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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광식 동행 누구
    1952년 25세에 국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이라는 영국 최장 재위 기록을 세우고 96세에 영원히 잠들었다. 진단서에는 여왕이 2022년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숨졌다고 나와 있다. 영국 왕실이 서거를 발표하기 3시간 20분 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그의 뒤를 이을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만났다. 이날 트러스 총리와 찍은 사진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등은 보라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지난 70년 동안 영국과 영욕을 함께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주검을 실은 관이 9월 19일(현지시각) 오전 장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섰다. 여왕의 뒤로 국왕 찰스 3세, 왕비 커밀라, 앤 공주 등 왕실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여왕은 이곳에서 결혼했고 여왕으로 즉위했으며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됐다. 여왕의 관은 이날 저녁 윈저성 안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 지하 영묘에 먼저 잠든 남편 필립 공 옆에 놓였다. 런던에는 교회 종소리가 96차례 울려 퍼졌다. 여왕의 생애를 상징하는 종소리는 장례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가 되기 96분 전부터 매분 울려 도시를 가득 채웠다. 오전 11시. 세계 200여 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여왕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찰스 3세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가 사원 안으로 아주 천천히 들어서는 여왕의 관 뒤를 따랐다. 1947년 ‘젊은 여왕’은 이곳에서 남편 필립 공과 결혼했고 1953년 대관식을 치렀다. 여왕을 마주한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나 첫 번째 찬송 ‘주님, 주님께서 주신 날이 끝났습니다’를 함께 불렀다. 왕비 커밀라는 눈물을 훔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데이비드 호일 사제가 장례를 집전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설교에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여왕이 전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다시 전했다.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성경을 읽었다. 이날 장례에선 75년 전 여왕이 필립 공과 결혼식에서 부른 찬송가가 다시 불렸다. 이날 장례식에는 한·미 정상 등 전 세계에서 모인 500여 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다. 영국 언론들은 장례식이 열린 사원 주변에 100만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모였다고 전했다. 여왕이 얼마나 존경스러웠으면 온 세계와 온 국민이 이토록 큰 애도를 표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역경을 딛고 살아간다. 그 끝에는 한 줄기 희망이 있다.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기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달리 거짓의 아비가 마귀인지 모르는 것 같은 이재명은 9월 3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 대해 “국민도 귀가 있다”라며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고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처리한 데 대해 정부·여당이 반발했다. 그러자 여러 엄청난 거짓말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기소된 것도 있는 이재명이 직접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어 양심적인 국민과 광야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윤석렬 대통령을 비판한 것일까. 그것도 사실이 아니고 광우병 파동처럼 조작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이재명은 이날 자신이 장악한 정당 회의에서 “국민도 귀가 있고 국민도 판단할 지성을 갖고 있다”라며 “거짓말하고 겁박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뀌거나 또는 들었던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문재인처럼 뻔뻔하게 말했다. 이어 “지금 들어도 (윤 대통령이 한 논란의 발언은) ‘바이든’이 맞지 않습니까, (이새끼라고) 욕했지 않습니까”라며 “적절하지 않은 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잘못했다고 해야지요(자기는 하지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적반하장의 이재명은 “진상 규명의 첫 번째 길은 ‘내가 뭐라고 말했으니 그것과 다르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맞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억 못하겠는데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게 대체 상식에 부합하는 말인가 의문이 간다”라면서 “국민을 존중하기 바란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뉴욕 순방 때 한 언급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밝히고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상 말이 그 사람을 규정할 때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과 언론에 대해 말했다. “먼지 털어도 안 나오니 꼬투리 잡는다.” 자신을 잡으려고 온갖 혐의를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는 뜻이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재명 의혹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그것이 맨돈 소강석처럼 잔꾀를 모르는 윤석열 정부가 맨돈 소강석과 가까운 이재명을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몸부림친 결과물일까. 이재명 의혹은 작년 여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2021년 8월 29일 이낙연 캠프 일요 기자 간담회가 신호탄이었다. 캠프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의 형 강제 입원, 아내 김혜경 씨의 ‘혜경궁 김 씨’ 법정 다툼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 30여 명의 수임료가 수십억일 텐데 이 대표 재산은 변동이 없다”라고 했다. 누군가 대신 내준 게 아니냐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형을 선고받은 핵심 혐의가 변호사비 대납이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돈으로 변호사비 3억 원을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친문(親文) 시민 단체는 이 대표가 검찰 출신 변호사 한 명에게 준 것만도 현금과 주식 20억 원이 넘는다고 폭로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 곧장 뒤를 이었다. 경기도 지역 신문은 8월 31일 자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과거 민주당이 영리하지만 소심한 이명박에게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대장동 사업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화천대유가 이재명 후보 당신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칼럼 필자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경쟁했던 핵심 후보 진영에서 제보해온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권순일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된 사실은 2021년 9월 16일 보도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판결 전후로 권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화천대유 고액 연봉을 사후 뇌물로 재판 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9월 30일엔 ‘대장동 말고 백현동도 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성남시장 때 백현동 사업으로 3천억 원대 특혜 수익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성남시장 선거 때 선대본부장 지낸 사람이 개발 업체로 영입되자 성남시가 부지 용도를 변경해 준 덕분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단주였던 성남FC 축구팀이 성남시 소재 기업 여섯 곳에서 후원금 160억 원을 받고 성남시는 해당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변경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있다. 이 의혹은 당초 2018년 장영하 변호사가 이재명 시장을 특가법 뇌물죄 혐의로 성남지청에 고발했던 것인데 대선 국면에서 다시 쟁점이 됐다. 민주당 출신인 장 변호사는 한때 이재명 변호사와 동지 관계였으나 2010년 성남시장 선거를 계기로 원수 사이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이 대표를 저격한 ‘굿바이, 이재명’을 발간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임기에 터져 나온 의혹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 건도 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도 윤 정부 쪽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당 경쟁 후보 진영 또는 이 대표와 일했던 사람들이 직접 폭로했거나 언론에 제보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차기 주자 이 대표를 보호하려고 의혹을 덮고 진상 규명을 막았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열쇠를 쥔 쌍방울그룹 관계자가 검찰 귀띔을 받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 라인은 문 정부 때 한직으로 쫓겨났다가 복귀해 막 수사를 시작하는 참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오랫동안 먼지 털듯 수사했는데도 아무 진척이 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박이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며 제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마당에 던졌던 이재명식 방탄(防彈) 화법의 변주곡이다. 2022년 9월 21일 제107회 총화장 이취임식에서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도 이재명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다는 내용의 이임사를 뇌까렸다. 배광식 역시 이재명처럼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거나 모르는 모양이다. 차마 그 이임사 녹취를 풀지 않는 것은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 퇴직한 불의한 직원을 계약직으로 고용해 국장대행직을 주고 뭐가 그리 급해 그를 앞세워 대치동 총무 관사도 팔아먹고 총회회관 리모델링도 주관하게 하고 제주도 수양관 부지를 왜 서둘러 매각하려 했는지 조사하면 어찌 될까. 그 교회 장로 김기현 의원이 규탄하는 문재인과 이재명 짝 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4-47 2022-09-3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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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30
  • 총회 불꽃 권순웅의 위엄
    오르막과 내리막을 구분하는 판단력은 개인은 물론이고 총회나 국가의 성쇠(盛衰)를 좌우한다. 눈을 감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판단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제106회 총회에서 배광식의 행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처지를 보면 분명하다. 배광식처럼 '은혜로운 동행' 어쩌구 하면서 배임 혐의의 일을 저지르거나 푸틴처럼 허울은 '특수 군사 작전'이라면서 이기기 힘든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 배광식은 총회 돈을 자기 주머니 돈인양 챙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쓰고 다녔다고 한다. 총회 재산 현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전횡과 배임 혐의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배광식은 울산 큰바위 밑이나 위에서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전황(戰況)이 불리한 전쟁을 질질 끌어선 안 되는데 푸틴의 거듭된 판단 착오는 러시아의 운명을 바꾸고 나아가 유럽과 세계의 판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 모를 사태에 이르렀다. 국가와 총회는 왜 오르막 내리막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을까. 한 장로가 산다는 제주에는 경사(傾斜)길 아래 세워둔 자동차가 저절로 언덕을 기어오른다는 ‘도깨비 도로’가 있다. 측량 결과 오르막으로 보이는 쪽이 실제론 경사 3도 정도의 내리막으로 나타났다. 주변 지형 때문에 내리막이 오르막으로 뒤집혀 보이는 착시(錯視) 현상이란 것이다. 국가 역량(力量)이나 총회 상황은 도깨비 도로와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을 판단하기 어렵다. 국제 정세나 국내와 총회 정치 수준을 재는 측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경제 상황·교육의 질(質)·노동 효율을 진단하는 수단인 통계가 있고 총회도 나름 교회와 교인 수를 가늠하는 빈약한 자료가 있긴 하나 불완전하다. 국가 상황판의 모든 등(燈)이 온통 빨간불이거나 파란불 일색(一色)인 경우는 드물다. 낭떠러지에 선 나라 상황판에도 파란 등 몇 개는 불이 들어오고 기세(氣勢) 좋게 달리는 나라 상황판에도 빨간불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상황판은 과거의 성공 경험과 지나간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읽을 수밖에 없고 총회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과 믿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각계 지도자의 몫이다. 그런데 배광식과 푸틴은 그러지 않았다. ‘엘리트 없는 사회’ ‘모두가 엘리트인 사회’라고 하거나 '믿음이 없는 총회' '모두가 믿음이 없는 총회'라는 역설은 모든 분야의 지도자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는 하나님의 경고다. 한국과 우리 총회는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까, 내리막을 구르고 있을까. 파란불이 많다며 등을 두드리고 용기를 북돋는 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등의 크기가 훨씬 크다며 낙담(落膽)하며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반대의 두 이야기를 합쳐야 상승(上昇)하면서 추락(墜落)하는 한국과 우리 총회의 모순된 현실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희망과 불안의 엇갈린 진단에서 공통된 부분은 추락하는 것의 대표가 정치라는 점이다. 정치는 그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다. 한국의 근본 위기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의 저하(低下)다. 상승하는 힘이 추락하는 힘을 이기고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추락하는 힘이 상승하는 힘을 꺾어 함께 주저앉느냐가 문제다. 다행히 우리는 배광식과 장봉생의 불의한 '은혜로운 동행'이 아니라 총회를 살리고 밝힐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샬롬 부흥'이 있다. 배광식처럼 허울뿐인 '은혜로운 동행'으로 맨돈을 탐하는 목사나 장로를 위하는 것이 아닌... 민주 정치에서 선거는 어느 쪽이 민의(民意)인가를 매듭짓는 수단이다. 패자의 승복(承服)으로 선거 결과가 확정된 토대 위에서 승자의 관용(寬容) 범위를 논의하는 순서를 밟는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매듭짓는 역할을 상실했다. 실정법 위반으로 여러 수사를 받는 이재명 씨는 대선 패배 후 뻔뻔하게 국회의원이란 방탄복을 입고 이번에는 후안무치의 제1야당 대표 자리에 올라 주위를 모래성 같은 방탄벽으로 둘러쌌다. 피의자 신분으로 거듭 대통령과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으로 수사를 받는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관용이 법치(法治)의 울타리를 넘을 수는 없다. 그건 대통령 권한 밖이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폐쇄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 집착(執着)이었는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범죄가 아니다. 원전 폐쇄를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 범죄다. 맨돈 소강석이 내려보며 악수를 나눈 문재인은 한일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나서 대통령이랍시고 남은 임기 내내 일본과 정상회담에 목을 맸다. 그로 해서 양국 역사 문제가 한국이 칼날을 잡고 일본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는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 그래도 그건 범죄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중립적 인사를 임명해야 할 중앙선관위·방송통신위와 그 심사위원회의 장(長)에 가장 파당적(派黨的)인 사람을 골라 꽂았다. 그들 대부분이 임기 보장을 방패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KBS, MBC 등 통칭 공영방송도 그중 하나다. 그 진지(陣地)마다 전 정권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포위된 꼴이다. KBS 이사회의 야당 측 인사를 쫓아내기 위해 김밥값을 감사하고 집은 물론 강의하는 대학까지 쫓아가 꽹과리를 울렸던 그들이다. 정권에게 최상의 선택은 위엄(威嚴)이 있으면서도 사랑받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위엄을 골라야 한다. 위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총회장 권순웅은 107년 역사 총회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갈리는 지금 왜 번번이 총회장들이 위엄을 잃고 있는가를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반성과 개혁에 예외(例外)를 둬선 안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2022-09-24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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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4
  • 김종희 칼럼_ 정년문제 처리에 대한 아쉬움
    해마다 총회 때면 정년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법대로 만 70세 정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꼭 정년만을 고집할 수 없는 피치못할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대우(?)를 받으며 조기 은퇴하는 경우는 여유 있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 목회한 목사에게 대우는커녕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는 은퇴가 걱정인 교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정년 문제에 대하여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잘 처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헌법도 살리면서 지 교회 사정도 고려해 주는 신축성이 필요하다고 사료 된다. 제107회 총회 석상에서 한 필자의 동의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은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정년연장은 헌법 정신에 배치되는 주장인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한 지 교회나 1구역(4지 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70세까지 시무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시무 연령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만 70세 정년 이전에 사망을 하거나 병고로 더 이상 목회가 불가능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정년 이전에도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물러날 사정이 없을 때는 만 70세까지만 시무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라고 해석한다. ② 물론 전항과 같은 해석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란 꼭 만 70세 이전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은퇴할 시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은퇴 시점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하여 원래 법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60세까지 한다였는데 만 70세로 연장한 법이라면 만 70세가 되어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더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종신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만 70세로 줄여 놓은 것이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억지는 아니다. 목사와 교회 간 합의만 되면 다소 정년연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③ “근로자가 정년이 지난 후에도 사용자의 동의 아래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용자와의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왔다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당해 근로자가 정년이 지났다거나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수는 없다.”라는 판례가 있다(대법원 2002두12809). 물론 목사와 교회의 관계가 근로관계는 아니더라도 목사와 교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고할 판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장대신 51회 총회는 ‘목사 정년 70세는 유지하되 교회에서 원하면 계속 시무할 수 있다’라고 결의하였다. Ⅱ. 정년연장을 위한 신축성 있는 방법은 없는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회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채로 지 교회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당회의 결의로 일정 기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결의해 주면 된다. ② 정치 제12장 제5조 1항: ‘총회는 교회 헌법(신조, 요리 문답, 정치, 권징 조례, 예배 모범)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항존직 만 70세를 만 71세 생일 전날까지로 해석하여 총회 결의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지 교회 시무는 몇 년을 연장할 수 있으되 단, 대외(노회, 총회, 산하기관) 정년은 만 70세를 유지하기로 한다.”로 총회가 결의하여 시행할 수 있다. 총회가 결의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 Ⅲ. 결론 70세 정년제는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헌법의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러므로 사회 상황이 바뀌고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신축성을 발휘할 수 있다. 최종 결론은 총회나 노회에서의 정년은 현재대로 유지하되 각 지 교회가 합의할 경우 지 교회 목회만 몇 년을 더할 수 있도록 총회가 결의하면 된다. 노회에서 선거 피선거권은 제한하고 시무하는 지 교회 당회장권을 주면 된다. 아무리 총회가 결의하여도 교회가 연장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원하지 않는 교회에 피해가 되지도 않는다. 통계상 정년 문제로 인하여 교단을 떠나는 교회들이 많다고 하는데 서로서로 입장을 이해하며 정년 문제를 신축성 있게 처리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헌법자문위원장 역임. 성민교회)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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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하나님 총회 공의의 쌀쌀함
    가을은 따스함이 자리를 비키고 쌀쌀함이 찾아오는 큰 길목이다. 따라서 만물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곧잘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맞이했다가 곧 보내는 한 해나 사람의 나이를 춘추(春秋)라고도 적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키운 것을 거둔다는 뜻에서 가을은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을은 따스함이 자리를 비키고 쌀쌀함이 찾아오는 큰 길목이다. 따라서 만물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곧잘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맞이했다가 곧 보내는 한 해나 사람의 나이를 춘추(春秋)라고도 적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키운 것을 거둔다는 뜻에서 가을은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공식 역법은 양력이다. 조선 말기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바꾸면서 그레고리력을 공식 채택했다. 그로부터 126년이 지났다. 이제 실생활에서 음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은 음력의 원리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실제로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유독 ‘설(1월 1일)’과 ‘추석’은 음력을 쓰고 있다. 설날에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보면 “1월 1일”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 여왕이 서거한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2주 정도나 빠르다. 올해 추석(10일)은 2014년 추석(9월 8일) 이후 가장 이른 추석이다. 들판의 벼도 아직 누런 빛조차 들지 않았다. 추석은 음력을 기준으로 쇠는 명절이라 날짜 변동 폭이 크다. 추분(9월 23일 무렵)을 전후로 빠르면 9월 8일(1976년, 2014년), 늦으면 10월 8일(1919년, 1938년)까지 올 수 있다. 윤달이 앞쪽에 가까이 있을수록 추석이 늦어지는데 올해는 그 반대여서 이른 추석을 맞은 것이다. 송편은 그해 수확한 쌀로 빚어야 제맛이라는데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추수를 하는 것과 관계가 깊은 명절이다. 9월 10일은 추수하는 때가 아니다. 쌀농사 추수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10월 중순 전후다. 미국의 추석이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 놓았다. 그때쯤이면 미국 많은 지역에서 추수가 끝난다. 매년 추수감사절은 일요일까지 4일간 연휴가 고정된다. 상당히 편리하고 합리적인 제도다. 일본이 미국을 벤치마킹해 2000년 이른바 ‘해피먼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공휴일 일부를 월요일로 옮겨 토.일.월 3일 연휴를 만드는 것이다. 연휴는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우리도 미국처럼 추수 시기의 특정 요일을 추석으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겸해서 우리 총회 개회일도 미국 추수감사절같이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하면 좋을 듯싶다. 그러면 해마다 음력 추석 명절에 맞춘 탓에 몸과 마음이 바쁜 데다 총회 임원 선거 유세와 투표까지 겹친 총회 회기를 추수가 끝나는 11월 넷째 주 목.금.토 2박 3일 총회를 개최하면 선거와 안건 논의와 결정을 여유 있고 은혜롭게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가을(秋)에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색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통 관념에 따라 가을의 색조를 말할 때는 보통 하얀색, 즉 백(白)이다. 그래서 하얀 가을, 소추(素秋)라고도 한다. 봄의 기운은 식생이 움을 틔운다고 해서 발생(發生)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그에 비해 가을의 기운을 대표하는 말은 숙살(肅殺)이다. 쌀쌀함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인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차제에 그 수장 정신길이 총회 행사 현장마다 내놓고 횡행하는 불의하고 불법스러운 세칭 ‘총회선거기획단’에 속한 후안무치 임원 후보들이 이 가을 총회 현장에서 하나님 공의의 쌀쌀함을 체험하게 해야 할 것이다. 숙살(肅殺) 즉 쌀쌀함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인다고 해서 나온 말같이... 도대체 맨돈 소강석을 비롯한 14명의 선관위 위원들은 총회 행사 현장과 식사 모임에서 불법한 선거 담합이 횡행하는 데도 뭘 감시하는 것인지...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슨 일들을 벌이고 있을런지 불을 보듯 한할텐데... 정신길은 맨돈 소강석에게 인사까지 건네는 사이이니 여타 선관위원들하고는 어찌 지낼 것인지... 나는 대전중앙교회 건너편 한 식당에서 정신길이 총회 임원 후보 한 장로와 한 목사와 삭사하고 있길래 정신길 기획단에 속한 후보들이내 한 장로가 그렇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선관위 위원은 물론이고 여타 언론들은 한 부총회장 선거법 위반 사실은 고발했지만 그들이 속한 후보들의 일탈과 불법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들이다. 바야흐로 깊어지는 공의로운 총회 개회를 앞둔 총회의 가을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1-24 202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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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0
  • 제106회 총회 징비록(懲毖錄)
    마침 올해가 임진왜란이 벌어진 지 그리고 한산대첩이 대승을 거둔 지 430년 되는 해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에서 물처럼 표정 깊은 배우 박해일을 통해 구현된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은 대체 무엇입니까” 묻는 물음에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중기의 선조 때 문신, 학자, 의학자, 저술가인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17일 ~ 1607년 5월 31일)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한 책이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의 지옥도(地獄圖)를 해부한 류성룡의 보고서다. 충무공 ‘난중일기’와 함께 구국의 리더십을 증명한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징비’는 “지난 잘못을 스스로 꾸짖어 후에 환난이 없도록 삼간다”라는 뜻이다.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우게 했고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지휘하였다.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절친한 사이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왜장은 부하를 방패막이로 삼지만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구하기 위해선 자기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리더였다. 이에 감동한 왜병은 항왜(임란 때 조선에 투항한 왜병)가 됐고 충무공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웅으로, 제발 다시 만나고 싶은 이상적 공직자의 표상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이순신을 포함한 조명 연합수군이 경상우도 남해현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싸운 노량해전이 발발한 당시 1598년 12월 16일(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류성룡은 영의정에서 관직 삭탈 당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류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 앞날을 대비하며 왜란을 겪은 후 후세에 길이 남길 쓰라린 반성의 기록으로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되었다. 그런 점에서 ‘징비록’은 우리나라에서 씌어 진 여러 기록문학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懲毖錄)은 “알면 행하여야 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임진왜란의 전모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어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다. 1598년 10월, 노량 앞바다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해 벌어진 해전에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날아오는 탄환에 맞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직전, “싸움이 아직 다급한 판인데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왜군은 조선에서 수많은 살략을 자행하였고 이는 ‘징비록’에 고스란히 묘사되었다. 1597년에 벌어진 정유재란(게이초의 역)에서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잡은 포로나 시신의 목에서 코를 베어내는 장면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징비록의 주제가 왜군의 실태보다도 조선군의 허약하기 짝이 없는 국방의식에 대한 비판에 무게가 실려있는 만큼 주된 내용은 왜군에 대응하는 조선 측의 허술함도 비판하고 있다. 무한 당쟁에 매몰돼 세계정세를 외면하다 국망(國亡)에 몰린 비극이 임진왜란이고 6·25 전쟁이다. 미·중 그레이트 게임은 국제연합(UN)에 기초한 세계 거버넌스 체제를 우리 눈앞에서 붕괴시키고 있다. 상호 이익 관계가 얽힌 지구 경제가 전쟁을 막는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은 망상으로 판명됐다. 지역적 침략전이 준(準) 세계 전쟁으로 비화하고 제한 핵전쟁과 자포리자 원전 재앙까지 운위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생생한 증거다. 우크라이나 전쟁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인 에너지·원자재·식량난이 부른 수퍼 인플레이션 태풍은 세계 10대 수출 대국이면서도 소국(小國) 의식과 민족주의 감성에 매인 한국을 강타한다. 대만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예정된 전쟁’이 대만해협을 고리로 한반도를 습격하는 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경제 전쟁·기술 전쟁·군비 경쟁으로 시작한 미·중 대결이 언제 어떻게 열전(熱戰)으로 폭발할지 일촉즉발이다. 인류의 집단 지성이 충돌을 막지 않는 한 대만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겟돈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한반도엔 핵 강국 북한이 버티고 있다. 가난하지만 잔혹한 군사 강국이 혼(魂)을 잃은 경제 대국을 복속시키는 사례가 세계사엔 넘쳐난다. 사상적으로 21세기는 비(非)민주적 자유주의와 비(非)자유적 민주주의가 충돌하는 이념 전쟁터이다. 국민과 지도자의 징비가 국가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시대다.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하는 지옥문이 열렸다. 총체적 위기의 순간엔 징비야말로 국정(Statecraft) 리더십의 핵심이다. 하지만 배광식의 제106회 총회 출범 11개월을 징비로 살펴보면 조선 선조의 불의와 무능과 무기력을 만난다. 비판 없는 언론과 상비부를 장악한 총회 권력이 총회 회관을 포위하고 맨돈 소강석의 제105회 총회가 부패시키고 퇴행시킨 총회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정신에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장봉생을 내세운 '은혜로운 동행'을 통해 재판과 감사와 선관위와 언론이 불의와 더 가까워지는 '불의한 동행'을 하게 했다. 수퍼 태풍은 앞으로도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다. 세계사적 도전과 민생 문제는 국가 존망을 결정할 정치적 태풍이다. 총회 역시 폭풍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107회 ‘샬롬 부흥’ 총회가 피눈물의 기도로 폭풍에 대비해 생명과 나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삶과 죽음의 이치를 입증한 성도의 기도가 이룬 징비의 현장이다. 이젠 제107회 총회가 처절한 회개의 징비로써 ‘총회장 권순웅의 시간’을 증명할 때다. 국난(國難)을 함께 넘어 “의(義)와 불의의 싸움”을 위한 선교의 길을 세계로 넓히는 제107회 총회의 ‘샬롬 부흥’을 기다린다. 성경은 말씀한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1:8-9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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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9
  • 우리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자!_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결국은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야 한다. 에피소드로 끝나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에는 미래가 없다. 본래 에피소드란 막간극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트콤(sitcom)이라고 볼 수 있다. 시트콤은 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이 시트콤인 에피소드의 재미는 서브젝트(subject)인 주인공이 프로젝트(project)에 휘말려 결국은 오브젝트(object)가 되어버리는 데 있다. 사실상 어떤 선거든지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그 선거를 통해서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즉 서브젝트가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선거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계획되고 기획되기에 선거를 관리, 기획하는 선관위는 이 프로젝트 운영에 공정을 기해야 하며 프로젝트 되는 선관위 규정에 스스로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프로젝트화 되지 못한 출마자는 자연히 오브젝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번 우리 선관위는 선관위 스스로가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일에서 처음에는 법과 원칙에 의해서 투명하게 할 것을 공표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안에 따라서 법과 원칙은 적용하고 크게는 정치적 고려를 스스로 하고 법과 원칙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회의 선거는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말이다. 결코 희극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극이 되어버리면 계속하여 이런 일이 발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단 한 번 있었던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는 미래가 없다. 선거란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행하여 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는 ‘지지할 수 있음’과 ‘지지할 수 없음’에서 선택하는 자유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이 두 가지를 다 하지 못하게 한 아주 나쁜 선거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지할 수 없음도 지지할 수 있음도 사라져 버린 단독후보로 결정되는가 했는데 이제는 ‘양해서’와 ‘사과문’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총대들에게 두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막장 선거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렇게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있는가? 두 후보인가? 아니면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선관위인가? 나는 선관위라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선관위는 없어져야 한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입각해서 말이다. 이토록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변질시키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내밀하게 부총회장 선거를 들여다보자.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선거법을 위반했습니다’라고 사과한 후보를 아니면 선거법을 위반했음을 사과했기에 ‘양해합니다’라고 한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상 둘 다 문제이다. 이렇게 하려면 정치적인 고려를 처음부터 했어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정치가 되고 화합과 이해의 정치가 된다. 그런데 한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지 않고 미루다가 선거 막판에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에게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사과하고’ 이미 자격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무슨 언질(?)을 주어서 양해한다고 ‘양해서’를 쓰게 해서 두 사람 모두를 다 자격 없는 후보(?)로 만들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난, ‘양해서’를 쓴 후보도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불공정하고, 깨끗하지 못한 선거에 ‘양해서’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총회의 지도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양해서’를 쓰지 않고 후보사퇴를 선언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문을 쓰고 후보의 자격을 얻어 부총회장에 출마한 후보에게도 묻고 싶다. ‘선거관리 규정을 어긴 후보입니다’라는 사과문을 쓰고 후보자가 되어야만 했는가를 말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규정을 어겼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사과문을 쓰고 후보가 되려고 하는가이다. 후보가 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사실상 교회의 선거는 이기고 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다. 누가 더 잘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가를 선출하는 것이기에 굳이 사과문까지 쓰고 나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후보가 되려고 했는데 당신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난 선거규정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후보의 자격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일꾼이 되십시오”라는 사퇴의 변을 내고 사퇴했다면 우리 총회의 정치는 성경적이고 헌법적인 정치가 살아났을 것이다. 선거규정 하나도 지키지 못한 후보가 어떻게 헌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후보자들이 사퇴하지 않고 짜고 치는 무슨 판처럼 선관위에 의해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서로 잘해 봅시다’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총회는 100회 총회 때부터 교회의 정치가 성경과 헌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신자유적인 심리정치란 참으로 매우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이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유권자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정치이다. 이 정치는 사실 유권자들에 유리하게 되는 것 같지만 기득권자들에 유리한 정치이다. 그래서 그 심리정치에 의해 수년 전(2016년) 우리는 두 사람의 목사 부총회장 후보를 자격 없음으로 규정하여 탈락시키고 현장에서 두 후보자를 선정하여 투표하는 장로교 역사상 있을 수 없는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는 다시 자격 없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게 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자격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더 좋아졌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법 규정 앞에서 평등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고민한다. 선거에 임하는 나 자신도 투명하지 않고 더욱더 선거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인 두 사람 모두 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출마했고 이제 나 역시 내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선거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 총회의 바른 정치는 언제나 구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아예 구호도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가 장로교 정치에 맞게 되려면 사실 나와는 상관없이 작성된 ‘성명서’지만 8월 29일 전국호남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우리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총회 참석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성명했기에 그랬으면 한다. 적어도 그날 참석한 450명 정도 되는 총대들은 부총회장 선거에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면 호남협의회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선출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성명서’가 있다면 나 역시 찬조금 들고 그날 참석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자격이 있든 없든 두 후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우리 총회의 부 대표자와 대표자의 자격을 2년 동안 주게 될 것이다. 심각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바보이다. 사실상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고는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삶에서 목사로서 터득된 비결이 있다. 믿음이 없는 바보, 신학과 신앙이 없는 멍청이는 항상 세상에서 방황하고 믿음 있는 신학과 신앙에 굳게 선 자는 세상에서 여행하고 산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방황을 해도 우리 총대들은 여행을 했으면 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왜? 두 후보자에게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자격을 주고 우리에게 할 수 없는 투표를 하라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권위주의자에게는 투표하지 말자. 도덕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민주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아니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수년 동안 나는 권위주의자에게 참 권위가 없고 도덕주의자에게 진정한 도덕이 없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민주투사에게 정작 민주 의식이 없음을 보아왔고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인 개혁주의자들에게 참 신앙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찍자. 누가 한들 나아질 총회가 아니다. 우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러나 손가락을 잘라낼 각오로 찍어야 한다. 좋은 놈(?) 중에서 좋은 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서 나쁜 놈(?) 중에서 더 나쁘지 않을 분(?)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이렇게 후보자 두 분을 나쁜 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쁘면 자격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한 분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섯 분의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기도는 하지 말고 화장실에 앉아서 매일 매일 고민해 보자. 어차피 프로젝트 된 선거에서 서브젝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를 골라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개혁신학과 신앙의 반대자인가를 투명성의 원리에서가 아닌 불투명성의 원리 속에서 선택해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잘못하면 지역적이고 신학적이고 광신(狂信)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힐링(healing)의 효과를 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킬링(killing)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총대들에게 두 분의 후보 중에서 누가 킬링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총신과 광신의 대결도, 영남과 호남의 대결도, 교갱과 영성의 대결도, W.E.A의 찬성과 반대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아주 심각한 신앙적, 신학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실 문화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왜 신앙이나 신념과 다른 합리적인 견해가 신앙이나 신념의 도그마의 껍데기를 깨고 들어오면 우린 갑각류들이 발작하듯 반발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느덧 내 개혁신앙과 신학이 지적 갑각이 되었고 교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신앙의, 신학의 순결함을 지키고 방어한답시고 이념적 순결주의가 되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내 신앙과 신학의 정당성만 스스로 부여하고 신학적, 윤리적 나르시시즘에 젖어 두 후보에 대한 차이도 차별도 모른 채 내 생각과 판단에 틀리면 조롱, 내면의 비웃음과 반대로 일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프로젝트화 한 선관위원들을 향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술수를 지켜보고만 있는 비참한 총대일 뿐이다. 이젠 비굴해지기까지 한다. 문화신학자인 리처드 니버는 “교회가 현대의 문화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교회의 영적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우리 총회의 정치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이러한 선거 프로젝트를 만들고 힘쓰는 동안 우리 총회의 영향력은 총회 안에서도 그리고 사회 속에서도 급격히 쇠퇴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투표를 하든 안 하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부총회장이 될 것이다. 부탁한다. 킬링하지 말고, 힐링의 총회 정치를 세워가기를, 그리고 이 선거는 우리 교단 역사에서 한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길 기도한다. 누가 부총회장이 될 것인가? 당신이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누가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 - 이 글은 2022년 9월 6일 기독신문의 ‘선관위 입장, 사과문 감사의 글’이 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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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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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광식 동행 누구
    1952년 25세에 국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이라는 영국 최장 재위 기록을 세우고 96세에 영원히 잠들었다. 진단서에는 여왕이 2022년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숨졌다고 나와 있다. 영국 왕실이 서거를 발표하기 3시간 20분 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그의 뒤를 이을 리즈 트러스 총리를 만났다. 이날 트러스 총리와 찍은 사진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등은 보라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지난 70년 동안 영국과 영욕을 함께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주검을 실은 관이 9월 19일(현지시각) 오전 장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섰다. 여왕의 뒤로 국왕 찰스 3세, 왕비 커밀라, 앤 공주 등 왕실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여왕은 이곳에서 결혼했고 여왕으로 즉위했으며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됐다. 여왕의 관은 이날 저녁 윈저성 안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 지하 영묘에 먼저 잠든 남편 필립 공 옆에 놓였다. 런던에는 교회 종소리가 96차례 울려 퍼졌다. 여왕의 생애를 상징하는 종소리는 장례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가 되기 96분 전부터 매분 울려 도시를 가득 채웠다. 오전 11시. 세계 200여 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여왕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찰스 3세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가 사원 안으로 아주 천천히 들어서는 여왕의 관 뒤를 따랐다. 1947년 ‘젊은 여왕’은 이곳에서 남편 필립 공과 결혼했고 1953년 대관식을 치렀다. 여왕을 마주한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나 첫 번째 찬송 ‘주님, 주님께서 주신 날이 끝났습니다’를 함께 불렀다. 왕비 커밀라는 눈물을 훔쳤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데이비드 호일 사제가 장례를 집전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설교에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여왕이 전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다시 전했다.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성경을 읽었다. 이날 장례에선 75년 전 여왕이 필립 공과 결혼식에서 부른 찬송가가 다시 불렸다. 이날 장례식에는 한·미 정상 등 전 세계에서 모인 500여 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여했다. 영국 언론들은 장례식이 열린 사원 주변에 100만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모였다고 전했다. 여왕이 얼마나 존경스러웠으면 온 세계와 온 국민이 이토록 큰 애도를 표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역경을 딛고 살아간다. 그 끝에는 한 줄기 희망이 있다.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기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달리 거짓의 아비가 마귀인지 모르는 것 같은 이재명은 9월 3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 대해 “국민도 귀가 있다”라며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고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처리한 데 대해 정부·여당이 반발했다. 그러자 여러 엄청난 거짓말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기소된 것도 있는 이재명이 직접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어 양심적인 국민과 광야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윤석렬 대통령을 비판한 것일까. 그것도 사실이 아니고 광우병 파동처럼 조작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이재명은 이날 자신이 장악한 정당 회의에서 “국민도 귀가 있고 국민도 판단할 지성을 갖고 있다”라며 “거짓말하고 겁박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뀌거나 또는 들었던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문재인처럼 뻔뻔하게 말했다. 이어 “지금 들어도 (윤 대통령이 한 논란의 발언은) ‘바이든’이 맞지 않습니까, (이새끼라고) 욕했지 않습니까”라며 “적절하지 않은 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잘못했다고 해야지요(자기는 하지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적반하장의 이재명은 “진상 규명의 첫 번째 길은 ‘내가 뭐라고 말했으니 그것과 다르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맞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억 못하겠는데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게 대체 상식에 부합하는 말인가 의문이 간다”라면서 “국민을 존중하기 바란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뉴욕 순방 때 한 언급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밝히고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실상 말이 그 사람을 규정할 때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과 언론에 대해 말했다. “먼지 털어도 안 나오니 꼬투리 잡는다.” 자신을 잡으려고 온갖 혐의를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는 뜻이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재명 의혹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그것이 맨돈 소강석처럼 잔꾀를 모르는 윤석열 정부가 맨돈 소강석과 가까운 이재명을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몸부림친 결과물일까. 이재명 의혹은 작년 여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2021년 8월 29일 이낙연 캠프 일요 기자 간담회가 신호탄이었다. 캠프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의 형 강제 입원, 아내 김혜경 씨의 ‘혜경궁 김 씨’ 법정 다툼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 30여 명의 수임료가 수십억일 텐데 이 대표 재산은 변동이 없다”라고 했다. 누군가 대신 내준 게 아니냐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형을 선고받은 핵심 혐의가 변호사비 대납이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돈으로 변호사비 3억 원을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친문(親文) 시민 단체는 이 대표가 검찰 출신 변호사 한 명에게 준 것만도 현금과 주식 20억 원이 넘는다고 폭로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 곧장 뒤를 이었다. 경기도 지역 신문은 8월 31일 자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과거 민주당이 영리하지만 소심한 이명박에게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대장동 사업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화천대유가 이재명 후보 당신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칼럼 필자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경쟁했던 핵심 후보 진영에서 제보해온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권순일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된 사실은 2021년 9월 16일 보도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판결 전후로 권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화천대유 고액 연봉을 사후 뇌물로 재판 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9월 30일엔 ‘대장동 말고 백현동도 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성남시장 때 백현동 사업으로 3천억 원대 특혜 수익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성남시장 선거 때 선대본부장 지낸 사람이 개발 업체로 영입되자 성남시가 부지 용도를 변경해 준 덕분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단주였던 성남FC 축구팀이 성남시 소재 기업 여섯 곳에서 후원금 160억 원을 받고 성남시는 해당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변경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있다. 이 의혹은 당초 2018년 장영하 변호사가 이재명 시장을 특가법 뇌물죄 혐의로 성남지청에 고발했던 것인데 대선 국면에서 다시 쟁점이 됐다. 민주당 출신인 장 변호사는 한때 이재명 변호사와 동지 관계였으나 2010년 성남시장 선거를 계기로 원수 사이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이 대표를 저격한 ‘굿바이, 이재명’을 발간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임기에 터져 나온 의혹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 건도 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도 윤 정부 쪽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당 경쟁 후보 진영 또는 이 대표와 일했던 사람들이 직접 폭로했거나 언론에 제보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차기 주자 이 대표를 보호하려고 의혹을 덮고 진상 규명을 막았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열쇠를 쥔 쌍방울그룹 관계자가 검찰 귀띔을 받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 라인은 문 정부 때 한직으로 쫓겨났다가 복귀해 막 수사를 시작하는 참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오랫동안 먼지 털듯 수사했는데도 아무 진척이 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박이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며 제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마당에 던졌던 이재명식 방탄(防彈) 화법의 변주곡이다. 2022년 9월 21일 제107회 총화장 이취임식에서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도 이재명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게 없다는 내용의 이임사를 뇌까렸다. 배광식 역시 이재명처럼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거나 모르는 모양이다. 차마 그 이임사 녹취를 풀지 않는 것은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 퇴직한 불의한 직원을 계약직으로 고용해 국장대행직을 주고 뭐가 그리 급해 그를 앞세워 대치동 총무 관사도 팔아먹고 총회회관 리모델링도 주관하게 하고 제주도 수양관 부지를 왜 서둘러 매각하려 했는지 조사하면 어찌 될까. 그 교회 장로 김기현 의원이 규탄하는 문재인과 이재명 짝 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4-47 2022-09-30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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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30
  • 총회 불꽃 권순웅의 위엄
    오르막과 내리막을 구분하는 판단력은 개인은 물론이고 총회나 국가의 성쇠(盛衰)를 좌우한다. 눈을 감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판단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제106회 총회에서 배광식의 행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처지를 보면 분명하다. 배광식처럼 '은혜로운 동행' 어쩌구 하면서 배임 혐의의 일을 저지르거나 푸틴처럼 허울은 '특수 군사 작전'이라면서 이기기 힘든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 배광식은 총회 돈을 자기 주머니 돈인양 챙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쓰고 다녔다고 한다. 총회 재산 현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전횡과 배임 혐의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배광식은 울산 큰바위 밑이나 위에서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전황(戰況)이 불리한 전쟁을 질질 끌어선 안 되는데 푸틴의 거듭된 판단 착오는 러시아의 운명을 바꾸고 나아가 유럽과 세계의 판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 모를 사태에 이르렀다. 국가와 총회는 왜 오르막 내리막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을까. 한 장로가 산다는 제주에는 경사(傾斜)길 아래 세워둔 자동차가 저절로 언덕을 기어오른다는 ‘도깨비 도로’가 있다. 측량 결과 오르막으로 보이는 쪽이 실제론 경사 3도 정도의 내리막으로 나타났다. 주변 지형 때문에 내리막이 오르막으로 뒤집혀 보이는 착시(錯視) 현상이란 것이다. 국가 역량(力量)이나 총회 상황은 도깨비 도로와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을 판단하기 어렵다. 국제 정세나 국내와 총회 정치 수준을 재는 측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경제 상황·교육의 질(質)·노동 효율을 진단하는 수단인 통계가 있고 총회도 나름 교회와 교인 수를 가늠하는 빈약한 자료가 있긴 하나 불완전하다. 국가 상황판의 모든 등(燈)이 온통 빨간불이거나 파란불 일색(一色)인 경우는 드물다. 낭떠러지에 선 나라 상황판에도 파란 등 몇 개는 불이 들어오고 기세(氣勢) 좋게 달리는 나라 상황판에도 빨간불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상황판은 과거의 성공 경험과 지나간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읽을 수밖에 없고 총회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과 믿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각계 지도자의 몫이다. 그런데 배광식과 푸틴은 그러지 않았다. ‘엘리트 없는 사회’ ‘모두가 엘리트인 사회’라고 하거나 '믿음이 없는 총회' '모두가 믿음이 없는 총회'라는 역설은 모든 분야의 지도자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는 하나님의 경고다. 한국과 우리 총회는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까, 내리막을 구르고 있을까. 파란불이 많다며 등을 두드리고 용기를 북돋는 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등의 크기가 훨씬 크다며 낙담(落膽)하며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반대의 두 이야기를 합쳐야 상승(上昇)하면서 추락(墜落)하는 한국과 우리 총회의 모순된 현실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희망과 불안의 엇갈린 진단에서 공통된 부분은 추락하는 것의 대표가 정치라는 점이다. 정치는 그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다. 한국의 근본 위기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의 저하(低下)다. 상승하는 힘이 추락하는 힘을 이기고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추락하는 힘이 상승하는 힘을 꺾어 함께 주저앉느냐가 문제다. 다행히 우리는 배광식과 장봉생의 불의한 '은혜로운 동행'이 아니라 총회를 살리고 밝힐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샬롬 부흥'이 있다. 배광식처럼 허울뿐인 '은혜로운 동행'으로 맨돈을 탐하는 목사나 장로를 위하는 것이 아닌... 민주 정치에서 선거는 어느 쪽이 민의(民意)인가를 매듭짓는 수단이다. 패자의 승복(承服)으로 선거 결과가 확정된 토대 위에서 승자의 관용(寬容) 범위를 논의하는 순서를 밟는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는 매듭짓는 역할을 상실했다. 실정법 위반으로 여러 수사를 받는 이재명 씨는 대선 패배 후 뻔뻔하게 국회의원이란 방탄복을 입고 이번에는 후안무치의 제1야당 대표 자리에 올라 주위를 모래성 같은 방탄벽으로 둘러쌌다. 피의자 신분으로 거듭 대통령과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으로 수사를 받는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관용이 법치(法治)의 울타리를 넘을 수는 없다. 그건 대통령 권한 밖이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폐쇄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 집착(執着)이었는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범죄가 아니다. 원전 폐쇄를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 범죄다. 맨돈 소강석이 내려보며 악수를 나눈 문재인은 한일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나서 대통령이랍시고 남은 임기 내내 일본과 정상회담에 목을 맸다. 그로 해서 양국 역사 문제가 한국이 칼날을 잡고 일본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는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 그래도 그건 범죄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중립적 인사를 임명해야 할 중앙선관위·방송통신위와 그 심사위원회의 장(長)에 가장 파당적(派黨的)인 사람을 골라 꽂았다. 그들 대부분이 임기 보장을 방패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KBS, MBC 등 통칭 공영방송도 그중 하나다. 그 진지(陣地)마다 전 정권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포위된 꼴이다. KBS 이사회의 야당 측 인사를 쫓아내기 위해 김밥값을 감사하고 집은 물론 강의하는 대학까지 쫓아가 꽹과리를 울렸던 그들이다. 정권에게 최상의 선택은 위엄(威嚴)이 있으면서도 사랑받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위엄을 골라야 한다. 위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총회장 권순웅은 107년 역사 총회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갈리는 지금 왜 번번이 총회장들이 위엄을 잃고 있는가를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반성과 개혁에 예외(例外)를 둬선 안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0-22 2022-09-24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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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4
  • 김종희 칼럼_ 정년문제 처리에 대한 아쉬움
    해마다 총회 때면 정년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법대로 만 70세 정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꼭 정년만을 고집할 수 없는 피치못할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대우(?)를 받으며 조기 은퇴하는 경우는 여유 있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 목회한 목사에게 대우는커녕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는 은퇴가 걱정인 교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정년 문제에 대하여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잘 처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헌법도 살리면서 지 교회 사정도 고려해 주는 신축성이 필요하다고 사료 된다. 제107회 총회 석상에서 한 필자의 동의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은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정년연장은 헌법 정신에 배치되는 주장인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한 지 교회나 1구역(4지 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70세까지 시무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시무 연령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만 70세 정년 이전에 사망을 하거나 병고로 더 이상 목회가 불가능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정년 이전에도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물러날 사정이 없을 때는 만 70세까지만 시무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라고 해석한다. ② 물론 전항과 같은 해석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란 꼭 만 70세 이전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은퇴할 시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은퇴 시점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하여 원래 법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60세까지 한다였는데 만 70세로 연장한 법이라면 만 70세가 되어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더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종신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만 70세로 줄여 놓은 것이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억지는 아니다. 목사와 교회 간 합의만 되면 다소 정년연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③ “근로자가 정년이 지난 후에도 사용자의 동의 아래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용자와의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왔다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당해 근로자가 정년이 지났다거나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수는 없다.”라는 판례가 있다(대법원 2002두12809). 물론 목사와 교회의 관계가 근로관계는 아니더라도 목사와 교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고할 판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장대신 51회 총회는 ‘목사 정년 70세는 유지하되 교회에서 원하면 계속 시무할 수 있다’라고 결의하였다. Ⅱ. 정년연장을 위한 신축성 있는 방법은 없는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회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채로 지 교회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당회의 결의로 일정 기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결의해 주면 된다. ② 정치 제12장 제5조 1항: ‘총회는 교회 헌법(신조, 요리 문답, 정치, 권징 조례, 예배 모범)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항존직 만 70세를 만 71세 생일 전날까지로 해석하여 총회 결의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지 교회 시무는 몇 년을 연장할 수 있으되 단, 대외(노회, 총회, 산하기관) 정년은 만 70세를 유지하기로 한다.”로 총회가 결의하여 시행할 수 있다. 총회가 결의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 Ⅲ. 결론 70세 정년제는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헌법의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러므로 사회 상황이 바뀌고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신축성을 발휘할 수 있다. 최종 결론은 총회나 노회에서의 정년은 현재대로 유지하되 각 지 교회가 합의할 경우 지 교회 목회만 몇 년을 더할 수 있도록 총회가 결의하면 된다. 노회에서 선거 피선거권은 제한하고 시무하는 지 교회 당회장권을 주면 된다. 아무리 총회가 결의하여도 교회가 연장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원하지 않는 교회에 피해가 되지도 않는다. 통계상 정년 문제로 인하여 교단을 떠나는 교회들이 많다고 하는데 서로서로 입장을 이해하며 정년 문제를 신축성 있게 처리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헌법자문위원장 역임. 성민교회)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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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하나님 총회 공의의 쌀쌀함
    가을은 따스함이 자리를 비키고 쌀쌀함이 찾아오는 큰 길목이다. 따라서 만물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곧잘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맞이했다가 곧 보내는 한 해나 사람의 나이를 춘추(春秋)라고도 적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키운 것을 거둔다는 뜻에서 가을은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을은 따스함이 자리를 비키고 쌀쌀함이 찾아오는 큰 길목이다. 따라서 만물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곧잘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맞이했다가 곧 보내는 한 해나 사람의 나이를 춘추(春秋)라고도 적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키운 것을 거둔다는 뜻에서 가을은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공식 역법은 양력이다. 조선 말기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바꾸면서 그레고리력을 공식 채택했다. 그로부터 126년이 지났다. 이제 실생활에서 음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은 음력의 원리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실제로 알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유독 ‘설(1월 1일)’과 ‘추석’은 음력을 쓰고 있다. 설날에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보면 “1월 1일”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 여왕이 서거한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2주 정도나 빠르다. 올해 추석(10일)은 2014년 추석(9월 8일) 이후 가장 이른 추석이다. 들판의 벼도 아직 누런 빛조차 들지 않았다. 추석은 음력을 기준으로 쇠는 명절이라 날짜 변동 폭이 크다. 추분(9월 23일 무렵)을 전후로 빠르면 9월 8일(1976년, 2014년), 늦으면 10월 8일(1919년, 1938년)까지 올 수 있다. 윤달이 앞쪽에 가까이 있을수록 추석이 늦어지는데 올해는 그 반대여서 이른 추석을 맞은 것이다. 송편은 그해 수확한 쌀로 빚어야 제맛이라는데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추수를 하는 것과 관계가 깊은 명절이다. 9월 10일은 추수하는 때가 아니다. 쌀농사 추수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10월 중순 전후다. 미국의 추석이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 놓았다. 그때쯤이면 미국 많은 지역에서 추수가 끝난다. 매년 추수감사절은 일요일까지 4일간 연휴가 고정된다. 상당히 편리하고 합리적인 제도다. 일본이 미국을 벤치마킹해 2000년 이른바 ‘해피먼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공휴일 일부를 월요일로 옮겨 토.일.월 3일 연휴를 만드는 것이다. 연휴는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우리도 미국처럼 추수 시기의 특정 요일을 추석으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겸해서 우리 총회 개회일도 미국 추수감사절같이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하면 좋을 듯싶다. 그러면 해마다 음력 추석 명절에 맞춘 탓에 몸과 마음이 바쁜 데다 총회 임원 선거 유세와 투표까지 겹친 총회 회기를 추수가 끝나는 11월 넷째 주 목.금.토 2박 3일 총회를 개최하면 선거와 안건 논의와 결정을 여유 있고 은혜롭게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가을(秋)에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색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전통 관념에 따라 가을의 색조를 말할 때는 보통 하얀색, 즉 백(白)이다. 그래서 하얀 가을, 소추(素秋)라고도 한다. 봄의 기운은 식생이 움을 틔운다고 해서 발생(發生)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그에 비해 가을의 기운을 대표하는 말은 숙살(肅殺)이다. 쌀쌀함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인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차제에 그 수장 정신길이 총회 행사 현장마다 내놓고 횡행하는 불의하고 불법스러운 세칭 ‘총회선거기획단’에 속한 후안무치 임원 후보들이 이 가을 총회 현장에서 하나님 공의의 쌀쌀함을 체험하게 해야 할 것이다. 숙살(肅殺) 즉 쌀쌀함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인다고 해서 나온 말같이... 도대체 맨돈 소강석을 비롯한 14명의 선관위 위원들은 총회 행사 현장과 식사 모임에서 불법한 선거 담합이 횡행하는 데도 뭘 감시하는 것인지...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슨 일들을 벌이고 있을런지 불을 보듯 한할텐데... 정신길은 맨돈 소강석에게 인사까지 건네는 사이이니 여타 선관위원들하고는 어찌 지낼 것인지... 나는 대전중앙교회 건너편 한 식당에서 정신길이 총회 임원 후보 한 장로와 한 목사와 삭사하고 있길래 정신길 기획단에 속한 후보들이내 한 장로가 그렇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선관위 위원은 물론이고 여타 언론들은 한 부총회장 선거법 위반 사실은 고발했지만 그들이 속한 후보들의 일탈과 불법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들이다. 바야흐로 깊어지는 공의로운 총회 개회를 앞둔 총회의 가을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1-24 202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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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0
  • 제106회 총회 징비록(懲毖錄)
    마침 올해가 임진왜란이 벌어진 지 그리고 한산대첩이 대승을 거둔 지 430년 되는 해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에서 물처럼 표정 깊은 배우 박해일을 통해 구현된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은 대체 무엇입니까” 묻는 물음에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중기의 선조 때 문신, 학자, 의학자, 저술가인 류성룡(柳成龍, 1542년 11월 17일 ~ 1607년 5월 31일)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의 일을 수기(手記)한 책이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할 때 저술하였고 1604년(선조 37년) 저술을 마쳤다.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의 지옥도(地獄圖)를 해부한 류성룡의 보고서다. 충무공 ‘난중일기’와 함께 구국의 리더십을 증명한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징비’는 “지난 잘못을 스스로 꾸짖어 후에 환난이 없도록 삼간다”라는 뜻이다.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우게 했고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지휘하였다.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절친한 사이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왜장은 부하를 방패막이로 삼지만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구하기 위해선 자기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리더였다. 이에 감동한 왜병은 항왜(임란 때 조선에 투항한 왜병)가 됐고 충무공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웅으로, 제발 다시 만나고 싶은 이상적 공직자의 표상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이순신을 포함한 조명 연합수군이 경상우도 남해현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싸운 노량해전이 발발한 당시 1598년 12월 16일(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류성룡은 영의정에서 관직 삭탈 당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류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 앞날을 대비하며 왜란을 겪은 후 후세에 길이 남길 쓰라린 반성의 기록으로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되었다. 그런 점에서 ‘징비록’은 우리나라에서 씌어 진 여러 기록문학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懲毖錄)은 “알면 행하여야 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임진왜란의 전모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어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다. 1598년 10월, 노량 앞바다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해 벌어진 해전에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날아오는 탄환에 맞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직전, “싸움이 아직 다급한 판인데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왜군은 조선에서 수많은 살략을 자행하였고 이는 ‘징비록’에 고스란히 묘사되었다. 1597년에 벌어진 정유재란(게이초의 역)에서 전공을 증명하기 위해 잡은 포로나 시신의 목에서 코를 베어내는 장면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징비록의 주제가 왜군의 실태보다도 조선군의 허약하기 짝이 없는 국방의식에 대한 비판에 무게가 실려있는 만큼 주된 내용은 왜군에 대응하는 조선 측의 허술함도 비판하고 있다. 무한 당쟁에 매몰돼 세계정세를 외면하다 국망(國亡)에 몰린 비극이 임진왜란이고 6·25 전쟁이다. 미·중 그레이트 게임은 국제연합(UN)에 기초한 세계 거버넌스 체제를 우리 눈앞에서 붕괴시키고 있다. 상호 이익 관계가 얽힌 지구 경제가 전쟁을 막는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은 망상으로 판명됐다. 지역적 침략전이 준(準) 세계 전쟁으로 비화하고 제한 핵전쟁과 자포리자 원전 재앙까지 운위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생생한 증거다. 우크라이나 전쟁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인 에너지·원자재·식량난이 부른 수퍼 인플레이션 태풍은 세계 10대 수출 대국이면서도 소국(小國) 의식과 민족주의 감성에 매인 한국을 강타한다. 대만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예정된 전쟁’이 대만해협을 고리로 한반도를 습격하는 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경제 전쟁·기술 전쟁·군비 경쟁으로 시작한 미·중 대결이 언제 어떻게 열전(熱戰)으로 폭발할지 일촉즉발이다. 인류의 집단 지성이 충돌을 막지 않는 한 대만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겟돈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한반도엔 핵 강국 북한이 버티고 있다. 가난하지만 잔혹한 군사 강국이 혼(魂)을 잃은 경제 대국을 복속시키는 사례가 세계사엔 넘쳐난다. 사상적으로 21세기는 비(非)민주적 자유주의와 비(非)자유적 민주주의가 충돌하는 이념 전쟁터이다. 국민과 지도자의 징비가 국가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시대다.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하는 지옥문이 열렸다. 총체적 위기의 순간엔 징비야말로 국정(Statecraft) 리더십의 핵심이다. 하지만 배광식의 제106회 총회 출범 11개월을 징비로 살펴보면 조선 선조의 불의와 무능과 무기력을 만난다. 비판 없는 언론과 상비부를 장악한 총회 권력이 총회 회관을 포위하고 맨돈 소강석의 제105회 총회가 부패시키고 퇴행시킨 총회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정신에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장봉생을 내세운 '은혜로운 동행'을 통해 재판과 감사와 선관위와 언론이 불의와 더 가까워지는 '불의한 동행'을 하게 했다. 수퍼 태풍은 앞으로도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다. 세계사적 도전과 민생 문제는 국가 존망을 결정할 정치적 태풍이다. 총회 역시 폭풍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107회 ‘샬롬 부흥’ 총회가 피눈물의 기도로 폭풍에 대비해 생명과 나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삶과 죽음의 이치를 입증한 성도의 기도가 이룬 징비의 현장이다. 이젠 제107회 총회가 처절한 회개의 징비로써 ‘총회장 권순웅의 시간’을 증명할 때다. 국난(國難)을 함께 넘어 “의(義)와 불의의 싸움”을 위한 선교의 길을 세계로 넓히는 제107회 총회의 ‘샬롬 부흥’을 기다린다. 성경은 말씀한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1:8-9 2022-09-09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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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9
  • 우리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자!_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결국은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야 한다. 에피소드로 끝나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에는 미래가 없다. 본래 에피소드란 막간극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트콤(sitcom)이라고 볼 수 있다. 시트콤은 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이 시트콤인 에피소드의 재미는 서브젝트(subject)인 주인공이 프로젝트(project)에 휘말려 결국은 오브젝트(object)가 되어버리는 데 있다. 사실상 어떤 선거든지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그 선거를 통해서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즉 서브젝트가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선거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계획되고 기획되기에 선거를 관리, 기획하는 선관위는 이 프로젝트 운영에 공정을 기해야 하며 프로젝트 되는 선관위 규정에 스스로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프로젝트화 되지 못한 출마자는 자연히 오브젝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번 우리 선관위는 선관위 스스로가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일에서 처음에는 법과 원칙에 의해서 투명하게 할 것을 공표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안에 따라서 법과 원칙은 적용하고 크게는 정치적 고려를 스스로 하고 법과 원칙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회의 선거는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말이다. 결코 희극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극이 되어버리면 계속하여 이런 일이 발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단 한 번 있었던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는 미래가 없다. 선거란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행하여 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는 ‘지지할 수 있음’과 ‘지지할 수 없음’에서 선택하는 자유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이 두 가지를 다 하지 못하게 한 아주 나쁜 선거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지할 수 없음도 지지할 수 있음도 사라져 버린 단독후보로 결정되는가 했는데 이제는 ‘양해서’와 ‘사과문’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총대들에게 두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막장 선거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렇게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있는가? 두 후보인가? 아니면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선관위인가? 나는 선관위라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선관위는 없어져야 한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입각해서 말이다. 이토록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변질시키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내밀하게 부총회장 선거를 들여다보자.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선거법을 위반했습니다’라고 사과한 후보를 아니면 선거법을 위반했음을 사과했기에 ‘양해합니다’라고 한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상 둘 다 문제이다. 이렇게 하려면 정치적인 고려를 처음부터 했어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정치가 되고 화합과 이해의 정치가 된다. 그런데 한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지 않고 미루다가 선거 막판에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에게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사과하고’ 이미 자격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무슨 언질(?)을 주어서 양해한다고 ‘양해서’를 쓰게 해서 두 사람 모두를 다 자격 없는 후보(?)로 만들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난, ‘양해서’를 쓴 후보도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불공정하고, 깨끗하지 못한 선거에 ‘양해서’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총회의 지도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양해서’를 쓰지 않고 후보사퇴를 선언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문을 쓰고 후보의 자격을 얻어 부총회장에 출마한 후보에게도 묻고 싶다. ‘선거관리 규정을 어긴 후보입니다’라는 사과문을 쓰고 후보자가 되어야만 했는가를 말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규정을 어겼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사과문을 쓰고 후보가 되려고 하는가이다. 후보가 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사실상 교회의 선거는 이기고 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다. 누가 더 잘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가를 선출하는 것이기에 굳이 사과문까지 쓰고 나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후보가 되려고 했는데 당신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난 선거규정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후보의 자격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일꾼이 되십시오”라는 사퇴의 변을 내고 사퇴했다면 우리 총회의 정치는 성경적이고 헌법적인 정치가 살아났을 것이다. 선거규정 하나도 지키지 못한 후보가 어떻게 헌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후보자들이 사퇴하지 않고 짜고 치는 무슨 판처럼 선관위에 의해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서로 잘해 봅시다’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총회는 100회 총회 때부터 교회의 정치가 성경과 헌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신자유적인 심리정치란 참으로 매우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이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유권자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정치이다. 이 정치는 사실 유권자들에 유리하게 되는 것 같지만 기득권자들에 유리한 정치이다. 그래서 그 심리정치에 의해 수년 전(2016년) 우리는 두 사람의 목사 부총회장 후보를 자격 없음으로 규정하여 탈락시키고 현장에서 두 후보자를 선정하여 투표하는 장로교 역사상 있을 수 없는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는 다시 자격 없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게 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자격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더 좋아졌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법 규정 앞에서 평등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고민한다. 선거에 임하는 나 자신도 투명하지 않고 더욱더 선거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인 두 사람 모두 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출마했고 이제 나 역시 내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선거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 총회의 바른 정치는 언제나 구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아예 구호도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가 장로교 정치에 맞게 되려면 사실 나와는 상관없이 작성된 ‘성명서’지만 8월 29일 전국호남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우리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총회 참석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성명했기에 그랬으면 한다. 적어도 그날 참석한 450명 정도 되는 총대들은 부총회장 선거에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면 호남협의회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선출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성명서’가 있다면 나 역시 찬조금 들고 그날 참석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자격이 있든 없든 두 후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우리 총회의 부 대표자와 대표자의 자격을 2년 동안 주게 될 것이다. 심각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바보이다. 사실상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고는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삶에서 목사로서 터득된 비결이 있다. 믿음이 없는 바보, 신학과 신앙이 없는 멍청이는 항상 세상에서 방황하고 믿음 있는 신학과 신앙에 굳게 선 자는 세상에서 여행하고 산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방황을 해도 우리 총대들은 여행을 했으면 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왜? 두 후보자에게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자격을 주고 우리에게 할 수 없는 투표를 하라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권위주의자에게는 투표하지 말자. 도덕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민주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아니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수년 동안 나는 권위주의자에게 참 권위가 없고 도덕주의자에게 진정한 도덕이 없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민주투사에게 정작 민주 의식이 없음을 보아왔고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인 개혁주의자들에게 참 신앙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찍자. 누가 한들 나아질 총회가 아니다. 우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러나 손가락을 잘라낼 각오로 찍어야 한다. 좋은 놈(?) 중에서 좋은 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서 나쁜 놈(?) 중에서 더 나쁘지 않을 분(?)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이렇게 후보자 두 분을 나쁜 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쁘면 자격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한 분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섯 분의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기도는 하지 말고 화장실에 앉아서 매일 매일 고민해 보자. 어차피 프로젝트 된 선거에서 서브젝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를 골라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개혁신학과 신앙의 반대자인가를 투명성의 원리에서가 아닌 불투명성의 원리 속에서 선택해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잘못하면 지역적이고 신학적이고 광신(狂信)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힐링(healing)의 효과를 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킬링(killing)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총대들에게 두 분의 후보 중에서 누가 킬링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총신과 광신의 대결도, 영남과 호남의 대결도, 교갱과 영성의 대결도, W.E.A의 찬성과 반대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아주 심각한 신앙적, 신학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실 문화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왜 신앙이나 신념과 다른 합리적인 견해가 신앙이나 신념의 도그마의 껍데기를 깨고 들어오면 우린 갑각류들이 발작하듯 반발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느덧 내 개혁신앙과 신학이 지적 갑각이 되었고 교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신앙의, 신학의 순결함을 지키고 방어한답시고 이념적 순결주의가 되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내 신앙과 신학의 정당성만 스스로 부여하고 신학적, 윤리적 나르시시즘에 젖어 두 후보에 대한 차이도 차별도 모른 채 내 생각과 판단에 틀리면 조롱, 내면의 비웃음과 반대로 일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프로젝트화 한 선관위원들을 향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술수를 지켜보고만 있는 비참한 총대일 뿐이다. 이젠 비굴해지기까지 한다. 문화신학자인 리처드 니버는 “교회가 현대의 문화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교회의 영적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우리 총회의 정치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이러한 선거 프로젝트를 만들고 힘쓰는 동안 우리 총회의 영향력은 총회 안에서도 그리고 사회 속에서도 급격히 쇠퇴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투표를 하든 안 하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부총회장이 될 것이다. 부탁한다. 킬링하지 말고, 힐링의 총회 정치를 세워가기를, 그리고 이 선거는 우리 교단 역사에서 한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길 기도한다. 누가 부총회장이 될 것인가? 당신이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누가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 - 이 글은 2022년 9월 6일 기독신문의 ‘선관위 입장, 사과문 감사의 글’이 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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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총회 발전의 지도자 누구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고 현재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는 이상우 박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한다. “197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서강대에서 북한정치를 강의하고 있었죠. 비 오는 날이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갑자기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저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낡은 가방하고 비닐우산을 든 채로 영문도 모르고 삼성 사옥으로 갔죠.” 파란색 비닐우산을 들고 회장실로 들어가 보니 이병철(1910~1987) 삼성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박사, 반갑소. 내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모셨어요.” 무슨 얘긴가 긴장했는데 이런 질문이었다. “북한의 논 단보(991.74㎡)당 쌀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가 않아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나라가 300㎏ 정도니 북한은 비료도 부족하고 관개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마 우리의 반 정도일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 숫자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이병철 회장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박사, 잘 들으시오. 앞으로 남북 관계는 말입니다. 바로 이 숫자로 판가름 날 겁니다.” 지나고 보니 이 회장의 그 말은 참으로 탁견이었다. 김일성이 만약 남한 수준으로 북한 주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 ‘이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얘기다. 인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여유 있게 남한을 압박할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젊은 이상우 박사는 여기서 문득 좀 당돌한 질문을 했다. “회장님께서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지금까지 이뤄 놓으신 자산으로 무엇을 하시려 합니까?” 이병철 회장은 조금도 주저 없이 답을 했다. “나머지 인생은 21세기에 한국 국민이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의 기초를 닦는 데 바칠 생각이오. 오랜 검토 끝에…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전자산업과 항공산업입니다.” 그야말로 ‘기업 활동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라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이었다. 40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결국 이병철 회장의 꿈은 절반만 거의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그 바탕에는 먼 앞을 내다보는 창업자의 안목이 있었다고 이상우 이사장은 말했다. 지금 삼성 총수가 된 그의 손자가 꼭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일화라고 생각됩니다. 이상우 이사장은 또 예전에 어느 전직 대통령이 취임하기 훨씬 전에 만났던 얘기를 했다. 이 이사장은 이런 충언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무엇을 모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쓰는 일입니다. 그걸 잘 아는 사람에게 제대로 물어볼 줄만 알면 됩니다.” 그러면서 예전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를 해 줬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인 시절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인물 중 한 명이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구상(1919~2004)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꼭 구상을 만났다고 합니다. 구상은 박 대통령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그와 노선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그를 만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옳다는 말만 하니 그들에게선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을 구상이란 양반이 해 준다’라는 것이었다. ‘허물없는 말을 해줄 수 있는 바깥 라인’을 약 10년 동안 소중하게 유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별세하기 얼마 전부터 더 이상 구상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구상 시인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눈에 암운(暗雲)이 끼었구나!” 암운이란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검은 구름으로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듯한 낌새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상우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어느 전직 대통령이 취임하기 훨씬 전에 만나 그런 얘기를 했지만 듣지 않았어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산물입니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만남과 배움이고 결국 사람이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총회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대내외적으로 밝히기를 꺼리는 것 같은 감투 제106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소강석은 9월 1일 경기도 화성 GMS본부에서 제18차 전체 회의를 갖고 제107회 목사부총회장에 입후호한 오정호 목사에 대해 한기승 목사의 결자해지(結者解之) 양보를 얻어 후보 확정을 결정했다고 한다. 맨돈 소강석의 오랜만의 쾌거다. 이로써 제107회 총회 목사부총회장를 놓고 오정호 목사와 한기승 목사가 영남과 호남을 배경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게 됐다. '다윗과 골리앗’ 저자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1963년 9월 3일 ~ )은 우리가 강점과 약점에 대해 오해할 때가 많다고 설명한다. “약자라는 입장은 종종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준다. 약자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며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약점은 거인 용사 골리앗에 맞서는 젊은 목자 다윗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하고 기꺼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게 하며 그리고 그것이 하찮은 물맷돌일지라도 전에 없던 효과적인 수단이나 도구로 바뀌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다윗들을 ‘믿음의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는 까닭에서 나온 말이다. 99% 불리해도 잘 보면 1% 유리한 구석이 보인다. 그걸 그냥 넘기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약자는 강자를 이겨보려고 별별 궁리와 시도를 다 하지만 사실 승리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 왜냐면 당연하게 여겨져 온 자신의 습관을 살짝 비틀고 작은 장점도 극대화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복귀한 여자 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이 학창 시절 키가 작아 늘 벤치 신세였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쓴 책에서 말했다.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았다. 내가 가진 조건으로도 꼭 필요한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공이 오는 지점을 예측하는 눈썰미를 키웠다. 감각을 익히려고 공을 끼고 밥 먹었고 잘 때도 끌어안고 잤다. 단신 선수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은 수비라고 결론 내리고 혼자서 수도 없이 벽에 공을 던져 받아내는 훈련을 했다. 고2 때부터 기적처럼 키가 크면서 ‘수비가 뛰어난 공격수’로 단숨에 빛을 발했다. 그러나 나만의 무기를 만들고자 노력해오지 않았다면 내게 주어진 기회를 어쩌다 찾아온 운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장점이라도 무게중심을 두고 키워나가면 단점을 돌파할 수 있다. 그것을 완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0-13 2022-09-0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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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2
  • 맨돈 소강석의 승부
    예술가가 돌에 애착을 갖는 까닭. 멈춘 듯 고요하면서도 꽉 찬 밀도의 힘이 느껴지는 비범한 기운. 생명 없는 돌도 그 내용을 알려면 그 형식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과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지금까지 말과 글은 요란하지만 총회와 교계를 위한 ‘정책적 전문성’도 ‘미래적 통찰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도덕적 정당성’도 잃고 있다. 그에게 정치는 교회와 총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여정이 아닌 그저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처럼 보인다. 3 박사 학위를 지닌 목사이고 시인인 그는 미래 목회 생태계 정책으로 무장된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라 선거신학, 정치신학에만 밝은 ‘꾼’처럼 느껴진다. 노름꾼이나 장삿꾼일지는 몰라도 정치인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라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Milton Roth, 1933년 3월 19일 ~ 2018년 5월 22일)의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새기고 ‘영감’이 아닌 ‘마감’의 힘으로 버티는 게 이 기레기 업계의 일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은 이런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니 할 수 있고 갈 수 있고 쓸 수 있을 때 힘 내보자는 생각이 든다. 다소곳이 봉투를 내미는 머리에 장모와 더불어 맨손 얹어 기도만 해줘도(교황청은 인쇄라도 해 영업사원 요한 테첼을 통해 면죄부를 팔았는데) 돈이 생기는 맨돈 소강석도 그럴까. 하나님의 섭리는 그런 면죄부 장삿꾼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지만... 성경은 말씀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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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2
  • 맨돈 소강석 선거법 위반 소지素地
    6.1 지방선거를 42일 앞두고 부실 선거관리로 말 많던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했다. 노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위원 회의에서 “부실 투표 관리 책임을 통감한다”라면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공직선거 관리 총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현직 대법관이다.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하더라도, 대법관 직위는 계속 수행한다. 노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아 2020년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다. 4월 2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는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경기남부청 반부패수사계는 지난 5일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및 운영 부실 논란에 휩싸인 노 선관위원장에 대한 고발 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2021년 3월 20일, 4월 7일 지방선거 보궐선거를 앞두고 맨돈 소강석이 내려다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재난지원금은 가급 적 3월 중에 집행되도록 속도 내달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작년 국회에서 “총선 전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이번 지원금도 선거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거법은 ‘공무원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대통령의 선거 전 재난지원금 독촉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면 무엇인가. 지난 2021년 2월 이재명 승리를 위해 뛰던 문재인은 여당 대표·장관 등을 대동하고 가덕도를 찾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방문 하루 전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주요 공약이라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그래도 “대통령 직무 수행”이라고 했다. 선거 심판이 아니라 정권 하수인이다. 총회 소속 목사들의 카톡 여러 모임방에 제3차 합동 포럼 개최에 관한 공고문이 올라왔다. 맨돈 소강석과 맨쇼를 벌여 죽었던 송병원을 제105회 총회 현장에서 부활시켜 장로 부총회장으로 당선시키고 절대 돈 먹은 적 없다는 이승희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혁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올린 공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시 : 2022년 8월 16일(화) 10시 30분 ~ 2시 장소 : 대전인터시티 호텔 대상 : 정회원 및 지역별 게스트 장로 3인씩 특별초청 1부 예배 설교 :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축도 : 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대행) 2부 축사 및 특강 축사 :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 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직책이 빠져 있다. 배만석 목사(사랑스러운교회, 전 총신대 신대원 총동창회장) 장봉생 목사(서대문교회, 은혜로운동행기도회 본부장) 환영사 : 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특강 :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고려대학교 법학박사 과정)_ 윌버포스와 합동 포럼의 비전 제107회 선거기간에 제106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제107회 선거관리 중책을 맡은 맨돈 소강석이 선거법 개악과 금권 부정 선거 달인임에도 축사를 한다. 이 모임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총회 정치꾼들의 모임이다. 8월 16일 대전인티시티호텔에서 모인다. 도대체 오비이락의 의혹이 있는 모임을 왜 갖는 것이고 엄정한 선거관리의 책임을 진 선거관리위원장임에도 맨돈 소강석은 누구를 위해 무슨 축사를 하는가. 그 행위가 총회 선거법을 위반하는 소지가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그 주최 측 핵심인물로 추측되는 언론인은 이번 선거 특정 후보와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노예제 폐지 업적을 이룬 영국의 정치인을 내세운 특강은 총회 소속 목사이고 언론인인데 고려대학교 법학박사 과정의 연구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다.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 또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금지되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며 헌법과 법률로 위원의 임기와 신분을 보장하여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배제함으로써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총회선거규정은 위원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6조(조직 및 직무) 1. 위원장: 위원회를 대표하여 선거관리의 제반 사항을 총괄한다. 9. 모든 입후보자는 소정의 양식을 따라 “공명선거 서약서”를 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그 내용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과 총회 규칙 및 선거규정 등을 비롯한 제반 결의에 대하여 성실히 준수할 것과 선거와 관련하여 총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대하여 사회법에 의거 민, 형사상 제소, 고소, 고발 등을 하지 않기로 서약합니다."로 한다. 제26조(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1. 총회임원,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및 기관장, 재판국원, 선거관리위원(선출직), 총회 총무 입후보자(이하 ‘입후보자’라 함) 및 그 지지자는 선거기간 중 일체의 금품 요구 및 금품 수수(金品授受)를 할 수 없다. 4.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 선거운동기간이 종료한 후, 총회 개회 일부터는 교인 동원 및 문자 전송 등 일체의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위반 시에는 후보자격이 상실된다. 단, 부임원으로서 정임원 후보인 경우와 단독후보로 출마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허락을 받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 총회선거법 제26조 4항은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라고 규정하는데 그것을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선거관리위원장은 온갖 행사에 참여해 맨쇼를 하며 어겨도 되는 것인가. 그러한 특권은 사회법과 총회선거법에서도 금하는 금품 수수의 맨돈 위력에서 나오는 것인가. 제28조(선거규정 위반자 처벌규정) 2항은 다음과 같이 엄하게 규정한다. 본 규정 제26조 1항과 2항을 위반한 자로서 금품제공자는 영구히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고 금품을 요구 및 받은 자는 금액의 30배를 총회에 배상하며 위반 즉시 10년간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되 그 기간은 배상금을 총회 입금일로부터 계수한다. 목사임에도 성이 차지 않아 배광식도 소지한 법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언론인으로 알고 있다. 총회 선거기간의 정치적인 특강에 앞서 옛 선비들도 금과옥조(金科玉條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기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나 규정)로 삼은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아무 상관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의 불미(不美)한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맨돈 소강석은 제발 정신을 차리고 총회 선거관리위원장의 본분과 목사의 직분을 되새겨 맨돈과 맨쇼를 삼가 바로 서기를 바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얻는 데 매우 열심이었다.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하나의 학문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지혜에 대한 사랑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관습도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무에서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신탁에 조회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신의 계시에 의지했을까? 그들이 신탁에 의지한 것은 지혜의 부족 탓일까, 지혜로움 때문일까. 신탁에 의지한 그리스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신의 지혜를 구한 까닭은 인간 지혜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 지혜의 부족함을 인정한 것이 바로 그들의 지혜였다. 신탁의 뜻을 해석하면서 그리스인들은 더 지혜로워졌다. 신적인 계시의 뜻을 묻고 따지는 과정은 인간적 지혜를 갈고닦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신탁의 관습은 신탁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묻고 따지고 시험하는 지혜’,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는 지혜’를 가르쳤던 것이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수많은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과도함을 삼가라.” 이 두 경구가 왜 거기 새겨져 있었을지는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욕에 사로잡힌 자에게 어떻게 신의 뜻이 올바로 전해질 수 있을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그러니 “너 자신을 알라”와 “과도함을 삼가라”는 신탁에 앞서는 신탁, ‘최고의 신탁’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한계를 알고 지나침 없는 행동의 지혜를 찾는 일이었으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2-25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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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윤석열 대통령 대처 수상처럼
    윤석열 정부의 동시다발적 사정(司正)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을 비롯해 경찰과 감사원 등 기존 사정 기관은 물론이고 법무부, 국토교통부, 통일부와 같은 정부 각 부처까지 전 정권 관련 각종 의혹 파헤치기에 나서고 있다. 이전의 경우 정권교체 후 벌어진 사정 작업이 주로 과거 정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윤석열 정부의 사정 작업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현 야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와 현재 권력 모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 적이 될 능력을 갖추는 것, 적이 되는 적은 강한 천성을 전제로 하며 그 까닭에 저항을 찾아다닌다... 공격하는 자의 힘에 대한 일종의 척도는 그에게 필요한 적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맞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나 또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뤄진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승부를 건 문제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융통성과 무기를 동원해야만 맞설 수 있는 저항들 그리고 자신과 동등한 힘을 지닌 적을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가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가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요행으로 여겼고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을 이끌고 처음 2~3년 동안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대처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선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를 매도했다. 그녀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모두 질식시켜서 영국 경제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주범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깨고 소비에트연방을 힐난했다. 1978년과 1979년에 걸친 겨울, 몇 개의 공공부문 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대처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면서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핸 총리를 이 파업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대담하고 분파적인 발언으로서 저녁 뉴스를 장식하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선거의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문재인처럼 유권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안심시켜야지 겁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 좌파가 득세한 당시의 영국은 그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대처는 지금까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해왔지만 총리가 된 이상 논조를 절제하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금 윤석열 시대처럼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대처 총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선거 때 공약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삭감이었다. 대처 총리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캘러핸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 다수가 수년간 자신들을 대해온 대처의 처신에 더 이상 분개를 참지 못하고 이준석과 이재명처럼 공개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대처는 보수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온건한 의원들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대처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경력에 오점이 남을까 봐 두려워했다. 대처 총리는 그들을 내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작심하고 모든 반대자를 밀어낼 기세였다. 적들의 영역은 점점 커졌고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하락 일로에 놓여 있었다. 벌써 탄핵을 들먹이는 윤석열 반대 여론처럼 다음 선거에 그녀가 끝장날 것이 틀림없었다. 1982년 대서양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러사아의 푸틴처럼 국내에 산적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포클랜드섬을 침공했다. 포클랜드는 영국령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군사정권 관리들은 영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불모지인 포클랜드를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처는 주저하지 않고 포클랜드에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1만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무의미하고 희생이 큰 이 전쟁을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다수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섬의 재탈환에 실패한다면 보수당은 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독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그녀의 자질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놓던 바로 그 자질을 말이다. 완고한 고집이 이제는 용기와 고결한 기품으로 보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데다 제 경력만 챙기는 주위의 남성들에 비하면 대처 총리는 단호하고 강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자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삽시간에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가 잊혀졌다. 대처는 정치무대를 장악했고, 다음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윤석열처럼 마거릿 대처도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중산계급의 여성이고 우익 과격파였기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는 권력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선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만(아웃사이더로 살기는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렇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여느 검찰총장과 달라 세간의 이목을 모으던 차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처가 주위의 남성들처럼 행동했다면 다른 남성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아웃사이더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처럼 당당한 대처 역시 덧없고 치상적인 대중적 인기 따위에 영합하지 않았다. 김종인 같은 정치꾼들은 지지도의 수치에 일희일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즉 정치가들이 전쟁을 하면 얻으려고 하는 목표물)은 호감을 주는 인사보다 우위를 차지한 인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일부 대중이 미워하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 맨돈 소강석처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맨돈만 뿌릴 수는 없는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자들, 거짓의 제왕 이재명이나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자들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든든하게 의지할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존재다. 그래야 피아가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드러날 것이다.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일이나 작금의 이런저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눈 가리고 아웅 식 여론 조사 한가운데로 밀어 넣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정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그런 허위의 한가운데는 정치꾼과 언론꾼이 설치는 이권 타협의 영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긴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언제나 저항이 가장 적고 우호적인 경로만을 찾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망각하게 되고 조국과 추미애처럼 우왕좌왕하는 어중이떠중이들과 함께 수렁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스스로를 적들에게 둘러싸인 아웃사이더로, 투사로 여겨야 한다. 끊임없는 전투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의의 용사로 강인하고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좌파 무리들과의 반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대처 수상처럼 반목 없이는 전투도 없고 전투가 없으면 승리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파업을 즐기는 자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문재인 패거리의 유혹이 아니라 대처 수상의 정면돌파 대처를 본받아 민노총의 파업 병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양보해지기보다는 불법을 타파하고 이겨 존경받고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불법하고 불의한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더 오래 지속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요즘 진행되고 있는 과거 정권의 수사 정국에 대해 “통상 이런 사정 작업의 최종 종착역은 전직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는데 과연 어느 시점에 전 대통령의 이름이 흘러나오느냐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BC 545년경~BC 470년경)는 '손자병법'에서 대처 수상이 실행한 것처럼 말했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적이 오기를 대비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누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처 수상처럼만 하면 영국병을 고친 대처 수상처럼 한국병을 고친 위대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나서 선동하는 좌파 무리가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외침과 기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의 함성이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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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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