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개척의 주역 카우보이(cowboy)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소치기 혹은 소몰이꾼이다. 스페인 식민제국의 바케로(Vaquero)로부터 유래된 직업으로 스페인 출신의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와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초기 카우보이들은 멕시코를 시작으로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미국화가 되었다. 실제 역사 속 대부분의 카우보이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의 히스패닉 계열이었다.
멕시코 지역과 텍사스주에는 옛날 스페인에서 온 소들이 야생에서 살고 있었다. 이 소떼를 붙잡아 북쪽으로 오클라호마주를 종단해 동북부 도시로 연결된 기차역이 있던 캔사스주의 도지 시티(Dodge City, 카우보이의 수도라고 부름)나 애빌린(Abilene)으로 소떼를 몰고 운반하던 직업이 카우보이였다. 운반된 소는 도축되어 동북부 도시에 식육으로 제공되었다. 소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야생 소를 붙잡아서 팔던 상인이었다. 약 12명의 카우보이가 팀을 이루어서 한 번에 2천 5백 마리의 소떼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신문에 르포 기사로 카우보이라는 존재가 알려지면서 카우보이에 대한 로망이나 전설이 후대에 생겨났다. 그래서 실제 역사상에 '카우보이'라는 직업은 많아야 천 명 내외이고 십여 년 활동했다. 이 진짜 카우보이의 활동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1948년 존 웨인 주연의 Red River가 있다.
원래 미국 서부는 건조하고 목초지가 적어서 농사지을 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방목식 목장을 만드는 거였고 이 목장을 운영하는 게 카우보이였다. 그들이 그냥 소만 쳤다면 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부 자체 주민이라는 게 자기 부족에서 추방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로 들끓는 무법지대인 데다가 소를 잡아먹으러 나타나는 곰, 늑대, 코요테 같은 야생동물이나 도둑도 많았다. 그래서 카우보이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다들 총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총기 소지가 미국에서 자유롭고 그것을 금지할 수 없는 것은 그 전통에서 비롯된 것 같다.
'방목식 목장'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거 없다. 그냥 이동하기 편하게 마차 하나에다가 세간을 몽땅 때려 넣고 풀을 찾아다녔다. 목초지를 발견하면 동물들 가둘 가설 울타리와 천막이나 조잡한 판잣집을 짓고는 우물 파놓고 살면서 해당 지역의 풀이 거덜 나면 마차 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식의 활동이었다. 그냥 유목민 식사도 늘 커피, 말린 과일, 콩, 말린 고기, 베이컨, 기름에 튀긴 비스킷 정도였고 요리사도 따로 없이 부상당한 카우보이들이 돌아가며 맡았고 물이 부족해 먹고 난 식기는 모래에 슥 문지르고 끝이었다. 그래서 읍내에 들르면 스테이크와 술집 출입에 월급을 쏟아 넣는 이들도 많았다. 허허벌판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현대에도 카우보이는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남부 특히 텍사스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카우보이 출신 미국 대통령도 있었다. 바로 20세기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자 만 42세에 대통령 직책을 수행하게 된 역대 최연소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년 10월 27일 ~ 1919년 1월 6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 다코타 지역에서 3년 정도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지냈다. 농장일을 한 것은 물론 강도도 몇 번 잡은 적도 있고 실제 사격 솜씨도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 정적들에게는 '빌어먹을 카우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루스벨트를 캐리커처 하면 카우보이모자를 쓴 상태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카우보이가 잘 나오는 바의 유래는 이렇다. 당시 술집에 들어서면 술병을 쌓아놓은 중앙 선반을 기다란 탁자가 둘러싸고 있는데 그 탁자를 ‘배리어(barrier 장벽)’라고 불렀다. 베리어(barrier)를 줄여 ‘바(bar)’리고 말하면서 술집 통칭이 바가 되었다고 한다. 보통 바에 가면 술병이 쌓여 있는 바에서 마실지 테이블에서 마실지 결정할 수 있다.
짬이 난 텍사스 카우보이 하나가 권총을 찬 채 도시의 바에 들렀다. 카우보이는 바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을 시켜 마셨다. 옆자리에 멋쟁이 젊은 여자가 자리에 앉아 위스키를 시켜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한 잔을 마신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여 내뿜으며 옆자리의 카우보이를 흘끗 봤다.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카우보이세요?”
“네. 그런 셈이죠.”
“소를 몰고 다니시겠네요.”
“늘 하는 일이 그렇죠.”
“저는 레즈비언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도 여자 생각. 일할 때도 여자 생각. 잘 때도 여자 생각을 하죠.”
그녀는 위스키 한 잔을 더 시켜 마시고는 자리를 떴다. 좀 있으니 중년 남녀가 들어와 테이블로 가지 않고 카우보이 옆자리 바에 앉았다. 칵테일을 시킨 중년 여인이 카우보이의 허리춤 권총에 눈길을 주며 말을 걸었다.
“카우보이세요? 소를 몰며 총을 쏘고 그러시겠네요?”
카우보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직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카우보이는 조금 전 술을 마시고 자리를 뜬 여자의 말을 통해 자기도 평생 마차에서 아침에 눈을 비비고 눈만 뜨면 여자 생각, 말을 타고 소몰이할 때도 여자 생각, 지쳐 쓰러져 잘 때도 여자 생각만 생각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LGBT는 여자 동성애자인 레즈비언(lesbian), 남자 동성애자인 게이(gay), 양성애자인 바이섹슈얼(bisexual), 성전환자인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최근에는 서울 전시장 박원순 때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축제를 열었듯이 LGBT에 Q를 더해 LGBTQ로 쓴다. Q는 queer(이상한, 기묘한)라는 뜻의 머리글자다. 성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LGBT라는 말이 쓰이기 처음 시작한 건 1988년 미국에서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처럼 동성애자, 즉 호모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하지만 이 말이 다양한 성 소수자를 동등하게 포괄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는 점 때문에 인권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LGBT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LGBTQ로 확장된 건 2016년 미국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GLAAD가 LGBTQ로 쓸 것을 권고하면서다.
2017년 5월 10일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은 2월 13일 대통령 후보 시절 보수 기독교계와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발표하였다.
2017년 10월 9일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2009년에 이어 재차,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11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무엇이 문제인가?”를 슬로건으로 경기도 지역 시민 공청회가 열렸다. 교단의 대표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가 경기도성시화운동본부 홍보대사 자격으로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를 변화시키고 위로하기 위해 ‘주 예수 내 마음에 오심’을 열창했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선된 뒤에 MBC 인터뷰에 응했다. 이 후보는 소감을 묻는 말에 “100만의 시정을 맡고 있을 때보다는 많은 책임감, 하중 그런 걸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선거전의 이슈였던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의혹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잘 안 들리는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인터뷰를 중단했다. 이어 JTBC 인터뷰에서도 “제게 부여된 역할, 또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확고하게 책임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진행자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뜻에서 하신 얘기냐”고 묻자 “그런 말 한 적 없다.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이라고 가정해서 말한 적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신가 보다”고 되레 진행자에게 쏘아붙였다.
이날 대한민국의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는 다음과 같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감히 몇 마디의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대부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쪽은 극단적 보수 기독교로만 오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2019년 연말에 정세균 국무총리님을 모시고 초갈등 사회를 화해 사회로 바꾸자는 대국민 포럼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초갈등 사회를 화해 사회로 만드는데 앞장서 왔던 목사입니다.
이래왔던 저였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확실히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사랑합니다. 성소수자들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차별금지’, ‘평등’이라는 단어만 보면 정말 그럴싸한 법이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이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고 독소조항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 법안에는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받아들이기 힘든 동성 결혼이 인정이 되고, 제3의 성을 인정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인구 절벽의 재앙을 맞고 있는 입장에서 동성애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조장하게 되면 인구는 더 감소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 어느 누구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비판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게 됩니다. 내 아들이 남자 며느리를 데려오고, 내 딸이 여자 사위를 데려와도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몇몇 정치인들께서는 왜 국민들이 반대하고 동의도 하지 않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포함하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 사유에 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위반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도 부과하는 과잉입법을 ‘평등’이라는 단어로 눈속임하여 시도하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건강한 사회와 미래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합니다.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더 많은 분들이 반대를 하고 있고 판사와 검사를 지낸 변호사님들과 법학 교수님들도 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더 많은 사람이 역차별을 당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면 안 됩니다. 어떻게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하고, 소수의 차별을 막기 위해서 절대다수가 역차별을 당하도록 한단 말입니까? 왜 그토록 천부적 인권의 질서를 파괴하여 문화적 병리 현상을 촉진하고 오히려 사회적 질병을 유도하는 것입니까?
존경하며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한국교회와 제가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은 극우적 이념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건강한 사회를 지키고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믿음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기 위한 거룩한 사상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한국교회의 애타는 심정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립니다.”
과거를 더 따질 필요도 없고 현재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총회 소속의 목사와 장로 한 사람이다. 어떤 정치적 위치에 머물러도 그것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시간이다. 언제나 한마음 한뜻으로 총대 전체에게 주어진 의무를 책임질 시점에 놓여 있다. 잘못된 과거가 있었기에 더 소망스러운 미래를 창출할 책임과 권리를 106년 역사의 총회(총회장 배광식) 소속 목사와 장로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믿음 때문에 분투하는 대한민국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롬1:27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