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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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사람을 돕는 쾌락
    사람을 돕는 쾌락 오랜만에 광화문 근처의 파스타 집에서 몇몇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동해바닷가에 살아도 대학 동기회에는 더러 참석한다. 묘하게도 그곳은 훈훈한 정이 고여있는 저수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똑똑한 아이가 있는데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성적을 알아보니까 4.5 만점에 4.3을 받은 거야. 성실하다는 증거지.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몰래 2천만 원을 보냈어. 돈은 그렇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고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른 친구들이었다. 수입이 없어 돈에 집착할만한데도 의외로 돈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아파트를 팔았을 때 값이 오른 차액의 절반을 기부하는 걸 봤다. 그런 성품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더 늙기 전에 한번 푸드트럭을 운전해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직접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줬으면 좋겠어. 조금씩 투자를 해서 같이 해 보지 않을래?” 그는 경제적으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건 틀림없었다. 그날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가 최근 자기가 하는 일을 털어놓았다. 대학동기회의 강점은 제각기 자기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단점이나 실패를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마음들이 활짝 열리곤 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곳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 해. 그런데 그 아이들이 뭔가 해 보려면 돈이 없으니까 사채를 쓰기 마련이야. 사채라는 게 원래 이율이 높아서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더라도 갚을 길이 없는 거야. 내가 그런 젊은 청년들에게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어. 사채를 나의 거의 무이자 대출로 바꾸어주는 거지.” 그렇게 도와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돈 없는 고아 출신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건 사실 못 받을 확률이 많아. 사채업자들은 돈을 회수하려고 협박부터 별짓을 다 하지만 나는 내 밑의 직원들과 함께 그런 청년들의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고 있어.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커피점을 하겠다고 하면 관련된 경험자들을 불러 가르치게 하기도 하고 실습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친구가 물었다. “요새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도 떼먹으려고 하고 복지라고 하면서 정부의 공짜 돈만 바라는 세상인데 담보도 없이 그렇게 빌려주는 돈이 회수가 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열 명에게 담보 없이 그냥 돈을 빌려주면 그중 여덟 명은 이자와 함께 돈을 갚아. 회수율이 팔십 퍼센트를 넘고 있어. 처음에 심사를 할 때 담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보는 거야. 성실하게 일을 하려는 사람인지 정직한지 그런 걸 보는 거야. 담보보다 그게 더 정확할 수 있어.” 그는 신용정보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국내 각 은행이 일정한 금액을 갹출해서 그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집행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의 인품이 금융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대부분이 고시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청계천 빈민가에 들어가 남몰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김진홍 목사의 두레교회 마당에서 야학교실을 운영했던 주인공이었다. 그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드러난 시민운동을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가 퇴직한 후 금융권에서 그에게 일을 맡긴 것 같았다. 숨겨진 저력은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았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쾌락이 있다.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을 인생 최대의 쾌락으로 삼는 경우를 봤다. 그들은 정치나 종교의 구호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았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을 찾아내 그런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데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건 오히려 그를 망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모임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배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모임에 간다. 다음번에는 그런 친구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기로 했다.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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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노동은 고역인가?
    노동은 고역인가?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목욕탕에는 때를 밀어주는 분과 이발사가 있다. 두 사람 다 나이가 육십 대 중반은 넘은 지긋한 나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마치 노동이 취미라도 되는 듯 조금만 시간이 나면 다른 일을 한다. 실버타운의 잔디를 깎기도 하고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더러는 밭에 심은 감자를 수확해 내게 주기도 했다. 내가 때를 밀어주는 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노동을 합니까?” 갑자기 그가 표정이 근엄해지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도인들에게는 노동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민족종교를 믿고 있다고 했다. 노동이 수행으로 바뀌는 순간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노동을 신성시하고 있다. 기독교의 한 성자는 그가 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동은 고역이라고 말하지만 내게 노동은 쾌락이다. 나는 돈으로서의 보수가 없더라도 노동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세상에서의 최대의 쾌락은 날마다 하는 나의 노동이다.” 사도바울은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라고 했다. 묵묵히 일해서 자기 양식을 벌어먹으라고 했다.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남자가 있다. 그는 시골에서 곡괭이 한 자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임금에 상관없이 매일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은 남의 일터로 가서 공짜로 일을 해 주었다. 한겨울 땅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도 그는 공사장을 찾아가 돈을 받지 않고 언 땅에 곡괭이질을 하고 삽으로 흙을 팠다. 노동이 우상이고 일에 미친 것 같아 보였다. 상대적으로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는 크루즈 선을 탄 적이 있다. 그 배는 승객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바다 위의 천국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승객 중에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 정도인 것 같았다. 내가 중학 시절 교과서에 그 배의 이름이 나왔었다. 언젠가는 그 배를 타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배는 환상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무리를 해서 그 배에 올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일을 한다는 자체가 지겹기도 했다. 그 배 속에서의 처음 1주일은 화려한 천국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대에서 최고의 쇼와 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식당에는 기름진 음식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은촛대에 불이 켜지고 투명한 와인글라스가 놓인 테이블 옆에서 웨이터들이 식사 시중을 했다. 작은 천국이 검푸른 태평양을 미끄러지면서 하와이와 타이티 섬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2주일쯤 흘렀을 때였다. 북적거리던 파티장도 레스토랑도 풀장도 다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승객들의 표정에 무료함과 권태가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들에게 그 배는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한 영국인 중년여성이 나를 보고 셰익스피어를 공부하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 자기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 안이지만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가 출신 같아 보이는 여성은 놀이에 참가하지 않고 갑판의 구석에서 계속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영국인 노인은 배 안 어두컴컴한 작업실의 한쪽에서 둥근 테두리의 나무 틀에 천을 끼워놓고 굵은 바늘로 십자수를 놓고 있기도 했다. 인간은 단순한 놀이보다는 그날그날 어떤 성취감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배 안에서 보던 책 속의 주인공 희랍인 조르바는 내게 인생은 허리띠를 쥐고 말썽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일하다가 발생하는 말썽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료한 천국 속에서 나는 갑자기 일이 가득한 지옥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그 배가 잠시 정박한 뉴질랜드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다음 날부터 즐겁게 일을 했다. 삶의 소재인 일 자체가 감사고 축복인 걸 알았다. 평생 노동의 관념을 모르는 사람을 봤다.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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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엄상익의 미셀러니_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어제저녁 밤하늘에 별이 뜰 무렵 오랜만에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 겸 물었다. “요새 뭐 하고 지내나?” “명리학을 공부해 보고 있어. 서양문화에 젖어서 그랬는지 사주팔자나 음양오행 그리고 관상 주역 같은 걸 시답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진리의 세계인 것 같아. 여러 책을 구입해서 고시 공부하듯 읽어보고 있어.” 우리에게는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깊이 박힌 정신적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검찰의 고위직을 지낸 고교 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 역시 최고 명문 여고와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교회에 나가는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논현동에 정말 앞날을 잘 맞추는 분이 있어요. 저는 매년 정초에 그분에게 신수를 보러 가는데 금 년에는 우리 집에 망신살이 있다고 했어요. 걱정이예요.” 그 부인은 점쟁이에 대해 본능적인 믿음이 있어 보였다. 대통령의 꿈을 꾸는 가까운 정치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집안의 방의 위치나 가구의 배치까지 모두 도사에게 물어서 그대로 하는 것 같았다. 재벌그룹의 회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업상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국내는 물론 인도에까지 가서 점을 친다고 했다. 그런 게 우리 한민족의 내면에 뿌리박힌 깊은 인식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합천의 깊은 산골에 있는 절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옆 방에 기도를 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절을 창건한 지주 집안의 며느리라고 했다.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울긋불긋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당 사주’책을 가지고 와서 친구와 나의 운명을 보아주었다. 친구는 과거에 급제해서 판사가 될 팔자라고 했다. 할머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된다는 소리였다. 그 얼마 후였다.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나타났다. 법서만 봐도 토할 것 같이 그런 생활이 싫었다. 나는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시를 포기하고 장기 직업 장교 시험을 쳐서 군에 입대해 버렸다. 같이 공부하던 그 친구는 예언대로 그해 합격을 하고 판사가 됐다. 인간이란 정해진 팔자가 있는 것 같았다. 팔자 도망은 못 한다는 속담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의 몇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성적이 내가 지망하는 법대에 합격하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최고의 명문 법대를 나온 사람들도 고시 낭인들이 쌓이고 쌓였는데 네가 도전한다고 되겠니?” 나는 한 단계 낮춘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목수인 작은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되는 집안이 따로 있지 아무나 되겠니?” 우리 집안은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한 걸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비 집안이 아니었다. 운명론에 젖으니까 그런 말들이 모두 맞는 것 같았다. 직업 장교 생활이 4년쯤 흐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팔자에 순응하려고 해도 나는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고시에 합격한 걸 보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러들고 있었다. 나 스스로 열등의식이 가득 찬 마음 지옥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면의 병든 마음이 육체를 통해서 밖으로 번져 나오는 것 같았다. 두 살짜리 귀여운 딸을 봐도 아내를 봐도 무덤덤했다.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세상이었다. 여름의 어느날 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열려진 창으로 별이 떠 있는 검은 하늘이 보였다. 갑자기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다. 종교적 믿음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도라기보다는 그냥 세상을 주재하는 어떤 존재에게 통사정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틀어진 내 심성으로는 주변이나 가족들에게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판검사가 되어 출세하려는 야망은 아예 가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한번 합격시켜 주시기만 하는 것으로 일그러진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일생 연탄 수레를 끄는 노동자로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했다. 그 기도를 한 후 나는 바로 좋은 성적으로 고시를 통과했었다. 이상했다. 나는 능력이 부족했다. 집중력이 없고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둔한 머리인 걸 잘 알고 있었다. 합격할 사람이 아니었다. 고시합격은 팔자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됐다. 아무래도 운명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중언부언하는 기도같지 않은 기도가 그분에게 도달한 것 같았다. 간절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 후 갑자기 내가 성경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성경 뒤에 그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은 나의 영에 들어와 사주팔자의 경계선을 넘게 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가치관과 삶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동양의 명리학이나 주역도 진리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하나님 영이 들어오면 팔자도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십자가는 상징과 은유일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를 요즈음 생각한다.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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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오래전 금강산으로 가서 그 일대를 둘러볼 때였다. 나는 북한의 여성 안내원과 둘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계곡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 같이 가던 북한 여성이 말했다. 갑자기 뭔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뭔데요?” 그녀는 대한민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남조선 인민들은 왜 그렇게 대통령을 씹어 돌리듯 함부로 욕을 합니까? 별명을 붙여 말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기도 하는 게 일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의 일상 속 대화 중에 대통령을 존중하는 걸 본지 오래된 것 같았다. 대통령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불렸고 술자리 안주감인 경우가 많았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성 대통령을 성 비하하는 욕을 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다 대통령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런 욕을 먹는 걸 전해 들으면 일할 의욕이 줄어들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여성이 말을 계속했다. “대통령은 집안으로 치면 가장인 아버지 격 아닙니까? 그런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하는 게 예의에 맞는 일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은 공인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듯 막말을 하는 게 나 역시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북한 여성의 잣대로 치면 대한민국 국민은 대부분 패륜아가 되는 셈이었다. 북한의 초대소 건물을 보면 여기저기 벽에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 붉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길에도 수령이 간 자리에는 비석이 서 있고 그 안에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는 글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북한 여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지도자를 대하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임금도 뒤에서는 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들은 적 있어요?” “그 말은 알아요.” “그렇다면 뒤에서 대통령에 대해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봉건사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죠.” “듣고 보니까 그건 그러네요.” “여기 보니까 건물마다 거리마다 위대하고 전능한 수령 동지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인민들 마음속마다 한점의 회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 깊은 마음속에서는 원망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툴툴거리며 불평도 하고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 좋은 거 아닐까요”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과 눈빛은 내 말을 긍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쌍꺼풀진 눈이 커다란 남성이 우리를 보며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정도에서 말을 그쳐야 할 것 같았다. 한쪽은 입을 틀어막는 사회이고 다른 쪽은 언어의 설사증에 걸린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대통령이던 그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다. 택시를 타도 기사들은 대통령 욕을 했다. 친구끼리 동창 모임에서도 대통령이 안줏감이고 욕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김여정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했다. 북한 여성의 말대로 남의 집 가장 어른을 그렇게 욕하는 건 가정교육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입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솔한 비하나 욕은 한마디도 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를 해 왔다. 변호라는 것은 죄나 단점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살인범에게서도 눈물 날 사연을 찾는 게 나의 일이었다. 단점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점은 숙련이 되지 않으면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도 그렇다. 냉정한 말 보다 인자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빈정거리기보다는 남을 칭찬해 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자나 손녀를 볼 때마다 기회를 잡아 사랑한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말들을 하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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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31
  • 엄상익의 미셀러니_ 걷는다는 것
    걷는다는 것 이웃의 부자 영감님이 있다. 성실한 은행원으로 아내는 약사로 일개미같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 부부는 개미같이 끝없이 걷는다. 아침을 먹고 이웃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점심을 먹고도 걷는다. 그리고 밤에도 걷는 때가 많다. 매일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오늘은 만 보, 다음에는 만오천 보, 이만 보 그런 식이다. 그 부부는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도 넘게 돌았을 것이다. 그 부부에게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고 구원일지도 모른다. 그 부부는 내게 누워있으면 죽음이고 걸으면 산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 걸음에 색깔과 삶의 질감을 넣고 싶었다. 한번은 여의도에서 볼일을 보고 잔잔한 한강길로 걸어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강이 내는 잔잔한 물소리를 듣고 저녁 무렵 튀어 올랐다 철푸덕 떨어지는 물고기가 만드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나는 강에 취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나는 강을 따라 옆을 걸어내려갔었다. 여주 들판에는 노랗고 빨간 여린 가지의 들꽃들이 바람에 손짓하는 것 같이 나를 맞아 주었다. 원주 옆을 흐르는 푸른 강물은 내 가슴으로 시원하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충주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소년 시절부터 혼자 걷는 걸 좋아했다. 함박눈이 골목길에 쌓이는 날 서민 한옥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의 미로 같은 길을 걸었었다. 낮은 담 옆으로 작은 기와집의 장독대 위로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리던 비가 그친 저녁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이따금씩 딸랑거리는 두부 장사의 투명한 종소리가 지금도 영혼 속에서 맑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서울의 뒷 골목길 순례도 많이 한 셈이다. 궁상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뒷골목이 더 마음에 편하게 와 닿았다. 뚝 방 옆에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청계천의 길들을 걸었다. 그 길에는 밤이면 카바이트 불을 켜놓은 리어카 위에 놓인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나 사상서적이 왜 거기서 팔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면 성북동에서 안암동 쪽으로 더러운 물이 흐르는 안암천 변을 걷곤 했다. 냄새나는 시궁창 물도 밤이 되면 달과 별이 비쳐 아늑한 느낌을 주곤 했다. 대학 시절은 절에 묵으면서 산길을 많이 걸었다. 부슬부슬 눈이 내리는 겨울나무 사이를 공허한 마음으로 지나기도 했다. 빈 가지만을 두른 겨울나무들은 내게 뭔가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노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로 옮겨온 나는 요즈음 느릿한 걸음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을 걷는다. 몇 걸음을 걷다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다시 걷다가 물결이 스며드는 고운 모래뻘을 본다. 바다는 수시로 색깔과 표정을 바꾸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대낮의 바다는 내게 에너지 넘치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황혼이 아련하게 구름을 물들이는 저녁 바다는 파스텔톤이다. 물과 하늘의 경계가 서로 스미고 섞여들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지워져 간다. 은자의 표정 같은 저녁 바다는 내게 넌지시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 같다. 영롱한 별들을 거느리고 바다 위 검은 하늘에 하얗게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볼 때가 있다. 달은 번들거리는 검은 바다 위에 길다란 빛의 띠를 만든다. 밤바다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와 모래언덕 사이의 적막 속에 있는 나는 바다가 전해주는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인생은 별 게 아니라고. 잠시 일었다가 스러지는 물거품이라고. 그러니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요나처럼 목적에 삼켜지는 삶은 살지 말라고 말이다. 이따금 은발이 휘날리는 강변의 갈대밭을 지나는 나그네를 화면에서 본다. 그 나그네는 바닷가를 한없이 걷는다. 화면 속의 당당한 있음이 내게 다가와 마음이 저릿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렇게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싶다. 오늘은 한 교수의 산책에 대한 글을 읽고 걷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 교수는 산책은 존재의 휴가이며 구원이라고 했다.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인생이라고 하면서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박자에 따라 걷고 나는 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박자에 맞추어 걸으면 되는 건 아닐까.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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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우울증 탈출
    우울증 탈출 대학 건축과를 나오고 건설회사 직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나름대로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어느 날부터 그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몇 달 동안 커튼을 치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살던 그가 어느 날 소리 없이 집을 나갔다. 1년쯤 흘렀다. 그가 을지로 입구 지하철역의 노숙자로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노숙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울증의 끝이 노숙자였다. 며칠 전 오랫동안 대형 로펌을 운영해 오던 변호사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재벌 회장들이나 국회의원, 장관, 대학 이사장 등 사회적 거물들의 변호를 많이 해 왔다. 그가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재벌 회장들을 보면 대개가 우울하고 불행한 감정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걸 느끼는 거야. 만나는 인물마다 어떻게든지 관계를 맺어서 돈을 받아내려는 의도를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재벌 회장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고 경계심이 드는 거지. 심지어 부인들마저도 재벌 회장에게는 돈을 뜯으려는 존재로 인식이 되기도 하지. 재벌 회장들을 보면 상당수가 속을 터놓는 막역한 친구가 없어. 내가 본 재벌 회장들은 시스템화된 조직 속에서 몇백억, 몇천억의 돈을 쉽게 쓰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남한테 밥 한 끼 사는데 인색한 성격인 것 같았어. 상당수가 우울증이 내재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돼.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어.”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우울증이 어떤 증상일까. 내가 잘 아는 언론계 중진이 있다. 신문사 간부도 하고 대통령비서관 공기업 임원 대학교수를 했다. 그는 한동안 우울증에 걸려 고생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어느 날인가부터 한가지 생각에 매여 계속 거기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실수야, 나의 능력 부족이었어. 나는 못난 놈이야 한심한 놈이야 그런 자책에 계속 빠지게 되는 거죠. 밤에 잠을 못 자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운전을 해도 정상이 아닌 거예요. 역주행을 하게 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못하고 계속 빙빙 돈 경우도 있어요. 핸들 대를 잡으면 잠이 오고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이려고 하면 말똥말똥해지고 그랬어요. 마치 나에게 어떤 귀신이 빙의된 것 같기도 했죠. 그런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기가 정말 힘들었죠.” 미국의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불행한 마음에 대한 연구를 한 기록을 봤다. 연구팀은 수천 명을 상대로 실시간으로 마음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아이폰 앱을 개발해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불행해지고 반면 마음이 집중될수록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방황하는 마음을 어떻게 집중시켜 행복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연구팀은 이렇게 말한다.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많은 철학과 종교적 전통은 행복이 이 순간을 사는 것에서 발견된다고 가르친다. 수행자들은 마음의 방황에 저항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를 훈련받는다.’ 하버드대 연구팀의 결론을 보면서 나는 예전 어떤 수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수행자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수행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일할 때 일하십시오. 앉을 때 앉고 설 때 서십시오.” 그 황당한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들도 밥 먹을 때 밥 먹고 일할 때 일합니다. 앉을 때 앉고 설 때 서죠.” “아닙니다. 여러분은 밥 먹을 때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일을 할 때는 밥 먹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걸을 생각을 하고 걸을 때는 앉아 쉴 생각을 합니다.” 그 말도 행복해지려면 결국 지금 여기에 살라는 것이다. 삶에 비가 오던, 구름이 끼던, 빛이 비치던, 그림자가 지던 닥쳐오는 상황들을 그냥 무심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럴 때 우울증이 증발하고 사랑과 기쁨, 평화가 오는 건 아닐까.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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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7

실시간 G.BOOK2 기사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사람을 돕는 쾌락
    사람을 돕는 쾌락 오랜만에 광화문 근처의 파스타 집에서 몇몇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동해바닷가에 살아도 대학 동기회에는 더러 참석한다. 묘하게도 그곳은 훈훈한 정이 고여있는 저수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똑똑한 아이가 있는데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성적을 알아보니까 4.5 만점에 4.3을 받은 거야. 성실하다는 증거지.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몰래 2천만 원을 보냈어. 돈은 그렇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고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른 친구들이었다. 수입이 없어 돈에 집착할만한데도 의외로 돈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아파트를 팔았을 때 값이 오른 차액의 절반을 기부하는 걸 봤다. 그런 성품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더 늙기 전에 한번 푸드트럭을 운전해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직접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줬으면 좋겠어. 조금씩 투자를 해서 같이 해 보지 않을래?” 그는 경제적으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건 틀림없었다. 그날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가 최근 자기가 하는 일을 털어놓았다. 대학동기회의 강점은 제각기 자기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단점이나 실패를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마음들이 활짝 열리곤 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곳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 해. 그런데 그 아이들이 뭔가 해 보려면 돈이 없으니까 사채를 쓰기 마련이야. 사채라는 게 원래 이율이 높아서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더라도 갚을 길이 없는 거야. 내가 그런 젊은 청년들에게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어. 사채를 나의 거의 무이자 대출로 바꾸어주는 거지.” 그렇게 도와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돈 없는 고아 출신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건 사실 못 받을 확률이 많아. 사채업자들은 돈을 회수하려고 협박부터 별짓을 다 하지만 나는 내 밑의 직원들과 함께 그런 청년들의 창업이나 경영을 도와주고 있어.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커피점을 하겠다고 하면 관련된 경험자들을 불러 가르치게 하기도 하고 실습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친구가 물었다. “요새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도 떼먹으려고 하고 복지라고 하면서 정부의 공짜 돈만 바라는 세상인데 담보도 없이 그렇게 빌려주는 돈이 회수가 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열 명에게 담보 없이 그냥 돈을 빌려주면 그중 여덟 명은 이자와 함께 돈을 갚아. 회수율이 팔십 퍼센트를 넘고 있어. 처음에 심사를 할 때 담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보는 거야. 성실하게 일을 하려는 사람인지 정직한지 그런 걸 보는 거야. 담보보다 그게 더 정확할 수 있어.” 그는 신용정보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국내 각 은행이 일정한 금액을 갹출해서 그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집행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의 인품이 금융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대부분이 고시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청계천 빈민가에 들어가 남몰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김진홍 목사의 두레교회 마당에서 야학교실을 운영했던 주인공이었다. 그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드러난 시민운동을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그가 퇴직한 후 금융권에서 그에게 일을 맡긴 것 같았다. 숨겨진 저력은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았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쾌락이 있다.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을 인생 최대의 쾌락으로 삼는 경우를 봤다. 그들은 정치나 종교의 구호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았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을 찾아내 그런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데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건 오히려 그를 망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모임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배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모임에 간다. 다음번에는 그런 친구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기로 했다.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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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노동은 고역인가?
    노동은 고역인가?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목욕탕에는 때를 밀어주는 분과 이발사가 있다. 두 사람 다 나이가 육십 대 중반은 넘은 지긋한 나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마치 노동이 취미라도 되는 듯 조금만 시간이 나면 다른 일을 한다. 실버타운의 잔디를 깎기도 하고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더러는 밭에 심은 감자를 수확해 내게 주기도 했다. 내가 때를 밀어주는 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노동을 합니까?” 갑자기 그가 표정이 근엄해지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도인들에게는 노동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민족종교를 믿고 있다고 했다. 노동이 수행으로 바뀌는 순간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노동을 신성시하고 있다. 기독교의 한 성자는 그가 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동은 고역이라고 말하지만 내게 노동은 쾌락이다. 나는 돈으로서의 보수가 없더라도 노동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세상에서의 최대의 쾌락은 날마다 하는 나의 노동이다.” 사도바울은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라고 했다. 묵묵히 일해서 자기 양식을 벌어먹으라고 했다.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남자가 있다. 그는 시골에서 곡괭이 한 자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임금에 상관없이 매일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은 남의 일터로 가서 공짜로 일을 해 주었다. 한겨울 땅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도 그는 공사장을 찾아가 돈을 받지 않고 언 땅에 곡괭이질을 하고 삽으로 흙을 팠다. 노동이 우상이고 일에 미친 것 같아 보였다. 상대적으로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는 크루즈 선을 탄 적이 있다. 그 배는 승객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바다 위의 천국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승객 중에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 정도인 것 같았다. 내가 중학 시절 교과서에 그 배의 이름이 나왔었다. 언젠가는 그 배를 타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배는 환상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무리를 해서 그 배에 올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일을 한다는 자체가 지겹기도 했다. 그 배 속에서의 처음 1주일은 화려한 천국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대에서 최고의 쇼와 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식당에는 기름진 음식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은촛대에 불이 켜지고 투명한 와인글라스가 놓인 테이블 옆에서 웨이터들이 식사 시중을 했다. 작은 천국이 검푸른 태평양을 미끄러지면서 하와이와 타이티 섬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2주일쯤 흘렀을 때였다. 북적거리던 파티장도 레스토랑도 풀장도 다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승객들의 표정에 무료함과 권태가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들에게 그 배는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한 영국인 중년여성이 나를 보고 셰익스피어를 공부하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 자기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 안이지만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가 출신 같아 보이는 여성은 놀이에 참가하지 않고 갑판의 구석에서 계속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영국인 노인은 배 안 어두컴컴한 작업실의 한쪽에서 둥근 테두리의 나무 틀에 천을 끼워놓고 굵은 바늘로 십자수를 놓고 있기도 했다. 인간은 단순한 놀이보다는 그날그날 어떤 성취감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배 안에서 보던 책 속의 주인공 희랍인 조르바는 내게 인생은 허리띠를 쥐고 말썽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일하다가 발생하는 말썽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료한 천국 속에서 나는 갑자기 일이 가득한 지옥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그 배가 잠시 정박한 뉴질랜드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다음 날부터 즐겁게 일을 했다. 삶의 소재인 일 자체가 감사고 축복인 걸 알았다. 평생 노동의 관념을 모르는 사람을 봤다.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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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3
  • 엄상익의 미셀러니_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팔자 도망이 가능할까 어제저녁 밤하늘에 별이 뜰 무렵 오랜만에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 겸 물었다. “요새 뭐 하고 지내나?” “명리학을 공부해 보고 있어. 서양문화에 젖어서 그랬는지 사주팔자나 음양오행 그리고 관상 주역 같은 걸 시답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진리의 세계인 것 같아. 여러 책을 구입해서 고시 공부하듯 읽어보고 있어.” 우리에게는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깊이 박힌 정신적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검찰의 고위직을 지낸 고교 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 역시 최고 명문 여고와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교회에 나가는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논현동에 정말 앞날을 잘 맞추는 분이 있어요. 저는 매년 정초에 그분에게 신수를 보러 가는데 금 년에는 우리 집에 망신살이 있다고 했어요. 걱정이예요.” 그 부인은 점쟁이에 대해 본능적인 믿음이 있어 보였다. 대통령의 꿈을 꾸는 가까운 정치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집안의 방의 위치나 가구의 배치까지 모두 도사에게 물어서 그대로 하는 것 같았다. 재벌그룹의 회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업상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국내는 물론 인도에까지 가서 점을 친다고 했다. 그런 게 우리 한민족의 내면에 뿌리박힌 깊은 인식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합천의 깊은 산골에 있는 절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옆 방에 기도를 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절을 창건한 지주 집안의 며느리라고 했다.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울긋불긋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당 사주’책을 가지고 와서 친구와 나의 운명을 보아주었다. 친구는 과거에 급제해서 판사가 될 팔자라고 했다. 할머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된다는 소리였다. 그 얼마 후였다.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나타났다. 법서만 봐도 토할 것 같이 그런 생활이 싫었다. 나는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시를 포기하고 장기 직업 장교 시험을 쳐서 군에 입대해 버렸다. 같이 공부하던 그 친구는 예언대로 그해 합격을 하고 판사가 됐다. 인간이란 정해진 팔자가 있는 것 같았다. 팔자 도망은 못 한다는 속담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의 몇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성적이 내가 지망하는 법대에 합격하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최고의 명문 법대를 나온 사람들도 고시 낭인들이 쌓이고 쌓였는데 네가 도전한다고 되겠니?” 나는 한 단계 낮춘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목수인 작은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되는 집안이 따로 있지 아무나 되겠니?” 우리 집안은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한 걸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비 집안이 아니었다. 운명론에 젖으니까 그런 말들이 모두 맞는 것 같았다. 직업 장교 생활이 4년쯤 흐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팔자에 순응하려고 해도 나는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고시에 합격한 걸 보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러들고 있었다. 나 스스로 열등의식이 가득 찬 마음 지옥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면의 병든 마음이 육체를 통해서 밖으로 번져 나오는 것 같았다. 두 살짜리 귀여운 딸을 봐도 아내를 봐도 무덤덤했다.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세상이었다. 여름의 어느날 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열려진 창으로 별이 떠 있는 검은 하늘이 보였다. 갑자기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다. 종교적 믿음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도라기보다는 그냥 세상을 주재하는 어떤 존재에게 통사정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틀어진 내 심성으로는 주변이나 가족들에게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판검사가 되어 출세하려는 야망은 아예 가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한번 합격시켜 주시기만 하는 것으로 일그러진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일생 연탄 수레를 끄는 노동자로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했다. 그 기도를 한 후 나는 바로 좋은 성적으로 고시를 통과했었다. 이상했다. 나는 능력이 부족했다. 집중력이 없고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둔한 머리인 걸 잘 알고 있었다. 합격할 사람이 아니었다. 고시합격은 팔자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됐다. 아무래도 운명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중언부언하는 기도같지 않은 기도가 그분에게 도달한 것 같았다. 간절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 후 갑자기 내가 성경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성경 뒤에 그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은 나의 영에 들어와 사주팔자의 경계선을 넘게 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가치관과 삶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동양의 명리학이나 주역도 진리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하나님 영이 들어오면 팔자도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십자가는 상징과 은유일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를 요즈음 생각한다.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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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오래전 금강산으로 가서 그 일대를 둘러볼 때였다. 나는 북한의 여성 안내원과 둘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계곡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 같이 가던 북한 여성이 말했다. 갑자기 뭔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뭔데요?” 그녀는 대한민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남조선 인민들은 왜 그렇게 대통령을 씹어 돌리듯 함부로 욕을 합니까? 별명을 붙여 말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기도 하는 게 일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의 일상 속 대화 중에 대통령을 존중하는 걸 본지 오래된 것 같았다. 대통령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불렸고 술자리 안주감인 경우가 많았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성 대통령을 성 비하하는 욕을 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다 대통령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런 욕을 먹는 걸 전해 들으면 일할 의욕이 줄어들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여성이 말을 계속했다. “대통령은 집안으로 치면 가장인 아버지 격 아닙니까? 그런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하는 게 예의에 맞는 일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은 공인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듯 막말을 하는 게 나 역시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북한 여성의 잣대로 치면 대한민국 국민은 대부분 패륜아가 되는 셈이었다. 북한의 초대소 건물을 보면 여기저기 벽에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 붉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길에도 수령이 간 자리에는 비석이 서 있고 그 안에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는 글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북한 여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지도자를 대하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임금도 뒤에서는 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들은 적 있어요?” “그 말은 알아요.” “그렇다면 뒤에서 대통령에 대해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봉건사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죠.” “듣고 보니까 그건 그러네요.” “여기 보니까 건물마다 거리마다 위대하고 전능한 수령 동지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인민들 마음속마다 한점의 회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 깊은 마음속에서는 원망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툴툴거리며 불평도 하고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 좋은 거 아닐까요”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과 눈빛은 내 말을 긍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쌍꺼풀진 눈이 커다란 남성이 우리를 보며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정도에서 말을 그쳐야 할 것 같았다. 한쪽은 입을 틀어막는 사회이고 다른 쪽은 언어의 설사증에 걸린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대통령이던 그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다. 택시를 타도 기사들은 대통령 욕을 했다. 친구끼리 동창 모임에서도 대통령이 안줏감이고 욕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김여정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했다. 북한 여성의 말대로 남의 집 가장 어른을 그렇게 욕하는 건 가정교육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입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솔한 비하나 욕은 한마디도 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를 해 왔다. 변호라는 것은 죄나 단점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살인범에게서도 눈물 날 사연을 찾는 게 나의 일이었다. 단점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점은 숙련이 되지 않으면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도 그렇다. 냉정한 말 보다 인자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빈정거리기보다는 남을 칭찬해 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자나 손녀를 볼 때마다 기회를 잡아 사랑한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말들을 하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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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31
  • 엄상익의 미셀러니_ 걷는다는 것
    걷는다는 것 이웃의 부자 영감님이 있다. 성실한 은행원으로 아내는 약사로 일개미같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 부부는 개미같이 끝없이 걷는다. 아침을 먹고 이웃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점심을 먹고도 걷는다. 그리고 밤에도 걷는 때가 많다. 매일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다. 오늘은 만 보, 다음에는 만오천 보, 이만 보 그런 식이다. 그 부부는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도 넘게 돌았을 것이다. 그 부부에게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고 구원일지도 모른다. 그 부부는 내게 누워있으면 죽음이고 걸으면 산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 걸음에 색깔과 삶의 질감을 넣고 싶었다. 한번은 여의도에서 볼일을 보고 잔잔한 한강길로 걸어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강이 내는 잔잔한 물소리를 듣고 저녁 무렵 튀어 올랐다 철푸덕 떨어지는 물고기가 만드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나는 강에 취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나는 강을 따라 옆을 걸어내려갔었다. 여주 들판에는 노랗고 빨간 여린 가지의 들꽃들이 바람에 손짓하는 것 같이 나를 맞아 주었다. 원주 옆을 흐르는 푸른 강물은 내 가슴으로 시원하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충주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소년 시절부터 혼자 걷는 걸 좋아했다. 함박눈이 골목길에 쌓이는 날 서민 한옥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의 미로 같은 길을 걸었었다. 낮은 담 옆으로 작은 기와집의 장독대 위로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내리던 비가 그친 저녁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이따금씩 딸랑거리는 두부 장사의 투명한 종소리가 지금도 영혼 속에서 맑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서울의 뒷 골목길 순례도 많이 한 셈이다. 궁상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뒷골목이 더 마음에 편하게 와 닿았다. 뚝 방 옆에 판잣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청계천의 길들을 걸었다. 그 길에는 밤이면 카바이트 불을 켜놓은 리어카 위에 놓인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나 사상서적이 왜 거기서 팔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면 성북동에서 안암동 쪽으로 더러운 물이 흐르는 안암천 변을 걷곤 했다. 냄새나는 시궁창 물도 밤이 되면 달과 별이 비쳐 아늑한 느낌을 주곤 했다. 대학 시절은 절에 묵으면서 산길을 많이 걸었다. 부슬부슬 눈이 내리는 겨울나무 사이를 공허한 마음으로 지나기도 했다. 빈 가지만을 두른 겨울나무들은 내게 뭔가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노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로 옮겨온 나는 요즈음 느릿한 걸음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을 걷는다. 몇 걸음을 걷다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다시 걷다가 물결이 스며드는 고운 모래뻘을 본다. 바다는 수시로 색깔과 표정을 바꾸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대낮의 바다는 내게 에너지 넘치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황혼이 아련하게 구름을 물들이는 저녁 바다는 파스텔톤이다. 물과 하늘의 경계가 서로 스미고 섞여들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지워져 간다. 은자의 표정 같은 저녁 바다는 내게 넌지시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 같다. 영롱한 별들을 거느리고 바다 위 검은 하늘에 하얗게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볼 때가 있다. 달은 번들거리는 검은 바다 위에 길다란 빛의 띠를 만든다. 밤바다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와 모래언덕 사이의 적막 속에 있는 나는 바다가 전해주는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인생은 별 게 아니라고. 잠시 일었다가 스러지는 물거품이라고. 그러니 물고기 뱃속에 삼켜진 요나처럼 목적에 삼켜지는 삶은 살지 말라고 말이다. 이따금 은발이 휘날리는 강변의 갈대밭을 지나는 나그네를 화면에서 본다. 그 나그네는 바닷가를 한없이 걷는다. 화면 속의 당당한 있음이 내게 다가와 마음이 저릿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렇게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싶다. 오늘은 한 교수의 산책에 대한 글을 읽고 걷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 교수는 산책은 존재의 휴가이며 구원이라고 했다.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인생이라고 하면서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박자에 따라 걷고 나는 나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박자에 맞추어 걸으면 되는 건 아닐까.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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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우울증 탈출
    우울증 탈출 대학 건축과를 나오고 건설회사 직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나름대로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어느 날부터 그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몇 달 동안 커튼을 치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살던 그가 어느 날 소리 없이 집을 나갔다. 1년쯤 흘렀다. 그가 을지로 입구 지하철역의 노숙자로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노숙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울증의 끝이 노숙자였다. 며칠 전 오랫동안 대형 로펌을 운영해 오던 변호사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재벌 회장들이나 국회의원, 장관, 대학 이사장 등 사회적 거물들의 변호를 많이 해 왔다. 그가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재벌 회장들을 보면 대개가 우울하고 불행한 감정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걸 느끼는 거야. 만나는 인물마다 어떻게든지 관계를 맺어서 돈을 받아내려는 의도를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재벌 회장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고 경계심이 드는 거지. 심지어 부인들마저도 재벌 회장에게는 돈을 뜯으려는 존재로 인식이 되기도 하지. 재벌 회장들을 보면 상당수가 속을 터놓는 막역한 친구가 없어. 내가 본 재벌 회장들은 시스템화된 조직 속에서 몇백억, 몇천억의 돈을 쉽게 쓰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남한테 밥 한 끼 사는데 인색한 성격인 것 같았어. 상당수가 우울증이 내재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돼.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어.”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우울증이 어떤 증상일까. 내가 잘 아는 언론계 중진이 있다. 신문사 간부도 하고 대통령비서관 공기업 임원 대학교수를 했다. 그는 한동안 우울증에 걸려 고생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어느 날인가부터 한가지 생각에 매여 계속 거기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실수야, 나의 능력 부족이었어. 나는 못난 놈이야 한심한 놈이야 그런 자책에 계속 빠지게 되는 거죠. 밤에 잠을 못 자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운전을 해도 정상이 아닌 거예요. 역주행을 하게 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못하고 계속 빙빙 돈 경우도 있어요. 핸들 대를 잡으면 잠이 오고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이려고 하면 말똥말똥해지고 그랬어요. 마치 나에게 어떤 귀신이 빙의된 것 같기도 했죠. 그런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기가 정말 힘들었죠.” 미국의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불행한 마음에 대한 연구를 한 기록을 봤다. 연구팀은 수천 명을 상대로 실시간으로 마음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아이폰 앱을 개발해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불행해지고 반면 마음이 집중될수록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방황하는 마음을 어떻게 집중시켜 행복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연구팀은 이렇게 말한다. ‘고대에서부터 비롯된 많은 철학과 종교적 전통은 행복이 이 순간을 사는 것에서 발견된다고 가르친다. 수행자들은 마음의 방황에 저항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를 훈련받는다.’ 하버드대 연구팀의 결론을 보면서 나는 예전 어떤 수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수행자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수행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일할 때 일하십시오. 앉을 때 앉고 설 때 서십시오.” 그 황당한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들도 밥 먹을 때 밥 먹고 일할 때 일합니다. 앉을 때 앉고 설 때 서죠.” “아닙니다. 여러분은 밥 먹을 때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일을 할 때는 밥 먹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걸을 생각을 하고 걸을 때는 앉아 쉴 생각을 합니다.” 그 말도 행복해지려면 결국 지금 여기에 살라는 것이다. 삶에 비가 오던, 구름이 끼던, 빛이 비치던, 그림자가 지던 닥쳐오는 상황들을 그냥 무심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럴 때 우울증이 증발하고 사랑과 기쁨, 평화가 오는 건 아닐까.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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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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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몇몇 고교 선배들과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어령 교수였어. 아직 이십 대의 천재 선생이 칠판에 두보의 시를 써 놓고 해설을 하는데 황홀했었지.” 경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대학으로 옮겨 교수가 되고 대한민국의 지성의 아이콘이 됐다. 그리고 돌아가신 지 세 달이 됐다. 말하던 그 선배가 덧붙였다. “그 양반은 낮았던 대한민국의 정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거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 나라마다 민족의 나침반이 된 천재들이 있다.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 무렵 일본의 방향을 서구화와 민족주의로 잡고 교육에 헌신했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인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고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남겼었다. 이어령 교수도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어령 교수가 대학에서 정년퇴직할 무렵의 짧은 소감을 담은 시사잡지를 보고 메모를 해 둔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면 빨리 줄기에서 떨어져야 하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물러앉아야 해요. 새잎들이 돋는데 혼자만 남아 있는 건 삶이 아니죠. 갈 때 가지 않고 젊은 잎들 사이에 누렇게 말라 죽어있는 쭉정이를 보세요.” 그는 아직 윤기가 있을 때 가을바람을 타고 땅에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귀중한 철학이었다. 죽음에 적용해도 될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어쩌다 화면에서 본 이어령 교수의 얼굴에 골 깊은 주름이 생기고 병색이 돌았다. 어느 날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그의 모습이 보이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떻게 병을 맞이했고 죽음 앞에서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자의 죽음은 많은 걸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가장 위대한 설교였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어령 교수의 부인이 말하는 장면이 흘러나오는 걸 봤다. “남편은 항암치료를 거부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는 데 항암치료를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남편은 남은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다른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남편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남편은 컴퓨터로 글을 썼어요. 남편은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날마다 일지를 썼어요. 그날그날 생각나는 걸 가장 자유로운 양식으로 쓴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손가락에 힘이 빠져 더블클릭이 안되는 거예요. 남편은 손글씨로 글을 썼어요. 처음에는 글 사이에 그림도 그려놓고 했는데 점점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거예요. 그림도 없어지고 갈수록 글씨도 나빠졌어요. 건강이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거죠. ” 그는 무너져 내리는 몸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그에 대해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걸으려고 애를 썼어요. 일어났다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곤 했어요. 그러다 걸을 수 없게 된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펑펑 울더라구요. 그 머리가 좋던 남편이 기억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치매가 온다고 생각하고 또 펑펑 울었죠. 남편은 두 발로 서서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했어요.” 중년의 미남이었던 그의 장관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위에 금가루라도 뿌린 양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녹이 슬고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다음 순서인 죽음을 그는 어떻게 대면했을까.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편은 보통사람보다 열 배, 스무 배 예민한 예술가였어요. 죽음 앞에 강인하지 않았어요. 고통과 죽음을 너무 민감하게 느꼈어요. 너무나 외롭고 두려운 심정을 자신의 글에 그대로 표현했죠. 남편은 노트에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라고 썼어요. 그 노트를 다 쓰고 ‘눈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책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노트 스무 장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갔어요.” 듣고 있던 인터뷰의 진행자가 물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못 찾은 거죠. 죽어봐야 알 것 같다고 썼어요.” “제목으로 정한 ‘눈물 한 방울’의 의미는 뭐라고 보시나요?”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자기를 위한 눈물이 아니예요.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게 진정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남편은 남긴 거예요.”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 앞에 정직해져야 할 것 같았다.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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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3
  • 엄상익의 미셀러니_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젊었던 시절 재미있게 보던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프로가 있었다. 희극배우인 구봉서와 배삼룡이 회사원으로 등장해 서민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폭소를 자아내게 했었다. 특히 배삼룡의 얼 띠고 모자라는 바보 같은 역할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화면에서 배삼룡의 근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병원 입원실 침대에서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멍한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웃음을 주던 그는 슬퍼 보였다. 그 얼마 후 같이 일하던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배삼룡 문병을 갔었어요. 딸이 간병을 하는데 병원비는 물론이고 그 딸이 밥 사 먹을 돈도 없는 것 같더라고. 문병 간 사람들이 조금씩 주는 돈으로 딸이 먹고 사는 거야. 너무 비참했어. 그래서 내가 울면서 배삼룡보고 ‘빨리 죽어’라고 했지. ‘네가 죽어야 네 딸이 살아’ 하면서 말이예요.” 인터뷰 도중에 그의 눈이 축축해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웃고 떠들면서 세상을 즐겁게 해 주던 구봉서 씨도 배삼룡 씨도 저세상으로 간 지 한참 되는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고독하게 죽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배삼룡 씨는 자기를 배웅해준 딸이 있어서 행복했던 건 아닐까. 어제는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한 신경외과 의사가 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장기간 입원을 한 막노동을 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엄마는 간병을 하고 딸이 직장생활하면서 병원비를 댔죠. 오랜 병에 빚도 많이 졌더라구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서 추가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제가 그 집 형편을 알았기 때문에 수술을 오히려 말렸어요. 수술이 성공할 가능성도 없고 환자가 회복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딸은 끝까지 아버지 수술을 시키겠다는 거예요. 뭐 본인이 그러니 난들 어떻게 하겠어요?” 요즈음은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 게 가족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빨리 환자에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도사리고 있다. 그 의사가 말을 계속했다. “예상대로 수술을 했어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어요. 더 나빠져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운명하실 때가 와서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죠. 오랫동안 앓은 환자는 얼굴이 퉁퉁 붓고 모습이 아주 흉했어요. 그런데 딸이 아버지의 얼굴을 손으로 계속 어루만지는 거예요. 마지막에 딸은 저세상으로 가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말하는 거예요.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행복했어’라고 말이죠.” 죽음을 선고했던 의사는 당시 광경이 강한 충격이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딸한테서 그런 감사의 말이 나올지 몰랐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딸은 아버지가 고생하면서 자기를 키운 걸 다 보고 자란 거예요.” 가슴이 울컥한 내용이었다. 죽음 저쪽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에게 딸의 보석같은 눈물과 이별의 말은 사막 같은 힘든 세상을 터벅터벅 건너온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의 샘물은 아니었을까.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어머니와 이별을 하던 장면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뿌연 혼수상태 속에서 어머니의 영혼은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평생 만나지 못한 북에 두고 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구석에 놓인 주전자 물이 얼음이 된 차디찬 방에서 주문받은 세타를 한 코 한 코 뜨개질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옆에서 나는 전과를 외우고 수련장을 풀며 공부했다. 속칭 명문 학교라는 곳의 입시장에 나를 밀어 넣고 엄마는 산속의 얼음이 얼어붙은 물 속에 들어가 기도했었다. 엄마의 그런 땀과 피를 먹고 나는 자랐다. 그런 엄마와 영원히 헤질 때였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엄마의 발을 처음 봤다. 평생을 종종걸음을 치며 나의 손을 잡고 끌어온 굳은 살이 박힌 발이었다. 나는 고달픈 길을 걸어왔던 엄마의 험한 발을 어루만지며 인사했다. “엄마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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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자유 복지 국가 시민의 삶
    자유 복지 국가 시민의 삶 어제는 바닷가의 이웃에 사는 노인 서너 명과 승합차를 타고 놀러 갔었다. 정년퇴직한 회사원도 있고 중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나 같이 바닷가에서 여생을 즐기려고 옮겨온 사람들 같았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옆에 앉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평생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어요. 마지막에 임금피크제가 실시됐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월급이 3분의 1로 깎인 거예요. 평생을 일하면서 급료가 차츰 올라갔었는데 갑자기 월급이 신입사원보다도 못하게 된 거예요. 차라리 나가서 쉬자 하는 마음을 먹고 퇴직을 했어요.” 표현은 안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았다. 모든 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제도의 취지 중에는 회사를 나갈 사람에게 그나마 계속 일을 하게 해 준다는 선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감사보다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인간인가 보다. 얼마 전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기 시작한 오십대 중반인 중견 기자한테서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아파트 경비원을 봅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 경비원만큼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더라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가 받는 급료만큼이 자신의 가치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상품으로 내놓고 파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태백으로 가는 길의 차 안에서 앞에 앉은 노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는 젊은 시절 중동의 건설 공사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외화통제가 심한 시대라 한사람이 해외에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달러가 이삼백 불이었어요. 백 불짜리 한 장만 따로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죠. 뜨거운 사막의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물을 사 먹는다는 걸 그때 우리는 생각도 못했어요. 돈이 아까워서 물을 안 사먹었죠. 대신 공사장 한구석에 있는 파이프에서 나오는 녹물을 마셨죠. 공동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었는데 김치는 꿈도 못 꿨어요. 해외에서 달러를 우리가 몰래 쓸까 봐 돈을 주지 않았어요. 바로 국내의 가족통장에 입금되는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잠시 귀국할 때는 선물을 사가야 하잖아요. 돈은 없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계를 조직하기도 했어요. 귀국하는 사람에게 곗돈으로 밀어주는 거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타는 듯한 하얀 빛을 뿜는 태양과 모래바람 속에서 소금기 절은 작업복을 입은 채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 노동법에는 시간 외 작업이나 야간작업은 한 시간을 더 일해도 두 시간 세 시간 일한 걸로 쳐주는 거예요.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잠을 안 자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렇게 일하니까 하루에 서른일곱 시간의 실적을 올린 사람도 있고 마흔 시간 일했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국내에 들어와서 서른일곱 시간 마흔 시간의 야간근무실적을 내놓고 수당을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되묻는 거예요. 하루가 몇 시간이냐고. 그래서 스물네 시간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왜 하루를 서른일곱 시간, 마흔 시간으로 쳐서 돈을 달래는 거냐고 따지더라구요. 중동의 노동법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죽도록 일만 했죠.” 그건 노동자를 속이는 교활한 방법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노인은 세상은 의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한국에서 중동으로 배가 다니기 시작했어요. 한국산 공사 자재를 싣고 오는 거죠. 그 배를 통해서 김치와 통조림이 왔어요. 그때 우리가 느낀 기쁨은 말도 못 했어요. 인생 팔십 가까이 살아보니까 그런대로 우리 세대는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착실하게 돈을 모아 아파트 한 채씩은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노후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실버타운을 알아보고 들어왔어요. 실버타운은 아내를 일에서 해방 시켜 주더라구요. 부부가 매일 파크 골프를 하고 낚시도 하고 이렇게 놀러 다닐 수 있으니까요. 실버타운을 예전의 궁색한 늙은이들에게 공짜 밥을 먹여주는 양로원으로 착각하는 친구들 중에는 나보고 거기 면회는 되니 밥은 제대로 얻어먹니 하고 걱정해 주는 경우도 있어요. 현실을 몰라서 그렇죠.” 나이 먹은 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들의 삶 자체가 한 권의 살아있는 책이다. 나는 그 노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시대 산업화의 전형적인 인물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서민이 어떻게 살아야 자유 복지 국가가 되는지 그 표본을 본 것 같았다. 젊어서 평생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는다. 일터가 삶의 터이고 수행터이다. 땀 흘린 노동으로 감사의 밥을 먹는다. 부당한 압력에 시민이 무릎을 꿇지 않는다. 인생의 황혼이 오면 밤이 될 때까지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 세상이 우리가 가야 할 자유 복지사회가 아닐까.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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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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