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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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선과 김정우의 거짓말
    입추(立秋)인 8일(토요일)에는 전국에 한때 소나기가 내리겠지만 무더위는 여전할 전망이다. 기상청은 8일 전국에 구름이 많이 낀 가운데 이날 오후엔 대기 불안정으로 서울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소나기(예상 강수량 5~40㎜)가 올 것으로 예보했다. 무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8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4도, 원주·대전·전주·광주·대구 등은 35도를 보일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모두 추해지는 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며 나이 듦을 찬양했다. 90년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초 배우였고, 2000년대는 대한민국 대표 아웃사이더였고, 사형대로 가기 전에 죽음 앞에서 덜덜 떨며, “나 떨고 있니?(‘모래시계’ 박태수 역)”라는 전설의 명대사로 기억되던 최민수(崔民秀, 1962년 3월 27일 ~ ). 그가 2015년 8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 “언제 외로움을 느끼나요?”라고 묻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신과 소통을 많이 해요. 성경에 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몇 번 나와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극한의 공포 앞에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단 1초라도 나를 위해서 깨어 있을 수 없느냐?’ 호통을 치지요. ‘나를 위해서’, 그게 신의 외로움이에요. 외로움의 극한 속에서 인간을 연민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지요.” 덥다 더워 폭염경보를 알리는 최고 34도의 말복을 나흘 앞둔 입추 8일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의 미문교회에서 그의 자녀 2남 1녀 가운데 37살 막내아들의 늦은 결혼예식이 열리는 모양이다. 백남선 목사는 총신연수원 2년을 다니고, 김정우 목사는 총신연구원 3년을 다니고 1979년 총신 72회로 같이 졸업했다. 백남선은 목회와 총회 정치를 병행해 총회 서기를 거쳐 2014년 제99회 총회장이 되었다. 김정우는 미국 유학을 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M과 Ph.D를 받은 뒤 총신 구약학 교수가 되었다. 백남선 목사는 8월 3일 순복음기관지 국민일보, 감리교 장로가 운영하는 CTS, 우리 교단 장로 친목단체 기관지 장로신문, 뉴스앤조이 기사도 내려 받는 원불교 대학 출신의 편집국장의 기독신문 등 네 언론사 기자를 앞에서 총신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작은 언론사지만 기사마감일이라 일을 처리하고 11시 30분쯤 총회 4층 임원회의실에 들렀다. 그런데 기자회견은 취소되고 임원회만 갖고 마쳤다며 총회장과 회계와 부회계 장로만 회의실에 남아있었다. 리폼드뉴스 기자도 들락거렸다. 총회장 백남선 목사에게 오늘 임원회에서 무엇을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총회장은 더굳뉴스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뭐 결의한 게 없어요.” 그러나 7월 19일 주일에 총회 서기 도성교회 앞에서 삼일교회 교인들이 시위를 하고 바로 그 주일에 올린 뉴스앤조이 기사를 기독신문의 송상원 기자가 내려 받아 충실히 전한 총회 기관지 8월 4일자 기독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총회임원회는 8월 3일 회의를 열고 교육부장관 앞으로 ‘총신대학교 임원, 총장 선임사항 승인 보류청원’ 공문을 보내기로 결의했다. 만일 이 공문이 접수된다면 교육부에서는 운영이사회에서 선출된 재단이사들을 승인해주기가 어렵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정관개정 역시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학교 측과 총회 측간의 감정의 골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결국 오는 9월 제100회 총회에서 학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결말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이미 평가가 끝난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도 막판 뒤집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되어 총신대는 2016년부터 신입생 정원 감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회의에서 결정한 ‘보류청원’ 공문을 통해서 “총신대학교가 재단이사 선임과정에서 총회장과의 합의, 교단 내 절차, 실정법을 어겼다”면서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가 원만하게 이사회를 합법적으로 구성할 때까지 승인을 보류해 달라”고 밝혔다. 공문에서는 또한 “이번 재단이사회의 구성은 총회 내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며 임기 전 사표를 낸 이사가 선임되는 등 절차적인 하자가 있다”면서 “합의 이행을 전제로 재단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마친 김영우 이사장의 총장 선임도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7월 9일 기독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백남선 총회장과 김영우 총신대재단이사장이 7월 8일 광주의 법률사무소에서 총회와 총신대 화합을 위한 합의서를 공증했다. 백 총회장과 김 이사장은 이에 앞서 7월 7일 기독신문을 통해, 지난 6월 30일 전격적으로 도출한 합의서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발표한 바 있다. 백 총회장과 김 이사장간의 최종 합의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합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이하 “총회장”이라 함)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이사장 김영우 목사(이하 “법인이사장”이라 함)는 2015.6.30.자 합의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한다. 아래 1. 총신대가 최근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정량평가에서는 상위 25% 안에 드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총장 및 법인이사회의 파행으로 인하여 분규대학으로 분류되어 부실대학(정부예산지원감축?정원감축?본교단목사 전원 부실대학출신 오명 등)으로 추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법인이사회가 총신대 관련 제99회 총회 결의 정신을 살려 총신대학교가 총회 직영신학교로서 운영함에 있어 법적인 하자가 없도록 필요한 조항을 전반적으로 수정하기로 약속하고 있으며, 그리고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총회 안의 화합이 절실하게 요청되어서, 총회장과 법인이사장은 2015.6.30.자 합의서를 작성했다. 2. 총회장은 법인이사장을 길자연 전 총장의 잔여임기동안의 총장으로 운영이사회에서 추천할 수 있도록, 그리고 법인이사회에서 최종 선출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절차를 추진하기로 한다. 3. 법인이사장은 총장으로 선출될 경우, 법인이사장직과 법인이사직, 그리고 운영이사회 부이장직과 이사직을 모두 즉시 사퇴하며, 법인이사회와 운영이사회에 관련된 사항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그리고 법인이사 선임 및 개선?정관 개정 등에 관하여 총회의 입장(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로 한다. 4. 법인이사장은 총장으로 선출될 경우, 그간 총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가처분신청을 모두 즉시 취하한다. 5. 운영이사회와 법인이사회는 총장 선출을 완료할 때까지는 총장 선출 안건만으로 회의를 개최하며, 다른 안건(법인이사 선임 등)으로는 회의를 개최하지 않기로 한다. 6. 총회장과 법인이사장은 본 합의서를 기독신문에 알리고 공증사무실에서 인증받기로 한다. 2015년 7월 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이사장 김영우 목사 이 합의문에 약속한 대로 7월 10일 총신대 회의실에서 열린 총신대운영이사회와 재단이사회에서 신임총장으로 1차 투표에서 선임됐다… 투표에 앞서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나서 총장 선임에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백 총회장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정관개정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나 총신대학교가 구조조정의 위기를 당하게 되어 결국 화합안을 냈다”면서 “저의 중심을 이해하시고 총회와 총신대를 위해서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백 총회장은 “총장 선임 문제가 마무리되면 재단이사회 정관을 전반적으로 수정해서 총신대가 총회와의 관계를 긴밀히 갖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8월 3일 총회임원들은 총회장과 총신대 김영우 총장간의 합의가 무시됐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으며 ‘보류청원’ 공문 채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총신대 문제와 관련해 총회실행위원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으며 개최 시기를 총회장에게 일임키로 했다. 이같은 임원회의 입장은 총신대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재단이사 보선과 총장 인준 등을 오는 제100회 총회에서 재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제99회 총회를 대표하는 총회장임에도 백남선은 그 다음날 신문지상을 통해 드러날 총회임원회 결의에 대해서조차 거짓말을 하고 공증까지 하고 신문에 발표한 합의서 내용까지도 3주 만에 그것이 거짓이라며 뒤집는 행동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동기 김정우 교수가 주동이 돼 총신대학교 구약학과 교수들이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김지찬 교수의 책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들은 검증한 결과를 7월 29일 성명서 형태로 7월 30일자 기독신문에 발표했다. 결론은 “제기한 의혹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으며 충분히 소명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지찬 교수의 저작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생명의말씀사, 1999) 표절 의혹 검증은 총신대학교 구약학 전공 교수 7인 전원이 모두 참여했다. 김 교수의 표절시비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총신대 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증과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는 김정우 김희석 황선우 이희성 박철현 오성호 김영욱 등 7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의 근간이 되는 과정과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시간을 가지고 김지찬의 책에 언급되고 인용된 자료들을 얼마나 자세히 조사하고 검토했는지에 대한 과정과 내용이 빠져 있어 급조된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 가운데 한 교수는 당일에 갑자기 불려나가 들러리를 섰다는 말까지 들린다. 사실 나는 김지찬 정도의 교수라면 약간의 실수나 착오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있겠는가. 천하의 손봉호 장로의 글도 털고 털면 먼지 한 점 안 날린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럴진대 사랑의교회 재정 장부 공개로 드러났듯 주일이면 사랑의교회에서 억대 아르바이트하기도 바쁘신데 그런 먼지에 불과한 표절시비에 대해 그냥 사과하고 더 노력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면 끝날 일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정식 박사 학위를 가지신 분이라 그러신지 석사 논문으로 비난을 받은 배우 김혜수보다 못한 태도로 애처롭게 마녀사냥이니 뭐니 악을 쓰다가 이제는 동료 교수들까지 동원해 덮으려는 다분히 치기가 느껴지는 그런 태도는 안쓰럽다 못해 볼썽사납기만 할 따름이다. 그런데 후배 교수를 도우려는 갸륵한 충정에서 이런 일에 동참해 앞장서고 있는 김정우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 독선과 위선 외에는 사랑이 희미한 사랑의교회의 사랑스러운 제자를 위해 총신 졸업 과정의 자칫 귀찮고 어려울 수도 있는 그의 담당 과목들(세 과목)의 출석과 점수를 사랑으로 대행해 주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그의 제자는 영어논문 표절 의혹과 영어 대필의 의혹도 받고 있는 사람인데 총신 구약학 교수 김정우를 통한 그의 출석 부정과 불법 점수는 어떤 명칭을 붙여야 할지 막막하다. 총신대학교 당국은 나는 그럴 리가 없기를 바라는 그 사실 여부를 밝혀 주고 김지찬은 표절시비에 대한 성명서로 김정우의 은혜를 입었으니 답례로 김정우의 거짓 행위를 사실이 아니라고 총신 교수들이 모여 서명하고 기독신문을 통해 답변해 주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이런 일은 표절 검증보다는 아주 손쉬운 일일 수 있다. 보충 설명인데 서철원 교수는 그런 경우 출석은 다 안 한 것으로 처리하고 점수만 60점을 주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보수 개혁주의라는 기치를 내세운 우리 교단에 거짓말과 배금사상(拜金思想)이 스며들어 총신과 총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둘 중에 가장 무서운 죄는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을 일상적으로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이시기에 거짓을 말씀하실 수 없다(딛 1:2). 신자의 의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온전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는 진실해야 한다(마 5:48). 그러나 온전하지 못하게 되는 까닭은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다(요일 2:21). 거짓은 진리이신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다. 거짓은 어둡고 불안하고 파멸을 가져온다. 그러나 진실은 밝고 평안하고 구원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고 거짓을 싫어하신다(사 65:16).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6). 그러나 사탄은 진리를 싫어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알고 있듯이 쉬운 일은 아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숨기는 일이 더 합당하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 주님이 말씀해 주시듯이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우리 마음이 믿음과 진실이 아니라 자아만이 가득 차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숨기거나 왜곡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다면 우리의 말은 날로 진실해지고 남을 유익하게 할 것이다. 배우 최민수 조차도 솔직하게 자신의 외로움과 예수님의 외로움을 말한다. 목사인 우리는 무엇을 말하며 살아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4-35 2015-08-08
    2015-08-08
  • 백원 택시와 전병욱 목사
    7월 3일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주님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장래 교단의 지도자가 될 목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의 변화와 그의 배려로 진도 관광을 위해 탄 택시가 100원 택시의 전도사 김현종 기사의 차였다. 그는 아내 강미영과의 사이에 아들 셋을 두고 있다. 그에게 우리 신문 더굳뉴스를 한 부 전달했는데 그는 점심시간의 막간을 이용해 그것을 읽고 전병욱 목사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며 전 목사에 대해 물어왔다. 더욱이 그의 세 아들 가운데 위의 두 아들이 전병욱 목사에게서 은혜를 받은 청년들이었다. 그 아들들의 영향으로 아버지 김현종 기사도 신자의 생명 기도를 담은 전병욱 목사의 저서 『낙타의 무릎』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진도 모세의 기적 포구와 이순신의 명량 대첩을 관광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의 땅 끝 진도에서 전병욱 목사의 설교와 기도로 전한 믿음의 열매가 맺힌 기적을 김현종 기사를 통해 목격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서천이 2013년 6월부터 시행한 ‘요금 100원 희망 택시’ 사업이 새로운 복지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읍사무소에서 6㎞ 떨어진 산 중턱마을인 서천군 서천읍 화성리와 같이 교통이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을 위해 서천군 측은 요금 100원 희망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충남 서천 이어 전라남도 도지사 이낙연이 추진하고 있는 백원 택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도와 일선 시·군이 민선 6기 공약사업으로 추진중인 '100원 택시'가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면서 선진 교통복지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교통 오지마을 주민들을 위한 '100원 택시'가 지난해 보성군과 화순군에서 시범 운영된 데 이어 올해 11개 시·군 249개 마을에서 본격 운행 중이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운행실적을 집계한 결과 249개 마을에서 11만2480명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평균 750명, 매월 2만2500여명이 이용한 것이다. 특히 전체 이용 대상자 7456명은 1주일에 1차례 이상 '100원 택시'를 탄 것으로 분석됐다. '100원 택시'는 교통 취약지역 주민들이 읍소재지 등 정해진 구간까지 100원을 내고 택시를 이용하면 택시요금의 차액을 도비와 시·군비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100원 택시 티켓은 1가구 당 3장을 받는데 유효기간은 한 달이다. 택시 기사는 한 달 동안 이 티켓을 모아 구청에 제출하면 일괄 지불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오지의 어르신들이 많은 혜택을 보는 동시에 택시 기사들에게도 봉사의 기회와 정기적인 수입을 보장받게 되었다고 한다. 김현종 기사의 친절은 어르신들에게 감동을 주어 친자식 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낙타의 무릎』은 교인 80여명의 삼일교회에 부임하여 오직 생명을 건 기도를 무기 삼아 부르짖으며 현장이 있는 기도의 능력으로 300배 2만3천여 명의 교회로 성장시킨 전병욱 목사의 기도 체험서다.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더더욱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 하나님께 순종한 무릎의 승전기이다. 밤낮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낙타 무릎이 되었다는 전설을 딴 야고보의 무릎을 강조하는 기도서다. AD 44년 아그립바 Ⅰ세의 박해로 투옥되었던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출옥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며 야고보에게 교회를 부탁했다.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행 12:17). 그 때부터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야고보에 대해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사도들이 함께 교회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홀로 성전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모든 인간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 야고보의 무릎은 낙타의 무릎처럼 딱딱해졌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의인 또는 오블리아스라고 불렀는데 오블리아스는 인간의 방파제이며 의로움이라는 뜻이다(유세비우스 ‘교회사’ 2-23). 그래서 행위의 복음서라는 별명을 가진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 사도의 별명은 낙타무릎이다. 낙타의 무릎은 양쪽 무릎에 푹신한 혹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그것은 낙타가 자주 무릎을 꿇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는 오직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친 사도로 기록되어 있다. 야고보는 늙어서 순교하는 자리까지 기도로 삶을 시작했고 기도로 삶을 마쳤다고 한다. 100원 택시 김현종 기사는 더굳뉴스의 구독자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그가 내려준 목포역에는 서울로 가는 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1-12 2015-08-03
    • G.MISSION
    • G.MISSION
    2015-08-03
  • 총신 재단이사 보선의 먹구름
    총신 재단이사 보선을 위한 2015년도 3차 운영이사회의가 7월 28일 화요일 오후 1시 총신대 종합관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한국 목사들의 골프 천국 필리핀으로 이주 절차를 밟고 있는데도 사임을 하지 않은 총신운영이사회 부이사장 송춘현 목사가 이사장 김종준 목사가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 나서 사퇴하는 바람에 운영이사회 이사장 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는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총신의 변곡점에서 큰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 역할을 위해 필리핀 현지에서 이주 절차(은퇴 자금도 청천교회에서 두둑하게 받고)를 일시 중단하고 한국여권을 되찾아 재정적 손해도 무릅쓰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울에 돌아왔다. 이사들이 회의장을 채우고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총신총장 김영우 목사가 명패가 있는 앞자리 별석에 병풍처럼 나란히 앉았다. 제1부 예배시간이다. 전 제98회 총회장이고 현 재단 부이사장인 안명환 목사가 기도했다. 사회자 송 목사가 성경을 읽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6-8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덕이 있는 회무가 되기를 바란다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쳤다. 2부 회의에 들어가 총신이 미래지향적이 되기를 바라는 전대웅 목사의 기도가 있었다. 총신 고위 관계자는 말했다. “개혁 측이 들어올 때 종이 한 장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총회에 들어온 개혁 측 전체보다 귀한 보물 운영이사회 서기 고광석 목사가 또박또박 알밤처럼 회원호명을 했다. 재적 143명 중 83명 출석했다고 보고했다. 그 때 사회자 송 목사가 혹시 대답 못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농담이 오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참석 이사가 과반이 넘는다는 서기의 보고를 듣고 송 목사가 개회 선언을 했다. 전회의록낭독을 유인물대로 받자는 동의가 있었다. 총회 자유인 강일구 목사가 깁스를 한 왼발에 목발을 짚고 회의장에 들어와 앞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서기가 회의안건 상정을 했다. 1. 재단이사 선임의 건2. 총회신학원 야간기능 전환의 건3. 목회신학전문대학원 기능 재정립의 건 그리고 고광석 목사가 안건 토론에 앞서 재단이사와 개방이사에 대해 길지만 일목요연하게 보충설명을 했다. 총회신학교 재단이사 15인 선임에 있어서 총회결의로 세 권역별 서울서북 지역 5명, 호남중부 지역 5명, 영남 지역 5명 등의 구도를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개방이사는 전체 4분의 1인 4명을 반드시 뽑도록 되어 있다(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그 배우고 가르침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됨으로써, 비리가 만연하고 공교육이 훼손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고자 도입된 제도가 개방이사제이다). 그 다음 사립학교 사학법에 의해서 교육이사는 정수의 3분의 1인 5인 이상을 뽑도록 되어 있다. 교육이사는 인가된 학교에서 3년 이상 교직 유경력자이어야 한다. 개방이사는 총회에서 파송한 3인과 재단에서 파송한 2인 등 5인이 추천 임용되고 일반 재단이사는 운영이사회 규칙에 의해 운영이사회 임원회에서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15명을 3개 권역 그리고 사학법에서 요구하는 개방이사 4인, 교육이사 5인 이와 같은 것들을 충족해야 되기 때문에 어제 추천위원회가 모여 제99회 총회결의시행 위원장 명의로 9인을 추천했으면 좋겠다는 공문을 접수했다. 그리고 개방이사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총회 추천 인사 3인, 재단 추천 인사 2인 총 5인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안명환 재단이사장 직무 대행과 김승동 목사를 제외하고 총 13인이 일괄 교체되기 때문에 권역별 이사, 직무이사, 그리고 개방이사와 법인이사를 함께 구성해야 된다. 그러므로 복잡해서 결의시행위원회에서 요청한 9인 가운데 일반이사와 함께 개방이사를 전부 디자인해보자는 의미로 저희가 짜서 오늘 추천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 추천위원은 개방이사 추천 권한은 없다. 개방이사 추천 권한은 아까 말한 것처럼 총회 측 추천 인사 3인과 재단 측 추천 인사 2인이 개방이사 4인을 추천한다(김희태 목사가 앉은 자리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개방이사는 실행위원회에서 추천하기로 총회에서 결의했다고 중간 발언을 했다. 사회자가 서기에게 서기가 사회자냐고 물으며 발언자를 중단시켰다). 하여튼 운영이사회가 개방이사 추천 권한은 없기 때문에 오늘 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선출해야 하는 것은 운영이사 임원회가 추천할 수 있는 이사뿐이다. 개방이사 4인은 개방이사 추천위원회에서 해야 한다. 현재 안명환 재단이사장 직무 대행과 김승동 목사는 현재 임기가 남아 있는 이사들이다. 그래서 이상 6인을 제외하고 9인을 선정하게 되는데 총회결의시행위원회에서도 9인을 추천 의뢰했으므로 최대한 존중을 하고, 개방이사도 함께 짜보자 하는 거다. 개방이사 추천 권한은 운영이사회에 없고 참고 사항이다. 서울서북 개방이사 1인 있고 개방이사 2인인데 교육에 개방이사가 추천되어야 한다. 개방이사가 5인인데 참고로 서울서북 개방이사 2인, 호남중부 2인, 영남 1인이다. 반대로 개방이사는 4인이니 서울서북 2인, 호남중부 1인, 영남 1인이다. 개방이사 서울서북 장봉생 : 이상협 목사, 개방이사 교육에 정중헌 : 김동관 목사, 일반이사 중에 안명환 목사는 현직이고, 일반이사에 고영기 목사, 교육이사에 유선모 목사, 호남중부 개방이사 교육에 오정호 : 소강석 목사, 교육에 한기승 목사, 일반에 정용환 목사, 일반에 류태영 목사, 일반에 박춘근 목사, 영남 개방에 이승희 목사, 교육에 배광식 목사, 일반에 김승동 목사 현직, 일반에 김신길 장로, 일반에 김정훈 목사 등 이렇게 결의해 보고를 드린다. 사회자 송 목사가 보고를 받고 진행을 알렸다. 그 때 총장 김영우 목사와 나란히 병풍처럼 앉아 있던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남미 순방 뒤라 약간 그은 얼굴로 손을 들고 일어나 발언에 나섰다. 저도 한번 불가피하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는 대로 지난번 총회 결의가 이사장을 8년 하면 하지 말자 소급을 해가지고 그것 가지고 옥신각신하다가 소송하고 법정까지 가고 그러다가 저하고 총장하고 합의를 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단추는 잘 끼웠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추 세 번째 단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단추는 재단이사를 잘 선임하는 일이고, 세 번째 단추는 법을 정관을 잘 고치는 일입니다. 그래야 총회에서 묵시적인 동의를 끌어내 가지고 화평도 이루면서 총회신학교도 정상적인 궤도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운영이사들이 오셔가지고 우리 중심을 이해하시고 협력해 주신 것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재단이사 선정에 있어서는 총회 7인위원회가 일단 오늘 9인을 법적으로 선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분은 놔두고 말입니다. 9인을 넣었는데 제 이름도 거기 넣었습니다. 이분들을 운영이사회 임원들이 추천해야 하는 거니까 추천해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러면 법도 살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대로 안 되고 지금 이야기하는 대로 다른 개방이사는 선정할 수 없다는데 틀을 짜서 전체적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 9인을 했습니까. 새로 짠 틀에 보면 8년 이상 하지 말자고 소급까지 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 유능한 분들이긴 합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들어가면 일반적인 정서에 안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총회에서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두 번째 단추를 잘 끼워야 됩니다. 빠져야 될 분들이 다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총회에서 안 되고 제가 돌 맞을 각오를 하고 결단을 내린 것은 그렇게 하자고 한 것 아닙니다. 결단을 내린 것은 재단이사 바로 넣고 또 법 바로 고치고 그러자는 겁니다. 사실 지금 운영이사회 몇 분이 남아계시지만 이번에 시행위원회에서 공직 정지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직 정지시킬 수는 없다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표를 냈으니 사표만 수리하면 되지 않느냐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표를 냈지만 그 동안에 이사회에서도 대전에서 재단이사를 불법으로 선출을 했습니다. 그런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법적으로 절대 무흠하지 않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묵시적으로 풀었으니 그분들한테 책임을 묻지 않고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짜갖고 나오면 저 개인 자신도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아무리 결의해도 총회장으로서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만 알고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말을 조리 있고 알맞게 맞추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문 있는 쪽으로 나갔다. 총장 김영우 목사가 재빨리 따라나섰다. 운영이사장 대행 송춘현 목사는 총회장이 참고 발언했으니 참고하라며 정관 운영규칙대로 진행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설교강단에 서면 황금의 입이 되는 김희태 목사(동광교회)가 발언권을 얻어 마이크를 잡고 서울남노회 김희태 목사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사석에서 목소리가 낮아 안 들린다는 소리에 자기 목소리가 작지 않은데 말하며 김희태 목사가 웃고 죄송하다며 음성을 높였다. 제99회 총회 때 재단이사들에 대해서 결정을 했습니다. 아무 때까지 사임하지 않으면 목사 면직하고 그 노회에는 총대권 정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분들이 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마 재신임을 받으려고 그러는가 본데 운영이사회 위에 총회 있습니다. 총회에서 그분들 들어오면 이제 벽두부터 시끄러워집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오래 수고하셨으니까 이제 집에서 손자들하고 노시고 이제 새 인물들로 추천을 해야지요. 그래야 총회 결정이 살죠. 운영이사회 임원회에서 그 정도는 생각하고 추천을 해야죠. 총회 결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러 총대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임하지 않는 재단이사 그분들이 버티면 총대권 정지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사나워지면 목사 면직입니다. 이게 법입니다. 목사 면직까지 총회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혹시 추천됐더라도 그분들은 얼굴 붉히는 일 없게 오늘 사퇴하세요. 그리고 나머지 분들 보선하고 그럽시다. 목사 면직을 어디서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설왕설래가 잠시 있었지만 송춘현 이사장 대행의 능숙한 사회로 곧 재단이사 보선 투표에 들어갔다. 호명에 따라 투표지를 받은 이사들이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고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잠시 나가 총회장은 어디에 있나 했더니 새로 꾸민 총장실에 총장 김영우 목사, 여러 직함을 가진 허활민 목사 등과 함께 유선모 목사 책상 위의 기품 있는 난 앞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전 총장 길자연 목사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난을 닮은 총장 책상 위의 난에는 유선모 목사 이름이 새겨진 금색 띠가 늘어져 있었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 중에 두 번째 안건 총회신학원 신학생 감소로 인한 수입보충 수단으로 목사 안수도 못 받는 야간기능 전환의 건에 대한 보충 설명을 총신대 기획실장 김산용 목사(개혁출신)가 남방차림으로 하는 가운데 매년 재정 적자가 30억에 이른다는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은 김희태 목사와 오정호 목사의 강한 질타를 받고 안건심의는 다음으로 보류되었다. 이날 총회장, 총장, 운영이사들이 참석하는 회의석상에 총신대 기획실장 김산용 목사와 법인국장 권주식 목사가 정장이 아닌 반팔 남방 차림으로 보고를 하고 서류 체크를 하며 돌아다녔다. 반면에 행정처장과 다른 안내 남자 직원은 정장 차람이었다. 얼마 전이었는데 취재차 재단이사장을 만나고 있는데 누군가 이층에서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발로 차대는 소동이 있었다. 궁금해 이사장실에서 나가보니 김산용 기획실장이었다. 앞에 서 있는 권주식 목사에게 왜 저러느냐고 물었더니 결재 받을 게 있는데 안 해 줘서 저런다고 동조하는 투로 말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중요한 총회장이 참여하는 회의석상에도 공직자의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는 무례함을 공공연하게 내보이고 있다. 그는 나 같은 자유로운 기자가 아니라 총회 산하 기관의 고위급 직원이다. 그런데 총회장과 운영이사들과 재단이사들이 참여하는 회의에 기획실장 직함의 목사가 남방 차림으로 나타나 보고까지 한다는 것은 총회와 교회와 목사를 무시하는 총신의 기강 상태를 나타내는 표본이 아닐지 심히 걱정스럽다. 개표 완료되어 두 번째 안건과 나머지 안건은 다음에 다루기로 보류하고 개표가 발표됐다. 투표 결과 9인 모두 유효투표수(운영이사 재적 143명 중 처음 참석 83명에서 지각 이사가 있어 89명 투표참석) 45표 과반수이상을 얻은 재단이사의 명단을 발표했다. 개표위원의 발표순에 따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유선모 목사(75표), 고영기 목사(74표), 한기승 목사(58표), 정용환 목사(71표), 유태영 목사(69표), 박춘근 목사(74표), 배광식 목사(67표), 김정훈 목사(76표), 김신길 장로(68표)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는 수시로 민정을 살폈다. 어느 날 민생 시찰 행렬이 그의 수레를 모는 마부의 집 앞을 지났다. 마부의 아내가 담장 너머로 보니 남편이 수레 위에서 우쭐대며 채찍을 휘둘러 말을 몰고 있었다. 마부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남편이 놀라 이유를 묻자 아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재상께서는 6척도 안 되는 단신이지만 숙고하는 얼굴에서 깊은 학식을 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 거구면서 남의 수레나 끄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슨 희망을 가지고 당신 같은 사람과 살겠습니까.” 청천교회 원로가 되고 일생일대의 큰 감투 운영이사장 대행까지 맡은 송춘현 목사를 마부에 비유하기가 뭐하지만 생각이 그리 향하는 걸 어찌 막겠는가. 그의 훌륭한 풍채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미남상과 날씬한 몸매와 착 가라앉은 말투로만 보자면 운영이사장 대행 자리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회의장에서의 그의 언행은 비록 거들먹거리는 것은 아니었더라도 우쭐한 마부에게나 어울리는 부박(浮薄)한 것이었다. 이제 은퇴하고 퇴직금도 두둑하고 선교 후원금도 만만치 않게 골프 천국 필리핀에서 선교한답시고 살게 되었으니 무에 부족한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도 이제는 총회에서나 어디에서나 아무런 바라는 것이 없고 오직 위기에 빠진 총신문제만 아니면 걱정할 것이 없다며 곧 눈물까지 흘릴 기세다. 그는 회의석상에서 총회장의 발언을 참고발언이라고 비하하고, 이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기획실장의 발언 태도와 남방차림에 대해 엄하게 말하지 않은 것은 가히 직무유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알면서 그랬다면 명백한 자질 부족이고 몰랐다면 무능력”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김희태 목사의 발언에 사회자임에도 발언 간섭을 하고 기획실장을 편드는 보충발언을 하고 안건을 통과시키려다 안 되니 누군가의 동의로 다음에 보고를 받고 회의벽두에 다뤄야 하는 유안건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그는 운영이사들에게 “총신이 위기”라고 한 발언은 사회자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자칫 과장과 오만에서 비롯될 수 있는 발언의 경계수위를 넘었다. 회의가 끝난 뒤 이사장실의 간담회에서 “골프”를 옹호하는 발언도 좋게 봐주자면 사람 좋은 송 이사장 대행이 모처럼의 높은 감투에 우쭐하고, 총회와 총신의 갈등 한 가운데에서 진행하는 운영이사회에서 보기 드문 명사회자라는 유유상종(類類相從) 무리들의 허언에 들떠 흘린 실언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 교단의 핵심 총신이 교육부의 평가와 46억 지원금 따위에 흔들려 위기 운운해서야 목사 자격조차도 의심스럽다. 이제 우리 총신은 정말 총회의 직영 신학교다워야 한다. 70년대의 총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에 그리 겁이 나는가. 언제 우리가 영어교사, 음악교사 등을 배출하기 위해 평양에서부터 존재해 온 신학교인가. 총신은 하나님과 성경을 생명으로 알고 사는 목사들을 배출하는 선지동산이다. 우리 교단은 가입 교회만 1만이 넘고 자립교회도 2500여 교회에 이른다. 이제 믿음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표절의혹도 받는(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만은 주일 아르바이트로 역시 바쁜 김정우가 주동이 된 총신 구약학회에서 표절혐의가 없다고 밝힌 것처럼 출석도 하지 않았는데 김정우 자신이 가르치고 점수도 줬다는 총신 제자의 영어논문 표절의혹과 총신 졸업의혹도 벗겨주기 바란다) 일개 교수가 주일 강단에 선 1년 부수입이 1억대에 달한다는 교회 재정장부 공개에서 나왔다니 할 말이 없다. 더욱이 그 돈을 지불한 교회는 부목사들도 많은데 부채만 수백 억대의 재정 상태에서 그런 비싼 강사를 세워야 하는지 고개만 갸웃거려진다. 그 교회의 담임교역자는 영어논문의 표절의혹을 넘어서 영어 실력을 묻는 선배 목사의 물음에 한글은 자신이 쓰고 영어는 부인이 작성했다고 대답했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까지 들리고 있다. 이제 우리 목사들은 거짓과 위선의 습관과 탈을 벗고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수가 아닌 사람들이 왜 박사 학위가 필요한가. 그것도 수준 미달의 학교에서 받은 거짓이거나 엉터리 학위 따위로 말이다. 별 볼일 없는 나조차 올곧게 보았던 총신 72회 동창 총회장 백남선(그 역시 박사 학위 소지자다)의 말과 얼굴에서 요즘은 위선과 교만과 아집을 느낀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반대할 것이면 그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악을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대의정치의 핵심절차인 정치꾼들의 모의와 표 확보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와서 말만 하면 되겠는가. 총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양 측이 양단간에 제100회 총회에서 표와 논리로써 현장 판결을 끌어내는 결판을 내야 할 것이다. 제나라의 재상 안자의 마부는 아내의 따끔한 질책에 대오각성했다. 늘 자중자애하며 글을 익히고 학문도 열심히 닦았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적이 없다고 3년을 도운 참모를 한칼에 자른 까칠한 안자가 나중에 그 마부를 대부로 추천할 정도가 됐다. 은퇴해 필리핀으로 이주하는 시건방진 송춘현과 달리 이제 넘어야 할 파도가 많은 김영우 총장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게 안자의 이런 태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총회 산하 기관인 총회와 교회를 무시하는 총신의 무례한 직원은 단칼에 자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그 직원이 안자의 마부처럼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삼가 신중하게 하는 자중자애(自重自愛)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총신 재단이사 보선 현장에서 일어난 먹구름이 9월 14일 대구로 몰려가 어떤 비를 퍼부을 것인가. 2015-08-01
    • 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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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1
  • 총신 총동창회 유감(遺憾)
    7월 31일 금요일 오전 11시 온양삼일교회에서 총신신대원 총동창회 제24대회장 김영우 목사(총신대 총장)와 제25대 회장 연용희 목사(온양삼일교회)의 이취임 감사예배를 조촐하게 드렸다. 총회 행사 단골 사회자 권재호 목사(78회, 제99총회 서기, 총동창회 상임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제1부 예배와 제2부 이취임식은 물 흐르듯 했지만 맥이 없었다. 전 총신대총장 길자연 목사의 억지 아멘을 강요하는 설교, 직전회장이고 현 총신대총장인 김영우 목사의 반성과 아쉬움이 없는 이임사, 회장 연용희 목사의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취임사에 이어 줄을 이은 순서는 그 밥에 그 나물인데다 맡기가 쉽지 않은 순서일텐데 증경총회장 최병남과 안명환은 사전 조율이 있었을텐데 참석하지도 않았다. 총신대 대학 총동창회(회장 오정호)건 신대원 총동창회(회장 연용희)건 동창들의 부끄러운 참여 저조는 공통적이다. 그래도 신대원 동창회가 나은 건 수석부회장 하귀호 목사의 끈질긴 노력과 수완으로 회관 마련을 위한 기금의 비축과 동창회 주소록을 발간했다는 것이다. 대학부 총동창회는 신국원과 동창회 간사의 시대착오적인 개인정보비밀보호를 운운하며 동창회 주소록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총회도 총대 명단과 상비부 주소록을 발간해 나눠주고 초등학교 동창회도 주소록 발간해 회원끼리 연락을 주고받는데 총신대 출신만 각자 알아서 연락을 주고받으란다. 그리고 그들은 대학부 동창회 행사로 교수부부 해외여행은 꼬박꼬박 챙긴다. 차제에 총신대 대학부 총동창회는 이름도 총신교수 총동창회로 바꾸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대학부 총동창회의 병폐의 개선을 30여명 참여한 총동창회 현장에서 외쳤지만 회장 오정호 목사, 교수 총무, 나름 동창회 막후 실세 민찬기 등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와 같은 대학부 6회 출신의 총동창회장 송춘현, 노홍빈 등 여러 명이 있었지만 동창회 참여 독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이제 알게 됐는데 그들은 그 자리를 이용해 총신 교수들을 사귀며 자신들의 입지 향상에만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 작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두 동창회의 갸륵한 공통점은 그들의 행사마다 편리한 첨단의 이메일이나 SNS 이용대신 교단지 기독신문의 광고로 대신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칼러 아트지로 꾸민 2015년 제25대 이취임 감사예배 순서지 표4를 깨알 같이 가득 메운 신임 임역원 명단은 무엇에 쓰자는 것인지 그들의 회장 이취임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내 자신도 어렵사리 홍보 분과 위원장 자리를 얻었는데 소개는커녕 이름표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총신 동문의 관심과 참여를 잃고 있고 집행부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는 대학부나 신대원의 총동창회 행사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차제에 총신대와 신대원 동창회의 총회 닮기 운동 철폐라도 해야 될 모양이다. 20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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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1
  • 골프 치는 목사와 장로들
    크리스챤타임(발행인 양원 장로) 7월 22일 제288호에 《하기수련회 참석 일부 장로들 골프치다 들통나》라는 제하(題下)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리조트에서 열린 우리 교단 장로들의 친목단체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신신우 장로, 제100회 총회 부총회장 단독 후보)의 원로가수 남진을 대동한 소강석 목사가 전국장로연합회에 출연료를 지불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할 설교강단에서 뜨겁게 노래한 하기수련회가 열렸다. 그런데 수련회에 참석해 설교를 듣고 기도해야 할 장로회 등록 회원들이 7월 8일 오전 7시부터 종일 골프를 쳤다고 한다. 그들은 남부산교회의 최규환 장로, 정국윤 장로, 김일수 장로, 정창용 장로, 등 8명의 장로가 4인 1조로 푸르른 초원에서 성경에서 약간의 유익이 있다는 육체의 수련과 승부의 쾌감을 만끽하고 금생과 내생에 생명의 약속이 있는 경건의 연습은 멀리했다고 한다. 수련회가 열리는 기간에도 안수를 받은 장로들이 이럴진대 안 보이는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게다가 총회 장로들의 임원 후보 담합이나 하고 각종 출연자들에게 출연료를 받아 남는 돈으로 행사 뒤 선교여행을 떠나는 이런 단체는 총회 차원의 어떤 결의가 있어야 할 줄로 안다. 그런데 목사들의 형편은 어떨까. 서울강남노회의 김순열 목사가 2014년 당시 총회사무국장이고 현재 총회전도국장인 천석봉 목사에게 아주 익숙한 포즈로 골프 스윙을 하며 말했다. “언제 한번 나가지.” 그와 비슷한 키의 천석봉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러지”하며 대답했다. 김순열은 총회 사무국의 행정 협조를 받아야 하는 세 군데의 구립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능력과 재주를 지닌 목사다. 천석봉은 김기춘처럼 우리가 남이가하며 경상도를 앞세우는 지역감정의 신봉자이고, 총회 정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고, 국내의 군대에서 녹을 먹는 군목들을 해외 오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처럼 군선교사라 부르며 그들 자녀 장학금까지 총회산하 교회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묘한 논리의 허활민(세계 제일 대국가 미국에 한국 산하 미주노회와 미주총신을 세운 위인이다) 같은 국내전도전략을 지닌 총회전도국장이다. 그러면 군목과 달리 국가의 공무원 수준 장교 월급을 받지 못하는 미자립교회에서 수고하는 목사들도 모두 개척선교사라 부르며 군목 못지않은 교단적인 지원의 방도를 명색이 국내전도국장이라며 반드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정신 멀쩡한 옥광석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 총대 자격도 없이 총회재판국에서 일개 국원 자격으로 면직까지 하는 등 각종 비리마다 얽혀 있는 허활민의 이론대로 각 나라마다 노회와 총신을 세워야 마땅할 것이다. 특별히 보상받을 길 없는 가난한 나라들의 선교사들부터 그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그 행정책임자는 허활민과 같은 지역 출신의 천석봉이 열악한 국내전도의 발전을 위해 맡아야 할 것이다. 경제력을 지닌 적지 않은 목사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특별히 필리핀을 중심으로 골프를 치며 김 사장, 천 교수, 이 박사 등의 호칭을 해가며 내기를 하고 젊은 여자 캐디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풍조가 일상화 되고 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함에도 목사들이 모인 장소에서 골프 무용담을 자랑까지 당당하게 하는 현실이다. 골프의 폐해(弊害)가 얼마나 심하면 정부가 나서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지하겠는가. 그래서 언론이 힘을 가진 자와 돈을 가진 자들이 초원에서 비리와 야합을 꾸미다 몰락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고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골프는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도박중독을 낳는다. 도박중독자는 도박하는 시간을 계속 늘리고, 거는 돈의 액수를 점점 키운다. 그래야 처음 도박에 맛들였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의 음주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오직 성경과 오직 하나님을 지향하는 우리 교단의 목사들이 골프 따위를 즐기며 돈과 거짓을 숭배하는 풍조로 기울었다. 나는 돈도 없고 취미도 없어 골프는 몇 번 만지작거리다 끝났지만 목사가 영화를 만든답시고 총회 전도국장을 사임하고 한 5년 세상에 푹 젖어 산 적이 있다. 그 결과 2005년 이혼까지 했다. 지금은 2010년 재혼을 해 덤으로 얻은 두 아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고 있다.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0절과 11절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말씀한다. 거대한 삼일교회를 미련 없이 사임하고 1년 8개월 뒤 삼일교회에서 4.2킬로나 떨어진 홍대 근처에서 교회개척에 힘쓰고 있는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다른 교단의 사람들과 그 믿음의 배경이 의심스러운 단체들과 뉴스앤조이, 그리고 교단지 기독신문까지 동원해 주장하는 송태근(전병욱 사임 덕에 후임이 된 삼일교회와 그의 전임 강남교회는 4.1킬로 떨어져 있다)과 달리 나는 오직 성경에만 의지해 말한다. 세상을 사랑해 골프나 치고 거짓을 일삼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목사와 장로들은 우리 교단과 교회를 떠나 데마처럼 세상으로 나가 마음대로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총회에 감히 호소한다. 교단의 예배모범을 어기고 주일에 그 교회 교인들이 총회 서기 권재호 목사 시무 도성교회에 몰려가 이단행태를 일삼게 하고 조장하는 송태근은 엄히 다스려 제100회 총회 현장에서 면직 출교시켜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1-2. 7-8 2015-07-30
    • 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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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30
  • 더굳뉴스 제 19호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
    버스 창문 밖으로 교회 건물의 어깨에 여름성경학교를 알리는 긴 천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산과 들을 찾는 사람이 많다. 나무와 꽃이 내뿜는 여름의 향기에 몸과 마음이 절로 깨끗해진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인체에서 제일 먼저 발달한 감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후각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리처드 액설(Axel)과 린다 벅(Buck) 연구팀은 1991년 코에 있는 후각 수용체의 기능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이들은 이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후각 수용체와 특정한 향기 분자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한다. 맛이나 냄새를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짠맛의 풀이는 아주 쉽다. '짠맛: 소금 맛과 같은 맛.' 그래 바로 이거다. 얼마나 간단하고 알기 쉬운가. 신맛은 식초나 설익은 살구, 매운맛은 고추와 겨자, 단맛은 꿀, 고소한 맛은 볶은 참깨나 참기름과 같은 맛이라고 설명된다. 음식이 입에 당기는 맛을 뜻하는 감칠맛도 소중한 맛이다. 감칠맛은 움직씨 '감치다'에서 비롯된 것인데, '감치다'는 '잊혀지지 않고 늘 마음에 감돌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칠맛과 짝을 이루는 그림씨, 다시 말해 감칠맛을 표현하는 그림씨는 '맛깔스럽다'일 것이다. 맛깔은 맛의 빛깔, 곧 맛의 성질을 말하는데, 음식 맛이 입에 맞거나 마음에 들 때 '맛깔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맛과 마찬가지로 냄새도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냄새를 나타내는 말들은 동시에 사람의 성품이나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것을 '고리다'고 하고, '구리다'는 하는 짓이 더럽고 추잡한 것, '노리다'는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것을 나타낸다. 하는 일이 아니꼽거나 무엇이 너무 적어서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비리다'고 한다. '타분하다'는 생선이나 고기 따위가 약간 상하여 새뜻하거나 신선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리다'와 '타분하다'가 결합하면 '고리타분하다'가 되어 냄새가 고리고도 타분하다는 뜻이 된다. 군내는 제 본맛이 아닌 다른 냄새를 가리키는데, 텁텁한 군내는 군둥내라고 한다. 날내는 날것에서 나는 냄새, 풋내는 새로 나온 푸성귀 같은 것에서 나는 풀 냄새를 말한다.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는 새물내, 빨지 않고 오래 둔 더러운 빨랫감에서 나는 쉰내는 자릿내다. 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羅慶孫)이다.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이 싫어 박종화에게 부탁해 필명을 도향(稻香)으로 지었지만 가족들은 ‘나락의 향기’라는 뜻의 도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향기란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게 가족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변우상 목사의 이름에서는 은퇴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언제나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느낌의 향기가 난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는 그 새물내를 예수향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꽃이 향기로 말하듯 목사는 예수향기로 말하지 않을까. 그래서 변우상 목사를 생각하면 용인제일교회 교인들은 새물내 느낌의 예수향기에 콧구멍이 그리움으로 벌름거릴 것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나 삶에서는 꾸미고 덧씌운 듯한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그의 설교를 듣거나 삶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예수향기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별히 목사는 자신의 부인에게 삶과 설교에서 감동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란 날마다 서로 가릴 것이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에 대한 고(故) 김영순 사모의 태도를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이렇게 회상한다. 늘 바쁜 남편을 당신의 남자로 욕심내지 않으시고 목사님으로만 모셨던 사모님. 여자이기 보다 목사 부인으로만 사셨던 나의 엄마. 항상 아빠를 사랑하시고 아빠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행복해 하셨지요. 설교시간이면 예배실 장의자를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로 말씀에 집중하시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해요. 엄마는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신자의 모범이셨어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일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날까? 사도 바울은 특이하게 "냄새"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설명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14-16 고린도후서 2: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 말씀한다.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는 그리스도인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주께서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이르는 냄새는 예수의 냄새, 예수향기가 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사도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로마제국 군대가 주피터 신전에서 승전을 기념하며 향을 피우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14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한다." 승리의 향을 피우는 로마 장군들과 같이 죄와 거짓과 사망을 주무기로 싸움을 걸어오는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고 구원과 영생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예수향기를 내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고린' 냄새, 더럽고 추잡한 '구린' 냄새,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노린'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속에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로 신선하고 신령한 예수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새물내’는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이라는 의미의 ‘새물’에 냄새를 뜻하는 접미사 ‘-내’가 합쳐진 말이다. ‘오래도록 빨지 않은 빨랫감의 쉰 듯한 냄새’를 뜻하는 ‘자릿내’가 그 반대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새물내 같은 예수향기를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순례자가 길에서 향내가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을 발견해서 방에 갔다 났다. 그랬더니 온 방 안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다. 순례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진흙덩이에서 나는 이 놀라운 향기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진흙 덩이는 백합과 같이 있었다. 진흙에 불과했지만 백합과 함께 있었으므로 놀라운 향기를 방안에 풍기는 흙이 되었다. 진흙 속에 배어 있는 백합의 향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예수향기이다. 그렇다. 아무리 질그릇 같은 인생이라도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향기로운 인생을 산다. 제3대 안디옥의 총대주교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50년 ~ 117년)는 그의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라고 알려졌다. 현재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바로 이 사람이 쓴 편지이다. 로마 제국의 제13대 황제이고 오현제 중 한 사람인 트라이아누스(Traianus; 53년 9월 18일 - 117년 8월 7일)조차 그의 고매한 인품을 존경했다. 어느 날 황제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황제 폐하, 그것은 제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서 예수의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난다.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는 이렇게 노래한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데 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마음에 사랑으로 피소서." 작시자 아이다 가이리 여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시인이었다. 그런데 유명한 찬송 작곡자 찰스 가브리엘 목사가 그녀의 찬송시 '샤론의 꽃 예수'를 읽고 난 후, 깊은 감명을 받아 이 곡조를 작곡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란 구절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이 시적인 어휘로 표현되어 있다. 아름다운 새로움의 꽃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고후 2:15), 열매를 맺어야 한다(갈 5:22; 엡 5:9). 이 시대 우리 총회의 그런 표본이 변우상 목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예수향기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아픔인 6.25전쟁을 겪으면서 학업이 늦어져 다른 연배보다 2년 늦게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어 고향에서 꼴을 베고 있던 어느 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올라 비가 유난히 많이 오던 그 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처음 서울 큰아버지 댁에 찾아가서 중학교 공부를 시켜달라고 간청했다.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신문배달, 과외, 라디오수리공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 신앙은 모태신앙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에 열심이었다. 김승룡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숭인교회를 출석했고, 학생회 회장은 물론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중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했기에,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목회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목회자로 헌신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학교 담임선생 결혼식에 참여하고자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결혼식에 갔다. 본인을 제외한 친구들 모두가 술을 마시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막차를 잡기 위해 뛰어가게 되었다. 마침 다리 위를 뛰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이 너무 밝아서 길을 잘못보고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기절해버렸고 이것을 본 버스 운전기사와 친구들이 즉시로 달려가 버스에 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서울로 올라가던 중 버스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고 결혼식에 갔던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목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변우상 목사(총신 65회)는 총회신학교 신학생 시절, 2학년 때부터 용인 목회를 시작했다. 숭인교회 고등부 학생시절 고등부를 담당하던 차용식 목사가 후에 신일교회 당회장 목사로 갔는데, 고등부 때 제자였던 변우상 전도사를 기억하고 신일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빙했다. 그래서 그는 낮에는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새벽과 저녁에는 장년부흥회를 인도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 목사가 다른 교회로 가면서 그에게 신일교회를 이끌기를 부탁했고, 신일교회 당회 및 교인들도 간곡히 요청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그 때로부터 용인에서의 반세기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1963년의 일인데, 2년 후인 1965년에는 포곡교회에서도 교회를 이끌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변우상 전도사는 신일교회와 포곡교회(現, 포곡제일교회)를 모두 목회했다. 주간에는 사당동 총신에서 공부하고, 토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 2시간을 걸어 교회에 도착했다. 용인에 오면 용인기독병원에 가서 매주 환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위해서 기도했다. 그즈음에 김영순 사모를 만나 결혼했고, 그 시절 신혼여행은 고사하고, 돈이 없어서 신혼방도 어렵사리 마련했다. 1970년대 용인 시내에는 기장과 감리회 교단의 교회 2개만 있었다.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는 없었다. 변우상 목사는 용인 인근에서 군목으로 사역하던 이기만 목사에게 교회를 개척하고 청소년 선교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1973년 4월 용인제일교회는 이렇게 설립됐다. 그러나 이기만 군목은 근무지변경으로 1년도 안 되어 전근을 떠나게 됐고, 결국 변 목사가 1974년 2월 천막 예배당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했다. 변우상 목사가 부임한 후 용인제일교회는 놀랍게 성장했다. 변우상 목사가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한 1970년대는 산업 성장이 한창인 터라 당시 용인 지역은 가죽 의류 염직 등 공장이 많았고, 20살 내외의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변 목사는 그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전도와 구제 사역을 진행했다. 지역에 있는 동광통산, 화일상사, 원진레이온, 대동화학, 중앙염직, 경방, 신원산업 등 용인 관내에 있는 회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우회를 조직하여 매주 예배를 드렸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주일날 교회로 몰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선교를 확장시켰고, 또한 용인시장에 나가 발로 뛰며 전도하여 시장 복음화를 시작함으로 약 300점포의 많은 상점 주인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1977년 4월 1일 제일어린이 선교원을 시작으로 지역에 있는 어린이 교육에 앞장섰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혜택이 어려운 인근 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이 사업은 녹십자병원 원장이었던 박종희 집사가 주축이 되어 용인제일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의료관계자들로 의료선교회를 구성, 김정란 산부인과, 에덴 이비인후과, 부부한의원 등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성도들이 동참했다.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변우상 목사가 전국 수백 교회와 기도원들의 부흥회를 인도하게 하셨다. 부흥회를 통해 성령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가지고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과 나눔으로 교회는 점점 더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강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신일교회, 포곡제일교회를 담임했던 전도사 시절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고자 서울에 있는 큰 교회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용인의 시골 작은 교회여서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변 목사는 부흥회를 요청받으면 교회가 크든 작든, 멀든 가깝든, 어디든지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의 그 결심대로 땅 끝 마을 해남, 제주도, 미국, 뉴질랜드, 중국, 태국, 미얀마, 나병환자촌 교회 등 어디서든지 말씀을 증거해 달라는 곳이면 평생 거부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나갔다. 용인제일교회는 청년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변우상 목사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것은 1980년 당시로서는 용인과 수원 지역에서 최대 규모인 연건평 692평 예배당 건축 때문이었다. 건축비의 어려움으로 용인제일교회가 부도난다는 소문이 용인 전역에 난무할 정도였다. 교인들의 헌금도 한계에 달해 빚은 날로 늘어만 갔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용인제일교회 초대 장로 故 박한신 장로가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자신의 눈을 팔아 교회를 건축할 벽돌을 사서 쌓아달라는 유언을 했다. 또 최애현 권찰이 와서 자신의 건강한 눈을 팔아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변우상 목사는 강단에 올라가 눈물로써 그분들의 중심을 전했고, 온 교회 성도들은 통곡하며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청년회 회장이었던 권희용 장로를 중심으로 청년회에서 금품 봉헌 운동이 일어났고,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통장을 가져오는 청년들, 집을 팔고 전세로, 전세를 월세로 돌려 건축헌금을 하는 성도들이 계속 이어졌다. 예배당 건축은 5년 동안 공사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현재 마평동 655번지에 우뚝 서있는 용인제일교회 예배당이다. 교회 건축이 끝나고 1987년부터 시작한 총력 전도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전을 채우고 1000명, 1500명으로 매주일 출석하는 교인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 성도들의 성장에는 그림자처럼 목사님을 내조하는 故 김영순 사모가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매일 저녁 금식을 하며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사모님의 헌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물은 물론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렸다. 병든 환자들의 입원비, 쌀이 없는 가정에 쌀을 가져다주고, 겨울이면 연탄을 배달해 주었다. 본 교회 교육전도사들이 결혼할 때면 일일이 혼수품을 챙기고, 어려운 이웃 교회 목사님 댁에 음식은 물론이고 쌀과 헌금도 베푸는 사랑의 메신저였다. 변우상 목사가 사모와 심방을 하던 초창기는 성도 가정이 모두 어려워 물 한 컵 대접할 여유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심방이나 전도를 다니실 때는 언제나 주머니에 비스킷을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성도들이 점심을 드셨느냐고 물어볼 때, 가난한 성도들도 배려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신병자들도 집에 데리고 와서 날마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좁은 사택에서 함께 머물게 하고, 교회 청년들이 집에 와서 언제든 밥을 먹고 교제를 나누게 하는 등 초대교회의 모습을 몸소 실천했다.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 교회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던 2000년 세상을 떠난 고(故) 김영순 사모의 마지막을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2012년에 이렇게 회상했다. 13년 전 2000년 GMS선교대회가 수원에서 열렸습니다. 그 대회 저녁예배 찬양봉사를 위해 용인제일교회 성가대와 변우상 목사님이 교회버스로 교회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집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를 진찰하신 한의사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말했습니다. 119구급차를 타고 아주대병원으로 갔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어머니는 눈이 몹시 아프시다 하면서도 아버지 변우상 목사에게는 선교대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유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온 가족이 함께 조용히 기도드릴 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용인제일교회 목회 38년과 예수향기를 날린 평생 사역 50년을 마감하고 기리기 위해 변우상 목사 원로추대 및 임병선 목사 위임 감사예배가 용인시 마평동 용인제일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장년 40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한 예배당은 용인제일교회 성도는 물론 중부 지역 목회자 및 장로들과 지역 정재계 인사 등으로 가득 찼다. 변 목사가 지역사회와 총회와 교계에서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로 불린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 같은 “한국 교회의 예수향기 목사”로 일컬어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감사예배는 축하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설교를 한 증경총회장 김준규 목사는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며 목회자로서 정말 잘 달려오셨다. 본분을 다하셨다.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축하했다. 이어 변 목사의 39년 목회 회고영상이 상영되고, 담임목회자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되자 성도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박한준 장로는 눈물을 삼키며 “목사님은 오직 목양일념으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는 눈물 머금은 동안(童顔)의 얼굴로 답사를 했다. “지난 50년,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주님의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까. 그래서 미치도록 목회를 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맙습니다.” 변우상 목사가 원로로 추대된 2013년 7월에 새롭게 담임목사가 된 임병선(총신 92회, 전 신반포교회 청년담당 부목사) 목사는 설립 40주년을 맞아 용인제일교회를 젊은 분위기,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꿔 나가며 하나님 나라 확장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가 있고 그중 신학을 공부한 자녀도 있지만 그는 담임목사 초빙공고를 통해 임병선 목사를 후임으로 결정했다. 변우상 목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난 후임자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70세 정년을 앞두고 10년 전부터 기도해 왔다. 실제 준비는 5년 전에 시작했다. 공개모집을 통해 후임으로 4명이 지원했다. 장로들이 중심이 된 교회 당회(20명)에서 먼저 이들을 심사했다. 물론 4명 모두 우리 교회나 나하고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투표를 통해 한 명을 선정했다. 장로님들이 자꾸 내 의중을 알고 싶어 했지만 일체 함구했다. 내 말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작용될 것은 빤하지 않겠는가. 당회에서 후보자 1명을 선정했고 이를 온 교인이 참여하는 공동의회에 부쳤다.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만 최종 통과가 되는 것이고 그 이하일 경우에는 다시 모집공고를 내도록 했다. 다행히 교인들이 후임자를 흡족하게 여겼고 임병선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게 됐다.” 이제 2015년 12월에 용인시청 근처 용인시 처인구 역복동 산 97-1 대지면적 6,176평에 건축 면적 5,000평의 건축 설계를 완료하고 2016년 착공해 2017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새로운 예배당 글로리센터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제일교회의 이런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원로 변우상 목사는 후임 임병선 목사를 적극 후원하고 후임 임병선 목사는 원로 변우상 목사의 기대와 뜻을 살리고 높이는 목회를 한다. 은퇴 이후에도 변우상 목사의 예수향기는 6남매 자녀 모두와 함께 사는 용인의 빌라에서, 용인제일교회에서 한 달 한 번 하는 저녁설교에서, 수원의 은퇴 목회자들이 모이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덕영대로 1201번길 16 세일프라자 3층의 희망은목교회 등에서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처럼 여전히 날리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라일락꽃 도종환 진정 도종환 시인의 라일락꽃 같은 평생의 반려자 2000년 김영순 사모가 떠나는 그 날, 그 주일(主日)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놓을 수 없어서 강단을 비우지 않고 슬픔을 참고 설교하고, 평생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성도와 자녀, 그리고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맨 마지막에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현실에서 보이며 살아온 변우상 목사는 진정 예수를 그 가슴에 품었기에 예수향기가 새물내처럼 풍기는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였다. 2015-07-29
    •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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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9
  •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
    버스 창문 밖으로 교회 건물의 어깨에 여름성경학교를 알리는 긴 천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산과 들을 찾는 사람이 많다. 나무와 꽃이 내뿜는 여름의 향기에 몸과 마음이 절로 깨끗해진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인체에서 제일 먼저 발달한 감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후각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리처드 액설(Axel)과 린다 벅(Buck) 연구팀은 1991년 코에 있는 후각 수용체의 기능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이들은 이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후각 수용체와 특정한 향기 분자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한다. 맛이나 냄새를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짠맛의 풀이는 아주 쉽다. '짠맛: 소금 맛과 같은 맛.' 그래 바로 이거다. 얼마나 간단하고 알기 쉬운가. 신맛은 식초나 설익은 살구, 매운맛은 고추와 겨자, 단맛은 꿀, 고소한 맛은 볶은 참깨나 참기름과 같은 맛이라고 설명된다. 음식이 입에 당기는 맛을 뜻하는 감칠맛도 소중한 맛이다. 감칠맛은 움직씨 '감치다'에서 비롯된 것인데, '감치다'는 '잊혀지지 않고 늘 마음에 감돌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칠맛과 짝을 이루는 그림씨, 다시 말해 감칠맛을 표현하는 그림씨는 '맛깔스럽다'일 것이다. 맛깔은 맛의 빛깔, 곧 맛의 성질을 말하는데, 음식 맛이 입에 맞거나 마음에 들 때 '맛깔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맛과 마찬가지로 냄새도 말로 설명하기는 뜬구름 잡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맛을 풀이할 때처럼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냄새를 나타내는 말들은 동시에 사람의 성품이나 하는 짓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것을 '고리다'고 하고, '구리다'는 하는 짓이 더럽고 추잡한 것, '노리다'는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것을 나타낸다. 하는 일이 아니꼽거나 무엇이 너무 적어서 마음에 차지 않을 때는 '비리다'고 한다. '타분하다'는 생선이나 고기 따위가 약간 상하여 새뜻하거나 신선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리다'와 '타분하다'가 결합하면 '고리타분하다'가 되어 냄새가 고리고도 타분하다는 뜻이 된다. 군내는 제 본맛이 아닌 다른 냄새를 가리키는데, 텁텁한 군내는 군둥내라고 한다. 날내는 날것에서 나는 냄새, 풋내는 새로 나온 푸성귀 같은 것에서 나는 풀 냄새를 말한다.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는 새물내, 빨지 않고 오래 둔 더러운 빨랫감에서 나는 쉰내는 자릿내다. 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羅慶孫)이다.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이 싫어 박종화에게 부탁해 필명을 도향(稻香)으로 지었지만 가족들은 ‘나락의 향기’라는 뜻의 도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향기란 곧 사라지는 것이라는 게 가족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변우상 목사의 이름에서는 은퇴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언제나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느낌의 향기가 난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는 그 새물내를 예수향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꽃이 향기로 말하듯 목사는 예수향기로 말하지 않을까. 그래서 변우상 목사를 생각하면 용인제일교회 교인들은 새물내 느낌의 예수향기에 콧구멍이 그리움으로 벌름거릴 것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나 삶에서는 꾸미고 덧씌운 듯한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그의 설교를 듣거나 삶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예수향기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별히 목사는 자신의 부인에게 삶과 설교에서 감동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란 날마다 서로 가릴 것이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변우상 목사의 설교에 대한 고(故) 김영순 사모의 태도를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이렇게 회상한다. 늘 바쁜 남편을 당신의 남자로 욕심내지 않으시고 목사님으로만 모셨던 사모님. 여자이기 보다 목사 부인으로만 사셨던 나의 엄마. 항상 아빠를 사랑하시고 아빠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행복해 하셨지요. 설교시간이면 예배실 장의자를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로 말씀에 집중하시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해요. 엄마는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신자의 모범이셨어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일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날까? 사도 바울은 특이하게 "냄새"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설명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14-16 고린도후서 2: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 말씀한다.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는 그리스도인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주께서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이르는 냄새는 예수의 냄새, 예수향기가 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사도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로마제국 군대가 주피터 신전에서 승전을 기념하며 향을 피우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14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한다." 승리의 향을 피우는 로마 장군들과 같이 죄와 거짓과 사망을 주무기로 싸움을 걸어오는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고 구원과 영생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예수향기를 내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마음 쓰는 것이나 하는 짓이 다랍고 잔 '고린' 냄새, 더럽고 추잡한 '구린' 냄새, 마음 쓰는 것이 치사스러운 '노린'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속에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로 신선하고 신령한 예수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새물내’는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이라는 의미의 ‘새물’에 냄새를 뜻하는 접미사 ‘-내’가 합쳐진 말이다. ‘오래도록 빨지 않은 빨랫감의 쉰 듯한 냄새’를 뜻하는 ‘자릿내’가 그 반대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새물내 같은 예수향기를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순례자가 길에서 향내가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을 발견해서 방에 갔다 났다. 그랬더니 온 방 안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다. 순례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진흙덩이에서 나는 이 놀라운 향기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진흙 덩이는 백합과 같이 있었다. 진흙에 불과했지만 백합과 함께 있었으므로 놀라운 향기를 방안에 풍기는 흙이 되었다. 진흙 속에 배어 있는 백합의 향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예수향기이다. 그렇다. 아무리 질그릇 같은 인생이라도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향기로운 인생을 산다. 제3대 안디옥의 총대주교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50년 ~ 117년)는 그의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라고 알려졌다. 현재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 바로 이 사람이 쓴 편지이다. 로마 제국의 제13대 황제이고 오현제 중 한 사람인 트라이아누스(Traianus; 53년 9월 18일 - 117년 8월 7일)조차 그의 고매한 인품을 존경했다. 어느 날 황제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황제 폐하, 그것은 제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서 예수의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난다.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는 이렇게 노래한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데 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마음에 사랑으로 피소서." 작시자 아이다 가이리 여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시인이었다. 그런데 유명한 찬송 작곡자 찰스 가브리엘 목사가 그녀의 찬송시 '샤론의 꽃 예수'를 읽고 난 후, 깊은 감명을 받아 이 곡조를 작곡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란 구절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이 시적인 어휘로 표현되어 있다. 아름다운 새로움의 꽃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고후 2:15), 열매를 맺어야 한다(갈 5:22; 엡 5:9). 이 시대 우리 총회의 그런 표본이 변우상 목사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예수향기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아픔인 6.25전쟁을 겪으면서 학업이 늦어져 다른 연배보다 2년 늦게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어 고향에서 꼴을 베고 있던 어느 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올라 비가 유난히 많이 오던 그 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처음 서울 큰아버지 댁에 찾아가서 중학교 공부를 시켜달라고 간청했다.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신문배달, 과외, 라디오수리공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 신앙은 모태신앙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에 열심이었다. 김승룡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숭인교회를 출석했고, 학생회 회장은 물론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중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했기에,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목회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목회자로 헌신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학교 담임선생 결혼식에 참여하고자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결혼식에 갔다. 본인을 제외한 친구들 모두가 술을 마시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막차를 잡기 위해 뛰어가게 되었다. 마침 다리 위를 뛰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이 너무 밝아서 길을 잘못보고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기절해버렸고 이것을 본 버스 운전기사와 친구들이 즉시로 달려가 버스에 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서울로 올라가던 중 버스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고 결혼식에 갔던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목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변우상 목사(총신 65회)는 총회신학교 신학생 시절, 2학년 때부터 용인 목회를 시작했다. 숭인교회 고등부 학생시절 고등부를 담당하던 차용식 목사가 후에 신일교회 당회장 목사로 갔는데, 고등부 때 제자였던 변우상 전도사를 기억하고 신일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빙했다. 그래서 그는 낮에는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새벽과 저녁에는 장년부흥회를 인도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 목사가 다른 교회로 가면서 그에게 신일교회를 이끌기를 부탁했고, 신일교회 당회 및 교인들도 간곡히 요청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그 때로부터 용인에서의 반세기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1963년의 일인데, 2년 후인 1965년에는 포곡교회에서도 교회를 이끌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변우상 전도사는 신일교회와 포곡교회(現, 포곡제일교회)를 모두 목회했다. 주간에는 사당동 총신에서 공부하고, 토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 2시간을 걸어 교회에 도착했다. 용인에 오면 용인기독병원에 가서 매주 환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위해서 기도했다. 그즈음에 김영순 사모를 만나 결혼했고, 그 시절 신혼여행은 고사하고, 돈이 없어서 신혼방도 어렵사리 마련했다. 1970년대 용인 시내에는 기장과 감리회 교단의 교회 2개만 있었다.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는 없었다. 변우상 목사는 용인 인근에서 군목으로 사역하던 이기만 목사에게 교회를 개척하고 청소년 선교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1973년 4월 용인제일교회는 이렇게 설립됐다. 그러나 이기만 군목은 근무지변경으로 1년도 안 되어 전근을 떠나게 됐고, 결국 변 목사가 1974년 2월 천막 예배당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했다. 변우상 목사가 부임한 후 용인제일교회는 놀랍게 성장했다. 변우상 목사가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한 1970년대는 산업 성장이 한창인 터라 당시 용인 지역은 가죽 의류 염직 등 공장이 많았고, 20살 내외의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변 목사는 그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전도와 구제 사역을 진행했다. 지역에 있는 동광통산, 화일상사, 원진레이온, 대동화학, 중앙염직, 경방, 신원산업 등 용인 관내에 있는 회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우회를 조직하여 매주 예배를 드렸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주일날 교회로 몰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선교를 확장시켰고, 또한 용인시장에 나가 발로 뛰며 전도하여 시장 복음화를 시작함으로 약 300점포의 많은 상점 주인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1977년 4월 1일 제일어린이 선교원을 시작으로 지역에 있는 어린이 교육에 앞장섰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혜택이 어려운 인근 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이 사업은 녹십자병원 원장이었던 박종희 집사가 주축이 되어 용인제일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의료관계자들로 의료선교회를 구성, 김정란 산부인과, 에덴 이비인후과, 부부한의원 등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성도들이 동참했다.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변우상 목사가 전국 수백 교회와 기도원들의 부흥회를 인도하게 하셨다. 부흥회를 통해 성령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가지고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과 나눔으로 교회는 점점 더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강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신일교회, 포곡제일교회를 담임했던 전도사 시절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고자 서울에 있는 큰 교회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용인의 시골 작은 교회여서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변 목사는 부흥회를 요청받으면 교회가 크든 작든, 멀든 가깝든, 어디든지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의 그 결심대로 땅 끝 마을 해남, 제주도, 미국, 뉴질랜드, 중국, 태국, 미얀마, 나병환자촌 교회 등 어디서든지 말씀을 증거해 달라는 곳이면 평생 거부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나갔다. 용인제일교회는 청년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변우상 목사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것은 1980년 당시로서는 용인과 수원 지역에서 최대 규모인 연건평 692평 예배당 건축 때문이었다. 건축비의 어려움으로 용인제일교회가 부도난다는 소문이 용인 전역에 난무할 정도였다. 교인들의 헌금도 한계에 달해 빚은 날로 늘어만 갔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용인제일교회 초대 장로 故 박한신 장로가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자신의 눈을 팔아 교회를 건축할 벽돌을 사서 쌓아달라는 유언을 했다. 또 최애현 권찰이 와서 자신의 건강한 눈을 팔아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변우상 목사는 강단에 올라가 눈물로써 그분들의 중심을 전했고, 온 교회 성도들은 통곡하며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청년회 회장이었던 권희용 장로를 중심으로 청년회에서 금품 봉헌 운동이 일어났고,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통장을 가져오는 청년들, 집을 팔고 전세로, 전세를 월세로 돌려 건축헌금을 하는 성도들이 계속 이어졌다. 예배당 건축은 5년 동안 공사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현재 마평동 655번지에 우뚝 서있는 용인제일교회 예배당이다. 교회 건축이 끝나고 1987년부터 시작한 총력 전도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전을 채우고 1000명, 1500명으로 매주일 출석하는 교인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 성도들의 성장에는 그림자처럼 목사님을 내조하는 故 김영순 사모가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매일 저녁 금식을 하며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사모님의 헌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물은 물론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렸다. 병든 환자들의 입원비, 쌀이 없는 가정에 쌀을 가져다주고, 겨울이면 연탄을 배달해 주었다. 본 교회 교육전도사들이 결혼할 때면 일일이 혼수품을 챙기고, 어려운 이웃 교회 목사님 댁에 음식은 물론이고 쌀과 헌금도 베푸는 사랑의 메신저였다. 변우상 목사가 사모와 심방을 하던 초창기는 성도 가정이 모두 어려워 물 한 컵 대접할 여유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심방이나 전도를 다니실 때는 언제나 주머니에 비스킷을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성도들이 점심을 드셨느냐고 물어볼 때, 가난한 성도들도 배려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신병자들도 집에 데리고 와서 날마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좁은 사택에서 함께 머물게 하고, 교회 청년들이 집에 와서 언제든 밥을 먹고 교제를 나누게 하는 등 초대교회의 모습을 몸소 실천했다.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 교회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던 2000년 세상을 떠난 고(故) 김영순 사모의 마지막을 그들의 딸 변순주 집사가 2012년에 이렇게 회상했다. 13년 전 2000년 GMS선교대회가 수원에서 열렸습니다. 그 대회 저녁예배 찬양봉사를 위해 용인제일교회 성가대와 변우상 목사님이 교회버스로 교회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집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를 진찰하신 한의사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말했습니다. 119구급차를 타고 아주대병원으로 갔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어머니는 눈이 몹시 아프시다 하면서도 아버지 변우상 목사에게는 선교대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유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온 가족이 함께 조용히 기도드릴 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용인제일교회 목회 38년과 예수향기를 날린 평생 사역 50년을 마감하고 기리기 위해 변우상 목사 원로추대 및 임병선 목사 위임 감사예배가 용인시 마평동 용인제일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장년 40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한 예배당은 용인제일교회 성도는 물론 중부 지역 목회자 및 장로들과 지역 정재계 인사 등으로 가득 찼다. 변 목사가 지역사회와 총회와 교계에서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로 불린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 같은 “한국 교회의 예수향기 목사”로 일컬어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감사예배는 축하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설교를 한 증경총회장 김준규 목사는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며 목회자로서 정말 잘 달려오셨다. 본분을 다하셨다.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축하했다. 이어 변 목사의 39년 목회 회고영상이 상영되고, 담임목회자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 되자 성도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박한준 장로는 눈물을 삼키며 “목사님은 오직 목양일념으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예수향기 변우상 목사는 눈물 머금은 동안(童顔)의 얼굴로 답사를 했다. “지난 50년,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주님의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까. 그래서 미치도록 목회를 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고맙습니다.” 변우상 목사가 원로로 추대된 2013년 7월에 새롭게 담임목사가 된 임병선(총신 92회, 전 신반포교회 청년담당 부목사) 목사는 설립 40주년을 맞아 용인제일교회를 젊은 분위기,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꿔 나가며 하나님 나라 확장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가 있고 그중 신학을 공부한 자녀도 있지만 그는 담임목사 초빙공고를 통해 임병선 목사를 후임으로 결정했다. 변우상 목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난 후임자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70세 정년을 앞두고 10년 전부터 기도해 왔다. 실제 준비는 5년 전에 시작했다. 공개모집을 통해 후임으로 4명이 지원했다. 장로들이 중심이 된 교회 당회(20명)에서 먼저 이들을 심사했다. 물론 4명 모두 우리 교회나 나하고는 특별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투표를 통해 한 명을 선정했다. 장로님들이 자꾸 내 의중을 알고 싶어 했지만 일체 함구했다. 내 말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작용될 것은 빤하지 않겠는가. 당회에서 후보자 1명을 선정했고 이를 온 교인이 참여하는 공동의회에 부쳤다.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만 최종 통과가 되는 것이고 그 이하일 경우에는 다시 모집공고를 내도록 했다. 다행히 교인들이 후임자를 흡족하게 여겼고 임병선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게 됐다.” 이제 2015년 12월에 용인시청 근처 용인시 처인구 역복동 산 97-1 대지면적 6,176평에 건축 면적 5,000평의 건축 설계를 완료하고 2016년 착공해 2017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새로운 예배당 글로리센터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제일교회의 이런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원로 변우상 목사는 후임 임병선 목사를 적극 후원하고 후임 임병선 목사는 원로 변우상 목사의 기대와 뜻을 살리고 높이는 목회를 한다. 은퇴 이후에도 변우상 목사의 예수향기는 6남매 자녀 모두와 함께 사는 용인의 빌라에서, 용인제일교회에서 한 달 한 번 하는 저녁설교에서, 수원의 은퇴 목회자들이 모이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덕영대로 1201번길 16 세일프라자 3층의 희망은목교회 등에서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처럼 여전히 날리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라일락꽃 도종환 진정 도종환 시인의 라일락꽃 같은 평생의 반려자 2000년 김영순 사모가 떠나는 그 날, 그 주일(主日)에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놓을 수 없어서 강단을 비우지 않고 슬픔을 참고 설교하고, 평생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성도와 자녀, 그리고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이르기까지 기도하고, 맨 마지막에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현실에서 보이며 살아온 변우상 목사는 진정 예수를 그 가슴에 품었기에 예수향기가 새물내처럼 풍기는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였다.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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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7
  • (가칭)평양제일노회 분립 내막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1부(조용현 재판장)는 2015년 3월 24일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사랑의교회에 명령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하루에 2,000만 원씩 벌금을 내야 한다. 2014년 10월 13일 제175회 평양노회(노회장 강재식 목사) 정기회를 앞두고 박춘명은 말했다. “사실 평양노회 회계장부열람 청구는 기각될 뻔 했어요. 그런데 그걸 취하하면 노회 분립을 허락해 주겠다니 얼마나 감사해요.” 2014년 10월 13일 오전 10시 평양노회 대소사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은석교회당(김진웅 목사)에서 제175회 평양노회가 개회했다. 노회장 강재식 목사의 사회와 설교로 진행된 개회예배는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진 성찬예식은 칼빈대 이사장 김진웅 목사의 집례로 거행됐다. 김진웅 목사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노회를 준비한 노회장 강재식 목사의 엄명으로 성찬예식을 맡게 됐다며 감동의 성례를 연출했다. 그는 마태복음 26장 26-30의 말씀을 읽고 특별히 30절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의 은혜와 찬미의 감동을 전했다. 김진웅 목사는 한 부부의 사랑을 예화로 들고 그 부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는 분병과 분잔의 성만찬 예식 사이사이 굵은 바리톤으로 독창을 했다. 증경총회장 이성택 원로목사와 총신대 총장 길자연 목사가 은석교회 본당 왼쪽 맨 앞줄 장의자에 무겁게 앉아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 사무처리가 시작됐다. 무표정한 서기 황학우 목사의 회원호명이 있었다. 시무목사 31번 박춘명 목사 차례에서 노회장의 제지가 있었다. 그리고 박춘명 목사의 회원권을 보류한다는 노회장의 선언과 고퇴의 두드림이 있었다. 의사봉을 뜻하는 고퇴의 두드림은 노회장이 의사 결정을 고퇴(叩槌)를 두드려서 하는데 이는 망치로 못을 박으면 다시 빼지 못하는 것처럼 한번 결의된 바는 다시 변경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논란 끝에 평양노회는 노회분립위원회 구성과 보고를 받았다. 분립위원회(위원장 김선규 목사) 서기 고영기 목사는 “노회 분립에 앞서 네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모든 고소건 취하(권고), 노회 상회비 완납, 전화 및 회유 금지, 서기의 공식사과를 제시했다. 그 뒤 노회는 서기의 공식사과와 수정된 세부사항을 받기로 분립을 가시화 시켰다. 이날 또 다른 관심사로 떠 오른 삼일교회 전 담임 전병욱 목사에 대해서는 재판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회의 시간 연장을 해가며 3시간 넘게 증경총회장 이성택 목사와 교계의 거목 길자연 목사의 권면과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후임 송태근 목사의 끈질긴 현장에서의 면직 요구와 회원들의 공방을 거친 뒤 평양노회는 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와서 보니 이날 평양제일노회 측은 길자연 목사 측의 길자연 총장 70정년 문제, 동도교회 건 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걸 이용해 노회 분립과 길자연 목사의 은혜를 입은 송태근이 배신하고 김선규 측으로 간다는 약속과 후원을 다짐받고(현재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전병욱 목사 면직 재판 건을 밀어붙이기로 송태근과 밀약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나는 송태근 목사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노회 석상에서 내가 박춘명 목사에게 말했다. “쟤 왜 저러냐.” 박춘명은 대답했다. “전병욱 목사를 면직한 뒤 복직시켜야 한국 교회의 정의가 회복됩니다.” 정의란 사전에서 말하기를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이른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예수께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빌라도의 그런 태도가 말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예수께서 도마의 물음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다. 진리 되신 예수께서 (가칭)평양제일노회 박춘명 같은 사람의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그런 방법을 원하실까. 전병욱 목사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인 2만여 명의 교회를 사임하고 빚 한 푼 없이 수백억 원의 돈도 관리하는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그는 교회와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수모를 오직 하나님과 전도를 위해 지금도 홍대 근처의 2층 건물에서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정의 회복을 운운하며 총회 재판국원이자 실세이기도 한 허활민(작년에는 옥광석 목사를 정신병자로 몰아 면직 처리했다)과 결탁하고, (가칭)평양제일노회의 묵인과 송태근의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들만큼 전병욱 목사 면직을 주장하는 고소장을 올리고, 허활민은 서기에게 그것을 확인하고 독촉했다는 비열함을 드러내는 더굳뉴스 기사를 게재했다. 이에 박춘명은 7월 23일자로 일주일 기다려 시정하지 않으면 고소를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내게 보냈다. 박춘명에 대해 허위보도를 했으니 정정보도와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7월 31일까지 조치하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생각해 멋진 사진까지 실어주었는데 초상권 침해를 했다는 말에 잘 됐다 싶어 사진만은 재빨리 내렸다. 자신의 교회는 법인 등록이 되어 좋다는 서문강 목사나 올곧기로 소문난 권순직 목사 등도 전 목사의 면직을 원했다. 그런데 분당중앙교회 건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며 그들은 치를 떨며 전병욱 목사가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그런데 삼일교회 사임으로 모든 책임을 갈음하고 법정에까지 서서 판결을 받은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전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교회를 허무는 각종 단체와 신문을 지원하는 송태근을 먼저 고소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전병욱 목사는 그가 목사라며 말끝마다 송태근에게 목사 칭호를 꼬박꼬박 붙이며 삼가고 있다. 김선규, 길자연, 허활민 등에 관해 박춘명이 쏟아낸 적지 않은 말이 내 기억 속에 있다. 그것들이 공개되면 그는 또 그런 적 없다 부인하며 고소할 것이다. 그는 시포커스가 아니라 기독신문에 이 달 말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거친 내용증명을 보낸 그대로 나는 고소당해 벌금 액수만큼 하루 십만 원의 감옥살이 하는 쪽을 택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박춘명은 전직이 무엇인지 접고 칼빈대(무슨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를 나와 총신 98회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잘못이 있으면 성경과 믿음을 따라 회개를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의 입지(동도교회 사태의 법적 분쟁에서 빛을 발한)에 절대 필요한 고소와 거짓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근간에 이루어진 그의 거짓말에 대한 말이 들리고 있다. 그는 병 고친다며 방언을 하며 안수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자신이 한 말을 그런 방언으로 알고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방언은 스스로 모른다는 영어 같은 방언일리도 없고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사도 바울도 금하는 소리가 방언이다. 그러면서 순수한 부총회장 후보 김종준 목사를 이용해 지엄한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박신범)에도 무흠한 장대영 목사를 고발하기 위해 서슴없이 거짓말을 일삼는 서류를 제출하는 자가 거룩한 총회 부총회장 후보 김선규 목사를 보좌하고 바룩처럼 모든 서류를 대필하고 있다고 하니 김선규 목사와 그 노회 앞날이 걱정스럽다. 총회장의 충실한 교단기관지 기독신문 사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히 노회분립의 ‘전성시대’다. 아니, 노회분립의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제99회 총회는 노회분립과 관련하여 한서노회 평양노회 안주노회 황동노회 서대구노회 서수원노회 등 6개 분립위원회를 허락했다. 그리고 이들 6개 노회분립 특별위원들은 이번 봄 노회를 앞두고 대부분 분립을 완료했다. 그러나 정작 노회분립을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 쉽게 허락해도 되는 것인지 냉정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그러나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분립한 노회를 살펴보면 솔직히 행정력 보다는 노회 내부의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분립을 택했다는 것이다. 분립의 원인으로는 계파간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다. 이번 회기에 분립하는 6개 노회만 봐도 쉽게 알 수가 있다. 이 말에 덧붙이건대 평양노회의 분립은 그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에 허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도 어려운 김선규 목사가 총회 부총회장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것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하며 안수기도를 하는 순복음기도원 출신 같은 박춘명 목사의 총대 꿈을 이루어 허활민 행각을 밟게 하기 위한 명목으로 노회가 분립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총신 출신이 순복음 기도원에서 배출한 것 같은 방언으로 안수기도를 하고 조폭처럼 전화 몇 마디 나누면 아무나 형님을 외친다. 실제로 그는 기독신문 주필 이종찬 목사와 총회 부회록서기 김동관 목사와 허활민을 형님동생하기로 했다며 형님이라고 부른다. 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는 그를 위해 해주겠다는 기도를 무릎까지 꿇고 받으려다 엉터리 같은 방언이 튀어나오는 안수 기도에 질겁하고 거부하더라면서 믿음이 부족한 목사라고 박춘명 자신이 말했다(물론 이 말도 한 적 없다고 정정 보도를 요청할 것이다). 내 자신 총신 72회 목사이기에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아무도 모르는 방언이 아니라 누구나 알기 쉽게 우리말로 예언을 하건대 박춘명은 평생 고소를 일삼고 주님 말씀대로 어두운 데서 이를 갈며 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말씀한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1-5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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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5
  • 신세원 백남선 박무용 허활민
    1997년 제82회 총회 총회장을 역임한 신세원 목사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향년 만 80세로 하늘로 돌아갔다. 보리와 밀이 노랗게 익어가던 자리에 어린 벼들이 실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7월 15일 오전 10시 서초동 창신교회당에서 드린 장례예배는 총회서기 권재호 목사의 사회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總會葬)으로 진행되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신세원 목사의 사모 김차름 권사는 발인 예배 내내 오열했다. 부총회장 이호영장로의 기도,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 총회회록서기 김정훈 목사의 약력소개, 증경총회장 장차남 목사의 조사, 묵묵히 총회를 섬긴 창대교회 원로 과묵한 최성구 목사의 조사가 애절하게 끝난 뒤 다부진 총회 총무 김창수 목사가 굵은 목소리로 강단에 섰다.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이 자리에 서 유족들과 교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하나 지금 해외에 인사차 출타 중입니다. 총회장이 제게 연락오기를 착오 없이 장례 준비를 잘 하고 유족들에게 잘 위로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잘 이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셔서 유족과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순서를 맡아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둘러보니 부총회장 박무용 목사도 안 보이고, 총회 실세 허활민 목사 냄새도 안 나고, 총회의 걸쭉한 인물 강일구 목사도 나타나질 않았다. 나중 들리는 말에 총회장 백남선, 부총회장 박무용, 총회 실세 허활민 등은 브라질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7월 22일 강일구 목사에게서 나라와 총회를 걱정하는 메시지가 날라 와 나눈 통화에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부민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그는 대단한 소식통이었다. 백남선 박무용 허활민 등은 오늘 브라질에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삼총사는 브라질의 유명한 삼바축제 기간도 아니고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긴 거대한 조각상에 올라 기도할 사람들 같지도 않아서 든 생각이다. 이 상의 높이는 39.6 미터에 무게는 700 톤이며 예수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티주카 삼림 국립공원 내에 있는 코르코바두 산의 정상(고도 700 미터)에 세워져 있으며, 리우데자네이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흔히 브라질 예수상으로 불린다. 그런데 그들은 왜 총회 여비를 사용하지 않고 머나먼 브라질까지 갔을까. 미국은 북미고 브라질은 남미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다 미주 노회와 미주 총신을 세운 김에 차제에 브라질에도 남미 노회와 남미 총신을 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야 그 먼 곳까지 바쁜 그들이 일정을 맞춰 갔겠는가. 미주 서부지역 총신 편목 과정 이수를 위한 특별교육이 2015년 5월 26일 개강해 2주간의 교육을 마쳤다. 언필칭(言必稱) 미주 지역 편목 과정은 노회 복구 이후 합당한 절차를 통해 본교단에 소속하기를 원하는 목사들에 대해 지난 99회 총회 결의에 따라 단회적으로 시행되는 특별교육으로 총 32명의 목회자가 등록했다. 한국에서는 허활민 위원장을 비롯 문세춘 목사, 이호현 목사, 이기택 목사, 최우식 목사, 서광호 목사, 이승희 목사가 강사로 참석했다. 총신 2년 과정을 거친 백남선 총회장은 “편목 과정 입교를 환영한다. 무늬만 총신이 아니라 뼈 속까지 총신인이 되어 교단의 명예를 높이고 목회에서도 모범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미주동부노회 편목편입 총신학적취득 교육도 6월 1일 부터 12일까지 뉴욕 새힘교회(박태규목사)에서 13명이 등록한 가운데 2주 동안 진행됐다. 강의에 앞서 이만덕 목사 사회로 진행된 개강예배는 김상현 목사 기도, 총회부회록서기 김동관 목사 설교, 허활민 목사의 축사, 미주동부노회 노회장 나광삼 목사의 축도가 있었다. 이번 편목 과정에는 이진철 목사, 서한규 목사, 김상현 목사, 김동관 목사, 이만덕 목사, 김영남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서부와 동부 지역의 강사로 참석한 이들 역시 편목 출신이 적지 않고 심지어 편목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나라와 국경이 다른 곳에 왜 총신 과정이 필요하고 무슨 이유로 노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번 제100회 총회에 그들이 총대로 참석할 것이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백남선은 말했다. “언론을 밥을 먹고 살기 위해 해선 안 된다.” 나는 더굳뉴스를 교회와 목사를 공격하는 언론에 맞서기 위해 시작했지만 실상은 밥 먹고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면 편목 출신의 허활민은 총회를 어지럽히는 이런 일을 무엇을 위해 하는지 같이 몰려다니는 백남선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백남선은 교인이 300여 명 되는 교회의 목회자다. 충분히 밥을 먹고 살 기반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금년 4월 서울 송파구의 교인 30여 명의 지하 교회의 위임목사로 부임한 허활민은 월급도 없는 총대 직분만으로 미국의 가정과 한국의 삶을 어떻게 영위하는지 실로 궁금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신기한 건 4월 부활주간 토요일에 백남선, 박무용, 김선규, 박춘명 등의 참석과 축하 속에 부임한 담임목사 허활민 이름이 새겨진 2015년 총회 월력이 그 교회 지하 벽에 걸려 있다). 그는 생활비도 물론이고 사실 총대 자격도 없다. 그런데 법을 지킨다고 장담하는 백남선은 그런 그를 싸고돌고 있다. 이제 생각나는데 작년 동도교회 사태로 허활민과 서로 알게 된 처지의 박춘명 목사(당시 동도교회와 같은 노회의 목사)가 더굳뉴스 주필 시절에 더굳뉴스 발행인인 나 김영배에게 말했다. “허 목사가 나한테 2800만 원 준다는 걸 내가 거절했어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받으라고 했는데 큰 키의 박춘명은 똥그란 눈으로 웃기만 했다. 무슨 이유로 허활민은 교인 50여 명의 평양제일노회의 2층 교회에서 목회하고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김선규 목사를 수행하고 다니는 박춘명에게 거액의 돈을 준다고 했을까. 허 목사는 무슨 돈을 어떻게 벌어 미국 가족도 부양하고, 재판국 국원들 식사 때마다 돈을 내고,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미국을 수시로 오가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이제 신세원 목사가 하나님 나라로 떠날 무렵 브라질로 떠난 백남선 박무용 허활민 등이 힘을 합쳐 산서노회를 세운 10년 전, 그리고 미주 총신과 미주 노회를 설립한 1년 전처럼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는 어떤 걸작(브라질 여행의 열매를 포함해)을 내놓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2005년 제90회 부서기 박무용, 2006년 제91회 서기 박무용을 통해 교단합동과 노회 정비시기를 이용해 허활민은 산서노회를 세웠다. 그리고 2014년 9월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부총회장 박무용 등의 때를 이용해 허활민은 미주 노회와 미주 총신을 허락받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 디모데전서 6:7-12, 20-2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세원 목사의 유족으로는 사모 김차름, 장남 신언동 목사(보스톤한인연합장로교회), 자부 정용희, 차남 신언목 집사(한국시설물안전기술단 대표), 자부 정민선, 삼남 신언주(전문번역가)가 있다. 우리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신세원 목사의 손을 잡고 주님께 그 은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날을 소망하자.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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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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