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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대처 수상과 윤석열
    은혜를 볼 때가 있다. 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믿음 속 작고 동그란 새벽 감은 두 눈 가득 보이는 소망 오전 열한시의 예배당 창문 너머 가만히 돌아선 길모퉁이 아무도 없는데 달려오고 있는 그 소망 속에 들어있는 야곱의 맨발이 지나간 저녁 땅거미 지는 거미줄로 뚝뚝 떨어지는 허공이 세상을 떠난 사이 머물고 있는 파랗게 휘어진 윤석열 영혼 저쪽 2026년 1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 대규모 전력을 이동시켜 이란을 상대로 군사 압박에 나선 가운데, 이번엔 미 공군의 핵 탐지 특수 정찰기가 영국에서 목격됐다. 이란은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중동 곳곳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보복을 예고한 상황이다.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도 이란 압박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타격 가능한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중재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고위 보안 당국자는 현지 매체에 “이란이 우리를 이번 사건에 끌어들인다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방어와 공격 모든 면에서 강력한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 적이 될 능력을 갖추는 것, 적이 되는 적은 강한 천성을 전제로 하며 그 까닭에 저항을 찾아다닌다... 공격하는 자의 힘에 대한 일종의 척도는 그에게 필요한 적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맞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나 또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뤄진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승부를 건 문제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융통성과 무기를 동원해야만 맞설 수 있는 저항들 그리고 자신과 동등한 힘을 지닌 적을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불린다. 삶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염세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낸 메시지의 핵심은 '세계는 나의 표상이며, 의지이다'이다. 니체는 자신이 철학자가 된 계기가 쇼펜하우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우연히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를 읽은 뒤, 니체는 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란 '삶에의 의지'로 이루어져 있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면에 '표상'이란 영국 경험주의-칸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인데, 이는 어떤 물체나 대상에 대해 가지는 '심상', 요즘말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표상이란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의 연장선인데, 그는 의지'를 부정하여 인식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분열을 통합시킨 정치의 표상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연설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분열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대부분의 정치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가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가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요행으로 여겼고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을 이끌고 처음 2~3년 동안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대처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선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를 매도했다. 그녀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모두 질식시켜서 영국 경제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주범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깨고 소비에트연방을 힐난했다. 1978년과 1979년에 걸친 겨울, 몇 개의 공공부문 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대처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면서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핸 총리를 이 파업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대담하고 분파적인 발언으로서 저녁 뉴스를 장식하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선거의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문재인처럼 유권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안심시켜야지 겁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 좌파가 득세한 당시의 영국은 그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대처는 지금까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해왔지만 총리가 된 이상 논조를 절제하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선거 때 공약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삭감이었다. 대처 총리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캘러핸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 다수가 수년간 자신들을 대해온 대처의 처신에 더 이상 분개를 참지 못하고 이준석과 이재명처럼 공개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대처는 보수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온건한 의원들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대처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경력에 오점이 남을까 봐 두려워했다. 대처 총리는 그들을 내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작심하고 모든 반대자를 밀어낼 기세였다. 적들의 영역은 점점 커졌고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하락 일로에 놓여 있었다. 탄핵을 들먹이는 윤석열 반대 여론처럼 다음 선거에 그녀가 끝장날 것이 틀림없었다. 1982년 대서양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러사아의 푸틴처럼 국내에 산적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포클랜드섬을 침공했다. 포클랜드는 영국령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군사정권 관리들은 영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불모지인 포클랜드를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처는 주저하지 않고 포클랜드에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1만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무의미하고 희생이 큰 이 전쟁을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다수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섬의 재탈환에 실패한다면 보수당은 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독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그녀의 자질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놓던 바로 그 자질을 말이다. 완고한 고집이 이제는 용기와 고결한 기품으로 보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데다 제 경력만 챙기는 주위의 남성들에 비하면 대처 총리는 단호하고 강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자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삽시간에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가 잊혀졌다. 대처는 정치무대를 장악했고, 다음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마거릿 대처는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중산계급의 여성이고 우익 과격파였기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는 권력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선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만 아웃사이더로 살기는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처가 주위의 남성들처럼 행동했다면 다른 남성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아웃사이더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대처 수상 역시 덧없는 대중적 인기 따위에 영합하지 않았다. 정치꾼들은 지지도의 수치에 일희일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즉 정치가들이 전쟁을 하면 얻으려고 하는 목표물)은 호감을 주는 인사보다 우위를 차지한 인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일부 대중이 미워하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래야 든든하게 의지할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존재다. 그래야 피아가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드러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발맞춰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도 이란 압박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타격 가능한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중재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고위 보안 당국자는 현지 매체에 “이란이 우리를 이번 사건에 끌어들인다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방어와 공격 모든 면에서 강력한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끊임없는 전투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의의 용사로 강인하고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불법하고 불의한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더 오래 지속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BC 545년경~BC 470년경)는 '손자병법'에서 대처 수상이 실행한 것처럼 말했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적이 오기를 대비하라. 아! 윤석열... 성경은 말씀한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37-40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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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더굳뉴스] 토마스 선교사 순교와 총회 목사 장로 자선 골프대회
    유교의 시조(始祖) 공자(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가 제자들과 함께 산둥(山東)성 태산을 지날 때였다. 한 여인이 묘지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묻기를 “부인은 무슨 일이 있기에 상심이 그리 크십니까”라고 했다. 부인이 답하길 “오래전 내 시아버지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도 호랑이에게 죽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공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부인이 답하길 “그래도 여기는 가혹한 정치는 없으니까요….” 정치라는 말은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치(治)의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2022년 2월 15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의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66년(고종 3년)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년 1월 24일~ 1898년 2월 22일)은 정권에 의해 벌어진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천주교 선교사들이 참수당했다. 당시 런던 선교회 소속의 개신교 목사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39년 ~ 1866년 9월 5일) 선교사는 중국에서 활동 중인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으로 1865년 9월 13일 조선 연평도에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숨어서 믿고 있던 조선의 가톨릭 신도들의 도움으로 선교 활동을 네 달 정도 했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잠입하려다가 태풍을 만나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1866년 1월 베이징으로 다시 복귀했다. 1866년 4월 조선의 동지사 일행을 만나서 평양에서 자신이 전파한 한문성경이 퍼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 재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프랑스 배를 타려다가 무산됐다. 그 대신 찾은 게 제너럴 셔먼호였다. 그 당시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관계가 악화되며 전운이 감돌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무관하다는 듯 당시 텐진에 기반을 두고 있던 영국의 메도즈 상사는 조선과 통상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와 용선 계약을 맺고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의 상품을 선적한 후 화물관리인으로 영국출신 호가스(Hogarth)를 승선시켰다. 또한 조선과 무역을 해온 중국인들과도 접촉을 하고 통역으로는 런던 선교회 소속의 개신교 선교사 토머스를 통역사로 채용해 승선시켰다. 토머스는 1년 전인 1865년에 조선에 밀입국하여 조선어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물을 선적한 제너럴셔먼호는 체푸(Chefoo, 현재의 옌타이)를 1866년 8월 9일에 출항하여 조선으로 향했다. 제너럴 셔먼 호의 미국인 선주 프레스턴은 조선을 상대로 개항을 선점하여 한몫 잡을 생각에 단독으로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려는 속내를 가졌다. 그는 배를 중국 톈진에 기항하였고 영국의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렇게 제너럴 셔먼 호는 조선으로 출항했다. 1866년 9월,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진입한 후, 평양 관민들에게 통상 수교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이에 만경대 한사정 정자까지 올라가 금지된 닻을 내리고 교전까지 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막아선 중군 이현익을 붙잡아 감금하였다. 이에 평양 관민들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다급해진 셔먼호는 소총과 대포를 관민들에게 마구잡이 쏘아대 사태는 더욱 더 악화되었다. 결국 제너렬 셔먼호는 모래톱에 좌초되었다. 이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철산 부사 백낙연 등과 상의하여 대동강 물에 폐식용유를 풀고 불을 붙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다. 결국 이 과정에서 1866년 9월5일 26세의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과 함께 사로잡혀 결박당한 채 성난 군중들에게 맞아 죽는다. 2025년 8월 5일자 기독신문은 총회에서 토마스 선교사 내한 1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사와 토마스 선교사 순교를 기리는 5단 광고가 실렸다. 2026년 1월 23일 김형곤 장로(대창교회전장로부총회장) 가족이 백령도 토마스기념관 건립 후원헌금을 보내왔다. 김형곤 장로는 가족을 대표해서 기독신문사(사장:태준호 장로)를 방문, 토마스기념관 건립 후원헌금을 기증했다. 이어서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멈추는 데서 멈춘다는 칼빈주의 지향의 우리 교단에 낯선 행사광고가 교단지에 실렸다. 광고 제목은 ‘토마스선교사기념관 건립후원을 위한 제1회 목사장로자선골프대회‘였다. 총회는 그 순교정신을 기려 토마스선교사 기념관을 백령도에 세우고 그 순교의 신앙을 이어받자는 정신을 다지고 교단적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1997년 10월 15일 조선일보 기사이다. "임기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김영삼 대통령(YS)의 약속은 아직도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개혁과 사정을 내걸고 문민 정부를 출범시 김대통령은 '임기중 한푼도 안받겠다'는 자기실천 선언과 함께 이의 상징적 조처 중 하나로 골프 중단 결심을 밝혔다. 대통령의 이 선언은 정권출범 초 사정바람으로 이어지면서 대대적인 공직자 골프 금지령으로 발전, 문민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5-6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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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8
  • [더굳뉴스] 김영배 목사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2007년부터 시행한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이 8년만에 폐기됐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손잡이 잡기 등 에스컬레이터 안전이용수칙을 새로 마련해 다음달부터 지하철 등에서 홍보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마련된 안전이용수칙은 손잡이 잡기, 걷거나 뛰지 않기, 안전선 안에 탑승하기 등입니다. 나는 이 캠패인을 찬동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를 준수하다 몇 번 실랑이가 있었고 두 차례 시비까지 벌어졌습니다. 한 시비는 마들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 서기를 지키고 있는 나를 한 여성이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먼저 간다고 밀치기까지 한 여성이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아까 나를 밀치고 간데 대한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사과는 커녕 지하철 수사대에 나를 불법 촬영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수사관에게 카메라 유심까지 제출하는 수사까지 받고 무혐의 처리 됐습니다. 그녀를 무고로 고소했으나 검찰 관계자가 여성이니 봐달라해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또 다른 시비는 노원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남성이 밀치고 지나가 넘어질뻔 했습니다. 화급히 따라가 그를 세우고 사과를 요청했더니 다짜고짜 두 손을 들어 나를 마구 쳐댔습니다. 그걸 막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 상해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경찰 조서를 받고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쌍방 과실로 벌금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을 받고 읽어보니 벌금 대신 하루 10만 원씩 계산해 3일 간 노역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감옥에서의 값을 쳐주는 노역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벌금 30만 원을 내는 것이 아니라 대납에 해당하는 3일 노역을 신청하고 감옥 체험을 했습니다. 실제로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불법으로 나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꾀해 법에 저촉되는 이 판결문을 취득한 뒤 "뉴스프리존"과 "CDN" 매체에 전달했습니다. 언론인이리는 그들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해도 명예훼손인데 몰카범 의혹, 묻지마 폭행으로 구속수감 등의 왜곡까지 하는 만행을 70대 목사에게 저질렀습니다. 기자의 기본 수칙 육하원칙은 기사문이나 글을 쓸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각 요소는 영어의 5W1H(Who, When, Where, What, How, Why)에 해당하며, 정보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고 독자가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쓰기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졸업한 용산고 동문, 총신대 동문, 총신신대원동문, 총회 총대와 산하 1만 교회 목사와 장로 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명예훼손을 끼쳤습니다. 우선 사실의 진위를 알리기 위해 떨리는 가슴과 손을 억제하며 이 글을 쓰는 바입니다. 이 사건 중심 당사자에게는 지난 9월 28일 1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법꾸라지들인 나머지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손해배상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2-24 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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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4
  • [더굳뉴스] 김종혁 총회장과 오정호 목사 총회선거 개혁
    우연의 일치인지 피노키오 모험의 작가 콜로디(본명 카를로 로렌치니 Carlo Lorenzini, 1826년 11월 24일 ~ 1890년 10월 26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피노키오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이고 둘 다 이름이 요셉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나자렛의 성 요셉. 제페토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탈리아 이름 주세페인데(제페토는 주세페의 이탈리아 지방 토스카나식 애칭이다), 주세페가 바로 요셉을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이름인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생겨난 이런 착각 우스개가 있다. 토스카나의 유명한 목수 안토니오가 식탁 다리를 만들기 위해 잣나무 토막을 주워왔다. 그런데 나무를 깎기 시작하자마자 나무토막이 마구 떠들어댔다. 놀란 안토니오는 그 나무토막을 때마침 찾아온 자신의 친구 제페토에게 주었다. 제페토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나무 인형을 만들어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려고 나무토막을 얻으러 안토니오에게 찾아간 것이었다. 죽은 영혼들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하는 성 베드로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어 예수님께서 대신 그 업무를 맡아 보셨다.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의 노인 차례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죠?" "제페토입니다." "혹시 직업이 뭐였죠?" "목수 일을 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죠?" "예." "그 아들은 당신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아들의 팔목과 발에 못자국이..." "그렇소만..." 예수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노인은 의아해하며 어리둥절하다 감격에 겨워 답했다. "아니 그럼 네가 바로 그 피노키오란 말이냐!" 현대인들은 저마다 색안경을 끼고 산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가 공주이고 왕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같아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식 문제, 사업 문제 등 일상적인 삶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 인격자는 인격자대로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인격과 자유에 대한 고민이 있다. 지성인은 지성인으로서의 고민이 있다. 현대 지성인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실망이라고 하는 고민이다. 실망은 기대가 있고 믿는 바가 있었기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망은 진실의 반대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실망 가운데 가장 큰 실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내가 무엇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큰 사업을 한다고 분주하게 정신없이 바삐 살았는데 지금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많이 번 줄 알았는데 손해였다. 무엇인가 손에 움켜쥐었는데 손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무엇이 된 줄로 알았는데 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다. 무엇을 좀 안다고 설쳤는데 지금 보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내 딴에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 쳤지만 세상에서 나 같은 위선자가 없다. 이처럼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부자다, 부족한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며 살아왔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하다. 초라하다.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의 무지를 모르고 있다. 거짓 부자이고 나 자신을 속인 허구에 속아 살고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의 나 됨을 인정하자. 나의 실상을 진솔하게 인정하며 살자. 우리는 눈뜬장님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떤 장님이 밤길을 가는데 자기는 밤이나 낮이나 마찬가지지만 눈뜬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부딪칠까 하는 생각에서 등불에다 불을 켜 들고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장님이 화가 나서 "이 사람아 이 등불이 안 보이는가"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상대편 사람이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이 든 등불은 불이 꺼진 지 이미 오래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장님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을 바로 볼 수가 있다. 눈을 뜨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 우리는 명예, 위신, 지식, 돈 체면 등을 굉장히 위한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다. 진실해져야 한다. 나 자신의 잘못과 수치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무식하며 위선자고 장님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만 한다. 형편없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를 통해 기승전결의 살아 있는 성경이 말씀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선과 허무에 매여 살지 말아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죽어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진실을 찾아야 한다. 곧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나의 나 됨을 잘 알 수 있는 길은 믿음의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야 나의 참된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이 보아 준 나의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좀 더 진실해지자. 하나님이 은혜로 깨우쳐주신 나의 모습이 참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려고 혈기 등등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따르고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이기적인 편견과 선입관의 색안경을 통해 보이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109회 총회선거위원회 위원장 오정호 목사가 개혁신학 관점에서 성경 말씀과 총회 선거법을 적용한 총회 두 임원에 대한 처리는 가히 칼빈의 제네바 개혁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2025년 9월 22일 오후 7시 충현교회 제110회 총회현장에서 제109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의 회의 진행과 지혜로운 처리는 총회 110년 역사에 길이 기념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삼상 6:12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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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3
  • [더굳뉴스] 정영교와 고광석 110회 총회 최후 전략
    싸움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사회 조직이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참혹함은 더욱 커졌다. 삶과 죽음의 존망(存亡)이 그 싸움에 종종 걸리는 일이 많았으니 싸움에 대한 인류의 사고는 정밀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집념이 일정한 틀을 갖출 때를 우리는 전략(戰略)이라고 적는다. 4년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2025년 1월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지나칠 정도로’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매우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싸움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승리와 패배, 종국에는 먹느냐 먹히느냐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있을 때 그와 다퉈 이해를 가리고 승패를 결정하는 일에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2022년 10월 14일 ‘충남노회 폐지 후속 처리’ 안건을 검토하고 그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위원회 서기이면서 제107회 총회 서기인 고광석 목사가 이상규에게서 칠천만 원을 선교비조로 받았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쌩뚱맞은 전달자 이상규의 고발로 선교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돌려주게 됐다. 그런데 고광석은 그 건으로 2025년 9월 22일 열릴 110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서 탈락됐다. 그리고 노회 천서 문제에 걸려 곤경을 겪는 110회 부총회장 단독 후보 정영교 목사와 탈락된 고광석 목사에게 이 어려운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목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이예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해맑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소천하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서구 현대 전략학의 아버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년 7월 1일 ~ 1831년 11월 16일)는 군사 전략을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투의 운용"으로 정의했다. 그렇듯 2025년 9월 22일 열릴 110회 총회 충현교회 현장에서 결전이 있을 것이다. 양측이 세운 최후 전략(戰略)에 따른 전투의 운용은 격렬한 시위까지 흉흉하게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1970년 55회 총회장 김창인 목사(1953 ~ 1987)가 세우고 1984년 4월 강남구 역삼동 새 예배당에 입당해 한때 3만여 명의 교인이 출석했던 충현교회에서 정영교 목사와 고광석 목사의 필사적인 최후 전략이 어떻게 펼쳐질까. 그 역사적인 교회에서 전국에서1600여 목사와 장로 총대가 모일 것이다. 그런데 고광석 측의 어느 목사가 공개 석상에서 "판을 깨야 한다"는 섬뜩한 말까지 내뱉었다. 그것은 이상규의 칠천만 원 고발 불씨 건과 더불어 전통과 보수신학의 정체성을 잃은 110회 총회를 정화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도...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1, 9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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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1
  • [더굳뉴스] 총회장 배광식과 감사부장 오광춘
    검고 하얀 붉고 파란 믿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 보이지 않는 기도를 그의 말씀으로 이루리라 신앙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차디찬 종소리 그러나 아침에는 유다의 황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욕망 총회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비추지 않는 거울이다. 부패한 사람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106회 총회 이후 역사를 향해 다른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을 말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黑死病 plague) 이후 서유럽과 동유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듯이 말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로 우리말대로 "pest"인데 영어로는 "plague(플래그)"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plague가 "전염병"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변한 것을 보면 중세 페스트 대유행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의 병"이라고 할 정도로 참혹하고 무서운 병이다. 실제로 그 병은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사망하는 끔찍한 질병이다. 흑사병이 유럽에 상륙한 건 1346년. 그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정치 경제 제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양쪽 모두 영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착취했다. 소작농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에 예속돼 있었다. 이른바 농노(農奴)였다. 흑사병의 피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흑사병이 창궐한 곳은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 들끓던 검은 쥐들을 통해 지중해 해운 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는 300여 년이 지난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 미친 흑사병 피해가 낳은 결과는 아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중세의 억압적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보다 포용적 사회로 진화했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건 제도가 강화됐다. 사람들이 영주에 더욱더 예속됐다. 보다 억압적인 사회로 퇴행했다. 양쪽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득권과의 싸움에 승리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달랐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노동 인구가 급감했다. 일손이 부족해졌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당시 영국 엔셤 수도원(Eynsham Abbey) 영지에는 소작농이 겨우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이다. 노동력이 희소해져 가치가 오른 소작농은 협상력을 갖게 됐다.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다. 부역과 벌금을 대폭 줄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겠다고 했다. 엔셤 수도원은 소작농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작농의 임금이 올랐다. 강제 노역을 비롯한 온갖 부담에서 풀려나 자유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동유럽은 협상이 아니라 강제력을 지닌 법에 의지했다. 기득권 수호는 잘못된 선택이다. 흑사병 이후 동유럽 역시 흑사병 탓에 노동 인구가 감소했다. 영주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짰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무임금 강제 노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녀까지 몇 년은 영주를 위해 무료로 노역을 해야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1년에 며칠에 그쳤던 체납임금이 일주일에 나흘로 늘어났다. 이런 착취 제도에서는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서유럽에 철도가 깔린 한참 뒤에도 동유럽은 기득권에 손해가 될까 걱정해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2022년 1월 11일 자 기독신문을 통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당동에 있는 총신에 총회타운을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교단 발전은 물론 총신도 사는 길입니다. 과거 제가 총신법인이사를 할 때 이미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총신에 총회 랜드마크를 세워야 합니다. GMS센터와 총신 양지캠퍼스를 사당동으로 집약하면 교단 운영 효율성과 역량결집, 총신 미래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 연구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총회 감사부(부장: 오광춘 장로)가 1월 13일 오전 당일 일정으로 총회 본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먼저 오전 10시 30분 서기 황석산 목사의 사회 가운데 회계 김경환 장로의 기도, 부원 강희섭 목사의 성경 봉독 후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겔 47: 1~11;2을 본문으로 ‘총회를 아름답게 하는 감사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부장 오광춘 장로의 인사, 총회 총무 고영기 목사의 축사, 총무 이영민 목사의 광고 후 부원 한진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의 사회로 총회장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모두 발언을 통해 말했다. "감사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부가 총회 총무의 지출에 대해 지적한 건에 대해서는 시정토록 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과정이니 총회 규정을 약간 벗어나도 양해를 구합니다. 감사부는 총회를 정화시키며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기구입니다. 총회장부터 모든 총회 임원들이 규정을 잘 따르고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적하면 시정하겠습니다." 총회장과 감사부원들과 대화에서는 먼저 감사부가 총회 임원회에 요청한 제105회기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 요청한 건에 대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총회 임원회 결의를 전제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감사부와 선관위, 재판국을 제외한 다른 상비부나 위원회들이 자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장은 총회의 재정 지출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에서 달리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총회유지재단 이사가 된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는 말했다. “감사부원들뿐만 아니라 제106회 총회에 참석한 많은 총대들이 지난 총회 선관위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야기한 선거 과정과 절차의 난맥상을 포함해 선거 준비부터 진행 전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제105회기 선관위가 8월 초부터 9월 총회 직전까지 지출한 재정 건에 대해서는 제106회기 감사부에서 충분히 감사가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오광춘 감사부장은 계속해 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3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상비부나 위원회는 비대면 감사로 진행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비부와 위원회는 철저히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총회 규칙’대로 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하는 부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가 있는 부서는 철저하게 감사하겠습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월 15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부당성을 밝혀낸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했다. 2020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유 국장은 그해 10월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관련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의식이 없거나 습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우리가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습관화된 걷기를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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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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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대처 수상과 윤석열
    은혜를 볼 때가 있다. 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믿음 속 작고 동그란 새벽 감은 두 눈 가득 보이는 소망 오전 열한시의 예배당 창문 너머 가만히 돌아선 길모퉁이 아무도 없는데 달려오고 있는 그 소망 속에 들어있는 야곱의 맨발이 지나간 저녁 땅거미 지는 거미줄로 뚝뚝 떨어지는 허공이 세상을 떠난 사이 머물고 있는 파랗게 휘어진 윤석열 영혼 저쪽 2026년 1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 대규모 전력을 이동시켜 이란을 상대로 군사 압박에 나선 가운데, 이번엔 미 공군의 핵 탐지 특수 정찰기가 영국에서 목격됐다. 이란은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중동 곳곳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보복을 예고한 상황이다.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도 이란 압박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타격 가능한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중재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고위 보안 당국자는 현지 매체에 “이란이 우리를 이번 사건에 끌어들인다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방어와 공격 모든 면에서 강력한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 적이 될 능력을 갖추는 것, 적이 되는 적은 강한 천성을 전제로 하며 그 까닭에 저항을 찾아다닌다... 공격하는 자의 힘에 대한 일종의 척도는 그에게 필요한 적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맞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나 또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뤄진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승부를 건 문제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융통성과 무기를 동원해야만 맞설 수 있는 저항들 그리고 자신과 동등한 힘을 지닌 적을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불린다. 삶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염세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낸 메시지의 핵심은 '세계는 나의 표상이며, 의지이다'이다. 니체는 자신이 철학자가 된 계기가 쇼펜하우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우연히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를 읽은 뒤, 니체는 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란 '삶에의 의지'로 이루어져 있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면에 '표상'이란 영국 경험주의-칸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인데, 이는 어떤 물체나 대상에 대해 가지는 '심상', 요즘말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표상이란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의 연장선인데, 그는 의지'를 부정하여 인식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분열을 통합시킨 정치의 표상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연설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분열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대부분의 정치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가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가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요행으로 여겼고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을 이끌고 처음 2~3년 동안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대처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선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를 매도했다. 그녀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모두 질식시켜서 영국 경제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주범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깨고 소비에트연방을 힐난했다. 1978년과 1979년에 걸친 겨울, 몇 개의 공공부문 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대처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면서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핸 총리를 이 파업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대담하고 분파적인 발언으로서 저녁 뉴스를 장식하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선거의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문재인처럼 유권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안심시켜야지 겁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 좌파가 득세한 당시의 영국은 그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대처는 지금까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해왔지만 총리가 된 이상 논조를 절제하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선거 때 공약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삭감이었다. 대처 총리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캘러핸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 다수가 수년간 자신들을 대해온 대처의 처신에 더 이상 분개를 참지 못하고 이준석과 이재명처럼 공개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대처는 보수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온건한 의원들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대처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경력에 오점이 남을까 봐 두려워했다. 대처 총리는 그들을 내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작심하고 모든 반대자를 밀어낼 기세였다. 적들의 영역은 점점 커졌고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하락 일로에 놓여 있었다. 탄핵을 들먹이는 윤석열 반대 여론처럼 다음 선거에 그녀가 끝장날 것이 틀림없었다. 1982년 대서양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러사아의 푸틴처럼 국내에 산적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포클랜드섬을 침공했다. 포클랜드는 영국령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군사정권 관리들은 영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불모지인 포클랜드를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처는 주저하지 않고 포클랜드에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1만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무의미하고 희생이 큰 이 전쟁을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다수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섬의 재탈환에 실패한다면 보수당은 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독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그녀의 자질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놓던 바로 그 자질을 말이다. 완고한 고집이 이제는 용기와 고결한 기품으로 보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데다 제 경력만 챙기는 주위의 남성들에 비하면 대처 총리는 단호하고 강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자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삽시간에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가 잊혀졌다. 대처는 정치무대를 장악했고, 다음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마거릿 대처는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중산계급의 여성이고 우익 과격파였기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는 권력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선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만 아웃사이더로 살기는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처가 주위의 남성들처럼 행동했다면 다른 남성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아웃사이더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대처 수상 역시 덧없는 대중적 인기 따위에 영합하지 않았다. 정치꾼들은 지지도의 수치에 일희일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즉 정치가들이 전쟁을 하면 얻으려고 하는 목표물)은 호감을 주는 인사보다 우위를 차지한 인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일부 대중이 미워하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래야 든든하게 의지할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존재다. 그래야 피아가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드러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발맞춰 유럽연합(EU)과 이스라엘도 이란 압박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타격 가능한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중재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고위 보안 당국자는 현지 매체에 “이란이 우리를 이번 사건에 끌어들인다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방어와 공격 모든 면에서 강력한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끊임없는 전투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의의 용사로 강인하고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불법하고 불의한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더 오래 지속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BC 545년경~BC 470년경)는 '손자병법'에서 대처 수상이 실행한 것처럼 말했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적이 오기를 대비하라. 아! 윤석열... 성경은 말씀한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37-40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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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더굳뉴스] 토마스 선교사 순교와 총회 목사 장로 자선 골프대회
    유교의 시조(始祖) 공자(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가 제자들과 함께 산둥(山東)성 태산을 지날 때였다. 한 여인이 묘지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묻기를 “부인은 무슨 일이 있기에 상심이 그리 크십니까”라고 했다. 부인이 답하길 “오래전 내 시아버지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도 호랑이에게 죽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공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부인이 답하길 “그래도 여기는 가혹한 정치는 없으니까요….” 정치라는 말은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치(治)의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2022년 2월 15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의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66년(고종 3년)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년 1월 24일~ 1898년 2월 22일)은 정권에 의해 벌어진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천주교 선교사들이 참수당했다. 당시 런던 선교회 소속의 개신교 목사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39년 ~ 1866년 9월 5일) 선교사는 중국에서 활동 중인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으로 1865년 9월 13일 조선 연평도에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숨어서 믿고 있던 조선의 가톨릭 신도들의 도움으로 선교 활동을 네 달 정도 했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잠입하려다가 태풍을 만나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1866년 1월 베이징으로 다시 복귀했다. 1866년 4월 조선의 동지사 일행을 만나서 평양에서 자신이 전파한 한문성경이 퍼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 재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프랑스 배를 타려다가 무산됐다. 그 대신 찾은 게 제너럴 셔먼호였다. 그 당시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관계가 악화되며 전운이 감돌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무관하다는 듯 당시 텐진에 기반을 두고 있던 영국의 메도즈 상사는 조선과 통상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와 용선 계약을 맺고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의 상품을 선적한 후 화물관리인으로 영국출신 호가스(Hogarth)를 승선시켰다. 또한 조선과 무역을 해온 중국인들과도 접촉을 하고 통역으로는 런던 선교회 소속의 개신교 선교사 토머스를 통역사로 채용해 승선시켰다. 토머스는 1년 전인 1865년에 조선에 밀입국하여 조선어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물을 선적한 제너럴셔먼호는 체푸(Chefoo, 현재의 옌타이)를 1866년 8월 9일에 출항하여 조선으로 향했다. 제너럴 셔먼 호의 미국인 선주 프레스턴은 조선을 상대로 개항을 선점하여 한몫 잡을 생각에 단독으로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려는 속내를 가졌다. 그는 배를 중국 톈진에 기항하였고 영국의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렇게 제너럴 셔먼 호는 조선으로 출항했다. 1866년 9월,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진입한 후, 평양 관민들에게 통상 수교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이에 만경대 한사정 정자까지 올라가 금지된 닻을 내리고 교전까지 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막아선 중군 이현익을 붙잡아 감금하였다. 이에 평양 관민들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다급해진 셔먼호는 소총과 대포를 관민들에게 마구잡이 쏘아대 사태는 더욱 더 악화되었다. 결국 제너렬 셔먼호는 모래톱에 좌초되었다. 이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철산 부사 백낙연 등과 상의하여 대동강 물에 폐식용유를 풀고 불을 붙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다. 결국 이 과정에서 1866년 9월5일 26세의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과 함께 사로잡혀 결박당한 채 성난 군중들에게 맞아 죽는다. 2025년 8월 5일자 기독신문은 총회에서 토마스 선교사 내한 1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사와 토마스 선교사 순교를 기리는 5단 광고가 실렸다. 2026년 1월 23일 김형곤 장로(대창교회전장로부총회장) 가족이 백령도 토마스기념관 건립 후원헌금을 보내왔다. 김형곤 장로는 가족을 대표해서 기독신문사(사장:태준호 장로)를 방문, 토마스기념관 건립 후원헌금을 기증했다. 이어서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멈추는 데서 멈춘다는 칼빈주의 지향의 우리 교단에 낯선 행사광고가 교단지에 실렸다. 광고 제목은 ‘토마스선교사기념관 건립후원을 위한 제1회 목사장로자선골프대회‘였다. 총회는 그 순교정신을 기려 토마스선교사 기념관을 백령도에 세우고 그 순교의 신앙을 이어받자는 정신을 다지고 교단적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1997년 10월 15일 조선일보 기사이다. "임기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김영삼 대통령(YS)의 약속은 아직도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개혁과 사정을 내걸고 문민 정부를 출범시 김대통령은 '임기중 한푼도 안받겠다'는 자기실천 선언과 함께 이의 상징적 조처 중 하나로 골프 중단 결심을 밝혔다. 대통령의 이 선언은 정권출범 초 사정바람으로 이어지면서 대대적인 공직자 골프 금지령으로 발전, 문민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5-6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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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8
  • [더굳뉴스] 김영배 목사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2007년부터 시행한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이 8년만에 폐기됐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손잡이 잡기 등 에스컬레이터 안전이용수칙을 새로 마련해 다음달부터 지하철 등에서 홍보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마련된 안전이용수칙은 손잡이 잡기, 걷거나 뛰지 않기, 안전선 안에 탑승하기 등입니다. 나는 이 캠패인을 찬동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를 준수하다 몇 번 실랑이가 있었고 두 차례 시비까지 벌어졌습니다. 한 시비는 마들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 서기를 지키고 있는 나를 한 여성이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먼저 간다고 밀치기까지 한 여성이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아까 나를 밀치고 간데 대한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사과는 커녕 지하철 수사대에 나를 불법 촬영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수사관에게 카메라 유심까지 제출하는 수사까지 받고 무혐의 처리 됐습니다. 그녀를 무고로 고소했으나 검찰 관계자가 여성이니 봐달라해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또 다른 시비는 노원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남성이 밀치고 지나가 넘어질뻔 했습니다. 화급히 따라가 그를 세우고 사과를 요청했더니 다짜고짜 두 손을 들어 나를 마구 쳐댔습니다. 그걸 막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 상해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경찰 조서를 받고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쌍방 과실로 벌금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을 받고 읽어보니 벌금 대신 하루 10만 원씩 계산해 3일 간 노역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감옥에서의 값을 쳐주는 노역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벌금 30만 원을 내는 것이 아니라 대납에 해당하는 3일 노역을 신청하고 감옥 체험을 했습니다. 실제로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불법으로 나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꾀해 법에 저촉되는 이 판결문을 취득한 뒤 "뉴스프리존"과 "CDN" 매체에 전달했습니다. 언론인이리는 그들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해도 명예훼손인데 몰카범 의혹, 묻지마 폭행으로 구속수감 등의 왜곡까지 하는 만행을 70대 목사에게 저질렀습니다. 기자의 기본 수칙 육하원칙은 기사문이나 글을 쓸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각 요소는 영어의 5W1H(Who, When, Where, What, How, Why)에 해당하며, 정보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고 독자가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쓰기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졸업한 용산고 동문, 총신대 동문, 총신신대원동문, 총회 총대와 산하 1만 교회 목사와 장로 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명예훼손을 끼쳤습니다. 우선 사실의 진위를 알리기 위해 떨리는 가슴과 손을 억제하며 이 글을 쓰는 바입니다. 이 사건 중심 당사자에게는 지난 9월 28일 1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법꾸라지들인 나머지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손해배상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2-24 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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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4
  • [더굳뉴스] 김종혁 총회장과 오정호 목사 총회선거 개혁
    우연의 일치인지 피노키오 모험의 작가 콜로디(본명 카를로 로렌치니 Carlo Lorenzini, 1826년 11월 24일 ~ 1890년 10월 26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피노키오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이고 둘 다 이름이 요셉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나자렛의 성 요셉. 제페토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탈리아 이름 주세페인데(제페토는 주세페의 이탈리아 지방 토스카나식 애칭이다), 주세페가 바로 요셉을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이름인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생겨난 이런 착각 우스개가 있다. 토스카나의 유명한 목수 안토니오가 식탁 다리를 만들기 위해 잣나무 토막을 주워왔다. 그런데 나무를 깎기 시작하자마자 나무토막이 마구 떠들어댔다. 놀란 안토니오는 그 나무토막을 때마침 찾아온 자신의 친구 제페토에게 주었다. 제페토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나무 인형을 만들어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려고 나무토막을 얻으러 안토니오에게 찾아간 것이었다. 죽은 영혼들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하는 성 베드로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어 예수님께서 대신 그 업무를 맡아 보셨다.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의 노인 차례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죠?" "제페토입니다." "혹시 직업이 뭐였죠?" "목수 일을 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죠?" "예." "그 아들은 당신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아들의 팔목과 발에 못자국이..." "그렇소만..." 예수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노인은 의아해하며 어리둥절하다 감격에 겨워 답했다. "아니 그럼 네가 바로 그 피노키오란 말이냐!" 현대인들은 저마다 색안경을 끼고 산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가 공주이고 왕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같아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식 문제, 사업 문제 등 일상적인 삶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 인격자는 인격자대로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인격과 자유에 대한 고민이 있다. 지성인은 지성인으로서의 고민이 있다. 현대 지성인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실망이라고 하는 고민이다. 실망은 기대가 있고 믿는 바가 있었기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망은 진실의 반대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실망 가운데 가장 큰 실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내가 무엇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큰 사업을 한다고 분주하게 정신없이 바삐 살았는데 지금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많이 번 줄 알았는데 손해였다. 무엇인가 손에 움켜쥐었는데 손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무엇이 된 줄로 알았는데 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다. 무엇을 좀 안다고 설쳤는데 지금 보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내 딴에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 쳤지만 세상에서 나 같은 위선자가 없다. 이처럼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부자다, 부족한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며 살아왔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하다. 초라하다.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의 무지를 모르고 있다. 거짓 부자이고 나 자신을 속인 허구에 속아 살고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의 나 됨을 인정하자. 나의 실상을 진솔하게 인정하며 살자. 우리는 눈뜬장님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떤 장님이 밤길을 가는데 자기는 밤이나 낮이나 마찬가지지만 눈뜬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부딪칠까 하는 생각에서 등불에다 불을 켜 들고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장님이 화가 나서 "이 사람아 이 등불이 안 보이는가"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상대편 사람이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이 든 등불은 불이 꺼진 지 이미 오래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장님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을 바로 볼 수가 있다. 눈을 뜨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 우리는 명예, 위신, 지식, 돈 체면 등을 굉장히 위한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다. 진실해져야 한다. 나 자신의 잘못과 수치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무식하며 위선자고 장님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만 한다. 형편없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를 통해 기승전결의 살아 있는 성경이 말씀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선과 허무에 매여 살지 말아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죽어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진실을 찾아야 한다. 곧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나의 나 됨을 잘 알 수 있는 길은 믿음의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야 나의 참된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이 보아 준 나의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좀 더 진실해지자. 하나님이 은혜로 깨우쳐주신 나의 모습이 참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려고 혈기 등등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따르고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이기적인 편견과 선입관의 색안경을 통해 보이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109회 총회선거위원회 위원장 오정호 목사가 개혁신학 관점에서 성경 말씀과 총회 선거법을 적용한 총회 두 임원에 대한 처리는 가히 칼빈의 제네바 개혁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2025년 9월 22일 오후 7시 충현교회 제110회 총회현장에서 제109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의 회의 진행과 지혜로운 처리는 총회 110년 역사에 길이 기념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삼상 6:12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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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3
  • [더굳뉴스] 정영교와 고광석 110회 총회 최후 전략
    싸움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사회 조직이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참혹함은 더욱 커졌다. 삶과 죽음의 존망(存亡)이 그 싸움에 종종 걸리는 일이 많았으니 싸움에 대한 인류의 사고는 정밀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집념이 일정한 틀을 갖출 때를 우리는 전략(戰略)이라고 적는다. 4년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2025년 1월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지나칠 정도로’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매우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싸움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승리와 패배, 종국에는 먹느냐 먹히느냐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있을 때 그와 다퉈 이해를 가리고 승패를 결정하는 일에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2022년 10월 14일 ‘충남노회 폐지 후속 처리’ 안건을 검토하고 그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위원회 서기이면서 제107회 총회 서기인 고광석 목사가 이상규에게서 칠천만 원을 선교비조로 받았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쌩뚱맞은 전달자 이상규의 고발로 선교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돌려주게 됐다. 그런데 고광석은 그 건으로 2025년 9월 22일 열릴 110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서 탈락됐다. 그리고 노회 천서 문제에 걸려 곤경을 겪는 110회 부총회장 단독 후보 정영교 목사와 탈락된 고광석 목사에게 이 어려운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목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이예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해맑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소천하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서구 현대 전략학의 아버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년 7월 1일 ~ 1831년 11월 16일)는 군사 전략을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투의 운용"으로 정의했다. 그렇듯 2025년 9월 22일 열릴 110회 총회 충현교회 현장에서 결전이 있을 것이다. 양측이 세운 최후 전략(戰略)에 따른 전투의 운용은 격렬한 시위까지 흉흉하게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1970년 55회 총회장 김창인 목사(1953 ~ 1987)가 세우고 1984년 4월 강남구 역삼동 새 예배당에 입당해 한때 3만여 명의 교인이 출석했던 충현교회에서 정영교 목사와 고광석 목사의 필사적인 최후 전략이 어떻게 펼쳐질까. 그 역사적인 교회에서 전국에서1600여 목사와 장로 총대가 모일 것이다. 그런데 고광석 측의 어느 목사가 공개 석상에서 "판을 깨야 한다"는 섬뜩한 말까지 내뱉었다. 그것은 이상규의 칠천만 원 고발 불씨 건과 더불어 전통과 보수신학의 정체성을 잃은 110회 총회를 정화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도...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1, 9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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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1
  • [더굳뉴스] 총회장 배광식과 감사부장 오광춘
    검고 하얀 붉고 파란 믿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 보이지 않는 기도를 그의 말씀으로 이루리라 신앙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차디찬 종소리 그러나 아침에는 유다의 황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욕망 총회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비추지 않는 거울이다. 부패한 사람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106회 총회 이후 역사를 향해 다른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을 말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黑死病 plague) 이후 서유럽과 동유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듯이 말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로 우리말대로 "pest"인데 영어로는 "plague(플래그)"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plague가 "전염병"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변한 것을 보면 중세 페스트 대유행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의 병"이라고 할 정도로 참혹하고 무서운 병이다. 실제로 그 병은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사망하는 끔찍한 질병이다. 흑사병이 유럽에 상륙한 건 1346년. 그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정치 경제 제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양쪽 모두 영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착취했다. 소작농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에 예속돼 있었다. 이른바 농노(農奴)였다. 흑사병의 피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흑사병이 창궐한 곳은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 들끓던 검은 쥐들을 통해 지중해 해운 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는 300여 년이 지난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 미친 흑사병 피해가 낳은 결과는 아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중세의 억압적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보다 포용적 사회로 진화했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건 제도가 강화됐다. 사람들이 영주에 더욱더 예속됐다. 보다 억압적인 사회로 퇴행했다. 양쪽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득권과의 싸움에 승리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달랐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노동 인구가 급감했다. 일손이 부족해졌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당시 영국 엔셤 수도원(Eynsham Abbey) 영지에는 소작농이 겨우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이다. 노동력이 희소해져 가치가 오른 소작농은 협상력을 갖게 됐다.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다. 부역과 벌금을 대폭 줄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겠다고 했다. 엔셤 수도원은 소작농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작농의 임금이 올랐다. 강제 노역을 비롯한 온갖 부담에서 풀려나 자유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동유럽은 협상이 아니라 강제력을 지닌 법에 의지했다. 기득권 수호는 잘못된 선택이다. 흑사병 이후 동유럽 역시 흑사병 탓에 노동 인구가 감소했다. 영주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짰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무임금 강제 노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녀까지 몇 년은 영주를 위해 무료로 노역을 해야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1년에 며칠에 그쳤던 체납임금이 일주일에 나흘로 늘어났다. 이런 착취 제도에서는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서유럽에 철도가 깔린 한참 뒤에도 동유럽은 기득권에 손해가 될까 걱정해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2022년 1월 11일 자 기독신문을 통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당동에 있는 총신에 총회타운을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교단 발전은 물론 총신도 사는 길입니다. 과거 제가 총신법인이사를 할 때 이미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총신에 총회 랜드마크를 세워야 합니다. GMS센터와 총신 양지캠퍼스를 사당동으로 집약하면 교단 운영 효율성과 역량결집, 총신 미래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 연구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총회 감사부(부장: 오광춘 장로)가 1월 13일 오전 당일 일정으로 총회 본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먼저 오전 10시 30분 서기 황석산 목사의 사회 가운데 회계 김경환 장로의 기도, 부원 강희섭 목사의 성경 봉독 후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겔 47: 1~11;2을 본문으로 ‘총회를 아름답게 하는 감사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부장 오광춘 장로의 인사, 총회 총무 고영기 목사의 축사, 총무 이영민 목사의 광고 후 부원 한진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의 사회로 총회장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모두 발언을 통해 말했다. "감사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부가 총회 총무의 지출에 대해 지적한 건에 대해서는 시정토록 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과정이니 총회 규정을 약간 벗어나도 양해를 구합니다. 감사부는 총회를 정화시키며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기구입니다. 총회장부터 모든 총회 임원들이 규정을 잘 따르고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적하면 시정하겠습니다." 총회장과 감사부원들과 대화에서는 먼저 감사부가 총회 임원회에 요청한 제105회기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 요청한 건에 대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총회 임원회 결의를 전제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감사부와 선관위, 재판국을 제외한 다른 상비부나 위원회들이 자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장은 총회의 재정 지출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에서 달리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총회유지재단 이사가 된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는 말했다. “감사부원들뿐만 아니라 제106회 총회에 참석한 많은 총대들이 지난 총회 선관위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야기한 선거 과정과 절차의 난맥상을 포함해 선거 준비부터 진행 전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제105회기 선관위가 8월 초부터 9월 총회 직전까지 지출한 재정 건에 대해서는 제106회기 감사부에서 충분히 감사가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오광춘 감사부장은 계속해 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3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상비부나 위원회는 비대면 감사로 진행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비부와 위원회는 철저히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총회 규칙’대로 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하는 부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가 있는 부서는 철저하게 감사하겠습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월 15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부당성을 밝혀낸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했다. 2020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유 국장은 그해 10월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관련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의식이 없거나 습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우리가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습관화된 걷기를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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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8
  • [더굳뉴스] 헌의부는 헌재가 아니다
    2022년 7월 7일 제107회 규칙부(부장 이상협 목사)는 전체회의를 열고 <총회 규칙> 개정안을 다뤘다.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총회 서기가 헌의부로 이첩했던 소송 서류는 재판국으로 바로 넘어간다. <총회 규칙> 제7조 3항 ‘하급심을 거친 소송 건의 경우 이를 15일 이내 헌의부로 이첩한다’를 ‘15일 이내 재판국으로 이첩한다’로 바꾼다. 전체회의에서는 헌의부가 소송 건을 기각하거나 각하하는 결의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각, 각하, 판결은 재판국의 고유 기능이며 헌의부는 서류를 분류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규칙부장 이상협 목사는 “소송 (판결할) 권한은 재판국에 있다. 이것을 침해받을 수 없다”라면서 “헌의부에서 기각·각하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의부가 사실상 예심을 한 것이다. 이건 총회 법이나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협 목사는 <총회 규칙>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이를 잘못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송 건은 재판국 관할이라는 원리원칙을 망가뜨리는 역기능이 발생했기 때문에 바로잡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4일 기독교종합신문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총회 헌의부, "사익보다 공의와 공익 우선하는 결정해야" 제109회 총회 제4차 헌의부 실행위원회(2025.3.31.)는 임원회의 회의가 길어져 약속된 시간(11시 30분)보다 30분을 넘겨서 늦게 시작(12시 04분)했다. 이날 헌의부는 열띤 토론과 논의를 거쳐 결국 서류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반려하는 것으로 마쳤다. 제4차 헌의부 실행위원회에서 다룬 내용은 『재심 청원인에 대한 “2020.2.14. OO 노회의 위임목사 해약결의를 취소한다”라는 판결을 구한다』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단 헌법에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는 '권징 조례 제69조'다. 제69조 : 어느 치리회의 종국 결안에 상소 기간이 끝난 후라도 피고를 면죄할 만한 새 증거가 발현되면 피고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고, 그 수소(受訴) 재판회는 재심에서 공의가 나타날 줄로 알면 허락할 수 있다. 첫째, ‘면죄(免罪) 및 긴중(緊重)한 새 증거 발현’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새로운 증거’를 의미한다. 재심 청원인은 “2020년 2월 14일 OO노회의 위임목사 해약결의 취소의 청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재심 청원인이 ‘제106회 총회 재판국 판결 주문 3항’에서 “소원 사유에 퇴직금 지급이나 사회법 소송에 관하여 어떤 내용으로든 신청한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권징 조례 제134조 2항의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권징 조례 제69조와 제70조에서 말하는 재심청구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즉, ‘위임목사 해약결의 취소’를 위한 ‘면죄(免罪) 및 긴중(緊重)한 새 증거 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106회 재판국 판결 주문은 제104회 총회 감사부 보고서(p. 492)에 청원인과 관련된 내용에 “당사자 간에 합의 조정을 이룰 수 있도록 권면함”을 참고한다면, 제106회 재판국은 총회 감사부 보고를 참고하여 청원인에게 해악을 가한 것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제106회 총회 재판국 판결 주문 3항’에 대한 청원인의 주장은 ‘위임목사 해약결의 취소’를 위한 ‘면죄(免罪) 및 긴중(緊重)한 새 증거 발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재심 청원은 ‘공의(公義)가 나타나야 한다’ 재심 청원인은 ‘후 결의 원칙’에 의하여 상실된 목사의 직분이 복권되었다. 그런데 제106회 재판국의 제107회 총회에 보고된 판결 주문 제2항(소원인은 OOOO교회 위임목사는 아니다)을 뒤집으려는 것은, 공의(公義)가 나타나지 않는 결정이 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공의가 실현되려면, 사익(私益)이 아니라 공익(公益)에 기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청원인 이후에 벌써 2번째 위임목사가 청빙 된 해당 교회를 대상으로 “위임목사 해약결의를 취소”를 구하는 것은 ‘공의실현(公儀實現)’ 반하는 것이며, 교회나 노회의 공익(公益)에도 반하며, 해당 교회나 노회에 고통을 안겨주며, 오직 청원인의 ‘사익추구(私益追求)’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 보인다. 즉, 권징 조례 제69조가 밝히는 ‘공의가 나타나야 하는 것’과 맞지 않아서 재심 청원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셋째, ‘재심청구의 기간’을 지켜야 한다. 본 교단 총회는 이 기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이에 대한민국의 헌법적인 구조에서 이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단 총회는 민법에 근거한 사단(社團)에 속한다. 그래서 민법과 관계된 법령들을 참고로 재심청구의 기한을 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재심청구의 제한 기간이 중요한 것은 ① 법의 안정성과 확실성의 보장을 위해서 필요하다. 사건이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서 다루게 되면 많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② 재심청구의 남발 방지를 위해서 필요하다. 만일 재심이 자유롭게 허용된다면, 종결된 사건이 계속해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결국 노회나 총회 재판에 대한 부담이 극대화되며 혼란이 끝나지 않게 된다. 민사소송법 제456조(재심 제기의 기간) ① 재심의 소는 당사자가 판결이 확정된 뒤 재심의 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이내에 제기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기간은 불변기간으로 한다. ③ 판결이 확정된 뒤 5년이 지난 때에는 재심의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 ④ 재심의 사유가 판결이 확정된 뒤에 생긴 때에는 제3항의 기간은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계산한다. 위의 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① 재심의 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이내의 불변기간, ② 판결 확정 후 재심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계산한 5년 내 재심청구』라는 것이다. 앞선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OOO 씨의 OO 노회 OOO 씨에 대한 재심청구』는 확정판결 일자(2020.2.14.)부터 5년이 지난 시점에는 청구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단 헌법적인 정신인 '5년 무흠'과 동일하게 민사소송법의 '판결 확정 5년 이내'를 적용한다면, 2025년 2월 14일 이전에 재심의 청구가 가능했었다. 즉 재심청구의 시효가 만료되어 청구할 수 없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제4차 헌의부 실행위원회(2025.3.31.)에서 다루고자 했던 ‘재심청구의 건’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권징 조례 제69조의 재심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서 다룰 수 없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는 ‘헌의부 OOO’의 숨은 의도와 배후가 궁금하다. 2025년 2월 25일 기독신문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헌의부(부장:조무영 목사)가 2월 24일 총회회관에서 제3차 실행위원회를 열고, 동목포노회 박상옥 씨가 올린 동목포노회장에 대한 소원 재심 청원 건을 다뤘다. 헌의부는 박상옥 씨가 올린 재심 청원 이유가 새로운 것이 없고, 제108회 재판국에서 다 확인한 내용인 것을 감안해 다시 반려키로 했다. 헌의부는 또 최근 공포된 ‘총회 행정 및 분쟁 해결 시행령’ 내용 중에 헌의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문제를 헌의부 임원회에 맡겨 조정하기로 했다. 해당 시행령은 제109회 총회에서 허락되고 규칙부 심의를 거쳐 최근 총회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2025년 4월 7일 기독교종합신문의 세가지 논조에 대한 반론이 제기돼 게재한다. 1.새로운 사실이 발현됐느냐? 면직,제명, 출교가 취소되면, 위임목사직은 자동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이것을 별건으로 다루었던 것은 절차상 하자가 분명하다. 2.사익과 공익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공익 때문에 힘없는 약자는 희생되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3.박상옥 씨의 건은 2024년도에 제108회 총회시에 헌의부는 재판국에 이첩을 했는데, 똑같은 사실로 또 올렸기에 109회 헌의부는 일사부재리에 의해서 반려를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본 건 1건을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 의거 서기부에서 반려하였고, 다른 건은 헌의부 임원회는 총회시 서기부로부터 받아서 서류, 절차 미비로 반려하였기에 재재심이라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더욱이 총회는 재심기한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과도한 탄핵소추와 입법권 남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존중돼야 한다”라고 했다. 헌재는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와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예결특위에서 증액 없이 감액만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윤석열 정부 주요 정책들은 야당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다”라고 했다. 헌재는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된다고 인식해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나 헌재는 다수당의 전횡과 횡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풀어야 했다고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은 위법적 계엄 선포로 국가긴급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재명 대표는 헌재 선고 직후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민주적 폭주는 거의 모두 이 대표가 자신의 방탄을 위해서 행한 것이었다. 윤 대통령이 없는 이제 이 나라에서 가장 통절하게 반성하고 자책해야 할 사람은 이재명이다. 민주당이 국익을 우선하는지 자신들의 권력욕을 앞세우는지 지금부터 국민들이 냉정하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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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6
  • [더굳뉴스] 기승전결의 가치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미국의 변호사, 주지사, 남북 전쟁 때의 북군 장군, 정치인, 저술가 루이스 월리스(Lewis Wallace, 1827년 4월 10일 ~ 1905년 2월 15일)가 1880년 쓴 모험 역사소설이었다.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벤허는 지니고 있다. 원제는 Ben-Hur로, 실제 아말렉과 싸울 때 두 팔을 받쳐 모세를 도운 아론과 훌의 자손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벤허지만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벤-후르. 개역한글판 표기법으로 하면 벤-훌이 된다. 의미는 성경의 모세의 동역자 '훌의 아들(Ben-Hur)'. 참고로 이름(First name)은 '유다'로, 풀네임은 히브리어식으로 유다 벤 훌(Judah Ben-Hur), 영어식으로 주다 벤 허이다. 걸작이다 보니 영상화도 여러 번 되어서 할리우드에서만 4차례나 영상화되었다. 사실상 영화가 소설보다 더 유명한 경우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벤허는 대부분 1959년에 개봉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William Wyler, 1902년 7월 1일 ~ 1981년 7월 27일)의 영화판이다. 2004년 미국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는 벤허를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국 국립 필름 등록부에 등재 했다. 그 이유를 '문화적, 역사적, 심미적으로 가치가 큰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끔 나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지구상의 60억 인구를 제일 값비싼 사람에서부터 제일 값싼 사람의 순서대로 세워 놓는다면 나는 몇 번째쯤이나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므로 이러한 질문과 궁금증은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 생활 이야기는 좀 다른 것 같다. 즉 어떤 방식에 의하든,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연간 소득, 은행 잔고, 직업, 옷, 타고 다니는 차의 종류, 학벌, 신분, 출석교회 등이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즐겨 쓰이는 기준들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나라는 사람의 진실 된 가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 자신보다는 나를 둘러싼 포장지의 재질과 디자인과 색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브랜드 컨설팅회사 밀워드 브라운이 2016년 9월 7일(현지 시간) 홈페이지(http://www.millwardbrown.com)를 통해 발표한 올해 '브랜드Z 톱100'에 따르면, 구글의 브랜드 가치는 2290억 달러(약 264조 원)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위인 애플은 브랜드 가치가 8% 줄어든 2280억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작년까지 애플이 3년간 1위 자리를 차지했는데, 구글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며 순위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조가 넘는 금액이 된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삼성이 유일하게 48위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94억9천만 달러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내 이름 석 자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볼 때 나의 가치는 그리 커 보이지 않다. 목사로서의 가치는 그만두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조차도 형편이 없다. 나는 바울 사도처럼 항상 기뻐하지도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나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에 대한 열정도 없다. 주기철 목사님처럼 불의에 담대하지도 않다. 존 칼빈이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말씀에 대한 은사도 없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업에 공헌할 수 있는 재산 가치도 거의 없는 무능 그 자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위로가 되고 감사한 것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지금도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자기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신다. 일찍이 초대교회는 젊고 유능한 스데반과 같은 집사가 있었다. 초대교회는 스데반으로 인해 이제 막 전도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도록 내버려 두셨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스데반이 순교함으로 더 빠르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 현장에 바울도 있게 하셨다. 이러한 성경의 사건들은 나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내 기준에 의하면 나는 별 볼일 없는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천하보다 더 귀하고 100조 원의 코카콜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가 있다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나를 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모두는 자부심을 갖고 살자. 기죽지 말자. 세상적인 가치로는 보잘것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가치와 판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순간순간 낙심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더 이상 일그러진 자화상을 회복하자. 그 길은 나를 둘러싼 포장지를 벗겨내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심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있다. 비록 내 모습은 질그릇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나를 사용하시기에 나의 가치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자. 그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벤허는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의 하나인 기독교적인 호화 스펙터클 영화의 견본으로 꼽힌다. 제작 당시 기준으로 역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동시에 가장 많은 제작비(1517만 5천 달러)가 투입되었다. 의상 제작자 엘리자베스 해펜든은 영화 내 의상 제작자 100명,·조각상 제작자 200명으로 구성된 워크숍을 통솔했다. 촬영은 1958년 5월 18일 시작되어 1959년 1월 7일까지 진행되었고 주 6일, 하루 12~14시간 작업하였다. 사전제작은 1957년 10월 무렵 시작되었으며 후반 작업에는 6개월이 걸렸다. 1만 명 정도의 엑스트라, 낙타 200마리, 말 2500마리가 촬영에 동원되었다. 그 유명한 해전(海戰) 장면은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 내 야외 촬영부지에 거대한 물탱크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찍었다. 작품 중 나오는 9분 분량의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경주 신은 영화사에 있어 매우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많은 돈이 투자되고 엄청난 물량이 동원돼 큰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가장 귀한 가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유다 벤 허와 그 가족이 구원받고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고 전하는 데 있을 것이다. 가격과 가치에는 차이와 공통점이 있다. 가격은 벤허의 제작비나 규모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로 물건의 가치를 돈으로 나타낸 것이다. 반면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대상이 지니고 있는 쓸모를 의미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지만, 가치는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끔 사람들은 가격(Price)과 가치(Value)란 단어를 혼동해서 쓰곤 한다. 가격과 가치가 괴리되기 쉬운 또 하나의 원인은 가격(價格)은 눈에 보이는 숫자인 반면, 가치(價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1만 원과 1만5천 원의 가격표를 보고 어느 것이 싸다, 비싸다를 쉽게 파악한다. 숫자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1만 원이 싸고 1만5천 원이 비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숫자 그 자체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매우 상대적이다.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형성되었을 때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반대로 경험이 부족하여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없다면 잘못된 기준점으로 가치판단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의 평가가 단기적으로는 인기투표와 감성에 의해 좌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말이다. 기승전결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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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7
  • [더굳뉴스] 기승전결의 행복
    케임브리지 대학의 바바라 사하키안(Barbara Sahakian) 교수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루에 무려 3만 5천 번이나 결정을 내린다고 해요. 하나하나의 결정, 예를 들어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살지 등등. 그런데 그런 선택은 하루가 지나면 거의 잊어요. 잊어야 살 수 있습니다. 잊어야 기억할 수 있지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이런 망각력을 흉내조차 못 낼 겁니다. 망각력을 높여가다 보면 지금까지 있었던 분노나 미움도, 혹은 방금 일어났던 화도 6초 만에 사라져요. 하룻밤 자고 나면 더 희미해지겠죠. 생각해 보면 잊는 힘 덕분에 여태껏 중요한 인간관계도 깨지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어요. 망각력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거죠. 분노와 질투 같은 인생의 중요하지 않은 80퍼센트의 일은 잊어버리고, 20퍼센트의 중요한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약자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려고 의료지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물질적으로 부요하면 행복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 물질적으로 부요하면서도 불행한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에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곧 가정과 사회와 국가 간에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로 인하여 심한 갈등과 대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한적인 대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가? 사람들이 대화를 하지 아니하고 극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극한적인 대립과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이해하며 사랑의 대화가 있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옥의 삶은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이 땅의 지옥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의 삶은 자기 자신도 비참함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극단적인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가정에서 부부간에 나타나고 부자지간에도 그렇고, 직장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심한 갈등과 위기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교회에서 대인관계를 깨뜨려 대립양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보다는 불행의 결과를 가져오는 요인들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크고 거창한 문제와 사건보다도 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문제들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소한 것들이 큰 문제로 발전되기 전에 미리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갈등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터놓고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 곧 자격지심 때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외모, 주변 환경, 가정생활, 자신의 내적 요소, 의지력 등의 한계로 인하여 갖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열등감의 피해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약점인 열등감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를 원치 않고 혹시나 다른 사람이 자기의 열등감을 건드리면 극한적인 방법으로 비방하고 헐뜯고 중상모략(中傷謀略)합니다. 그 결과 대립의 양상으로 발전되어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하며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마다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살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는 행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길입니다. 이러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저마다 양보가 필요합니다. 화해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의 힘으로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과 화해시켰을 뿐 아니라 이웃과 이웃의 관계를 화해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가정에 생겨난 여러 가지의 이유와 이기심 때문에 생겨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중보자로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자로 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그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의 열등감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 봅시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무릎 꿇고 열등감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할 것입니다. 기승전결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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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4
  • [더굳뉴스] 기승전결의 투자
    세계 질서가 빠르게 무너지고 국가와 민족 간의 분쟁과 경쟁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오늘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가 가능했던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광적 수준의 편 가르기와 이념주의로 타락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동시에 가짜 뉴스와 비이성적 음모론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논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만의 몰락이 아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과학과 이성을 뒷받침하던 현대 문명 그리고 그것을 이끌고 지탱하던 칼빈주의 신학 사상 그 자체가 역사적 몰락의 위기에 처했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해가면서 우리에게 주식투자라는 생소한 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들 주변에도 주식에 투자하고 시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패나 많이 있는 것 같다. 주식에 투자하려면 제일 먼저 손해와 이익의 계산을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한때 기분이나 직관을 가지고 흥이 나는 대로 투자를 했다가 집을 날리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종목에 투자를 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다 수집하고 파악한 후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손해 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이익이 얼마나 되는가 또 손해가 얼마나 나는 가에 관심을 집중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모두는 이익에 앞서고 계산이 매우 빠르다. 심지어 이익을 내기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해를 끼치고 모함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자기 이익을 구하면서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주 본능적인 일이다. 한평생을 사는데 이왕이면 이익을 남기는 인생을 살아야지 늘 손해만 보며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크게 이익을 남기는 인생을 살려면 어디에 얼마나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박이 확실하다면 그곳에 정열과 시간, 재물 등 모든 것을 던지는 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들 또한 나 자신도 내 인생을 위해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하고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 해답을 찾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이에 대한 해답을 마가복음 8장 3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제시해 주셨다. 여기서 유익은 이익 혹은 이윤이라는 뜻의 단어다. 요즘 자본주의 시대에나 쓰일 것처럼 보이는 그 단어를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다. 이 세상 것을 위해서 투자하고 살면 크게 성공해서 부자로 살 수 있다. 또한, 온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쪽에는 온 세상이라는 추가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목숨인 생명이라는 추가 있다. 어느 쪽 추가 더 무거운지 내 인생을 어디에 투자하고 사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가, 양쪽의 무게를 달아 보아야 한다. 달아보니까 이렇다. 먹기만 하면 토하는 병에 걸리면 진수성찬도 역겹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동차라도 몸이 아파 운전할 수 없다면 그 고급차도 다 소용이 없다. 최고급 푹신한 침대라도 불면증에 걸리면 부질없는 것이다. 불평과 짜증 다툼만 생길 뿐이다. 건강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그 세상을 누리고 살아가야 할 주체인 나 자신의 생명이 죽은 것이라면 아무 소용도 없다. 내 목숨을 잃으면 동시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셈이 된다. 내 영혼이 무너지면 가지고 있던 세상 것은 오히려 재앙이 된다. 먼저 목숨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믿음을 택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나는 확실한 투자가 될 것이다.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높고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온전해야 내 소유가 모두 축복이 된다. 짧든 길든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매일 신이 나고 순간순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면 세상 문물과 만사가 다 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세상 것보다 더 소중히 내 마음에 담고 많이 심어야 한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신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듯이 욕심으로 물질적인 것만 심지 말고 믿음으로 신령한 것들을 많이 심어야 한다. 그것이 내 인생사에 제일 큰 이익이 나는 확실한 투자다. 투자(投資, investment)와 투기(投機, speculation)에는 공통점과 차이가 있다. 투자(投資, investment)와 투기(投機, speculation)의 공통점은 이득을 얻기 위하여 시간을 투입하거나, 자본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의 차이점은 그 영어 문자가 그 의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투자(investment)는 vest(속옷)을 in(안에 입는) 구체적인 행위를 뜻한다. 반면에 투기(speculation)는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나 추측’(ideas or guesses about something that is not known)을 의미한다고 옥스퍼드 영영 사전이 정의하고 있다. 기승전결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13:44-46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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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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