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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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라는 이름 짐꾼이라는 뜻
50년 전 머리 짧은 신학생
허위의 짐을 짊어진 채
 
어디로 라고 묻지 않고
칼빈의 개혁신학 어기는
시단의 종이라는 뜻일 수도
 
이제 총회와 총신
‘칼빈의 개혁신학’이 움직이는
집단이 되어야 할 것
 
그런데 제102회 총회 임원회
총회 목적기금 120억 상당
재판 비용으로 총회실행위원회 결의
 
이제 총회는 총회 목적헌금으로
성경적 신앙과 개혁신학 없는
‘세속 변호사가 움직이는’ 사유화
 
정치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폴리티카’(politika)에 따르면 정치는 도시(polis) 또는 국가 운영을 다루는 방법이다. 독일의 막스 베버도 비슷하게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활동을 '정치'라고 정의했다.
 
결국 정치란 물리력을 독점한 행정 또는 입법부가 공동체 자원을 배분하는 기술적 절차이겠다.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일까.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플라톤은 목적론적인 정치를 제시했다.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정치의 목적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의 사회철학자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년 7월 19일~1979년 7월 29일)가  지적했듯 플라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왕은 왕답게 노예는 노예답게 각자 타고난 운명에 충실한 계급 사회였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지만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정치의 의미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를 질서정연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플라톤의 정치는 멋지고 웅장하다. 하지만 정치가 종교가 되는 순간 상대방 경쟁자는 전멸시켜야 하는 종교적 이단이 되어버린다. 플라톤 정치가 이상적인 의도를 숭배하는 종교적 정치와 같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는 상대적으로 유치하다. 그저 개개인이 더 자유롭고 더 잘살기를 바랄 뿐이니 말이다. 멋진 의도를 가졌지만 언제나 가난과 독재로 끝나는 플라톤의 정치. 반대로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결과에 집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결과와 의도,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총회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춘 사람은 목사와 장로들이 꿈꾸는 미래와 부합하는 모습으로 총회를 이끌어 갈 신학과 신념을 소유한 자다. 즉 미래의 목사와 장로 각 사람의 삶과 우리가 살아갈 한국 교회 전체의 모습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을 획득해 돈 버는 것이 정치의 전부인 사람은 필요하다면 신학과 신념을 팽개치기도 한다. 믿지 못할 총회 정치인이다. 권력만 추구하는 자가 옳지 않은 신념으로 잘못된 곳으로 총회를 이끌어 가면 더 큰 낭패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꾼은 허공(許公)처럼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당면한 위험을 피하려는 우유부단한 군주는 중립노선을 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개 파멸에 이른다。운이 좋아서 지도자가 된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작금의 제102회 총회 임원회는 마치 로마 공화국의 정치가, 장군, 작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 7월 12일 ~ 기원전 44년 3월 15일)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며 외친 말을 실행하는 것 같은 모습을 2018년 1월 4일 제2차 실행위원회에서 보여주었다. 한강 상류로 올라가면 개울이 흐르듯 카이사르가 건넌 루비콘 강도 어느 지점이 개울처럼 흐르는 곳을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건넌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상이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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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4일 제2차 총회실행위원회 석상에서 김종필에게서 정치를 배웠다는 전계현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증경총회장님 말씀하시니까 생각이 나네요. 여러분 사유화라는 말에 개념 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총회의 제도를 벗어나서 다른 집단이 움직이면 사유화입니다. 개인이 재산등록해서 사유화가 아니라는 개념을 좀 정리하십사 해서 말씀드립니다.”
 
권력에의 의지와 금권(金權)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총회 정치의 전부일까. 미국의 정치학자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 했다. 공권력을 기반으로 정부정책을 결정하고 국가경제를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 국정관리가 정치라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는 총신 지도자는 오랜 총신관리의 경험과 깊은 경륜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 헌법학의 대가이자 나치 당원이었던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그렇기에 '정치 신학'이라는 책에서 모든 정치는 결국 종교라고까지 주장했다. 하나님을 통한 존재적 구원을 약속하는 칼빈의 개혁신학과 같이 합동 교단 총회 정치는 총회와 총신을 중심한 현실에서의 조정과 해결을 노력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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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실행위원회에서 젊은 박창식 목사가 발언했다.
 
“대구노회 박창식 목사입니다. 저는 평범한 총대로서 오늘 우리 총회 지도위원들 처리방식들이 참 못 마땅합니다. 오늘 이 장소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배운 교훈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여기에서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또 교수 징계하고 학생들 가운데서 그러면 소위 총신 측 김영우 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저는 총회 측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입니다만 우리 운영이사장님에게 묻습니다. 교수진들과 학생 진영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김영우 측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분열로 가자는 결의입니다. 신학교의 분열은 교단의 분열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징계하고 하는 것 적극적으로 백 프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징계가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르신들 말씀하시는 거 가만히 들어보니까 총신은 물 건너갔다. 그러면 총신 그냥 내버려 두실 겁니까. 오늘 이런 논의해서 안 되고 총신을 다시 어떻게 끌어오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 논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학생 한 사람이라도 교수 한 사람이라도 김영우 측을 지지하면 학교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정당성을 오늘 결정해서 주는 겁니다. 왜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징계하고 쫓아내는 거요 한 달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보다 더 근본적인 논쟁은 백년의 총신을 우리가 정관 넘어갔으니까 그냥 두면 된다 증경총회장님들 왜 그렇게 발언하십니까. 그거 안 됩니다. 저는 피를 토하고 싶습니다. (김희태 목사 제지한다) 가만 계셔보세요. 저는 누구 측도 지지하지 않고요. 저는 적극적으로 총회를 지지하는 측입니다. 총신을 이렇게 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김화경 ‘제 정신이 아니구만’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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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주변에 마이크를 놓고 소동이 일었다. 총회장 ‘마이크 끄세요.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김희태 목사 ‘그래 김영우 총장 징계했어요...’ 계속 말했다. 총회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찬송했다. 장내가 좀 조용해졌다. 총회장이 말했다.
 
“여러분 조심하세요. 여러분 다 총신 사랑하고 교단을 사랑하고 그래서 얘기하는 건데 무슨 적군 아군 싸우듯이 그러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총회가 이 수준밖에 안 됩니까. 제가 총회장 될 때 어떤 언론기자한테 들었습니다. ‘총회장님 합동 측이 제일 시끄러워요.’ 다른 교단을 전부 취재를 하러 다녀보면 합동 측이 제일 시끄럽대요. 아들 같은 기자한테 그 얘기 듣는데 염치가 없더라고요. 좀 조심합시다. 김희태 목사 얘기하세요. (계속 김희태 목사에게 발언시킨다고 위원들 항의했다) 발언권을 주는 것은 총회장의 권한입니다. 왜 주냐면 김희태 목사님이 지금 반론을 하고 얘기를 하는 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언권 주는 것이지 나는 김희태 목사님하고 지금까지 악수도 안 했어요.”
 
발언하던 박창식 목사 들어가고 김희태 목사 말을 이었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이론이 화해하자는 겁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화해를 시도하고 포옹하고 악수한 결과가 오늘입니다.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오늘까지 안 왔어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게 하나밖에 없다니까요. 그 사람들이 목사이지만 양심은 기대를 못 해요. 그래도 담임목사이면 당회장권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어요. 그걸 가지고 총회가 한번 해보겠다는 겁니다. 지금 무슨 좋은 안건 있어요.” 
 
박창식 목사가 말을 받았다.
 
“좋은 안 없습니다. 화해를 조장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느 측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양분 된 상황 속에서 어떤 한 편에 대한 감정적인 결정을 하면 신학교의 분열과 함께 교단 분열이 온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학생이나 교수가 양 쪽으로 나뉘어 있을 때 우리 총회실행위원들은 여기서 정말 정중동(靜中動)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피아를 구분하고 너무 이렇게 나가면 결국 어떻게 할 겁니까. 총신 백 년 역사를 그냥 버려두고 지금처럼 하고 말겁니까. 운영이사장님 정말 그렇게 하면 역사의 죄인 됩니다.” (소란이 일었다. 총회장이 제지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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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릴 게요. 아마 가만히 앉아 계시는 분들이 전국 교회에서 지켜보시는 분들이 말할 겁니다. 총회장 뭐 하는 거냐. 총회 때 쇼도 잘 하더만. 뭐 하는 거냐. 임원들은 뭐 하는 거냐. 지금 긴급하게 돌아가고 법적인 대책 강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실행위원들이 노회를 대표해서 오셨는데 총회 임원 아무것도 안 하고 총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걸로 생각하니까 최소한의 발표만 하는 겁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도 할 게 많지만 발표를 해 놓으면 금방 전국에 퍼지고 이사람 저사람 뒤에서 말하니까 조심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에서 왔지만 활동은 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해서 했다. 그는 목자와 농부였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목가적인 비유들이 많다. 아모스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했다. 아모스의 예언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본거지 벧엘에서 주로 선포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겉치레나 망설임이 결코 없었다
 
황혼이다. 그리고 102년이 지난 총회에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총신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위 총신 본관에서 머리 짧은 신학생이 문을 밀고 나와 운동장을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그 신학생은 한동안 하늘을 본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황혼은 아래로 내려오고 바람은 건물 하나뿐인 꼿꼿한 총신 뒤편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다가온다. 총신과 머리 짧은 신학생은 움직이고 황혼은 흘러 50년 세월을 먹었다.
 
우리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디엔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을 뿐이다.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내린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아모스는 이 머리 짧은 신학생 같은 사람이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꾼’이라는 뜻이다. 50년 전 이 머리 짧은 신학생이 주의 말씀의 짐을 짊어진 채 어디로 라고 묻지 않고 묵묵히 칼빈의 개혁신학을 나르는 주의 종이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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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총회장 전계헌의 “총회의 제도를 벗어나서 다른 집단이 움직이면 사유화”라는 말처럼 이제 총회와 총신은 ‘칼빈의 개혁신학’이 움직이는 집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102회 총회 임원회는 개혁신학을 외치는 총신 상대 전국기도회와 금식기도회도 가지고 총회가 가진 행정조치도 다 취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총신 상대 소송비가 얼마나 들기에 총회 목적기금 120억 상당의 돈도 재판 비용에 충당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총회실행위원회 결의까지 받았다. 실행위원 가운데는 ‘다 쓰라’는 덕담까지 건넸다. 그러면 이제 총회는 총회 목적헌금으로 성경적 신앙과 개혁신학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속 변호사가 움직이는’ 사유화를 할 셈인가. WCC 문제로 1959년 통합 측과 분열까지 했던 총회 정치가 이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가 아니면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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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희태와 박창식 목사 총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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