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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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노회 속회 전말(顚末)
    공동묘지 이장 공사가 진행되는 5일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에피소드 식으로 담아낸 이문구의 자전적 소설 ≪장한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네들은 자초지종 지켜봤거나 최소한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네들 말을 사실로 알아 무방할 것이었다. 깊이 사무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뜻의 제목 ≪장한몽≫의 죽음과 삶이 뒤섞이는 공동묘지 이장 현장에서 도시하위계층인 등장인물들은 일이 벌어진 전말을 통해 ‘삶의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듯 충남노회에서 벌어진 일의 전말을 통해 우리도 총회의 진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충남노회(노회장:임민순 목사)는 2014년 11월 17일 태안 성신제일교회(임민순 목사)에서 제131회 제1차 임시노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임시노회 소집 적법성 논란과 총회재판국의 이상규 목사 등에 대한 시벌과 관련해 회원들 간의 이견 차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모임에서는 이상규 목사가 “서기직을 사임한 적이 없으며 내가 소집을 안했기 때문에 임시회는 불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노회장 임민순 목사는 “서기 본인이 서기직을 보류하겠다고 했고, 앞서 노회에서도 부서기가 서기를 대행했다”며 특수한 상황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했다. 윤익세 목사는 “총회헌법에 따라 특별한 사건이 있을 경우에는 목사 3인 장로 3인의 청원에 따라 회장이 임시회를 소지할 수 있다”며 합법적인 임시회라고 주장했다. 윤 목사는 또 서기 이상규 목사는 이미 총회재판국 판결에 따라 공직이 정지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3월 30일 총회재판국(국장:배광식 목사)은 전체회의를 열고 충남노회 윤익세·임창혁 목사의 소원 건을 확정판결 했다. 총회재판국 판결 주문에 따르면, 충남노회 서기 이상규 목사는 강도권 외에 공직정지 2년에 처해졌다. 이번 사건은 제99회 총회에서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채용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충남노회가 총회 결의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총회임원회는 3월 3일 ‘제99회 총회결의 이행촉구’ 공문을 추가로 보내기도 했다. 판결문은 “3월 30일 현재까지 충남노회가 판결대로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주문과 같이 확정판결 한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상규 목사는 당회 청원 없이 강도사 인허를 불법으로 진행했다. 또한 노회 서기임에도 불구하고 회의록 변조와 불법 등이 인정되며, 서기의 직무를 남용하고 업무방해로 노회 질서를 어지럽힌 죄가 인정됐다. 또한 임원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 규정의 불법성이 인정되므로 총회 헌법과 노회 규칙대로 재실시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4월 6일 천안 여명교회(이단화 목사)에서 충남노회 제132회 정기회가 열렸다. 그러나 개회 전부터 이상규 목사의 서기직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었다. 총회재판국이 공직정지를 주문한 이상규 목사가 회원 호명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찬반 이견 때문이었다. 논란 끝에 이상규 목사의 서기직 수행건에 대해 찬반 투표 결과 서기직을 감당해야 한다는 표가 더 많았다. 이상규 목사는 이후 임원 투표에서 다시 서기로 선출됐다. 논란은 선관위원회 보고에서도 계속됐다. 총회재판국으로부터 공직정지 1년 결정을 받은 박노섭 목사가 총대 후보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찬반 논란이었다. 결국 선관위원회는 회의 끝에 ‘총회 판결문 주문에 따른다’는 원칙을 세우고, 박 목사를 총대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상규 목사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이 유효하므로 총대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기회에서는 또 윤익세 목사를 총회부서기 후보로 추천키로 했다. 겉보기에 양측이 윈윈한 것 같은 이날 노회의 선임자들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이단화 목사 부노회장:김신점 목사 신요섭 장로 서기:이상규 목사 부서기:고석득 목사 회록서기:정제충 목사 부회록서기:소대영 목사 회계:윤선현 장로 부회계:이상국 장로 ☆총회총대:이단화 김신점 윤익세 이상규 이순상(이상 목사) 우인권 신요섭 윤선현 최현수 조문상(이상 장로) ☆GMS이사:김신점 윤익세 목사 ☆기독신문이사:우인권 장로. 충남노회 제132회 정기회의 이러한 선거 결정에 대해 해당 목회자를 재판국에 제소했던 충남노회 윤익세 목사는 임원 선출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내용의 소원장을 총회에 올리고, 총회임원회 앞으로도 조사처리요청서를 냈다. 총회장은 이와 관련해 총회임원회를 거쳐 충남노회 직전노회장에게 ‘선관위 위원장이 당선 선포를 하여 임원 교체가 이뤄진 것은 잘못이며, 흠 없는 임원을 다시 선출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직전노회장 임민순 목사는 6월 5일 노회 속회 소집을 노회원들에게 통보했다. 그 통보대로 6월 5일(금) 오전 10시 아산사랑의교회(윤익세 목사)에서 모인 속회는 문제가 된 노회 임원 노회장과 서기만 선출했다. 노회장은 이단화 목사에서 임창혁 목사로, 서기는 이상규 목사에서 윤익세 목사로 교체 선출했다. 그리고 이날 속회에는 총회 임원회 소위원회로 구성된 지도위원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목사와 장로가 존경하는 부총회장 이호영 장로를 비롯해 부흥회에 능한 부회의록서기 김동관 목사, 계산에 느릴 것 같은 부회계 이춘만 장로 등이었다. 그날 새로 선출된 노회장 임창혁 목사와 서기 윤익세 목사는 그 다음 주 총회로부터 대표자 증명서와 노회 서기에 대한 사실증명서를 신속하게 발급받았다. 서기로 선출되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선 윤익세 목사는 “어떤 산이든지 넘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번 충남노회 속회는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총회의 부도옹(不倒翁) 윤익세 목사와 얽힌 충남노회 속회의 전말은 이렇다. 이제 굽이굽이 연이어진 산마다 그가 자신의 말처럼 어떻게 번번이 오뚝오뚝 일어서 넘을지 그 전말이 기대된다. 2015-06-15
    • G.NEWS
    • G.NEWS
    2015-06-15
  • 전염병과 믿음의 예방
    낙타도 없는 한국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세계 2위에 올랐다.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와 멸균 안 한 낙타유 섭취를 삼가라.’ 늘 잠이 덜 깬 표정의 문형표 장관이 거느린 보건복지부에서 내놓은 메르스 예방법 중 하나다. 늘 웃는 사진을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검찰조사를 받던 피의자 성종안의 메모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진정성과 능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처음엔 병원 공개도 안 하고 마스크도 필요 없다더니만 17일 지나서야 친 동성애자 박원순 시장의 한밤중 닦달에 슬슬 감염자 병원을 공개하고 마스크도 쓰라고 하고. 이제 많은 학교가 휴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능한 대통령과 정부가 정보만 틀어쥐고 바이러스를 잡아야 하는데 괴담만 때려잡았다. 1898년 네덜란드 미생물학자 마루티누스 베이예린크는 담배모자이크병(病)을 연구하면서 세균보다 훨씬 작은 무언가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균을 막는 미세한 여과지로도 걸러지지 않았고 알코올을 넣거나 열을 가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이 정체불명 물체를 '살아 있는 감염성 액체'라고 표현하면서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뱀의 독'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였다.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에서 숱한 재앙을 일으켰다. 1500년대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옮긴 천연두 바이러스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사망했다. 1918년에 크게 번졌던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볼라 출혈열, 사스, 신종플루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전염병 출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10% 정도는 바이러스의 힘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지구상 모든 생물이 바이러스로부터 진화했고 인간의 유전자에도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미국 과학 저술가 칼 짐머는 "인간은 포유동물과 바이러스의 분리할 수 없는 혼합물"이라고 했다. 바이러스가 기후와 토양을 비롯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지구는 '바이러스 행성'이라는 얘기다. 의학이 발전하고 백신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전염병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교통이 발전하고 사람들 간의 이동이 급증하며 전염병의 전파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창과 방패의 전쟁처럼 백신을 넘어 진화하고 변종하는 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종말 시나리오 중 하나다. 인류와 전염병의 전쟁은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서막이 올랐다. 과거 소규모 집단 내 발병과 달리 급속한 확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첫 전염병은 아테네 역병이다. 대표적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430년경 역병이 유행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 역병이 고열, 염증, 구토, 궤양 등의 증상을 수반했으며 살아남더라도 기억상실증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서술했다. 당시 4년간 전염병이 돌며 아테네의 인구 1/4이 숨졌다. 역병으로 세력이 약해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며 쇠락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이 병의 증상을 기록에 남겼다. 아테네 역병은 천연두, 발진티푸스, 탄저병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19세기 대표적 전염병은 결핵이었다. 결핵은 사람의 재채기나 기침에서 나온 미세한 침방울을 통해 사람끼리 전염되는 질병이다. 수년간 사람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병을 일으킨다. 결핵으로 인해 1800년대 초반까지 유럽 인구 전체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19세기 후반 루이 파스퇴르가 백신을 발명하고, 20세기 알렉산더 플레밍이 항생제(페니실린)를 발견했다. 이후 탄저균과 결핵, 콜레라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전염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910~1911년 사이 중국 만주에서 독감이 발병해 약 6만 명이 사망했다. 1918~19년에는 프랑스에서 주둔하던 미군 병영에서 스페인 독감이 발생해 2000만 명에서 5000만 명이 죽었다. 이 전염병이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것은 스페인에서 시작돼서가 아니라 스페인 신문에 처음 보도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도 스페인 독감이 퍼져 인구의 절반 가량인 740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무오년 독감)되어 있다. 그 밖에도 1968~69년 홍콩 독감으로 전 세계 100만 명이 사망했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의해 전염되는 에이즈는 1981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의해 처음 보고된 이후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36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 명의 새로운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3500만 명이 이 병에 감염된 채로 살고 있다. HIV로 사망하는 이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이다. 전쟁에 나선 군대가 처음 적을 상대로 싸우는 싸움을 서전(緖戰)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초전(初戰)이라거나 개전(開戰)이랄 수 있다. 보통은 맨 앞의 ‘서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 이긴 사람에게는 먼저 상대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른바 기선(機先)을 잡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싸움이 도질 때 반드시 선발(先發)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그렇다면 처음 붙는 싸움에서 지는 쪽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선 물리적 피해는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병력 중에서 다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이가 많이 생긴다. 지니고 있던 화력을 잃거나 적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가 우선 만만치 않다. 그러나 더 심각한 측면은 심리적으로 오그라드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다가 그것은 결국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점점 커진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일정한 전기(戰技)를 배우고 또 익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염병 메르스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만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메르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자. 첫째, 메르스는 신종 바이러스인가. 그렇지 않다. 20년 전의 낙타 혈액에서도,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낙타의 75%에도 항체가 발견됐다. 사우디인 1만 명 중 15명에게도 항체가 검출됐다(메르스에 걸린 적 있다는 뜻). 낙타 도살장 인부들의 항체 검출 빈도는 평균보다 23배나 높았다. 그동안 많은 사우디인들이 메르스에 걸렸지만 단순 감기로 알고 넘어간 것이다. 둘째, 정말 치명적일까. 그렇지 않다. 낙타에게 치명적인 메르스였다면 낙타는 벌써 멸종됐을 것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면 하(下)기도, 즉 기관지와 폐 깊숙이 파고들어 중증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어떻게 낙타에서 인간으로 전파됐는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면역력이 엄청 떨어지거나 심각한 중병의 기저질환자를 제외하면 치사율 40%는 과장된 수치다. 셋째, 쉽게 전염되나. 그렇지 않다. WHO는 메르스를 ‘낮은 전염성, 위험한 질환’으로 공식 분류한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인간끼리 전파는 매우 힘들다”고 보도했다. 잠복기에는 전염이 안 되고, 바이러스가 폐 깊숙이 서식하기에 잘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인 사스 바이러스도 폐에 공기를 불어넣는 인공 삽관 과정에서 확산됐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75%나 되고, 여전히 전염경로도 ‘밀접 접촉’이란 게 공인된 학설이다. 넷째, 공기로 전파될까. 그렇지 않다. 국제 의학계는 비말(飛沫=침방울) 전파라는 공식 견해를 지지한다. 다만 재채기를 통한 미세 에어로졸로 전염될지 모른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메르스는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병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에서 바이러스 변이는 없음이 확인됐다. 사이언스도 “주로 병원에서 폐에 있는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만큼 심각한 기침을 해야 비말로 전파된다”며 공기 전염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째, 왜 백신이 없나.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전염력이 강해 큰 시장이 형성됐다면 벌써 백신이 나왔을 것이다. 치명적인 에볼라 백신이 여태 안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비누칠만 해도 껍질이 벗겨져 죽고, 마스크만 써도 안전하다는 게 CDC(Center for Disease Control:미국의 질병통제센터)의 공식 입장이다. 전 세계에서 한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WHO 2010년 기준으로 124만 명이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연간 600만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1일 평균 교통사고가 590건에 사망자가 13. 9명에 부상자가 900명이다. 지금 메르스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지만 그 피해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가 교통사고나 흡연의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듯 메르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4-17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2015-06-09
    • G.QT
    2015-06-09
  • GMS 북한선교전략회의
    한국은 지난 4월 체코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OSJD는 유라시아 철도 운송을 총괄하는 기구다. 한국의 정회원 가입 안건이 북한을 포함한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장관회의 의제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처음엔 반대하다가 OSJD 사장단 본회의에서 반대하지 않아 만장일치로 공식 의제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이 지난 5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해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OSJD 정회원 가입 표결 하루 전날인 6월 3일 사거리 500㎞ 이상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한국은 6월 4일 몽골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제43차 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반대로 정회원 가입이 무산됐다. 정회원이 28개국으로 만장일치제로 운영돼 회원국 중 한 곳만 반대해도 의안이 부결된다. 이에 OSJD 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북한 대표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OSJD 가입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미국과 중국은 6·25전쟁 이후 적대관계를 유지하다가 72년 2월 닉슨의 전격적인 방중으로 화해했다. 22년 동안 원수처럼 지내다 지친 뒤였다. 닉슨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헨리 키신저다. 그가 본 미국 외교는 일찍이 조지 케넌(1904~2005)이 『미국 외교 50년』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듯이 이상주의·도덕주의·법률 만능주의에 젖어 있었다. 그는 국익을 앞세운 현실주의 정치를 미국 외교에 접목시키려고 했다. 그것이 미·중 데탕트(긴장완화)였다. 남북한은 70년을 싸우고도 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지칠 때도 됐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닌 2015년 6월 4일 오후 1시 화성시 월문리 GMS(이사장 김재호 목사) 선교센터에서 북한선교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앞서 드린 개회예배에서 신설된 GMS 북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가 사도행전 19:20-22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이어서 묵직한 체구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길자연 목사(총신대총장)의 간략한 격려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근면 성실한 GMS 이사장 김재호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그 동안 17년에 걸쳐 GMS가 발전해 오는 가운데 이 예배당을 금년 1월 27일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30년 넘은 아주 낡은 예배당이었습니다. 여기서 선교사 훈련생들이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는 귀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낡아 어려운 가운데 8억의 예산을 들여 이 선교센터를 완공했습니다. 4억 정도 모금이 되고 현재 4억이 부채로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5월 7일 제5회 선교사 부모 초청 위로회를 가진 뒤 두 번째 행사 북한선교전략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은 길자연 총장 옆의 강일구 목사의 할렐루야 소리가 환한 예배당에 울렸다. “이 회의를 가지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자꾸 통일이 곧 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총회도 처음에 북한교회재건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교회 재건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너희가 하느냐 하는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남북교류위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실효가 없었습니다. 근자에 통일준비위원회라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이 곧 다가온다는 말이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총회가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GMS도 세계선교가 목표이지만 통일도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선교사들 중에 북한을 위해 사역하는 북방 선교사들이 한 40명이나 있는 겁니다. 북경에서 시작해 단동, 심양, 연길, 훈춘 등지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북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흩어진 북한 선교를 한데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GMS와 연합하여 선교전략을 한데 모아야겠다는 겁니다. 또 이 북한선교를 위해 길자연 목사께서 오래 헌신해 오셨고 김관선 목사도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김관선 목사를 북한위원회 위원장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북한선교회와 우리 GMS 북한위원회와 힘을 합쳐 통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김관선 목사께서 바쁘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8월 10일 현장을 답사한 뒤 다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북한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전략을 논의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전 통일부장관 양영식 박사(성문교회 원로장로)의 “해방 70년 통일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전문일꾼의 사명과 실천과제”, GMS 강한길 선교사의 “GMS의 동아시아를 통한 NK 선교”, GMS 이필립 선교사의 “국내외 탈북민 사역에 대하여” 등의 강의가 이어졌다. 특별히 양영식 박사의 남북통일에 대해 다니엘과 선한 사마리아인을 실례로 들며 전개한 성경적이면서 정부 고위 실무자로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 손쉬운 방법의 논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번 행사 장소가 월문리 선교센터보다는 접근이 용이한 총회회관에서 열렸으면 더 많은 교역자들이 북한 선교와 통일에 대한 열정을 더욱 뜨겁게 불 지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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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8
  • 메르스와 길총장의 처방
    "장 폴 사르트르가 쓴 희곡 '닫힌 방'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옥은 바로 당신들이야!‘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가 수도권을 강타한 지난 3일과 4일 대통령의 똑같은 사진 두 장이 신문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잇따라 실렸다. 첫 사진은 대통령이 지방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모습을 담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경제 회생(回生)계획의 한 축(軸)을 담당하는 대통령의 역점(力點) 사업이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연스럽지 않은 대통령의 웃음을 따라 용케 그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도 한껏 웃고 있었다. 사진 위 1면 머리기사에는 '무너진 메르스 방역… 3차 감염자도 발생'이란 제목이 달렸다. 신문을 통틀어 등장인물이 웃고 있는 장면은 이 사진 한 장뿐이었다. 메르스 1차 저지선·2차 저지선·3차 저지선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여론은 두 갈래로 흘렀다. 한 갈래는 방역 당국과 병원의 무능을 비판하는 흐름이고, 다른 한 갈래는 환자 자신과 시민의 공중보건 의식 결핍을 자성(自省)하는 흐름이다. 두 흐름은 대통령이 어색하게 지어낸 듯한 몸짓과 웃음의 사진에 부딪혀 분노를 일으켰다. 그 순간부터 대통령을 향해 집중 비난이 쏟아졌다. 다음 날 대통령은 메르스 확진 환자가 드러난 지 14일 만에 청와대에서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노란 점퍼 차림의 사진 속 얼굴들은 하나같이 진지하지만 또 어색하고 어설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의 지도와와 달리 언제나 자연스러운 즐거움이나 슬픔이나 결단의 표정이나 몸짓의 전달이 결여된 박근혜 대통령은 '파악하고' '분석하고' '논의하고'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지만 또 세월호 짝이었다. 지난해 5월 2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국장은 말했다. “메르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 그의 말처럼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염된 2명의 미국인 확진 환자에 대한 초동 대응은 완벽했고 2차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에 반해 2015년 5월 23일 언제나 잠이 덜 깬 표정의 한국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유입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한국의 메르스 대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평론가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국장이 말한 철저한 준비와 투철한 책임의식을 가질 때만이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3일 서울의 대형병원 의사가 메르스 2차 감염 환자(확진 순서 14호)를 진료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 최초 3차 감염이다. 군인에게서도 메르스 1차 양성 반응이 나와 병사들이 격리 상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입국한 또 다른 남성이 발열 증세로 메르스 의심자로 되어 검사 중이다.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메르스 확진과 추가 1차 감염 의심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제 메르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응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확산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광범하게 방화용 담요를 덮어 불을 꺼야 한다. 메르스 치사율이 40%라지만 그건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중동 얘기다. 그 지역에서도 병원 내 전염으로 초기 발견된 환자의 사망률은 4% 수준이었다. 한국 의료 수준으로는 훨씬 더 낮출 수 있다. 아직 공기 전염의 증거도 없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공포 자체다. 길자연 목사(총신대 총장)에게 6월 5일 전화를 해 메르스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많은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즉각 막힘없이 무선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현상에 대해 누가복음 21장 11절에서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말세의 현상 중의 하나인데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하는 영적 의미가 있죠. 그 다음은 병은 육신을 공격하는 것인데 사스나 메르스는 다 전염병 아닙니까.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보건복지부에서 얘기하는 대로 손 잘 씻고 우리의 생활 수칙을 잘 지키기만 해도 전염병을 예방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면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교인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두려울 게 하나도 없죠.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믿음으로 예배에는 참석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질병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있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까 재림 신앙을 가지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을 막기 위해서는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손만 잘 닦아도 감기 같은 건 70프로 막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28-36 201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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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6
  • 총신 제29회 Home Coming Day
    2015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30분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서 총신 개교 114주년 기념 제29회 Home Coming Day 및 정기총회가 열렸다. 행사주관 host는 제88회(회장 구복조 목사)였다. 준비위원장 김동식 목사(대구칠곡중앙교회)의 사회로 제1부 예배를 드렸다. 최문진 목사(한남중앙교회)가 성경을 읽고 88회 동창부부 성가단의 웅장한 찬양에 이어 증경총회장(제81회 총회) 김준규 목사가 『지도자의 자질 향상』이라는 제목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권면을 기초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에게 말씀을 증거했다. 그는 5분 설교를 주최 측의 부탁을 받았다며 기도와 인격과 지성의 향상과 진보가 있어야 한다고 10분에 걸쳐 조리 있고 뜨거운 메시지로 은혜를 끼쳤다. 그의 나이 지금 80임에도 1996년 9월 21일 청주중앙교회에서의 총회장 시절과 다름없는 기백과 명철과 모습을 발휘했다. 제2부 축하 및 감사의 시간은 김장명 목사(과천한일교회)의 사회로 진행됐다. 동창회장 김영우 목사(총신재단이사장)의 환영사, 총장 길자연 목사의 개교기념 메시지에 이어 기념패, 감사패, 장학 기금, 교수 선물 등의 전달 순서가 이어졌다. 각종 패와 장학금 전달 중간 사회를 본 동창회 서기 김기성 목사의 재치가 회중을 웃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광고는 동창회 수석부회장 연용희 목사(온양삼일교회)와 88회 상임총무 양은광 목사(성현교회)가 전했다. 이번 행사 호스트 88동창회의 매끄러운 진행은 점심시간을 정확히 지키게 했고 오후 1시 30분부터의 체육대회도 차질이 없게 했다. 그리고 참으로 상금과 상품이 풍성했다.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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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2
  • 제21회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2015년 5월 8일(금) 오후 1시 충남 한산면 성외리에 있는 한산제일교회(정진모 목사)에서 제21회 중부협의회 정기총회가 21개 노회에서 2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러한 모임의 성황에는 자문위원 박정하 장로의 숨은 공이 크다. 중부협의회는 인천과 대전, 강원, 경기, 충청남북도 지역 내 노회 협의체로, 이날 총회에는 21개 노회에서 215명이 참석했다. 한산교회에서 마련한 식사를 마치고 직전 대표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제99회총회 정치부장, 총신대동창회 회장) 사회로 드린 예배는 근래 보기 드문 절제된 정치 행사 모임이었다. 중부와 교갱의 올곧은 법통 박춘근 목사(중부협의회 서기, 납골당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의 성경봉독 로마서 11:11~14를 통해 총회의 명설교가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는 성경 중심의 메시지로 청중을 감동의 물결로 채웠다.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사역, 12제자들의 사역,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 우리나라의 교회까지 미친 사도행전의 역사를 20여분 안에 관통했다. 그는 결론으로 로마서 11:13의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우리의 직분을 통해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총회가 총회되게 하고, 하나님에게 영광되게 하자며 청중들의 힘찬 아멘으로 마무리했다. 2부 총회순서에 들어가 역시 대표회장 오정호 목사의 매끄러운 사회 가운데 강의창 장로(회계)의 흑자 운영의 회계보고 뒤 임원 선출을 위해 정회를 하고 전형위원들이 모여 조율을 했다. 특별히 총회 막간에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전국대사 이문기 장로의 특송은 얼마 전 헤어진 사모를 기리는 듯 애절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직전 수석부회장 정진모 목사(한산제일교회)를 만장일치로 신임 대표회장에 추대하고, 차기회장 하귀호 목사(만민교회) 등 새 임원들을 세웠다. 직전 회장 오정호 목사는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이 행사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총회와 옛 백제권의 원로 김준규 목사(제81회 총회장), 황승기 목사(제90회 총회장, 현 한국찬송가공회 법인회장), 현금 총회의 분기점이 될 대립의 한 축 김영우 목사(현 총신 재단이사장) 등이 끝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총회의 다양한 정치경력의 실력자 정진모 신임 대표회장은 “부족한 종을 기라성 같은 선배와 전통의 중부협의회 제21회 대표회장으로 선출해 주셔서 모든 대표자들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 1년의 재임 중에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해 중부협의회 각 노회의 화목을 도모하고 총회를 섬기는데 바르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면 새 임원들과 함께 힘써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안건 토의에서는 회칙 수정을 임원회에 맡겨 진행키로 했다. 이날 선임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명예회장:오정호 목사 대표회장:정진모 목사 차기회장:하귀호 목사 상임회장:박신범 목사 윤석웅 장로 실무회장:김영남 목사 남승찬 장로 김문기 장로 공동수석회장:송종완 목사 김인기 목사 상임총무:문세춘 목사 유도조 장로 서기:박춘근 목사 부서기:조기산 목사 회록서기:윤익세 목사 부회록서기:김종택 목사 회계:강의창 장로 부회계:최문철 장로 총무:김정설 목사 하재호 목사 김두봉 장로 한종일 장로 감사:최찬용 목사 정진석 장로 전은풍 장로.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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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1
  •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 오정호 목사
    체르니의 아버지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오보에 연주자였으며 피아노 교사, 피아노 수리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했고 체르니의 음악교육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음악을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체르니는 문학과 언어에 있어서도 또래의 아이들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료로 음악을 배우던 가난한 제자들로부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웠으니 이후에 그가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료로 레슨을 한 것은 아버지로부터의 대물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823년 체르니는 그의 스승 베토벤을 어렵게 설득해 12살이었던 리스트를 데려갔다. 리스트가 자신이 작곡한 소품 한 곡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바흐의 푸가를 주문했고 리스트는 바흐 평균율 피아노곡집에서 C단조 푸가를 연주했다. 베토벤은 즉석에서 다른 음계로 바꾸어 연주할 것을 요구했고 리스트는 훌륭하게 연주를 마쳤다. 베토벤은 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리스트는 훗날 “이 사건은 나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나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리스트는 평생에 베토벤이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는 고백이다. 1971년 지금의 숭실대 앞으로 돌아가 보자. 숭실대 정문을 지나 사당동 쪽 언덕을 넘어서면 철거민들이 자리 잡은 초라한 골짜기에 총회신학교가 있었다.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신학교 건물 지하에는 전깃불도 없는 기숙사가 있고 지하의 식당은 울퉁불퉁 정리되지 않은 운동장을 면하고 있었다. 당시의 신학연구원 전도사들보다 머리가 길고 황색 가방을 든 옥한흠 전도사가 운동장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총신 신학연구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그 후 1970년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한 그는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는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한 그는 3M(Campus Ministry, Business Ministry, World Ministry)의 비전을 갖고,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펼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그는 성도교회에 부임한 지 3년 만에 서울에서 최초로 대학부 학생 2백 명을 모아놓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당시 총신대 1년생으로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면서 틈틈이 대학부를 기웃거렸다. 서울의 남녀 대학생들로 그득한 교육관 2층의 대학부 집회실은 늘 그득하고 옥한흠 전도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들의 심령을 파고들었다. 대학생들은 진정 옥한흠 전도사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진지했고 뜨거웠고 밝았다. 제자훈련에 대한 신학적 논리와 성격적 체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옥 목사는 1975년 미국의 칼빈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을 마친 옥한흠 목사는 미국과 한국의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강남은평교회는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4년 6월 옥 목사는 『평신도를 깨운다』를 출간했다. 제자훈련 목회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자 제자훈련에 대한 중간결산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3개월간 제자훈련 자료들을 모은 후, 1984년 제자훈련 겨울방학을 이용해 용인 벧엘수양관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원고를 집필했으며, 7주 만에 원고를 탈고했다. 2010년 9월 현재까지 103쇄가 인쇄됐다. 『평신도를 깨운다』의 책 발간은 CAL세미나 개최로 이어졌다. 책을 읽은 목회자들로부터 제자훈련 세미나 요청이 쇄도하자 1986년 3월 세미나실(현재 국제제자훈련원)을 설립하고, 1986년 3월 제1기 ‘평신도를깨운다 제자훈련지도사세미나’(CAL세미나)를 사랑의교회에서 개최했다. 고 옥한흠 목사가 시작한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가 100기를 맞았다. ‘CAL세미나’로 유명한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는 1986년 3월 시작해 꼭 30년 만에 100기를 배출하게 됐다. 국제제자훈련원과 사랑의교회 그리고 제자훈련목회자네트워크(CAL-NET 전국대표 오정호 목사)는 100기 배출을 기념해 오는 2015년 2월 3일 오전10시 사랑의교회에서 ‘2015 CAL-NET 전국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을 개최했다. 컨벤션 주강사는 이어령 박사와 권성수 목사였다. 이어령 박사는 오전에 ‘지성과 영성이 균형잡힌 제자’를 주제로 강의하고, 권성수 목사는 오후 ‘목자의 심정으로 사역하는 제자’를 강의했다. 이외에도 선택강좌로 오정호 목사의 ‘성경적 훈련 목회자상’ 강의가 있었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옥한흠 목사가 사랑하는 참 제자를 꼽는다면 단연 오정호 목사가 가장 앞설 것이다. 오정호 목사는 옥한흠 목사가 아끼는 제자 조성희 사모와 결혼을 했다. 사랑의교회에서 부부가 사역한 사례는 아마 오정호 목사와 조성희 전도사 부부가 유일할 것이다. 오정호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사랑에 힘입어 미국 유학(FULLER THEOLOGICAL SEMINARY)도 다녀왔다. 오정호 목사는 그의 스승 옥한흠 목사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여 목회 사역에 있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2015년 4월 19일 주일 11시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 오정호 목사가 설교하는 새로남교회 3부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본문은 누가복음 7:36-42 설교제목은 『더 사랑의 비밀』이었다. 설교자와 교인이 성경 본문을 한 절씩 교독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누가복음 7:36-42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 성악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하는 말은 평생에 아침 일찍이 모이면서 딱 두 번 노래했다고 합니다. 테너 성악가로서 목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노래하는 것은 치명적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가 대통령 조찬기도회, 두 번째가 자신의 아버님 생신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오늘 이렇게 아침에 모여서 행사를 하니 제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런 고백을 그는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가지는 남다른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내게 은사를 주신 이도 주님이시오 쓰시겠다는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기쁨으로 이 자리에 나옵니다. 주님이 나를 쓰시겠다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남모르는 『더 사랑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오늘 어떤 비밀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아멘은 천상의 용어입니다. 예배는 주님만을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나의 의지가 주님 앞에 송두리째 드려지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배는 원래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입니다. 옛날 교회는 이런 푹신한 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무 바닥이었습니다. 무릎 꿇고 엎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영적인 사사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혼의 부식 상태가 심각합니다. 서울에 행인들이 길을 가다가 땅이 함몰되었습니다. 지반이 내려앉았어요.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의 상수관과 하수관이 부식되어 거기서 물이 새는 겁니다. 그래서 땅들이 점점 무너져 어느 순간 빠져버리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참 예배자로 드리지 않을 때는 겉보기에는 멀쩡해요. 그러나 영혼이 점점 부식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왕창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누가 져야겠습니까. 하루아침에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닙니다. 바리새인처럼 형식은 갖췄어도 마음이 주께서 멀어지거나 주님 앞에 엎드리되 적당히 엎드리고 납작 엎드리지 않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자로 나와 있습니다. 스무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고 두 시간을 예배 드리는 사람이 세상을 따라가겠습니까 주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친구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데 나중에 자라서 부모 따라가겠습니까. 친구 따라가겠습니까. 우리가 주일 오전 한 번 오후 한 번 드리는 걸로 예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산입니다. 주님 우리 마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림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많이 용서받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예배자의 축복 아니겠습니까. 일상의 분주함을 이제는 정리하고 주님이 나를 찾으시는, 주님이 나를 발견하는 예배자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정호 목사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한쪽 벽에 그가 새로남교회에 부임해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20년”을 정제된 한 단어, 한 줄 문장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축하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1994년 11월 6일 오정호 목사는 유학을 마치고 옥한흠 목사의 추천으로 새로남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부임 3년이 안 된 교인 성장으로 1997년 3월 2일 주일부터 낮 예배를 1, 2 ,3부 확대해서 예배를 드렸다. 설교의 은혜와 추진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오정호 목사는 부임 이후 1997년 5월 대전 만년동의 500평의 부지 매입을 시작으로 총 1650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그리고 새로남교회 부임 10년만인 2004년 5월 30일 온 성도가 참석한 가운데 입당예배를 드리고, 2008년 11월 16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새로남교회 주변에는 대덕연구단지, 정부대전청사, KIST(카이스트) 등 국가 주요 건물들이 있어 전도와 대안 교육의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오정호 목사는 선명하지만 강한 영성과 정치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총회의 차세대 지도자로서 총회를 이끌고 총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랑의교회도 세우고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도 설립한 옥한흠 목사의 참 제자답게 목회도 성공한 목회자이지만 총회와 교계에서도 성공한 정치적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5-05-06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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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6
  • 전병욱vs송태근
    1954년 2월 2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에서 첫 예배를 집행했고, 3월 1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같은 해 5월 용산구 청파동으로 교회건물을 이전했다. 1955년 12월 한병혁이 초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76년 7월 16일 김영규가 2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93년 12월 25일 갓 30세에 전병욱 목사(총신 84회)가 3대 위임 목사로 부임하여 80명의 신도를 15년 새 출석교인 1만6000여 명으로 200배 성장시켰다. 2008년 10월 기준이다. 본당만으로 참석자들을 수용하기가 곤란해지자 1999년 3월부터 인근의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리며, 이후 교회건물을 신축 및 매입하여(B, C관) 수용능력을 늘렸다. 숙명여자대학교 측과의 임대계약 만료로 대강당 예배를 2009년 3월 말 종료했다. 신도 중 1만 명 이상이 미혼 청년들로 교인 평균 연령이 26.9세인 교회. 교역자 12명, 장로는 7명에 불과한 교회의 담임 전병욱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이렇게 갈파했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영적으로 갈급해 하는 것은 바로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입니다. 정체성과 소통도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이 부재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 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안정시킨 시점에 다윗이 실족했던 것처럼 신자의 수가 2만2천여 명으로 치솟고, 현금만으로 마련한 예배당을 포함해 3개의 건물(A, B, C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기도원이 있고, 미자립교회를 100만 원씩 1000개 교회(전병욱 목사 재직 당시 100개 교회를 도움)를 돕기 위한 저수지 교회로서의 자금 370억 원(헌금만으로 모인 돈)을 달성한 시점에 전병욱 목사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은밀한 사실이 다윗의 밧새바 사건처럼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그 일로 청파동 언덕의 아담한 교회를 엄청나게 키워 언덕에서 평지에 우람하게 자리 잡고 군림하던 삼일교회 당회장 직을 내려놓고 이런저런 명목아 붙은 13억의 전별금을 받고 사임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일 그는 교회 내에 아무런 분규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굴욕적인 이행각서에 서명까지 한 뒤 교회를 떠났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세였고 그들은 전병욱 목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여느 목사들과 달리 교회의 안정을 위해 그들을 잠재우고 2만이 넘는 신자와 370억 원의 현금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교회를 사임했다. 삼일교회 당회(임시당회장:길자연 목사)는 2012년 5월 27일 당회를 열어 청빙위원회가 추천한 송태근 목사(총신 79회)를 청빙키로 만장일치 결의했다. 당회는 송 목사에 대해 “복음적 설교에 탁월한 은사가 있으며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지신 분”이라며 후보 선임 이유를 밝혔다. 송태근 목사가 10월 10일 삼일교회 제4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송 목사는 이날 위임목사 취임예배에서 “무언가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며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고 인사했다.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송 목사는 “상처 입고 만신창이가 된, 씻을 수 없는 오욕을 겪은 피해 자매들에게 삼일교회 공동체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밝히고, 설교단 옆에서 머리 숙여 사과 인사를 했다. 이어 송 목사는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 목사는 또 전병욱 목사 사건과 이 한 목회자의 문제이기 이전에 삼일교회 공동체와 한국교회 공동체의 문제라고 밝히고, “다시 한 번 철저히 회개하고, 재발방지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교단과 한국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13일 10시 은석교회당(김진웅 목사)에서 제175회 평양노회가 개회했다. 노회장 강재식 목사의 사회와 설교로 진행된 개회예배는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또 다른 관심사로 떠 오른 삼일교회 전 담임 전병욱 목사에 대해서는 재판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회의 시간 연장을 해가며 3시간 넘게 증경총회장 이성택 목사와 교계의 거목 길자연 목사의 권면과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후임 송태근 목사의 끈질긴 현장에서의 면직 요구와 회원들의 공방을 거친 뒤 평양노회는 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발언대에 선 원로 이성택 목사는 이미 시벌을 당해 교회사임을 한 목사를 면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이어서 길자연 목사는 이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합의도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면직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권면했다. 삼일교회 당회는 전병욱 목사의 전별금 13억 4500만원 중 퇴직금을 제외한 12억 3500만원에 대해 반환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문제가 있는 총신 84회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자는 총신 79회 송태근 목사는 삼일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안정이라도 시켰는지를 묻고 싶다. 노회 현장에서 발언에 나선 한 목사는 삼일교회 이광영 장로에게 언제는 전 목사가 별 죄가 없다며 옹호하더니 이제는 면직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물었다. 이광영 장로는 당시는 세상에 전병욱 목사만 목사였는데 현재는 전병욱 목사만 파렴치해 목사라고 할 수 없어 면직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요즈음 교회의 풍토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목사가 사임하고 나면 장로가 그 교회의 실세가 되는 게 다반사이다. 아마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는 그 교회에서 설교나 행정력에 있어서 별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총신 선배이면서 삼일교회 후임자이기도 한 송 목사가 전 목사의 면직을 고수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줄어드는 교인 때문이라면 설교와 기도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부임 때의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하는 말을 따라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졌다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들에 죽기를 각오하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장시킨 큰 교회와 많은 교인과 370억의 현금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으로 포기하고 찾기도 힘든 홍대 근처 건물 2층에서 청년 선교에 힘쓰고 있는 전병욱 목사를 비난하고 면직을 획책하는 행위는 어디에서 배우고 익혔는지를 묻고 싶다. 전병욱 목사가 개척한 것 때문에 삼일교회 교인이 반 이하로 줄었다고 생각한다면 홍대새교회를 제 발로 가서 라반처럼 확인을 해보기 바란다. 삼일교회의 교인이 줄어든 만큼 홍대새교회가 늘어났다면 1500여 명에서 1200여 명으로 줄겠는가.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삼일교회 부임 시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듯이 행여 마음속에 드는 여자 생각과 눈초리조차 조심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족처럼 덧붙여 한때 국민은행 지점장으로서 전병욱 목사의 배려의 혜택과 신앙의 가르침을 입은 나원주 장로가 훌륭한 담임으로 모시고 있는 송태근 목사가 열심히 전병욱 목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고 있음에도 얼굴을 들기 힘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전임 목사님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지 않는 행위이고 송태근 목사의 훌륭한 가르침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행태임을 알기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누가복음 6:40-44 2015-05-06
    • G.OPINION
    2015-05-06
  • 선거와 중서울노회
    제4대 민의원선거가 1958년 5월 2일 치러졌다. 역시 관권 금권선거였다. 공명선거를 당국이 한사코 부르짖어온『5·2민의원총선거』의 투표일인 2일 선거 운동원이 구타당한 사건현장을 취재하러간 기자들을 백주 괴한들이 집단폭행하는 한편 카메라까지 강취한 사건이 수도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발생하여 완전히 폭력에 짓밟힌 피의 투표일이 되고 말았다. 정당별 당선자는 자유당 126명, 민주당 79명, 무소속 27명, 통일당 1명으로 여당인 자유당이 의석의 54%를 차지했다. 특히 자유당은 서울에서 15석 중 겨우 1석을 차지하는 등 대도시에서 참패하고, 그 후 6월 7일 개원하여 국회의장에 이기붕을 선출했다. 그러나 제4대 국회는 임기 4년을 채우지 못한 채 1960년 4ㆍ19혁명의 격류에 밀려 만 2년 1개월 남짓하여 해산되고 마는 비극의 운명을 간직한 국회가 됐다. 2015년 4월 29일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2층 선거 상황실은 이날 오후 6시 개표 시작부터 분위기가 밝았다. 강석호 사무1부총장은 "광주 서을을 제외한 국회의원 선거구 3곳을 다 이기는 거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알~하면"이라며 웃었다. 결과는 새누리당이 4곳 가운데 광주를 제외한 수도권 3석을 석권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선거 상황실을 따로 차리지 않았다. 취재진 편의를 위해 국회 본청의 당 대표실과 사무총장실을 개방하고, 개표방송을 틀어놓는 등 약식 상황실만 마련했다. 결과는 1석도 얻지 못한 참패였다. 호남의 광주마저 무소속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날 선거 결과에 따라 국회 의석수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157개(지역구 130, 비례대표 27)에서 160개로 늘었고,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130개(지역구 109, 비례대표 21)를 유지했으며, 무소속이 3명으로 늘었다. 나머지 5명은 정의당 소속이다. 3월 15일과 4월 15일 사이 총회 산하 전국 143개 노회들의 정기회가 시작해 다 끝났다. 봄 정기 노회는 새로운 임원 구성뿐 아니라 총대를 선출하고 또 총회의 중요한 쟁점이나 문제들을 연구하여 헌의했다. 이제 100회 총회를 앞둔 우리 교단은 이번 99회 총회에서 노회 헌의안들과 총대들의 논의를 통해 교단이 나아갈 지표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5월 11일부터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시작하는 목사장로기도회를 마치면 6월부터는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된다. 6월 1일부터 10일까지 후보자 이력도 발표하지 않고 밀실 감별을 일삼는 총회선거관리위원회는 제100회 총회임원회 후보자들의 접수를 받고, 이어 7월 1일부터 10일까지 상비부장 후보자들의 접수를 받는다. 몇 노회를 다녀 보니 노회 임원 선거를 구태의연한 전형위원회 선정이 아니라 직접 선거를 원했다. 직접 선거를 원하지 않는 노회의 고질은 일부 원로 그룹과 이른바 수구 세력의 기득권 지키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한 세력은 직접 선거로 이루어지는 총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 힘을 쓰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과거 부정으로 얼룩졌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일반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들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이번 4·29 재·보궐선거에서 보듯 부정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칼빈주의 사상을 따르는 교회가 중심이 된 우리 총회 산하 노회들에서 흑백투표나 거수투표를 고수하는 공산주의 선거보다 못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참으로 미래 총회의 희망이 보이는 노회가 있었다. 그것은 1981년 수도노회에서 분립한 중서울노회(노회장 김구년 목사)였다. 2015년 4월 14일 오전 10시 금남교회당에서 제71회 정기 노회가 열렸다. 개회예배와 성찬예식이 끝나고 사무처리회로 이어졌다. 곧 회원호명 등의 순서가 끝나자 임원선거와 총대선거가 시작됐다. 그리고 기표소에서의 투표가 진행되고, 선거관리위원의 개표가 이루어지고, 선거결과가 발표됐다. ★노회장:김구년 목사(금남교회) 부노회장:유귀상 목사 유재명 장로 서기:강조훈 목사 부서기:박래흠 목사 회록서기:이상협 목사 부회록서기:호용한 목사 회계:김성수 장로 부회계:우의창 장로 ★총회총대:김구년 김관선 유귀상 이상협 박성일 배치영 김성윤(이상 목사) 유재명 강문정 장덕용 조윤성 김진만 박정수 정찬홍(이상 장로) ★기독신문이사:신현수 목사 ★GMS이사:한문우 목사 유광철 목사 ★서울신이사:이선영 목사 김동문 목사 노회원들은 자유롭고 정연하게 한 표의 주권을 교회 안에 마련된 기표소에서 행사했다. 중서울노회에서의 정기회 진행은 밝고, 단순하고, 조용하고, 매끄러웠다. 시간을 내어 중서울노회의 중진(重鎭) 박기환 목사(동대문중앙)와 대담을 했다. ―중서울노회 오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30년 됐습니다.” ―목사님 오셔서 지금의 선거 제도는 어떻게 자리 잡게 됐습니까. “투표제와 전형위원회를 오가면서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 정착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노회 질서가 확립될 시점에 투표제로 왔죠.” ―그런 전환점을 어떻게 가지게 된 겁니까.“노회 전입순이나 선후배 관계를 확립하고 나니 임원의 순서를 정하는 분위기가 노회 안에 마련됐습니다. 총대는 총회에 가서 노회를 대표해 일한 분으로 중지를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회가 민주적이고 성경적인 절차와 전통을 확립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노회와 달리 이런 성경적이고 대의적인 제도 확립을 위해 노회 차원의 어떤 노력이 있었습니까. “물론 노회 어른들과 중진들의 상당한 노력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자각심과 신앙 양심을 가지고 노회가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합의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노회 임원을 세우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명하게 노회를 운영해 노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중서울노회와 총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후배 지도자들을 키울 수 있다면 저 자신부터 마음을 비우고 자리를 내놨습니다. 3년 전부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총대와 공직을 안 맡고 있습니다. 제가 총신 74회인데 마침 이번 제100회 총회는 동창 박무용 목사가 총회장이 되니까 저희 동창회에 정말 감사한 일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선거(選擧, election)는 다수인(多數人)이 일정한 직(職)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반드시 국가기관의 선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교회·회사·학교 기타 여러 사회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선거의 기본원칙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의 네 가지이다. 투표와 선거는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지칭하는 범주가 다르다. 투표는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데 다수결로 하는 방법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고, 선거는 말 그대로 어떤 대표자를 뽑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총회의 근간을 이루는 노회의 임원과 총대 선거는 반드시 투표에 의한 다수결로 뽑혀야 한다. 자고로 정치의 근본은 공공성(公共性)을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회의 찬송가공회, 납골당, 아이티 등의 사태에 처리에 있어서는 정치의 근본인 공공성은 이름에 불과할 뿐 막후에서는 직접 선거가 아닌 전형위원회를 통해 총대가 된 총회의 권력 카르텔 집단이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돈과 이권을 뜯어먹는 데 바빴음을 증명한다. 이 권력 카르텔 안에서는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끈끈한 의리를 말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다. 이때 이른바 도둑정치(kleptocracy)가 조직체 내에 똬리를 틀게 된다. 사회 인프라 건설담당을 맡은 아프리카의 장관이 같은 일을 하는 아시아의 한 장관 집에 초대받았다. 집이 너무 호사스러워 물었다."당신 봉급으로 어떻게 이런 집에 살 수 있습니까. " 그러자 아시아 장관은 아프리카 장관을 창가로 불러냈다."저기 다리가 보이죠?" "보이는군요." 그러자 아시아 장관은 말했다. "10%." 그 다리 건설비의 10%를 먹었다는 것이다. 1년 후 그 아시아 장관은 아프리카 장관 나라에 초청받아 그의 집에 초대됐다. 그의 집은 더욱 화려했다."아니 당신 월급으로 이런 집에 살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아프리카 장관은 아시아 장관을 창가로 불렀다."저기 다리가 보입니까." '아시아 장관이 '아무리 봐도 다리는 없었다. "다리라곤 안 보이는데요." 그러자 자신을 가리키며 아프리카 장관이 말했다. "1백%." 그는 다리 건설비를 통째 먹어버린 것이다. 이런 부패한 정치를 '도둑정치'라고 한다. 건강한 정치 안에서만 자유와 인간 존엄이 가능하다는 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에 가깝다. 총회의 대의정치와 총회 헌법의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전형위원회를 통한 총회의 권력 카르텔 집단의 도둑정치는 단연코 장자 교단의 최대의 암(癌) 덩어리다. 도둑정치가 횡행하는 곳에 좋은 총회라는 이름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아니라 신앙과 총회 구조 자체가 아예 부패해 있는 현상의 발로(發露)다. 따라서 바른 총회의 대의정치를 위해서는 노회의 임원과 총대는 직접투표로 선출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총회의 도둑정치를 막기 위해 총회부총회장 선거도 이제는 제비뽑기가 없는 직접투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5-05-04
    • 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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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4
  • 더굳뉴스 제 17호 크리소스톰 김희태 목사
    “교회 안은 온통 열광의 도가니였다. 감동의 절정에서 터져 나온 청중들의 환호와 갈채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설교가 정점을 향하여 치달을 때 회중들은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렸고, 못된 소매치기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더욱 눈을 움츠리며 손을 열심히 놀렸다.” 이 설교자는 안디옥과 동방교회가 자랑하는 4세기의 요한(St. John Chrysostom, AD 347~407)이다. 영어명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헬라명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os)라는 그의 통칭(通稱)은 그의 전설적인 웅변 때문에 붙여진 황금의 입(golden-mouthed)이라는 뜻이다. 그 통칭은 그가 너무나도 뛰어난 언변을 지녔던 설교자요, 당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탓이다. 위대한 설교자로서 크리소스톰과 관련된 일화 가운데,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의 설교를 듣느라 사람들이 자기 소지품들을 챙기는 것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리소스톰은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고,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거인이었지만, 체구는 왜소했다. 하지만 쾌활한 얼굴, 주름진 이마, 벗어진 머리, 꿰뚫어 보는 듯한 맑은 눈은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감명을 주었다. 크리소스톰은 주후 347년에 안디옥에서 출생했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는 신앙이 좋은 어머니에게서 경건훈련을 받았다. 어머니 안투사는 오로지 어린 크리소스톰을 키우는 데 헌신하여, 아들에게 최상의 훈련을 받게 하였다.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고, 가장 훌륭한 교사 문하에 들어가도록 주선했다. 크리소스톰은 어머니 권유로 당시 이교도의 대변자요, 수사학의 대가인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헬라 문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리바니우스의 최우수 학생으로 후계자로 지목될 수도 있었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학문으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연구에 일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임종 후 그는 시리아에서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때 안디옥 학파 지도자인 타르수르의 디오도루스(Diodorus)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디오도루스는 성경을 우화적(Allegory)으로 해석하는 유행 방법을 배격하고,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면밀히 연구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적 배경은 크리소스톰이 당시에 유행하던 심각한 알레고리 해석에 빠져 들지 않고 본문 해석에 힘쓰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크리소스톰은 6년간의 수도원 생활 가운데 2년 동안 밤낮으로 한 번도 누운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의 위장은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고, 신장도 추위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는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가 AD 380년이다. 그는 훗날, 수도원 생활은 목회자 훈련으로 적당치 못했다고 저서에서 고백했다. 또한 수도자와 목회자를 비교하면서, 목회자는 수도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소스톰이 안디옥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디옥 교회의 부제가 되어 5년간 일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을 접했고, 교회 실상도 익히게 되었다. 그는 AD 381년에 집사 안수를 받고, 가난한 대중과 접촉하면서 무엇을 설교해야 할 것인지 깨달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39세 때인 AD 386년 안디옥 교회의 장로 겸 수석 설교자로 임명받아 본격적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하게 침체된 영혼들을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그가 강단에서 쏟아내는 황금 같은 설교를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온갖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 안디옥의 고통을 묘사할 때는 마음이 녹아내려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그의 격려에는 영혼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가 설교할 때면 교회는 회중들로 가득했다. 그의 강해설교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회중들은 자발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이것을 싫어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설교 강론은 두 가지 형태로 전해온다. 하나는 초고 형식으로, 속기사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직접 기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후대 사람들이 이 초고를 다듬어서 일관성 있게 재편집한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전례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맞추어 신구약 성경에 어떤 제목을 발췌하여 강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론한 것도 있다. 안디옥 학파의 영향을 받고 자란 크리소스톰이기에 설교는 항상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법적인 해석 방법에서 얻은 영적 통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강해는 윤리적 권면으로까지 폭을 넓혔다. 그의 설교는 세상과 연결 짓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설교자는 험한 세상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참된 설교는 성경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다리 한쪽은 하나님의 거룩에, 다른 한쪽은 성도의 삶의 한복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이 주석에서 예화로, 성경 원리에서 실제적인 호소로 설교를 전개시켜 갈 때는 말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며 제스처가 활발해지고 목소리는 점점 강렬해진다. 그러면 기대감에 부푼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하다가 경우에 따라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청중의 박수갈채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환호를 받은 크리소스톰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설교자가 박수갈채를 좋아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회중에게 해(害)가 미칠 것이다. 칭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설교자는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보다 그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설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강단에 섰을 때 갈채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의 전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를 칭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갈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본문의 순서를 따라 단순한 전개 형식을 취해 간다. 그럼에도 그가 ‘황금의 입’(크리소스톰)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해 학문에 정진한 까닭이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경에 대한 풍부한 이해력이 있었다. 둘째, 신학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으로 실생활에 연관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셋째, 설교를 불붙게 하는 정열이 넘쳐 흘렸다. 이런 4세기의 크리소스톰을 닮은 21세기의 목사가 서울에 한 사람 있다. 그는 동광교회의 김희태 목사다. 1966년 3월 15일 창립된 동광교회에 1987년 12월 25일 김희태 목사가 부임했다. 김희태 목사 부임 당시 200여명의 교인이 2015년 현재 재적 교인 7000여명 장년 주일출석 2500여명으로 성장했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15일 교회 설립 50주년 예배를 드렸다. 이날을 기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23일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를 설립했다. 아카페는 아가페와 카페를 합성한 이름이다. 실제로 일반인을 위한 카페가 아담하고 예쁜 교회 뒤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교회를 위해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기 전 하나님의 은혜로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교회 앞에 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 주변은 귤 농장과 농토로 둘러싸여 있다. 2015년 4월 5일 부활주일 동광교회 오전 12시 3부 예배. 크리소스톰 같은 황금의 입과 푸른 초장 같은 너른 마음을 지닌 김희태 목사가 활기찬 모습으로 동광교회 설교단에 섰다. 그의 설교는 진지하지만 논리적이고 재미있고 성경적이다. 요한복음 11:21-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우리가 부활하면 흰색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 앞에서 찬양하게 됩니다. 세마포는 아마 섬유로 짠 천인데 그 당시 중국의 비단과 값이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마포는 최고의 의상을 의미하며 부(눅 16:19)와 정결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계 19:8, 14). 우리가 최고의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설 그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 기대로 말미암아 오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좌우의 분들에게 축복해 주시고 행복하세요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태풍 급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려오시기 시작합니다. 이건 태풍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번 유월절 명절날 예수가 예루살렘에 오겠는가 하는 걸로 내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거쳐 요단강을 따라서 강 서안에 있는 여리고에 오셨습니다. 대단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예루살렘에서 5리 동쪽으로 2km 떨어진 작은 촌락 베다니에서 이제 진짜 강한 태풍이 붑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는 것은 왕으로 등극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합니다. 이것은 왕을 영접하는 역사적인 행사입니다. 예루살렘에 강한 태풍이 불었습니다. 유대인은 그걸 잠재우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니까 더 큰 태풍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태풍은 세계를 뒤엎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기독교 2천년 역사 아니 세상 2천년 역사에서 예수님을 뽑아내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크게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 초라한 나사렛 예수! 무슨 사건이냐. 그분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감격을 온 세계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회가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법이 정의로워졌습니다. 그러자 여자들이 존경받고 아이들도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21세기의 인류문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베다니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마다 베다니에 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참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나사로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부모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여동생들은 결혼 이야기가 없는 걸로 미루어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18살 정도 동생 마리아는 15살 정도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큰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오라버니가 아픈 겁니다. 그런데 소식을 들어보니 예수님께서 베다니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우리 오라버니가 아프니 빨리 오셔서 고쳐달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사로의 질병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말합니다. 지금은 잠을 자도 잘 낫지를 않습니다. 수면제가 나오고부터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잠자면 병이 다 나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맛이 간 사람도 푹 자면 온전해졌습니다. 잠들었으면 병이 다 나을테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안 가신 것 같습니다. 즉 이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강한 태풍을 만들어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게 하기 위하여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 가운데 도마가 말합니다. 그는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진 제자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집을 짓는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목수가 과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소리를 잘 해요. 예수님이 죽은 사람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시니까 우리도 죽으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결심도 좋고 참 남자다운데 허경영 같은 소리를 합니다. 여러분 어때요. 예수님 부활, 예수님 기적 못 믿겠다고요. 누구는 믿어지는 줄 압니까. 자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베다니 동네 입구에 마르다가 뛰어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아마 그때 마르다의 모습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그녀의 말 그대로 때맞춰 오셨으면 우리 오빠 안 죽었을 텐데 이제 오십니까 하는 원망의 말투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발 후퇴합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마르다가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까지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까지 해 주기를 바라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어린 두 자매가 남겨져 있으니까 이 슬픔을 가시게 해 줄 예수님의 위로를 기대하고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때부터 엇박자 코미디 대화가 시작됩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교리적인 대답이 문제입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어갑니까. 정답을 알아요.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없습니다. 신앙은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정답으로 가슴에 사무쳐서 나와야 합니다. 로봇처럼 컴퓨터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정답이 튀어나옵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르다가 이렇게 코미디 같은 소리를 하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의 귀한 진리가 나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으로 끝났다면 마르다도 별 고민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것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얼마나 당황했으면 마르다가 그냥 집으로 가버렸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허경영이란 사람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는데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을 기록하여 7위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입니다. 자기가 축지법을 쓰고 아이큐가 430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보좌관을 했대요. 여기까지 했으면 허풍으로 끝났을 건데 도를 지나쳤어요.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결혼을 했다고 한 겁니다. 그걸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17대 대선 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콩밥을 먹고 정신이 들었는지 요즘은 좀 엄한 소리를 덜 하고 노래를 합디다. 제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허경영은 사기꾼이 아니라 미쳤다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사기꾼 아닙니까.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거나 아니면 정신이 이상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허경영보다 좀 더 하신 겁니다. 여러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생각을 해서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받아들이시든지 아니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시든지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 인간이 예수님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못 믿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믿게 하시려고 나사로의 무덤까지 오신 겁니다. 지금 나사로는 죽은 지 4일이나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입관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살았을 때 사람이지 죽으면 끝입니다. 게다가 부패가 시작되면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고 해도 간덩이 큰 사람은 3일 동안 밥을 못 먹고 약한 사람은 30년 식사를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 더 흉악한 꼴 보기 전에 관 두껑 덮고 못질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 속의 시체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셨습니다. 이 단순한 말씀 한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냥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님 믿고 따를 것 같죠.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자는 모의가 공공연하게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죽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해서 한마디로 살려내신 예수님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분은 우리의 구원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을 믿는 게 아니라 죽이고자 합니다. 인간은 참 악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 모의에 못이기는 체 하고 끌려들어가 죽으십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말씀이 수용이 안 되니까 건성으로 들은 겁니다. 예수님 금요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다음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입니다. 그 다음 날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주일입니다. 당시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낼 때에 일정한 소리를 내며 우는 곡(哭)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게 전통 장례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섭섭하지 않게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예수님을 자기 가족묘에 안장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금요일에 여인들이 그를 위해 울어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안식일은 참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울어 드리기 위해서 간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무덤에서 나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 기절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이 그를 동산 무덤 관리인으로 알았어요. 예수님 시신이 없으니까 그에게 시신에 기름도 바르고 곡도 해야 하니 시신이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가 “내가 예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 골치 아프셨을 것 같아요.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셔야 된다면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만날 때마다 “내가 네 할애비다” 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 여인(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들이 사랑하는 예수님 모습을 보고 모두 최대한의 속도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예수님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 말고 또 한 사람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터키 해안 남부 지역 길리기아 다소 사람인데 날 때부터 귀족이고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의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 유학을 왔습니다. 그가 거기서 공부를 하는데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겁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허무맹랑한 소식을 전하면서 세를 불려가는 이상한 무리를 본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들을 박살을 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을 가 다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도망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메섹이라고 하는 다마스커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로마군이 그 도시를 경계로 이쪽 아시아에 항상 상주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것들 봐라 하며 그 사람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거의 다마스커스에 갔는데 홀연히 하얀 빛이 그를 비추는 겁니다. 그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는 이해를 못 하고 “주여 뉘시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또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앞을 못 보게 된 그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번화가 직가(straight street)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며칠 안 있어 그는 거기서 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온 아나니아에게서 안수를 받고 눈을 다시 뜨게 됩니다. 이때 사울의 머릿속에 있던 성경 지식이 재조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래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일단 믿기만 하면 머리가 스스로 움직입니다. 스스로 증거를 찾습니다. 스스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으면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의 바리새인이 왜 이 모양이냐면서 이 배반자를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려 도망을 시킵니다.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가 그 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 사람이 큰 자라는 뜻인 사울에서 작은 자라는 뜻인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바로 이 사람이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들고 서진(西進)할 때 엄청난 태풍이 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 과정을 고린도전서 15장에 요약해놓았습니다. 3절과 4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우연히 된 게 아니고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수천 년 전 창세기에 한 남자가 나옵니다.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할 자입니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쳐부술 자이십니다. 이것은 최초의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쯤 되면 그 예언이 점점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합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 두셋만 있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먼저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이것도 다 제자들이 지어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교회는 250년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재판의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자기가 이익이 되면 재판에서 거짓말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자기가 거짓증언해서 손해가 난다면 절대 거짓증언 안 한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재산을 뺏기고, 직장을 잃고, 추방을 당하고, 거지가 되고, 목이 잘려 죽고, 심지어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는 데도 아시아보다 로마에서 믿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님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거지가 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부활을 어떻게 부정합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부활의 소망,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이것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삐삐를 사용하다가 좀 있으니 몽둥이 같은 이동 전화기를 들고 소수의 사람들이 별 쓸 일도 없으면서 으스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최신식 스마트폰이 나와 누구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졌습니까. 우리가 핸드폰 없을 때 전화기 없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볼 일이 있으면 이웃집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숨을 몰아쉬며 우리 집 오시라고 합니다 하고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모두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기기가 나왔는데 우리가 행복합니까. 저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미래의 어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부활의 언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부활하셨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환란과 핍박을 이긴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골방에 광야에 산에 어디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메시아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이게 성경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사기꾼들이 설칠 것을 아시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곳에서 죽었든 다 육체로 부활하여 동시에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하고 결론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 생명, 젊음, 경륜, 기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축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9일 오후 2시 제주도 아카페 교회 카페. 제주 제주시 선덕로 바다 앞 도두해수파크 찜질방에서 나와 해안로 정류장에서 제주 시내로 들어가는 17번 버스를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쉽게 오지 않았다. 같이 기다리던 다른 한분과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본 나고야 교회 목사님의 한국 사모님이었다. 그분도 제주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가시는 중이었다. 일본의 아들들 때문에 제주도 땅을 정리하려고 오셨단다. 정류장 건너에는 아침 선잠에 눈비비고 나온 것 같은 청색의 푸른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하품하듯 밀려와 마음 깊숙이 할 말이 많은 듯 해안에 부딪혔다. 버스를 기다리는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늘었다. 마침내 온 17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와산행 버스로 갈아타고 달빛빌리지 앞 푸른 초장 팻말이 있는 곳에 내렸다. 제주도 화석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 들어가니 김희태 목사가 아들 목사와 귤 밭을 맨발로 한 고랑씩을 맡아 매고 있었다. 차를 대접받은 뒤 두 달 전 설립된 근처의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로 갔다.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순대국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교회 뒤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는 평안교회 부목을 거쳐 1988년 인천의 희망교회와 풍성교회를 시무했다. 그리고 2008년 그는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사역을 했다. 그러다 그는 2015년 3월 23일 동광교회 50주년을 기려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설립한 아카페(A Cafe)교회에 부임했다.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두 사람은 총신 77회 동창이면서 절친이고 나이는 52년생인 권 목사보다 김 목사가 두 살 위다)가 1987년 동광교회 부임하실 때 제가 그랬죠. 교회 출석 교인이 2000명이 넘을 거다. 제가 말하는 건 장년 주일 예배 참석 교인입니다. 요새 통계로 말하면 7000이지만 주일 출석 장년 교인만 2000이 넘는다고 한 거죠. 그런데 김희태 목사가 안 믿어요. 그래서 제가 뭐랬냐하면.김희태 목사: 그런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날 거라고 제가 확신했죠.권혁선 목사: 사실 내가 그 교회를 소개해 줬으니까 그 교회 저력을 알잖아요. 그런데 동광교회는 목사님만 좋은 분이 오면 가능한 교회죠. 문제가 많은 교회이긴 해요. 그런데 제가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소개시켜 준 건 아니에요.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냐하면 목사를 모셔야 하는데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의논하다 보니까 모르는 분이 오시면 그게 그거니 우리 교회 출신 가운데서 담임목사를 모시자 그런 겁니다. 그 결과 저를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저를 잘 알거든요. 제가 가면 감당이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김 목사님이 가면 이건 틀림없이 감당할 뿐만 아니라 큰 교회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가시면 2000명 됩니다 그랬습니다. 김 목사님이 저보다 믿음이 없어가지고 그럴리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동광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됩니다 하면서 그때 김 목사님과 약속을 했어요. 2000명이 되면 저한테 선교비 천불씩 후원해 주기로. 김희태 목사: 그게 아니라 두당 1불씩 후원해 주기로. 2000명 넘어가면 2000불 하기로.권혁선 목사: 2000명 훨씬 넘어갈 거라고 했더니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로열티 계산 개념으로 두당 1불씩 하기로 했습니다.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선교지로 갔는데 안 주는 겁니다. 김희태 목사: 저는 두 가지 확신을 가졌어요. 2000명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목회 잘 하는 목사가 선교사 갈 일이 있겠느냐.권혁선 목사: 저는 겁이 많아요. 그래서 사전에 준비를 해요. 목회를 한 지 한 12년 정도 됐을 때부터 다음 선교지를 어디로 가느냐 여기서 관두면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일본을 생각했어요. 사실 일본 쪽에 많은 공을 들였죠. 그랬는데.김희태 목사: 특별히 일본 낫토(대두를 낫토균을 이용해 발효시킨 한국의 청국장과 유사한 일본 전통의 식품으로 미소와 함께 중세 일본의 필수적인 영양 공급원이었다)를 좋아하죠. 우리 교인들도 낫토, 낫토해. 나는 안 좋아해요. 권혁선 목사: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일본에 가서 느낀 건 여기서는 한인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한인 목회를 하려면 문제가 뭐냐면 다른 목사들과 부딪칠 것 같은 겁니다. 망설이고 있는데 어느 분이 캄보디아를 가자고 해요. 캄보디아를 도와달라는 거죠. 그래서 가봤는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보면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참 나도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죽이는 목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캄보디아 백성이 불쌍했습니다. 외국 나가서 공항에서 울어본 나라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나라 민족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오래 살려고 했는데 이 친구(김희태 목사를 가리키며)가 문제예요. 친구가 도와주고 그러니까 김 목사님이 많이 도와줬죠. 그 동안 도와준 걸 계산해 보니까 200만불이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든 걸 다 해놓으니까 내가 왕 노릇 할 것 같은 겁니다. 김 목사님이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와서 이 교회를 하게 된 겁니다. 김희태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비 2000불 약속했는데 교회가 도저히 형편이 안 좋아서 50만원씩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몇 십만원 보내고. 권혁선 목사: 사실은 2000불 이상 했어. 왜냐면 그건 공식적으로 보내는 거고. 김희태 목사: 제직회에서 권 목사님 아는 집사가 있어요. 그가 막 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집사님, 권 목사님한테 선교비 많이 준다고 그 말씀하시는 거죠. 그 집사님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요. 제가 권 목사님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2000불씩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거 보내는 겁니다. 그 집사님 내려갔어 건강이 안 좋아서. 권혁선 목사: 그랬다고 그러데. 김희태 목사: 그런데 신장하고 간이 안 좋데. 신장 약을 먹으면 간한테 안 좋고 간 약을 먹으면 신장한테 안 좋아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네. 그래서 공기 좋은 데로 간다고. 서한결 사모:(제주 해안가에서 만난 일본 나고야 교회 사모)네, 서양 의학적으로는 그런데 동양 의학적으로 진짜 몸의 원리를 알면 신장(腎臟)은 어머니고 간장(肝臟)은 아들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들이 아프면 엄마가 젖을 토해서 아이한테 줍니다. 신장이 약을 먹으면 간장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그 원리를 알고 한의학적으로 하면 아주 좋죠.권혁선 목사: 양약으로 하니까 그런 거죠. 서한결 사모: 한의학에서 그걸 상생상극(相生相剋)이라고 합니다. 김희태 목사: 아이고 사모님 제주도 아카페교회 오시면 우리 노틀(중국어 ‘老頭兒’에서 온 말로 외래어 발음법상 라오터우얼로 소리 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늙은 남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노틀’이 됐다) 클래스가 죽음을 한 단계 올리겠네요. ―그래서 동광교회 장년 주일출석 2000명이 넘어서 선교비 지원이 잘 됐습니까. 권혁선 목사: 아니 2000명은 당연히 넘었죠. 넘었는데 500불밖에 안 보내는 겁니다. 제가 캄보디아 간다고 하니까 1000불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걸 안 믿었습니다. 왜냐. 솔직하게 말해서 김 목사님하고 저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서 나 말고 딴 데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해요. 그러나 저하고는 절친이잖아요. 저한테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 쓰는 게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합니다. 교인들에게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 파송 교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30만원이 원래 내가 생각했던 후원금입니다. 김희태 목사: 그랬었구나. 20만원 내놔.권혁선 목사: 왜냐면 이건 빤한 계산입니다. 김희태 목사: 친구라 못한 겁니다. 권혁선 목사: 그러나 보통 모르는 목사님들은 친구지간에 안 해 주느냐고 해요. 사실 친구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것 같아요. 제삼자는 오히려 딴 데 도와주면 순수하게 선교를 위해서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김희태 목사: 우리가 백 불 이백 불은 수십 군데고. 파송이 일곱 가정이에요. 그래서 더욱 어려운 가운데에서 친구한테 많이 보낸다는 건 명분을 세울 수가 없어요. 서한결 사모: 친구라는 걸 알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권혁선 목사: 온 교회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둘이 아삼륙(마작에서 쓰는 골패의 쌍진아, 쌍장삼, 쌍준륙 이른바 쌍비연이라 하여 좋은 패가 있는데 이 세 쌍의 패 끝 자를 딴 말로 단짝을 비유하거나 서로 호흡이 잘 맞을 때 쓰는 말)이라는 거 다 알아요. 김희태 목사: 게다가 가끔 들어오면 설교시켜야지.권혁선 목사: 그런데 사실은 2000불이 아니라 더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캄보디아 교회 뭐 할 때도 천만 원 헌금해 줬지김희태 목사: 그랬던가.권혁선 목사: 자동차도 두 대 보내줬죠. 뭐 이래저래 하면 솔찬합니다. 제가 자동차 가지고 사기 많이 쳤습니다. (동석자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차를 일부러 안 사요. 오토바이 타거나 걸어다녀요.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오면 헌금을 해요. 목사님 이렇게 지내시면 되냐고. 일단 그 돈을 받아요. 간 다음에 전화를 해요. 내가 지금 원주민을 위해 그 돈을 써야 되는데 양해해 달라고 말해요. 저한테는 우선순위가 원주민을 위하는 게 먼저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헌금을 하는데 원주민보다는 당장 보이는 대상에 헌금하는 걸 더 좋아해요. 목사님 차 사세요 하고 돈은 줘도 원주민을 위하는 데는 잘 안 주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받은 다음에 원주민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방법을 많이 우려먹었죠. 그러다보니 차를 안 타고 일부러 걸어 다닌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서 담임 목회할 때도 그랬어요. 여름에 제 방에 에어컨 달겠다고 해서 제가 달지 말라고 했어요. 유아실, 영아실, 사무실까지 다 달고 마지막에 내 방 달아라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서둘러요. 목사 방부터 달면 교육부는 안 달고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사실은 고도의 정치죠. 김희태 목사: 그러다가 평생 못 다는 수가 있어.권혁선 목사: 난 일 년 만에 다 달었어. 김희태 목사: 그거 하나님의 은혜네. 광주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평생 에어컨 없이 지냈어요. 권혁선 목사: 야 진짜 못됐구나. 김희태 목사: 지독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도 그 교회가 난리더라고요. 그런 사고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에요. 권혁선 목사: 옛날 그 목사님 점잖으시잖아요. 김희태 목사: 부흥회 가면 깜짝 놀래요. 그렇게 큰 교회가 사무실에 에어컨이 없어요. 광주도 여름에 굉장히 덥거든.권혁선 목사: 저 인간이 좋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안 했다가 저 인간이 넥타이 돌려 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좋게 이야기할 때 서로 잘하자. 넥타이 돌려 매면 막다른 골목이니까 알아서 해라. 김희태 목사: (일본 교회 서한결 사모님을 보며) 사모님 모셔다 드릴게요. 가십시다. 서한결 사모: 제가 한번 걸어 가보죠. (동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모님에게 차를 타고 가시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 카페를 나갔다.) ―(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저희는 좀 더 있다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 동광교회를 소개해 주었을 뿐인데 김희태 목사는 자기 가족들한테도 제가 가문의 은인이라는 말을 늘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사실 저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권혁선 목사가 김 목사한테 어떻게 했다 이런 말 안 합니다. 처음에는 좀 하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수치로 느끼거든요. 목사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만 제 경우에도 보면 큰 은혜는 하나님과 부모만이 베풀 수가 있고 사람이 베풀면 서로 떠나게 됩니다. 뭐 그것이 인생이죠. 그런데 그런 단계를 넘어가는 사람은 큰 인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절체절명(?體?命)의 일인데 나한테는 손 한번만 내밀면 되는 일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도와줄 때는 그 사람을 잃는다고 생각하고 도와줘요. 도움 받은 사람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하죠. 그런데 대부분 얼마 안 가서 (내 추임새를 받아서)잊어버릴 정도가 아니고 욕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멀리 한 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런 모양입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 문제를 넘어서는 사람은 정말 큰 사람입니다. 사실 김 목사님한테는 제가 오히려 변덕을 많이 부렸습니다. 파닥파닥하는 못된 성질이 제가 있어요. 김희태 목사님하고 40년 우정이 유지된 건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김 목사님이 잘 해 주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평생 도움을 받고 삽니다. 제가 그러죠. 김 목사님 잘된 건 하나님께서 나 도와주라고 그렇게 된 거라고요. 오히려 뭐 한 놈이 큰소리친다는 격이죠. ―같은 서울남노회 회원들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님은 의리를 지켜요. 제가 복이 많아서 김 목사님을 사귀게 된 거죠. 저는 먼저 부모를 잘 만났어요. 아내도 잘 만나고 자식들도 좋아요. 저는 정말 성도들도 잘 만났어요. 그리고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가장 좋은 형님이죠. 나이도 저보다 두 살 위죠. 저는 만 가지가 없는데도 막 채워져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김 목사님은 정치도 하는데 막상 총회장은 되고 싶어 하지를 않아요. 순수한 거죠. 시대가 하도 순수하지 않으니까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설교도 살아 있어요. 사실 김희태 목사는 설교를 위해 많은 독서와 기도와 삶으로 준비한다. 그래서 그는 설교는 물론이고 크리소스톰의 삶과 정치적 성향도 닮았다. AD 39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인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죽자, 후임으로 크리소스톰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동방 기독교의 노른자위를 차지할 마음이 없었고, 안디옥 교인들도 위대한 설교자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지도자들은 명성이 자자한 크리소스톰을 콘스탄티노플로 납치하듯 데려갔다. 안디옥에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전격적인 조치로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으로 전임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첫 시작은 만사가 순탄하였다. 이곳 사람들도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많은 수입을 구제와 다른 경건한 일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정치적인 술수와 교직의 타락이 난무하는 도시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크리소스톰은, 부패하고 타락한 수하의 성직자들을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치리했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도들을 향하여 도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설교했다. 예배당 근처에서 벌어진 황후 유독시아의 은상 헌당식을 기념하는 외설적인 행사와 춤을 크리소스톰이 방관할 수 없었다. 그즈음 세례 요한의 축일에 맞춰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또 다시 헤로디아가 소리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난리를 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춤을 추었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과 정치적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던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AD 407년 크리소스톰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전 생애에 걸쳐서 가장 짧고 가장 뛰어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이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갔다. 20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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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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