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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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바냐Zephaniah
    나귀 타신 예수님 스바냐Zephaniah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왕족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의 왕과의 친족 관계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주도하던 주전 640-60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가 있다. 오빠 생각 _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이 시 속의 오빠는 여름새 뜸북새와 뻐꾹새가 울 때 떠났다. 그런데 오빠는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는 도처에서 오빠를 본다. 누이란 연약하기에 오빠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도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이 참된 신앙의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을 부르짖고 백성이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내용이 없는 겉치레 변화만 있었기 때문이다. 스바냐의 이름은 주께서 숨기신다는 뜻이다. 스바냐는 나훔 이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 같은 시대를 살았다. 스바냐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둘 있다. 그것은 남은 자와 주의 날이다. 스바냐의 주제는 주의 날이다. 주의 날에 바알의 그릇된 남은 자는 죽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들은 멸망당하고 믿음의 참된 남은 자는 구원받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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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하박국Habakkuk
    하박국Habakkuk의 예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아주 독특하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시를 담고 있다. 하박국의 이름은 포용을 뜻한다. 하박국은 바빌론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봤다. 이런 시가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_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징벌하시려고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박국은 자신의 체험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단계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둘째 단계는 믿음의 비전이다. 셋째 단계는 믿음의 인내다. 하박국이 강조하는 말씀은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등에서 인용되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이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한다. 이렇듯 신약 성경의 세 서신서가 구약 성경 하박국의 한 본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의인의 삶이란 마더 테레사의 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껴안고 바라보는 것을 단지 시작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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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나훔Nahum
    나훔Nahum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심판이 급박하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 뒤 니느웨로 파송된 요나의 외침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했다. 이런 시가 있다. 바람만이 알고 있지 _밥 딜런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나훔서 예언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앗수르의 약탈과 횡포에 떠는 유다 백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어 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론에 멸망당했다. 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의 사명은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 왕국에 대한 잔인한 앗수르인들의 위협을 경고하고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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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미가Micah
    낙타와 양 미가Micah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미가의 이름은 주와 같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라는 뜻이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했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자매 책이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요약이다. 미가 선지자는 그의 책에서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다가올 심판과 미래의 왕국과 하나님의 회개 요청이다. 미가는 유다 백성이 이스라엘의 슬픈 체험을 통해 교훈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교훈을 받지 않았다. 이런 시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_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실 이 시를 쓴 저자 자신이 이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다. 그러나 선지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삶을 산다. 그래서 선지자 미가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다. 미가의 예언이 자비와 소망이 담긴 심판의 메시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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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나Jonah
    리워야단 요나Jonah의 이름은 비둘기를 뜻한다. 대체로 비둘기는 평화와 온순과 순결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이름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의족을 한 남자 _제임스 테이트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남자가 감옥을 탈출하다가 붙잡혔다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빼앗아 버렸다 날마다 그는 한쪽 다리를 한 채로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밭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일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의족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완벽한 탈출 계획을 세웠기에 한쪽 다리로 탈출하는 계획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는 눈은 감상적인 눈이 아니라 불처럼 타오르는 눈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의 영혼은 삶의 여러 장애로 눈이 어두워지기도 하지만 삶의 의욕을 포기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렇듯 선지자 요나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만큼 의지가 약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간다. 그는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풍랑이 넘실대는 바다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큰 물고기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종이 된다. 요나서의 주제는 요나 개인과 선원들과 앗수르 이방 국가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모두의 생명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다.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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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오바댜Obadiah
    오바댜Obadiah는 그의 이름을 빼고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 오바댜는 히브리어로 주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 개인으로보다는 하나님의 선지자 역할로 기억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오바댜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 구약 성경에 12명이나 더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에돔인들은 기뻐했다. 오히려 에돔인들은 그들의 이웃 형제를 돕지 않고 적을 거들었다. 그러한 양상은 옛날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대립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을 지닌 에돔은 이삭의 맏아들 에서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에서가 그의 동생 야곱이 주는 붉은 수프의 값으로 맏아들 상속권을 주고 사먹었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긴 야곱과 에서의 대립은 영혼과 육체 사이의 싸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 _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와 형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멸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오바댜의 예언대로 적들의 소유물들을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빌론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을 불태우기 위한 불이 되고 그 나라는 주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강변에서 사는 엄마와 누나와 형제가 함께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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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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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바냐Zephaniah
    나귀 타신 예수님 스바냐Zephaniah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왕족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의 왕과의 친족 관계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주도하던 주전 640-60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가 있다. 오빠 생각 _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이 시 속의 오빠는 여름새 뜸북새와 뻐꾹새가 울 때 떠났다. 그런데 오빠는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는 도처에서 오빠를 본다. 누이란 연약하기에 오빠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도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이 참된 신앙의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을 부르짖고 백성이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내용이 없는 겉치레 변화만 있었기 때문이다. 스바냐의 이름은 주께서 숨기신다는 뜻이다. 스바냐는 나훔 이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 같은 시대를 살았다. 스바냐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둘 있다. 그것은 남은 자와 주의 날이다. 스바냐의 주제는 주의 날이다. 주의 날에 바알의 그릇된 남은 자는 죽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들은 멸망당하고 믿음의 참된 남은 자는 구원받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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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하박국Habakkuk
    하박국Habakkuk의 예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아주 독특하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시를 담고 있다. 하박국의 이름은 포용을 뜻한다. 하박국은 바빌론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봤다. 이런 시가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_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징벌하시려고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박국은 자신의 체험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단계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둘째 단계는 믿음의 비전이다. 셋째 단계는 믿음의 인내다. 하박국이 강조하는 말씀은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등에서 인용되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이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한다. 이렇듯 신약 성경의 세 서신서가 구약 성경 하박국의 한 본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의인의 삶이란 마더 테레사의 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껴안고 바라보는 것을 단지 시작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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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나훔Nahum
    나훔Nahum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심판이 급박하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 뒤 니느웨로 파송된 요나의 외침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했다. 이런 시가 있다. 바람만이 알고 있지 _밥 딜런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나훔서 예언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앗수르의 약탈과 횡포에 떠는 유다 백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어 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론에 멸망당했다. 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의 사명은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 왕국에 대한 잔인한 앗수르인들의 위협을 경고하고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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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미가Micah
    낙타와 양 미가Micah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미가의 이름은 주와 같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라는 뜻이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했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자매 책이다. 미가서는 이사야서의 요약이다. 미가 선지자는 그의 책에서 세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다가올 심판과 미래의 왕국과 하나님의 회개 요청이다. 미가는 유다 백성이 이스라엘의 슬픈 체험을 통해 교훈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교훈을 받지 않았다. 이런 시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_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실 이 시를 쓴 저자 자신이 이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다. 그러나 선지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삶을 산다. 그래서 선지자 미가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다. 미가의 예언이 자비와 소망이 담긴 심판의 메시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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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나Jonah
    리워야단 요나Jonah의 이름은 비둘기를 뜻한다. 대체로 비둘기는 평화와 온순과 순결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이름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의족을 한 남자 _제임스 테이트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남자가 감옥을 탈출하다가 붙잡혔다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빼앗아 버렸다 날마다 그는 한쪽 다리를 한 채로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밭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일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의족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완벽한 탈출 계획을 세웠기에 한쪽 다리로 탈출하는 계획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는 눈은 감상적인 눈이 아니라 불처럼 타오르는 눈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의 영혼은 삶의 여러 장애로 눈이 어두워지기도 하지만 삶의 의욕을 포기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렇듯 선지자 요나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만큼 의지가 약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간다. 그는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풍랑이 넘실대는 바다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큰 물고기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종이 된다. 요나서의 주제는 요나 개인과 선원들과 앗수르 이방 국가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모두의 생명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다.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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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오바댜Obadiah
    오바댜Obadiah는 그의 이름을 빼고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 오바댜는 히브리어로 주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 개인으로보다는 하나님의 선지자 역할로 기억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오바댜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 구약 성경에 12명이나 더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에돔인들은 기뻐했다. 오히려 에돔인들은 그들의 이웃 형제를 돕지 않고 적을 거들었다. 그러한 양상은 옛날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대립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을 지닌 에돔은 이삭의 맏아들 에서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에서가 그의 동생 야곱이 주는 붉은 수프의 값으로 맏아들 상속권을 주고 사먹었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긴 야곱과 에서의 대립은 영혼과 육체 사이의 싸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 _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와 형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멸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오바댜의 예언대로 적들의 소유물들을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빌론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을 불태우기 위한 불이 되고 그 나라는 주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강변에서 사는 엄마와 누나와 형제가 함께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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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아모스Amos
    짐실은 노새 아모스Amos는 목자와 농부였지만 글을 쓴 최초의 선지자였을것이다. 그래서 아모스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모스서에는 목가적인 비유들이 많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전했다. 아모스의 예언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사치와 부패의 본거지 벧엘에서 주로 선포되었다. 그는 권력자와 부자의 배교와 불의를 공격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겉치레나 망설임이 결코 없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디로 _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그들의 뒤에는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내려오고 바람은 꼿꼿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다가온다. 오두막과 작은 사내는 서 있거나 움직이고 물은 흐른다. 우리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디엔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춘다.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내린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아모스는 이 시의 작은 사내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호세아와 이사야와 요나 등과 같은 시대 사람이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꾼이라는 뜻이다. 그 뜻은 아모스의 주요 메시지에 대한 이해의 열쇠를 제공한다. 아모스의 예언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죄에 대해 주께 받아 짊어져야 할 큰 짐과 같았다. 확실히 아모스는 그의 백성의 죄 때문에 주의 말씀의 짐을 짊어지고 어디로 라고 묻지 않고 묵묵히 나르는 하나님의 짐꾼이었다.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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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요엘Joel
    나무와 열매 요엘Joel의 이름은 '주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선지자 요엘은 가뭄과 메뚜기 재앙으로 살기 어려운 시절의 유다에서 활동했다. 요엘은 오순절의 선지자로 불리기도 한다. 요엘서 2장 28절에서 32절까지 기록된 유명한 예언을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16절에서 21절까지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엘의 예언의 목적은 주의 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가 있다. 봄 _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은 입안에 쑥 냄새가 도는 계절이다. 연못가 버들가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다. 요엘 선지자는 아주 감정표현이 능숙한 선지자였다. 그는 비유가 풍부하고 묘사가 생생했다. 요엘서에는 잊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두 사건이 비유로 묘사되고 있다. 한 사건은 선지자 당시의 유다를 휩쓴 메뚜기 재앙이었다. 다른 한 사건은 주의 날에 대한 것이다. 주의 날이 메뚜기 재앙의 비유 속에 나타난다. 그것은 현재의 재앙과 온 세상에 내릴 미래의 심판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메뚜기 떼의 묘사는 미래의 하나님의 군대를 나타내는 비유이기도 하다. 봄이라는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마찬가지로 겨울 같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항상 봄 같은 소망의 약속을 담고 있다. 사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다. 인간과 나라들에 어떤 재난이 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항상 조절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난들은 장차 임할 더 큰 심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렇듯 오늘날의 성도들도 어려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같은 하나님의 소망의 약속을 교회와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서 기다리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득할 때까지 소망하자.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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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호세아Hosea
    금송아지 우상 호세아Hosea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호세아는 죽음을 맞이한 이스라엘의 선지자라고 불린다. 당시에 이스라엘이 외적으로는 번성하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부패하고 분명한 심판을 앞에 두고 있었다. 호세아는 비유의 대가이다. 호세아서에서 그의 많은 비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시가 있다. 미술시간 _김종상 그림붓이 스쳐간 자리마다 숲이 일어서고 새들이 날고 곡식이 자라는 들판이 되고 내 손에 그려지는 그림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그려서 만든 것이 아닐까? 색종이를 오려서 붙여 가면 집이 세워지고 새 길이 나고 젖소들이 풀을 뜯는 풀밭도 되고 색종이로 꾸며 세운 조그만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세운 것이 아닐까 어린이는 천진한 눈을 깜빡인다. 붓이 스쳐간 자리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창공을 활강하는 새들과 곡식이 자라는 들판이 놀람과 즐거움으로 나타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하더라도 그림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다. 색종이를 오려 붙이자 홀연히 집과 길과 들판이 나타난다. 그림의 세계는 현실의 반영이고 작은 세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우주의 축약이자 그 울림이다. 어린이는 그 사실을 본능으로 깨달은 것일까.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 붙이며 몰입과 창조의 기쁨을 겪은 어린 마음이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세운 것이 아닐까. 그 상상 속에서 어린아이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 호세아의 예언은 영적 우상숭배의 실제적인 예를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호세아의 결혼에 대한 것이다. 호세아는 한 여인과 결혼했다. 그의 아내는 호세아에게 세 자녀를 낳아 준 뒤 남편을 버렸다. 호세아는 그녀를 노예 시장에서 다시 사야 했다. 이 행위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배신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한 것이었다. 호세아의 괴로운 체험이 자기 민족을 위한 설교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결혼했지만 마음이 남편 되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들에게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과 짝하여 마음은 딴 데 가있으면서 여전히 하나님에게 신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주님께서 요한계시록 2장 4절과 5절에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다 너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들을 행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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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다니엘Daniel
    다니엘과 사자굴 느부갓네살이 주전 605년 유다를 정복했을 때 수많은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송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다니엘Daniel과 그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 십대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축복하셨다. 다니엘은 다른 세 왕조에서 네 명의 다른 통치자들을 섬기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다니엘서를 읽으면 주님에게 신실하고 적의 땅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니엘서는 나라의 일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강조한다. 계속 이어지는 꿈과 환상들에서 하나님은 지상에 약속의 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진행될 이방 나라의 역사를 다니엘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니엘이 보지 못한 환상과 꿈도 해석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이런 시가 있다. 연구자의 기도 _1963년 화학학회 회보 신이시여 제 이론이 검증될 때 신의 종이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제 이론에 나오는 예측에 은총을 내려주소서 모든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순전히 행운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단순하게 꿈으로 계시되기도 한다. 어떤 업적은 실제로는 완전한 착오인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오류는 당시의 과학적 무지 때문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1963년 화학학회 회보에 실린 연구자의 기도라는 시에서 암시하듯이 과학자들의 명예는 그들의 고의적인 속임수의 결과이기도 했다. 다니엘은 예술가들의 착상이나 과학자들의 이론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했다. 느부갓네살이 그의 재위 2년에 꿈을 꾸고 마음이 괴로워 잠이 깼다. 왕이 마법사와 점성가와 갈대아 마술사를 소집하여 그 꿈을 해석하라 명했다. 그들이 달려와서 왕 앞에 섰다. 왕이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이 알고 싶어 마음이 괴롭다. 갈대아 마술사들이 시리아어로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만수무강 하십시오. 그 꿈을 종들에게 알려주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꿈의 내용도 말하지 않고 해석하라는 느부갓네살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니엘이 해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왕이 꿈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왕의 고민스러운 꿈을 알려주고 해석했다. 또 다니엘은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 벽에 쓰인 글을 해석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멸망시킬 때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 말씀하는 이방인의 때가 시작됐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영광의 나라를 세우려고 돌아오실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그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다니엘의 삶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그의 주권을 행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기로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다니엘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직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섬겼기 때문이다.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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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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