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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문학과 바람
    문학과 바람 나이 들어 새로운 공부방법을 발견했다. 유튜브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마술 등잔처럼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철학, 역사, 문학을 검색어로 찾으면 수많은 동영상이 떠오른다. 심심해서 마이크에 대고 ‘문학’이라고 말해봤다. 화면에 넥타이를 매고 깨끗한 와이셔츠에 쟈켓을 입은 소설가 김훈이 나타났다. 방송을 위해 그렇게 입은 것 같았다. 지난해 겨울 일산의 지하철역 앞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의 평소 복장은 후줄그레 했었다. 그의 옆에는 원로 탤런트 김혜자가 있었다. 그녀가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대담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김훈은 문장에 목숨을 거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차원 높고 그윽한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탤런트 김혜자 씨 역시 평생을 연기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는 연기 자체이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은 바늘구멍에 일생을 과감히 던진 예술에의 순교자같이 나는 그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문학이 뭡니까?” 탤런트 김혜자가 소설가 김훈에게 물었다. “저는 솔직히 문학에 대한 개념이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혜자 씨가 연기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듯이요. 그리고 문학은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하죠.” 정직하고 겸손한 대답 같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문학 자체고 다른 한 사람은 연기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김훈이 멋쩍은 듯이 씩 하고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저는 밥을 먹기 위해 글을 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돈을 받고 다음 책을 만들 때까지 그 돈으로 밥을 먹습니다. 비루한 얘기지만 밥을 먹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힘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정량의 원고지를 채워야 하는데 문장을 고치다 보면 자꾸만 원고지 분량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밥을 먹기 위해 매번 불만족한 원고를 보게 됩니다.” 정말 그럴까? 그는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는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밥을 먹고 문학은 그의 마음의 제단 위에 소중히 모셔두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로서 보는 현장은 그의 삶의 소재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의 문장들에서 그가 천재가 아니라면 문장에 목숨을 걸고 쓰고 또 쓰다가 마법을 일으킨 것으로 짐작하기도 했다. 작업실에 있는 수많은 몽당연필이 그걸 말해준다. 사회자인 탤런트 김혜자 역시 대본을 읽고 또 읽고 그 속의 인물이 되어 울고 웃고 하는 연습을 끝없이 하면서 자기 속에서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켰다. “저는 쉴 때 집안에서 빈둥거려요. 그러다 졸리면 잡니다. 김훈 선생님은 어떻게 쉬시죠?” 김혜자가 물었다. “저는 밖에 나가서 열심히 몸을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불어오는 바람을 쏘이죠. 바람을 쏘이면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바람에는 여러 동사가 있는데 쏘인다는 말도 있고 바람을 핀다는 말도 있죠.” “남자들은 왜 바람을 피나요? 아내가 예쁘고 살림도 잘하고 나무랄 게 없는데 그런데도 바람을 피고 하지 않나요?” 갑자기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거 솔직히 말하면 이 자리에서 한계를 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훈의 얼굴에 순간 당혹한 표정이 스쳐갔다. 어쩌면 말 도중에 나온 즉흥적인 질문 같기도 했다. 이윽고 결심한 얼굴로 소설가 김훈이 말을 했다. “저는 바람을 피는 친구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다르게 보지도 않습니다. 사회는 제도적으로 한 남자에 한 여자로 묶어 놓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람을 피지는 않았습니다. 잘했다기보다는 그냥 제도에 굴복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감하고 정직한 대답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유튜브의 철학 강의에서 들었던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났다. 이성으로 욕망을 절제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건 거짓이라는 것이다. 미쳐 날뛰는 욕망이라는 말 잔등에 탄 이성은 욕망에 끌려다니면서 그걸 합리화해주기 바쁘다는 것이다. 예수는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섯 남편을 가진 수가의 여인도 돌에 맞아 죽을 여인도 용서했다. 하나님은 부하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도 이백 명의 첩을 둔 솔로몬도 회초리를 든 후에 용서했다. 바람이란 그런 건가. 잘 모르겠다.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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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6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죽음과 싸우는 아기들
    죽음과 싸우는 아기들 신생아 집중치료실 안은 마치 동물을 사육하는 의학실험실 비슷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들이 받침대 위에 줄지어 있고 그 안에서 새빨간 아기들이 손발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앞쪽의 통 안에 들어있는 아기가 보였다. 아기라기보다는 큰 쥐만 한 정도의 크기였다. 바늘구멍 같은 작은 입과 코에 전선 같은 튜브가 삽입되어 있었다. 가슴을 뚫고 중심 정맥에 역시 가느다란 선을 연결시키고 있었다.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기는 마치 ‘죽여 줘 죽여 줘’ 하면서 빌 듯이 앙증스런 작은 발을 비비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의사가 내게 말했다. “이 아기는 처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5백 그램이었어요. 담배갑만한 크기였죠. 길이는 볼펜 정도였어요. 그걸 키워서 이만큼이라도 사람같이 만들었어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옆의 플라스틱 통 안에서도 역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전선 줄이 연결된 작은 기계같이 되어 극도의 고통 속에서 작은 팔을 흔들고 있었다. 의사가 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도 MRI를 찍어보니까 뇌 안에 출혈이 있어요. 앞으로 뇌성마비가 될지 지체 장애가 될지 몰라요. 여기 신생아 치료실에 있던 아기들은 세상에 나간다고 해도 정박아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들 앞에 올 때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태어나면 우리는 바로 이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야 합니다. 생명이니까 말이죠.” 나는 도대체 그 아기들이 왜 태어나자마자 그런 불행을 맞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원인도 없이 갑자기 쓰나미 같은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전 한 종교강의에서 강사가 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을 보면 말이죠. 악인이 벌을 받지 않고 더 잘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죽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왜 그런지도 모르고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우주의 인과법칙이 있습니다.” 아기들은 그 자신도 모르는 전생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일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동료 변호사 중에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다리를 쓰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자신만 평생 장애인이 된 이유가 늘 궁금했다고 한다. 전생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이론 이외에는 납득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내게 기독교에서는 자기 같은 장애의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물었다. 성경을 보면 길에 앉아 있는 맹인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건 누구의 죄냐고. 거기에도 죄의 관념이 언급되어 있었다. 성경 속에는 그 외에도 문둥병자도 있고 앉은뱅이도 있고 수많은 장애자 들이 존재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대를 멀쩡한 사람들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그걸 묻는 사람에게 한마디로 ‘내 맘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이로 뭘 만드는지 자유 아니냐고 했다. 만들어진 그릇이 주인에게 따지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는 금그릇, 은그릇이 있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도 있다고 했다. 어느 그릇이든 자신을 깨끗이 하면 귀하게 쓸 테니까 그리 알라고 했다. 초월의 세계에서 그분의 뜻이 어떻게 3차원 속의 글을 통해 확연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인간의 한정된 작은 머리로 초월의 세계의 미세한 일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힘들다는 생각이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들은 종교강좌에서 강사는 전생의 죄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예수로 그 방향이 튀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은 맹인이 누구의 죄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셨죠.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받고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었죠. 그 의미가 뭔지 아세요? 인간의 죄를 사면해 주려고 하는 거예요.” 실루엣같이 ‘죄사 함’의 의미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찰나에 불과한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면 잠시 걸치는 옷 같은 육체가 다가 아니라면 죄가 사해질 수 있다면 갓난아기의 고통이나 장애의 불편함도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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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8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월요일에 서초동에 있는 법정에 나갔다. 화요일에도 인천의 문학동에 있는 법원으로 갔었다. 둘 다 아주 작은 사건이었다. 월요일의 사건은 버스 안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방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민 사건이었다. 화요일의 사건은 새로 산 집의 인테리어를 트집 잡아 전에 소유하고 있던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법원에를 가야 하는 회의가 들었다. 30년이 넘는 경력의 변호사 시각에서는 작은 일이었다. 살인 사건에 비하면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밀었다는 건 코미디였다. 물론 당사자들의 감정은 그게 아닐 것이다. 새로 산 아파트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쁜 판사를 괴롭히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한 개인의 욕심과 비틀어진 심성이 여러 사람을 괴롭혔다. 손가락으로 남의 이마를 민 청년은 아들의 친구이기 때문에 다른 사건은 이사한 여동생 때문에 대신 법정에 나가게 된 것이다. 30년이 넘게 작은 분쟁들의 해결을 위해 대신 법정에 나가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았다. 변호사를 하던 초기에는 남들의 돈 계산을 대신해 주면서 회의가 들었다. 이런 작은 일들을 평생 하려고 법을 공부했나 라는 회의가 들었었다. 법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떤 판사는 재판을 하다 보니까 하는 일이 늘 남의 곗돈과 이자만 계산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검사들도 불평이 많았다. 허구헌 날 좀도둑, 교통사고 술집에서 멱살잡이하고 싸우는 폭행만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법관이 세미나에서 하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대법관이 몇십만 원짜리 사건에 매달려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변호사의 일에 회의를 느꼈던 나는 30대 중반 무렵 잠시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위대한 일을 하는듯한 대통령의 24시간은 어떤가 보았다. 내 눈에 대통령은 연기자였다. 촘촘하게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인기배우 같이 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카메라를 앞에 대해야 했다. 의전행사에 참여해서 비서가 써준 연설문을 읽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사석에서도 미리 비서가 적어준 대사를 표정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야 했다. 매스컴은 그런 대통령의 연기를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집무실로 돌아오면 수많은 결재 서류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사 오는데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성능이 어떤 것인지 상식적인 지식만 가진 대통령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실무자들은 항상 비슷한 안건 둘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최종선택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늘 상 오엑스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 같은 입장인 것 같았다. 장관임명도 1번 2번 3번 대상자를 올려 음식점 메뉴처럼 대통령이 고르게 했다. 그게 큰일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공무를 수행한다는 것도 실제는 아주 작은 일이었다. 개개의 공무원은 기계에 쓰이는 작은 톱니바퀴 같았다. 그들은 극도로 세분화 된 아주 작은 일을 맡아 가지고 서류를 만드는 사람 같았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방울 같이 작은 일들이었다. 그런 물방울들이 모여 개울을 이루고 개울과 개울이 만나 여울을 이루고 강이 되는 게 세상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끼어들어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유통기간 동안 기능을 잘 하다가 사라지는 게 성공한 인생이기도 했다. 그게 다일까. 기능적 측면으로 보자면 망치는 못을 잘 박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는 일개미나 꿀벌이 인간이 한 수 위다. 삶의 의미가 뭘까? 삶에는 굳이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솔제니친의 암 병동이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환자들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은 혁명을 위해서 산다고 했다. 예수는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했다. 목마른 이웃에게 냉수 한 잔을 주라고 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큰일은 없다고 했다. 위대한 작은 일들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성인들은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담은 작은 일들이 오히려 큰일인 것 같다. 어쩌면 감추어진 작은 선한 일들이 겉으로 나타난 위대한 업적보다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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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6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위대한 작은 일들
    위대한 작은 일들 오전 11시경 서초역 부근 횡단보도 앞에서였다. 허름한 배낭을 멘 백발의 70대쯤의 여성이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비닐봉지가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은 집게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버려져 있는 작은 쓰레기 하나를 집게로 들어 올려 다른 손에 든 비닐봉지 속에 넣었다. 횡단보도에 맞은편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졌다. 그녀는 건너가면서도 차도에 떨어져 있는 휴지 조각 하나를 얼른 집게로 주워 비닐봉지에 넣었다. 잔잔한 감동이 파문이 되어 가슴 기슭으로 밀려왔다. 이름난 봉사 활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저녁이면 나는 석촌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잠실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파트로 돌아온다. 저녁이면 역 구내에서 마주치는 독특한 광경들이 있다. 구석에는 노숙자들이 드문드문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누워있다. 그런 중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외마디 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60대 말쯤의 남자가 있었다. 흰 머리를 바글바글 볶았다. 꽃무늬가 들어있는 속칭 ‘몸빼’ 같은 여성용 바지를 입고 작은 바퀴를 단 판에 쓰레기 봉지와 박스를 가득 담아 어디론가 옮기는 모습이었다. 역에 있는 상인들의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공원 근처에서 그가 자는 걸 봤다. 그는 노숙자였다. 무기력하게 벤치에 누워 죽은 듯 있는 것보다는 일하는 그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보면서 중국음식점 배달원 김우수 씨의 경우가 떠올랐다. 매월 70만 원을 받으면서 싸구려 고시원에서 살던 그는 몇 명의 고아원 아이들에게 고정적으로 돈을 보냈다. 어쩌다 그 아이들한테서 편지가 오면 그걸 읽고 환한 얼굴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다가 트럭과 부딪쳐 죽었다. 하나님은 천사인 그를 더 이상 세상에서 고생하지 말라고 빨리 데려가신 것 같았다. 나의 개인법률사무소로 그런 천사가 왔다 가기도 했었다. 청계천의 뒷골목 허름한 건물의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자였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 그녀는 출근하다가 육교에서 웅크리고 있는 한 노인을 보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지갑을 열고 그 속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그 노인 앞의 깡통에 넣어주었다. 며칠 후 저녁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쌍한 아이들이 사는 움막이 보였다. 그녀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그 아이들에게 한 달에 만 원을 고정적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능력이 닿는 대로 안 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돈을 보냈다. 변호사인 내가 그녀가 보냈던 돈들의 총액을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감옥에 간 그녀의 동생을 위해 누나의 선행을 재판장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돈은 억대가 넘는 거액이었다. 작은 선행이 모이면 그렇게 커질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랐었다. 들판에 나 있는 작은 꽃들처럼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알맞은 작은 일을 하면서 맑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된 한 여성 당선인의 작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여공 출신으로 야간대학을 다녀 변호사가 됐다.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가 없는 아이 세 명을 입양해 키운다고 했다. 그녀의 정치철학은 거창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서 내가 잘살고 그걸로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게 그녀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녀 같은 국회의원이 들꽃 같은 작은 법 하나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화장실 법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더럽던 화장실 문화가 세계 최고가 되었다. 자전거법이 만들어져 강변을 따라 쾌적한 자전거길이 생기게 됐다. 그런 작은 법이 우리를 잘살게 한다. 거창한 정치이념을 내걸고 하는 선동들은 가짜가 많다. 한 장 한 장의 벽돌 3천만 장이 모여 로마의 콜로세움이 됐다. 하나하나의 돌들이 6억 개가 쌓여 만리장성이 됐다. 국가나 사회가 변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세상이라는 구조물을 이루는 좋은 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먼저 변해야 사회가 변하는 건 아닐까. 내가 변하지 않고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다. 물방울 같은 작은 선들이 모여서 강물을 이룰 때 우리 사회는 천국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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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9
  • 엄상익의 미셀러니_ 탤런트와 걸레 스님
    탤런트와 걸레 스님 원로 탤런트 정한용은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다. 중학 시절 그는 항상 작은 눈을 깜짝거리면서 생글생글 웃는 미소가 귀여웠다. 오락시간이면 선생 흉내를 기막히게 내서 아이들을 웃기곤 했다. 그게 타고난 연기력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공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중학 시절 여름방학 학원의 단과반에 가면 콩나물시루같이 아이들이 들어찬 강의실 길다란 탁자 같은 책상 뒤에 앉아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었다. 그는 성공했다. 큰 드라마의 주인공을 하는 중량감 있는 탤런트가 되었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정치인이었던 시절 신문의 한 컷짜리 만화에서 왕의 옷을 입은 대통령이 정한용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것 같았다. 탤런트나 정치인은 세상용의 특별한 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웬만하면 그 탈을 벗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인 정한용은 다른 것 같았다. 젊어서부터 이따금 중고교 동창들이 만나는 자리들이 있었다. 속칭 명문이라고 자랑하는 학교를 나왔던 우리들은 내남없이 고질병이 있었다. 대부분 자신의 사생활이나 치부를 감추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자랑하면서 서로 비교했다. 탤런트인 정한용은 자신을 딴따라 혹은 광대라고 자조 섞인 단어를 쓰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입담 좋은 그는 걸죽한 얘기들을 재미있게 해서 좌중을 즐겁게 하면서도 자신을 결코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못나고 모자란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쨍쨍 햇빛이 내려쬐던 인생의 여름이 가고 가슴 서늘했던 바람과 맞섰던 인생의 가을이 가고 어느덧 우리의 머리에 흰 눈이 내린 삶의 겨울을 맞이했다. 지금도 그와는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낄낄대는 친구 관계다. 그는 지금도 만나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먼저 자신의 치부부터 적나라하게 얘기한다. 이제는 나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이라는 정도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젊어서부터 이미 어떤 경계를 넘어서 있는 인격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만나 잡담을 할 때 그는 갑자기 중광스님을 화제로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중광스님이 살아있을 때 친했었어. 그 양반 정말 아무런 걸림이 없는 사람이었어. 한번은 중광이 술집에서 접대부를 끼고 술을 마시다가 전화를 한 거야. 야 한용아 뭐하냐 나와라 하면서 부르는 거야. 나는 다음날 드라마 녹화가 있어 대본을 보고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었거든.”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탤런트에게 녹화 전에 대사를 외우고 연습을 하는 것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떤 약속도 모임에도 가지 말고 몰입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한용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인정사정없이 나오라고 불러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끌려나갔어. 가서 보니까 여자 두 명을 옆에 끼고 술을 먹는거야. 그리고 나보고 그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자자고 하는 거야. 하여튼 우리 일행 네 명이 거리로 나와서 호텔 쪽으로 걸어갔어. 길을 걸어가면서도 중광이 빽빽 소리치는데 나는 누가 볼까 봐 겁이 나더라구. 이상한 중하고 얼굴 팔린 탤런트가 여자들하고 가는 거잖아? 눈에 띄지 않겠어? 그런데 중광은 그런 건 아예 염두에 없는 것 같았어.” 그런 경우 탤런트들은 모자와 짙은 색의 안경을 쓰고 자신을 위장했다. 스님들도 역시 사복을 입거나 어둠 속에서 일탈을 했다. 중광이라는 존재는 이미 세상의 시선을 뛰어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한용이 말을 계속했다. “중광을 따라 할 수 없이 호텔까지 따라갔어. 그랬더니 중광이 안내데스크 앞에서 큰 소리로 방이 없느냐고 소리치는 거야. 몇몇 로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중광인 걸 알아보고 또 내 얼굴도 알아보는 거야. 거기서 기자라도 만나 신문에 나면 난 죽는구나 하고 겁이 나서 도망쳐 나왔지.” 다음날 녹화를 앞둔 대본연습을 포기하고 거기까지 따라가 준 것만 해도 남에 대한 대단한 배려였다. 그는 그런 친구였다. “중관은 굳이 그런 걸레 같은 행동을 과시해야 했을까?” 내가 물었다. “중광은 스스로 자기의 법명을 걸레라고 했어. 내가 왜 하필이면 걸레라고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었지. 그랬더니 걸레는 그 스스로가 더럽혀지면서 다른 존재들의 때를 받아주고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는 거야. 그래서 자기는 걸레가 되기로 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까 중광의 행위 하나하나는 어떤 상징 내지 은유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걸레’라는 그 단어는 가슴에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았다.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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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2
  • 엄상익의 미셀러니 - 가장 큰 기적 별일 없는 하루
    가장 큰 기적 별일 없는 하루 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로부터 수필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가장 큰 기적 별일 없는 하루’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퇴직을 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혼자 십일 년째 산다고 했다. 빈 농가를 하나를 고쳐서 그곳에서 명상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며 말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는 글에서 소박한 일상을 말하고 있었다. 인생은 소소한 하루하루의 집합이지만 아주 작은 일상들로 이루어진 별일 없는 하루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깊은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글을 읽고 내 기적인 일상을 찾아보았다. 중동 사막 지역을 여행하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독충에 물린 적이 있었다.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상처에서 진물이 나왔다. 약을 바르고 그 위에 거즈를 대고 다녔다. 혼자 샤워도 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따뜻한 물이 담겨져 있는 욕조에 푹 잠겨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쉽고 평범하던 일상의 목욕이 내게 보석보다 더 귀한 존재로 절실하게 다가왔다. 완치가 되고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아”하고 감사가 섞인 짧은 신음을 했었다. 가슴속에 찌릿한 감동이 흘렀다. 평범한 일상의 목욕이 그렇게 좋은 건지 전에는 몰랐다. 매일 오후가 되면 가까운 실내수영장으로 갔었다. 코로나가 한 단계 오르면서 수영장 운영이 정지됐다. 수영장이 열리기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일상이 정지가 되야 비로서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다시 수영장에 들어가 몸을 담그게 됐을 때 기쁨을 다시 확인했다.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그렇게 감사한 것인지 전에는 몰랐다. 주변에 널려진 보석 같은 일상은 빼앗겨 보아야 그 진가가 나타나는 것 같다. 영국의 한 노신사가 죽음 직전에 했던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별 게 아니었다. 매일 같이 산책을 하던 길목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구석 자리에서 평소같이 향기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자극적인 맛이 없는 녹차 같은 평범한 얘기지만 그럴 것 같다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바다를 보고 싶기도 하고 밤하늘에 영롱한 별을 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기억의 깊숙한 바닥에서 물방울같이 몇 개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다. 기억에 세월이 덮이니까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것 같다. 칠십년대 말 나는 군에 입대해서 광주 부근의 벌판에 있는 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오래된 플라스틱 식판에 스팀에 찐 보리밥 한 무더기와 썩은 냄새가 나는 진한 갈색의 생선국 그리고 소금에 절인 무가 반찬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무에는 잔털이 숭숭했다. 물을 부어 그 밥을 들이키면서 나는 짜장면을 생각했다. 윤기가 흐르는 고동색의 짜장면을 먹어보는 게 소원의 하나로 떠올랐다. 중학교 때부터 흔하게 먹던 짜장면이 그렇게 귀한 존재인지 몰랐다. 어느 날 하루종일 행군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부대로 돌아오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었다. 길가 판자집의 반쯤 열려진 판자 쪽문을 통해 콩나물국 끓이는 냄새가 은은히 흘러나왔다. 콩나물이 뜨거운 물에 익어가는 냄새가 그렇게 향긋한지 처음 느꼈다. 그 콩나물국 한 그릇 먹어 봤으면 하는 게 순간 나의 작은 소원이었다. 무심히 하던 일상의 일들도 기적 같은 환희로 변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를 쓴 도종환 씨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그가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시를 쓰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게 시인의 일상이었다. 당시는 감옥 안에서의 집필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감옥에 갇힌 적이 있던 김남주 시인은 감옥 안에서 못으로 은박지에 시를 썼다고 했다. 어느 날 운동시간에 다른 감방에 있는 청년이 도종환 시인에게 반 토막짜리 볼펜심 하나를 툭 던져주고 갔다. 그는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볼펜심으로 그는 감방에 있던 책들의 위아래의 여백에 시를 썼다고 했다. 평범했던 일상이 기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한 톨 한 톨의 쌀이 모여 익어서 밥이 된다. 가을 길가에서 웃음을 짓는 코스모스도 하나하나가 모여 바람에 물결치는 길가의 꽃밭이 된다. 인생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이 모여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밥을 먹으라고 부른다. 아들과 며느리 가족이 한 상에 모여 아침밥을 먹는다. 성경 속의 솔로몬은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라고 했다. 그게 축복받은 인생의 낙이라고 했다. 녹차 같은 수필 한 편의 맑고 은은한 향기를 맡은 아침이다.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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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4
  • 엄상익의 미셀러니_ 마이너스 소득세
    마이너스 소득세 고교동기 한 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행정고시에 수석합격을 하고 경제관료를 한 그는 사회라는 산의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고 어느 날 골짜기에 추락해서 죽음 직전까지 경험해 보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재정과 금융의 실무 최고 책임자로 외환위기 때 국가를 위해 성실을 다한 친구였다. 그러다 외환은행을 외국의 펀드 회사 론스타에 파는 과정에 관여했다가 화상을 입었다. 뇌물범으로 몰려 1년 정도 감옥에 갔다가 무죄를 선고받고 살아났다. 관료로서 장관이 되어 대한민국의 경제를 담당하려던 그의 꿈은 허무하게 사라진 셈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쯤이었다. 같은 반의 앞뒤로 그와 함께 앉았었다. 그의 공부방법이 참 특이했다. 하얀 대학노트 위에 그는 매일 수학 문제를 몇 개씩 풀어나갔다. 노트의 한줄 한줄 또박또박한 부호와 숫자로 식을 써 나가면서 답을 향한 자신의 수학적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일상이 된 성실한 공부의 방법을 자연스럽게 본 셈이다. 매일 스스로 풀어가는 몇 개의 수학 문제가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3년이 되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엄청난 산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는 대학진학에도 실패하지 않았고 행정고시 수석합격을 한 후 초고속 승진에 장관이 될 것이라고 친구들은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탄탄대로를 가게 놔두지는 않았다. 그를 구름 위에서 떨어뜨려 시장 거리의 진흙 바닥에서 뒹굴게 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추락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는 거대한 금융사업가로서 다시 우뚝 일어섰다. 주요일간지에 공정과 경쟁과 정의를 내용으로 담은 경제 컬럼니스트로 재탄생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를 보는 그의 진리는 간단한 것 같았다.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게 하되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공정한 짓을 저지르는 자는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달걀같이 심플한 진리였다. 재정 관료로서 20년 이상 몸으로 겪은 그의 체험인 것 같았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성실한 그를 신뢰했다. “네가 보낸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이론의 내용은 뭐야?” 내가 물었다. 얼마 전 그가 보낸 책에서 ‘마이너스의 소득세’란 그의 주장을 대충 읽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부자나 보통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구별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막 퍼주는 포퓰리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잖아? 복지로 나가는 돈도 수많은 명목이 있고 복잡하고 말이야. 그런 복잡한 복지를 심플하게 통합하고 수학적으로 처리해서 공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론을 만들어 봤어.” “하기야 너는 고등학교 시절 도를 닦듯 혼자서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그 이론의 핵심이 뭔데? 평민인 내가 이해할 수 있게 간단히 설명해 봐.” “복지라고 해서 막 퍼주지 말고 일정한 기준을 세워 합리적으로 공정을 기하자는 이론이야. 별거 아니야. 국민 한 사람이 검소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소득의 기준을 추출해 내는 거야. 그건 어렵지 않아. 그걸 기준으로 그것보다 많은 돈을 버는 사람한테는 당연히 소득세를 징수하는 거지. 반면에 그 기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비율에 따라 국가에서 돈을 주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마이너스의 소득세’라고 그 이름을 붙인 거야. 그렇게 하면 복지자금이 공정하게 곳곳에 흘러가게 되어 있지 않을까.” 수재인 그는 이미 세상을 훨씬 앞서가면서 나라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너의 그 마이너스 소득세 이론을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워 실천하면 아주 좋겠는데?”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윤석렬 후보가 대통령 지지율에서 앞서고 안철수나 홍준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만 빼놓고 모두 경제를 모르는 법률가 출신들이었다. “나는 단순히 책을 써서 그 이론을 발표했을 뿐인데 권력에 가까이 가려는 것으로 오해한 건지 벌써 나를 죽이려고 별별 모함이 다 들어와. 어제 한 신문에서는 벌써 내가 탤런트로 자살한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등 별별 모략이 다 나타나는 거야.” 그는 삼국지의 책사 방통 같이 너무 뛰어나서 곤혹을 겪는 것 같았다. 그를 보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하는 성경의 이런 한 장면이 떠올랐다. ‘너는 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너는 여호수와에게 책임을 맡겨라. 그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그의 경륜이 과거의 부하들이나 후배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펼쳐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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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5
  • 엄상익의 미셀러니_ 중풍 환자
    갑자기 재활병원의 하얀 병실에 혼자 누워있을 그 늙은 친구가 떠올랐다. 얼마 전 중풍으로 병원으로 간 친구였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을 가는데도 받지 않았다. 잠을 자고 있거나 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 서랍에 넣어두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지 않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한참 만에 그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어때?” 하고 내가 간단히 말했다. 그냥 위로의 말이었다. “계속 몸을 못 움직이겠어. 왼쪽 반신마비야” “그래도 말은 제대로 하네. 중풍이던 우리 아버지는 입도 반쯤 마비 되서 밥이 흘러나오고 침을 흘리고 그랬는데.” 아버지의 증상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 그런데 이제 말은 그런대로 할만해.”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사무실에서 오후 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고 일을 다 잘 마쳤어.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거야. 내가 버둥거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들어와서 그걸 보고 앰블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간 거지. 뇌경색이라고 그래. 지금 내 희망은 재활에 성공해서 지팡이라도 짚고 다시 걸어보는 건데 여기 의사들 아무도 희망적인 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없네. 코로나 사태로 가족도 옆에 있을 수 없어서 하루종일 혼자 있어. 옛날부터 아홉수가 나쁘다고 그러더니 예순아홉 살에 이렇게 되네. 엄 변호사 너도 조심해.” 그가 믿고 의지할 뭔가를 주고 싶었다. 그는 하얗게 바랜 시간 속에서 혼자 있을 것이다. 이런 때 뭘 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런 때 병실에서 혼자 성경을 읽는 건 어때?” “야 읽으면 불경을 읽어야지 왜 성경을 읽어? 나 아함경을 읽으려고 그래. 열 아홉 권으로 된 전집이야.” “아함경에 부처님이 중풍 고쳐주는 거 있냐? 나도 불교 경전을 여러 권 읽어 봤는데 그런 건 없던데? 그리고 우리가 학자도 아니고 불교 경전은 너무 양이 많잖냐? 그 내용들도 좋지만 한 번 성경도 읽어봐. 그냥 한 권이야.” “성경에 나 같은 중풍 고쳐주는 거 있어?” 친구가 물었다. “전신 마비가 되어 들것에 실려 온 중풍 환자를 예수님이 단번에 고쳐줬어. 자기가 타고 온 들것을 들고 나가더라구. 그 정도 화끈하게 고쳐주는 장면이 있어.” “그건 이천 년도 넘는 옛날에 있었던 얘기잖아?” “아니야. 예수는 지금도 살아있어. 그러니까 내가 믿는 거야. 이천 년 전 그럴듯한 소리만 하고 죽은 사람이면 내가 왜 믿겠니? 예수는 성령의 형태로 지금도 존재하는 거야.” “그렇구나” 전화 저쪽에서 그가 하는 목소리는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는 어조였다. 사실 나도 마음은 그랬다. 그렇지만 그에게 작아도 어떤 희망의 빛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읽은 짧은 불교 지식은 병들고 죽고 하는 누구에게나 오는 인생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 받아들이라는 거지.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여러 기적이 나와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나는 거야.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면서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표현하더라구. 너도 믿음만 있으면 예수처럼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재활운동을 해서 지팡이 짚고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한번 해 보라구. 그 시절은 현대적인 병원이 없으니까 마술 같은 행태를 보였지만 요즈음은 현대의학이 있으니까 그 방법을 따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알았어. 성경을 한번 읽어볼게. 전화해 줘서 고마워.” 친구의 대답이었다. 이상했다. 처음부터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하얗게 바래버린 시간 속에 혼자 있을 그 친구를 생각하니까 성경을 읽는 것으로 남은 여생을 색칠해 나가게 하고 싶었다. 중풍 환자인 그를 보고 성경 속의 중풍 환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순간 그분이 그렇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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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7
  • 엄상익의 미셀러니 - 한 성자의 재봉틀
    한 성자의 재봉틀 아침에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아는 부부가 찾아왔다. 사회에서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이다. 따지고 보면 적으로 만난 셈이다. 내가 한 대형교회 목사의 비리를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그 부부는 그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하는 장로로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원래 적과는 친구가 되기도 쉬운 법이다. 소송이 끝난 지 오래됐는데도 그들 부부가 가끔씩 찾아와 주어 차를 마시며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 부인의 아버지는 어려웠던 60년대 남쪽의 시골을 다니면서 전도하다가 나환자촌에서 일찍 삶을 마친 목사였다. 지난번 만났을 때 지나가는 소리 속에서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이 말의 행간 속에 스며있는 걸 느꼈었다. 문득 그 부인의 아버지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목사였어요. 60년대 그 시절은 목사의 월급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그냥 신도들이 더러 쌀을 조금씩 가져다주면 그게 수입이었죠. 아버지는 자식인 우리들을 할머니 댁에 부탁하고 재봉틀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당시 바닷가 남해 벌교 순천 주변의 깡촌을 떠돌았어요. 그때 아버지가 본 시골 마을은 절반쯤은 폐병 환자에다 봄이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처참한 가난이 깔려있었죠. 아버지는 그런 마을로 들어가 먼저 사람들의 구멍 난 헌 옷들을 가져다 깨끗이 빤 다음에 짊어지고 간 재봉틀로 깨끗하게 옷들을 기워줬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샀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술이나 의술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활용해서 전도를 하기도 했다. 성경 속의 사도바울은 텐트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계속 그 일을 하면서 예수를 전했었다. “그다음은 아버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마을 한구석에 천막을 치고 거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일이 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어요. 그럴 때면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셨죠. 경상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굳이 전라도 바닷가를 찾았어요. 아버지가 배운 성경 속에 자기 고향이 아닌 멀리 떠나가서 거기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고향인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남쪽의 바닷가로 가신 거죠. 그러다 보니까 고통도 많으셨던 것 같아요. 당시 어촌에는 미신이 성했는데 고흥 쪽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나거나 고기가 잘 안 잡히면 전부 예수 귀신을 몰고 온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면서 달려와서 혼을 냈다고 그래요.” 그 부인의 아버지는 역사에 숨겨진 성자 같았다. 나는 그녀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어려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했어요. 함께 살지도 못하고 춥고 배고프고 그랬으니까요. 아버지가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화가 나기도 했죠. 어쩌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면 마을 제일 위쪽 초라한 집에 방을 얻어서 묵고 있어요. 그 옆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대충 얽은 종탑이 보였구요. 마지막에 아버지는 나환자촌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돌봤어요. 그때는 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 하루는 나환자들을 저의 집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그분들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잘 대접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남편 보기도 미안하고 기가 막혔죠. 남편 눈빛도 좋지 않았구요.” 성자도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늙고 초라한 평범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성자는 벌써 하늘나라로 떠난 지 30년가량 된다고 했다. 그 부인이 말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남해 바닷가 쪽을 여행하다가 아버지가 젊어서 고생하던 마을을 돌아봤어요. 아버지가 천막을 쳤던 곳마다 아름다운 교회들이 들어선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 교회 마당에 아버지가 얼기설기 엮었던 어설픈 종탑을 옮겨다 놓고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었어요. 그 마을에서 아버지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가 됐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 아버지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분이셨구나를 깨달았죠.” “아버지의 재봉틀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건 성자의 보물 같았다. “예 지금도 집에 있어요. 아직도 기름 냄새가 나요.”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옷을 기워주던 그 재봉틀이 사랑이고 십자가이고 한 성자의 지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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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6
  • 엄상익의 미셀러니 - 아름다운 친구
    아름다운 친구 대학 동기 한 명이 내게 전화를 해서 저녁을 사고 싶다고 했다. 대학 시절 그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와 어떤 연관이 있었던 적이 없다. 업무와 관련해서 한두 번 정도 만난 적은 있었다. 내가 나온 대학은 용광로 같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만으로 강한 끈끈함과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이 감도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 친구가 알려준 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 있는 양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됐다. 기름을 두른 검은 불판 위에서 양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는 걸 보면서 대학 동기인 친구와 술잔을 부딪쳤다. 이상하게도 그 친구한테서 예사롭지 않은 어떤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가 살아온 자취를 알고 싶어 물었다. “대학 때 어떻게 지냈어?” “내가 대학을 다닌 건 모두 합쳐서 백일도 되지 않을 거야. 대학 1학년 때부터 난 청계천에서 야학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뭔가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그 시절 청계천은 처절한 빈민굴이었다. 인간들이 사는 터전이 아니라 지금의 짐승들이 사는 축사보다 못한 환경이었다. 개천에는 똥물이 검게 흐르고 천변에는 판잣집들이 바위에 붙어있는 따개비 같이 붙어있었다. “어떻게 야학을 하게 됐어?” 나는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를 고쳐앉고 내면의 귀를 쫑긋 세웠다. “당시 김진홍 목사가 청계천 빈민굴로 들어가 활빈교회라고 천막 교회를 세우고 활동했는데 나는 그 교회 마당 한구석에 천막을 치고 빈민촌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지. 내가 가르친 건 수학이고 다른 사람들과 과목을 나누었지. 그때 같이 야학을 하던 선배가 빈민운동을 하던 제정구 씨야.” 그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그가 밥과 술을 살 게 아니라 미안해서 내가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법대생들의 야망은 고시를 빨리 통과해서 세상 적인 출세를 빨리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들의 세상 적인 꿈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마도 같은 학년이었던 홍준표인지도 모르겠다. 창녕의 가난한 집 아들인 홍준표는 독서실의 포개서 붙인 나무의자에서 자며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같은 도서관의 앞자리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는 그의 모습을 종종 보았었다. 그는 고시에 합격하고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된 사건을 휘몰아치는 검사가 됐다. 정계로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런 야망이 법대생인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던 시기에 청계천의 빈민굴로 그가 들어갔다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가 다르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청계천에서의 생활은 어땠어?” 내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내 환경은 그런대로 사는 집안 아들이었어. 그 시절 청계천 빈민굴로 가보니까 기가 막히더라. 개천에 막대기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몇 장의 판자를 엮어 만든 방에서 지냈지. 그건 그래도 괜찮았어.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동네에 하나 있는 공동변소에 가면 수십 명이 줄을 서 있는 거야. 재미있었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을 계속했다. “나는 빈민운동을 한다던가 아니면 정치로 나가려는 어떤 생각이 있거나 특별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야. 대학에 입학하고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청계천에 가게 됐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 일을 했던 거야. 청계천 사람들이 김진홍 목사와 남양만으로 이주할 무렵 나는 그냥 대기업에 들어가서 회사원이 됐어. 회사원이 돼서도 임원이 되겠다는 야망이 없었어. 그냥 평범한 사원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지내면 된다는 생각이었지.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전무도 되고 사장도 되고 퇴직을 하고 10년이 넘은 지금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청년들을 돕는 사회운동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일들을 말하고 있었다. “야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이렇게 훌륭한 친구가 대학 동기였는지 몰랐네.” 내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가 다시 보였다. “얼마 전에 ‘미나리’라는 영화로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 씨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어. 왜 모두가 최고가 되려고 하느냐면서 자기는 최고의 중간이 되겠다고 하는 부분이야. 괜찮은 말 같더라구.” 선행도 희생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는 그의 인품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어서 만난 아름다운 친구였다.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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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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