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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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녀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39 ~ 57세)의 18년을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가르침을 유배지에서 편지로 보냈다. 다산은 두 아들(학연, 학유)과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18년이 넘는 유배지에서도 자녀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다산은 편지로 가족과 정을 나누고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였다. '근과 검을 유산으로'는 부지런한 생활 자세와 근검절약의 생활 자세를 당부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가난한 가정은 물론 여유 있는 가정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단절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다음의 글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第一信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竹露茶)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우두봉(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 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물 소리에는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적소(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끌고 와 이 악문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욱하게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第二信
 
이 깊고 긴 겨울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에다 무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해 주더니 이제 그 중 큰놈 몇 개를 뽑아 너와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밤을 새워 무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고 유배(流配)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어루어 시경강의보(詩經講義補)를 엮는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사선재(四宣齋)에 앉아 시(詩) 몇 줄을 읽으면 아아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 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내가 벼슬살이를 못 하여 밭뙈기 얼마만큼도 너희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오직 글자 두 자를 정신적인 부적으로 마음에 지니어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거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 때 할 일을 저녁 때 하려고 미루지 않으며, 밝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천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하고, 어린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 드는 일을 하고, 병이 든 사람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 길쌈을 하기 위해 한밤중(4경)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집 안의 상하 남녀 간에 단 한 사람도 놀고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또 잠깐이라도 한가롭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나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까 여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옷을 만들게 되면, 당연히 곱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지 않고 투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술 안으로만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함은 참됨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동료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주먹덩이를 삼키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구경하고는 “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그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한 사람 및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자 아니고는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제일총신인(第一總神人)이라 부를 수 있는 김승동 목사(구미상모교회)도 총신신대원 96회로 졸업한 뒤 미국에서 목회하는 아들 김인집 목사에게 이 시대의 동료 목회자와 후배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될 목사의 의무와 사명에 대해 다산 정약용처럼 편지로 들려주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인생을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감격과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다는 확신 앞에 단 한순간도 내 가슴에서 감사함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내가 까까머리 어린 학생 때 대구지역에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강타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감격 가운데 주의 종으로 서원하였던 장면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결국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다. 내가 처음부터 그 서원을 이행하려 했으면 네 엄마가 이토록 고생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구나. 아니, 어쩌면 일찍이 서원한 그 길을 걸었더라면 지금의 네 엄마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이런 순간도 없을 것이다. 돌아 돌아서라도 결국 목회자의 길로 왔기에 네 아버지로서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게 되는구나. 쉼 없이 달려오는 목회의 여정에서, 너에게 그동안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글 하나 변변히 남기지 못해 미안했는데 이렇게 너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먼저 주님께 감사드리고, 늦게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지 모르겠다.
아들 인집 목사에게!
네가 우리 가정에 아들로 태어나 주어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 모르겠다. 네 아래로 세 명의 여동생을 키우며 힘겨운 사모의 사역을 감당하는 네 엄마에게 네가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음에 주님께 한없는 감사함을 드릴 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석으로 졸업할 때는 아버지의 목회에 큰 기쁨이 되었으며 미래에 가문의 영광을 이룰 것으로 믿어 감격했었다. 그러나 너는 포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學軍士官 또는 학군단이 설치된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선발하여 군사교육을 실시하고 임관종합평가제를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되면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 훈련을 받으면서 해마다 원단금식수련회에서 주의 종으로 서원하며 헌신을 준비하고 있었지. 네가 장차 큰 사업가로, 훌륭한 장로로 성장해 줄 것을 기대했던 나에게 어느 날 네가 주의 종의 길로 가겠다고 할 때 나는 단번에 안 된다고 했었지. 하지만, 너는 굽히지 않고, “세상에 이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저는 하나님께 이미 서원했으니 이 길을 가겠습니다” 라며 단호하게 결단했었지. 그 날 너에게 목회의 길을 허락하면서 사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내가 그래도 자식 보는 앞에서 아버지로서 목회자로서 최선의 삶을 살았구나’하는 한없는 위안과 용기를 얻었단다. 해병대 장교로 포항에서 근무할 때, 상모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부대를 방문했을 때 최고의 모범 장교의 부모님이 오셨다며 세계 최고수준의 해병대 의장대 사열을 받았을 때 정말 꿈만 같았고, 자식 둔 자부심을 당회원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아들아!
제대한 그 해 총신신대원에 입학하고 96회로 졸업하면서 왕성교회 부교역자로 잠시 머물다 미국 리버티 신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 너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 주고 열방을 품을 수 있도록 마음껏 축복해 줄 수 있어서 아버지로서 정말로 마음 뿌듯하였다.
아들아!
해외에서 공부하고 학위 받는 것이 절대로 목회에 자랑이나 힘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다른 길은 몰라도 목회만은 영짱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교훈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아버지는 우수한 대학도 나오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성령을 체험하고 난 후에는 강력한 영적 리더십을 은사로 받아서 내 기억에 지금까지 두 사람이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리더가 안 되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절대로 머리에만 머무르는 지식의 전달을 앞세우지 마라. 네 가슴에서 나오는 성령의 음성을 전달할 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어찌 학위도 변변하지 않고, 인물도 출중하지 못한데 어떻게 영남지역에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는지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 내놓을 만한 대단한 목회 철학도 없고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지식도 없으나, “내게 주신 여호와의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 12)하는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 제가 받은 이 엄청난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합니까?” 날마다 주님께 묻고 물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왔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아!
네가 목회자로서 먼 미국에서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종종 안타까움으로 진단해 주는 네 말에 내부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정로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한기총 단군상 특별대책위원장으로 전국을 돌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에도 너는 어두운 영계의 현실을 보면서 나에게 한없는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철폐하는 일을 충성스럽게 섬기면 훗날 너의 목회 현장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주실 것이라 믿으며, 그것이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임을 확신하며 달려왔다. 결국 8년간의 긴 사투 끝에 더 이상 공공장소에 단군상을 세우지 못하도록 법으로 결정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지.
아들아!
SBS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 4부작의 방송을 통해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을 조직적으로 조롱하고,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미화하는 상황에서 방송사를 대항하여 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도 모든 다른 가족들은 극구 말렸지만, 너만은 “아버지, 순교를 각오하고 하십시오! 아버지 아니시면 누가 하겠습니까? 이제 단군상 대책위원장도 내려놓았으니 하나님은 이 때를 위하여 아버지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라며 기어코 하라고 격려했었지. 그 때 나는 네가 내 아들이지만 ‘정말 목회자로 잘 자라고 있구나’하며 선배 목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아들아!
요즘 한국교회가 기독교 선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작년에도 내가 부총회장에 출마하여 제비뽑기에 떨어지면서 교단의 정치를 보면서 정말 가슴 아픔이 있었다. 법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양심보다도 정치가 앞서고 있고,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모멸감에 사람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당시에 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보낸 이메일에 “아버지, 아들로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제 마음에 심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총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어도 결코 흘러가는 물줄기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총회 정치권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목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감은 내려놓은 지 벌써 오랜 듯하고, 도덕성과 양심에 때가 묻어 정로에 서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요사이 젊은 목회자들이 어떤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지를 모르고, 자신들이 휘두르는 칼이 교단 내에서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영계를 얼마나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둔감해져 버렸습니다. 아버지, 이제 목회 현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시어 명예롭게 은퇴하십시오. 얼마 전 미국 동부의 총신동문들이 모였을 때, 우리의 모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멈추시고 더 이상 오물과 시궁창물이 묻을 곳으로 가지 마십시오. 저는 아버지께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명예롭게 은퇴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내 가슴에 비수와 같이 꽂히는 너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아들에게 보여 준 진실한 목회의 현장이 아들을 강력한 목회자로 만들어가고 있는데, 제 아버지를 향한 신뢰를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다짐이 내 가슴을 강타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언젠가는 분명히 나에게 주어진 인생 무대에서 나에게 맡겨진 삶의 드라마를 마감하고 내려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벌떡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오래도록 쳐 준다면, 그 현장의 감격과 흥분 속에서 “아버지의 아들의 자부심을 갖고 나도 멋지게 이 가문을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둘째 손자가 100일이 되었을 때 한번 오고는 그 갓난아이가 4학년이 될 때가 되어서야 두 번째 방문하는 무심한 할아버지를 용서해라. 할아버지가 영어를 못하니 자기들이 한국말을 잘 해야 할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열심히 한국말을 익혀 이중 언어를 나름 완벽하게 할 수 있게 준비한 손자들이 참 기특하구나. 이번 여름휴가에는 기필코 삼대가 만나서 몇날 며칠을 밤을 새면서 이야기 할 꿈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아들아!
아버지가 달려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목회선배이며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아들이며 후배 목사인 너에게 하고픈 말 몇 가지를 정리하며 편지를 마무리하려 한다.
첫째, 주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인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주님께로부터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미 주님이 허락하신 복도 잘 누리지 못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둘째, 가정에 최선을 다해라. 지도자는 자신의 가정에서 인정받고 존경받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펼칠 수 없다. 작은 내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으로서 존경받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어찌 리드할 수 있겠느냐?
셋째, 주님의 일이라고 너무 욕심을 내어 열심히 하려하지 마라. 역설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과 비교한다거나 혹은 내 욕심으로 성령님을 앞서서 행하면 절대로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낙오되고 말 것이다. 너도 초등학교 운동회 때, 종이에 쓰인 사람 찾아서 결승점으로 뛰는 미션경기를 해보았지 않느냐? 동네 이장님이 적혀있으면 그분과 함께 손잡고 결승선까지 달려야하지 않느냐? 마음이 바빠서 혼자 달려가고 할아버지가 뒤에 혼자 남겨지면 결국 꼴등인 것을 경험하지 않았느냐?
아들아!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차 없이 포기해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간절히 소망하고 겸손히 순종해 나가야한다. 자신의 몸과 가정을 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웬만큼은 가능한 것이지만,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성령의 지시하심 외에는 말하지 않는 것은 성령님과의 친밀한 동행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이제 목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지만, 너는 이제부터 가장 힘차게 달려야 할 때이다.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은 시간 앞에서, 나를 나 되게 해 주신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며, 매순간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다. 아들아, 너의 삶과 사역을 축복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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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제일총신인 김승동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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