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묻고 답을 들으며 교제를 나누노라면 산란한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생각조차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던가.
조선 시대 궁궐엔 건물에도 품계가 있었다. 왕이 업무를 보던 전(殿), 왕족이나 정승이 쓰던 합(閤), 판서급이 쓰던 각(閣) 등이다. 임금이 묵던 전과 ‘그 아래 엎드려 아뢴다(下)’라는 말을 합쳐 왕을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는 궁전의 ‘섬돌(陛)’ 즉 계단 아래에서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1598년 9월 18일))를 이르던 ‘합하(閤下)’는 왕족이나 정승을, ‘각하(閣下)’는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하던 호칭이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엔 고위급 군 장성을 각하라고 했다. 그래서 일본 식민지 시절 총독을 ‘갓카’라고 불렀다. 이승만 정부에선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도록 했다. 한때 부통령, 총리, 고위 장성까지 각하로 불러 각하 호칭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 각하는 대통령만의 고유 존칭이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할 때도 “각하”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는 각하를 가급적 쓰지 않도록 했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금지했다. 그래도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끼리는 모두 ‘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테디 베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봉제 곰 인형이다. 테디라는 이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유래했다. 1902년 사냥을 나간 루스벨트는 사냥꾼들이 곰을 잡아 와 총을 쏘라 했지만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 일화를 신문 만평으로 본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곰 인형에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이면서 감히 세계 제일 국가 원수의 각하에 대한 테디 베어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기독교의 사도는 신약의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이고 영어로는 Apostle이다.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직접 파견하신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도(使徒)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을 번역하며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를 번역하는 단어로 사용된 데서 유래했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에서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 인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즉 역사적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다. 이후 성령 강림하신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를 탄압하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넓은 의미에서 당시의 유대교와 문화적 관행을 타파하고 주님의 뜻을 전하는 사도로 인정했다.
1517년 세계 종교계 관행을 타파한 루터(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가 이런 찬송가를 지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_찬송가 585장, 마르틴 루터, 1529
독일의 신학자, 종교개혁가 루터는 본래 로마 가톨릭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소속 수도사제였다. 그러나 가톨릭의 비성경적 교리에 반발하여 끝내 파문까지 당하고 성경적인 노선에 투신한 종교개혁가이다. 사제 신분의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종교 개혁의 신호탄이 된다. 사실 종교 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 혹은 프로테스탄트 개혁( Protestant Reformation, European Reformation)은 서방교회의 개혁을 위한 교회 내부 운동이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오직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면서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와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으로 출발하여 부패한 교황제도 중심의 서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던 서방교회 개혁 운동이다.
루터의 반박문을 증명하는 유일한 문서인 요하네스 슈나이더(Johannes Schneider)의 육필원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517년 루터는 엘베 강변 비텐베르크에서 대학의 오랜 관습에 따라 모종의 명제를 논쟁용으로 제출했으나, 너무나 조심스러운 형태라서 누군가를 비방·중상할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관점을 반영하면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가톨릭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투쟁이 아니라 면죄부 판매와 교황의 권위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조심스러운 형태로 촉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루터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교황이 성육신한 마귀라고 믿는다. 그는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현명하기로 소문난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Friedrich der Weise von Sachsen, 1463년 1월 17일 ~ 1525년 5월 25일 재위 1486년 ~ 1525년)의 배려와 후원 하에 비텐베르크 성에 머물러 교황의 공격과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루터가 연구하던 서재 벽에 "마귀야 물러가라!" 외치며 잉크병을 던진 자국이 있다고 한다. 루터는 당대의 세계적이고 막강한 교황과 교황청의 관행을 타파한 종교 개혁가였다.
루터는 말했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니 내가 여기 서 있노라. 성경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로 타락하기 전에 아담 안에서 나는 무엇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내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지, 그리고 영원히 무엇이 될지를 본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4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
그런 루터처럼 일기당천(一騎當天) 홀로 일어서 대한민국 주류 교단의 전도 관행을 어린이 전도로 개혁한 김종준 목사는 어떤 인물일까.
예수님을 영접한 초신자가 처음부터 교회 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어린이 중심 전도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어린이들 손으로 나누어 주는 전도 초청장에 관심을 갖게 된 학교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와 전도하는 제자로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과자나 선물이 아닌 순수한 복음으로 어린이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저 복음을 가슴에 품고 전도해야겠다는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 어느 날 복음의 열매가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9
사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루터, 츠빙글리가 시작한 종교 개혁을 종합해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칼빈(Joh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의 예정론을 배운 김종준 목사였지만 '나는 왜 이리 가난할까' '나는 왜 이리 전도가 안 되는 걸까'하는 인생의 두 가지 좌절감에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신 확신, '복음 아니고는 절대로 자신의 환경을 극복할 수 없다'는 깨우침과 더불어 '전도는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예정 가운데 반드시 누군가를 전도자로 택하여 예비하셨고 그는 반드시 올바른 복음을 가졌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믿게 되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과 확신이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신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전도의 사명이 없다면 세상에 사는 존재 이유와 의미가 없다'는 각성이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1-6
율법의 관행을 타파한 사도 바울, 면죄부 관행을 타파한 종교개혁가 루터 같이 성경에 정통한 김종준 목사는 사도 바울의 제자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전도 방법을 온전히 발견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루터의 '이신칭의'와 칼빈의 '예정론'에 근거한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전도야말로 한국교회를 살리는 가장 좋은 전도방법이자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종준 목사의 '어린이 전도 지상명령'은 다음과 같은 루터의 말을 상기시킨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니 내가 여기 서 있노라. 성경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로 타락하기 전에 아담 안에서 나는 무엇이었으며, 타락한 후에 내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지, 그리고 영원히 무엇이 될지를 본다.”
성경은 말씀한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눅 18:15-17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