을 사수하는 해병대 6여단 대대장과 육군 22사단 GP장 등 현장 작전 부대 지휘관과 차례로 지휘 통화를 하며 대비 태세 현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고 1927년 추수 봉기를 이끌고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가 된 마오쩌둥(毛澤東, 1893년 12월 26일~1976년 9월 9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종교적 교의(교조)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당신들의 교의는 분(糞)만도 못하다고 말해야 한다.” 표현의 비속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마오는 분명 맞는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던 그 자신조차도 이 금언의 중량감에 끝내 짓눌리고 말았던 것일까. 1966년 참혹한 문혁기(文革期), 손에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천안문 앞에서 마오 찬가 ‘동방홍’(東方紅, The East is Red,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사용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비공식적인 국가)을 부르던 무수한 홍위병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천천히 흔들며 답례하던 마오가 이미 새로운 교조 그 자체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 ~ 1546년 2월 18일)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권위를 혐오하고 그것을 뒤집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원래 권위적이었을 수가 있으며, 권위를 뒤집고 나서는 자신이 다시 권위주의의 화신으로서 군림하게 되기 쉽다." 교조에 대한 저항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교조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한국적 민주주의든, 주체적 사회주의든, 민족적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든, 개혁주의든 한번 머리에 박힌 ‘당연한 생각’은 그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20년 전의 ‘상식’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며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65년 4월)는 이런 말을 했다. “습관에 구속돼선 안 된다. 가끔 습관은 진리를 짓밟기도 한다. 습관보다는 진리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해야만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빈정대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정말 좋아졌다. 당신만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대답이 적절해졌고, ‘법은 멀고 주먹과 돈은 가깝다’는 해결사들에게도 “이젠 주먹보다 CCTV가 더 가깝다”는 남의 말이 아니게 됐다. 대통령 이재명처럼 “여태껏 큰일 날 일을 저지르고 살았는데도 무사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그런 시각으로 보더라도 북한에 대한 가장 정확한 규정은 ‘연극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명실상부한 것은 김씨 권력뿐이고 나머지는 ‘마치 정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다. 평양의 화려한 수십 층 아파트들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부실 공사에다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다. 지방에선 주민들이 “세계 제일로 행복하다”고 노래 부르는데 실상은 헐벗었다. 김정은이 이런 실상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실상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이 자신들 실상에 노심초사한다면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실제보다 겉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부풀려진 분야가 군(軍)이라고 한다. 김씨 권력이 외부 세계에 충분한 경고를 보내는데 북한군의 실제 모습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군의 ‘위력’이 주민들에게 ‘위안’이자 고생해야 하는 이유가 됐기 때문에 군사력은 끊임없이 과시돼야만 한다. 열병식이 자주 열리는 이유다. 그런데 그 열병식 행렬 속 탱크가 고장 난 모습이 노출됐다. 북한군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란다. 실상은 고고도 정찰기, 신형 전차, 정찰 공격 드론, 각종 미사일, 함정 등 김정은이 내세우는 무기들은 모두 한미가 보유한 장비의 겉모습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이 복제품들의 실제 성능은 미지수다. 군 장비는 민간보다 제작 기준이 더 엄격한데 북한의 제조업 능력은 한국의 1970~80년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 기갑부대 장교 출신 탈북민은 “전쟁이 나면 북한 탱크 절반은 고장 나서 설 것”이라고 했다. 북한 군인 20~30%는 영양실조이고 실제 주로 하는 일은 건물 공사다.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하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길을 걷다 언제든 발길을 멈추고 낯선 눈을 들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도시여행자처럼, 우리도 우리 방식대로 총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향유해야겠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배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받아들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부지런하면 피곤을 피하기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일흔여섯 나의 소원은 아흔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때로 우리 앞에 새로운 깨달음이 나타나거나 오래전의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인이 그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그 부분들이 모여 온전한 전신상(全身像)을 만들기 전까지 모든 총체적 평가는 유보돼야 하며, 의심받아야 한다. 보편적 진리란 없다. 다만 인생 행로(行路)에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을 말없이 내밀 수 있는 벗으로서의 지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길을 물을 수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떠안고, 우리는 매일 미지의 세상을 향해 구원의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떠남’은 그 자체로 길을 묻는 과정이며 뇌와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과 설렘과 걱정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추억은 찰나만을 보여주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의 교차점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말이다. 이렇게 춥고 바람이 시린데 봄이 오긴 오는 걸까 하고 의심을 품어 보지만 믿음은 마치 봄의 전령처럼 생명을 이야기한다. 다가오는 봄이, 그 생명의 기운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은혜롭길 기도해 보자. 힘겹고 지칠 땐 목표를 향해 억지로 힘겹게 내딛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하기만 해도 그 너머에 모세 같은 믿음의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총회 지도자 장봉생 총회장, 정영교 부총회장, 김용대 서기 등의 믿음을 다독이길 바란다. 제110회 정책지향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2026년 신년사를 전했다. 부족한 종을 제110회 총회장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110회 총회는 '복음과 함께 주께로', '교회와 함께 미래로', '사회와 함께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모토로 '함께하는 정책총회'가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뢰, 성도들의 신뢰, 사회의 신뢰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다움'과 '섬김'의 그릇에 담깁니다. 이를 위해 총회 역시 공교회로서 사업과 재정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교단 소속 교회 모든 교회들로부터 이 교단에 속한 교인이라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2026-01-01
    • G.OPINION
    • G.OPINION
    2026-01-01
  • [더굳뉴스] 장봉생 총회장의 神學指南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 1967년 10월 25일 ~)는 일본의 만화가이다. 1967년 10월 25일 도쿄 출생. 1988년에 데뷔하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 만화계의 거장으로 개성있는 그림체와 독특한 구성으로 단번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동경일일’이라는 만화가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처음으로 그리는 '만화'에 대한 만화이다. 퇴직한 중년 편집자의 분투를 다룬 이 세 권짜리 책에 이런 대사가 있다. "처음에는 책을 완성해야만, 그리고 그걸 많은 독자분께 선보이고 감상을 들어야만 비로소 큰 기쁨을 얻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고통, 그 여정 속에야말로 진실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어찌 책 만드는 일만 그럴까. 성경과 주석을 읽고 설교하는 목사로 오늘 여기까지 온 우리는 모두 하나의 여정을 훌륭하게 마친 여행자다. 성경은 언제나 고요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6년에도.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가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창간한 신학 연구지가 신학지남(神學指南)이다. 장로회신학교 교수들의 연구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호주인 선교사 왕길지(Engel, G.)가 편집인이 되어 창간호를 출판하였다. 발간사에서 “우리 장로교회의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신학의 광해(廣海, 넓은 바다)에 향방(방향)을 지남(指南: 가리켜 지시하는 것)하려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듯이,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에 평양신학교가 폐쇄되자 1940년에 함께 폐간되었다. 신학지남은 1954년 2월에 복간되었으나,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통합측과 분열하면서 통합측 장로회신학대학은 새로운 저널을 출간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은 1960년 이후 신학지남을 발간해 오다가 1965년 제호를 교회와 신학으로 바꾸어 출판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평양신학교로부터의 제호를 그대로 유지하여 1964년 문화공보부 등록번호 제 바-38호(1964년 8월 22일)로 다시 등록하여 신학지남을 계속 발행하고 있다. 1963년 강원도 사천에서 출생,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한 시인 박용하의 ‘동해안 포구를 위하여’에서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 우리는 우리가 변화시킨 세계에 의해 이만큼 흘러왔다. 흘러간 물은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물은 흐르고, 흘러야만 한다. 흐르지 못하면 썩는다. 그것이야말로 우습지조차 않은, 지독한 일이다. 통렬하고 질박한 언어로 날 것의 일상을 한 줄로 새기는 시인 박용하가 2010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쓴 5년 치 일기를 엮은 책 ‘시인일기’를 냈다. “일기는 지금의 미래다. 살았지만 다시 살게 될 미래. 나는 타인이 되었다가 다시 타인이 되어 돌아온다.”(‘2014년 7월 25일 일기’ 중) 그렇듯 요즘 좌우 이데올로기조차 반박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추레해지고, 무시되고, 따분하고 지겨운 것이 되고, 그래서 시들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님의 뜻을 잊었거나 잃어버린 세대들... 시인 박용하는 산맥 동쪽의 바다 앞에서 “떠났고 도주했고 망가졌고 찢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창세기일 것만 같은 바닷가에서 유한을 탐하듯 그대를 원했다”고 말한다.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던 슬픔 앞에서 바다는 지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주는 장소였던 셈이다. 폭설의 밤은 도처에서 ‘우지끈’ 거렸다고 한다. 글로만 보던 역사의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귀향을 앞둔 시점에 항일운동 혐의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에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龍井)에 묻혔다. 주기철(1897년~1944)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48세에 순교했다. 겨울의 감방 온도는 보통 영하 20도 정도였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시 이들에게 어떤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독교 교계는 물론 우리 교단에서도 아주 약한 '더굳뉴스'라는 기독교 언론이 13년째를 맞는 날 기자로서 교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교단 언론이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을 모으는 설교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대들을 솔깃하게 하는 소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총대들이 반기고 좋아할 내용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실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필자가 13년간 쫓아다닌 것, 지금도 혼자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찾기 힘든 것,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았더니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찾아내 보니 고약한 자를 분노케 해 고소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증오를 사는 것, 때로는 총대의 요구와 다른 것, 어떤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事實·fact)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실은 숨겨져 있다. 몇 겹 껍질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권력의 위압 때문일 수도 있고 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일들로 세상은 성경이 지적하는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나게도 한다. 이익을 챙긴 자에게 좋으면 사실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한다. 돈을 사랑하는 자가 솔깃해하는 사실은 허구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목말라하는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성경적 사실은 그러나 결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도 움직인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무뢰배가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사실 정의란 전투에서 패할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다. 어둠이 빛을 덮을 수 없고 마귀의 거짓이 하나님의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제110회 총회준비위원회의 9월 2일 3차 전체회의가 열린 원주중부교회에서 장봉생 목사는 광야의 세례 요한, 비텐베르크 성의 루터같이 총회의 신학지남(神學指南)을 외쳤다. 우리 110년 총회의 목사와 장로들에게 신학의 광해(廣海, 넓은 바다)에 향방(방향)을 지남(指南: 가리켜 지시하는 것)하기 위해. “제110회 총회가 갈등 속에 출발하길 원치 않습니다. 평화롭고 웃으면서 총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총회 화합을 위한 마음으로 WEA 반대하는 분들의 입장은 우리 교단의 신학을 지키고 그에 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WEA에 우리 교단이 가입한 것도 아닌데, WEA 총회 개최에 대해 우리가 가타부타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대들이 원한다면 토론을 하겠습니다. 총대들의 의견과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지금 총회임원 선거 상황이 아주 어렵습니다. 110회 총회가 갈등 속에서 출발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웃으면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세상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저력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본연의 힘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 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근본 힘이 총회와 총대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총회 지도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통합과 분열된 지 66년 되는 때 신학의 방향과 내용을 잃어버린 총회에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교단과 교계의 정책 지향 지도자가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언제나 고요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6년에도. 성경은 말씀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2025-12-31
    • G.OPINION
    • G.OPINION
    2025-12-31
  • [더굳뉴스]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에벤에셀
    있잖아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노아가 본 무지개를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거든요 근데요 이거 봐요 신비롭죠 . 무지개가 손에 내려와 앉았어요 당신 손에도요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언약의 무지개 참 따뜻한 느낌이네요 인간과 유전자가 98% 이상 일치한다는 침팬지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죽고 죽이는 잔혹한 싸움은 덜 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신 자기가 속한 집단 안에서 정치 공학적 권력 투쟁이 많다고 한다. 인간 세계와 작금의 미국과 한국 정치처럼 복잡한 동맹과 배반으로 기존 질서를 뒤바꿔버리는 수단을 동원한다는 게 침팬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러나 강한 우두머리에게 2위가 어느 날 갑자기 치받는 경우는 드물다. 조금씩 작은 전조가 반복되는데 권력 서열 1위의 뒤에서 2위와 3위가 동맹을 맺는 방식이 가장 흔한 일이다. 재미있는 징조는 1위 침팬지가 뻔히 보는 앞에서 3위 침팬지가 2위 침팬지의 털을 골라준다면 입법계와 사법계에 요동치는 요즘 말로 내란 음모 전조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침팬지 정치술’이 어느 정도까지는 정치의 본질일지 모른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수상이자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년 ~ 1920년)가 이끈 반혁명당(Anti-Revolution Party, 약칭 ARP)은 가톨릭인민당에 대항해 개신교 집단이 주축이 돼 창당된 기독교 정당이었다. 카이퍼는 정치 현장에서 많이 투쟁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의 전환을 강조하였다. 기독교가 개인 신앙의 차원에서 삶 전체, 우주 전체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존재의 전 영역 중에는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시는 곳은 단 한치도 없다.” 하나님은 구원(救援)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창조(創造)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만물을 그 종류(種類)대로 창조하셨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종류대로’의 창조개념을 생물학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세상 모든 영역으로 확장했다. 마치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소명이 다르고 베드로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소명이 다르듯 세상의 다양한 국면들 속에도 각각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유한 주권적 영역이 있다. 네덜란드의 수상이자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년 ~ 1920년)는 이것을 ‘영역주권’(領域主權)이라 하였다. 즉 아브라함 카이퍼는 구원의 적용범위를 인간뿐 아니라 창조세계의 전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총체적 회복에 있다. 그것이 바로 카이퍼가 주창한 ‘영역주권’(領域主權, Sphere Sovereignty) 사상이다. 세례 요한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칼빈주의를 주창하는 우리 교단 정치를 들여다보면 이런 아쉬움이 든다. 속세 권력처럼 세력 다툼은 있는데 정치가 없다. 총회 정치 현실은 있는데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정치 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 철학이 없거나 아예 정치적 도의마저 짓밟기 일쑤다. 정치 리더는 있는데 정치 리더십은 없다. 한국 정치 현실처럼 지역 파당은 있는데 교단 지도층은 없다. 칼빈주의 정치 지도자 그 모범과 기초를 놓은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를 이어 칼빈주의 리더십을 더 발전시킨 지도자는 김종준 목사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지도자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대개의 지도자는 책임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감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패배가 뻔해도 윤석열과 달리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처럼 불가능한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러면 총회와 총신을 위한 그와 같은 매진에 총회 산하 교회와 노회의 뜨거운 기도와 풍성한 협력의 지원이 뒤따르고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처럼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는 그런 총회 지도자의 반열에 서려면 어지러운 총회와 어려운 총신을 위한 ‘공적 헌신과 책임’을 생각하고 몸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칼빈주의 교단 정치의 본질 즉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총회 정치 구도가 지역이나 사적 이익이나 추구하려 한다면 한동훈이나 이재명같이 ‘침팬지 정치술’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벗어나는 정치적 미아가 되는 지름길에 접어들게 될 것이이다. 신앙과 힘의 모순적 복합체인 총회는 지역 지도자 간 동맹 관계와 세력 균형 위에서 총회와 노회의 평화 공존을 지향한다. 그 실례로 국가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 기초한 한·미·일 간 협력과 공조는 지난 반세기 이상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토대였다. 국제 평화는 이성적 국가 철학의 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근본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방비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걷고 지도자에게 국정을 맡기는 이유이다. 총회는 법이 서고 행정이 투명해져야 하고 경영과 신학 노선에 방만한 총신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치러야 칼빈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를 키워내는 칼빈주의 모판(seminary)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 지도력 아래 우리 총회 모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기도에 힘써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지혜는 지도층의 신앙적 헌신을 통해 두터워진다. 총대들은 총회와 총신의 미래를 개혁하는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정치가(statesman)를 원하지 다음 선거와 자리만 집착하는 세상 정치꾼(politician)을 고대하지 않는다. 이 난국에 '침팬지 정치술'이 제110회 총회에 끼어든다면 교단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교회가 심각한 다음세대 위기와 주일학교 쇠퇴라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지금, ‘어린이 선교를 통한 미래 세대 회복’의 소망을 몸소 실천하며 국내외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꽃동산교회 설립자이자 한국어린이교육선교회 대표인 김종준 목사다. 2025년 8월 기독신문 편집국장 노충헌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종준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노충헌 목사: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시고 연합 운동에도 많이 수고하셨는데, 교단 발전과 연합 사업 참여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김종준 목사: 우리 교단은 늘 개혁에 힘써야 합니다. 제가 총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회복’을 기치로 장로교의 정체성을 다지고, 총회 기구를 제자리로 돌리는 운동을 벌였고 성과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총회는 무엇보다 이권에서 깨끗해야 합니다. 교단 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 앞에 찾아온 이권에 굴복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연합사업 관련해서도 우리 교단은 교계를 이끌 강력한 리더십을 지녔다고 봅니다. 다만 교단 내 단합과 연합 역량의 집결이 결정적으로 필요합니다. 내부적으로 하나로 뭉치지 못해 영향력 발휘에 실패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교단은 한국교회, 특히 교계 연합운동 정화의 책임을 느껴야 하며, 우리 교단만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은퇴하더라도 저의 어린이 사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꽃동산교회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곳에 지교회와 유치원, 학교 등이 있습니다. 이 교회와 학교들이 건강히 성장하고, 관련된 사역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 닿는 데까지 돕고자 합니다. 한국어린이교육선교회를 통해 교사 양성, 어린이 선교사 양성, 어린이 전도 등 다양한 사역도 지속할 예정입니다. 2025년 12월 21일 오전 11시 꽃동산교회 예배에서 본문 삼상 7:12"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마지막 담임목사 설교를 전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저에게 있어 참으로 낯설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무엇이라고 표현 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자리입니다. 40년 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선교회 직원들을 중심으로 6명이 모여 이 교회를 개척하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오늘 이런 고별의 말씀을 드리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는 마지막으로 이 강단에 서서,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무엘이 고백했던 그 고백,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이 한마디 속에 지난 40년의 모든 날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여기까지 오기까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며, 기쁨보다는 어려운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신당동 시절에는 방한칸이 없어서 강대상 바닥이 잠자리였습니다. 겨울에는 교회앞에 있는 태성여관 방을 월세를 얻어 작고하신 변규정 목사님과 함께 자취하며 지냈습니다 상계동에 와서도 2단지 28평 아파트의 1.2평 되는 문간방을 월세를 얻어 자취하며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교회 부지를 사채를 얻어 땅을 사고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개척 당시 이자 감당하느라 입술이 부르터 가라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기도해도 길이 보이지 않던 날들도 있었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밤도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가장 힘들고 가슴 아픈 것은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일입니다. 목회 말년에 목사를 모함하는 말을 진짜로 알고 시험들거나 교회를 안나오는 성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도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자녀들의 문제와 갑작스러운 사고와 질병 앞에서 함께 울며 기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제가 버텨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 붙들려 온 길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붙든 줄 알았는데, 실상은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고 계셨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도 목사 하나만을 믿고 함께해주신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떤 권사님은 그 당시 강남에 일 억이면 집을 살 수 있었는데 교회때문에 강남에 가지 않고 지금까지 이 곳에 살고 있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때 일 억짜리 강남 아파트를 사서 이사 갔으면 지금 수십억 부자가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이 대부분 그랬습니다. 꽃동산교회를 이렇게 대형교회로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부족한 저와 함께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그분들 덕분에 어려움 가운데서 힘을 얻고 여기까지 달려 왔습니다. 그동안 즐거웠던 기억도 많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온 성도가 한마음이 되어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던 기쁨이 넘치기도 했습니다. 복음 축제때 구름떼같이 밀려 오는 어린 영혼들을 보면서 너무 너무 기뻤고, 일만 명 초청 주일에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주는 선물말고 자비로 선물을 준비하여 초청 전도할 때 예배당이 미어 터지도록 모여 오는 인파를 보면서 성도들과 부등켜 않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성도들과 함께 딩굴고 웃고 즐거웠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 일어나서 웃을 때도 있습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리면 설악산으로 1박2일 구역장 세미나를 갔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2교구 밖에 없을 때인데 교구 대항 줄잇기 게임을 하는데 이기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목도리, 겉옷 심지어는 내복까지 그것도 모자라 어떤 권사님은 브래지어까지 빼 줄잇기를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고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스트레스가 다풀리는 경험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40여년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둘째, 이 교회의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교회는 제가 개척하고 설교하고, 심방하고, 앞에서 했지만 꽃동산 교회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가 늘어날 때도 줄어들 때도 헌금이 넉넉할 때도, 막막할 때도 하나님은 한 번도 이 교회를 떠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혹시 앞으로 이 교회에 변화의 시간이 오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 교회의 주인 이시며 목자이십니다. 사람은 바뀌어도, 시대는 달라져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악한 세력이 교회를 흔들려고 해도 이 교회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부족한 목회자를 끝까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한 목회자로서, 한 사람의 성도로서 고백하고 싶습니다. 좋은 목사였다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때로는 성도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고, 제 생각이 앞설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성격상 마음으로는 너무 고맙고 감사한데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했습니다 하는 표현을 못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만 전하는 설교를 하다 보니 설교가 딱딱합니다. 또 성경 말씀안에서만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반복되는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 분한 분이 제 목회의 열매와 보람이였습니다. 저는 여러분 때문에 총회장도 지냈고 세계적인 목사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격이 다혈질이고 직선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제 말과 결정으로 상처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로 인하여 받은 상처가 치유 되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마지막으로 이제 다음 세대를 향해 믿음의 바통을 넘깁니다. 사무엘이 에벤에셀의 돌을 세운 이유는 과거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는 신앙의 표지였습니다. 이 교회는 이제 다음 목회자와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질 것입니다. 후임 임광 목사는 저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저는 전도사 때부터 어린이 선교사역을 시작해서 공부도 많이 못했고, 성경도, 책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임광 목사는 미국 가서 유학도 하고 성경도, 책도 많이 읽어서 박식한데다 설교를 얼마나 잘합니까. 이렇게 훌륭한 분을 여러분의 담임 목사로 모신 것은 여러분에게 큰 축복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담임 목사는 임광 목사입니다. 그러므로 임광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마음이 되어서 꽃동산교회를 더욱 건강하고 더욱 은혜로운 큰교회로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교회는 하나님 중심, 목회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은 영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세상적인 잣대로 판단하여 목회 사역을 간섭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 할 때가 있고 잘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약점 삼아 목사를 비판하고 거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심판 하십니다. 주의 종의 판단은 여러분의 영역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담임목사 임광 목사,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기도하는 성도 위에 굳게 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제 목회의 자리에서는 물러나지만, 여러분의 목자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교회 담임 목사는 임광 목사입니다. 임광 목사님이 이 교회를 끌고 나갈 때 아론과 홀처럼 바쳐주고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주의 중 바울 사도에게 눈이라도 빼줄 정도로 주의 종을 존경하며 사랑하고 뒤에서 밀어 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임광 목사님이 목회 할 때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상심해 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의 에벤에셀을 세웠습니다. 이 강단이 아니라, 제 마음에 세우며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앞으로도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저는 이제 40년 동안 내 삶을 바친 정든 이 교회 강단을 그리고 미운정 고운정이 흠뻑 젖은 사랑하는 교우들을 떠나갑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기를, 여러분의 가정과 삶 가운데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이제는 이 교회 원로목사로서 이 교회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평생을 기도로 후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회중 큰 아멘) 성경은 말씀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삼상 7:8-12 2025-12-23
    • G.OPINION
    • G.OPINION
    2025-12-23
  • [더굳뉴스] 남태섭 목사와 김종혁 목사
    꽃한테 다가서면 믿음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이라도 한번 찔리고 볼 일이다.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 내본다, 피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인생을 좋은 길로 만드는 것은 중간쯤 나 있는 근사한 비상구가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사람의 결의다. 따라서 불안하지 않는 삶을 원한다면 최대한 '직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선의 삶을 가기 위한 가장 완벽한 준비물은 ‘끈기’와 ‘결의’다. 자신의 인생길을 망치는 것은 불확실성이 던져준 혼란이나 선택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변덕 때문이다. 그 빛나는 깨달음이 참다운 지혜이다. 모든 생물은 가멸찬 삶, 즉 부를 향한 갈망을 품고 있다. 부(富)는 술 단지처럼 배가 불룩한 그릇을 뜻하는 복과 사당을 뜻하는 면이 합쳐진 말이다. 본래 신께 바치는 공물이 넉넉하다는 의미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로 후대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6월 5일 ~ 1790년 1월 12일)는 공감의 철학자였다. 스미스의 부친은 연합조약의 영향으로 스코틀랜드 해안에 밀수가 급증한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을 지켜본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거짓됨이 ‘분수에 넘쳐 너무 지나치다’는 속성을 깨닫고 정부의 법과 규칙을 강화하는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국부론"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다른 이의 처지에서 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큰 산이었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년 4월 26일 - 1776년 8월 25일)은 현악기가 공명하는 것과 같은 공감을 말했다. 그러나 스미스의 공감은 단순한 반향이 아니었다. 공감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이의 자리로 가서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온전히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나를 지켜보는 가장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고 그의 자리로 가서 그의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보라. 그는 나의 위대한 재판관이 된다. 스미스는 자기애라는 가장 강력한 충동에 맞설 수 있는 대항력은 인간애의 부드러운 힘도, 자연이 인간의 가슴속에 피워놓은 자비심의 연약한 불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믿음의 채찍을 내려치는 공정한 성령의 감동이다. 스미스는 조선의 정조가 임금에 오른 1776년 '국부론'을 냈다. 17년 먼저 펴낸 '도덕 감정론'은 30년 넘게 다듬었다. 그는 언어와 모방예술도 탐구했다. 하지만 훗날 챗GPT나 미드저니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는 기껏 제임스 와트가 만든 원시적인 복사기를 보고 놀라워했다. 여기서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타임슬립을 한 그가 오늘날의 챗봇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노동자가 단순 작업만 되풀이하다 창의력을 잃고 무지해지는 것을 걱정했던 그는 일자리 문제부터 고민할 것이다. 가르치는 척조차 않는 옥스퍼드대의 교수들을 비난했던 스미스는 변화에 둔감한 오늘날 총신대학 교육도 질타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더 근본적인 물음도 던질 것이다. 이 신기한 로봇 챗GPT는 과연 사람처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지닐 수 있을까. 공정한 잣대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까. 사실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인)는 오로지 경제적 합리성에만 기초를 두어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때로는 놀랄 만큼 어리석고 잔인하며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본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제108회 부총회장 후보 남태섭 목사와 김종혁 목사에 대해 말했다. "서로 상대가 있으니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겠죠." 제107회 감사부장 김경환 장로는 말했다. "남태섭 목사는 같은 노회 분이고 김종혁 목사는 대학교 동창입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저자인 동시에 독자이다. 인생을 멋진 소설로 남기고 싶다면 변덕에 휘둘리지 말고 믿음을 따라 똑바로 자신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5-12-16
    • G.OPINION
    • G.OPINION
    2025-12-16
  • [더굳뉴스] 총회 목사와 장로의 사실과 합리성
    달의 지형 차이로 생기는 그림자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달과 토끼는 간혹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달 속 그림자는 옥토끼가 전설상의 영약(靈藥)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라고 여겨 곧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자성어(四字成語, 옛날이야기에서 유래한 관용구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주로 4글자로 된 한자)와 고사에 적잖게 등장한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서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참 유명하다. 영리한 토끼는 이재명처럼 굴을 세 개 파서 언젠가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는 위기 대비용 플랜 B, C를 마련해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영리한 동물이다.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의 '동물기'에 '달려라, 솜꼬리토끼' 이야기다. 여우가 토끼를 발견하고 한 끼 때우기 위해 냅다 달린다. 토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달린다. 여우는 전력질주해 한걸음에 토끼를 낚아챌 찰라다. 순간 토끼가 급 좌회전해 방향을 틀어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직진하던 여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목장 철조망에 몸을 처박는다. 토끼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듯 욕심에 끌려 대장동 패거리처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건 늘 인간이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간교하게 총신을 휘어잡고 총회까지 분탕질을 하려고 했다. 2020년 9월 18일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신 사태의 원인이 된 총신대 정관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 1항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을 ‘본 총회에 소속된 세례교인 중에서 선임’으로 개정했다. 또한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켰다. 이런 짓을 획책한 당사자는 그 일로 총신과 총회에서 사라지는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완산구 중화산동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은 공립 도서관은 경직되고 딱딱할 거라는 편견을 허문다. ‘꽃심’이라는 명칭부터 말랑말랑하다. 소설가 최명희(崔明姬, 1947년 11월 22일 ~ 1998년 12월 11일)가 대하소설 ‘혼불’에서 전주를 가리켜 ‘꽃심을 지닌 땅’이라 표현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아름다운 빛깔과 모양, 향기를 피워내는 꽃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하였으며, 소설의 무대를 만주로 넓혀 그곳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그렇듯 현대 신앙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신앙인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resentment:라틴어 집중 접두사에서 '다시 re' 그리고 '감정 느낌 sentment'을 합쳐 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프랑스어)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예수를 주로 삼고 따르는 총회의 목사와 장로는 언제나 천국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소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2025-11-22
    • G.OPINION
    • G.OPINION
    2025-11-2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