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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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의 평양노회 분립 매듭
    평양노회분립위원회(위원장:김종희 목사)는 2월 26일 총회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평양노회 자체 분립위원회와 미진하지만 최종적인 매듭을 지었다. 역대 3명의 총회장과 칼빈신학대를 운영하는 역사와 힘을 자랑하는 평양노회는 분립이 확정되어 역사와 힘을 나누게 됐다. 이날 회의에는 각 측 대표로 평양노회 A의 권순직 목사와 평양노회 B의 고영기 목사가 참석했다. (가칭)평양제일노회는 3월 13일 11시 성현교회(김선규 목사)에서 분립예배를 드리며, 3월 23일 11시 (가칭)평양노회는 왕성교회(길요나 목사)에서 드린다. 논란이 됐던 동도교회는 (가칭)평양제일노회 측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위원장 김종희 목사가 재판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두 분립 노회에 소속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가칭)평양노회 측에 가입서류를 제출했던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에 대해서도 소속 결정을 보류했다. 전병욱 목사가 성장시키고 떠난 삼일교회(송태근 목사)는 (가칭)평양제일노회 측에 소속하기로 선택해 3월 9일까지 상회비를 완납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노회 상회비 미납시 소속을 보류 당하게 되고 그러면 다른 노회로 이적이 안 된다. 분립하는 두 노회는 일단 분립 예배를 드린 뒤 미진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 같다. 갈리는 두 노회의 표정은 한쪽은 좋아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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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8
  • 총회 정치와 거룩성 회복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과 겨룬 박지원은 문재인에 대해 '맑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을 만한 평가지만 정치인에게는 꼭 그렇지도 않다. 사심(私心) 없기로 소문난 정치인 중에는 그저 그런 정도의 역할만 하고 사라진 사람이 훨씬 많다. 그게 정치의 세계다. 그래서였을까? 박지원은 그 말 뒤에 이런 말을 붙였다. "그래서 (당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대표가 되어야 한다." 어쨌거나 문재인은 대표가 됐다. 당 지지율도 올랐고 본인 지지율도 올랐다. 이게 기분이 좋았던지 문 대표는 권노갑 등 상임고문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당 지지율이 올랐다고 자랑도 했다. 그런데 문 대표에게서도 현실 정치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듯했던 안철수의 냄새가 조금 난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준을 여론조사로 하자는 얘기는 귀를 의심케 했다. 국민 뜻에 따르자는 취지라고 해명은 했지만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저 엉뚱한 얘기가 아니라 바둑으로 치면 제 수를 메우는 자충수(自充手)이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이 '여론에 취한 문(文)'이라고 쓴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국정(國政)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임기 3년차를 이끌 동력(動力)을 다시 살리기 위해 지난달 이 총리를 발탁했다. 신임 총리에게는 공무원연금·노동·교육 등의 개혁 과제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이 정책들을 관철하려면 다른 어느 총리보다 여야 정치권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물이어야 했다. 이 총리 지명 직후엔 야당 지도부도 기대감을 표시할 정도로 그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현역 입영 기피, '1000만원짜리 황제 강의', 차남의 소득세·건보료 탈루, 분당 땅과 서울 강남 고급 주택 투기 등 온갖 의혹에 시달렸다. 여기에다 이 총리가 청문회를 며칠 앞두고 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언론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지금까지 내가 (김영란법 처리를) 막아줬는데 이제 안 막아줘. (언론도) 당해 봐" "(언론인들을)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라며 언론을 멋대로 모욕하고 희롱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 정권 들어서 이미 총리 후보자 세 명이 낙마한 상황에서 이 완구 총리마저 무산될 경우 정권이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이 총리 인준안의 국회 처리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날 표결로 이 총리는 여당 표도 다 얻지 못한 '반쪽 총리'가 됐다. 그런 그가 앞으로 주요 입법 과제들을 놓고 대(對)국회, 대야(對野) 관계에 나서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완구 내각 출범을 국정 운영의 새 동력으로 삼겠다던 대통령의 구상은 진작 물 건너갔다. 박 대통령이 후속 개각과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을 통해 민심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반전(反轉) 카드를 내놓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의견이 많다. 이 정부의 임기는 3년이나 남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들이 이렇게 정권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낼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되묻고 답을 구하는 것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CTS가 2월 20일 금요일 오전 10시에 방송한 예장합동 백남선 총회장 등 5개 교단 총회장이 참석한 ‘CTS스페셜 한국교회를 論하다-2015 한국교회를 전망한다’에서 백남선 총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현재 한국 교회는 물질 권력 명예를 좋아하고, 가진 자가 복이 있다는 세상 논리에 빠져 있는 상태다. 과연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무엇보다 거룩성과 가치관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예장합동교단이 선두에 서서 거룩성 회복과 가치관 회복을 목표로 진력하겠다…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 하셨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향해 소리치는 실정이다…교회가 사회를 위해 여러 자선사업도 진행해야겠지만,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은 결국 복음이다. 진정한 복음을 전달해 한국 사회를 새롭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130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신 선교사들과 순교자들에게 우리는 빚을 졌다. 이제 우리가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향해 더욱 힘써야 할 때다.” 우리 총회는 우리의 정치력과 거룩성을 가로막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납골당 문제, 아이티 문제, 총신 문제, 몇몇 교회 분쟁 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총회장 백남선 목사에 대해서 달변의 박지원 의원의 말과 이완구 총리의 처지가 생각나는 것은 까닭 없는 것일까. 박지원은 문재인에 대해 '맑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을 만한 평가지만 정치인에게는 꼭 그렇지도 않다. 사심(私心) 없기로 소문난 정치인 중에는 그저 그런 정도의 역할만 하고 사라진 사람이 훨씬 많다. 그게 정치의 세계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 정권 들어서 이미 총리 후보자 세 명이 낙마한 상황에서 이 완구 총리마저 무산될 경우 정권이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이 총리 인준안의 국회 처리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날 표결로 이 총리는 여당 표도 다 얻지 못한 '반쪽 총리'가 됐다. 그런 그가 앞으로 주요 입법 과제들을 놓고 대(對)국회, 대야(對野) 관계에 나서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처지가 됐다. 거룩함의 회복을 위해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 삼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 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1-12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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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8
  • 총신대 졸업식과 오정호 목사
    "졸업생 입장!" 지난 2월 12일 경기 용인 제일초등학교 졸업식. 힘찬 박수와 함께 검은색 가운을 입은 졸업생 36명이 등장했다. 6학년 2반 김기국,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 낯익은 얼굴들이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았다. 지난해 전 국민을 감동시킨 '꼴찌 없는 운동회' 사진 속 주인공들이었다. 양지면 전원주택 마을에 자리한 제일초등학교는 전교생 260여명의 작은 시골학교다. 하지만 지난해 9월 20일 열린 가을운동회 사진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서 유명해졌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 또래보다 키가 눈에 띄게 작은 기국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몸이 불편해 달리기 경주에서 늘 꼴찌만 하는 기국이를 위해 앞서가던 친구들이 손을 내밀었고, 다섯명은 함께 결승선에 골인했다. '꼴찌 없는 운동회'의 주인공들이 지난 12일 졸업 가운을 입었다. 왼쪽부터 심윤섭, 이재흥, 김기국, 오승찬, 양세찬 군. 졸업생의 이름이 차례로 불렸다. 한 사람씩 무대 위로 올라가 졸업장을 받았다. 기국이 순서가 되자 교장선생님은 무릎을 굽혀 졸업장을 내밀었다. 홍정표 교장은 "우연한 계기로 우리 학교가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좋은 것'보다 '옳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여줬다"며 졸업생들을 칭찬했다. 2반 아이들은 "운동회 때 달리기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건 선생님"이라고 입을 모았다. "선생님이 운동회 전날 재홍이를 불러 '기국이가 꼴찌만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했어요. 그래서 애들이 아이디어를 낸 거죠." 기국이는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반 친구들이 착한 건 선생님을 닮아서 그래요." "우정이란 어른이 돼서도 끝까지 사이좋게 지내는 거요." 기국이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3월에 학년을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2월에 졸업을 한다. 일반 졸업식은 애국가 제창 같은 국민의례, 졸업 증서 수여, 교가 제창 등으로 구성된다. 대학의 경우 졸업생이 학사복을 입고 학사모를 쓴다. 지난 2월 11일 오전 11시 총신대학교(총장 길자연 박사)는 재단이사회 이사장 김영우 목사의 사회로 총신대 종합관 대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2014학년도 대학 제45회 대학원 제36회 학위수여식을 가졌다. 이날 학사 신학과 69명, 기독교교육과 17명, 영어교육과 21명, 역사교육과 22명, 유아교육과 33명, 교회음악과 26명, 아동학과 97명, 사회복지학과 47명, 일반대학원 박사 7명, 석사 37명, 목회신학전문대학원 박사 14명, 석사 13명, 선교대학원 석사 48명, 교육대학원 석사 35명, 기독교사회복지대학원 석사 16명, 상담대학원 석사 27명 등에게 학위를 수여했다. 박사 학위 취득자들은 총장 길자연 박사와 대학원 부총장 심상법 박사가 일일이 학위를 수여했다. 판에 박힌 듯 밋밋하게 진행되던 졸업식 행사가 학위수여에 이어 상장수여식에서 틀을 깨는 이벤트가 예상치 않게 발생했다. 총장 길자연 목사의 총장상 수여에 이어 마지막 총동창회장상 수여를 마친 오정호 목사가 총신대 동창회장 자격으로 비어 있는 단상에 서서 대학부 졸업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풍모에 어울리게 공명성이 강한 목소리를 가진 오정호 목사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대학부 총동창회 입회 선서식을 가졌다. 오른 손을 든 오정호 목사의 인도에 따라 기립한 대학부 졸업생들도 오른 손을 들고 외쳤다. “하나님을 위하여!” “총신을 위하여!” 이어서 사회를 위해 단상에 선 김영우 목사는 예정에 없는 순서를 행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발언을 한 뒤 총장 훈사를 듣기 위해 졸업생들은 기립하라고 말했다. 길자연 총장은 기립한 졸업생들을 다시 앉히고 훈사를 했다. 총장 길자연 박사는 훈사에서 “1901년 겨우 두 명의 학생으로 출발했던 평양신학교가 오늘의 기독교 명문사학으로 발전하기 까지는 결코 순탄한 과정만을 거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이런 가운데 참된 성경관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앙정신의 토대 위에 세워진 우리 총신대학교는 만난을 뚫고 명문 기독교 사학으로서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총신의 지난 역사를 술회하며 졸업생들에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사회로 나아가라고 격려했다. 학위수여식은 김승동 목사, 송춘현 목사, 하귀호 목사 등의 격려사, 권영식 장로, 박정하 장로 등의 축사에 이어 운영이사장 김종준 목사의 축도로 마감했다.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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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6
  • 더굳뉴스 제15호 한국의 스펄전 장대영 목사
    장대영 목사의 회심도 스펄전처럼 이루어졌고 목사 안수도 17세 때 받고 부흥사로 나서 그의 당시 충청도는 성령의 바람이 뜨겁게 불던 곳 부흥회를 얼마나 많이 다녔던지 충청도 지역이나 섬 지역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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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5
  • 전국 충청인 대회와 총신재단이사회
    2월 13일 오전 11시 대전 유성 계룡스파텔에서 전국충청인대회(대회장 김영우 목사)가 전국 충청도 출신 목사와 장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모임의 설교는 전 81회 총회장 김준규 목사가 본문 예레미야 29:4-14 제목 “선민과 거주 사회의 책임”으로 전했다. 총신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는 대회사를 통해 이 대회의 목적이 첫째, 충청인이라는 연분으로 우의를 돈독히 다지고, 둘째, 충청도 출신 목사와 장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난국에 빠진 총회를 바로 섬기자는데 있음을 밝혔다. 전국 충청인 대회가 열린 게룡스파텔 근처 그린하우스에서 학교법인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이사장 김영우 목사)가 2015년 제1차 이사회를 갖고 총회 결의에 따라 사표를 낸 재단이사들의 보선과 선임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개방이사인 유병근 목사, 정준모 목사, 한기승 목사의 사임서를 반려했으며, 일반 이사 가운데 사임서를 제출했던 고영기 목사, 배광식 목사, 김정훈 목사 등에 대해서도 재선임했다. 사임서를 제출하지 않은 김영우 목사, 안명환 목사, 이기창 목사, 김승동 목사의 이사직을 유임키로 했으며, 하귀호 목사를 신임 이사로 선정했다. 감사에는 주진만 목사와 양원 장로가 임명됐다. 한편 일부 이사들에 대해서는 교체를 단행, 백남선 목사 대 박요한 장로, 이승희 목사 대 문찬수 목사, 정년이 된 이완수 장로 대 곽효근 목사, 최형선 목사 대 정중헌 목사를 선임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재임용과 신규 대상 교수 25명 가운데 1명이 탈락되고 나머지는 모두 승인을 허락했다. 또 2015년도 총신대 예산안도 승인했다. 이날 선임된 재단이사들 가운데 제99회 총회 결의에 따라 총회 공직 재직 여부를 총회임원회(총회장 백남선 목사)에서 다뤄야 할 것 같다. 재단이사 명단 김영우(이사장) 안명환 이기창 김승동 유병근 정준모 한기승 고영기 배광식 김정훈 하귀호 박요한 문찬수 곽효근 정중헌 201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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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4
  • 총신대·총신신대원 졸업 동문회
    2015년 2월 12일 오전 11:30 총신대학과 출신신대원 졸업 동문회가 최초로 총신대학교 사당캠퍼스 평생교육원 건물 브니엘 카페에서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이날 제공된 푸짐한 식사는 총신운영이사장 김종준 목사(총신대 74학번 총신신대원 79회)가 전액 부담했다. 식사 기도는 총신 이사 전인식 목사(총신대 72학번 총신신대원 74회)가 했다. 식사를 나누면서 운영이사 이상협 목사(총신대 83학번 총신신대원 88회) 사회로 동문 각자의 소개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나눈 의견 가운데 총신대 출신 교역자 간의 교류와 목회 편의를 나누고 서로 돕자는 취지의 발언이 동문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올해 졸업 신입 동문들에게는 소정의 교통비도 지급됐다. 다음 3월 모임에는 더 많은 동문과 더 나은 선물이 준비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김종준 목사의 축보 기도로 마쳤다. 201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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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4
  • 총회목회대학원 제37회 졸업식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오후 2시 총신대 종합관 대강당에서 제37회 졸업식이 열렸다. 이날 20명이 졸업한 졸업식은 운영이사 하귀호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운영위원장 김종준 목사가 디모데후서 2:20-21 본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온화하고 신중한 모습의 총회목회대학원장 유병근 목사가 20명에게 일일이 졸업장수여를 했다. 격려사는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와 운영이사 이기창 목사가 했다. 축사는 총신대학교총장 길자연 목사와 전 장로부총회장 박정하 장로가 했다. 운영이사 전대웅 목사의 축도로 졸업식과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201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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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4
  • 한국의 스펄전 장대영 목사
    침례교 뿌리는 종교개혁 후기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9년 홀랜드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 존 스미드(John Smyth)는 자신의 머리에 물을 붓는 세례를 행하고 다른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침례교 운동은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 런던의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과 맨체스터의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과 같은 위대한 설교자들이 침례교회로 수많은 청중을 이끌었다. 2009년 침례교는 설립 400주년을 기렸다. 찰스 해돈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은 영국 에섹스 켈비던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온 일상이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삶은 아니었다. 스펄전의 회심은 15세 때인 1850년 1월 6일 일어났다. 약속이 있어 가는 길에 눈보라 때문에 콜체스터에 있는 한 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교회에서 스펄전의 마음에 구원의 메시지를 열어주셨다. 그를 감동시킨 성경 본문은 이사야서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였다. 그의 자신의 회심에 대한 회상은 이렇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은혜롭게도 어느 일요일 아침 대단히 심한 눈보라로 나의 예배당 가는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 있지나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 아침 나는 눈에 길이 막혀서,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한 교회에 불가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은 모두 열 두 서넛밖에 없었으며 목회자도 안 나왔습니다. 아마 눈에 길이 막혔던 모양이었습니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 양복장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두장이 같아 보이는 이가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딴 소리는 할 재능이 없어보였습니다. 본문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하는 이사야 45장 22절이었는데 이 사람은 본문을 온전히 읽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경 봉독을 들었을 때 제 생각에 그 말씀에는 제게 대한 어떤 소망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안됩니다. 예수를 자주 바라보십시오. 예수는 '나를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큰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았다! 오오,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라!" 여기까지에 겨우 한 십 분 동안을 소비하고 나서 이 설교자는 밑천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단 바로 밑에 앉았던 나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처음 나온 사람인 줄을 알아 차렸던 모양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입을 열어 "청년, 당신은 왜 그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청년이 이 성경 본문을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련할 것이고 죽어서도 가련할 것이요. 그러나 이제, 이 시간에 이 성경을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소." 그는 한층 소리를 높였습니다.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라! 지금 바라보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리에서 놀라 일어났으나, 그러나 그 때 나는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구름은 걷히고, 나는 햇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그 누가 이 진리를 좀 더 일찍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더면..."나를 앙망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한 이 위대한 진리를! 그때부터 스펄전의 삶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삶이었다. 1851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정식 목사 직분을 얻었다. 장대영 목사의 회심도 스펄전처럼 이루어졌고 목사 안수도 17세 때 받고 부흥사로 나섰다. 그의 당시 충청도는 성령의 바람이 뜨겁게 불던 곳이었다. 부흥회를 얼마나 많이 다녔던지 충청도 지역이나 섬 지역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2015년 1월 10일 10시 수도중앙교회 당회장실에서 장대영 목사를 만났다. 그리 크지 않은 당회장실 벽에 수양관 전경이 찍힌 큰 사진틀이 걸려 있었다. ―목회는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목회 시작은 감리교에서 했어요. 그러다 마경일, 윤덕수, 윤창덕 등으로 인해 교단이 갈라지는 바람에 그 바람을 피해 장로교로 왔어요. 그런데 김희보 목사와 박아론 목사가 또 갈라지는 바람에 분열의 아픔과 피해를 또 겪었지요. 어쨌든 이제는 평안해져서 참 은혜롭습니다.” ―사역 기한은 어떻게 되십니까. “목회사역 45년, 부흥사역 45년입니다.” ―두 사역이 다 같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나이에 비해 내가 목회를 오래 했어요. 거기에는 군 면제도 한몫 했지요.” ―독자이셨습니까. “아니요. 대전 병무청에서 누락시키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그 당시는 전도자나 목회자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죠. 하나님 복음 사역이 더 급해서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어쨌든 하나님 은혜죠. 그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병역 문제를 엄히 다스려서 미국 보낸 장관 아들도 불러들이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선대 때부터 내려온 신앙의 집안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내 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핍박도 많이 받았어요. 그 당시 이강산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서 은혜를 받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모양입니다.” ―그럼 몇 살 때부터 믿었습니까. “저는 그냥 주일학교부터 다녔어요. 육이오 끝난 뒤였는데 여덟 살부터 열심히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니까 어린애가 별스럽다고 유교 집안에서 핍박받고 그런 거지요.” ―교단 안에서 친한 분은 누구셨습니까. “최승강 목사. 참 친했죠. 그런데 좀 일찍 떠나고 말았어요. 최은혜라고 딸이 있었는데 굉장히 사랑했죠. 그런데 그 딸때문에도 마음이 많이 아팠던 모양이에요.” ―부흥사는 어떻게들 되시는 겁니까. “옛날에는 은혜를 받으면 부흥사가 되었어요. 60년대 70년대 성령운동이 일어나니까 그 당시 체험하고 은혜 받으면 사명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어요. 목회자도 많지 않던 시절이고. 또 성령의 체험 속에서 뜨거워지니까 복음 전하는 일이 인생의 최고 목표로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사명감에 대개 부흥사가 된 거죠. 우리나라에서 성령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충청도였어요. 성거산 집회, 흑성산 집회, 계룡산 집회 등에서 이성봉 목사, 박제봉 목사 등의 부흥회로 성령운동이 충청도에서 빨리 일어났어요. 옛날 오관석, 김충식, 강달희 등을 보면 다 충청도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삼각산에서 집회를 하다보니까 서울에서도 성령운동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경상도 쪽에서는 용문산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육이오 이후에 성령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 사실 충청도입니다. 처음에는 이북출신 부흥사들이었지만 나중에는 충청도에서 제일 많이 부흥사가 나왔죠.” ―그러면 목사님은 몇 살 때 부흥사로 소명을 받으신 겁니까. “열일곱 살 때.” ―그 때부터 바로 부흥회를 시작하신 겁니까. “당시는 열일곱 살만 되도 주일학교 선생을 다 맡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열아홉 살 정도부터 집회를 해달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72년에 전도사로 제천에 있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게 되었어요.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정식으로 부흥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김제 남산교회 부흥회를 시작으로 연줄연줄 계속 나가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신안 앞바다 섬에 있는 교회는 다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나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죠. 근래에는 도시 중심으로 부흥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살다보니 벌써 45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버린 겁니다. 근 반백년 부흥사역입니다.” ―목사님 기록을 보니까 목회사역 기간과 부흥사역 기간이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분이 다 계시나 했습니다. 제가 총회 전도국장 시절 일만교회운동을 하느라 부흥사들과 같이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부흥사들 설교가 중복되고 한정되어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십니까. “부흥사들이 은사를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제한적인 설교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 설교나 부흥회 설교나 폭을 넓혀서 하고 있습니다. 부흥회 설교다 해서 말씀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부흥사일지라도 설교를 말씀 중심으로 해야지 열매가 있고 생명이 깁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으로 하지 간증 집회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간증하다보면 내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게 하다보면 자기를 확대시키게 되요. 거짓말도 하다보면 습관이 돼서 자꾸 하게 되고 결과가 안 좋게 되죠. 게다가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시지를 않아요. 내가 좀 부족해도 말씀 중심으로 하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은혜가 있게 되죠. 그러다보니 제 부흥회는 한 교회에서 여러 번 초청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승강 목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일곱 번이나 초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일곱 번째 하려는데 최승강 목사가 소천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후임 목사가 초청을 해서 그 교회 부흥회를 일곱 번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최병헌 목사의 인천 낙원제일교회도 그 정도 했죠.” ―최병헌 목사도 부흥사인데요. “그 분이 내 어렸을 때 간증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나를 초청했는데 여덟 번인가 했어요. 나는 최 목사를 몰랐는데 최 목사는 나를 잘 아는 겁니다.” ―목사님은 부흥사로서 화려한 경력을 가지신 분인데 선전은 안 하신 것 같네요. “나는 나 자신을 선전하거나 하지를 않고 열심히 부흥회를 다녔어요. 그런 걸 하면 죄인 줄 알았어요. 보수적이었죠. 우리는 애를 키워도 품에 안고 다니면 큰일 난 줄 알았으니까요. 성경대로 사명자는 부모형제를 버려야 된다고 믿었죠. 그러다보니까 내 자신을 알리는 일은 꿈도 못 꿨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더 오래 하는 것 같아요.”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설교는 한 주 전에 본문을 정하죠. 그렇게 해야 부흥회를 주일 저녁부터 나가니까 설교를 준비할 수가 있죠. 마음속에 설교 본문과 내용을 담고 지냅니다.” ―설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는군요. “그렇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목사가 설교 생각밖에 더 있어요. 사람 보는 것에서도 깨달음을 얻고,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교훈과 뜻을 발견하고, 그렇듯 항상 설교 준비에 마음이 꽉 차 있어요. 주부가 식사 준비를 위해 반찬을 늘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하고 설교 원고를 씁니다.” ―설교를 잘하는 김동호 목사도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하더군요. “아 그래요. 저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자나 깨나 설교 생각이죠. 그게 생명이니까요.” ―결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 집사람하고 여섯 살 차이에요. 내가 좀 늦게 결혼을 했습니다. 33살에 했으니까요. 기다렸다가 했어요. 그때는 시절이 가난하고 세대주의가 강할 때라 주님 빨리 오시기를 바라던 때인데다 저는 빨리 주님 오셔야 한다는 믿음도 있어서 결혼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면 목사 사모하면 되겠다 싶어 기다렸습니다. 믿음도 좋고 얼굴도 예뻤어요. 교회 봉사도 잘 했죠.” ―자녀는 어떻게 되십니까. “일남일녀입니다. 아들이 재작년에 목사가 됐습니다. 지금 캐나다 유학 가 있습니다. 딸은 예능 쪽인데 여기서 대학 나와 독일 유학 가서 바이올린 전공했어요. 그래서 스투트가르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있어요. 아직 미혼입니다. 32살인데 유학파들은 결혼이 늦어져요. 독일은 대우가 좋잖아요. 그러니 갈등이 많죠.” ―어떻게 딱 둘만 나셨어요. “우리 형제가 많아요. 내가 십 남매에 다섯째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많은 건 그렇게 원하지 않게 되죠.” ―자녀는 어떻게 키우셨어요. “아들은 아내가 하나님께 바친다고 서원을 했어요. 아들이 커서 신학을 하는데 나는 목회자가 하도 많으니까 그만 두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떠봤어요. 내심 안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본인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후회가 되는 건 아들한테 너무 엄하게 대했다는 겁니다. 집에서도 볼 때마다 인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딸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들은 내가 상당히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내 앞에서 한번도 아니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들이 자신의 감정 표현을 나한테는 전혀 안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아주 자그마한 것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좀 마음이 아픔니다.” ―목사님이 화를 내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내가 잔소리는 안 해요. 그런데도 나를 그렇게 어려워하는 겁니다. 너무 어려워하니까 그 당시는 키우기는 편했는데 나한테 너무 눌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유학으로 멀리 떠나고 나니까 마음의 빈자리가 더 큰 것 같네요. ” ―어디로 갔습니까. “캐나다 밴쿠버로. 공부하고 적응하려니까 힘든 모양입니다. 손녀가 둘입니다.” ―며느리는 뭘 하십니까. “이대 간호학과 나와 이대 부속병원에 있다가 결혼을 했죠. 지금은 내조만 하죠. 애들도 잘 키워요. 우리 손녀가(손톱을 내밀며) 요만큼 한마디도 나한테 반말이 없어요. 백 프로 존댓말을 써요.” ―아드님이나 따님도 목사님한테 존댓말을 쓰게 하셨겠죠. “교역자도 기도할 때 말씀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데 그런데 손녀는 말씀하시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해요. 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며느리가 참 잘 가르친 거겠죠. 그리고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까 손녀 보는 재미로 사는 게 상당해요. 그 아이만 보면 엔돌핀이 나오는 것 모양입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집에 오면 내 품에서 자고 가곤 했어요. 이제 떠나고 나니 얼마나 허전한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가 여섯 살 아이인데 나한테 오면 내 수준에 맞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거짓말 하는 줄 알아요. 못하는 말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언어의 마술사라고까지 했어요. 아이한테.” ―목사님은 성격이 어떠십니까. “우리는 외모로만 차분한 것 같지 내면은 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설교도 빨리 하고 모든 것이 조금 지체하는 걸 못 보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시간도 칼날 같죠. 내 위치가 목사니까 겉으로 억제하는 것이지 실상 속으로는 성격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시작되면 잠을 못 잘 때가 많아요. 생각을 거듭 하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해요.” ―수양관을 보면 규모가 굉장한데요. 지금 이만한 일을 이뤄놓으려면 굉장히 큰 일인데요. “잔디만 2만 5천평입니다. 은혜의 전당 옥탑까지 내부는 다 대리석을 붙이고 외부는 화강암으로 했어요. 이런 수양관은 전국에 하나뿐입니다. CTS의 내 영혼의 노래 방송도 저기서 몇 번 했어요. 총회 일만교회운동 세미나도 계속 하고 있죠. 수양관에 한 100억 정도 들어갔어요. 저 독수리가 있는 수양관 문만도 2억5천이 들었습니다. 열두 대문처럼 문이 위엄이 있어야 사람들이 무시를 못해요. 문이 하찮으면 사람들이 막 들어와요. 저 설계도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가 했습니다.” ―개선문 같아요. 저 독수리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사야 40:31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는 말씀의 독수리를 상징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양관은 좋습니다. 수영장도 있습니다. 집회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여름 행사 때마다 아이들이 물 사고를 당하곤 해서 말입니다. 전체가 5만 5천 평인데 나무하고의 싸움도 만만치 않아요. 교인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조경하느라 들어간 흙 값만도 엄청 들었어요. 목요일은 저도 새벽 끝나면 가서 열심히 일 합니다. 운동 부족인데 그걸로 메꿔요.” ―목사님은 집회 때 신유도 행하십니까. “저는 기도만 해요. 교인들의 생활에 집중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강조합니다.” ―기억에 남는 집회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대전에서 1979년도 열린 충북 체육관 집회일 겁니다. 그 집회가 컸어요. 당시 한 3만 명 모였어요. 그 때도 내 나이가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인데 말입니다. 사실 난 유신 반대도 해서 끌려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 이적이 많이 일어났어요.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불치병 걸린 사람들도 낫고 그랬어요. 이런 이적이 일어나니까 결신자가 수천 명이나 됐어요. 참 대단했어요. 3박 4일의 연합집회인데 내가 주최를 했어요. 충북 체육관 짓고 얼마 안되었을 때인데 꽉 차고 밖에까지 사람들이 줄 서 있었어요. 그때는 뜨거운 때라 그런 집회가 가능했어요.” ―지금하고는 어떻습니까. “많이 다르죠. 옛날에는 강단에 서면 교인들이 은혜를 받으려고 눈들이 빛났어요. 그러나 지금은 은혜보다는 이벤트성이 강해요. 은혜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구경을 하는 자세들이죠. 지금은 믿음이 걱정스러운 지경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믿음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말세 현상인 것 같아요. 돌리기 힘들 것 같아요. 목회자들이 그렇게 가요. 교역자들 스스로가 교인들 영혼이 아니라 신앙이 아니라 수평 이동을 위해 믿음이 아니라 영웅심으로 목회들을 하는 것 같아요. 숫자 확보나 큰 교회 만들면 된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교인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우리 정신하고는 안 맞아요. 내가 얘기해 봤자 나만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해도 듣지를 않아요. 저마다 잘 났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말세에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했기 때문에 그냥 말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같이 안 가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지 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나이도 70이 가까워지니까 말은 바르게 합니다.” ―유신도 반대하셨는데 요즘 정치는 어떻게 보십니까. “나쁘죠. 세월호에 무슨 법이 필요해요. 애도해야죠. 정치인들도 보면 애국심이 없어요. 너도나도 무료를 부르짖는데 나라 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국민들 인기몰이 해 표나 끌어 모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참 걱정스럽습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 했습니다만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제시장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 세워진 나라인데 정치인들이 표나 얻으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농촌도 잘 사는데 저마다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으려고 야단들이에요.” ―교회 분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단이 문제입니다. 또 목회자도 문제가 있고요. 참 목자라고 밥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삯꾼이라고 해서 밥 안 먹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정신이 사라지다보니 자기 것을 챙기려는 성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럼 흠점을 이단이 파고 들어오고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총회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평동노회 총대 30년입니다. 연속으로 총대 30년 한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총대 30년 하셨으면 정치 안 하시고는 안 될텐데요. “사실 내막이야 다 알죠. 다 보면 총회 돈 눈먼 돈이라고 다 먹지만 다 그 대가를 치르더라고요. 총회를 악용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교회 후계자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예정과 뜻을 믿기 때문에 다른 교단들처럼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습이라는 말 자체를 성경적이지 못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말은 왕조나 독재 정권에서나 쓸 수 있는 용어라고 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이고 노예인데 무슨 세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과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많이 보게 돼요.” ―이제까지의 삶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강북에 있었다는 겁니다. 올해가 우리 교회로서는 40주년이라 그간 주변을 사들이긴 했어도 워낙 이 지역이 땅이 없어요. 이 지역은 가난한 곳이에요. 그냥 먹고사는 사람들은 많아도 사업가는 그닥 없어요. 빈촌은 아니면서 모험을 하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들로 주종을 이루고 있죠. 그래서 사실 내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되는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늘 빚이 있습니다. 1월 한 달 바치는 헌금이 한 삼천 됩니다. 감당할 수 있다니 감사할 뿐이죠. 1975년도에 강남으로 나갔어야 했어요. 김선도 목사 같은 이는 여기 있다 그리로 갔어요. 내가 어리다보니까 그런 상황 판단이 덜 됐어요. 내가 스케일이 너무 작았어요. 여기 산도 좋아 기도하기 좋다고 눌러 앉았죠.” ―이제 후배 목사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목회라는 것은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이나 진실인 것 같아요. 재능이 좀 부족해도 진실하게 말씀을 전하고 진실하게 기도하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목회하면 목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목회를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같은 설교를 해도 진실하게 기도하고 전하면 은혜가 있는데 유행어를 외위 웃기고 인터넷을 이용해 지식을 내보여도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니까 은혜가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문명의 이기나 내 재주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2015-02-08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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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8
  • 바이러스와의 동침
    미모의 여인 로라(줄리아 로버츠)는 부자에다 미남인 남편 마틴(패트릭 버긴)이 극도의 결벽증에다 심한 의처증까지 있는지 모르고 결혼한다. 하지만 곧 본성을 드러내는 마탄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구타를 당한다. 어느날 로라는 마틴을 속이고 수영을 배우러 다닌다. 그러다 남편과 이웃집 의사의 요트를 타고 밤에 바다로 나가게 되는데, 풍랑을 만나 로라가 실종된다. 남편 마틴은 로라가 익사한 것으로 단정하고 장례까지 치른다. 그러나 로라는 헤엄을 쳐서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소지품을 챙긴 뒤 결혼 반지를 변기에 버리고 도망친다. 얼마 뒤 마틴은 로라가 수영을 배우러 다닌 것을 알게 되고 급기야 변기에서 반지도 발견한다. 이에 그는 로라의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을 단서로 추적을 시작한다. 한편 로라는 낮선 지방에서 이름을 사라로 바꾸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그곳 대학 연극 교수 벤(케빈 앤더슨 분)을 알게 되고 곧 그의 사랑을 받게 된다. 두 사람의 행복한 나날은 로라가 어머니를 찾아가면서 종말을 예고한다. 그동안 로라 어머니 주변의 간호원들을 포섭해 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마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를 마치고 로라는 기쁘게 벤에게 돌아가지만 그후 어머니를 공갈로 협박한 마틴은 그녀의 거처를 알게 되고 주변을 탐색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로라는 집안의 이상한 분위기에 긴장한다. 헝클어 놓았던 욕조의 수건과 선반의 통조림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건은 전남편 마틴의 병적인 결벽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심히 누른 오디오에서는 마틴이 그녀와 잠자리에 들 때면 틀던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로라는 울음을 터뜨리고 절망적인 울음 속에 마틴은 음흉한 모습을 더러낸다. 이때 벤이 찾아와 마틴과 결투 끝에 의식을 잃고 만다. 벼랑 끝에 선 로라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결심하고 총을 들어 마틴의 가슴을 겨냥한다. 로라는 자신을 절대 쏘지 못하리라고 믿는 마틴이 그녀앞으로 점점 다가서지만 로라는 자신이 침입자를 죽였노라고 전화로 경찰에 통고하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만일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지난해 미국 미생물학 아카데미 컬로퀴엄에서 논의된 주제다. 결론은? “생명체가 전혀 없을 것” “지표면을 몇㎞ 두께로 덮고 있는 미생물 더께만 남았을 것” 등등 다양하다. 모든 주장의 공통점은 우리가 아는 형태의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전쟁·기아·세균 못지않게 인류를 괴롭혀 왔다. 1918~19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스페인 독감’은 2500만~5000만 명을 희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약 14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무오년(戊午年) 독감’ 사태라 불리는 일이다. 인류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바이러스의 번식에 맞서왔지만 박멸시킨 것은 천연두 바이러스뿐이다. 몸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버티고,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니 ‘정복’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와 고등 생명체의 공생, 끔찍한 숙명이다. 바닷물 한 움큼에는 약 1000만 개의 바이러스와 100만 마리의 미생물이 들어 있다. 지구 전체로 볼 때 바이러스 숫자는 세포를 지닌 생물의 10배가 훨씬 넘는다. 게다가 생명체가 서식하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강산성의 온천에서 남극의 빙하, 강알칼리성의 염수… 모든 생물은 그와 공생하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러스란 핵산, 즉 유전정보를 단백질 껍질로 감싼 분자를 말한다. 스스로 물질대사나 자기복제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생명체와 다르다.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 세포에 삽입해 복제공장 역할을 하게 만든다. 크기는 20만 개를 쌓아도 1㎜가 안 될 정도다. 역할은? 자신이 감염시킨 미생물을 죽이고 터뜨림으로써 바다의 영양 성분이 재순환되게 만든다. 또한 숙주에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능으로 생명체의 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미생물 화석은 30억 년 전의 것이 있지만 바이러스의 화석은 발견된 일이 전혀 없다. 에볼라(Ebola)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촌이 난리다.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는 “6주 안에 막지 못하면 발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대체 에볼라가 뭐길래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파스퇴르 이후 모든 병은 바이러스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무조건 바이러스 죽이는 방법만 연구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인간과 상생 내지는 동침해 왔다. 모든 생명체가 다 함께 살아온 거다. 그런데 인간이 세균은 무조건 죽여야한다고 하니까 세균이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을 하는 거다. 다시 말해서 문명이 가져온 해악이랄까. 인간이 먼저 바이러스를 적으로 돌려놓고 공생할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몇 천 년을 같이 살던 바이러스가 신종이나 변종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전염병은 인간과 인간의 접촉에서 나온다. 우리가 혼자 사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그런데도 타자의 슬픔이나 가난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의미에 대해 10분만 검색하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벼랑 끝에 선 로라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결심하고 총을 들어 마틴의 가슴을 겨냥한다. 로라는 자신을 절대 쏘지 못하리라고 믿는 마틴이 그녀 앞으로 점점 다가서지만 로라는 자신이 침입자를 죽였노라고 전화로 경찰에 통고하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가 바이러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불가능한 것 같지만 뜻이 있으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파리대학병원 심장전문의 프레데리크 살드만(Saldmann·61)은 프랑스 국민이 다 아는 스타급 의사다. '손만 잘 씻어도 질병에 걸릴 확률을 40%까지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손을 씻자'라는 책으로 2000년대 중반 전세계에 손 씻기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즉 손만 잘 씻어도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의 공격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위생 역시 손 씻기 습관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와 동침은 하더라도 손만이라도 씻어 손의 바이러스 정도는 털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9~10 2015-02-05
    • G.QT
    2015-02-05
  • 건강 염려(念慮)도 습관
    유월절을 앞두고 한 사람이 랍비에게 와서 말했다. “랍비님, 저는 너무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없는 것이 많아 골머리가 아픕니다. 못 살겠습니다.”랍비는 무슨 근심이냐고 물었다. 그는 유월절이 다가오는데 무교병 살 돈도 없고 포도주 자기 옷 아내 옷 자녀 옷은 물론 고기도 살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랍비는 물었다. “무교병은 얼마요?” “5000원입니다.” “포도주는?” “1만원이요.” “자네 옷은?” “5만원이요.” “아내 옷은?” “10만원이요.” “자녀 옷은?” “3만원이요.” “유월절 고기값은?” “2만원이요.”이 말을 들고 랍비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자네는 돌아가서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말고 한 가지 걱정만 하게. 21만5000원 걱정 하나만 하게. 그리고 하나님께 한 가지만 기도하게. 21만5000원을 달라고 말이야.” 당신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갔나. 염려는 할수록 더 깊어지는 감정이다. 영단어 'worry(염려)'를 붙잡고 뿌리를 캐면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라는 뜻이 나온다. 근심은 이렇게 역사가 길고 치명적이다. 마음을 '졸이고' 속을 '태운다'는 우리말도 있다. 염려는 몸 안에서 번지는 불길을 닮았다. 밖에서 난 화재라면 소화기로 끄겠지만 안에서 쥐고 흔드니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 최대 위험으로 지목한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도 에이즈(AIDS)도 아니고 직업 스트레스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울산대 교수가 쓴 '걱정도 습관이다'는 염려를 달고 살던 사람에게 '멘탈 갑(甲)'으로 거듭나는 법을 일러준다. 독일 저널리스트 크리스티나 베른트의 '번아웃(burnout)'은 우울한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번아웃은 타서 죄다 없어지거나, (심신의) 소모,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신경의 쇠약 등을 의미한다. ◇염려의 뿌리를 찾아라 염려는 몰두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일을 맡기곤 끝없이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심이 들어 확인하려는 심리는 가려울 때 긁는 행동과 같다". 당장은 가려움이 잦아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가려워진다. 염려를 사서 하는 셈이다. 닦달하는 상사는 부하직원 입장에선 스트레스 덩어리다. '염려도 습관이다'는 의심 아래 놓은 '뿌리 감정'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은 나무로 치면 가지나 잎과 같다. 뿌리에 병이 깊으면 아무리 예쁘게 가지를 치고 잎에 물을 줘도 소용없는 짓이다. 인간의 마음은 ①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②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 ③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부분 ④나도 남도 모르는 부분 등 네 가지로 나뉜다.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치부를 감추려고만 하고 남은 알지만 나만 모르는 단점을 계속 부정하면 인생이 꼬인다. 반면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을 말하고 나는 몰라도 남은 아는 부분을 받아들일 때 사람은 성숙해진다. ◇번아웃을 막으려면 '번아웃'(Burnout)은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간호사처럼 남을 돌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 탈진 증상이 발견됐다.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다 피로와 압박감이 지나쳐 무기력해지고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이 번아웃 증후군은 이제 모든 직업군에서 나타난다. 스트레스와 염려가 쌓이면 마음은 저 성냥개비처럼 타들어간다. 무력해지고 일에 냉소적인‘번아웃’상태에 빠질 수 있다. 다 타버린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요청과 같다. 그런데 큰 스트레스와 역경에 무너지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번아웃'은 그런 회복탄력성의 비밀을 들여다 본 책이다. 칼륨액을 항생제로 알고 주사한 의료 사고로 세 살 난 아들을 잃은 엄마는 "누구나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병원과의 긴 소송 끝에 이겨서 받은 보상금을 그 병원에 기부했다. "어떤 불행을 겪든 자신에게 시련을 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는 게 중요하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견고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도 때로는 힘겨워하고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시작할 힘을 낸다. 회복탄력성도 학습할 수 있다고 베른트는 말한다. 베른트는 "적당한 스트레스는 예방주사처럼 좌절을 막아준다"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과 긴장이 풀린 편한 시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요구된다"고 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긋고 거절하는 연습,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스위치 OFF 개인이 더 많은 자유와 결정권을 쥔 시대는 바꿔 말해 개인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스트레스와 염려가 쌓여간다. 번아웃은 연료 부족을 경고하는 계기판을 무시하고 달리다 멈춰선 자동차와 같다. 우리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는 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인생을 대부분 통제할 수 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고 넘치는 생각들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나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몽롱하게 살아간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말로 자기가 처한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메일과 스마트폰 때문에 노동과 휴식의 경계도 흐려졌다. 몰두하거나 긴장하지 않는 '오프라인 상태'가 하루 중 얼마나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과할 땐 마음의 스위치를 'OFF'로 바꾸자. 이쪽 불을 꺼야 저쪽이 환해진다. 성경은 말씀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24-34 2015-01-14
    • G.QT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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