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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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묻고 답을 들으며 교제를 나누노라면 산란한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생각조차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던가.


조선 시대 궁궐엔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왕이 업무를 보던 전(殿), 왕족이나 정승이 쓰던 합(閤), 판서급이 쓰던 각(閣) 등이다. 임금이 묵던 전과 ‘그 아래 엎드려 아뢴다(下)’라는 말을 합쳐 왕을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는 궁전의 ‘섬돌(陛)’ 즉 계단 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1598년 9월 18일))를 이르던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을,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하던 호칭이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엔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총독을 ‘갓카’라고 불렀다. 이승만 정부에선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도록 했다. 한때 부통령, 총리, 고위 장성까지 각하로 불러 각하 호칭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 각하는 대통령만의 고유 존칭이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할 때도 “각하”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는 각하를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금지했다. 그래도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끼리는 모두 ‘각하’라고 했다. 시중에선 ‘가카’란 말로 비하하기도 했다. 


테디 베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봉제 곰 인형이다. 테디라는 이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유래했다. 1902년 사냥을 나간 루스벨트는 사냥꾼들이 곰을 잡아 와 총을 쏘라 했지만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 일화를 신문 만평으로 본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곰 인형에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이면서 테디 베어가 탄생했다.


기독교의 사도는 신약의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이고 영어로는 Apostle이다.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직접 파견하신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도(使徒)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을 번역하며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를 번역하는 단어로 사용된 데서 유래했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 인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즉 역사적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다. 이후 성령 강림하신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를 탄압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넓은 의미에서의 사도로 인정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로써 말 많았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한나라당이 정권 잡으면... 토론 한번 해보고 싶은데 캬, 그놈의 헌법이 못 하게 해요.”


속내를 드러내는 데 당당했던 그도 임기 말엔 “언어와 태도에서 (대통령다운) 품위를 만들어나가는 준비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한다”라고 했다. 문재인은 고 노무현의 정반대되는 ‘안티테제’(反定立, antithese)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상주 역할을 하면서 ‘대통령다운’ 태도로 주목받았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다. 즉흥 발언 없이 주로 A4 용지에 적힌 원고만 읽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스펙’인 문 대통령이 반듯한 태도로 또박또박 읽는 원고에 거짓이 섞였다고 착한 국민은 도저히 상상을 못 한다.


2017년 6월 문재인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 순위였다”라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시키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했다. 40년간 방사능 유출 사고 한번 없었던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발전 기술과 국가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역사 퇴행의 시작이었다.


2022년 4월 11일 문재인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역사는 때로는 정체되고 퇴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막말도 말실수도 아니다. 대선에서 패하고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눈에는 역사가 정체되거나 심지어 퇴행할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찍은 국민이 무려 1639만여 명(48.56%)이다. 문 대통령이 5년 전 받은 1342만여 표(41.08%)보다 297만여 표나 많다. 임기 말인데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4%의 지지율을 누리는 문 대통령의 괜한 걱정이다. 하지만 긍정 평가의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답변이 ‘모름·응답거절’(24%)이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임기 말 대통령들은 아들 비리 등 주변 비리 때문에 곤경에 처하곤 했다. 문재인은 한사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다. 검찰과 사법부까지 장악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경제성 판단 문제 등에 대한 수사를 피했기 때문일 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지키겠다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한 게 얼마나 부끄러운지 거울 한번 들여다봤으면 한다.


이미 ‘문빠’들은 왜 문 대통령을 못 지키냐고 문자폭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문빠의 특징이 맹목적 지지라고 전북대 오현철 교수는 2021년 논문 ‘문재인 정치 팬덤의 복합적 성격’에서 분석했다. 문빠가 위험한 건 대통령 친위대처럼 불충의 정치인에게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이를 ‘양념’이라고 부추김으로써 ‘봉건적 인치(人治)’의 시대로 역사를 퇴행시켰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2017년 대선 전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서 문재인은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운동권 정부’의 도덕성은 조국, 윤미향 등에서 바닥까지 보여준 상태다. 북한이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항일독립운동세력에 의해 세워졌고 대한민국은 정통성 없는 나라처럼 취급하는 당신들의 ‘좌파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용서하기 어렵다. 독립투사 후손을 대대손손 우대하는 세습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불평등한 ‘신 양반 사회’다.


역사를 조선시대까지 후퇴시킨 문재인은 자신의 뼈아픈 정치 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 주었으면 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대선 패널 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영향을 미친 이슈 1위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규제와 세금 정책만 쏟아낸 장본인이 문재인이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문 대통령의 고집으로 온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을 진심으로 사과할 때가 됐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던 취임사를 한번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아무리 ‘쇼통’에 능했던 문재인이었다 해도 “정치의 역할이 크다”라며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또박또박 읽는 식은 더는 봐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갈라치기 하며 5년간 너무나 깊은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해왔다. 윤 당선인의 취임식 슬로건이 ‘다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문재인의 서슬 퍼렇던 시절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은 주사파 간첩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한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목사로서 ‘자유의 사도’라는 칭호를 들을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는 말씀을 전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의 진리에 근거한 ‘자유 통일’을 위한 투쟁 덕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가 지금껏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남쪽의 여야 대립을 넘어 북한의 이념적 대리(代理)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한쪽엔 미국과 동맹을 기조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세력, 다른 쪽엔 북한의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결합한 김일성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6·25 전쟁이 그중의 하나다.


종북 운동권이 좌파를 장악했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대안 없는 통일과 굴욕적 평화론은 이제 볼 만큼 봐왔다. 결과는 북한의 전쟁력 강화에 이바지했을 뿐이다. 5~6건의 범법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씨를 당 대표로 뽑은 운동권 정당은 이제 한계에 왔다. 민주당에도 젊은 세대가 있다. 이들은 일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친숙하고 또 정직하다. 이 나라 좌파·진보의 본령을 철 지난, 효율성을 상실한 구시대적 이념·운동권의 횡포에 더 이상 맡겨둘 수 없다. ‘자유의 사도’ 전광훈 목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성경은 말씀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 9:17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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