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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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회관 개조
    해가 벌건 대낮에 이런 폭행이 어디 있겠나. 1년 비상근이거나 3년 별정직의 신분의 사람들이 총회나 총회 유지재단과 협의도 없이 교단의 심장이자 상징인 총회회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 난장판을 주도한 작자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총회 돈으로 휘파람불며 근 한 달이나 유람하고 다녔다. 그 동안 총회를 평생직장으로 삼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은 시멘트 분진과 굉음에 시달리며 자신들이 일할 공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어처구니없는 처우를 말없이 당해야 했다. 4층과 3층 두 층을 쓰던 총회 직원들이 3층으로 합치고 기존 4층은 총회장과 총무, 기독신문이 차지했다. 총회 본부 직원들을 한 층에 다 합쳐 놓으니 그 모양은 숨막힐듯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보험회사 외판원들의 사무실 분위기로 바뀌었다. 장자교단의 총회 직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은 우리 교단의 병든 실상과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았다. 기독신문이 쓰던 1층은 때 아닌 식당과 카페 공사비로 총회 소유 아파트 한 채를 서둘러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고 한다(이 대목에서는 이중 계약서의 의심도 든다). 그 이유는 총회유지재단 사람들에게는 작은 연립주택을 팔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실제로는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요지의 30평대 아파트를 팔았기 때문이다. 식당과 카페를 준다면서 인테리어까지 다 해 주는 해괴한 경우도 목격하자니 목울대가 치밀어 토할 것 같다. 더욱 재미있는 일은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는 것이다. 총회 본부 직원은 괴로움을 당하지만 총회회관 개조 공사 배후에는 총회유지재단 감사 남승찬 씨가 도사리고 앉아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감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2010년 95총회 총회감사부장 신분으로 아이티 구호헌금 횡령의 실상을 충격적으로 지적하고 고발했다. 그러나 그 뒤 그는 아이티 돈으로 아이티에 다녀온 뒤 아이티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얼마 전 그를 만나 그 일을 물었더니 자신은 무슨 돈으로 아이티에 다녀왔는지 전혀 모르고 총회에서 하라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며(왕복교통비만 1000만원 상당)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뜻 모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몇 년 전 그와 저녁식사를 우연히 같이 할 기회가 있어 좋아하는 성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마태복음 5장 9절이라고 했다. 내가 잘못 5장 5절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인용했더니 그가 바로 잡아 주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그는 정말 화평케 하는 복이나 재주를 타고 난 모양이다. 총회의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건 화평케 하는 그 재주로 그는 잘 먹고 잘 살고 있고 아들도 총회에서 평생직장으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는 화평케 하는 그 재주로 이번 총회회관 개조의 과실을 자신과 누군가가 먹고 나누는 배후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런 비리와 횡포의 실질적 책임은 마지막 제비뽑기 총회장으로 결재하고 자신이 그리도 자랑으로 여기는 하귀호를 위해 아이티사법처리를 방해하는 안명환 씨는 총회역사와 신앙양심과 법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99년 1월 10일 시작해 2007년 6월 10일 끝난 미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마피아 소프라노 패밀리의 가정사와 범죄를 다룬 드라마 소프라노스(Sopranos)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 정신과 여의사 멜피 박사가 자신과 심리 상담을 나누는 이태리계 미국 마피아 토니 소프라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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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3
  • 김영우의 주례
    면(麵)의 순우리말이 국수이다. 현대는 결혼식의 경우 모두 뷔페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의 결혼소식을 들으면 국수타령을 한다. 실제로도 결혼식 때에는 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관습 때문인지, 양식 풀코스를 제공한다 할지라도, 소량이나마 국수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결혼식 때마다 국수를 먹을까? 이 물음을 받으면 대부분 면발의 길쭉한 생김새에서 가늘고 길게 장수하라는 좋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거나, 무엇보다 빨리 대량으로 만들어 하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민속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결혼식 때 국수를 먹는 관습은 고려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국수는 밀이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귀족과 부자나 먹는 비싼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결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여겼던 사람들이 손님들에게 가장 귀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식에서 그 당시 비싸고 귀한 것이라 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란 관(冠 성인식) - 혼(婚 결혼) - 상(喪 사망) - 제(祭 제사)를 일컫는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관습 가운데 혼(婚 결혼)과 상(喪 사망)은 여전히 주효하다. 특별히 결혼에는 주례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주례(主禮)는 결혼식에서 예식을 관장하여 진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통 신랑과 신부를 잘 아는 사람 중에서 종교나 사회적으로 덕망이 높은 지긋한 나이의 남자가 맡는다. 결혼 주례의 특별한 경우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 번째 특별한 경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의 주례사의 한 대목을 보자. 부부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마땅치 않은 일도 생깁니다. 그때 화를 내고 싸우고 시비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내가 또는 남편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평소 주례를 서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던 김대중 대통령이지만, 1997년 한 번의 예외를 두었다. 그것은 바로 국악인이자 연기자인 ‘오정해의 결혼식’의 주례였다고 한다. 배우 오정해는 이를 위해 유명 가수의 축가 순서도 취소하고 주례사를 경청했으며 지금까지 주례사의 토씨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특별한 경우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그의 주례사 전부를 들어보자. 너를 보니 네 아비 생각이 난다. 부디 잘 살아라. 요즘은 주례사 없는 결혼식도 종종 있지만, 김구 선생의 주례사처럼 짧은 한 구절이 주는 강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주례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주례를 들은 하객이 시계를 봤더니 5초 걸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마지막 세 번째 특별한 경우는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조영남이다. 그의 주례사의 한 대목을 보자. 주례를 서기 전에 나도 간략하게나마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지(아마 재혼을 간소하게 알리지 않고 한 모양이다)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주례를 허락했습니다. (효자손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들었다는 ‘솔로용 로션 바르기 기구’를 들어 보이며) 이런 발명품이 필요 없도록 함께 오래 살길 바라요. 타의 모범이 되지 않는 나한테 다시는 주례 맡기지 마세요.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그가 2007년 1월 ‘이경실의 재혼식’에 주례를 섰다. ‘반면교사’를 자청하면서. 하객들은 웃으며 공감했다고 한다. 98총회의 결의에 따라 아직도 아이티사태전권처리위원장으로 루터처럼 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규식 목사가 5월 마지막 주말 아는 목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혼식 주례가 총신재단이사장 김영우 씨였다. 하객으로 참석한 신규식 목사가 그날 주례를 맡은 김영우 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아니 총각이 주례를 서네.” 1971년 땅값 오른 사당동 땅을 매각하고 경기도 싼 땅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총회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었다. 그때 일어난 총신 사태로 각 학년 대표 3명을 뽑는 21인 위원에 선출된 인연으로 당시 4학년 위원이 된 김영우 목사를 알게 되었다. 당시의 그는 빛나는 인물이었다. 전체 학생 가운데 그를 능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 그는 총신의 마스코트이었다. 21위원의 전국 순방과 전국 교회의 협조로 전기 시설도 없던 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 김영우 목사가 우리 교단이든 자신이 손을 놓지 못하는 공동체든 어느 한 곳에 그의 말대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대성했을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 시절 빛나지 못했던 학생들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운 것을 보면 김영우 목사라면 어떻게 됐을지 안 봐도 알 일이다. 반월에 달이 뜬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반월로 달려가 교회를 개척한 김인중 목사와 어린이 선교를 위해 서울의 끝 상계동 변두리에 조립식 건물로 시작한 김종준 목사를 보라. 그들은 이제 큰 교회와 학교까지 설립했다. 그런데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교단과 공동체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세우거나 맡고 있는 교회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가 세운 공동체비젼 고등학교는 어디에 이름을 내세울 형편이 전혀 못되고 어찌 된 일인지 2006년부터는 이사장도 나이 많은 여자 권사가 맡고 있다. 그가 기독신문 주필을 연임하려고 돈은 물론 용역까지 동원했었다. 그 시절 그랬듯이 돈을 뿌리고 그가 재단이사장으로 연임하고 있는 총신은 부정과 불법과 소송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쨌든 김영우 씨는 총각이 아니다. 그가 진실로 평생 주님만을 위해 살기 위해 결혼하지 않은 존 스토트 같은 실력과 신앙이나 양심과 행실을 지닌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우 씨는 인륜지대사의 하나인 결혼을 한 적이 없고 어쩌면 결혼할 수 없는 사정을 지닌 미혼 목사일 뿐이다. 사실 우리 교단은 군목의 경우를 제외하고 미혼의 목사 안수는 하지 않는 전통과 헌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미혼으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군목으로 군대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목을 마치고 교회를 담임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함에도 미혼의 그는 버젓이 5년간(1980. 10~1985) 독립교단의 명지대학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선천공동체에 속한 상계동선천교회와 다른 몇 교회들을 세워 관리하고 동시에 교단의 충청노회 소속의 서천읍교회를 맡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앞으로는 군목의 경우 처음에는 차질이 있을지라도 안수 전에 반드시 결혼을 하는 법을 세우거나 아니면 건덕 상 관행이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김영우 씨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교단 헌법에서 제 칠 계명을 다룬 성경 대요리문답 139문과 신도 개요 제 24장 2항과 3항을 어기고 있다. 이들 조항에 따르면 그는 결혼을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범법을 행하고 있고, 합법적인 인류의 증가와 거룩한 씨에 의한 교회의 증가를 위해, 또 부정(不貞)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신앙의 법을 어기고 있다. 1999년 첫 기독신문 주필을 시작으로 연임하던 시절 그는 시간이나 능력이 딸리면 대필도 서슴지 않는 신문사 사설과 칼럼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손봉호 박사도 글을 잘 쓰기 위해 수필가협회에 가입해 글쓰기를 공부하고 연습한 결과 현재의 잘 다듬어진 글을 쓰게 되었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영우는 신문사 주필을 하면서도 그런 노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사 운영에 관여하거나 총회 더러운 일의 이권에는 밝았다. 그가 머무는 곳은 어디나 그를 중심으로 음습하게 움직이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가 처음 기독신문사 주필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1999년 12월 15일(수) 기독신문사 실행이사회(이사장:최기채 목사)는 12월 13일 총회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신임 주필에 김영우 목사(서천읍)를 인준했다. 28명의 실행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 실행이사들은 사장 추천을 받은 김영우 목사를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만 13년동안 주필로 재직한 한명수 목사(창훈대)는 퇴임인사를 했다. 신임 주필 김영우 목사는 뜻밖에 교단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돼 어깨가 무겁다고 밝히고 앞으로 신문의 보도적 계도적 기능을 살려 공정한 보도로 교단발전과 총화에 기여하고 개혁주의적 교단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가 기독신문에 밝힌 이력서를 보자. 신임 주필 김영우 목사 프로필 충남 보령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1972년. 제2회)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1984년. 제69회) 미국 페이드 신학대학원 졸업(교육학 박사) 미국 풀러 선교대학원 재학(현재) 충청노회(당시 충남노회)에서 목사 안수(1976년) 공군군목 예편(대위) 서천읍교회 담임(현재) 선천공동체 대표(현재) 그로부터 그는 파란의 15년 간 총회를 쥐고 있다는 믿음과 불안 속에 온갖 눈치 살피며 부정과 불법을 일삼고 있다. 음모와 모사의 달인 김영우가 2012년 총신대 홈페이지에 재단이사장으로서 밝히고 있는 그의 학력과 경력이다. 총신재단이사장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공군 군목 예편 명지대학 교회 제 6대 담임목사 역임(1980. 10~1985) 충청노회 노회장 역임 기독신문 주필 역임 현, 선천공동체 대표 현, 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대표이사 현, 개혁주의 목회자 협의회 대표회장 현, 공동체 비젼 고등학교 설립자 (2002. 7. 27일 설립 2006년부터 이사장 나정심) 현, 서천읍교회 담임목사 그의 총회 여정을 다음 총회 때까지 두 이력서를 중심으로 몇 회에 걸쳐 말해 보도록 하자. 2014-06-23
    • G.OPINION
    2014-06-23
  • 분노를 다스리는 법
    격한 언쟁을 벌였다든지 해서 성이 났을 때는 잘 대처해야 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뭔가를 하는 것은 난폭 운전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건강ㆍ의료 정보 사이트 '헬스닷컴(Health.com)'이 화가 났을 때 절대 해서는 안 될 것 일곱 가지를 소개했다 ◆화난 채 잠자리에 들어가지 마라=분노에 사로잡혀 잠을 자면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수면의학 전문가들은 “수면은 깨어있을 때 얻은 정보를 처리하고 통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쟁을 벌인 뒤 잠이 들면 8시간 동안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것보다 나쁜 기억이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운전하지 마라=화가 난 운전자는 더 많은 위험성을 갖고 있으며 사고를 더 많이 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화가 나면 공격적이 되기 때문에 핸들을 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성이 난 채 운전을 하면 '터널 시야'를 갖게 돼 앞만 보게 되고 보행자나 거리의 주변적인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된다. ◆먹지 마라=화를 누르기 위해 음식을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역효과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성이 나면 브로콜리 등 좋은 음식 보다는 고당분, 고지방에 탄수화물이 꽉 찬 좋지 않은 음식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또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는 신체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감지함으로써 '투쟁ㆍ도주 반응'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소화기능이 제대로 가동을 못해 설사나 변비를 초래할 수 있다. ◆언쟁을 지속하지 마라=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울 때 말다툼을 하다보면 후회할 말을 하기 쉽다. 상대에게 상처를 줄 말을 해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면 '타임아웃'을 요청한 뒤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 타임아웃 시간은 10분이 될 수도 있고 10일이 될 수도 있다. 타임아웃을 갖는 동안 마음과 육체를 진정시킨 뒤 대화를 재개하면 좀 더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태도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갈등 상황을 올리지 마라=화가 났을 때 당신의 감정을 페이스북이나 다른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나 가족에게 널리 알리는 것은 되돌아 와서 당신을 계속 괴롭히게 된다. 소셜미디어에 공공연하게 뭔가를 알리면 거둬들일 수가 없다. 같은 상황이 이메일에도 해당된다. 화가 나서 이메일을 보내면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술을 마시지 마라=화가 난 후에 진정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알코올은 충동조절 능력을 제거하기 때문에 분노를 실행에 옮기기 쉽게 만든다. 이야말로 후회할 일을 하게 함으로써 영구적인 파멸을 가져 올 수 있다. ◆혈압을 무시하지 마라=연구에 따르면, 분노가 폭발한 뒤 2시간 안에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마비 위험이 거의 5배, 뇌졸중 위험은 3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일 고혈압이 있으면 화가 났을 때 가장 현명할 방법은 혈압을 체크해보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혈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운동이나 수면 그리고 생체 자기제어기술 등으로 분노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 위의 방법이 안 통하면 화를 푸는 제일 좋은 방법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4:26-27 어둠 속에서는 죄를 지을 확률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두워지기만 하면 무조건 다 잊고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잠부터 자는 것이 상책이다.
    • G.QT
    2014-06-23
  • 더굳뉴스 제8 호 총신을 사랑하는 마음 전 총신대 총장 정일웅 박사
    “세계를 섬기는 글로벌 리더 양성의 총 신대학교”란 슬로건을 가지고 시작 총신의 세계화를 향한 비전으로, 이미 총신대학교는 규모면에서 세계장로교 역사상 단일 신학교로는 가장 큰 신학교 총장 재임 기간에 학교발전과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총신백만기도후원예배를 통하여 많은 후원금을 모집하게 된 일 코메니우스의 높은 학문의 중요성을 깊이 인지 2000년 6월에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를 설립 오늘날까지 코메니우스 학문의 연구에 힘써
    • COVER STORY
    • COVER STORY
    2014-06-23
  • 명성교회 세월호 추모 기도회
    박근혜 대통령 기도회 참석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실종자들이 조속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울먹이며 기도목사들 무릎 꿇고 참회 통성기도 6월 1일 저녁, 진행순서가 많아 평소보다 30분 앞당겨진 주일찬양예배의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연합기도회'. 예배 시작 1시간 전에 본당에는 이미 빈 좌석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본당 1층은 외부인사 및 방문교인들에게 양보되었고, 2,3,4층과 구성전 1,2,3층 및 베들레헴관과 월드글로리아 전층과 각 건물의 지하 예배실까지 채우고도 모자라 야외의자를 모두 동원하여 모기들과 함께 예배를 보는 노천교회까지 개설되었다. TV의 지미집 카메라와 일간지 사진기자들의 자리싸움이 분주한 가운데 7시 정각 백색상의에 재색 하의 차림의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헤어스타일과 어깨 모습에서 금새 여대통령의 패션을 읽어낸 신자들이 말없이 기립하여 조용한 박수를 보냈다. 1만 명도 넘는 신자들이 모두 박수를 만들었지만 추모자리인 만큼 매우 절제하여 박수소리는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초로의 예술가이지만 나이 들수록 더 아름다운 소나무처럼 고고한 정명화의 첼로 선률이 예배당을 깊고 넓게 훑는다. 그렇게 맑은 첼로 음향은 처음 듣는다. 심연의 바다를 눈물로 채우고도 남을 슬픈 음빛깔이 교회를 온통 아프게 할퀸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의 아픔을 묘사한 가브리엘 포레 작 “꿈 꾼 후에”의 애절한 선율이다. 곡명을 모르는 예배 참가자들에게도 비통한 서글픔을 가득히 안겨 주고는 길게 여운을 남긴다. 만석을 이룬 신자들을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잠재운 정명화는 말없는 목례로 단상을 내려갔다. 성도들도 가슴 속만 울리는 침묵의 박수로 검정 연주복의 첼로 거장에게 답례를 보낸 추모연주였다. 명성교회의 '세월호 참사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위원회'가 주관한 기도회는 김삼환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박종순 목사와 한영훈 목사가 예배 전 '여는 말씀'을 맡고 장차남 목사와 김장환 목사가 설교를 했다. 김경원·목사가 중보 기도를 인도했다. 사회자 김삼환 목사가 너무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특유의 유머로 다소 누그러뜨리며 기도회의 참석 목사 전원의 집단 참회 통성기도가 이어졌다. 원로목사와 각 교단 대표목사들이 모두 신을 벗고 단상에 올라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시작했다. 여러 예배실의 안팎을 가득 메운 신자들이 드린 헌금은 안산기독교연합회 측에 즉석에서 전달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단으로 올라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로마서 12장 15절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함께해 온 한국교계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서 "지금 세월호 사고로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준 유병언 일가가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며 "과거에 이미 없어졌어야 할 기업이 회생절차를 악용해 되살아나서 탐욕스럽게 이익을 추구하다가 많은 국민의 희생을 가져왔는데 더 이상 이런 것이 방치되지 않도록 하겠다. 안전하고 행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데 한국교회가 큰 힘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모든 참석자들은 요란한 박수 대신 조용한 아멘으로 화답을 보냈다. 2014-06-23
    • G.QT
    2014-06-23
  • 제자교회 공동의회 무산
    제자교회 노회 소속 결정을 위한 공동의회 무산 6월 3일 아침부터 빗줄기가 굵었다. 제자교회 주변은 전경과 양쪽 교인들로 어수선했다. 제자교회관련 총회결의집행위원회(위원장:김신길 장로)는 제자교회에서 제98회 총회 결의의 노회 소속을 위한 공동의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자교회 일부 성도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제자교회 주차장에 설치된 천막교회 입구를 봉쇄하고 집행위원들의 출입을 가로 막았다. 이들은 “총회 결의는 불법이다” “정삼지를 인정할 수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2014-06-23
    • G.NEWS
    • G.NEWS
    2014-06-23
  • 김경원목사 설교 -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딤후 4장 1절~8절 사람이 일생을 살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살아온 삶을 돌아봅니다. 어떤 이는 잘못 살아 후회하면서 생을 끝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한 삶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참 잘 사신 분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고 때로 잘못된 삶이었다는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바로, 가치 있게 살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의 많은 분들이 값진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 중 가장 가치 있는 생을, 자랑스러운 일생을 사신 분을 손꼽는다면 아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랑하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최후를 내다보면서(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엄숙한 배경에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간단하게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데 이 고백이야말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생을 산 고백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떤 면에서 오늘 우리 모두가 삶의 끝자락에서 해야 할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바울의 일생에 대한 고백을 생각해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고백입니다. 가장 귀한 삶은 믿음의 삶이요, 끝까지 바른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도 한때는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유대 전통적 신앙인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길에서(사도행전 9장)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앙이 달라졌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른 기독론과 구원론을 확립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는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삶의 끝자락에서 믿음으로 살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거짓되고 잘못된 신학과 신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소위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즉 예수님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유일 구세주와 구원의 절대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 외에 다른 종교에서도 구원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절대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단,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그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는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바로 오늘 우리 신앙이 하나님 말씀, 성경 중심에 서서 결코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창세기 35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십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10년 사는 동안 그의 신앙이 잘못 되었습니다. 드라빔을 비롯해서 세겜 땅의 우상 신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한 분만이 아닌 잡다한 우상을 인정하는 신앙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 즉, 벧엘에서 가졌던 신앙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을 받은 야곱은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고 이방 신상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단지 장소적 이동이 아닌 믿음을 바르게 한 것입니다. 바르게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끝자락에서 믿음을 지켰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웠다’입니다. 바울의 일생은 어떻게 보면 평생 싸우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철저한 유대 율법주의로 무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전하는 자를 잡아 가두며 스데반을 죽이는 현장에서 박해자의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 뒤 그의 싸우는 삶은 계속 되었지만 싸움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의 싸움을 그는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선한 싸움이라고 고백한 내용을 보면, 먼저 진리를 위한 싸움입니다. 수많은 이단자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율법주의를 향해서 싸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진리를 위해 대제사장 앞에서 싸우기도 했고 로마 총독에게서 미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른 면에서 선한 싸움은 도덕과 영적 싸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보다 성결하게 살고, 죄에 물들지 않은 성도답게 살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까지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선한 싸움과 성화를 위해 발버둥치는 바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거룩성입니다. 우리는 분명 의신득구를 믿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너무 칭의를 강조하고 성화를 소홀히 했다는 신학자들의 지적을 봅니다. 즉, 믿음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믿은 후의 성도의 삶, 거룩해지거나 세상과 다른 삶의 모습이 약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안의 부끄러운 일들이 세상에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거룩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답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목사가 목사다워야 하며 장로가 장로다워야 합니다. 성결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모세도 출애굽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많은 해석이 있으나 거룩성을 요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야도 입술의 부정을 고백했습니다(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사 6:5). 우리 모두가 믿음과 동시에 성도다운 특히 교계 지도자다운 거룩성 회복 운동에 동참해야겠습니다. 끝으로,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달려갈 길은 무슨 길입니까? 곧 사명의 길입니다. 즉, 나는 일생을 사명 따라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과 직분과 은혜와 은사를 왜 주셨는가? 곧 내게 부여하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완수하라고 주셨다. 그러기에 나는 이 사명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 어디서든 늘 이 사명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다메섹 길에서 변화된 뒤 하나님이 주신 이방인의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는 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전도여행과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된 로마 등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일군들을 세우는 것이 모두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러나 이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명 때문에 옥에 갇혔고,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기도 했고, 미쳤다는 조롱도 받았고, 여러 차례 태장을 맞고, 투옥과 파선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하면서 섬겼습니다(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2).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와 장로로 세우시고 기대하시는 것이 있고 내가 꼭 해야 될 일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많이 말합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위기에서 온다고 봅니다. 무엇이 오늘 목회자의 위기입니까? 그것은 소명감의 상실과 거룩성의 훼손에서 오는 것입니다. 목사, 그는 목자입니다. 양을 돌보는 목양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목사들이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사는 목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세우셨는가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났다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회복은 말씀과 기도에서 나옵니다.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의 최대 교단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자랑 보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행보에 따라 한국 교회가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책임이 큽니다. 목사, 장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의 지금까지 삶이 바울의 이 고백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지요? 안 된다면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교회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살리소서, 회복시켜 주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2014-06-23
    • G.MISSION
    • G.SERMON
    2014-06-23
  • 위키피디아 길자연
    위키피디아의 생년월일 기록 1936년 길자연 목사 4월 20일 왕성교회 부활주일 2부예배에서 길자연 원로목사는 사무엘하 8:1-18 본문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다"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세상에 남긴 기록을 한번 보도록 하자. 세상의 기록에는 그가 태어난 생년월일이 어찌 된 일인지 두 가지로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위키피디아에 그의 생년월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길자연(吉自延, 1936년 4월 19일 ~ ). 두 번째는 국내 최고 포탈의 네이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길자연 목사 출생 1941년 4월 19일.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현재 그의 나이는 78세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현재 그의 나이는 통상적인 그의 말대로 73세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미국의 저명한 필립 로스 같은 작가도 위키피디아의 자기 작품 평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재판까지 해서 수정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위키피디아는 평가와 정확성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에 누구나 실리기를 바라는 세계 제일의 공정한 비영리 포탈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면 그의 왕성교회 주보에 MBC 십일조 관련 오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라는 간지 같은 것을 끼워 자신의 출생년도가 1936년이 아니라 1941년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밝히고 위키피디아를 그의 장기인 고소를 해서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 다음 총신대 총장약력에 밝힌 그의 학력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그는 졸업년도가 없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광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B.S.),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연구원 졸업,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D.Min.). 그는 총신 66회 졸업생이다. 그러면 그의 총신 입학년도는 1970년이고 연구원은 3년 과정이니 졸업년도는 1973년이고 그가 세상에 내세우는 생년월일에 따르면 나이는 37세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그가 졸업해서 이학사(B.S. 즉 Bachelor of Science) 학위를 받았다는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는 1965년 9월 3일 발족했다. 그가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 1966년 1회 입학생이라면 그의 경희대 한의학과 이학사 취득 년도는 1972년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총신 입학년도는 그의 졸업년도 기준으로 1970년이었다. 그의 두 가지 출생년도처럼 그의 한의대와 총신대의 입학과 졸업 년도의 어긋나는 차이는 또 어찌 된 셈인가. 그것은 길자연 씨가 경희대 한의과의 전신으로 각종 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동양의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거나 수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잠시 경희대학교의 역사를 살펴보자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은 1952년 2월 3일, 영어과, 중국어과, 법정과, 체육과의 4과를 갖춘 신흥초급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9일에는 4년제의 신흥대학으로 승격했다. 이어 1954년의 대학원 설치 인가와 함께, 1955년에는 설립 이후의 숙원이었던 신흥대학교(4년제 종합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현재와 같은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즈음하여 현재의 동대문구 회기동 고황산(高凰山=天藏山) 일대에 새 터전을 마련한 경희대학교는, 1955년에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글을 새긴 교시탑을 준공하는 한편 1956년에는 현재 본관으로 사용되는 석조 본관을 준공했다. 1960년에 법인의 명칭을 재단법인 고황재단으로 바꾸는 것과 함께 대학의 이름으로는 딱히 좋은 편이 아니던 신흥이라는 이름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이 시설기준 미비와 재정난 등으로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되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과로 변경되었다. 경희대에 병합되기 전 동양의과대학은 1955년 3월 10일 서울 한의과대학을 동양의약대학으로 명칭을 변경시켜 이전시킨 이래 1964년까지 약 9년간 한의사를 양성했던 곳이다.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 대필이 의심되는 논문으로 취득 마지막으로 그의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살펴보자. 이 학위는 풀러신학교와 아세아연합신학교가 연합하여 진행하는 목회학박사 과정이다. 논문은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쓰면 되고 심사는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학위 과정이다. 그가 풀러신학교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태신자 운동 및 양육을 통한 전도’이다. 그는 3.목회자들의 영성 저하(p103)에서 이렇게 썼다. 태신자 전도에 있어서 영적 파워는 필수적이다. 작정자가 태신자에 비해 영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점해야 전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작정자들이 영적으로 충만하도록 격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목회자 자신도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태신자 전도를 방법적인 면에서만 접근하게 된다. 왕성교회는 금요철야기도와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강력하게 도전을 줄 뿐만 아니라, 기도에 대해서 담임 목사(길자연)가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내보낼 수 있었다. 어느 교회든지 강력한 기도 운동 없이 방법만 모방하려든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구원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측면이요, 원리적인 측면이다. 이 글에서 길자연 씨는 자신이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왕성교회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내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교단과 교계의 관여하는 일마다 어떻게 거짓말을 일삼고 부정과 불법을 자행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나무의 좋고 나쁨은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보면 이 논문의 주장과 참고문헌도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그 예로 그는 논문 p61에서 John Stott의 Our Guilty Silence(1969) p15와 p19를 원문에서 번역한 양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 이미 번역되어 있는 책이라 ‘전도하지 않은 죄’라는 제목 하에 이런 자료가 뜬다. 저자 존 스토트 | 역자 김영배 | 기독교문서선교회|1979.09.01 페이지 148 | ISBN 9788934101277 | 판형 A5, 148*210mm 그는 논문작성자의 기본인 참고자료의 기본 검색도 하지 않고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참고문헌을 밝히는 난에서 영문서적 8권을 밝히고 있다. 원서 8권을 인용하기 위해 선정하려면 수십 권의 원서를 섭렵해야 하고 선정된 원서는 영어로 그 내용을 다 꿰뚫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원문을 영어로 다 읽고 필요한 대목을 뽑아 인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실력과 양심을 그가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학력도 포장하고 소문대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도 대필시킨 것인가. 대학 총장의 논문이 표절을 넘어서 대필을 시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 그 학위는 반드시 취소되어야 하고 돈을 주고 산 불법 총장 자리도 내놔야 할 것이다. 총회마피아 길자연 씨의 총신 총장 선출을 위해 불법 을 모의하고 자행한 총회장 안명환, 재단이사장 김영우, 운영이사장 전대웅, 목회대학원 원장 하귀호 등은 교단의 신앙회복과 헌법수호를 위해 면직 후 사퇴시켜야 한다. 전국 교회가 그들의 비행을 세월호 관계자들에 대한 것처럼 비난하고 정죄해야 할 것이다. 정죄가 없이 어떻게 회개가 일어날 수 있고 성경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기에 오히려정죄 받아 울며 교단과 교회와 신학교에서 안보여야 할 자들이 총회선교회, 총신대, 총회 등의 요직을 차지하고 한통속의 총회마피아가 되어 교단의 돈을 횡령하고,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고, 거짓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하나님의 총회가 구원파의 전철을 밟아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2014-05-12
    • 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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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2
  • 더굳뉴스 제7호 루터와 신규식 목사
    2010년 1월 지진으로 재난을 당한 아이티 난민을 돕기 위해 전국 교회가 헌금 구호헌금 30여억 원 가운데 22억을 횡령하고 아직 남은 돈 7억 7천만 원도 목적이 다른 곳으로 전용하려는 강도들 총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전권위원장으로 97총회와 98총회에서 동평양노회 소속 신규식 목사가 선임 지금의 심정을 종교개혁 당시의 루터와 같다고 술회하는 신규식 목사가 작성한 아이티 구호헌금 전용사건 사법처리 전권위원회 일지 총회의 결의를 따르기 위해 횡령범들에 대한 고소장에 총회 대표 안명환 씨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명예훼손 혐의로 총회의 고소를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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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2
  • 더굳뉴스 제6호 박형만 성경필사 조각가
    날마다 네 시간씩 모세 오경을 히브리어 그것도 모음이 없는 자음만으로 된 고전 히브리어로 1.5×3.3m 나무판에 필사 옛날 성경 필사 사본은 열 사람이 찬성해야지 아니면 폐기 원어로 성경을 읽으면 말씀의 삶의 적용에 훨씬 효율적 박형만의 한글 성경 필사는 8년이 됐고 히브리어 성경 필사는 2년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전시회나 저서 선물을 통해 그의 제자가 되어 성경 필사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신학 교수들도 있고 배우 최수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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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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