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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며칠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 했습니다.” 2년 전 2022년 10월 20일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열린 제7회 신학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이런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전북노회 윤남중(1920년~2015년) 공로목사는 생전에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셨다.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위원회가 2024년 11월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서문교회당(담임 김석호 목사)에서 제9회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개회 예배는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이영익 목사의 인도로 회계 허일 장로 기도, 감사 신경식 목사 요 19:25-27 성경 봉독, 강동현 목사 ‘당신의 아들 네 어머니’란 제목으로 설교,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 환영사, 전북신학교 이사장 서현수 목사 축사, 전북신학교 명예이사장 유웅상 목사 축사,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장학금 수여식 후 총회의 거울 윤희원 목사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다시 아홉 번째 기념세미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시간이 10년 지났네요. 세월은 빛바래기도 하지만 빛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 세월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많은 신학 세미나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빛바랜 세미나가 아니라 빛나는 세미나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김인철 목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데 저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여러 책을 많이 본다는 겁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총신연구원 시절 저는 총신 대학부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같이 만나고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책을 많이 쓰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책들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원어적이고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잘 보면서 성경을 잘 해석하고 그런 지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저희 세미나에 모시게 됐습니다. 목사가 목회할 때 필요한 성경 읽기와 큐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강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취재하러 갔다 은혜와 깨우침을 받게 된 세미나 주제는 '예레미야 애가-슬픔에서 희망을 긷는 지혜'로 김인철 목사(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가 강연했다. 예레미야애가의 개요와 본문해설을 중심으로 세 차례의 강의와 질의응답이 진지하게 진행됐다. 말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일어난 질문은 깊은 이해에 닿게 한다. 물음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아야 될 이유다. 강사로 나선 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는 예레미야애가에 대해 ‘뒤집어진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면서 운문(시)이자 지혜서로서의 성격을 유념하며 본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을 읽고 체험하는 과정을 세 시간에 걸진 세 번의 강의로 머리와 마음에 쏙 박히게 진행했다. 김인철 목사는 말했다. “예레미야애가에 표현되는 참상과 이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하나님의 부재’(abscence of God)’라는 주제에서 극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정신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며 신학의 재정립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뼈저린 반성을 요구합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이번 신학 세미나에서는 윤남중 목사의 유고 설교 세 편과 함께 장로교회의 역사와 직제(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성경 묵상(QT)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개선방안에 대한 제안(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성경 속의 애굽과 성경 밖의 애굽 역사와 문화(최용만 목사·이서제일교회)에 대한 논문을 교재에 함께 수록해 배부했다. 그 교재에 생전에 윤남중 목사께서 요한복음 1:47-51 본문으로 '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교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가장 이스라엘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를 기다리고 사는 자가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메시아 대망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참 신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 그 대망의 신앙이 없으면 참 신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의 신앙을 가진 자는 정직한 자라서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날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살랑살랑 간사함으로 꼬리 치며 유혹하는 사탄으로 살지 말고 기둥 같은 정직함으로 바위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싸움을 정직함으로 싸우면서 삽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알곡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빛이고 다름 아닌 목사라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 대부분이 휴학한 가운데 본과 4학년이 내년 1월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304명만 접수했다고 한다. 의사의 일반적 윤리 제3조(의사의 사명과 본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모자라는 신규 의사 증원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매년 3000명가량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의사 파업 투쟁으로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만 배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윤리강령 규정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표현을 우리는 이런 경우에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이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의사와 의학도들의 본분이 아닌 이권에 집착하는 것 같은 근자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실천하신 윤남중 목사의 설교가 세상이나 우리 교계에 새삼 절실해지는 시절이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54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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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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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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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고광석 목사 합동포럼 회장
- 믿음이 날아갈 때 당신의 소망이 흔들린다. 노래하듯이 믿음을 기다리며 봄이 지나가고 뉘우치듯이 믿음을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믿음이 오지 않자 소망을 잊은 척 기다리며 가을이 지나가고 그래도 믿음이 오지 않자 기도하듯이 믿음을 기다리며 겨울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수히 지나가고 영영 믿음이 오지 않을 것 같자 당신은 얼음 알갱이들을 달고 조금씩 있다가 빛나곤 한다. 겨울 저녁이었고 당신의 믿음은 그 기다림으로 은밀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합동포럼 신임 대표회장 고광석 목사 취임 ‘제3회 정기총회 개최…전반적인 기반 더욱 견고히 세울 것’ 고광석 대표회장, ‘창립 목적과 비전 정신 절대 잃지 않겠다’ 신임대표회장 고광석 목사는 “부족한 종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회기동안 기반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하고 “창립 목적과 비전 정신을 잃지 않겠다”라고 인사했다. 2024년 2월 26일 오전 11시 광주서광교회에서 개혁신학 노선과 장로교 정치 원리를 근간으로 신학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고 총회의 공교회성을 세우기 위해 출범한 합동포럼이 제3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단단한 개혁주의자 제107회 총회 전 서기 고광석 목사가 설교단에 단단하게 섰다. "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만 제3회 합동포럼 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다 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38장 찬송. 지도위원 김상현 목사 기도. 서기 권희찬 목사 빌레몬서 1:14-18 봉독.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배상하라’ 간증과 찬양 집회 사역자이기도 한 본 교회 김성민 장로(숭일중학교 교장)가 '모든 소망 사라질 때 하나님의 손 일하시네' 특별찬양으로 감동과 은혜를 안겨 회중의 아멘과 박수를 받았다. 기인(奇人)과 시인(詩人) 소강석 제105회 총회 증경총회장이 설교단에 섰다. "찬양이 너무나 은혜스럽습니다. 역시 젊고 싱싱하고 (회중 웃음) 저희 교회 김문기 장로님은 좀 더 올드하고... 음악 선생이시냐고 물어보니까 체육 선생님이시랍니다. 야! 대단합니다. 박수 한번 해주시죠. (회중 큰 박수) 독일에서 한 주간 있다가 와서 지금 시차가 안 맞습니다. 자고 새벽 기도하고 자고 차에서 자면서 와서 아직도 (잠이 덜 깨) 맨송맨송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인간에게는 다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호승 시인은 우회적으로 비판합니다. 우리 가운데 보면 은근히 의로운 척하고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어요. 법에 하자가 없어요. 그런 사람을 정죄합니다. 시인은 에둘러서 이런 사람을 싫어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죠. 그런가 하면 도정환 시인 우리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분이 정치하기 전에 이런 시를 썼어요.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인생의 꽃이 어디 있고 그늘이 없는 인생이 과연 어디가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 소개되는 오네시모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 집안에 노예라는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이 빌레몬 집사는 오네시모를 아주 총명하게 생각해 신실하게 관리를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오네시모의 삶에도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내가 부인을 얻고 자식을 낳아도 역시 내 가정 내 후손은 노예가 될 텐데. 그 바람에 흔들려 오네시모는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주인 돈까지 훔쳐. 어디로 도망을 갔습니까. 한 1600킬로 이상 되는 로마로 갔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세상이 왜 그렇게 좁습니까. 거기서 누구를 만났느냐. 친구의 꼬드김으로 여러분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그때 1차 투옥 시기입니다. 당시 감옥에서 사람들을 영접하고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도 바로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이야기를 들었을 게 아닙니까. 오네시모는 눈동자에 빛이 났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 달콤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는 당신의 옥바라지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것은 복음을 깊이 들으면 들을수록 양심에 가책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도망을 쳐 나왔다’고 바울에게 고백합니다. 그렇게 고백을 하며 오네시모는 이제 빌레몬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바울도 잠시나마 입을 열지 못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렇게 훌륭한 나의 동역자, 저렇게 훌륭한 지혜자, 총명한 사람을 내가 놓치다니. 내가 모른 척하고 저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어도 되는데. 그가 양심에 못 이겨 돌아간다니.’ 당시 노예가 주인 몰래 물건까지 훔쳐 도망갔다면 화인(火印)은 물론이고 4대까지 벌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눈물로 편지를 써 보낸다고 해도 아무리 빌레몬이 내게 복음을 받고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바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을 겁니다. 바울은 먼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빌레몬서 1:8-10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빌레몬서 1:10-12 말씀은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말씀합니다. 내가 낳았고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심복(心腹), 매우 요긴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네시모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니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말합니다. 그러니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 싶다.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로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통념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입니다. 빌레몬서 1:10-14 내용입니다. 이뿐입니까. 다음은 빌레몬서 1:17-21까지 똑같은 말을 계속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없겠느냐고 재삼 빌레몬을 설득합니다. 오네시모는 이 편지를 가슴에 품고 빌레몬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로마에서 골로새까지는 약 1600킬로 한 달 이상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걸어가면서 가슴속에 읽고 또 읽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감히 빌레몬 집사님의 신의를 배반하다니. 그는 내게 얼마나 잘해주셨는가. 그런 빌레몬 집사님을 내가 배신했으니 나는 도대체 어찌 될 것인가. 바울 사도의 편지를 받고 용서해 줄 것인가 아니면 내 이마에 화인을 칠 것인가. 아니면 손목을 자를 것인가.’ 아마 탕자가 집에 돌아오면서 별생각을 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탕자도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 15:19).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겠습니까. 아마 오네시모도 별의별 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연습했을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침내 골로새에 도착했습니다. 빌레몬이 골로새에 살았거든요. 전설에 의하면 라오디게아에서 낙농업을 하면서 엄청난 부자가 되고 상업 도시인 에베소에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러 가는 길에 두란노 서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칼칼한 목소리로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이며 여러분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외치는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디서였든지 빌레몬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았습니다. 오네시모가 골로새에 나타나니 사람들이 ‘저런 쳐죽일 놈이 있는가’ 요즘 말로 하면 인터넷 언론 할 것 없이 (회중 웃음) 그냥 뭐 오네시모를 조져대는 겁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는데 물건을 훔친 저 두 손목을 자르든지 도망을 친 저 두 발목을 잘라 버릴거야, 모두가 수군거렸을 겁니다. (묶인) 오네시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려 빌레몬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때 동행한 두기고에 대해 골로새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골 4:7-9 두기고가 발언권을 신청합니다. ‘빌레몬 집사님, 오네시모가 도망친 로마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크게 회개하고 거듭나서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도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이제 바울의 심복 중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인자한 주인을 떠난 것을 가슴 아파하고 양심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더라도 복음을 들은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오네시모는 아무 말도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두기고가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존경하는 빌레몬 집사님. 저 오네시모의 가슴 속에 사도 바울이 친필로 쓴 편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두기고가 오네시모의 가슴 속에 든 바울 서신을 빌레몬에게 전달했습니다. 빌레몬이 보니 바울의 친필 서신입니다. 빌레몬은 ‘우리 은사 사도 바울이 눈이 어두우셔서 대필로 편지를 쓰시는 데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셨으면 친필로 서신을 감옥에서 보내셨을까’하고 감격을 합니다. 그 순간 빌레몬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토록 믿음과 정을 주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인간적 노여움을 누르고 용서한다는 것은 오늘 이 시대와 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비난을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친필 서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변했다는 오네시모를 용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오네시모의 몸도 흔들리고 있지만 빌레몬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을 영적 은사(恩師)로 삼았던 빌레몬이라 할지라도 오네시모를 바라보면 속이 끓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 아무리 흔들리는 꽃도 제자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직접 사도 바울을 섬기지 못하면 내가 섬길 자를 뽑을 사람도 누구를 뽑았겠느냐. 바로 저 오네시모를 뽑아 보냈을 것이다. 성령께서 내 소원을 이렇게 응답하시고 연로하신 사도께서 육필로 권고하심이 이처럼 망극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누구관대 연로하신 사도님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나 역시 만 가지 죄악을 용서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회개하고 스스로 찾아온 오네시모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노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네시모의 노예 증서를 불태우고 자유 시민이 될 것을 선포하노라. (회중 아멘) 여러분 빌레몬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묶인 오네시모의 사슬을 풀어줍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이 감탄합니다. 빌레몬은 무릎 꿇은 오네시모를 안아주면서 말합니다. ‘너는 이제 자유인이다. 사업을 하느라 복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나를 대신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위대한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기를 부탁한다. 이제 자유인이 되었으니 떠나시오. 한시가 급하오. 바울 사도의 건강이 걱정되오.’ 여러분, 이 교회가 성장해 골로새 교회가 되었고 이 골로새 지역은 빌레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이 훔쳤던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선교비를 가지고 바울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로마로 갑니다. 그리고 바울의 복음의 제자가 됩니다. 말씀과 영성 훈련을 받아 교회 전설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당시 가장 큰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자 이게 발단이 돼 그 유명한 폴리캅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됐고 이그나티우스도 노예에서 해방을 받아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훗날 오네시모로 인해 이 빌레몬서가 한 장밖에 없지만, 신약성경 정경이 되어가는 과정에 포함이 된 것이 복음의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이 변화되고 관대와 관용이 있고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회중 아멘) 어디까지나 교회 전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림자와 그늘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그림만 보고 누가 잘했다더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꼭 꽃이 피려면 바람이 불어요. 바람이 불면 꽃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바람을 통해 꽃향기가 멀리멀리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합동 포럼이 부디 이런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중 아멘) 저도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늘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합동포럼에서는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 빌레몬서와 같은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작은 모임이지만 큰 역사를 행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모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오늘 대표회장에 취임하시는 우리 고광석 목사님, 저보다 IQ가 50 이상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분의 언변을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스피치가 좋으신지. 저도 논쟁을 좀 하기는 하지만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합동포럼이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빌레몬과 같은 아름다운 섬김의 역사를 이루면서 더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이처럼 거침없는 기인(奇人) 소강석 목사가 읽는 시나, 전하는 말씀을 감동 있게 듣는 것은 사도들이 본보기로 보여준 그들의 신앙과 진지함 때문이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들의 명백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삶뿐만 아니라 믿음도 사랑하는 한, 우리는 시인이고 기인인 소강석 목사 같은 그런 사역과 삶에 감동을 받으며 희열을 느낀다. 그런 믿음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는 점에서 우리 교단에 소강석 같은 기인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어서 합동포럼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환영사를 하고 정금 김종준 증경총회장이 격려사를 하고 제108회 부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축사를 했다. 이어진 제3회 합동포럼 정기총회에서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의 사회로 대표회장 이취임식이 이루어져 배만석 목사에 이어 고광석 목사가 제3대 합동포럼 대표회장에 취임했다. 고광석 목사는 말했다. “신임 대표회장 고광석입니다.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대표회장을 맡기로 해 제1대는 영남지역 김종혁 목사님이 제1대 대표회장을 하셨고 서울서북지역에서 오늘 이임하신 배만석 목사님께서 제2대 대표회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호남중부지역에서 한기승 목사님이 대표회장을 하셔야 되는데 총회 임원 출마로 인해 제한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중부지역의 오종영 목사님이 또 하시고 영남으로 올라가고 서울서북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부족한 것 많고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으로 돌아가면서 또 우리 선배님들과 임원들이 제가 했으면 좋겠다 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회기 동안 대표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배만석 목사님, 합동포럼 기초를 닦느라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분들의 정신과 리더십을 이어받고 또 오늘 참석하신 증경총회장님들 세 분 또 현직 총회 임원들과 지역의 대표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합동포럼이 창립의 목적과 비젼을 이루는데 대표회장으로서 맡은 회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명예회장 배만석 ▲대표회장 고광석 목사 ▲상임회장 오종영 목사 ▲사무총장 김용제 목사 ▲상임총무 이철우 목사 ▲서기 권희찬 목사 ▲회록서기 진두석 목사 ▲회계 최윤영 목사 ▲지도위원 소강석 목사, 김종준 목사, 배광식 목사, 김상현 목사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인 소강석 시집에 빌레몬서 같은 시가 있다. 야간기차 슬픔처럼 고요한 것은 없다 혼자 외롭게 고통을 느끼게 하니까 흐린 의식의 저편 밤의 적막을 꿰뚫고 달려가던 야간기차 은빛 레일 위에 외발로 서서 돌멩이 틈에 피어난 작은 꽃과 눈동자가 마주쳤지 전봇대 아래는 달빛 우물이 고이고 도시로부터 멀리멀리 벗어나던 야간기차의 뒷모습은 허리가 유난히 길었던 검은 길고양이 같았다 어쩌면 삶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가 아닐까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몬 1:25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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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고광석 목사 합동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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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에서부터 전북지역 투어는 시작된다. 호남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 역사관은 초창기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호남선교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93년 교회 설립에 전력하다 1908년 1월 2일 43세로 소천한 전위렴(W.M. Junkin)을 기리는 예배당 앞마당의 종탑 안내문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대담한 실험이 시도된다. 왜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는 걸까?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역설적인 두 가지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려운 방식이라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농사와 정착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된다. 가장 힘센 자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방식, 힘센 여러 명의 공동 정권,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의 지배…. 결과적으로 모두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만은 달랐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여성과 노예는 투표할 수 없었고 비효율적이었다. 51%의 ‘다수’가 49%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김종혁의 제109회 총회는 목회자 70세 정년 연장보다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불편한 선택보다는 당장 편한 선택만을 추구하는 적당주의가 판치기도 했다. 진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마치 코끼리와 같아서 수많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부분을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의 형태를 이해하는 한계가 있듯이 어떤 사고방식도 진리 전체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각각의 사고방식 한계를 인정하고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에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신학은 여전히 어두운 방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신학자는 나름대로 구원의 의미를 성경으로 보여주는 구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마치 다시 태어나듯 허물을 벗는 뱀은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다. 자기를 바로 보며 반성하면 성찰이고 도취하면 허영이다. 영리한 머리를 남을 위해 쓰면 지혜가 되나 자기만을 위해 쓰면 교활해진다. 총회 전체 측면에서도 일상의 행정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는 조직을 두어야만 생존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초 생존의 원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어느새 1000일. 겨울 닥친 전선에서 벌이는 피의 소모전, 한 계절 더 돌지는 않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6-17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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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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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 . 아테네와 고린도 고린도전서1Corinthians는 고린도 교회의 특정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도움을 구하는 물음에 대한 바울의 답장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교회를 세우고 1년 6개월을 섬겼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의 장삿길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도시였다. 무역의 중심지라 고린도는 온갖 종교와 철학들의 범람과 도덕적 타락으로 몸살을 앓았다. 바울이 떠난 뒤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모든 영향으로 허우적거리고 여러 문제들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이 편지를 가지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보내는 바울의 편지였다. 이런 시가 있다. 무엇이 성공인가 _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바울은 교회 안의 죄들을 다룬 뒤 교인들의 질문에 답을 한다. 바울은 고린도 도시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그 도시가 그 교회를 삼켜버렸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고린도의 신자들은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도시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후 55년경에 보냈다.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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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고린도전서1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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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설립 109주년 기념 추수감사주일
- 믿음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소망과 사랑 둘이 살고 있었네. 소망이 집을 비울 때는 사랑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슬적 가 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소망을 줍고 있었고 위에 있던 십자가, 날개를 펴고 있었네. 날개를 퍼덕이며 십자가는 말했네. "어서 오게, 그대 집으로..." 하늘이 보내준 은혜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잎새들의 자유. 작은 마당은 산그늘에 덮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창수 목사는 자신의 설교 십계명을 통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메신저로 살려는 간절한 바람을 지니고 있다. 그는 2024년 11월 3일 주일, 한복을 입고 강단에 섰다. 대명교회(1915년 11월 7일) 설립 109주년 기념과 1908년 한국교회가 정한 추수감사절 예배를 기리기 위해 시편 103:1-8 본문에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20세기 최고의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그날 이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꾸며 낸 이야기지만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지를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특별한 은혜를 베푼 자들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시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셨는데 막상 큰 은혜를 받은 그를 찾아가 보니 완전히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었고 손발을 덜덜 떨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앉은뱅이 때는 구걸하면서 살 수가 있었고 얻어먹을 수가 있었는데 오히려 정상이 돼서 걷게 되니까 구걸하여 얻어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맞는 직장도 없고 이것저것 방황하다가 인생을 원망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향해 가시는데 이번에는 한 불량자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다른 불량자와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불량자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진흙을 발라 눈을 뜨게 한 바로 그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눈을 뜨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불량자로 살아가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세상의 돌아가는 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세상이 어떻게 이 모양이냐? 이런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나서 화풀이를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참 가슴 아픈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시편 103편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인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benefit 恩澤 은혜와 덕택)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은택이라는 이 단어는 좀 특이한 단어입니다. 은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게물’이라는 말인데, 보상, 공적, 행위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주석가 반즈(Albert Barnes 1798 12. 1 - 1870 12. 24)라는 분은 이 ‘은택’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합니다. ‘은택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로운 사역을 총칭할 때 쓰는 <게물>이라는 단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잊어버리고 살지만, 숨 쉬고 살아가며 이 땅에서 지금까지 온 것과 오늘 이곳에 찾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것들이 은택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베푸신 모든 사역을 말할 때 쓰는 단어가 바로 ‘은택’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라’는 단어는 히브리 동사 ‘샤카흐’입니다. 잊지 말라는 동사 ‘샤카흐’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 속에서 기억이 떠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지칭할 때 하는 말이 바로 ‘샤카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산과 바다와 온 우주와 같이 넓고 크지만 우리는 그 자체를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도 우리를 보호하시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택을 거부하면서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뿌리라면 감사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감사의 크기와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어. 저 사람은 참 거룩하게 보여 저 사람은 중직을 맡았어. 심지어 저 사람은 목사야.’ 이것은 그분의 믿음의 수준이 아닙니다. 삶의 실생활 속에서 그분이 얼마나 많은 감사의 열매를 맺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어 단어 중에 ‘overflow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넘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넘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에 물이 있는데,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어서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홍수가 나서 물이 완전히 제방을 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저는 ‘overflowing’이라는 단어가 신앙생활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잔에 물이 넘치거나 홍수가 나서 물이 둑을 넘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감사가 지나칠 정도로 가득 넘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며 그 은혜가 마음속에 가득 차 흘러넘치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멋진 노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노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이렇습니다. 저 할아버지는 감사하는 것이 좀 지나친 것 같아! 아니 저 할머니는 좀 과하게 감사를 해!’ 이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멋진 노인은 감사의 사람’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오늘 저희는 교회 설립 109주년 기념 주일과 또한 이 한 해의 추수 감사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보통 전 세계에서 추수 감사 주일은 11월 셋째 주일입니다. 그렇지만 저희 교회는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 대명교회가 바로 첫 설립 예배를 드렸던 날이 11월 첫째 주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첫째 주일을 감사 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또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보호하심에 감사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고 온 교회가 함께 그분의 은혜를 고백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온 교회가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서로 나누고 감사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살려 주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시편 103편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입니다. 첫째, 대명교회를 지난 109년 동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성도는 깊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대명교회가 설립된 1915년 그 당시 1910년대는 조선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 치하였습니다. 구한말 1905년에 을사조약이 있었고, 1910년 8월 22일 강압적으로 한일합방이 되어 진짜 미래를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그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한국의 선교 역사를 보면 우리가 1800년대 말부터 선교사들이 조선에 가장 많이 들어왔습니다. 가장 많이 선교사들이 들어왔던 때가 바로 일제 치하 속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때입니다. 많은 선교사가 미국, 캐나다, 호주, 러시아, 영국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절망의 땅, 흑암의 땅인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교회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1915년 11월 6일에 역사적인 첫 설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경상도 장로교회사』라는 책에 보면 그 당시에 우리 교회의 기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당시 동산병원의 2대 병원장으로 부임한 의료 선교사이자 목회자였던 아치볼드 플레처(Archibold D. Flecher-한국명:별리추)라고 하는 선교사님이 제중원(지금의 동산병원)의 2대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이분은 목사이자 의사이자 선교사였습니다. 평일은 열심히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업무가 토요일 오전까지 계속되었는데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분이 그 피곤한 육신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자신의 왕진 가방에 각종 연고와 많은 의료 약품을 가지고 무료 진료와 전도를 나갔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염증 하나가 생기고 고름이 생기는 곳에 연고만 잘 발라도 나을 수 있는데, 이 간단한 조치나 약이 없어서 팔을 자르고 심각한 육신의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플래처 목사님이 동산병원에서 가까웠던 대명동 지금의 계명대 근처에서 서부 정류장에 이르기까지(지금의 대명동과 성당동 일대) 열심히 전도하며 진료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러한 사역을 계속해서 하자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2M나 되는 선교사가 나누어주는 약을 바르면 낫는다. 병을 치료해 주더라.’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을 찾았고 선교사님은 치료와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때 전도 활동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는데 이 분이 바로 박덕일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대명교회에서 전도사로 계셨고 나중에는 동산병원에 근무하시다가 목사님이 되는데 플래처 목사님은 박덕일 조사와 함께 매주 토요일 전도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드디어 전도의 결실로 7명의 성도를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예배드릴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배 장소를 놓고 기도했고 아마 전도 받고 처음 예배 장소가 없어서 4년에서 5년 동안은 대명교회 최초의 집사였던 최복암 집사님 집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플래처 목사님은 동산병원으로 돌아가 거기에 근무하는 몇 의사분들과 간호사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들은 대명리 근처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분들이 예배를 드릴 장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헌금을 해서 예배 장소를 마련합니다. 그들이 헌금한 액수가 당시 돈으로 80원인데 이 돈으로 초가집 한 동을 매입합니다. 8칸의 초가집을 매입하고 교회를 정식으로 설립을 합니다. 1915년 11월 첫 주에 플래처와 박덕일 조사와 성도들이 모여서 역사적인 첫 설립과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이어서 교회의 설립자는 플래처 선교사로 하고, 최초의 당회장으로는 브루엔(Henrry Munro Buruen) 선교사님이 맡으셨습니다. 그렇게 대명교회가 첫 설립이 되어서 오늘 109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집을 첫 예배의 장소로 제공한 최복암 씨가 최초의 집사가 되었고 1918년 1월에 배석주 전도사님이 대명교회 최초의 목회자로 부임을 했습니다. 1920년에 김도현 씨가 영수로 선출이 되었고 1921년에 우리 대명교회가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하여서 일반 학교를 설립합니다. 1922년에 첫 부흥회를 하고 1932년에 우리 대명교회가 정상적으로 조직이 되었습니다. 목회자인 전도사가 있고 교역자와 장로님의 역할을 하는 영수가 있었고 집사를 임명합니다.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이때 네 분의 집사님을 세우는데 그 집사님 중의 한 분이 서대암 집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나중에 저희 교회 장로님이 되셨는데 서대암 집사님이 바로 현재 저희 교회 장은환 장로님, 전무중 장로님 두 분 원로 장로님의 외할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 교회가 1938년까지 지속적으로 교회가 안정적인 부흥을 하고 1938년 11월에 정상용 장로님이 최초로 장로로 취임을 하며 당회가 조직이 됩니다. 이때 우리 대명교회는 남자와 여자가 커튼을 쳐서 서로 분리해서 예배를 드렸고 이 당시에 장년 35명, 그리고 주일학교가 40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1938년은 안타까운 해입니다. 바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말도 안 되는 일제의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가결합니다. 신사참배가 하나의 예의에 해당된다고 하면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하고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평양에 있는 신사에 가서 절을 하는,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일제는 구체적으로 이때 탄압으로 황국신민 서사 제창, 그리고 그들의 황국 시민으로서 황제와 그들의 조상들에게 절을 시키는 이런 종교 행위, 우상 숭배행위를 시켰습니다. 교회마다 엄청나게 협박하며 공출이라는 미명 아래 너희들이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라고 돈이나 쇳덩어리나 쌀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에 우리 대명교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한 분밖에 없었던 정상용 장로님이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교인들에 대한 압박이 있자 우리 교회 종을 자진해서 수레에 싣고 경찰서에 갖다 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 아픔이 있었음에도 대명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신사참배 동방요배를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각오를 하면서 교회 안에 걸려있는 동방요배를 위한 휘장을 찢어버립니다. 이것 때문에 1939년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대명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동방요배를 하지 않고 휘장도 걸지 않자 1943년부터 45년까지 일본 경찰은 대명교회 당회를 강제로 폐쇄를 시켰습니다. 이때 일제의 핍박으로 축소된 교회도 많고 이상하게 변질된 교회도 많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로 오늘 초가집에서 시작됐던 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고 7명의 성도가 3000여 명의 성도로 하나님은 부흥을 시켜주셨습니다. 저희 교회 주차장 출구 쪽에는 ‘Grace Chapel’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교회가 서 있습니다. 교회 조경이나 장식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출차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대명교회에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나에게 주신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의미로 작은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인 초가집을 짓지 못하고 적벽돌 작은 교회를 지었지만, 힘들고 어려웠고 첫 시작의 미약함 속에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눈물과 헌신으로 달려온 신앙 선배들의 그 지조와 희생을 우리가 기억하고 하나님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자는 의미입니다. 일제의 핍박과 시대를 달려 오며 수 많은 교회가 사라지거나 감소하였지만, 우리 대명교회는 109년이 지난 지금 100주년이 되던 해 교회 이전은 물론 대구를 대표하는 교회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 베풀어주셨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고 그 신앙의 유산들을 여전히 우리 대명교회가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추수 감사 주일인 오늘 우리 교회와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대명교회를 부임하고 지난 20여 년 얼마나 많은 감사 주일을 보내었습니까? 설교만 해도 40회 가까이 감사 주일을 지키면서 말씀드린 것은 여전히 첫 번째 개인적 감사는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가장 큰 감격은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어린이 예배 때도 제가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가슴이 뭉클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너희들을 선택하셨다는 교리를 가르치는데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문제 있는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3절에도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4절에서는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의 파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쇼트’인데, 구약에서 23번이 나옵니다. 그 뜻은 ‘죽음, 무덤, 구덩이, 함정, 지옥’ 등의 다양한 말로 번역이 됩니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우리를 살려주셨고, 우리를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고, 우리를 지옥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죽음과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여 영생과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인생을 짓누르는 죄입니다. 죄의 무게로 지옥에 빠질 인생이 예수를 믿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습니다. 죄의 짐을 벗고 영원한 하늘나라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부활의 축복을 누리고 영생을 누립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길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미국 탈봇 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를 할 때에 도서관 비디오실에서 Amazing Grace 찬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찬양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미국 소년 교도소, 흉악범들이 있는 심지어 남미에 있는 포악한 수용소 속에서도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바로 나 같은 죄인도 주님이 살려주셨다는 그 찬양을 부르며 곳곳의 교도소에서 눈물로 찬양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곡을 쓴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은 노예를 팔아먹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찬양의 영어 가사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과거의 나는 생명을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찾았습니다! 과거의 나는 눈먼 자였으나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찬양을 작사한 패니 제인 크로스비(Frances Jane van Alstyne, 1820년 3월 24일 - 1915년 2월 12일)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생후 6주 때의 눈병 치료를 하는데 가짜 의사에게 맡겼다가 각막이 손상되고 평생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분노와 저주, 원망과 불평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외할머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평생 감사였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등 수많은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앞을 볼 수도 없고 평생 불편하게 살아가는데, 어떻게 원망과 불평 없이 감사로 살아가느냐?’ 그녀가 대답합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평생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4정 7절에서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올 한 해도 주의 은혜로 어려움 가운데도 안전하고 무사하게 지켜주셨고 수십 번 위험한 고비도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할 뿐이지 하루에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40번 이상의 위험한 일들을 맞닥뜨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자녀들을 초라한 죄인의 모습이 아닌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우신다는 겁니다. 인자와 긍휼로 늘 사랑으로 명예롭게 하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여겨주십니다. 저를 돌아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격 없고 죄인이지만 인자와 긍휼로 이끌어 주시고 명예스러운 관을 씌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난한 집안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의 가난과 고통의 시간들... 연약하고 키도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이 서글퍼지는데 요즘은 잘생겼단 소리를 자주 들어요. 지난 금요일 서울에 CBS의 올포원 크리스마스 특집 촬영을 하러 갔더니 얼마나 칭찬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분장하는 선생님도 말해요. ‘목사님 잘생겼어요.’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분들도 ‘목사님 피부가 어떻게 이렇게 좋아요.’ 아나운서도 ‘목사님 손주 보셨다면서요. 청년 같으세요.’ 옆에 같이 촬영하는 여자 연예인도 ‘목사님 진짜 잘생겼어요.’ 그런데 그 말들이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야...’라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게 해주시고 나를 회복시켜 주시는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사랑으로 자녀들을 초라한 죄인의 모습이 아닌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표현의 능력』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감사 렌즈를 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다. 감사 렌즈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들 수많은 삶의 부분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로 충만한 것입니다. 붉은 렌즈를 끼면 붉게 보이듯이 파란 렌즈는 파랗게 보이듯이 감사 렌즈를 끼고 살면 감사가 넘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죠. 『표현의 능력』은 감사 렌즈를 끼면 4가지 능력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지나간 시간 속에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둘째,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한다. 셋째,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게 한다. 넷째, 우리가 잃은 것이 아닌 우리가 가진 것을 보게 한다. 우리는 구원의 은총과 감사 렌즈를 끼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베푸신 일상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일상의 은혜는 주셨습니다. 숨 쉬고 살고, 이 지구에서 공기와 물과 일용할 양식과 사랑하는 삶의 터전과 모든 삶의 영역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일상의 영역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감사의 렌즈를 끼면 그것이 감사로 보이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까지 우리는 약 88개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도 하루에 8억 명씩이 굶고 있다고 해요. 전 세계에는 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동유럽 집회를 가보니 마실 물이 전부 석회질이에요. 우리나라 물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영역들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아닐까요? 최소한 이런 감사 절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상의 은혜를 한 번 더 생각하며 감사의 렌즈를 끼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쌀밥 먹는 게 소원이 아니라 덜 먹는 게 목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먹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지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덜 먹을까? 식당에 가도 공깃밥 한 그릇 다 드시려는 분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베푸시는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푸시는 은혜, 우리 자신들에게 베푸신 특별한 일상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면서 부르짖을 때 우리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우리의 인생에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107편 6절에서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8절에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절에서도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기도할 수 있는 은총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작가이자 목사인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선물 은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아니요. 1분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경험적 고백입니다. 그는 정말 건강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정맥이 왔습니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갔더니 전극도자절제술을 권유합니다. 그러면서 맥스 루케이도가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우리가 일상의 은혜를 모르고 지내는데 우리는 심장이 뛰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1분 1초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그래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할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는 너끈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타락한 당신을 은혜로운 삶으로 적극 인도하십니다. 은혜는 주님이 전부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시기에 은혜가 살아 있고 그분이 일하시기에 은혜가 일하고 그분이 중요하시기에 은혜가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은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은혜가 우리를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그의 글 중에 ‘은혜가 우리를 찾는다!’ 이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되고 좋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어메이징 그레이스...” 2024년 지난 10월 10일 놀라운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7년 10월 30일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으며, 2015년 1월 1일에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영어판이 출간된 '채식주의자'(菜食主義者) 저자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앞으로 다른 한국 작가도 전 세계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테니 한국 문학으로서도 ‘놀라운 은혜(어메이징 그레이스)의 바다’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소망하는 믿음의 순례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믿음의 순례자인 우리는 때로 그런 은혜를 ‘어쩌다’ 만나 인생의 순례길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마치 109번째 감사주일을 기념한 대명교회와 제109회 총회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한 몸이었던 것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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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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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설립 109주년 기념 추수감사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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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소강석 추수감사절 가수 시인 목사
- 한 가수가 나타나기까지 그의 인생은 저 멀리서 천천히 달려온다. 가수는 새로운 창조라기보다 믿음과 예정의 두 대상이 만나야 할 지점에 정확히 도달하는 ‘예정된’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강석은 그렇게 이 시대가 원하는 달란트와 현실의 지분을 조화롭게 장착한 채 세상에 나왔다. 가수 소강석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요셉처럼 꿈 많은 자기를 지키며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을 즐겁게 하면서도 자신이 망가지지 않는 법을 쾌활한 그가 우직하게 보여준다. 믿음의 사랑은 격정 어린 투정이 아니라 진공관 라디오 주파수처럼 지직거리며 끈기 있게 맞춰가는 것이라고. "나는 좋은 목사입니까?" "당신은 좋은 신자입니까?" 그 무겁고 순진한 질문을, 나와 네가 연결되어 그 믿음이 완성된다는 진실을 믿음의 절창으로 가수 소강석이 알려줘서 고맙다. 물든 잎새 뒹구는 가을 끝자락 1620년 신대륙 플리머스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지킨 청교도들(Puritans)처럼 찬송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시인 소강석은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처럼 세련된 영롱함 보다 마치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에 신기하기만 하던 만화경 속의 모습과 닮았다. 대도시의 세련미 나는 모습과는 반대로 오래된 벽시계의 늘어진 추 같은 느릿함과 골동품 냄새가 풋풋하게 나는 그런 투박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또 목사 소강석은 공원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는 크고 푸르른 침엽수 같다. 또 다른 모습의 소강석은 무겁고 느릿한 숨소리 사이사이로 온갖 새싹이 움트고 새들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전하고 찬송하는 목사이다. 나의 느낌이 아직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흐릿하더라도 천연색으로 복원하면 생동감 넘치는 소강석 목사의 모습이 2024년 11월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뚝 선 새에덴교회에서 가수, 시인, 목사로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1, 8-9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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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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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소강석 추수감사절 가수 시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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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 로마서Romans는 그리스도교의 헌법이나 그리스도인 선언서라고도 불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완전한 개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3개월 머무르며 로마로 편지를 보낼 때 3차 선교여행 중이었다. 그는 로마의 신자들을 방문할 계획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가 있다. 싯딤나무의 기도 _소강석 메마른 광야 뜨거운 바람만 불어오는 지평선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사막에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싯딤나무 가지가 구부러져 쓸모도 없고 가시가 많아 사람도 다가오지 않는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싯딤나무 그러나 당신은 그 쓸모없는 싯딤나무를 꺽어 법궤를 만들라 하셨네 세상에서 방황하며 찢기고 상한 영혼 가시로 가득한 쓸모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내게 찾아와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나를 사랑하리라 말씀하여 주셨네 그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인생 그러나 당신은 그 쓸데없는 싯딤나무를 꺾어 당신의 제자를 삼아주셨네 나도 싯딤나무가 되게 하소서 이 쓸모없는 죄인 가시로 가득한 교만 당신의 손으로 다듬어 영광의 성전 쓰임 받게 하소서 거룩하게 되는 성화는 신자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성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누어주시고 거룩한 성품과 행동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지위와 신분은 사람들 앞에서의 거룩한 생활로 인도한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딸린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즉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마치 쪼개지면 법궤가 되고 하나님의 손으로 다듬어지면 영광의 성전에 쓰임 받게 되는 그런 한 그루 싯딤나무같은 믿음과 행위처럼 말이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 편지는 그가 로마로 가는 길을 예비해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그릇된 비난들에 답을 하고 로마를 더 빨리 방문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주장을 로마서 곳곳에서 제시한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진술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기록된 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은 로마서의 핵심 진술이다. 로마서의 기본 주제는 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포로 의롭게 되고 의롭게 살다 죽는 삶이다.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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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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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로마서Ro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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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교회 재개발ㆍ재건축 특별세미나」 개최
- 12월 2일 총회회관에서 "망설이면 늦습니다. 재개발ㆍ재건축에 따른 모든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드립니다.“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 대표 소장 김철원 장로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대표 소장 : 김철원 장로)가 12월 2일 강남구 대치동 총회회관에서 「교회 재개발ㆍ재건축 특별세미나」를 개최한다. 금번 세미나에서는 한국교회가 재개발ㆍ재건축에 잘 대응하지 못해 경제적 손실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평소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 왔던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 대표 소장 김철원 장로가 "망설이면 늦습니다. 재개발ㆍ재건축에 따른 모든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드립니다."를 기치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강의 내용으로는 1. 도시개발 유형별 협상전략 2. 현재 진행 중인 절차에 따른 협상 방법 3. 협상이 어려울 때 대응방법 4. 협상 결과에 따른 교회미래계획 행사일정(이전, 전매, 신축) 5. 도시개발 이후의 교회미래예측(방향성 판단) 6. 교회와 조합협상 사례 연구(타교회 협상 사례) 등이다. 한편 세미나 강사로 나서는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 대표 소장 김철원 장로는 예장합동 재개발ㆍ재건축 위원회 전문위원 을 맡고 있으며 26년간 200여개 교회의 신축 리모델링을 시공했으며, 50여개 교회의 재개발 협상을 진행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이다. ■참석신청 : 2024년 11월 29일(금) 오후 6시까지 ■등록비 : 1인당 3만 원(사전 등록 시 면제) ■접수처 : HP. 010-2894-4484 ■홈페이지 : www.hira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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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국교회미래건축연구소,「교회 재개발ㆍ재건축 특별세미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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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 바울의 돗단배 사도행전Acts의 더 나은 제목은 교회를 통한 성령행전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따랐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누가복음의 자매편으로 기록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3절의 기록이 누가복음 1장 1절에서 4절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젊은 수도자에게 _스와미 묵타난다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인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수도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진리를 보고 만나야 한다. 이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어떤 역할을 맡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던 사울처럼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러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임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의 전반부 1장에서 12장까지는 베드로의 사역이 주를 이룬다. 그 다음 사도행전 후반부 13장에서 28장까지 누가는 바울의 사역에 집중한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의 시련과 사역의 체험들이 평행을 이룬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의 믿음의 문을 열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천국의 열쇠들을 사용했다. 바울은 로마 제국 내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사도행전의 밑그림을 그린다. 사도행전은 유대인을 위한 사역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전해졌는지 설명한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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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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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사도행전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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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억희 목사의 칼빈 선교신학
- 나라의 재난과 총회 사명 인상파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던 건 당대의 화가들이 단순히 빛의 색채와 질감에 매혹되어서가 아니라 ‘빛의 인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표현하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상파 중에서 세잔의 엄격한 화풍에 대비되는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화려한 멋을 보인 화가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 ~ 1919년 12월 3일)가 말했다. “빛이 시시각각 바뀌어서 올리브나무를 그리기가 참 어렵다.” 그들에게 빛이 쏟아지는 풍경은 축복이자 자극임과 동시에 더 잘 그려내고 싶은 도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프랑스 혹은 프로방스라고도 불리는 곳의 인상파 화가들처럼 칼빈대에서 평생을 칼빈주의 발전에 바친 사람이 있다. 이억희 목사는 2024년 10월 30일 예담교회 카페에서 나누는 커피와 온수의 향기를 나누며 칼빈에 대해 말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불살라지고 내 몸이 불태워져도 폐하께 바칩니다. 그런데 불태워질 것에 대비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글들을 제네바의 학생들에게 무두 나눠줬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톨릭 옹벽을 뚫고 나가서 각 나라에 그 내용이 전파돼습니다. 결국 이것은 칼빈의 선교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문서선교이기도 하죠. 그리고 제네바 대학의 전신 제네바 아카데미를 운영했죠." 제네바 아카데미는 1559년 6월 5일 칼빈을 의장으로 하여 생 피에르 교회(St. Pierre Cathedral)에서 열린 집회를 통해 개교했다. 여기에서 발전한 제네바 대학교(Université de Genève)는 스위스의 공립대학교이다. 제네바에 위치해 있고, 불어를 사용한다. 1559년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이 신학, 법학, 인문 교육 기관으로 창설한 뒤 대학이 자리 잡은 건물은 1564년에 가서야 완공되었다. 이 때에는 약 1,500명의 학생들이 있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신학이나 법률 중 한 과목을 공부할 수 있었다. 1873년에 종합대학교가 되었다. 오늘날, 제네바 대학교는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교이다. 이억희 목사는 계속 말했다. "칼빈은 사회 복지선교를 했죠.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그의 선교 세계는 가는 곳미다 예수만 전했잖이요. 칼빈만큼 선교에 전념한 인물이 없어요. 그래서 칼빈을 선교의 선구자(pioneer)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학을 배우기 전에 목회와 성경신학과 선교를 배우지 않고 조직신학부터 배웠기 때문에 싸움만 하는 겁니다. 우리 총회처럼. 신학가지고 싸우잖아요. 결국 잘했다 잘못했다 이거믄 신학에서 나오는 거고 긍휼과 사랑은 목회와 선교에서 나오죠. 총회 드나드는 목사마다 신학만을 말하니까 싸움만 해요. 싸워서 이겨야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칼빈은 그걸 진리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어떻게 복음과 생명의 능력을 이 땅 끝까지 가서말하냐 선교의 열매를 맺느냐 하는 걸 말했습니다.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는 신학의 목적은 가톨릭에 대한 저항과 개혁이거든요. 그래서 기독교 강요는 가톨릭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하는 변론서 아닙니까. 그래서 개혁주의가 나온 것이고 수많은 순교자가 나와도 가톨릭과 선을 긋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 종교개혁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종교개혁이라는 기적이 필요한 시간. 그렇다. 인간의 대응 능력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2024년 11월 1일 1년여 이스라엘과 회교도 세력의 분쟁과 2년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기도뿐일 것이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일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필요한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겪는 재난에 대한 법칙을 소개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 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가슴 아픈 대형 사고를 많이 경험했는데 1990년대가 특히 그랬다. 1993년 구포 열차 사고, 아시아나 추락 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8년 IMF 금융 사태, 1999년 씨랜드 화재, 인터넷 대란과 같은 재난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을 때 또 다른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사고는 왜 지속적으로 일어날까. 어떤 이는 과거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라 하고, 성장 위주 경제정책으로 인한 폐해라고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장에 바빴던 우리 사회는 사회 전 분야에서 안전을 가볍게 여기고 안전을 문화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인적 재난관리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도 1995년 508명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사망자 10인 이상의 대형 재난 276건 중 42%가 인적 재난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적 재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는 본격적인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소방방재청 신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수립 등 국가 안전관리 계획이 마련됐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05년 양양 산불, 서해대교 29중 추돌, 2007년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 유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화수소 누출 사고 등이 발생했고, 2014년 2월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 사고, 같은 해 4월에는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고난의 단초가 됐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분명히 제도적인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안전 관련 가치관 미흡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안전 문화의 부재에 있다고 판단된다. 안전은 법과 제도나 사회적 인프라 같은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가치관, 국민의 의식과 그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도덕의식을 배양하는 신앙적 정직이다. 문재인식의 무책임한 발언, 이재명식의 부정직한 둘러대기, 성직자의 지역 편향이나 좌경화, 사회 구성원의 신분 여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배금주의 등의 문제점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성경으로 돌아가 회개운동을 펼치는 길뿐이라는 자각뿐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물론 우직한 김종혁이지만 제109회 총회가 새로운 각오로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더욱 성숙시키고 정직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물이 있다. 그는 도산 안창호다. 도산 안창호는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로서 흥사단, 국민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분이다. 말년에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 사건과 동우회 사건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하던 중 1938년 6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으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다. 그의 시신은 현재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 아내와 더불어 안장되어 있다. 그의 민족 사랑의 깨달음과 신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18세의 나이로 서울에 올라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구세학당과 정동학당에서 배운 기독교의 가치관과 예수 신앙이었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구세학당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모습과 정동학당에서 전도하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전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열심히 있었던지 당시 발행된 신문에 리석관이라는 하는 선비가 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다가 안창호라는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후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군 송만리에 학교와 교회를 세워 교육과 전도를 함께 하였다. 안창호는 자신이 믿는 기독교의 복음이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널리 전파하는 데에 앞장을 섰다. 도산은 1936년 10월 죽기 1년 반 전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청년회 연합 집회에 강사로 서게 되었다. 이날 소문을 듣고 모인 청중이 교회당 밖 뜰까지 가득 차서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이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모세가 히브리 노예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 애굽으로부터 해방 받는 장면을 출애굽기 14:21-28 본문으로 선택하여 병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장장 두 시간이 넘게 말씀을 전하고 다음의 말로 끝맺었다고 한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의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가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손님입니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 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감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 진정한 주인이 적다 싶으면 빨리 나부터 참 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나가자”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에 걸친 그의 설교를 마친 뒤 도산은 모든 회중에게 다 기립하기를 청하고 “나가자!”는 구호를 세 번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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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억희 목사의 칼빈 선교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