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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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110년 총회 선거와 안티고네
    누구도 법의 구속을 벗어나기 어렵다. 소크라테스는 국법이 암묵적 약속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라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법의 판결에 따라 기꺼이 독배를 마신 철학자도 법이 모든 것 위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법이 어떻게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하물며 그렇게 불완전한 법이 문재인 같은 눈먼 권력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 그래서 법과 그 법 너머의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그런 갈등의 파국을 보여주는 비극이다. 안티고네는 불행한 여인이다. 그녀는 존엄한 왕에서 역병을 불러온 패륜범으로 전락한 오이디푸스의 딸이었다. 불행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리를 놓고 두 오빠가 다퉜고 이 싸움은 칼부림으로 끝났다. 이웃 나라를 끌어들여 권력을 탈취하려던 폴뤼네이케스와 그에 맞섰던 에테오클레스가 서로 찔러 죽였다. 이 사건은 또 다른 불행을 낳았다. 조카들의 죽음을 계기로 왕위에 오른 크레온이 폴뤼네이케스를 반역자로 낙인찍고 시신 매장을 금지하는 왕명을 내렸다. "이 명령을 어기는 자는 시민들이 돌로 쳐서 죽일 것이다." 왕의 명령은 곧 국법이었다. 안티고네는 어찌해야 할까. 국법의 이름으로 선포된 크레온의 명령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가족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오빠의 시신을 묻어야 할까. 안티고네는 자신의 몰락을 예감하면서도 진실을 파헤치는 고집스러운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닮았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로 결심한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결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이 낳을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오빠의 시신 매장은 목숨을 건 ‘범행’이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는다. 안티고네에게는 그 일이 ‘경건한 범행’이었기 때문이다. 외삼촌이자 군왕인 크레온을 향해 그녀가 외친다. “내 가족과 나 사이를 가로막을 권한이 당신에게는 1도 없어요.” 새로운 나라의 법을 지상의 가치로 내세우는 크레온의 완고함과 오래된 가족의 법을 따르려는 안티고네의 단호함이 충돌한다. “이것을 금한 법을 포고한 걸 알고 있었느냐?” “그래요. 어떻게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감히 이 법령을 위반했다는 말이냐.” “제가 보기에 이것을 명하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죠.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인간들에게 그와 같은 법은 정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포고가 그만큼 강력하다고 생각지도 않아요. 기록되진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 안티고네의 이 외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앞세운 폭정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우리의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은 안티고네였다”라고 말했다.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충돌은 총회 선거 후보를 놓고 불법 선거 원흉과 어리숙한 피의자의 충돌처럼 전면적이다.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 국가의 법과 가족의 의무, 권력자의 명령과 도덕적 저항 사이의 대립에 제3의 길은 없는 것 같다. 만일 안티고네의 행동이 법을 무시한 한 여인의 죽음으로 끝났더라면 ‘안티고네’는 가족을 위한 희생 이야기로 그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티고네의 ‘경건한 범행’이 낳은 파국의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이재명 관련 사건 관련 피의자들처럼 그녀의 죽음은 또 다른 죽음들을 부른다. 오빠의 시신에 흙을 뿌리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안티고네는 동굴 감옥에 갇힌 뒤 목을 매어 자살한다. 뒤따라온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통치자에 대한 복종을 전부로 아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른다. 아들의 죽음에 실의한 크레온의 아내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에게 분노하며 자결한다. 힘없는 여인의 불복종에 광분하며 그녀의 도덕적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려 했던 크레온의 강압적 태도는 부메랑이 되어 그를 쓰러뜨렸다.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잃고 그는 ‘산 송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조국을 배반한 오빠의 시신을 왕명을 어기며 매장하는 일이 자신의 젊은 목숨을 내걸 만큼 중대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안티고네라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족이 무덤도 없이 새들과 개들의 먹이가 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옳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총회장을 거친 당연직 총회 선거관리위원장도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총회 지도자의 품위와 의무조차 품을 수 없는 총회선거법이라면 그것이 지키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나는 3·1운동과 더불어 태어났다. 동아일보 창간과 같은 해였다. 수많은 교육기관도 그즈음에 탄생 됐다. 연희, 이화, 숭실, 고려대학도 그랬다.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열네 살에 중학생이 되었을 때 부친이 남겨준 말씀이다. '네가 지금부터 긴 인생을 살아가겠는데 항상 가정 걱정만 하면 네가 가정만큼밖에 자라지 못한다. 친구들과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그 직장의 주인이 되고 그만큼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언제나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민족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라는 교훈이다. 지금도 나는 부친의 가르침이 그 시대의 요청이었고 나라 사랑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세대는 바뀌고 세월은 흘렀으나 그 정신이 민주국가의 길이다. 진실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모처럼 진리와 총회와 총신을 사랑하는 무흠의 목사를 총회 지도자로 세우는 기회를 맞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110년 총회를 상비부는 그대로 두고 총회 본부만 팀 체제로 확 바꿨다. 이어서 특보 팀 전횡을 이끈 어설픈 김종혁 체제를 넘어 전통적인 보수 교단의 칼빈주의 총회와 총신으로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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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8
  • [더굳뉴스] 정영교 목사 제110회 부총회장 후보 추천
    믿음이 혈관 속에 물처럼 흘러 졸, 졸, 개울 가까운 예배당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겨울을 참아온 소망아 종다리처럼 태어나 어느 이랑에서 솟구쳐라 푸르른 사랑이 믿음 소망보다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2025년 3월 8일 오전 10시 제48회 남경기노회 정기회가 산본양문교회(정영교 목사)에서 열렸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 속회해 정치부는 “총회 제110회기 목사부총회장 후보 정영교 목사 추천의 건"을 보고하며 허락을 요청했다. 남경기노회 회원들이 동의와 재청하고 기립 박수 만장일치로 허락했다. 꽃다발을 안은 정영교 목사는 출마 계기를 밝혔다. "한기승 목사의 불출마로 기도 끝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되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직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줄줄이 대선 경선 출마 선언에 나서고 있다. 당내 경선에는 공직에서 물러나지 않아도 참여가 가능하지만, 경선 기간 동안 시정(市政)·도정(道政) 공백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부는 3월 8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임식을 진행했다. 6월 3일 예정된 조기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다. 김 장관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대선 주자 중에서 지지율 선두를 기록 중이다. 그가 4월 9일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말했다. “피고인 이재명을 상대하기에는 가진 것 없는 깨끗한 손 김문수가 제격입니다. 거짓과 감언이설로 대한민국을 혼란과 파멸로 몰고 갈 이재명의 민주당은 저 김문수가 확실히 바로잡겠습니다.” 그리고 현직 광역단체장 중에서 공직 사퇴 의사를 밝힌 사람은 화끈 확실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오는 4월 11일 시장직에서 퇴임하고 4월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재명을 따돌릴 보수의 대들보 희망 홍준표가 4월 7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경선을 보고 뛰는 게 아니라 본선을 보고 달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3-27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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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9
  • [더굳뉴스] 산불과 WEA 서울총회 개최 반대
    이재명 거짓말 진실 가리는 사법 무죄 판결로 숨 막힐 듯한 거리. 그 길 헤치며 취재하러 가다 눈이 번쩍했다. 길 건너 양지바른 자리에서 손짓하는 하얀 목련 꽃봉오리. 올 들어 문득 만난 봄꽃. 그러고 보니 발길 끊은 산속 진달래가 목을 빼고 있을 텐데 여기저기 산불이라니. 비라도 주룩주룩 내려 산불이며 성경의 진리를 태우려는 WEA 불씨 재워주면 참 좋으련만. 봄이다. 겨울에 잠자던 자연 세계가 깨어나 되살아나는 재생의 시간이다. 인색했던 겨울의 태양은 이제 화사한 햇빛으로 연둣빛 새순과 목련꽃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진다. 때로는 촉촉이 내리는 봄비가 정겨운 흙냄새를 폴폴 일으킨다. 며칠 전만 해도 죽은 나뭇가지처럼 보였던 장미 덤불에 어여쁜 새싹이 돋고, 칙칙한 갈색의 나뭇가지에도 여린 새순이 비죽비죽 올라온다. 봄이 덧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봄은 더 아름답다. 벚꽃은 며칠 동안만 필 것이고 시원한 산들바람과 화창한 봄날은 머지않아 후덥지근한 여름에 속절없이 자리를 내줄 것이다. 좌우가 갈린 세상은 언제나처럼 시끄럽고 번잡하다. 잠시 근심을 내려놓고 성경의 우물가 여인처럼 야외로 나가 이 짧지만 사랑스러운 봄이 전하는 주님의 은혜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데 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25분경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의 한 묘소에서 뜬금없이 성묘객 실화로 발생한 산불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지역을 휩쓸었다. 불길이 7일째 확산하며 4만5157ha(산불 영향구역)를 삼켰다. 서울의 74.6%, 여의도의 156배, 축구장 6만3263개 면적이란다. 기존 역대 최대 피해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794ha)의 2배 규모... 문득 산림청은 3월 28일 오후 5시 경북 산불의 주불이 진화됐다고 밝혔다. 하나님 은혜로 3월 28일 1mm 단비가 내려 역대 최악의 산불이 가까스로 잡혔기 때문이란다. 산불 진화의 주역은 주님의 봄비였다. 3월 27일 오후부터 시작된 비는 밤사이 5개 시군에 1~3mm의 물을 뿌렸다. 강우량은 적었지만, 숲을 적신 은혜의 비 덕분에 마귀같은 불똥이 날아가 번지는 비산화(飛散火) 위험이 낮아졌다는 게 산림청 분석이다. 기온도 전날보다 10도 이상 떨어져 연무 현상이 사라졌다. 시야가 트여 진화 헬기가 정밀 분사로 산불을 끌 수 있었다. 산림 당국은 26일 오후 6시 기준 63.2%에 머물렀던 진화율을 28일 낮 94%까지 끌어올렸고 가장 큰 불씨 주불 진화까지 성공했다고 한다. ‘실수’는 한순간이고, 이제 이 삼림이 회복되려면 불길을 잡는 데 걸린 시간의 수천 배가 필요할 것이다. 불과 몇 mm밖에 안 되는 약한 비였지만, 마귀의 화를 막을 수 있는 건 주님의 은혜뿐이라는 진리를 절감하게 했다. 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대표회장 맹연환 목사)가 ‘WEA(세계복음주의연맹)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서울 강남구 소재 예장합동 총회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2025년 3월 28일 오후 2시 대치동 총회회관 1층 로비에서 1846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산불 불씨 같은 WEA(世界福音主義聯盟, World Evangelical Alliance) 서울총회 개최 반대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2025 WEA 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대표회장 맹연환 목사) 주관 기자간담회는 사무총장 김용대 목사 사회로 진행됐다. 대표회장 맹연환 목사는 차분히 말했다. “WEA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WCC를 능가하는 단체입니다. 우리 총회는 아직 WEA 교류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랑의교회가 이를 주도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 차례 중단을 부탁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총회는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보수신학의 보루입니다. 이번 산불처럼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WEA의 문제점에 대해 함께 나누고 의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WEA 총회는 2025년 10월 27일 열릴 것으로 예정돼 있는데, 만약 이를 불과 몇 주 앞두고 9월 22-26일 열리는 예장 합동 제110회 정기총회(총회장 김종혁)에서 WEA 참여 금지를 결의할 경우 WEA와 한국교회 전체에 매우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무총장 김용대 목사는 이어서 단호한 모습으로 주장했다. "WEA 서울총회 유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의 진리와 개혁주의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1959년 WCC를 반대했던 예장합동 교단의 신학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정치적 타협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신학적, 신앙적인 이유로만 걸어갈 것입니다.” 기자간담회와 함께 진행된 논문 발제는 문병호 교수(총신대 조직신학), 양진영 교수(광신대 조직신학), 서창원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 김호욱 교수(광신대 역사신학)가 나섰다. 문병호 교수는 WEA 신복음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활동을 비판했다. “WEA와 일절 교류 협력, 가입을 금해야 합니다. 본 교단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EA와 교류를 금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이 결의가 지금도 유효한 것은 2021년 제106회 총회에서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를 유보하고 논쟁을 피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WEA 서울총회 유치는 본 교단 총회의 결의에 반하는 명확한 윤곽을 분명히 드러내는 중요한 사안으로서 본 교단 신학과 양립할 수 없으므로 즉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마땅한 제재와 조치를 가해야 합니다.” 이어서 서창원 교수가 단단한 논지를 펼쳤다. "본 교단의 소속 교회인 사랑의교회가 WEA 서울총회를 유치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이유로 특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나서는 것은 복음을 위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갱신을 외치고 실천한 사랑의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가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지금 그 사랑의교회는 도대체 어떤 신학 사상을 가지고 소속 교단이 반대하는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새로운 교단을 만들 생각이라도 있는 것일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33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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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30
  • [더굳뉴스] 소강석 목사 총회선관위 장미의 이름
    젊은이들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 배움은 사양길에 들었다. 그뿐인가. 세상이 거꾸로 걷는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여 시궁창에 처넣고 새들은 날지 못하는 주제에 둥지를 떠난다. 다행히도 나는 그 시절에 윌리엄 수도사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배움에의 욕구를 채우고 사물을 바로 보는 감각을 익혔으니 내가 험로를 헤맬 때도 스승의 교훈이 나를 인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장미의 이름'은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년 1월 5일 ~ 2016년 2월 19일)의 메타픽션 소설(등장인물들이 가상 세계 'fictional universe' 안에서 허구와 현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나 모순을 제기하여 아이러니와 자아 성찰을 유도하는 방식의 소설)이다. 1327년 11월의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장미는 아주 아름답게 피지만 쉽게 범접할 수 없도록 가시가 있고 연약한 잎을 움켜쥐면 쉽게 지기도 한다. 장미의 이러한 특성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금서와 같다. 당시의 시대상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와 다른 교단 즉 “이도교”들로 구성된다. 교황의 힘이 막강했기에 이성의 말과 행동은 교황의 한마디에 묵살당했다. 때문에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던 윌리엄도 이단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 쉽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당시 교황과 황제 사이의 세속권을 둘러싼 다툼, 교황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의 청빈 논쟁, 제국과 교황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입장, 수도원과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갈등 등을 다루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 바스커빌 출신의 윌리엄과 그를 모시는 수련사, 멜크 수도원의 아드소는 황제 측과 교황 측 사이의 회담 준비를 위해 회담이 열릴 수도원에 도착한다. 원장은 윌리엄에게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의문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1327년 겨울 윌리엄은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했다. 미궁으로 빠져드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사에 착수한 이튿날 또 한 사람의 수도사가 보란 듯이 죽었다. 이어서 세 명의 수도사들이 연속으로 죽었다. 끔찍한 독살이었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들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윌리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장서관에 있는 어떤 책이 연쇄 살인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 죽음의 책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식가로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년 ~ 322년)의 '시학' 제2권이었다. 우리에게 '시학'은 한 권으로 전해진다. “서사시와 희극에 관해서는 나중에 말해보도록 하고 지금은 비극에 관해서 논의해 보자.” '시학'은 도입부를 마치고 제6장을 이렇게 시작하여 곧이어 비극을 다룬 다음 서사시를 다루고 제26장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면 희극은? 말은 꺼내놨으니 쓰긴 썼을 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이런 말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것들에 관해선 따로 '시학'에서 정의해 놓았다.” 하지만 '시학'에는 정작 우스꽝스러운 것들에 관한 논의가 없다. 그렇다면 희극과 우스꽝스러운 것들을 다룬 다른 책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제2권도 썼고 그곳에서 희극을 다루었으리라 추정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애를 기록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두 권 가운데 제1권만 전해질뿐 제2권은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이 질문에 답한다. 젊은 수사 아드소가 스승 윌리엄과 머물게 된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악마의 짓이라며 공포에 빠져들고 권력을 저울질하는 종교재판관은 고문과 협박으로 얻어낸 거짓 자백으로 수사를 종결하려 한다. 하지만 스승 윌리엄은 이 사건의 중심에 미궁의 장서관이 있다고 보고 그곳을 조사하는 한편 수도사들을 탐문 한다. 윌리엄은 타협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모든 게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다. 육욕과 권력욕 그리고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독점욕이 살인의 가장 큰 동기였다. 그렇듯 엄격한 근엄주의 수도사였던 호르헤는 생각했다. ‘웃는다구. 경건한 수도사들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지. 웃음은 사람을 경박하게 만들지. 게다가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 따위에 관심을 갖다니 당치 않다. 고로 '시학' 제2권은 금서여야만 하지.’ 그는 다른 수도사들이 이 책을 탐독하는 것을 막고, 탐닉하는 자를 응징하기 위해 책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독약을 묻혔다. 누군가 오른손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면서 유쾌하게 키득거릴 때 그는 불경스러운 웃음의 값을 목숨으로 치러야 했다. 결국 윌리엄은 여러 자료를 통한 추론으로 장서관의 밀실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낸다. 장서관의 밀실에는 윌리엄의 예상대로 호르헤 노 수도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마지막 논쟁을 펼친다. 마침내 사건의 전모를 폭로하는 윌리엄 앞에서 호르헤는 장서관에 불을 질렀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은 호르헤의 이빨에 뜯기며 불에 타 재로 사라져버렸다. 끔찍한 메타픽션 소설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신학이나 성경 문제가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불경스러운 웃음을 찬양하는 '시학'을 보존한 장서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호르헤는 장서관에 불을 지른다. ‘의심 없는 믿음은 악마와 같다는’ 단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여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한 끝에 결국에는 한 수도원을 사흘 밤낮 타게 해 전소시킨 호르헤의 행동은 부정부패가 배광식의 불경스러운 웃음처럼 낭자한 작금의 교단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전율스럽다. 2022년 8월 26일 10시 30분 열린 한국장로교회 총회 설립 110주년 기념대회에서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소강석 목사는 축시를 낭독했다. “... 흑암의 땅 조선에 사랑과 희망의 십자가를 세우며 가슴마다 교회를 세워갔던 한국 장로교 110주년의 역사여 한마음, 한뜻이 되어 코로나 팬데믹의 안개를 뚫고 새로운 부흥의 아침을 향해 비상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는 지갑을 다 털어 미화 101달러까지 다 헌금했다. 그 후 12시 30분 제17-2차 선관위 전체회의를 서울 잠실 롯데호텔 3층 에메랄드룸에서 점심 식사와 다과를 곁들여 주재했다. 그 덕에 밖에서 서성이던 기자 일행은 회의는 취재하지 못하는 대신 언감생심(焉敢生心) 비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이날 선관위는 비공개이지만 기관지 기독신문 기자만 배석한 채 목사부총회장 후보 오정호의 졸업자 명부가 없는 총신대 현관 벽에 'DONOR WALL'이라는 해괴한 기증자 명단 벽이 생겼다. 그런데 부총회장 후보 오정호가 그 얼어죽을 제막식 참석에 대한 선거법 위반을 심의 안건으로 다뤘다. 선관위원들은 오정호 후보 확정 여부를 놓고 찬반으로 나눠 장시간 논의한 끝에 표결에 부쳤다. 개표도 한 그 결과는 비밀에 봉하고 기관지 기독신문 단독 속보를 참조하라는 친절한 안내와 그 결정은 9월 1일 발표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선관위 위원장 소강석 목사의 마음은 회의장 밖에까지 그의 큰 소리가 들리고 아리송한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두 후보가 경선을 통해 승부를 가르기를 바라는 묘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보랏빛 소(Purple Cow) 소강석 목사가 오가며 주재하던 선관위가 9월 1일 선관위 차기 전체회의에서 어떤 소를 몰고 올지 '장미의 이름'의 수도사 윌리엄처럼 사뭇 궁금하다. 언제부턴가 양심의 부재가 성공 조건이 되었다. 범법 사실이 드러나도, 권력과 명망이 있다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내빼거나 말로만 사과하면 끝난다. 수사나 감사도 받지 않고 증거는 인멸된다.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재수 없었네’ 하듯 총회 지도층에 포진한 스승과 제자 그리고 선배와 후배는 서로 위로하고 밀어주고 가려주고 끌어준다. 좋은 인맥이란 어떤 죄라도 덮어줄 든든한 뒷배가 생긴다는 뜻인가. 아드소는 스승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평생을 살았고 노년엔 그가 선물한 안경을 쓰고 회고록을 적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평생을 걸어온 발자취는 그 사람의 인생 전부다. 문제는 자신이 모르는 것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신앙의 진실과 본질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총회 정치꾼들의 당당한 태도가 문제다. 이런 태도가 비신앙주의와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수도사 윌리엄의 제자 아드소는 멜크의 수도원장의 심부름으로 이탈리아에 다시 가게 된다. 그런데 그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베네딕트 수도원을 다시 방문한다. 수도원 아래, 마을과 경작지는 황폐해져 있었고 웅장했던 수도원은 덩굴과 잡초가 우거진 폐허가 되어있었다. 아드소는 자갈을 헤집어 수십 년간 묻혔을 양피지 조각을 모으고, 남아 있는 탑 하나를 타고 거의 무너진 장서관에 올라간다. 그는 거기서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궤짝 하나를 건지고 하루종일 흙을 뒤져 유물 몇 점을 더 건진다. 그렇게 배낭 2개를 꽉 채워 멜크로 돌아간다. 아드소는 그 양피지 조각들을 어찌어찌 복원시키고 해석해 나갔다. 양피지엔 몇몇 인용문과 자투리 문장들밖에 남지 않았고 모아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으리라고 아드소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어쩐지 계속해서 그 문장들을 읽고 다닌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도저히 진리를 알아낼 수 없는 세상에 회의와 혼란을 느낀 아드소는 트레믈레의 베르나르(Bernard de Tremelay ~ 1153년)의 아주 긴 풍자시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을 총회선거관리위원장 소강석 목사의 축시처럼 읊으며 수기를 마무리한다. 예전의 장미는 그 이름일 뿐, 우리에겐 그 이름들만 남아 있을 뿐.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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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6
  • [더굳뉴스] 장봉생 목사 제56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발화
    장봉생 목사의 열정적인 인도로 합심기도가 근래 보기 드물게 뜨겁게 달아올라 1995년 ‘월간문예사조’로 등단한 시인 소강석은 ‘샘터’ 발간 9번째 시집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에서주님을 향한 사랑의 절절한 기도를 고백한다. “차마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 시라면 밤새 뒤척이는 달빛 그리움도 시라면... 눈물이 녹아서 시가 될 때 우리 시가 되면 만나요. 사랑의 시가 되어 만나요. 꽃잎은 바람에 흔들려도 바람을 사랑합니다... 밤이 깊어도 아침이 밝아도 꽃잎이 모두 저버려도 꽃잎은 바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꽃잎이 떨어집니다.” 그리고목사 소강석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각오를 다짐한다.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 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 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 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리라. 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 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 전국 목사와 장로들이 본당을 가득 채우고 열린 첫날 개회예배는 총회와 총신과 한기총 금권선거와 애물단지 부동산 총회 떠넘기기 대가, 그리고 한기총 전광훈의 변승우 이단 해제 앞잡이 길자연 아바타의 허공을 치는 허울 좋은 개살구 설교를 마쳤다. 그 뒤 서대문교회를 새문안교회에 버금가는 교회로 성장시키고 장래 총회장으로 빛날 장봉생 목사의 하나님의 도우심과 회개를 촉구하는 열정적인 인도로 합심기도가 근래 보기 드물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밤마다 울산 큰 바위 기도로 다져진배광식 목사(대암교회)가 총회의 새로운 치유와 목사 장로의 새로운 신앙의 각오를 부르짖었다. 총회 감사 대가 최병철 장로(중심교회)가 문제의 해결은 기도뿐이고 회개는 말씀이 뿌리라는 특별간구를 했다. 제56회 전국목사장로기도의 개회예배는 제99회 광주겨자씨교회 총회 명사회와 날카로운 판단으로 총회와 총신의 변화를 이끌어낸 대쪽 총회장백남선 목사 축도로 마쳤다. 교회와 사회에서 헌신적인 삶을 보여준 개인에게 수여하는 밀알상 수상자로 이춘복 목사(남현교회), 권순웅 목사(주다산교회) 등이 상장과 훈장을받았다.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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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6
  • [더굳뉴스] 총신대 학사학위 과정 내력
    황규학 박사(법학)는 통합 측 목사이자 인터넷 언론 '기독공보'의 탁월한 지적 논단을 주도하는 기독교계의 대표적 논객이다. 그가 5월 18일 다음과 같은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000의 학력검증과 학위 사칭 의혹 000은 총신대학교(B.A)가 아니라 총회신학교 졸업이라고 표기했어야 예장통합 교단에서 73-82회, 93-96회에서 이대위 활동을 13년간 해왔던 000의 학력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000은 자신에 대해서 총신대학교에서 B.A 학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빛과소금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000은 자신이 총신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최근 은퇴하면서 펴낸 책에서도 총신대학교(B.A):1969년 3월-1975년 2월 20일 졸업한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 000이 쓴 이력이 맞다면 그는 총신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고 학사학위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총신대학교는 1969년 12월 27일 대학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 3월부터 정식대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000은 1969년 3월에 총회신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1969년 3월에는 총신대학교가 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총회신학교였다. 총신대학교 연혁을 보면 1967년 6월 12일 문교부로부터 대학령에 준한 총회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총회신학교는 1969년 12월 27일이 되서야 총신대학교로 설립인가를 받는다. 1969년 12월 27일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대학인 총회신학대학 설립인가를 받다. (신학과 50명) 총신대학교 100년사에 의하면 총회신학교는 각종학교(各種學校; 정규학교가 담당하기 어려운 분야를 실시하는 학교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일종의 학교)로 인정을 받았지만 1959년 합동과 통합 교단이 갈라지면서 총회신학교는 무인가 신학교가 된다. 장로회신학교는 각종학교로 있다가 1961년 장로회신학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총신대는 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기까지 10년 동안 무인가 신학교로 있게 된다. 1967년 5월 4일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인가를 받게 된다. 학교법인 인가를 받은 후 한 달이 지나 1967년 6월 3일 문교부로부터 대학령에 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각종학교 인가를 받게 된 것이다. 총회신학교가 1969년 12년 27일 정식 대학교로서 승인될 때까지 학력만 인정하는 각종학교로서 존재하였다. 각종학교는 다른 대학 졸업생들과 같이 학력만 인정할 뿐 학사학위를 주지 않았다. 정규대학으로 승격될 때까지는 학사 학위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총회신학원 제13회 이사회의록에 의하면 1971년 4월 29일 회의에서 1968년, 1969년 입학한 학생들에 대해서 학력을 인정해 달라고 학력 승인 청원 건을 다루게 된다. 총신신학대학 정식인가 받기 전에 각종학교로 인정되었을 때 입학 되었던(1971년도에는 3, 4학년에 해당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력 인정승인을 받도록 문교부에 청원할 것을 고성훈 이사의 동의와 양재열 재청으로 제출할 것을 가결하다. 68, 69년에 입학한 학생들이 각종학교에 입학을 하였지만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71년 이사회에서 학력 인정 청원을 하게 된다. 71년까지 68, 69회에 입학한 사람들까지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 내용으로 보았을 때, 68, 69년에 입학하였던 학생들은 정식 총신대학교가 아닌 총회신학교 입학생으로서 71년까지 학력도 인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68, 69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각종학교에 입학하였지만 학력도 승인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력이 인정되었다면 총신 이사회는 71년에 학력 승인 청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상 최삼경은 1969년에 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총신대학교가 아니라 총회신학교를 졸업한 것이 맞고 총회신학교 출신자들에게는 학사학위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B.A(bachelor )라고 표기한 것은 학위 사칭일 수 있다. B.A(bachelor)의 의미는 학사학위 소지자를 말한다. 제13회 이사록의 내용에 의하면 1971년까지 68, 69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문교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000이 총신대학교에서 B.A를 받았다면 000이 학번을 공개하는 등 000이 학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제13회 이사록의 내용에 의하면 1971년까지 68, 69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전히 문교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000이 총신대학교에서 B.A를 받았다면 000이 학번을 공개하는 등 000이 학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만일 000이 정식대학을 나온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 교계는 학사학위도 없는 무인가 신학교 출신 목사에게 교리 적으로 농락당하였던 것이다. 이단감별사들은 대부분 신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조차 하나도 없다. 이 기사를 보고 총신대를 졸업한 나는 오정호 중심으로 매년 열리는 총신대 총동창회가 20여 명 모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동문이 더 많이 모이게 연락을 하라고 말했더니 개인정보비밀보호법을 내세우며 주간 기독신문 광고 공고면 된다고 뻗댄다. 동문 출신으로 여겨지는 대학부 교수들도 그 의견에 수긍하며 오정호랑 해외여행 다녀오기 바쁘다. 오정호는 총신 교수 동문 외에는 관심이 없는지 동문 활성화에 대해선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오정호도 교수들도 대학 학적에 대해 말 못 할 속내가 있는지 사뭇 궁금하다. 올해 설립 127년째인 뉴욕공립도서관(NYPL)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이다. 맨해튼 42번가 본관을 비롯해 뉴욕시 전역에 92개 분관이 있고 장서(藏書)와 디지털 자료는 5600만 점이 넘는다. NYPL 맨해튼 본관 앞에는 ‘라이브러리 웨이’라는 좁다란 길이 있다. 길바닥 동판에 책과 언론에 관한 위인들의 경구(警句)가 새겨져 있다. 그중 20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격언이 인상적이다. ‘진실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거짓은 꾸며내야 한다.’ 가짜와 선동이 판치는 이 세상에 진실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는 칼빈주의를 따르는 총신대와 총신 신학부를 거쳐 목사가 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경구라고 할 수 있겠다.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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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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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총회 임원 선거와 사마천이 살아남은 이유
    제108회 총회 임원 및 상비부장 후보 등록이 2023년 7월 3일(월) 오전 10시부터 총회회관에서 제108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 서기 허은 목사) 주관하에 진행됐다. 달아오르는 선거 열기와 장마를 앞둔 폭염도 달랠 겸 중국 굴기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년∼기원전 90년)이 전하는 서늘한 역사 한 토막을 살펴보자. 사마천이 죽음과 바꾸면서까지 완성하고자 했던 역사서가 바로 ‘사기(史記)’이다. 그 '사기' 가운데 실린 일화가 골계열전(滑稽列傳)인데 중앙집권 과정에 국가권력과 지방 토호 기득권과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볼 수도 있다. 혹은 전국시대 초기니 국가건설 중 계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 내용은 이렇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76년 또는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초기 최강국이었던 위(魏)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위나라 성세를 만든 위문후(魏文侯, ? ~ 재위 : 기원전 445년 ~ 기원전 396년)라는 군주가 있었는데 그는 인재를 사랑한 왕이었다. 그는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로 패국으로 만들었다. 그의 휘하에 서문표(西門豹, 산서성 윈청 시 샤현 출생)가 있었다. 위문후는 군사적 요충지 업(鄴) 땅에 서문표를 파견했다. 서문표가 부임해보니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성안이 한산하고 왕래하는 사람이 적었으며, 민심도 좋지 않았고 백성들 얼굴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서문표가 장로(長老)들을 불러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한 장로가 말했다. "강의 신 하백(河伯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압록강의 신인데 태양신 해밝이라고도 하며 중국 신화의 하백과 동일시된다)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업의 삼로(三老·관리)와 아전(하급 관리)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갑니다. 거둔 수백만 전 중에서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데 20만~30만 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 딸 중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으면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데려갑니다. 10여 일 뒤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을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무당들이 하백을 모신다며 해마다 마을의 딸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딸 가진 집들은 큰 무당 눈에 띌까 두려워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을 갔다. 갈수록 사람이 줄고 가난해지고 있었지만 무당들은 계속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서문표는 장로들에게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붓감을 바칠 때 나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소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나이든 어른)가 모두 모였고 구경하러 온 백성이 2천~3천여 명이었다. 두령 무당은 이미 일흔이 된 늙은 여자였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너라. 아름다운지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다.” 무당 제자들이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서문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무당과 삼로와 부로들에게 일렀다. “이렇게 못생겨서야 하백이 기뻐하겠소?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직접 하백에게 가서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보내드린다고 전하시오.” 곧바로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했지만 서문표는 개의치 않았다. “무당 할멈이 어째 오지 않고 이렇게 지체한단 말인가? 제자들이 대신 가서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군사를 시켜 제자인 새끼무당 하나를 강물에 던졌다. 조금 있다가 또 말했다. “제자란 무당도 어찌 이리 시간을 허비하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보내 하백에게 사정을 전하도록 하라!” 서문표가 입을 열 때마다 제자가 한 명씩 강으로 던져졌는데,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문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당과 제자들이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들께서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라”며 이번엔 삼로를 강물 속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들을 지목해 한 사람씩 강물에 던져버렸다. 겁에 질린 이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 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그 이후로 업 땅의 아전과 백성들은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붓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도망쳤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다란 사회모순과 백성의 고통 뒤에는 주동자와 가담자, 방관자가 있다는 과학에 가까운 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떨까. 지금 한국사회에는 귀신과 망자, 초자연적 존재의 권위를 빌어 권력을 얻고 횡포를 부리고 국민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무당이 단순히 점치고 치성 올리고 살풀이하는 개인 기복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김어준처럼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있을까, 없을까. 만약 귀신과 망자를 팔아 사람들을 속여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치에 개입하는 사이비 언론인들이 있고 그로 인해 사회가 병들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징에 목을 매면 늘 실제나 사실은 소외되고 귀신이나 괴담이 주인이 되면 산 사람들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태사공자서를 집필하던 도중, 사마천은 보병 5천으로 분전하다가 흉노족 8만에게 포위당해 항복한 장군 이릉(李陵)을 변호했고 이로 인해 한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사마천은 이릉은 선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해 모두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항복한 것이라고 변호하였다. 패전의 책임은 대장군인 이광리가 져야 했으나 이광리의 누이가 무제의 애첩이었다. 따라서 이릉에 대한 변호는 무제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 여겨진 것이다. 사마천은 이릉과는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단순히 견해를 피력했을 뿐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사마천의 변호는 무제의 미움을 샀고 옥에 갇히고 말았다. 무제는 옥에 갇힌 사마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때 사마천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첫째 돈 50만 전을 내고 서민으로 풀려나기, 둘째 사형, 셋째 궁형 셋 중 하나였다. 당시 50만 전은 병력 5천을 1년 동안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금이었는데 거부나 권세가가 아니었던 사마천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선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거세당하는 궁형을 받고 성불구자가 되었다. '태사공자서'(53만여 자의 한자로 저술된 사기의 총 130편 중 마지막 편으로 서문에 해당하며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것)에 의하면 궁형을 당했을 때 "이것이 나의 죄인가! 이것이 나의 죄인가! 내 몸이 훼손되어 쓸모가 없어졌구나!"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기원전 97년 마흔아홉의 사형수 신분이 된 사마천이 사형보다 더 치욕스럽다는 궁형을 자청한 까닭은 미처 못다 한 말, 즉 평생을 준비해 온 역사서를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을 확률 20%에 도전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하늘조차 그를 데려가지 못했다. 이듬해 지천명 오십의 사내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그에게 씌워졌던 반역죄가 무고였음이 밝혀졌다. 세상에 이런 억울함도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억울함과 울분을 마지막 남은 일, 역사서를 쓰는 일에 쏟았다. 기원전 90년, 그의 나이 55세 무렵 역사서 '사기(史記)’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본래 사마천 자신이 붙인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사공기'(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태사공기'의 약칭인 '사기'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오래전에 보내온 친구 임안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썼다. 역사서에다가는 밝힐 수 없었던 궁형을 전후로 한 자신의 심경, 역사서를 끝내야만 했던 까닭,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의견, 생각 등을 격정적으로 밝혔다. 이 글이 중국 10대 문장의 하나로 꼽는 ‘보임안서’이다. 그 글에서 그는 토로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궁형을 선택하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다. 거세의 치욕을 견디며 사마천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직 하나,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하는 것”(‘사기’, ‘태사공자서’)이었다. 지난 107년에 이르는 총회선거 ‘기본’은 언제나 총회와 노회의 향상이었다. 총회 선거 입후보 등록 첫날인 2023년 7월 3일 오전 10시 55분경 부총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서대전노회)가 제108회 총회 총회장 후보로 등록했다. 이어서 부서기 김한욱 목사(새안양교회·소래노회)가 서기 후보, 전승덕이 회록서기 후보로 등록했다. 목사부총회장 경선 후보로는 음악 전공 김종혁과 남태섭 목사(대구서부교회·대구노회)가 등록했다. 장로부총회장 경선 후보로는 서업 눈이 밝은 김영구와 와병 중의 목사를 섬기며 교회를 성장시킨 이이복 장로(성남제일교회·성남노회)가 등록을 마쳤다. 총회 총무 경선 후보로 단임 총무로 끝내겠다 장담한 박용규와 재임 의지의 고영기 목사(상암월드교회·평양노회)가 등록했다. 부서기 경선 후보로 최인수 목사(수산중앙교회·경상노회)와 임병재가 등록했다. 부회록서기 경선 후보로 육수복 목사(전곡충현교회·강북노회)와 김종철 목사(큰빛교회·용천노회)가 등록했다. 부회계 경선 후보로 임성원 장로와 이민호 장로가 등록했다. 이날 임원 입후보 후보 등록에는 소속 노회와 총신신대원 동기생,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그와 달리 부회록서기 경선 후보 김종철 목사만은 총회 공명선거 표본이라도 되려는 듯 조용하고 조촐했다. 이제 총회 역사 108년째를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안과 혼돈을 벗어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의 충분함을 알아차리는 연륜 깊은 믿음이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 밀려오는 만족감은 닫힌 세계가 약속하는 ‘사색’의 만족감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충분함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다. 무엇이든 쏟아지는 시대의 처방은 믿는 것이며, 그 답은 넓이가 아닌 깊이에 있다. 괴담과 사투 벌였던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상식과 과학의 힘으로 바로잡았다. 진리와 진실은 외롭지만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성경은 절대적인 답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3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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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3
  • [더굳뉴스] 오정현 목사의 출발점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세상의 헌법이 믿음의 자유를 규정하고 밝혀 그래서 주님께서 진리이신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의 말씀 안에 계속 있으면 그들은 경험적으로 그 진리를 알 것이고 그 진리가 그들을 영적으로 자유롭게 할 것 세계에서 가장 잘 세운 교회 아주 잘 생긴 목사 오정현 다시 해가 뜨면 사랑의교회 법이 아닌 사랑과 믿음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라 만차의 비범한 기사 돈 키호테는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계명성을 든 거인으로 알고 향해 돌진했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자(기사의 무기를 들어주고 시중을 드는) 산초 판사는 풍차를 향해 질주할 때 소리를 질러 주인을 말렸다. 하인이 주인보다 현실적이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봄비가 산과 거리를 적시는 4월 22일 주일 오후 2시 20분 경 사랑의교회 건너편 서초역 출구를 나서자 주일예배 참여 교인들이 가로수들처럼 초록으로 오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대한민국 헌법의 조항이다. 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헌법 제20조는 정교분리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국가기관인 대법원도 헌법 위에 있는 기관이 아닌 이상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다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해야 할 법원의 특성상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소송이 교회의 믿음과 예배 등의 고유영역에 관한 것일 때는 교회의 결정에 맡기고 법원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그간의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항을 지지하는 다음과 같은 판례를 행했다. “종교활동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에 의하여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그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국가기관이 법원은 종교단체 내부관계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그것이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그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당해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다32386 판결) “‘교단의 자율권’과 ‘교단의 내부관계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법원에 의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3다78990 판결) 어릴 적 종점은 멀고 늦어서 자주 황량하고 외로웠다. 나는 정류장에서 내려 또 산동네 후미진 골목을 더 올라가야 했다. 점점 가난해져서 늘 비가 새고 가난하기만 했던 곳. 내 집은 왜 이런 곳에 있나 하곤 했다. 할 말은 무수히 많지만 단 하나의 대답이 없는 나의 집. 나의 삶. 동행은 없어도 그 밤길에 아직 꼬리 흔드는 개 한 마리쯤 기다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종점은 그저 끝이 아니다. 해가 뜨면 그곳이 바로 출발점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잘 세운 교회의 아주 잘 생긴 담임목사 오정현에게도 다시 해가 뜨면 사랑의교회 그곳이 법이 아닌 사랑과 믿음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세상의 헌법이 믿음의 자유를 규정하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진리이신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그의 말씀 안에 계속 있으면 그들은 경험적으로(experimentally) 그 진리를 알 것이고 그 진리가 그들을 영적으로(spiritually)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요한복음 8:32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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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 [더굳뉴스] 김종철 위원장 제주선교센터 성전 또는 성막
    에티오피아의 前 마라토너이며 아프리카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및 마라톤 최초 1968년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2연패 한 아베베(1932년 8월 7일 ~ 1973년 10월 25일)는 이듬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직 두 팔이 있다”라며 털고 일어나 장애인 대회에 나갔다. 주변에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선 비결을 묻자 그는 “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과 싸울 뿐”이라고 했다. 건축은 사람이 가는 모든 공간을 커버하며 크게는 우주 속 건축부터 작게는 가구까지 여러 스케일(scale; 길이의 비례관계를 나타내는데 건축물의 복잡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범주)로 경험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도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기 위해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막번 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 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 총칭)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믿고 전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믿음의 사고, 건축 말씀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이 제주도라는 지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주선교센터 건축에 적용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건물 크기가 아니라 성경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때 우리 의사 결정의 공간 크기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대치동 총회에 갇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나라를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생각하고 있는가. 제주선교센터 건립은 제주선교 100주년이 되는 2008년부터 추진됐다. 이에 따라 총회는 제94회 총회결의로 2010년 1월에 부지를 매입했으나 건축비 문제 등으로 제주선교센터 건립을 10년 넘게 추진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106회 총회는 제주선교센터 부지 매각을 결의해 제주선교센터 건립 계획이 총회에 각종 기금 모금 절약에 기여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 제107회 총회는 2023년 4월 18일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소재 선교센터 부지에서 예배를 드리고 본격적으로 건립에 나섰다.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총회세계선교회(GMS)와 총신신대원 총동창회, 제주노회·제주수양관건립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를 구성하고 총회 산하 특별위원회도 조직했다. 그리고 2023년 9월 다음 제108회 총회가 시작되기 이전 선교센터를 착공할 계획도 다부지게 세웠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2023년 4월 24일 순복음 측 국민일보는 이런 친절한 기사까지 내보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선교센터 부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남조로와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7980㎡(2413평) 넓이의 부지에 총면적 992㎡(300평) 규모로 지어질 선교센터에는 GMS 선교훈련원과 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 카페 등이 들어선다. 예장합동은 선교센터 옆에 20채의 타운하우스 건립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검토에 걸려 좌초하고 말았다.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답보 상태의 난제 제주선교센터 건립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했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다시 돌아온)의 제108회 총회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를 제주선교센터 건립 위원장 후보로 내세웠다. 2024년 7월 25일 오후 2시 회의에 앞서 드린 1부 예배에서 김종철 목사의 사회로 총회 부회계 이민호 장로가 기도하고 김종철 목사가 본문 느 6:15-16을 봉독했다. 성벽 역사가 오십이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어서 김종철 목사가 '52일 만에 끝난 성벽 공사'란 제목으로 제주선교센터 건립 비전을 암시하는 말씀을 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해하는 세력도 많고 힘들었지만 한 손에는 병기를, 다른 한 손에는 건축 도구를 들고 성벽 공사를 52일 만에 신속히 마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번 일을 진행케 하시고 마치게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어서 제주선교센터건립 관련 임원으로 위원장 김종철 목사, 총무 박용규, 서기 김경태 목사, 회계 이민호 장로 등의 조직을 갖추고 건립 안건을 논의했다. 위원장 김종철 목사는 소신을 밝혔다. “신일교회 부지 매각 건은 저와 김경태 목사에게 맡겨 처리하게 해 주십시요. 이후 모든 건축과 관련된 진행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서기 김경태 목사는 말했다. “제주선교센터가 건립된다면 제주선교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제주노회도 감귤프로젝트 등을 펼쳐 이 사업이 이뤄지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차기 회의는 8월 6일 제주에서 갖기로 했다. 성막은 히브리어 성경(구약성서)에 묘사된 이동 가능한 성소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상세한 지시에 따라 건축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예배의 중심 장소였다. 성막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성막은 길이가 약 45.6m(100규빗), 너비가 약 22.8m(50규빗)인 뜰 가운데 세워졌고, 뜰 사면은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이 휘장은 청동으로 만든 기둥 60개로 지탱되었다(출 27:9-19). 뜰(마당) 안에는 번제를 위한 큰 제단이 있었고(출 27:1-8), 제사장들이 제사를 위하여 자기 몸과 제물을 씻는 청동 물두멍이 있었다(출 30:17-21). 뜰의 서쪽 끝에 세워진 성막의 성소는 목재 구조로 길이 약 14m(너비 1규빗 반의 판자 20개) 너비 약 4m(1규빗 반 되는 판자 6개를 나란히 놓은 폭)였으며 두꺼운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였다(출 26:15-30). 성소 지붕은 제일 안쪽(덮개)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 모양의 자수를 놓은 휘장으로 덮혀 있었고(출 26:1-6) 그 바로 위에는 보온을 위해 염소 털 휘장이(출 26:7-13), 또 그 위에는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이(출 26:14), 그리고 제일 바깥에는 방수를 위해 해달의 가죽(출 26:14)이 덮힌 4중 지붕 구조였다. 또 성소 내부에는 휘장 오른편에 진설 병상, 휘장 왼편에 금 등대, 그리고 휘장 바로 앞 가운데 분향 단이 놓여 있었다(출 25장). 또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오직 언약궤만 있었다. 십계명 돌판이 든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 40년 광야 생활의 기념과 상징이 된다.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하던 애굽(이집트)을 벗어나 성막을 앞세우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약 40년간 광야를 유랑했던 역사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총인구는 20세 이상 장정의 숫자가 약 60만 명이었다는 성경의 기록을 참고할 때, 최소 20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모세는 광야 생활의 여정을 네 권의 성경(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했다. 광야 생활의 역사 속에는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이 담겨 있다.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언약이 담긴 성막이 가면 가고 멈추면 멈췄다는 것이다. 솔로몬 성전도 그 의미가 신성한 것은 그 성전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언약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막과 성전에는 차이점이 있고 공통점이 있다. 먼저 차이점은 성막은 유지 보수가 간결하면서 이동하지만 성전은 유지 보수가 엄청나고 이동할 수 없다. 공통점은 둘 다 언약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주선교센터는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의 중심이 된 유지 보수가 간결한 성막과 언약궤를 체험하는 기념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교단 교인들이 그 광야 생활을 체험하는 기념관과 훈련원의 기능을 하는 유지 관리비가 적게 드는 간소하면서 효율적인 시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상동동과 양지에 캠퍼스를 둔 총신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관리인의 숙소와 넉넉한 세면 시설과 십계명과 말씀이 새겨진 돌기둥들이 신자들의 광야 생활에 요한 천막의 벽과 기둥 역할을 수행했으면 한다. 제주도 선교센터는 우람한 건물과 편의시설이 아니라 성막 정도 크기의 건물 관리를 통해 교단 신자들의 광야 생활을 체험하는 안내소가 되었으면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1-3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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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31
  • [더굳뉴스] 배광식 목사의 목마름
    증경총회장 울산 큰 바위 배광식 목사 "영혼 사모함 없는 사역이나 신앙공동체 존재가치 없어“ 제107회 총회장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를 배출한 평서노회(초대 노회장: 송인서 목사)는 1922년 2월 2일 평안남도 진남포 비석리교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조직된 평남노회가 크게 부흥해 평서노회, 평양노회, 안주노회로 분립하게 됐고 이 결정에 따라 평서노회는 평안남도 강서군, 용강군, 그리고 대동군 일부를 지역으로 삼았다. 이후 전도와 교육운동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평서노회는 1950년 6·25전쟁으로 다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피난을 했으며 이후 1952년 4월 5일 월남한 10여 명을 중심으로 부산 영락교회에서 제48회 정기회를 개최해 명맥을 계승했다. 서북지역노회협의회가 제34회 정기총회를 2022년 4월 29일 예수사랑교회(김진하 목사)에서 열고, 신임 대표회장에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를 선출했다. 김진하 목사는 말했다. “선배들이 귀하게 다져놓은 서북의 기초 위에서 서북을 보다 귀하게 세워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연합활동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협의회 소속 40여 노회 모두가 힘을 모아주십시오.” 2023년 3월 23일 광진중앙교회에서 창립 예배를 드린 영남서북교직자협의회는 2024년 4월 18일 경산시 사동 소재 The 드림교회(권기식 목사)에서 제2회 정기총회를 열었다. 상임회장 권기식 목사 사회로 드린 1부 예배는 이승호 목사(새창성교회) 기도, 증경총회장 배광식 목사의 본문 요한복음 19:38 "목마름" 제하의 말씀 증거, 그리고 상임지도위원 강태구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배광식 목사는 외쳤다. "영혼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사역이나 신앙공동체는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대표회장으로 선출된 이왕욱 목사(나눔의교회)는 취임 인사말을 전했다.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우리가 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가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번 행사에는 발전 도상에 선 대신대학교를 이끄는 총장 최대해 목사, 김영우의 총신 사태를 종결시킨 상임고문 허활민 목사 등 각 지역협의회 회장과 교단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축하와 격려를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28-30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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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4
  • [더굳뉴스] 고광석 목사의 합동 포럼 의의
    말(言)은 꽃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전쟁 무기처럼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우연이 아니다. 거짓말은 사람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는 위험물이기 때문이다. 말의 힘에 일찍 눈뜬 서양 사람들은 말을 잘 쓰면 집을 따듯하게 덥히지만 잘못 다루면 집을 태우는 불(火)같은 존재로 인식했다. 그런 위험물을 제법 잘 다룬 서양인들은 수사학을 지렛대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일구었고 말을 통해 민주주의를 꽃피웠으며 논쟁의 규칙을 세워 갈등 해결의 도구로 삼았다.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저명한 기업인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정치인 등이 모여 세계 경제를 토론하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이다. 독립적 비영리재단 형태로 운영되며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주 콜로니(Cologny)에 위치한다.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유엔 비정부 자문기구로 성장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나 서방 선진 7개국(G7) 회담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71년 1월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가 창설한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으로 출발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첫 회의에 4백 명의 유럽 경영인들이 참가하였다. 1973년부터 참석 대상을 전 세계로 확장하였고 1974년 1월부터 정치인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1976년 회원 기준을 '세계의 천 개 선도 기업'으로 설정하였다. 1987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1년부터 매년 1월에서 2월 사이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에 위치하는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렸기 때문에 '다보스 포럼'으로도 불린다. 이 '세계경제포럼'의 사명은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 상황 개선을 위해 각국의 사업을 연결하여 지역 사회의 산업 의제를 결정한다. 또한 세계 각국의 정상, 장관, 국제기구 수장, 재계 및 금융계 최고 경영자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 경제 발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다. 분열된 세계에서 공동의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출발한 합동포럼(대표회장 배만석 목사)이 2023년 4월 20일 오전 10시 30분 대전 판암교회(홍성현 목사)에서 4월 정책 워크숍(workshop)을 가졌다. 합동포럼 서기 권희찬 목사가 개회 기도를 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믿음의 동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합동포럼 정기 워크숍을 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올립니다. 종들이 드리는 예배를 우리 하나님 홀로 받으시고 영광을 거두어 주옵소서.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38장 찬송 후 박정권 목사(중앙위원)가 기도했다. 설교 본문은 여호수아 9장 15절이었다.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충실합시다’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캐나다 총리 중에 20대 총리(1993 ~ 2003) 장 크레티앵(Jean Chretien, 1934년 1월 11일~)이 있습니다. 안면장해 장애인으로 태어나 입이 비틀어졌습니다.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결점이죠. 정치인 모임에서 연설을 하는데 상대편 후보가 ‘한 나라의 대표가 이렇게 말이 어눌해서 되느냐’고 공격했습니다. 그의 약점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입이 비틀어져서 말이 어눌하지만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공동회장 5인 가운데 3인 하재호 목사와 김용제 목사 등이 특별기도했다. 지도위원 김상현 목사가 격려사를 했다. “이렇게 좋은 모임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어 감사드리고 총회와 교회 성장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합동포럼이 되기를 바라고 회원들 간에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모든 사람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격려합니다.” 총회 서기 고광석 목사가 상임회장으로서 의미 있는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 안에 목사님, 장로님들 조직이 많습니다. 열심히 하신 분들은 두세 개씩, 업으로 삼으신 분들은 열 개씩 되더군요. (일동 웃음) 많은 모임이 있는데 우리 합동포럼이 두 가지 면에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는 (총회 선거) 후보자들 주머니를 털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정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모이는 모임이 몇 안 되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합동포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쉽다면 우리 합동포럼이 난상토론을 해 어떤 정책의 함의(含意)가 되면 총회 현장 또는 총회 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통해서 실제화 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겠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저희가 선거제도랄지 여러 가지 토론도 많이 하고 기독신문과 여러 언론에 홍보도 많이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총회 현장에 올라갔으면 말이 있어야 하는데 안 합니다. 그래서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오늘 순서지를 보니까 ’대회제 도입 등 자유토론‘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부간에 총회에 가장 현실적이고 필요한 정책이 채택되면 오늘 보니 부총회장 후보도 계시고 총무 후보를 비롯해 다 오신 것 같으니까 이런 좋은 대안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어떤 친교 또는 정치적인 어떤 집단이 아니라 총회를 사랑하는 정책 집단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의미에서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오신 여러분께 참 감사하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뜨거운 박수)” 상임총무 주진만 목사의 광고 후 이어진 2부 대회제 도입에 관한 정책토론이 오종영 목사 사회로 진행되기 전 후보자들의 짧은 소개와 인사 시간이 있었다. 그 뒤 대회제에 관한 정책토론에서 총회 서기 고광석 목사가 총회 현황을 자세히 소개했다. 질의시간에 부총회장 후보 이이복 장로가 정곡을 찔렀다. “대회제를 실시한다는 원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와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진실이란 늘 두렵고 어렵고 복잡하다. 그러나 상식의 맑은 눈으로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듯 대중의 상식은 진실 그 자체보다 힘이 셀 때가 종종 있다. 과학 수사도 없던 시절, 오로지 대중의 건전한 상식에 기대 숱한 사건의 진실을 가려낸 기원전 시민 법정이 오늘날 법정의 배심원제로 이어져 정의 구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상식에 호소하는 시민 법정에서는 대개 두 가지가 설득에 주효했다. 그중 첫째 설득 기제는 ‘사실 같은 설득’쯤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에이코스(eikos)’다. 히스파니아 출신으로 로마제국의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 35? ~ 100?)가 든 예를 보자면 가령 ‘오늘 건강하게 살아있는 사람은 내일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식의 지극히 평범한 상식 세계를 뜻한다. 그는 후에 교육 실천가로서 수사학교에서 20년간 웅변술을 강의하고 이로 인해 당시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T. F. Vespasianus, 9-79)의 신임을 얻어 웅변술 교수의 칭호를 받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로마 최초의 공교사(公敎師)가 되었다. 둘째 설득 기제는 ‘윤리적 설득’쯤으로 번역되는 ‘에토스(ethos)’다. 정부나 총회 발표가 신뢰, 존경, 전문성, 윤리 같은 덕목을 지녔느냐가 설득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죽은 자와 산 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명연설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빼놓을 수 없다. 남북전쟁 당시 전몰 용사가 묻힌 게티즈버그 묘지에서 링컨은 전사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유의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나갈 것을, 그리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국가의 영속성이란 이렇게 죽은 자의 희생 위에 산 자의 헌신이 보태져야 가능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과거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거나 부수는데 죽은 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없던 사실도 만들어내고 있던 사실도 부정한다. 역사 교과서를 맘대로 기술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 과거가 불리하면 왜곡하고 과거가 이득이 된다면 부모도 바꿔치기할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의 효용 가치를 아는 그들이니 문화 전선에서 빼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4-47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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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2
  • [더굳뉴스] 황규철 목사의 여정(旅程)
    2011년 9월 21일 오후 제96회 총회 사흘째인 총회임원회(총회장:이기창 목사)는 총무선출 건을 상정하여 권순직 황규철 강태구 이기택 김창수 목사 등 5명의 등록자를 모두 후보로 받았다. 이어 총대들이 직접선거를 실시, 황규철 목사(평동노회)가 360표로 1위를 차지하여 제11대 총회 총무에 당선됐다. 권순직 목사 291표, 강태구 목사 286표, 이기택 목사 219표, 김창수 목사 134표를 획득했다. 한편 황규철 목사는 “총회장을 비서실장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며 돕겠다”며 “교단의 정체성 회복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에 임했다가 낙선한 동료 목사들의 몫까지 책임지고 열심히 총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2012년 9월 17일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인해 장대비가 쉴 새 없이 퍼붓는 악천후 속에 가장 먼저 제97회 총회 장소에 도착한 이들은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대형버스 4대에서 내린 이들은 오전 10시 무렵 이미 회의 장소인 대구성명교회 비전센터는 물론, 교육관 안팎을 철저히 둘러쌌다. 이들은 출입증이 발부된 총대들 외에는 비전센터 출입을 철저히 봉쇄해 미처 출입증을 발부받지 못한 일부 총대들과 방청객, 교계 기자들과 교계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언쟁과 몸싸움을 벌였다. 가뜩이나 총회에 앞서 총회총무의 도덕성 시비와 총회장 후보의 노래방 출입 의혹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총대들은 현장에서 용역들의 삼엄한 경비를 보면서 첫날 개회가 되자마자 이의를 제기했다. 오정호 목사는 “교단 설립 100주년을 맞는 총회에 용역을 동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용역을 즉각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 총대들의 항의가 점점 거세지자 총무 황규철 목사는 “총무인 저를 위협하는 일들이 최근 총회회관 등에서 벌어져 질서 유지 차원에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응수했다. 이 과정에서 황 총무는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가스총을 허리춤에서 꺼내 천장과 총대 석을 향해 겨누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총대들은 총무의 부적절한 행동에 격분하며 이를 성토했으며 총무와 흠석사찰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2013년 9월 26일 저녁 회무시간에 드디어 정준모 총회장과 황규철 총무 관련 헌의안이 상정됐다.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는 먼저 총무 해임에 대한 찬반토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민 오정호 장봉생 목사와 심요섭 장로 등은 황규철 총무 해임 및 자진사퇴의 당위성에 대한 발언을, 박석구 이형만 김응선 목사는 총무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또 전대웅 이호현 목사와 박정하 장로는 총회 화합을 위해 총무를 용서하자는 주장을 했다. 해임 투표보다 자진사퇴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이호현 목사는 “총무 본인이 사임하겠다는 말을 했다. 모든 발언을 중지하고 (총무 해임을) 총무와 임원에게 맡겨서 진행하도록 동의한다”고 발언했다. 총대들은 “아니요”를 강하게 외쳤지만, 재청에 이어 결의를 알리는 고퇴가 두드려졌다. 총대들의 항의는 강력했다. 총대들은 총회 현장에서 총무 해임 투표를 해야 한다며 “투표, 투표”를 연이어 외쳤다. 단상 앞으로 달려가 안명환 총회장에게 다시 재론하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번 결의한 것은 재론할 수 없다는 반론이 되돌아 왔다. 2014년 9월 17일 용산역 회의실에서 제98회 총회 임원회(총회장:안명환 목사)는 회기 마지막 회의를 갖고 황규철 총무 거취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임원들은 황 총무를 차기 총무후보에서 사실상 제외하고, 퇴임 예우를 총회유지재단 이사회에 일임키로 결의했다. 황 총무 거취가 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됨에 따라 오는 제99회 총회 총무 선거는 황 총무를 제외한 4명의 후보들이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차기 총무는 영남 인사들의 경쟁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현재 총무에 입후보한 자는 이기택 목사(구미노회) 김창수 목사(부산노회) 문찬수 목사(경신노회) 서광호 목사(경남동노회) 등이다. 2015년 4월 14일 평동노회는 울산에서 서울의 수도중앙교회로 옮겨 제151회 정기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40여년의 부흥사와 소리 소문 없이 28년의 총회 총대 경력을 지닌 장대영 목사를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추대했다. 평동노회에서도 김만규 목사와 노회 주도권을 위한 오랜 경쟁을 이겨낸 황규철 목사(전 총회총무, 예인교회)가 부총회장 후보 추천을 신청했으나 사퇴했다. 그러나 말년의 야곱 같은 달관의 표정으로 변한 전 총회총무 황규철 목사는 잘 다듬어 보기 좋은 구레나룻을 날리며 건강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평동노회를 위해 노회장에 추대됐다. 부노회장은 김춘식 목사가 됐다. 9월 14일 오후 2시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제100회 총회 개회예배를 드렸다.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사회로 개회한 예배에서 부총회장 이호영 장로가 “총회 안의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는 대화합의 총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어서 백남선 목사가 서기 권재호 목사가 봉독한 마태복음 27:27-29을 본문으로 “은혜로운 총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오후 4시 회무처리 때 천서검사위원회 위원장 권재호 목사의 보고에서 평동노회 문제가 불거졌다. 권재호 목사는 보고를 통해 울산남교회 재판건과 관련하여 천서제한 사항이 담긴 제99회 총회재판국의 예심판결이 있었다면서 평동노회 천서문제를 본회에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심판결이란 말 그대로 예비로 심판을 한다는 것인데 총회재판에만 적용되는 제도이다. 권징조례 제138조에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있고, 제141조 '총회는 재판국의 판결을 검사하여 채용하거나 환부하거나'라고 되어 있다. 이때 총회가 재판국 판결에 대하여 검사하지 않거나 검사할지라도 변경이 없으면 총회 폐회 때부터 그 판결은 확정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총회의 지혜자 박춘근 목사는 말했다. “평동노회 문제에 대해 총회가 해석권을 가지고 정치 12장 5조 4항(어느 교회에서든지 교회 재산에 대하여 쟁론이 있어 노회가 결정한 후 총회에 상고하면 이것을 접수하여 판결한다)에 대해 해석을 했습니다.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예심판결은 임시 중지할 수 있으나 본회 서기가 요청 후 시행하기로 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임시 중지가 되어 있습니다. 서기를 통해 천서가 되었는데 중지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심의분과위원회에서 몰랐다면 모르지만 서기가 좀 더 지혜롭게 생각해 처리를 해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천서위원회로 넘어와 이 문제가 재론되어 그 문제가 여기까지 왔으니 당사자 장대영 목사는 부총회장 후보에 등록도 하고 여러 가지 홍보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런다면 이게 전부 선관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법이나 정치 논리가 아닙니다. 법의 원리를 따라서 해야 질서가 잡힙니다. 선관위가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어쨌든 천서가 임시 중지된 노회의 회원권도 안 되는데 어떻게 출마를 합니까. 만약에 이 예심판결이 총회에서 확정이 되어 버리고 부총회장 후보가 선거에서 부총회장에 당선이 된다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법리적인 문제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심판결이 끝날 때까지 정지가 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예심판결은 이미 서기한테도 보고가 되었고 천서위원회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총대들이 법대로 잘 처리를 해 주셔야 합니다.” 박춘근 목사의 해석은 황규철 목사의 여정에 종말의 쐐기를 박았다.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평동노회 천서 여부를 손을 들어 결정하려고 할 때 긴 수염의 황규철 목사가 발언대에 섰다. 총대 회중석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가부를 물으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백남선 총회장이 황규철 목사의 발언을 허락했다. 그는 달변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총대들은 야유와 냉소를 보냈다. 백남선 목사가 평동노회 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거수를 먼저 제안했다. 손을 든 총대는 몇 안 됐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거수를 제안했다. 총대들 거의 전부가 손을 들었다. 총회장은 평동노회 천서 안 하기로 가결됐다며 고퇴를 두드렸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서기 권재호 목사의 천서 보고가 이어졌다. 그때 총대석 뒤에서 말없이 보낸 총대 경력 30여년 만에 한마디 하기 위해서 부총회장 출마를 했다는 장대영 목사의 작은 몸에서 당찬 항의의 외침이 들렸다. “똑바로 해! 이게 뭐야!” 10월 6일 오후 3시 총회회관 로비에서 이 시대의 예언자 김화경 목사(교회공익실천협의회 대표)가 평동노회의 여러 문제의 중심에 있는 전 총회총무 황규철 목사에 대해 기자회견을 했다. 로비에는 기자들과 걱정스러운 눈빛의 총회 직원들과 평동노회 시벌을 받은 박석구 목사가 로비의 끝 방에 있었다. 예언의 핵심은 예의 황규철 목사의 전문 분야 부동산 편취(騙取) 문제였다. 2008년 평동노회 말뚝 총무 시절 황규철 목사가 교회 소개비 명목으로 어느 목사에게서 당시 시가 3억 상당의 충남 서산 소재 부동산을 이전해 주었는데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돌려주어야 한다는 등등에 관한 기자회견이었다. 10월 8일 저녁 황규철 목사는 상복을 입고 ‘광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몸의 앞뒤에 두 장의 광고판을 달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샌드위치맨 스타일로 일산 임마누엘교회(신현필 목사)에서 자신에 대한 고발에 억울하다며 1인 상복 시위를 가졌다. 10월 12일 평동노회는 일산 새중앙교회에서 열린 가을 노회에서 황규철 목사의 96회, 97회 총회에서의 총회상대 재판패소 문제 및 부패 비리로 인한 노회장 자격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이에 대해 황규철 목사는 노회장 사표를 내고 노회는 이의 수리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목사 안수식 이후에는 황규철 목사와 신현필 목사는 모두 상대를 향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거세게 충돌했다. 평동노회에서 황 목사의 퇴출이 공론화된 단초는 황 목사가 지난 8월 노회장 사표 제출 건이었다. 12일 일산 새중앙교회당에서 소집된 제152회 정기회에서 황 목사가 비상 정회를 선포하자 부노회장을 임시의장으로 세워 회무를 진행하면서 노회 의사록에 기록된 노회장 사표 건을 투표로 처리했다. 황 목사는 자신의 사표를 철회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회 의사 자료에 기록된 근거에 따라 노회원들은 사표수리 찬성 60명, 반대 2명, 기권1명으로 노회장 사표를 수리했다. 평동노회원들은 노회에 사표를 제출한 황규철 목사가 사회권이 없으므로 사회자 석에서 내려올 것을 요구하고 거세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황규철 목사는 비상정회를 선포했으나 노회원들은 황규철 목사가 내려올 것을 요구하며 충돌이 벌어졌다. 또한 황규철 목사는 비상정회가 되었으므로 퇴장한다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격분한 노회원이 물을 뿌리는 등 심한 충돌이 빚어졌다. 저녁 식사 후 속회된 평동노회는 애초에 노회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사표 처리에 대한 동의와 재청이 있는 가운데 목사안수식 이후 속회도 되지 않은 채 선포된 비상정회는 원인무효임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속회한 이후 황규철 목사의 사표를 수리하고 부노회장 이석우목사를 노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하고 제152회 노회를 계속했다. 노회에서는 신현필목사가 제출한 고소장을 근거로 재판국을 조직하고 법적 절차와 노회의 이익이 손상되지 않는 방향에서 재판을 진행해 최종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황규철 목사는 향후 면직 출교가 전망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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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0
  • [더굳뉴스] 김종준 제104회 총회장 총회 회복 열망
    그리스 신화에서 칼은 종종 시간과 동의어다. 질적인 시간의 신 카이로스도, 양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도 모두 칼과 낫을 들고 있다. 그만큼 시간에는 거부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한이나 마감 시간이 ‘데드라인’(Deadline)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2019년 7월 9일 오전 11시 20분 동한서노회(노회장 채종성 목사)는 꽃동산교회에서 제75회기 1차 임시노회를 열었다. 제1부 개회예배에서 본문 사도행전 13:21-23에 노회장 채종성 목사가 ‘내 마음에 맞는 사람’ 설교를 열정적으로 전했다. 증경노회장 박병호 목사의 축도 후 제2부 회무 처리에서 현 목사부총회장인 김종준 목사를 제104회 총회장 후보로 만장일치 추대했다. 결코 변함이 없는 김종준 목사는 힘 있는 어조로 추대의 소견을 밝혔다. “부족한 사람을 우리 동한서노회에서 제104회 총회장 후보로 만장일치 추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오늘 노회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총회장이 된다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총회장이 되어서 총회 위상과 거룩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총회장이 되겠습니다. (강일구 목사 아멘 할렐루야) 다음 세대가 무너졌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총회 차원의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서 다음 세대 부흥을 일으킬 수 있고 회복시킬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영성이 고갈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인본적인 사상과 바리새인들이 득실거리는 그런 교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들과 성도들의 영성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영성 회복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강일구 아멘 할렐루야) 더 나아가 지금 한국교계가 여러 가지 어두운 영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말씀의 영풍을 일으켜 강단을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신이 무너졌습니다.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국가 임시 관선 이사가 파송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무너진 총신을 세우고 회복하는데 힘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뜨거운 박수)” 2019년 제104회 총회 부총회장으로 단독 추대 받은 시인 소강석 목사가 2018년 10월 13일 제103회 총회 김종준 목사 부총회장 당선 감사예배에서 그의 장엄한 서사(敍事)의 축시로 김종준 목사의 지난했던 믿음의 삶과 투혼의 소명을 노래했다. 타오르는 투혼, 꿈과 사랑의 이름이여! 남도의 가장자리 무안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지만...소년은 그 십자가 하나 가슴에 품고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시련의 폭풍에 맞서고 거센 눈보라를 헤치며 홀로 서기에 처참하도록 도전했습니다. ... 오히려 자신의 삶을 다음세대를 위해 바치기를 결단을 하고사당동의 선지동산에 문을 두드린 후침체와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선 한국교회의 비탈길에서 한국어린이교육선교회라는 눈부신 꽃을 피웠고미래의 영토에 꽃씨를 뿌리는 꽃동산교회의 목회자로 우뚝 서게 되었으니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의 손길이 아니었으리요. ... 김종준 부총회장님이여, 그 붉은 심장이여, 뜨거운 눈물이여우리의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님의 새벽 발걸음 소리여우리 총회의 봄의 서판에 성령의 불꽃으로 새겨질 타오르는 투혼이여별빛처럼 빛나게 될 꿈과 사랑, 그대 이름이여. 이 시대의 기인 소강석 시인의 예언적인 노래처럼 한국 어린이 선교 역사의 서판 위에 불멸의 족적을 새긴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가 우리 총회의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새벽 발걸음으로 104년 총회 역사에 불의를 반대하고 정의를 위해 타오르는 투혼으로 그 이름이 총회 적폐를 철폐한 결코 변하지 않는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3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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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0
  • [더굳뉴스] 백남선 제99회 총회장 70정년제 비성경적 설파
    금주법은 술을 금하는 취지와 달리 불법적인 술 제조와 유통을 키웠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마피아 등 범죄 조직이 활개를 치는 배경이 돼 백남선 목사 총회장 김선규 고희기념설교 교회의 세습과 70정년제 모세와 갈렙 등을 예로 들어 성경적이 아니라는 깊은 뜻을 전해 정년제는 성경적 근거가 아닌 교회의 유익(有益) 차원에서 제정한 법 장로교회 본래 정년제가 아닌 종신제가 전통 75세 정년제 목회자가 70세까지 힘껏 사역 이후 75세까지 은퇴와 후임자 문제를 해결하면 교회와 목회자의 성장도 멈추지 않고 교단의 발전도 정체되지 않을 것 참 이상한 곳에 사는 목사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목사 설교에 생각에 잠기지 않고 아무도 앉아 졸지 않고 아무도 앉아 창밖 지나가는 참새 바라보지 않는다. 참 적막한 곳에 사는 외톨박이 목사다 오늘도 혼자뿐인 목사. 단 한 번도 설교가 시들해져 본 적이 없는 목사. 누구랑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든 얘기를 듣든 오늘도 강대상 뒤에 무릎 꿇고 혼잣말만 하는 목사. 목회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글쎄 생사의 갈림길에서조차 목회의 유효기간 따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목회 유효기간은 하나님 말씀처럼 영원일 수 있으나 유통기한은 찰나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명백한 한계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우는 이것이 바로 목사의 목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깨달음의 핵심이 아닐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사의 고뇌를 애통한 심정으로 어루만지는 동시에 영생을 향해 가는 그것을 밝은 눈으로 살피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깨달음이 목사의 목회에 달리 있을 것인가. 목회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꽁치 통조림을 보다가 얼마 남지 않은 유통기한에 눈이 가 유통기한을 믿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문득 푸르러진 하늘 올려다보며 성큼 다가온 가을을 떠올렸다. 흘러가는 시간의 바람을 홀로 응시하는 목사. 영원 속에 하나님의 흔적을 새겨주는 고마운 목사. 고마운 존재는 늘 그렇게 강대상 뒤에서 기도하고 명상하기 위해 홀로 남겨져 있는 법이다. 마치 가난하던 시절 이 세계에 영원한 것은 두 개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반찬 없이 먹는 밥의 슬픔. 그리고 밥과 고기반찬이 마주 볼 때 찢어지는 웃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알기 위해 배우고 실험하는 것 알게 된 것을 기존의 장점과 융합하는 것 그곳에 성공이 있다. 인류사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 ‘사피엔스’에서 이스라엘 태생의 역사학 교수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년 2월 24일 ~ )도 현대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를 ‘무지(無知)의 발견’에서 찾았다.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 모든 시작점은 여기다.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 무섭던 무더위 기세도 꺾였다. 사람들은 곧 춥다며 투덜댈 게다. 모든 괴로움은 지나가고 새로운 괴로움이 또 오겠지. 일단 지금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크리스마스가 오면 색 도화지와 털실·솜을 오려 만든 카드를 몇 십 장씩 쌓아놓고 혹여 빠진 친구들이 있는지 손꼽아 세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나는가. 삐삐 속 수수께끼 같은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하며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에서 그 내용을 상상하던 시절의 추억은 어떤가. 그렇듯 기다림의 신앙은 아직 미정인 상태의 수많은 성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이루어진다. 금주법(禁酒法)은 술의 제조와 판매·유통을 금지하는 법으로 미국에서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13년 동안 시행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곡물이 부족해지자 ‘술 생산에 들어가는 곡물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것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과 근로자의 과도한 음주를 꺼려했던 산업자본가들이 지지하면서 미 의회가 금주법을 제정하였다. 1920년대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퇴폐적인 것으로 생각한 보수적 복음주의 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 행사도 금주법 제정의 한 배경이다. 보수적 복음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는 죄를 인종 성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생태계 훼손,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 폭력 등의 구조적인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인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에 한정짓는 신학적 요인도 작용했다. 1919년 1월 16일 비준된 수정헌법 제18조와 볼스테드 법은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종교적 목적으로 그러니까 성만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등만이 허용되었고 알코올의 개인적 소유 및 소비는 연방 법률로 불법화되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신앙이 승리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금주법은 오히려 불법적인 술 제조와 유통을 키웠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마피아 등 범죄 조직이 활개를 치는 배경이 되었다. 금주법의 결과 마피아나 갱스터 같은 도시 지역 범죄조직들이 성장하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 범죄조직의 밀주 유통 사업이 오늘날의 마약 밀매 사업의 원조가 되었다고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금주법은 알카포네가 대표적인 조직폭력배의 주류 밀거래, 무허가 술집 개업, 주류 사업 이익을 노린 폭력조직 간의 살인사건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메틸알코올로 인해서 죽기도 했다. 결국 1933년 12월 5일 미국 서민의 환영 속에 금주법은 미국 헌법 수정 제21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목사 70세 정년제’를 제일 먼저 도입한 통합측에 대한 신문 기사가 1969년 8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렸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알려진 대로 한국교회에 정년제를 최초로 도입한 분들은 통합측의 한완석 목사와 임택진 목사이다. 두 분은 이미 작고하였으나 생전에 존경 받던 분들로 솔선수범(率先垂範)하여 정년제를 실천하신 분들이다. 임택진 목사의 경우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조기 은퇴(早期隱退) 하였다. 이 분들이 정년제를 주창하였을 때 한국 교회는 이를 좋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의 고희 감사예배가 8월 10일 오전 11시 잠실 롯데호텔 2층 라세느 부페 식당에서 드렸다. 70여명의 총회 주요 인사들이 모여 김 총회장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고 축복하는 예배에서 총회 대쪽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설교를 했다. 제99회 총회 대쪽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욥기 42:16-17 본문의 간략한 설교에서 교회의 세습방지와 70정년제가 모세와 갈렙 등을 예로 들어 성경적이 아니라는 깊은 뜻을 전했다. 70세 정년제 본래 취지는 1960년 말 사회 형편에 따라 70세까지 목사가 열심히 목회하면 된다는 조치였다. 그런데 그 취지와 달리 금주법처럼 예기치 않은 폐해가 생겼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목회자가 65세만 되면 은퇴와 후임자 문제로 자신의 교인과 당회의 눈치를 보게 되어 70세까지 목회를 힘껏 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연륜과 능력을 겸비한 목회자가 은퇴를 앞두고 실수할까 두려워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교회 재정은 은퇴 시 받아갈 몫으로 생각해 재정 지출도 되도록 삼가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후임자 선정 문제로 당회장보다 당회의 장로 권한이 더 강화되는 기현상도 생긴다. 어차피 새로운 후임자에게 교인과 당회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70세 정년제는 성경적 근거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교회의 필요성(必要性)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다. 따라서 교회의 상황(狀況)이 바뀌면 이 법 또한 수정(修整) 혹은 폐지(廢止)될 수 있는 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번 제정(制定)하였다고 해서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영구(永久)해야 한다고 고집(固執)할 필요는 없다. 상황이 바뀌어 고쳐야 할 형편(形便)이 되면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법을 제정할 때에는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묻고 그 다음은 교회의 유익이 있는가를 묻는다. 정년제는 성경적 근거를 두고 만든 법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유익(有益) 차원에서 제정한 법이다. 임택진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항존직에 정년을 규정한 것은 시대적 차이와 후배의 양성과 자신의 휴식을 위하고 교회의 보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정년제란 그 입법 취지와 목적이 목회자에게 휴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圖謀)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제정(制定)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금주법처럼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교회 성장 둔화와 교단 발전 답보 더 나아가 교회 분쟁까지 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년을 맞거나 조기 은퇴를 한 목회자 휴식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영동중앙교회 전동운 목사는 정년 7년을 앞두고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는 정년 5년을 앞두고 조기 은퇴해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게 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 실상과 결과는 전혀 딴판이다. 전자의 전 목사의 조기 은퇴는 능력 부족에 따라 타협한 퇴진이었고 후자의 옥 목사는 능력이 넘치시는 데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능력을 땅에 묻는 결과를 초래했고 기대와 달리 수명도 단축되는 현실을 맞고 말았다. 장로교회에는 본래 정년제가 없었고 종신제가 전통적으로 실시되어 왔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연로(年老)하여 더 이상 시무를 할 수 없게 되면 자연스레 시무 사면을 내고 은퇴(隱退)하였고 노회는 다음 후임자를 청빙 절차를 밟아 정하여 교회를 이어서 시무토록 했다. 핫지(J. A. Hodge) 박사의 ‘무엇이 장로교 헌법인가’(What is presbyterian law)를 한국교회 초대 선교사이고 ‘설교학’ 명저를 남긴 곽안련 박사가 번역하였는데 번역서를 참조하여 박병진(朴炳珍) 목사가 이를 ‘교회정치문답조례’(敎會政治問答條例)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간하였다. 그 책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위임목사는 한 지교회나 1구역(4지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토록 시무한다. 위임목사가 본교회를 떠나 1년 이상 결근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 위임이 해제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장로교회의 목사 시무 전통(傳統)은 특별히 사면해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종신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신제가 70정년제로 바뀐 것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벌써 정년제 실행 시기도 50년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성경에 따른 종신제로 돌아갈 수가 없다면 그 차선책인 75세 정년제는 실시해서 교회 성장 둔화와 교단 발전 정체는 막을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목사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지 회사의 직원이나 국가 기관의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므로 75세 정년제가 되면 목회자가 65세가 아니라 70세까지 그 힘껏 사역하다가 그 이후 75세까지 은퇴와 후임자 문제를 해결하게 하면 교회와 목회자의 성장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교단도 발전이 정체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신명기 34:7, 11-12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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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더굳뉴스] 김삼환 목사의 교회 종탑
    세상 바닥에서부터 교회 종탑 위로 부는 골바람 속에 바람이 말씀처럼 일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으므로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지만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처음 믿음을 느낄 때 혹은 어떤 연민이 생길 때 그에 딱 맞는 말은 세상에 없다. 빛의 눈부신 파동 같은 것, 저무는 호수의 물기슭 같은 애잔함이 있을 뿐 이미 믿음을 떠난 오염된 세상의 말로 그 신성한 믿음의 감정은 붙잡히지 않는다. 믿음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 믿음에 대한 왈가왈부가 있을 수 없다. 믿음에 대한 답이 있던가? 오직 주의 은혜를 믿을 뿐이다. 믿음 속에 있는 자는 그저 믿음을 견딜 뿐 믿음에 대하여 따져 묻지 않는다. 왜? 그 어떤 말도 그에 대한 정답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고 토머스 무어는 말했다. 말이 삶의 큰 의미를 실을 수 없음을 알아 말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귀한 말은 '침묵' 안에서 빛난다. 믿음 속에 내가' 있음을 알면 믿음 전체가 나이므로 그 처음과 끝은 없는 셈이다. 그저 열심히 믿을 뿐이다. 겨울의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면 수많은 잔가지로 자글자글 하늘을 장식한다. 느티나무는 밑둥치는 대단해도 그 끝은 성냥개비보다 얇은 가지들이 수없이 얽혀서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여간 조용하지 않으면 거기에 눈은 앉을 수가 없다. 소복하게 느티나무 가지에 눈이 쌓였다는 것은 전날 밤 바람이 사납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싯적 공장 사목도 지냈던 김삼환 목사가 이제 믿음을 전파해 세계적인 명성교회를 세운 끝에 그 종탑보다 더 높고 굵어진 그의 영혼에 눈이 내리면 쌓일 수 있을까. 그러려면 그의 영혼의 가지에 세파의 사나운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느티나무의 '갓맑음'의 영혼을 보기가 어디 쉬울까. 하물며 믿음의 고백과 회개를 전하는 김삼환 목사의 영혼이 느티나무의 잔가지처럼 맑고 고요해질 수 있을까. 햇빛이 나면 느티나무 잔가지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지며 대지를 적시듯 주의 은혜로 김삼환 목사의 영혼에서 녹아내린 말씀이 교단을 말씀의 이슬비처럼 적시기를 기도한다.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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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더굳뉴스] 소강석 목사의 좋은 세상을 위한 믿음
    미국 서부개척의 주역 카우보이(cowboy)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소치기 혹은 소몰이꾼이다. 스페인 식민제국의 바케로(Vaquero)로부터 유래된 직업으로 스페인 출신의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와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초기 카우보이들은 멕시코를 시작으로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미국화가 되었다. 실제 역사 속 대부분의 카우보이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의 히스패닉 계열이었다. 멕시코 지역과 텍사스주에는 옛날 스페인에서 온 소들이 야생에서 살고 있었다. 이 소떼를 붙잡아 북쪽으로 오클라호마주를 종단해 동북부 도시로 연결된 기차역이 있던 캔사스주의 도지 시티(Dodge City, 카우보이의 수도라고 부름)나 애빌린(Abilene)으로 소떼를 몰고 운반하던 직업이 카우보이였다. 운반된 소는 도축되어 동북부 도시에 식육으로 제공되었다. 소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야생 소를 붙잡아서 팔던 상인이었다. 약 12명의 카우보이가 팀을 이루어서 한 번에 2천 5백 마리의 소떼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신문에 르포 기사로 카우보이라는 존재가 알려지면서 카우보이에 대한 로망이나 전설이 후대에 생겨났다. 그래서 실제 역사상에 '카우보이'라는 직업은 많아야 천 명 내외이고 십여 년 활동했다. 이 진짜 카우보이의 활동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1948년 존 웨인 주연의 Red River가 있다. 원래 미국 서부는 건조하고 목초지가 적어서 농사지을 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방목식 목장을 만드는 거였고 이 목장을 운영하는 게 카우보이였다. 그들이 그냥 소만 쳤다면 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부 자체 주민이라는 게 자기 부족에서 추방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로 들끓는 무법지대인 데다가 소를 잡아먹으러 나타나는 곰, 늑대, 코요테 같은 야생동물이나 도둑도 많았다. 그래서 카우보이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다들 총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총기 소지가 미국에서 자유롭고 그것을 금지할 수 없는 것은 그 전통에서 비롯된 것 같다. '방목식 목장'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거 없다. 그냥 이동하기 편하게 마차 하나에다가 세간을 몽땅 때려 넣고 풀을 찾아다녔다. 목초지를 발견하면 동물들 가둘 가설 울타리와 천막이나 조잡한 판잣집을 짓고는 우물 파놓고 살면서 해당 지역의 풀이 거덜 나면 마차 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식의 활동이었다. 그냥 유목민 식사도 늘 커피, 말린 과일, 콩, 말린 고기, 베이컨, 기름에 튀긴 비스킷 정도였고 요리사도 따로 없이 부상당한 카우보이들이 돌아가며 맡았고 물이 부족해 먹고 난 식기는 모래에 슥 문지르고 끝이었다. 그래서 읍내에 들르면 스테이크와 술집 출입에 월급을 쏟아 넣는 이들도 많았다. 허허벌판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현대에도 카우보이는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남부 특히 텍사스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카우보이 출신 미국 대통령도 있었다. 바로 20세기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자 만 42세에 대통령 직책을 수행하게 된 역대 최연소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 다코타 지역에서 3년 정도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지냈다. 농장일을 한 것은 물론 강도도 몇 번 잡은 적도 있고 실제 사격 솜씨도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 정적들에게는 '빌어먹을 카우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루스벨트를 캐리커처 하면 카우보이모자를 쓴 상태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카우보이가 잘 나오는 바의 유래는 이렇다. 당시 술집에 들어서면 술병을 쌓아놓은 중앙 선반을 기다란 탁자가 둘러싸고 있는데 그 탁자를 ‘배리어(barrier 장벽)’라고 불렀다. 베리어(barrier)를 줄여 ‘바(bar)’리고 말하면서 술집 통칭이 바가 되었다고 한다. 보통 바에 가면 술병이 쌓여 있는 바에서 마실지 테이블에서 마실지 결정할 수 있다. 짬이 난 텍사스 카우보이 하나가 권총을 찬 채 도시의 바에 들렀다. 카우보이는 바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을 시켜 마셨다. 옆자리에 멋쟁이 젊은 여자가 자리에 앉아 위스키를 시켜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한 잔을 마신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여 내뿜으며 옆자리의 카우보이를 흘끗 봤다.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카우보이세요?” “네. 그런 셈이죠.” “소를 몰고 다니시겠네요.” “늘 하는 일이 그렇죠.” “저는 레즈비언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도 여자 생각. 일할 때도 여자 생각. 잘 때도 여자 생각을 하죠.” 그녀는 위스키 한 잔을 더 시켜 마시고는 자리를 떴다. 좀 있으니 중년 남녀가 들어와 테이블로 가지 않고 카우보이 옆자리 바에 앉았다. 칵테일을 시킨 중년 여인이 카우보이의 허리춤 권총에 눈길을 주며 말을 걸었다. “카우보이세요? 소를 몰며 총을 쏘고 그러시겠네요?” 카우보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카우보이는 조금 전 술을 마시고 자리를 뜬 여자의 말을 통해 자기도 평생 마차에서 아침에 눈을 비비고 눈만 뜨면 여자 생각, 말을 타고 소몰이할 때도 여자 생각, 지쳐 쓰러져 잘 때도 여자 생각만 생각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LGBT는 여자 동성애자인 레즈비언(lesbian),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gay), 양성애자인 바이섹슈얼(bisexual), 성전환자인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최근에는 서울 전시장 박원순 때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축제를 열었듯이 LGBT에 Q를 더해 LGBTQ로 쓴다. Q는 queer(이상한, 기묘한)라는 뜻의 머리글자다. 성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LGBT라는 말이 쓰이기 처음 시작한 건 1988년 미국에서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처럼 동성애자, 즉 호모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하지만 이 말이 다양한 성 소수자를 동등하게 포괄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는 점 때문에 인권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LGBT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LGBTQ로 확장된 건 2016년 미국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GLAAD가 LGBTQ로 쓸 것을 권고하면서다. 2017년 5월 10일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은 2월 13일 대통령 후보 시절 보수 기독교계와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발표하였다. 2017년 10월 9일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2009년에 이어 재차,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11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무엇이 문제인가?”를 슬로건으로 경기도 지역 시민 공청회가 열렸다. 교단의 대표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가 경기도성시화운동본부 홍보대사 자격으로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를 변화시키고 위로하기 위해 ‘주 예수 내 마음에 오심’을 열창했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선된 뒤에 MBC 인터뷰에 응했다. 이 후보는 소감을 묻는 말에 “100만의 시정을 맡고 있을 때보다는 많은 책임감, 하중 그런 걸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선거전의 이슈였던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의혹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잘 안 들리는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인터뷰를 중단했다. 이어 JTBC 인터뷰에서도 “제게 부여된 역할, 또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확고하게 책임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진행자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뜻에서 하신 얘기냐”고 묻자 “그런 말 한 적 없다.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이라고 가정해서 말한 적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신가 보다”고 되레 진행자에게 쏘아붙였다. 이날 대한민국의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는 다음과 같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감히 몇 마디의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대부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쪽은 극단적 보수 기독교로만 오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2019년 연말에 정세균 국무총리님을 모시고 초갈등 사회를 화해 사회로 바꾸자는 대국민 포럼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초갈등 사회를 화해 사회로 만드는데 앞장서 왔던 목사입니다. 이래왔던 저였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확실히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사랑합니다. 성소수자들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차별금지’, ‘평등’이라는 단어만 보면 정말 그럴싸한 법이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이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고 독소조항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 법안에는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받아들이기 힘든 동성 결혼이 인정이 되고, 제3의 성을 인정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인구 절벽의 재앙을 맞고 있는 입장에서 동성애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조장하게 되면 인구는 더 감소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 어느 누구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비판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게 됩니다. 내 아들이 남자 며느리를 데려오고, 내 딸이 여자 사위를 데려와도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몇몇 정치인들께서는 왜 국민들이 반대하고 동의도 하지 않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포함하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 사유에 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위반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도 부과하는 과잉입법을 ‘평등’이라는 단어로 눈속임하여 시도하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건강한 사회와 미래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합니다.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더 많은 분들이 반대를 하고 있고 판사와 검사를 지낸 변호사님들과 법학 교수님들도 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더 많은 사람이 역차별을 당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면 안 됩니다. 어떻게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하고, 소수의 차별을 막기 위해서 절대다수가 역차별을 당하도록 한단 말입니까? 왜 그토록 천부적 인권의 질서를 파괴하여 문화적 병리 현상을 촉진하고 오히려 사회적 질병을 유도하는 것입니까? 존경하며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한국교회와 제가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은 극우적 이념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건강한 사회를 지키고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믿음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기 위한 거룩한 사상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한국교회의 애타는 심정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립니다.” 과거를 더 따질 필요도 없고 현재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총회 소속의 목사와 장로 한 사람이다. 어떤 정치적 위치에 머물러도 그것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시간이다. 언제나 한마음 한뜻으로 총대 전체에게 주어진 의무를 책임질 시점에 놓여 있다. 잘못된 과거가 있었기에 더 소망스러운 미래를 창출할 책임과 권리를 106년 역사의 총회(총회장 배광식) 소속 목사와 장로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믿음 때문에 분투하는 대한민국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롬1:27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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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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