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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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광훈과 진중권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3-5 전광훈 목사는 지난해 2019년 10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 집회에서 외쳤다.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 나는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2020년 2월 8개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협의회가 ‘한국교회에 드리는 글’을 통해 “전광훈 목사가 애국 운동을 빌미로 하여 여러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여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8대 교단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 동기가 반(反)성경적·비(非)신앙적·비(非)신학적이며 “전 목사의 이런 언행으로 인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전 목사로부터 신앙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9월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변호인단, 8·15집회 비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신영복(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북한 노동당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움직였던 반체제 지하조직)에 대해서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건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 광화문 집회를 그만두겠다. 사과 안 할 거면 대통령을 그만둬라.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겠냐... 재개발을 선동해 사랑제일교회 진입을 시도하며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뒤집어씌워 사기극을 펼치려 했으나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실패했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범죄 행위를 감추지 마라... 독일 히틀러가 선동할 때 온 국민이 넘어갔다. 언론도 넘어가고 성직자도 99% 넘어갔다. 본회퍼 한 사람이 반대하다 순교 당했다. 머지않아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선지자는 국민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하나님과 역사와 진리 앞에 잘못된 것은 책망한다. 한 달 동안 지켜보다가 한 달 뒤부터 목숨을 그야말로 던지겠다.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 세례 요한처럼 문재인의 불공정 불의 지적에 목숨을 걸고 비판한 전광훈 목사의 발언 가운데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외침의 의미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한테 까불면 나한테 죽어.” 그 말은 하나님과 국민이 살아 있음을 잊었거나 무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관계자들의 불법한 자들을 질타하다가 하나님 '한테'라는 조사 하나가 빠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광훈 목사는 군중 앞에서 열정에 싸여 말의 작은 실수가 있었던 같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에 앞서 한 말처럼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전파하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의 참뜻을 새기려 하거나 그의 용감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좌파 정권에 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불의와 부정에 맞선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이 불의한 시대를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비겁한 자들이여 전광훈 목사처럼 나서서 불의의 잘못을 외치지 못하거나 진중권 교수처럼 글과 말로 문재인의 불의를 지적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현 여권과 586운동권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직접 날 선 비판을 하게 된 계기로 '문자폭탄은 양념' '세월호 고맙다' '조국에 마음의 빚' 등 문 대통령의 발언 3가지를 들었다. 문재인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투쟁한 죄로 세 차례 감옥을 다녀온 전광훈 목사는 애국애족의 민주주의를 외쳐 좌파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oller 1892년-1984년) 독일 루터교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때문에 그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7-10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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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설날 천지창조 첫날
    창세기 동물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는 속담이 있다. 설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보름엔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설날 아침 눈이 내려 길이 질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어머니 손 잡고 친척 집으로 세배하러 가던 길엔 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댓돌에도 장독대에도 담장에도 나뭇가지에도 교회 지붕에도.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중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곧 농경 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 것이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시 ‘첫눈’이다. 한 줄 짧은 시에 그리움이 녹아 있다. 어디 첫눈뿐이랴. 초겨울에 내리는 풋눈, 설날 내리는 설눈, 가늘고 성기게 날리는 포슬눈, 밤새 몰래 내린 도둑눈…. 설을 ‘구정’이라고 하면 조상들은 서운할 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설’도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한민족의 혼을 뭉개려 설을 없애고 일본 설인 ‘신정’을 쇠라고 강요했다. 설은 낡은 풍습으로 깎아내려 ‘구정’이라고 칭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설을 지킨 건 민초였다. 신정은 그저 ‘왜놈들 설’일 뿐이었다. 1985년 구정은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1989년 민속의 날이 설날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옛 이름을 되찾았다. 더 이상 신정, 구정, 음력설, 양력설로 구분해 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설은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더굳뉴스 독자 여러분 설 잘 쇠세요.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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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종말론 폐단
    차가운 날씨가 머리를 맑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실패와 좌절이다. 그렇듯 겨울은 끝이 아니다. 가려진 것들을 들춰서 가감 없이 바라보며 봄을 준비하고 부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데 20~30대엔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한 일자리(job)이다. 그러나 40대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커리어(career)로 변하고 50~60대엔 하나님 뜻을 추구하는 소명(calling)으로 바뀐다. 70대에는 교단의 빌어먹을 법 70정년제 때문에 은퇴로 교회를 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딘가를 맡아야만 쓸모가 있는 ‘목회자’에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번역이나 저술을 위한 ‘직업인’으로 변신하는 게 중요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70정년제가 없는 교단으로 이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는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가는 북한 김씨 왕조에서 한 수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64대) 올브라이트(Madeleine Korbel Albright, 1937년 5월 15일 ~ 2022년 3월 23일)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국 여배우 최은희도 납치한 김정일은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총회 정치꾼들이 교계와 정치계를 기웃기웃거리며 다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인지 진정 주님의 교회 때문인지 사뭇 궁금하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곰돌이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고모부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에 의해 왕세자로 급조됐다. 그러나 장성택은 2013년 12월 3일 모든 직위에서 배제되고 출당 조치를 당했으며 같은 달 12일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그 기간이 2천7백 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2022년 12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백 년, 8천 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백 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2022년 2월 24일 공산주의 본산이자 세계 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자기 우방국인 약한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일으킨 것과 같은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 년 전쟁(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 대기근(1845년에서 1852년까지 아일랜드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역병과 집단 해외 이주의 시기를 일컫는다),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 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림프절에 감염되는 선페스트,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혈관에 감염되는 패혈성 페스트, 허파에 감염되는 폐페스트 등으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한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하나님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 년 왕국 주의(千年王國, millennialism, 천 년을 뜻하는 라틴어 밀레니엄/millenium에서 비롯)’가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 이전에 지상에 재림하여 직접 통치하는 천 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죽음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과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려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지상에서 살며 왕처럼 활동하며 지상에서 낙원이 이룩된다는 내용이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최후심판이 있고 이날에 천년왕국에 살고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 요한계시록 20장 1-15절에 가장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예언자이며 하나님의 전사(戰士)라고 자처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순결하게 재생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하찮은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 왕국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해 차라리 폭력을 휘둘러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유사한 사례가 장차 구원받을 사람은 14만4천 명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요한계시록 7:4) 하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처럼 기이한 결론을 얻게 된다. 애초에 이 구절은 12X12=144와 10x10=100의 두 수를 곱한 144,000으로서 완벽함을 상징하는 수 10과 전체를 나타내는 12를 이용해서 믿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종말론의 또 다른 양상은 근거 없는 전승을 이용해 기묘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승 하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모든 천사 중 10%가 함께 떨어져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 수와 천상에 남아 있는 90%의 천사 수가 같아질 때 종말이 온다는 특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기괴한 아이디어는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과격한 이단 교리로 차용되었다. 동시에 교회와 세속 당국이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 그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있어 왔으므로 결국 정해진 숫자가 거의 채워져서 이제 말세까지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들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가까이 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의인이 더 이상 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악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어 세례를 못 받게 만들었다. 세례를 못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녀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임산부들을 돕는 척하면서 신생아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논리로 애꿎은 여성들 수만 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면 사회 전체가 자칫 절망적으로 사악해질 수 있다는 증표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 시민들이 협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시련을 겪는 현재,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치부하던 국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때 문재인 패거리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위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순교적 투쟁과 성숙한 보수 시민 정신의 윤석열 대통령 선출로 비교적 잘 헤쳐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더 발전해 가리라 믿는다.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정통 신경을 압축한 '서울 고백' 신앙과 반공 외침에 힘입어. 누군가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장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인 왈도파를 보자. 창시자 왈도(Waldo, 프랑스어로는 보데스 Vaudes)는 리옹시(市)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예수가 부유한 젊은이에게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왈도는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두 딸을 수녀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걸식으로 연명하며 설교하고 다녔다. 곧 그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들어 제법 세가 커졌다. 사실 스스로 부(富)를 버리고 청빈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유하고 타락해 가는 기성 교회에 우회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1179년 왈도파가 교황청에 자신들을 수도회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왈도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난 후 이번에는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역시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깨친 바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스스로 걸인이 되어 설교하고 다니다가 교황청에 와서 수도회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왈도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처음에 의심하다가 결국 수도회칙을 승인했는데, 어쩌면 또다시 이단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 반열의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중세 최대 이단 수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성인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단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인 분위기를 타는 여론이나 이단과 부패의 온상 한기총 같은 기관이나 통합 측 대표적 언론인이자 법학자인 황규학 박사가 질타한 이단감별사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쉽게 규정할 게 아니라 기독교계와 신학대학 전문 교수들 중심의 깊고 긴 흐름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세 치 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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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소강석 목사의 호남 출신 자부심
    세계 언론 보수 대표 조선일보에 결이 다른 두 사람의 글이 해를 건너뛴 간격으로 실렸다. 한 사람은 사회주의자 진중권(60)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 소강석(61) 목사이다. 먼저 소강석보다 1살 어리지만, 한국 지성인과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2023년 5월 27일 사회주의자의 글을 먼저 보자. 이 남자는 독설가다. 좌든 우든 인정사정없다. 한때 친구였던 조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까웠기 때문에 더 신랄했다. 진중권은 “내 생각을 부정하면서까지 누구 편을 든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원칙을 지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논객의 길을 걷게 됐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극우세력뿐 아니라 주사파도 벌레 보듯 했다. 거침이 없었고, 모두가 그를 미워했다. 자신의 25년을 ‘조국 사태’ 전후로 나눴다. 조국을 ‘걔’ ‘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렇게 살면 안 됐다”라고 정색했다. “민주화 세력이 종말을 고한 거죠. 그 역사적 도장을 찍은 게 조국 사태였어요. 대중이 민주화 세력의 이미지와 실상 사이에 큰 괴리를 목격했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니까요.” -처음에 어떻게 논객이 된 거죠. “처음엔 화가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1998년 어느 잡지에 미술사의 악마주의에 관한 글을 썼는데, 박정희를 찬양하는 맥락 속에 제 글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박정희를 고독한 악마, 낭만주의적 천재로 만든 거죠. 항의를 바가지로 하고 반론을 썼는데 지면을 못 준대요. 그 원고가 돌고 돌아 문학동네로 갔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일이 25년 전이네요.” -박정희 열풍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군요. “글을 또 보냈는데 문학동네가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짜증이 났죠. 그래서 인물과 사상으로 갔어요. 그쪽은 쿨해요. 더 쓰라고 자료까지 보내줬어요. 연재한 글을 묶어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냈죠. 조갑제 기자가 박정희를 찬양한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맞불 격으로요.” -그런데 박정희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았더라고요. “업적이 있으니까요. 그때 화가 난 건 박정희를 향한 게 아니었어요. 옛날 사람, 지나간 사람을 리바이벌한 것 때문이었어요. 지난 건 지나간 거예요. 지금도 비슷해요. 민주화 운동도 끝났어요. 김대중, 노무현도 이미 역사적 생명을 다한 거예요. 부활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논객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다면. “조국 사건이죠. 우리나라도 그 사건 전후로 나눌 수 있어요.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두 번째인 민주화가 종언을 고한 거예요.” -무슨 뜻인가요.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산업화, 박정희 신화예요. 또 다른 하나가 민주화, 김대중·노무현 신화죠. 이 두 가지는 너무나 성공했기 때문에 종말을 고한 거죠. 산업화도 엄청나게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런 나라가 없잖아요. 민주화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게 조국 사태였습니다. 이제 기득권만 남았죠.” -조국과 친했죠? “대학원 때 ‘주체사상 비판’을 같이 쓸 정도였어요. 동양대 교수 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그 친구죠. MB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필리핀에서 비행학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행기 50시간만 더 타면 택시비행사 자격증도 딸 수 있었는데 그냥 거기 있을 걸 그랬어요. 사태가 터진 처음엔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조국을 완벽하다고 평하지 않았나요. “하하. 신은 공평하더라고요. 애는 착했어요. 근데 나 같았으면 마누라를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아내 죄까지 내가 뒤집어쓰죠. 내가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 뒤로 연락한 적 없어요.” -그때 이후 ‘모두까기 인형’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누구나 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못했으면 까야죠. 원칙을 어기면 안 되잖아요. 이게 윤리학의 기본입니다. 내 편을 생각하니까 내로남불이 되는 거예요. 나 개인으로 어떤 현상을 평가하면 되는데 어느 편에 충실하려고 해요. 유시민을 보세요. 실없는 사람이 됐잖아요.” -유시민과도 틀어졌죠. “과거에도 유시민한테 ‘노회찬, 심상정은 100% 믿는데 당신은 50%만 믿는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공학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에요.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옳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느냐, 없냐죠. 참 멍청한 짓이에요. 세상은 ‘좁고 작은 너의 대가리’보다 훨씬 넓은데 그걸 간과한 거예요. 그 50%의 믿음도 조국 사태로 끝장이 났죠.” -왜요? “공론의 장이 무너졌어요. 지식인이 어느 한쪽으로 가버렸어요. 상징적인 게 유시민과 김어준의 관계죠. 김어준 같은 사람들을 위에서 걸러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밑에 들어가서 정당화해줬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지식인도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떼돈 벌 수 있거든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만 막 찬양하면 돼요. 그랬다면 벌써 강남에 빌딩 올렸죠.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요. 저처럼 어느 편에 속하지 않으면 양쪽에서 다 욕을 먹어요. 견뎌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 고독.” -고독하세요? “늘 저는 그 고독을 즐겨요. ‘나 자신’이라는 게 있는데 왜 헌납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잘못하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죠. 나를 없애고 무리에 섞일 거면 왜 살아요? 삶의 목적이 없어지잖아요.” 누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이라고 그를 평했다. 페이스북 댓글을 올리는 네티즌과도 생각이 다르면 싸우는 게 진중권이다. 그런 그도 “지나면 모든 게 후회”라고 했다. -어떤 일을 후회하나요? “너무 많죠.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어요. 평론이라는 게 순간순간 하는 거잖아요. 따끈할 때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진 다음에 날기 시작하지만, 평론은 해가 뜰 때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역사는 지나고 나면 또 평가가 달라지죠. 그러나 베토벤의 말처럼 ‘꼭 그랬어야 했나’ 묻는다면 ‘그래야만 했다’라고 답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대통령이 보수로 가는 건 좋은데 중도와 같이 갔으면 해요. 우경화로 가는 방식은 안 돼요. 이재명 대표는 사퇴해야죠. 본인 살려고 당을 볼모로 잡고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이재명을 안 만났다면 지금 살아 있을 사람들이에요. 이제 그만하고 내려와야 해요. 민주당에선 ‘대안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재명이 물러나는 게 대안이에요.” 이제 진중권보다 한 살 많고 목회에 성공해 한국 지성인은 물론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녀 9월 1일 한국계 중공 귀화 정율성을 비판했다. 정율성은 중공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하고 6·25전쟁 때 서울까지 내려와 전쟁을 북돋운 한국계 귀화 중국인이다. 그런데 정율성로라고 도로명 주소를 붙인 거리에 정율성 기념물과 동상을 세운 데 이어 공원을 만들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주, 정율성 탓에 좌파 성지로 각인될 수 있다” 페이스북으로 추모 사업 비판 호남 출신 소강석 목사 인터뷰 호남 출신 대형 교회 목회자가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추진 논란과 관련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각인될 우려가 있다”라며 비판했다.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소강석(61) 담임 목사는 9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민 세금으로 정율성 기념공원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소 목사는 전북 남원 출생으로 군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신학교(광신대) 1학년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1988년 서울 가락동 지하상가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해 현재 등록 신자 5만 명 교회로 성장시켰다.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외 6·25전쟁 참전 용사를 초청해 보은 행사를 열고 있다. 2021년에는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냈다. 소 목사는 페이스북에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은 한쪽 눈으로 볼 때는 일리가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나는 결코 정치인이 아니어서 이런 글을 쓸까 말까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하다가 정치인이 아닌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고 팔로군 행진곡과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이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추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소 목사는 이 글에서 “누구보다 호남을 사랑하고 호남이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지고, 호남 출신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래서 저는 5·18민주항쟁의 정신도 가치 있게 여기고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그것(정율성 공원 추진)을 강행함으로써 5·18 민주화 정신이 훼손당하고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인각(印刻)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남 지역은 6·25 때 공산당에 가장 많이 순교를 당했던 곳”이라며 교인 77명이 공산군에 학살당한 전남 영광 염산교회의 기독교인 순교 탑과 순교 기념비 사진을 페이스북 글에 첨부했다. 소 목사는 본지(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양극으로 갈라진 시대라고 해도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발언하면 또 다른 이슈가 될까 염려돼 밤새 고민했지만, 종교 지도자는 때로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양심을 억누르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광주가 좌파 이념 이미지로 각인되고 민주화 정신까지 훼손당하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1-23 2024-01-27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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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한교총과 한기총 통합 논의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말했다.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은 다양성 속에서 통합을 이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총회가 합동 측, 개혁 측으로 구별하듯이 대한민국 정치가 상대방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고 문턱을 높인다면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꽃을 점점 시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Hannibal Barca,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83년 또는 기원전 181년)은 기원전 218년 2만6천 명의 소수 병력으로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했다. 당시 유럽 최강국이던 로마는 매년 9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해 총력 항전했으나 한니발의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연전연패를 면치 못했다. 한니발은 그 후 16년간이나 이탈리아반도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10여 개 도시국가로 구성된 로마연합 구성국들이 로마를 배신하고 카르타고에 자진 복속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니발 군대의 압도적 위세에도 불구하고 한두 개 도시국가만 로마를 배신하는 데 그쳐, 결국 한니발의 로마 정복은 실패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삶은 소 대가리”라고 막말 공세를 퍼부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024년 새해 벽두 대남담화문을 통해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칭하면서 남북 관계를 민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을 ‘주적’이라 칭하며 한국이 무력 사용을 기도하거나 북한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면 역량을 총동원해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북한 움직임은 대남 위협이라기보다는 고려연방제를 통한 대남 흡수통일 환상의 종말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한 숨겨진 두려움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대남정책 변화는 우리 대북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자유민주 체제로의 평화통일을 추구해 왔으나 합의를 통한 분단국 평화통일의 성공 사례는 인류 역사상 선례가 없다. 핵무장 북한이 아무리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들 스스로 공산체제를 버리고 투항해 올 가능성도 없다. 고려연방제가 비현실적이었듯이 우리 통일정책도 현실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니 이젠 우리도 남북 관계를 애매한 특수관계로 취급하기보다는 차라리 국가 간 관계로 정립해 국제법을 적용하는 것이 남북 협력과 안보 관리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과거 분단시대의 동서독 관계도 양측 외교부가 관할하는 국가 간 관계였으나 이는 독일 통일에 아무 장애도 되지 않았다. 6·25 전쟁 당시 남로당 총수 박헌영은 북한군이 일단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 전역에서 좌익 세력의 봉기가 촉발되어 쉽사리 통일이 달성되리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했던 봉기는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일단 우크라이나 합병을 위한 전쟁의 기치만 올리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친 러시아 봉기가 이어져 사흘이면 평정이 가능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어디서도 친 러시아 봉기는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시진핑이 대만을 침공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1973년 ‘고려연방제’ 방식의 평화통일을 제창한 이래 50년간 이를 고수해 왔다. 이는 남북이 각기 기존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연방제 국가로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그 주장의 이면에는, 연방제 통일이 이룩되면 남한 내 친북 세력의 협조로 북한이 연방정부와 의회에서 압도적 주도권을 장악하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는 말하자면 북한 방식의 평화적 대남 흡수통일 구상이었다. 북한은 과거의 대남 군사적 우위가 점차 사라지고 1990년대 들어 무력통일 역량이 급속히 쇠퇴하자 비군사적 방법으로 남한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고려연방제와 평화체제 구상에 더욱 집착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남한 내 우호 세력의 적극적 호응이 필수적이었으나 실제로는 북한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불만스러운 수준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대한 의견이 접근되었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6·15 선언의 적극 구현’이 합의됐으나,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의 9·19 평양공동선언에서는 연방제 통일 문제가 자취를 감췄다. 연방제 통일안이 표방하는 일국가 이체제 논리의 중요한 시험대였던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힌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민족 문제에 무관심한 MZ세대까지 등장해 고려연방제가 설 땅은 사라졌다. 국내 친북 세력에게도 이제 북한 문제는 단지 정치적 수단일 뿐 누구도 여생을 북한에서 보내거나 자식을 북한에 유학 보낼 사람은 없다. 그들이 북한에 제공해 온 경제원조도 유엔 제재로 차단되었고 북한이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핵무장도 한국에 대한 북한의 우월성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무심한 세월의 변화 속에 오직 북한 당국만이 대남 흡수통일의 헛된 망상을 간직해 왔을 뿐이다. 한국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장종현 목사)는 2024년 1월 9일 서울 서초구 백석예술대학교에서 상임회장 회의를 열고 2014년 우리가 주도해 탈퇴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와의 통합추진위원장에 오정호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를 추대했다. 한교총과 한기총의 통합추진위원장 오정호 목사는 이재명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 모든 일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될 것입니다. 한 교단적 차원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다음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할 때 지금 우리의 행보를 통해 다음 세대에 복을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탁월한 진행이 돋보였던 총회 넷째 날인 2014년 9월 25일 오전 회무에서 우리 교단 총대들은 한기총을 탈퇴하자고 결의했다. 허활민 목사가 정치 일선에서 맹활약을 하던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오정호 목사는 외쳤다. “한기총은 이단의 온상이니 탈퇴해야 됩니다.” 그런 그가 10년 뒤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 너희들부터 하나가 되라는 사회의 요구에 우리가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기총의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고 나아가 하나가 되어 민족 복음화와 열방의 복음화를 견인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딤전 8:8 2024-01-1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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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2
  • 이낙연 대한민국 미래에 빛이...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파우더 스노(powder snow)’다. 추운 날씨에 가루처럼 내리는 눈이다. 함박 눈에 비해 미세한 얼음의 결정으로 돼 있으며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 내리는 눈이다. 습기가 없어 눈이 잘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부서진다. 옷에 쌓여도, 머리카락에 쌓여도, 장갑에 묻어도 쉽사리 물이 되지 않는다. 스키장에 수북이 쌓인 ‘파우더 스노’는 드리프트를 할 때마다 모래처럼 부서지며 바람에 흩날린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024년 1월 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참배한 후 기자들과 만나 탈당과 신당 창당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거취에 대해서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후반 중 인사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흘 뒤 2024년 1월 11일 전 대법원장 김명수같이 말 바꾸기 명수 이재명과 달리 이낙연 전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그의 말대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히며 용서를 구하고 소신을 말했다. “오늘 저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들락날락했지만, 저는 민주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습니다.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습니다. 민주당의 피폐에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특히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2021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낸 것은 제가 민주당 대표로 일하면서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또한,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 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이어서 이 전 대표는 정치계는 물론이고 교계 목사와 장로도 잘하지 않는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혔다. “저의 그런 잘못을 후회하면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의 오늘 결정에 대해 저의 아버지처럼 오랜 세월을 보상도 이름도 없이 헌신하시는 당원 여러분께 이해를 구합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이 잃어버린 민주당 본래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서겠습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그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겠습니다.”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星野)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인 도마무산 정상 근처에 있다. 홋카이도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여름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흘러가는 운해를 볼 수 있어 ‘운카이(운해·雲海) 테라스’, 겨울에는 상고대 설경이 아름다워 ‘무효(무빙·霧氷) 테라스’라고 불린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만든 종교 건축으로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와 함께 도마무에 있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1988년 지어진 ‘물의 교회’는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안에 있는데 매일 오후 8시 반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주변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의 교회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어가도록 돼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사방이 십자가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의 교회’에 접근하도록 한 설계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물의 교회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정면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고 창틀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창밖에는 계곡물을 끌어다가 만든 인공연못이 있고 그 위에 또 철제 십자가가 서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다. 창틀의 십자가와 창밖 연못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2중으로 보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정확히 겹쳐서 하나가 된다. 저 멀리 하늘과 자연, 우주에 있는 신(神)과 내 안에 존재하는 십자가가 하나임을 명상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한다. 십자가 뒤편으로는 까만 밤하늘과 함께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실내조명을 끄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십자가와 숲의 풍경이 또렷이 살아난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감동이 치미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신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과 빛만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2024년 1월 11일 호남 출신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과 창당을 밝힌 기자 회견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용서와 소신을 밝힌 것만으로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니...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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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광훈과 진중권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3-5 전광훈 목사는 지난해 2019년 10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 집회에서 외쳤다.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 나는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2020년 2월 8개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협의회가 ‘한국교회에 드리는 글’을 통해 “전광훈 목사가 애국 운동을 빌미로 하여 여러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여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8대 교단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 동기가 반(反)성경적·비(非)신앙적·비(非)신학적이며 “전 목사의 이런 언행으로 인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전 목사로부터 신앙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9월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변호인단, 8·15집회 비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신영복(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북한 노동당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움직였던 반체제 지하조직)에 대해서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두 건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면 광화문 집회를 그만두겠다. 사과 안 할 거면 대통령을 그만둬라.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겠냐... 재개발을 선동해 사랑제일교회 진입을 시도하며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뒤집어씌워 사기극을 펼치려 했으나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실패했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범죄 행위를 감추지 마라... 독일 히틀러가 선동할 때 온 국민이 넘어갔다. 언론도 넘어가고 성직자도 99% 넘어갔다. 본회퍼 한 사람이 반대하다 순교 당했다. 머지않아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선지자는 국민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하나님과 역사와 진리 앞에 잘못된 것은 책망한다. 한 달 동안 지켜보다가 한 달 뒤부터 목숨을 그야말로 던지겠다.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 세례 요한처럼 문재인의 불공정 불의 지적에 목숨을 걸고 비판한 전광훈 목사의 발언 가운데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외침의 의미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하나님한테 까불면 나한테 죽어.” 그 말은 하나님과 국민이 살아 있음을 잊었거나 무시하는 문재인 정권의 관계자들의 불법한 자들을 질타하다가 하나님 '한테'라는 조사 하나가 빠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광훈 목사는 군중 앞에서 열정에 싸여 말의 작은 실수가 있었던 같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에 앞서 한 말처럼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전파하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의 참뜻을 새기려 하거나 그의 용감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좌파 정권에 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불의와 부정에 맞선 전광훈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이 불의한 시대를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비겁한 자들이여 전광훈 목사처럼 나서서 불의의 잘못을 외치지 못하거나 진중권 교수처럼 글과 말로 문재인의 불의를 지적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현 여권과 586운동권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직접 날 선 비판을 하게 된 계기로 '문자폭탄은 양념' '세월호 고맙다' '조국에 마음의 빚' 등 문 대통령의 발언 3가지를 들었다. 문재인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투쟁한 죄로 세 차례 감옥을 다녀온 전광훈 목사는 애국애족의 민주주의를 외쳐 좌파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oller 1892년-1984년) 독일 루터교 목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때문에 그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7-10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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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설날 천지창조 첫날
    창세기 동물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는 속담이 있다. 설에 눈이 많이 내리고 대보름엔 환한 달이 떠야 풍년이 들어서 좋다는 뜻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설날 아침 눈이 내려 길이 질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어머니 손 잡고 친척 집으로 세배하러 가던 길엔 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댓돌에도 장독대에도 담장에도 나뭇가지에도 교회 지붕에도.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중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곧 농경 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 것이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시 ‘첫눈’이다. 한 줄 짧은 시에 그리움이 녹아 있다. 어디 첫눈뿐이랴. 초겨울에 내리는 풋눈, 설날 내리는 설눈, 가늘고 성기게 날리는 포슬눈, 밤새 몰래 내린 도둑눈…. 설을 ‘구정’이라고 하면 조상들은 서운할 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설’도 큰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한민족의 혼을 뭉개려 설을 없애고 일본 설인 ‘신정’을 쇠라고 강요했다. 설은 낡은 풍습으로 깎아내려 ‘구정’이라고 칭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설을 지킨 건 민초였다. 신정은 그저 ‘왜놈들 설’일 뿐이었다. 1985년 구정은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1989년 민속의 날이 설날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옛 이름을 되찾았다. 더 이상 신정, 구정, 음력설, 양력설로 구분해 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설은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니까.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더굳뉴스 독자 여러분 설 잘 쇠세요.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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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8
  • 종말론 폐단
    차가운 날씨가 머리를 맑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실패와 좌절이다. 그렇듯 겨울은 끝이 아니다. 가려진 것들을 들춰서 가감 없이 바라보며 봄을 준비하고 부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데 20~30대엔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한 일자리(job)이다. 그러나 40대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커리어(career)로 변하고 50~60대엔 하나님 뜻을 추구하는 소명(calling)으로 바뀐다. 70대에는 교단의 빌어먹을 법 70정년제 때문에 은퇴로 교회를 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딘가를 맡아야만 쓸모가 있는 ‘목회자’에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번역이나 저술을 위한 ‘직업인’으로 변신하는 게 중요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70정년제가 없는 교단으로 이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는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가는 북한 김씨 왕조에서 한 수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64대) 올브라이트(Madeleine Korbel Albright, 1937년 5월 15일 ~ 2022년 3월 23일)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곧 죽을 줄도 모르고 한국 여배우 최은희도 납치한 김정일은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총회 정치꾼들이 교계와 정치계를 기웃기웃거리며 다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인지 진정 주님의 교회 때문인지 사뭇 궁금하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곰돌이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고모부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에 의해 왕세자로 급조됐다. 그러나 장성택은 2013년 12월 3일 모든 직위에서 배제되고 출당 조치를 당했으며 같은 달 12일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그 기간이 2천7백 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2022년 12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백 년, 8천 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백 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2022년 2월 24일 공산주의 본산이자 세계 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자기 우방국인 약한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일으킨 것과 같은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 년 전쟁(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 대기근(1845년에서 1852년까지 아일랜드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역병과 집단 해외 이주의 시기를 일컫는다),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 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림프절에 감염되는 선페스트,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혈관에 감염되는 패혈성 페스트, 허파에 감염되는 폐페스트 등으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한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하나님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 년 왕국 주의(千年王國, millennialism, 천 년을 뜻하는 라틴어 밀레니엄/millenium에서 비롯)’가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 이전에 지상에 재림하여 직접 통치하는 천 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죽음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인들과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려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지상에서 살며 왕처럼 활동하며 지상에서 낙원이 이룩된다는 내용이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최후심판이 있고 이날에 천년왕국에 살고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 요한계시록 20장 1-15절에 가장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예언자이며 하나님의 전사(戰士)라고 자처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순결하게 재생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하찮은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 왕국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해 차라리 폭력을 휘둘러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 유사한 사례가 장차 구원받을 사람은 14만4천 명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요한계시록 7:4) 하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처럼 기이한 결론을 얻게 된다. 애초에 이 구절은 12X12=144와 10x10=100의 두 수를 곱한 144,000으로서 완벽함을 상징하는 수 10과 전체를 나타내는 12를 이용해서 믿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종말론의 또 다른 양상은 근거 없는 전승을 이용해 기묘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승 하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모든 천사 중 10%가 함께 떨어져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 수와 천상에 남아 있는 90%의 천사 수가 같아질 때 종말이 온다는 특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기괴한 아이디어는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과격한 이단 교리로 차용되었다. 동시에 교회와 세속 당국이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 그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있어 왔으므로 결국 정해진 숫자가 거의 채워져서 이제 말세까지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들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가까이 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의인이 더 이상 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악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어 세례를 못 받게 만들었다. 세례를 못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녀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임산부들을 돕는 척하면서 신생아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논리로 애꿎은 여성들 수만 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면 사회 전체가 자칫 절망적으로 사악해질 수 있다는 증표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 시민들이 협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시련을 겪는 현재,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치부하던 국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때 문재인 패거리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위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순교적 투쟁과 성숙한 보수 시민 정신의 윤석열 대통령 선출로 비교적 잘 헤쳐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더 발전해 가리라 믿는다. '광장의 소리' 전광훈 목사의 정통 신경을 압축한 '서울 고백' 신앙과 반공 외침에 힘입어. 누군가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장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인 왈도파를 보자. 창시자 왈도(Waldo, 프랑스어로는 보데스 Vaudes)는 리옹시(市)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예수가 부유한 젊은이에게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왈도는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두 딸을 수녀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걸식으로 연명하며 설교하고 다녔다. 곧 그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들어 제법 세가 커졌다. 사실 스스로 부(富)를 버리고 청빈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유하고 타락해 가는 기성 교회에 우회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1179년 왈도파가 교황청에 자신들을 수도회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왈도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난 후 이번에는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역시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깨친 바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스스로 걸인이 되어 설교하고 다니다가 교황청에 와서 수도회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왈도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처음에 의심하다가 결국 수도회칙을 승인했는데, 어쩌면 또다시 이단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 반열의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중세 최대 이단 수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성인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단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인 분위기를 타는 여론이나 이단과 부패의 온상 한기총 같은 기관이나 통합 측 대표적 언론인이자 법학자인 황규학 박사가 질타한 이단감별사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쉽게 규정할 게 아니라 기독교계와 신학대학 전문 교수들 중심의 깊고 긴 흐름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세 치 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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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소강석 목사의 호남 출신 자부심
    세계 언론 보수 대표 조선일보에 결이 다른 두 사람의 글이 해를 건너뛴 간격으로 실렸다. 한 사람은 사회주의자 진중권(60)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인 소강석(61) 목사이다. 먼저 소강석보다 1살 어리지만, 한국 지성인과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2023년 5월 27일 사회주의자의 글을 먼저 보자. 이 남자는 독설가다. 좌든 우든 인정사정없다. 한때 친구였던 조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까웠기 때문에 더 신랄했다. 진중권은 “내 생각을 부정하면서까지 누구 편을 든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원칙을 지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논객의 길을 걷게 됐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극우세력뿐 아니라 주사파도 벌레 보듯 했다. 거침이 없었고, 모두가 그를 미워했다. 자신의 25년을 ‘조국 사태’ 전후로 나눴다. 조국을 ‘걔’ ‘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렇게 살면 안 됐다”라고 정색했다. “민주화 세력이 종말을 고한 거죠. 그 역사적 도장을 찍은 게 조국 사태였어요. 대중이 민주화 세력의 이미지와 실상 사이에 큰 괴리를 목격했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니까요.” -처음에 어떻게 논객이 된 거죠. “처음엔 화가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1998년 어느 잡지에 미술사의 악마주의에 관한 글을 썼는데, 박정희를 찬양하는 맥락 속에 제 글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박정희를 고독한 악마, 낭만주의적 천재로 만든 거죠. 항의를 바가지로 하고 반론을 썼는데 지면을 못 준대요. 그 원고가 돌고 돌아 문학동네로 갔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어요. 그 일이 25년 전이네요.” -박정희 열풍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군요. “글을 또 보냈는데 문학동네가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짜증이 났죠. 그래서 인물과 사상으로 갔어요. 그쪽은 쿨해요. 더 쓰라고 자료까지 보내줬어요. 연재한 글을 묶어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냈죠. 조갑제 기자가 박정희를 찬양한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맞불 격으로요.” -그런데 박정희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았더라고요. “업적이 있으니까요. 그때 화가 난 건 박정희를 향한 게 아니었어요. 옛날 사람, 지나간 사람을 리바이벌한 것 때문이었어요. 지난 건 지나간 거예요. 지금도 비슷해요. 민주화 운동도 끝났어요. 김대중, 노무현도 이미 역사적 생명을 다한 거예요. 부활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논객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다면. “조국 사건이죠. 우리나라도 그 사건 전후로 나눌 수 있어요.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두 번째인 민주화가 종언을 고한 거예요.” -무슨 뜻인가요.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산업화, 박정희 신화예요. 또 다른 하나가 민주화, 김대중·노무현 신화죠. 이 두 가지는 너무나 성공했기 때문에 종말을 고한 거죠. 산업화도 엄청나게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런 나라가 없잖아요. 민주화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게 조국 사태였습니다. 이제 기득권만 남았죠.” -조국과 친했죠? “대학원 때 ‘주체사상 비판’을 같이 쓸 정도였어요. 동양대 교수 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그 친구죠. MB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필리핀에서 비행학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행기 50시간만 더 타면 택시비행사 자격증도 딸 수 있었는데 그냥 거기 있을 걸 그랬어요. 사태가 터진 처음엔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조국을 완벽하다고 평하지 않았나요. “하하. 신은 공평하더라고요. 애는 착했어요. 근데 나 같았으면 마누라를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아내 죄까지 내가 뒤집어쓰죠. 내가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 뒤로 연락한 적 없어요.” -그때 이후 ‘모두까기 인형’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누구나 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못했으면 까야죠. 원칙을 어기면 안 되잖아요. 이게 윤리학의 기본입니다. 내 편을 생각하니까 내로남불이 되는 거예요. 나 개인으로 어떤 현상을 평가하면 되는데 어느 편에 충실하려고 해요. 유시민을 보세요. 실없는 사람이 됐잖아요.” -유시민과도 틀어졌죠. “과거에도 유시민한테 ‘노회찬, 심상정은 100% 믿는데 당신은 50%만 믿는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공학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에요.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옳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느냐, 없냐죠. 참 멍청한 짓이에요. 세상은 ‘좁고 작은 너의 대가리’보다 훨씬 넓은데 그걸 간과한 거예요. 그 50%의 믿음도 조국 사태로 끝장이 났죠.” -왜요? “공론의 장이 무너졌어요. 지식인이 어느 한쪽으로 가버렸어요. 상징적인 게 유시민과 김어준의 관계죠. 김어준 같은 사람들을 위에서 걸러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밑에 들어가서 정당화해줬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지식인도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떼돈 벌 수 있거든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만 막 찬양하면 돼요. 그랬다면 벌써 강남에 빌딩 올렸죠.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요. 저처럼 어느 편에 속하지 않으면 양쪽에서 다 욕을 먹어요. 견뎌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 고독.” -고독하세요? “늘 저는 그 고독을 즐겨요. ‘나 자신’이라는 게 있는데 왜 헌납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잘못하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죠. 나를 없애고 무리에 섞일 거면 왜 살아요? 삶의 목적이 없어지잖아요.” 누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이라고 그를 평했다. 페이스북 댓글을 올리는 네티즌과도 생각이 다르면 싸우는 게 진중권이다. 그런 그도 “지나면 모든 게 후회”라고 했다. -어떤 일을 후회하나요? “너무 많죠.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어요. 평론이라는 게 순간순간 하는 거잖아요. 따끈할 때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진 다음에 날기 시작하지만, 평론은 해가 뜰 때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역사는 지나고 나면 또 평가가 달라지죠. 그러나 베토벤의 말처럼 ‘꼭 그랬어야 했나’ 묻는다면 ‘그래야만 했다’라고 답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대통령이 보수로 가는 건 좋은데 중도와 같이 갔으면 해요. 우경화로 가는 방식은 안 돼요. 이재명 대표는 사퇴해야죠. 본인 살려고 당을 볼모로 잡고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이재명을 안 만났다면 지금 살아 있을 사람들이에요. 이제 그만하고 내려와야 해요. 민주당에선 ‘대안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재명이 물러나는 게 대안이에요.” 이제 진중권보다 한 살 많고 목회에 성공해 한국 지성인은 물론 종교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녀 9월 1일 한국계 중공 귀화 정율성을 비판했다. 정율성은 중공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하고 6·25전쟁 때 서울까지 내려와 전쟁을 북돋운 한국계 귀화 중국인이다. 그런데 정율성로라고 도로명 주소를 붙인 거리에 정율성 기념물과 동상을 세운 데 이어 공원을 만들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주, 정율성 탓에 좌파 성지로 각인될 수 있다” 페이스북으로 추모 사업 비판 호남 출신 소강석 목사 인터뷰 호남 출신 대형 교회 목회자가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공원 추진 논란과 관련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각인될 우려가 있다”라며 비판했다.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소강석(61) 담임 목사는 9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민 세금으로 정율성 기념공원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소 목사는 전북 남원 출생으로 군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신학교(광신대) 1학년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1988년 서울 가락동 지하상가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해 현재 등록 신자 5만 명 교회로 성장시켰다.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외 6·25전쟁 참전 용사를 초청해 보은 행사를 열고 있다. 2021년에는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냈다. 소 목사는 페이스북에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은 한쪽 눈으로 볼 때는 일리가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나는 결코 정치인이 아니어서 이런 글을 쓸까 말까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하다가 정치인이 아닌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고 팔로군 행진곡과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이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추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소 목사는 이 글에서 “누구보다 호남을 사랑하고 호남이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지고, 호남 출신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래서 저는 5·18민주항쟁의 정신도 가치 있게 여기고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그것(정율성 공원 추진)을 강행함으로써 5·18 민주화 정신이 훼손당하고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인각(印刻)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남 지역은 6·25 때 공산당에 가장 많이 순교를 당했던 곳”이라며 교인 77명이 공산군에 학살당한 전남 영광 염산교회의 기독교인 순교 탑과 순교 기념비 사진을 페이스북 글에 첨부했다. 소 목사는 본지(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양극으로 갈라진 시대라고 해도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발언하면 또 다른 이슈가 될까 염려돼 밤새 고민했지만, 종교 지도자는 때로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양심을 억누르지 않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 문제로 광주가 좌파 이념 이미지로 각인되고 민주화 정신까지 훼손당하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1-23 2024-01-27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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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한교총과 한기총 통합 논의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말했다.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은 다양성 속에서 통합을 이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총회가 합동 측, 개혁 측으로 구별하듯이 대한민국 정치가 상대방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고 문턱을 높인다면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꽃을 점점 시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Hannibal Barca,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83년 또는 기원전 181년)은 기원전 218년 2만6천 명의 소수 병력으로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했다. 당시 유럽 최강국이던 로마는 매년 9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해 총력 항전했으나 한니발의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연전연패를 면치 못했다. 한니발은 그 후 16년간이나 이탈리아반도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10여 개 도시국가로 구성된 로마연합 구성국들이 로마를 배신하고 카르타고에 자진 복속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니발 군대의 압도적 위세에도 불구하고 한두 개 도시국가만 로마를 배신하는 데 그쳐, 결국 한니발의 로마 정복은 실패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삶은 소 대가리”라고 막말 공세를 퍼부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024년 새해 벽두 대남담화문을 통해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칭하면서 남북 관계를 민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을 ‘주적’이라 칭하며 한국이 무력 사용을 기도하거나 북한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면 역량을 총동원해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북한 움직임은 대남 위협이라기보다는 고려연방제를 통한 대남 흡수통일 환상의 종말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한 숨겨진 두려움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대남정책 변화는 우리 대북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자유민주 체제로의 평화통일을 추구해 왔으나 합의를 통한 분단국 평화통일의 성공 사례는 인류 역사상 선례가 없다. 핵무장 북한이 아무리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들 스스로 공산체제를 버리고 투항해 올 가능성도 없다. 고려연방제가 비현실적이었듯이 우리 통일정책도 현실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니 이젠 우리도 남북 관계를 애매한 특수관계로 취급하기보다는 차라리 국가 간 관계로 정립해 국제법을 적용하는 것이 남북 협력과 안보 관리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과거 분단시대의 동서독 관계도 양측 외교부가 관할하는 국가 간 관계였으나 이는 독일 통일에 아무 장애도 되지 않았다. 6·25 전쟁 당시 남로당 총수 박헌영은 북한군이 일단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 전역에서 좌익 세력의 봉기가 촉발되어 쉽사리 통일이 달성되리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했던 봉기는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일단 우크라이나 합병을 위한 전쟁의 기치만 올리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친 러시아 봉기가 이어져 사흘이면 평정이 가능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어디서도 친 러시아 봉기는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시진핑이 대만을 침공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1973년 ‘고려연방제’ 방식의 평화통일을 제창한 이래 50년간 이를 고수해 왔다. 이는 남북이 각기 기존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연방제 국가로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그 주장의 이면에는, 연방제 통일이 이룩되면 남한 내 친북 세력의 협조로 북한이 연방정부와 의회에서 압도적 주도권을 장악하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는 말하자면 북한 방식의 평화적 대남 흡수통일 구상이었다. 북한은 과거의 대남 군사적 우위가 점차 사라지고 1990년대 들어 무력통일 역량이 급속히 쇠퇴하자 비군사적 방법으로 남한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고려연방제와 평화체제 구상에 더욱 집착했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남한 내 우호 세력의 적극적 호응이 필수적이었으나 실제로는 북한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불만스러운 수준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대한 의견이 접근되었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6·15 선언의 적극 구현’이 합의됐으나,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의 9·19 평양공동선언에서는 연방제 통일 문제가 자취를 감췄다. 연방제 통일안이 표방하는 일국가 이체제 논리의 중요한 시험대였던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힌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민족 문제에 무관심한 MZ세대까지 등장해 고려연방제가 설 땅은 사라졌다. 국내 친북 세력에게도 이제 북한 문제는 단지 정치적 수단일 뿐 누구도 여생을 북한에서 보내거나 자식을 북한에 유학 보낼 사람은 없다. 그들이 북한에 제공해 온 경제원조도 유엔 제재로 차단되었고 북한이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핵무장도 한국에 대한 북한의 우월성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무심한 세월의 변화 속에 오직 북한 당국만이 대남 흡수통일의 헛된 망상을 간직해 왔을 뿐이다. 한국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장종현 목사)는 2024년 1월 9일 서울 서초구 백석예술대학교에서 상임회장 회의를 열고 2014년 우리가 주도해 탈퇴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와의 통합추진위원장에 오정호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를 추대했다. 한교총과 한기총의 통합추진위원장 오정호 목사는 이재명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 모든 일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될 것입니다. 한 교단적 차원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다음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할 때 지금 우리의 행보를 통해 다음 세대에 복을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탁월한 진행이 돋보였던 총회 넷째 날인 2014년 9월 25일 오전 회무에서 우리 교단 총대들은 한기총을 탈퇴하자고 결의했다. 허활민 목사가 정치 일선에서 맹활약을 하던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오정호 목사는 외쳤다. “한기총은 이단의 온상이니 탈퇴해야 됩니다.” 그런 그가 10년 뒤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 너희들부터 하나가 되라는 사회의 요구에 우리가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기총의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고 나아가 하나가 되어 민족 복음화와 열방의 복음화를 견인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딤전 8:8 2024-01-1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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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2
  • 이낙연 대한민국 미래에 빛이...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파우더 스노(powder snow)’다. 추운 날씨에 가루처럼 내리는 눈이다. 함박 눈에 비해 미세한 얼음의 결정으로 돼 있으며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 내리는 눈이다. 습기가 없어 눈이 잘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부서진다. 옷에 쌓여도, 머리카락에 쌓여도, 장갑에 묻어도 쉽사리 물이 되지 않는다. 스키장에 수북이 쌓인 ‘파우더 스노’는 드리프트를 할 때마다 모래처럼 부서지며 바람에 흩날린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024년 1월 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참배한 후 기자들과 만나 탈당과 신당 창당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거취에 대해서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후반 중 인사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흘 뒤 2024년 1월 11일 전 대법원장 김명수같이 말 바꾸기 명수 이재명과 달리 이낙연 전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그의 말대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히며 용서를 구하고 소신을 말했다. “오늘 저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들락날락했지만, 저는 민주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습니다.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습니다. 민주당의 피폐에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특히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2021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낸 것은 제가 민주당 대표로 일하면서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또한,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 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이어서 이 전 대표는 정치계는 물론이고 교계 목사와 장로도 잘하지 않는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혔다. “저의 그런 잘못을 후회하면서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의 오늘 결정에 대해 저의 아버지처럼 오랜 세월을 보상도 이름도 없이 헌신하시는 당원 여러분께 이해를 구합니다. 저는 지금의 민주당이 잃어버린 민주당 본래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서겠습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그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겠습니다.”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星野)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인 도마무산 정상 근처에 있다. 홋카이도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여름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흘러가는 운해를 볼 수 있어 ‘운카이(운해·雲海) 테라스’, 겨울에는 상고대 설경이 아름다워 ‘무효(무빙·霧氷) 테라스’라고 불린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만든 종교 건축으로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와 함께 도마무에 있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1988년 지어진 ‘물의 교회’는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안에 있는데 매일 오후 8시 반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주변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의 교회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어가도록 돼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사방이 십자가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의 교회’에 접근하도록 한 설계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물의 교회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정면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고 창틀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창밖에는 계곡물을 끌어다가 만든 인공연못이 있고 그 위에 또 철제 십자가가 서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다. 창틀의 십자가와 창밖 연못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2중으로 보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정확히 겹쳐서 하나가 된다. 저 멀리 하늘과 자연, 우주에 있는 신(神)과 내 안에 존재하는 십자가가 하나임을 명상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한다. 십자가 뒤편으로는 까만 밤하늘과 함께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실내조명을 끄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십자가와 숲의 풍경이 또렷이 살아난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감동이 치미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신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과 빛만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2024년 1월 11일 호남 출신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과 창당을 밝힌 기자 회견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용서와 소신을 밝힌 것만으로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니...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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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1
  • 지하철 1호선 달리기
    총회 언덕에서 목사를 만나 목사를 보내네. 시외버스 가듯 가는 목사. 한편의 이야기 같은 목사. 이 넓이여 펼친 넓이여 목사의 가슴속 같은 넓이여 헝클어진 믿음이 가네.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소망이 가네. 목사가 가네. 눈발 뒤에 총회에 있겠다던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시대가 가네. ‘죽기 전 사람들이 제일 후회하는 것’의 리스트다. 리스트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삶의 많은 부분을 너무 일만 한 것. 둘째,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셋째,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행복의 관점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빼야 하는지 아는 천재처럼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몰입한다. 이것이 아기가 그토록 충만한 삶을 사는 비밀이다. 피카소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한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초조함은 잘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삶 속에 초조함 대신 꾸준함을 채워 넣어야 한다. 물론 모든 꾸준함이 합당한 대가로 돌아오진 않는다. 어쩌면 오랫동안 쌓아 올린 나만의 역량이 영영 빛을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함이야말로 꽤 확실한 안전자산이다. 이 안전자산을 뽐낼 기회가 오면 그때부터가 삶이 바뀌는 시작점에 서게 된다. 정확한 과제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실천과 끈기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막을 내릴거라고 한다. 1994년 첫 공연 후 2008년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그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원작자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내년 창단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걸 계기로 2018년 12월까지 열리는 100회 한정 공연이다. 15년간 70만 명이 관람했다는 이 공연은 독일 원작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 그런데 베를린 느낌 물씬 풍기는 공연이 어떻게 서울의 풍속화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분명 번안과 연출을 맡은 김민기의 힘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저항문화의 상징이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미국 포크 음악에 우리 정서와 노랫말을 녹여낸 작곡가였다. ‘아침이슬’ ‘상록수’ ‘친구’ ‘아름다운 사람’ ‘가을편지’ ‘백구’ ‘작은 연못’ ‘천릿길’ ‘날개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봉우리’ 등 1970~1980년대 수없이 불렸던 그의 노래들은 우리말에 내재한 선율과 리듬을 세심하게 계속 연구하고 터득한 결과였을 것이다. 김민기는 원작의 본질을 꿰뚫고 인물의 전형들을 파헤쳐 한국 상황에 맞게 탈바꿈시켰다.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격찬에 1000회부터는 저작권료도 면제받았다. 독일저작권협회는 선례가 된다 하여 반대했음에도 학전의 번안은 독립된 창작물이라며 원작자가 강력히 요청해 이뤄진 조치였다.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해 자국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김민기에 대한 원작자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었으리라. 지하철 1호선이 IMF 시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담아낸 한 시대의 기록물이라면 반세기에 걸친 김민기의 활동은 한국 현대 예술사의 의미 있는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해야 마땅할 것이다. 배우 황정민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물건을 강매하던 깡패였고 조승우는 특유의 너스레로 고무장갑을 팔았다. 지금껏 4257회 운행, 누적 승객 73만 명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그러나 지난 2023년 12월 31일 멈췄다. 설경구·나윤선·장현성 등을 배출한 스타행 특급열차, IMF 외환위기 당시의 서울을 배경으로 매춘부·잡상인·노숙자·혼혈고아 등 한국 사회 소외 계층의 희로애락과 밴드 ‘무임승차’의 연주가 어우러진 전설적 작품이 초연 30주년을 하루 남기고 사실상 종연한 것이다. 노래 ‘아침이슬’로 유명한 김민기(73) 대표의 건강 문제와 재정난으로 극단 학전의 폐관이 3월 15일로 확정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5년이든 2030년이든 다시 돌아와만 달라” 같은 공연 후기가 쇄도하고 있단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같이 1호선에 탄 사람들도 그렇듯 동시대의 풍광이 돼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역사(歷史)와 역사(驛舍)가 동음인 까닭은 필연적으로 날마다 사건을 수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구는 늘고 자가용은 부족하던 1974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종로선’이 개통했다.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 역을 잇는 9.54㎞ 길이 국내 첫 지하철.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착공 3년 만에 결실을 보는 “민족의 저력을 과시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0시 23분,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는다. 개통식을 불과 37분 남기고 1호선은 이슈의 중심에서 급속히 이탈했다. 건설 현장을 누비며 ‘두더지 시장’으로 불린 양택식 서울시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1호선 영등포역에는 독특한 기념비가 있다. ‘그대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리라.’ 스크린도어가 없던 2003년, 역무원 김행균(64)씨는 승강장 안전선 근처에서 위태롭게 놀고 있던 아이를 발견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급히 선로로 뛰어 내려가 아이를 밀어냈지만, 본인은 치이고 말았다.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 아래를 절단했다. 이 악문 재활 끝에 이듬해 현장에 복귀했다. 1호선 역곡역장으로 근무하던 2014년 1월, 그에게 또 한 번의 사건이 찾아왔다.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한쪽 앞발이 잘려 피범벅이었다. 민원실에 데려다 정성껏 보살폈다. 살아난 고양이의 이름을 ‘다행이’라고 붙였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다행이는 그해 명예 역장에 임명됐고 부천시 측은 역곡역 남부광장 명칭을 ‘다행 광장’으로 변경했다. 김 씨는 덤덤히 말했다. “한 명의 철도원으로서 1호선은 내게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1호선은 흔히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노선’으로 불린다. “워낙 장거리 노선이라 별의별 사람이 다 탄다”라는 것이 이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정설. 그럼에도 사연은 있다. 십자군 병정 의상으로 출몰하는 ‘투구남’(28)에게 1호선은 세상과 마주하게 하는 하나의 통로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이 남성이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 남긴 고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졸려서 정신과 약을 끊었더니 버스만 타도 가끔 소리 지르고 발작하더라구요. 감당하기 힘든 빚도 생기고 에라 모르겠다, 갑옷이나 하나 사고 남은 돈 다 쓰고 사라지려고 했습니다. 근데 갑옷 입고 돌아다니니까 발작을 안 하더라고. 투구 덕에 심리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지...” 그러니 이들은 말썽꾸러기라기보다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노약자에 가까울 것이다. 예부터 사람 있는 곳에 1호선이 있다. 인천광역시, 충청남도 신창, 경기도 연천…. 이 광역 전철은 언젠가 북한 땅까지 뻗어 나갈지도 모른다. 1호선은 달린다. 지난해 12월 31일 저녁에도 노량진에서 용산역으로 향하는 1호선 전철은 한강철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서울 세계 불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휘황찬란한 빛이 터져 올랐다. 그때 4년 차 기관사 구승범(27) 씨는 열차 운행 속도를 3분의 1로 줄였다. 승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퇴근길 만원 열차가 한 폭의 그림 속을 천천히 관통하는 특급열차가 된 순간이었다. “바깥이 저렇게 예쁜데, 개인 사정으로 못 간 분도 많을 텐데…. 저도 그랬거든요.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단 1분이라도 눈에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가셨으면 했어요. 다행히 민원은 안 들어왔습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철도국이 생긴 지 1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과 무관하게 철도의 이미지는 여전히 거칠고 무겁고 녹슬어 있다. “열차 출발합니다.” 12월 31일 밤 10시 14분, 1호선 최남단 신창역에서 마지막 서울행 열차가 출발했다. 캐리어를 끌고 짐가방을 짊어지고 역마다 올라탄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붙였다. 열차는 자정을 14분 넘겨 구로역 종점에 닿았다. 또 다음날이 시작됐다. 2024년 1월 1일 새벽, 1호선 구로발 열차에 불이 들어왔다. 새해 첫차였다. 4시 45분. 칠흑에 잠긴 사위(四圍)가 밝아졌다. 기관사가 동두천행 K802 전동차 조종 칸에 올랐다. 레버를 당기자 열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철로를 미끄러질 때, 송창식 노래의 예쁜 고래 하나가 크게 숨을 뱉는 소리가 났다. 구로역 플랫폼에는 새해 첫날의 아침잠을 물리친 일군의 사람들이 방한 외투 속에서 입김을 흘리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살만큼 살았는데도 새로운 해, 새로운 나이가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다. 어떤 한 해가 될지 걱정도 생기고 기대도 된다. 허나 나는 스스로를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 놓아보려 한다. 2024년이라는 숫자와 한 살 많아진 내 나이가 익숙해질 때쯤 되면 나도 또 다른 새로운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익숙한 환경에서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자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109회 총회 경주자로 나설 장봉생 목사처럼 나는 가장 두렵고 불편한 도전을 하고 그 안에서 용기 내어 버티는 힘을 다시 길러보고자 마음먹는다. 올해의 내 목표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0-14 2024-01-09
    • G.OPINION
    • G.OPINION
    2024-01-10
  • 선거의 시대
    성탄절부터 정월 초하루까지의 일주일은 시간 밖의 괄호와도 같다. 실로 이상하지 않은가. 성탄절이 띄운 기분은 어디로 착지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그 마음의 공백 속에서 한 해의 기억은 눈발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선택을 한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 미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현상 타파적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거판은 항상 대립적이며 분열적이고 이 틈을 노린 기회주의나 인기영합주의가 득세할 소지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의 세계와 교계는 극도의 불안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세계는 자국 이기주의로, 교계는 후보와 총대 공히 개인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다. 피란민·자원·인종·종교 등으로 갈등 구조가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 다르다. 사람들은 열두 달 365일로 조직된 시간 속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행진해 간다. 당신의 새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1월부터는 어엿한 목표를 갖고 살아봅시다. 그래야 다음 연말쯤에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새해 다짐을 하려는 이에게는 세상을 조직적으로 바라보는 법, 즉 원근법이 필요하다. 시점이 분산되어 있으면 자칫 생활이 무질서해질 수 있다. 한 해를 요령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일정한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하나의 사실이 분명해졌다. ‘역사의 휴일’이 끝나고 신냉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탈냉전 30여 년간 인류는 잠깐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년 5월 3일 ~ 1527년 6월 21일)를 망각했다. 그는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론'을 저술했다. 1513년 발표한 '군주론'에서 그는 위대한 군주와 강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수단을 취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동에는 종교 및 도덕의 요소를 첨가할 것이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즘을 발표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도자가 기회를 인식하고 포착할 수 있으며 상대보다 생각이 앞서게 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고 책임은 결과로 판가름 난다. 정치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것이기에 냉엄한 것이고 목적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범 김구 선생은 외쳤다. “우리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어느 나라의 선거나 그 어떤 교파의 선거도 오는 4월 10일에 치러질 한국 국회의원 선거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치판은 당면한 치명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없어 보이고 이 엄중한 국제 파고에서 살아갈 연명책에 대한 정책적 공방도 없다. 인구 감소 문제, 자국 이기적 경제 흐름, 자원 외교의 한계, 북한과의 무력적 대립 문제 등에 대한 지적도 토론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은 엊그제 남북은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며 한국에 핵 무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식으로 협박하고 나섰다. 우리는 남북 관계에서도 더 이상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로지 초점은 대통령 부인 명품백 수수 불법 영상에 대한 특검이고 비명, 친명, 친윤, 반윤공천 여부고 비대위 구성이고 정객들의 이합집산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4·10 총선거의 의미는 집약해서 말하면 한 시대의 청산에 있다. 한국은 정치적 굴곡의 고비마다 그 시대의 주류를 교체해 왔다. 장기 집권(이승만)의 적폐가 쌓였을 때 군부(5·16)가 들어왔고, 군부가 오래가자 학생들이 앞장선 민주화가 그것을 넘어뜨렸다. 이때부터 대학생 운동권 세력이 20여 년간 좌파 정치를 주도해 왔다. 현 더불어민주당의 170여 석 가운데 100석 넘게 운동권 차지다. 낡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우파 세력만으로는 조직과 권모술수가 능한 운동권 좌파를 당할 수 없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나 총회 총대가 투표장에서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이것을 살아가는 시대정신이다. 선거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마찬가지로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술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배우 이선균과 그의 연기를 좋아한다. 많은 남자들이 간증하듯,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는 삶과 일에 지친 중년 사내들을 위로하고 각성시키는 힘이 있었다. 다시 꺼내 읽은 5년 전의 메모장에 드라마의 대사가 적혀 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드라마에서 이선균은 건축구조기술사. 자신의 다짐과 달리, 그의 내력은 버티지 못했다. 좋은 믿음이 결국 좋은 삶을 만든다. 성경은 말씀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 5:14-15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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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박성규 총장의 소명
    우리는 최첨단 망원경과 내비게이션을 가지고도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 김영우 같은 이재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가장 미워하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경우 말이다. 총신대 신임 박성규 총장은 총신대 운영을 밝히는 총회 앞에서 총신대가 세미나리(seminary) 즉 씨를 뿌려 모를 키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묘판(苗板)이라고 했다. 그것을 우리말로 모판 또는 못자리라고 하는데 그 말의 탄생 과정은 이렇다. 먼저 벼를 뜻하는 방언인 나락을 털어서 가장 알찬 것들만 골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듬해 봄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 ‘씻나락’이다. 곡식의 알이 낟인데, 낟알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갱이를 말한다. 봄이 오고 사월이 되면 무논에 모판을 마련하는 한편으로 씻나락을 꺼내서 물 채운 항아리에 담근다. 물에 담가 싹이 잘 나도록 돕는 것인데, 물에 들어가는 그때부터 씻나락은 ‘볍씨’로 이름이 바뀐다.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볍씨는 씨눈 쪽에 껍질을 뚫고 움이 트고 싹이 나서 모판에 내다 뿌려야 한다. 모판에 떨어진 볍씨는 곧장 위로 싹을 밀어 올리고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는데 이때부터 볍씨는 다시 이름을 ‘모’로 바꾸어 부른다. 모가 모판에서 한 뼘 남짓 자라면 철에 맞추어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는 아침 일찍 모판에서 모를 쪄서 잘 다듬어 둔 무논에다 옮겨 서너 낱씩 포기를 잡아 못줄에 맞추어 심는다. 이렇게 모심기를 끝내면 그때부터 모는 다시 이름을 ‘벼’로 바꾸어 부른다. 벼는 농사꾼의 갖은 정성을 다 받으며 자라나 마침내 새끼를 배고 몸 안에 밴 새끼가 자라면 위로 솟아올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바로 ‘나락’이다. 그러나 열매만을 따로 떼어서 나락이라고 하지만, 우선 나락을 밴 그날부터 벼를 모두 싸잡아 나락이라 부른다. 그래서 ‘벼농사’라는 말이 곧장 ‘나락농사’라는 말로 이어지고 그것을 옴니암니 가리지는 않고 넘나들며 쓰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낟알이었다. 총신이라는 모판에서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먹고 세상으로 나와 성령을 받으며 잎을 키웠다. 우리는 그냥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나이든 목사가 되었다. 그냥 믿고 언덕 넘어 전등도 없어 호야불로 밝힌 총신을 다녔을 뿐인데. 박성규 총장의 근황을 보면 총신대를 위한 그 한 번의 성취를 위해 은 자신을 ‘다마스쿠스 검(Damascus blade 劍)’처럼 날카롭게 벼린 모습이다. 다마스쿠스 검은 동시대는 물론 역사상의 어떤 유럽의 강철검보다 뛰어난 검이었다. 비단 손수건을 칼 위에 떨어뜨리면 저절로 베어질 만큼 예리할 뿐만 아니라 탄력성이 커서 바위를 내리쳐도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괴테의 1만 2111행의 시(詩)로짜여 진 장편 희곡 '파우스트'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이다. 인간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것은 갈 곳, 목표, 지향점이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방황을 멈추고 자족과 정체(停滯), 그리고 안주(安住)가 일상화된 삶이라면 목숨이 붙어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인데 여기서 파생된 ‘Berufung’은 소명(召命)의식을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인은 직업 수행을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소명의 실천’으로 여기는 인식이 견고하다고 한다. 김영우가 총신을 쥐락펴락하던 시절 재단이사장에 자질과 열정을 갖춘 경상도 김승동 목사 대신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한 강원도 목회자를 인선한 적이 있다. 지금의 총신 이사회는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이사들과 이사장으로 진용을 갖추고 있다. 세상이 아프다. 전쟁이 터지고 난민은 떠돈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난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죽인다. 그에게 딱히 무슨 죄가 있었을까. 죄 많은 이들이 오히려 죄를 외면하는 세상에서 이이복은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내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뜻이고 신앙의 힘이며 신자의 역할이리라. 그 뜻이 겸허하고 겸허하여 우리는 예수님 오신 날의 의미를 이이복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 이 세상이 돈과 물질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의미와 눈빛과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땅도 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교육과 똑똑한 인재들 덕분에 이만큼 발전했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교육이 대학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는 현실을 털어놨다. “학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조차 무너졌다. 입학하자마자 반수 시작해서 제주대 약대라도 가려 한다. 메디컬(의약학 계열) 빼고는 초토화됐다. 대학원은 정원도 못 채우고 고도의 학문 연구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외 인재를 모셔 오고 싶어도 희망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미국대학경영협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494억 달러(약 63조9927억 원), 스탠퍼드대가 353억 달러(약 45조7029억 원)다. 한국 최상위권 사립대 작년 수입이 6000억∼9000억 원 수준(이월금 포함)이다. 적립금은 5000억∼7500억 원 수준이다. 영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 학비가 연 2000만 원을 넘는데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이 그 절반도 안 되는 757만3700원이다. 등록금 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연방교육부가 등록금 상한을 정하진 않는다. 대신 장학금 확대, 학비 대출 지원에 주력하고 소비자(학생)가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덕분에 미국 대학은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최강 기술 강대국의 원천이다. 우리 교육부는 어떤가. ‘표(票) 떨어질 일’이라며 10년 넘게 대학 재정을 묶어놓고, 얼마 안 되는 재정사업으로 대학을 쥐고 있다. 그 결과 모든 한국 대학이 자생력을 잃고 교육부가 꽂아놓은 ‘지원금 링거’로 연명 중이다. 한국 고등교육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교육부 권한을 유치원 및 초중고교와 국공립대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감사, 감독 권한 정도만 남겨야 한다. 등록금이 가계 부담이라면 조(兆) 단위 대학사업을 장학금으로 돌려 직접 학생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교육부가 권한을 놔야 ‘돈값’ 못 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학은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교육 개혁은 ‘교육부 개혁’이다. 하수상한 시절 총신대는 독일인의 ‘Berufung’ 소명(召命)의식이 충실한 박성규 총장 체제로 내실을 다지며 전진하고 있다. 게다가 이사장 화종부 이사, 송태근 목사 등의 아낌없는 지지와 후원까지 더해지고 있다. 가자 믿음이여 살 맞대고 가자 하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안을 소망 하나 내리고 있거니 성경은 말씀한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막 9:22-24 2023-12-31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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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31
  • 총회 지도자들의 새해를 위해
    베이징 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고 1927년 추수 봉기를 이끌고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가 된 마오쩌둥(毛澤東, 1893년 12월 26일~1976년 9월 9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종교적 교의(교조)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당신들의 교의는 분(糞)만도 못하다고 말해야 한다.” 표현의 비속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마오는 분명 맞는 말을 했다. 그러나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던 그 자신조차도 이 금언의 중량감에 끝내 짓눌리고 말았던 것일까. 1966년 참혹한 문혁기(文革期), 손에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천안문 앞에서 마오 찬가 ‘동방홍’을 부르던 무수한 홍위병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천천히 흔들며 답례하던 마오가 이미 새로운 교조 그 자체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했던 마르틴 루터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위를 혐오하고 그것을 뒤집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원래 권위적이었을 수가 있으며, 권위를 뒤집고 나서는 자신이 다시 권위주의의 화신으로서 군림하게 되기 쉽다." 교조에 대한 저항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교조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한국적 민주주의든, 주체적 사회주의든, 민족적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든, 개혁주의든 한번 머리에 박힌 ‘당연한 생각’은 그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20년 전의 ‘상식’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며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65년 4월)는 이런 말을 했다. “습관에 구속돼선 안 된다. 가끔 습관은 진리를 짓밟기도 한다. 습관보다는 진리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해야만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빈정대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정말 좋아졌다. 당신만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대답이 적절해졌고, ‘법은 멀고 주먹과 돈은 가깝다’는 총회 해결사들에게는 “이젠 주먹보다 CCTV가 더 가깝다”는 대답이 들어맞게 됐으며, 이재명처럼 “여태껏 큰일 날 일을 저지르고 살았는데도 무사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하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길을 걷다 언제든 발길을 멈추고 낯선 눈을 들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도시여행자처럼, 나도 오늘은 내 방식대로 총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를 즐겨야겠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배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받아들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부지런하면 피곤을 피하기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나의 소원은 아흔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나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바람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런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때로 우리 앞에 새로운 깨달음이 나타나거나 오래전의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인이 그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그 부분들이 모여 온전한 전신상(全身像)을 만들기 전까지 모든 총체적 평가는 유보돼야 하며, 의심받아야 한다. 보편적 진리란 없다. 다만 인생 행로(行路)에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을 말없이 내밀 수 있는 벗으로서의 지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길을 물을 수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떠안고, 우리는 매일 미지의 세계를 향해 구원의 길을 떠난다. ‘떠남’은 그 자체로 길을 묻는 과정이며 고뇌와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과 설렘과 걱정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추억은 찰나만을 보여주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의 교차점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말이다. 이렇게 춥고 바람이 시린데 봄이 오긴 오는 걸까 하고 의심을 품어 보지만 믿음은 마치 봄의 전령처럼 생명을 이야기한다. 다가오는 봄이, 그 생명의 기운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은혜롭길 기도해 보자. 힘겹고 지칠 땐 목표를 향해 억지로 힘겹게 내딛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하기만 해도 그 너머에 모세 같은 믿음의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총회 지도자 한기승 목사, 장봉생 목사 등의 마음을 다독이길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2023-12-29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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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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