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앞에 속수무책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이겨내는 믿음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왜냐면 신자는 미래를 향해 가지만 믿음은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오산의 삼미동은 조선시대 정조(正祖, 1752년 10월 28일 ~ 1800년 8월 18일, 재위: 1776년 4월 27일 ~ 1800년 8월 18일) 임금이 마을을 둘러보고 오동나무, 대나무, 소나무가 아름답고 많다는 의미로 삼미(三美)라고 명명했다. 원래는 동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골, 즉 송리(松里)라고 불렸던 마을이다.
김두식 삼미그룹 창업주(1925~1980)는 21세이던 1946년 서울에서 비누와 식용유를 만드는 소규모 제조업체를 차리며 사업의 꿈을 펼쳤다. 1950년 6·25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가 화공 약품 사업을 이어가다 1954년 서울로 돌아와 청량리 일대에 목재 가공업체인 대일기업을 세웠다.
그가 목재 가공업에 뛰어든 이유는 6·25 전쟁 이후 훼손된 집, 공장, 관공서 등을 복구하기 위해 목재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측이 들어맞으며 대일기업의 사세는 확장됐다. 1959년 2월 국내 최대 규모의 제재공장을 인천 만석동에 마련했다.
전후 복구사업으로 목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해외에서 목재를 수입할 정도였다. 김두식 창업주는 자연스럽게 수출입업의 흐름을 이해하며 무역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1960년 김두식 창업주는 조선 임금 정조가 명명한 이름처럼 (주)삼미(三美)사를 세워 건어물, 수산물 등 여러 품목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전쟁 복구가 마무리된 후에도 목재의 인기는 여전했다. 국내산 합판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에 삼미사는 대형 무역업체로 급격히 성장했다. 김두식 창업주는 사업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1963년 원목을 수송하기 위해 삼창해운을 인수했고, 1967년 삼미광업개발을 설립해 광산업에도 진출했다. 삼양특수강과 한국특수강공업을 인수해 1975년 9월 삼미특수강주식회사를 세웠다. 1976년 자본금 3억 원으로 삼미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뒤이어 1977년 삼미금속, 1979년 시흥관광개발을 설립했다.
고도성장을 거듭한 삼미그룹의 성장세는 삼일빌딩으로 상징된다. 1968년 삼미그룹은 청계천 고가도로에 지하 2층~지상 31층 규모의 건물을 올렸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로 이름을 알린 삼일빌딩이다.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은 84년까지 삼미그룹 본사로 사용됐는데 나중 김현철 선교사가 삼미슈퍼들 가운데 한 별로 지목한 박영원(경기중, 경기고, 서울상대 졸) 상무 덕에 이 글을 쓰는 나도 몇 번 그 빌딩에 들어가 차를 대접받기도 했다.
박영원과 경기 동문 김현철은 1950년 대기업 총수인 김두식 회장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0년 부친의 타계로 만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 30대 기업 중 한 곳인 삼미그룹의 총수에 올랐다. 한국 산업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특수강을 세계 최고로 만들자는 부친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미화 2억 달러로 캐나다의 아틀라스 특수강을 인수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1982년에는 새로 출범하는 한국 프로야구가 제대로 된 리그를 운영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자 소비재가 없는 기업임에도 과감하게 야구단을 창단해 3년 반 동안 ‘삼미 슈퍼스타즈’를 운영하기도 했다.
‘삼미 슈퍼스타즈’(Sammi Superstars 1982~1985)는 짧은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연고지인 인천 외에도 매우 열광적인 팬층을 확보해 오늘날까지 회자 되는 컬트적 인기를 구가했던 구단이다. 모기업 삼미그룹은 무역, 해운, 광업, 특수강 등이 주 종목으로, 프로야구의 홍보 효과를 누릴 만한 소비재 분야 계열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구단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도 없었다. 1970년 삼미그룹은 청계천 고가도로에 지하 2층~지상 31층 규모의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 삼일빌딩을 건립하고 84년까지 삼미그룹 본사로 사용했다. 그러나 나이와 사세가 한창일 때 김두식(1925~1980) 삼미그룹 회장이 1977년 골수암을 판정받고 3년의 투병 끝에 1980년 55세로 돌연 타계했다. 급기야 1950년생 29세의 장남 김현철이 한국 30대 기업에 드는 삼미그룹 총수에 올랐다. 1989년 삼미그룹은 계열사 11개, 매출 1조 35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룹 경영을 맡자 한국 산업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특수강을 세계 최고로 만들려고 분투한 부친의 유지를 이루고자 1989년 당시로는 큰 액수인 2억 달러로 캐나다의 아틀라스 특수강을 인수해 5년 뒤 흑자를 냈다. 그 쾌거는 세계 철강 업계와 한국 재계를 놀라게 했다.
삼미그룹을 맡은 김현철 회장은 스포츠를 좋아했고,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메이저 리그가 미국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과 메이저 리그 구단주들이 그 지역사회의 저명인사가 되어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걸 목격했으며 프로야구의 발전 가능성과 당시 서종철 KBO 사무총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야구팀을 창단하게 되었다. 그는 박정희 정부 때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거물 인사로 집권 세력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프로야구가 정치권 입김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 시절 교관(=담임)이었고, 군 시절 하나회 후원자 역할을 했었으며, 서종철이 육군참모총장이던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의 부관을 지낸 경력도 있던 인물. 한마디로 군사독재 정권 시절 대한민국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막강 KBO총재.
팀명은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절대 무적의 슈퍼히어로 슈퍼맨에서 따온 슈퍼스타즈였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대표 스타 선수가 팀 내에 전혀 없는 상황에서 팀의 명칭이 '슈퍼스타즈'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과 언론은 "슈퍼스타가 한 명도 없는데 무슨 슈퍼스타즈냐?"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1982년 2월 5일 인천시 신포동 인천상공회의소 강당에서 23명의 슈퍼맨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최초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식이 열렸다. 어쨌든 인천 팬들의 열화와 같은 기대 속에서 1982년 3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창단 첫 공식 경기에서 삼미는 인호봉의 3실점 완투와 양승관의 3타수 2안타 2타점의 활약으로 당대 최강팀이자 우승 후보 0순위 팀으로 분류됐던 삼성 라이온즈를 5:3으로 이기며 첫 승리를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삼미의 첫 승 소식에 인천 팬들은 당연히 광분했다. 실제로 슈퍼스타(superstar)가 한 명도 없는데 무슨 슈퍼스타즈(superstars)냐?"라고 조롱을 받은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슈퍼스타 정신으로 가득 찼다.
1985년 3저 호황, 자동차 경기 호황 등으로 특수강이 뜨는 상황은 삼미그룹에 호재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금세 특수강 열기가 꺼지면서 해외 공장 삼미특수강은 1992~1993년 2년간 1,685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룹의 주요 사업인 특수강이 불경기에 시달리자 1991년부터 삼미그룹은 다시 한번 자금 위기를 겪게 된다. 1992~1995년까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배동 사옥, 토지, 공장 부지, 유나백화점 등을 매각해 4,000억 원 정도를 마련했지만 거듭된 적자로 불어난 1조 5,000억 원의 부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1997년 12월 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는 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 등에서 4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정부는 총 20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부실화된 은행에 투입했고 일부 은행과 종합금융사가 퇴출됐다.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로 대표되던 5대 시중 은행들은 합병이나 해외 매각의 길을 걸었다. 기업들도 부채비율을 낮추고 인원을 해고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상당 수 기업들이 채권은행들의 관리하에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자산 매각, 구조조정 등을 추진했다. 4대 그룹 중 하나였던 대우그룹도 해체돼 채권은행들이 관리했다. 공기업 개혁으로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통신(KT) 등이 민영화됐고 노동부문에서는 정리해고가 허용됐다. 분식회계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던 한보그룹 등 여러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졌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삼미그룹을 옥죄었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삼미그룹도 결국 해체되고 만다. (주)삼미는 삼림종합건설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삼미종합특수강은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됐다. 계열사들도 대부분 매각, 합병, 폐업을 거치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김현철 전 회장은 2002년 두 차례 직장암 수술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했다. 그런 김현철을 스무 살부터 지켜본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 이은혜 선교사이다. 그는 회사를 떠난 뒤 병에 걸린 김현철을 이렇게 회고했다.
... 직장암에 걸려서 아플 때 그냥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 부부가 생각해도 정말 이룬 것 하나 없는데 이렇게 떠나나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이제 살려주시면 우리 평생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미국에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도미니카에 오니 그런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건강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20년이 됐습니다.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가는 날까지 순종하면서 곁길로 가지 않고, 계속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스티브(김현철) 선교사와 함께 달려가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감사한 것은 남편이 한결같은 것입니다. 제가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교만하거나 건방진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굉장히 겸손합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 싶습니다. 수술 이후 아랫배에 차고 있는 장루( 대변을 배출하기 위해 복벽을 통해 장의 일부를 몸 밖으로 꺼내 고정한 구멍으로, 악성 종양, 염증 장 질환 등의 치료 과정에서 시행하는 인공항문) 주머니가 불편하고 힘들 텐데도 아무런 불만 섞인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남편이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은혜 선교사>
그 뒤 김현철 선교사는 2004년부터 아내와 함께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매일 밤 취침하기 전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읽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는 2002년 직장암 수술을 두 번 받은 후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간증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후 하나님께 10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 후에 15년을 하나님이 더 살게 해 주신 것을 알고는 ‘하나님 10년이 아니라 15년입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7년 전인 지난 2017년이 이미 15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저도 욕심을 부리는 것 같고 죄송스러워서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어떡할 것인가! 인생이라는 소설은 이미 쓰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유년의 일은 시간의 앨범에 잘 간직되어 있다. 태어난 집의 기둥과 지붕이 무너져서 가옥은 자취가 없어져도 그곳에 어울려 살던 맑은 아이와 순하고 무던한 사람들과 깨끗한 자연은 그때의 얼굴과 표정, 차림으로 그대로 있다.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에 살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몸은 그곳의 햇살이 되고, 풀씨가 되고, 들을 이루고, 눈발이 되고, 쑥이 우거져 자라는 높고 평평한 초지가 될 것이다. 소식이 감감하더라도 고향은 현재의 시간에 혈관처럼 흐르고, 연결되어 있다. 그렇듯 삼미 회장에서 도미니카 선교사로 활동하는 김현철의 회고는 겉절이처럼 소박하게 보이지만 그 속은 은혜의 체험이 살아 있는 실화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북아메리카 카리브 제도에 있는 나라이다. 대앤틸리스 제도의 일부인 히스파니올라섬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2004년에 몰아닥친 홍수와 열대성 폭풍 진(Tropical Storm Jeanne)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와 접경하고 있다. 인구와 면적으로 볼 때, 도미니카 공화국은 카리브 제도의 국가 중 쿠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수도는 산토도밍고다. 참고로, 도미니카와 도밍고는 각각 라틴어와 스페인어로 일요일을 뜻하는 단어다. 산토도밍고는 성스러운 일요일을 의미한다.
지난 2010년 1월 14일(현지 시간) 지진 참상의 현장, 아이티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중앙일보 취재진과 김현철 선교사가 우연히 만났다. 그는 6만 달러어치 의약품·식량을 전하러 온 한국기독교연합 봉사단과 동행하는 취재진의 길잡이를 자처했다. 2004년부터 아이티와 맞닿은 도미니카에서 부인과 함께 선교사로 일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 산토도밍고엔 그가 세운 ‘월드그레이스미션’이란 선교회가 있다. 포르토프랭스에도 선교회와 병원·기술학교를 세우려 하던 중 지진이 일어났다. 다섯 차례 포르토프랭스를 다녀왔지만, 그에게도 이번 여행은 쉽지 않았다. 2002년 두 차례 직장암 수술 후 대변 주머니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총 강도까지 당했다. 2010년 14~18일 그와 포르토프랭스를 함께 다녀온 뒤 19~20일 산토도밍고에서 다시 만났다. 95년을 끝으로 국내 언론에서 사라졌던 그가 그동안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특수강사업 시작과 기술 개발 배경에 대해 말했다.
“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에 특수강 공단을 만들었습니다. 무기 국산화를 위해서였죠. 기존 철강회사들에게 특수강사업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손사래를 쳤습니다. 첨단 특수강은 무리라고 했죠. 고육지책으로 박 대통령이 아버님을 불렀습니다. 국가를 위해 맡아달라고 했죠.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불모지였죠. 그나마 캐나다 밴쿠버에 있을 때 일본 마루베니라는 특수강 회사 공장에서 8개월 연수했다는 경력 덕에 내가 새 사업체 이사로 가게 됐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윤직상 박사라는 분이 결정적으로 기여했어요. 일본을 이겨보자며 의기투합이 됐죠. 독일 기계를 들여와 수도 없는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와 대포·M16에 들어가는 특수강을 개발했습니다. 77년 공장 증설까지 끝내고 양산을 시작했죠.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던 건 삼미특수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일본제품을 사다 썼다면 아마 수출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을 겁니다. 윤 박사는 두고두고 그걸 자랑으로 여겼죠. [출처:중앙일보]
한참 그룹이 잘 나가던 77년 선대 회장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골수암 진단을 받고 투병 끝에 세상을 뜨자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김현철 선교사는 1995년 직장암 판정을 받은 후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서원하며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3년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때도 운 좋게 현장을 피할 수 있었다며 말했다.
“당초 우리도 아웅산 묘소에 참배하도록 돼있었어요. 그런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버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를 합디다. ‘기업인들까지 아웅산 묘소에 갈 필요가 있느냐. 우리는 현지 기업인들과 골프를 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전 대통령이 듣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때 전 대통령이 안 된다고 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없겠죠.” [출처:중앙일보]
그는 2004년부터 도미니카 공화국에 세계은혜선교센터(World Grace Mission Center)를 설립해 21년째 그 땅을 섬기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창 15:1-7
202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