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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희 칼럼_ 정년문제 처리에 대한 아쉬움
    해마다 총회 때면 정년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법대로 만 70세 정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꼭 정년만을 고집할 수 없는 피치못할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대우(?)를 받으며 조기 은퇴하는 경우는 여유 있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 목회한 목사에게 대우는커녕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는 은퇴가 걱정인 교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정년 문제에 대하여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잘 처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헌법도 살리면서 지 교회 사정도 고려해 주는 신축성이 필요하다고 사료 된다. 제107회 총회 석상에서 한 필자의 동의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은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정년연장은 헌법 정신에 배치되는 주장인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한 지 교회나 1구역(4지 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70세까지 시무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시무 연령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만 70세 정년 이전에 사망을 하거나 병고로 더 이상 목회가 불가능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정년 이전에도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물러날 사정이 없을 때는 만 70세까지만 시무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라고 해석한다. ② 물론 전항과 같은 해석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란 꼭 만 70세 이전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은퇴할 시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은퇴 시점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하여 원래 법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60세까지 한다였는데 만 70세로 연장한 법이라면 만 70세가 되어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더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종신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만 70세로 줄여 놓은 것이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억지는 아니다. 목사와 교회 간 합의만 되면 다소 정년연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③ “근로자가 정년이 지난 후에도 사용자의 동의 아래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용자와의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왔다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당해 근로자가 정년이 지났다거나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수는 없다.”라는 판례가 있다(대법원 2002두12809). 물론 목사와 교회의 관계가 근로관계는 아니더라도 목사와 교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고할 판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장대신 51회 총회는 ‘목사 정년 70세는 유지하되 교회에서 원하면 계속 시무할 수 있다’라고 결의하였다. Ⅱ. 정년연장을 위한 신축성 있는 방법은 없는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회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채로 지 교회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당회의 결의로 일정 기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결의해 주면 된다. ② 정치 제12장 제5조 1항: ‘총회는 교회 헌법(신조, 요리 문답, 정치, 권징 조례, 예배 모범)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항존직 만 70세를 만 71세 생일 전날까지로 해석하여 총회 결의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지 교회 시무는 몇 년을 연장할 수 있으되 단, 대외(노회, 총회, 산하기관) 정년은 만 70세를 유지하기로 한다.”로 총회가 결의하여 시행할 수 있다. 총회가 결의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 Ⅲ. 결론 70세 정년제는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헌법의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러므로 사회 상황이 바뀌고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신축성을 발휘할 수 있다. 최종 결론은 총회나 노회에서의 정년은 현재대로 유지하되 각 지 교회가 합의할 경우 지 교회 목회만 몇 년을 더할 수 있도록 총회가 결의하면 된다. 노회에서 선거 피선거권은 제한하고 시무하는 지 교회 당회장권을 주면 된다. 아무리 총회가 결의하여도 교회가 연장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원하지 않는 교회에 피해가 되지도 않는다. 통계상 정년 문제로 인하여 교단을 떠나는 교회들이 많다고 하는데 서로서로 입장을 이해하며 정년 문제를 신축성 있게 처리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헌법자문위원장 역임. 성민교회)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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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2
  • 우리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자!_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결국은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야 한다. 에피소드로 끝나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에는 미래가 없다. 본래 에피소드란 막간극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트콤(sitcom)이라고 볼 수 있다. 시트콤은 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이 시트콤인 에피소드의 재미는 서브젝트(subject)인 주인공이 프로젝트(project)에 휘말려 결국은 오브젝트(object)가 되어버리는 데 있다. 사실상 어떤 선거든지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그 선거를 통해서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즉 서브젝트가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선거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계획되고 기획되기에 선거를 관리, 기획하는 선관위는 이 프로젝트 운영에 공정을 기해야 하며 프로젝트 되는 선관위 규정에 스스로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프로젝트화 되지 못한 출마자는 자연히 오브젝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번 우리 선관위는 선관위 스스로가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일에서 처음에는 법과 원칙에 의해서 투명하게 할 것을 공표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안에 따라서 법과 원칙은 적용하고 크게는 정치적 고려를 스스로 하고 법과 원칙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회의 선거는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말이다. 결코 희극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극이 되어버리면 계속하여 이런 일이 발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단 한 번 있었던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는 미래가 없다. 선거란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행하여 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는 ‘지지할 수 있음’과 ‘지지할 수 없음’에서 선택하는 자유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이 두 가지를 다 하지 못하게 한 아주 나쁜 선거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지할 수 없음도 지지할 수 있음도 사라져 버린 단독후보로 결정되는가 했는데 이제는 ‘양해서’와 ‘사과문’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총대들에게 두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막장 선거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렇게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있는가? 두 후보인가? 아니면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선관위인가? 나는 선관위라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선관위는 없어져야 한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입각해서 말이다. 이토록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변질시키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내밀하게 부총회장 선거를 들여다보자.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선거법을 위반했습니다’라고 사과한 후보를 아니면 선거법을 위반했음을 사과했기에 ‘양해합니다’라고 한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상 둘 다 문제이다. 이렇게 하려면 정치적인 고려를 처음부터 했어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정치가 되고 화합과 이해의 정치가 된다. 그런데 한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지 않고 미루다가 선거 막판에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에게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사과하고’ 이미 자격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무슨 언질(?)을 주어서 양해한다고 ‘양해서’를 쓰게 해서 두 사람 모두를 다 자격 없는 후보(?)로 만들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난, ‘양해서’를 쓴 후보도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불공정하고, 깨끗하지 못한 선거에 ‘양해서’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총회의 지도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양해서’를 쓰지 않고 후보사퇴를 선언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문을 쓰고 후보의 자격을 얻어 부총회장에 출마한 후보에게도 묻고 싶다. ‘선거관리 규정을 어긴 후보입니다’라는 사과문을 쓰고 후보자가 되어야만 했는가를 말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규정을 어겼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사과문을 쓰고 후보가 되려고 하는가이다. 후보가 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사실상 교회의 선거는 이기고 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다. 누가 더 잘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가를 선출하는 것이기에 굳이 사과문까지 쓰고 나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후보가 되려고 했는데 당신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난 선거규정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후보의 자격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일꾼이 되십시오”라는 사퇴의 변을 내고 사퇴했다면 우리 총회의 정치는 성경적이고 헌법적인 정치가 살아났을 것이다. 선거규정 하나도 지키지 못한 후보가 어떻게 헌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후보자들이 사퇴하지 않고 짜고 치는 무슨 판처럼 선관위에 의해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서로 잘해 봅시다’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총회는 100회 총회 때부터 교회의 정치가 성경과 헌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신자유적인 심리정치란 참으로 매우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이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유권자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정치이다. 이 정치는 사실 유권자들에 유리하게 되는 것 같지만 기득권자들에 유리한 정치이다. 그래서 그 심리정치에 의해 수년 전(2016년) 우리는 두 사람의 목사 부총회장 후보를 자격 없음으로 규정하여 탈락시키고 현장에서 두 후보자를 선정하여 투표하는 장로교 역사상 있을 수 없는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는 다시 자격 없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게 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자격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더 좋아졌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법 규정 앞에서 평등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고민한다. 선거에 임하는 나 자신도 투명하지 않고 더욱더 선거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인 두 사람 모두 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출마했고 이제 나 역시 내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선거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 총회의 바른 정치는 언제나 구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아예 구호도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가 장로교 정치에 맞게 되려면 사실 나와는 상관없이 작성된 ‘성명서’지만 8월 29일 전국호남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우리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총회 참석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성명했기에 그랬으면 한다. 적어도 그날 참석한 450명 정도 되는 총대들은 부총회장 선거에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면 호남협의회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선출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성명서’가 있다면 나 역시 찬조금 들고 그날 참석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자격이 있든 없든 두 후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우리 총회의 부 대표자와 대표자의 자격을 2년 동안 주게 될 것이다. 심각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바보이다. 사실상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고는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삶에서 목사로서 터득된 비결이 있다. 믿음이 없는 바보, 신학과 신앙이 없는 멍청이는 항상 세상에서 방황하고 믿음 있는 신학과 신앙에 굳게 선 자는 세상에서 여행하고 산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방황을 해도 우리 총대들은 여행을 했으면 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왜? 두 후보자에게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자격을 주고 우리에게 할 수 없는 투표를 하라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권위주의자에게는 투표하지 말자. 도덕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민주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아니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수년 동안 나는 권위주의자에게 참 권위가 없고 도덕주의자에게 진정한 도덕이 없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민주투사에게 정작 민주 의식이 없음을 보아왔고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인 개혁주의자들에게 참 신앙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찍자. 누가 한들 나아질 총회가 아니다. 우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러나 손가락을 잘라낼 각오로 찍어야 한다. 좋은 놈(?) 중에서 좋은 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서 나쁜 놈(?) 중에서 더 나쁘지 않을 분(?)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이렇게 후보자 두 분을 나쁜 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쁘면 자격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한 분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섯 분의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기도는 하지 말고 화장실에 앉아서 매일 매일 고민해 보자. 어차피 프로젝트 된 선거에서 서브젝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를 골라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개혁신학과 신앙의 반대자인가를 투명성의 원리에서가 아닌 불투명성의 원리 속에서 선택해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잘못하면 지역적이고 신학적이고 광신(狂信)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힐링(healing)의 효과를 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킬링(killing)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총대들에게 두 분의 후보 중에서 누가 킬링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총신과 광신의 대결도, 영남과 호남의 대결도, 교갱과 영성의 대결도, W.E.A의 찬성과 반대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아주 심각한 신앙적, 신학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실 문화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왜 신앙이나 신념과 다른 합리적인 견해가 신앙이나 신념의 도그마의 껍데기를 깨고 들어오면 우린 갑각류들이 발작하듯 반발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느덧 내 개혁신앙과 신학이 지적 갑각이 되었고 교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신앙의, 신학의 순결함을 지키고 방어한답시고 이념적 순결주의가 되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내 신앙과 신학의 정당성만 스스로 부여하고 신학적, 윤리적 나르시시즘에 젖어 두 후보에 대한 차이도 차별도 모른 채 내 생각과 판단에 틀리면 조롱, 내면의 비웃음과 반대로 일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프로젝트화 한 선관위원들을 향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술수를 지켜보고만 있는 비참한 총대일 뿐이다. 이젠 비굴해지기까지 한다. 문화신학자인 리처드 니버는 “교회가 현대의 문화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교회의 영적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우리 총회의 정치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이러한 선거 프로젝트를 만들고 힘쓰는 동안 우리 총회의 영향력은 총회 안에서도 그리고 사회 속에서도 급격히 쇠퇴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투표를 하든 안 하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부총회장이 될 것이다. 부탁한다. 킬링하지 말고, 힐링의 총회 정치를 세워가기를, 그리고 이 선거는 우리 교단 역사에서 한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길 기도한다. 누가 부총회장이 될 것인가? 당신이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누가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 - 이 글은 2022년 9월 6일 기독신문의 ‘선관위 입장, 사과문 감사의 글’이 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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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지혜에 대한 사랑
    6.1 지방선거를 42일 앞두고 부실 선거관리로 말 많던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했다. 노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위원 회의에서 “부실 투표 관리 책임을 통감한다”라면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공직선거 관리 총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현직 대법관이다.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하더라도, 대법관 직위는 계속 수행한다. 노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아 2020년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다. 4월 2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는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경기남부청 반부패수사계는 지난 5일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및 운영 부실 논란에 휩싸인 노 선관위원장에 대한 고발 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2021년 3월 20일, 4월 7일 지방선거 보궐선거를 앞두고 맨돈 소강석이 내려다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재난지원금은 가급 적 3월 중에 집행되도록 속도 내달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작년 국회에서 “총선 전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이번 지원금도 선거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거법은 ‘공무원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대통령의 선거 전 재난지원금 독촉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면 무엇인가. 지난 2021년 2월 이재명 승리를 위해 뛰던 문재인은 여당 대표·장관 등을 대동하고 가덕도를 찾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방문 하루 전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주요 공약이라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그래도 “대통령 직무 수행”이라고 했다. 선거 심판이 아니라 정권 하수인이다. 총회 소속 목사들의 카톡 여러 모임방에 제3차 합동 포럼 개최에 관한 공고문이 올라왔다. 일시 : 2022년 8월 16일(화) 10시 30분 ~ 2시 장소 : 대전인터시티 호텔 대상 : 정회원 및 지역별 게스트 장로 3인씩 특별초청 1부 예배 설교 :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축도 : 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대행) 2부 축사 및 특강 축사 :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 배만석 목사(사랑스러운교회, 전 총신대 신대원 총동창회장) 장봉생 목사(서대문교회, 은혜로운동행기도회 본부장) 환영사 : 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특강 :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고려대학교 법학박사 과정)_ 윌버포스와 합동 포럼의 비전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 또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금지되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며 헌법과 법률로 위원의 임기와 신분을 보장하여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배제함으로써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총회선거규정은 위원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6조(조직 및 직무) 1. 총회임원,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및 기관장, 재판국원, 선거관리위원(선출직), 총회 총무 입후보자(이하 ‘입후보자’라 함) 및 그 지지자는 선거기간 중 일체의 금품 요구 및 금품 수수(金品授受)를 할 수 없다. 4.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 선거운동기간이 종료한 후, 총회 개회 일부터는 교인 동원 및 문자 전송 등 일체의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위반 시에는 후보자격이 상실된다. 단, 부임원으로서 정임원 후보인 경우와 단독후보로 출마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허락을 받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 총회선거법 제26조 4항은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라고 규정하는데 그것을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선거관리위원장은 온갖 행사에 참여해 맨쇼를 하며 어겨도 되는 것인가. 그러한 특권은 사회법과 총회선거법에서도 금하는 금품 수수의 맨돈 위력에서 나오는 것인가. 제28조(선거규정 위반자 처벌규정) 2항은 다음과 같이 엄하게 규정한다. 본 규정 제26조 1항과 2항을 위반한 자로서 금품제공자는 영구히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고 금품을 요구 및 받은 자는 금액의 30배를 총회에 배상하며 위반 즉시 10년간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되 그 기간은 배상금을 총회 입금일로부터 계수한다. 목사임에도 성이 차지 않아 배광식도 소지한 법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언론인으로 알고 있다. 총회 선거기간의 정치적인 특강에 앞서 옛 선비들도 금과옥조(金科玉條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기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나 규정)로 삼은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아무 상관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의 불미(不美)한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얻는 데 매우 열심이었다.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하나의 학문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지혜에 대한 사랑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관습도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무에서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신탁에 조회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신의 계시에 의지했을까? 그들이 신탁에 의지한 것은 지혜의 부족 탓일까, 지혜로움 때문일까. 신탁에 의지한 그리스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신의 지혜를 구한 까닭은 인간 지혜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 지혜의 부족함을 인정한 것이 바로 그들의 지혜였다. 신탁의 뜻을 해석하면서 그리스인들은 더 지혜로워졌다. 신적인 계시의 뜻을 묻고 따지는 과정은 인간적 지혜를 갈고닦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신탁의 관습은 신탁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묻고 따지고 시험하는 지혜’,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는 지혜’를 가르쳤던 것이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수많은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과도함을 삼가라.” 이 두 경구가 왜 거기 새겨져 있었을지는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욕에 사로잡힌 자에게 어떻게 신의 뜻이 올바로 전해질 수 있을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그러니 “너 자신을 알라”와 “과도함을 삼가라”는 신탁에 앞서는 신탁, ‘최고의 신탁’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한계를 알고 지나침 없는 행동의 지혜를 찾는 일이었으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2-25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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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8-12
  • 윤석열 대통령 대처 수상처럼
    윤석열 정부의 동시다발적 사정(司正)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을 비롯해 경찰과 감사원 등 기존 사정 기관은 물론이고 법무부, 국토교통부, 통일부와 같은 정부 각 부처까지 전 정권 관련 각종 의혹 파헤치기에 나서고 있다. 이전의 경우 정권교체 후 벌어진 사정 작업이 주로 과거 정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윤석열 정부의 사정 작업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현 야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와 현재 권력 모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 적이 될 능력을 갖추는 것, 적이 되는 적은 강한 천성을 전제로 하며 그 까닭에 저항을 찾아다닌다... 공격하는 자의 힘에 대한 일종의 척도는 그에게 필요한 적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맞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나 또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뤄진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승부를 건 문제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융통성과 무기를 동원해야만 맞설 수 있는 저항들 그리고 자신과 동등한 힘을 지닌 적을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가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가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요행으로 여겼고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을 이끌고 처음 2~3년 동안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대처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선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를 매도했다. 그녀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모두 질식시켜서 영국 경제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주범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깨고 소비에트연방을 힐난했다. 1978년과 1979년에 걸친 겨울, 몇 개의 공공부문 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대처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면서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핸 총리를 이 파업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대담하고 분파적인 발언으로서 저녁 뉴스를 장식하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선거의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문재인처럼 유권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안심시켜야지 겁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 좌파가 득세한 당시의 영국은 그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대처는 지금까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해왔지만 총리가 된 이상 논조를 절제하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금 윤석열 시대처럼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대처 총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선거 때 공약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삭감이었다. 대처 총리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캘러핸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 다수가 수년간 자신들을 대해온 대처의 처신에 더 이상 분개를 참지 못하고 이준석과 이재명처럼 공개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대처는 보수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온건한 의원들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대처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경력에 오점이 남을까 봐 두려워했다. 대처 총리는 그들을 내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작심하고 모든 반대자를 밀어낼 기세였다. 적들의 영역은 점점 커졌고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하락 일로에 놓여 있었다. 벌써 탄핵을 들먹이는 윤석열 반대 여론처럼 다음 선거에 그녀가 끝장날 것이 틀림없었다. 1982년 대서양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러사아의 푸틴처럼 국내에 산적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포클랜드섬을 침공했다. 포클랜드는 영국령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군사정권 관리들은 영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불모지인 포클랜드를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처는 주저하지 않고 포클랜드에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1만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무의미하고 희생이 큰 이 전쟁을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다수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섬의 재탈환에 실패한다면 보수당은 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독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그녀의 자질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놓던 바로 그 자질을 말이다. 완고한 고집이 이제는 용기와 고결한 기품으로 보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데다 제 경력만 챙기는 주위의 남성들에 비하면 대처 총리는 단호하고 강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자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삽시간에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가 잊혀졌다. 대처는 정치무대를 장악했고, 다음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윤석열처럼 마거릿 대처도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중산계급의 여성이고 우익 과격파였기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는 권력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선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만(아웃사이더로 살기는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렇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여느 검찰총장과 달라 세간의 이목을 모으던 차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처가 주위의 남성들처럼 행동했다면 다른 남성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아웃사이더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처럼 당당한 대처 역시 덧없는 대중적 인기 따위에 영합하지 않았다. 김종인 같은 정치꾼들은 지지도의 수치에 일희일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즉 정치가들이 전쟁을 하면 얻으려고 하는 목표물)은 호감을 주는 인사보다 우위를 차지한 인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일부 대중이 미워하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자들, 거짓의 제왕 이재명이나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자들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든든하게 의지할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존재다. 그래야 피아가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드러날 것이다.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일이나 작금의 이런저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눈 가리고 아웅 식 여론 조사 한가운데로 밀어 넣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정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그런 허위의 한가운데는 정치꾼과 언론꾼이 설치는 이권 타협의 영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긴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언제나 저항이 가장 적고 우호적인 경로만을 찾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망각하게 되고 조국과 추미애처럼 우왕좌왕하는 어중이떠중이들과 함께 수렁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스스로를 적들에게 둘러싸인 아웃사이더로, 투사로 여겨야 한다. 끊임없는 전투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의의 용사로 강인하고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좌파 무리들과의 반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대처 수상처럼 반목 없이는 전투도 없고 전투가 없으면 승리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파업을 즐기는 자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문재인 패거리의 유혹이 아니라 대처 수상의 정면돌파 대처를 본받아 민노총의 파업 병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양보해지기보다는 불법을 타파하고 이겨 존경받고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불법하고 불의한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더 오래 지속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요즘 진행되고 있는 과거 정권의 수사 정국에 대해 “통상 이런 사정 작업의 최종 종착역은 전직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는데 과연 어느 시점에 전 대통령의 이름이 흘러나오느냐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BC 545년경~BC 470년경)는 '손자병법'에서 대처 수상이 실행한 것처럼 말했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적이 오기를 대비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누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처 수상처럼만 하면 영국병을 고친 대처 수상처럼 한국병을 고친 위대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나서 선동하는 좌파 무리가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외침과 기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의 함성이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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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8-08
  •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총회 무게 있는 부서의 장을 용하게 맡는 재주의 정치가 김상현이 총회 화합의 사도 박병석 목사 방장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정치 이야기하지 말고 은혜받는 혹은 미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에 근거하고 그간의 유력 신문 기사를 살펴 카톡방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이나 배광식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사익를 탐했으면서 개결한 척한다. 무사안일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잘못했으면서 정당한 척한다. 그들의 재임은 의심과 허위의 기간이다. 맥베스에서의 셰익스피어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을 내려다보며 손을 씻는 빌라도처럼 능청스레 변명해도 후일 역사는 바르게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게 정치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세상과 자연의 이치에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부조화로운 면을 제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군자 또는 의인을 의미한다. 배광식이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도 그런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 졸업식장의 배광식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김상현의 말이나 행동과 달리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 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세례 요한은 당시 집권자인 헤롯의 비리를 정치적으로 지적한 죄로 목이 잘렸다. 성경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마 14:3-12 성경은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그가 지적하는 정치 기사로 넘친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에서 그 부분들은 제하고 읽고 따라야 하는 것인가. 총회 산하 수도노회 소속 목사인 김상현은 무엇을 믿고 살고 총회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왜 정치하는지를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릴 염려는 전혀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법정에 피소당할 수도 있는 각오는 가지고...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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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
    얼마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결점이 될 때까지’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무지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현재 총회장 배광식, 그리고 2년 뒤 총회장이 되고 싶은 장봉생 등에게 총회장을 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죽음 앞에 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2022.01.30
    • G.OPINION
    • G.COLUMN
    2022-01-30

실시간 G.COLUMN 기사

  • 김종희 칼럼_ 정년문제 처리에 대한 아쉬움
    해마다 총회 때면 정년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법대로 만 70세 정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꼭 정년만을 고집할 수 없는 피치못할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대우(?)를 받으며 조기 은퇴하는 경우는 여유 있는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평생 목회한 목사에게 대우는커녕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는 은퇴가 걱정인 교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정년 문제에 대하여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잘 처리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헌법도 살리면서 지 교회 사정도 고려해 주는 신축성이 필요하다고 사료 된다. 제107회 총회 석상에서 한 필자의 동의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은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정년연장은 헌법 정신에 배치되는 주장인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한 지 교회나 1구역(4지 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70세까지 시무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시무 연령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만 70세 정년 이전에 사망을 하거나 병고로 더 이상 목회가 불가능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정년 이전에도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물러날 사정이 없을 때는 만 70세까지만 시무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라고 해석한다. ② 물론 전항과 같은 해석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란 꼭 만 70세 이전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은퇴할 시점에 가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은퇴 시점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하여 원래 법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만 60세까지 한다였는데 만 70세로 연장한 법이라면 만 70세가 되어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더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종신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만 70세로 줄여 놓은 것이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억지는 아니다. 목사와 교회 간 합의만 되면 다소 정년연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③ “근로자가 정년이 지난 후에도 사용자의 동의 아래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용자와의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왔다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당해 근로자가 정년이 지났다거나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수는 없다.”라는 판례가 있다(대법원 2002두12809). 물론 목사와 교회의 관계가 근로관계는 아니더라도 목사와 교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고할 판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장대신 51회 총회는 ‘목사 정년 70세는 유지하되 교회에서 원하면 계속 시무할 수 있다’라고 결의하였다. Ⅱ. 정년연장을 위한 신축성 있는 방법은 없는가. ① 정치 제4장 제4조 1항 위임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회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은채로 지 교회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당회의 결의로 일정 기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결의해 주면 된다. ② 정치 제12장 제5조 1항: ‘총회는 교회 헌법(신조, 요리 문답, 정치, 권징 조례, 예배 모범)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항존직 만 70세를 만 71세 생일 전날까지로 해석하여 총회 결의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지 교회 시무는 몇 년을 연장할 수 있으되 단, 대외(노회, 총회, 산하기관) 정년은 만 70세를 유지하기로 한다.”로 총회가 결의하여 시행할 수 있다. 총회가 결의하면 바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 Ⅲ. 결론 70세 정년제는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헌법의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러므로 사회 상황이 바뀌고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신축성을 발휘할 수 있다. 최종 결론은 총회나 노회에서의 정년은 현재대로 유지하되 각 지 교회가 합의할 경우 지 교회 목회만 몇 년을 더할 수 있도록 총회가 결의하면 된다. 노회에서 선거 피선거권은 제한하고 시무하는 지 교회 당회장권을 주면 된다. 아무리 총회가 결의하여도 교회가 연장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원하지 않는 교회에 피해가 되지도 않는다. 통계상 정년 문제로 인하여 교단을 떠나는 교회들이 많다고 하는데 서로서로 입장을 이해하며 정년 문제를 신축성 있게 처리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헌법자문위원장 역임. 성민교회) 2022-09-22
    • G.OPINION
    • G.COLUMN
    2022-09-22
  • 우리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자!_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결국은 에피소드(episode)로 끝내야 한다. 에피소드로 끝나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에는 미래가 없다. 본래 에피소드란 막간극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트콤(sitcom)이라고 볼 수 있다. 시트콤은 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이 시트콤인 에피소드의 재미는 서브젝트(subject)인 주인공이 프로젝트(project)에 휘말려 결국은 오브젝트(object)가 되어버리는 데 있다. 사실상 어떤 선거든지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그 선거를 통해서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즉 서브젝트가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선거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계획되고 기획되기에 선거를 관리, 기획하는 선관위는 이 프로젝트 운영에 공정을 기해야 하며 프로젝트 되는 선관위 규정에 스스로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프로젝트화 되지 못한 출마자는 자연히 오브젝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번 우리 선관위는 선관위 스스로가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일에서 처음에는 법과 원칙에 의해서 투명하게 할 것을 공표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안에 따라서 법과 원칙은 적용하고 크게는 정치적 고려를 스스로 하고 법과 원칙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회의 선거는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말이다. 결코 희극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극이 되어버리면 계속하여 이런 일이 발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단 한 번 있었던 에피소드로 끝나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우리 총회는 미래가 없다. 선거란 양심의 자유에 의해서 행하여 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는 ‘지지할 수 있음’과 ‘지지할 수 없음’에서 선택하는 자유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이 두 가지를 다 하지 못하게 한 아주 나쁜 선거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지할 수 없음도 지지할 수 있음도 사라져 버린 단독후보로 결정되는가 했는데 이제는 ‘양해서’와 ‘사과문’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총대들에게 두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막장 선거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렇게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있는가? 두 후보인가? 아니면 선거를 프로젝트 하는 선관위인가? 나는 선관위라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선관위는 없어져야 한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입각해서 말이다. 이토록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변질시키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내밀하게 부총회장 선거를 들여다보자.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선거법을 위반했습니다’라고 사과한 후보를 아니면 선거법을 위반했음을 사과했기에 ‘양해합니다’라고 한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상 둘 다 문제이다. 이렇게 하려면 정치적인 고려를 처음부터 했어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정치가 되고 화합과 이해의 정치가 된다. 그런데 한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자격을 주지 않고 미루다가 선거 막판에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에게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사과하고’ 이미 자격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무슨 언질(?)을 주어서 양해한다고 ‘양해서’를 쓰게 해서 두 사람 모두를 다 자격 없는 후보(?)로 만들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난, ‘양해서’를 쓴 후보도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불공정하고, 깨끗하지 못한 선거에 ‘양해서’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총회의 지도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양해서’를 쓰지 않고 후보사퇴를 선언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문을 쓰고 후보의 자격을 얻어 부총회장에 출마한 후보에게도 묻고 싶다. ‘선거관리 규정을 어긴 후보입니다’라는 사과문을 쓰고 후보자가 되어야만 했는가를 말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규정을 어겼다고 하는데도 굳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사과문을 쓰고 후보가 되려고 하는가이다. 후보가 되기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사실상 교회의 선거는 이기고 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다. 누가 더 잘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가를 선출하는 것이기에 굳이 사과문까지 쓰고 나서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후보가 되려고 했는데 당신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난 선거규정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후보의 자격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일꾼이 되십시오”라는 사퇴의 변을 내고 사퇴했다면 우리 총회의 정치는 성경적이고 헌법적인 정치가 살아났을 것이다. 선거규정 하나도 지키지 못한 후보가 어떻게 헌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후보자들이 사퇴하지 않고 짜고 치는 무슨 판처럼 선관위에 의해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서로 잘해 봅시다’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총회는 100회 총회 때부터 교회의 정치가 성경과 헌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신자유적인 심리정치란 참으로 매우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이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유권자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정치이다. 이 정치는 사실 유권자들에 유리하게 되는 것 같지만 기득권자들에 유리한 정치이다. 그래서 그 심리정치에 의해 수년 전(2016년) 우리는 두 사람의 목사 부총회장 후보를 자격 없음으로 규정하여 탈락시키고 현장에서 두 후보자를 선정하여 투표하는 장로교 역사상 있을 수 없는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는 다시 자격 없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게 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자격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더 나빠졌는지 더 좋아졌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법 규정 앞에서 평등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고민한다. 선거에 임하는 나 자신도 투명하지 않고 더욱더 선거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인 두 사람 모두 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출마했고 이제 나 역시 내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선거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 총회의 바른 정치는 언제나 구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아예 구호도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가 장로교 정치에 맞게 되려면 사실 나와는 상관없이 작성된 ‘성명서’지만 8월 29일 전국호남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우리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총회 참석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성명했기에 그랬으면 한다. 적어도 그날 참석한 450명 정도 되는 총대들은 부총회장 선거에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면 호남협의회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선출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성명서’가 있다면 나 역시 찬조금 들고 그날 참석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자격이 있든 없든 두 후보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우리 총회의 부 대표자와 대표자의 자격을 2년 동안 주게 될 것이다. 심각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바보이다. 사실상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고는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삶에서 목사로서 터득된 비결이 있다. 믿음이 없는 바보, 신학과 신앙이 없는 멍청이는 항상 세상에서 방황하고 믿음 있는 신학과 신앙에 굳게 선 자는 세상에서 여행하고 산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방황을 해도 우리 총대들은 여행을 했으면 한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왜? 두 후보자에게 ‘양해서’와 ‘사과문’을 쓰고 자격을 주고 우리에게 할 수 없는 투표를 하라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 권위주의자에게는 투표하지 말자. 도덕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민주주의자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아니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에게도 투표하지 말자. 수년 동안 나는 권위주의자에게 참 권위가 없고 도덕주의자에게 진정한 도덕이 없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민주투사에게 정작 민주 의식이 없음을 보아왔고 신본주의, 신앙 제일주의인 개혁주의자들에게 참 신앙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찍자. 누가 한들 나아질 총회가 아니다. 우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러나 손가락을 잘라낼 각오로 찍어야 한다. 좋은 놈(?) 중에서 좋은 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서 나쁜 놈(?) 중에서 더 나쁘지 않을 분(?)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이렇게 후보자 두 분을 나쁜 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쁘면 자격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한 분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섯 분의 목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기도는 하지 말고 화장실에 앉아서 매일 매일 고민해 보자. 어차피 프로젝트 된 선거에서 서브젝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를 골라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개혁신학과 신앙의 반대자인가를 투명성의 원리에서가 아닌 불투명성의 원리 속에서 선택해야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는 잘못하면 지역적이고 신학적이고 광신(狂信)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힐링(healing)의 효과를 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킬링(killing)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총대들에게 두 분의 후보 중에서 누가 킬링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총신과 광신의 대결도, 영남과 호남의 대결도, 교갱과 영성의 대결도, W.E.A의 찬성과 반대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아주 심각한 신앙적, 신학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실 문화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왜 신앙이나 신념과 다른 합리적인 견해가 신앙이나 신념의 도그마의 껍데기를 깨고 들어오면 우린 갑각류들이 발작하듯 반발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느덧 내 개혁신앙과 신학이 지적 갑각이 되었고 교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신앙의, 신학의 순결함을 지키고 방어한답시고 이념적 순결주의가 되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내 신앙과 신학의 정당성만 스스로 부여하고 신학적, 윤리적 나르시시즘에 젖어 두 후보에 대한 차이도 차별도 모른 채 내 생각과 판단에 틀리면 조롱, 내면의 비웃음과 반대로 일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프로젝트화 한 선관위원들을 향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서 그들의 정치적 술수를 지켜보고만 있는 비참한 총대일 뿐이다. 이젠 비굴해지기까지 한다. 문화신학자인 리처드 니버는 “교회가 현대의 문화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교회의 영적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총회가 우리 총회의 정치적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이러한 선거 프로젝트를 만들고 힘쓰는 동안 우리 총회의 영향력은 총회 안에서도 그리고 사회 속에서도 급격히 쇠퇴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투표를 하든 안 하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부총회장이 될 것이다. 부탁한다. 킬링하지 말고, 힐링의 총회 정치를 세워가기를, 그리고 이 선거는 우리 교단 역사에서 한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길 기도한다. 누가 부총회장이 될 것인가? 당신이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일일 것이다. 누가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 - 이 글은 2022년 9월 6일 기독신문의 ‘선관위 입장, 사과문 감사의 글’이 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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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지혜에 대한 사랑
    6.1 지방선거를 42일 앞두고 부실 선거관리로 말 많던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했다. 노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위원 회의에서 “부실 투표 관리 책임을 통감한다”라면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공직선거 관리 총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현직 대법관이다.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하더라도, 대법관 직위는 계속 수행한다. 노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아 2020년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다. 4월 2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는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경기남부청 반부패수사계는 지난 5일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및 운영 부실 논란에 휩싸인 노 선관위원장에 대한 고발 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2021년 3월 20일, 4월 7일 지방선거 보궐선거를 앞두고 맨돈 소강석이 내려다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재난지원금은 가급 적 3월 중에 집행되도록 속도 내달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작년 국회에서 “총선 전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이번 지원금도 선거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거법은 ‘공무원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대통령의 선거 전 재난지원금 독촉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면 무엇인가. 지난 2021년 2월 이재명 승리를 위해 뛰던 문재인은 여당 대표·장관 등을 대동하고 가덕도를 찾아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방문 하루 전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주요 공약이라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그래도 “대통령 직무 수행”이라고 했다. 선거 심판이 아니라 정권 하수인이다. 총회 소속 목사들의 카톡 여러 모임방에 제3차 합동 포럼 개최에 관한 공고문이 올라왔다. 일시 : 2022년 8월 16일(화) 10시 30분 ~ 2시 장소 : 대전인터시티 호텔 대상 : 정회원 및 지역별 게스트 장로 3인씩 특별초청 1부 예배 설교 :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축도 : 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대행) 2부 축사 및 특강 축사 :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 배만석 목사(사랑스러운교회, 전 총신대 신대원 총동창회장) 장봉생 목사(서대문교회, 은혜로운동행기도회 본부장) 환영사 : 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특강 : 송삼용 목사(하늘양식교회, 고려대학교 법학박사 과정)_ 윌버포스와 합동 포럼의 비전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 또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금지되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며 헌법과 법률로 위원의 임기와 신분을 보장하여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배제함으로써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총회선거규정은 위원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6조(조직 및 직무) 1. 총회임원,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및 기관장, 재판국원, 선거관리위원(선출직), 총회 총무 입후보자(이하 ‘입후보자’라 함) 및 그 지지자는 선거기간 중 일체의 금품 요구 및 금품 수수(金品授受)를 할 수 없다. 4.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 선거운동기간이 종료한 후, 총회 개회 일부터는 교인 동원 및 문자 전송 등 일체의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위반 시에는 후보자격이 상실된다. 단, 부임원으로서 정임원 후보인 경우와 단독후보로 출마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허락을 받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 총회선거법 제26조 4항은 ‘선거운동 기간은 등록 마감일부터 총회 개회 전일까지로 하며 모든 입후보자는 선거운동 기간 시작일 2개월 전부터 소속 교회, 소속 노회 이외의 교회, 노회, 총회 산하 모든 예배 및 행사에서 일체의 순서를 맡을 수 없다’라고 규정하는데 그것을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선거관리위원장은 온갖 행사에 참여해 맨쇼를 하며 어겨도 되는 것인가. 그러한 특권은 사회법과 총회선거법에서도 금하는 금품 수수의 맨돈 위력에서 나오는 것인가. 제28조(선거규정 위반자 처벌규정) 2항은 다음과 같이 엄하게 규정한다. 본 규정 제26조 1항과 2항을 위반한 자로서 금품제공자는 영구히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고 금품을 요구 및 받은 자는 금액의 30배를 총회에 배상하며 위반 즉시 10년간 총회 총대 및 공직을 제한하되 그 기간은 배상금을 총회 입금일로부터 계수한다. 목사임에도 성이 차지 않아 배광식도 소지한 법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언론인으로 알고 있다. 총회 선거기간의 정치적인 특강에 앞서 옛 선비들도 금과옥조(金科玉條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기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나 규정)로 삼은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아무 상관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의 불미(不美)한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얻는 데 매우 열심이었다.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하나의 학문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지혜에 대한 사랑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관습도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무에서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신탁에 조회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신의 계시에 의지했을까? 그들이 신탁에 의지한 것은 지혜의 부족 탓일까, 지혜로움 때문일까. 신탁에 의지한 그리스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신의 지혜를 구한 까닭은 인간 지혜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 지혜의 부족함을 인정한 것이 바로 그들의 지혜였다. 신탁의 뜻을 해석하면서 그리스인들은 더 지혜로워졌다. 신적인 계시의 뜻을 묻고 따지는 과정은 인간적 지혜를 갈고닦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신탁의 관습은 신탁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묻고 따지고 시험하는 지혜’,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는 지혜’를 가르쳤던 것이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수많은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과도함을 삼가라.” 이 두 경구가 왜 거기 새겨져 있었을지는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욕에 사로잡힌 자에게 어떻게 신의 뜻이 올바로 전해질 수 있을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그러니 “너 자신을 알라”와 “과도함을 삼가라”는 신탁에 앞서는 신탁, ‘최고의 신탁’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한계를 알고 지나침 없는 행동의 지혜를 찾는 일이었으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2-25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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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8-12
  • 윤석열 대통령 대처 수상처럼
    윤석열 정부의 동시다발적 사정(司正)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을 비롯해 경찰과 감사원 등 기존 사정 기관은 물론이고 법무부, 국토교통부, 통일부와 같은 정부 각 부처까지 전 정권 관련 각종 의혹 파헤치기에 나서고 있다. 이전의 경우 정권교체 후 벌어진 사정 작업이 주로 과거 정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윤석열 정부의 사정 작업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현 야당 유력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와 현재 권력 모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 적이 될 능력을 갖추는 것, 적이 되는 적은 강한 천성을 전제로 하며 그 까닭에 저항을 찾아다닌다... 공격하는 자의 힘에 대한 일종의 척도는 그에게 필요한 적대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맞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나 또는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뤄진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승부를 건 문제들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융통성과 무기를 동원해야만 맞설 수 있는 저항들 그리고 자신과 동등한 힘을 지닌 적을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마가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가 당수가 된 것을 한 번의 요행으로 여겼고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을 이끌고 처음 2~3년 동안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대처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시선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사회주의 체제를 매도했다. 그녀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모두 질식시켜서 영국 경제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주범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깨고 소비에트연방을 힐난했다. 1978년과 1979년에 걸친 겨울, 몇 개의 공공부문 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 대처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면서 노동당과 제임스 캘러핸 총리를 이 파업과 결부시켰다. 이것은 대담하고 분파적인 발언으로서 저녁 뉴스를 장식하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선거의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문재인처럼 유권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안심시켜야지 겁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 좌파가 득세한 당시의 영국은 그것이 전통적인 상식이었다. 대처는 지금까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해왔지만 총리가 된 이상 논조를 절제하고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금 윤석열 시대처럼 그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대처 총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예산 삭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선거 때 공약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삭감이었다. 대처 총리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캘러핸이 주장했던 대로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같은 당의 남성 의원 다수가 수년간 자신들을 대해온 대처의 처신에 더 이상 분개를 참지 못하고 이준석과 이재명처럼 공개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대처는 보수당에서 가장 존경받는 온건한 의원들을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대처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경력에 오점이 남을까 봐 두려워했다. 대처 총리는 그들을 내각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작심하고 모든 반대자를 밀어낼 기세였다. 적들의 영역은 점점 커졌고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하락 일로에 놓여 있었다. 벌써 탄핵을 들먹이는 윤석열 반대 여론처럼 다음 선거에 그녀가 끝장날 것이 틀림없었다. 1982년 대서양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러사아의 푸틴처럼 국내에 산적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포클랜드섬을 침공했다. 포클랜드는 영국령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군사정권 관리들은 영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불모지인 포클랜드를 포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처는 주저하지 않고 포클랜드에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1만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무의미하고 희생이 큰 이 전쟁을 비난했다. 당내에서도 다수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섬의 재탈환에 실패한다면 보수당은 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독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그녀의 자질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놓던 바로 그 자질을 말이다. 완고한 고집이 이제는 용기와 고결한 기품으로 보였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은 데다 제 경력만 챙기는 주위의 남성들에 비하면 대처 총리는 단호하고 강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자 대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삽시간에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가 잊혀졌다. 대처는 정치무대를 장악했고, 다음 두 번의 선거에서 노동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윤석열처럼 마거릿 대처도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중산계급의 여성이고 우익 과격파였기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아웃사이더는 권력을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우선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만(아웃사이더로 살기는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렇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여느 검찰총장과 달라 세간의 이목을 모으던 차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처가 주위의 남성들처럼 행동했다면 다른 남성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은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아웃사이더로서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한 명의 여성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처럼 당당한 대처 역시 덧없는 대중적 인기 따위에 영합하지 않았다. 김종인 같은 정치꾼들은 지지도의 수치에 일희일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즉 정치가들이 전쟁을 하면 얻으려고 하는 목표물)은 호감을 주는 인사보다 우위를 차지한 인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일부 대중이 미워하더라도 내버려 두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자들, 거짓의 제왕 이재명이나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자들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든든하게 의지할 정치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존재다. 그래야 피아가 구분되고 적과 아군이 드러날 것이다. 내부 총질이나 해대는 일이나 작금의 이런저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눈 가리고 아웅 식 여론 조사 한가운데로 밀어 넣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정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그런 허위의 한가운데는 정치꾼과 언론꾼이 설치는 이권 타협의 영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긴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언제나 저항이 가장 적고 우호적인 경로만을 찾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망각하게 되고 조국과 추미애처럼 우왕좌왕하는 어중이떠중이들과 함께 수렁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스스로를 적들에게 둘러싸인 아웃사이더로, 투사로 여겨야 한다. 끊임없는 전투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의의 용사로 강인하고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좌파 무리들과의 반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대처 수상처럼 반목 없이는 전투도 없고 전투가 없으면 승리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파업을 즐기는 자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문재인 패거리의 유혹이 아니라 대처 수상의 정면돌파 대처를 본받아 민노총의 파업 병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양보해지기보다는 불법을 타파하고 이겨 존경받고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통령은 현재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미래 세대(世代)에게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불법하고 불의한 적들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얻는 인기가 더 오래 지속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요즘 진행되고 있는 과거 정권의 수사 정국에 대해 “통상 이런 사정 작업의 최종 종착역은 전직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는데 과연 어느 시점에 전 대통령의 이름이 흘러나오느냐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BC 545년경~BC 470년경)는 '손자병법'에서 대처 수상이 실행한 것처럼 말했다. 적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적이 오기를 대비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누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처 수상처럼만 하면 영국병을 고친 대처 수상처럼 한국병을 고친 위대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나서 선동하는 좌파 무리가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외침과 기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의 함성이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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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8-08
  •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총회 무게 있는 부서의 장을 용하게 맡는 재주의 정치가 김상현이 총회 화합의 사도 박병석 목사 방장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정치 이야기하지 말고 은혜받는 혹은 미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에 근거하고 그간의 유력 신문 기사를 살펴 카톡방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이나 배광식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사익를 탐했으면서 개결한 척한다. 무사안일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잘못했으면서 정당한 척한다. 그들의 재임은 의심과 허위의 기간이다. 맥베스에서의 셰익스피어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을 내려다보며 손을 씻는 빌라도처럼 능청스레 변명해도 후일 역사는 바르게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게 정치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세상과 자연의 이치에 조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부조화로운 면을 제거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군자 또는 의인을 의미한다. 배광식이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도 그런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 졸업식장의 배광식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김상현의 말이나 행동과 달리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 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또한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세례 요한은 당시 집권자인 헤롯의 비리를 정치적으로 지적한 죄로 목이 잘렸다. 성경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마 14:3-12 성경은 김상현의 말대로라면 그가 지적하는 정치 기사로 넘친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에서 그 부분들은 제하고 읽고 따라야 하는 것인가. 총회 산하 수도노회 소속 목사인 김상현은 무엇을 믿고 살고 총회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왜 정치하는지를 총회 정치가 김상현에게 묻는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릴 염려는 전혀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법정에 피소당할 수도 있는 각오는 가지고...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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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
    얼마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결점이 될 때까지’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무지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현재 총회장 배광식, 그리고 2년 뒤 총회장이 되고 싶은 장봉생 등에게 총회장을 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죽음 앞에 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결점이 될 때까지(to a fault).” 2022.01.30
    • G.OPINION
    • G.COLUMN
    2022-01-30
  • 총회와 사회 사문서위조 차이
    고3 학생이 성적이 안 좋아 정경심 조국 자녀와 달리 정원 미달인 학교만 찾고 있었다. 하루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물으셨다. “너는 천국에 가고 싶냐, 지옥에 가고 싶냐.” 그러자 학생이 잠결에 말했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가 인원 미달이에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이른바 대학 입학을 위한 ‘7대 스펙’에 대해 1.2심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도 모두 허위라고 판정했다. 대법원이 자녀 입시 부정과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60) 동양대 교수에 대해 징역 4년형을 확정하면서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1월 27일 오전 10시 15분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및 업무방해와 자본시장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총 15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1.2심과 마찬가지로 정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한 7가지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여론을 둘로 쪼갠 시발점이 된 입시 비리에 허위와 뻔뻔한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했다. “입시제도 자체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재판 내내 입시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태도로 범행의 본질을 흐리면서 정 교수 가족에 대한 선의로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작성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2019년 10월 23일 구속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 전 교수는 2024년 5월경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정 전 교수는 2020년 5월 19일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돼 같은 해 12월 23일 실형 선고 때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동양대는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1.2심 판단 등을 근거로 정 전 교수를 지난해 8월 31일 면직처리 했다. 대법원이 동양대 PC 증거 능력을 인정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에서 공전 상태였던 조 전 장관의 아들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진행된 재판도 속도를 내게 됐다.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은 2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데 대해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라고 했다. 한 검사장은 당시 수사팀을 이끌었다. 한 검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말했다. “2019년 8월 이후 오늘까지 더디고 힘들었지만 결국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 첫 압수수색은 2019년 8월 27일에 이뤄졌다. 시간이 꽤 흐른 셈이다. 한동훈(48)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찰 내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른바 ‘적폐 수사’를 총괄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한 이후 작년에만 세 번 좌천됐고 1년 내내 ‘채널A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2021년 2월 15일 여권에선 윤 총장이나 당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권 수사’를 했다고 의심한다는 조선일보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 수사로 제 검사 경력도 끝날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하나 덮어 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도 4년을 확정받은 것과 관련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고통스럽다”라며 마음을 밝히며 27일 오후 조 전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렸다. “오늘 저녁은 가족이 모여 따뜻한 밥을 같이 먹을 줄 알았으나 헛된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아직 젊은 자녀들은 자신이 느끼는 애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슬픔을 다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당혹스러울 것이다. 애도, 고통, 슬픔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그들에겐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은혜로운동행 기도운동 본부장 장봉생의 기도와 위로가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조국은 자녀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한 까닭에 그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반면 박상범은 총회를 위해서 사문서위조를 범해서인지 정년을 1년 연장해 채우고도 또 1년을 계약직으로 연장해 평직원이 아닌 국장대행까지 버젓이 맡게 된 것은 배광식의 은혜로운동행의 은혜 탓일까. 그래서 박상범보다 입사 연도가 빠른 박영신 부장을 법인국으로 전보시켜 그의 지시를 받게 하는 건가... 배광식이나 박상범에게는 한동훈 검사 같은 직업윤리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회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총대나 지도자가 안 보인다. 총회 선거의 선별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언론과 총대의 직업과 신앙 윤리가 실종됐다. 불의를 예방하는 양심이 사라졌고 돈만 앞세운 총회 후보·총대만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비전과 양심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신앙을 위해 순교하는 신앙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단의 회원이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진리 수호를 위해 이단 판결 권한과 의무를 가진 총회 소속이다. 그래서 WCC 문제로 1959년 통합 측과 결별할 때 우리는 재산을 포기하고 빈 몸으로 나와 지금의 총회를 이루었다. 그런 우리 총회가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로 사문서위조를 한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목사와 장로 가운데 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조국 사태처럼 우리는 정의와 상식 그리고 신앙 윤리에 맞는 결과를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22-02-28
    • G.OPINION
    • G.COLUMN
    2022-01-28
  •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
    검고 하얀 붉고 파란 믿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 보이지 않는 기도를 그의 말씀으로 이루리라 신앙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차디찬 종소리 그러나 아침에는 유다의 황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욕망 불완전한 총회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비추지 않는 거울이다. 김영우 같은 사람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106회 총회 이후 역사를 향해 다른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을 말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한다. 우리 삶은 더 좋아질까 나빠질까. 코로나로 촉발된 변혁의 힘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黑死病 plague) 이후 서유럽과 동유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듯이 말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로 우리말대로 "pest"인데 영어로는 "plague(플래그)"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plague가 "전염병"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변한 것을 보면 중세 페스트 대유행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말 그대로 "검은 죽음의 병"이라고 할 정도로 참혹하고 무서운 병이다. 실제로 그 병은 혈관 내 피가 응고되며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해 사망하는 끔찍한 질병이다. 흑사병이 유럽에 상륙한 건 1346년. 그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정치 경제 제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양쪽 모두 영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착취했다. 소작농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에 예속돼 있었다. 이른바 농노(農奴)였다. 흑사병의 피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흑사병이 창궐한 곳은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 들끓던 검은 쥐들을 통해 지중해 해운 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는 300여 년이 지난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 미친 흑사병 피해가 낳은 결과는 아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중세의 억압적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보다 포용적 사회로 진화했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건 제도가 강화됐다. 사람들이 영주에 더욱더 예속됐다. 보다 억압적인 사회로 퇴행했다. 양쪽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기득권과의 싸움에 승리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달랐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노동 인구가 급감했다. 일손이 부족해졌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당시 영국 엔셤 수도원(Eynsham Abbey) 영지에는 소작농이 겨우 두 명만 남았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이다. 노동력이 희소해져 가치가 오른 소작농은 협상력을 갖게 됐다.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다. 부역과 벌금을 대폭 줄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겠다고 했다. 엔셤 수도원은 소작농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작농의 임금이 올랐다. 강제 노역을 비롯한 온갖 부담에서 풀려나 자유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동유럽은 협상이 아니라 강제력을 지닌 법에 의지했다. 기득권 수호는 잘못된 선택이다. 흑사병 이후 동유럽 역시 흑사병 탓에 노동 인구가 감소했다. 영주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더 쥐어짰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무임금 강제 노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녀까지 몇 년은 영주를 위해 무료로 노역을 해야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1년에 며칠에 그쳤던 체납임금이 일주일에 나흘로 늘어났다. 이런 착취 제도에서는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서유럽에 철도가 깔린 한참 뒤에도 동유럽은 기득권에 손해가 될까 걱정해 철도 부설을 거부했다. 2022년 1월 11일 자 기관지를 통해 총회장 배광식은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회개하고 은혜를 구한다며 총회 유지재단 이사에 감사부장이 들어가고 총회 임원이 자리 잡았다. 일례로 총회 각 부서의 감사로 비리와 부패를 막고 시정해야 할 감사부장이 유지재단에 들어가면 유지재단 감독과 감사는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게 은혜로운 동행인가. 또한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은 총회회관 리모델링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데 그것도 은혜로운 동행을 위한 것인가. 은혜로운 동행을 제106회 총회 슬로건으로 내건 1년 임기의 배광식 총회장은 구조조정 대상 기관지를 통해 5년 임기 대통령처럼 바벨탑 같은 총회타운 건설안을 발표했다. 사당동에 있는 총신에 총회타운을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교단 발전은 물론 총신도 사는 길입니다. 과거 제가 총신법인이사를 할 때 이미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총신에 총회 랜드마크를 세워야 합니다. GMS센터와 총신 양지캠퍼스를 사당동으로 집약하면 교단 운영 효율성과 역량결집, 총신 미래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 연구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충실한 총회행사 안내지 개혁타임즈 1월 14일 자 기사를 친절하게도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가 18일 내게 보내줬다. 그 기사는 목사로서 장로신문(이름 그대로 장로신문은 장로가 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취재국장이면서 개혁타임즈 대표인 김창연이 배광식 목사와 오광춘 장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충실히 안내했다. 총회 감사부(부장: 오광춘 장로)가 1월 13일 오전 당일 일정으로 총회 본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먼저 오전 10시 30분 서기 황석산 목사의 사회 가운데 회계 김경환 장로의 기도, 부원 강희섭 목사의 성경 봉독 후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겔 47: 1~11;2을 본문으로 ‘총회를 아름답게 하는 감사부’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부장 오광춘 장로의 인사, 총회 총무 고영기 목사의 축사, 총무 이영민 목사의 광고 후 부원 한진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감사부장 오광춘 장로의 사회로 총회장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됐다. 감사 대상인 총회장 배광식이 모두 발언을 통해 말했다. "감사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감사부가 총회 총무의 지출에 대해 지적한 건에 대해서는 시정토록 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과정이니 총회 규정을 약간 벗어나도 양해를 구한다. 감사부는 총회를 정화 시키며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기구다. 총회장부터 모든 총회 임원들이 규정을 잘 따르고 조심하겠다. 그리고 지적하면 시정 하겠다." 총회장과 감사부원들과 대화에서는 먼저 감사부가 총회 임원회에 요청한 제105회기 총회선거관리위원회 특별감사 요청한 건에 대해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총회 임원회 결의를 전제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감사부와 선관위, 재판국을 제외한 다른 상비부나 위원회들이 자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총회장은 총회의 재정 지출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워크숍을 갖는 것에 대해 달리 총회에서 달리 제지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감사부장이면서 피감 기관인 총회유지재단 이사가 된 오광춘은 말했다. “감사부원들뿐만 아니라 제106회 총회에 참석한 많은 총대들이 지난 총회 선관위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목사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야기한 선거 과정과 절차의 난맥상을 포함해 선거 준비부터 진행 전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제105회기 선관위가 8월 초부터 9월 총회 직전까지 지출한 재정 건에 대해서는 제106회기 감사부에서 충분히 감사가 가능한 것으로 본다." 오광춘 감사부장은 계속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3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상비부나 위원회는 비대면 감사로 진행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비부와 위원회는 철저히 살펴보겠다. 모든 것을 ‘총회 규칙’대로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하는 부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가 있는 부서는 철저하게 감사 하겠다”라고 밝혔다. 개혁타임즈 말로는 오광춘 장로가 문재인에 맞선 전 감사원장 최재형 장로처럼 철저한 감사 정신을 가진 것 같다. 그런 그가 총회 직원의 사문서 위조 제보를 받고도 살펴보겠다더니 빈말로 뭉개고 그 직원이 근무했고 다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기관의 이사가 되고 정년 퇴직자의 계약직 직원이 된 의혹도 살펴보겠다더니 뭉개고 있다. 교회 봉사하랴 사업하랴 그런 처지의 장로께서 생각이 모자란 것인지 믿음이 유별난 것인지 무슨 꿍꿍이인지... 그런데 총회 18년 은급부 적폐를 해결한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제105회 선거관리워원장 시절의 일도 감사하겠노라 공표했다. 유유상종의 배광식 앞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월 15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부당성을 밝혀낸 책임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공직자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이라고 했다. 2020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유 국장은 그해 10월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관련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의식이 없거나 습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고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우리가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습관화된 걷기를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배광식과 오광춘 같은 유유상종의 무리 역시 허위가 습관화된 행위를 하나님이 없는 무의식이 "자율주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하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흑사병 대처의 차이처럼 "감사부장은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세상과 다른 대처 근거와 결과를 성경은 밝히 말씀한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7-2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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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OLUMN
    2022-01-20
  •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지난 1월 15일 남태평양 통가의 수도 누쿠알로파에서 북쪽 65km 해역에서 해저에 있는 통가 훙가 하파이 화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다. 화산 분출의 여파는 일본과 미국, 뉴질랜드 등 태평양 인접 국가들로도 이어졌다. 일본은 남동부 해안 전역 곳곳에서 쓰나미가 관측되면서 2016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5년여 만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은 지난 주말 23만여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는 비상이 걸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에 경보가 내려진 역사를 떠올린다면 5년 주기로 재난의 그림자가 일본 열도에 드리우고 있다. 다행히 이번 쓰나미는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재난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적이 필요한 시간. 그렇다. 인간의 대응 능력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기도뿐일 것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일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필요한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겪는 재난에 대한 법칙을 소개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 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가슴 아픈 대형 사고를 많이 경험했는데 1990년대가 특히 그랬다. 1993년 구포 열차 사고, 아시아나 추락 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8년 IMF 금융 사태, 1999년 씨랜드 화재, 인터넷 대란과 같은 재난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을 때 또 다른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사고는 왜 지속적으로 일어날까. 어떤 이는 과거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 하고, 성장 위주 경제정책으로 인한 폐해라고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장에 바빴던 우리 사회는 사회 전 분야에서 안전을 가볍게 여기고 안전을 문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인적 재난관리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도 1995년 508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사망자 10인 이상의 대형 재난 276건 중 42%가 인적 재난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적 재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는 본격적인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 신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수립 등 국가 안전관리 계획이 마련됐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05년 양양 산불, 서해대교 29중 추돌, 2007년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 유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이 발생했고, 2014년 2월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 사고, 같은 해 4월에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고난의 단초가 됐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분명히 제도적인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안전 관련 가치관 미흡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안전 문화의 부재에 있다고 판단된다. 안전은 법과 제도나 사회적 인프라 같은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가치관, 국민의 의식과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도덕의식을 배양하는 신앙적 정직이다. 문재인식의 무책임한 발언, 이재명식의 부정직한 둘러대기, 성직자의 지역 편향이나 좌경화, 사회 구성원의 신분 여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배금주의 등의 문제점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 상황의 타개책은 감사부장이 피감기관 총회 유지재단 이사가 되어 총회 리모델링 공사를 밀어붙이고 총회장이 감사부에 감사를 지시하는 월권의 제106회 총회(총회장 배광식)부터 짜고 치는 은혜로운 동행을 넘어 성경으로 돌아가 회개운동을 펼치는 길뿐이라는 자각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광주의 건물 철거 붕괴사고나 건설 중인 아파트 붕괴 등 정.재계의 각종 재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물론 총회가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더욱 성숙시키고 정직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물이 있다. 그는 도산 안창호다. 도산 안창호는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로서 흥사단, 국민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분이다. 말년에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 사건과 동우회 사건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하던 중 1938년 6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으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의 시신은 현재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아내와 더불어 안장되어 있다. 그의 민족 사랑의 깨달음과 신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18세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구세학당과 정동학당에서 배운 기독교의 가치관과 예수 신앙이었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구세학당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모습과 정동학당에서 전도하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전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열심히 있었던지 당시 발행된 신문에 리석관이라는 하는 선비가 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다가 안창호라는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후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군 송만리에 학교와 교회를 세워 교육과 전도를 함께 하였다. 안창호는 자신이 믿는 기독교의 복음이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널리 전파하는 데에 앞장을 섰다. 도산은 1936년 10월 죽기 1년 반 전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청년회 연합 집회에 강사로 서게 되었다. 이날 소문을 듣고 모인 청중이 교회당 밖 뜰까지 가득 차서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이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가 히브리 노예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 애굽으로부터 해방 받는 장면을 출애굽기 14:21-28 본문으로 선택하여 병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장장 두 시간이 넘게 말씀을 전하고 다음의 말로 끝맺었다고 한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의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가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손님입니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 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감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 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나가자”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에 걸친 그의 설교를 마친 뒤 도산은 모든 회중에게 다 기립하기를 청하고 “나가자!”는 구호를 세 번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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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8
  • 반백 년 지속 목회 조건
    최근 죽음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이어령(李御寧, 1933년 12월 29일~) 교수는 대담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말했다. 벌이 꿀을 빨듯이 책을 읽으라. 그래서 생각했다. 벌이 생존을 위해 꿀을 빨듯이 목사도 생존을 위해서는 성경은 물론 책도 꾸준히 읽어야 한다고. 이제 인공지능 AI시대 반백 년 지속 목회 조건은 무엇일까. 교회든 개인에게든 오랜 생존은 물론 앞서가는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40년 넘게 목사로서 성공한 목회자들을 접하고 체득한 가장 명료한 비결은 "독서를 통한 지식과 지혜의 축적"이다. 세상을 리드하는 기업의 경영자는 대부분 독서광이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독서야말로 내가 세상을 배우는 방법 중 으뜸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그중 가장 좋았던 책을 골라 추천한다. 지난해 추천한 책은 소설, 전기(傳記), 경영, 기후, 자연, 인간의 면역체계 등등 다양하다.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5년 페이스북 북클럽 "이어 오브 북스(Year of Books)"를 만들어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겠다고 했다. 그의 추천 도서 역시 고전에서 신간까지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것들이다. 우주 항공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우주와 로켓에 대한 지식을 책을 통해 배웠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뒤처진 목회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목사도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목회 생존의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과 시대, 세상을 통찰하는 저자의 머리와 가슴이 담긴 책 속에서 얻은 지식을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신의 깨우침으로 만들어 성경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거대한 파도(wave)가 와도 두렵지 않은 믿음의 서퍼(surfer)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말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를 만들고 대비하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댐을 건설하기 위해서 현대, 대림 등 건설사 회장들을 불렀다. 다른 건설사들은 다들 입찰가가 얼마일까 걱정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달랐다. 재무담당을 불러 현금 보유를 두 배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정 회장은 소양강댐으로 인해 상습 침수 지역을 벗어나게 될 곳을 지도상에 그리고 그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압구정동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만들고 대비하는 지도자의 생각이자 눈이다. 정보에 대한 해석이 남달랐던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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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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