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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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레이스>
감독 : 나이젤 콜
출연 : 브렌다 블레신, 크레이그 퍼거슨, 발레리 에드몬드, 체키 카요
제목 : 법보다 소중한, 범죄보다 짜릿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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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동화 같은 소설 <별에서 온 이상한 편지>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에 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주인공 아우구스투스는 천사의 축원을 받아 ‘평생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무조건적인 사랑에 물려 음모를 꾸민다.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파티에 초청해놓고 자신의 시체를 보여줌으로써 무참한 슬픔과 배반감을 안겨주자는 계획이다. ‘이래도 내가 사랑스러운가’ 아니라면 ‘평생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천사의 축원이 거짓 아닌가’라는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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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끊기 직전 아우구스투스의 목전에 천사가 현현한다. 한참 동안의 존재론적 대화가 오간 뒤 아우구스투스는 천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한다. ‘남들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평생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이튿날 잠에서 깬 아우구스투스는 초청한 사람들로부터 견딜 수 없는 모멸을 겪는다. 이후의 나날이 매양 고단한 핍박의 연속이다. 육신이 고될수록 아우구스투스는 가슴에서 샘솟는 사랑으로 행복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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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행복이 ‘사랑 받기’가 아니라 ‘사랑 주기’의 함수라는 교훈을 말하려 한 것인데, 기실 세상사 사랑이란 받기와 주기가 따로 노는 개념이 아니다. 사랑이 본디 주고받는 것일진대, 문제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빈번하게 무너지는 현실에 있다. 이 난장 같은 인간사를 두고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정의했고, 이에 대해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는 ‘타인 없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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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 그레이스>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랑과 믿음의 퍼즐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투스의 두 모습을 함께 갖춘 여인 그레이스. 상냥하고 우아한 중년의 그레이스 부인(브렌다 블레신)은 이웃들 모두에게 극진하며, 마을 사람들 모두로부터 두터운 사랑과 신임을 받는다. 자,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의 패러독스를 벗은 그레이스 부인은 과연 행복한가? 행복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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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콜 감독은 그레이스 부인의 해피엔드 여부를 놓고 관객과 고도의 심리 게임을 벌인다. 퀴즈는 매우 간명한 구도에서 출발한다. 아름답고 조용한 영국의 한 어촌 ‘콘월’ 마을,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보면 대략 전라남도 강진쯤에 해당하는 곳이다. 정원이 딸린 그림 같은 저택에서 화초를 가꾸며 안온한 삶을 살아온 그레이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온갖 청구서가 날아드는데,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차압 딱지를 붙이러 찾아오는 연이은 집달리들. 송구스런 표정이지만 일은 일이다. 세간살이가 하나둘씩 들려나가는 사이에도 새 청구서와 경매 예고장이 줄을 잇는다. 장례식의 분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저택에서 이웃들과 오붓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은 그레이스의 소박한 꿈이 포말로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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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에 찾아온 한 줄기 빛. 엉뚱하게도 한 포기의 대마초다. 그레이스의 특기는 화초 가꾸기. 잠시의 갈등 끝에 그레이스는 벼랑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금보다도 비싸다’는 대마초를 심는다. 온실에는 최고급 대마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이미 그레이스와 심정적으로 공범이 되어버린 관객들은 행여나 들킬세라 애간장이 다 녹는다. 대마초가 뭔지 모르는 동네 할머니들은 화초 향기가 좋다며 잎을 뜯어 차를 다려 마시고, 눈치 없는 경찰서장은 그레이스를 위로하러 저택을 찾는데, 관객의 심정을 주물러가며 스릴과 코미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겨주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여간 장난꾸러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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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마리화나가 완성되고, 이 대목에서 감독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너무나도 착하고 사랑스런 우리의 그레이스, 그레이스를 도우려는 마을 사람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온실의 비밀. 고지식한 경찰서장, 베일에 가려진 마약상의 정체. 배역마다 치밀하게 연출된 디테일과 섬세하게 그려진 캐릭터가 상황의 리얼리티를 보장한다. 이제 이렇게 한껏 벌려놓은 그레이스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인지상정, 사랑의 승리? 불문곡직, 법의 힘? 약육강식, 악당의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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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해피엔드는 어쨌든 불법을 미화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된다. 또 런던의 닳고 닳은 마약상이 순순히 천문학적 거금을 넘겨줄 리 만무하므로, 순진한 그레이스가 마리화나를 돈으로 바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개연성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 법의 힘도 영화를 마무리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우리의 그레이스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법이라면 어찌 존경을 받을 것인가. 그렇다고 저 온실에 쏟은 땀을 고스란히 악당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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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절묘한 상상의 점프력으로 라스트 시퀀스를 마무리한다. 스크린 안에서는 한바탕 대동의 축제가 벌어지고 객석에서는 폭소와 박수가 뒤섞인다. ‘타인이 곧 지옥’인지 ‘타인 없는 세상이 바로 지옥’인지에 대한 감독의 답이다. 웃음은 기적을 낳고, 사랑은 감동을 낳는다. 브라보,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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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 영국 영화의 르네상스, 뉴 뉴 제네레이션

눈 밝은 관객이라면 세기 말 영국 영화가 보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눈치챘을 것이다.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찰스 크리튼 감독, 1988)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마이클 뉴월, 1994) <브래스트 오프>(마크 허먼, 1996) <트레인스포팅>(대니 보일, 1996) <마이클 콜린즈>(닐 조단, 1996) <빌리 엘리어트>(스티븐 달드리, 2000) 등 90년 이후 국내에 소개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마이크 리 감독은 <네이키드>(1993)와 <비밀과 거짓말>(1995)로 칸영화제의 감독상과 황금종려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한편에서는 피터 그리너웨이 회고전(<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1982)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 <메이콘의 왕>(1993) <필로우 북>(1996) <8과 ½ 우먼>(1999) 등)이 열리기도 했다.
 
‘만약 영국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였다면 영화 산업이 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비유는 영국 영화의 한계와 잠재력을 동시에 말해준다. 번역의 도움 없이 할리우드 영화가 무차별 공습을 퍼붓는 나라. 그 와중에도 영국은 세 차례에 걸쳐 르네상스의 조짐을 보여준다. 1956년 태동한 ‘프리 시네마’ 운동과 1980년대 알랜 파커·리들리 스코트·데이빗 푸트냄 등이 주도한 ‘세미 르네상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멀티플렉스 세대’의 등장이 그것이다.
 
프리 시네마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바탕으로 이후 영국 영화에 사실주의의 영향을 깊게 새겨주었다. 이후 켄 로치(<레이닝 스톤>(1993)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4) <랜드 앤 프리덤>(1995) <칼라송>(1996) <빵과 장미>(1999) 등)·마이크 리․스티븐 프리어즈(<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5) 등) 감독들이 그 계보를 이었다.
 
80년대 영국 영화계는 알랜 파커(<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 <페임>(1978) 등)와 리들리 스코트(<에일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등) 같은 광고계 출신 감독의 등장으로 르네상스를 맞는 듯했으나 중흥의 불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대작으로 할리우드에 맞서려는 전략이 실패로 드러나면서 이들은 영국을 등지고 할리우드로 입성해버렸다.
 
90년대 멀티플렉스(복합극장)가 새로운 추세로 등장하면서 ‘영국 영화의 뉴 뉴 제네레이션’으로 불리는 신 감각파 감독들이 대거 출현, 다시 한 번 영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불을 지핀다. 한편으로 세익스피어와 히치콕의 풍성한 극적 상상력을, 다른 한편으로 프리 시네마의 사실주의 기법을 함께 수혈 받은 이들은 미국에 맞서는 대신, 할리우드가 만들지 못하는 저예산 걸작 쪽으로 틈새 전략을 추구한다. 예컨대 <오! 그레이스>는 코미디지만, 기발한 상상력만큼이나 영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비판적 사실주의의 터치가 돋보인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중에서)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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