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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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회 총회 호남인 당선자 감사예배
    2015년 10월 7일 오전 11시 장충동 앰배서더 호텔에서 제100회 총회 호남인 당선자 축하 감사예배(협력 재경호남협의회, 호남협의회)를 주관 전국호남협의회 회장 백남선 목사(제99회 총회장)의 사회로 드렸다. 치열한 경선 끝에 서홍종 목사의 동생이고 군목부장으로 당선된 서만종 목사(광주단비교회)의 누가복음 13:31-33 봉독 후 호남의 대들보 정용환 목사(시온성교회)가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에 마이크를 들고 9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 100회 총회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정통 보수 개혁주의입니다. 언제나 바른 자세를 가지고 또한 보수 신앙을 지키고 또한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 정말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오늘 참석한 당선자 여러분이 총희의 지도자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헤롯이 주님을 죽이려 합니다. 헤롯이 얼마나 간사했으면 우리 주님은 그를 여우라 말하십니다. 정말 간사한 잡식 동물이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주님은 헤롯에게 여우에게 말하라 그리고 나는 내 갈 길을 가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포에서 해군 군목으로 2년을 지내고 33년을 살고 있습니다. 유달산에 제 집이 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유달산에 올라갑니다. 거기에 라이온스 창립자의 비(碑)가 서 있습니다. 그 비에 ‘사자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새겨 있습니다. 저는 늘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사자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적어도 리더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임원을 당선되고 상비부장들로 뽑히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일하시면서 어떤 경우라도 돈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탁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리더가 아무리 잘 해도 돈 잡수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그것만 피하면 여러분은 성공자가 되실 것입니다… 저는 총신대, 총신대학원을 다니며 부교역자 생활도 한 교회에서 보낸 뒤 지금까지 시무교회도 시온성교회 한 교회만 31년 섬기고 있습니다. 식당도 한 군데만 다니고 이발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도 딱 한번 보고 결혼했습니다. 제가 총회를 22년 이상 출입하면서 총회, GMS, 그리고 기독신문과 광주신학교와 총신까지 두루 일을 했습니다. 특별히 재판국장을 하고 끝난 뒤 기독신문 1면에 정용환 목사 역대 재판국장 가운데 돈과 청탁에 휘둘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대서특필(大書特筆) 되었습니다… 우리 목사가 제일 시험에 들기 쉬운 것이 돈입니다. 돈 깨끗하면 다 깨끗합니다… 돈 문제 깨끗하지 않으면 리더 자격이 없습니다. 이번에 임원 되신 분들과 상비부장들 다른 건 몰라도 돈 문제 깨끗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청탁과 돈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부총회장과 상비부장들 여러분 까닭에 총회와 우리 호남의 위상이 올라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본회 총무 유태영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제2부 격려 및 축하의 순서에서 여러 격려사 가운데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는 다른 곳의 순서 청탁이 있었지만 호남인이 모이는 곳이 제일 중요해서 참석했다는 말로 격려사를 갈음했다. 또 제99회 부총회장 이호영 장로는 영남인으로서 호남인의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며 축사를 전했다. 이날 참석한 당선인들은 다음과 같다. 장로부총회장 신신우 장로 부서기 서현수 목사 부회계 양성수 장로 정치부장 이길우 목사 공천부장 라상기 목사 고시부장 이상돈 목사 전도부장 김명남 목사 재정부장 서병호 장로 헌의부장 송정현 장로 신학부장 김문갑 목사 노회록검사부 정희웅 장로 사회부장 심완구 장로 면려부장 최규환 장로 농어촌부장 최동식 목사 군목부장 서만종 목사 전국주일학교연합회회장 성요찬 장로 2015-10-08
    • G.NEWS
    • G.NEWS
    2015-10-08
  • GMS 속회 총회를 마치고...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힘의 논리에 눌려 지동설을 부정할 것을 맹세하고 풀려난다. 그리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2015년 10월 29일 GMS 속회 총회에서 본부 총무가 당선되었다. 필자는 GMS 회의장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법으로는 안 맞는데...” 법으로 맞지 않는 이유는 그 동안 00커스와 00헤럴드에 필자가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금번에도 본부총무가 당선되는 데는 많은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것 같다. ①총회 기간 중 후보자는 필자가 선관위원인 것을 알았는지 찾아와 총회 어른 이름을 대면서 자신보고 본부총무에 출마하라고 하여 임원직을 사표내고 출마하려고 하니 도와 달라고 하였다. 소위 말하면 공천(?)을 받은 셈이다. 힘을 받고 있었던 후보임이 틀림없다. ②중립을 지켜야 할 GMS 임원 네 분과 선관위원 한 분이 추천을 해 준 점이다. ③선관위원을 보충하는데 정식 임원회도 거치지 않고 제척 사유가 되는 본부총무 후보자가 소속된 노회의 노회원을 보충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그 위원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다. ④현직 임원이 정회 기간 중 사표를 내고 출마하였으니 상당한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언론의 힘도 한 몫 하였다. 언론은 무명으로 난타하는 글을 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모 언론이 ‘무명의 GMS 이사’가 필자에 대하여 난타하는 글을 실어 주었다. 그곳에 보면 “총회헌법의 신성한 조항을 뜯어내어...” 라는 표현이 나온다. 신성이란 네이버 국어사전에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이라고 하였다. 헤겔사전에 보면 ‘신성이라는 말은 계몽과 이신론에 의해 '신'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총회헌법을 하나님의 자리까지 갖다놓고 대든 그 분의 신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분명 잘못된 논리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기관목사는 노회의 허락을 받도록 되어 있으니 소속 노회가 노회를 열어 허락을 해 주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 출마하는 것이 옳다. 이제는 탈법까지 가르쳐 줘야 할 형편이다. 우선 본부총무 서리로 근무하게 하고 노회 허락 후 서리를 떼면 될 것 같다. 우리 총회 안에 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노회장 추천서를 노회 결의 없이 개인이 노회 서기 찾아가서 떼는 추천서가 어디 있는가? 목사후보생 신학입학고시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강도사고시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임원출마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총회 총무 출마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등등 모두 노회 결의를 통하여 떼는 추천서다. 제92회 총회에서는 부목사를 계속 청빙하기 위하여 노회에 제출하는 당회장 추천서를 당회장 혼자 떼 줘서는 안 되고 당회 결의를 하고 추천서를 떼 주는 것이 합법이라고 결의하였다. 당회도 그런데 하물며 노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십분 이해하여 노회 기간이 아닐 때는 자신 한 사람을 인하여 노회를 열어 추천서를 떼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금번 경우는 가을 정기노회가 열린 후에 입후보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음에도 노회에 청원하지 않은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것들이 용납된 것이 힘의 논리이다. 사실 금번 속회 총회에 임하면서 필자는 고심을 많이 하였다. 필자가 주장하는 법 논리는 맞는데.. 선관위와 맞서고 GMS 총회에 필자의 법 논리를 피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필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사분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위임장을 가지고 참석한 대리 참석자는 ‘담임목사의 위임장으로 선거권을 부여합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대리 참석자들에겐 선거권 외에 다른 권한은 없다. 정식 이사들에 의해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경우 후보자의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다. 또한 그 수가 많든 적든 법 발언은 항상 우선권을 가진다. 하지만 때론 법 보다는 화합이 중요할 때가 있다. 더욱 GMS에서는 선교라는 중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말이다. 그러나 좀더 솔직한 것이 마음을 감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진다. 사실 투표를 통하여 법을 안 지키고 밀어붙이려고 하는 힘의 논리가 패하기를 바랐다. 법에 맞는 후보가 당선되면 모든 것은 정리되기 때문이다. 나타난 결과는 필자나 같은 주장을 하는 이사들이 법을 어기는 힘의 논리에 편승한 꼴이 되고 만 것이 착잡할 뿐이다. 아무튼 본부총무 당선을 축하한다. 그러나 게임에서 승리하였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3년 동안 본부총무 역할을 기대해 본다. GMS 의 앞날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김종희목사(성민교회.남부산남노회 증경노회장)
    • G.OPINION
    2015-10-04
  • 총회의 실세와 허세
    절기상 추분(秋分)인 9월 23일, 강원도 설악산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강원지방기상청은 설악산 단풍이 예년보다 사나흘 빨라져 10월 18일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보했다. 가을이 깊어지며 밤과 새벽으로 풀벌레들 울음소리가 드높다. 풀벌레들은 한 줌 차가운 공기를 흔들며 지르르 지르르 운다. 풀벌레의 슬픈 언어이자 존재의 파열음이 가을밤의 허공에 구멍을 낸다. 일찍 잠 깨인 새벽 수락산 기슭 숲에서 내지르는 풀벌레의 울음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그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는 새벽기도처럼 창조주를 향해 제 존재를 알리고 찬양하는 수단이다. 오, 말을 갖지 못한 열등한 형제들이여, 우리 총회를 위해 밤새도록 울어라! 하나님께서 그 소리들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울부짖은 애원처럼 들으며 밤을 새우실 것이니.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파산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 하지만 벌레가 돼 생활비를 벌 수 없게 되자 직장과 사회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마저 외면당한다. 카프카는 이를 통해 삶과 존재의 의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단지 한 마리 벌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문득 벌레로 변신해 있더라는 '변신'의 괴기한 설정은 묘하게도 우리의 총회 정치 속에서 매몰되고 있는 우리의 믿음과 삶이 괴리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채플린이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그렇듯 100회를 지나 200회를 향한 행보를 시작한 우리 총회의 여러 현안들을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티든 납골당이든 총신이든 미자립 교회든 교회와 노회 분쟁이든 가까이서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푸 하하 하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희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제100회 총회는 총회장 박무용 목사의 신중한 지도력으로 선거제도, 아이티, 납골당, 총신대학교 정관 개정 등 총회의 해묵은 문제들을 마무리했거나 새로운 실마리의 매듭을 잡은 것 같다. 공회 앞에서 돈 좋아한다고 스스로 밝힌 허활민 목사도 은급재단 가입 교역자들의 피땀 흘린 돈이기 때문에 꿀꺽할 수 없어 총회 금고에 보관했다가 총회 현장에서 5만 원 권 돈 뭉치를 흔든다고 했다. 그런 은급재단 가입 교역자의 피땀 흘린 돈으로 변호사에게 허 목사가 흔든 몇 배의 상당한 수임료(소문에 억대)를 치룬 납골당에 대한 가처분 인용이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은급재단의 이사였던 사람은 총회 실무자를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로 고소를 해 두 사람은 검찰에 10월 2일 오후 2시 출두했다. 총신 문제는 몇 차례의 사퇴 발언 끝에 결국 사퇴한 길자연 총장의 잔여 임기 2년 4개월을 생각지 않게 물려받은 김영우 목사가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제99회에 이어 제100회의 여전한 실세로 알려진 허활민 목사와의 원만한 타협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즉 김영우 목사의 전임 길자연 총장의 잔여임기는 보장하되 재단이사회의 구성은 전임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현 총회장 박무용 목사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그의 날카로운 면모대로 오랜 세월 갈고닦은 총회 정치의 올곧은 연륜과 지혜가 돋보인다. 백남선 목사는 제99회 총회 내내 그리고 제100회 총회 벽두의 실세는 소문에 따른 허활민 목사가 아니라 바로 그였다. 그리고 허활민 목사는 소문과 달리 실세(實勢)가 아니라 허세(虛勢보다 許勢)였다. 추분 무렵부터 햇볕은 내려 쪼이나 작열하지는 않아 뜨겁지 않고 따라서 더 이상 늦더위도 없다. 이때의 햇볕은 따갑지만 살갗을 태우지는 않는다.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는 속담은 이때의 뜨겁지 않은 따라서 피부를 그을리지 않는 부드러운 햇볕을 두고 한 말이다. 이때 들녘에서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볕으로 벼뿐만 아니라 수수, 조 등의 볏과 곡식들이 여물어 고개를 숙이게 되는데 더 잘 여물수록 고개를 더 숙이게 되므로 그 모습이 성숙한 인간의 겸손한 자세로 비유되는 까닭이다. 고추밭에서는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과수원에서는 과일들이 단맛을 더해간다. 이때 한반도에는 높푸른 하늘과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성한 들판으로 수놓아진 전형적인 가을 풍광이 펼쳐진다. 추분 무렵에 대지는 자연의 선물과 인간의 노력의 산물로 가득 차고, 그것들의 수확이 가능해져 농촌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풍성해진다. 서양에서는 추분이 있는 9월을 “포도의 달”(the Wine Moon)로 불렀는데 이때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기 때문이다. 추분은 작물의 수확이 시작되어 풍요로워지고 따라서 그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서고금에 추분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수확에 대하여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있는 때이기도 하다. 이 감사의 계절 우리 모두 총회의 실세와 허세를 잘 가려 총회와 그 산하 교회들이 축복받는 추수감사절을 즐겁게 맞이하도록 하자. 201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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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3
  • 제100회 총회의 낭패(狼狽)
    1912년 9월 1일 오전 평양의 가을 하늘도 103년이 지난 2015년 9월 14일의 대구처럼 눈부시게 맑고 푸르렀다. 평양신학교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경기충청 남평안 북평안 황해 전라 경상 함경 등 전국 7개 노회에서 모여든 총대들이 삼삼오오 입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구식 양복을 입고 있는 선교사들 사이로 두루마기 한복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총대들이 있었다. 대개는 기차를 타고 왔지만 말을 타고 오거나 3~5일 동안을 걸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총대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 강변에서 순교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지 46년 만에 드디어 조선 총회가 조직된다는 감격과 함께 2년 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侵奪)한 울분과 비분강개가 서려 있었다. 1912년 9월 1일 오전 10시 30분 평양신학교 강당에 목사 96명(외국목사 44인, 조선목사 52인) 장로 125명 등 총 221명이 모였다.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이눌서(李訥瑞, W. D. Reynolds) 목사가 10시 30분이 되자 강대상 위로 등단했다. 굵은 금테 안경 너머로 회중을 내려다보던 이눌서 목사는 천천히 또박또박 조선말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목사님 장로님 여러분, 오늘은 매우 기쁜 날입니다. 드디어 조선 반도를 단일 교구로 장로교 총회가 조직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을 선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전 총대가 일제히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경성신보와 대한예수교회보의 기자가 사진기(寫眞機) 플래시를 터뜨렸다. 9월 2일 둘째 날 회중이 투표로 임원 선거한 결과 총회장에 원두우(元杜尤, H. G. Underwood) 목사, 부총회장에 길선주 목사, 서기 한석진, 부서기 김필수, 회계 방위량(方緯良, W. N. Blair), 부회계 김석창을 선임하면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창립했다. 이때의 추석은 1912년 9월 25일(수)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제1회 총회를 개회하면서 103년 뒤(1943년에서 1945년까지 한국동란으로 3년간 총회를 열지 못했다)의 대구 반야월교회당에서 열린 제100회 총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이나 했을까. 이번 총회에는 전체 148개 노회 가운데 1529명(목사 766명, 장로 763명)의 총대가 참석해서 회무를 진행했다. 중국 전설에 낭(狼)과 패(狽)라는 동물이 있었다. 둘 다 이리(늑대)를 말한다. 낭(狼)은 앞다리가 짧고, 패(狽)는 뒷다리가 짧은 이리다. 따라서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 한다. 혹 둘이 다퉈 떨어지게 되면 따로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낭패(狼狽)라 한다’고 중국의 유양잡조(酉陽雜俎)라는 책에 실려 있다. 오늘날에는 그 뜻이 조금 바뀌어서 계획한 일이 틀어져서 실패로 돌아가거나 기대에 어긋나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됐을 때의 의미로 쓰이는 낭패의 어원이 여기에서 나왔다. 조선시대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요순(堯舜)은 남에게 묻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요순보다 훌륭했던 것이 아니다. 능력을 과신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문제없다고 여기는 순간 독선에 빠져 실수가 생긴다.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장님이 절름발이를 등에 업고, 그가 일러주는 길을 따라 달아나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장님은 두 다리가 성하고 절름발이는 두 눈이 멀쩡했다. 둘은 서로 장점을 취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명하다 자처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늘 남을 이기려고만 들면, 어찌 능히 모르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귀가 얇아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문제지만 쇠귀에 경 읽듯 남의 말을 도무지 안 듣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내가 못나 남의 말 듣는 것이 아니다. 2015년 9월 18일 오전 12시가 채 못돼 모든 안건 토의를 마친 총회는 은급재단과 유지재단 등 미처 보고하지 못한 기관은 총회임원회가 서면으로 보고를 받기로 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회무를 마친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파회예배에서 요한복음 15장 8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는 말씀으로 설교했다. 박 총회장은 “총회와 노회 교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결의를 했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한 결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결의들이 우리가 결의한 이상으로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전했다. 이어 총회장의 “교회가 나에게 위탁한 권세로 지금 총회는 파(罷)함이 가한 줄로 알며…”라는 파회선언 후 기도와 감사와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새로운 제100회 임원회가 출범했다. 그런데 역사적인 제100회 총회는 총회장이 파회 시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한 결의도 있었다”고 밝혔듯이 그 앞길에 몇 가지 낭패스러운 짐을 안고 출범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낭패는 납골당 문제이다. 9월 15일 총회 둘째 날 저녁 은급재단납골당문제후속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박춘근 목사의 역대 총회장과 총무들이 이사회 결의로 다 승인을 해 주어 검찰 기소 가능성이 없어 사법처리를 할 수 없다는 지혜로운 보고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그때 은급재단 납골당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허활민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장내를 쥐 죽은 듯 조용하게 했다. “산서노회 허활민 목사입니다… 2015년 5월 13일 신라호텔 식당에서 식사 후 롤 케이크가 담긴 봉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케이크가 들어있었습니다(그는 5만원 뭉치의 돈 다발을 흔들었다). 나 돈 좋아합니다.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돈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총회 금고에 보관해 놓았습니다. 은급 재단 가입 교역자들의 피땀 흘린 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독립 100년을 기리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허활민 목사는 제100회 총회를 기리듯 오른손에는 마이크를 움켜잡고 왼손에는 2015년 5월 13일 신라호텔에서 받은 돈 다발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제100회 총회 둘째 날 납골당 사건을 위촉받은 박춘근 목사는 1년을 고심하며 도달한 해묵은 부패의 지혜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납골당 사건과 관련이 전혀 없는 허활민 목사는 자신이 받은 부패의 상징을 치켜들고 부패 청산을 외쳤다. 이로써 납골당 관계자 처벌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허활민 목사는 발언 후 납골당 문제로 총회에 손해를 끼친 총회 관계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총회서기 이승희 목사에게 제출했다. 이후 총대들은 명단 공개와 관계자 총대권 정지를 비롯한 사법처리를 요구하며 2시간 넘게 격론이 이어졌다. 9월 16일 오전회무 시간에 총대들의 거센 요구에 따라, 총회장은 허활민 목사가 제출한 명단에서 총회에 해를 끼친 사람을 선별할 위원으로 김기철 목사, 이시홍 장로, 신신우 장로 3명을 자벽했다. 이렇게 구성된 은급재단 납골당 관련자 선별위원회의 위원장 김기철 목사, 서기 이시홍 장로, 위원 신신우 장로 등은 17일 오후 회무 시간에 사법처리자 명단을 발표했다. 총대들의 요청에 따라 총회 현장에서 위원회의 청원사항을 축조해 총대들의 가부를 물어 시벌 대상자와 수위를 결의했다. 제98회기 제99회기 은급재단 납골당 후속(사법)처리 위원장 문세춘 목사, 박춘근 목사 등은 공회 앞에 정중한 사과 인사와 동시에 1년 공직 정지하도록 한다. 허활민 목사가 수수한 금품 건에 대해서는 법률적 판단을 구한 후 총회임원회(혹은 은급재단 이사회)에 맡겨 처리키로 한다. 이와 함께 위원회 성격상 은급재단 이사 및 감사 중 은퇴한 자는 총대권 제안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자에서 제외했으나, 총대들의 거센 반발이 있자 은퇴자에 대해서는 명단을 발표하는 선에서 그쳤다. 위원장 김기철 목사는 말했다. “은퇴자라 하더라도 향후 사법처리할 것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추가로 민형사상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납골당 관리권과 영업권 확보, 충성교회 측과의 소송 해결 등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과 관련돼 향후 진행되는 첩첩산중(疊疊山中)의 민형사상 소송은 1년 임기의 총회 임원회와 납골당 무혐의자가 희귀한 은급재단의 이사와 실무자에게 맡겨 대응하기로 했다. 제99회 총회 은급재단납골당문제후속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박춘근 목사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보고했다. 납골당문제는 15년이라는 세월 속에 처리되지 못하고 100회기 총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해결점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소송은 계속됨으로(금년 감사부 보고 내용처럼 수천만 원 소송비) 총회의 명예의 실추도 있거니와 동업은 형제간에도 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듯이 매우 어려운 사업에 체계적인 매뉴얼도 없이 운행함으로 해결점이 요원함으로 고법에 집중하여 소유권이전 등기 항소심에서 승리하고, 제100회기 총회에서 다시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총회결의를 해서 은급재단으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1안/ 최춘경과 동업은 불가하며 전체를 매수하여 은급재단이 독자적으로 영업 운영하는 방안.제2안/ 고법에 승리 후 동업자와 관계청산 후 동업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제3안/ 제3자에게 제97회기 총회결의처럼 매각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으로서 100회기에 재결의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총회의 해묵은 짐을 맞춤하게 덜어줄 보고와 제안이 기각되고 수고와 지혜를 아끼지 않은 박춘근 목사가 총대 1년 정직까지 당했다. 다시 제100회 총회는 형제와 형제가, 후배가 선배를 정죄하고 사법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매듭이 더 얽힌 결의로 납골당 주위를 더 맴돌게 됐다. 제100회 총회 임원회의 이런 낭패에 더하여 기왕지사 이리 되었으니 차제(此際)에 납골당 비리에 연루되고 덧붙여 직무유기의 의혹도 짙은 총회 실무 책임자인 역대 총무들 이재영 목사, 이치우 목사, 황규철 목사 등에 대한 조사와 사법처리도 추가해 주기를 소망한다. 김창수 총무에게는 눈물이라도 있지만 전임 총무들에게는 이 더러운 사건들에서 피도 눈물도 없었다는 생각을 아무리해도 뇌리에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세 감독의 1999년 개봉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벙거지를 쓰고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우영구(박중훈) 형사는 박재인(51) 경위, 원칙을 중시하는 모범생 김동석(장동건) 형사는 동명의 김동석(48) 경위가 실제모델이었다. 우영구(박중훈 역) 형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해 주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다.” 하지만 소매치기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김동석 경위가 “이런 나쁜 놈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고함을 지른 데서 착안해 이명세 감독이 원래는 ‘형사수첩’이었던 영화 제목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제100회 총회 임원회나 특별위원회를 맡은 사람들은 총회의 해묵은 낭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러운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리할 때 김동석 경위의 말을 입과 머리에 담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나쁜 놈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 게다가 성경도 말씀한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3:10-12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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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30
  • 다산 정약용과 제일총신인 김승동의 편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녀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39 ~ 57세)의 18년을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가르침을 유배지에서 편지로 보냈다. 다산은 두 아들(학연, 학유)과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18년이 넘는 유배지에서도 자녀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다산은 편지로 가족과 정을 나누고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였다. '근과 검을 유산으로'는 부지런한 생활 자세와 근검절약의 생활 자세를 당부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가난한 가정은 물론 여유 있는 가정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단절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다음의 글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第一信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竹露茶)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우두봉(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 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물 소리에는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적소(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끌고 와 이 악문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욱하게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第二信 이 깊고 긴 겨울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에다 무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해 주더니 이제 그 중 큰놈 몇 개를 뽑아 너와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밤을 새워 무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고 유배(流配)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어루어 시경강의보(詩經講義補)를 엮는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사선재(四宣齋)에 앉아 시(詩) 몇 줄을 읽으면 아아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 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내가 벼슬살이를 못 하여 밭뙈기 얼마만큼도 너희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오직 글자 두 자를 정신적인 부적으로 마음에 지니어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거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 때 할 일을 저녁 때 하려고 미루지 않으며, 밝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천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하고, 어린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 드는 일을 하고, 병이 든 사람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 길쌈을 하기 위해 한밤중(4경)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집 안의 상하 남녀 간에 단 한 사람도 놀고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또 잠깐이라도 한가롭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나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까 여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옷을 만들게 되면, 당연히 곱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지 않고 투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술 안으로만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함은 참됨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동료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주먹덩이를 삼키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구경하고는 “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그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한 사람 및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자 아니고는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제일총신인(第一總神人)이라 부를 수 있는 김승동 목사(구미상모교회)도 총신신대원 96회로 졸업한 뒤 미국에서 목회하는 아들 김인집 목사에게 이 시대의 동료 목회자와 후배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될 목사의 의무와 사명에 대해 다산 정약용처럼 편지로 들려주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인생을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감격과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다는 확신 앞에 단 한순간도 내 가슴에서 감사함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내가 까까머리 어린 학생 때 대구지역에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강타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감격 가운데 주의 종으로 서원하였던 장면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결국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다. 내가 처음부터 그 서원을 이행하려 했으면 네 엄마가 이토록 고생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구나. 아니, 어쩌면 일찍이 서원한 그 길을 걸었더라면 지금의 네 엄마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이런 순간도 없을 것이다. 돌아 돌아서라도 결국 목회자의 길로 왔기에 네 아버지로서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게 되는구나. 쉼 없이 달려오는 목회의 여정에서, 너에게 그동안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글 하나 변변히 남기지 못해 미안했는데 이렇게 너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먼저 주님께 감사드리고, 늦게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지 모르겠다. 아들 인집 목사에게!네가 우리 가정에 아들로 태어나 주어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 모르겠다. 네 아래로 세 명의 여동생을 키우며 힘겨운 사모의 사역을 감당하는 네 엄마에게 네가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음에 주님께 한없는 감사함을 드릴 뿐이다.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석으로 졸업할 때는 아버지의 목회에 큰 기쁨이 되었으며 미래에 가문의 영광을 이룰 것으로 믿어 감격했었다. 그러나 너는 포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學軍士官 또는 학군단이 설치된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선발하여 군사교육을 실시하고 임관종합평가제를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되면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 훈련을 받으면서 해마다 원단금식수련회에서 주의 종으로 서원하며 헌신을 준비하고 있었지. 네가 장차 큰 사업가로, 훌륭한 장로로 성장해 줄 것을 기대했던 나에게 어느 날 네가 주의 종의 길로 가겠다고 할 때 나는 단번에 안 된다고 했었지. 하지만, 너는 굽히지 않고, “세상에 이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저는 하나님께 이미 서원했으니 이 길을 가겠습니다” 라며 단호하게 결단했었지. 그 날 너에게 목회의 길을 허락하면서 사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내가 그래도 자식 보는 앞에서 아버지로서 목회자로서 최선의 삶을 살았구나’하는 한없는 위안과 용기를 얻었단다. 해병대 장교로 포항에서 근무할 때, 상모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부대를 방문했을 때 최고의 모범 장교의 부모님이 오셨다며 세계 최고수준의 해병대 의장대 사열을 받았을 때 정말 꿈만 같았고, 자식 둔 자부심을 당회원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아들아!제대한 그 해 총신신대원에 입학하고 96회로 졸업하면서 왕성교회 부교역자로 잠시 머물다 미국 리버티 신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 너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 주고 열방을 품을 수 있도록 마음껏 축복해 줄 수 있어서 아버지로서 정말로 마음 뿌듯하였다. 아들아!해외에서 공부하고 학위 받는 것이 절대로 목회에 자랑이나 힘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다른 길은 몰라도 목회만은 영짱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교훈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아버지는 우수한 대학도 나오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성령을 체험하고 난 후에는 강력한 영적 리더십을 은사로 받아서 내 기억에 지금까지 두 사람이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리더가 안 되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절대로 머리에만 머무르는 지식의 전달을 앞세우지 마라. 네 가슴에서 나오는 성령의 음성을 전달할 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어찌 학위도 변변하지 않고, 인물도 출중하지 못한데 어떻게 영남지역에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는지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 내놓을 만한 대단한 목회 철학도 없고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지식도 없으나, “내게 주신 여호와의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 12)하는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 제가 받은 이 엄청난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합니까?” 날마다 주님께 묻고 물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왔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아!네가 목회자로서 먼 미국에서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종종 안타까움으로 진단해 주는 네 말에 내부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정로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한기총 단군상 특별대책위원장으로 전국을 돌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에도 너는 어두운 영계의 현실을 보면서 나에게 한없는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철폐하는 일을 충성스럽게 섬기면 훗날 너의 목회 현장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주실 것이라 믿으며, 그것이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임을 확신하며 달려왔다. 결국 8년간의 긴 사투 끝에 더 이상 공공장소에 단군상을 세우지 못하도록 법으로 결정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지. 아들아!SBS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 4부작의 방송을 통해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을 조직적으로 조롱하고,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미화하는 상황에서 방송사를 대항하여 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도 모든 다른 가족들은 극구 말렸지만, 너만은 “아버지, 순교를 각오하고 하십시오! 아버지 아니시면 누가 하겠습니까? 이제 단군상 대책위원장도 내려놓았으니 하나님은 이 때를 위하여 아버지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라며 기어코 하라고 격려했었지. 그 때 나는 네가 내 아들이지만 ‘정말 목회자로 잘 자라고 있구나’하며 선배 목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아들아! 요즘 한국교회가 기독교 선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작년에도 내가 부총회장에 출마하여 제비뽑기에 떨어지면서 교단의 정치를 보면서 정말 가슴 아픔이 있었다. 법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양심보다도 정치가 앞서고 있고,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모멸감에 사람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당시에 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보낸 이메일에 “아버지, 아들로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제 마음에 심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총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어도 결코 흘러가는 물줄기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총회 정치권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목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감은 내려놓은 지 벌써 오랜 듯하고, 도덕성과 양심에 때가 묻어 정로에 서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요사이 젊은 목회자들이 어떤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지를 모르고, 자신들이 휘두르는 칼이 교단 내에서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영계를 얼마나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둔감해져 버렸습니다. 아버지, 이제 목회 현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시어 명예롭게 은퇴하십시오. 얼마 전 미국 동부의 총신동문들이 모였을 때, 우리의 모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멈추시고 더 이상 오물과 시궁창물이 묻을 곳으로 가지 마십시오. 저는 아버지께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명예롭게 은퇴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내 가슴에 비수와 같이 꽂히는 너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아들에게 보여 준 진실한 목회의 현장이 아들을 강력한 목회자로 만들어가고 있는데, 제 아버지를 향한 신뢰를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다짐이 내 가슴을 강타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언젠가는 분명히 나에게 주어진 인생 무대에서 나에게 맡겨진 삶의 드라마를 마감하고 내려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벌떡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오래도록 쳐 준다면, 그 현장의 감격과 흥분 속에서 “아버지의 아들의 자부심을 갖고 나도 멋지게 이 가문을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둘째 손자가 100일이 되었을 때 한번 오고는 그 갓난아이가 4학년이 될 때가 되어서야 두 번째 방문하는 무심한 할아버지를 용서해라. 할아버지가 영어를 못하니 자기들이 한국말을 잘 해야 할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열심히 한국말을 익혀 이중 언어를 나름 완벽하게 할 수 있게 준비한 손자들이 참 기특하구나. 이번 여름휴가에는 기필코 삼대가 만나서 몇날 며칠을 밤을 새면서 이야기 할 꿈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아들아! 아버지가 달려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목회선배이며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아들이며 후배 목사인 너에게 하고픈 말 몇 가지를 정리하며 편지를 마무리하려 한다. 첫째, 주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인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주님께로부터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미 주님이 허락하신 복도 잘 누리지 못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둘째, 가정에 최선을 다해라. 지도자는 자신의 가정에서 인정받고 존경받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펼칠 수 없다. 작은 내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으로서 존경받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어찌 리드할 수 있겠느냐? 셋째, 주님의 일이라고 너무 욕심을 내어 열심히 하려하지 마라. 역설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과 비교한다거나 혹은 내 욕심으로 성령님을 앞서서 행하면 절대로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낙오되고 말 것이다. 너도 초등학교 운동회 때, 종이에 쓰인 사람 찾아서 결승점으로 뛰는 미션경기를 해보았지 않느냐? 동네 이장님이 적혀있으면 그분과 함께 손잡고 결승선까지 달려야하지 않느냐? 마음이 바빠서 혼자 달려가고 할아버지가 뒤에 혼자 남겨지면 결국 꼴등인 것을 경험하지 않았느냐? 아들아!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차 없이 포기해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간절히 소망하고 겸손히 순종해 나가야한다. 자신의 몸과 가정을 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웬만큼은 가능한 것이지만,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성령의 지시하심 외에는 말하지 않는 것은 성령님과의 친밀한 동행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나는 이제 목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지만, 너는 이제부터 가장 힘차게 달려야 할 때이다.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은 시간 앞에서, 나를 나 되게 해 주신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며, 매순간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다. 아들아, 너의 삶과 사역을 축복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2015-09-26
    • G.QT
    2015-09-26
  • 허활민 목사와 자유의 여신상
    2015년 9월 16일 빗방울 하나가 반야월 교회당 앞 유리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속도를 마감한다. 심장을 유리에 대고 납작하게 떨다가 충격에서 벗어난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니 총회장이 쥔 고퇴 같은 눈망울로 교회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어떠한 미련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사라진다. 미련 없이 사라지는 것은 미련 없이 아름답다. 50여 년 전 멀리서 들려오던 예배당 종소리, 모란이 지던 초여름 밤, 짧게 지나가는 비, 솔로몬의 어떤 아가(雅歌), 초가을의 아침 이슬, 대구 지하철 1호선 반야월역, 제99회 총회장의 증경 총회장석으로 자리 옮김, 무지개, 첫사랑… 따위가 그렇다. 교회당 앞 유리에서 제 속도를 마감하는 빗방울도 미련 없이 사라지는 것의 목록에 든다. 덧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빗방울 한 점은 젊음, 세월, 생명, 사랑이나 다를 바 없다. 순간의 미련을 남기고 기록으로 사라짐으로써 애틋해지는 제100회 총회의 언어와 실행들! 하루 종일 수많은 이미지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내 앞으로 멋진 자동차가 바람처럼 스쳐 가면 ‘나도 저런 자동차를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지만, 곧이어 내 마음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아니잖아.’ 길을 가다 완벽한 인테리어로 중무장한 화려한 교회당이 눈에 띄면 마음이 또 흔들린다. ‘저런 교회당에서 당회장으로 한 번 목회해 보고 싶은데.’ 하지만 곧이어 마음의 목소리가 만류한다. ‘그것 역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아니야. 이제 그만 흔들릴 때도 되었을 텐데.’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나의 내부가 아니라 항상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달콤한 유혹에 시달리지만 내 마음의 목소리는 말한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너는 끊임없이 이렇게 마냥 흔들릴 거야. 숨이 끊어질 때까지 평생 흔들리기만 할 거야.’ 피카소는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로 낭비한다. 나는 내 에너지를 단 한 가지,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림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은 포기한다.” 세상에서 최고의 화가가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리다 간 고(故) 피카소의 말은 숨 막히게 멋있지만, 그 모든 자잘한 욕망을 포기하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도, 하는 수 없이 견뎌야 할 일도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제100회 총회에서 피카소의 말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놀랍게도 발견했다. 9월 15일 총회 둘째 날 저녁 제99회 은급재단납골당문제후속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박춘근 목사의 고뇌어린 보고를 통해 날카로운 지적과 지혜로운 해법 제시가 끝났다. 뒤이어 전 총회장 백남선 목사를 포함해 몇 사람의 발언 뒤 허활민 목사(총회산하기구개편위원회 본부직제및구조조정분과위원회 위원장)가 손을 들고 단상으로 나아가자 흠석위원들과 발언권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혼잡한 단상이 홍해 갈라지듯 길이 트였다. 허활민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장내를 쥐 죽은 듯 조용하게 했다. “산서노회 허활민 목사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눈물이 많은 총무 김창수 목사가 강대상에서 허활민 목사에게 종이백을 건넸다.) 2015년 5월 13일 신라호텔 식당에서 식사 후 롤 케이크가 담긴 봉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케이크가 들어있었습니다(그는 5만원 뭉치의 돈 한 다발을 흔들었다). 나 돈 좋아합니다.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돈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총회 금고에 보관해 놓았습니다. 은급 재단 가입자 교역자들이 피땀 흘린 돈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을 미국 땅에서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나라다. 이 때문에 미국이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선물을 준비했다. 원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였으나 나중에 이름을 바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됐다. 기금은 복권과 디너파티를 통해 모금됐고 젊은 조각가 바르톨디가 제작을 맡았다. 얇게 두드려 편 구리판을 철골 구조 위에 씌우는 방법을 채택했기 때문에 철골구조 설계는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에펠이 맡았다. 제작 10년 만인 1885년에 철골과 구리판을 분리해 뉴욕으로 옮겼으나 미국은 그때까지 받침대 공사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받침대를 세우기 위해 벌인 모금운동이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받침대는 미국의 모리스 헌트가 설계했고 에마 나자루스의 14행 시 ‘새로운 거상’이 새겨졌다. 1886년 10월 28일, 1년간의 조립 끝에 46m 높이의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항 초입 리버티 섬에 제막됐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치켜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 석판이 들려 있었다. 미국 독립 100년을 기리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허활민 목사는 제100회 총회를 기리듯 오른손에는 돈뭉치를 치켜들고 왼손에는 2015년 5월 13일 받은 돈 케이크가 담긴 종이백이 들려 있었다. 제100회 총회 둘째 날 납골당 사건을 위촉받은 박춘근 목사는 1년을 고심하며 도달한 해묵은 부패의 지혜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납골당 사건과 관련이 전혀 없는 허활민 목사는 자신이 받은 부패의 상징을 치켜들고 부패 청산을 외쳤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전서 6:7-12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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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24
  • 더굳뉴스 제 20호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
    1980년 황금동 허허벌판에서 박무용 목사는 자신을 치료해 준 예쁘고 선한 간호사 출신의 안이자 사모와 단 둘이 예배드리는 개척교회로 출발해 1,000여명 교인의 교회로 성장시킨 대구 황금교회의 목회자이다. 그런 그가 2015년 9월 14일 성역 35년 만에 12,000여 교회의 보수 장자교단의 제100회 총회 총회장으로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취임한다.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대전중앙교회 앞 주차장에 집결하고 있는 9월 1일 오후 1시 30분 총회 정치의 전설 이영수 목사 시무 당시 70년대에 새로 지은 대전중앙교회 본당에서 예배 후 제100회 총회장 후보 박무용 목사는 설교단 오른 편 대기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단에 서서 총회장 후보가 아닌 제100회 총회장 당선자 자세로 자신의 실천 사항 공약을 다짐하는 정견발표를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0회 총회 총회장 후보로서 지난 한국교회 역사의 100여년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가 당면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교단의 당면 과제와 교단의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는 가운데 다음의 사항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총회가 교회의 본질과 공교회성을 회복해 새로운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 100년을 향해서 다시 한 번 힘찬 생명력으로 비상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에 저는 금번 100회 총회가 첫째,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총회 100여년 역사의 정체성 확립에 힘을 쓸 것입니다. 둘째, 깨끗한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셋째, 총회 중장기 정책 기능을 강화해 미래지향적인 정책 중심의 총회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넷째, 총회 산하 기구에 대한 조정과 통제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다섯 째, 총회의 교육, 전도, 구제, 봉사 등에 있어서 교회 본연의 사역 영역과 중복된 기능과 임무를 조정하고 사업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총회 대내외적으로 첫째, 우리 한국교회의 연합 사역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공교회적 연합의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둘째, 곧 다가올 민족통일의 시대를 앞두고 남북교회가 다함께 기도하며 남북통일을 준비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셋째, 세계개혁주의 기독교단 단체들과 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총회 사역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가도록 하겠습니다. 제100회 총회장 후보로서 이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정책 중심의 총회로 거듭나서 총회 산하 모든 교회가 민족과 국가를 위한 복음의 사역을 힘 있게 전개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작년 2014년 9월 22일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열린 제99회에서 한 차례의 제비뽑기를 통해 세 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후보 김승동 목사가 탈락했다. 그는 총회에서의 정치 경력이 별로 없는 정연철 목사를 누르고 제99회 총회 부총회장에 당선된 박무용 목사(대구수성노회·황금교회)는 100년 전통을 이어온 최대 규모의 교단에 필요한 것은 책임감과 강력함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그때 그는 말했다. “지도자의 무책임과 리더십 부재가 수많은 생명을 단숨에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큰 배를 바다로 침몰시킨 세월호 사고의 모습을 보며, 최근 몇 년간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교단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이 다시금 위상을 회복하고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알면서도 거대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청되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박무용 목사의 말은 배우는 막이 내리면 일이 끝나지만 정치가는 연설이 끝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연설의 실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이 좋고 인화력이 출중한 그가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 약속대로 100년 총회의 드문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2015-09-10
    •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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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0
  •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
    1980년 황금동 허허벌판에서 박무용 목사는 자신을 치료해 준 예쁘고 선한 간호사 출신의 안이자 사모와 단 둘이 예배드리는 개척교회로 출발해 1,000여명 교인의 교회로 성장시킨 대구 황금교회의 목회자이다. 그런 그가 2015년 9월 14일 성역 35년 만에 12,000여 교회의 보수 장자교단의 제100회 총회 총회장으로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취임한다.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대전중앙교회 앞 주차장에 집결하고 있는 9월 1일 오후 1시 30분 총회 정치의 전설 이영수 목사 시무 당시 70년대에 새로 지은 대전중앙교회 본당에서 예배 후 제100회 총회장 후보 박무용 목사는 설교단 오른 편 대기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단에 서서 총회장 후보가 아닌 제100회 총회장 당선자 자세로 자신의 실천 사항 공약을 다짐하는 정견발표를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0회 총회 총회장 후보로서 지난 한국교회 역사의 100여년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가 당면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교단의 당면 과제와 교단의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는 가운데 다음의 사항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총회가 교회의 본질과 공교회성을 회복해 새로운 한국교회의 미래 선교 100년을 향해서 다시 한 번 힘찬 생명력으로 비상하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에 저는 금번 100회 총회가 첫째,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총회 100여년 역사의 정체성 확립에 힘을 쓸 것입니다. 둘째, 깨끗한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셋째, 총회 중장기 정책 기능을 강화해 미래지향적인 정책 중심의 총회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넷째, 총회 산하 기구에 대한 조정과 통제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다섯 째, 총회의 교육, 전도, 구제, 봉사 등에 있어서 교회 본연의 사역 영역과 중복된 기능과 임무를 조정하고 사업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총회 대내외적으로 첫째, 우리 한국교회의 연합 사역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공교회적 연합의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둘째, 곧 다가올 민족통일의 시대를 앞두고 남북교회가 다함께 기도하며 남북통일을 준비해 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셋째, 세계개혁주의 기독교단 단체들과 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총회 사역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가도록 하겠습니다. 제100회 총회장 후보로서 이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정책 중심의 총회로 거듭나서 총회 산하 모든 교회가 민족과 국가를 위한 복음의 사역을 힘 있게 전개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작년 2014년 9월 22일 광주 겨자씨교회에서 열린 제99회에서 한 차례의 제비뽑기를 통해 세 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후보 김승동 목사가 탈락했다. 그는 총회에서의 정치 경력이 별로 없는 정연철 목사를 누르고 제99회 총회 부총회장에 당선된 박무용 목사(대구수성노회·황금교회)는 100년 전통을 이어온 최대 규모의 교단에 필요한 것은 책임감과 강력함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그때 그는 말했다. “지도자의 무책임과 리더십 부재가 수많은 생명을 단숨에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큰 배를 바다로 침몰시킨 세월호 사고의 모습을 보며, 최근 몇 년간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교단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이 다시금 위상을 회복하고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알면서도 거대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청되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박무용 목사의 말은 배우는 막이 내리면 일이 끝나지만 정치가는 연설이 끝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연설의 실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이 좋고 인화력이 출중한 그가 섬기는 리더십으로 총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 약속대로 100년 총회의 드문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2015-09-10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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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10
  • 김삼환 vs 전병욱
    2015년 1월 27일 언론중재위원회는 명성교회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언론중재신청에서 "조정 불성립"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명성교회가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언론사는 반론을 수용할 수 있으나 삭제는 안된다고 주장하여 그 간극이 큰 것을 확인한 중재위원들은 불성립결정을 단 5분 만에 내렸다. 명성교회측은 비자금 의혹과 장로의 자살도 명성교회와 상관이 없는데, 언론사들이 기사를 허위로 작성해 보도했다는 주장이고, 언론은 그 만큼의 정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3통의 유서에서 故 박 장로가 일관되게 남긴 말이다. 담임 김삼환 목사에겐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말도 남겼기에 언론으로서 충분히 비자금 의혹, 재정인계 과정에서의 의혹, 자살은폐의혹(사인을 심장마비라고 교회 측 발표), 횡령은 안 했다고 하면서,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유서내용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2014년 6월 17일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재정을 관리해 온 수석 장로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각에서는 박 장로의 죽음이 김삼환 목사의 비자금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명성교회는 근거 없는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됐다. 의혹 제기에 앞장선 이들은 “프레시안” 편집위원 윤재석 씨(명성교회 전 집사 )와 예장통합을 무대로 활동하는 “예장뉴스” 편집인 유재무 목사다. 이들은 숨진 박 장로가 1,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했고, 김 목사가 특별 새벽 기도회 헌금을 유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으며, 목회자를 상대로 사채업도 했다고 보도·광고했다. 그러자 명성교회 장로들은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8월 26일 동부지방법원 202호에서 앞의 재판의 지연으로 40분 늦은 오후 4시 40분에 명성교회 측의 증인으로 나온 이종순 장로에 대한 증언 선서와 검사의 간단한 심문이 있은 뒤 피고인 측의 변호인 엄상익 변호사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그날 1시간이 넘게 진행된 법정공방들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를 짚어 보겠다. 엄상익 변호사: 2014년 6월 17일 박 장로가 자살했을 때 명성교회가 처음 사인을 발표할 때 왜 심장마비라고 밝혔습니까?증인: 선임 장로 10명이 모임을 갖고 토요일 오후 유족을 접촉했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늦게 귀가한 유족이 박 장로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 부탁을 해서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검찰 진술서 345페이지에 보면 박 장로가 일부 자금을 관리했다고 했는데 박 장로 개인이 관리한 돈이 얼마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증인: 내년 김 목사 은퇴 후 선교나 통일을 위한 일에 유익하게 쓸 용도로 매년 수십억씩 모아 800여억 원을 관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박 장로가 죽으면서 남긴 유서에 차 트렁크에 있는 서류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폐기했습니까?증인: 자료가 4-5년 된 먼지가 뽀얗게 앉은 서류인데다 교회 원본에 있는 것들이라 폐기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그 800억은 어디에 쓰였습니까?증인: 건축이나 이런 저런 일들에 쓰고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법정공방은 김삼환 목사에게 의혹이 일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오후 6시 넘어서까지 세세히 이루어졌다. 전병욱 목사는 재정적으로 자립이 힘든 교회를 후원하기 위해 '저수지 교회'를 정식 슬로건으로 정했다. 전 목사 시무 당시의 삼일교회는 관리와 조직 능력 면에서 뛰어났다. 성도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됐고, 교회 사역을 위해 태스크포스 팀이 조직돼 기민하게 행동했다. 저수지 교회 사역에서도 역시 교회 측은 관리와 조직능력을 동원해 태스크 포스 팀을 조직했다. 태스크포스 팀은 우선 후원대상 교회 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저수지 교회 후원사역을 알리기 위해 계간지도 발간했다. 태스크포스 팀은 후원대상 교회를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로 한정하고, 대상 지역과 교회를 선정한 다음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매주 화-수, 목-금 이렇게 1박 2일 일정으로 매주 2차례씩 후원대상 교회를 직접 방문해 후원대상 교회의 실태를 점검하고 결연을 맺었다. 아래는 미자립교회에 발송한 공문 내용 중 지원내용을 담은 대목이다. 지원내용 1. 현재 사역하고 있는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후원함2. 1년 동안 매월 일정금액을 후원함3. 후원금액은 교회재정의 용도가 아닌 목회자 생활비로 사용되도록 함4. 후원을 받는 교회는 본 교회가 요청 시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토록 함5. 사역지(교회)를 옮기거나 농어촌지역을 벗어날 시에는 후원대상에서 제외함6. 비정기적으로 후원교회에 대한 현지실사를 통하여 교회로서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파악할 것임 계간지인 With 31은 7월과 10월에 각각 여름호와 가을호가 발간됐다. 그리고 매주 교회 결연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2011년 11월 말 기준, 삼일교회의 미자립 후원 교회 현황이다. - 목포: 21개 / 통영: 5개 / 고성: 5개 / 보성: 24개 / 제주: 5개 / 울진: 7개- 수도권 : 1개- 영암: 3개 / 평창: 3개 / 고성: 2개 / 영월: 2개 / 양양: 2개 / 태백: 1개 / 정선: 5개 / 강릉: 5개 / 동해: 2개 / 삼척: 2개 후원대상으로 선정된 교회는 삼일교회 측으로부터 매월 30만원씩 총 36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 받게 된다. 대도시가 아닌, 조그만 산촌이나 어촌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쓰는 목회자들에겐 30만원은 무척 큰 금액이다. 이러한 일은 재정적으로 풍요할 뿐 아니라 목회자의 선교의 열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전병욱 목사는 이 일을 위해 1,000억을 목표로 해서 모으다 그가 교회를 사임할 당시 252억이 확보되어 있었다. 1993년 12월 25일 갓 30세에 전병욱 목사(총신 84회)가 3대 위임 목사로 부임하여 80명의 신도를 15년 만에 출석교인 1만6000여 명으로 200배 성장시켰다. 2008년 10월 기준이다. 본당만으로 참석자들을 수용하기가 곤란해지자 1999년 3월부터 인근의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리며, 이후 교회건물을 신축 및 매입하여(B, C관) 수용능력을 늘렸다. 숙명여자대학교 측과의 임대계약 만료로 대강당 예배를 2009년 3월 말 종료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안정시킨 시점에 다윗이 실족했던 것처럼 신자의 수가 2만2천여 명으로 치솟고, 현금만으로 마련한 예배당을 포함해 3개의 건물(A, B, C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기도원이 있고, 미자립교회를 30만 원씩 1000개 교회(전병욱 목사 재직 당시 100여개 교회를 도움)를 돕기 위한 저수지 교회로서의 자금 252억 원(헌금만으로 모인 돈)을 달성한 시점에 전병욱 목사는 교회 안에서 그를 곤란하게 하고 교회를 분쟁과 분열로 몰아갈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그 일로 청파동 언덕의 아담한 교회를 엄청나게 키워 언덕에서 내려와 대로변에 크게 세운 삼일교회 당회장 직을 내려놓고 아무런 요구나 타협도 하지 않고 사임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일 그는 교회 내에 아무런 분규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교회를 홀연히 떠났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세였고 그들은 전병욱 목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여느 목사들과 달리 교회의 안정을 위해 그들을 잠재우고 2만이 넘는 신자와 252억 원의 현금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교회를 사임했다. 그 뒤 이런저런 명목아 붙은 13억의 전별금을 온라인으로 받았다. 김삼환 목사는 은퇴 후 쓰려고 800여억 원을 비밀리에 관리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하보다 귀한 한 장로의 생명까지 자살로 마감했다. 김삼환 목사는 여전히 그가 세운 명성교회에 재직하며 가톨릭의 대주교와 나란히 명성을 날리며 잘 살고 있다. 그에 반해 교회를 위해 사임하고 아무런 말없이 떠난 전병욱 목사는 홍대 근처의 이층 교회에서 새로운 교회 1500여명을 전도해 복음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의 후임으로 큰 교회도 물려받고 252억도 관리하는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는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전국 총대들에게 불온한 서적을 돌리고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주장하고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 도대체 송태근 목사가 주일에 총회 서기 권재호 목사의 교회까지 몰려가 뉴스앤조이 기자와 삼일교회 집사들이 불미스러운 시위를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총회 예배모범이 규정한 주일성수를 어기는 죄는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 긴급동의안까지 발동해 전병욱 목사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못된 정치꾼의 행태까지 보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송태근 목사를 엄히 꾸짖고 그 소속 노회가 목사 면직시키도록 결의해야 할 것이다. 송태근 목사를 두둔하고 전병욱 목사를 압박하는 (가칭)평양제일노회는 얼마나 깨끗한지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그 노회의 회원이 되어 과거에 문제를 일으키고도 이성택 목사, 길자연 목사, 권순직 목사 등의 배려로 살아남아 성경과 헌법대신 교회 정관을 언약궤 모시듯 하는 분당에 있는 교회 목사의 죄도 다시 들출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주일 명성교회 앞에 송태근 자신의 언론사까지 딸린 친위시위대를 보내 이층 건물을 세 얻어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힘없는 전 목사대신 막강한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의 천하보다 귀한 장로를 자살하게 만든 죄를 물어 면직을 주장해 자신들이 신주마냥 앞세우는 한국교회의 정의를 세우기 바란다. 2015-09-10
    • G.OPINION
    2015-09-10
  • 아이티의 진실
    수원역 앞 선로에서 이산가족상봉이 좌절된 실향민 이 모(75세)씨가 진입하는 전동차에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은 2009년 9월 18일 오후 7시 수원 시은소교회(김성길 목사)에서 교계 및 정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부 산하 정식 NGO 단체인 해피나우(나중 구호금의 계좌이체를 받을 수 없는 임의단체로 밝혀짐) 창립예배 및 취임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대표회장 김성길 목사, 법인이사장 김성호 장로(신명재단 이사장), 운영이사장 소강석 목사 등을 비롯해 초대 GMS총재 길자연 목사, GMS이사장 이종영 목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계와·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말씀을 전한 길자연 목사는 말했다. “예수님은 사람의 허물과 잘못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아픔을 보시고 위로하셨다. 해피나우가 예수님처럼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기쁨을 주기 바란다.” 그리고 사흘 뒤 9월 21일 울산에서 열린 제94회 총회에서 서정배 목사가 총회장에 취임했다. 해피나우가 탄생한 지 석 달 뒤 이사장이 김성길 목사에서 길자연 목사로 바뀌고 상임이사 하귀호 목사, 사무총장 박원영 등이 취임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0년 1월 12일 현지시각 오후 4시 35분 1인당 국민소득이 하루 2달러로 절대빈곤 상황에 있는 아이티에 리히터 7.3의 지진이 발생해 11만 2250명의 사상자와 19만 4000명의 부상자, 그리고 수백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총회는 2010년 1월 18일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총회장 서정배 목사를 비롯해 GMS, 기독신문, 해피나우(Happy Now) 관계자, 전국남여전도회 임원, 구제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아이티 돕기 관련 기구 명칭을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로 정하고 총회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했다. 참석자들은 총회산하 전국교회가 참여하여 진행 될 아이티를 돕기 위한 운동은 총회는 물론 한국교회의 위상을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총회의 모든 기관과 단체들이 협력하여 모금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서정배 총회장은 담화문에서 말했다. “지난 회기 구제부 사건으로 교단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절한 처결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가고 있다. 아이티 구호에 총회산하 교회가 협력하여 이웃을 섬기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번 긴급재난구호는 교단의 응집력과 한국교회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0년 2월 8일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는 총회장실에서 모임을 갖고 부총회장 김삼봉 목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총회임원회, 구제부, 총회세계선교회, ‘해피나우’(HAPPY NOW) 등 아이티 구제와 관련된 총회산하 주요기관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만큼 특별기구로 대책위원회를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새롭게 조직을 정비했다. 또한 각종 결재는 신속을 요구하기 때문에 위원장 김삼봉 목사, 실무위원장 박정하 장로, 구제부장 김진명 목사, 총무 이치우 목사, 서기 하귀호 목사, 회계 임석규 장로 협력위원장 남태섭 목사 등이 논의하여 진행하도록 했다.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위원장 김삼봉 목사)는 5월 3일 총회장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사업계획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날 서기 하귀호 목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전체 아이티 돕기 총 모금액은 29억 6866만원이라고 밝히고 이중 4차에 걸쳐 5억 7869만원이 지원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제1차 선발대를 비롯하여 의료구호단, 복구단, 특파원 등을 잇따라 아이티에 파견하여 3월 26일 마침내 총회장과 따발레시 시장이 5필지 13.5에이커(1만 6500평)의 토지를 50년 사용 조건으로 무상대여 받았다고 설명했다.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는 6월 7일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아이티 재건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총회차원 프로젝트 기초설계도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제이플러스 건축사사무소 임정택 대표는 교육을 통한 미래성장의 원동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기초지식을 형성한 다음 대학교육의 전문 인력 양성에 목적을 두는 비전을 설계도에 최우선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총 1286평에 5층 규모로 짓는 복합건물 교육관에는 유치원과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배치되고, 섬김관에는 빵공장 대학교육과 연계한 실습장 슈퍼마켓 농구장이 들어선다. 사명관에는 병원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등이 배치될 예정이다. 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와 해피나우는 7월 21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따발레시 현지에서 아이티 비전센터 착공예배를 박원영 목사(해피나우 사무총장) 사회로 드렸다. 총회장 서정배 목사, 총회서기 남태섭 목사 등 총회관계자와 따발레시장·부시장, 현지 목회자, 기업인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드린 기공예배는 지진으로 인해 심신이 곤고한 현지인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는 평가가 높았다. 총회장 서정배 목사는 말했다. “아이티공화국의 지진은 아이티 국가의 아픔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이다”고 위로하고 “한국 교회 특히 예장합동은 교육시설 뿐 만 아니라 아이티 국민이 원하는 병원, 교회, 빵공장 등도 건설하여 아이티 국민이 힘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2011년 9월 19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회 총회는 아이티공화국 대지진 구호와 관련하여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의 ‘목적헌금 전용’을 조사하기 위해 임원회에 맡겨 조사처리위원 7인을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감사부(부장 남승찬 장로)는 지난해 총회산하 기관들이 총회의 허락 없이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30억 원을 모금했지만 아이티 재난구호에 상당부분 쓰이지 않고 전용되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사업집행에 구제부를 제외하고 총회임원회가 주관하여 아이티에 비전센터를 건축하기로 결의하고 총 12억원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비전센터 건축과 관련, 법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고, 월권적이고 무법적인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중지하고 해산할 것을 요청했다. 총대들은 덧붙여 감사부 보고는 받고, 잘못된 집행은 반드시 바로잡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로 가결했다. 총회장 이기창 목사는 목적헌금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목적대로 집행해야 한다며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제96회 총회에서 “아이티구호헌금전용문제조사처리위원회”(위원장 김연도)를 조직하여 조사하도록 하였으나 미진하여 97총회에서는 그 명칭을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로 변경하고 위원을 7명에서 9명으로(목사5인, 장로4인) 2명을 증원하여 강도 높은 조사 및 사법처리권한을 부여하여 조사처리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하지만 97, 98회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속 시원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99총회(백남선 총회장)에서는 본위원회 위상을 회복시켜 제97회 조사위원장이었던 신규식 목사에게 아이티구호헌금전용의혹사법처리전권위원회를 다시 맡겨 처리키로 결의함으로서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피기 시작했다. 그간의 소득이라면 아이티구호헌금 사법처리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 아이티오나빌기독교학교 건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법처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구호헌금 7억여 원 가운데 5억여 원을 학교 건립에 지원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14일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아이티 사건과 관련 (가칭)평양노회(노회장 김진하, 서기 박원영)의 헌의가 눈에 띈다. ‘아이티 건 총회결의 무효와 위원회 업무상 권한 남용, 직무 위반에 대한 특별조사의 건’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신규식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총회로부터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았음에도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것이 지금 총회의 현실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계급장만 달아주고서 빈총 들고 전장에 뛰어 들게 하는 격이어서, 적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꼴이다. 실제로 피고소인 등 관련자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고, 다른 방법이나 전술, 전략을 활용할 수 없었다. 구호헌금 전용사건 관련자가 2015년 4월 30일 총회회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본 위원회 위원장에게는 공갈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고, 심지어 총회에서 아이티관련 발언을 하였던 윤 모 목사는 아들 결혼을 앞둔 시점에 피고소인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공갈 협박을 당하고 아이티 문제로 장모가 육교에서 떨어져 자살 했다는 등의 소문을 퍼뜨려 힘들게 하며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지 아니하면 ‘자식 결혼식장에 가서 피켓시위를 하겠다’, ‘당신 교회에 가서 1인 시위 하겠다’ 등의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서 피고소인의 요구대로 하기로 하고, 아들 결혼식이 끝난 후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주간인 2015년 5월 6일자 기독신문 6면 하단에 300만 원짜리 광고를 냈다.” 많은 어려움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제99회 총회(총회장 백남선)의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신규식 목사는 9월 14일 대구에서 열릴 제100회 총회에 다음과 같은 사항의 아이티 구호헌금 전용 관련자 처벌을 청원하려고 한다. 아이티구호헌금 전용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a. 포스건설과의 도급계약 당시 총회장 서정배 증경총회장과 책임이양각서 작성 당시 총회장 김삼봉 증경총회장 두 분의 증언에 의하면 두 분은 건설도급계약과 이양각서 작성의 의미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변 인사들에 의해 서명에 응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구호헌금”의 지출을 결의하고 시행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구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나 감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위원회는 생각한다.b. 당시 “해피나우”의 사무총장 박원영 목사가 아이티구호헌금의 지출을 기안하여 “총회긴급재난대책위원”에 요청하면 실무위원장 박정하 장로, 실무위원회서기 하귀호 목사, 총회총무 이치우 목사, 실무위원회회계 임석규 장로, 협력위원장 남태섭 목사등 5인이 지출에 대한 결의를 하였고, 결의에 대한 행정은 총회 사무국(기조실) 담당직원 ? 차장 ? 국장 ? 총회총무의 결재 후 재무과로 이첩되었고 재무담당자는 지출에 대한 결의서를 작성 하여 재무차장 ? 총회 총무의 결재를 득한 후 “한민족사랑네트워크” 통장으로 계좌 이체하였다.c. 아이티정부와 턴키프로젝트 임대협약서 작성 직전 현지 상황이 “아이티비전센타”를 건축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됨을 직언한 김영화, 이성수 선교사의 징계를 주도한 “GMS선교사의 반총회적 행위조사처리위원회” 위원장 박정하 장로, 서기 남태섭 목사, 회계 윤정길 장로, 위원 임석규 장로 이상 4인의 책임도 반드시 지어야 할 것이다. 불의가 판을 친다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은 말씀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15-09-10
    • G.OPINION
    20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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