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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희 칼럼_ 총회 돌아가는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 총회실행위원회를 모인 이유를 모르는 것 아닌가. 지난 7월 19일 울산 대암교회에서 총회실행위원회가 열렸다.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굳이 실행위원회를 열 필요는 없었다. 교단 교류 문제는 실행위원회에서 다룰 수 없다. 총회 규칙 3장 11조(실행위원회 임무) 중 3항에 “타 교단과의 교류나 우호 단절 또는 노회의 통폐합과 분립에 관한 일과 인사 처리는 본 위원회에서 행사치 못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난 총회에서 임원회에 맡겼기에 임원회 결의로 시행하면 되었다. 그러나 교단의 정서를 통합하여 추진해야 하기에 지난 한 차례 실행위원회를 통하여 지지를 얻은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재차 지지를 얻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실행위원회 안건을 문제 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통합을 한다면 안건 제목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통합은 총회가 임원회에 맡겼고 임원회에서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다만 실행위원회 소집은 임원회 결정에 대한 지지를 받기 위함이므로 안건 제목보다 사안을 이해하고 전폭적인 지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지지를 표명하였으니 이제는 통합을 추진하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 총회 리더는 누가 정하는가. 총회에는 종종 리더 모임이란 것이 있다. 총회 산하 각 노회를 통하여 선출된 총대는 동일한 자격과 권한을 가진다. 모두가 리더인 셈이다. 그런데 일부를 리더라고 하여 초청한다. 어떤 자격을 갖췄기에 리더인가. 배틀이라도 하여 뽑았다면 모르지만 주최 측이나 지역의 몇몇 인사들이 주관적인 생각으로 대상자를 임의로 선정하였다면 리더로 선정되지 못한 총대들에게 소외감을 주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다. 소위 리더 그룹에 총회를 대표할 권원(權原)이 없다. 헌법 정치 제12장 제6조에 의하면 “각 총대는 서기가 천서를 접수 호명(呼名)한 후부터 회원권이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총회 전에는 총대 자격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리더 모임이란 아무 권원이 없는 사사로운 모임일 뿐이다. 교회로 예를 들어 보자면 담임목사가 권원(權原)이 없는 자들을 끼리끼리 모이게 하여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고 지지세력을 확보하려 한다면 반대 세력이 등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며 교회가 화평하지 못할 것이다. 권원이 있는 회(會)로부터 항의를 받게 될 것이다. 리더 모임이란 것이 총회의 화합을 깨는 모임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이야기 : 서로서로 나눠서 하면 어떨까. 총회 규칙에는 “정치,고시,재판,감사(4개)부에서 나온 후 2년 이내에는 위 4개 부서 중 어느 부서에도 들어갈 수 없다. (단, 감사부에는 평생 1회만 들어갈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총회 안에서 하는 사람만 계속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국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하자는 것이다. 한 노회에서 임원 둘은 안된다. 한 노회에서 입후보자를 낼 때 임원이 목사이면 상비부장은 장로로 임원이 장로이면 상비부장은 목사로 하는 것, 기관장을 하고 나온 후 3년 이내에 총회 임원이나 타 기관장에 출마를 제한하는 것 등은 다른 노회를 배려하고 못 해 본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한 기수에서 한 회기에 임원이 여러 명 나온다든지 전국 조직을 만들어 자기 조직 사람들이 해마다 총회 요직에 진출하게 한다든지 특정한 그룹이 연속하여 총회 요직을 차지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기관장까지 한 사람이 상비부장을 탐내고 상비부장을 지낸 사람이 다른 부서로 가서 이하 임원을 차지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너무 하고재비가 되는 것은 볼썽사납다. 총회에 총대로 나오는 인사는 나름대로 시켜주면 다 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서로 나눠서 하면 어떨까. 네 번째 이야기 : 양심 소명은 받아줄 수 있지 않은가. 총회 헌법 제1장 제1조에 양심 자유가 있다.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선거 규정에 입후보자는 먼저 당회의 추천을 받고 노회의 추천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후보가 당회 추천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양심에 가책이 되지만 입후보자로 추천을 받았다가 사퇴를 한다든지 등록을 포기하면 본인은 향후 4년간 총회 총대 및 총회 공직을 제한 당하며 추천한 노회는 향후 4년간 선출직 입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다는 선거 규정 때문에 가슴 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는 선관위에 사실대로 소명서를 제출하며 떨궈 주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소명이란 꼭 붙으려고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가책이 된다면 솔직히 양심대로 소명하고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총회가 키울만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누가 진정한 인재인가. 강태공은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서 전문성, 위기관리 능력, 성실성과 충성심, 인격, 청렴함, 정조, 용기, 강한 의지 등 8가지 기준을 중시했다. 그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이라고 본다. 「총신 원보」에 났던 기사이다. 충현교회를 시무하는 김 전도사가 어느 날 최 전도사에게 부탁을 하였다. 자신이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교회를 좀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쾌히 승낙을 하고 충현교회를 시무하는 중에 최 전도사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김 전도사가 신학 공부하는 동안을 기다리기보다 최 전도사를 목사안수 받는대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 전도사는 김 전도사와의 의리를 배반할 수 없다며 목사 안수를 5년씩이나 미루며 그 난처한 입장을 슬기롭게 해결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인격이 돋보이는 미담이다. 정치판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바꾸며 말을 바꾼다. 필자는 어리석어서 상대방이 한 말을 끝까지 믿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많은 실망을 하기도 한다. 정치는 한순간으로 끝나지만 인간관계는 하나님 나라까지 간다. 누가 진정한 인재인가. 인격이 된 사람이다. _김종희 목사 (헌법자문위원장.정치부장역임.성민교회)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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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4
  • 김종희 칼럼_ 선관위.재량권 일탈 남용,오해 없기를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위원에게는 기속행위(羈束行爲)와 재량행위(裁量行爲)가 있을 수 있다.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법규의 내용대로만 집행하는 기속행위와 법규를 적용하고 집행할 때 재량을 가지고 판단하고 처리함을 인정하는 재량행위가 있다. 총회 선관위에 주어진 이 재량권에 대하여 살펴보며 재량권 일탈 남용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Ⅰ. 총회 선거규정에서 재량권의 근거로 볼 수 있는 규정은 무엇인가. ① 선거규정(이하 규정) 제5장 2차(전체 회의 심사) 2항 “ 전체 회의 심사 시 필요에 따라 입후보자에 대해 직접 사실 확인과 소명서 제출 등으로 사실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소명이란 심의하는 선관위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증거를 제출하는 당사자의 노력을 말한다. 법에 어긋날 때 떨구면 되지만 소명을 들어보는 것은 재량권을 행사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② 규정 제5장 3항 “후보자 최종확정은 전체 위원 2/3 이상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단, 법에 저촉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로 되어있다. 법에 저촉되는 경우에는 무조건 떨구는 것이 아니라 의결 정족수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제5장 제23조 3항 “확정된 후보자의 등록취소 사유가 발생한 경우 전체 위원 2/3 이상의 출석과 출석 위원 2/3 이상의 결의로 해당자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붙일 때는 전체 위원 2/3 이상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붙이고 떨굴 때는 전체 위원 2/3 이상 출석과 2/3 이상의 결의로 떨군다. 법에 맞으면 만장일치로 붙이면 되고 법에 어긋나면 만장일치로 떨구면 되지만 입후보자의 소명을 들어보고 위원 각자가 재량권을 갖고 의결을 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Ⅱ. 양 입후보자를 붙이는 것을 재량권의 일탈이나 남용으로 볼 수 없다. ① 총회는 이미 노회가 양측으로 불법 분립되어 다투고 있는 중인데도 한 노회 이름으로 총회에 분립을 청원하게 하고 총대도 한 노회 소속으로 파송하게 하여 인정을 해 준 사례들이 있다. 금 번 입후보자를 낸 노회도 분산 개최를 하였지만 한 노회로 입후보자를 낸 것이니 다를 바가 없다. 한 장소에 노회를 소집하였다 해도 21당회가 부족한데 총대를 파송하고 입후보자를 내어 총회를 기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비하여 분산 개최를 하였다 해도 21당회가 충족되면 다행한 일이다. 선관위가 재량권을 가지고 심의할 수 있다. ② 총회는 춘계 정기노회에서만 선출할 수 있는 총대를 춘계 정기노회를 정회하고 수일 후에 다시 속회하여 총대를 선출해도 인정해 주었다. 금 번 입후보자를 낸 노회가 정기노회에서 총대 선출과 입후보자 추천을 매듭짓지 못해 소집된 임시노회는 정기노회를 정회하였다가 속회한 것과 방불하다. 중요한 심의 중점을 어떤 회(會)에 두기보다는 공명선거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려 했는지와 추천받을만한 후보가 추천되었는가에 중점을 두고 살피는 것이 추천제도를 둔 목적을 살리는 것이기에 재량권을 가지고 심의할 수 있다. Ⅲ. 대법원 판례로 볼 때 재량권 행사가 필요하다. ① 대법원 98두 17953 판결 요지를 보면 “행정행위가 그 재량성의 유무 및 범위와 관련하여 이른바 기속행위 내지 기속재량행위와 재량행위 내지 자유재량행위로 구분된다고 할 때, 그 구분은 당해 행위의 근거가 된 법규의 체재·형식과 그 문언, 당해 행위가 속하는 행정 분야의 주된 목적과 특성, 당해 행위 자체의 개별적 성질과 유형 등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과거 선관위에서 모 노회 모 목사가 총회 임원 후보자로 노회에서 추대를 받을 때 투표권을 가진 회원만 투표하여 추대하는 것이 법인데 투표권이 없는 임시목사가 투표에 참여하여 추대하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투표권이 없는 소수의 표가 전체 의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면 문제가 없다 하여 후보로 결정한 사실이 있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재량권을 행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② 오히려 재량권의 불행사가 재량권의 일탈 남용이 된다는 사례가 있다. “처분의 근거 법령이 행정청에 처분의 요건과 효과 판단에 일정한 재량을 부여하였는데도, 행정청이 자신에게 재량권이 없다고 오인한 나머지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과 그로써 처분상대방이 입게 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를 전혀 비교형량 하지 않은 채 처분을 하였다면, 이는 재량권 불행사로서 그 자체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해당 처분을 취소하여야 할 위법사유가 된다.”는 요지로 판결하였다. (대법원 2017두38874.2014두10691 판결 등 참조) ③ 선관위가 재량권을 행사했을 때 공익에 반하는 내용은 별로 없다. 일부러 노회를 분산 개최하려는 노회도 없을 것이며 일부러 임시노회를 개최하여 입후보자를 추천하고 곤혹을 치를 노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둘 다 떨어지면 공연히 일금 4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한 달에 백만 원씩 예금한다 해도 각자가 약 2년 동안 예금을 해야 하는 액수이다. 그리고 입후보자를 비롯하여 양측 노회가 입어야 하는 물질적 또는 정신적인 피해는 크다.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Ⅲ. 결론 재량권 일탈 남용이란 재량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재량권을 행사하라는 의미이다. 행사해야 할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재량권 해태 흠결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은 데 대하여 이의 제기를 당할 수 있다. 선관위에는 재량권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표결을 하여 붙이기도 하고 떨구기도 한다. 기속행위만 있다면 법에 맞으면 붙이고 법에 안맞으면 떨구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표결을 하는가.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고 두 후보를 다 떨군다면 재량권 해태 흠결로 인한 피해가 클 것이나 재량권을 행사하여 두 후보를 다 살려 총대들의 투표를 받게 한다면 적당한 재량권 행사로 유익이 될 것이다. _ 김종희 목사(헌법자문위원장.정치부장역임.성민교회)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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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7
  • 김종희 칼럼_ 잘못된 목사이명 누가 책임지나
    D 노회에서 ‘이명서에 가는 노회를 지정하지 않고 이명할 수 있느냐’는 질의가 있었다. 이에 답하면서 목사 이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가는 노회를 지정하지 않고 이명서를 발급할 수 없다. ① 이명을 해 주는 노회는 이명서에 가는 노회를 지정하여 기입하여야 한다. 이명을 청원하는 자가 노회를 지정하지 않고 이명서를 떼주면 자신이 알아서 가고 싶은 노회로 가겠다는 식의 이명 청원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권징조례 제110조 “목사, 강도사, 목사 후보생에게 이명서를 교부할 때에 그 지정한 노회의 명칭을 분명히 기입할 것이요 지정한 노회가 현존한 동안에 다른 노회는 그 회원을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② 지정한 노회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지정한 노회 외에 다른 노회는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를 어기면 권징조례를 어긴 범죄가 되어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정한 노회 없이 이명을 떼주는 노회도 징계의 대상이고 지정되지도 않았는데 받아 주는 노회도 징계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것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총회의 질서가 세워지게 된다. 지역노회로 가더라도 경계를 준수해야 하고 지역노회에서 무지역 노회로 갈 수 없다는 결의도 지켜져야 한다. 주민등록을 옮기려면 가는 주소지가 있어야 옮겨지는 것은 상식 아닌가. 가는 주소지 없이 떼어주면 내 맘대로 어느 동사무소에나 등록하겠다고 하면 떼어주겠는가. Ⅱ. 노회를 지정하지 않고 이명서를 발급하면 폐단이 온다. 1. 치리회의 법적인 조치가 불가능하게 된다. 가는 노회를 기입하지 않고 이명서를 발급하여 주면 발급받는 자가 자유분방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권징조례 제54조 “뚜렷한 범과 없는 목사가 본 장로회의 관할을 배척하고 그 직을 포기하거나 자유로 교회를 설립하거나 이명서 없이 다른 교파에 가입하면 노회는 그 성명을 노회 명부에서 삭제만 하고 그 사유를 회록에 기재하되 그 사람에 대하여 착수한 송사 안건이 있으면 계속 재판할 수 있고 만일 이단으로 인정하는 교파에 가입하면 정직이나 면직 홀 출교도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명서를 발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의를 빚는 경우는 조치가 가능하지만 이명서를 발급한 후에 물의를 빚을 경우에는 치리권 밖에 있으므로 조치를 할 권한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교단 안에 있는 분명한 노회를 정하여 그 치리권 안으로 들여보내는 이명이 필요하다. 2. 이명 절차의 끊고 맺음이 불분명하게 된다. 이명서를 받는 지정된 노회가 명시되어 있어야 그 노회가 이명서를 받고 보낸 노회에 이명서를 접수하였다는 통지를 보낼 수 있다. 권징조례 제114조 “목사, 강도사, 목사 후보생도 전조와 같이 옮기는 경우에 이명서에 기입한 대로 그 노회에 가입하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받은 이명서를 1년 내로 옮기는 노회에 교부할 것이요 입회를 허락한 노회는 즉시 이명서를 발송한 노회에 통지한다.”라고 되어 있다. 받는 노회에서 이명서를 받고 받았다는 통지를 보내오기 전에 노회 명부에서 삭제하면 안 된다. 정치문답조례 제340문 “지정한 노회 서기의 입회 허락 서신이 접수되기까지는 본 노회가 삭명을 보류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정된 노회가 있어야 이명의 끊고 맺음이 분명하게 정리될 수 있다. 3. 적이 없는 떠돌이 목사를 만들 수 있다. 족보가 없는 떠돌이 목사를 만들 수 있다. 권징조례 제109조 “목사도 전조와 같이 다른 회에 옮길 이명서를 수취한 후에 그 노회에 가입하기까지 여전히 본 노회 관할에 속하고(이명서 수취일로부터 본 노회 안에서 언권과 투표권이 없다) 1년 내로 이명서를 본 노회에 환부하면 노회는 이 사건을 회록에 기입하고 그 회원권은 여전히 지속한다.”라고 하였다. 이명서를 가는 노회가 접수하기까지는 보내는 노회 소속 회원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명서를 수취하는 날부터 언권과 투표권은 없다. 그리고 1년 이내 이명서를 본 노회로 환부하면 회원권은 여전히 살아난다. 그런데 이명을 한 지 1년이 경과 하고나면 본 노회로 환부해도 회원권이 살아나지 않고 다른 노회에도 접수하지 못하므로 적이 없는 떠돌이 목사가 되고 만다. Ⅲ. 목사의 이명으로 교회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① 다른 노회에 소속된 교회의 청빙을 받고 목사만 이명하는 경우가 있다. 헌법 정치 제16장 제3조(다른 노회로 전임) “다른 노회 소속 교회의 청빙을 받은 목사가 해 교회와 합의되면 본 노회는 그 교회를 사면케 하고 이명서를 본인에게 교부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럴 경우는 다른 노회에 청빙 해 주는 교회가 있으므로 목사만 이명을 해 주면 된다. ② 그러나 다른 노회로 교회를 이적하면서 목사가 이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목사가 이명을 한다고 교회가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목사와 교회는 분리된다. 교회와 목사가 옮기려면 교회는 공동의회를 하여 노회에 이적을 청원해야 하고 목사는 교회 이적을 청원하는 노회로 이명을 간다고 청원을 해야 한다. 제86회 총회 성남노회장 정평수 씨가 청원한 무지역노회에 소속한 교회와 목사가 지역노회로 이적의 건은 “공동의회 결의로 청원하면 교회와 목사를 이명 하여 주기로 가결하다.”이다. 무지역노회에서 지역노회로 갈 경우를 말하는 결의지만 교회와 목사가 같이 이동하는 경우에는 동일하게 적용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교회가 목사의 소유가 아닌데 목사 이명으로 교회도 옮겨진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는 노회도 지정하지 않고 교회 이적도 없이 목사만 이명하는 것은 목사와 교회를 불합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교회까지 잃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Ⅳ. 목사 이명은 노회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① 정치문답조례 제340문 “누가 이명 증서를 발급할 수 있느냐” “노회장이나 서기나 노회의 아무 위원도 이명 증서를 발급할 수 없고 오직 노회만이 발급하되 목사 후보생과 강도사와 목사와 무임 목사에게 발급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노회를 열고 합법적인 의결 절차를 거쳐 이명을 허락해야 구설수가 없다. 합법적인 절차란 ⓐ 다른 노회 청빙을 받고 가는 경우는 현재 시무하는 교회의 사면서와 청빙 받은 교회가 속해 있는 노회로 가겠다는 이명 청원서를 제출하면 되고 ⓑ 다른 노회로 교회까지 이적하며 목사 이명을 하는 경우는 공동의회를 통한 교회 이적 청원서와 교회가 이적하려는 노회로 가겠다는 목사 이명 청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② 노회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노회 서기는 법을 지켜 이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정치문답조례 제340문 “이명 증서에는 장립 연월일을 기록할 것이요 또한 이거하는 교회 및 이거하는 노회를 특기할 것이요 타노회에서는 받지 못하고 지정한 노회에서만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명서에 기록할 사항을 분명하게 기록해야 하고 특히 이거하는 노회를 분명하게 기록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면 이명서를 발급한 노회장과 서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Ⅴ. 결론 목사의 이명은 가는 노회를 분명하게 기입하여 이명서를 보내야 한다. 이명서를 접수한 노회의 서기가 이명을 받았다고 접수를 통보해 오면 그때 노회 명부에서 삭명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본 노회 관할에 속해 있다. 다른 노회로부터 청빙을 받은 경우는 목사만 이명하면 되지만, 그러나 교회를 이적하는 경우는 목사가 이명을 한다고 하여 교회까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공동의회를 하여 이적을 청원해야 하고 목사는 교회가 이적을 청원하는 노회로 이명을 청원해야 목사와 교회가 함께 갈 수 있다. 잘못하면 목사와 교회를 분리시키는 불화를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하게 노회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이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편법으로 일을 처리하면 결과가 아름답지 못하다. _ 김종희 목사 (헌법자문위원장.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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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5
  • 김종희 칼럼_ 원로장로 어떻게 세울 것인가
    K 노회의 Y 장로님으로부터 “공동의회를 하지 않고 당회 결의로 원로장로를 세울 수 있는지와 장로 은퇴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원로장로로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문의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원로장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란 글로 답변하고자 한다. Ⅰ. 원로장로를 세우는 헌법 조문 정치 제5장 제5조 (원로 장로)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던 장로가 연로하여 시무를 사임할 때 그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공동의회의 결의로 원로 장로로 추대할 수 있다. 단 당회의 언권 회원이 된다.” 이상의 헌법 조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Ⅱ. 헌법 조문에 대한 적용 1.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의 의미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계속 시무해야 한다. 제97회 총회 “진주노회장 정계규 씨가 헌의 한 헌법 정치 제5장 5조 원로장로 중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던 장로'의 경우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가운데 단 한 번도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20년을 시무한 경우만 원로장로로 추대할 수 있는지 시무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타 교회에 갔다가 다시 시무하던 교회로 복귀 하였을 경우 타 교회 포함하여 20년 이상 충족된다면 원로장로로 추대할 수 있는지 질의의 건은 동일 교회에서 20년 이상 계속 시무한 자로 하기로 가결하다.” 2. 원로장로를 추대하는 시점 ① 제101회 총회 “김제노회장 강동현 씨가 헌의 한 장로 은퇴 후 공동의회를 통해 원로장로로 추대할 수 있는지 질의 건은 헌법대로 하기로 가결하다(헌법 제5장 제5조, 은퇴할 당시에만 할 수 있음)” 즉 “헌법 제5장 제5조, 은퇴할 당시에만 할 수 있음”대로 적용해야 한다. ② 은퇴할 당시란 표현은 은퇴(이하 사임도 포함)하는 그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 제5장 제5조(원로 장로)를 보면 이해가 간다.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던 장로가 연로하여 시무를 사임할 때 그 교회가 그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공동의회의 결의로 원로 장로로 추대할 수 있다. 단, 당회의 언권 회원이 된다.”고 하였다. 이를 순차 적으로 진행하면 ⓐ 먼저 시무장로가 시무를 사임한다. ⓑ 당회에서 원로장로로 추대하기로 한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공동의회를 소집한다. ⓒ 공동의회에서 결의되면 원로 장로로 추대된다. 그러므로 은퇴할 당시란 사임하고 공동의회 하여 추대하는 기간을 포함한 기간을 의미한다. ③ 헌법이 사임을 할 때 공동의회를 한다고 하였는데 사임 전 공동의회를 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헌법에 저촉되고 공동의회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사임하는 그날 추대할 수 없다. 결국, 은퇴 당시란 사임하고 당회 거쳐 공동의회 열어 추대하는 당시가 은퇴 당시가 된다. 그러므로 제101회 총회 결의는 은퇴한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 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 은퇴하기 전에 공동의회를 해야 한다거나 은퇴하는 그 날짜에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임한 후 다가오는 정기 당회를 거쳐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추대하였다면 합법이다. ④ 참고로 제97회 총회에서는 “이리노회장 조덕영 씨가 헌의한 헌법 정치 제5장 5조 '원로장로'와 정치 제4장 4조 4항 '원로목사'는 공동의회에서 명예직으로 추대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바 추대를 위한 공동의회 시점이 법적 은퇴일 이전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해도 되는 것인지의 해석과 시무 기간이 20년이 넘은 시점에서 시무 사임 된 사람을 원로장로나 원로목사로 추대할 수 있는지의 해석 건은 교회 형편에 따라 하기로 가결”하였다. 그러므로 제101회 총회 결의가 있기 전에는 교회 형편에 따라 은퇴 이전이나 은퇴 이후에도 할 수 있도록 결의하였으므로 그때 한 경우는 꼭 은퇴 당시에 하지 않았어도 유효하다. 3. 원로장로 추대 공동의회 정족수 ① 원로장로로 추대하려면 공동의회에서 얼마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지는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헌법 정치 제4장 제4조 4항 원로목사의 경우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되도록 되어 있기에 원로장로도 이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목사로 청빙 받을 때는 3분의 2 찬성이지만 원로목사로 명예를 받을 때는 과반수 찬성이면 되듯이 장로도 피택을 받을 때는 3분의 2 찬성이라도 원로장로의 명예를 받을 때는 과반수 찬성으로 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② 헌법에 정족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반의결은 과반수로 하도록 되어 있다. 정치 제21장 제1조 5항(회의) “연말 정기 공동의회에서는 당회의 경과 상황을 들으며 제직회와 부속 각 회의 보고와 교회 경비 결산과 예산서를 채용하며 그밖에 법대로 제출하는 사건을 의결하나니 일반의결은 과반수로 하되”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원로장로 추대 정족수는 특별한 명시가 없기에 일반의결 정족수인 과반수 찬성만 얻으면 추대된다고 보아야 한다. 4. 원로장로 언권의 한계 ① 원로장로의 당회에서 언권은 당회가 허락할 때 주어진다. 제90회 총회 “원로목사와 원로장로의 당회 언권회원은 당회를 소집할 때마다 자동으로 참석하는 언권회원인지 아니면 당회가 청원할 때 참석하는 언권인지에 대한 질의는 원로목사, 원로장로는 정치문답조례 제73문(원로목사는 그 당회의 허락을 얻지 못하면 당회에 참여하거나 강도를 하지 못하되 허락을 얻으면 무슨 사건이든지 행할 수 있으니라)대로 시행하기로 하다.” ② 원로장로의 제직회에서 언권은 정년 이전에는 있으나 정년 이후에는 없다. 제95회 총회 “대구중노회장 남재석 씨가 헌의 한 원로장로 제직회 발언권에 대한 질의의 건은 헌법(정치 제21장 2조)에 의거 ‘원로장로라도 정년 이전에는 발언권이 있고, 정년 이후에는 발언권이 없으며’라고 하기로 가결하다.” Ⅲ. 결론 원로장로는 동일 교회에서 20년 이상 계속하여 시무할 때 자격이 있다. 추대는 은퇴 당시에 해야 한다. 은퇴 당시란 사임하는 그 날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임한 후 당회를 열어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추대하는 그때를 당시라고 할 수 있다. 은퇴한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 추대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 은퇴하기 전에 추대 공동의회를 해야 한다거나 은퇴하는 그 날짜에 추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임한 후 정기 당회를 거쳐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추대하였다면 합법이다. 원로장로 추대 정족수는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된다. 당회가 요청할 때 언권회원으로 참석이 가능하고 정년 전에는 제직회에서 언권이 있다. _ 김종희 목사 (헌법자문위원장.정치부장역임.성민교회)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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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4
  • 김종희 칼럼 -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 훑어보기
    제105회 총회는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연구위원회 위원장 이석원 목사가 보고한 동 위원회 사업결과는 유인물(보고서 671~677쪽)대로 받기로 하고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은 서기단에 맡겨 규칙부로 보내 심의하도록 가결하다.”로 하였다. 그러므로 제105회 총회 보고서에 실린 내용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서기단과 규칙부 심의를 통하여 최종 결정되었다. 필자도 이 사실을 모르고 보고서에 실린 내용을 근거로 “가처분 인용 승소와 면책에 대한 해석”(2021.03.15. 합동헤럴드 기고)이란 글을 썼다. 이제 최종 결정된 내용을 토대로 아래 내용을 훑어보려고 한다. Ⅰ. 승소로 보는 경우는 어떠한가.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이하 세칙)에서 승소로 보는 경우는 어떠한가. 세칙 제1장 제4조 4항에 보면 “①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승소 판결을 받은 경우 ② 가처분신청·가압류신청에서 신청인(채권자)이 인용 결정을 받은 경우 ③ 고소인의 고소로 피고소인이 유죄(벌금·집행유예·실형)로 처벌된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승소로 볼뿐 승소에 대한 혜택은 받을 수 없다. 승소에 대한 혜택은 승소가 확정될 때 받을 수 있다. Ⅱ. 승소가 확정될 때 받는 혜택은 무엇인가. 1. 총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하여 노회나 총회 총대권이 정지당한 상태라면 회복이 된다. 세칙 제4장 제15조 ①항 “소송제기자가 승소 확정 시 그자는 승소확정판결일로부터 노회나 총회 총대권이 회복된다.” 2. 해당 재판국 판결 및 관련 결의가 효력이 정지된다. 세칙 제4장 제15조 ②항 “해당 재판국 판결 및 관련 결의는 소송제기자가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날로부터 효력이 정지된다.” 3. 피선거권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세칙 제4장 제16조 ②항 “소송제기자가 승소 확정 시 해벌 된 징계는 무흠으로 간주 됨으로 피선거권의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Ⅲ. 결론 세칙에서 가처분 인용을 받아도 승소로 보는 것은 맞다. 그리고 1.2심에서 승소하여도 승소는 맞다. 그러나 승소의 혜택은 승소가 확정되었을 때 받을 수 있다. 가처분에서 인용이 되어 승소하였다고 해도 본안소송을 지켜보아야 한다. 또한, 본안소송 1.2심에서 이겼다고 해도 항소가 되고 상고가 되었다면 승소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지켜보아야 한다. 총대권이 정지당하고 있다면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정지상태로 있게 된다. 해당 재판국 판결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을 경우도 최종심에서 승소하기까지는 해당 재판국 판결은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위에서 밝힌 대로 소송제기자가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날로부터 판결 효력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법을 분명하게 적용하면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총회에 법치가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_김종희 목사 (헌법자문위원장.정치부장역임.성민교회)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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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7
  • 김종희 칼럼 - 목사에 대한 사건 신중하게 처리해야
    목사에 대하여 고소나 고발, 진정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점검해야 할 사항이 있다. Ⅰ. 해 교회 교인이 아닌 자의 서류를 받을 수 없다. ① 권징조례 제37조에 “복음의 영예와 발전은 목사의 명성에 관계됨이 많으므로 노회는 마땅히 조심하여 소속 목사의 개인적 행위나 직무상 행위를 자세히 살필지니 그 목사 됨을 인하여 편호(偏護)하여 불공정한 판결을 하지 말며 혹 그 죄를 경하게 벌하지 말 것이나 또한 목사에 대하여 사소한 곡절로 소송하는 것을 경솔히 접수하지도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목사를 상대로 하는 고소, 고발, 진정은 신중하게 파악하여 접수해야 한다. ② 특히 주의할 것은 노회는 해 교회 교인이 아닌 자가 목사를 고소, 고발, 진정하는 서류를 접수할 수 없다. 헌법적 규칙 제3조 교인의 권리에 보면 1항 “교인은 교회 헌법대로 순서를 따라 청원(請願), 소원(訴願), 상소(上訴)할 권리가 있다.” 2항 “교인은 지교회에서 법규대로 선거 및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무고히 6개월 이상 본 교회 예배회에 계속 출석치 아니한 교인은 위의 권리가 중지된다.”라고 하였다. 해 교회 교인도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모든 권리가 중지된다. 하물며 해 교회 교인도 아닌 자가 무슨 권리로 남의 교회 목사를 상대로 고소, 고발, 진정을 할 수 있나. 할 수 없으므로 접수해서는 안된다. ③ 안되는 이유는 권징조례 제15조에 보면 “기소인이 치리회에서 선정한 위원이 아니요, 자의(自意)로 소송하는 자이면 개심(開審)하기 전에 치리회는 먼저 경계하되 ‘송사가 허망하여 너의 악의와 경솔한 심사가 발현되면 형제를 훼방하는 자로 처단하겠다’ 언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치리권 밖에 있는 자의 고소, 고발, 진정을 받을 경우 송사가 허망한 것이 발견된들 처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해 교회 교인이 아닌 자의 송사를 받아서는 안된다. 송사하는 자나 피 송사자 모두 해당 치리회의 치리권에 복종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Ⅱ. 증거가 불확실한 서류는 받을 수 없다. ① 권징조례 제59조에 보면 “증거는 구두(口頭)로 하고 필기한 서면이나 인쇄한 문자로도 하고 직접으로 하며 형편을 따라 간접으로도 할 수 있다. 범죄 안건에는 한 사람의 증거뿐이요 다른 증거가 없으면 소송 안건을 확실히 결정하기 어려우나 소장 한 통에 같은 종류의 죄를 열거하였는데 매 사건에 대하여 각각 다른 증인이 한 사람씩만 있을지라도 가히 믿을 만한 실증이면 그 소장은 전부 결정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범죄를 주장하는 사람만 있고 다른 증거나 증인이 없을 때 받아서는 안된다. 성경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는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목사를 상대로 고소, 고발, 진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 증인이 있어야 한다. ② 권징조례 제8조에 보면 “혹시 범죄 사건이 중대할지라도 이상한 형편으로 인하여 판결하기 극난한 경우에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공의의 방침으로 실증을 주시기까지 유안(留案) 하는 것이 재판하다가 증거 부족으로 중도에 폐지하여 일반 권징의 효력을 손실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범죄 사건이 중대하여도 판결이 극난하다면 유안해야 하는데 하물며 증거나 증인도 없고 범죄의 외형도 남은 것이 없을 경우는 범죄를 주장하는 당사자의 말만 가지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당사자의 말만 믿고 서류를 접수할 수 없다. ③ 서류를 접수하는 자는 권징조례 제16조 “소장에는 범하였다는 죄상을 밝히 기록하고 죄증 설명서에는 범죄의 증거를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니 범죄의 날짜 및 처소와 정형과 각 조에 대한 증인의 성명을 자세히 기록할 것이다.” 대로 확인하여 접수해야 한다. Ⅲ. 서류를 접수하는 자가 오히려 범죄자가 될 수 있다. ① 권징조례 제3조(범죄) “교인, 직원, 치리회를 불문하고 교훈과 심술과 행위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나 혹 사정이 악하지 아니할지라도 다른 사람으로 범죄하게 한 것이나 덕을 세움에 방해되게 하는 것이 역시 범죄이다.”라고 하였다. ② 목사에 대하여 평소 불만을 품은 자들이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목사를 내보내려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불법 문서를 만들어 서명을 받거나 팩트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교인들에게 회람을 시킨다면 교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방해가 된다. 결국 꼬투리 잡힌 목사보다 더 큰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Ⅳ. 조사위원의 회보를 접수하므로 종결한다. ① 권징조례 제13조 “교인이 다른 사람의 훼방을 당하고 그 치리회에 대하여 그 일의 조사 변명을 구하는 경우에는 그 치리회가 상당한 줄로 인정하면 위원 일인 이상을 선정하여 조사 회보하게 할 것이요 그 치리회는 그 위원의 회보를 접수하여 회록에 기재함으로 그 사건을 종결한다.”라고 하였다. ② 즉 범죄를 주장하는 당사자만 있고 증거나 증인도 없을 때 훼방을 당하는 당사자가 치리회에 조사 변명을 구할 수 있다. 조사위원이 조사하여 치리회에 회보하면 치리회가 접수하여 회록에 기재하므로 그 사건을 종결한다. 조사 결과를 회록에 기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조사위원의 한계이다. 처리를 원했다면 조사처리위원을 냈어야 한다. Ⅴ. 결론 교인이 아닌 자의 고소, 고발, 진정은 받을 수 없다. 또 한 증거가 불확실한 서류는 받을 수 없다. 권징조례 제37조에 “복음의 영예와 발전은 목사의 명성에 관계됨이 많으므로 노회는 마땅히 조심하여”라고 하였으므로 노회는 목사에 대한 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종희 목사(헌법자문위원장.정치부장역임.성민교회) 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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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30
  • 김종희 칼럼 - 총신 재단이사장 선출을 보면서
    총신대학교(이하 총신) 재단이사장(이하 이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선출되었다. 일단 이사장 당선에 축하를 드린다. 금 번 이사장 선출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과거 총신은 총회 교권의 지배를 받을 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70회 총회 이후 총회 교권이 총신의 총장을 강제로 퇴출시키려고 이사들로 하여금 총장을 해임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필자가 과거 총신 졸업식 날 하객으로 참석하였을 때 그 당시 총회 교권을 잡고 있었던 아무게 이사 물러가라는 현수막을 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이렇게 총신이 총회 교권의 지배를 받으므로 교권에 대항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나 반면 총신은 총회가 직영하는 신학교인데 총회가 맥없이 당하는 꼴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런데 이번 정이사 선정 과정과 이사장 선출을 보면서 총회는 속수무책 당하는 느낌이들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에서 정이사 후보를 복수 추천받을 때부터 총회 측 인사들의 진입은 철저히 막혔다. 더구나 차기 총회장은 총회를 대표할 인사인데 일부 학생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제외되었다. 총신정상화 위원장도 낙마하고 개방이사추천위원장도 빠졌다. 결과적으로 선정된 이사를 볼 때 일부 학생들과 일부 교수들이 원하는 특정 그룹 인사들, 그리고 그 그룹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인사들까지 합하면 전체 이사의 3분의 1이 되었다. 금번에 이사장을 선출하는데 총회장과 일부 이사들은 합의 추대를 원하였지만, 특정 그룹은 경선을 주장하여 특정 그룹의 인사를 이사장이 되게 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특정 그룹이라고 해도 양심의 자유에 따라 개별적 선택을 하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번 투표 결과는 특정 그룹을 포함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한편으로 통일이 되고 여기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표가 합산되어 이사장이 선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이다. 이것이 맞다면 염려가 된다. 앞으로 정관을 개정하여 총회 결의에 따라 이사 수를 30명으로 늘려 총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총회와 총신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금번에 들어난 8표가 응집한다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이사들의 추천을 얼마든지 배척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결국 총회 측 인사들은 이사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그리고 정년제가 없는 것이나 교단 소속의 규정이 없는 현재의 정관에 유리한 이사들이 한 마음을 갖는다면 정관도 쉽게 개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럴 때 총회가 이사 인준을 할 수 있겠는가. 총회 규칙에 보면 이사는 총회의 인준을 받도록 되어 있다. 물론 사학법으로는 총회 인준이 없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렇다고 총회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직영신학교 이사가 되는 불명예를 원하는 이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치가 되면 사학법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준은 하되 정관개정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효력이 있는 다짐을 받고 인준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선출된 이사장이나 특정 그룹에 속한 이사들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과거 총회와 총신의 불행한 과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철을 밟지 않고 잘해 보려는 생각이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들의 행동으로 특정 그룹의 전체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더욱 필자가 기대를 거는 이유는 특정 그룹에 속한 이사들의 면면을 다는 모르지만 신앙 인격을 믿을 수 있는 이사도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이사장은 교단에 속한 총신 이사들과 총신 정상화 위원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여 앞으로 나갈 총신의 방향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총신 이사는 총신을 대표하고 총신 정상화 위원들은 총회를 대표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총신 문제는 우리 이사들의 고유 권한이라고 받아치면 할 말이 없지만, 총회 직영신학교인 만큼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부터 선출된 이사장과 특정 그룹 이사들은 총회와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하고 갈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회는 총회대로 총신은 총신대로 대치 국면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총회는 과연 정이사 추천과정이 공정하였는지, 사분위에 진정은 없었는지, 항간에 떠돌고 있는 총신 사태 때 자금 지원은 없었는지 등등을 조사처리 하려고 할 것이다. 결과를 떠나 총회원들은 시끄러운 자체가 싫다. 마치 가정불화가 일어나면 부모 중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녀들은 그 자체가 싫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사장의 리더십이 있는지는 총회와 관계 설정을 위한 행보부터 점검받는다고 할 수 있다. 제106회 총회가 총신 문제로 시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총회와 총신이 잘 풀려 전국교회가 하나되어 총신을 살리는 일에 함께 매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종희 목사(헌법자문위원장. 정치부장역임. 성민교회)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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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5
  • 이효상 칼럼_ ‘트롯’ 전성시대가 주는 것?
    요즘은 ‘트롯(trot)’이 대세다.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미스 트롯>,<미스터 트롯>이 코로나 감염이 폭증하던 한복판에서 TV조선에서 방송되며 시청률 28.6%(분당 최고 시청률 30.2%)로 종합편성채널 10년 역사 이래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예능 프로그램 첫 방송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하며 대한민국 트롯 오디션의 신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트롯’은 명절이면 씨름대회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TV만 틀면 트롯이 나온다. 뉴스(news) 팔이가 본업인 종편 매체가 트롯 쇼 프로그램 하나로 먹고 산다. 1년 전에 뽑은 <미스터 트롯> 가수들로 재탕, 3탕, 4탕 계속 찐하게 수익을 짜내고 신상 <미스 트롯2>까지 대박이다. 기가 막힌 사업모델이요, 아이템이다. 방송 채널마다 앞다투어 트롯이다. 시청률 고공행진 못지않게 얼마 전 열렸던 <미스 트롯2> 경선에서는 시청자의 문자투표가 400만 명을 넘어 섰다니 놀랄 노 자(字)다. 팬심이 나무라면 응원 문자투표는 열매인 셈이다. 국민들이 응원하고 국민들이 우승자를 선택하는 말 그대로 오픈(open) 경선(競選)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어느 정당도, 정치도 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요즘 유행을 창조하는 대세는 레트로(retro)가 아닌 뉴트로(new-tro)다.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뉴트로(new-tro)다. 트롯이 그렇다. ‘옛것’의 가치에 ‘요즘것’의 새로움을 더한 뉴트로는 잊혀졌던 옛것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도대체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이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빠져들고 열광할까. 사람들은 트롯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이 시대 트롯이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시청자들이 선택하는 공정한 오디션(audition)이다. 무명가수의 삶에서 오디션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되었다.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미스 트롯에서 발견한 것은 생계형 행사장 가수의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노래가 생업이지만 오를 무대가 없어 생계가 어려워지고 살아갈 희망마저 포기했던 그들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장터, 행사장을 뛰어다니는 트롯 가수들의 아픔을 진솔하게 많은 시청자에게 전달됐고 그들을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치열한 패자의 부활전, 인생 역전에 도전한 그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노래만이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마이크 하나 들고 전국을 떠돌며 노래 하나로 살아온 그들이 시청자들의 선택에 의해 영웅으로 등장했다. 신선했고 자랑스러웠다.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 중심에는 공정한 오디션 프로라는 장 <미스 트롯>의 송가인, 홍자 이후, <미스터 트롯>의 임영웅이 나왔다. 또 <미스 트롯2>의 양지은과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 ‘트롯’이라는 노래는 얼마나 어떻게 숙성시켰는지에 따라 깊이와 감동이 다르다. 남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것이 실력이었다. 아픔을 딛고 저마다 가진 인생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꿈을 갖고 성실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눈부시게 아름답게 비상한 날이 온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또 다른 꿈을 품게 하였고 세상에 희망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금수저’라는 신조어가 논란되었고, 우리 사회에는 ‘공정’과 ‘정의’가 깨어지고 노력한 것이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우울함을 던져 주었다. 부모의 힘과 재력으로 노력 없이 무임승차해서 누리는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며 평범한 젊은이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좌절할 때 자신의 가진 재능 하나로 다시 재기하는 역전의 드라마는 보는 이들을 황홀케 했다. 얼마 전 연세가 있으신 지인께서 요즘 트롯에 심취하여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를 찾으셔서 예전의 70~80년대의 테이프를 어렵게 구해 드렸다. 트롯에 감동을 받고 영혼과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부르는 가수들 역시 스스로가 자신의 노래에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해 한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노래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다. <미스 트롯>이나 <미스터 트롯>의 주인공들이 주는 것은 위로만이 아니다. ‘연예인’이라는 특수성이 아닌 우리와 같다는 친근한 대중성에 있다. 마치 동생 같고, 옆집의 아들딸 같아 친근스럽다. 그들은 요즘 또래의 청년들이 놓치기 쉬운 아름다운 품성과 함께 겸손과 배려가 묻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오랜 무명시절을 겪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준 반듯한 삶의 자세는 그들의 노래와 함께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된다. 출전자는 모두 경쟁자다. 그러나 경쟁이 의미가 없다. 다들 눈물의 시간을 보내며 밑바닥을 경험하였기에 이미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역자가 된다. <미스터 트롯>의 임영웅과 영탁, 장민호도 세 사람은 경쟁자다. <미스 트롯2>의 양지은, 홍지윤, 은가은, 별사랑 등 하지만 그들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상대의 잠재능력을 끄집어내서 높여 준다. 그들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는 함께 가야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우리는 그들을 보며 경쟁 관계에서 잃어버린 건전한 파트너쉽(partnership)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들은 무명시절을 겪으며 갈증과 결핍으로 포만감을 느껴 본 순간이 별로 없었을 텐데도 이제 비로소 받은 진수성찬 앞에서 허겁지겁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지 않는다. 상대방의 빈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서로서로 맛있게 먹는 걸 지켜보며 미소 짓는 여유와 배려가 있다. 감성의 시대다. 서로 경쟁하고 제압하고 자기편을 만들어야 살아남는 현실에 국민은 피곤하다. ‘트롯’은 코로나로 일상에서 피곤하고 지친 세대에 위로를 주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악이나 가곡처럼 악을 쓰듯 내지르는 큰소리에 긴장하고 지쳐 있었는데 비로소 이야기하듯 30초에서 90초 매직(magic)으로 다가와 다정다감한 노래를 만나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노래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누군가가 내 언 손을 잡아주고, 시린 가슴을 덥혀주고, 퉁퉁 부은 발이 푹신한 털신 속으로 쏙 들어갈 때의 그런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다. 하루하루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하지만 최근 많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나친 팬심이 경쟁이 되어 악성 댓글이 양산되기도 했고 과거의 일 때문에 하차를 하는 참가자도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음악성보다 지나친 노출의 선정성, 가벼운 노래만으로 흥행성을 돋우려는 진행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통 트롯이라면 어린이들의 재롱 잔치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정통 트롯을 말하는 시청자, 관객 중 <미스 트롯2> 오디션에서 별사랑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정통 트롯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래를 불렀다. 힘들게 코로나를 견디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는 그런 이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들이 그런 역할을 착실히 해내고 있다. 코로나의 불안 속에서 트롯의 열풍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마인드를 읽는 것은 중요하다. 문화 현상, 문화 코드를 제대로 읽어야 사회가 발전한다. 보고 읽고 생각하고 글 쓰고 발표하고 몸부림치므로 세상을 읽는 혜안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트롯 전성시대를 방송을 보며 교회를 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문뜩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교회도 은혜로운 찬양을 이 시대에 맞게 편곡해서 대중에게 다가가 보면 어떨까. 클래식(classic)한 곡만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까. 국악찬양은 되고 힙합(hiphop)이나 랩(rap)으로 찬양하면 안되는 걸까. 트롯 찬양, 뽕짝 찬송은 커트라인(cut line)에 걸리는 것인가. 성령 뽕필 트롯 찬양 가수가 찬양 트롯을 들고 <미스 트롯>에 과감하게 도전을 한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며 기독교TV 방송들도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설교 방송만 할 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contents) 개발의 대안은 없을까. 꼭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굳어진 생각의 변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지는 않는가. 우리가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동안 편견적 시각에 갇혀 있던 ‘트롯’이라는 그 벽을 깨며 향토성 짙은 트롯의 깊은 맛을 보게 해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젊은이들이 보여준 훈훈한 삶의 소통 자세 때문 아닐까. 그래서인지 ‘트롯은 장년층의 레퍼토리(repertory)’라는 가설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세대를 넘어 청소년들까지 열광하며 국민가요로 등장한 것 아닐까. 글쓴이 이효상 원장(시인,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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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7
  • 이효상 칼럼_ 정약전의 ‘자산어보’, 영화로 만나다.
    최근 화제가 되는 영화가 개봉됐다. 볼만하다. 영화 ‘자산어보(玆山魚譜)’다. 배우 설경구가 주인공 정약전(丁若銓, 1758~1816) 역(役)으로, 그의 형제 다산 정약용(丁若鏞) 역(役)에 류승룡이, 그리고 변요한이 흑산도 청년 장창대(張昌大) 역(役)으로 나온다. 이들이 받아들인 서학(西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밑바탕에 깔고, 약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영화 ‘동주(東柱)’를 예전에 찍은 이준익 감독이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사람 냄새와 바닷냄새가 물씬 나는 볼수록 진한 여운이 묻어나는 영화다. 컬러 시대를 넘어 3D/4D 시대에 다시 흑백영화를 본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흑백 사진이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感性)을 되살린 참 좋은 영화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정약전의 책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삼았다. 주자의 성리학을 더럽히고 백성을 현혹하는 서학(西學)을 했다는 이유로, 신앙의 배교자가 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흑산도로 유배 간 약전과 약용, 그리고 그와 함께 훗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실용서를 쓴 창대와의 우정이 영화 ‘자산어보’의 주요 골격이다. 정약전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차남으로,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인 정약용의 형이다. 일찍이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성호 이익(李瀷)에게 지도를 받으며 서양의 신(新)학문을 익혔고 이 집안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 일명 서학으로 불리는 기독교(天主敎)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그 집안과 관련된 인사들은 이승훈, 이벽, 황사영 등이 모두 매형, 처남, 사위 등으로 연결된다. 정조 7년(1783) 생원시, 정조 14년 증광 별시에 합격하여 승문원 부정자(종9품)에 제수되었다. 정조는 정약전의 직급이 먼저 급제한 동생보다 낮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재위 21년 정약용을 곡산 부사에 제수하면서 정약전을 특진시켜 사관(정6품)에 제수했다. 약전.약용 형제의 인품과 탁월한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정조의 애정 어린 배려였다. 그러나 재위 24년(1800) 정조가 독살당하면서 약전.약용 형제의 관운도, 조선의 명운도 함께 끝났다. 1800년은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해였다. 순조(純祖) 원년(1801)에 일어난 신유박해, 그리고 황사영 백서사건 등이 터지자 수많은 명신들과 함께 약전.약용 형제도 서학과 신앙을 받아들인 죄목으로 기약 없는 유배길에 올랐다. 이때 전라도까지 함께 내려간 형제는 나주에서 길이 갈려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흑산도(黑山島)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전은 이곳 주민 문순득(文淳得)이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와 중국을 거쳐서, 만 3년만인 순조(純祖) 5년(1805)에 조선으로 돌아오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갔다. 문순득에게서 표류의 전 말을 듣고 조선 시대 홍어장수 표류기인 『표해시말(漂海始末)』을 저술(著述)했는데 이는 조선시대판 ‘하멜표류기’다. 순조(純祖) 원년(1801) 제주도(濟州島)에 낯선 배 한 척이 표류해 왔다. 배에는 외국인 5명이 타고 있었는데, 나라이름을 쓰라하니 막가외(莫可外)라고만하여 몰라서 중국 요녕성 성경으로 보냈다. 1802년(임술년, 순조 2년) 10월. 중국 성경의 예부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 알 길이 없다며 조선으로 다시 보냈다. 그 와중에 5명 중 1명 병사했다. 관청의 건물과 먹거리를 내주고 조선의 풍토와 언어를 익히라 하였다. 그러면서 4명 중 1명 또 사망하게 된다. 1807년(순조 7년) 8월 10일. 제주 목사 한정운이 표류인들이 ‘여송인(呂宋人, Luzon(현재 필리핀의 루손섬)’임을 알고, 본국 송환을 상계한다. 이들 표류인을 제주에 표류해온 ‘유구인(琉球人(현재 일본 오키나와)‘들과 만나게 하니 유구인 궁평(宮平)이 여송인임을 알아차렸다. 유구 사람 통사 경필진이 궁평에게 물으니, 문순득의 표류 이야기를 하며 문순득 일행에게 들은 이야기를 회상하며 알려주었다. 여송국과의 외교 소통이 없고, 중국에서 이들을 송출한 예가 있어서 유구인에게 부탁하여 보내라 명하였으나, 유구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1809년(순조 9년) 6월 26일. 통역관 문순득을 만나게 하여 여송국 방언으로 문답하니 딱 들어맞았다. 비로소 여송국의 표류인을 송환시켰던 이야기를 기술했다. 흑산도에 와서 무서움이 많았던 약전은 창대를 만나 어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삶을 살게 된다. 흑산도의 정약전은 생업도 외면한 채 오로지 물고기 연구에 평생을 바쳐오고 있는 장덕순(張德順) 또는 장창대(張昌大)라 불리는 사람의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는 말에 도전을 받아 어류에 대해 널리 알려 백성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함께 연구해 이 어류도감을 만들게 된다. 집으로 불러 함께 기거하며 물고기에 대한 공동 연구를 계속해나갔다. 그의 도움으로 자신이 평생 관찰해온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론을 붙여 순조(純祖) 14년(1814), 그는 각종 물고기와 해조류를 포함해서 수중생물 226종(種)의 명칭, 크기, 형태, 외형의 특징, 생태, 맛, 어획 시기와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한 『자산어보』를 펴낸다. 자산(玆山)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고, 어보(魚譜)는 물고기 백과사전이라는 뜻이다. 정약전은 흑산도라고 하면 서신을 받아보는 가족들이 무섭게 여길까 싶어 섬 이름을 자산으로 바꾸었다. 그는 『자산어보』 서문에서 자신을 ‘박물자(博物者)’, 요즘 말로 하면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영화에서는 창대가 『자산어보』보다 『목민심서』의 길을 택하여 진사로 공직에 나가게 된다. 창대는 권력이 있으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약전은 유배 생활 16년 만인 순조(純祖) 16년(1816)에 끝내 유배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우이도(牛耳島)에서 자신의 생(生)을 마감한다. 그런데 동생인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라 형의 장례(葬禮)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때 정약전의 장례를 대신 치러준 사람이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의 주인공 문순득(文淳得)이다. 조선 후기는 실학의 영향으로 백과사전류의 책이 저술된다. 건축, 의학, 과학, 수학, 천문학, 생물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19세기 조선의 지식을 집대성한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도 출판된다. 이렇게 명작들이 나오자 그동안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매달려 있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겐 충격이었다. 실학의 영향으로 『자산어보』나 『임원경제지』처럼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내용의 책을 저술했던 것은 근대화를 위한 조선 나름의 최선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은 이후 쇠락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망국에 이르게 되면서 아쉽게도 이러한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선 시대 유배지에서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수 많은 저서들을 집필했다. 고난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그들과 함께, 순창 군수와 전라 감사를 지낸 서유구도 순조(純祖) 6년(1806)부터 헌종(憲宗) 8년(1842)까지 36년에 걸쳐 일평생 집필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길을 열어갔다. 약전과 약용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아니었을까. 또 한 그들에게 신앙과 순교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주자의 나라 조선’이라는 틀에 갇혀 서학을 못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시대에 “누가 주인이냐”는 약전의 외침은 진한 메아리가 되어 울려온다. 그에게 어보는 어떤 의미였을까. 약용에게 『목민심서』나 약전에게 『자산어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해야 할 일 즉 사명이 아니었을까. 상하(上下)를 따지고, 나와 다름을 거부하는 시대가 조선 시대인데도 약전은 자신을 창대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창대의 스승이 아닌 '우리 거래하자'라고 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 시대를 앞선 사상이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 시대든 시대 문화발전과 성숙은 다양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를 즐길 줄 아는 수용의 마음과 태도를 가지는 데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이는 창의성의 근원이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의 차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양함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사회를 함께 이루려는 것이 건강한 시민들의 꿈이었으면 한다. 글쓴이 이효상 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서지학자, 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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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이효상 칼럼_ 부활의 아침에 시를 읽다
    부활의 아침에 넘어서야 할 것?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오고 고난의 시간이 지나 부활의 아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친히 오셔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은혜중의 은혜다. 부활 사건은 하늘길을 열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죄로 인한 사망의 자리에서 살 희망으로 막힌 담을 허물어 소통케 하는 새로운 길이었다. 사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나 돌무더기가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인간을 사망의 길로 몰아내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이자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막는 장벽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우상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날카로운 현안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만든 물체나 이교도들의 신들을 섬기곤 했다. 성경에 주로 나오는 우상은 바알과 아세라, 아스다롯 등이다. 아세라는 바알의 어미이다. 바알은 천둥과 번개의 우상이다. 아스다롯은 농사의 우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우상이 황금 송아지 우상이다. 한편 초대 교회 안에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의 옛 관습이나 문화가 우상의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신약시대에는 우상숭배 개념이 더욱 넓어졌다. 재물, 탐욕, 음행 등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두를 우상과 동일하게 간주했다. 그런 우상은 세계 도처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과 교회를 움직이는 힘에는 공통 적으로 작동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가 교회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맘몬’의 힘이다. 이른바 ‘물질(돈)’이다. 오죽하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생겼을까. 이것은 교회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성도들의 마음속만이 아니라 목회자의 마음속에서도 이미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첫 행하신 일은 성전에서 돈 매매하거나 돈 바꾸는 장사치들의 좌판을 둘러 엎으신 것이다. 그렇게 성전을 청소하시고 몸과 영혼이 병들고 상한 자들을 고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실로 교회의 장래를 밝게 볼 수만은 없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부귀와 명예를 취하는 일들이 난무하다. 교회나 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맘에서 시작한 일이 어느 날 장사가 되고 영업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행여나 혹시나 어쩌다 금송아지를 주님보다 더 사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종교든 비우는 성빈(聖貧)생활이 없는 종교는 타락하게 되어 있다. 출력이 없이 입력만 하면 반드시 탈나게 되어 있다. 이런 금송아지 우상을 넘어서야 산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탐욕이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 코로나에도 매년 재산이 몇억씩 불어나는 공무원들은 투자의 귀재들인가. 최근에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LH 부동산투기는 인간의 탐욕은 과연 끝이 없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여의도에 봄 향기를 가득 머금은 벚꽃이 만발하였지만 ‘가짜농부’는 왜 그리 많은가. 여야 할 것 없이 다 썩은 것인가. 공직자와 법관이,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가 부패하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나. 인간이 추구하는 욕심은 돈, 권력, 명예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를 치열하게 만드는 원초적 욕망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서 이룬 성과에서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하나나 둘을 가지려는 순간이 탐욕이다. 그만큼 삶의 존재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삶의 역설이다. 지금도 주변엔 돈 많은 재벌이 권력이나 명예를 더 갖고 싶고, 권력을 가진 공직자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돈이나 명예도 갖고 싶고, 사회적인 명예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 돈과 권력을 더 가지려 하다가 소중히 일궈온 삶이 탐욕으로 한순간에 추락하는 모습을 무수히 보게 된다. ‘무소유’를 강연하던 어느 종교인이 페라리자동차와 건물주로 ‘풀 소유’로 추락하였으니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병폐는 끝없는 욕심이 아닐까. 코로나가 소멸되어야 한다. 길가의 개나리와 벚꽃은 만발하였지만, 코로나로 일상의 회복을 맛보지 못한다. 모두들 참으로 어렵다. 사회와 교회의 양극화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혹자는 우스개로 말하기를 종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 겟돈(?) 전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부활의 아침을 만나니 달라진다. 우리가 너무나 좋아했던 세속적인 것들, 우상들을 제거하는 변화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라는 말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린다.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집 ‘귀천’에서 이 땅에서의 삶을 ‘소풍’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소중한 삶과 물질들을 드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가.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치고 다스리고 버려야 할 그 모든 것을 거듭나고 깨끗케 하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있는가. 사월의 봄, 부활의 봄에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이 시대 백성들에게 교회는 물질이 아닌 영적인 복음으로 교회 됨을 보여줘야 한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주님과 함께 하는 교회로 가기 위해선 금송아지 우상을 넘어서 다시 복음으로 가야 산다. 고난 가운데 탄식하고 신음하는 사회과 교회와 이 백성들에게 ‘평안하라’ 하시는 주님의 위로와 음성이 다시 들려지기를 기대하며 아직도 세상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와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며 달려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부활의 아침에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유안진 시인이 쓴 ‘내 믿음의 부활절’이란 시를 다시 읽는다. “지난겨울/ 얼어붙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돋습니다./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 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풀 포기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쳐 부활의 증거 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 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부활에 참여하므로 개인이 살아나고 민족이 살아나는 역사를 꿈꾼다. 나사로처럼 사망의 자리를 털고 나온 부활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이효상 원장 (시인,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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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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