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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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성석교회와 총회
    이재명이 제일 잘 하는 일 ‘대화와 타협’ 사랑의교회 분쟁 해결에 도움을 준 소강석 목사 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으며 급작스럽게 총회의 정치적 성향을 바꾸면서도, 개혁주의적인 자신의 신념만큼은 충실하게 지켰다. 정치적이기보다는 이상주의적이었던 그는 ‘정치가’라기보다는 말씀과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그에겐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경적 신앙이다. 그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성석교회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곰달래로 47길 18 (화곡동) 시장 근처 지하철 역세권에 위치 덕에 땅값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이 교회의 원로목사인 최학곤 목사(1937~)가 1978년에 설립했는데 30여 년 교회를 잘 키우고 2009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믿음이나 교리가 아닌 그 재산으로 15여년 분쟁에 휩쓸린 것 같아 안타깝다. 2023년 9월 21일 총회 재판국은 편재영 목사 재심 청원 반려에 대한 함경노회 이의신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꿀이 질질 흐르는 것 같은 주문을 하였다. 1. 서경노회 편재영 목사에 대한 1, 2차 면직판결은 취소한다. 2. 편재영 목사는 성석교회 담임목사이며 당회장이다. 3. 편재영 목사는 함경노회 소속으로 변경되었음을 인정한다. 이에 총회 법통 소재열 박사가 이렇게 논박했다. “지금은 사법권을 가진 총회재판국의 보고 시간입니다. 여기서 행정 건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정치 12장 5조에 교회 재산은 노회가 결정하고 총회에 상고하면 접수하여 판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의 재산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 교회 재산권 행사는 총회도 관여할 수 없는 교인들의 배타적 권리이다. 총회가 교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을 총회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재판국 보고를 마친 다음 총회 임원회 소위원회가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위원회 서기인 전승덕 목사는 법이 아니라 신앙과 양심으로 따지자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안했다. “성석교회는 서경노회 성석교회와 함경노회 성석교회로 분립하며 12월 30일까지 공동의회를 하되 임시당회장 임창일 목사의 주도로 총회임원회가 관람하기로 한다. 만약 이를 불응하는 쪽은 성석교회 권한을 상실하며 합의적으로 순행되면 편재영 씨는 서경노회에서 해벌하고 즉시 함경노회로 이명키로 한다.” 총회는 이를 결의하였다. 총회는 재판국의 편재영 씨에 대한 판결을 기각하였다. 그러나 총회 재판국 판결에 기각이나 각하는 없다. 기각과 각하는 총회 재판국 판결 확정을 의미한다(권징조례 제141조). 2018년 6월 15일 대법원 판결(2018다217967)은 편재영 목사 대표자 지위 부존재확인이었다. 따라서 편재영 목사는 2014년 7월 22일 서경노회의 목사 면직처분으로 더 이상 목사의 지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편재영 목사는 면직되었고 성석교회는 서경노회로부터 제명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2016.1.3.경 성석교회에서 진행한 공동의회를 거쳐 편재영 목사는 함경노회에 가입했다. 그러나 권리능력 없는 자가 행한 것은 모두 무효이다. 이미 면직되었기 때문에 면직된 자가 임시총회 사회를 본 것 자체가 무효이다. 그러므로 함경노회 가입도 무효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된 이유는 성석교회가 교단 탈퇴하였을 때 서경노회는 편재영 목사를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면직처분은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서경노회는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화경처럼 어찌된 일인지 적법한 노회에서 성석교회를 제명 처분한 후 예장합동 총회에 보고하여 총회에서 위 보고사항을 채택하여 총회에서 성석교회를 제명해버린 바 있다. 그러므로 서경노회는 성석교회와 상관이 없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총회 전산망에도 성석교회는 삭제되고 총회에서 확정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2016년 1월 3일 목사 면직 처분된 편재영 목사가 주관한 공동의회는 소집 권한 없는 자에 의해 소집된 당회 및 공동의회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당연 무효이다. 더욱이 안건도 보수 장로교단의 가입의 건으로 진행하여 서경노회 가입의 건 또는 함경노회 가입의 건으로 공동의회를 진행한 사실 자체도 없다. 그러므로 2016년 1월 3일 공동의회를 근거로 서경노회 소속 또는 함경노회 소속을 주장하는 것은 김화경의 처신처럼 어불성설이다. 법적으로 성석교회는 현재 무소속 노회이다. 그야말로 먼저 먹는 자가 임자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성석교회는 총회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지금이라도 양측의 노회 관계자를 배척하고 교회 내 장로들의 모임을 갖고 교인총회를 하여 자체의 진로를 모색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교단과 노회 선택의 권한은 교인들에게 있다. 이미 법적 효력도 없는 서경노회, 함경노회는 물러가고 교인들이 교인총회를 통하여 교단과 노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총회로 몰려와 서류를 떼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총회 결의를 위해 물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양측 노회는 재산상의 문제로 기웃거리지 말고 성석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경노회는 성석교회를 제명했고, 면직된 자가 선택한 함경노회 역시 성석교회를 소속교회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성석교회 황승주 사무장은 말했다. “총회가 법과 결의에 따라 성석교회 문제를 처리했으면 수년 전에 분쟁을 극복했을 것이다. 성도 4000~5000명이 출석하던 교회가 1/10로 줄었다. 지금이라도 교회의 안정을 위해 서경노회 소속임을 확인하고 처리해야 한다.” 기억도 가물거리는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시절 총회 회의실에서 만난 성석교회 장로 측 대표 장로 말에 따르면 김화경이 성석교회 다니다 어느 날 목사로 나타나 자기 쪽 편을 들다가 편재영 쪽으로 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인물이 다시 원위치했다고 한다. 상상의 장소 요지경(瑤池鏡, Peep show)이다. 지난 2018년 2월 서울고등법원 제27민사부는 편재영 목사가 성석교회 담임목사의 지위에 있지 않고 담임목사 및 당회장 직무도 집행해선 안 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어서 대법원(재판장 박상옥 대법관)은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편재영 목사가 상고한 ‘대표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사건번호:2018다217967)에 대해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며 ‘모두 기각’ 판결을 내렸다. 영국 속담에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하고, 한 해 행복하려면 새집 짓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라’고 했다. 그런데 성석교회 담임이 분쟁 해결을 위해 수년 동안 별 응답 없는 산중 밤샘 기도보다 총회 분담금을 매년 수십 억씩 내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나 대한민국 영적 지도자 소강석 목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사랑의교회같이 교인이 더욱 부흥하고 새 예배당을 세우고 불만 있는 측에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그 불만을 잠재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총총 출신인 내가 오정현 목사라면 백석 측 장종현 목사처럼 얼어 죽을 70세 정년대신 정년 없는 교단을 세우고 총회 분담금으로 총신 입학생을 사관생도처럼 전액 장학생으로 키워 목사로 세워 세상으로 파송하겠다. 생각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하다. 유월의 하늘이 후련한 표정으로 밝디 밝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28:13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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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8
  • [더굳뉴스] 총신 72회 동창회
    동서독 통일 전인 1989년 10월 25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한국을 방문해, “독일보단 한반도 통일이 먼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은 10년은 지나야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브란트의 서울 연설이 있은 지 딱 보름만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독일의 통일이 이뤄졌다. 브란트는 정말 몰랐던 것 같다. 통일이 도적같이 코앞에 다가왔던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작금(昨今) 러시아와 북한이 힘을 합쳐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짓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하나님의 계시일까... 동창회(同窓會) 또는 동문회(同門會)는 같은 반, 학교 등 출신들과 하는 모임을 의미한다. 동문(同門)은, 같은 문을 지나다녔다는 뜻으로 선후배를 포함하는 말이다. 동창(同窓)은 같은 창문을 보고 지냈다는 뜻으로, 졸업 기수가 같은 사람들을 뜻한다. 총신72회 동창회(회장 황주해 목사 총무 김기성 목사)가 2025년 5월 9일 오전 11시 종로 5가 한국교회연합회관.에서 동창회를 가졌다. 총신 72회는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 선교사 강승삼, 여상일, 정윤진 목사, 총신 교수 권성수, 김정우 교수, 목회자 김인중, 박영선, 황정길 목사, 부흥사 임정웅 웃음 전도 목사 등을 배출한 총신 명문 동문이다.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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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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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고광석 목사와 정영교 목사
    법이 어지러운 때다. 윤석열 정부 3년 내내 계속돼온 바다. 야당의 입법폭주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을 높이더니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에서 정점을 찍었다. 헌법상 계엄 요건인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자의적 해석에서 법 문란이 극에 달했다고 본다. 민주주의 만개시대에 독재 본능이나 만용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은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도 가르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재판 지연은 그러려니 할 만큼 상습적이다. 법원 송달서류 기피 등 재판부와 숨바꼭질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전략적이다. 법의 문란을 야기하는 행위는 나라의 기초를 흔드는 일과 다를 게 없다.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법에 대한 불신, 공정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예로부터 위로부터의 법 문란은 나라가 기우는 징조로 봤다. 4년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2025년 1월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지나칠 정도로’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매우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2025년 9월 제110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한기승 목사 대신 추대받은 고광석 목사와 정영교 목사에게 총회장이 되려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하자. 죽음 앞에 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6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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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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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총회 영적 지도자 장봉생 목사
    기도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 기도는 무얼 포기하고 기도가 되었을까? 기도는 몇천 번의 실패로 기도를 완성했을까. 기도도 그러느라 색과 맛을 다 잊었을까. 기도는 산 걸까 죽은 걸까. 기도는 공간일까 시간일까. 그니까 기도는 뭘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서 올라갔을까. 기도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닳았을까. 기도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기도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로 올라갔을까. 쏟아지는 요청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로 내려갔을까. 기도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닳았을까. 기도는 소원보다 별보다 많을까. 기도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도는 어떻게 투명한 기체가 될까. 기도는 우주의 행성일까. 설마 기도가 너일까. 허구한 날의 은혜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서 일어난 기도는 깊은 응답에 닿게 한다. 기도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았으면 한다. 조선일보에 이런 글이 실렸다. 1896년 1월 정식으로 대구에 선교지부를 설치한 선교사들은 젊었고 전도 방식도 창의적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주민들의 호기심을 활용해 기꺼이 자신들을 ‘구경거리’로 내놓았다. 자전거와 사냥개까지 전도의 도구로 이용했다. 자전거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겐 “자전거를 만드는 기술을 얻으려면 기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 기술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했고, 사냥개 앞에 빵을 던져두고 성경 이야기가 끝난 후에 먹도록 훈련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개도 음식을 놓고 기도한다’라고 여겼다고 한다. 태도는 겸손했다. 갓 쓴 노인이 높은 곳에 앉아 있고 그 아래에서 당시 23세의 브루엔 목사(傅海利, Henry Munro Bruen, 1874~1959)가 전도를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29년 뒤 2025년 5월 13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제62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개회했다. 이번 기도회에는 3000여 명의 목사와 장로가 참석해 ‘십자가, 다시 복음 앞에’라는 주제로 함께 뜨겁게 기도했다. 이번 기도회에서는 개회 예배를 시작으로 두 차례의 저녁 집회, 일곱 번의 전체 강의, 열두 번의 트랙 강의가 진행됐다. 5월 13일 개회예배 설교에서 총회장 관례를 깨고 오정현 목사가 설교자로 나섰다. 오정현 목사는 "기도불패, 기도가 답이다"(대하 14:9~13)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외쳤다. "저는 ‘기도의 제곱근’을 믿습니다. 1만 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1만 명이 아니라 100명이 죽을 만큼 기도를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 자리에 7000명이 모여 기도하면 4900만 명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도회를 통해 대한민국이 새롭게 변화했고 역사가 새롭게 써졌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로운 설교에서 그는 제곱과 제곱근을 착각한 수학적 기도법을 외쳤다. 100의 제곱100×100=10,000이지만 100의 제곱근은 +10과 –10 두 가지 실수(實數, real number)가 된다. 제곱근은 다양한 수학적, 실제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요한 개념이다. 제곱근은 특정 수를 두 번 곱해서 얻을 수 있는 수를 구하는 과정이며, 이는 방정식 풀이, 기하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방정식과 같은 방정식을 풀 때, 제곱근을 이용하여 미지수를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x² = 9를 풀 때, x = ±3과 같이 제곱근을 이용하여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미지 처리, 데이터 분석 등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도 제곱근을 활용하여 다양한 계산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제곱근은 성경적 기도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 문제 해결, 과학적 계산, 다양한 분야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요한 개념이며, 제곱근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목회에도 필요한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꿩 잡는 게 매라고 개척자 옥한흠 목사에 이어 사랑의교회를 대형교회로 키운 오정현 목사는 제곱이 아니라 제곱근의 기도가 능력이 있다고 외쳐 목사와 장로들에게 제곱근 은혜를 끼쳤다. 제62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이틀 뒤 마지막 날 5월 15일 폐회 예배에서 최광영 목사(베들레헴교회)가 성경 에스겔 36:37-38을 봉독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그 유례를 찾을 길 없는 교단 영적 지도자 장봉생 부총회장은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는 제목의 영적이고 성경적인 말씀이 목사와 장로들 가슴에 사무치도록 시종 잔잔하지만 때로는 힘차게 전했다. “저희 교인 중에 주일 예배를 몇 번 계속해서 참석하는 분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직통 계시를 추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누구보다 성경을 많이 보고 누구보다 교회를 존중히 여기고 누구보다 인간관계에서 성실하고 겸손하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회중 큰 아멘)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해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래 살지 않은 제가 조금씩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지 사람의 말을 들어야 남는 게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처럼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내 말대로 세워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많이 듣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기를 원하십니다. (회중 아멘)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말씀하십니다. 리더에게는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모세가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면서 그 지리를 샅샅이 익히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탐꾼으로 그 땅의 지리를 샅샅이 익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이끄는 목사와 장로로서 우리의 삶과 교회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끌고 가시는 주권적 섭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끌고 가시고자 하는 바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해야 저렇게 해야 부흥된다느니 하는 말들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알량한 것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시대에 생생하게 말씀해 주시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들으려는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더 많은 말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하겠다면 이 얼마나 주객이 전도된 것이겠습니까. 계시는 반드시 그 목적을 성취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한 것을 다 이루겠다. (회중 아멘) 황무한 예루살렘 땅에 내 백성으로 가득 채우겠다. (회중 아멘) 내가 다시 복구시키겠다. (회중 아멘) 내 말을 들으라 더 믿고 더 믿게 하기 위해서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큰 군대로 일어서는 환상까지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내가 말한 대로 친히 이루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하겠다. (회중 아멘)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하나님 이 세상의 통치자이시고 하나님이 교회를 이끄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 역량 내 능력 가지고 내 교회 만들어내고 내 교단 만들어내고 한국교회가 이러니저러니 만들겠다고 우리의 역량을 과시하고자 하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 형제를 걱정해야겠다고 나서는 그런 인본주의적 신앙을 우리의 인생의 기조로 가져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적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국적 성경적 개혁주의도 말합니다. 무엇입니까. 시작도 끝도 알파도 오메가도 하나님이시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신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행하신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런 말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셨다, 성령을 보내셨다, 우리를 살리셨다, 우리가 오늘 이 심장이 뛰고 이 폐가 호흡을 하고 오늘도 눈을 뜨고 신발을 다시 신고 옷을 다시 입고 이 자리에 다시 앉혀주신 하나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교단을 알게 하라는 게 아니고 교회를 알게 하라는 게 아니고 내 목사 됨을 내 장로 됨을 알게 하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2박 3일 내내 자의 반, 타의 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회중 웃음) 수많은 감동과 도전과 그리고 부끄러움과 용기를 메시지마다 얻었습니다. 기도하시는 목사님과 장로님의 기도에 아멘 하면서 울컥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속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감동이 가볍습니까. 눈물이 가볍습니까. 눈물 훔치고 돌아가는 교인들을 보면서 내가 그때 잘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내가 대표기도 감동적으로 했다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눈물과 감동은 시작일뿐입니다. (회중 아멘) 처절하게 때로는 입을 다물고 때로는 소리 높여서 하나님 그분이 주인이시고 그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고 이 시간의 주인이심을 입증해 보이는 일에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야 합니다. (회중 큰 아멘)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회중 아멘)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적 지도를 가슴에 품고 다시 회복시킬 그 날을 소망으로 삼았던 그 사람 에스겔을 우리는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시간을 아멘! 아멘! 그리고 주여! 주여! 했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신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 젊은 친구들이 새벽기도를 하는데 주여 주여 주여 세 번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고 물었습니다. 주여 주여 왜 하느냐. 무슨 뜻이냐 그랬더니 '아이 돈 노우'(I don't know) (회중 박장대소) 그리고 한국말로 '선교사님이 하라고 했어요'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세 번 '주여!'가 우리의 그 많은 시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한 이야기를 내 말을 붙들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해야 할지라.'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다 하시겠지만 제가 믿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리고 제가 복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회중 큰 아멘) 말씀을 붙들고 하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종교심과 열심 가지고 많은 시간을 주여! 주여! 외쳐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회중 큰 아멘) 그래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러니저러니 어두움 속을 지나간다고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회중 큰 아멘)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인생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말씀, 무엇을 말씀하는지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다고 말씀하시는지 대한민국과 총회를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지 그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목놓아 주여! 주여! 주여!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2박 3일의 많은 말씀 중에 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그 많은 메시지와 그 많은 우리의 주여! 주여! 속에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리고 내가 주여! 주여! 하며 드렸던 말씀이 하나님께서 '네가 내 말을 이해했구나, 제대로 들었구나' 그리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군대의 환상처럼 가슴에 새겨주시는 그 말씀을 우리가 붙들고 이 자리를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2박 3일 동안 아까운 시간을 버린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폐회 예배를 통해서 이 목장기도회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시고 붙드시고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현장을 경험하시는 우리 사랑하는 모든 목사님 장로님 되시기를 그리고 귀한 가족들과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경품 추첨으로 이어질 축도가 곧 이어졌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6-39 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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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ERMON
    2025-05-22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 신앙 보국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 4년간 한림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일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직과 사단법인 신아세아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이상우(李相禹, 1938년 4월 16일~) 박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서강대에서 북한정치를 강의하고 있었죠. 비 오는 날이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갑자기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저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낡은 가방하고 비닐우산을 든 채로 영문도 모르고 삼성 사옥으로 갔죠.” 파란색 비닐우산을 들고 회장실로 들어가 보니 이병철(1910~1987) 삼성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박사, 반갑소. 내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모셨어요.” 무슨 말인가 긴장했는데 이런 질문이었다. “북한의 논 단보(991.74㎡)당 쌀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가 않아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나라가 300㎏ 정도니 북한은 비료도 부족하고 관개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마 우리의 반 정도일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 숫자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이병철 회장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박사, 잘 들으시오. 앞으로 남북 관계는 말입니다. 바로 이 숫자로 판가름 날 겁니다.” 지나고 보니 이 회장의 그 말은 참으로 탁견이었다. 김일성이 만약 남한 수준으로 북한 주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얘기다. 인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여유 있게 남한을 압박할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젊은 이상우 박사는 여기서 문득 좀 당돌한 질문을 했다. “회장님께서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지금까지 이뤄 놓으신 자산으로 무엇을 하시려 합니까?” 이병철 회장은 조금도 주저 없이 답을 했다. “나머지 인생은 21세기에 한국 국민이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의 기초를 닦는 데 바칠 생각이오. 오랜 검토 끝에…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전자산업과 항공산업입니다.” 그야말로 ‘기업 활동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라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이었다. 40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결국 이병철 회장의 꿈은 절반만 거의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그 바탕에는 먼 앞을 내다보는 창업자의 안목이 있었다고 이상우 이사장은 말했다. 이병철 회장은 40년대 광복 전후부터 목돈을 벌어 50년대 한국전쟁 시기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덕분에 1950년대엔 이미 국내 제1의 재벌로 성장한 기업인이 되었다. 이병철 회장이 내세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치가 생필품의 국산화를 고민하던 당시 정권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기세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선친 이찬우가 1900년대 전후 독립협회와 기독교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약간 친분이 있었던 탓인지, 제일모직 완공식 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해 '의피창생'(衣被創生, 옷이 새로운 삶을 만든다)이라는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 부활 신앙이 없이 1987년 타계하신 이병철 회장과 달리 한기승 목사는 2023년 4월 9일 믿음의 부활을 전하는 신앙보국(信仰報國)으로 교단과 국가에 기여한다. 광주 무등산 불의 혀 한기승 목사는 외쳤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100세를 산들 200세를 산들 만족하겠습니까.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다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 조선 시대에 수명이 30대 40대 길어야 50대였습니다. 가끔 60대였습니다. 그래서 60대 환갑잔치를 가진 것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우리 수명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하고 신약 개발이 되고 최첨단 의료기가 발달 돼 많은 질병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옛날에 없던 병과 암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삶에 죽음이 엄습해올 때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죽음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나의 모든 수고를 다 해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죽음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자냐 가난하냐 살아 있을 때 조금 편리하거나 불편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그것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명예롭게 살았느냐 불명예스럽게 살았느냐의 여부도 죽음 앞에서는 별문제가 안 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과 여러분의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내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죽기를 싫어하고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공평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사회가 공평해졌습니까.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과 법정에서 사회에서 삶의 현장에서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옛날과 비교해 공평해졌지만 우리 사회가 우리 삶이 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는 돈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배운 사람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도시에 사는 사람도 시골에 사는 사람도 젊은이도 어린이도 노인도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공평한 것입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진시황제도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도 우리의 삶을 이렇게 편안하게 만든 발명왕 에디슨도 그리고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도 우리 대한민국을 반도체 대국으로 일군 이병철 회장도 모두 죽음을 막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이 죽었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죽고 있고 앞으로도 다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래 살고 싶은데 왜 죽는 것입니까. 왜 죽어야 합니까. 성경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 삶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망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다 믿습니다. 창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와 비 필연적 창조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는 하나님이 반드시 세상을 창조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가 생깁니까. 하나님이 피조물에 의해 존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혁 신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창조하셔야 한다는 필연적 창조를 말하면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서 존재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할 때 비 필연적 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도 있고 안 하실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이것을 창조 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이 피조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백성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백성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그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가 인간 세계에서 창조의 경륜이 무너지고 인간의 삶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셨던 은혜 언약을 아담이 파괴한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아담이 따먹음으로 아담이 범죄했다.’ 그렇게 해서 죄가 우리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다’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은혜를 주셔서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두셨는데 아담이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 권한을 찬탈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담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찬탈함으로 죄가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대표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을 파괴해 그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비통해하고 괴로워하는 죽음, 이 죽음이 죄 때문에 우리에게 도입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과 목적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죄가 있으면 평안이 없어지고 생명을 빼앗기게 됩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해서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 파괴되고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고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냥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를 어떻게 억제하고 제거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에 현격한 변화가 있는데 인간 수명의 단축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이 900살 930살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는 969살을 살았습니다. 이건 설화나 전설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는 것 우리가 다 원하는 데 참 좋겠죠. 그러나 오래 살면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산 만큼 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이 오래 살므로 죄가 넘쳤습니다. 죄가 너무 많아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노아 홍수 이후에 수명을 120세로 단축을 시키셨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므로 죄가 조금씩 억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죄를 억제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두 번째 방법을 내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국가를 세우신 것입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죄를 지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보내고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죄가 많아지겠습니까 적어지겠습니까. 죄가 줄어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안 가고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아마 사람 죽일 사람 많을 겁니다. 국가는 이런저런 법을 어겨도 내가 세금 안 내고 내가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욕구대로 욕망대로 욕심대로 살아서 죄를 짓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벌금내지 않는다면 교통법규 없다면 과속하고 차선 지키지 않고 얼마든지 차를 운전하고 다닐 겁니다. 그런데 교통법규 어긴 게 사진이 찍히고 벌금이 부과되니까 속력을 줄여서 교통사고 줄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국가를 세우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독재 정부라도 국가가 세워지면 국가의 공권력을 위해서 죄가 억제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세워지고 국가의 공권력으로 죄를 억제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인류사회에서 완전히 억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방법을 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죄의 문제를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할 뿐 아니라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 교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교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곧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면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통치자에게 있습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사면을 하기도 하고 권리를 복권 시키기도 합니다. 사면은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복권은 상실된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치권자인 대통령만이 가능합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듯 세상의 사면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대신 지우셔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뿐만 아니라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기게 하려고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하실 때 그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육신의 의미도 있지만 원리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죽었던 자,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하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가 아닌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부활은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죽었던 자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부활했습니다. 죄에서 생명으로, 이게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죽었던 모든 자들이 다 부활합니다. 이게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만이 죄의 정복자이시고 예수님만이 사망의 정복자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된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이 사실을 믿게 하고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증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본인의 부활을 믿게 하시고 이것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죄 사함 받았다고 영원한 부활을 소유하게 됐다고 누가 증거하게 하는가. 우리 안에 보증으로 와 계신 성령이 증거하고 믿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생명의 종교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만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의 의미도 귀하지만 우리 죄를 용서하고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부활절의 의미가 우리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의 모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하고 수고하고 봉사하는 이 모든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갖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우리 환경 속에서 승리할 수 있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가운데 많은 환란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이 부활 신앙이 죽음을 이기게 하고 이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신앙이 있습니까.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까. 그때 우리는 세상의 전염병이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환경과 사건과 사람들이 우리 신앙생활을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이 확실치 못하니까 부활의 생명이 없으니까 환란 때문에 환경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흔들리고 우리의 믿음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지는 부활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총회와 대한민국이 되기를 불철주야 기도하겠습니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천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우리가 보았던 겨울나무들이 이런 삶의 원리를 푸르른 호국의 계절에 보여주듯 부활 신앙을 믿고 전하는 한기승 목사의 총회를 위한 부활과 건재를 알려줄 계절도 문득 다가올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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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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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총회 영적 지도자 장봉생 목사
    기도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 기도는 무얼 포기하고 기도가 되었을까? 기도는 몇천 번의 실패로 기도를 완성했을까. 기도도 그러느라 색과 맛을 다 잊었을까. 기도는 산 걸까 죽은 걸까. 기도는 공간일까 시간일까. 그니까 기도는 뭘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서 올라갔을까. 기도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닳았을까. 기도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기도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로 올라갔을까. 쏟아지는 요청에 뿔뿔이 흩어지며 기도는 어디로 내려갔을까. 기도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닳았을까. 기도는 소원보다 별보다 많을까. 기도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도는 어떻게 투명한 기체가 될까. 기도는 우주의 행성일까. 설마 기도가 너일까. 허구한 날의 은혜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서 일어난 기도는 깊은 응답에 닿게 한다. 기도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았으면 한다. 조선일보에 이런 글이 실렸다. 1896년 1월 정식으로 대구에 선교지부를 설치한 선교사들은 젊었고 전도 방식도 창의적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주민들의 호기심을 활용해 기꺼이 자신들을 ‘구경거리’로 내놓았다. 자전거와 사냥개까지 전도의 도구로 이용했다. 자전거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겐 “자전거를 만드는 기술을 얻으려면 기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 기술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했고, 사냥개 앞에 빵을 던져두고 성경 이야기가 끝난 후에 먹도록 훈련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개도 음식을 놓고 기도한다’라고 여겼다고 한다. 태도는 겸손했다. 갓 쓴 노인이 높은 곳에 앉아 있고 그 아래에서 당시 23세의 브루엔 목사(傅海利, Henry Munro Bruen, 1874~1959)가 전도를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29년 뒤 2025년 5월 13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제62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개회했다. 이번 기도회에는 3000여 명의 목사와 장로가 참석해 ‘십자가, 다시 복음 앞에’라는 주제로 함께 뜨겁게 기도했다. 이번 기도회에서는 개회 예배를 시작으로 두 차례의 저녁 집회, 일곱 번의 전체 강의, 열두 번의 트랙 강의가 진행됐다. 5월 13일 개회예배 설교에서 총회장 관례를 깨고 오정현 목사가 설교자로 나섰다. 오정현 목사는 "기도불패, 기도가 답이다"(대하 14:9~13)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외쳤다. "저는 ‘기도의 제곱근’을 믿습니다. 1만 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1만 명이 아니라 100명이 죽을 만큼 기도를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 자리에 7000명이 모여 기도하면 4900만 명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도회를 통해 대한민국이 새롭게 변화했고 역사가 새롭게 써졌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로운 설교에서 그는 제곱과 제곱근을 착각한 수학적 기도법을 외쳤다. 100의 제곱100×100=10,000이지만 100의 제곱근은 +10과 –10 두 가지 실수(實數, real number)가 된다. 제곱근은 다양한 수학적, 실제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요한 개념이다. 제곱근은 특정 수를 두 번 곱해서 얻을 수 있는 수를 구하는 과정이며, 이는 방정식 풀이, 기하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방정식과 같은 방정식을 풀 때, 제곱근을 이용하여 미지수를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x² = 9를 풀 때, x = ±3과 같이 제곱근을 이용하여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미지 처리, 데이터 분석 등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도 제곱근을 활용하여 다양한 계산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제곱근은 성경적 기도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 문제 해결, 과학적 계산, 다양한 분야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요한 개념이며, 제곱근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목회에도 필요한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꿩 잡는 게 매라고 개척자 옥한흠 목사에 이어 사랑의교회를 대형교회로 키운 오정현 목사는 제곱이 아니라 제곱근의 기도가 능력이 있다고 외쳐 목사와 장로들에게 제곱근 은혜를 끼쳤다. 제62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이틀 뒤 마지막 날 5월 15일 폐회 예배에서 최광영 목사(베들레헴교회)가 성경 에스겔 36:37-38을 봉독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그 유례를 찾을 길 없는 교단 영적 지도자 장봉생 부총회장은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는 제목의 영적이고 성경적인 말씀이 목사와 장로들 가슴에 사무치도록 시종 잔잔하지만 때로는 힘차게 전했다. “저희 교인 중에 주일 예배를 몇 번 계속해서 참석하는 분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직통 계시를 추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누구보다 성경을 많이 보고 누구보다 교회를 존중히 여기고 누구보다 인간관계에서 성실하고 겸손하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회중 큰 아멘) 사람들이 말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많이 해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래 살지 않은 제가 조금씩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지 사람의 말을 들어야 남는 게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처럼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내 말대로 세워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많이 듣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기를 원하십니다. (회중 아멘)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말씀하십니다. 리더에게는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모세가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면서 그 지리를 샅샅이 익히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탐꾼으로 그 땅의 지리를 샅샅이 익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이끄는 목사와 장로로서 우리의 삶과 교회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끌고 가시는 주권적 섭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끌고 가시고자 하는 바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해야 저렇게 해야 부흥된다느니 하는 말들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알량한 것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시대에 생생하게 말씀해 주시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들으려는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더 많은 말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하겠다면 이 얼마나 주객이 전도된 것이겠습니까. 계시는 반드시 그 목적을 성취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한 것을 다 이루겠다. (회중 아멘) 황무한 예루살렘 땅에 내 백성으로 가득 채우겠다. (회중 아멘) 내가 다시 복구시키겠다. (회중 아멘) 내 말을 들으라 더 믿고 더 믿게 하기 위해서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큰 군대로 일어서는 환상까지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내가 말한 대로 친히 이루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하겠다. (회중 아멘)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하나님 이 세상의 통치자이시고 하나님이 교회를 이끄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 역량 내 능력 가지고 내 교회 만들어내고 내 교단 만들어내고 한국교회가 이러니저러니 만들겠다고 우리의 역량을 과시하고자 하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 형제를 걱정해야겠다고 나서는 그런 인본주의적 신앙을 우리의 인생의 기조로 가져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적 개혁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국적 성경적 개혁주의도 말합니다. 무엇입니까. 시작도 끝도 알파도 오메가도 하나님이시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신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행하신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런 말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셨다, 성령을 보내셨다, 우리를 살리셨다, 우리가 오늘 이 심장이 뛰고 이 폐가 호흡을 하고 오늘도 눈을 뜨고 신발을 다시 신고 옷을 다시 입고 이 자리에 다시 앉혀주신 하나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교단을 알게 하라는 게 아니고 교회를 알게 하라는 게 아니고 내 목사 됨을 내 장로 됨을 알게 하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2박 3일 내내 자의 반, 타의 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회중 웃음) 수많은 감동과 도전과 그리고 부끄러움과 용기를 메시지마다 얻었습니다. 기도하시는 목사님과 장로님의 기도에 아멘 하면서 울컥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속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감동이 가볍습니까. 눈물이 가볍습니까. 눈물 훔치고 돌아가는 교인들을 보면서 내가 그때 잘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내가 대표기도 감동적으로 했다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눈물과 감동은 시작일뿐입니다. (회중 아멘) 처절하게 때로는 입을 다물고 때로는 소리 높여서 하나님 그분이 주인이시고 그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고 이 시간의 주인이심을 입증해 보이는 일에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야 합니다. (회중 큰 아멘)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회중 아멘)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적 지도를 가슴에 품고 다시 회복시킬 그 날을 소망으로 삼았던 그 사람 에스겔을 우리는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시간을 아멘! 아멘! 그리고 주여! 주여! 했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신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 젊은 친구들이 새벽기도를 하는데 주여 주여 주여 세 번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고 물었습니다. 주여 주여 왜 하느냐. 무슨 뜻이냐 그랬더니 '아이 돈 노우'(I don't know) (회중 박장대소) 그리고 한국말로 '선교사님이 하라고 했어요'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세 번 '주여!'가 우리의 그 많은 시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한 이야기를 내 말을 붙들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해야 할지라.'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다 하시겠지만 제가 믿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리고 제가 복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회중 큰 아멘) 말씀을 붙들고 하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종교심과 열심 가지고 많은 시간을 주여! 주여! 외쳐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회중 큰 아멘) 그래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러니저러니 어두움 속을 지나간다고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회중 큰 아멘)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인생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말씀, 무엇을 말씀하는지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다고 말씀하시는지 대한민국과 총회를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지 그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목놓아 주여! 주여! 주여!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2박 3일의 많은 말씀 중에 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그 많은 메시지와 그 많은 우리의 주여! 주여! 속에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리고 내가 주여! 주여! 하며 드렸던 말씀이 하나님께서 '네가 내 말을 이해했구나, 제대로 들었구나' 그리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군대의 환상처럼 가슴에 새겨주시는 그 말씀을 우리가 붙들고 이 자리를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2박 3일 동안 아까운 시간을 버린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폐회 예배를 통해서 이 목장기도회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시고 붙드시고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회중 큰 아멘)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현장을 경험하시는 우리 사랑하는 모든 목사님 장로님 되시기를 그리고 귀한 가족들과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큰 아멘) 그리고 경품 추첨으로 이어질 축도가 곧 이어졌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6-39 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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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2
  • [더굳뉴스] 총신 72회 동창회
    동서독 통일 전인 1989년 10월 25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한국을 방문해, “독일보단 한반도 통일이 먼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은 10년은 지나야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브란트의 서울 연설이 있은 지 딱 보름만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독일의 통일이 이뤄졌다. 브란트는 정말 몰랐던 것 같다. 통일이 도적같이 코앞에 다가왔던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작금(昨今) 러시아와 북한이 힘을 합쳐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짓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하나님의 계시일까... 동창회(同窓會) 또는 동문회(同門會)는 같은 반, 학교 등 출신들과 하는 모임을 의미한다. 동문(同門)은, 같은 문을 지나다녔다는 뜻으로 선후배를 포함하는 말이다. 동창(同窓)은 같은 창문을 보고 지냈다는 뜻으로, 졸업 기수가 같은 사람들을 뜻한다. 총신72회 동창회(회장 황주해 목사 총무 김기성 목사)가 2025년 5월 9일 오전 11시 종로 5가 한국교회연합회관.에서 동창회를 가졌다. 총신 72회는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 선교사 강승삼, 여상일, 정윤진 목사, 총신 교수 권성수, 김정우 교수, 목회자 김인중, 박영선, 황정길 목사, 부흥사 임정웅 웃음 전도 목사 등을 배출한 총신 명문 동문이다.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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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1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 신앙 보국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고 2003년부터 4년간 한림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일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직과 사단법인 신아세아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이상우(李相禹, 1938년 4월 16일~) 박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서강대에서 북한정치를 강의하고 있었죠. 비 오는 날이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갑자기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저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낡은 가방하고 비닐우산을 든 채로 영문도 모르고 삼성 사옥으로 갔죠.” 파란색 비닐우산을 들고 회장실로 들어가 보니 이병철(1910~1987) 삼성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박사, 반갑소. 내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모셨어요.” 무슨 말인가 긴장했는데 이런 질문이었다. “북한의 논 단보(991.74㎡)당 쌀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가 않아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나라가 300㎏ 정도니 북한은 비료도 부족하고 관개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마 우리의 반 정도일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 숫자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이병철 회장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박사, 잘 들으시오. 앞으로 남북 관계는 말입니다. 바로 이 숫자로 판가름 날 겁니다.” 지나고 보니 이 회장의 그 말은 참으로 탁견이었다. 김일성이 만약 남한 수준으로 북한 주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얘기다. 인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여유 있게 남한을 압박할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젊은 이상우 박사는 여기서 문득 좀 당돌한 질문을 했다. “회장님께서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지금까지 이뤄 놓으신 자산으로 무엇을 하시려 합니까?” 이병철 회장은 조금도 주저 없이 답을 했다. “나머지 인생은 21세기에 한국 국민이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의 기초를 닦는 데 바칠 생각이오. 오랜 검토 끝에…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전자산업과 항공산업입니다.” 그야말로 ‘기업 활동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라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이었다. 40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결국 이병철 회장의 꿈은 절반만 거의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그 바탕에는 먼 앞을 내다보는 창업자의 안목이 있었다고 이상우 이사장은 말했다. 이병철 회장은 40년대 광복 전후부터 목돈을 벌어 50년대 한국전쟁 시기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덕분에 1950년대엔 이미 국내 제1의 재벌로 성장한 기업인이 되었다. 이병철 회장이 내세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치가 생필품의 국산화를 고민하던 당시 정권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기세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선친 이찬우가 1900년대 전후 독립협회와 기독교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약간 친분이 있었던 탓인지, 제일모직 완공식 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해 '의피창생'(衣被創生, 옷이 새로운 삶을 만든다)이라는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 부활 신앙이 없이 1987년 타계하신 이병철 회장과 달리 한기승 목사는 2023년 4월 9일 믿음의 부활을 전하는 신앙보국(信仰報國)으로 교단과 국가에 기여한다. 광주 무등산 불의 혀 한기승 목사는 외쳤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100세를 산들 200세를 산들 만족하겠습니까.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다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 조선 시대에 수명이 30대 40대 길어야 50대였습니다. 가끔 60대였습니다. 그래서 60대 환갑잔치를 가진 것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우리 수명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하고 신약 개발이 되고 최첨단 의료기가 발달 돼 많은 질병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옛날에 없던 병과 암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삶에 죽음이 엄습해올 때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죽음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나의 모든 수고를 다 해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죽음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자냐 가난하냐 살아 있을 때 조금 편리하거나 불편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그것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명예롭게 살았느냐 불명예스럽게 살았느냐의 여부도 죽음 앞에서는 별문제가 안 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과 여러분의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내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죽기를 싫어하고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공평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사회가 공평해졌습니까.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과 법정에서 사회에서 삶의 현장에서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옛날과 비교해 공평해졌지만 우리 사회가 우리 삶이 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는 돈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배운 사람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도시에 사는 사람도 시골에 사는 사람도 젊은이도 어린이도 노인도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공평한 것입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진시황제도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도 우리의 삶을 이렇게 편안하게 만든 발명왕 에디슨도 그리고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도 우리 대한민국을 반도체 대국으로 일군 이병철 회장도 모두 죽음을 막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이 죽었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죽고 있고 앞으로도 다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래 살고 싶은데 왜 죽는 것입니까. 왜 죽어야 합니까. 성경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 삶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망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다 믿습니다. 창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와 비 필연적 창조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는 하나님이 반드시 세상을 창조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가 생깁니까. 하나님이 피조물에 의해 존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혁 신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창조하셔야 한다는 필연적 창조를 말하면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서 존재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할 때 비 필연적 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도 있고 안 하실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이것을 창조 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이 피조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백성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백성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그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가 인간 세계에서 창조의 경륜이 무너지고 인간의 삶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셨던 은혜 언약을 아담이 파괴한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아담이 따먹음으로 아담이 범죄했다.’ 그렇게 해서 죄가 우리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다’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은혜를 주셔서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두셨는데 아담이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 권한을 찬탈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담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찬탈함으로 죄가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대표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을 파괴해 그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비통해하고 괴로워하는 죽음, 이 죽음이 죄 때문에 우리에게 도입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과 목적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죄가 있으면 평안이 없어지고 생명을 빼앗기게 됩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해서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 파괴되고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고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냥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를 어떻게 억제하고 제거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에 현격한 변화가 있는데 인간 수명의 단축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이 900살 930살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는 969살을 살았습니다. 이건 설화나 전설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는 것 우리가 다 원하는 데 참 좋겠죠. 그러나 오래 살면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산 만큼 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이 오래 살므로 죄가 넘쳤습니다. 죄가 너무 많아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노아 홍수 이후에 수명을 120세로 단축을 시키셨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므로 죄가 조금씩 억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죄를 억제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두 번째 방법을 내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국가를 세우신 것입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죄를 지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보내고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죄가 많아지겠습니까 적어지겠습니까. 죄가 줄어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안 가고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아마 사람 죽일 사람 많을 겁니다. 국가는 이런저런 법을 어겨도 내가 세금 안 내고 내가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욕구대로 욕망대로 욕심대로 살아서 죄를 짓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벌금내지 않는다면 교통법규 없다면 과속하고 차선 지키지 않고 얼마든지 차를 운전하고 다닐 겁니다. 그런데 교통법규 어긴 게 사진이 찍히고 벌금이 부과되니까 속력을 줄여서 교통사고 줄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국가를 세우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독재 정부라도 국가가 세워지면 국가의 공권력을 위해서 죄가 억제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세워지고 국가의 공권력으로 죄를 억제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인류사회에서 완전히 억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방법을 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죄의 문제를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할 뿐 아니라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 교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교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곧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면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통치자에게 있습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사면을 하기도 하고 권리를 복권 시키기도 합니다. 사면은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복권은 상실된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치권자인 대통령만이 가능합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듯 세상의 사면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대신 지우셔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뿐만 아니라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기게 하려고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하실 때 그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육신의 의미도 있지만 원리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죽었던 자,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하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가 아닌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부활은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죽었던 자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부활했습니다. 죄에서 생명으로, 이게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죽었던 모든 자들이 다 부활합니다. 이게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만이 죄의 정복자이시고 예수님만이 사망의 정복자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된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이 사실을 믿게 하고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증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본인의 부활을 믿게 하시고 이것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죄 사함 받았다고 영원한 부활을 소유하게 됐다고 누가 증거하게 하는가. 우리 안에 보증으로 와 계신 성령이 증거하고 믿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생명의 종교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만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의 의미도 귀하지만 우리 죄를 용서하고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부활절의 의미가 우리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의 모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하고 수고하고 봉사하는 이 모든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갖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우리 환경 속에서 승리할 수 있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가운데 많은 환란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이 부활 신앙이 죽음을 이기게 하고 이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신앙이 있습니까.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까. 그때 우리는 세상의 전염병이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환경과 사건과 사람들이 우리 신앙생활을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이 확실치 못하니까 부활의 생명이 없으니까 환란 때문에 환경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흔들리고 우리의 믿음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지는 부활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총회와 대한민국이 되기를 불철주야 기도하겠습니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천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우리가 보았던 겨울나무들이 이런 삶의 원리를 푸르른 호국의 계절에 보여주듯 부활 신앙을 믿고 전하는 한기승 목사의 총회를 위한 부활과 건재를 알려줄 계절도 문득 다가올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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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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