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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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_보스와 함께 신학여행 _박형용 저
    성경의 바른 교훈- 보스의 신학에서 찾다 Theological Journey with Geerhardus Vos 본서는 보스의 질문 전체를 다루지 않았고 우리들에게 개혁주의 신학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골라서 정리했다. 보스는 신학 분야 전체의 내용을 1,233개의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 독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힌 반면 내용의 설명을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설명해 주었다. 독자들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신학 분야의 난제들에 대한 답을 보스의 “개혁교의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스의 “개혁교의학” 전 5권은 화란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어떤 부분들은 영어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어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따라서 본서는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스의 개혁교의학의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을 요약 소개하기도 하고 또 번역하기도 한 것이다. 편저자는 본서를 통해 보스(Vos)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더 많이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고, 궁극적으로 성경의 바른 교훈이 개인 성도와 기독교회 안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 편저자의 말 중에서 - 박형용 국내인물>교육가/인문학자>대학/대학원 교수 국내인물>종교인>신학자 서경대학교와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 에모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4년 동안 가르쳤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태동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신약학을 가르쳐 왔고 총장을 역임하였다.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장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였으며 많은 학문적 연구를 저술로 내놓았다. 영국 Cambridge에 위치한 국제인명록쎈터(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로부터 2018년도 신학교육분야의 "최고 100인 전문인"(Top 100 Professionals)으로 선정을 받았다. 저서 <신약 정경론>, <성경해석의 원리>, <신약성경신학>, <복음비평사>(성광), <바울신학>, <빌립보서 주해>, <교회와 성령>, <신약개관>(아가페), <히브리서 주해>(횃불), <정암 박윤선에게서 배우다>, <신학책, 나는 이렇게 읽었다>, <권세 있는 자의 가르침>(SBGST), <시간, 나무가 되다>,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말씀산책> 등이 있다. 목차 편저자의 말 _005 보스의 『개혁주의 교의학』 전 5권 _011 제1권 신론 제1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 _021 제2장 하나님의 이름들과 존재 그리고 속성들 _022 제3장 삼위일체 _032 제4장 일반적인 하나님의 작정 _037 제5장 예정교리 _039 제6장 창조 _048 제7장 섭리 _050 제2권 인간론 제1장 인간의 본질 _057 제2장 죄 _061 제3장 은혜언약 _071 제3권 기독론 제1장 서론 _087 제2장 이름들 _090 제3장 위격과 본성 _097 제4장 직책 _103 제5장 신분 _123 제4권 구원론 제1장 구원서정 _143 제2장 중생과 소명 _156 제3장 회심 _164 제4장 믿음 _171 제5장 칭의 _178 제6장 성화 _186 제5권 교회론, 은혜의 수단들, 종말론 제1부 교회론 제1장 본질적인 문제 _206 제2장 조직, 권징, 직분 _219 제2부 은혜의 수단들 제3장 말씀과 성례 _226 제4장 세례 _235 제5장 성찬 _249 제3부 종말론: 마지막 일들과 교리 제6장 개인적인 종말론 _259 제7장 일반적인 종말론 _262 정리하는 말 _284 색인 인명 _288 주제 _291 성구 _298 기본정보 ISBN 9791193395028 발행(출시)일자 2024년 01월 01일 쪽수 306쪽 크기 152 * 224 * 28 mm / 588 g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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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0
  • 이흥선 목사 신천지 변증서
    어느 여정으로 가든 ‘내가 이룬 것은 다 내 노력 덕’이라는 함정에서 나와야 시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호부조의 면역력이 생긴다. ‘나쁜’(bad)의 우리말 어원은 ‘나뿐’(only l)이고 ‘좋은’(good)의 우리말 어원은 ‘주는’(give)이다. 그러므로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나누어주는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까닭에 몇몇 국어학자들은 ‘살다’와 ‘사람’을 같은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행복한 삶은 오래된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인연을 곱게 이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스치는’ 인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좁은 시장길을 여럿이 오가니 팔이 부딪히고 옷자락이 닿기도 한다. 그런데 옷깃은 여간해선 스치기 어렵다. 옷깃은 목에 둘러댄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옷깃을 스치려면 꼭 껴안아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잠시 스치는 만남이라면 옷자락과 소맷귀가 어울린다. 옷자락은 옷의 아래로 길게 드리운 부분이니 누군가와 맞닿을 수 있다. 윗옷의 양쪽에 팔을 꿰는 부분인 소맷귀도 움직임이 많은 팔 부분이라 스치기 쉽다.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는 1984년 3월 14일 이만희가 창설한 사이비 종교다. 교리적 특징은 종말론이다. 1966년 창립한 장막성전(1966년에 유재열이 창설하여 1980년 장막성전은 해체되고 그 자리에 서울랜드 들어섬)을 중심으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만희(1931년 음력 7월 13일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현리리 10남 1녀 중 6남으로 출생)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장막성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만희는 1971년 9월 7일 "1967년 장막성전에서 전 재산을 다 털렸다"며 다른 신도들과 함께 유재열을 고소했고, 이것이 장막성전에 대한 수사와 유재열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신천지는 핵심 교리 중 하나로 성경이 배도, 멸망, 구원 순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해당 교리에 따라 장막성전 창시자 유재열을 배도자로 규정하며 마지막 구원자를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2020년 4월 12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유재열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하자 유재열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인터뷰에 부담을 느낀다며 서면 인터뷰로 대체하였고 방송에서 내용을 공개하였다. 여기서 유재열은 "자신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교리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던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신천지에서는 일명 '실상' 교리에 따라 자신을 배도자라고 하는데 자신이 만든 교리를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게 무슨 배도인가?"라고 반문하였다. 이흥선 목사가 2020년 7월 3일 "신천지 어떤 곳인가?" 반증서를 출간했다. 신천지와 계시록을 십자가 복음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비판 반증서이다. 이흥선 목사(총신대 교수)는 신천지 교리를 십자가 복음으로 비교 분석한 한국교회 최초의 반증서 “신천지 어떤 곳인가?”를 집필하여 지난 2020년 6월 29일(오후 4시) 인천시 부평구 장제로 소재 세계로 선민교회(담임 김현두 목사) 본당(2층)에서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현두 목사는 축사를 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흥선 목사님이 훌륭하다면 이 책 또한 훌륭한 책입니다. 이흥선 목사님은 오직 믿음로만 사시는 종입니다. 성경의 뜻대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분입니다. 책의 내용이 알차고, 옳고, 바른 것을 보면 이 책은 분명 성령께서 이끄신 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자 모두에게 성령께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시대의 표상이 되는 새에덴교회를 세워 목회하는 소강석 목사는 선지자적인 영상 축하 말씀을 전했다. "코로나 위기 때에 신천지 집단 감염 상태로 온 국민이 페닉 상태에 빠져있어 신천지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교묘한 전략으로 한국교회를 넘어뜨리려는 집단입니다. 이러한 위기 때에 존경하는 이흥선 목사께서 '신천지 어떤 곳인가?'라는 서적을 출간하므로 계시록과 신천지 교리를 비교 분석한 반증서가 나오게 된 것이야말로 뜻깊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축하드리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꼭 한번 읽으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많은 책을 구입하여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믿음의 변증사 이흥선 목사는 “원래부터 신천지 비판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신천지가 극성이라 걱정하는 중국교포 제자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라며 “신천지 교리를 비판 반증한 자료를 정리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신천지가 대구지역 코로나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면서 신천지 비판 자료를 정리해 출판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악은 가스와도 같다.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냄새로 식별할 수 있다. 악은 걸핏하면 정체되어 숨 막히는 층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악이 해놓은 일을 발견한다. 악이 차지한 지위와 이룩한 과업을 보고서야 자신이 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가스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신천지 같은 악의 특성이 아닌가.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15-21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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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 11. 10. - 1546. 2. 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 12. 26. - 1546. 4. 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루터보다 두 달을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심·개·념·정·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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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3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영국의 침례교 목사 메이어(F. B. Meyer, 1847. 4. 8. - 1929. 3. 28.)는 몇몇 가까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이 미국에 있을 때 그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아주 쉬웠지. 기도가 술술 나오더군. 그런데 몰간이 영국으로 돌아와서 내 교회 근처에 있는 교회를 맡게 되니까 그건 이야기가 영 달라지는 거야. 내 속에 있는 옛 아담이 새록새록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정말 괴롭더군. 그러나 나는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질투로 나를 시험하는 옛 아담을 발길로 걷어차 버릴 수 있었지. 그리고는 내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 옳든지 어떻든지 간에 나의 생각을 즉시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을 했어. 그건 내 교회가 캠벨 모간 환영회를 열어주기로 한 거야. 그래서 성대하게 환영회를 열어주었지. 그러니까 그 친구 정말 좋아하더군. 우리 교인들도 놀라는 눈치였어. 내 기분도 훨씬 가벼워지고 좋더군. 그리고 주일 저녁 설교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때면 나는 몰간의 교회로 달려가서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을 낙으로 삼게 됐지. 몰간의 설교야 말로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설교라면 나는 그의 신발 끈 풀기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 그러나 목사의 신분과 입장에서만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던 내가 마음을 비우고 신자의 자세로 몰간의 설교를 들으니까 아주 겸손해지게 되더군. 그러니까 은혜도 받고 몰간에 대한 내 마음도 편해지고 이건 일거양득이더라 말이야. 그런데 교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존경까지 하더군. 그런데 주님의 사랑의 은혜는 정말 놀랍더군. 내가 우리 교회를 비우는 날은 천부적인 설교자 스펄젼(Charles Spurgeon) 목사가 내 대신 설교를 하지 뭔가. 스펄젼과 몰간 그 두 사람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 사람들인가. 글쎄 몰간 교회만 사람들이 넘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교회도 사람들로 가득 차는 거야! 참 놀라울 일이지 않은가! 우리 세 사람 다 득을 보게 되었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야. 무엇보다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도와 말씀뿐이더군.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는 현실적인 기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구이다.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욕심에 끌려 시험받게 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하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말씀하는 불행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사탄은 죄의 원조이다. 사탄이 이브를 유혹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인간이 죄를 짓게 한 자였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하고 말씀한다. 사탄은 마귀들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사탄이라는 명칭은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대놓고 말씀하신다. 욥의 이야기는 사탄이 하나님의 제한과 통제의 범위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욥 1:12;2:6). 마귀들은 영원한 사슬에 매여 있다(유 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로 마귀들에게 너끈히 대항할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귀를 대적해서 싸울 때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대적하라고 권면한다(엡 6:16). 이제 믿음은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 마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사도 바울은 이어서 가르쳐준다. 그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물리치셨다(마 4:1-11).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이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 【핵·심·개·념·정·리】 1)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2) 사탄에 대항해 신자는 무엇으로 싸워야 하는가?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3) 사탄을 대항하는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무엇인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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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7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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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 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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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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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10과 금단의 열매
    제10과 금단의 열매 문12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에 무슨 특별한 작정을 하셨는가? 답 _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고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다. 【관련성구】 1)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2)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4 3)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롬 10:5 욕심쟁이는 퉁명스럽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물었다. “이제 만족하니?” 앨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음, 조금만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일 미터는 초라한 키예요. 나는 그런 키에 익숙하지 못해요.” 인간의 교만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그것은 조금 더 크게 되거나 조금 더 많아지기를 항상 요구한다. 교만은 적거나 작은 것에 익숙하지를 못하다. 그리스 변방 델피의 바위산 기슭에 아폴로 신전이 세워져 있다. 그 신전에는 고대 사람들의 지혜를 요약해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그노티세아우톤 즉 “네 자신을 알라”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의 주요 연구 대상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얼마나 지혜로우냐 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바르고 깊게 알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는 성경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는 성경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시작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흙으로 만드시고 동산에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시고(창 1:28) 동산에 있는 온갖 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셨다. 단 하나만 예외를 두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그러나 아담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서도 이브가 건네주는 금지된 열매를 받아먹었다. 그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로 그 과실을 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에게 죄를 범했다. 아담의 타락을 통해 알 수 있는 죄의 성격은 기존의 선한 어떤 것에서 떨어져나간 것을 의미한다. 브룬너(Emil Brunner)는 그의 교의학 저서에서 죄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할 때마다 분명하게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을 떠났다. 너희는 옆길로 샜다. 너희는 신실하지 못했다. 너희는 언약을 어겼다. 너희는 하나님을 버리고 딴 신을 찾아갔다. 너희는 하나님을 배신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죄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탕자는 집을 떠나 아버지에게서 멀어졌다. 사악한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주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들은 반역자와 강탈자들이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목자와 양떼를 떠나 방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게 되는 죄의 본성은 무엇일까? 먹지 말라는 과실을 따먹고 아담에게도 준 이브의 본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교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아담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의지와 생각을 따른 것도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담과 이브의 경우 다 같이 하나님이 경고하신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를 따른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삶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교만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마침 아침의 아들 루시퍼 천사가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사 14:14) 하고 교만하게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교만이란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교만은 인류의 죄의 중심에 놓여있다. 교만은 우리가 실제의 자신이나 앞으로 될 수 있는 자신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정해주신 것보다 훨씬 못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만다. 우리는 타락한 존재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발전되는 도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성실과 반항과 교만으로 가득 차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셨다. 그는 신실하시고 순종적이시고 그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빌 2:8) 겸손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생명의 은혜 언약을 맺게 된다. 【관련성구】 1. 우리의 본질을 알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_성경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2. 아담과 이브가 죄를 저지르게 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_더 나은 것을 기대하는 교만. 3.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_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뿐이다.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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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5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9과 섭리
    제9과 섭리 문1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답 _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로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치리하시는 일이다. 【관련성구】 1)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103:19 2)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 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9:6 3)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 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마10:29-30 위대한 복음주의 학자 찰스 시미언(Charles Simeon of Cambridge)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 때의 일화를 그의 전기 작가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는 잠시 짧은 숨을 내쉰 뒤 예의 그 밝은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이 순간 내게 어떤 특별한 위로를 해줄 수 있겠니? 창조는 어떠냐? 여호와가 세상을 만드셨고 나도 만드셨잖니? 하나님이 창조하셨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면 그는 이제 나를 충분히 돌보아 주실 수도 있겠지!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신다는 결론에 당연히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보존(保存)과 치리(治理)의 두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첫 번째 요소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원래대로 존재하고 유지하도록 하시는 보존이다. 히브리서 1:3은 그리스도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바울이 사도행전 17:28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라고 한 말씀이나 에스라가 느헤미야 9:6에서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 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라고 한 말씀에서 확증이 된다. 하나님은 우주가 예측 가능한 상태로 움직이고 보존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물은 물로, 풀은 풀로, 공기는 공기로 그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보존하신다.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단순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시148:8 우리가 우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조차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16:33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행하시는 일들의 다양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양식을 위해 일을 하고 지속적인 자연의 과정들을 통해 양식을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라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기”(행17:28)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 아래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두 번째 요소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고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섭리 가운데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치리가 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 하고 진술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이 발생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을 확신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통해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하게 먹고 마신다면 머지 않아 건강을 잃고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이 실제적인 결과를 낳도록 예정하셨다. 즉 우리가 제공한 원인이 결과가 생기도록 예정하셨다. 물론 우리는 내일은 고사하고 오늘 남은 시간에 대해서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기도를 예정하셨다. 어떤 사람이나 일을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를 드린다면 세상을 바꾸시는 수단으로 기도를 예정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확신시켜준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고 나태하거나 무책임하게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해주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 우리는 이 말씀대로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존하시고 치리하시는 섭리가 우리를 축복해주실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 _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신다는 결론에 당연히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의 섭리의 첫 번째 요소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원래대로 존재하고 유지하도록 하시는 보존(보존)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두번째 요소는 하나님의 모든일에는 목적이 있고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섭리 가운데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치리(치리)가 있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_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3. 어떤 사람이나 일을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 _하나님은 이세상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기도를 예정하셨다. 그래서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바꾸시는 수단으로 기도를 예정하셨음을 알 수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확신 시켜준다.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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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8
  • 더굳뉴스 주석을 시작하며
    머리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새해 새달 새날이라고 하지만 실은 수억 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의 일순간이다. 새싹의 움틈과 아기의 탄생도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뒤 수없이 되풀이되는 일이다. 우리는 어제 지난해와 다름없이 우리의 몸과 우리의 기억을 지닌 채 해와 달과 날을 관통하며 살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전 1:9 그런데도 우리는 해돋이를 보러 얼어붙은 어둠을 무릅쓰고 동해로 간다. 또 갓 태어난 아기 같은 해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새로움을 찾는가. 우리의 몸과 우리의 기억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도 조금씩 변한다. 몸은 하루만큼 나이를 먹고 기억은 하루 치 정보를 저장한다. 또 우리 몸 안에서 세포들은 매 순간 죽고 또 태어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명이 지속이 된다. 그렇다면 새로움은 이어짐과 더불어 생명이 있게 하는 두 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된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인가. 흥미롭게도 오늘 우리 시대의 음악사회를 특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옛날 음악에 대한 소비이다. 18~19세기의 청중들이 대체로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청중은 과거의 음악을 듣는다. 베토벤, 바흐, 베르디 등의 음악을 들으러 연주회장이나 극장을 찾는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듣는다. 성경을 전하는 목사도 설교의 복음을 통해 은혜받은 신자도 그 성경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삶을 통해 그 말씀을 실천하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한 곡 안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음들이 들어있다. 베토벤의 음악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 또 그 이전의 음악에도 들어있는 그 음들은 작곡된 이래, 변함없이 있다. 그러나 그 소리 하나를 내는 방법 또한 무한히 있다. 사실 음악이 기록된 악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설계도면이다. 이 설계도로 소리의 집을 지어 듣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가이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맥락 속에서 그 설계도를 이해한다. 지휘자마다 곡의 빠르기와 강약이 달라지고 섬세한 표현법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음악은 새로운 생기를 얻는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곳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곳을 듣게 한다. 영적 성장과 유지를 위해 성경 주석을 필요로 하는 우리 목회자들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 아버지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God’s truth 요17:17)이고 그 기반은 사실들(facts)을 기록한 역사의 진실(historical truth)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실제 인물들과 실제 사건들을 담고 있다. 목회자를 위한 더굳뉴스 주석(The Good News Commentary)은 내 일생 가장 실제적인 해석을 담은 성경 주석이라고 믿는 다음의 저서를 기본 텍스트로 삼는다. _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 _ the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 【일러두기】 1. 성경 본문은 개역성경과 KJV를 사용했다. 2. 주석 번역 주요 텍스트는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1872), 유대인 모세오경 주석 The Pentateuch and Haftorahs(1972), Easton's Dictionary(1897) 등을 사용하고 Easton's Dictionary(1897), The King James Study Bible(1988), With the Word(1991) 그리고 필요한 여러 서적 등을 참조했다. 3. 이해를 돕기 위한 성화나 사진 등의 자료는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자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4. 인명과 지명은 외래어 표기법을 따랐다. 제미슨-포셋-브라운 성경 주석(The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은 성경 전권에 대한 ‘비평적 실험적 실제적 주석’(the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이라는 부제가 달린 주석이다. 1871년에 발간된 이 주석의 저자는 재미슨(Robert Jamieson), 포셋(Andrew Robert Fausset) 브라운(David Brown) 등이다. 제미슨(Robert Jamieson D.D. 1802-1880)은 글래스고 프로반밀(Provanmill in Glasgow)에 있는 세인트 폴스 교회(St. Paul’s Church) 목사(minister)였다. 포셋(Andrew Fausset, A.M. 1821-1910)은 요크(York)에 있는 세인트 커트버츠 교회(St. Cuthbert’s Church)의 교구 목사(rector)였다. 브라운(David Brown. 1803-1897)은 글래스고에 있는 스코틀랜드 프리 교회(Free Church of Scotland) 소속 세인트제임스(St. James)교회의 목사와 아버딘대학교 프리 교회 대학(Free Church College of the University of Aberdeen)의 신학 교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서에 대해 ‘성경이 스스로 해석하게 하는 겸손한 노력’(humble effort to make Scripture expound itself)의 일환이라며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의 깨우침을 위해 모든 거룩한 성서들을 기록하게 하신 찬양받으실 주께서 이 노력을 축복하시고 죄인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교화를 위한 도구가 되게 하시고 주의 위대하신 이름의 영광과 주의 나라의 빠른 임재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May the Blessed Lord who has caused all holy Scriptures to be written for our learning, bless this ... effort ... and make it an instrument towards the conversion of sinners and the edification of saints, to the glory of His great name and the hastening of His kingdom! Amen.” 유대인 모세오경 주석 The Pentateuch and Haftorahs(1972)의 편집인이고 영국 유대교 랍비 회장 헤르츠 박사(DR. J, H. HERTZ)는 1936년 5월 10일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브리어와 영어 본문의 모세오경(Pentateuch)과 하프토라(Haftorah: 유대교 회당 매주 예배 시 모세오경 토라를 강독한 뒤 선지서를 선별해 읽는 의식에 사용되는 성경) 해석을 곁들인 이 저서는 영어 사용 유대인들이 회당과 학교와 가정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David Levi와 Issac Delago가 해석한 모세오경 주석은 140년 전(1896년)에 발행되었고 더군다나 오늘날(1936년)은 구할 수도 없다. ... 본서의 전거가 되는 자료들은 고대 중세 현대의 유대인과 비유대인 주석가들에서 구했다. 건전한 랍비주의 교리는 ‘어떤 출처에서든 진실은 받아들이라’(Accept the true from whatever source it come’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경건한 기독교 주석가의 것이든 성상파괴주의 성서학자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의 것이든 어떤 글이라도 막론하고 말이다. 이스턴의 성경 사전(Easton's Bible Dictionary)을 저술한 이스턴 박사(Matthew George Easton 1823-1894)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와 저술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그의 사후 1897년에 출판된 본서이다. 이 책은 성경의 단어, 인물, 장소 등의 표제어로 편집된 백과사전식 편견이 없는 성경 사전이다. 이 사전은 현대에도 유용한 성경 주제들의 다양한 정보와 배경을 탁월하게 전달해준다. 위의 세 저서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1872), 유대인 모세오경 주석 The Pentateuch and Haftorahs(1972), Easton's Dictionary(1897) 이외에 The King James Study Bible(1988), With the Word(1991) 등을 참조해 설교자들의 설교 준비와 영성을 돕기 위한 주석을 1980년에 안수를 받고 어언 나이 칠십의 선배 목사가 되어 쓰게 되었다. 성경을 전하는 설교자와 성경을 실천하는 신자로서 겪은 갈등과 아쉬움 끝에 후배 목사와 진리에 갈급한 경건한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일념으로 감히 성경 주석 저술에 나서게 되었다. 본서 ‘더굳뉴스 주석’(The Good News Commentary)의 내용 팔십 프로는 위의 참고 저서들을 번역한 것이고 나머지는 나의 거친 삶의 체험과 짧은 신학과 신앙에 근거한 식견을 담았다. 그래서 본서는 설교 준비를 위한 성경 주석에 더해 설교자의 날마다의 영성 수련을 위한 큐티 형식도 첨가했다. 목사의 생명은 성경 지식에 더해 영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석 한 권이 끝날 때마다 그 전체를 모은 읽고 보관하기 쉬운 전자책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부족한 제가 감히 이 일을 감행하는 용기를 얻게 된 기반은 다음의 말씀을 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따르는 믿음과 그것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1-3 2023. 1. 14 토요일 총신대 6회 총신신학연구원 72회 더굳뉴스 주필 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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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4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7과 창조의 방법
    제7과 창조의 방법 문8 하나님께서 그 예정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답_ 하나님께서 그 예정을 이루시는 것은 창조와 섭리하시는 일로 한다. 문9 창조하신 일이 무엇인가? 답_ 창조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그 권능의 말씀으로써 만물을 지으신 일인데 다 매우 좋았다. 【관련성구】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2)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6, 9 3)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6-17 얼마 전 일단의 사람들이 “지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연구에 대답을 얻고자 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들은 수많은 영역을 조사해서 모은 온갖 자료를 모아가지고 거대한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 정리했다. 그들은 자료 정리를 마치고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런 뒤 그들은 대답 버튼을 누르고 잔뜩 기대를 안고 결과를 기다렸다. 불빛이 깜박거리고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기계가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줄어들고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숨소리를 죽였다. 프린터의 인쇄하는 소리가 들리고 결과를 인쇄한 종이가 출력되었다. 그들은 종이를 펼쳐들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시오. 하나님은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무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이 정의에 근거하여 우리는 창조에 대한 세 가지를 논의해보도록 하자. 첫째, 하나님은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다. 인간은 무엇을 만들거나 지을 경우 반드시 기존의 물질이나 재료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무 것도 사용하지 않고 지으셨다. 이것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는 창세기 1:1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천지라는 말은 전 우주를 뜻한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함하는 우주의 모든 부분의 기원에 대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6-17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주를 무에서 창조하셨지만 우주에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이나 존재는 하나도 없다. 이 사실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를 다스릴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창조물이 우리에게 즐거움과 유익을 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드리고 찬송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우주를 창조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 43:7 하나님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의도하셨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1 우리는 해나 별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나뭇잎 하나를 보아도 그 기묘함에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셋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는 매우 좋았다. 창조가 끝난 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세상에 죄악이 있었지만 세계는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인간들이 보기에도 좋았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시 104:15 성경은 술 취하는 것을 죄로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포도주가 나쁘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 까닭을 주님이 명쾌하게 밝혀주신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막 7:15-16 물질에 대한 주님의 명쾌한 가르침은 물질세계를 활용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죄악시하는 그릇된 금욕주의와 이원론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선용하고 절제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5 【핵심개념정리】 1. 창조에 대해 정의해 보라. _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무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 2. 우리는 만물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_하나님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의도하셨다. 3. 우리는 물질 세계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가? _마가복음 7:15-16에서 물질에 대한 주님의 명쾌한 가르침은 물질세계를 활용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죄악시하는 그릇된 금욕주의와 이원론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선용하고 절제해야 한다.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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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5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6과 예정
    제6과 예정 문7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인가? 답_ 하나님의 예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이신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되어가는 일을 미리 작정하신 것이다. 【관련성구】 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 33:11 2)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10 3)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4-6 신학자들이 모여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갈수록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급기야 그들은 예정파와 자유의지파로 패가 갈리어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한 신학자가 어느 쪽에 가담해야 될지를 결정 못 하고 잠시 엉거주춤 서 있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그 신학자는 예정파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가 그쪽으로 갔을 때 예정파의 신학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누가 당신을 이리로 보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무도 나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내 자유의지로 여기 왔습니다.” 예정파의 사람들이 외쳤다. “자유의지라니요! 이 쪽은 당신 자신의 자유의지로 올 수 있는 데가 아니요. 다른 데로 가보시오.” 그는 몸을 돌려 자유의지파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가 그쪽에 끼어들려고 하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언제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까?” 그는 짜증난 얼굴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내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쪽 사람들이 이리 보내서 왔습니다.” 그들이 놀래서 외쳤다. “당신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쪽에 가담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양쪽 어디에도 낄 수가 없었다. 예정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어떤 공로를 나타내기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선하신 뜻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들을 예정하셨음을 분명하게 확증하는 것으로 보이는 말씀들이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누가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 또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8-30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롬 11:7 이 말씀에서 바울은 택하심을 입은 자가 구원을 얻은 반면에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우둔하여졌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예정이 이 세상의 창조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4-6 더 나아가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살전 1:4-5 이 말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예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여부는 현재의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으면 창조 이전에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이고 믿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부르신 이유를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예정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 것인가?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유기(遺棄)라고 하는데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유기란 창세전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심판하기로 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기 교리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리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 4 또한 바울 사도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17-23 우리가 유기 교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받아들이고 믿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선택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인 반면 유기의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이다. 다시 말해서 선택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지만 유기의 원인은 죄인들에게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선택과 유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 그것을 적용시켜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야 한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이 가르치는 예정 교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까닭이 영원 전에 하나님이 그의 사랑을 베풀어 주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을까? 그것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이유이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요구할 아무런 자격이 없다.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 이 은혜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행위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송하는 일 뿐이다. 【핵심개념정리】 1. 예정의 구원 여부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_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여부는 현재의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으면 창조 이전에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이고 믿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 우리의 예정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_성경이 가르치는 예정 교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까닭이 영원 전에 하나님이 그의 사랑을 베풀어 주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예정교리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게 해주는가? _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을까? 그것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이유이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지게 될 것이다.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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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8
  • 김영배의 소요리 문답_ 제5과 삼위일체의 신비
    제5과 삼위일체의 신비 문5 하나님 한 분밖에 또 다른 하나님이 계신가? 답_ 한 분뿐이시니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문6 하나님의 신격에 몇 위가 계신가? 답_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시오,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시다. 【관련성구】 1)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 6:4 2)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6-17 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이런 말을 했다. “나한테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벌레를 한 마리 가져와라.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을 당신한테 보여주겠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자족하시고 그리고 영원하시다. 하나님은 근원이 없고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리고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고 변하지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신다. 삼위일체란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 말은 라틴어 트리니타스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셋이 하나됨(trinity)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삼위일체란 말은 나오지 않아도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머리되시는 하나님의 위격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과 축복이 없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어떻게 세 위격을 가지실 수 있을까 하고 이해를 못하고 삼위일체 교리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신학이 단순해야 한다고 불평을 한다. 그들은 단순해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에 단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책상이나 의자 같은 사물도 겉으로는 단순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원료에 대해 말을 하려고 든다면 그것은 우리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기에 책상과 의자를 만든 존재는 그가 만든 사물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이다. 더욱이 그 책상과 의자를 만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얼마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시겠는가? 유대인들은 언제나 다음의 성경구절을 암송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4-9 이 말씀의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이 교훈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야 하고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이와 똑같은 진리를 말씀한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전 8:4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6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우리가 앞서 인용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라는 말씀이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은 없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의 “오직 유일한”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에카드(echad)가 의미하는 것은 독립된 하나가 아니라 연합된 하나이다. 실제로 그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완전한 단일 실체에 대해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에카드는 포도 한 송이에 대해 사용되거나 또는 한 백성으로 통칭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머리되시는 하나님 속에 계시는 다른 존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위격”(位格, person)이다. 이 말은 라틴어의 페르소나(persona)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어떤 인물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가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양태설 같은 잘못된 사상을 낳게 된다. “위격”(位格)이라는 말은 인격(人格)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인격이라는 말은 한 인간을 의미하고 한 독립된 존재를 나타낸다. 우리가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한 인격을 이루는 몸을 가지고 있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존재의 의미 그 자체는 지식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 위격 또는 세 실재는 각자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머리되시는 하나님 속에 있는 각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똑같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 그러면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예증할 수 있겠는가? 아마 삼위일체에 대해 인간이 들 수 있는 적절한 실례는 빛, 열, 공기일 것이다. 당신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본다면 바로 거기에 빛과 열과 공기가 각기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빛이 있다. 그 이유는 당신은 빛을 통하여 자신의 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일지라도 그곳에는 여전히 빛이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의 머리와 손 사이에는 열이 존재한다. 그 열은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변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손을 휘저으면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요점은 빛과 열과 바람 이 세 가지가 각각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각기 자신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을 각각 분리해서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 가운데 다른 두 가지가 없이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세 가지이지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이 실례가 지닌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이 이 세 요소들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빛: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5 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 12:29 바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예증을 통해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는 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 말씀 하고 있는 진리를 믿을 수 있느냐에 있다. 이제 우리가 믿어야 될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세 가지 진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성경은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가르친다.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왕상 8:60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4: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 8:5-6 성경에서 이와 같이 이 삼위일체 교리만큼 끈질기고 강하게 선포된 진리가 없다. 둘째, 성경은 성부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자와 성령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성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8 의심하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하고 엎드려 말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19 성령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 5:3-4 이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계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0 살리는 것은 영이니 요 6:6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1 이와 같이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셋째, 성경은 한 하나님이신 세 위격이 각각 구별되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각 위격이 지니신 인격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계시다. 이것이 곧 삼위일체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구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복수성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그 첫 번째 예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이다. 두 번째 예는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이다. 세 번째 예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이다. 마지막 예로 놀라운 구절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 30:4)이다. 이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 당시의 선지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그 아들의 이름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고 있다. 【핵심개념정리】 1.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 교리의 세 가지 근본 진리는 무엇인가? _첫째. 성경은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가르친다. 둘째, 성경은 성부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자와 성령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셋째, 성경은 한 하나님이신 세 위격이 각각 구별되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친다. 2. 위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_머리되시는 하나님 속에 계시는 다른 존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위격"(위격, person)이다. 이 말은 라틴어의 페르소나(persona)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어떤 인물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가면을 의미한다. "위격"(위격)이라는 말은 인격(인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3.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_삼위일체란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 말은 라틴어 트리니타스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셋이 하나됨(trinity)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삼위일체란 말은 나오지 않아도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머리되시는 하나님의 위격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과 축복이 없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예증을 통해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진리를 믿을 수 있느냐에 있다.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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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1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4과 하나님의 속성
    제4과 하나님의 속성 문4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답 _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 【관련성구】 1) 태초 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2)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샤네이(Charney)라는 이름의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친구들도 샤네이를 저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세상의 관계있던 사람들도 다 그를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외로움과 좌절감에 사로잡힌 그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방 바닥에서 돌을 하나 캐냈다. 그는 그 돌로 감방 벽에 글을 새겼다.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는다.” 어느 날 지하 감방 바닥의 돌 틈새에서 푸른 새싹이 돋았다. 그 가냘픈 새싹은 감방 천장에 뚫린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다. 그 죄수는 간수가 날마다 자신에게 갖다 주는 물을 아껴두었다가 그 새싹의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었다. 그 싹은 마침내 어엿한 한 포기 초목으로 자라 파란 꽃망울이 대롱대롱 달렸다. 꽃잎들이 활짝 피었다. 독방의 죄수는 전에 감방 벽에 돌로 긁어 썼던 글을 박박 지워버렸다. 죄수는 그 벽에 다시 돌로 글을 새겼다.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다.” 그러나 이 죄수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옆방 죄수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이 딸이 자기 아빠 옆방의 죄수 샤네이의 감방을 들어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이 소녀는 그 방에 들어갔다가 꽃이 활짝 핀 초목을 보고 좋아 팔짝팔짝 뛰었다. 축축한 지하 감방 바닥에 놀랍게도 한 줄기 초목이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소녀를 마냥 기쁘게 했다. 그리고 벽에 새겨진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다”는 글은 그녀에게 더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샤네이도 덩달아 기뻐했다. 이 소식이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 조세핀 황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녀는 나폴레옹 황제를 설득했다. “폐하, 그렇게 헌신적으로 한 포기 꽃나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일 수가 없어요. 풀어주도록 하세요.” 나폴레옹은 사랑스러운 황후의 얼굴에 어린 감동의 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샤네이는 그 꽃나무를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가서 평생 돌보며 살았다. 생명의 기쁨을 일깨워주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해준 그 꽃나무가 그에게 하나님을 믿게 해주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 안에서,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해가 뜨거운 벌판에서 모세는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를 태우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 때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말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3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 칭호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옛 이름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칭호는 하나의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자존하시고 자족하시고 그리고 영원하신 실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속성 안에서 완전하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그의 피조물인 우리와 함께 가지고 계시는 몇 가지 속성들이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그의 사랑 안에서 완전하시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 우리 역시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우리 역시 한정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존, 자족, 그리고 영원함에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같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세 속성을 가지고 계시다. 첫째, 하나님은 자존(Self-Existent)하신다. 하나님이 자존하신다는 것은 아무런 근원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근원도 가지고 계시지 않으므로 그의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자존은 우리가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 까닭은 자존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것들은 그 현상에 대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원인들을 알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근원과 원인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자존하신다. 하나님의 자존은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모든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시고 자신의 하시는 일을 변호해주시기를 바란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설명하실 필요가 없다. 그 까닭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자족(Self-Sufficent)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두 번째 속성은 자족이다. 자족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핑크(Arthur W. Pink)는 하나님의 속성들이란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일에 어떤 압박감이나 책임감이 필요 없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엡 1:11) 분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했던 것은 단순히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도 얻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셨다. 하나님은 그의 구속사역을 통해서도 외적인 영광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런 영광이 없이도 하나님은 충분히 영광스러우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 기쁘신 뜻대로(엡 1:5) 하신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 자족성 안에서 휴식할 수가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자족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은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는 그의 자녀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 시편 기자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1,2) 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그의 영원성을 통해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 속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은 불변성이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고 변함이 없으시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어지지도 않으시고 죽지도 않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요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그를 무시한다고 해도 앞으로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설령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거절한 하나님을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거절하시는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자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_하나님이 자존하신다는 것은 아무런 근원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자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_자족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3. 하나님의 영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_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그의 영원성을 통해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 속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은 불변성이다. 두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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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4
  • BOOK_ 리더여, 스파크가 되라_ 권순웅
    책 소개 국내도서 >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앙생활 > 신앙생활/영성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불꽃사명자로 사는 법은 무엇일까? 불꽃같은 리더십의 비밀을 알게 하는 책! 스파크가 되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리더십을 취하라는 것이며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보아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결론이며, 믿음의 결론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든 삶을 이해할 수 있음을 진하게 전해준다. 저자(글) 권순웅 목회자/목사 ㆍ 미션스쿨 계성중·고등학교에서 신앙 입문 ㆍ 영남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며 신앙적 방향과 민족과 이웃에 대한 고뇌 중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ㆍ 새술교회(주다산교회 전신) 30평 상가교회 개척 ㆍ 주다산교회 천막교회(화성)를 거쳐 동탄에 교회를 건축 ㆍ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초빙교수로 후학 양성 ㆍ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서기를 거쳐 제107회기 총회장으로 섬김 ㆍ 주다산교회 30주년 기념으로 『예수의 비행기』 출간 저서 『예수 SPARK CELL 리더십 이야기』(도서출판 소망) 『스파크 양육교재』(공저, gtm) 『코로나 이후, 교회교육을 디자인하다』(공저, 들음과 봄) 『3.1운동 정신과 코로나 극복』(공저, 들음과 봄) 『예수의 비행기』(주다산교회) 목차 - 저자 서문 - PART 1. 리더십의 기초 : 불꽃 사명의 기초 1장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엘리야의 까마귀 2장 구경꾼 성도와 주인공 성도 3장 두려워하는 마음과 건강한마음 4장 견고한 진과 하나님의 능력 5장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 - PART 2.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1 : 불꽃 사명의 믿음 1장. 예배자, 아벨 2장. 동행자, 에녹 3장. 사명자, 노아 4장. 믿음의 소유자, 아브라함 5장. 웃는 자, 이삭 - PART 3.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2 : 불꽃 사명의 행함 1장.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야곱 2장. 꿈꾸는 자, 요셉 3장. 온유한 자, 모세 4장. 용기 있는 자, 여호수아 5장. 충성된 자, 갈렙 익투스 2022년 11월 16일 출간 ISBN 9791186783450 ( 1186783451 ) 쪽수 240쪽 크기 145 * 210 mm 값 18,000원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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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7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3과 성경의 가르침
    제3과 성경의 가르침 문3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_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다. 【관련성구】 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2)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 6:8 3)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에밀(Emil Caillet) 박사는 프랑스 철학자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나중에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본래 자연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고 제대를 한 뒤 영혼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것을 통해서도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성경을 구해다 건네주었다. 그는 서재로 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성경을 무심코 펼쳤는데 산상수훈이었다. 나는 산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솟구치는 흥분에 싸여 그 가르침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놀라움을 나타내는 구절은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그토록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얻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성경이라는 사실이었다. 밤이 늦도록 복음서를 계속 읽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세심하게 읽는 복음서 안에서 어떤 분이 내게 살아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성경은 내가 어떤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고 그 실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는 이해하기 힘든 인간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깨닫게 해주었다. 성경의 낱낱의 쪽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놀라운 권능의 실재를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성경의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나의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아주 옛날 에덴동산에서 뱀이 여자에게 살살대며 말을 건넸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이 물음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은 정말 믿으실만한 분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진리인가? 기록된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의 능력은 인간들이 다듬은 기록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성경만큼 영향력을 가진 책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거룩한 책 성경을 마음을 다해 읽어보라.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우리 자신에게 몰두하게 해준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어떤 책에서도 느낄 수 없는 힘과 능력을 발견하고 신성한 숨결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글로바와 그의 아내가 풀이 죽어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다. 맥이 빠진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을 건네셨다. 그는 성경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깨우치고 눈이 떠진 그들이 서로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눅 24:32 그 밤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였다. 성경은 또한 우리를 변화시킨다. 어거스틴은 밀라노 근처에 사는 친구의 정원을 거닐며 로마서 13장을 읽을 때 변화되었다. 루터도 발트부르그 성에 머물면서 성경을 읽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존 웨슬리는 날마다 성경의 묵상을 통하여 엘더스게이트에서 열린 작은 모임에서 회심하게 되었다.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교훈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풍조가 있다. 무엇을 믿든지 바르게 살기만하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믿든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차이가 없다고 하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인간이 바른 믿음이 없이도 바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은 없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둘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올바른 행위와 실천의 열매와 결과가 없다면 참 믿음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 가지 행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 가지 행함을 실천해야 한다. 【핵심개념정리】 1.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 _첫째 교훈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_내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0-10 3. 믿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_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 가지 행함을 실천해야 한다.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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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7
  • 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제2과 삶의 규칙
    제2과 삶의 규칙 문2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러워할 것을 지시하셨는가? 답_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관련성구】 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2)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3)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하는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354-430)은 오늘날 알제리의 타가스테에서 이교도인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와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371년 그는 교육을 받기 위해 카르타고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완전히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철학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뒷날에 그는 당시의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자신이 기독교를 향하여 내디딘 첫 걸음이라고 말하였다. 383년에 어거스틴은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로 갔다. 그는 384년 밀라노에서 제국의 수사학자로 임명받았고 그곳의 신학자이자 감독이던 암브로시우스의 영향과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로부터는 구약성경의 어려운 부분들이 풍유로서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신플라톤주의로부터는 하나님의 영적 완전성의 개념과 내적 명상을 통한 통찰력을 배웠다. 그러다가 그는 신플라톤주의자 빅토리누스(Victorinus)와 수도사 이집트의 안토니(Antony)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야기를 들었다. 세속과 회의에 젖어 방황하던 어거스틴 자신도 세상으로부터 회심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386년 여름 어느 날 그는 어떤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는 친구의 집 정원에 앉아 있었다.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소년인지 소녀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웃집에서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읽어라. 일어나 읽어라.” 이 소리는 노래처럼 여러 번 들려왔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성경을 펼쳐 발견한 첫 번째 장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성경을 읽다 놔둔 곳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나는 성경을 들고 펼쳤다. 내 눈이 처음 머무는 곳을 조용히 읽었다. 말씀이 들려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이 말씀을 들은 이후 어거스틴의 방황과 방탕의 시대는 끝났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히 4:12) 했다. 이 사건은 어거스틴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387년 부활절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3년 동안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며 글을 썼다. 391년 힙포의 작은 교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5년 뒤 힙포의 감독이 되었다. 힙포는 작고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어거스틴으로 인하여 향후 34년 동안 서방 교회의 신학 중심지가 되었다. 어느 무더운 날 밤 한 사람이 나사렛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지성을 갖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진리에 대해 토론하기를 원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 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2 그는 우리는 아나이다 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의 목적을 알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예수님이 대답해주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이 대답은 진리는 지식과 토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지 않고는 진리를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또 물음을 던졌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4 예수님은 미소를 머금고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그에게 가르쳐 주셨다. 진리를 아는 참 지식이란 하나님과 영적인 것을 앎으로 시작되고 그리고 그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가르쳐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성경 이외의 것으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일반계시라고 한다. 즉 자연이나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일반계시라 한다. 성경의 특별계시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역사적인 구속사건을 통한 계시이다. 이 구속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칭의(稱義)의 증거로 부활하신 사건이다. 두 번째 단계는 기록을 통한 계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신 일들을 기록하게 하셨다. 이 기록이 바로 성경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각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사람이 거듭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두 계시는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성경 이외의 것으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일반계시라고 한다. 즉 자연이나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일반계시라 한다. 2. 진리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진리를 아는 참 지식은 하나님과 영적인 것을 앎으로 시작되고 그리고 그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 가능하다. 3. 특별계시의 세 단계는 무엇인가? 첫 번째 단계는 역사적인 구속사건을 통한 계시이다. 이 구속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칭의(칭의)의 증거로 부활하신 사건이다. 두 번째 단계는 기록을 통한 계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신 일들을 기록하게 하셨다. 이 기록이 바로 성경이다. 세 번째 단계는 각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사람이 거듭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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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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