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언덕에서 목사를 만나 목사를 보내네. 느린 버스 가듯 가는 목사. 한 절의 성경 같은 목사. 주님이시여 너른 주님이시여 주님의 가슴속 같은 믿음의 목사가 가네. 골고다 언덕 오르시던 주님보다 더 고독한 목사가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소망이 가네. 목사가 가네.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시대가 가네.
‘죽기 전 사람들이 제일 후회하는 것’의 리스트다. 리스트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삶의 많은 부분을 너무 일만 한 것.
둘째,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셋째,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행복의 관점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다. 아기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빼야 하는지 아는 천재처럼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몰입한다. 이것이 아기가 그토록 충만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년 10월 25일~1973년 4월 8일)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년 4월 6일 ~ 1520년 4월 6일)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위대한 피카소가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한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초조함은 잘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삶 속에 초조함 대신 꾸준함을 채워 넣어야 한다. 물론 모든 꾸준함이 합당한 대가로 돌아오진 않는다. 어쩌면 오랫동안 쌓아 올린 나만의 역량이 영영 빛을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함이야말로 꽤 확실한 안전자산이다. 이 안전자산을 뽐낼 기회가 오면 그때부터가 삶이 바뀌는 시작점에 서게 된다. 정확한 과제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실천과 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이며 극작가, 연극 연출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이며, 한 시대를 이끈 가수이자 탁월한 예술가로 찬사받는 김민기(金敏基, 1951년 3월 31일~2024년 7월 21)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첫 공연 후 2008년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그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났다. 원작자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내년 창단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걸 계기로 2018년 12월까지 열리는 100회 한정 공연이었다. 15년간 70만 명이 관람했다는 이 공연은 독일 원작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 그런데 베를린 느낌 물씬 풍기는 공연이 어떻게 서울의 풍속화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분명 번안과 연출을 맡은 김민기의 힘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저항문화의 상징이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미국 포크 음악에 우리 정서와 노랫말을 녹여낸 작곡가였다. ‘아침이슬’ ‘상록수’ ‘친구’ ‘아름다운 사람’ ‘가을편지’ ‘백구’ ‘작은 연못’ ‘천릿길’ ‘날개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봉우리’ 등 1970~1980년대 수없이 불렸던 그의 노래들은 우리말에 내재한 선율과 리듬을 세심하게 계속 연구하고 터득한 결과였을 것이다.
김민기는 원작의 본질을 꿰뚫고 인물의 전형들을 파헤쳐 한국 상황에 맞게 탈바꿈시켰다.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격찬에 1000회부터는 저작권료도 면제받았다. 독일저작권협회는 선례가 된다 하여 반대했음에도 학전의 번안은 독립된 창작물이라며 원작자가 강력히 요청해 이뤄진 조치였다.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해 자국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김민기에 대한 원작자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었으리라. 지하철 1호선이 IMF 시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담아낸 한 시대의 기록물이라면 반세기에 걸친 김민기의 활동은 한국 현대 예술사의 의미 있는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해야 마땅할 것이다.
2024년 9월 23일 청렴하고 총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의 뒤를 이어 총회 지도자의 신앙과 덕목을 갖춘 장봉생 목사의 날이 될 날이 지하철 1호선처럼 왔다. 그는 말했다.
"서울노회 서대문교회를 24년째 섬기고 있는 장봉생 목사입니다. 저는 제95회 총회에 처음 참석한 이후 다음세대를 일으키고, 정책을 수립하며, 교회의 영성을 새롭게 하는 여러 분야에서 총회를 배우며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제 공약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미래’ ‘정책’ ‘부흥’입니다.
첫째, 준비된 미래입니다. 지금 사회는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그리고 다문화를 넘어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면서 AI 파도 한 가운데 들어서 있습니다. 모든 세대와 교회를 품는 아날로그 감성과 빅테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전략 시스템으로 교회와 교단의 미래를 잘 준비하겠습니다.
둘째, 성숙한 정책입니다. 109회기에 출범하는 총회정책연구소를 통해 교단의 중장기정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미래자립교회를 보듬고, 개혁신학에 근거한 대사회적 정책을 강화하겠습니다.
셋째, 진정한 부흥입니다. 말씀과 기도운동을 통해 교회를 교회 되게, 나라를 나라 되게 하고, 나아가 통일운동, 전도운동으로 이어지는 총체적인 부흥운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겠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와 호롱불 켜고 박희천 목사 부흥회를 치른 총신대 학내 사태로 21위원이 된 총신대 1학년 1971년부터 총신대 4학년 김영우와 더불어 총회를 알만큼 알았다. 그리고 총회 국장으로 10년 근무까지 했고 '더굳뉴스' 기자가 돼 들락거리는 데도 새로운 총회가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다. 어떤 새로운 총회가 될지 걱정도 생기고 기대도 된다. 허나 나는 스스로를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 놓아보려 한다. 제109회라는 숫자가 익숙해질 때쯤 되면 나도 또 다른 새로운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익숙한 환경에서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자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109회 총회 경주자로 나선 장봉생 목사처럼 나는 가장 두렵고 불편한 도전을 하고 그 안에서 용기 내어 버티는 힘을 다시 길러보고자 마음먹는다. 제109회 총회 이후의 내 목표는 74년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오정호 목사와 장봉생 목사 같은 믿음과 마음이 아이로 되돌아 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0-14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