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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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 잡스 vs 전병욱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소셜 네트워크' 아론 소킨 각본, 마이클 패스벤더 & 케이트 윈슬렛 주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스티브 잡스'가 오는 10월 9일 북미 개봉을 확정 지으며, 티저 예고편을 5월 18일 전격 공개했다.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고객에게 영화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단순히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티저 광고(Teaser廣告)는 요소를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관심을 끌려고 하는 상업 광고의 한 방법이다. 이번 예고편에서는 "당신은 프로그램 개발 못 해. 엔지니어가 아니잖소"라는 남자의 말에 "연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난 차고에 앉아 미래를 창조했소"라는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예고편 영상은 "그 누구도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라는 말로 끝난다.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 청중을 바라보는 잡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라. 사람은 애초부터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냉철한 자세에서 바라볼 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쟁회사였던 IBM이 '애플은 썩은 사과(애플)'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자 애플은 다음 날 '애플은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라고 기사를 냈고, 이때부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과를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듯한 그림의 애플 회사 마크가 만들어졌다. 2005년 아직 건강할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연설을 했다.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985년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겠느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잡스는 애플의 성장을 위해 펩시 사장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할 때,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인생 끝날 때까지 설탕물을 팔겠나, 나한테 와서 세상을 바꾸겠나?"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가운데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 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 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에야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그림으로 된 화면 위의 물체나 틀, 색상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을 어떠한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를 위한 GUI(그래픽 사용자 접속기:graphical user interface)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했고, 1985년 경영분쟁으로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된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고,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던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대해 애플은 공식성명을 냈다.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이룬 사람이었다.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아주 확실하게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스티브 잡스 같은 인생 여정을 사는 목사가 있다. 전병욱 목사(田炳旭, 1963년 ~ )다. 그는 총신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다시 재수해 연세대 경영학과를 입학해 졸업했다. 목사가 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면의 꿈틀거리는 소명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한 갈망을 접고 목사가 되기 위해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총신 대학원 재학 때 신반포교회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7년을 재직하는 가운데 50여 명의 대학부를 500여 명으로 부흥시켰다. 그는 그 교회에서 이화여대 사범대 출신의 부인도 만났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삼일교회 당회는 후임 목사 청빙을 놓고 어려움을 겪던 차에 당시 신반포교회의 부목사로 청년 목회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전병욱 목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4년 세워진 삼일교회는 한때 용산 일대에서 교회당을 가진 어엿한 교회였다. 그러나 1976년 7월 16일 김영규 목사가 2대 위임 목사로 부임한 이후 90년대 들어 출석교인 80여 명의 약한 교회가 되었다. 그러다 김영규 목사가 목회보다 칼빈신학교에 전념하게 되어 1992년 사임하자 담임목사마저 1년 이상 공석이어 교회는 더욱 어려웠다. 1993년 12월 25일 그의 나이 31세 때 어려운 삼일교회의 담임이 된 전병욱 목사는 부임 당시 80여 명에 불과했던 삼일교회의 예배 참석자 수를 2008년 10월 기준으로 1만 6천여 명까지 성장시켰다. 15년 만에 200배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늘어난 교회 출석자들 중 청년층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대한민국 개신교계 청년층 목회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0년에는 2만 3천여 명까지 늘어나고 특히 20~30대 청년층이 전체 신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교회’로 우뚝 섰다. 세계에서 청년이 제일 많이 모이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 복음을 제일 열심히 전하는 복음으로 활활 불타는 교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는 목회에 있어서 모든 일에 선두에서 사도 바울처럼 먼저 모범을 보였고 교회 재정과 행정에 맑은 투명성을 실천했다. 그는 헌금의 절반 이상을 선교와 구제비용으로 사용했다. 그 자신을 위해서는 한 달 100여 권의 책 구매를 하고 카니발 승용차를 타고 설교 준비와 목회 행정에 지치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호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1년 100회 이상의 집회 강사 사례비도 교회에 전액 헌금했다. 그는 전국 미자립 1000교회에 매월 100만 원씩 후원을 위한 저수지 교회 1000억 기금 마련을 위해 단돈 10원도 아끼고 투명하게 처리했다. 그는 교회를 사임하고 홀연히 떠나는 2010년 12월 21일까지 헌금만으로 마련된 현금 252억 원이 교회 통장에 예금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청춘을 바친 교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요즘 문제 교회의 관행과는 전혀 다르게 교회세력 간의 갈등이나 재정적 다툼과 협상을 하지 않았다. 칩거하며 가족과 친척 30여 명이 모이는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숙과 회개와 기도와 묵상으로 보낸 지 1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17일 전병욱 목사는 홍익대학교 캠퍼스 근처 마포구 상수동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건물 2층에 홍대 근처의 새로운 교회,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뜻으로 홍대새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그것은 그의 메시지를 사모하는 교인들의 열망을 외면할 수 없고 목자가 없이 떠도는 그들의 안타까움을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100여 명으로 시작한 홍대새교회가 2년여에 2300명까지 성장했다가 작년 10월부터 느닷없는 삼일교회와 외부 불순세력의 준동(蠢動)에 1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삼일교회 안정과 성장을 위해 사임한 전병욱 목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2012년의 2만 3천여 명의 삼일교회가 현재는 5천 명에서 6천 명 사이의 교인들이 회집한다고 한다. 주일날 삼일교회 근처를 지나다보면 전병욱 목사 당시의 활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 여파로 근처의 집값도 떨어졌다고 한다. 전병욱 목사는 말한다. “제가 교회 이름을 홍대새교회로 정한 것은 정말 새 피조물의 새로운 교회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삼일교회 교인들이 저희 교회로 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떤 삼일교회 교인한테도 홍대새교회로 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그 사실을 고발하는 교인이 나와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지금 같이 있는 부목사도 그 교회에서 쫓겨나 갈 데가 없어 같이 있는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잘 되고 교회가 안정되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청춘을 바친 교회가 아닙니까. 그런데 엉뚱한 교회가 덕을 보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게다가 왜 요즘 복음의 은혜가 아닌 율법주의로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교회가 귀를 기울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으로 용서와 회복이 있어야 하는데 율법으로 정죄와 분열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해보니 교인 1000명만 넘으면 그 하는 일이 1000명이 하는 일이나 3000명이 하는 일이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설교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도 죽을 쑬 때가 있습니다. 준비를 해도 설교가 그렇게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취미가 자전거 타기가 아니라 독서입니다. 자전거 타기나 도보는 독서와 설교준비와 기도로 힘들 때 쉬고 재충전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저도 이제는 자연적인 나이가 들어 힘이 예전만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고 성숙해졌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50이 넘으니 늙은 겁니다.” 세계의 문화를 바꾸는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의 직관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20~30년 동안 쌓인 문제의 정의와 해결에 대한 경험의 축적에서 스티브잡스가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경영의 직관이 나올 수 있다. 결국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도전의 경험이 쌓인 50대 경영자의 사고에서 위대한 직관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해결의 경험을 쌓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인내가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20대부터 애플을 시작으로 중간에 경영권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넥스트컴퓨터, 픽사 등을 설립하며 도전의 경험을 멈추지 않았고, 다시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잡스는 인류의 문화를 변화시킨 위대한 제품인 아이폰을 그의 직관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직관의 소유자는 놀랍게도 우리의 역사 속에도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장군이 당시 다른 무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가며 이를 기록하는 습관이었다. 당대의 라이벌이라 불리웠던 원균은 이러한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과 용맹에만 의존한 원균 장군과 20년 이상의 세월을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문제 정의와 해결의 경험을 쌓은 이순신 장군의 직관의 차이는 임진왜란에서 전패와 전승이라는 기록으로 증명됐다. 인내를 통해 획득한 문제 해결의 많은 경험은 직관을 낳는다. 다시 말해 문제해결의 경험이 직관을 만들어내고 경험을 쌓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 인내를 통해 사람을 얻어 리더십을 곤고히 할 수 있고 또 그릇을 키워 승자가 되기 위한 시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이순신 모두 시대와 상황은 달랐지만 성공의 원칙은 똑같았다. 전병욱 목사 역시 이제 직관을 발휘할 나이 50대에 이르렀다. 스티브 잡스는 쫓겨난 애플에 복귀해 애플을 세계 제일의 회사로 키웠다. 전병욱 목사는 사임하고 떠난 삼일교회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지만 그의 신앙과 인내로 다져진 직관과 설교 능력은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목회 성공의 업적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볼 수 있듯이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단지 복음 전파의 사명만을 위해 살 뿐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2015-06-19
    • G.OPINION
    2015-06-19
  • 제100회 총회 선거와 안개
    6월 10일 제100회 총회를 이끌어갈 총회 임원 후보들의 등록이 마감됐다. 마감일 마감 시간이 수요일 오후 5시라 삼일예배에 마음이 바쁜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서기 김영남 목사는 봄노회에서 추천을 받은 16명의 후보 가운데 15명이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날 등록을 못한 후보는 부총회장 후보에 나선 강태구 목사(함남노회)였다. 누군가가 그의 총대 경력 10회 가운데 한 번의 결격 사유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2012년 제97회 총회 당시 정식으로 총대 명찰을 받고 입장을 했다. 그러나 세간과 총회를 들썩이게 한 문제의 총회장 정준모 목사가 현장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강태구 목사의 총대직을 박탈하고 퇴장시킨 기록이 너부데데하고 자식 복이 많은 강태구 목사의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그에게는 후보 등록 시 내는 적지 않은 발전기금을 절약하는 축복을 얻는 기회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만나본 후보들의 눈매는 저마다 범상하지 않게 살아온 삶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믿음으로 살아온 다양한 삶의 단면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단면에 여러 개의 나이테가 있듯이. 당연직으로 올라가는 후보들을 제외하고 새로이 투표를 받아야 하는 목사부총회장에는, 총회 정치의 달인 김선규 목사(가칭 평양제일노회), 한국교회 세계 제일의 어린이 선교와 교육의 대가 김종준 목사(가칭 동한서노회) 부흥의 작은 거인 장대영 목사(평동노회) 등이 등록했다. 장로부총회장은 장로회의 관례적인 조정을 거친 신신우 장로(전남노회)가 단독으로 나섰다. 부서기에는 법과 논리의 알밤 고광석 목사(동광주노회), 뚝심의 오뚝이 윤익세 목사(충남노회), 남다른 정치 감각을 지닌 이형만 목사(목포서노회), 서현수 목사(서전주노회)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부회록서기는 김정설 목사(인천노회)와 하재삼 목사(김제노회), 부회계는 남전도회와 장로회의 뿌리 깊은 나무 양성수 장로(서울노회)가 등록을 마쳤다.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 업적(근래 여타의 총회장들은 부정적인 인상으로 얼룩져 있다)의 산물인 총회회관 로비에서 만난 김선규 목사와 윤익세 목사의 표정은 느긋하고 밝아 보였다. 이어서 만난 막강한 선거관리위원회 심의분과 위원장 서광호 목사의 말을 아끼는 모습에서 후보 등록자들의 앞길이 안개 속에서 순탄치 않을 느낌을 받았다.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가 함께 쓴 여행지침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에 이런 글이 있다. “영국인 마이클 브라운과 케이트 로저스는 2001년 스페인의 히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수로 제노바를 예약한 상태였고, 그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알다시피 제노바는 이탈리아에 있다. 지금 밀라노 상공을 통과하고 있다는 조종사의 안내 방송을 들었을 때도 그들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걸려 있는 이탈리아 국기는 그저 아이스크림 가게 깃발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요금으로 낸 스페인 화폐 페세타를 버스 기사가 거절할 때 비로소 두 사람은 옆 승객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어느 나라죠?' 유로화가 도입된 후 휴가를 갔더라면 그들은 2주 내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어둠 속을 헤맬 때, 어둠이 한순간 탁 걷혀 시야가 밝아지는 일은 없다. 초보자에게 안개는 어둠이나 마찬가지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철학적 요소다. 즉 사람들이 인식하는 바로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자 정보가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일찍 도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어떻게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지도의 세계에서 벗어날까를 탐구한다. 우리는 가끔 익숙한 길에서도 길을 잃는다. 왜 그럴까? 잘 알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머릿속' 지도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기 때문이다. 안개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시적이고 아름답지만, 막상 내게 닥치면 까막눈이 된 기분이 될 것이다. A4용지 10장 분량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선거규정》을 비유한다면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적용하게 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규정일 것이다. 한 마디로 선거관리위원회는 밀실에서 알아서 멋대로 하고 후보자들은 안개 속에서 알아서 기어야 되는 법이 총회 선거규정이다. 빠른 시일 안에 선거규정이 일반 선거법 수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거는 시대착오적인 구슬 뽑기는 폐지하고 후보 모두의 검증된 신상을 알고 발언과 주장을 듣고 판단해 투표하는 직선이 되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의 우문현답(愚問賢答)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 총회선거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여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대리자를 뽑는 신성한 위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2015-06-18
    • G.OPINION
    2015-06-18
  • 기각과 각하 사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준세이(더케노우치 유타카)는 평생 잊지 못할 여인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녀의 이름은 아오이(진혜림). 준세이는 아오이와 한, 30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성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아오이의 소식이 준세이에게 전해진다. 아오이가 살고 있다는 밀라노로 달려가는 준세이. 이미 그녀 곁에는 다른 남자가 있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준세이는 자신이 복원하던 그림이 누군가에 의해 찢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튜디오마저 문을 닫게 되고, 준세이는 도쿄로 돌아온다. 에쿠니 가오리, 쓰지 히토나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이별한 커플 준세이와 아오이의 일상을 그리고 있으되, 이들이 얼마나 과거에 얽매어 있는지 절절하게 보여 준다.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옛 시간으로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10년 뒤의 재회’라는 거짓말 같은 약속을 믿는 커플의 이야기다. 끝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 어떻게 해야 가슴 속의 빈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 .. 나는 과거를 뒤돌아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돼. 아오이.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나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준세이는 아오이와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보지만, 장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 무렵 친구로부터 아오이가 자신을 떠나게 된 비밀을 알게 된 뒤 준세이는 밀라노에 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띄운다. 답장을 기다리던 어느 날 피렌체의 스튜디오로부터 연락이 오고, 준세이는 피렌체로 온다. 드디어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날, 준세이는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렌체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랑이란 냉정과 열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열정으로 다가가는 순간에도 냉정이란 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도쿄로 다시 돌아간 '쥰세이'는 친구 '다카시'로부터 '아오이'가 겪었야 했던 아픈 과거들을 듣게 된다. 그녀의 임신과 유산. 그의 아버지가 '아오이'에게 준 정신적 상처들을 '쥰세이'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밀려오는 죄책감과 회한, 그리고 결심. '쥰세이'는 10년 전 "아오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오른다. 혼자만의 기억일지도 모르는 10년전 약속.....그 약속을 위해 '쥰세이'는 400개의 성당 계단을 올라간다. 진정한 사랑을 냉정함으로 가장했던 '쥰세이'가 "두오모 성당"에서 만난 열정은 누구일까? 지나친 사랑은 때론 독이 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워지지 않는다. 자신이 머물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 밖에 없다. '밀라노' 앙티크 보석 가게. 이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오이'. 도쿄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재원이지만 그녀는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10년의 세월 동안 잊었다고 믿었던 사람 '쥰세이'. 하지만 '쥰세이'의 편지 한 통에 '아오이'는 자신이 숨겨온 열정의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날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쥰세이를 발견하는 '아오이'.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가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오이'는 자신이 머물 곳이란 결국 '쥰세이'의 가슴 속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였다"라고 그녀의 이 짧은 고백 속에 어쩌면 기나긴 세월을 돌아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는 그녀만의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주 사랑하는 남녀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처럼 제자교회와 길자연 총장에 대해 언뜻 판단하기에 어려운 재판 판결이 있었다. 두 판결에 대한 기각(棄却)과 각하(却下) 사이의 용어 때문이었다. 기각은 법원이 소송을 심리한 결과 이유가 없거나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도로 물리치는 일이고, 각하는 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당사자나 기타 관계인의 소송에 관한 신청을, 형식적인 면에서 부적법한 것으로 하여 물리치는 재판이다. 의정부지원 고양지원은 6월 11일 전 담임목사 정삼지 측에서 “제자교회는 서한서노회”라며 제기한 [노회소속확인의소](2014가합53592)에 대해 원고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6월 12일 202호에서 오전 9시 50분에 열린 결심공판에서 원고 총신대총장 길자연 목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2014년 교육부가 길 목사의 칼빈대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총신대로 보낸데 대해 길 목사가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차례로 제기함으로 진행되어 왔다. 기각과 각하의 차이는 신청이나 청구에 흠결이 있으면 각하, 그러나 적법하지만 실체적 내용이 없으면 기각이라는 사실에 있다. 기각은 한마디로 패소, 즉 재판에서 진 거다. 각하는 절차상의 흠결, 즉 부적법으로 재판 자체를 배척하는 것이므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이다. 다시 말해 제출한 서류로는 소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결할 수 있는 재판을 할 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각하와 기각에 대하여 더 살펴보면, 각하는 ‘소장의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경우'(민사소송법 제254조) 그리고 ‘소가 부적법한 경우'(민사소송법 제219조) 법원은 각각 명령과 판결로 각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기각은 원고의 주장 자체에 정당성이 없거나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가 없을 때 판결이나 결정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제자교회 양측의 재판은 정삼지 목사 측의 [노회소속확인의소](2014가합53592)는 각하가 되었기 때문에 판결이 나지 않은 미해결의 상태이다. 그러나 총신대 길자연 총장 측의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청구는 기각이 되었기 때문에 길 목사 측의 패소로 판결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기각과 각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경계와 결정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잠언 30:18-20 2015-06-16
    • G.OPINION
    2015-06-16
  • 제자교회 위임식
    2015년 6월 13일(토) 오전 11시 목동 제자교회당에서 위임예식이 있었다. 낙타가 전하고 책임자들이 직무를 유기해 퍼진다는 메르스의 불안이 스멀거리는 전대미문의 여름이 왔다. 경각심과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관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를 거치며 스스로를 여론에서 ‘자가격리’시켜 왔다. 그 결과 메르스는 청와대 밖 먼 곳에서 풍문으로 떠돌았다. 권력 내부의 폐쇄주의가 사태를 더 곪아터지게 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여름 아침은 오감으로 맞을 일이다. 살에 닿는 햇볕이 커피처럼 뜨겁다. 팔다리가 그을려도 장밋빛 하늘에 마음은 선선하다. 심규창 장로가 어제 전화로 오라는 초청 시간 10시 30분경에 목동 제자교회에 도착했다. 여느 교회 예식과 달리 교회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너른 포장 마당에 본당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로 그들먹했다. 본당에서의 예식에 앞서 주차장에 마련된 막사에서 간단한 식전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광목 색 막사 앞자리에 김만규 목사, 박정하 장로, 총회 부회계 이춘만 장로, 기독신문 이종찬 목사 등이 긴 붉은 머풀러를 목에 드리우고 나타났다. 간단한 행사를 마치고 위임식 순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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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6
  • 충남노회 속회 전말(顚末)
    공동묘지 이장 공사가 진행되는 5일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에피소드 식으로 담아낸 이문구의 자전적 소설 ≪장한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네들은 자초지종 지켜봤거나 최소한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네들 말을 사실로 알아 무방할 것이었다. 깊이 사무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뜻의 제목 ≪장한몽≫의 죽음과 삶이 뒤섞이는 공동묘지 이장 현장에서 도시하위계층인 등장인물들은 일이 벌어진 전말을 통해 ‘삶의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듯 충남노회에서 벌어진 일의 전말을 통해 우리도 총회의 진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충남노회(노회장:임민순 목사)는 2014년 11월 17일 태안 성신제일교회(임민순 목사)에서 제131회 제1차 임시노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임시노회 소집 적법성 논란과 총회재판국의 이상규 목사 등에 대한 시벌과 관련해 회원들 간의 이견 차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모임에서는 이상규 목사가 “서기직을 사임한 적이 없으며 내가 소집을 안했기 때문에 임시회는 불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노회장 임민순 목사는 “서기 본인이 서기직을 보류하겠다고 했고, 앞서 노회에서도 부서기가 서기를 대행했다”며 특수한 상황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했다. 윤익세 목사는 “총회헌법에 따라 특별한 사건이 있을 경우에는 목사 3인 장로 3인의 청원에 따라 회장이 임시회를 소지할 수 있다”며 합법적인 임시회라고 주장했다. 윤 목사는 또 서기 이상규 목사는 이미 총회재판국 판결에 따라 공직이 정지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3월 30일 총회재판국(국장:배광식 목사)은 전체회의를 열고 충남노회 윤익세·임창혁 목사의 소원 건을 확정판결 했다. 총회재판국 판결 주문에 따르면, 충남노회 서기 이상규 목사는 강도권 외에 공직정지 2년에 처해졌다. 이번 사건은 제99회 총회에서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채용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충남노회가 총회 결의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총회임원회는 3월 3일 ‘제99회 총회결의 이행촉구’ 공문을 추가로 보내기도 했다. 판결문은 “3월 30일 현재까지 충남노회가 판결대로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주문과 같이 확정판결 한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상규 목사는 당회 청원 없이 강도사 인허를 불법으로 진행했다. 또한 노회 서기임에도 불구하고 회의록 변조와 불법 등이 인정되며, 서기의 직무를 남용하고 업무방해로 노회 질서를 어지럽힌 죄가 인정됐다. 또한 임원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 규정의 불법성이 인정되므로 총회 헌법과 노회 규칙대로 재실시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4월 6일 천안 여명교회(이단화 목사)에서 충남노회 제132회 정기회가 열렸다. 그러나 개회 전부터 이상규 목사의 서기직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었다. 총회재판국이 공직정지를 주문한 이상규 목사가 회원 호명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찬반 이견 때문이었다. 논란 끝에 이상규 목사의 서기직 수행건에 대해 찬반 투표 결과 서기직을 감당해야 한다는 표가 더 많았다. 이상규 목사는 이후 임원 투표에서 다시 서기로 선출됐다. 논란은 선관위원회 보고에서도 계속됐다. 총회재판국으로부터 공직정지 1년 결정을 받은 박노섭 목사가 총대 후보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찬반 논란이었다. 결국 선관위원회는 회의 끝에 ‘총회 판결문 주문에 따른다’는 원칙을 세우고, 박 목사를 총대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상규 목사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이 유효하므로 총대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기회에서는 또 윤익세 목사를 총회부서기 후보로 추천키로 했다. 겉보기에 양측이 윈윈한 것 같은 이날 노회의 선임자들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이단화 목사 부노회장:김신점 목사 신요섭 장로 서기:이상규 목사 부서기:고석득 목사 회록서기:정제충 목사 부회록서기:소대영 목사 회계:윤선현 장로 부회계:이상국 장로 ☆총회총대:이단화 김신점 윤익세 이상규 이순상(이상 목사) 우인권 신요섭 윤선현 최현수 조문상(이상 장로) ☆GMS이사:김신점 윤익세 목사 ☆기독신문이사:우인권 장로. 충남노회 제132회 정기회의 이러한 선거 결정에 대해 해당 목회자를 재판국에 제소했던 충남노회 윤익세 목사는 임원 선출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내용의 소원장을 총회에 올리고, 총회임원회 앞으로도 조사처리요청서를 냈다. 총회장은 이와 관련해 총회임원회를 거쳐 충남노회 직전노회장에게 ‘선관위 위원장이 당선 선포를 하여 임원 교체가 이뤄진 것은 잘못이며, 흠 없는 임원을 다시 선출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직전노회장 임민순 목사는 6월 5일 노회 속회 소집을 노회원들에게 통보했다. 그 통보대로 6월 5일(금) 오전 10시 아산사랑의교회(윤익세 목사)에서 모인 속회는 문제가 된 노회 임원 노회장과 서기만 선출했다. 노회장은 이단화 목사에서 임창혁 목사로, 서기는 이상규 목사에서 윤익세 목사로 교체 선출했다. 그리고 이날 속회에는 총회 임원회 소위원회로 구성된 지도위원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목사와 장로가 존경하는 부총회장 이호영 장로를 비롯해 부흥회에 능한 부회의록서기 김동관 목사, 계산에 느릴 것 같은 부회계 이춘만 장로 등이었다. 그날 새로 선출된 노회장 임창혁 목사와 서기 윤익세 목사는 그 다음 주 총회로부터 대표자 증명서와 노회 서기에 대한 사실증명서를 신속하게 발급받았다. 서기로 선출되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선 윤익세 목사는 “어떤 산이든지 넘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번 충남노회 속회는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총회의 부도옹(不倒翁) 윤익세 목사와 얽힌 충남노회 속회의 전말은 이렇다. 이제 굽이굽이 연이어진 산마다 그가 자신의 말처럼 어떻게 번번이 오뚝오뚝 일어서 넘을지 그 전말이 기대된다.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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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5
  • 전염병과 믿음의 예방
    낙타도 없는 한국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세계 2위에 올랐다.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와 멸균 안 한 낙타유 섭취를 삼가라.’ 늘 잠이 덜 깬 표정의 문형표 장관이 거느린 보건복지부에서 내놓은 메르스 예방법 중 하나다. 늘 웃는 사진을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검찰조사를 받던 피의자 성종안의 메모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진정성과 능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처음엔 병원 공개도 안 하고 마스크도 필요 없다더니만 17일 지나서야 친 동성애자 박원순 시장의 한밤중 닦달에 슬슬 감염자 병원을 공개하고 마스크도 쓰라고 하고. 이제 많은 학교가 휴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능한 대통령과 정부가 정보만 틀어쥐고 바이러스를 잡아야 하는데 괴담만 때려잡았다. 1898년 네덜란드 미생물학자 마루티누스 베이예린크는 담배모자이크병(病)을 연구하면서 세균보다 훨씬 작은 무언가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균을 막는 미세한 여과지로도 걸러지지 않았고 알코올을 넣거나 열을 가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이 정체불명 물체를 '살아 있는 감염성 액체'라고 표현하면서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뱀의 독'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였다.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에서 숱한 재앙을 일으켰다. 1500년대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옮긴 천연두 바이러스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사망했다. 1918년에 크게 번졌던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볼라 출혈열, 사스, 신종플루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전염병 출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10% 정도는 바이러스의 힘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지구상 모든 생물이 바이러스로부터 진화했고 인간의 유전자에도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미국 과학 저술가 칼 짐머는 "인간은 포유동물과 바이러스의 분리할 수 없는 혼합물"이라고 했다. 바이러스가 기후와 토양을 비롯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지구는 '바이러스 행성'이라는 얘기다. 의학이 발전하고 백신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전염병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교통이 발전하고 사람들 간의 이동이 급증하며 전염병의 전파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창과 방패의 전쟁처럼 백신을 넘어 진화하고 변종하는 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종말 시나리오 중 하나다. 인류와 전염병의 전쟁은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서막이 올랐다. 과거 소규모 집단 내 발병과 달리 급속한 확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첫 전염병은 아테네 역병이다. 대표적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430년경 역병이 유행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 역병이 고열, 염증, 구토, 궤양 등의 증상을 수반했으며 살아남더라도 기억상실증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서술했다. 당시 4년간 전염병이 돌며 아테네의 인구 1/4이 숨졌다. 역병으로 세력이 약해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며 쇠락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이 병의 증상을 기록에 남겼다. 아테네 역병은 천연두, 발진티푸스, 탄저병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19세기 대표적 전염병은 결핵이었다. 결핵은 사람의 재채기나 기침에서 나온 미세한 침방울을 통해 사람끼리 전염되는 질병이다. 수년간 사람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병을 일으킨다. 결핵으로 인해 1800년대 초반까지 유럽 인구 전체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19세기 후반 루이 파스퇴르가 백신을 발명하고, 20세기 알렉산더 플레밍이 항생제(페니실린)를 발견했다. 이후 탄저균과 결핵, 콜레라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전염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910~1911년 사이 중국 만주에서 독감이 발병해 약 6만 명이 사망했다. 1918~19년에는 프랑스에서 주둔하던 미군 병영에서 스페인 독감이 발생해 2000만 명에서 5000만 명이 죽었다. 이 전염병이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것은 스페인에서 시작돼서가 아니라 스페인 신문에 처음 보도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도 스페인 독감이 퍼져 인구의 절반 가량인 740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무오년 독감)되어 있다. 그 밖에도 1968~69년 홍콩 독감으로 전 세계 100만 명이 사망했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의해 전염되는 에이즈는 1981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의해 처음 보고된 이후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36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 명의 새로운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3500만 명이 이 병에 감염된 채로 살고 있다. HIV로 사망하는 이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이다. 전쟁에 나선 군대가 처음 적을 상대로 싸우는 싸움을 서전(緖戰)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초전(初戰)이라거나 개전(開戰)이랄 수 있다. 보통은 맨 앞의 ‘서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 이긴 사람에게는 먼저 상대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른바 기선(機先)을 잡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싸움이 도질 때 반드시 선발(先發)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는 편이다. 그렇다면 처음 붙는 싸움에서 지는 쪽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선 물리적 피해는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병력 중에서 다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이가 많이 생긴다. 지니고 있던 화력을 잃거나 적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가 우선 만만치 않다. 그러나 더 심각한 측면은 심리적으로 오그라드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다가 그것은 결국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점점 커진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일정한 전기(戰技)를 배우고 또 익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염병 메르스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만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메르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자. 첫째, 메르스는 신종 바이러스인가. 그렇지 않다. 20년 전의 낙타 혈액에서도,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낙타의 75%에도 항체가 발견됐다. 사우디인 1만 명 중 15명에게도 항체가 검출됐다(메르스에 걸린 적 있다는 뜻). 낙타 도살장 인부들의 항체 검출 빈도는 평균보다 23배나 높았다. 그동안 많은 사우디인들이 메르스에 걸렸지만 단순 감기로 알고 넘어간 것이다. 둘째, 정말 치명적일까. 그렇지 않다. 낙타에게 치명적인 메르스였다면 낙타는 벌써 멸종됐을 것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면 하(下)기도, 즉 기관지와 폐 깊숙이 파고들어 중증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어떻게 낙타에서 인간으로 전파됐는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면역력이 엄청 떨어지거나 심각한 중병의 기저질환자를 제외하면 치사율 40%는 과장된 수치다. 셋째, 쉽게 전염되나. 그렇지 않다. WHO는 메르스를 ‘낮은 전염성, 위험한 질환’으로 공식 분류한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인간끼리 전파는 매우 힘들다”고 보도했다. 잠복기에는 전염이 안 되고, 바이러스가 폐 깊숙이 서식하기에 잘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인 사스 바이러스도 폐에 공기를 불어넣는 인공 삽관 과정에서 확산됐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75%나 되고, 여전히 전염경로도 ‘밀접 접촉’이란 게 공인된 학설이다. 넷째, 공기로 전파될까. 그렇지 않다. 국제 의학계는 비말(飛沫=침방울) 전파라는 공식 견해를 지지한다. 다만 재채기를 통한 미세 에어로졸로 전염될지 모른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메르스는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병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에서 바이러스 변이는 없음이 확인됐다. 사이언스도 “주로 병원에서 폐에 있는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만큼 심각한 기침을 해야 비말로 전파된다”며 공기 전염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째, 왜 백신이 없나.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전염력이 강해 큰 시장이 형성됐다면 벌써 백신이 나왔을 것이다. 치명적인 에볼라 백신이 여태 안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비누칠만 해도 껍질이 벗겨져 죽고, 마스크만 써도 안전하다는 게 CDC(Center for Disease Control:미국의 질병통제센터)의 공식 입장이다. 전 세계에서 한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WHO 2010년 기준으로 124만 명이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연간 600만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1일 평균 교통사고가 590건에 사망자가 13. 9명에 부상자가 900명이다. 지금 메르스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지만 그 피해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가 교통사고나 흡연의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듯 메르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4-17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2015-06-09
    • G.QT
    2015-06-09
  • GMS 북한선교전략회의
    한국은 지난 4월 체코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OSJD는 유라시아 철도 운송을 총괄하는 기구다. 한국의 정회원 가입 안건이 북한을 포함한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장관회의 의제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처음엔 반대하다가 OSJD 사장단 본회의에서 반대하지 않아 만장일치로 공식 의제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이 지난 5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해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이에 질세라 한국도 OSJD 정회원 가입 표결 하루 전날인 6월 3일 사거리 500㎞ 이상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한국은 6월 4일 몽골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제43차 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반대로 정회원 가입이 무산됐다. 정회원이 28개국으로 만장일치제로 운영돼 회원국 중 한 곳만 반대해도 의안이 부결된다. 이에 OSJD 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북한 대표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OSJD 가입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미국과 중국은 6·25전쟁 이후 적대관계를 유지하다가 72년 2월 닉슨의 전격적인 방중으로 화해했다. 22년 동안 원수처럼 지내다 지친 뒤였다. 닉슨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헨리 키신저다. 그가 본 미국 외교는 일찍이 조지 케넌(1904~2005)이 『미국 외교 50년』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듯이 이상주의·도덕주의·법률 만능주의에 젖어 있었다. 그는 국익을 앞세운 현실주의 정치를 미국 외교에 접목시키려고 했다. 그것이 미·중 데탕트(긴장완화)였다. 남북한은 70년을 싸우고도 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지칠 때도 됐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닌 2015년 6월 4일 오후 1시 화성시 월문리 GMS(이사장 김재호 목사) 선교센터에서 북한선교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앞서 드린 개회예배에서 신설된 GMS 북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가 사도행전 19:20-22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이어서 묵직한 체구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길자연 목사(총신대총장)의 간략한 격려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근면 성실한 GMS 이사장 김재호 목사가 환영사를 전했다. “그 동안 17년에 걸쳐 GMS가 발전해 오는 가운데 이 예배당을 금년 1월 27일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30년 넘은 아주 낡은 예배당이었습니다. 여기서 선교사 훈련생들이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는 귀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낡아 어려운 가운데 8억의 예산을 들여 이 선교센터를 완공했습니다. 4억 정도 모금이 되고 현재 4억이 부채로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5월 7일 제5회 선교사 부모 초청 위로회를 가진 뒤 두 번째 행사 북한선교전략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은 길자연 총장 옆의 강일구 목사의 할렐루야 소리가 환한 예배당에 울렸다. “이 회의를 가지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자꾸 통일이 곧 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총회도 처음에 북한교회재건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교회 재건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너희가 하느냐 하는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남북교류위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실효가 없었습니다. 근자에 통일준비위원회라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이 곧 다가온다는 말이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총회가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GMS도 세계선교가 목표이지만 통일도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선교사들 중에 북한을 위해 사역하는 북방 선교사들이 한 40명이나 있는 겁니다. 북경에서 시작해 단동, 심양, 연길, 훈춘 등지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북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흩어진 북한 선교를 한데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GMS와 연합하여 선교전략을 한데 모아야겠다는 겁니다. 또 이 북한선교를 위해 길자연 목사께서 오래 헌신해 오셨고 김관선 목사도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김관선 목사를 북한위원회 위원장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북한선교회와 우리 GMS 북한위원회와 힘을 합쳐 통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김관선 목사께서 바쁘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8월 10일 현장을 답사한 뒤 다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북한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전략을 논의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전 통일부장관 양영식 박사(성문교회 원로장로)의 “해방 70년 통일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전문일꾼의 사명과 실천과제”, GMS 강한길 선교사의 “GMS의 동아시아를 통한 NK 선교”, GMS 이필립 선교사의 “국내외 탈북민 사역에 대하여” 등의 강의가 이어졌다. 특별히 양영식 박사의 남북통일에 대해 다니엘과 선한 사마리아인을 실례로 들며 전개한 성경적이면서 정부 고위 실무자로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 손쉬운 방법의 논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번 행사 장소가 월문리 선교센터보다는 접근이 용이한 총회회관에서 열렸으면 더 많은 교역자들이 북한 선교와 통일에 대한 열정을 더욱 뜨겁게 불 지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5-06-08
    • 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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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8
  • 메르스와 길총장의 처방
    "장 폴 사르트르가 쓴 희곡 '닫힌 방'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옥은 바로 당신들이야!‘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가 수도권을 강타한 지난 3일과 4일 대통령의 똑같은 사진 두 장이 신문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잇따라 실렸다. 첫 사진은 대통령이 지방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모습을 담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경제 회생(回生)계획의 한 축(軸)을 담당하는 대통령의 역점(力點) 사업이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연스럽지 않은 대통령의 웃음을 따라 용케 그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도 한껏 웃고 있었다. 사진 위 1면 머리기사에는 '무너진 메르스 방역… 3차 감염자도 발생'이란 제목이 달렸다. 신문을 통틀어 등장인물이 웃고 있는 장면은 이 사진 한 장뿐이었다. 메르스 1차 저지선·2차 저지선·3차 저지선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여론은 두 갈래로 흘렀다. 한 갈래는 방역 당국과 병원의 무능을 비판하는 흐름이고, 다른 한 갈래는 환자 자신과 시민의 공중보건 의식 결핍을 자성(自省)하는 흐름이다. 두 흐름은 대통령이 어색하게 지어낸 듯한 몸짓과 웃음의 사진에 부딪혀 분노를 일으켰다. 그 순간부터 대통령을 향해 집중 비난이 쏟아졌다. 다음 날 대통령은 메르스 확진 환자가 드러난 지 14일 만에 청와대에서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노란 점퍼 차림의 사진 속 얼굴들은 하나같이 진지하지만 또 어색하고 어설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의 지도와와 달리 언제나 자연스러운 즐거움이나 슬픔이나 결단의 표정이나 몸짓의 전달이 결여된 박근혜 대통령은 '파악하고' '분석하고' '논의하고'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지만 또 세월호 짝이었다. 지난해 5월 2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국장은 말했다. “메르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 그의 말처럼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염된 2명의 미국인 확진 환자에 대한 초동 대응은 완벽했고 2차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에 반해 2015년 5월 23일 언제나 잠이 덜 깬 표정의 한국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유입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한국의 메르스 대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평론가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국장이 말한 철저한 준비와 투철한 책임의식을 가질 때만이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3일 서울의 대형병원 의사가 메르스 2차 감염 환자(확진 순서 14호)를 진료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 최초 3차 감염이다. 군인에게서도 메르스 1차 양성 반응이 나와 병사들이 격리 상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입국한 또 다른 남성이 발열 증세로 메르스 의심자로 되어 검사 중이다.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메르스 확진과 추가 1차 감염 의심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제 메르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응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확산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광범하게 방화용 담요를 덮어 불을 꺼야 한다. 메르스 치사율이 40%라지만 그건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중동 얘기다. 그 지역에서도 병원 내 전염으로 초기 발견된 환자의 사망률은 4% 수준이었다. 한국 의료 수준으로는 훨씬 더 낮출 수 있다. 아직 공기 전염의 증거도 없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공포 자체다. 길자연 목사(총신대 총장)에게 6월 5일 전화를 해 메르스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많은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즉각 막힘없이 무선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현상에 대해 누가복음 21장 11절에서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말세의 현상 중의 하나인데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하는 영적 의미가 있죠. 그 다음은 병은 육신을 공격하는 것인데 사스나 메르스는 다 전염병 아닙니까.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보건복지부에서 얘기하는 대로 손 잘 씻고 우리의 생활 수칙을 잘 지키기만 해도 전염병을 예방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면 모든 일이 합력해 선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교인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두려울 게 하나도 없죠.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믿음으로 예배에는 참석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질병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있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까 재림 신앙을 가지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을 막기 위해서는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손만 잘 닦아도 감기 같은 건 70프로 막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28-36 201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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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6
  • 총신 제29회 Home Coming Day
    2015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30분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서 총신 개교 114주년 기념 제29회 Home Coming Day 및 정기총회가 열렸다. 행사주관 host는 제88회(회장 구복조 목사)였다. 준비위원장 김동식 목사(대구칠곡중앙교회)의 사회로 제1부 예배를 드렸다. 최문진 목사(한남중앙교회)가 성경을 읽고 88회 동창부부 성가단의 웅장한 찬양에 이어 증경총회장(제81회 총회) 김준규 목사가 『지도자의 자질 향상』이라는 제목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권면을 기초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에게 말씀을 증거했다. 그는 5분 설교를 주최 측의 부탁을 받았다며 기도와 인격과 지성의 향상과 진보가 있어야 한다고 10분에 걸쳐 조리 있고 뜨거운 메시지로 은혜를 끼쳤다. 그의 나이 지금 80임에도 1996년 9월 21일 청주중앙교회에서의 총회장 시절과 다름없는 기백과 명철과 모습을 발휘했다. 제2부 축하 및 감사의 시간은 김장명 목사(과천한일교회)의 사회로 진행됐다. 동창회장 김영우 목사(총신재단이사장)의 환영사, 총장 길자연 목사의 개교기념 메시지에 이어 기념패, 감사패, 장학 기금, 교수 선물 등의 전달 순서가 이어졌다. 각종 패와 장학금 전달 중간 사회를 본 동창회 서기 김기성 목사의 재치가 회중을 웃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광고는 동창회 수석부회장 연용희 목사(온양삼일교회)와 88회 상임총무 양은광 목사(성현교회)가 전했다. 이번 행사 호스트 88동창회의 매끄러운 진행은 점심시간을 정확히 지키게 했고 오후 1시 30분부터의 체육대회도 차질이 없게 했다. 그리고 참으로 상금과 상품이 풍성했다.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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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2
  • 제21회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2015년 5월 8일(금) 오후 1시 충남 한산면 성외리에 있는 한산제일교회(정진모 목사)에서 제21회 중부협의회 정기총회가 21개 노회에서 2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러한 모임의 성황에는 자문위원 박정하 장로의 숨은 공이 크다. 중부협의회는 인천과 대전, 강원, 경기, 충청남북도 지역 내 노회 협의체로, 이날 총회에는 21개 노회에서 215명이 참석했다. 한산교회에서 마련한 식사를 마치고 직전 대표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제99회총회 정치부장, 총신대동창회 회장) 사회로 드린 예배는 근래 보기 드문 절제된 정치 행사 모임이었다. 중부와 교갱의 올곧은 법통 박춘근 목사(중부협의회 서기, 납골당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의 성경봉독 로마서 11:11~14를 통해 총회의 명설교가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는 성경 중심의 메시지로 청중을 감동의 물결로 채웠다.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사역, 12제자들의 사역,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 우리나라의 교회까지 미친 사도행전의 역사를 20여분 안에 관통했다. 그는 결론으로 로마서 11:13의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우리의 직분을 통해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총회가 총회되게 하고, 하나님에게 영광되게 하자며 청중들의 힘찬 아멘으로 마무리했다. 2부 총회순서에 들어가 역시 대표회장 오정호 목사의 매끄러운 사회 가운데 강의창 장로(회계)의 흑자 운영의 회계보고 뒤 임원 선출을 위해 정회를 하고 전형위원들이 모여 조율을 했다. 특별히 총회 막간에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전국대사 이문기 장로의 특송은 얼마 전 헤어진 사모를 기리는 듯 애절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직전 수석부회장 정진모 목사(한산제일교회)를 만장일치로 신임 대표회장에 추대하고, 차기회장 하귀호 목사(만민교회) 등 새 임원들을 세웠다. 직전 회장 오정호 목사는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이 행사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총회와 옛 백제권의 원로 김준규 목사(제81회 총회장), 황승기 목사(제90회 총회장, 현 한국찬송가공회 법인회장), 현금 총회의 분기점이 될 대립의 한 축 김영우 목사(현 총신 재단이사장) 등이 끝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총회의 다양한 정치경력의 실력자 정진모 신임 대표회장은 “부족한 종을 기라성 같은 선배와 전통의 중부협의회 제21회 대표회장으로 선출해 주셔서 모든 대표자들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 1년의 재임 중에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해 중부협의회 각 노회의 화목을 도모하고 총회를 섬기는데 바르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면 새 임원들과 함께 힘써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안건 토의에서는 회칙 수정을 임원회에 맡겨 진행키로 했다. 이날 선임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명예회장:오정호 목사 대표회장:정진모 목사 차기회장:하귀호 목사 상임회장:박신범 목사 윤석웅 장로 실무회장:김영남 목사 남승찬 장로 김문기 장로 공동수석회장:송종완 목사 김인기 목사 상임총무:문세춘 목사 유도조 장로 서기:박춘근 목사 부서기:조기산 목사 회록서기:윤익세 목사 부회록서기:김종택 목사 회계:강의창 장로 부회계:최문철 장로 총무:김정설 목사 하재호 목사 김두봉 장로 한종일 장로 감사:최찬용 목사 정진석 장로 전은풍 장로.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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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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