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김영배의 더굳뉴스쇼.jpg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 1967년 10월 25일 ~)는 일본의 만화가이다. 1967년 10월 25일 도쿄 출생. 1988년에 데뷔하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 만화계의 거장으로 개성있는 그림체와 독특한 구성으로 단번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동경일일’이라는 만화가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처음으로 그리는 '만화'에 대한 만화이다. 퇴직한 중년 편집자의 분투를 다룬 이 세 권짜리 책에 이런 대사가 있다.

"처음에는 책을 완성해야만, 그리고 그걸 많은 독자분께 선보이고 감상을 들어야만 비로소 큰 기쁨을 얻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고통, 그 여정 속에야말로 진실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어찌 책 만드는 일만 그럴까. 성경과 주석을 읽고 설교하는 목사로 오늘 여기까지 온 우리는 모두 하나의 여정을 훌륭하게 마친 여행자다. 성경은 언제나 고요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6년에도.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가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창간한 신학 연구지가 
신학지남(神學指南)이다. 장로회신학교 교수들의 연구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호주인 선교사 왕길지(Engel, G.)가 편집인이 되어 창간호를 출판하였다. 발간사에서 “우리 장로교회의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신학의 광해(廣海, 넓은 바다)에 향방(방향)을 지남(指南: 가리켜 지시하는 것)하려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듯이,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에 평양신학교가 폐쇄되자 1940년에 함께 폐간되었다.
 
신학지남은 1954년 2월에 복간되었으나,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통합측과 분열하면서 통합측 장로회신학대학은 새로운 저널을 출간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은 1960년 이후 신학지남을 발간해 오다가 1965년 제호를 교회와 신학으로 바꾸어 출판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평양신학교로부터의 제호를 그대로 유지하여 1964년 문화공보부 등록번호 제 바-38호(1964년 8월 22일)로 다시 등록하여 신학지남을 계속 발행하고 있다.
 
1963년 강원도 사천에서 출생,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한 시인 박용하의 ‘동해안 포구를 위하여’에서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 우리는 우리가 변화시킨 세계에 의해 이만큼 흘러왔다. 흘러간 물은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물은 흐르고, 흘러야만 한다. 흐르지 못하면 썩는다. 그것이야말로 우습지조차 않은, 지독한 일이다. 통렬하고 질박한 언어로 날 것의 일상을 한 줄로 새기는 시인 박용하가 2010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쓴 5년 치 일기를 엮은 책 ‘시인일기’를 냈다.

“일기는 지금의 미래다. 살았지만 다시 살게 될 미래. 나는 타인이 되었다가 다시 타인이 되어 돌아온다.”(‘2014년 7월 25일 일기’ 중)
 
그렇듯 요즘 좌우 이데올로기조차 반박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추레해지고, 무시되고, 따분하고 지겨운 것이 되고, 그래서 시들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님의 뜻을 잊었거나 잃어버린 세대들...
 
시인 박용하는 산맥 동쪽의 바다 앞에서 “떠났고 도주했고 망가졌고 찢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창세기일 것만 같은 바닷가에서 유한을 탐하듯 그대를 원했다”고 말한다.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던 슬픔 앞에서 바다는 지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주는 장소였던 셈이다. 폭설의 밤은 도처에서 ‘우지끈’ 거렸다고 한다.

글로만 보던 역사의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귀향을 앞둔 시점에 항일운동 혐의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에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龍井)에 묻혔다.

주기철(1897년~1944)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48세에 순교했다. 겨울의 감방 온도는 보통 영하 20도 정도였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시 이들에게 어떤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독교 교계는 물론 우리 교단에서도 아주 약한 '더굳뉴스'라는 기독교 언론이 13년째를 맞는 날 기자로서 교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교단 언론이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을 모으는 설교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대들을 솔깃하게 하는 소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총대들이 반기고 좋아할 내용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실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필자가 13년간 쫓아다닌 것, 지금도 혼자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찾기 힘든 것,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았더니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찾아내 보니 고약한 자를 분노케 해 고소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증오를 사는 것, 때로는 총대의 요구와 다른 것, 어떤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事實·fact)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실은 숨겨져 있다. 몇 겹 껍질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권력의 위압 때문일 수도 있고 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일들로 세상은 성경이 지적하는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나게도 한다. 이익을 챙긴 자에게 좋으면 사실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한다. 돈을 사랑하는 자가 솔깃해하는 사실은 허구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목말라하는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성경적 사실은 그러나 결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도 움직인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무뢰배가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사실 정의란 전투에서 패할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다. 어둠이 빛을 덮을 수 없고 마귀의 거짓이 하나님의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제110회 총회준비위원회의 9월 2일 3차 전체회의가 열린 원주중부교회에서 장봉생 목사는 광야의 세례 요한, 비텐베르크 성의 루터같이 총회의 신학지남(神學指南)을 외쳤다. 우리 110년 총회의 목사와 장로들에게 신학의 광해(廣海, 넓은 바다)에 향방(방향)을 지남(指南: 가리켜 지시하는 것)하기 위해. 
 
“제110회 총회가 갈등 속에 출발하길 원치 않습니다. 평화롭고 웃으면서 총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총회 화합을 위한 마음으로 WEA 반대하는 분들의 입장은 우리 교단의 신학을 지키고 그에 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WEA에 우리 교단이 가입한 것도 아닌데, WEA 총회 개최에 대해 우리가 가타부타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대들이 원한다면 토론을 하겠습니다. 총대들의 의견과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지금 총회임원 선거 상황이 아주 어렵습니다. 110회 총회가 갈등 속에서 출발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웃으면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세상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저력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본연의 힘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 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근본 힘이 총회와 총대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총회 지도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통합과 분열된 지 66년 되는 때 신학의 방향과 내용을 잃어버린 총회에 제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교단과 교계의 정책 지향 지도자가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언제나 고요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6년에도.
 
성경은 말씀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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