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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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_보스와 함께 신학여행 _박형용 저
    성경의 바른 교훈- 보스의 신학에서 찾다 Theological Journey with Geerhardus Vos 본서는 보스의 질문 전체를 다루지 않았고 우리들에게 개혁주의 신학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골라서 정리했다. 보스는 신학 분야 전체의 내용을 1,233개의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 독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힌 반면 내용의 설명을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설명해 주었다. 독자들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신학 분야의 난제들에 대한 답을 보스의 “개혁교의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스의 “개혁교의학” 전 5권은 화란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어떤 부분들은 영어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어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따라서 본서는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스의 개혁교의학의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을 요약 소개하기도 하고 또 번역하기도 한 것이다. 편저자는 본서를 통해 보스(Vos)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더 많이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고, 궁극적으로 성경의 바른 교훈이 개인 성도와 기독교회 안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 편저자의 말 중에서 - 박형용 국내인물>교육가/인문학자>대학/대학원 교수 국내인물>종교인>신학자 서경대학교와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 에모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4년 동안 가르쳤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태동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신약학을 가르쳐 왔고 총장을 역임하였다.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장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였으며 많은 학문적 연구를 저술로 내놓았다. 영국 Cambridge에 위치한 국제인명록쎈터(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로부터 2018년도 신학교육분야의 "최고 100인 전문인"(Top 100 Professionals)으로 선정을 받았다. 저서 <신약 정경론>, <성경해석의 원리>, <신약성경신학>, <복음비평사>(성광), <바울신학>, <빌립보서 주해>, <교회와 성령>, <신약개관>(아가페), <히브리서 주해>(횃불), <정암 박윤선에게서 배우다>, <신학책, 나는 이렇게 읽었다>, <권세 있는 자의 가르침>(SBGST), <시간, 나무가 되다>,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말씀산책> 등이 있다. 목차 편저자의 말 _005 보스의 『개혁주의 교의학』 전 5권 _011 제1권 신론 제1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 _021 제2장 하나님의 이름들과 존재 그리고 속성들 _022 제3장 삼위일체 _032 제4장 일반적인 하나님의 작정 _037 제5장 예정교리 _039 제6장 창조 _048 제7장 섭리 _050 제2권 인간론 제1장 인간의 본질 _057 제2장 죄 _061 제3장 은혜언약 _071 제3권 기독론 제1장 서론 _087 제2장 이름들 _090 제3장 위격과 본성 _097 제4장 직책 _103 제5장 신분 _123 제4권 구원론 제1장 구원서정 _143 제2장 중생과 소명 _156 제3장 회심 _164 제4장 믿음 _171 제5장 칭의 _178 제6장 성화 _186 제5권 교회론, 은혜의 수단들, 종말론 제1부 교회론 제1장 본질적인 문제 _206 제2장 조직, 권징, 직분 _219 제2부 은혜의 수단들 제3장 말씀과 성례 _226 제4장 세례 _235 제5장 성찬 _249 제3부 종말론: 마지막 일들과 교리 제6장 개인적인 종말론 _259 제7장 일반적인 종말론 _262 정리하는 말 _284 색인 인명 _288 주제 _291 성구 _298 기본정보 ISBN 9791193395028 발행(출시)일자 2024년 01월 01일 쪽수 306쪽 크기 152 * 224 * 28 mm / 588 g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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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0
  • 이흥선 목사 신천지 변증서
    어느 여정으로 가든 ‘내가 이룬 것은 다 내 노력 덕’이라는 함정에서 나와야 시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호부조의 면역력이 생긴다. ‘나쁜’(bad)의 우리말 어원은 ‘나뿐’(only l)이고 ‘좋은’(good)의 우리말 어원은 ‘주는’(give)이다. 그러므로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나누어주는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까닭에 몇몇 국어학자들은 ‘살다’와 ‘사람’을 같은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행복한 삶은 오래된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인연을 곱게 이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스치는’ 인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좁은 시장길을 여럿이 오가니 팔이 부딪히고 옷자락이 닿기도 한다. 그런데 옷깃은 여간해선 스치기 어렵다. 옷깃은 목에 둘러댄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옷깃을 스치려면 꼭 껴안아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잠시 스치는 만남이라면 옷자락과 소맷귀가 어울린다. 옷자락은 옷의 아래로 길게 드리운 부분이니 누군가와 맞닿을 수 있다. 윗옷의 양쪽에 팔을 꿰는 부분인 소맷귀도 움직임이 많은 팔 부분이라 스치기 쉽다.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는 1984년 3월 14일 이만희가 창설한 사이비 종교다. 교리적 특징은 종말론이다. 1966년 창립한 장막성전(1966년에 유재열이 창설하여 1980년 장막성전은 해체되고 그 자리에 서울랜드 들어섬)을 중심으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만희(1931년 음력 7월 13일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현리리 10남 1녀 중 6남으로 출생)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장막성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만희는 1971년 9월 7일 "1967년 장막성전에서 전 재산을 다 털렸다"며 다른 신도들과 함께 유재열을 고소했고, 이것이 장막성전에 대한 수사와 유재열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신천지는 핵심 교리 중 하나로 성경이 배도, 멸망, 구원 순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해당 교리에 따라 장막성전 창시자 유재열을 배도자로 규정하며 마지막 구원자를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2020년 4월 12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유재열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하자 유재열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인터뷰에 부담을 느낀다며 서면 인터뷰로 대체하였고 방송에서 내용을 공개하였다. 여기서 유재열은 "자신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교리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던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신천지에서는 일명 '실상' 교리에 따라 자신을 배도자라고 하는데 자신이 만든 교리를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게 무슨 배도인가?"라고 반문하였다. 이흥선 목사가 2020년 7월 3일 "신천지 어떤 곳인가?" 반증서를 출간했다. 신천지와 계시록을 십자가 복음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비판 반증서이다. 이흥선 목사(총신대 교수)는 신천지 교리를 십자가 복음으로 비교 분석한 한국교회 최초의 반증서 “신천지 어떤 곳인가?”를 집필하여 지난 2020년 6월 29일(오후 4시) 인천시 부평구 장제로 소재 세계로 선민교회(담임 김현두 목사) 본당(2층)에서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현두 목사는 축사를 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흥선 목사님이 훌륭하다면 이 책 또한 훌륭한 책입니다. 이흥선 목사님은 오직 믿음로만 사시는 종입니다. 성경의 뜻대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분입니다. 책의 내용이 알차고, 옳고, 바른 것을 보면 이 책은 분명 성령께서 이끄신 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자 모두에게 성령께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시대의 표상이 되는 새에덴교회를 세워 목회하는 소강석 목사는 선지자적인 영상 축하 말씀을 전했다. "코로나 위기 때에 신천지 집단 감염 상태로 온 국민이 페닉 상태에 빠져있어 신천지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교묘한 전략으로 한국교회를 넘어뜨리려는 집단입니다. 이러한 위기 때에 존경하는 이흥선 목사께서 '신천지 어떤 곳인가?'라는 서적을 출간하므로 계시록과 신천지 교리를 비교 분석한 반증서가 나오게 된 것이야말로 뜻깊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축하드리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꼭 한번 읽으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구입하여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믿음의 변증사 이흥선 목사는 “원래부터 신천지 비판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신천지가 극성이라 걱정하는 중국교포 제자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라며 “신천지 교리를 비판 반증한 자료를 정리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신천지가 대구지역 코로나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면서 신천지 비판 자료를 정리해 출판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악은 가스와도 같다.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냄새로 식별할 수 있다. 악은 걸핏하면 정체되어 숨 막히는 층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악이 해놓은 일을 발견한다. 악이 차지한 지위와 이룩한 과업을 보고서야 자신이 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가스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신천지 같은 악의 특성이 아닌가.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15-21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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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 11. 10. - 1546. 2. 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 12. 26. - 1546. 4. 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루터보다 두 달을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심·개·념·정·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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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3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영국의 침례교 목사 메이어(F. B. Meyer, 1847. 4. 8. - 1929. 3. 28.)는 몇몇 가까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이 미국에 있을 때 그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아주 쉬웠지. 기도가 술술 나오더군. 그런데 몰간이 영국으로 돌아와서 내 교회 근처에 있는 교회를 맡게 되니까 그건 이야기가 영 달라지는 거야. 내 속에 있는 옛 아담이 새록새록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정말 괴롭더군. 그러나 나는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질투로 나를 시험하는 옛 아담을 발길로 걷어차 버릴 수 있었지. 그리고는 내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 옳든지 어떻든지 간에 나의 생각을 즉시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을 했어. 그건 내 교회가 캠벨 모간 환영회를 열어주기로 한 거야. 그래서 성대하게 환영회를 열어주었지. 그러니까 그 친구 정말 좋아하더군. 우리 교인들도 놀라는 눈치였어. 내 기분도 훨씬 가벼워지고 좋더군. 그리고 주일 저녁 설교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때면 나는 몰간의 교회로 달려가서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을 낙으로 삼게 됐지. 몰간의 설교야 말로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설교라면 나는 그의 신발 끈 풀기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 그러나 목사의 신분과 입장에서만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던 내가 마음을 비우고 신자의 자세로 몰간의 설교를 들으니까 아주 겸손해지게 되더군. 그러니까 은혜도 받고 몰간에 대한 내 마음도 편해지고 이건 일거양득이더라 말이야. 그런데 교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존경까지 하더군. 그런데 주님의 사랑의 은혜는 정말 놀랍더군. 내가 우리 교회를 비우는 날은 천부적인 설교자 스펄젼(Charles Spurgeon) 목사가 내 대신 설교를 하지 뭔가. 스펄젼과 몰간 그 두 사람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 사람들인가. 글쎄 몰간 교회만 사람들이 넘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교회도 사람들로 가득 차는 거야! 참 놀라울 일이지 않은가! 우리 세 사람 다 득을 보게 되었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야. 무엇보다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도와 말씀뿐이더군.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는 현실적인 기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구이다.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욕심에 끌려 시험받게 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하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말씀하는 불행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사탄은 죄의 원조이다. 사탄이 이브를 유혹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인간이 죄를 짓게 한 자였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하고 말씀한다. 사탄은 마귀들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사탄이라는 명칭은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대놓고 말씀하신다. 욥의 이야기는 사탄이 하나님의 제한과 통제의 범위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욥 1:12;2:6). 마귀들은 영원한 사슬에 매여 있다(유 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로 마귀들에게 너끈히 대항할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귀를 대적해서 싸울 때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대적하라고 권면한다(엡 6:16). 이제 믿음은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 마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사도 바울은 이어서 가르쳐준다. 그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물리치셨다(마 4:1-11).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이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 【핵·심·개·념·정·리】 1)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2) 사탄에 대항해 신자는 무엇으로 싸워야 하는가?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3) 사탄을 대항하는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무엇인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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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7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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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 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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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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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7과 십계명
    문42십계명의 대강령은 무엇인가? 답 _십계명의 대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라 하신 것이다. 문43십계명의 서문은 무엇인가? 답 _십계명의 서문은 이러한 말이니 곧 나는 너희 하나님이시니 나를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자로다 하신 것이다. 문44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_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도 되시고 우리 하나님도 되시고 또 우리의 구속자도 되시는 고로 우리가 마땅히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겠다 하는 것이다. [관련성구] 1)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 20:2 2)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1:1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켄터키 루이스빌에 있는 한 상점에 네 명의 강도가 침입했다. 그들이 상점을 터는 과정에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고 두 명의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도들 전원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 강도들이 심리를 받을 때 그들을 담당한 변호사가 배심원석 벽 근처에 십계명이 복사된 액자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변호사는 판사에게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존경하는 헤이스 재판장님, 이의가 있습니다. 배심원 석 옆의 벽에 걸려있는 저 십계명 액자가 이 사건의 심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저 십계명이 배심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저 액자를 떼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참석한 배심원들과 청중들이 그것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십계명에는 이런 말들이 눈에 띠었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그 문서가 이 사건의 심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재판장은 변호사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고 십계명을 법정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십계명은 그 법정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율법 시대는 모세 언약을 통한 통치를 의미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와 죽음을 계시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하심을 반영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율을 따르도록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율법의 희생 제사들을 통하여 속죄와 구원을 백성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더욱이 율법은 백성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교사가 돼주었다. 율법은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적 지침일 뿐이었다. 이 율법 시대는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십자가의 대속 형벌을 통하여 종식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렘 31:31 율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은 개별적인 죄들을 구체적으로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바로 십계명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십계명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첫째 판의 계명들은 그리스도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둘째 판의 계명들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이 된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 요약된 계명들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정의하셨다. 【핵심개념정리】 1. 율볍의 세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계명들. 둘째, 사회적 책임과 요구들을 나타내는 심판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을 지시하는 규례들. 2. 율법에서 십계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율법이 전체적인 죄를 깨닫게 해주는 반면 십계명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개별적인 죄를 인정하게 해준다. 3.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떻게 요약하셨는가? 예수님은 첫째 판의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그리고 둘째 판의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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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9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6과 율법
    문39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가? 답 _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 나타내 보이신 뜻을 복종하는 것이다. 문40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이 무엇인가? 답 _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이다. 문41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략히 포함되었는가? 답 _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략히 포함되었다. 【관련성구】 1)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 31:18 2)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2-13 스위스의 대법원 건물에 거대한 그림이 하나 걸려있다. 폴 로버트(Paul Robert)라는 화가가 그린 그 그림의 제목은 『재판관들을 가르치는 정의의 여신』(Justice Instructing Judges)이다. 그림의 전경에는 소송 당사자들이 그려져 있다. 남편을 고소한 아내, 건축주를 고소한 건축가, 주정뱅이를 고소한 술집 주인 등이 그려져 있다. 소송 당사자들 위에는 작은 하얀 장식용 가슴판이 달린 법의를 입은 스위스 재판관들이 서있다. 이 재판관들이 다양한 소송 당사자들을 어떻게 재판해야 할 것인가? 이 그림에 그 답이 그려져 있다. 자유의 여신은 대개 눈을 가린 채 손에 든 칼을 위로 치켜들고 서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은 눈을 가리지 않고 손에 든 칼을 아래로 향하고 서있다. 그 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적힌 책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그에게 원하시는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에 자기 멋대로 할 권리가 없다.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두 가지 주요 목적은 첫째,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둘째,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첫째, 율법이 기록되어 전해진 목적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위선과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처럼 죄를 드러내는 율법의 기능은 율법이 주어진 때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 있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을 자행하고 있었다.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우리가 보잘 것 없고 하나님 앞에 아무런 소망도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 율법이 기록되어 전해진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속죄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믿고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은 그것을 어겼을 때 정죄할 금지 조항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방법도 제시해준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 제사들에 관한 규례도 주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입법자로 택하셨을 때 아론을 제사장으로 택하셨다. 구약의 제사들은 여러 모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나타내주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그러므로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증거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2-3 【핵심개념정리】 1.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두 가지 주요 목적은 첫째,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둘째,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2. 구약의 제사들은 무엇을 나타내 주는가? 구약의 제사들은 여러 모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나타내주고 있다. 3.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무엇인가?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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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2
  • BOOK_ 법 앞에 선 한국 교회_ 소재열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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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08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6과 율법
    문39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가? 답 _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 나타내 보이신 뜻을 복종하는 것이다. 문40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이 무엇인가? 답 _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이다. 문41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략히 포함되었는가? 답 _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략히 포함되었다. 【관련성구】 1)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 31:18 2)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2-13 스위스의 대법원 건물에 거대한 그림이 하나 걸려있다. 폴 로버트(Paul Robert)라는 화가가 그린 그 그림의 제목은 『재판관들을 가르치는 정의의 여신』(Justice Instructing Judges)이다. 그림의 전경에는 소송 당사자들이 그려져 있다. 남편을 고소한 아내, 건축주를 고소한 건축가, 주정뱅이를 고소한 술집 주인 등이 그려져 있다. 소송 당사자들 위에는 작은 하얀 장식용 가슴판이 달린 법의를 입은 스위스 재판관들이 서있다. 이 재판관들이 다양한 소송 당사자들을 어떻게 재판해야 할 것인가? 이 그림에 그 답이 그려져 있다. 자유의 여신은 대개 눈을 가린 채 손에 든 칼을 위로 치켜들고 서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은 눈을 가리지 않고 손에 든 칼을 아래로 향하고 서있다. 그 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적힌 책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그에게 원하시는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에 자기 멋대로 할 권리가 없다.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두 가지 주요 목적은 첫째,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둘째,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첫째, 율법이 기록되어 전해진 목적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위선과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이처럼 죄를 드러내는 율법의 기능은 율법이 주어진 때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 있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을 자행하고 있었다.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우리가 보잘 것 없고 하나님 앞에 아무런 소망도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 율법이 기록되어 전해진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속죄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믿고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은 그것을 어겼을 때 정죄할 금지 조항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방법도 제시해준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 제사들에 관한 규례도 주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입법자로 택하셨을 때 아론을 제사장으로 택하셨다. 구약의 제사들은 여러 모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나타내주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그러므로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증거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2-3 【핵심개념정리】 1.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_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두 가지 주요 목적은 첫째,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둘째,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2. 구약의 제사들은 무엇을 나타내 주는가? _구약의 제사들은 여러 모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나타내주고 있다. 3.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무엇인가? _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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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1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5과 영화
    문38 신자가 부활할 때에는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_ 신자가 부활할 때에는 영광 중에 다시 살아남을 입어 심판 날에 밝히 안다 하심과 죄 없다 하심을 받고 완전히 복을 받아 영원토록 하나님을 흡족하게 즐거워하는 것이다. 【관련성구】 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2)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3)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젊은 목회자 시절 무디(D. L. Moody)는 갑자기 장례식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장례식 설교에 맞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찾기 위하여 복음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는 한 구절도 찾지를 못했다. 대신 무디는 그리스도께서 참석하신 장례식마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죽음이 존재할 수 없었다. 죽은 자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서 일어났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그래서 무디는 초청받은 장례식마다 부활을 설교했다. 그는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사 50:7) 하는 말씀을 붙들고 평생을 주를 위해 살았다. 무디가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는 죽기 몇 시간 전에 홀연히 빛나는 섬광을 설핏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침상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구가 멀어지고 하늘나라가 내 앞에 훤히 열려 있어. 이게 죽음이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어! 거기에는 여기와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없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있어. 나는 가야만 해.” 무디의 머리맡에 서있던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니예요. 아버지. 지금 꿈을 꾸고 계시는 거예요.” 무디가 고개를 저으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그 하늘나라 성문 안에 들어와 있어. 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얼굴들을 마주 대하고 있어.”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무디의 가족들은 그가 마지막 죽음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나의 승리의 날이야. 이것은 내가 왕관을 쓰는 날이야. 영광의 날이야!” 그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가족들은 침묵 속에 눈물을 흘렸다. 육체의 부활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부활이란 무덤에 누워있거나 썩어버린 육체가 어느 날 다시 살아나 땅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아테네의 지식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소동이 일어났다. 코웃음 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듣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행 17:32-34 사도 바울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12-13 이성적으로 이해하거나 증명하기 힘든 육체의 부활을 주님의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고 만져보았다. 사도 바울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묻혀 죽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나오듯이 인간의 육체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35-58 주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이 무덤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신자는 영혼과 마찬가지로 몸이 그리스도 같이 완전하게 변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세상은 불에 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1-13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앞에서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주님을 믿고 실천하는 자들은 축복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1-27 【핵심개념정리】 1. 부활이란 무엇인가? _부활이란 무덤에 누워있거나 썩어버린 육체가 어느 날 다시 살아나 땅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2. 어떻게 주의 제자들은 부활을 믿게 되었는가? _이성적으로 이해하거나 증명하기 힘든 육체의 부활을 주님의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고 만져보았다. 3. 고린도전서 15장은 무엇을 부활에 비유해 논증하는가? _사도 바울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묻혀 죽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나오듯이 인간의 육체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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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4
  • 이춘복 목사 브라더 로렌스
    하나님 임재의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를 연습하는 삶)으로 유명한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1614 – 1691. 2. 12)의 호적상 이름은 니콜라스 헤르만(Nicholas Herman)이다. 1640년 6월 중순 스물여섯 살의 니콜라스는 파리에 있는 맨발(남자는 맨발 여자는 샌달을 신음)의 갈멜 수도회(Discalced Carmelite Order)에 평수사(brother)로 들어갔다. 두 달 뒤 8월 중순 니콜라스는 갈멜 수도사의 갈색 옷과 로렌스('Lawrence'란 '부활'이란 뜻의 성인 이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평수사 부활의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로 불리게 된다. 그는 신실한 성격이라 수도원장의 신임을 받아 여러 보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맞는 일은 타협이나 거래가 없는 식당의 요리사였다. 그는 수도사들의 식사를 해주면서 부엌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식사를 수도사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드신다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했다. 그리고 까다로운 수도사들이 음식을 두고 그를 무시하며 별 말을 다해도 그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로 생각했고 접시 하나 닦는 것도 주님이 사용하실 그릇으로 여겼다. 그는 일과를 마치면 반드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생각해 일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으면 주님께 회개 기도를 하고 내일은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웠으면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은혜를 구했다. 그는 깨어있는 전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평수사 부활의 로렌스(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는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하며 1691년 2월 12일 일흔일곱 살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겼다. 최근 남현교회 이춘복 목사가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쉬운 목회'라는 저서를 내었다. 그 저서에 제4장에 '관계의 달인'이라는 장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평생 실천한 '브라더 로렌스'를 닮은 저자의 성품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저서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춘복 목사는 브라더 로렌스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셨기 때문에 좋은 만남이다. 그러나 만남을 좋은 관계로 이어가는 것은 자신의 역량에 달려 있다. 내가 사십 년 동안 한 번의 분쟁도 없이 평안하게 목회한 것은 모든 만남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마 전 우리 노회에서 삼십 년간 같이 섬기신 목사님을 헌신 예배 강사로 모셨는데 관계라는 주제로 설교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남현교회 이춘복 목사님을 안 지 삼십 년이 넘었는데 이춘복 목사님은 관계의 달인입니다." 나는 그분이 왜 관계의 달인이라고 하는지 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사람도 관계를 나쁘게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노회, 총회에서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힘써왔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러나 원한다고 관계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네 가지가 꼭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이 네 가지를 지키기 위해 힘써왔다. 1. 만남은 하나님께서 2. 상대방을 유익하게 3. 상대방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4. 변함없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삶의 원칙을 몸에 배도록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브라더 로렌스가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을 몸에 배도록 날마다 연습했듯이 이춘복 목사도 자신이 터득한 좋은 관계 유지법 네 가지를 브라더 로렌스처럼 몸에 배도록 힘써 지켜 '관계의 달인'이 됐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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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8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4과 죽음
    문37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_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쉰다. 【관련성구】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2)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4 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죽음의 패배자는 고골리(N. V. Gogol)의 단편 소설 『외투』(Shinel)에 나오는 이름도 이상한 아카키예비치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박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하급 관리 서기이다. 그는 글씨 쓰는 일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좋게 여긴 상급자가 좀 더 좋은 자리에 앉혀도 그는 견디지를 못한다. 천생 글 베끼는 일만이 그의 천직이다. 동료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서류를 정서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그를 날마다 골려준다. 심지어 아카키예비치 머리 위에 종잇조각을 뿌리며 일흔 살 먹은 하숙집 주인 노파와 언제 결혼할 거냐고 놀려대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글씨만 멀뚱하게 쓰고 앉아 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머쓱해지고 만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모르는 고민이 있다. 그것은 외투가 닳고 닳아 어쩔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얼마나 닳고 기운 데가 많은지 외투를 입고 있어도 매서운 바람이 제 마음대로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는 난생 처음 결단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돈을 모으기 위해 차대신 물만 마시고 속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고 구두 밑창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더욱 가만가만 걷기로 했다. 이렇게 알뜰살뜰 모으면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보태 최저가의 외투를 한 벌 장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생후 처음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감격의 날이 왔다. 그는 마침내 새 외투를 맞춰 입고 사무실에 어깨를 쫙 펴고 출근했다. 그는 난생 처음 동료들이 자신에게 부러운 눈길을 보내주는 걸 느끼며 가슴 뿌듯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퇴근길 어두운 골목길에서 외투를 강도들에게 강탈당하고 말았다. 그는 밤새 뜬 눈으로 새웠다. 그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침 길을 외투도 없이 사무실로 어깨를 푸욱 늘어뜨리고 출근했다. 일생 크게 앓아본 적이 없던 아카키예비치가 감기 몸살과 상심으로 몸져눕고 말았다. 며칠 뒤 그는 죽었다. 그는 땅속에 묻혔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없이도 잘 돌아갔다. 마치 아카키예비치 바슈마치킨이라는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육체적 삶의 정지이고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다. 신자가 죽으면 그의 육체는 이 땅에 남겨진 채 묻혀도 그의 영혼은 거룩하게 되어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된다. 예수님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그러나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된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 갈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 16:22-26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날 때부터 허물과 죄악 가운데 죽어 있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에덴동산에서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쳤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사실 죽음은 한 인간이 숨을 멈춘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범죄 했을 때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비로 이 종말이 도달되는 과정을 연기하셨다. 영혼의 중생이 사망을 생명으로 바꾼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4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몸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5-29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일 3:2 우리는 새 몸을 입고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3 【핵심개념정리】 1. 죽음이란 무엇인가? _죽음이란 육체적 삶의 정지이고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다. 2. 믿지 않은 자는 죽으면 그 영혼이 바로 어디로 가게 되는가? _신자가 죽으면 그의 유체는 이 땅에 남겨진 채 묻혀도 그의 영혼은 거룩하게 되어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된다. 예수님은 함깨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깨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 그러나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영훤한 형벌에 들어가게 된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참조. 눅 16:22-26 3. 신자의 육체는 주님의 재림 때 어떻게 되는가? _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일 3:2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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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7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3과 성화
    문35 거룩하게 하신 것이 무엇인가? 답 _ 거룩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역사이신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 사람이 새로워짐을 얻고 점점 죄에 대하여서는 능히 죽고 의에 대하여서는 능히 살게 되는 것이다. 문36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신 것과 거룩하게 하심에서 함께 받는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유익이 무엇인가? 답 _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신 것과 거룩하게 하심에서 함께 받는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아는 것과 양심의 화평한 것과 성령 안에서 얻는 쾌락과 은혜의 증가함과 끝까지 굳게 참는 것이다. 【관련성구】 1)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4:18-19 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2-14 안토니우스(Anthony of Egypt: 250-355)는 사막에서 85년의 대부분을 기도와 수양으로 보냈다. 그는 그러한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교 금욕주의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스도교 금욕주의는 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육체적인 자기 부인을 통하여 정신과 감정을 향상시키는 훈련이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홍해 근처 코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심지어 고향과 친척까지도 버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스무 살 되던 해 사막의 수도사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의 권리를 다 포기했다. 그는 14년 동안 사막에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유혹들과 싸웠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유혹하고 시험하기 위해 날마다 마귀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안토니우스는 수도를 하던 초기에는 이웃과 교회를 위한 봉사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수행에만 전력했다. 그는 더 깊은 적막한 곳을 찾기 위하여 나일 강 근처의 피스피르 산으로 은거하고 정착했다. 그는 그곳으로 6개월마다 식량을 가져다주는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무도 보지 않은 채 20년을 피스피르에서 보냈다. 그의 친구들과 숭배자들이 금욕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들의 강한 요구와 끈질긴 부탁이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수행을 시작한지 35년이 되는 305년에 수도 규칙과 교리들을 제정했다. 이것은 마귀를 분별하고 쳐부수는 수도사의 능력을 배양하는데 특별히 역점을 두었다. 그가 85년간의 사막 수도 생활에서 사막을 떠난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 그의 첫 번째 떠남은 311년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 기간에 이루어졌다. 그는 순교를 자원하기 위하여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화형에 처하거나 사자 밥으로 던져주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쫓아다니며 번거롭게 할 따름이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사막의 피스피르 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도 더 이상 한적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도 상당히 큰 수도사 공동체가 세워져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는 그곳을 떠나 나일 강과 홍해 사이에 있는 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 세워진 안토니우스 수도원은 지금도 존재한다. 사막을 떠나는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여행은 339년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이단 논쟁에 불을 붙인 아리우스주의를 공격하기 위하여 그가 알렉산드리아로 갔을 때였다. 아리우스주의는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다르다고 가르쳤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공박하고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나중에 안토니우스의 전기를 썼다. 그는 사막으로 다시 돌아와 355년 10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도하고 정원을 가꾸고 몇 안 되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하고 말씀한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화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일이기도 하느냐는 것이다. 성화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 이 내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일이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 3:9-10 톨스토이는 회심하고 난 뒤 이런 고백을 했다. “예전에는 내 눈에 좋아보이던 것들이 나쁘게 나타나고 나빠 보이던 것들이 좋게 나타났다.” 둘째, 성화는 점진적이다. 성화는 현세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화는 신자의 마음속에서 계속 되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죄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게 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3-8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15절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 하고 원하지 아니 하는 것은 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그런 자신이 곤고하다고 한탄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 끊임없이 싸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화는 이렇듯 느린 점진적인 과정이지만 또한 확실한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성화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이다. 성화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 죄에 대하여는 더 많이 죽고 의에 대하여는 더 많이 사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만이 성화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일 2:29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일 5:3 우리가 거룩함 가운데 자라 갈수록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장 기대하는 성화의 목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핵심개념정리】 1. 그리스도의 금욕주의는 무엇인가? _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육체적인 자기 부인을 통하여 정신과 감정을 향상시키는 훈련이다. 2. 성화의 세 가지 특성은 무엇인가? _첫째,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난다. _둘째, 성화는 점진적이다. _셋째, 성화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이다. 3. 성화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_우리가 거룩함 가운데 자라 갈수록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참조. 요일 3:3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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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0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2과 칭의
    문34 양자로 삼는 것이 무엇인가? 답 _ 양자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이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중에 들게 하시고 그 모든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관련성구】 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2)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일 3:1-2 한 목사의 아내이고 열아홉 아이들의 어머니였던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보기 드문 이상적인 어머니였다. 가난과 질병과 좌절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가정을 잘 꾸려나갔다. 그녀는 일찍부터 자녀들의 양육 규칙들을 스스로 세워서 지켰다. 그 규칙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가 어떤 것을 바라고 운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로 주지 않는다. 아이가 울고 싶어 한다면 그냥 “조용히 울게 해라!”이다. 그녀의 집에서는 아이들이 크게 우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둘째, 아플 때가 아니고는 어떤 간식도 먹거나 마시지 못한다. 셋째, 어린 아이의 낮잠 자는 시간도 규칙을 정해 엄격하게 지켰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자게 했지만 커갈수록 그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다 크면 낮잠 자는 시간은 없어졌다. 넷째, 시간을 꼭 지켰다. 어린 아이들을 요람에 누이고 잠들 때까지 흔들었다. 저녁 일곱 시에 모든 아이들이 잠자리에 누웠다. 저녁 여덟 시에 수산나 웨슬리는 아이들 방을 나왔다. 그녀는 아이들이 다 잠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침대 곁을 떠날 시간이 되면 어김이 없이 그 방을 나왔다. 다섯째, 어린 아이들은 큰 식탁 옆에 작은 식탁들을 각자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숟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되면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큰 식탁으로 옮겨가게 되는 영광을 맛보게 해주었다. 여섯째, 모든 아이는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마셔야 한다. 일곱째, 모든 아이는 서로 이름을 부를 때 누나나 형 호칭을 반드시 붙여 불러야 한다. 여덟째, 그녀는 아이들에게 성질을 부리거나 꾸짖는 법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아이가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이런 그녀에게 남편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당신 인내에 놀라지 않을 수 없구려. 당신은 지금 그 아이에게 그 일 때문에 같은 말을 스무 번이나 했소!” 수산나 웨슬리는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어떤 일이든 아이들에게 열아홉 번만 말했다면 내 노력이 다 헛수고가 되고 말았을 거예요.” 존 웨슬리는 대학에 가서도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에게 편지를 써서 어떤 책을 읽어야 될지를 물었다. 어머니의 권면과 추천은 존 웨슬리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부모가 되신다. 하나님에게는 부모로서 아버지의 속성과 어머니의 속성을 다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강하심과 위엄의 속성과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보살핌의 속성을 지니고 계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양자의 형식을 통해서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신적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도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에 있는 기업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하나님의 양자 됨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믿고 구원받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순간에 양자 됨이 이루어지게 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둘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영구적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셋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실제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받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실제로 적용하게 해주신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한 가족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진 구약의 유대인들과도 한 가족이 된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7-8 바울은 이 양자 됨의 완성을 부활의 새로운 몸을 입는 때로 보았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 8:23 하나님은 이제 그의 자녀들에게 그 완성의 날이 올 때까지 성경을 통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성경을 부지런히 보고 열심히 그 가르침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한 목사의 아내이고 열아홉 아이들의 어머니였던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보기 드문 이상적인 어머니였다. 가난과 질병과 좌절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가정을 잘 꾸려나갔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나? _그녀는 일찍부터 자녀들의 여덟 가지 양육 규칙들을 세워서 자녀들이 스스로 지키도록 반복해서 말해 가르치고 그녀 자신도 철저히 지켰다. 2. 하나님의 양자 됨의 세 가지 특성은 무엇인가? _첫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믿고 구원 받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둘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영구적이다. 셋째, 하나님의 양자 됨은 실제적이다. 3. 하니님의 양자 됨의 특권은 언제 완성되는가? _바울은 이 양자 됨의 완성을 부활의 새로운 몸을 입는 때로 보았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 8:23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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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02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1과 부르심
    문29 우리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에 참여하게 하시는가? 답 _ 우리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은 그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구속을 효력 있게 적용하심을 인함이다. ······················ 문30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셨는가? 답 _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또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다. ······················ 문31효력있는 부르심이 무엇인가? 답 _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신이 하시는 일이나 우리의 의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 문32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금생에서 무슨 유익을 얻는가? 답 _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는 것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금생에서 이와 함께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받는다. ······················ 문33의롭다 하심이 무엇인가? 답 _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유하시고 그 앞에서 우리를 옳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심인데 우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받는 것이다. 【관련성구】 1)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0 2)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7-38 3)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아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만큼 생전에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사후에 그렇게 많은 조명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에 있는 한 마을의 개신교 목사의 육 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외톨이 성향을 빼면 별로 눈에 띌게 없는 소년이었다.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졸업을 하지 않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1879년 벨기에의 가난한 탄광지대인 보리나주로 가서 광부들에게 선교를 했다. 그는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파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고 그 자신도 갱으로 내려가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는 남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일주일에 엿새 동안 하루 12시간씩 중노동을 했다. 고흐는 교단에서 지원받는 자신의 쥐꼬리만한 생활비 대부분을 이들에게 썼다. 그는 누더기를 걸친 채 땅 아래와 땅 위에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이 다같이 잘 사는 완전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부르짖었다. 고흐의 이런 행동은 교단의 반감을 샀다. 그는 교단으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그러나 고흐는 보리나주에 일 년을 더 머물렀다. 그의 생활은 굶주림과 좌절감으로 파멸 직전까지 갔다. 그는 삶의 감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다. 나는 어디든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내 속에서는 무언가 꿈틀거린다. 과연 그게 무엇일까? 고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보리나주에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물일곱 나이로 아직 10년의 여생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이었다. 그는 연필과 숯으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베꼈고 교재를 샀고 잿빛 하늘 아래 검은 석탄 자루를 질질 끄는 광부들을 스케치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이 깊은 절망의 상황에서 생명의 활기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이제 여기서 내 모든 게 바뀌고 있어. 고흐의 그림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는 『감자 먹는 사람들』(1885)도 이런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른일곱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10년 동안에 8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그의 그림이 팔린 것은 단 한 점뿐이었다. 고흐가 죽기 직전 한 비평가가 미술잡지에 고흐의 그림에 대해 처음으로 글을 쓰면서 그를 가리켜 “환상적인 에너지와 격정적인 도취”를 보여준 탁월한 외톨이 화가로 격찬하였다. 그러나 고흐는 이 사실도 모르고 죽어갔다. 고흐는 1930년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그의 전시회장만큼 북적거리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가 그림을 그리던 아를에서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티셔츠와 넥타이와 볼펜 등이 팔리고 있고 그가 묻힌 오베르 마을의 묘지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바울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0 여기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임하는 구원의 순서를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그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바울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라고 했을 때 그 부르심이 하나님의 행위임을 강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롬 8:29) 사람들을 예정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의 행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유효한 소명’ 즉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복음에 대한 자신의 의지적인 반응과는 상관없이 이 부르심의 능력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유효한 소명은 우리가 복음에 바로 응답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응답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한 의지적인 응답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기도가 중요하다. 복음 전파가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구원의 참된 반응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4 요한 사도도 개인적인 응답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1-12 부르심의 교리가 중요한 이유는 복음을 통한 부르심이 없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핵심개념정리】 1. 고흐는 깊은 절망의 상황에서 어떻게 되었는가? _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그 부르심을 통해 보리나주에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이었다. 2. 구원의 순서는 무엇인가? _그것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그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3.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무엇이 수반되어야 하는가? _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기도가 중요하다. 복음 전파가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면 구원의 참된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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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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