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3-27 제109회 총회에 참석한 박헌성 목사는 LA 소재 국제신학대학(학장 박헌성 박사)을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