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사려고 끝없이 늘어선 행렬, 격리된 사람들,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 난민처럼 거부당하는 한국 여권, 그리고 도시마다 휑한 거리... 한국은 지금 코로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이 초래하는 궁핍과 갈등에 숨이 막히지만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나 해보자면 전쟁은 정신력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이다.
2020년 3월 5일 오후 1시 납골당 관련 수사 직무유기로 수사관을 고소한 사건의 고소인 진술을 위해 다른 경찰서 수사관 앞에 앉았다. 햇수로 7년 전인 2013년 더굳뉴스를 창간하고 제98회 수원 라비돌 총회 현장에 빌린 카메라를 들고 처음 발을 디뎠다. 그때 2020년 3월 6일 공산주의 국가 대도시 우한 촉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하 수상한 시절 더굳뉴스 주필(主筆)로 이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3월 6일 아침 책상 앞에 앉으니 ‘내가 과연 이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만 보던 역사의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귀향을 앞둔 시점에 항일운동 혐의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에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龍井)에 묻혔다.
주기철(1897년~1944)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48세에 순교했다. 겨울의 감방 온도는 보통 영하 20도 정도였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시 이들에게 어떤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독교 교계는 물론 우리 교단에서도 아주 약한 더굳뉴스라는 기독교 언론이 얄팍한 7년째를 맞는 날 논설 책임자로서 신문과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신문은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을 모으는 설교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대들을 솔깃하게 하는 소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총대들이 반기고 좋아할 내용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실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필자가 7년째 쫓아다닌 것, 지금도 혼자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찾기 힘든 것,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았더니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찾아내 보니 고약한 자를 분노케 해 고소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증오를 사는 것 때로는 총대의 요구와 다른 것, 어떤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事實·fact)이라는 것이다. 더굳뉴스의 7년은 한 줄로 줄여 말하면 믿음에 근거한 사실을 찾다가 성공하거나 실패한 기록이다. 한 줄만 덧붙이자면 그러다 박수받고 비난당한 기록이다.
대부분의 사실은 숨겨져 있다. 몇 겹 껍질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기자 생활 전부는 이 껍질을 벗기는 일이었다. 성공도 있었다. 하지만 못 찾아낸 것, 잘못 찾은 것이 더 많았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납골당 같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만 곁길로 흐르는 사실도 있다. 누구나 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권력의 위압 때문일 수도 있고 총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때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신문으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사실로 위장한 것들과 벌이는 싸움이다. 위장 사실 가짜 사실은 인터넷을 타고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사드 전자파 괴담, 수돗물 괴담, 미네르바 괴담, 총회장 금권 선거, 총신대 총장 선거 담합, 납골당 관련 가짜 뉴스 등 위장 사실은 수많은 총대를 불신의 늪으로 몰고 다닌다. 대부분 뒤에는 총회 정치 세력이 있다. 언론이 괴담을 만들기도 하고 총대 규모가 커지면 다른 언론들이 편승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로 일부 총대들은 실은 성경이 지적하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나게도 한다. 이익을 챙긴 자에게 좋으면 사실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한다. 총대가 솔깃해하는 사실은 허구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목말라하는 총대가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성경적 사실은 그러나 결국 교회와 총회와 역사를 움직인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총회가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사실은 전투에서 패할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다. 어둠이 빛을 덮을 수 없고 마귀의 거짓이 하나님의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반기지 않아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이 사실을 찾는 일은 힘들지만 보상도 없다. 그래서 언론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총회를 위한 나의 사명(使命)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 소명(召命)이다. 필자의 더굳뉴스에 대한 소망은 더굳뉴스에 났으니 마음엔 안 들어도 사실은 사실일 것이라고 총회 총대와 소수라도 독자들이 믿는 신문이고 싶다. 물론 지금은 못 미친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1㎝씩이라도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세상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저력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본연의 힘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 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근본 힘이 총회와 총대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총회 지도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창간 7년째 되는 해에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약속이다. 그러기 위해 늘 이 말씀을 되뇐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2020-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