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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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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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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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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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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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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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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실시간 G.QT 기사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
    주신 말씀_ 베드로후서 3:12~13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 내 믿음 생활에 결국의 바라는 것은 육신의 마침이 오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살다가 그날에 이르러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내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하시는 보좌가 있는 삼층 천에 올리워 지는 것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경배를 드리다가 주 예수님이 심판하시고 재림하시는 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옛것이 없어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한 기쁨을 누리며 주님과 영생을 하는 삶을 사모하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내 믿음의 간절한 사모함이며 바램의 실상이 될 것이다. 사실 이를 기다림에 있어 지루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 하셨으니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곧 오시리라 약속하신 날은 우리 인생의 삶에는 2천 년이 지났으나 주님께는 한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간 것 아닐까? 이 주님의 약속이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내게 큰 ‘은혜’이다. 만약 내 육신이 생기기 전 주님이 이미 오셨더라면 나는 주님과 상관없는 자요, 주님의 은혜와 영광에 들어설 수 없는 자였으리라! 그랬더라면 이 아름다운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소망은 가질 수도 없겠고 이토록 흥분되고 기쁜 이승의 천국의 맛 또한 느껴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의 그 날은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이 모두 이 땅에 태어나서 모두 다 구원과 회개에 이른 후에 홀연히 임할 것이 분명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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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5
  • 성경이 삶이 되다_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주신 말씀_고린도후서 5: 20~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성경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독하며 읽으면서 느끼고 감동하는 것은 단연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꿈은 오직 인류 구원이 목적이셨다. 때로는 기가 막힌 묘한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고 그 백성을 가르치고 훈련하실 때에는 모진 회초리를 드시다가도 불붙는 듯한 사랑에 매를 돌이키시며 철없는 백성이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안쓰러울 만큼 사정하시기도 한다. 이래도 안돼고 저래도 안되니 결국 하나님이 택하신 마지막 방법은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인간들의 ‘죄의 값’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 일에 대해 바울은 담담히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이야말로 나같은 미물은 도저히 깨닫기 힘든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그 일이 ‘섭리’라고 하기엔 참으로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참으심이 안타깝고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그 깊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모두가 받들어 모시고 예수님처럼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자. 그것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아멘. 20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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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4
  • 성경이 삶이 되다_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
    주신 말씀_ 로마서 12: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 원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 주님의 날! 정성껏 예배드림으로 복 받는 날!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란 어떻게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가?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하여 예배를 드리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나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과 마음을 제물로 삼는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말은 쉬우나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예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지켜 온 나의 주일예배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거룩한 몸으로 드린 예배가 아닌 듯하다. 하나님께서 열납 받으시기에 합당치 못한 예배였단 말인 거다.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우선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바른 행실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은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사는 현명한 삶을 살 때에 그 삶 자체가 거룩한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될 것이다. 내 삶의 경험상 변화를 받아 내가 바뀌는 것은 오직 주님의 도우심과 십자가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할 때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런 즉, 나는 오늘 예배 시에도 ‘성령의 도우심’을 갈망한다. 아멘. 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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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7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
    주신 말씀_ 이사야 43: 2~3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 나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 물도 불도 나를 해치지 못하네 나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자라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 사람이라 나 비록 지은 죄 많으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부르셨네 애굽을 나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죄값으로 삼으셨네 환란의 강이 나를 덮치고 불구덩이에 빠졌어도 하나님의 오른손이 나를 건지시고 머리카락 하나 못태웠네 할렐루야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켜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영광 돌릴지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은 구주 예수를 믿는 사람! 감사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 아멘.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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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0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 나라의 극히 작은 자
    주신 말씀_누가복음 7: 28~29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하나님 나라의 극히 작은 자 위 말씀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의 극히 작은 자라도 땅에서는 요한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그러나 그 요한은 ‘여자가 땅에서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으니 하나님 나라에 가기만 한다면 일단은 요한보다 큰 사람으로 신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나실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님 앞에 먼저 와서(눅 1: 17) 주님의 길을 곧게 하려고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사람, 곧 ‘광야의 외치는 자’가 아닌가? 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세상에 널리 알림은 물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품으로 예수님의 이 땅에서 인류 구원의 고귀한 사역을 하시게 도왔으니 과연 주님이 보실 때에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는 칭송을 들을만 하였다. 이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차별과 차이로 뒤엉켜있다. 부와 권력으로 나뉜 신분의 차이, 태생부터 나누인 귀하고 천함의 차이, 이런 차이들은 아픔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불평등, 불공정을 양산하며 결국 이세상을 부패와 타락의 지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나라 시민의 신분이 보장 되어있으니 이거야 말로 ‘대박’ 사건이 아닌가? “할렐루야! 다시 한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리로다.” 아멘.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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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3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는 기도자
    주신 말씀_ 야고보서 5: 17~18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는 기도자 성경에는 기도로서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받아 기적을 만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가 있다. 아브라함의 시종 엘리에셀의 기도, 모세의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 아모리전투에서 해와 달을 중천에 떠 있게 한 여호수아의 기도, 히스기야 왕의 벽면 기도, 한나의 기도, 다윗 솔로몬 엘리야 등등 하나님을 감동시킨 기도자들이다. 흔히 ‘기도’만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하며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이라 하여 사무엘과 바울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고 예수님도 이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이시기도 하셨다.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눈만 감고 중언부언하며 주님만 찾으면 그게 다 기도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는 아무 필요없는 낭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는 어떤 기도였는가? 최근 3년간 나의 기도는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는 기도였다. 나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회개하였으며 오직 주님만이 나의 힘되시며 능력이심을 구하였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나의 모든 상황과 처지는 역전되었으며 승리하였다. 이것은 나의 체험이자 자신있는 간증인 것이다. ‘기도’는 궁극적으로 내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내 생활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많은 목회자들과 예수님까지도 가르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 마6: 28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도의 제목은 도무지 하나님의 응답하심이 없고 답답한 상황은 더 악화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할 경우에는 기도 목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혹시 나의 기도 목적이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거나 세상에서의 출세와 부를 위해 엉뚱하게도 거기에 하나님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이기적인 기도인지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 앞에 속절없이 찾아오는 유라굴로같은 광풍과 감당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보다 위기에서 건져주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리라. 또한 일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목적의 기도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절박하게 끊임없이 구하는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욕이 없고 공의를 이루는 것을 원하는 간구함은 때가 되면 반드시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사사 때의 한나처럼 간절한 기도 후 수심없이 ‘믿음으로 기다리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는 기도자의 자세이다. 아멘.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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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06
  • 성경이 삶이 되다_ 5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만개하다
    주신 말씀_ 로마서 1: 20~21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 할지니라 5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만개하다 하나님을 몰랐을 때의 5월은 그냥 푸르르고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이제 창세부터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고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만물에서 확인하며 맞는 5월은 보여지는 그 자체가 확연히 다르고 새롭다. 5월의 푸르름은 생동함으로 생명과 소망을 노래하고 5월의 형형색색의 꽃들은 신이 저들마다 내리신 영화를 뽐낸다. 5월에 바람을 나는 새들은 쉼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로 지저귀며 5월에 부는 바람과 골짜기 흐르는 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길을 순종하여 찾아간다. 5월에는 외로움이 없다. 이름없는 풀잎 하나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랑이 있다. 이처럼 온 천하 만물들이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5월인데 오직 그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만이 굳은 목과 허망한 생각으로 보는 눈이 어두워지고 듣는 귀와 입이 미련하여 5월에 드러난 하나님의 신성을 보지못한다. 찰흙덩이의 어리석음이 한마리 노랑나비가 춤추며 반기는 하나님의 창조 답례에도 못 미치는구나!! 아멘.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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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30
  • 성경이 삶이 되다_ 오직 그의 긍휼하심으로 얻은 구원
    주신 말씀_ 디도서 3: 5~7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오직 그의 긍휼하심으로 얻은 구원 세상을 사는 날 동안에 내가 의로운 행위를 한들 그 얼마나 하였는가!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고 나선들 어디까지 도울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지금까지 제대로 도와본 적도 없으며 지금의 내 경제적 상황으로는 도울 능력조차 없는 나이지만... 내 몸을 던져 어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위기를 막아내고 대신 죽음을 맞았다면 몰라도 ‘의’라는 그말 자체를 입에 올릴 자격조차도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보다 쬐금 정직하게 살아왔고 쬐금 착하게 행하였으며 욕심없이 살았다고 구원을 소망할 수는 없는 게다. 그런 일이라면 산 속에 박혀 도를 닦는 스님들이나 믿음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도 나보다 훨씬 착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 눈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탄식하신다. 그럼에도 나는 외친다. “오! 복되도다. 나의 인생이여, 나같은 자가 무엇이라고 만세 전에 택함을 받고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받았는고! 오직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로 인함이라.” 아멘.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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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2
  • 성경이 삶이 되다_ 부활 이후 들어갈 곳 새 하늘 새 땅
    주신 말씀_ 요한계시록 21: 4~6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부활 이후 들어갈 곳 새 하늘 새 땅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 이후 부활의 새 몸으로 일어난 거룩한 성도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 그곳은 바로 약속하신 새 예루살렘이다. 그곳에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고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해와 달과 별도 볼수 없고 바다도 땅도 다 지나가고 없다. 오직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비취는 곳이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천국의 기쁨만이 있기에 사망이 없고 눈물과 애통함과 아픔은 다시는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내겐 간절한 부활의 소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땅에서 다가올 육신의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내 육신의 사망은 바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발의 디딤이며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천성에 다가서는 시작점일뿐이다. 주님이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날이 혹시 오늘일지도 몰라 사랑을 기다리는 새 신부처럼 나는 설레이는 기다림으로 오늘을 소중히 살겠다. 아멘. 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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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6
  • 성경이 삶이 되다_ 주님 부활의 날에 찬양과 기도
    주신 말씀_ 고린도전서 15: 20~21 로마서 6: 5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주님 부활의 날에 찬양과 기도 온 세상 만물들아! 우리 주님께 경배하라. 온 세상 입이 있는 것들아!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하늘과 온 땅에 숨쉬는 것들아! 다 우리 주님께 감사하라.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 모든 영광 돌릴지어다. 내 영혼이 기뻐하고 또 기뻐하네! 우리 주님 부활에 연합한 자 되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네! 네 무거운 죄 어디 있느냐. 네 하찮은 공로 어디 있느냐. 오직 거져 주신 우리 주님 은혜로 말미암음이로다.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우리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 삼아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부활을 제게 연합시켜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창세부터 기획하신 하나님의 꿈이 우리 주님의 ‘부활’로 완성되게 하심에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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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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