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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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리터리>
감독 : 스티븐 쉐인버그
출연 : 제임스 스페이더, 매기 질렌할
제목 :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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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진실’ 혹은 ‘상식’ 위에 있지 아니하다. 그저 ‘다수결’의 함수일 뿐이다. 다수가 발산하는 힘의 함수다.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티는 은연 중에 ‘정상’을 자처한다. 메이저리티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메이저리티의 눈빛은 형형하다. 메이저리티의 몸짓은 도저하다. 그 서슬에 밀려 마이너리티는 저절로 ‘비정상’의 경계 너머로 움츠러든다. 세상의 모든 왼손잡이와 대머리들이 그렇다. 미국의 모슬렘들이, 아라비아의 크리스천들이, 유럽의 집시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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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섹슈얼리티 문제가 가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마이너리티 차원이 아니다. 변태로 비하되거나 불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성적 마이너리티를 몰아붙이는 ‘정상’의 목청은 거의 고함이다. 눈초리는 가재미를 닮아 있고, 누군가는 주먹이 반쯤 쥐어져 있다. 그 서슬에 밀려 성적 마이너리티는 어느덧 사회의 그늘 속에서 침묵한다. 세상의 모든 트랜스 젠더가 그렇고,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그렇다(이 영화가 개봉되던 2002년 무렵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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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크리터리>는 그늘 속에 숨은 마이너리티의 진실을 따뜻한 눈길로 매만진다. 영화 <세크리터리>는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에게 바치는 낮은 목소리의 찬가다. 스티븐 쉐인버그 감독이 제시한 샘플은 엉뚱하게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다. 이 생경하고 불편한 소재를 가지고 쉐인버그 감독은 깔끔하고 가슴 훈훈한 왈가닥 로맨스 코미디를 직조해냈다.
 
일단 이성을 때림으로써 사랑을 느끼는 가학증과 아픔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피학증의 조합이 절묘하다(그렇다고 스크린 가득 핏자국이 번지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적 사디즘은 아니므로 너무 긴장하지 마시길). 어쩌란 말인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성정체성을! 쉐인버그 감독은 마치 오목과 볼록의 궁합을 맞추듯 가학과 피학의 요철을 결합해 외로운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랑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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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할로웨이(매기 질렌홀)는 평범한 외모에 조용한 성격의 20대 여성이다. 타자학원에 다니지만 일상은 언제나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만성적인 부모의 부부싸움과 개운치 않은 집안 분위기에 짓눌려 지내는데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웃에 사는 고교 동창 피터와의 데이트도 무미건조할 뿐이다.
 
늘 주눅 든 표정의 이 처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자해 습관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밑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상자 안에는 각종 자해 도구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할로웨이는 마치 종교 제의를 치르듯이 경건한 손짓으로 도구를 꺼내들고 한 땀 한 땀 정성껏 허벅지에 생채기를 낸다. 생채기의 크기는 스트레스의 무게에 비례한다. 상처가 클수록 카타르시스도 커진다. 우울증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자해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 자해의 비밀은 다시 심리적 부담이 되어 스트레스로 되돌아오고, 견디다 못한 할로웨이는 자해 상자를 버리려하나 끝내 그 미망의 유물을 떼놓지 못한다.
 
어느 날 할로웨이에게 희망이 찾아온다. 한 변호사 사무실에 타이피스트 겸 비서로 취직을 한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첫 출근길, 감독이 배치한 소품의 복선이 재미있다. 수풀 우거진 고급 주택가의 한 단독주택형 사무실, 입구 측면에 서 있는 간판 아래에 수십 개의 꼬마전구가 반짝거리는 판자가 매달려 있다. 내용인즉슨 ‘비서 급구’. 들어서는 할로웨이를 밀치고 울며 떠나는 전임 비서의 표정에서 순탄치 않은 앞날의 예감이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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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중년의 변호사 에드워드 그레이(제임스 스페이더)의 특기는 ‘빨간 펜’. 근엄한 표정으로 눈치 채지 못하게 비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특히 타이핑한 편지에서 오타를 찾아내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야단치는 게 낙이다. 때맞춰 카메라는 수십 개의 빨간 펜을 클로즈업한다. 소심한 할로웨이는 야단을 맞을수록 더 주눅이 들어 오타가 잦아지고 급기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만의 종교의식을 치른다. 우연히 그 모습을 훔쳐보게 된 그레이 변호사의 표정이 야릇하다. 이튿날 오타 신기록을 세운 할로웨이는 변호사 방에 불려가서 벌을 받는데 벌이 또한 기상천외하다.
 
스커트 차림으로 책상 위에 상체를 구부리고 엎드린 할로웨이와 그녀 뒤에 바짝 다가선 그레이 변호사. 스커트를 올리고 속옷을 내리라는 지시에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시킨 대로 말을 듣는 할로웨이. 속살이 드러난 양쪽 알궁둥이를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포핸드 백핸드 찰싹찰싹 후려치는 그레이 변호사의 테크닉이 가히 예술이다. 영락없는 성추행에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말이 되게 그려낸 쉐인버그 감독의 연출 맵시 또한 가히 예술이다. 엉덩이 살가죽에 시뻘건 손자국이 짙어져갈수록 고통으로 찡그리던 할로웨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자기도 모르던 성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날 이후 할로웨이의 삶은 에너지로 충만하고 걸음걸이에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마침내 할로웨이는 침대 밑에 모셔두던 자해의 신주단지를 흔쾌히 강물에 던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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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몇 번의 반전과 우여곡절을 거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엉덩이 체벌로 자신의 성 취향을 들켜버린 변호사가 자의식에 사로잡혀 할로웨이를 멀리하는 플롯이며, 할로웨이가 결혼을 앞두고 가진 피터와의 잠자리에서 불감증으로 고뇌하는 시퀀스 등에서는 연출의 깊이와 연기의 진면목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코믹의 스피드와 고뇌의 농도 등이 각기 다른 무늬와 리듬으로 펼쳐지는 점도 감상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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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너무도 용감해진 할로웨이의 변신과,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골인하는 극적 반전의 클라이맥스는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영화의 백미다. 클로즈업으로 처리한 상징적 소품을 눈여겨본다면 코미디의 감칠맛을 조금 더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기발한 엉덩이 시퀀스의 승리, <세크리터리>는 200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독창성’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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