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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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의 생년월일 기록 1936년
길자연 목사

4월 20일 왕성교회 부활주일 2부예배에서 길자연 원로목사는 사무엘하 8:1-18 본문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다"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세상에 남긴 기록을 한번 보도록 하자. 세상의 기록에는 그가 태어난 생년월일이 어찌 된 일인지 두 가지로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위키피디아에 그의 생년월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길자연(吉自延, 1936년 4월 19일 ~ ). 두 번째는 국내 최고 포탈의 네이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길자연 목사 출생 1941년 4월 19일.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현재 그의 나이는 78세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현재 그의 나이는 통상적인 그의 말대로 73세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미국의 저명한 필립 로스 같은 작가도 위키피디아의 자기 작품 평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재판까지 해서 수정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위키피디아는 평가와 정확성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에 누구나 실리기를 바라는 세계 제일의 공정한 비영리 포탈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면 그의 왕성교회 주보에 MBC 십일조 관련 오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라는 간지 같은 것을 끼워 자신의 출생년도가 1936년이 아니라 1941년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밝히고 위키피디아를 그의 장기인 고소를 해서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 다음 총신대 총장약력에 밝힌 그의 학력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그는 졸업년도가 없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광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B.S.),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연구원 졸업,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D.Min.).
그는 총신 66회 졸업생이다. 그러면 그의 총신 입학년도는 1970년이고 연구원은 3년 과정이니 졸업년도는 1973년이고 그가 세상에 내세우는 생년월일에 따르면 나이는 37세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그가 졸업해서 이학사(B.S. 즉 Bachelor of Science) 학위를 받았다는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는 1965년 9월 3일 발족했다. 그가 경희대학교 의대 한의학과 1966년 1회 입학생이라면 그의 경희대 한의학과 이학사 취득 년도는 1972년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총신 입학년도는 그의 졸업년도 기준으로 1970년이었다. 그의 두 가지 출생년도처럼 그의 한의대와 총신대의 입학과 졸업 년도의 어긋나는 차이는 또 어찌 된 셈인가. 그것은 길자연 씨가 경희대 한의과의 전신으로 각종 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동양의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거나 수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잠시 경희대학교의 역사를 살펴보자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은 1952년 2월 3일, 영어과, 중국어과, 법정과, 체육과의 4과를 갖춘 신흥초급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9일에는 4년제의 신흥대학으로 승격했다. 이어 1954년의 대학원 설치 인가와 함께, 1955년에는 설립 이후의 숙원이었던 신흥대학교(4년제 종합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현재와 같은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즈음하여 현재의 동대문구 회기동 고황산(高凰山=天藏山) 일대에 새 터전을 마련한 경희대학교는, 1955년에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글을 새긴 교시탑을 준공하는 한편 1956년에는 현재 본관으로 사용되는 석조 본관을 준공했다. 1960년에 법인의 명칭을 재단법인 고황재단으로 바꾸는 것과 함께 대학의 이름으로는 딱히 좋은 편이 아니던 신흥이라는 이름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1965년 동양의과대학이 시설기준 미비와 재정난 등으로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되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과로 변경되었다. 경희대에 병합되기 전 동양의과대학은 1955년 3월 10일 서울 한의과대학을 동양의약대학으로 명칭을 변경시켜 이전시킨 이래 1964년까지 약 9년간 한의사를 양성했던 곳이다.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 
대필이 의심되는 논문으로 취득

마지막으로 그의 풀러(Fuller)신학교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살펴보자. 이 학위는 풀러신학교와 아세아연합신학교가 연합하여 진행하는 목회학박사 과정이다. 논문은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쓰면 되고 심사는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학위 과정이다. 그가 풀러신학교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태신자 운동 및 양육을 통한 전도’이다. 그는 3.목회자들의 영성 저하(p103)에서 이렇게 썼다.

태신자 전도에 있어서 영적 파워는 필수적이다. 작정자가 태신자에 비해 영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점해야 전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작정자들이 영적으로 충만하도록 격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목회자 자신도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태신자 전도를 방법적인 면에서만 접근하게 된다. 왕성교회는 금요철야기도와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강력하게 도전을 줄 뿐만 아니라, 기도에 대해서 담임 목사(길자연)가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내보낼 수 있었다. 어느 교회든지 강력한 기도 운동 없이 방법만 모방하려든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구원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측면이요, 원리적인 측면이다. 

이 글에서 길자연 씨는 자신이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왕성교회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내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교단과 교계의 관여하는 일마다 어떻게 거짓말을 일삼고 부정과 불법을 자행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나무의 좋고 나쁨은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보면 이 논문의 주장과 참고문헌도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그 예로 그는 논문 p61에서 John Stott의 Our Guilty Silence(1969) p15와 p19를 원문에서 번역한 양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 이미 번역되어 있는 책이라 ‘전도하지 않은 죄’라는 제목 하에 이런 자료가 뜬다. 

저자 존 스토트 | 역자 김영배 | 기독교문서선교회|1979.09.01 페이지 148 | ISBN 9788934101277 | 판형 A5, 148*210mm

그는 논문작성자의 기본인 참고자료의 기본 검색도 하지 않고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참고문헌을 밝히는 난에서 영문서적 8권을 밝히고 있다. 원서 8권을 인용하기 위해 선정하려면 수십 권의 원서를 섭렵해야 하고 선정된 원서는 영어로 그 내용을 다 꿰뚫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원문을 영어로 다 읽고 필요한 대목을 뽑아 인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실력과 양심을 그가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학력도 포장하고 소문대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도 대필시킨 것인가. 대학 총장의 논문이 표절을 넘어서 대필을 시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 그 학위는 반드시 취소되어야 하고 돈을 주고 산 불법 총장 자리도 내놔야 할 것이다. 

총회마피아

길자연 씨의 총신 총장 선출을 위해 불법 을 모의하고 자행한 총회장 안명환, 재단이사장 김영우, 운영이사장 전대웅, 목회대학원 원장 하귀호 등은 교단의 신앙회복과 헌법수호를 위해 면직 후 사퇴시켜야 한다. 전국 교회가 그들의 비행을 세월호 관계자들에 대한 것처럼 비난하고 정죄해야 할 것이다. 정죄가 없이 어떻게 회개가 일어날 수 있고 성경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기에 오히려정죄 받아 울며 교단과 교회와 신학교에서 안보여야 할 자들이 총회선교회, 총신대, 총회 등의 요직을 차지하고 한통속의 총회마피아가 되어 교단의 돈을 횡령하고,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고, 거짓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하나님의 총회가 구원파의 전철을 밟아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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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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