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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 장로 - 촛불 외 14곡
    01. 촛불 (작사.작곡 : 소강석) 4:04 02. 신기루 인생 (작사 : 서용봉 / 작곡 : 장욱조) 5:49 03. 나의 아버지 (작사 : 채수련 / 작곡 : 김동국) 4:51 04. 주님께 무릎꿇고 (작사.작곡 : 소강석) 3:43 05. 은혜의 힘입니다 (작사.작곡 : 김석균) 4:39 06. 예수믿고 천국가요 (작사.곡: 장욱조) 3:39 07. 오늘 나는 (작사.곡 : Ira.Stanphill) 5:23 08.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작사 : 민수기 / 작곡 : 장지연) 4:40 9. 여호와는 너에게 (작사 : 민수기 / 작곡 : 장지연) 3:42 10. 시편 8편 (작사.곡 : 최덕신) 3:55 11. 주여 날 품어주소서 (작사.곡 : 전덕영) 3:53 12. 주 예수 내맘에 들어와 (작사 : R.H.HcDaniel / 작곡 : 이윤영) 4:40 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작사.곡 : 최덕신) 3:42 14. 물이 바다덮음 같이 (작사.곡 : 고형원) 4:15 15. 거룩한 성 (작사.곡 : STEPHEN ADAMS)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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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6
  • 소강석 목사 장모 팔순
    유쾌한 광대 소강석 목사 10월 6일 평생의 기도 후원자 정금성 권사 팔순 감사예배 드려 김관선 목사 축사 박정하 장로 격려사 정금성 권사 산수연 빛내 소강석 목사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고 기도의 후원자가 되셨고 그 기도가 눈에 보이도록 응답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은행나무를 기도하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마시며 열심히 기도를 하던 나무. 가을이 되면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순금 빛이 되는 나무. 목사도 기도하는 은행나무가 되고 싶다. 떨어진 은행나무 금빛 잎새는 손아귀를 가만히 오므린다. 오므린 손은 받아 모셔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걸 짓고 기른 분이 오신다고. 모든 기도는 이렇듯 순정하고 맹목적이다. 기도는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 감각이 열려 있고 그의 자녀임을 믿고 외친다. 기도하면서 최초에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유지하고 그 기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자세는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원래 꿈꾸던 일이 완전한 결과물을 갖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팔순의 정금성 권사처럼 기도에 마음이 움직이고 어떤 사람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기도하라. 아름답게 응답될 때까지. 목사는 타인들 기도 속에서 항상 주님의 은혜를 느낀다. 주님은 타인들 기도 속에 자신의 희생처럼 묻혀 있다. 천 년의 영광이 될 듯 오늘도 타인들 기도 속에서 먼지 띠로 반짝인다. 저녁이 온통 푸를 때마다 단풍 든 은행나무처럼 사방에서 반짝이는 기도의 먼지 띠들은 주의 종들을 믿음에 사로잡히게 한다. 사라졌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 없음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있어야 은혜로 살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저녁 우리 목사들은 이상한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시인 소강석 목사의 삶과 시는 늘 드러나지 않는 믿음을 그를 위한 기도의 먼지 띠처럼 드러내려 노래하는 모양이다. 예언적 서정 시인이고 유쾌한 광대 소강석(蘇康錫 1962년 2월 22일생,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 목사는 10월 6일 본 교회 1층 비전홀에서 평생의 기도 후원자 정금성 권사(자녀 1남2녀 소 목사 사모 배정숙)의 팔순 산수연 감사예배를 소 목사 사회로 조촐하지만 뜻깊게 드렸다. 전 세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또 다른 대규모 전면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격동의 1939년 1월 11일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정금성 권사(1990년 2월 6일 권사 취임)는 출생했다. 정 권사님은 1980년 10월 1일 가을이 깊어 바람이 매서운 무등산 제일기도원에서 봄 잠바를 입은 28세의 떠꺼머리 소강석 전도사를 만나 장모와 평생 기도 후원자가 되었다. 그 때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 하에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다.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하는 형국에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정권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로 대표되어 우리 현대사에서는 아주 비극적이었던 해에 정금성 권사와 소강석 전도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다가 서로의 애절한 기도에 마음이 끌려 만나게 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교계 인사와 교우들 500여 명이 참석해 정금성 권사의 80세를 기념하는 자리의 여러 순서 가운데 김관선 목사의 축사와 말년의 야곱이 이집트 통치자에게 말한 것처럼 행한 격려사가 인상 깊고 산수연 자리를 빛내주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표현대로 김관선 목사의 축하 예배를 진정 즐겁고 뜻깊게 만든 톡톡 튀었던 축사는 다음과 같다. “소 목사님은 장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우리 장모님은 제 덕에 사십니다. (웃음) 제 아내가 사 남매의 막내입니다. 장모님 제가 모시고 삽니다. (큰 웃음) 아드님들이 안 모시고 제가 모시고 사는데 제가 비교를 좀 했어요. 소 목사님은 장모님 덕에 이렇게 앉아 계시고 새에덴교회가 소 목사님을 정말 다들 존경하는 견지에서 장모님에 대한 효도를 정말 사랑을 합니다. 제 장모님은 저희 집에서 사시면서 제 덕에 밥을 드시고 제 기도 덕분에 건강하십니다. (박장대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매일 새벽마다 장모님이 기도회에 안 빠지려고 애 쓰시는 것입니다. 제가 저희 장모님의 신앙을 잘 성장시켜드린 것 같습니다. (큰 웃음) 그래도 우리 장모님이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조용하게 지원하고 응원하고 밖에 나가면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저를 자랑하십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 정금성 권사님을 소 목사님이 아주 아니 너무 자랑스러워 하셔서 지난번에는 비난도 받으셨습니다. 장모님을 우상화한다고까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말 우리 소 목사님이 권사님을 효심과 믿음 깊은 룻처럼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합니다. 우리 권사님께 그런 소 목사님의 장모님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웃음 박수) 재벌 장모를 만나서 돈을 상속받아도 감사는커녕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정금성 권사님을 향해) 돈 안 주셨잖아요. (박장대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셨음을 자랑스러워하시는 소강석 목사님의 장모님 되신 것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목사의 모든 장모가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 기도한다고 이렇게 현세에서 기도 응답을 받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정말 축하드리는 것은 눈물로 기도하셨고 기도의 후원자가 되셨고 그 기도가 다 응답되었기에 (큰 아멘) 정말 눈에 보이도록 응답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회중 크게 아멘) 구순 잔치 때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멘) 그런데 제가 십 년 후에는 은퇴한 목사가 되기 때문에 아마 안 불러주실 것 같습니다. (큰 웃음) 그때까지 지금처럼 고우시고 건강하시고 기도의 응원자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렁찬 아멘) 축하합니다. (큰 박수)” 소 목사 박수치며 사회석에 섰다 “김관선 목사님 톡톡 튀는 축사 고맙습니다. 제가 약속드립니다. 은퇴 하셔도 설교자로 모시겠습니다.”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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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9
  • 송준 시네마힐링
    <세크리터리> 감독 : 스티븐 쉐인버그출연 : 제임스 스페이더, 매기 질렌할 제목 :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를 위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진실’ 혹은 ‘상식’ 위에 있지 아니하다. 그저 ‘다수결’의 함수일 뿐이다. 다수가 발산하는 힘의 함수다.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티는 은연 중에 ‘정상’을 자처한다. 메이저리티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메이저리티의 눈빛은 형형하다. 메이저리티의 몸짓은 도저하다. 그 서슬에 밀려 마이너리티는 저절로 ‘비정상’의 경계 너머로 움츠러든다. 세상의 모든 왼손잡이와 대머리들이 그렇다. 미국의 모슬렘들이, 아라비아의 크리스천들이, 유럽의 집시들이 그렇다. 여기에 섹슈얼리티 문제가 가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마이너리티 차원이 아니다. 변태로 비하되거나 불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성적 마이너리티를 몰아붙이는 ‘정상’의 목청은 거의 고함이다. 눈초리는 가재미를 닮아 있고, 누군가는 주먹이 반쯤 쥐어져 있다. 그 서슬에 밀려 성적 마이너리티는 어느덧 사회의 그늘 속에서 침묵한다. 세상의 모든 트랜스 젠더가 그렇고,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그렇다(이 영화가 개봉되던 2002년 무렵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영화 <세크리터리>는 그늘 속에 숨은 마이너리티의 진실을 따뜻한 눈길로 매만진다. 영화 <세크리터리>는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에게 바치는 낮은 목소리의 찬가다. 스티븐 쉐인버그 감독이 제시한 샘플은 엉뚱하게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다. 이 생경하고 불편한 소재를 가지고 쉐인버그 감독은 깔끔하고 가슴 훈훈한 왈가닥 로맨스 코미디를 직조해냈다. 일단 이성을 때림으로써 사랑을 느끼는 가학증과 아픔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피학증의 조합이 절묘하다(그렇다고 스크린 가득 핏자국이 번지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적 사디즘은 아니므로 너무 긴장하지 마시길). 어쩌란 말인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성정체성을! 쉐인버그 감독은 마치 오목과 볼록의 궁합을 맞추듯 가학과 피학의 요철을 결합해 외로운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랑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리 할로웨이(매기 질렌홀)는 평범한 외모에 조용한 성격의 20대 여성이다. 타자학원에 다니지만 일상은 언제나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만성적인 부모의 부부싸움과 개운치 않은 집안 분위기에 짓눌려 지내는데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웃에 사는 고교 동창 피터와의 데이트도 무미건조할 뿐이다. 늘 주눅 든 표정의 이 처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자해 습관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밑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상자 안에는 각종 자해 도구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할로웨이는 마치 종교 제의를 치르듯이 경건한 손짓으로 도구를 꺼내들고 한 땀 한 땀 정성껏 허벅지에 생채기를 낸다. 생채기의 크기는 스트레스의 무게에 비례한다. 상처가 클수록 카타르시스도 커진다. 우울증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자해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 자해의 비밀은 다시 심리적 부담이 되어 스트레스로 되돌아오고, 견디다 못한 할로웨이는 자해 상자를 버리려하나 끝내 그 미망의 유물을 떼놓지 못한다. 어느 날 할로웨이에게 희망이 찾아온다. 한 변호사 사무실에 타이피스트 겸 비서로 취직을 한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첫 출근길, 감독이 배치한 소품의 복선이 재미있다. 수풀 우거진 고급 주택가의 한 단독주택형 사무실, 입구 측면에 서 있는 간판 아래에 수십 개의 꼬마전구가 반짝거리는 판자가 매달려 있다. 내용인즉슨 ‘비서 급구’. 들어서는 할로웨이를 밀치고 울며 떠나는 전임 비서의 표정에서 순탄치 않은 앞날의 예감이 전해져온다. 잘생긴 중년의 변호사 에드워드 그레이(제임스 스페이더)의 특기는 ‘빨간 펜’. 근엄한 표정으로 눈치 채지 못하게 비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특히 타이핑한 편지에서 오타를 찾아내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야단치는 게 낙이다. 때맞춰 카메라는 수십 개의 빨간 펜을 클로즈업한다. 소심한 할로웨이는 야단을 맞을수록 더 주눅이 들어 오타가 잦아지고 급기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만의 종교의식을 치른다. 우연히 그 모습을 훔쳐보게 된 그레이 변호사의 표정이 야릇하다. 이튿날 오타 신기록을 세운 할로웨이는 변호사 방에 불려가서 벌을 받는데 벌이 또한 기상천외하다. 스커트 차림으로 책상 위에 상체를 구부리고 엎드린 할로웨이와 그녀 뒤에 바짝 다가선 그레이 변호사. 스커트를 올리고 속옷을 내리라는 지시에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시킨 대로 말을 듣는 할로웨이. 속살이 드러난 양쪽 알궁둥이를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포핸드 백핸드 찰싹찰싹 후려치는 그레이 변호사의 테크닉이 가히 예술이다. 영락없는 성추행에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말이 되게 그려낸 쉐인버그 감독의 연출 맵시 또한 가히 예술이다. 엉덩이 살가죽에 시뻘건 손자국이 짙어져갈수록 고통으로 찡그리던 할로웨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자기도 모르던 성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날 이후 할로웨이의 삶은 에너지로 충만하고 걸음걸이에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마침내 할로웨이는 침대 밑에 모셔두던 자해의 신주단지를 흔쾌히 강물에 던져버린다. 영화는 몇 번의 반전과 우여곡절을 거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엉덩이 체벌로 자신의 성 취향을 들켜버린 변호사가 자의식에 사로잡혀 할로웨이를 멀리하는 플롯이며, 할로웨이가 결혼을 앞두고 가진 피터와의 잠자리에서 불감증으로 고뇌하는 시퀀스 등에서는 연출의 깊이와 연기의 진면목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코믹의 스피드와 고뇌의 농도 등이 각기 다른 무늬와 리듬으로 펼쳐지는 점도 감상의 포인트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너무도 용감해진 할로웨이의 변신과,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골인하는 극적 반전의 클라이맥스는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영화의 백미다. 클로즈업으로 처리한 상징적 소품을 눈여겨본다면 코미디의 감칠맛을 조금 더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기발한 엉덩이 시퀀스의 승리, <세크리터리>는 200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독창성’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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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7
  • 삼일교회 운동회
    수용인원 15,000여명 효창운동장을 가득 메운 삼일교회(담임 송태근 목사) 젊은 교인들 하나님께서 주인되시고 예수님께서 머리되시며 성령님께 이끌리는 교회의 믿음과 열정 용산구 구민들에게 전해 주님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장렬했습니다. 그러나 여름 기도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시고 며칠만 더 여름의 날을 베푸시어 믿음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성만찬 포도주에는 주님의 마지막 핏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다닐 교회가 없는 사람은 이제 믿음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기도하고 짧은 회개를 하고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효창공원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긴긴 혹독한 여름 끝에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서느런 발소리가 들린다. 가을은 거둠과 시듦의 계절이다. 하나님이 주신 거둠을 인간이 얻듯 하나님이 예비한 시듦도 인간의 기회가 돼야 한다. 그 고독한 시간을 기도로 갈아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정결하고 단단한 믿음의 꿈을 낙엽 지는 거리에 내놓는 일. 꼿꼿하게 방황하는 일. 2018년 10월 3일 젊은이들이 약동하는 삼일교회(담임 송태근 목사)가 전교인체육대회를 효창운동장에서 열었다. 운동회는 승부나 기록을 중요시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체육 운동을 중심으로 경기나 놀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회에서의 운동은 이러한 목적에 맞도록 다양하게 마련된다. 우리나라 운동회의 시초는 1896년 5월 2일 영어 학교에서 평양의 삼선평(三仙坪)으로 소풍을 가면서 화류회(花柳會)라는 운동회를 열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 운동회에서는 300, 600, 1,350보 경주와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이인삼각, 당나귀 달리기, 12인조 동아줄 끌기 등을 했다. 만국기 아래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학교운동회는 놀이와 축제가 많지 않던 시절에 학생을 중심으로 온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모여 함께 경기를 하면서 축제를 벌이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운동회 당일이 되면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백회로 달리기 선이 그려진다. 조회대를 중심으로 전교생이 정렬한 개회식에서 국민체조를 한 다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응원석으로 이동한다. 학생들은 달리기와 단체경기를 하며 주인공이 되었고 오랫동안 연습으로 선보였던 체조, 부채춤, 꼭두각시놀이 등의 공연으로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특히, 학년별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운동장을 찾은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 응원을 할 만큼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는 했다. 교회에서의 운동회는 단순한 운동회의 의미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건강증진은 물론 신앙심과 공동체의식을 고취시켜주는 장점이 있다. 수용인원이 15,000여명에 달하고 경쟁 입찰을 통해 사용허용을 받아야 하는 효창운동장을 가득 메운 삼일교회 젊은 교인들은 담임 송태근 목사의 3대 가르침 첫째 하나님께서 주인되시고 둘째 예수님께서 머리되시며 셋째 성령님께 이끌리는 교회의 믿음과 열정을 용산구 구민들에게 전했다.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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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0
  • 소강석의 30년 그대 향한 촛불
    사랑은 가을처럼그리움은 갈대처럼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지 않으리비바람에 어쩔 수 없이 꺾인다 해도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예수께서 처음 소리를 내신 날 베들레헴에 그것을 기릴 콘서트홀은 없었다. 대신 별 하나 날아와 구유 위에 앉았다 갔다. 그 별이 고개를 더 아래로 내리고 그 구유에 다시 빛을 뿌린 날은 그 즈음에 낳은 아이들이 죽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동안 내렸을 것이다. 이 가을은 혹독한 더위로 심술부리던 여름을 죽였다. 어느 저녁 늦은 햇빛에 실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저무는 산 그림자보다 기인 눈빛으로 시인 소강석의 그대 향한 촛불처럼 주님께서 잠시라도 깜박거리며 나를 바라봐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주님의 낳으시던 그 밤을 비취던 그 별처럼 그윽한 눈동자로 누워 밤마다 주님을 찬양하리다. 안개 속으로 멀어진다. 뜨겁던 여름은 타오르는 시련 같았다. 하지만 소강석의 ‘가을연가’를 가냘프게 부른 소프라노 김은경처럼 가련하게 보이는 가을이 그토록 뜨겁고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다니. 초가집 사이 호루라기 부는 아이 느릿느릿 가을 안개 속에 가난하고 가난한 풍경을 좇아 노래한다. 가을 저녁의 조용함을 휘저어놓고 하늘 저 멀리 호루라기 소리가 건너간다. 촌구석의 다른 아이가 재빨리 그 소리를 알아듣고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새가 나는 흉내를 하며 그 주위를 빙빙 돌아다닌다. 까악- 까악- 외쳐대면서. 철새들은 추위를 피해 남으로 간다. 그들에게는 날개가 있다. 구슬픔 속에는 떠남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어느 땐 이 구슬픔과 기쁨의 황홀을 사무치게 느낀다. 하지만 남원의 호루라기 불던 아이만큼은 아닐 듯하다. 이 무구한 영혼은 어쩌면 하나님의 축복이리라. 아이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날개가 있다. 아이는 지상에서 훨훨 날고 있다. 아이에게는 저마다 그 시절의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30년을 지상에서 사신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리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하노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고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가을 하고도 가을 어느 날 아니 2018년 9월 29일 오후 세 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자리를 골라잡은 게 무대가 어울리는 소강석 목사 객석의 김재호 목사 옆자리 앉아 있다. 그래도 어디서 그 흥이 솟는지 큰 잔치 벌이고 호루라기 신나게 불고 손뼉 치며 별처럼 반짝인다. 새에덴교회 설립 3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시인 소강석 목사 작사 임응수 작곡 ‘꽃씨’를 천하의 테너 임웅균이 웅숭깊게 불렀다. 그리고 소강석 작사 작곡 ‘가을연가’를 소프라노 김은경이 애절하게 불렀다. 코스모스 향기가 코 끝 스치면 / 어느새 들녘엔 갈대꽃들이 피네 /석양노을 빛 비추는 가을길을 걷노라면 / 문득 곁에 있어준 그대 생각 / 사랑은 가을처럼 / 그리움은 갈대처럼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지 않으리 / 비바람에 어쩔 수 없이 꺾인다 해도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사랑은 가을처럼 / 그리움은 갈대처럼 /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지 않으리 / 비바람에 어쩔 수 없이 꺾인다 해도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3000여 청중에게 감동을 안긴 시인 소강석 목사 작사 작곡의 이 노래에는 그의 평생이 녹아 있는 시인 소강석의 시 ‘가을연가’를 바탕으로 한 가사이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시는 읽는 이에게 ‘따뜻한 슬픔’과 ‘믿음의 힘’을 얻게 해준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있다. 들녘이 살가운 가을. 소강석의 시 ‘가을연가’를 품고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행복하다. 그리고 아직 신앙적이다. 저 어둡고 축축했던 그리고 소강석 목사가 가락동 지하에서 교회를 개척했던 1980년대 후반 시인 기형도는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믿음의 사람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절망의 광장이 아닌 희망과 믿음의 교회에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래서 새에덴교회의 담임목사 소강석은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를 “The New Vision Concert”라는 이름을 내걸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었다. 30년 전 새에덴교회는 가락동 지하에서 가족과 함께 시작하여 분당의 정자동과 구미동 엘벧엘 성전과 현재 죽전 프라미스 콤플렉스 시대로 이어가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 속에 새에덴교회 30년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었다. 그것을 기리고 즐기기 위한 콘서트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성악가, 교수, 테너 가수, 뮤지컬 배우, 기업가 임웅균(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필두로 지휘자 홍성택·류형길, 이탈리아 소프라노 콘체타 뻬뻬레(Concetta Perere), 소프라노 김은경, 테너 박주옥, 바리톤 오동규, 색소포니스트 안드레 황, 200여명의 새에덴콰이어, 34명의 경기천사의소리합창단 등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약 2시간 반 새에덴교회 설립 30주년을 축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연주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KNUA브라스앙상블이 맡았다. 콘서트 시작 전 영상을 통해 제103회 총회 변화와 희망의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는 예언적인 축사의 말을 전했다. “새에덴교회 3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부흥을 이끄는 영성이 살아 있는 교회, 사회와 역사를 선도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복음으로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대가 대대로 살아온 의정부의 토박이 6선 국회의원이며,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문희상도 융숭한 덕담의 말을 전했다.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장 문희상입니다... 새에덴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실천하며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 통일한국 시대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지도자 양성 등 관련 활동에도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에덴교회가 21세기 통일한국 시대를 이끌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함께 열어 가는 데 큰 역할을 계속 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30년의 역사를 넘어 50년 100년을 이어가는 새에덴교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소강석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사역자 여러분과 함께하신 교인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화해와 평화를 전하는 시인 소강석 목사는 환영의 말을 전했다. “새에덴교회의 30년은 은혜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부축하심이 없었다면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던 여정이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국내외 최정상급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음악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의 메시지, 그리고 화해와 평화의 시가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물들이고 새로운 비전을 품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낮은 곳을 향해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오늘 음악회가 사랑과 은혜의 시가 되어 여러분의 가슴에 아름다운 감동의 파문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여’(루터 곡)를 40인조의 브라스 밴드의 힘찬 연주로 공연은 시작됐다. 새에덴교회의 어려운 시절을 잊지 말라는 듯 테너 임웅균 교수가 소강석 목사 작사의 '물망초'를 아주 힘들게 열창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 노래를 아쉽다며 다시 불렀다. 이번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새에덴교회 콰이어의 웅장한 합창곡과 유소년합창단인 경기천사의소리합창단의 해맑은 찬양이었다. 그리고 새에덴교회의 지나온 30년과 나아갈 30년을 알리는 메시지는 시인 소강석 목사가 짓고 곡을 붙인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가을연가’, ‘꽃잎과 바람’, ‘사명의 길’, ‘물망초’ 등이 전했다. 나는 특별히 이번 공연을 통해 ‘가을연가’의 절절한 멜로디와 메시지를 통해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소강석 목사가 2017년 9월 25일 자 한국기독신문에 밝힌 그 내용과 사연은 이렇다. 코스모스 향기가 코 끝 스치면 / 어느새 들녘엔 갈대꽃들이 피네 / 산에는 그대 입술 같은 붉은 단풍 / 석양노을 빛 비추는 가을 길을 걷노라면 / 문득 곁에 있어준 그대 생각 / 내 마음의 나뭇잎이 떨어질 때까지 / 내 마음의 갈대들이 다 잠들 때까지 / 그대만을 헤아리겠어요 / 사랑은 가을처럼 / 그리움은 갈대처럼 / 오직 그대, 내 마음의 별이여 / 아무리 흔들어도 내 사랑 꺾지 않으리 / 비바람에 어쩔 수 없이 꺾인다 해도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겠어요 / 기나긴 가을빛 밤새워 노래하다가 / 그대와 함께 겨울을 맞고 싶네요 내가 쓴 ‘가을연가’라는 시다. 가을은 노을처럼 사랑으로 붉게 물들고 갈대처럼 심연의 고독으로 흔들리는 계절이다. 나는 가을이면 두 가지를 하고 싶다. 하나는 산행이고 또 하나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런데 좀 아쉬운 것은 요즘은 기차에서조차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옛날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국수도 먹고, 차창 너머로 가을 풍경도 보며 삶을 관조하는 멋이 있었다. 얼마 전 행사가 있어 오랜만에 경주행 KTX를 탔다. 예전과 같은 풍취와 정겨움은 없지만 그래도 기차에 오르는 일은 여전히 낭만적이고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기차에 몸을 싣자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니까 그저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출발할 때는 여유도 없이 질주하는 기차가 야속했었는데 말이다.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지친 몸이 흔들릴 때 차창 밖의 코스모스도 흔들리며 피어나고 있었다. 내 눈길은 그 코스모스에 머물러 있었지만 열차는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속력을 낼 뿐이었다. 다른 꽃들을 미쳐 볼 새도 없이 열차는 또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삶도 홱 지나가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어깨는 돌덩어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이 침침한 와중에도 구름 저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구름들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코스모스가 흔들릴 때 네가 꽃을 피워야 한다고, 꽃들이 신음할수록 이제는 네가 꽃을 피울 차례라고, 잎새가 눕고 꽃이 질 때 기차도 멈출 것이므로 종착역에 멈추기 전 부지런히 피어야 한다고, 비록 흔들릴지라도 어깨가 짓눌릴지라도…. 차창 너머로 피어난 눈부시면서도 서러운 꽃잎들을 보면서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제 인생의 여정은 아직 가을 들녘을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가을에 그 풍요의 열매를 직접 거두고 싶습니다. 그 열매를 거두고 나면 들녘의 풍요를 나르던 가인들의 노래도 멈출 것이며 저문 광야에 찬 서리가 내리고 나면 홀연히 고요한 정적이 저의 삶을 덮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억새들의 하얀 머리털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도 겨울의 강을 건너겠습니다. 저 순백의 설원을 지나 겨울 강 너머에 있는 황홀한 요단강을 건너 영원한 안식과 평온이 넘치는 당신의 나라로 떠나겠습니다.” 그렇다. 나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들도 흔들리며 피어나고 있었다. 가을 풍경 속의 꽃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그 가을꽃들에게 지친 어깨를 기대며 속삭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꽃들과 함께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 비록 바람에 흔들리고 밤이슬에 차갑게 젖을지라도 묵묵히 꽃을 피우며 향기를 발하리라. 겨울이 되어 완전히 꽃이 지고 열차가 마지막 경적을 울리며 멈춰 설 때까지….’ 기도해 본 사람은 안다. 소강석 목사처럼 삶이 제 머리로 맨 땅에 머리 박아 넣는 일이라는 것을. 기도란 제 자리에서 꿈쩍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요지부동한 명령을 듣는 자리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적막한 세상으로 유배된 죄인처럼 앞산 봉우리 잔설 같은 하나님의 음성에도 마음에 불이 붙는다. 마음속으로 잔잔히 흐르는 그 음성 쫓으면서도 마음은 가끔 세상을 기웃거리다 돌아오곤 한다. 제 몸의 남은 숨으로 목숨을 견뎌야 하는 이 가을 날마다 몸은 건조하지만 마음은 또 여름이다. 서울필하모닉의 ‘겨레사랑 2016 한국가곡 페스티벌’ 공연에서 동양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로베르토 알라냐와 쿠라 등 세계적 성악가들과 어깨에 나란히 하는 바리톤 고성현(한양대 교수)이 그의 애창곡 “청산에 살리라”에 이어 소강석 목사의 작시 작곡 “꽃잎과 바람”을 악보를 보며 열창했다. 그런 뒤 그는 세계무대의 오페라 ‘리골레토’ ‘아이다’ ‘나부코’ ‘오텔로’ 등의 바리톤 주역들을 소화해낸 음성으로 오페라 가사를 읊조리듯 “소강석 목사님이 이런 재능을 가지신 줄 몰랐습니다.”라고 감탄했다. 소강석의 시는 어떤 글이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깃들어 있다. 그의 혼신을 다하는 설교처럼. 어깨너머는 경계(境界)의 자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자리,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을 만나는 접속의 자리. 그러나 호루라기 불며 박수치고 환호하는 시인 소강석 목사의 그 어깨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콘서트홀의 모든 모습과 광경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신나고 은혜롭다. 떠난 세계와 떠날 세계가 서로 버티어 맞서지 않는 곳. 한 어깨가 다른 어깨를 내어주는 곳. 그곳은 유쾌한 목사 소강석 시인의 시(詩)와 노래에 배인 희망과 신앙(信仰). 그래서 그는 힘주어 노래한다. 사랑은 가을처럼 / 그리움은 갈대처럼 /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지 않으리 / 비바람에 어쩔 수 없이 꺾인다 해도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 그대 향한 촛불은 끄지 않으리 2018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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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6
  • 송준 시네마힐링 -
    <오! 그레이스> 감독 : 나이젤 콜출연 : 브렌다 블레신, 크레이그 퍼거슨, 발레리 에드몬드, 체키 카요 제목 : 법보다 소중한, 범죄보다 짜릿한 헤르만 헤세는 동화 같은 소설 <별에서 온 이상한 편지>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에 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주인공 아우구스투스는 천사의 축원을 받아 ‘평생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무조건적인 사랑에 물려 음모를 꾸민다.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파티에 초청해놓고 자신의 시체를 보여줌으로써 무참한 슬픔과 배반감을 안겨주자는 계획이다. ‘이래도 내가 사랑스러운가’ 아니라면 ‘평생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천사의 축원이 거짓 아닌가’라는 패러독스다. 목숨을 끊기 직전 아우구스투스의 목전에 천사가 현현한다. 한참 동안의 존재론적 대화가 오간 뒤 아우구스투스는 천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한다. ‘남들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평생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이튿날 잠에서 깬 아우구스투스는 초청한 사람들로부터 견딜 수 없는 모멸을 겪는다. 이후의 나날이 매양 고단한 핍박의 연속이다. 육신이 고될수록 아우구스투스는 가슴에서 샘솟는 사랑으로 행복감에 젖는다. 헤세는 행복이 ‘사랑 받기’가 아니라 ‘사랑 주기’의 함수라는 교훈을 말하려 한 것인데, 기실 세상사 사랑이란 받기와 주기가 따로 노는 개념이 아니다. 사랑이 본디 주고받는 것일진대, 문제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빈번하게 무너지는 현실에 있다. 이 난장 같은 인간사를 두고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정의했고, 이에 대해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는 ‘타인 없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고 갈파했다. 영화 <오! 그레이스>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랑과 믿음의 퍼즐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투스의 두 모습을 함께 갖춘 여인 그레이스. 상냥하고 우아한 중년의 그레이스 부인(브렌다 블레신)은 이웃들 모두에게 극진하며, 마을 사람들 모두로부터 두터운 사랑과 신임을 받는다. 자,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의 패러독스를 벗은 그레이스 부인은 과연 행복한가? 행복해질 것인가? 나이젤 콜 감독은 그레이스 부인의 해피엔드 여부를 놓고 관객과 고도의 심리 게임을 벌인다. 퀴즈는 매우 간명한 구도에서 출발한다. 아름답고 조용한 영국의 한 어촌 ‘콘월’ 마을,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보면 대략 전라남도 강진쯤에 해당하는 곳이다. 정원이 딸린 그림 같은 저택에서 화초를 가꾸며 안온한 삶을 살아온 그레이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온갖 청구서가 날아드는데,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차압 딱지를 붙이러 찾아오는 연이은 집달리들. 송구스런 표정이지만 일은 일이다. 세간살이가 하나둘씩 들려나가는 사이에도 새 청구서와 경매 예고장이 줄을 잇는다. 장례식의 분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저택에서 이웃들과 오붓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은 그레이스의 소박한 꿈이 포말로 부서지고 있다. 절망 끝에 찾아온 한 줄기 빛. 엉뚱하게도 한 포기의 대마초다. 그레이스의 특기는 화초 가꾸기. 잠시의 갈등 끝에 그레이스는 벼랑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금보다도 비싸다’는 대마초를 심는다. 온실에는 최고급 대마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이미 그레이스와 심정적으로 공범이 되어버린 관객들은 행여나 들킬세라 애간장이 다 녹는다. 대마초가 뭔지 모르는 동네 할머니들은 화초 향기가 좋다며 잎을 뜯어 차를 다려 마시고, 눈치 없는 경찰서장은 그레이스를 위로하러 저택을 찾는데, 관객의 심정을 주물러가며 스릴과 코미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겨주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여간 장난꾸러기가 아니다. 마침내 마리화나가 완성되고, 이 대목에서 감독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너무나도 착하고 사랑스런 우리의 그레이스, 그레이스를 도우려는 마을 사람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온실의 비밀. 고지식한 경찰서장, 베일에 가려진 마약상의 정체. 배역마다 치밀하게 연출된 디테일과 섬세하게 그려진 캐릭터가 상황의 리얼리티를 보장한다. 이제 이렇게 한껏 벌려놓은 그레이스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인지상정, 사랑의 승리? 불문곡직, 법의 힘? 약육강식, 악당의 차지? 그레이스의 해피엔드는 어쨌든 불법을 미화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된다. 또 런던의 닳고 닳은 마약상이 순순히 천문학적 거금을 넘겨줄 리 만무하므로, 순진한 그레이스가 마리화나를 돈으로 바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개연성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 법의 힘도 영화를 마무리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우리의 그레이스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법이라면 어찌 존경을 받을 것인가. 그렇다고 저 온실에 쏟은 땀을 고스란히 악당에게 바친다? 감독은 절묘한 상상의 점프력으로 라스트 시퀀스를 마무리한다. 스크린 안에서는 한바탕 대동의 축제가 벌어지고 객석에서는 폭소와 박수가 뒤섞인다. ‘타인이 곧 지옥’인지 ‘타인 없는 세상이 바로 지옥’인지에 대한 감독의 답이다. 웃음은 기적을 낳고, 사랑은 감동을 낳는다. 브라보, 그레이스! box : 영국 영화의 르네상스, 뉴 뉴 제네레이션 눈 밝은 관객이라면 세기 말 영국 영화가 보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눈치챘을 것이다.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찰스 크리튼 감독, 1988)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마이클 뉴월, 1994) <브래스트 오프>(마크 허먼, 1996) <트레인스포팅>(대니 보일, 1996) <마이클 콜린즈>(닐 조단, 1996) <빌리 엘리어트>(스티븐 달드리, 2000) 등 90년 이후 국내에 소개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마이크 리 감독은 <네이키드>(1993)와 <비밀과 거짓말>(1995)로 칸영화제의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한편에서는 피터 그리너웨이 회고전(<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1982)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 <메이콘의 왕>(1993) <필로우 북>(1996) <8과 ½ 우먼>(1999) 등)이 열리기도 했다. ‘만약 영국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였다면 영화 산업이 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비유는 영국 영화의 한계와 잠재력을 동시에 말해준다. 번역의 도움 없이 할리우드 영화가 무차별 공습을 퍼붓는 나라. 그 와중에도 영국은 세 차례에 걸쳐 르네상스의 조짐을 보여준다. 1956년 태동한 ‘프리 시네마’ 운동과 1980년대 알랜 파커·리들리 스코트·데이빗 푸트냄 등이 주도한 ‘세미 르네상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멀티플렉스 세대’의 등장이 그것이다. 프리 시네마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바탕으로 이후 영국 영화에 사실주의의 영향을 깊게 새겨주었다. 이후 켄 로치(<레이닝 스톤>(1993)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4) <랜드 앤 프리덤>(1995) <칼라송>(1996) <빵과 장미>(1999) 등)·마이크 리․스티븐 프리어즈(<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5) 등) 감독들이 그 계보를 이었다. 80년대 영국 영화계는 알랜 파커(<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 <페임>(1978) 등)와 리들리 스코트(<에일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등) 같은 광고계 출신 감독의 등장으로 르네상스를 맞는 듯했으나 중흥의 불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대작으로 할리우드에 맞서려는 전략이 실패로 드러나면서 이들은 영국을 등지고 할리우드로 입성해버렸다. 90년대 멀티플렉스(복합극장)가 새로운 추세로 등장하면서 ‘영국 영화의 뉴 뉴 제네레이션’으로 불리는 신 감각파 감독들이 대거 출현, 다시 한 번 영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불을 지핀다. 한편으로 세익스피어와 히치콕의 풍성한 극적 상상력을, 다른 한편으로 프리 시네마의 사실주의 기법을 함께 수혈 받은 이들은 미국에 맞서는 대신, 할리우드가 만들지 못하는 저예산 걸작 쪽으로 틈새 전략을 추구한다. 예컨대 <오! 그레이스>는 코미디지만, 기발한 상상력만큼이나 영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비판적 사실주의의 터치가 돋보인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중에서)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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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30
  • 송준 시네마힐링 - 치킨 런
    <치킨 런> 감독 : 닉 파크, 피터 로드제작 : 아드만 스튜디오 제목 : 닭아! 닭아! 밝은 닭아! 뒤늦게 예술 대열에 합류한 영화는 도저한 기세로 발전을 거듭하여 21세기 문화예술의 첨병으로 떠올랐다. ‘작품인가, 상품인가’ 하는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불과 백 년 남짓한 시간에 영화가 쌓아올린 독특한 미학과 영상 문법은 ‘제7 예술’로서 독보적인 경지를 열었다. 바로 이 점, 예술로서의 필름, 영상 언어로서의 영화에 앵글을 맞추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영화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은 지난 백 년, 영화가 온축蘊蓄한 여러 기법과 미학을 한데 아우른 멋진 사례다. 더구나 <치킨 런>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영화의 여러 표현 기법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영화 장면을 미리 다 그려놓고 그에 맞추어 세트, 인형, 카메라를 배치해 목적한 그림을 실제 필름으로 꼼꼼하게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장면에 따라 감독의 의도와 고민을 ‘커닝’할 수 있는, <치킨 런>의 색다른 감상 포인트다. <치킨 런>은 ‘닭토피아’를 꿈꾸는 양계 농장의 당돌한 암탉 이야기다. 주인공 ‘진저’는 농장이 주는 풍부한 먹이의 ‘함정’을 간파하고, 철망 너머 피안의 세계로 닭들을 인도하고자 하는, 이를테면 ‘암탉 모세’다. 농장 세트와 탈출 과정은 <쉰들러 리스트>와 <대탈주>를 절묘하게 패러디했다. 암탉 진저의 눈에 비친 농장은 <쉰들러 리스트>의 아우슈비츠에 다름 아니다. 감독은 진저의 눈높이로 관객의 시선을 이끈다. 광각 렌즈에 로앵글Low-angle로 과장해 잡은 철조망 너머로 닭들의 막사가 도열해 있고, 한 줄기 번개와 함께 하늘은 음산한 기운에 휩싸인다. 오프닝 신부터 <치킨 런>은 서스펜스의 문법을 교과서처럼 깔끔하게 보여준다. 군살 하나 남기지 않는 과감한 생략과 몽타주, 관객의 신경을 잡아채는 음산한 화면과 사운드, 그 청회색 화면 위로 닭 한 마리가 특공대 침투조의 몸짓으로 전진해온다. 뒤를 따르는 오합지졸 탈출조. 긴장미 넘치는 암울한 화면과 코믹한 닭들의 아이러니컬한 대비. 포인트다. 칠전팔기, 반복되는 실패에도 진저의 집념은 ‘빠삐용’처럼 날카로워지고, 농장주의 폭압도 날이 갈수록 무겁게 영화를 짓누른다. 여기에 갑자기 날아든 수탉 ‘록키’. 다분히 <대탈주>의 실베스터 스탤론(그의 출세작이 바로 <록키>다)을 의식한 설정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대탈주>의 탈출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하며 한바탕 코미디의 웃음바다를 펼쳐 보인다. 질펀한 코믹 시퀀스를 연출하면서도 <치킨 런>은 범작의 수준을 뛰어넘는 고도의 심리적 안배를 잊지 않는다. 탈출의 위험과 농장의 풍요로운 식사, 피안에 대한 기대와 불확실성. 그 강파른 불안감 사이를 오가는 닭들의 대립과 갈등, 민중의 미래를 걸머진 ‘모세’의 부담과 고뇌, 이 미묘한 심리의 굴곡을 굵은 선으로 이끌며 <치킨 런>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갈파한다. 혁명 시대 인간 군상이 겪었던 온갖 감정과 상념의 파노라마 – 혁명가의 신념과 절망, 무지렁이 우중들의 우유부단한 패배주의, 불확실성에 뒤흔들리는 회색론자들의 기회주의 – 가 <치킨 런>의 닭 무리의 행태와 고스란히 오버랩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진저의 탈출 시나리오도 아슬아슬하게 성공의 문턱을 넘는다. 이 숨가쁜 엑스터시를 표현해낸 영상의 긴박감이 <치킨 런>의 백미다. 격정을 딛고 다시 뭉친 닭들은 ‘조직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체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저 일행은 닭의 과학으로 만든 비행기를 타고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어 꿈에 그리던 피안으로 향한다. 만점에 가까운 <치킨 런>이 끝내 놓친 옥에 티 하나. 바로 수컷 록키의 존재다. 서커스단의 대포쇼 총알 역할을 하다가 오발 사고로 농장으로 날아든 록키는, 시종 허풍을 떨며 암탉들과 노닥거리는 짓으로 일관하다 D-데이 전날 밤 비겁하게 혼자 도망간다. 막 싹트기 시작한 진저와의 러브 스토리가 의식되었는지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농장으로 돌아오는데, 그때는 닭들의 비행기가 힘차게 하늘을 향해 이륙한 순간이다. 얼떨결에 탈출의 영웅으로 부상한 록키는, 닭토피아에서 ‘청일점’으로 온갖 행복을 만끽한다. 웃고 즐기면 그만인 애니메이션에 생트집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여권론자들의 눈에는 곱지 않을 설정이다. ‘본디 수컷의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이중 풍자라면, 이번에는 남성 관객의 입맛이 씁쓸해질 것이다. 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좀 더 단단한 설정이 아쉬웠다는 것. 그래도 뭐, <치킨 런>의 미덕이 크게 흐려지지는 않은 듯.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금자탑, 아드만 스튜디오 모처럼 삼박자를 두루 갖춘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 이 작품의 제작 기간은 허투루 보낸 시간 없이 꼬박 4년.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숙명인 ‘지옥의 공정’을 감안하고 감상한다면, <치킨 런>의 재미는 곱절이 된다. 세상에 미련하고 생색 안 나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한 일이 바로 클레이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영화의 1초는 대개 24프레임으로 이뤄져 있다. 24장의 필름이 돌아가면서 관객에게 1초의 영상을 선사하는 것이다. 실사 영화야 무비 카메라로 ‘차르르’ 찍으면 그만이지만,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얘기가 다르다. 인형의 동작 1초를 만드는 데 하루해가 훌쩍 넘어간다. 점토로 인형을 만들어 필름 한 컷을 찍고, 미세하게 움직인 점토 인형을 다시 만들어 또 한 컷을 찍는다. 이렇게 24컷의 연속 필름을 만들어야 1초의 영상을 얻을 수 있는데, 이 기법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이라 부른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진가는 몹신(군중신)에서 두드러진다. 인형 하나가 웃고, 울고, 찡그리고, 떠드는 표정 1초를 얻는 데만도 인형 얼굴 10여 개가 소요되는데, 하물며 수십 마리의 닭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치킨 런>의 파티 장면에 이르러서랴. 아드만 스튜디오는 이 ‘지옥의 공정’을 거쳐 무한한 표현의 영역을 개척해냈다.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윌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클레이 작업의 금자탑이다. <자동바지>의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장난감 기차 시퀀스, <화려한 외출>의 달 여행 시퀀스와 스키 타는 로봇, <양털 도둑>의 프로펠러 비행기 전투 장면 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불후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아드만 스튜디오가 기왕의 성과와 자신감을 한 차원 더 밀고나간 야심작이 바로 <치킨 런>이다. 일단 러닝타임 84분. 애니메이션의 숙명인 인공 이미지는 매력 만점의 미남미녀 배우들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연기에 비하면 아무래도 단조로워서 60분 러닝타임의 TV물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노린 디즈니류 애니메이션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생뚱한 뮤지컬 장면들도 이 ‘단조로움’을 의식한 편법의 일환. 이를 의식한 <치킨 런>은 조명과 앵글을 한층 다채롭게 채용하였다. 물량 면에서도 종전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대작이다. 등장하는 닭만도 80여 마리, 원근감과 서스펜스 등을 표현하기 위해 같은 등장인물도 A형과 B형, 두 종류의 인형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모두 300개의 A형 닭과 130개의 B형 닭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머리와 부리, 눈 등은 표정과 동작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도록 약 60배수의 소품을 따로 마련했다. ‘아드만 스튜디오 삼총사’ : 왼쪽부터 피터 로드Peter Lord, 데이빗 스프럭스톤David Sproxton, 닉 파크Nick Park. 아드만의 명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현대사와 고스란히 중첩된다.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 등으로 아카데미상을 무려 7개나 수상했고, 심지어 껌 기계를 개종한 아드만의 독특한 점토 배합 기계는 ‘아드만식 혼합’이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켰을 정도다. 어려서부터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심취했던 닉 파크,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럭스톤은 10대 때 이미 영국 BBC TV로부터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의뢰받아 재능을 떨쳤고, 1972년 마음을 모아 아드만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10년도 채 못 되어 아드만을 세계 제1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성장시킨 ‘아드만 스튜디오 삼총사’는 마침내 할리우드 자본의 초청으로 전세계 배급망의 안내를 받으며 <치킨 런>을 이륙시킨다. 멋지다. 아드만의 발자국이 곧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역사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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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9
  • 이서미 2018 갤러리아트세빈 개인전
    이서미 (LEE, Seomi) □ 학력홍익대학교 미술학과 박사수료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판화과 졸업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졸업 □ 개인전 19회2018년 예쁜꽃 (갤러리아트세빈, 서울)2017년-2018년 My Wonderful Dream(롯데갤러리, 안양, 잠실, 대전)2017년 B.Ratio방화점(서울)2017년 사랑아트갤러리(서울)2016년 Spoon art show-부스개인전 (KINTEX,일산)2014년 이서미전 (우모하갤러리, 용인)2013년 함께 가는 길 (63스카이아트 미술관, 서울)2012년 To the space of wonder (산토리니서울 갤러리, 서울)2011년 영원으로 가는 길-사랑(옴니버스 네러티브-삶, 사람, 사랑) (나무화랑, 서울)2009년 갤러리 인데코 (서울)2008년 기획초대전 (Space355, 일본, 동경)2008년 SIPA2008- BELT project (예술의 전당, 서울) 외 7회□ 2인전2016 이서미, 찰스 파지노 (소울아트스페이스, 부산) 2012 이서미, 김덕기 (Shin Hwa Gallery, Hong Kong)2011 이서미, 박형진 (이목화랑, 서울) 2010 이서미, 오숙진 <이야기가 있는 그림 展> (산학연갤러리, 서울) □ 수상, 프로젝트 진행, 레지던시 입주 경력 2011 그리스 산토리니 레지던시2011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 창작 활성화 지원금 수여2009 서울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지원- 시각예술분야 지원금 수여2008 SIPA2008- BELT project-최종선정작가2007 BELT선정작가2002 중앙미술대전 입선1999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1997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96 공간국제소형판화제 입선1995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95 목우회전 특선 □ 작품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Thalassa Shima Hotel & Resort, 진천생거판화미술관, 63sky art museum 외 다수 □ 그룹전-190여회2018 판화하다-한국현대판화60년(경기도미술관, 안산)2017 “스페이스 K 채러티바자 2017”(스페이스K, 과천)   <인人: 새기다印>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서울)    happy museum“북적북적 판화공방”展(부산 금정문화회관 대전시실, 부산)2016 책은 왜 사각형이어야 하는가?(갤러리 사각형, 서울)    대화 : 판화가들 (서울 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국제 판화 비엔날레 at Lima (ICPNA, Lima, Peru)2015 기독교미술 50년展 (미술세계갤러리, 서울)    다양함 속의 일체감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서울)   IMAGE & VISION (횃불트리니티 갤러리, 서울)2014 What is Print? ? Beyond the Border (Ichihara Lakeside Museum, Japan)   오마주 현대미술 41인전 (박수근미술관, 양구)2013 “릴리퍼트 : 크기의 수사학”展 (Space K, 대구) COOL PRINT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서울) 평창동계스폐셜올림픽 Art Link Project (인사아트센타-서울, 평창 알펜시아)2012 ‘삼인 삼색’展-도시그림자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 충청북도) 판화와 소통 (서울 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서울) 현대미술사용설명서展 (포스코미술관, 서울) 감각의 브리콜뢰르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 충청북도) 2011 판화와 정보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서울) ART & COOK(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oul Modern Art Show in China- KOREA-CHINA ART FESTIVAL(중국 강소성 소주미술관) 에디션: 팝업 (인터알리아 아트 스페이스, 서울) 이작가를 추천한다31 (갤러리 숲, 서울)2010 Tool, tool, tool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HOT PLATE' (Phoenix Brighton Gallery, East Sussex, UK) Crossing Over, Making Contact (Northwest Reno Library, USA) 이서미 2018 갤러리아트세빈 개인전 전시제목: 예쁜꽃일시: 2018. 6.30- 7.26 예쁜꽃 꽃은 봉오리도 예쁘고,조금 피었을 때도 예쁘고, 활짝 피었을 때도 예쁘고, 시들어 갈 때도 예쁘고,지고 나서 기억만 남겨도 예쁘다. 인생의 순간순간은 모두 소중하다. 밝은 태양과 흐린 날의 비, 시원한 바람. 모두 예쁜 꽃에게는 필요하다.뜨거운 태양이 비치고 세찬 비바람이 불어와도 삶은 어떤 의미로든 아름답다.올 봄 엄마와 걸어보았던 꽃이 가득한 길에서 인생의 찬가를 들었다. <작가노트> 꽃길_Drawing on monotype, drypoint, pop-up/ 70x55cm/ 2018 인생길을 말할 때 계단을 만든다.문득 하나도 안 궁금한 질문을 했다.‘엄마, 꽃은 왜 그리는데요?’‘예뻐서’나는 그 예쁘다는 말이 단순히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공간과 시간과 생각과 마음들이 꽃을 통해 예쁘게 변하는 것이다.인생은 꽃으로 인해 예쁘게 되는 것이다. 꽃사진Drawing on monotype, pet film, etching ink/ 43.5x68.5cm / 2018 꽃이 가득 핀 곳에 있으면 마음도 화사해진다. 사람들은 사진으로 꽃을 기억하고, 함께한 이들과 순간을 남긴다. 가끔 엄마와 산책 가는 곳이 꽃이 필 때면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꽃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꽃처럼 환한 얼굴, 꽃같이 예쁜 마음이 모여 그 시간을 흠뻑 누린다. 엄마, 우리도 사진 찍자! 꽃그늘Drawing on monotype, Pet film, etching ink/ 44x44 cm/ 2018 산책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좀 걷다가 꽃 그늘 가득한 벤치에 앉아서 먹으니 소풍 온 것 같았다. 조금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과자 먹기를 세 번이나 했다.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걸리는 곳을 반 바퀴에 두 시간이나 걸렸다. 천천히 걸어도 엄마와 꽃길을 걸으니 참 좋았다. 꽃길Monotype, Pet film, etching ink/ 44x44 cm/ 2017 함께 가는 그 길은 꽃길이며, 동행하는 그들은 천사들이다. 꽃배-하늘Monotype Drypoint/ 27.3X34.8cm/ 2018 푸른 날에 꽃배를 타고.. 꽃배-노을Monotype Drypoint/ 27.3X34.8cm/ 2018 해질녘에 꽃배를 타고.. 모란꽃 Monotype Drypoint/ 27.3X34.8cm/ 2018 나에게 모란은 기억이다. 짙은 향기를 내뿜는, 바람 부는 계절에 피는 커다란 얼굴 같은 꽃.섬에 심겨진 가족의 발자국 같은 꽃. 흐린 날Pet film, etching ink/ 43.5x68.5cm / 2017 흐린 날에도 세상은 아름답고, 혼자 걸어가는 것 같아도 동행하는 친구가 있다. 붉은 강에Pet film, etching ink/ 51x70.3cm/ 2016 강같이 흐르는 보혈의 피에 씻기어 깨끗하게 되는 사람들 그 때 모인 천사들Monotype, Pet film, etching ink/ 44x44 cm/ 2016 같이 기도해준 친구들, 그들이 천사처럼 느껴졌다.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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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26
  • 송준 시네마 힐링 - 프리다 Frida
    <프리다 Frida> 감독 : 줄리 테이머 출연 : 셀마 헤이엑, 알프레드 몰리나 음악 : 엘리엇 골덴탈 제목 : 아픈, 그러나 뜨거운 어느 예술가의 초상 ‘살아가는 동안 결코/ 당신의 존재를 잊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아득함. 오직 현실만이 존재한다/ 그랬다. 항상 그랬다.’ -프리다 칼로의 일기장에서 한 여인이 있다. 신이 준 온갖 불우와 고난을 온몸으로 껴안고, 현실로 인정하고, 열정으로 녹여내고, 예술로 승화시켜 마침내 전설이 되어버린 여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년 멕시코 출생.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로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으며, 18세 때 겪은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수십 차례의 거듭된 수술에 후유증으로 생애를 수놓았다. 쇠파이프로 척추를 보정하고, 허리에는 강철 코르셋을 단단히 조여매고 살았다. 차량 파편이 엉덩이를 뚫고 들어가 자궁을 관통한 덕분에 훗날 아이를 유산해야 했고, 40대 후반에는 한쪽 다리를 잘라내고 말았다. 통증으로 해가 뜨고 지는 삶은 하냥 아득했고, 아득함의 허방은 깊었다. 허방은 억겁의 시간으로 다가왔고, 억겁의 허방 앞에서 꿈은 모래처럼 부서졌다, 안개처럼 스러졌다. 안개 속에서 확실한 것은 그 순간 대지를 딛고 선 발뿐, 그러므로 프리다에게는 오직 현실만이 존재했다. 그랬다. 항상 그랬다. 삶의 껍질을 벗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현실을 온전히 받아내자 프리다의 어둠은 열정이 되고, 불꽃이 되고, 바야흐로 꿈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되었다. 프리다를 영화로 만든 주인공은 셀마 헤이엑, 멕시코가 낳은 금세기 최고의 스크린 요정이다. 프리다의 팬이었던 셀마 헤이엑은 프로듀서를 자청하며 신들린 듯 뛰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에드워드 노튼, 애슐리 쥬드 등 호화 캐스트를 동원하고, 프리다와 디에고의 저작권자인 돌로레스 올메도를 설득한 뒤 미라맥스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리다의 그림 가운데 몇 점은 직접 그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담당 공무원이 유적지 Teotihuacan에서의 촬영을 거부하자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 특별허가를 받아냈다. 혼신의 열정은 연기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프리다의 불꽃 생애와 고통에 전 내면의 한 올 한 올까지 스크린 위로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실제로 프리다가 입던 옷이 몸에 꼭 맞을 정도로, 셀마는 프리다 자체였다. “셀마는 프리다를 연기하도록 운명지어졌다. 프리다의 영혼이 셀마를 이끌어주는 것 같았다. 셀마는 프리다의 환생이었다”라고 감독 줄리 테이머는 전한다. 거개의 전기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는 프리다의 고통을 전하기보다 아픔을 뛰어넘는 프리다의 초월과 스스로를 불사르는 몰아, 영감과 상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의 숙명적인 사랑, 행복의 샘이자 불행의 씨앗. 당대에 피카소와 칸딘스키를 방불케 했던,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영화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신은 프리다에게 디에고를 주었고, 디에고에게는 주체 못하는 바람둥이 기질을 주었다. 중독에 가까운 섹스 집착으로 미추를 불문하는 전천후 카사노바 디에고는 부적절한 현장을 들킬 때마다 “섹스는 형식적인 악수보다도 무의미한 행위일 뿐”이라며 프리다를 달랜다. 실제 삶에서도 디에고의 마음은 늘 프리다 곁에 있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 다른 여인의 ‘살’을 찾아다니는 육체가 문제였지만. 디에고의 ‘무의미한 행위’는 그러나, 프리다에게 너무나 ‘유의미한 상처’였다. 프리다는 육체의 고통에 대해서는 ‘철의 여인’이었으나 마음의 상처에는 나비처럼 유약했다. 안팎의 고통을 견디면서 프리다는 일상의 고치를 벗고 예술의 날개를 편다. 육체의 고통은 프리다에게 영감을 일깨워주었고, 마음의 상처는 그녀의 손에 붓을 쥐어주었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죽어라 사랑했고, 죽기로 싸웠으며, 죽을 듯이 재결합했고, 죽도록 함께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과 예술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초현실주의적인 영상 화풍을 보여준다. 영화 ‘프리다’의 힘은 프리다의 삶에서 온 것이지만, 스토리 이상의 웅숭깊은 매력을 배태하고 있다. 내러티브는 오히려 극도로 간결하게 응축되었다. 그 위에 그림과 음악의 짙은 감성이 드리워져 있다. 그림에서 사건으로, 또는 사건에서 그림으로 넘나드는 고도의 상징을 통해 프리다의 내면이 거울처럼 비춰지고, 음악은 감동을 3차원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진품처럼 보이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그림을 위해 제작진은 40명의 목수와 35명의 세트화가, 그리고 15명의 프리다·디에고 전문 복제화가를 동원해 50편에 달하는 작품을 복원했다. 그림은 다시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실사 영상으로 넘나들고, 그 변이가 빚어내는 상징과 페이소스가 더없이 아련하다. 엘리엇 골덴탈의 음악은 프리다와 관객 사이에 가슴과 가슴으로 공명판을 댄다. 프리다가 울면 관객의 가슴이 미어지고 프리다가 춤을 추면 관객도 덩달아 날아오르는, 멕시코 전통음악과 라틴풍의 절묘한 결합. 멕시코 기타인 비우엘라와 멕시코 하프, 마림바, 글래스 하모니카 등의 전통악기와 마리아치 음악, 그리고 아프로-쿠반 계열의 보컬이 빚어내는 긴장과 이완의 하모니는 2003년 아카데미로 하여금 작곡상을 바치게 했다. 프리다는 일기에 ‘나는 디에고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고 썼다. 다리를 자른 뒤 급격히 쇠약해진 그녀는 채 1년을 못 넘기고 48세를 끝으로 유명을 달리한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프리다는 매니저인 엠마 우르타도를 불러, 자기가 죽은 뒤 디에고와 결혼해달라고, 그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한 대로 엠마는 프리다가 떠난 이듬해 디에고와 결혼식을 올렸고, 육체의 부름에 충실했던 결과로 성기암에 시달리던 디에고는 결혼한 다음해 프리다를 따라 떠났다. 프리다의 일기 마지막 장에는 죽음의 사자 그림 옆에 짧은 글이 붙어 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 G.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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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23
  • 송준 시네마힐링 - 토끼 울타리
    감독 : 필립 노이스출연 : 에블린 샘피, 데이빗 걸필리, 케네스 브래너 제목 : 피의 레퀴엠, 엄마 찾아 삼만리 흔히 ‘지리상의 발견’으로 지칭되는 역사는, 기실 살육의 카니발이었고, 인간 존엄의 공동묘지였다. 정의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기만의 비망록이었다. 메이플라워호를 필두로 시작된 이민 행렬은 3,000만 명에 달하던 북미 대륙 인디언을 몰살시켰다. 지금은 불과 200만 명 정도가 생존해 있을 뿐이다. 스페인의 코르테즈 군대는 아즈텍 문명을 멸절시켰다. 괌에서는 백인 점령군이 원주민 남자를 모조리 참살함으로써 모계로 이어지는 제3의 혼혈 민족을 낳았다. 아프리카 곳곳에서는 노예로 쓰기 위한 인간 사냥이 창궐했으며, 노예의 후손들은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리브해의 열도에 새로 둥지를 틀어야 했다. 저 무참한 역사의 그늘 한 귀퉁이에서 미처 조명되지 못한 피의 레퀴엠은 또 무릇 기하이던가. 여기 또 한 조각의 피 묻은 퍼즐이 있다. 20세기 초 호주 대륙의 서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100여 년 동안 백인의 침입에 대항해온 원주민은 중과부적, 백인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원주민특별법에 따라 생활이 일일이 통제되었다. 필립 노이스 감독은 그 압제의 역사 중에서 특히 원주민보호기구의 잔혹상을 미시의 앵글로 주목한다. 원주민보호기구는 혼혈아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혹은 사랑의 열매로, 혹은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을, 원주민보호기구는 언제든 어디서든 강제로 데려다가 수용시설에 유치할 권력을 갖고 있었다. 생이별도 그런 생이별이 없었다. 명분은 거창했다. 백인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원주민의 야만적인 생활 속에 버려둘 수 있겠는가, 데려다가 교육을 받게 하고 문명을 누리게 하고 신의 품에 안기게 하자. 아이들은 원주민 어머니에게서 강제 격리되어 백인들에게 교육을 받았고, 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기도를 배웠고, 일을 배웠다. 그리고 백인 가정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학습된 하인으로서, 하녀로서, 혹은 3D 직종의 막노동꾼으로 공급되는 거였다. 원주민 언어가 금지되었고, 원주민 풍습이 금지되었고, 고향 생각이 금지되었다. 좀더 백인에 가까운 2세, 3세를 낳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강제하기도 했다. 밤이면 성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같은 강제 이주는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 이주의 후유증으로, 정체성의 혼란, 문화의 단절, 가정 파괴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도둑맞은 세대(The Stolen Generations)'로 불린다. 필립 노이스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틴 올슨에게서 각본을 받고 전율했다. 도리스 필킹턴이 쓴 실화소설 <토끼 방지 울타리를 따라서>(Follow the Rabbit-Proof Fence)>를 각색한 시나리오였는데, 주인공이 바로 도리스 필킹턴의 친모인 ‘몰리 크레이그’였다. 영화는 14살 몰리(에블린 샘피 扮)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어, 실제 인물 몰리 크레이그(84세)의 진솔한 표정을 화면에 가득 채우면서 막을 내린다. 필립 감독은 가능한 한 기교를 자제하고, 원작에 담긴 고통과 감동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1931년 호주 서부의 지갈롱.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어린 몰리와 8살바기 동생 데이지, 10살짜리 사촌 그레이스, 세 계집아이를 순찰차에 태우고 어미들의 울부짖음을 남겨둔 채 떠난다.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무려 1,500마일(약 2,400km) 떨어진 낯선 곳. 강압과 규율에서 소름끼치는 미래를 예감한 몰리는, 어느날 두 동생을 데리고 수용소를 탈출한다. 잡히면 감당하기 어려운 혹독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다. ‘개코’라는 별명을 가진, 같은 원주민 출신의 무두(데이빗 걸필리)가 이들을 추적한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베테랑이다. 영화는 크게 두 갈래의 축으로 미묘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아무런 준비 없이, 허름한 차림에 신발조차 변변치 못한 아이들의 머나먼 여정. 배를 주리고 숨을 죽이며 가야 하는 가시밭 길이다. 현상금이 붙고, 곳곳에서 현상금을 노린 이들의 거짓 친절이 거미줄처럼 기다리고 있다. 유일한 희망은 한없이 뻗어 있는 ‘토끼 방지 울타리’(이 울타리는 토끼로부터 농경지를 지키려는 경계이자, 백인과 백인 아닌 ‘것’들을 나누는 상징이다). 그 울타리를 따라가다 보면 고향이 나온다. 뒤에서는 개코 무두가 말을 타고, 반대쪽에서는 경찰이 지프를 몰고 울타리를 훑어온다. 울타리가 희망이자 덫이다. 이 쫓고 쫓기는 얼개를 두고, 감독은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콧날 시큰한 숨바꼭질 놀이를 펼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실 하나로, 몰리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엄마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저 눈물의 포옹도 잠깐, 피도 눈물도 없는 백인의 공권력은 이미 고향 지갈롱을 지배하고 있다. 저토록 짓밟힌 삶에게 승리란, 그저 살아남는 것. 그저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것. 저 ‘백 년 동안의 고통’은 보상되지 않는다. 인간을 착취하는 인간의 무한 욕정 앞에서, 진실이란 무엇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저 지리멸렬한 삶에도 웃음은 있다. 어린 몰리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순간, 화면이 밝아지면서 8순의 두 노인이 파안의 웃음을 흩날린다. 몰리와 데이지, 햇살에 트고 세파에 무르익은 주름 투성이의 웃음이다. 살아남은 자의 웃음이다. 이렇게 느꺼운 생존도 있었다. 이렇게 갸냘픈 승리도 있었다. 몰리와 데이지는 웃지만, 그 웃음 앞에서 관객의 가슴은 무너진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필립 노이스 감독의 필모그라피다. 17세에 영화계에 입문한 호주 출신의 필립 감독의 대표작은 <패트리어트 게임>(1992년)과 <긴급명령>(1994) <본 콜렉터>(1999). 전형적인 할리우드 풍으로 팩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던 감독이 어느날 수구초심, 호주 영화로 돌아가는데, 하필 반정부 색상이 농후한 전복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관객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필립 감독의 뇌리에 불현듯이 영화 <쿼바디스>의 감독 머빈 르로이가 첫 시사회를 마친 뒤 외쳤다는 유행어가 떠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신이여! 정녕 이 작품을 제 손으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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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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