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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 우리의 봄
사노라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수원의 한 교회에서 만났다. 옷깃에 걸린 기도와 찬양의 향기들이 두 사람이 예배 전에 이야기 나누는 교회 탁자 위에 떨어져 반짝였다. 좀 늦게 참석한 예배 후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하늘의 길처럼 진실하게 사는 길 하나 그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많은 이야기를 나눠놓고 녹음한 내용들이 하도 뜬금없어 그의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더 나은 길을 그가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아무 향기가 없는 메마른 낙엽들뿐이었다. 사노라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그런 날엔 혼자서 산을 오른다. 지칠 ‘때까지 산에 오른다. 오르다 보면 작은 참새 무리 언덕을 넘나든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한 마리 참새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뚫린 길을 따라 가볍게 날아간다. 나뭇가지 왼쪽에서 다시 위쪽으로 그렇게 계속 뚫려있는 하나의 길로 한 마리 참새가 날아간다.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뚫려 있는 한 마리 참새만 아는 영혼의 그 길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한 푼에 팔리는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참새가 사라진 다음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그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가다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립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2010년 총회부흥사회에서 발행하는 부흥소식 제27호에 요셉이 자기를 판 형제들과 눈물의 재회를 하는 창세기 45:1-8을 본문으로 “앞서 가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실렸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이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은 영리하고 뛰어난 사람이다. 학문을 준비하고 재물도 준비해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얼마 못가 부패하고 썩어 감옥을 가고 쇠고랑을 차는 일이 벌어진다. 세상적인 재주는 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학문이 부족하여 세상에서는 쓰임 받지 못하나 영성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인다. 모세는 세상적인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으면서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영성을 기른 후에야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수 있었다. 바울 사도도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도였지만 세계의 중심이 되는 로마의 시민을 가졌고 당대 최고의 학부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가 기록한 편지는 13편의 성경이 되어 우리가 읽고 주님을 만나는 자원이 되었다. 꿈과 함께 영성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어야 한다. 앞서 가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지혜로 충만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총회는 우리의 봄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총회를 향해 “진짜 총회 쑥대밭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 사람이 있다. 목사 면직을 당하기 전 총회부흥사회 부흥소식 2010년 제27호에 직접 글로 남겨 자신의 당할 일처럼 예언한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일까. “얼마 못가 부패하고 썩어 감옥을 가고 쇠고랑을 차는 사람일까 아니면 영성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일까.” 총회는 우리의 봄이다. 우리가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리고 이후까지 총회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추운 흔적 다 지우며 애쓰기 전 남쪽으로부터 끊임없이 꽃을 피우며 다가오는 총회는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봄이다. 더욱이 성경은 말씀한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수기 16:1-3, 28-33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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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충남노회 사태 미로 또는 미궁
네 믿음을 살아라. 젊거나 늙거나 저 느릅나무처럼. 봄날엔 푸르게 오르는 풀잎으로 살다가 여름엔 풍성하게 찬양한다. 그리고 가을이 모든 것을 바꿔 놓으면 더 느려진 기도로 다시 뉘우치듯 소망으로 황금빛이 되지. 겨울이면 나뭇잎들이 회개 눈물인 양 서서히 다 떨어져도 보라. 그는 서 있지. 나무의 몸통과 가지 벌거벗은 사랑의 힘으로. 삶은 미로(Maze)일까, 미궁(Labyrinth)일까. 미궁은 하나의 길이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은 귀착지에 이르는 구조이지만, 미로는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귀착지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는 구조다. 삶은 미로인가, 미궁인가.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고 결국 죽음이라는 귀착지에 이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궁을 닮았다. 그러면 충남노회 사태는 미로인가 미궁인가. 각종 해결사들이 명멸하는 그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갈팡질팡 귀착지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다. 반면에 고수들이 삼각대로 버티고 있는 그 갈림길에서 누군가는 뇌물수수 암수를 스스로 드러내 자멸이라는 귀착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남노회 사태는 미궁이다. 소크라테스는 신성 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탈옥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념과 믿음,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다. 성경은 말씀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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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재명의 노무현 대통령 평가
과거엔 우리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과 다시 만나면 반갑다. 때론 뭉클하기도 하다.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기본(基本)’이다. 모든 ‘기본’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송태근 목사처럼 ‘단순(simple)하다’라는 것이다. 문재인 같은 지도자는 문제가 풀리기를 기다린다. 이재명 같은 지도자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숭앙과 추앙의 대상이 김대중·노무현에서 문재인·이재명으로 이동한 이후 민주당이 ‘부도덕병(不道德病)’을 앓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당 대표들의 도덕성이 하나같이 평균 이하’라는 탄식이 당내 소리만이 아니다. 이재명이 ‘밟았던 길’, ’행동하는 방식’, ’토해낸 말’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던 민주당 모습과 결이 다르다. 여러 야당 총재·대표를 겪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파란만장한 총회의 듣도 보도 못 한 유형의 정치인이다. 정치하다 보면 특히 군사정권하에선 야당 지도자가 법정에 서는 일이 없지 않았다. 이른바 시국(時局) 사건이었다. 이재명처럼 규칙적으로 법정으로 출장가다시피 하는 야당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K신문에 2023년 12월 6일 이런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L 목사 “J·L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 L 목사의 말 가운데 L 장로에 관한 말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은 것같다. 오히려 그간의 행적과 작금의 행태를 봐서도 L 목사의 말이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L 장로는 이런 심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교회의 어두운 기도실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총회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믿음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괴로운 거야.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총회 소망은 끝이 났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나는 장로가 아니라 신자이고 싶다. 총회 높이 올라가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모래 덮인 아라비아의 그 순교자이고 싶다.' K신문은 L 목사의 말을 이어서 전했다. “J 장로 코너 몰려 물귀신 작전한다.” “합리적으로 L 장로도 믿을 수 없다.” 107회기 선관위 L 목사가 자신에게 선관위 1000만 원 게이트의 책임이 있다고 밝힌 J 장로의 발언에 1000만 원보다 1000% 강하게 반발하며 물귀신까지 들먹였다. “J 장로의 주장은 1000% 믿을 수 없다. J 장로와 L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 J 장로가 코너에 몰리니까 물귀신 작전을 하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 열린 감사부 소환조사에서 J 장로는 “1000만 원은 내 돈이다. L 장로는 무관하다”라면서 “L 목사가 (1000만 원을 주도록) 유도했다. L 목사가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J 장로는 제108회 총회 당일 9월 18일 오전 열린 선관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1000만 원이 L 장로의 돈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L 목사는 선관위원들 앞에서 문제의 각서를 꺼내 읽었다. 당시 K신문 기자가 L 장로에게 조사처리위원회가 구성돼 조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J 장로는 반발했다. “나뿐만 아니라 L 목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15년 4월 10일 본인의 트위터에서 이재명은 외쳤다. "썩어 빠진 공직자들이 나랏돈 훔치고 국민을 지배하는 나라. 언젠가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해야 합니다." 그렇듯 K신문 기자에게 L 목사는 그 이재명처럼 흥분하며 반박했다. “말 같은 소리여야 대꾸하지. 클린 선거하자고 한 내가 그 짓을 왜 해. 합리적으로 J 장로가 자기 돈으로 1000만 원을 줬다는 게 말이 되냐. J 장로가 이이복 장로의 선거운동원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J 장로를 신뢰하기 힘들다. J 장로와 주변 사람들의 계좌를 추적하면 1000만 원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현금이 오간 사건에 사법 수사권도 없는 총회 관계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작태를 이재명이 알면 뭐랄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좀 크게 놀아. 그게 뭐야 '억'도 아니고 '천' 단위로 그런 말을 하고 고생을 해. 다 내려놓고 내 밑으로 와. 그러면 최소 수십8억, 수백억이야. 그만 정도는 돼야 내 부하처럼 어떤 위험도 감수할만하지. 안 그래 목사님들!" 2016년 6월, 한겨레TV에 매주 금요일 올라온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이재명은 이기죽거렸다 "저는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좋은 방향으로. 용서나 화해, 화합은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지고 반성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에요. 강도하고는 화해하는 게 아니야. 불법 범죄를 저지른 부정, 불합리한 집단 인간들하고는 화해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노무현 대통령... 지금 서거하셨는데 너무 안타깝죠. 주어진 권한을 상대가 정말 인간으로 보이고 내가 인간으로서의 최선과 성의를 다하면 그들이 받아들여 줄 거라고 믿은 거예요." 성경은 말씀한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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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배광식 목사 기도론
지금 남쪽에는 동백이 한창이다. 이전에는 꼿꼿이 목을 든 채 통째로 떨어지는 저 꽃이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기개’와 ‘성품’이 느껴져 소중해진다. 소나무를 닮은 꽃을 꼽으라면 이젠 동백을 꼽고 싶다. 훌쩍 피었다가 시들지 않은 채 제 목을 쳐내며 떨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독야청청 아니면 뭔가.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 목사가 2021년 12월 14일 자 기독신문에 울산 기도 바위 배광식 목사의 기도론을 게재했다. ... 더욱이 15년 동안 무릎을 단련시킨 배 총회장을 세우셔서 ‘은혜로운동행기도론’으로 부흥의 불을 지피울 준비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배 총회장은 이미 칼빈이나 에드워즈, 맥체인 그리고 과거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했던 특별한 기도나 끈질긴 기도 및 간절한 기도를 목회 현장에서 체험한 바 있다. 그는 오직 기도만이 개인과 교회가 사는 길이요, 부흥의 발판이라는 것을 15년간의 산기도 철야를 통해서 실감 나게 경험했다. ... 배 총회장이 15년간 이어온 산기도 영성을 바탕으로 내건 ‘은혜로운동행기도론’은 존 칼빈(John Calvin ,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의 '특별 기도론'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년 10월 5일 – 1758년 3월 22일)의 '끈질긴 기도론', 그리고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 1813년 5월 21일 - 1843년 3월 25일) 목사의 간절한 기도론 및 위기의 때 국가와 총회를 살려냈던 기도회를 계승한 특별기도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도란 무엇인가. 성경은 기도의 모델을 주님의 기도로 제시한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마 6:7-11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都城)의 새벽 파루(罷漏; 조선시대 도성내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치던 제도)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自擊漏,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새벽기도’는 장로교회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다.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査經會) 때 소규모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道) 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의 발전과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城壁)을 다 허물었다. 사대문(四大門)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京城)에 보신각(普信閣)은 무용지물이라 폐쇄(閉鎖)되었다. 서울은 영혼(靈魂)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이러한 때에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였다. 주일마다 각 도시 교회와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종을 쳤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 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 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기도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 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시간과 시간의 사이(時間) 믿음의 경계선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품고 있는 기적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간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彼岸)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公的)인 기도회로 의례화됐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 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의 그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 기도로 교회가 산다. 이슬람교의 기도 행위는 (만인이 평등하기에 사람에게 엎드리면 안 되고) 성지 메카가 위치한 방향을 향해 엎드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행동은 이슬람교도에게 일종의 생활 습관 수준으로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는 어디에 있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 이를 위한 전용 융단도 존재한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메카가 있는 방향이 중시되기에 나침반 등의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장거리 운행 비행기의 기내 정보 시스템을 통해 현 위치에서 메카가 있는 위치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돈키호테가 그의 충실한 시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 내 친구 산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의 행동도 아니야. 그건 정의라네.” 한기승 목사처럼 웃음을 머금고 울산 기도 바 배광식 총회장도 후배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보게, 내 동료와 후배들. 칼빈이 개혁주의로 세상을 바꾼 것은 사상도 행동도 아니네. 그건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Righteous God)에 믿고 전한 기도의 삶이라네." 2021-12-20 수정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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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직관의 지도자 고광석 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 상대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갈등을 많이 하게 된다. 그때가 중요하다. 바로 그때 나의 이익을 버리고 바른 마음으로 살면 인생이 바뀐다. 바른 한 생각이 인생을 바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한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르지 않으면 히나님의 복이 깃들지도 않고 그 복을 누릴 수도 없다. 그래서 교회 풍속을 해치는 음기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의 햇볕을 쬐어야 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널리 알리는 게 상책이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소인배를 포용하되 그들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교화시켜야 한다. 소인배 난동을 제약할 법규를 제정하고 알려야 한다. 그게 총회 리더가 할 일이다. 2013년 12월 18일 속전속결의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는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총회 임원회를 주재하며 제98회 총회에서 행정 보류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했다. 2014년 9월 25일 제99회 총회 넷째 날인 9월 25일 오전 회무에서 총대들은 한기총 탈퇴 결의를 논의했다. 이렇게 강하게 말한 총대도 있었다. “한기총은 이단의 온상이다. 한기총을 탈퇴해야 한다.” 반면 일부 회원들은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자고 말했다. 직관의 지도자 고광석 목사는 말했다. “한기총 탈퇴는 임원회에 일임하든 안 하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세상일은 모두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뒤집어지게 마련이다." 총회는 정치인이 그 모범을 실천하여 과거의 병폐를 불식시켜 주기를 요구한다. 총회장과 정치인의 인격과 신앙이 확고하다면 총회 목사와 장로들은 사심 없이 따르는 법이다. 우선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정직은 말이 아니고 실천이다. 정치는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지 말재간이니 금전의 열매가 아니다. 우리는 언행이 다른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정치적 실적을 과장하거나 ‘비신앙’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지도자가 두 개의 잣대로 위선을 감행하는 태도는 총회 구성원의 불신과 배척을 자초할 뿐이다. 총회 정치는 정의의 가치와 질서를 떠나서는 존속하지 못한다. 정의는 권력의 산물이 아니다. 러시아 푸틴이나 공산정권들이 그 길을 택했기 때문에 세계와 인류가 공분을 느끼고 있다. 정의는 더 많은 교인의 자유와 신앙을 위한 필수조건이지 정치상품이나 구호가 아니다. 그동안 총회 지도자들이 개혁주의 정의 구현을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왜 정의는 사라져 버렸는가. 편 가르기로 불신을 만들었고 돈 살포로 타락을 심화시켰고 교권 다툼은 진실을 역행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성경적 개혁주의를 염원했다면 총회와 노회 무대에서 상치되는 신앙관과 가치관으로 총회 적 불신과 고립을 자초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앙과 기도마저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총회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2-44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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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기승전결의 하루 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의 역설이 있다. 칭찬만 계속하면 칭찬의 가치가 하락한다. 칭찬만 일삼는 이의 칭찬이 비판을 주로 하는 이의 칭찬과 같은 무게일 리 없다. 계속 칭찬만 하는 사람은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칭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말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하루 일을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은 달라도, 처음 5분을 어떻게 보내는 가를 살펴보면,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알 수 있다는 뜻이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신문을 읽는사람, 아니면 지난 밤에 본TV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라는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가? 하루 일을 시작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골로새서 3:23에는"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앞에 놓여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 된 우리들이, 맡은 일을 앞에 두고 하품만 하거나 쓸모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런가 하면, 빌리보서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하는 일은 내가 하기 때문에 나의 일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할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땅에서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자이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늘의 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일이기에 소중하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은 마음의 자세를 흔드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직원회의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런데 회의장의 제일 높은 자리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주님께서 웃음을 지으시며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당신에게 물어보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현대인들은 습관처럼 "바쁘다"고 말한다. 또 실제로 자기 일에 열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쳇바퀴만 열심히 돌리는 다람쥐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을 맡기셨을 때, 어리석게도 창조의 보람과 기쁨을 포기하고 생존하기 위해 땀 흘려 수고해서 일해야만 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땀 흘려 수고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 땀과 수고와 노력을 들이면, 거기에는 분명히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시편 126:5~6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으로 얻은 열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갔다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일의 보상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열매를 맺는다. 이 땅에서 우리가 보다 좋은 직장을 찾는 것 보다 더 나은 보수를 받는 것, 그리고 자녀를 기업으로 얻는 것까지, 모두 주님이 주시는 열매이자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해야 할,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때로 눈물과 수고로 일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늘에서의 상이 큰 것은 물론, 땅에서 주님이 히릭하시는 상 또한 클 것이다.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일하기로 결심하는가? 그렇다면 "수고함으로 얻은 열매 보다 값진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기 바란다. 중국의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송나라 정치가이자 대학자 사마광(司馬光, 1019년~1086년)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역사가, 정치가이다. 그는 자치통감 서두에서 사람을 네 가지로 나눠 풀이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그가 역사 속 인물들을 평가하는 일관된 잣대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총회에도 상당한 유효성을 갖는다. 그는 덕[德]과 재주[才]의 유무(有無)를 들어 네 가지 유형을 추출 해냈다. 먼저 그는 덕과 재주를 이렇게 풀이한다. “무릇 귀 밝고 일을 잘 살피며 강한 것을 일러 재주라 하고 바르고 곧으며 도리에 적중해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일러 덕이라고 한다. 재주란 덕의 밑천이요, 덕은 재주의 통솔자다.” 그래서 재주는 덕을 통해 다듬어질 때라야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재가 승하고 덕이 박하다(才勝薄德) 하여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제시한다. 재주와 덕을 함께 갖춘 이를 일러 빼어난 사람이라 하고 재주와 덕이 모두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며 덕이 재주를 뛰어넘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을 뛰어넘는 사람을 소인이라 한다[才德兼全謂之聖人 才德兼亡謂之愚人 德勝才謂之君子 才勝德謂之小人].” 그의 인물론의 독특함은 재도 없고 덕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보다 재가 덕보다 높은 소인(小人)을 더 경계한 점이다. 사마광은 소인에게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진중권 교수처럼 말한다. “군자란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고, 소인은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한다. 재주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재주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일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어리석은 이는 설사 나쁜 일을 하려 해도 그 지혜가 두루 살필 수가 없고 힘도 감당할 수가 없다.” 독일의 법률가, 정치가,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로, 사회학 성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그의 논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유명한 막스 베버(Max Weber, 1864년 4월 21일~1920년 6월 14일)가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한 것은 성직자 평가와 정치인 평가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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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 우리의 봄
- 사노라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수원의 한 교회에서 만났다. 옷깃에 걸린 기도와 찬양의 향기들이 두 사람이 예배 전에 이야기 나누는 교회 탁자 위에 떨어져 반짝였다. 좀 늦게 참석한 예배 후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하늘의 길처럼 진실하게 사는 길 하나 그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많은 이야기를 나눠놓고 녹음한 내용들이 하도 뜬금없어 그의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더 나은 길을 그가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아무 향기가 없는 메마른 낙엽들뿐이었다. 사노라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그런 날엔 혼자서 산을 오른다. 지칠 ‘때까지 산에 오른다. 오르다 보면 작은 참새 무리 언덕을 넘나든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한 마리 참새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뚫린 길을 따라 가볍게 날아간다. 나뭇가지 왼쪽에서 다시 위쪽으로 그렇게 계속 뚫려있는 하나의 길로 한 마리 참새가 날아간다.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로 그리고 잎과 잎 사이로 뚫려 있는 한 마리 참새만 아는 영혼의 그 길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한 푼에 팔리는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참새가 사라진 다음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그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가다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립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2010년 총회부흥사회에서 발행하는 부흥소식 제27호에 요셉이 자기를 판 형제들과 눈물의 재회를 하는 창세기 45:1-8을 본문으로 “앞서 가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설교문이 실렸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이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은 영리하고 뛰어난 사람이다. 학문을 준비하고 재물도 준비해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얼마 못가 부패하고 썩어 감옥을 가고 쇠고랑을 차는 일이 벌어진다. 세상적인 재주는 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학문이 부족하여 세상에서는 쓰임 받지 못하나 영성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인다. 모세는 세상적인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으면서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영성을 기른 후에야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수 있었다. 바울 사도도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도였지만 세계의 중심이 되는 로마의 시민을 가졌고 당대 최고의 학부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가 기록한 편지는 13편의 성경이 되어 우리가 읽고 주님을 만나는 자원이 되었다. 꿈과 함께 영성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어야 한다. 앞서 가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지혜로 충만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총회는 우리의 봄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총회를 향해 “진짜 총회 쑥대밭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 사람이 있다. 목사 면직을 당하기 전 총회부흥사회 부흥소식 2010년 제27호에 직접 글로 남겨 자신의 당할 일처럼 예언한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일까. “얼마 못가 부패하고 썩어 감옥을 가고 쇠고랑을 차는 사람일까 아니면 영성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일까.” 총회는 우리의 봄이다. 우리가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리고 이후까지 총회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추운 흔적 다 지우며 애쓰기 전 남쪽으로부터 끊임없이 꽃을 피우며 다가오는 총회는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봄이다. 더욱이 성경은 말씀한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수기 16:1-3, 28-33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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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 우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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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충남노회 사태 미로 또는 미궁
- 네 믿음을 살아라. 젊거나 늙거나 저 느릅나무처럼. 봄날엔 푸르게 오르는 풀잎으로 살다가 여름엔 풍성하게 찬양한다. 그리고 가을이 모든 것을 바꿔 놓으면 더 느려진 기도로 다시 뉘우치듯 소망으로 황금빛이 되지. 겨울이면 나뭇잎들이 회개 눈물인 양 서서히 다 떨어져도 보라. 그는 서 있지. 나무의 몸통과 가지 벌거벗은 사랑의 힘으로. 삶은 미로(Maze)일까, 미궁(Labyrinth)일까. 미궁은 하나의 길이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은 귀착지에 이르는 구조이지만, 미로는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귀착지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는 구조다. 삶은 미로인가, 미궁인가.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고 결국 죽음이라는 귀착지에 이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궁을 닮았다. 그러면 충남노회 사태는 미로인가 미궁인가. 각종 해결사들이 명멸하는 그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갈팡질팡 귀착지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다. 반면에 고수들이 삼각대로 버티고 있는 그 갈림길에서 누군가는 뇌물수수 암수를 스스로 드러내 자멸이라는 귀착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남노회 사태는 미궁이다. 소크라테스는 신성 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탈옥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념과 믿음,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다. 성경은 말씀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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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충남노회 사태 미로 또는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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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재명의 노무현 대통령 평가
- 과거엔 우리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과 다시 만나면 반갑다. 때론 뭉클하기도 하다.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기본(基本)’이다. 모든 ‘기본’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송태근 목사처럼 ‘단순(simple)하다’라는 것이다. 문재인 같은 지도자는 문제가 풀리기를 기다린다. 이재명 같은 지도자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숭앙과 추앙의 대상이 김대중·노무현에서 문재인·이재명으로 이동한 이후 민주당이 ‘부도덕병(不道德病)’을 앓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당 대표들의 도덕성이 하나같이 평균 이하’라는 탄식이 당내 소리만이 아니다. 이재명이 ‘밟았던 길’, ’행동하는 방식’, ’토해낸 말’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던 민주당 모습과 결이 다르다. 여러 야당 총재·대표를 겪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파란만장한 총회의 듣도 보도 못 한 유형의 정치인이다. 정치하다 보면 특히 군사정권하에선 야당 지도자가 법정에 서는 일이 없지 않았다. 이른바 시국(時局) 사건이었다. 이재명처럼 규칙적으로 법정으로 출장가다시피 하는 야당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K신문에 2023년 12월 6일 이런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L 목사 “J·L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 L 목사의 말 가운데 L 장로에 관한 말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은 것같다. 오히려 그간의 행적과 작금의 행태를 봐서도 L 목사의 말이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L 장로는 이런 심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교회의 어두운 기도실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총회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믿음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괴로운 거야.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총회 소망은 끝이 났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나는 장로가 아니라 신자이고 싶다. 총회 높이 올라가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모래 덮인 아라비아의 그 순교자이고 싶다.' K신문은 L 목사의 말을 이어서 전했다. “J 장로 코너 몰려 물귀신 작전한다.” “합리적으로 L 장로도 믿을 수 없다.” 107회기 선관위 L 목사가 자신에게 선관위 1000만 원 게이트의 책임이 있다고 밝힌 J 장로의 발언에 1000만 원보다 1000% 강하게 반발하며 물귀신까지 들먹였다. “J 장로의 주장은 1000% 믿을 수 없다. J 장로와 L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 J 장로가 코너에 몰리니까 물귀신 작전을 하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 열린 감사부 소환조사에서 J 장로는 “1000만 원은 내 돈이다. L 장로는 무관하다”라면서 “L 목사가 (1000만 원을 주도록) 유도했다. L 목사가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J 장로는 제108회 총회 당일 9월 18일 오전 열린 선관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1000만 원이 L 장로의 돈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L 목사는 선관위원들 앞에서 문제의 각서를 꺼내 읽었다. 당시 K신문 기자가 L 장로에게 조사처리위원회가 구성돼 조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J 장로는 반발했다. “나뿐만 아니라 L 목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15년 4월 10일 본인의 트위터에서 이재명은 외쳤다. "썩어 빠진 공직자들이 나랏돈 훔치고 국민을 지배하는 나라. 언젠가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해야 합니다." 그렇듯 K신문 기자에게 L 목사는 그 이재명처럼 흥분하며 반박했다. “말 같은 소리여야 대꾸하지. 클린 선거하자고 한 내가 그 짓을 왜 해. 합리적으로 J 장로가 자기 돈으로 1000만 원을 줬다는 게 말이 되냐. J 장로가 이이복 장로의 선거운동원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J 장로를 신뢰하기 힘들다. J 장로와 주변 사람들의 계좌를 추적하면 1000만 원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현금이 오간 사건에 사법 수사권도 없는 총회 관계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작태를 이재명이 알면 뭐랄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좀 크게 놀아. 그게 뭐야 '억'도 아니고 '천' 단위로 그런 말을 하고 고생을 해. 다 내려놓고 내 밑으로 와. 그러면 최소 수십8억, 수백억이야. 그만 정도는 돼야 내 부하처럼 어떤 위험도 감수할만하지. 안 그래 목사님들!" 2016년 6월, 한겨레TV에 매주 금요일 올라온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이재명은 이기죽거렸다 "저는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좋은 방향으로. 용서나 화해, 화합은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지고 반성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에요. 강도하고는 화해하는 게 아니야. 불법 범죄를 저지른 부정, 불합리한 집단 인간들하고는 화해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노무현 대통령... 지금 서거하셨는데 너무 안타깝죠. 주어진 권한을 상대가 정말 인간으로 보이고 내가 인간으로서의 최선과 성의를 다하면 그들이 받아들여 줄 거라고 믿은 거예요." 성경은 말씀한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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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재명의 노무현 대통령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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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어린이 사도
- 일상에서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묻고 답을 들으며 교제를 나누노라면 산란한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생각조차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던가. 조선 시대 궁궐엔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왕이 업무를 보던 전(殿), 왕족이나 정승이 쓰던 합(閤), 판서급이 쓰던 각(閣) 등이다. 임금이 묵던 전과 ‘그 아래 엎드려 아뢴다(下)’라는 말을 합쳐 왕을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는 궁전의 ‘섬돌(陛)’ 즉 계단 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1598년 9월 18일))를 이르던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을,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하던 호칭이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엔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했다. 그래서 일본 식민지 시절 총독을 ‘갓카’라고 불렀다. 이승만 정부에선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도록 했다. 한때 부통령, 총리, 고위 장성까지 각하로 불러 각하 호칭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 각하는 대통령만의 고유 존칭이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할 때도 “각하”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는 각하를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금지했다. 그래도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끼리는 모두 ‘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테디 베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봉제 곰 인형이다. 테디라는 이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유래했다. 1902년 사냥을 나간 루스벨트는 사냥꾼들이 곰을 잡아 와 총을 쏘라 했지만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 일화를 신문 만평으로 본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곰 인형에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이면서 감히 세계 제일 국가 원수의 각하에 대한 테디 베어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기독교의 사도는 신약의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이고 영어로는 Apostle이다.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직접 파견하신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도(使徒)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을 번역하며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를 번역하는 단어로 사용된 데서 유래했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 인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즉 역사적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다. 이후 성령 강림하신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를 탄압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넓은 의미에서 당시의 유대교와 문화적 관행을 타파하고 주님의 뜻을 전하는 사도로 인정했다. 1517년 세계 종교계 관행을 타파한 루터(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가 이런 찬송가를 지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_찬송가 585장, 마르틴 루터, 1529 독일의 신학자, 종교개혁가 루터는 본래 로마 가톨릭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소속 수도사제였다. 그러나 가톨릭의 비성경적 교리에 반발하여 끝내 파문까지 당하고 성경적인 노선에 투신한 종교개혁가이다. 사제 신분의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종교 개혁의 신호탄이 된다. 사실 종교 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 혹은 프로테스탄트 개혁( Protestant Reformation, European Reformation)은 서방교회의 개혁을 위한 교회 내부 운동이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오직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면서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와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으로 출발하여 부패한 교황제도 중심의 서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던 서방교회 개혁 운동이다. 루터의 반박문을 증명하는 유일한 문서인 요하네스 슈나이더(Johannes Schneider)의 육필원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517년 루터는 엘베 강변 비텐베르크에서 대학의 오랜 관습에 따라 모종의 명제를 논쟁용으로 제출했으나, 너무나 조심스러운 형태라서 누군가를 비방·중상할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관점을 반영하면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가톨릭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투쟁이 아니라 면죄부 판매와 교황의 권위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조심스러운 형태로 촉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루터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교황이 성육신한 마귀라고 믿는다. 그는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현명하기로 소문난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Friedrich der Weise von Sachsen, 1463년 1월 17일 ~ 1525년 5월 25일 재위 1486년 ~ 1525년)의 배려와 후원 하에 비텐베르크 성에 머물러 교황의 공격과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루터가 연구하던 서재 벽에 "마귀야 물러가라!" 외치며 잉크병을 던진 자국이 있다고 한다. 루터는 당대의 세계적이고 막강한 교황과 교황청의 관행을 타파한 종교 개혁가였다. 루터는 말했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니 내가 여기 서 있노라. 성경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로 타락하기 전에 아담 안에서 나는 무엇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내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지, 그리고 영원히 무엇이 될지를 본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4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 그런 루터처럼 일기당천(一騎當天) 홀로 일어서 대한민국 주류 교단의 전도 관행을 어린이 전도로 개혁한 김종준 목사는 어떤 인물일까. 예수님을 영접한 초신자가 처음부터 교회 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어린이 중심 전도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어린이들 손으로 나누어 주는 전도 초청장에 관심을 갖게 된 학교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와 전도하는 제자로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과자나 선물이 아닌 순수한 복음으로 어린이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저 복음을 가슴에 품고 전도해야겠다는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 어느 날 복음의 열매가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사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루터, 츠빙글리가 시작한 종교 개혁을 종합해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칼빈(Joh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의 예정론을 배운 김종준 목사였지만 '나는 왜 이리 가난할까' '나는 왜 이리 전도가 안 되는 걸까'하는 인생의 두 가지 좌절감에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신 확신, '복음 아니고는 절대로 자신의 환경을 극복할 수 없다'는 깨우침과 더불어 '전도는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예정 가운데 반드시 누군가를 전도자로 택하여 예비하셨고 그는 반드시 올바른 복음을 가졌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믿게 되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과 확신이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신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전도의 사명이 없다면 세상에 사는 존재 이유와 의미가 없다'는 각성이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1-6 율법의 관행을 타파한 사도 바울, 면죄부 관행을 타파한 종교개혁가 루터 같이 성경에 정통한 김종준 목사는 사도 바울의 제자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전도 방법을 온전히 발견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루터의 '이신칭의'와 칼빈의 '예정론'에 근거한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전도야말로 한국교회를 살리는 가장 좋은 전도방법이자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종준 목사의 '어린이 전도 지상명령'은 다음과 같은 루터의 말을 상기시킨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니 내가 여기 서 있노라. 성경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로 타락하기 전에 아담 안에서 나는 무엇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내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지, 그리고 영원히 무엇이 될지를 본다.” 성경은 말씀한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눅 18:15-17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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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어린이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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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배광식 목사 기도론
- 지금 남쪽에는 동백이 한창이다. 이전에는 꼿꼿이 목을 든 채 통째로 떨어지는 저 꽃이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기개’와 ‘성품’이 느껴져 소중해진다. 소나무를 닮은 꽃을 꼽으라면 이젠 동백을 꼽고 싶다. 훌쩍 피었다가 시들지 않은 채 제 목을 쳐내며 떨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독야청청 아니면 뭔가.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 목사가 2021년 12월 14일 자 기독신문에 울산 기도 바위 배광식 목사의 기도론을 게재했다. ... 더욱이 15년 동안 무릎을 단련시킨 배 총회장을 세우셔서 ‘은혜로운동행기도론’으로 부흥의 불을 지피울 준비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배 총회장은 이미 칼빈이나 에드워즈, 맥체인 그리고 과거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했던 특별한 기도나 끈질긴 기도 및 간절한 기도를 목회 현장에서 체험한 바 있다. 그는 오직 기도만이 개인과 교회가 사는 길이요, 부흥의 발판이라는 것을 15년간의 산기도 철야를 통해서 실감 나게 경험했다. ... 배 총회장이 15년간 이어온 산기도 영성을 바탕으로 내건 ‘은혜로운동행기도론’은 존 칼빈(John Calvin ,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의 '특별 기도론'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년 10월 5일 – 1758년 3월 22일)의 '끈질긴 기도론', 그리고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 1813년 5월 21일 - 1843년 3월 25일) 목사의 간절한 기도론 및 위기의 때 국가와 총회를 살려냈던 기도회를 계승한 특별기도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도란 무엇인가. 성경은 기도의 모델을 주님의 기도로 제시한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마 6:7-11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都城)의 새벽 파루(罷漏; 조선시대 도성내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치던 제도)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自擊漏,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새벽기도’는 장로교회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다.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査經會) 때 소규모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道) 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의 발전과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城壁)을 다 허물었다. 사대문(四大門)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京城)에 보신각(普信閣)은 무용지물이라 폐쇄(閉鎖)되었다. 서울은 영혼(靈魂)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이러한 때에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였다. 주일마다 각 도시 교회와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종을 쳤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 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 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기도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 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시간과 시간의 사이(時間) 믿음의 경계선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품고 있는 기적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간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彼岸)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公的)인 기도회로 의례화됐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 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의 그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 기도로 교회가 산다. 이슬람교의 기도 행위는 (만인이 평등하기에 사람에게 엎드리면 안 되고) 성지 메카가 위치한 방향을 향해 엎드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행동은 이슬람교도에게 일종의 생활 습관 수준으로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는 어디에 있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 이를 위한 전용 융단도 존재한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메카가 있는 방향이 중시되기에 나침반 등의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장거리 운행 비행기의 기내 정보 시스템을 통해 현 위치에서 메카가 있는 위치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돈키호테가 그의 충실한 시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 내 친구 산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의 행동도 아니야. 그건 정의라네.” 한기승 목사처럼 웃음을 머금고 울산 기도 바 배광식 총회장도 후배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보게, 내 동료와 후배들. 칼빈이 개혁주의로 세상을 바꾼 것은 사상도 행동도 아니네. 그건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Righteous God)에 믿고 전한 기도의 삶이라네." 2021-12-20 수정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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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배광식 목사 기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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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직관의 지도자 고광석 목사
-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 상대의 이익과 행복을 앞에 둘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갈등을 많이 하게 된다. 그때가 중요하다. 바로 그때 나의 이익을 버리고 바른 마음으로 살면 인생이 바뀐다. 바른 한 생각이 인생을 바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한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르지 않으면 히나님의 복이 깃들지도 않고 그 복을 누릴 수도 없다. 그래서 교회 풍속을 해치는 음기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하나님 은혜의 햇볕을 쬐어야 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널리 알리는 게 상책이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소인배를 포용하되 그들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교화시켜야 한다. 소인배 난동을 제약할 법규를 제정하고 알려야 한다. 그게 총회 리더가 할 일이다. 2013년 12월 18일 속전속결의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는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총회 임원회를 주재하며 제98회 총회에서 행정 보류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했다. 2014년 9월 25일 제99회 총회 넷째 날인 9월 25일 오전 회무에서 총대들은 한기총 탈퇴 결의를 논의했다. 이렇게 강하게 말한 총대도 있었다. “한기총은 이단의 온상이다. 한기총을 탈퇴해야 한다.” 반면 일부 회원들은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자고 말했다. 직관의 지도자 고광석 목사는 말했다. “한기총 탈퇴는 임원회에 일임하든 안 하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세상일은 모두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뒤집어지게 마련이다." 총회는 정치인이 그 모범을 실천하여 과거의 병폐를 불식시켜 주기를 요구한다. 총회장과 정치인의 인격과 신앙이 확고하다면 총회 목사와 장로들은 사심 없이 따르는 법이다. 우선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정직은 말이 아니고 실천이다. 정치는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지 말재간이니 금전의 열매가 아니다. 우리는 언행이 다른 지도자를 원치 않는다. 정치적 실적을 과장하거나 ‘비신앙’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지도자가 두 개의 잣대로 위선을 감행하는 태도는 총회 구성원의 불신과 배척을 자초할 뿐이다. 총회 정치는 정의의 가치와 질서를 떠나서는 존속하지 못한다. 정의는 권력의 산물이 아니다. 러시아 푸틴이나 공산정권들이 그 길을 택했기 때문에 세계와 인류가 공분을 느끼고 있다. 정의는 더 많은 교인의 자유와 신앙을 위한 필수조건이지 정치상품이나 구호가 아니다. 그동안 총회 지도자들이 개혁주의 정의 구현을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왜 정의는 사라져 버렸는가. 편 가르기로 불신을 만들었고 돈 살포로 타락을 심화시켰고 교권 다툼은 진실을 역행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성경적 개혁주의를 염원했다면 총회와 노회 무대에서 상치되는 신앙관과 가치관으로 총회 적 불신과 고립을 자초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앙과 기도마저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총회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2-44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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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직관의 지도자 고광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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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의 본질을 위해
- 본래의 총회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노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을 보호하고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견제하고 막는 명실상부한 보수와-진보를 아우르는 믿음의 모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도 젊은 지성은 있고 참다운 개혁 정치인들이 있다. 밀실 담합정치의 횡포나 일탈을 견제하는 정신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총회의 권력 다툼이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원을 넘어 지역 노선의 물갈이 또는 개혁 세력의 확장이라는 더 넓고 더 의미 있는 개혁 신앙의 판으로 갔으면 한다. 본성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정치인의 선택이 자신의 출세와 동료를 얻으려는 수단이 될 때 정치는 타락한다.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포용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끌어안으면 더 큰 분열과 혼란이 닥친다. 이이복 장로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 나라와 총회를 위한 결단인가, 선하고 믿음직한 정치가 아쉽다. 신자를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 이야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성경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퍼뜨리면서 조금씩 더 신앙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대서부터 시작된다. 꽃을 좋아해 꽃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이 남긴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가 있던 시절, 그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는데 하루는 친구 아내가 식탁에 꽃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간 이중섭이 한참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빈손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모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꺾을 꽃이 없었다.” 이런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오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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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의 본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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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저출생 대책
-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현실적인 답은 번식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봄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잎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이 무성해야 할 자리를 꽃이 차지하고 있어서 더 풍성하고 화려함을 뽐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봄에 피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함께 뭉쳐서 피며 향기가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5월 이후에 피는 진한 향과 꿀로 나비나 벌들을 유혹하는 장미나 아카시아 등과 번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식물과 달리 국가 소멸까지 우려하는 한국의 저 출생에는 우리가 체면 때문에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 그늘엔 오프라인의 실제 삶보다 심하게 과 대표된 온라인의 미남·미녀, 그리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기력과 허탈감은 스마트폰에서 비롯된다. 연예인이 아닌데도 연예인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남녀가 그 안에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AI 연인도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현타’가 시작된다. 진실의 시간. 그런 선남선녀는 오프라인 내 주변에 없다.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남녀가 늘 잡힐 듯 손안에 있는데. 이 ‘왜곡된 평균’이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한참 더 아래인데 상위 10%의 외모와 라이프스타일이 평균인 것처럼 올려치고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 신혼집으로 신축 아파트 전세 정도는 평균 아니냐, 가전 빼고 결혼식 비용 7천만 원이면 중산층 최저 아니냐, 이 ‘왜곡된 평균’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를 위축시킨다. 저 출생은 OECD 국가 대부분의 고민이지만,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와 기업의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는데도 작년 4분기는 0.65로 더 떨어졌다. 유난히 심한 우리의 세계기록은 이 ‘왜곡된 평균’이 큰 이유다.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묘책은 없겠지만, 일단 남들과 비교하는 소셜미디어부터 끊어보자. 나도 월세로 신혼을 시작해 딸을 셋이나 낳았다. 부디 스스로를 불행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악순환은 그만두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삶의 진실’이라는 저출생 해결이 담긴 글을 끊어야 할 소셜미디어에서 읽었다. “지잡대(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 가거나 대학 안 가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결혼해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애 낳아도 인생 안 망함. 나이 많은데 뭔가 시작해도 인생 안 망함. 대신 인터넷에서 남들 사는 거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반드시 망함.” 성경은 말씀한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1-6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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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저출생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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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젖과 꿀
- 중·고등학교 시절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례가 열렸다. 강단 앞 학생이 “기준”을 외치면 그 학생 위치에 맞춰 전교생이 오와 열을 맞췄다. 정글 같은 국제사회 속에서 기준 역할을 해온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이 정하는 입장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표준 답안이었다. 각국 사정에 따라 미세 조정하는 정도였다. 반대 진영 국가들도 미국의 동향에 맞춰 대항 좌표와 수위를 저울질했다. 당시 미국 같은 이집트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 11:8-12 독일 통일 이전 1973년 6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양국 수교 8년 만의 방문이었다. 학살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서독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가 환영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가 이스라엘인들을 중동에서 석유가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을 통과했다는 점입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경직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었다. 안정적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던 이스라엘의 약점은 1973년 4차 중동 전쟁 당시 산유국들이 이스라엘 및 서방국들에 석유 금수 조치를 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이스라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1984년 이스라엘의 물가 상승률은 445%에 이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찾던 젖과 꿀은 육지가 아닌 바다에 있었다. 1999년 6월 해안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 첫 번째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했다. 노아-1 가스전을 발견한 것이다. 뒤이어 2000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가스전인 마리-B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4년부터 많은 기업이 몰려들어 인근 해역을 탐사하면서 2009년 타마르 1, 다릿-1 등의 대형 가스전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010년 발견된 레비아탄 가스전은 매장량이 605bcm(1bcm=10억㎥)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가스전이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2020년부터 에너지 순수출 국가로 전환되었다. 2022년 이스라엘은 22bcm 규모의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이 가운데 9.2bcm을 수출하였다. 대규모 가스전의 발견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게 해줬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문제로 갈등 관계였던 요르단과 2016년 가스 거래 협정을 체결하여 15년 동안 45bcm 규모의 가스를 공급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집트에 대해서도 대등한 협력 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는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가스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파이프라인과 수출용 LNG 터미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였다. 2003년 총연장 1200km의 아랍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이집트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100km의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스라엘에도 가스를 공급하면서 동지중해 가스 허브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이집트는 2011년 혁명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인구 증가에 따른 가스 수요 확대로 오히려 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2018년 이집트와 가스 수출 협정을 체결하고 2020년 1월부터 기존 파이프라인을 역류시켜 이집트에 가스를 수출함으로써 이집트의 가스 수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필요한 파이프라인이나 액화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액화 설비를 이용하여 LNG 형태로 수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국은 상호 이익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국 협력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어려움을 겪는 EU에 대량의 LNG를 수출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가스 수출을 통해 주변국 및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2000년에 발견된 가자 마린 가스전에 대해서도 개발을 반대하던 이스라엘 정부가 2023년 6월 입장을 바꿔 개발을 허용하면서 천연가스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적 이스라엘 공격과 이어진 이스라엘의 대규모 보복으로 인해 힘겹게 만들어놓은 평화 무대는 무너지게 되었다. 진정 이스라엘과 총회의 젖과 꿀은 무엇일까. 모세 같은 교단 총회장은 이스라엘 백성 같은 목사와 장로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하리라 신 8:3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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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젖과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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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을 꿈꾸는 분을 위해
- ‘밤의 사색’에서 헤르만 헤세는 홀로 밤을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불행에도 지지 않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씨앗을 틔운다. 혹독한 밤을 지나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힘껏 줄기를 일으켜 자기만의 꽃을 피운다. 넌 어떻게 피어날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겐 꽃을, 고유한 작품을 꽃피운 나의 후배들에게 마음의 프리지어를 안겨 주었다. 프리지어의 꽃말은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다가올 너의 모든 앞날에 나는 꽃을 보낼게. 순도 100%의 믿음을 건네며 마음껏 기뻤다. 받은 꽃다발을 한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그동안 고생했고 앞으로 어떤 비바람이 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그대는 꽃처럼, 아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러니 그대, 반드시 피어나시라, 졸업과 입학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그대가 받은 그 꽃다발은 그대를 향한 활짝 핀 응원이라는 걸 꼭 기억하시라. 박정희와 전두환의 강권 통치도 결국 민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참 대단한 전통이다.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총선은 그 유명한 2·12총선이다(1985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연합한 신한민주당(신민당)이 전두환 정권에 일격을 가한 선거로 투표율 84.6%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김영삼의 대리인으로 출마한 이민우 후보가 사자후를 토하던 유세장에서 정치의 후끈함을 느꼈다. 선거 결과 창당한 지 보름도 안 된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특히 서울 득표율은 43.9%(민정당 27.3%)로 중선거구제가 아니라 소선거구제였다면 신민당이 싹쓸이했을 것이다. 수감 대신 국외 추방을 택한 푸틴 반대자들은 아무런 전망이 없는 희생은 무익하다고 주장했다. Opposition figures who"ve chosen exile over imprisonment argue that sacrifice with no prospect of change is futile. 그러나 감옥 내 사망이 지난 2월 16일 발표된 푸틴의 정적 나발니(Alexei Anatolievich Navalny)는 다르게 생각했다. "당신의 신념이 어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If your beliefs are worth something, you have to be prepared to stand up for them. And if necessary, make some sacrifices," 향년 47세의 그가 죽기 얼마 전 짧게 그렇게 글을 썼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로니라 딤후 4:6-8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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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을 꿈꾸는 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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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과 진중권
-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3-5 전광훈 목사는 지난해 2019년 10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 집회에서 외쳤다.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 나는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2020년 2월 8개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협의회가 ‘한국교회에 드리는 글’을 통해 “전광훈 목사가 애국 운동을 빌미로 하여 여러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여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8대 교단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 동기가 반(反)성경적·비(非)신앙적·비(非)신학적이며 “전 목사의 이런 언행으로 인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전 목사로부터 신앙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9월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변호인단, 8·15집회 비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신영복(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북한 노동당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움직였던 반체제 지하조직)에 대해서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건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 광화문 집회를 그만두겠다. 사과 안 할 거면 대통령을 그만둬라.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겠냐... 재개발을 선동해 사랑제일교회 진입을 시도하며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뒤집어씌워 사기극을 펼치려 했으나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실패했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범죄 행위를 감추지 마라... 독일 히틀러가 선동할 때 온 국민이 넘어갔다. 언론도 넘어가고 성직자도 99% 넘어갔다. 본회퍼 한 사람이 반대하다 순교 당했다. 머지않아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선지자는 국민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하나님과 역사와 진리 앞에 잘못된 것은 책망한다. 한 달 동안 지켜보다가 한 달 뒤부터 목숨을 그야말로 던지겠다.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 세례 요한처럼 문재인의 불공정 불의 지적에 목숨을 걸고 비판한 전광훈 목사의 발언 가운데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외침의 의미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한테 까불면 나한테 죽어.” 그 말은 하나님과 국민이 살아 있음을 잊었거나 무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관계자들의 불법한 자들을 질타하다가 하나님 '한테'라는 조사 하나가 빠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광훈 목사는 군중 앞에서 열정에 싸여 말의 작은 실수가 있었던 같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에 앞서 한 말처럼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전파하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의 참뜻을 새기려 하거나 그의 용감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좌파 정권에 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불의와 부정에 맞선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이 불의한 시대를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비겁한 자들이여 전광훈 목사처럼 나서서 불의의 잘못을 외치지 못하거나 진중권 교수처럼 글과 말로 문재인의 불의를 지적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현 여권과 586운동권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직접 날 선 비판을 하게 된 계기로 '문자폭탄은 양념' '세월호 고맙다' '조국에 마음의 빚' 등 문 대통령의 발언 3가지를 들었다. 문재인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투쟁한 죄로 세 차례 감옥을 다녀온 전광훈 목사는 애국애족의 민주주의를 외쳐 좌파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oller 1892년-1984년) 독일 루터교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때문에 그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7-10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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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과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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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천지창조 첫날
- 창세기 동물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는 속담이 있다. 설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보름엔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설날 아침 눈이 내려 길이 질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어머니 손 잡고 친척 집으로 세배하러 가던 길엔 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댓돌에도 장독대에도 담장에도 나뭇가지에도 교회 지붕에도.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중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곧 농경 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 것이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시 ‘첫눈’이다. 한 줄 짧은 시에 그리움이 녹아 있다. 어디 첫눈뿐이랴. 초겨울에 내리는 풋눈, 설날 내리는 설눈, 가늘고 성기게 날리는 포슬눈, 밤새 몰래 내린 도둑눈…. 설을 ‘구정’이라고 하면 조상들은 서운할 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설’도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한민족의 혼을 뭉개려 설을 없애고 일본 설인 ‘신정’을 쇠라고 강요했다. 설은 낡은 풍습으로 깎아내려 ‘구정’이라고 칭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설을 지킨 건 민초였다. 신정은 그저 ‘왜놈들 설’일 뿐이었다. 1985년 구정은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1989년 민속의 날이 설날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옛 이름을 되찾았다. 더 이상 신정, 구정, 음력설, 양력설로 구분해 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설은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더굳뉴스 독자 여러분 설 잘 쇠세요.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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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천지창조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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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폐단
- 차가운 날씨가 머리를 맑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실패와 좌절이다. 그렇듯 겨울은 끝이 아니다. 가려진 것들을 들춰서 가감 없이 바라보며 봄을 준비하고 부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데 20~30대엔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한 일자리(job)이다. 그러나 40대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커리어(career)로 변하고 50~60대엔 하나님 뜻을 추구하는 소명(calling)으로 바뀐다. 70대에는 교단의 빌어먹을 법 70정년제 때문에 은퇴로 교회를 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딘가를 맡아야만 쓸모가 있는 ‘목회자’에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번역이나 저술을 위한 ‘직업인’으로 변신하는 게 중요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70정년제가 없는 교단으로 이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는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가는 북한 김씨 왕조에서 한 수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64대) 올브라이트(Madeleine Korbel Albright, 1937년 5월 15일 ~ 2022년 3월 23일)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국 여배우 최은희도 납치한 김정일은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총회 정치꾼들이 교계와 정치계를 기웃기웃거리며 다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인지 진정 주님의 교회 때문인지 사뭇 궁금하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곰돌이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고모부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에 의해 왕세자로 급조됐다. 그러나 장성택은 2013년 12월 3일 모든 직위에서 배제되고 출당 조치를 당했으며 같은 달 12일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그 기간이 2천7백 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2022년 12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백 년, 8천 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백 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2022년 2월 24일 공산주의 본산이자 세계 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자기 우방국인 약한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일으킨 것과 같은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 년 전쟁(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 대기근(1845년에서 1852년까지 아일랜드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역병과 집단 해외 이주의 시기를 일컫는다),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 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림프절에 감염되는 선페스트,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혈관에 감염되는 패혈성 페스트, 허파에 감염되는 폐페스트 등으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한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하나님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 년 왕국 주의(千年王國, millennialism, 천 년을 뜻하는 라틴어 밀레니엄/millenium에서 비롯)’가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 이전에 지상에 재림하여 직접 통치하는 천 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죽음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과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려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지상에서 살며 왕처럼 활동하며 지상에서 낙원이 이룩된다는 내용이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최후심판이 있고 이날에 천년왕국에 살고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 요한계시록 20장 1-15절에 가장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예언자이며 하나님의 전사(戰士)라고 자처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순결하게 재생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하찮은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 왕국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해 차라리 폭력을 휘둘러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유사한 사례가 장차 구원받을 사람은 14만4천 명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요한계시록 7:4) 하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처럼 기이한 결론을 얻게 된다. 애초에 이 구절은 12X12=144와 10x10=100의 두 수를 곱한 144,000으로서 완벽함을 상징하는 수 10과 전체를 나타내는 12를 이용해서 믿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종말론의 또 다른 양상은 근거 없는 전승을 이용해 기묘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승 하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모든 천사 중 10%가 함께 떨어져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 수와 천상에 남아 있는 90%의 천사 수가 같아질 때 종말이 온다는 특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기괴한 아이디어는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과격한 이단 교리로 차용되었다. 동시에 교회와 세속 당국이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 그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있어 왔으므로 결국 정해진 숫자가 거의 채워져서 이제 말세까지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들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가까이 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의인이 더 이상 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악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어 세례를 못 받게 만들었다. 세례를 못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녀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임산부들을 돕는 척하면서 신생아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논리로 애꿎은 여성들 수만 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면 사회 전체가 자칫 절망적으로 사악해질 수 있다는 증표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 시민들이 협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시련을 겪는 현재,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치부하던 국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때 문재인 패거리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위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순교적 투쟁과 성숙한 보수 시민 정신의 윤석열 대통령 선출로 비교적 잘 헤쳐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더 발전해 가리라 믿는다.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정통 신경을 압축한 '서울 고백' 신앙과 반공 외침에 힘입어. 누군가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장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인 왈도파를 보자. 창시자 왈도(Waldo, 프랑스어로는 보데스 Vaudes)는 리옹시(市)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예수가 부유한 젊은이에게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왈도는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두 딸을 수녀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걸식으로 연명하며 설교하고 다녔다. 곧 그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들어 제법 세가 커졌다. 사실 스스로 부(富)를 버리고 청빈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유하고 타락해 가는 기성 교회에 우회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1179년 왈도파가 교황청에 자신들을 수도회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왈도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난 후 이번에는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역시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깨친 바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스스로 걸인이 되어 설교하고 다니다가 교황청에 와서 수도회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왈도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처음에 의심하다가 결국 수도회칙을 승인했는데, 어쩌면 또다시 이단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 반열의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중세 최대 이단 수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성인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단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인 분위기를 타는 여론이나 이단과 부패의 온상 한기총 같은 기관이나 통합 측 대표적 언론인이자 법학자인 황규학 박사가 질타한 이단감별사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쉽게 규정할 게 아니라 기독교계와 신학대학 전문 교수들 중심의 깊고 긴 흐름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세 치 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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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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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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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호남 출신 자부심
- 세계 언론 보수 대표 조선일보에 결이 다른 두 사람의 글이 해를 건너뛴 간격으로 실렸다. 한 사람은 사회주의자 진중권(60)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 소강석(61) 목사이다. 먼저 소강석보다 1살 어리지만, 한국 지성인과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2023년 5월 27일 사회주의자의 글을 먼저 보자. 이 남자는 독설가다. 좌든 우든 인정사정없다. 한때 친구였던 조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까웠기 때문에 더 신랄했다. 진중권은 “내 생각을 부정하면서까지 누구 편을 든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원칙을 지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논객의 길을 걷게 됐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극우세력뿐 아니라 주사파도 벌레 보듯 했다. 거침이 없었고, 모두가 그를 미워했다. 자신의 25년을 ‘조국 사태’ 전후로 나눴다. 조국을 ‘걔’ ‘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렇게 살면 안 됐다”라고 정색했다. “민주화 세력이 종말을 고한 거죠. 그 역사적 도장을 찍은 게 조국 사태였어요. 대중이 민주화 세력의 이미지와 실상 사이에 큰 괴리를 목격했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니까요.” -처음에 어떻게 논객이 된 거죠. “처음엔 화가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1998년 어느 잡지에 미술사의 악마주의에 관한 글을 썼는데, 박정희를 찬양하는 맥락 속에 제 글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박정희를 고독한 악마, 낭만주의적 천재로 만든 거죠. 항의를 바가지로 하고 반론을 썼는데 지면을 못 준대요. 그 원고가 돌고 돌아 문학동네로 갔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일이 25년 전이네요.” -박정희 열풍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군요. “글을 또 보냈는데 문학동네가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짜증이 났죠. 그래서 인물과 사상으로 갔어요. 그쪽은 쿨해요. 더 쓰라고 자료까지 보내줬어요. 연재한 글을 묶어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냈죠. 조갑제 기자가 박정희를 찬양한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맞불 격으로요.” -그런데 박정희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았더라고요. “업적이 있으니까요. 그때 화가 난 건 박정희를 향한 게 아니었어요. 옛날 사람, 지나간 사람을 리바이벌한 것 때문이었어요. 지난 건 지나간 거예요. 지금도 비슷해요. 민주화 운동도 끝났어요. 김대중, 노무현도 이미 역사적 생명을 다한 거예요. 부활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논객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다면. “조국 사건이죠. 우리나라도 그 사건 전후로 나눌 수 있어요.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두 번째인 민주화가 종언을 고한 거예요.” -무슨 뜻인가요.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산업화, 박정희 신화예요. 또 다른 하나가 민주화, 김대중·노무현 신화죠. 이 두 가지는 너무나 성공했기 때문에 종말을 고한 거죠. 산업화도 엄청나게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런 나라가 없잖아요. 민주화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게 조국 사태였습니다. 이제 기득권만 남았죠.” -조국과 친했죠? “대학원 때 ‘주체사상 비판’을 같이 쓸 정도였어요. 동양대 교수 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그 친구죠. MB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필리핀에서 비행학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행기 50시간만 더 타면 택시비행사 자격증도 딸 수 있었는데 그냥 거기 있을 걸 그랬어요. 사태가 터진 처음엔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조국을 완벽하다고 평하지 않았나요. “하하. 신은 공평하더라고요. 애는 착했어요. 근데 나 같았으면 마누라를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아내 죄까지 내가 뒤집어쓰죠. 내가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 뒤로 연락한 적 없어요.” -그때 이후 ‘모두까기 인형’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누구나 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못했으면 까야죠. 원칙을 어기면 안 되잖아요. 이게 윤리학의 기본입니다. 내 편을 생각하니까 내로남불이 되는 거예요. 나 개인으로 어떤 현상을 평가하면 되는데 어느 편에 충실하려고 해요. 유시민을 보세요. 실없는 사람이 됐잖아요.” -유시민과도 틀어졌죠. “과거에도 유시민한테 ‘노회찬, 심상정은 100% 믿는데 당신은 50%만 믿는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공학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에요.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옳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느냐, 없냐죠. 참 멍청한 짓이에요. 세상은 ‘좁고 작은 너의 대가리’보다 훨씬 넓은데 그걸 간과한 거예요. 그 50%의 믿음도 조국 사태로 끝장이 났죠.” -왜요? “공론의 장이 무너졌어요. 지식인이 어느 한쪽으로 가버렸어요. 상징적인 게 유시민과 김어준의 관계죠. 김어준 같은 사람들을 위에서 걸러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밑에 들어가서 정당화해줬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지식인도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떼돈 벌 수 있거든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만 막 찬양하면 돼요. 그랬다면 벌써 강남에 빌딩 올렸죠.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요. 저처럼 어느 편에 속하지 않으면 양쪽에서 다 욕을 먹어요. 견뎌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 고독.” -고독하세요? “늘 저는 그 고독을 즐겨요. ‘나 자신’이라는 게 있는데 왜 헌납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잘못하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죠. 나를 없애고 무리에 섞일 거면 왜 살아요? 삶의 목적이 없어지잖아요.” 누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이라고 그를 평했다. 페이스북 댓글을 올리는 네티즌과도 생각이 다르면 싸우는 게 진중권이다. 그런 그도 “지나면 모든 게 후회”라고 했다. -어떤 일을 후회하나요? “너무 많죠.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어요. 평론이라는 게 순간순간 하는 거잖아요. 따끈할 때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진 다음에 날기 시작하지만, 평론은 해가 뜰 때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역사는 지나고 나면 또 평가가 달라지죠. 그러나 베토벤의 말처럼 ‘꼭 그랬어야 했나’ 묻는다면 ‘그래야만 했다’라고 답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대통령이 보수로 가는 건 좋은데 중도와 같이 갔으면 해요. 우경화로 가는 방식은 안 돼요. 이재명 대표는 사퇴해야죠. 본인 살려고 당을 볼모로 잡고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이재명을 안 만났다면 지금 살아 있을 사람들이에요. 이제 그만하고 내려와야 해요. 민주당에선 ‘대안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재명이 물러나는 게 대안이에요.” 이제 진중권보다 한 살 많고 목회에 성공해 한국 지성인은 물론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녀 9월 1일 한국계 중공 귀화 정율성을 비판했다. 정율성은 중공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하고 6·25전쟁 때 서울까지 내려와 전쟁을 북돋운 한국계 귀화 중국인이다. 그런데 정율성로라고 도로명 주소를 붙인 거리에 정율성 기념물과 동상을 세운 데 이어 공원을 만들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주, 정율성 탓에 좌파 성지로 각인될 수 있다” 페이스북으로 추모 사업 비판 호남 출신 소강석 목사 인터뷰 호남 출신 대형 교회 목회자가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추진 논란과 관련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각인될 우려가 있다”라며 비판했다.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소강석(61) 담임 목사는 9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민 세금으로 정율성 기념공원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소 목사는 전북 남원 출생으로 군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신학교(광신대) 1학년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1988년 서울 가락동 지하상가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해 현재 등록 신자 5만 명 교회로 성장시켰다.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외 6·25전쟁 참전 용사를 초청해 보은 행사를 열고 있다. 2021년에는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냈다. 소 목사는 페이스북에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은 한쪽 눈으로 볼 때는 일리가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나는 결코 정치인이 아니어서 이런 글을 쓸까 말까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하다가 정치인이 아닌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고 팔로군 행진곡과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이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추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소 목사는 이 글에서 “누구보다 호남을 사랑하고 호남이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지고, 호남 출신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래서 저는 5·18민주항쟁의 정신도 가치 있게 여기고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그것(정율성 공원 추진)을 강행함으로써 5·18 민주화 정신이 훼손당하고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인각(印刻)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남 지역은 6·25 때 공산당에 가장 많이 순교를 당했던 곳”이라며 교인 77명이 공산군에 학살당한 전남 영광 염산교회의 기독교인 순교 탑과 순교 기념비 사진을 페이스북 글에 첨부했다. 소 목사는 본지(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양극으로 갈라진 시대라고 해도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발언하면 또 다른 이슈가 될까 염려돼 밤새 고민했지만, 종교 지도자는 때로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양심을 억누르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광주가 좌파 이념 이미지로 각인되고 민주화 정신까지 훼손당하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1-23 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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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호남 출신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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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한민국 미래에 빛이...
-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파우더 스노(powder snow)’다. 추운 날씨에 가루처럼 내리는 눈이다. 함박 눈에 비해 미세한 얼음의 결정으로 돼 있으며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 내리는 눈이다. 습기가 없어 눈이 잘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부서진다. 옷에 쌓여도, 머리카락에 쌓여도, 장갑에 묻어도 쉽사리 물이 되지 않는다. 스키장에 수북이 쌓인 ‘파우더 스노’는 드리프트를 할 때마다 모래처럼 부서지며 바람에 흩날린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024년 1월 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참배한 후 기자들과 만나 탈당과 신당 창당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거취에 대해서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후반 중 인사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흘 뒤 2024년 1월 11일 전 대법원장 김명수같이 말 바꾸기 명수 이재명과 달리 이낙연 전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그의 말대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히며 용서를 구하고 소신을 말했다. “오늘 저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들락날락했지만, 저는 민주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습니다.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습니다. 민주당의 피폐에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특히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2021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낸 것은 제가 민주당 대표로 일하면서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또한,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 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이어서 이 전 대표는 정치계는 물론이고 교계 목사와 장로도 잘하지 않는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혔다. “저의 그런 잘못을 후회하면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의 오늘 결정에 대해 저의 아버지처럼 오랜 세월을 보상도 이름도 없이 헌신하시는 당원 여러분께 이해를 구합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이 잃어버린 민주당 본래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서겠습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그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겠습니다.”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星野)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인 도마무산 정상 근처에 있다. 홋카이도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여름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흘러가는 운해를 볼 수 있어 ‘운카이(운해·雲海) 테라스’, 겨울에는 상고대 설경이 아름다워 ‘무효(무빙·霧氷) 테라스’라고 불린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만든 종교 건축으로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와 함께 도마무에 있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1988년 지어진 ‘물의 교회’는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안에 있는데 매일 오후 8시 반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주변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의 교회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어가도록 돼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사방이 십자가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의 교회’에 접근하도록 한 설계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물의 교회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정면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고 창틀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창밖에는 계곡물을 끌어다가 만든 인공연못이 있고 그 위에 또 철제 십자가가 서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다. 창틀의 십자가와 창밖 연못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2중으로 보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정확히 겹쳐서 하나가 된다. 저 멀리 하늘과 자연, 우주에 있는 신(神)과 내 안에 존재하는 십자가가 하나임을 명상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한다. 십자가 뒤편으로는 까만 밤하늘과 함께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실내조명을 끄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십자가와 숲의 풍경이 또렷이 살아난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감동이 치미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신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과 빛만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2024년 1월 11일 호남 출신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과 창당을 밝힌 기자 회견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용서와 소신을 밝힌 것만으로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니...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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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한민국 미래에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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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총장의 소명
- 우리는 최첨단 망원경과 내비게이션을 가지고도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 김영우 같은 이재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가장 미워하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경우 말이다. 총신대 신임 박성규 총장은 총신대 운영을 밝히는 총회 앞에서 총신대가 세미나리(seminary) 즉 씨를 뿌려 모를 키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묘판(苗板)이라고 했다. 그것을 우리말로 모판 또는 못자리라고 하는데 그 말의 탄생 과정은 이렇다. 먼저 벼를 뜻하는 방언인 나락을 털어서 가장 알찬 것들만 골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듬해 봄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 ‘씻나락’이다. 곡식의 알이 낟인데, 낟알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갱이를 말한다. 봄이 오고 사월이 되면 무논에 모판을 마련하는 한편으로 씻나락을 꺼내서 물 채운 항아리에 담근다. 물에 담가 싹이 잘 나도록 돕는 것인데, 물에 들어가는 그때부터 씻나락은 ‘볍씨’로 이름이 바뀐다.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볍씨는 씨눈 쪽에 껍질을 뚫고 움이 트고 싹이 나서 모판에 내다 뿌려야 한다. 모판에 떨어진 볍씨는 곧장 위로 싹을 밀어 올리고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는데 이때부터 볍씨는 다시 이름을 ‘모’로 바꾸어 부른다. 모가 모판에서 한 뼘 남짓 자라면 철에 맞추어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는 아침 일찍 모판에서 모를 쪄서 잘 다듬어 둔 무논에다 옮겨 서너 낱씩 포기를 잡아 못줄에 맞추어 심는다. 이렇게 모심기를 끝내면 그때부터 모는 다시 이름을 ‘벼’로 바꾸어 부른다. 벼는 농사꾼의 갖은 정성을 다 받으며 자라나 마침내 새끼를 배고 몸 안에 밴 새끼가 자라면 위로 솟아올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바로 ‘나락’이다. 그러나 열매만을 따로 떼어서 나락이라고 하지만, 우선 나락을 밴 그날부터 벼를 모두 싸잡아 나락이라 부른다. 그래서 ‘벼농사’라는 말이 곧장 ‘나락농사’라는 말로 이어지고 그것을 옴니암니 가리지는 않고 넘나들며 쓰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낟알이었다. 총신이라는 모판에서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먹고 세상으로 나와 성령을 받으며 잎을 키웠다. 우리는 그냥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나이든 목사가 되었다. 그냥 믿고 언덕 넘어 전등도 없어 호야불로 밝힌 총신을 다녔을 뿐인데. 박성규 총장의 근황을 보면 총신대를 위한 그 한 번의 성취를 위해 은 자신을 ‘다마스쿠스 검(Damascus blade 劍)’처럼 날카롭게 벼린 모습이다. 다마스쿠스 검은 동시대는 물론 역사상의 어떤 유럽의 강철검보다 뛰어난 검이었다. 비단 손수건을 칼 위에 떨어뜨리면 저절로 베어질 만큼 예리할 뿐만 아니라 탄력성이 커서 바위를 내리쳐도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괴테의 1만 2111행의 시(詩)로짜여 진 장편 희곡 '파우스트'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이다. 인간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것은 갈 곳, 목표, 지향점이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방황을 멈추고 자족과 정체(停滯), 그리고 안주(安住)가 일상화된 삶이라면 목숨이 붙어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인데 여기서 파생된 ‘Berufung’은 소명(召命)의식을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인은 직업 수행을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소명의 실천’으로 여기는 인식이 견고하다고 한다. 김영우가 총신을 쥐락펴락하던 시절 재단이사장에 자질과 열정을 갖춘 경상도 김승동 목사 대신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한 강원도 목회자를 인선한 적이 있다. 지금의 총신 이사회는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이사들과 이사장으로 진용을 갖추고 있다. 세상이 아프다. 전쟁이 터지고 난민은 떠돈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난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죽인다. 그에게 딱히 무슨 죄가 있었을까. 죄 많은 이들이 오히려 죄를 외면하는 세상에서 이이복은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내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뜻이고 신앙의 힘이며 신자의 역할이리라. 그 뜻이 겸허하고 겸허하여 우리는 예수님 오신 날의 의미를 이이복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 이 세상이 돈과 물질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의미와 눈빛과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땅도 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교육과 똑똑한 인재들 덕분에 이만큼 발전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교육이 대학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는 현실을 털어놨다. “학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조차 무너졌다. 입학하자마자 반수 시작해서 제주대 약대라도 가려 한다. 메디컬(의약학 계열) 빼고는 초토화됐다. 대학원은 정원도 못 채우고 고도의 학문 연구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외 인재를 모셔 오고 싶어도 희망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미국대학경영협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494억 달러(약 63조9927억 원), 스탠퍼드대가 353억 달러(약 45조7029억 원)다. 한국 최상위권 사립대 작년 수입이 6000억∼9000억 원 수준(이월금 포함)이다. 적립금은 5000억∼7500억 원 수준이다. 영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 학비가 연 2000만 원을 넘는데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이 그 절반도 안 되는 757만3700원이다. 등록금 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연방교육부가 등록금 상한을 정하진 않는다. 대신 장학금 확대, 학비 대출 지원에 주력하고 소비자(학생)가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덕분에 미국 대학은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최강 기술 강대국의 원천이다. 우리 교육부는 어떤가. ‘표(票) 떨어질 일’이라며 10년 넘게 대학 재정을 묶어놓고, 얼마 안 되는 재정사업으로 대학을 쥐고 있다. 그 결과 모든 한국 대학이 자생력을 잃고 교육부가 꽂아놓은 ‘지원금 링거’로 연명 중이다. 한국 고등교육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교육부 권한을 유치원 및 초중고교와 국공립대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감사, 감독 권한 정도만 남겨야 한다. 등록금이 가계 부담이라면 조(兆) 단위 대학사업을 장학금으로 돌려 직접 학생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교육부가 권한을 놔야 ‘돈값’ 못 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학은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교육 개혁은 ‘교육부 개혁’이다. 하수상한 시절 총신대는 독일인의 ‘Berufung’ 소명(召命)의식이 충실한 박성규 총장 체제로 내실을 다지며 전진하고 있다. 게다가 이사장 화종부 이사, 송태근 목사 등의 아낌없는 지지와 후원까지 더해지고 있다. 가자 믿음이여 살 맞대고 가자 하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안을 소망 하나 내리고 있거니 성경은 말씀한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막 9:22-24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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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총장의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