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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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봉사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봉사 70년대 전반의 대학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데 갑자기 시위를 주도하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 여학생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도서관 안에서 자기 출세를 위해 공부만 하는 겁니까? 여러분의 애국심은 어디로 갔습니까?”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운동권 지도부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우리들의 수업 시간에 들어와 문을 차단하고 연설했다. 공부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행동이 먼저 아니냐고 힐책했다. 그 말을 듣고 피가 끓으면서 비겁한 내가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깊은 산속의 한 암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운동권에서 뛰던 한 고교 후배가 내 옆방으로 숨어들었다. 내가 법서를 공부하듯 그는 러시아 혁명사, 불란서 혁명사, 모택동 사상,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는 민중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도 나의 양심은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형편없는 속물이라는 반성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대학 시절 애국심이 넘쳐흐르던 시위주도를 하던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나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다. 상당수가 다선의 국회의원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국가를 위하면 그렇게 일찍부터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한 명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서 경쟁 상대방과 진흙탕의 개싸움을 하는 걸 봤다. 그의 애국이 진짜 애국이었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탐욕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국을 팔아서 권력욕을 채워온 인생 같기도 했다. 시민단체를 만든 고교 후배가 있었다. 선의로 얼마의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그 단체에서 쓸 문구류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는 사회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정치로 나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시장이 됐다. 세월이 흐르자 그는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세상의 정상을 향해 사회의 험한 암벽을 타고 오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 죽었다. 애국을 위해서는 꼭 정계로 가야 하는 것일까. 사회의 개선을 위해서는 꼭 시민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분노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고압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투쟁을 한 경우가 있었다. 추운 겨울 마을 노인들이 송전선이 설치될 장소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들어가 결사 항전을 하는 모습이 언론의 초점이 됐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그 마을의 시위를 하던 노인의 아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이렇게 호소했다. “서울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마을로 찾아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시위 천막 뒤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사업가한테서 돈을 받아 세고 있더라구요. 그때야 우리가 속았다는 걸 알았죠. 그 사람들 말에 선동이 되어 농약을 먹고 자살한 우리 아버지는 억울해서 어떻게 해유?” 사회운동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주최하는 사업에 단순한 참여자로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이미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우상 같은 존재였다. 그의 표정과 행동과 두르고 다니는 공기가 그랬다. 기업가들이 그를 보는 눈은 달랐다. 겉으로는 술을 사주고 돈을 주지만 마음으로는 기업의 기생충쯤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하면 그는 뒷돈을 받지 말아야 했다. 캠페인을 벌이고 선전 선동을 해서 사회에 소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은 가짜다. 사람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에 알맞게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게 애국이고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닐까. 죽은 김지하 씨는 자기의 골방에서 시를 써서 전 국민의 마음에 울림을 준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는 정보부의 지하실에 끌려가 받은 고문의 체험을 글로 써서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홀로 서재에 묻혀 있으면서도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였다. 춤추고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은 음악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한국의 가치를 높였다. 그보다 더한 애국이 있을까. 세계 어느 도시에 가나 한국 대기업의 상품간판이 붙어있다. 그들은 상품으로 애국을 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꼭 정치할 필요가 없다. 사회를 개선한다고 시민운동가가 될 필요도 없다. 사회와 나라를 개선하겠다고 떠들지 말고 오직 외곬으로 양심에 비치는 하나님의 명령만 좇는 사람이 나라를 구원하는 게 아닐까. 나의 직업은 내가 받은 소명이다.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걸 충실히 하는 것이 국가에 유익을 끼치고 사회를 바로잡는 게 아닐까. 성경은 말한다. ‘너의 손이 감당할 힘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최선을 다해서 하라’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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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작지만 큰 나라
    작지만 큰 나라 90년대 중반경 카이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안내는 이집트 의사와 결혼해서 그곳에 정착한 한국 여성이었다. 그 여성이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한국에서 크던 시절만 해도 미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였어요. 물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후진국이었죠. 그런데 여기 카이로 시내를 우리나라에서 10년 전 폐차된 포니들이 굴러다니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나도록 반갑고 고마웠죠. 저처럼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되나 봐요.” 어린 시절 나의 조국은 거지와 실업자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대학 1학년이 될 때까지 미국이 돈을 주지 않으면 1년 예산을 짜지 못하는 나라였다. 스스로 먹고살지 못하면 완전히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부모 세대는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켰다. 우리 세대는 먹을 라면과 샘플이 든 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세일즈를 하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경제적 독립 국가를 세웠다. 카이로에서 룩소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이집트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집트에 와 보니 정말 당신네 조상들의 찬란한 문화를 알겠어요.” 그는 바로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우리 이집트보다 훨씬 잘 살고 많이 발달하지 않았나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청바지도 메이드 인 코리아고 이집트에는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안 들어와 있는 게 없어요. 한국은 부자입니다. 우리 이집트는 조상을 잘 만나 이렇게 관광국이 됐죠. 그러나 그 조상 덕에 우리들은 모두 게으름뱅이가 됐어요. 한국인 같이 부지런하지 않아요. 게으름뱅이가 많은 나라는 아무리 조상이 훌륭해도 가난해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죠.” 이집트인은 우리를 칭찬해 주었지만 내가 보는 현실은 어떤가? 매일 검색해 보는 언론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절망이다. 정치인의 부패, 종교 교육의 타락이다. 공정을 부르짖는 사람의 이면은 의를 사랑하는 소리가 아니라 불평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회, 조금도 신용할 수 없는 사회, 형식 일변도의 거짓으로 꾸며진 사회다. 돈을 좀 벌었다고 교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관광객들로 세계로 퍼져서 여자를 사고 추태를 부리는 기사도 종종 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태리 카프리섬 부두에 갔을 때였다. 벤치에 곱슬머리의 이태리인과 나란히 앉아있다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을 보면 일밖에 모르는 개미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만 벌면 다입니까? 주머니만 두둑하면 다냐구요?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예술이 있어야 하고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면 한국인들은 주머니는 가득 차 있는데 머리는 비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깨달았다. 한국에서 중산층은 아파트와 차가 기준이라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샹송과 역사에 대한 교양이 있어야 중산층으로 인정한다. 미국인은 휴가와 여유가 중산층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비슷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나는 빈정거리는 듯한 이태리인의 입을 통해 천민자본주의가 고쳐지려면 사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표를 향한 포장만 그럴듯한 생각 없는 상품이 아니고 그가 추구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가 어떤 것인가 알고 싶었다. 나라도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정신이 있어야 하고 세계 속에서 천직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은 그리이스는 철학을 인류에게 제공했다. 로마는 법률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민주주의 제도를 세계에 펼쳤다.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등의식으로 다른 나라가 만든 열매만 따 먹고 배만 부르면 될까. 우리는 특수한 재능을 가진 국민이다. 미국문화를 흡수 소화하고 한국화해서 한류 문화를 만들었다.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과학자는 비닐 소재 위에 복잡한 전자회로를 프린트하는 기술을 평생 연구하고 있다. 그것만 사업화하면 우리나라 20년 먹거리는 충분할 거라고 했다. 고교 동창인 바이오 회사 사장은 돼지를 이용한 인공장기개발에 성공했다고 내게 자랑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인들이 오랜 시간 걸려 땀 흘려 이룩한 기술을 우리는 단시간 내에 익히고 최고가 되어간다. 문화와 과학기술의 대국이 되어 세계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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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선행의 타이밍
    선행의 타이밍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손을 벌리는 경우가 참 많다. 몇 년 전 남해의 한 섬에서 노인들을 돌보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산다는 바닷가로 갔다. 선행을 하고 싶은 약간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는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비싼 전복죽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양지바른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집을 사달라고 했다.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돈이 없었다.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상습절도범을 무료변호한 적이 있다. 믿음이 깊은 것 같았다. 석방되던 날 그는 내게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데려와 한 달간 함께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그 후 석방이 된 후에도 또 도둑질을 했다. 나이 팔십까지 그는 일생을 도둑질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15년 동안 감옥에서 징역형을 치르고 있는 친척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거칠었다. 처도 자식을 데리고 떠나가고 형제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서워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면 공포에 떨었다. 그자 재판을 받을 때 가족이 오히려 그가 감옥에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탄원서까지 쓸 정도였다. 친척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 고독 속에 있는 그에 대한 연민으로 영치금을 보내주었다. 이빨이 대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그가 불쌍해 틀니를 해주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용접과 도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돈도 보내주었다. 그는 감옥에서 마치 하나님 대하듯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석방되면 꼭 착한 사람이 되어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노트에 천 번 써서 보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영혼이 구제되기를 바란 것이다. 마침내 추운 겨울 어느 날 그가 석방됐다. 그가 우선 필요할 돈이 든 옷을 보내고 시골에 묵을 따뜻한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귀촌을 해서 정직한 농부라도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부터 그는 내게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차를 한 대 사주셔야 내가 서울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차를 사주세요.” 그가 말했다. 그의 어조가 어느새 감사가 아닌 강요 조로 들렸다. 나는 친한 한 목사에게 의논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온정을 베풀 때도 그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니까 간을 보고 작업을 벌리는 겁니다. 그 친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먼저 구걸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천원만 적선하라고 하면 제법 주는 사람이 있어요. 노숙자 합숙소도 무료급식소도 있어요. 정부가 그런 사람 굶어 죽지 않게 주는 돈도 있어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도울 때도 냉정하게 도와야 합니다. 거절할 건 거절하고 단호하게 대할 건 단호했어야 합니다.” 그 목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선을 행하려고 했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운 육십 대 말의 재산이 많은 부인이 있다. 그 부인은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사람을 돕는 것도 타이밍이 있어요. 그 사람이 침몰할 때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돈을 도와주면 안 돼요. 어차피 바닥으로 떨어지더라구요. 도와줄 시가가 있는데 그건 그들이 바닥에서 두 다리로 딛고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예요. 이런 거 그냥 쉽게 말하는 게 아니예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철학이죠.” 그 부인에게서 진리를 배운 느낌이 들었다. 얼마후 다시 내게 전화가 왔다. “차를 사주시면 제가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해 봤어요?” “차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어정쩡하지 말고 ‘노’라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서울에 묵을 원룸을 얻어 줘요.” “그것도 싫은데” “그러면 나 죽으라는 겁니까? 하나님, 하나님 찾으면서 왜 그래요?” “너하고는 수신 차단하고 다시 연락하지 않을 거야.” 개 꼬리는 백 년이 지나도 개 꼬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믿을 하나님도 없는 사람은 정말 구원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깊은 늪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 이외의 사람에 의해 구원을 받던가 아니면 인간 이상의 존재인 그분에 의해 구원받는 방법이다. 나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진정으로 무릎을 꿇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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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나의 유년기부터 사회인이 되기까지 대통령은 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는 절대 권위와 두려움을 주는 궁전이었다. 허락된 극소수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법학도가 되면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변호사가 되어 우연히 대통령이 죄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담당 변호사가 어쩔 줄 모르면서 법정에 선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 “각하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피고인이라고 하세요” 재판장이 그 변호사에게 주의를 주었다. “제가 비서관으로 모셨던 대통령이신데 도저히 그렇게는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담당 변호사가 울상이 되면서 재판장에게 말했다. 그는 전제군주의 충성된 신하였다. 20년쯤 세월이 흐르고 다른 대통령이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대통령은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 아랫것들의 맹랑한 짓에 휩쓸리기 싫은 것 같았다. 나의 짐작일 뿐이다. 이어서 대통령 부하인 국정원장의 심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에게 예산을 지원한 게 뇌물인가 아닌가 따지는 법정이었다. 나는 국정원장의 담당 변호사로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어떤 인식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재판장은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안 나올걸요. 자기 재판도 출석하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말이죠.” “자기 사건에서 안 나오는 건 자유지만 부하의 재판에서는 입장이 다르죠. 상관으로서 법정에 나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게 도리 아닐까요?” 나는 따지는 글을 써서 대통령에게 보냈다. 얼마 후 만난 대통령의 측근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지존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지존은 임금이라는 말이었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있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어야 했다. 역사는 왕이 점점 낮아지고 국민이 올라가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피고인이 아니라 고소인이 된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뒤에서 국회의원 한 사람을 고소했다. 그 의원이 대통령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면서 공업용 미싱으로 그 입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나는 그 의원의 변호인이었다. 이상했다. 현직 대통령인 그는 개인적으로 고소를 할 성품이 아니었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도 고문을 한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인격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진짜 개인적으로 고소를 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재판장에게 증인신청을 했다. “어떻게 대통령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까?” 재판장이 난색을 표명했다. “왜 대통령은 법절차에서 예외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항의했다. 우리들의 인식 속에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왕이었다. 얼마 전 측근으로 있으면서 대통령을 지켜본 한 정치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만 되면 주변에서 왕을 만들어요. 청와대라는 궁전에 살면서 대접을 받으면 대통령이 진짜 왕이 되어버리더라니까. 자신의 결정은 절대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비판을 증오하기도 하지. 역사 앞에서 5년은 정말 짧은 기간인데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리도 하지.” 그렇게 권력에 취하기 마련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보통사람으로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는 소박하고 겸손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외국의 어떤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사양하고 변두리에 있는 자기가 살던 허름한 집에서 살면서 집무실로 출퇴근을 했다. 사용하던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았다. 월급의 상당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다. 대통령의 부인은 오후면 거리로 나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더 존경하고 한 마음으로 뭉쳤다. 대통령이 보통사람이 되어야 우리 민주주의도 꽃을 피우지 않을까.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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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댓글’
    ‘댓글’ 서울에서 동해시의 원룸을 얻어 이주해서 미니멀라이프를 실행하는 부부가 있다. 그 부부는 자기들 생활을 유튜브를 통해 알리다가 참 많은 댓글을 받고 자주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너희 삶은 틀렸어’라고 규정짓는 글을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어떤 이는 본인의 삶이 옳다는 걸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깎아내리더라고 ‘저기요 몇 달 전 영상에서는 샴푸를 쓰지 않는다면서요. 그런데 최근 영상에서는 왜 샴푸를 쓴다고 하죠?’ 그런 댓글이 있었다. 그들 부부는 어떤 책에서 샴푸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길래 그렇게 시도해 보다가 다시 머리에서 냄새도 나고 각질도 생겨 다시 샴푸를 쓰고 있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다툼이 되고 그게 끝나면 어김없이 허탈감만 남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계속 변하고 과거에 내뱉은 말에 얽매여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 부부는 곧이곧대로 답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침묵이나 ‘잘 모르겠네요’도 대답이 될 수 있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들 부부는 늙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 같았다. 나도 블로그를 한 세월이 벌써 10년 전후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나의 메모장 내지 일기 정도를 쓰는 도구로 착각할 정도로 무식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렸다가 뒤늦게 전부 비공개로 돌린 적이 있다. 내 세대는 세상에 호소할 사정을 담은 전단지를 거리에서 뿌리기도 했다.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알리는 도구로 삼았다. 법의 뒤편에 가려진 음모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어떤 사건은 백만 명이 넘게 보기도 하고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 광신적인 종교집단이나 정치단체는 직접 댓글로 역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송을 제기당해 대법원까지 가기도 했다. 블로그라는 도구는 내 골방에 앉아서도 세상의 불의와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 같았다. 특정 사건을 맡아 처리할 때 집단적인 댓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마치 말벌 떼의 공격을 받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면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재판과 관련되어 알게 된 한 여성이 있다. 청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야구모자 뒤로 길게 늘어진 머리가 예뻐 보였다. 그런 그녀가 예상치 못했던 비틀린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연예인들만을 상대로 공격적인 댓글을 일삼았다. 연예인으로부터 반박하는 댓글이 오면 그녀는 미쳐버렸다. 몇 날 밤 잠을 자지 않으면서 저주와 비난의 댓글 폭탄을 터뜨렸다. 정말 이해 못 할 악마의 품성이었다. 그런 댓글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맑고 향기로운 내용의 글들을 블로그에 올려보자는 것이었다. 세상은 지적하고 비판하고 비난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언론이 그 임무를 담당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언론인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만 다루는 언론 때문에 사회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면도 있었다. 세상을 보는 렌즈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의 천직은 변호사다. 변호사란 세상이 욕하는 범죄인에게서도 선한 면을 찾아야 하는 직업이다. 죄를 미워하더라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아야 할 다른 시각을 가져야 했다. 세상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물에서도 선한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 본다. 악과 나쁜 점은 보통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악한 사람은 악을 본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악을 보기는 쉽고 선을 보기는 어렵다. 악한 평가는 한 사람이 말해도 모두 믿는데 선한 칭찬은 천 사람이 말해도 쉽게 믿지 않고 그 저의를 의심하는 세상이었다. 선한 일들을 들추어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게 내가 블로그를 하는 목적이라고 할까.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 드는 작은 행위 같다. 그게 사람들에게 밥은 주지 못해도 위로는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댓글로 어떤 말이 들어와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비난은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좋은 댓글을 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선한 이웃이다. 항상 감사하고 있다. 세상에 향기를 품어내는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그리고 그 향기를 나누는 댓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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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0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묵호의 작은 책방
    묵호의 작은 책방 나는 젊어서부터 바닷가 마을에 작은 책방을 하고 싶었다. 잔잔한 명상의 분위기가 안팎으로 출렁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작은 공간 안에 있는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굶어 죽을 게 두려워 낭만에 그쳤다. 칠십 고개를 넘어선 요즈음 묵호 근처 바닷가 마을로 와서 산다. 뒤늦게 반 발자국쯤의 용기를 내 삶의 장소를 옮긴 것이다. 서울의 한 친구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묵호에 ‘잔잔하게’라는 아주 작은 책방이 있다네. 여행작가인 부인과 사진작가인 남편이 차렸다는 미니서점이야. 지나가는 길에 들러 봐> 순간 나는 참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꿈에 그쳤고 그들은 현실로 만든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발품을 팔아 그 작은 서점을 찾아갔다. 낡은 건물의 일부분을 빌린 간판도 붙이지 않은 서점이었다.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하고 깔끔한 서가에는 크고 작은 하얀 책들이 꽂혀있고 그 사이사이에 앙증맞은 외국의 인형들이 서 있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했다. 구석의 아날로그 턴테이블 위에는 진홍색의 엘피판이 흘러간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서점 곳곳에 주인 부부의 꿈이 신선하게 묻어있었다. 내가 서가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삼십 대 말이나 갓 사십 대쯤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도 주는 것 같았다. 구석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앞뒤로 의자가 놓여있었다. 향기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그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이런 서점을 하게 됐어요? 나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그냥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어요. 유럽 같은 곳에 여행을 할 때 골목 안 작은 서점이 참 평화로워 보였어요. 고양이는 꼬리를 길게 세우고 무료한 듯이 서가 사이를 걸어가고 구석에 앉은 주인은 세월을 낚으면서 앉아있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냥 그걸 실행해 본 거죠. 아내와 십 년 정도 같이 세계여행을 했어요. 인도에서도 몇 년 살았죠.” 그들 부부는 이미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책 속의 희랍인 조르바 같이 평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대한 아무런 근심이 없어 보였다. 그게 젊음의 특권인가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였다. 굶어 죽는 데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 아파트와 자동차가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철학이 결여된 일개미였다. 일에 중독이 되어 먹이를 가져다 저장만 할 뿐 사용할 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힘이 빠져 죽었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종이책이 팔립니까?” 내가 물었다.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종이책은 사멸할 운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걸 이익으로만 보는 나의 습관적인 시각이었다. “여기서 작은 서점을 해보니까 저녁 무렵이면 시장을 보고 돌아가는 부인들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가요. 의외였어요. 오래된 바닷가 도시 사람들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되네요. 이 작은 서점에서 종이책을 팔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순간 나는 말실수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세상을 보고 서점을 낸 철학 자체가 상업적 논리를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통속적이고 물질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잣대로 남을 생각하는 데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걱정들을 해주세요. 독특한 음식이나 차를 팔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호기심에 와서 책을 산 사람이 다시 서점에 들리기는 쉽지 않다는 거죠. 종이책을 배낭에 넣으면 짐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떤 분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업종을 해보라는 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이렇게 살아볼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현상 뒤에 있는 그들의 어떤 깨달음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었다. 물질 너머의 어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자기는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다고 했다. 자신의 무소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먹고살 것을 걱정하는 인간은 까마귀보다 못한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걱정하지 않는 주의라고 할까. 그는 인간이 걱정할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단 한 가지라고 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나머지는 그분이 줄 것이라고 했다.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생각하던 젊은 책방 주인이 내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전에 제가 성공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해 주셨는데 성공한 저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순간 젊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질문형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잠시 다시 생각한 후에 이렇게 고쳐서 대답했다. “세월이 가고 내 나이같이 되어서도 오래된 이 작은 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잔잔하게 늙어가는 건 아닐까요?” 깨달음을 얻은 은자로서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그런 깨달음과 마음의 평안이 아닐까.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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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실시간 G.BOOK2 기사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봉사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봉사 70년대 전반의 대학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데 갑자기 시위를 주도하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 여학생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도서관 안에서 자기 출세를 위해 공부만 하는 겁니까? 여러분의 애국심은 어디로 갔습니까?”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운동권 지도부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우리들의 수업 시간에 들어와 문을 차단하고 연설했다. 공부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행동이 먼저 아니냐고 힐책했다. 그 말을 듣고 피가 끓으면서 비겁한 내가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깊은 산속의 한 암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운동권에서 뛰던 한 고교 후배가 내 옆방으로 숨어들었다. 내가 법서를 공부하듯 그는 러시아 혁명사, 불란서 혁명사, 모택동 사상,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는 민중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도 나의 양심은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형편없는 속물이라는 반성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대학 시절 애국심이 넘쳐흐르던 시위주도를 하던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나 국무총리가 되어 있었다. 상당수가 다선의 국회의원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국가를 위하면 그렇게 일찍부터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한 명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서 경쟁 상대방과 진흙탕의 개싸움을 하는 걸 봤다. 그의 애국이 진짜 애국이었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탐욕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국을 팔아서 권력욕을 채워온 인생 같기도 했다. 시민단체를 만든 고교 후배가 있었다. 선의로 얼마의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그 단체에서 쓸 문구류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는 사회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정치로 나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시장이 됐다. 세월이 흐르자 그는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세상의 정상을 향해 사회의 험한 암벽을 타고 오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 죽었다. 애국을 위해서는 꼭 정계로 가야 하는 것일까. 사회의 개선을 위해서는 꼭 시민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분노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고압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투쟁을 한 경우가 있었다. 추운 겨울 마을 노인들이 송전선이 설치될 장소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들어가 결사 항전을 하는 모습이 언론의 초점이 됐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그 마을의 시위를 하던 노인의 아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이렇게 호소했다. “서울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마을로 찾아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시위 천막 뒤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사업가한테서 돈을 받아 세고 있더라구요. 그때야 우리가 속았다는 걸 알았죠. 그 사람들 말에 선동이 되어 농약을 먹고 자살한 우리 아버지는 억울해서 어떻게 해유?” 사회운동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주최하는 사업에 단순한 참여자로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이미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우상 같은 존재였다. 그의 표정과 행동과 두르고 다니는 공기가 그랬다. 기업가들이 그를 보는 눈은 달랐다. 겉으로는 술을 사주고 돈을 주지만 마음으로는 기업의 기생충쯤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하면 그는 뒷돈을 받지 말아야 했다. 캠페인을 벌이고 선전 선동을 해서 사회에 소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은 가짜다. 사람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에 알맞게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게 애국이고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닐까. 죽은 김지하 씨는 자기의 골방에서 시를 써서 전 국민의 마음에 울림을 준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는 정보부의 지하실에 끌려가 받은 고문의 체험을 글로 써서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홀로 서재에 묻혀 있으면서도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였다. 춤추고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은 음악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한국의 가치를 높였다. 그보다 더한 애국이 있을까. 세계 어느 도시에 가나 한국 대기업의 상품간판이 붙어있다. 그들은 상품으로 애국을 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꼭 정치할 필요가 없다. 사회를 개선한다고 시민운동가가 될 필요도 없다. 사회와 나라를 개선하겠다고 떠들지 말고 오직 외곬으로 양심에 비치는 하나님의 명령만 좇는 사람이 나라를 구원하는 게 아닐까. 나의 직업은 내가 받은 소명이다.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걸 충실히 하는 것이 국가에 유익을 끼치고 사회를 바로잡는 게 아닐까. 성경은 말한다. ‘너의 손이 감당할 힘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최선을 다해서 하라’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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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8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작지만 큰 나라
    작지만 큰 나라 90년대 중반경 카이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안내는 이집트 의사와 결혼해서 그곳에 정착한 한국 여성이었다. 그 여성이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한국에서 크던 시절만 해도 미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였어요. 물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후진국이었죠. 그런데 여기 카이로 시내를 우리나라에서 10년 전 폐차된 포니들이 굴러다니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나도록 반갑고 고마웠죠. 저처럼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되나 봐요.” 어린 시절 나의 조국은 거지와 실업자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대학 1학년이 될 때까지 미국이 돈을 주지 않으면 1년 예산을 짜지 못하는 나라였다. 스스로 먹고살지 못하면 완전히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부모 세대는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켰다. 우리 세대는 먹을 라면과 샘플이 든 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세일즈를 하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경제적 독립 국가를 세웠다. 카이로에서 룩소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이집트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집트에 와 보니 정말 당신네 조상들의 찬란한 문화를 알겠어요.” 그는 바로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우리 이집트보다 훨씬 잘 살고 많이 발달하지 않았나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청바지도 메이드 인 코리아고 이집트에는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안 들어와 있는 게 없어요. 한국은 부자입니다. 우리 이집트는 조상을 잘 만나 이렇게 관광국이 됐죠. 그러나 그 조상 덕에 우리들은 모두 게으름뱅이가 됐어요. 한국인 같이 부지런하지 않아요. 게으름뱅이가 많은 나라는 아무리 조상이 훌륭해도 가난해요. 그게 우리의 현실이죠.” 이집트인은 우리를 칭찬해 주었지만 내가 보는 현실은 어떤가? 매일 검색해 보는 언론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절망이다. 정치인의 부패, 종교 교육의 타락이다. 공정을 부르짖는 사람의 이면은 의를 사랑하는 소리가 아니라 불평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회, 조금도 신용할 수 없는 사회, 형식 일변도의 거짓으로 꾸며진 사회다. 돈을 좀 벌었다고 교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관광객들로 세계로 퍼져서 여자를 사고 추태를 부리는 기사도 종종 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태리 카프리섬 부두에 갔을 때였다. 벤치에 곱슬머리의 이태리인과 나란히 앉아있다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을 보면 일밖에 모르는 개미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만 벌면 다입니까? 주머니만 두둑하면 다냐구요?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예술이 있어야 하고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면 한국인들은 주머니는 가득 차 있는데 머리는 비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깨달았다. 한국에서 중산층은 아파트와 차가 기준이라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샹송과 역사에 대한 교양이 있어야 중산층으로 인정한다. 미국인은 휴가와 여유가 중산층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비슷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나는 빈정거리는 듯한 이태리인의 입을 통해 천민자본주의가 고쳐지려면 사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표를 향한 포장만 그럴듯한 생각 없는 상품이 아니고 그가 추구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가 어떤 것인가 알고 싶었다. 나라도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정신이 있어야 하고 세계 속에서 천직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은 그리이스는 철학을 인류에게 제공했다. 로마는 법률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민주주의 제도를 세계에 펼쳤다.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등의식으로 다른 나라가 만든 열매만 따 먹고 배만 부르면 될까. 우리는 특수한 재능을 가진 국민이다. 미국문화를 흡수 소화하고 한국화해서 한류 문화를 만들었다.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과학자는 비닐 소재 위에 복잡한 전자회로를 프린트하는 기술을 평생 연구하고 있다. 그것만 사업화하면 우리나라 20년 먹거리는 충분할 거라고 했다. 고교 동창인 바이오 회사 사장은 돼지를 이용한 인공장기개발에 성공했다고 내게 자랑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인들이 오랜 시간 걸려 땀 흘려 이룩한 기술을 우리는 단시간 내에 익히고 최고가 되어간다. 문화와 과학기술의 대국이 되어 세계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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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선행의 타이밍
    선행의 타이밍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손을 벌리는 경우가 참 많다. 몇 년 전 남해의 한 섬에서 노인들을 돌보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산다는 바닷가로 갔다. 선행을 하고 싶은 약간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는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비싼 전복죽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양지바른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집을 사달라고 했다.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돈이 없었다.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상습절도범을 무료변호한 적이 있다. 믿음이 깊은 것 같았다. 석방되던 날 그는 내게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데려와 한 달간 함께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그 후 석방이 된 후에도 또 도둑질을 했다. 나이 팔십까지 그는 일생을 도둑질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15년 동안 감옥에서 징역형을 치르고 있는 친척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거칠었다. 처도 자식을 데리고 떠나가고 형제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서워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면 공포에 떨었다. 그자 재판을 받을 때 가족이 오히려 그가 감옥에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탄원서까지 쓸 정도였다. 친척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 고독 속에 있는 그에 대한 연민으로 영치금을 보내주었다. 이빨이 대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그가 불쌍해 틀니를 해주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용접과 도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돈도 보내주었다. 그는 감옥에서 마치 하나님 대하듯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석방되면 꼭 착한 사람이 되어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노트에 천 번 써서 보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영혼이 구제되기를 바란 것이다. 마침내 추운 겨울 어느 날 그가 석방됐다. 그가 우선 필요할 돈이 든 옷을 보내고 시골에 묵을 따뜻한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귀촌을 해서 정직한 농부라도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부터 그는 내게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차를 한 대 사주셔야 내가 서울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차를 사주세요.” 그가 말했다. 그의 어조가 어느새 감사가 아닌 강요 조로 들렸다. 나는 친한 한 목사에게 의논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온정을 베풀 때도 그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니까 간을 보고 작업을 벌리는 겁니다. 그 친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먼저 구걸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천원만 적선하라고 하면 제법 주는 사람이 있어요. 노숙자 합숙소도 무료급식소도 있어요. 정부가 그런 사람 굶어 죽지 않게 주는 돈도 있어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도울 때도 냉정하게 도와야 합니다. 거절할 건 거절하고 단호하게 대할 건 단호했어야 합니다.” 그 목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선을 행하려고 했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운 육십 대 말의 재산이 많은 부인이 있다. 그 부인은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사람을 돕는 것도 타이밍이 있어요. 그 사람이 침몰할 때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돈을 도와주면 안 돼요. 어차피 바닥으로 떨어지더라구요. 도와줄 시가가 있는데 그건 그들이 바닥에서 두 다리로 딛고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예요. 이런 거 그냥 쉽게 말하는 게 아니예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철학이죠.” 그 부인에게서 진리를 배운 느낌이 들었다. 얼마후 다시 내게 전화가 왔다. “차를 사주시면 제가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해 봤어요?” “차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어정쩡하지 말고 ‘노’라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서울에 묵을 원룸을 얻어 줘요.” “그것도 싫은데” “그러면 나 죽으라는 겁니까? 하나님, 하나님 찾으면서 왜 그래요?” “너하고는 수신 차단하고 다시 연락하지 않을 거야.” 개 꼬리는 백 년이 지나도 개 꼬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믿을 하나님도 없는 사람은 정말 구원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깊은 늪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 이외의 사람에 의해 구원을 받던가 아니면 인간 이상의 존재인 그분에 의해 구원받는 방법이다. 나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진정으로 무릎을 꿇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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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나의 유년기부터 사회인이 되기까지 대통령은 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는 절대 권위와 두려움을 주는 궁전이었다. 허락된 극소수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법학도가 되면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변호사가 되어 우연히 대통령이 죄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담당 변호사가 어쩔 줄 모르면서 법정에 선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 “각하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피고인이라고 하세요” 재판장이 그 변호사에게 주의를 주었다. “제가 비서관으로 모셨던 대통령이신데 도저히 그렇게는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담당 변호사가 울상이 되면서 재판장에게 말했다. 그는 전제군주의 충성된 신하였다. 20년쯤 세월이 흐르고 다른 대통령이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대통령은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 아랫것들의 맹랑한 짓에 휩쓸리기 싫은 것 같았다. 나의 짐작일 뿐이다. 이어서 대통령 부하인 국정원장의 심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에게 예산을 지원한 게 뇌물인가 아닌가 따지는 법정이었다. 나는 국정원장의 담당 변호사로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어떤 인식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재판장은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안 나올걸요. 자기 재판도 출석하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말이죠.” “자기 사건에서 안 나오는 건 자유지만 부하의 재판에서는 입장이 다르죠. 상관으로서 법정에 나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게 도리 아닐까요?” 나는 따지는 글을 써서 대통령에게 보냈다. 얼마 후 만난 대통령의 측근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지존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지존은 임금이라는 말이었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있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어야 했다. 역사는 왕이 점점 낮아지고 국민이 올라가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피고인이 아니라 고소인이 된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뒤에서 국회의원 한 사람을 고소했다. 그 의원이 대통령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면서 공업용 미싱으로 그 입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나는 그 의원의 변호인이었다. 이상했다. 현직 대통령인 그는 개인적으로 고소를 할 성품이 아니었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도 고문을 한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인격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진짜 개인적으로 고소를 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재판장에게 증인신청을 했다. “어떻게 대통령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까?” 재판장이 난색을 표명했다. “왜 대통령은 법절차에서 예외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항의했다. 우리들의 인식 속에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왕이었다. 얼마 전 측근으로 있으면서 대통령을 지켜본 한 정치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만 되면 주변에서 왕을 만들어요. 청와대라는 궁전에 살면서 대접을 받으면 대통령이 진짜 왕이 되어버리더라니까. 자신의 결정은 절대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비판을 증오하기도 하지. 역사 앞에서 5년은 정말 짧은 기간인데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리도 하지.” 그렇게 권력에 취하기 마련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보통사람으로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는 소박하고 겸손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외국의 어떤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사양하고 변두리에 있는 자기가 살던 허름한 집에서 살면서 집무실로 출퇴근을 했다. 사용하던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았다. 월급의 상당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다. 대통령의 부인은 오후면 거리로 나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더 존경하고 한 마음으로 뭉쳤다. 대통령이 보통사람이 되어야 우리 민주주의도 꽃을 피우지 않을까.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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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댓글’
    ‘댓글’ 서울에서 동해시의 원룸을 얻어 이주해서 미니멀라이프를 실행하는 부부가 있다. 그 부부는 자기들 생활을 유튜브를 통해 알리다가 참 많은 댓글을 받고 자주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너희 삶은 틀렸어’라고 규정짓는 글을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어떤 이는 본인의 삶이 옳다는 걸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깎아내리더라고 ‘저기요 몇 달 전 영상에서는 샴푸를 쓰지 않는다면서요. 그런데 최근 영상에서는 왜 샴푸를 쓴다고 하죠?’ 그런 댓글이 있었다. 그들 부부는 어떤 책에서 샴푸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길래 그렇게 시도해 보다가 다시 머리에서 냄새도 나고 각질도 생겨 다시 샴푸를 쓰고 있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다툼이 되고 그게 끝나면 어김없이 허탈감만 남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계속 변하고 과거에 내뱉은 말에 얽매여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 부부는 곧이곧대로 답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침묵이나 ‘잘 모르겠네요’도 대답이 될 수 있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들 부부는 늙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 같았다. 나도 블로그를 한 세월이 벌써 10년 전후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나의 메모장 내지 일기 정도를 쓰는 도구로 착각할 정도로 무식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렸다가 뒤늦게 전부 비공개로 돌린 적이 있다. 내 세대는 세상에 호소할 사정을 담은 전단지를 거리에서 뿌리기도 했다.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알리는 도구로 삼았다. 법의 뒤편에 가려진 음모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어떤 사건은 백만 명이 넘게 보기도 하고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 광신적인 종교집단이나 정치단체는 직접 댓글로 역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송을 제기당해 대법원까지 가기도 했다. 블로그라는 도구는 내 골방에 앉아서도 세상의 불의와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 같았다. 특정 사건을 맡아 처리할 때 집단적인 댓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마치 말벌 떼의 공격을 받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면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재판과 관련되어 알게 된 한 여성이 있다. 청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야구모자 뒤로 길게 늘어진 머리가 예뻐 보였다. 그런 그녀가 예상치 못했던 비틀린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연예인들만을 상대로 공격적인 댓글을 일삼았다. 연예인으로부터 반박하는 댓글이 오면 그녀는 미쳐버렸다. 몇 날 밤 잠을 자지 않으면서 저주와 비난의 댓글 폭탄을 터뜨렸다. 정말 이해 못 할 악마의 품성이었다. 그런 댓글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맑고 향기로운 내용의 글들을 블로그에 올려보자는 것이었다. 세상은 지적하고 비판하고 비난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언론이 그 임무를 담당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언론인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만 다루는 언론 때문에 사회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면도 있었다. 세상을 보는 렌즈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의 천직은 변호사다. 변호사란 세상이 욕하는 범죄인에게서도 선한 면을 찾아야 하는 직업이다. 죄를 미워하더라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아야 할 다른 시각을 가져야 했다. 세상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물에서도 선한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 본다. 악과 나쁜 점은 보통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악한 사람은 악을 본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악을 보기는 쉽고 선을 보기는 어렵다. 악한 평가는 한 사람이 말해도 모두 믿는데 선한 칭찬은 천 사람이 말해도 쉽게 믿지 않고 그 저의를 의심하는 세상이었다. 선한 일들을 들추어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게 내가 블로그를 하는 목적이라고 할까.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 하나 드는 작은 행위 같다. 그게 사람들에게 밥은 주지 못해도 위로는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댓글로 어떤 말이 들어와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비난은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좋은 댓글을 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선한 이웃이다. 항상 감사하고 있다. 세상에 향기를 품어내는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그리고 그 향기를 나누는 댓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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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0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묵호의 작은 책방
    묵호의 작은 책방 나는 젊어서부터 바닷가 마을에 작은 책방을 하고 싶었다. 잔잔한 명상의 분위기가 안팎으로 출렁이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작은 공간 안에 있는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굶어 죽을 게 두려워 낭만에 그쳤다. 칠십 고개를 넘어선 요즈음 묵호 근처 바닷가 마을로 와서 산다. 뒤늦게 반 발자국쯤의 용기를 내 삶의 장소를 옮긴 것이다. 서울의 한 친구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묵호에 ‘잔잔하게’라는 아주 작은 책방이 있다네. 여행작가인 부인과 사진작가인 남편이 차렸다는 미니서점이야. 지나가는 길에 들러 봐> 순간 나는 참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꿈에 그쳤고 그들은 현실로 만든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발품을 팔아 그 작은 서점을 찾아갔다. 낡은 건물의 일부분을 빌린 간판도 붙이지 않은 서점이었다.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하고 깔끔한 서가에는 크고 작은 하얀 책들이 꽂혀있고 그 사이사이에 앙증맞은 외국의 인형들이 서 있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했다. 구석의 아날로그 턴테이블 위에는 진홍색의 엘피판이 흘러간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서점 곳곳에 주인 부부의 꿈이 신선하게 묻어있었다. 내가 서가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삼십 대 말이나 갓 사십 대쯤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도 주는 것 같았다. 구석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앞뒤로 의자가 놓여있었다. 향기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그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이런 서점을 하게 됐어요? 나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그냥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어요. 유럽 같은 곳에 여행을 할 때 골목 안 작은 서점이 참 평화로워 보였어요. 고양이는 꼬리를 길게 세우고 무료한 듯이 서가 사이를 걸어가고 구석에 앉은 주인은 세월을 낚으면서 앉아있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냥 그걸 실행해 본 거죠. 아내와 십 년 정도 같이 세계여행을 했어요. 인도에서도 몇 년 살았죠.” 그들 부부는 이미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책 속의 희랍인 조르바 같이 평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대한 아무런 근심이 없어 보였다. 그게 젊음의 특권인가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였다. 굶어 죽는 데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 아파트와 자동차가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철학이 결여된 일개미였다. 일에 중독이 되어 먹이를 가져다 저장만 할 뿐 사용할 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힘이 빠져 죽었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종이책이 팔립니까?” 내가 물었다. 스마트 폰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종이책은 사멸할 운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걸 이익으로만 보는 나의 습관적인 시각이었다. “여기서 작은 서점을 해보니까 저녁 무렵이면 시장을 보고 돌아가는 부인들이 책을 한 권씩 사서 장바구니에 넣고 가요. 의외였어요. 오래된 바닷가 도시 사람들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되네요. 이 작은 서점에서 종이책을 팔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순간 나는 말실수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세상을 보고 서점을 낸 철학 자체가 상업적 논리를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통속적이고 물질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잣대로 남을 생각하는 데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걱정들을 해주세요. 독특한 음식이나 차를 팔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호기심에 와서 책을 산 사람이 다시 서점에 들리기는 쉽지 않다는 거죠. 종이책을 배낭에 넣으면 짐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떤 분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업종을 해보라는 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이렇게 살아볼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현상 뒤에 있는 그들의 어떤 깨달음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었다. 물질 너머의 어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자기는 머리를 누일 곳조차 없다고 했다. 자신의 무소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먹고살 것을 걱정하는 인간은 까마귀보다 못한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걱정하지 않는 주의라고 할까. 그는 인간이 걱정할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단 한 가지라고 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나머지는 그분이 줄 것이라고 했다.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생각하던 젊은 책방 주인이 내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전에 제가 성공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해 주셨는데 성공한 저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순간 젊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질문형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잠시 다시 생각한 후에 이렇게 고쳐서 대답했다. “세월이 가고 내 나이같이 되어서도 오래된 이 작은 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잔잔하게 늙어가는 건 아닐까요?” 깨달음을 얻은 은자로서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그런 깨달음과 마음의 평안이 아닐까.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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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영혼 밭에 떨어진 노래
    영혼 밭에 떨어진 노래 열여덟 살의 어느 봄날 정오 무렵이었다. 나는 까까머리에 빛바랜 검정 교복을 입고 어둠침침한 독서실의 구석 칸막이 책상 앞에 있었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양철 도시락 안의 굳어진 찬밥과 작은 병에 든 김치를 반찬으로 먹고 도시락 뚜껑에 담긴 물을 마셨다. 내게 그 시절은 춥고 어둡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독서실 구석의 벽 위쪽으로 손바닥만 한 작은 창이 있었다. 더께 앉은 창은 유리가 금이 가고 쪽이 떨어져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으로 서늘한 느낌의 노래가 물같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긴 밤 지새우고’ 내 또래 가수 양희은의 젊은 기운이 담긴 가사였다. 절망의 깊은 밤에 기다리는 푸른 새벽이 느껴졌다. 멜로디가 동굴 같은 내 귀를 타고 들어와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주변의 어둠이 바래어지면서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나의 영혼 속 광경은 검은 새벽과 이어지면서 서서히 헤어지는 붉은 빛깔로 물드는 것 같았다. 그 노래는 당시 어둠침침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독서실의 풍경과 함께 추억의 한 장면이 되어 평생 남아있다. 노래는 영혼의 소리다. 노랫말이 현상 너머의 어떤 의미라면 멜로디는 여러 색깔의 감정이 아닐까. 팝송도 좋아했었다. 멜로디에서 감성은 느껴지는데 언어의 벽이 있으니까 영혼 속으로 침투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사만으로 노래가 되지 않듯이 멜로디만으로도 노래는 되지 않았다. 내가 군인이 되어 고된 훈련을 받을 때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군가를 부르게 했다. 그냥 따라 부르다가 이런 가사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부모 형제 우릴 믿고 단잠을 이룬다’ 내가 군인이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점령을 당하면 나뿐 아니라 주위의 가족들이 죽는다. 역사를 보면 전쟁은 인간도살이었다. 죽지 않으면 포로가 노예로 평생 짐승의 삶이다. 노래 한 소절에 담긴 진리는 철학보다 깊고 실감이 났다. 가족과 사회와 나라는 동맹을 맺은 강대국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2년째 되던 해에 아내와 다툰 일이 있었다. 서로 힘이 들었다. 아내가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친정 오빠 집으로 갔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지하상가를 걷고 있는데 전파사 문 앞에 놓여있는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통기타 가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실린 노래였다. 성경 속 사랑의 진리가 마시멜로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에 실려 파도같이 마음 기슭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로 돌아와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거래. 미안해” 그렇게 화해가 됐다. 진리가 노래가 되고 그 노래는 영혼을 강하게 흔들었다. 노래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지진같이 뒤흔들었던 것 같다. 유럽의 속담 중에 “나에게 하나의 작은 노래를 만들게 하라 그러면 나는 온 국민을 움직이리라”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인들의 ‘라 마르세유 유즈’ 같은 노래는 군대보다 강한 자유민주혁명의 추진력이었다. 노래는 어떤 이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국민의 이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작은 노래가 그런 나라를 만든다. 철학자가 대 저작으로 백 년 걸려도 할 수 없는 일을 시인은 한편의 노래로 만들어서 한순간에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때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마음이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월드컵 축구 응원 때 ‘대한민국’이라고 하면서 박수를 치는 순간 애국심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가수 조용남 씨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화개장터’라는 노래로 하고 있다. 좋은 노래는 인간의 영혼에 향기가 나게 하는 것 같다. 절의 스님들은 매일 새벽 청정한 시간에 낭랑한 소리로 염불을 한다. 그건 진리를 담은 노래가 아닐까. 나도 수시로 찬송을 한다. 노래인 동시에 소리 나는 기도이기도 하다. 대 철학은 노래 한 소절에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고향도 추억 속 유행가의 한 토막 안에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노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다.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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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8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우주 끝 천국
    우주 끝 천국 아내는 유튜브의 여러 영상을 좋아한다.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어떤 사람이 최신 천체 망원경으로 우주의 끝부분을 봤는데 거기에 천국이 있더래.” 나는 그냥 픽 웃었다. 어려서 옥황상제가 사시는 나라가 하늘 저 멀리 있는 것 같이 생각하기도 했다. 성경 속에서 예수가 부르짖는 천국은 어디일까 상상하곤 했다. 따지고 보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고 거기서 계속 살아간다는 게 복음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선생님이 없다. 그래서 이따금씩 백오십 년 전을 살았던 현자에게 어린애 같은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묻곤 한다. 그런 현자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죽은 시인이나 철학자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써놓은 책을 보는 방법이었다. 신비로운 접신이 아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존경하는 그 현자 영감님에게 궁금한 걸 몇 가지 묻기 시작했다. ‘이 우주라는 게 뭡니까? 그냥 수많은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무질서하게 떠돌아다니는 무한한 공간입니까?’ ‘아니요, 우주는 무한히 크지만, 무한히 정밀하오. 그리고 하나요. 비유로 먼저 우리 몸을 봅시다. 사지가 서로 관련되고 피가 전체를 순환하고 있소. 그리고 그 질서를 통일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오. 나는 그걸 영혼이라고 생각하지.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혼이 몸을 지배하듯 우주의 영혼인 하나님이 유기체인 우주를 움직이시지. 우주에 통일하는 정신이 없다면 우주는 정돈 체인 코스모스가 아니라 혼란인 카오스일 것이오. 우주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생물이오. 우리 몸이 하나인 것처럼 우주도 하나요. 별과 먼지가 관련되기도 하고 사람과 풀도 연관되어 있소.’ ‘그 우주의 어디에 하나님이 있습니까?’ ‘우주를 만든 하나님은 밖에서 자기가 만든 우주를 보고 즐기시는 분이 아니오. 내가 살던 시대에 망원경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더라고 한 천체학자가 있었소. 하나님은 밖에서 보이지 않지만, 우주 안에는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오.’ ‘인간을 소우주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이 장난감 제조공처럼 사람을 만든 겁니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이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든 방법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하오. 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력을 담은 물질을 여기저기 던져놨다고 생각하지. 그 물질들에게 스스로 개발하는 능력까지 주고 말이오. 그걸 진화라고 하지. 아마 다아윈도 그렇게 추론했던 것으로 짐작하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도 스스로 자기 개발 능력을 갖추고 발전해 가지 않소? 내 시대는 그게 없었지만.’ ‘하나님이 자기 생명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뭡니까?’ ‘예민한 사람들은 그 의식의 밑바닥에서 끝없이 샘 솟는 의식의 본원이 있는 걸 자각하오. 그리고 거기서 만유와 연관되고 영원과 접촉하는 걸 느끼지. 그 의식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하는 것은 확실하지. 그런 의식이 있으니 사람은 종교적이 되지 않으려고 해도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요. 하나님은 이천 년 전에 나타나 지금은 겨우 그의 행위를 옛 기록으로 남긴 분이 아니오. 그분은 지금도 사람과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내재하시는 분이오. 즉 사람의 실재의 근거로 계시는 분이지.’ ‘사람과 함께 있다면 사람의 어디에 있죠?’ ‘좀 어리석은 질문을 하시는 것 같소만 내가 예를 들어 장난같이 대답을 해 보리다. 하나님은 양심에 계시오. 거기서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끄시고 위로하시기도 하지.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만큼 가까운 분이 없소. 하나님은 사람의 일부분이기도 하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했소. 그런 내재하신다는 뜻이오. 예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안에 계시는 것이오.’ ‘어떤 형태로 안에 계시면서 활동하시는 겁니까?’ ‘영의 형태로 계시지. 그 영이 인생 문제도 알게 해 주고 우주의 문제도 풀게 해 주시지. 그 영이 바람처럼 우리에게 들어오고 마음의 눈을 열게 하면 그처럼 유쾌한 일이 없소. 그 영이 없는 사람은 일어나 있어도 사실은 자고 있는 사람이오.’ 오늘 아침에도 현자로부터 나는 많은 걸 배웠다. 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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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30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참 자유
    참 자유 나와 친한 가구점 사장이 있다. 특별한 학력이나 경력은 없는 분 같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지게를 졌다고 했다. 그에게서 지게 철학을 들었다. 누구든 무거운 걸 지고 걸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내려놓을 때 균형을 잡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게 지는 걸 인생에 비유해 내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형님같이 모시는 분이다. 그는 평생을 가구점만 하고 살았다. 중풍에 걸려 나이 팔십인 지금까지 고생하면서도 가구점 구석방에 출근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는 항상 근심 걱정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얼굴이었다. 외환 위기 시절 가구점들이 도산해도 그는 평안한 표정이었다. 부하직원이 서류를 빼돌려 협박해도 개의치 않았다. 빼돌린 서류가 세무서와 수사기관에 접수되어 그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조사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세한 게 맞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해도 내 능력으로는 어느 정도의 탈세를 하지 않고는 가구점을 꾸려갈 수 없었어요. 처벌을 받겠습니다. 이제 가구점 문을 닫을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는 파멸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살려고 하니까 문제지 죽으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태도였다. 언젠가 그의 이런 말에 감명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가방끈이 짧아요. 그래서 항상 판검사 같은 사람들을 보면 주눅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어요. 너는 내가 인정하는데 그까짓 판검사가 다 뭐냐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자부심이 솟아올랐어요. 대통령의 임명장이나 옛날 왕의 교지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데 내가 그 앞에서 위축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날 이후 어디를 가도 당당해졌어요. 열등의식의 속박으로부터 참자유를 얻은 거죠.” 그의 말에 귀중한 의미가 있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감옥 안에서 또 다른 자유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징역을 30년째 살고 있는 죄수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철창과 콘크리트 벽이 저를 가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저의 영혼만 자유로우면 벽이 두껍고 얇고 감옥 안에 있고 감옥 밖에 있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혼의 자유를 한 번 변호사님도 얻어 보세요. 그러면 이 세상의 부자유나 속박이나 압제를 개의치 않게 되실 거예요. 정치적인 압제나 사회적인 속박에 대해서 무관심해질 수 있을걸요” 진리의 말이었다. 가구점 사장이나 교도소 안의 죄수가 말하는 자유는 내가 법에서 배운 자유가 아니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이 주는 자유 같았다. 법이 아무리 자유를 허용해도 인간은 본능에 속박되어있는 존재다. 아무리 위선을 부려도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인간은 일생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노예가 된 존재다. 내가 아는 목사가 자기의 이런 경험을 내게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내가 20일 동안 금식을 하고 기도한 적이 있어요. 며칠이 지나니까 기분이 몽롱해지고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어요. 더 시간이 흐르니까 고통이 없어지고 환희가 오더라구요. 죽는 순간의 고통을 걱정들 하는데 인디언들도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음식을 스스로 끊어버린다고 하잖아요? 마지막이 되면 맹수가 와서 살을 뜯어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한대요. 죽음이 다가왔을 때 병원 응급실로 가서 관을 주렁주렁 달지 마세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음식을 끊으세요. 그 각오를 가지면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의지가 대단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한없는 겁쟁이인 걸 확인했다. 근래에 특이한 체험을 했다. 삼척 부근의 실버타운에 묵다가 산불의 중심에 있게 됐다. 한밤중에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과 누런 연기를 보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인생 칠십이면 꽤 많은 세월을 확보했는데도 나는 살고 싶었다. 죽어도 타죽는 고통은 싫었다. 꽤 고통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죽음에서의 자유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법이 주는 자유에 대해 배웠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헌법 자유권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까 법보다 높은 차원의 자유가 있는 것 같다. 그 자유는 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정치적인 자유, 신체의 자유도 아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세상에 온 것은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참자유가 있는 것 같다.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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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6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산불 속에서
    산불 속에서 내가 있는 실버타운의 옆산 능선에서 누런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화산재가 피어오르듯 점점 더 굵어지면서 하늘로 퍼져나간다. 연기가 하늘을 덮으면서 바다 쪽을 향해 서서히 덩어리져 내려가고 있다. 방송에서 내가 있는 동해시가 ‘아비규환’이라고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흥분한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의 이웃 마을인 옥계에서 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면서 동해시를 태우고 있다. 고속도로도 통제가 되고 기차운행도 중단됐다. 산불을 피해 동해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들의 경적 소리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전쟁터를 방불하게 한다고 했다. 도심 곳곳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고 불길이 아파트와 주택으로 번진다고 했다. 나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이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겁이 나서 실버타운의 앞마당으로 나와봤다. 밥을 해주는 중년의 여인이 나와 허공에 가득 찬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소방헬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다급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여기 괜찮겠어요?” 내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바람이 연기를 바다 쪽으로 몰고 가네요. 다행이네요. 이 골짜기로 저 연기들이 밀려오면 노인들이 견뎌내기 힘드시죠.” 그녀는 위험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도 흥분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재작년에 난 산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계곡에 수백 년된 소나무들이 울창했었는데 그때 다 타버렸어요. 그때는 정말 대단했어요. 밤의 공중에서 불붙은 솔방울들이 불꽃놀이를 하듯 밤하늘에 날아다니며 불이 옮겨붙었으니까요. 지금 이 실버타운 건물에도 한밤중에 불이 옮겨붙었어요. 제가 묵는 노인들을 깜깜한 밤중에 해변으로 피신시켰어요. 그때 울창하던 나무들이 불붙는 사잇길을 걸어갔었죠. 이번에는 불이 건물에 옮겨붙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이미 주변의 나무들이 그때 다 타버렸으니까요. 연기가 걱정이죠. 바람이 다행히 이쪽으로 오지 않네요.” 불을 경험한 그녀는 눈앞의 검은 천사 같은 연기를 보면서 강심장인 것 같았다. 담담한 그녀의 말에 나도 안정감을 찾았다. 잠시 후 나는 아랫마을 쪽을 내려다보았다. 개울을 가운데 두고 마치 거대한 유리 벽이라도 친 듯 연기가 한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후 산자락을 흐르는 연기와 옆에서 동행하며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홍해의 갈라진 물 사이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거대한 연기의 방향을 조금만 비틀면 내가 걷는 곳이 덮여 버리게 되어 있다. 나는 그걸 피해서 뛸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걷고 있었다.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서 찬송가를 부르기로 했다. 어떤 걸 부를까 하다가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승객 대부분은 구조선에 옮겨탔다. 몇 명의 악사들만 남았다. 더 이상 그들의 음악을 들을 사람이 없어진 텅 빈 적막한 배 안이었다. “이제는 뭘 하지?” 악사 한 사람이 허탈한 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악사가 대답했다. “그냥 하던 걸 해야지” 그들이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다시 목에 댔다. 그들의 마지막 연주가 흘러나왔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찬송가의 멜로디였다. 그 찬송가를 들으면서 나는 울었었다. 옆에서 내려가는 연기를 보면서 나는 찬송가를 불렀다. 강풍이 불고 추웠다. 동해고속도로와 철도 아래의 굴을 통해 바닷가까지 걸어갔다가 실버타운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는 실버타운의 식당에는 노인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재빠른 노인들은 이미 차를 타고 지옥 같은 동해시를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몇 명의 노인들만 남아 식판의 밥을 묵묵히 입속으로 떠넣고 있었다. 재난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침착하고 담담한 표정이다. 헬기 조종사도 하고 30년 여객기 기장을 했다는 칠십 대 중반의 노인이 한마디 내뱉었다. “소방헬기가 떠다닌다고 하지만 병아리 오줌만 한 물로 어떻게 불을 끈다는 거야? 하나님이 비라도 내려주면 몰라도” 그는 부부가 같이 실버타운에 함께 왔다가 아내가 먼저 죽었다고 했다. 떠드는 그의 얼굴에서는 외로움과 슬픔의 그림자가 느껴지곤 했다. 식당 구석에서 늘 혼자 떨어져 밥을 먹는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린 할머니가 보였다. 걷지를 못해 작은 유모차 같은 보조기구를 의지해 다녔다. 며칠 전 벽 아래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남몰래 조용히 마른 울음을 우는 걸 봤었다. 짙은 외로움의 고통이 전해져 왔다. 모르는 척 지나쳤지만 가슴이 찡해왔다. 남은 노인들은 삶보다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이 왔다. 옆의 가까운 산등성이에서 시뻘건 불길들이 타올랐다. 무정형의 불길은 화가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 뒤의 파도처럼 출렁이는 산줄기의 나무들에도 온통 불이 붙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득 내가 본 것들과 느낌을 기록해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락하는 여객기 안에 탄 어떤 일본인 승객이 마지막 순간까지 수첩에 상황을 기록해 두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사람들 중에는 죽기 직전 문자로 ‘사랑해’라는 말을 보냈던 것도 생각난다. 스마트 폰의 화면에 내 블로그의 댓글이 하나 떴다. ‘변호사님이 계시는 실버타운건물에 불이 붙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했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 확인하기 위해 실버타운 밖으로 나갔다. 소방차들이 출동해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었다. 둘러보니 아직 건물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나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긴장하고 있는 출동한 소방관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때요?” “여기하고 어달마을이 불이 가장 심합니다. 어달항은 주택들이 많아 불이 붙은 집들도 많습니다. 저희는 인명피해 방지가 첫째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 산에 타고 있는 불길이 실버타운에 옮겨붙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나는 한밤중 불의 중심에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 떠 있는 실버타운건물은 거대한 여객선 같았다. 잠을 못 이루는지 몇몇의 창에 불이 켜져 있다. 그 속의 노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이 들고 내일 아침에는 깨면 천국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나의 스마트 폰이 수시로 다급한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전화들이었다. 감사했다. 나는 내 방이 있는 4층 복도에서 창문을 통해 불붙은 뒷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케이크에 작은 촛불이 수없이 꽂혀있는 것 같았다. 위험 속에서 이런 상상을 해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그분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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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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