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G.OPINION
Home >  G.OPINION

실시간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 G.OPINION
    • G.OPINION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 G.OPINION
    • G.OPINION
    2024-04-05
  • 윤희원의 선거 변혁 제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이 총회 상비부 임원 같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배광식이나 고광석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6일 전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 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표로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했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 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4-05
    • G.OPINION
    • G.OPINION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 G.OPINION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 G.OPINION
    • G.OPINION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 G.OPINION
    • G.OPINION
    2024-03-18

실시간 G.OPINION 기사

  • GMS 속회 총회를 마치고...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힘의 논리에 눌려 지동설을 부정할 것을 맹세하고 풀려난다. 그리고 법정을 나서면서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2015년 10월 29일 GMS 속회 총회에서 본부 총무가 당선되었다. 필자는 GMS 회의장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법으로는 안 맞는데...” 법으로 맞지 않는 이유는 그 동안 00커스와 00헤럴드에 필자가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금번에도 본부총무가 당선되는 데는 많은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것 같다. ①총회 기간 중 후보자는 필자가 선관위원인 것을 알았는지 찾아와 총회 어른 이름을 대면서 자신보고 본부총무에 출마하라고 하여 임원직을 사표내고 출마하려고 하니 도와 달라고 하였다. 소위 말하면 공천(?)을 받은 셈이다. 힘을 받고 있었던 후보임이 틀림없다. ②중립을 지켜야 할 GMS 임원 네 분과 선관위원 한 분이 추천을 해 준 점이다. ③선관위원을 보충하는데 정식 임원회도 거치지 않고 제척 사유가 되는 본부총무 후보자가 소속된 노회의 노회원을 보충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그 위원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다. ④현직 임원이 정회 기간 중 사표를 내고 출마하였으니 상당한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언론의 힘도 한 몫 하였다. 언론은 무명으로 난타하는 글을 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모 언론이 ‘무명의 GMS 이사’가 필자에 대하여 난타하는 글을 실어 주었다. 그곳에 보면 “총회헌법의 신성한 조항을 뜯어내어...” 라는 표현이 나온다. 신성이란 네이버 국어사전에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이라고 하였다. 헤겔사전에 보면 ‘신성이라는 말은 계몽과 이신론에 의해 '신'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총회헌법을 하나님의 자리까지 갖다놓고 대든 그 분의 신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분명 잘못된 논리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기관목사는 노회의 허락을 받도록 되어 있으니 소속 노회가 노회를 열어 허락을 해 주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 출마하는 것이 옳다. 이제는 탈법까지 가르쳐 줘야 할 형편이다. 우선 본부총무 서리로 근무하게 하고 노회 허락 후 서리를 떼면 될 것 같다. 우리 총회 안에 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노회장 추천서를 노회 결의 없이 개인이 노회 서기 찾아가서 떼는 추천서가 어디 있는가? 목사후보생 신학입학고시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강도사고시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임원출마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총회 총무 출마를 위한 노회장 추천서 등등 모두 노회 결의를 통하여 떼는 추천서다. 제92회 총회에서는 부목사를 계속 청빙하기 위하여 노회에 제출하는 당회장 추천서를 당회장 혼자 떼 줘서는 안 되고 당회 결의를 하고 추천서를 떼 주는 것이 합법이라고 결의하였다. 당회도 그런데 하물며 노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십분 이해하여 노회 기간이 아닐 때는 자신 한 사람을 인하여 노회를 열어 추천서를 떼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금번 경우는 가을 정기노회가 열린 후에 입후보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음에도 노회에 청원하지 않은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것들이 용납된 것이 힘의 논리이다. 사실 금번 속회 총회에 임하면서 필자는 고심을 많이 하였다. 필자가 주장하는 법 논리는 맞는데.. 선관위와 맞서고 GMS 총회에 필자의 법 논리를 피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필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사분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위임장을 가지고 참석한 대리 참석자는 ‘담임목사의 위임장으로 선거권을 부여합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대리 참석자들에겐 선거권 외에 다른 권한은 없다. 정식 이사들에 의해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경우 후보자의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다. 또한 그 수가 많든 적든 법 발언은 항상 우선권을 가진다. 하지만 때론 법 보다는 화합이 중요할 때가 있다. 더욱 GMS에서는 선교라는 중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말이다. 그러나 좀더 솔직한 것이 마음을 감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진다. 사실 투표를 통하여 법을 안 지키고 밀어붙이려고 하는 힘의 논리가 패하기를 바랐다. 법에 맞는 후보가 당선되면 모든 것은 정리되기 때문이다. 나타난 결과는 필자나 같은 주장을 하는 이사들이 법을 어기는 힘의 논리에 편승한 꼴이 되고 만 것이 착잡할 뿐이다. 아무튼 본부총무 당선을 축하한다. 그러나 게임에서 승리하였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3년 동안 본부총무 역할을 기대해 본다. GMS 의 앞날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김종희목사(성민교회.남부산남노회 증경노회장)
    • G.OPINION
    2015-10-04
  • 김삼환 vs 전병욱
    2015년 1월 27일 언론중재위원회는 명성교회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언론중재신청에서 "조정 불성립"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명성교회가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언론사는 반론을 수용할 수 있으나 삭제는 안된다고 주장하여 그 간극이 큰 것을 확인한 중재위원들은 불성립결정을 단 5분 만에 내렸다. 명성교회측은 비자금 의혹과 장로의 자살도 명성교회와 상관이 없는데, 언론사들이 기사를 허위로 작성해 보도했다는 주장이고, 언론은 그 만큼의 정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3통의 유서에서 故 박 장로가 일관되게 남긴 말이다. 담임 김삼환 목사에겐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말도 남겼기에 언론으로서 충분히 비자금 의혹, 재정인계 과정에서의 의혹, 자살은폐의혹(사인을 심장마비라고 교회 측 발표), 횡령은 안 했다고 하면서,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유서내용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2014년 6월 17일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재정을 관리해 온 수석 장로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각에서는 박 장로의 죽음이 김삼환 목사의 비자금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명성교회는 근거 없는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됐다. 의혹 제기에 앞장선 이들은 “프레시안” 편집위원 윤재석 씨(명성교회 전 집사 )와 예장통합을 무대로 활동하는 “예장뉴스” 편집인 유재무 목사다. 이들은 숨진 박 장로가 1,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했고, 김 목사가 특별 새벽 기도회 헌금을 유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으며, 목회자를 상대로 사채업도 했다고 보도·광고했다. 그러자 명성교회 장로들은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8월 26일 동부지방법원 202호에서 앞의 재판의 지연으로 40분 늦은 오후 4시 40분에 명성교회 측의 증인으로 나온 이종순 장로에 대한 증언 선서와 검사의 간단한 심문이 있은 뒤 피고인 측의 변호인 엄상익 변호사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그날 1시간이 넘게 진행된 법정공방들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를 짚어 보겠다. 엄상익 변호사: 2014년 6월 17일 박 장로가 자살했을 때 명성교회가 처음 사인을 발표할 때 왜 심장마비라고 밝혔습니까?증인: 선임 장로 10명이 모임을 갖고 토요일 오후 유족을 접촉했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늦게 귀가한 유족이 박 장로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 부탁을 해서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검찰 진술서 345페이지에 보면 박 장로가 일부 자금을 관리했다고 했는데 박 장로 개인이 관리한 돈이 얼마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증인: 내년 김 목사 은퇴 후 선교나 통일을 위한 일에 유익하게 쓸 용도로 매년 수십억씩 모아 800여억 원을 관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박 장로가 죽으면서 남긴 유서에 차 트렁크에 있는 서류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폐기했습니까?증인: 자료가 4-5년 된 먼지가 뽀얗게 앉은 서류인데다 교회 원본에 있는 것들이라 폐기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그 800억은 어디에 쓰였습니까?증인: 건축이나 이런 저런 일들에 쓰고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법정공방은 김삼환 목사에게 의혹이 일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오후 6시 넘어서까지 세세히 이루어졌다. 전병욱 목사는 재정적으로 자립이 힘든 교회를 후원하기 위해 '저수지 교회'를 정식 슬로건으로 정했다. 전 목사 시무 당시의 삼일교회는 관리와 조직 능력 면에서 뛰어났다. 성도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됐고, 교회 사역을 위해 태스크포스 팀이 조직돼 기민하게 행동했다. 저수지 교회 사역에서도 역시 교회 측은 관리와 조직능력을 동원해 태스크 포스 팀을 조직했다. 태스크포스 팀은 우선 후원대상 교회 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저수지 교회 후원사역을 알리기 위해 계간지도 발간했다. 태스크포스 팀은 후원대상 교회를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로 한정하고, 대상 지역과 교회를 선정한 다음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매주 화-수, 목-금 이렇게 1박 2일 일정으로 매주 2차례씩 후원대상 교회를 직접 방문해 후원대상 교회의 실태를 점검하고 결연을 맺었다. 아래는 미자립교회에 발송한 공문 내용 중 지원내용을 담은 대목이다. 지원내용 1. 현재 사역하고 있는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후원함2. 1년 동안 매월 일정금액을 후원함3. 후원금액은 교회재정의 용도가 아닌 목회자 생활비로 사용되도록 함4. 후원을 받는 교회는 본 교회가 요청 시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토록 함5. 사역지(교회)를 옮기거나 농어촌지역을 벗어날 시에는 후원대상에서 제외함6. 비정기적으로 후원교회에 대한 현지실사를 통하여 교회로서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파악할 것임 계간지인 With 31은 7월과 10월에 각각 여름호와 가을호가 발간됐다. 그리고 매주 교회 결연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2011년 11월 말 기준, 삼일교회의 미자립 후원 교회 현황이다. - 목포: 21개 / 통영: 5개 / 고성: 5개 / 보성: 24개 / 제주: 5개 / 울진: 7개- 수도권 : 1개- 영암: 3개 / 평창: 3개 / 고성: 2개 / 영월: 2개 / 양양: 2개 / 태백: 1개 / 정선: 5개 / 강릉: 5개 / 동해: 2개 / 삼척: 2개 후원대상으로 선정된 교회는 삼일교회 측으로부터 매월 30만원씩 총 36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 받게 된다. 대도시가 아닌, 조그만 산촌이나 어촌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쓰는 목회자들에겐 30만원은 무척 큰 금액이다. 이러한 일은 재정적으로 풍요할 뿐 아니라 목회자의 선교의 열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전병욱 목사는 이 일을 위해 1,000억을 목표로 해서 모으다 그가 교회를 사임할 당시 252억이 확보되어 있었다. 1993년 12월 25일 갓 30세에 전병욱 목사(총신 84회)가 3대 위임 목사로 부임하여 80명의 신도를 15년 만에 출석교인 1만6000여 명으로 200배 성장시켰다. 2008년 10월 기준이다. 본당만으로 참석자들을 수용하기가 곤란해지자 1999년 3월부터 인근의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리며, 이후 교회건물을 신축 및 매입하여(B, C관) 수용능력을 늘렸다. 숙명여자대학교 측과의 임대계약 만료로 대강당 예배를 2009년 3월 말 종료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안정시킨 시점에 다윗이 실족했던 것처럼 신자의 수가 2만2천여 명으로 치솟고, 현금만으로 마련한 예배당을 포함해 3개의 건물(A, B, C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기도원이 있고, 미자립교회를 30만 원씩 1000개 교회(전병욱 목사 재직 당시 100여개 교회를 도움)를 돕기 위한 저수지 교회로서의 자금 252억 원(헌금만으로 모인 돈)을 달성한 시점에 전병욱 목사는 교회 안에서 그를 곤란하게 하고 교회를 분쟁과 분열로 몰아갈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그 일로 청파동 언덕의 아담한 교회를 엄청나게 키워 언덕에서 내려와 대로변에 크게 세운 삼일교회 당회장 직을 내려놓고 아무런 요구나 타협도 하지 않고 사임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일 그는 교회 내에 아무런 분규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교회를 홀연히 떠났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세였고 그들은 전병욱 목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여느 목사들과 달리 교회의 안정을 위해 그들을 잠재우고 2만이 넘는 신자와 252억 원의 현금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교회를 사임했다. 그 뒤 이런저런 명목아 붙은 13억의 전별금을 온라인으로 받았다. 김삼환 목사는 은퇴 후 쓰려고 800여억 원을 비밀리에 관리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하보다 귀한 한 장로의 생명까지 자살로 마감했다. 김삼환 목사는 여전히 그가 세운 명성교회에 재직하며 가톨릭의 대주교와 나란히 명성을 날리며 잘 살고 있다. 그에 반해 교회를 위해 사임하고 아무런 말없이 떠난 전병욱 목사는 홍대 근처의 이층 교회에서 새로운 교회 1500여명을 전도해 복음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의 후임으로 큰 교회도 물려받고 252억도 관리하는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는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전국 총대들에게 불온한 서적을 돌리고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주장하고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 도대체 송태근 목사가 주일에 총회 서기 권재호 목사의 교회까지 몰려가 뉴스앤조이 기자와 삼일교회 집사들이 불미스러운 시위를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총회 예배모범이 규정한 주일성수를 어기는 죄는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 긴급동의안까지 발동해 전병욱 목사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못된 정치꾼의 행태까지 보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송태근 목사를 엄히 꾸짖고 그 소속 노회가 목사 면직시키도록 결의해야 할 것이다. 송태근 목사를 두둔하고 전병욱 목사를 압박하는 (가칭)평양제일노회는 얼마나 깨끗한지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그 노회의 회원이 되어 과거에 문제를 일으키고도 이성택 목사, 길자연 목사, 권순직 목사 등의 배려로 살아남아 성경과 헌법대신 교회 정관을 언약궤 모시듯 하는 분당에 있는 교회 목사의 죄도 다시 들출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주일 명성교회 앞에 송태근 자신의 언론사까지 딸린 친위시위대를 보내 이층 건물을 세 얻어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힘없는 전 목사대신 막강한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의 천하보다 귀한 장로를 자살하게 만든 죄를 물어 면직을 주장해 자신들이 신주마냥 앞세우는 한국교회의 정의를 세우기 바란다. 2015-09-10
    • G.OPINION
    2015-09-10
  • 아이티의 진실
    수원역 앞 선로에서 이산가족상봉이 좌절된 실향민 이 모(75세)씨가 진입하는 전동차에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은 2009년 9월 18일 오후 7시 수원 시은소교회(김성길 목사)에서 교계 및 정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부 산하 정식 NGO 단체인 해피나우(나중 구호금의 계좌이체를 받을 수 없는 임의단체로 밝혀짐) 창립예배 및 취임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대표회장 김성길 목사, 법인이사장 김성호 장로(신명재단 이사장), 운영이사장 소강석 목사 등을 비롯해 초대 GMS총재 길자연 목사, GMS이사장 이종영 목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계와·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말씀을 전한 길자연 목사는 말했다. “예수님은 사람의 허물과 잘못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아픔을 보시고 위로하셨다. 해피나우가 예수님처럼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기쁨을 주기 바란다.” 그리고 사흘 뒤 9월 21일 울산에서 열린 제94회 총회에서 서정배 목사가 총회장에 취임했다. 해피나우가 탄생한 지 석 달 뒤 이사장이 김성길 목사에서 길자연 목사로 바뀌고 상임이사 하귀호 목사, 사무총장 박원영 등이 취임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0년 1월 12일 현지시각 오후 4시 35분 1인당 국민소득이 하루 2달러로 절대빈곤 상황에 있는 아이티에 리히터 7.3의 지진이 발생해 11만 2250명의 사상자와 19만 4000명의 부상자, 그리고 수백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총회는 2010년 1월 18일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총회장 서정배 목사를 비롯해 GMS, 기독신문, 해피나우(Happy Now) 관계자, 전국남여전도회 임원, 구제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아이티 돕기 관련 기구 명칭을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로 정하고 총회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했다. 참석자들은 총회산하 전국교회가 참여하여 진행 될 아이티를 돕기 위한 운동은 총회는 물론 한국교회의 위상을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총회의 모든 기관과 단체들이 협력하여 모금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서정배 총회장은 담화문에서 말했다. “지난 회기 구제부 사건으로 교단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절한 처결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가고 있다. 아이티 구호에 총회산하 교회가 협력하여 이웃을 섬기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번 긴급재난구호는 교단의 응집력과 한국교회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0년 2월 8일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는 총회장실에서 모임을 갖고 부총회장 김삼봉 목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총회임원회, 구제부, 총회세계선교회, ‘해피나우’(HAPPY NOW) 등 아이티 구제와 관련된 총회산하 주요기관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만큼 특별기구로 대책위원회를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새롭게 조직을 정비했다. 또한 각종 결재는 신속을 요구하기 때문에 위원장 김삼봉 목사, 실무위원장 박정하 장로, 구제부장 김진명 목사, 총무 이치우 목사, 서기 하귀호 목사, 회계 임석규 장로 협력위원장 남태섭 목사 등이 논의하여 진행하도록 했다.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위원장 김삼봉 목사)는 5월 3일 총회장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사업계획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날 서기 하귀호 목사는 경과보고를 통해 전체 아이티 돕기 총 모금액은 29억 6866만원이라고 밝히고 이중 4차에 걸쳐 5억 7869만원이 지원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제1차 선발대를 비롯하여 의료구호단, 복구단, 특파원 등을 잇따라 아이티에 파견하여 3월 26일 마침내 총회장과 따발레시 시장이 5필지 13.5에이커(1만 6500평)의 토지를 50년 사용 조건으로 무상대여 받았다고 설명했다.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는 6월 7일 총회회관 회의실에서 아이티 재건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총회차원 프로젝트 기초설계도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제이플러스 건축사사무소 임정택 대표는 교육을 통한 미래성장의 원동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기초지식을 형성한 다음 대학교육의 전문 인력 양성에 목적을 두는 비전을 설계도에 최우선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총 1286평에 5층 규모로 짓는 복합건물 교육관에는 유치원과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배치되고, 섬김관에는 빵공장 대학교육과 연계한 실습장 슈퍼마켓 농구장이 들어선다. 사명관에는 병원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등이 배치될 예정이다. 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와 해피나우는 7월 21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따발레시 현지에서 아이티 비전센터 착공예배를 박원영 목사(해피나우 사무총장) 사회로 드렸다. 총회장 서정배 목사, 총회서기 남태섭 목사 등 총회관계자와 따발레시장·부시장, 현지 목회자, 기업인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드린 기공예배는 지진으로 인해 심신이 곤고한 현지인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는 평가가 높았다. 총회장 서정배 목사는 말했다. “아이티공화국의 지진은 아이티 국가의 아픔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이다”고 위로하고 “한국 교회 특히 예장합동은 교육시설 뿐 만 아니라 아이티 국민이 원하는 병원, 교회, 빵공장 등도 건설하여 아이티 국민이 힘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2011년 9월 19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회 총회는 아이티공화국 대지진 구호와 관련하여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의 ‘목적헌금 전용’을 조사하기 위해 임원회에 맡겨 조사처리위원 7인을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감사부(부장 남승찬 장로)는 지난해 총회산하 기관들이 총회의 허락 없이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30억 원을 모금했지만 아이티 재난구호에 상당부분 쓰이지 않고 전용되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사업집행에 구제부를 제외하고 총회임원회가 주관하여 아이티에 비전센터를 건축하기로 결의하고 총 12억원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비전센터 건축과 관련, 법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고, 월권적이고 무법적인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중지하고 해산할 것을 요청했다. 총대들은 덧붙여 감사부 보고는 받고, 잘못된 집행은 반드시 바로잡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로 가결했다. 총회장 이기창 목사는 목적헌금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목적대로 집행해야 한다며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제96회 총회에서 “아이티구호헌금전용문제조사처리위원회”(위원장 김연도)를 조직하여 조사하도록 하였으나 미진하여 97총회에서는 그 명칭을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로 변경하고 위원을 7명에서 9명으로(목사5인, 장로4인) 2명을 증원하여 강도 높은 조사 및 사법처리권한을 부여하여 조사처리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하지만 97, 98회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속 시원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99총회(백남선 총회장)에서는 본위원회 위상을 회복시켜 제97회 조사위원장이었던 신규식 목사에게 아이티구호헌금전용의혹사법처리전권위원회를 다시 맡겨 처리키로 결의함으로서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피기 시작했다. 그간의 소득이라면 아이티구호헌금 사법처리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 아이티오나빌기독교학교 건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법처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구호헌금 7억여 원 가운데 5억여 원을 학교 건립에 지원했다. 그러나 2015년 9월 14일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아이티 사건과 관련 (가칭)평양노회(노회장 김진하, 서기 박원영)의 헌의가 눈에 띈다. ‘아이티 건 총회결의 무효와 위원회 업무상 권한 남용, 직무 위반에 대한 특별조사의 건’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신규식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총회로부터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았음에도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것이 지금 총회의 현실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계급장만 달아주고서 빈총 들고 전장에 뛰어 들게 하는 격이어서, 적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꼴이다. 실제로 피고소인 등 관련자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고, 다른 방법이나 전술, 전략을 활용할 수 없었다. 구호헌금 전용사건 관련자가 2015년 4월 30일 총회회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본 위원회 위원장에게는 공갈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고, 심지어 총회에서 아이티관련 발언을 하였던 윤 모 목사는 아들 결혼을 앞둔 시점에 피고소인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공갈 협박을 당하고 아이티 문제로 장모가 육교에서 떨어져 자살 했다는 등의 소문을 퍼뜨려 힘들게 하며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지 아니하면 ‘자식 결혼식장에 가서 피켓시위를 하겠다’, ‘당신 교회에 가서 1인 시위 하겠다’ 등의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서 피고소인의 요구대로 하기로 하고, 아들 결혼식이 끝난 후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주간인 2015년 5월 6일자 기독신문 6면 하단에 300만 원짜리 광고를 냈다.” 많은 어려움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제99회 총회(총회장 백남선)의 “아이티구호헌금전용사건사법처리전권위원회” 위원장 신규식 목사는 9월 14일 대구에서 열릴 제100회 총회에 다음과 같은 사항의 아이티 구호헌금 전용 관련자 처벌을 청원하려고 한다. 아이티구호헌금 전용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a. 포스건설과의 도급계약 당시 총회장 서정배 증경총회장과 책임이양각서 작성 당시 총회장 김삼봉 증경총회장 두 분의 증언에 의하면 두 분은 건설도급계약과 이양각서 작성의 의미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변 인사들에 의해 서명에 응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구호헌금”의 지출을 결의하고 시행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구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나 감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위원회는 생각한다.b. 당시 “해피나우”의 사무총장 박원영 목사가 아이티구호헌금의 지출을 기안하여 “총회긴급재난대책위원”에 요청하면 실무위원장 박정하 장로, 실무위원회서기 하귀호 목사, 총회총무 이치우 목사, 실무위원회회계 임석규 장로, 협력위원장 남태섭 목사등 5인이 지출에 대한 결의를 하였고, 결의에 대한 행정은 총회 사무국(기조실) 담당직원 ? 차장 ? 국장 ? 총회총무의 결재 후 재무과로 이첩되었고 재무담당자는 지출에 대한 결의서를 작성 하여 재무차장 ? 총회 총무의 결재를 득한 후 “한민족사랑네트워크” 통장으로 계좌 이체하였다.c. 아이티정부와 턴키프로젝트 임대협약서 작성 직전 현지 상황이 “아이티비전센타”를 건축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됨을 직언한 김영화, 이성수 선교사의 징계를 주도한 “GMS선교사의 반총회적 행위조사처리위원회” 위원장 박정하 장로, 서기 남태섭 목사, 회계 윤정길 장로, 위원 임석규 장로 이상 4인의 책임도 반드시 지어야 할 것이다. 불의가 판을 친다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은 말씀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15-09-10
    • G.OPINION
    2015-09-10
  • 제자교회 소속은 어떻게
    2013년 9월 26일 수원 라비돌에서 열린 제98회(총회장 안명환 목사) 비도 간간이 내리는 총회 넷째 날 유구한 장자교단 역사에 길이 남길 치욕스러운 사건이 터졌다. 이날 오전 제자교회의 노회 소속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총회는 “교회를 두 개로 나누고 원하는 대로 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이 있자마자 밖에서 정삼지 목사 측과 심규창 장로 측이 피켓을 들고 양쪽으로 갈라서 서로 대치하던 교인들 가운데 심규창 장로 측 교인 100여명이 심규창 장로의 선도로 회의장에 난입했다. 단상까지 점거한 교인들은 심규창 장로의 주도 하에 연좌농성을 벌였고, 일부는 돈을 상징하는 봉투를 뿌리며 총대들에게 거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나중 경찰이 동원되고 협상이 이루어진 뒤 역시 심규창 장로의 주도 하에 교인들이 총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2014년 6월 3일 제자교회관련 총회결의집행위원회(위원장:김신길 장로)는 6월 3일 제자교회에서 공동의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자교회 일부 교인들이 교회 입구를 봉쇄하고 집행위원들의 출입을 막아 공동의회를 진행하지 못하고 해산했다. 집행위원회는 당초 오전 10시부터 투표장을 설치하고 11시에 개회예배를 드릴 예정이었다. 이어 11시 30분부터 공동의회를 시작해 저녁 7시까지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저녁 8시에는 결과 발표 및 폐회를 선언해 제98회 총회에서 결의한 노회 소속을 위한 공동의회를 종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심규창 장로 측 교인들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제자교회 앞마당을 가로막고 입구를 봉쇄해 집행위원회의 출입을 가로 막았다. 이들은 “총회 결의는 불법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에 대해 집행위원회는 “총회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 “전국 교회가 제자교회의 안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시위하는 성도들을 설득했으나 교회 진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두 차례 진입을 시도했던 집행위원회는 결국 강한 유감을 표한 뒤 “이번 사태를 그대로 보고하겠다”고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제자교회가 서한서노회와 한서노회로 소속을 정했지만 법원에서도, 총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의회가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98회 총회(총회장:안명환목사)는 총회임원회에 맡겨 공동의회를 주관하게 하고 다수 교인뿐 아니라 소수 교인도 교회조직이 원하면 원하는 노회로 소속하도록 처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자교회 당회측이 용역을 동원하여 공동의회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분립 후 한서노회’는 총회(총회장:안명환목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2014카합 202)에 총회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한다. 즉 제자교회 공동의회를 총회에서 소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51민사부는 ‘한서노회’의 ‘총회효력정지가처분’을 기각하였다. 사유는 공동의회 소집 권한은 당회의 결의와 지교회 당회장이 공동의회 회장이 된다고 규정(헌법 제21장 제1조)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총회헌법 정치 제12장 제1조는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모든 지교회 및 치리회의 최고회니” 제4조 “총회는 소속교회 및 치리회의 모든 사무와 그 연합관계를 총찰”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정치 제12장 제5조 3항에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쟁단(爭端)을 진압하며 전교회를 위하여 품행을 단정하게 하고, 인애와 성실로 성결한 덕을 권장하기 위하여 의안(議案)을 제출하여 실행하도록 계도(計圖)”하는 것이 총회의 직무요, 권한이다. 그러므로 제자교회는 정상적인 당회의 결의절차를 거쳐 양측 교인이 모두 참석하는 공동의회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총회임원회는 총회의 직무와 권한을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법원은 한서노회가 신청한 ‘총회효력정지가처분’을 기각하였다. 총회를 상대로 고소하였다가 패소하게 되면 해노회에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가? 제97회 총회는 “총회를 상대로 고소하여 패소할 경우 소속 노회 전원 총대권 5년을 제한하기로 결의하였다.” 패소한 ‘한서노회’의 총대권이 제한되었는가? 그러면 제자교회 소속노회는 어디인가? 이것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명확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교회 교인 정만곡씨가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2013카합685)에 신청한 ‘출입방해 및 예배방해금지가처분’에서 제자교회는 한서노회 분립합의서와 제97회, 제98회 총회결의에 의하면 소속노회가 보류된 상태이므로 ‘한서노회’ 권호욱 목사는 제자교회를 대표한 권한이 없다고 인정되어, 제자교회 교인을 제명, 출교 처분은 효력이 없다고 결정하였다. 한서노회는 2015년 6월 13일 제자교회에서 권호욱 목사 제2대 담임 위임식을 거행했다. 이에 대해 정삼지 목사 측은 23일 성명을 내고 “위임식은 불법이므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 측이 권호욱 목사 측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총회의 결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제97회, 제98회 총회에서 제자교회는 어느 노회에도 소속하지 않는 중립으로 결의를 했다. 제99회 총회에서는 제자교회 건을 다루지 않기로 했다”면서 “제자교회는 여전히 소속이 없는 중립이며 한서노회 소속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삼지 목사측은 권호욱 목사측이 위임식을 진행한 이유를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열세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불법 위임식을 했다”면서 “각종 불법을 자행하는 범죄인들과 결탁된 노회와 목사를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와 함께 노회확인소송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6월 11일 정삼지 목사 측이 제기한 ‘제자교회는 서한서노회 소속’이라는 소송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정삼지 목사 측은 고등법원에 항소심을 제기한 상황이다. 정삼지 목사 측은 “제자교회가 서한서노회인지, 소속 노회가 없는지 여부를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각하 판결 이유를 ‘제자교회가 어느 노회에 속한다는 것의 확인은 단순한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고, 법률상 쟁송사항이 될 수 없어 확인의 소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재판부가) 총회의 결단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총회가 소속 노회에 대한 결정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명은 끝으로 “총회는 불순종하는 한서노회의 패역한 행위를 공의에 입각해 징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99회 총회 임원이 심규창 장로를 한서노회의 밑줄 그은 총대로 천서를 해놓고 본 회의 석상에서 긴급동의안으로 처리해 제자교회 소속 노회까지 인정하게 하려는 불온한 시도를 꾀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제자교회는 그 동안 총회지시를 받지 않았기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하다”는 결의를 어기는 행위이다. 더욱이 그러한 행위는 “총회를 상대로 고소하여 패소할 경우 소속 노회 전원 총대권 5년을 제한하기로 한다”는 제97회 총회의 결의를 어기는 행위일 뿐 아니라 2013년 9월 26일 수원 라비돌에서 열린 신성한 제98회 총회를 짓밟은 행위자들을 방조하고 도와주는 불법 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5-09-09
    • G.OPINION
    2015-09-09
  • 바나바와 같은 리더가 요구되는 한국교회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의 질타를 받는다. 한국교회의 각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왜 한국교회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물론 일반 성도들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회의 리더십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바나바를 마음에 떠 올리면서 한국교회 리더들이 바나바를 닮을 수는 없을까 하고 소망해 본다. 첫째, 바나바는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였다. 바나바는 12사도 그룹에 속한 사람이었다. 바나바가 사울을 12사도에게 소개한 사실이나(행 9:26-30), 스데반의 일로 성도들이 흩어져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한 사실(행 11:19-26)은 이를 증거 한다. 이렇게 바나바는 12사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12사도들이 두려워하고 교제하기를 꺼려하는 사울을 12사도와 교제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행 9:27), 그 후 다소에 은둔해 있던 사울을 복음 전선으로 이끌어 들여 동역한 사실은 인재를 아끼는 바나바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차전도 여행(행 13장, 행 14장)기간 중에 밤빌리아 버가에서 전도 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 문제를 다룰 때도 인재를 아끼는 바나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 2차전도 여행 준비를 할 때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수행할 사람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행 15:36-41). 이 때 바나바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했고, 바울은 사역 중심으로 생각한 듯하다(행 15:37-38).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옳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 마가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큰 유익을 주었다. 마가는 4복음서의 하나인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후에 바울도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썼다. 바나바가 마가를 회복시키지 않았더라면 마가가 복음을 위해 이런 귀한 기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바나바는 마가가 한 때 잘못을 했지만 그것을 게의 하지 않고 마가를 교회의 큰 재목으로 키우는데 일조를 했다. 한국 사람의 피 속에는 다른 사람을 높이고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요소가 함유되어 있는 듯하여 마음이 씁쓸하다. 정치권을 보아도 비평과 비난이 난무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까지도 사랑과 화합이 기대되는 곳에서 화합과 자기희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을 본 받아 자기 희생으로 교회의 화합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빛을 발하게 했다. 바나바는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둘째, 바나바는 두 번째 위치도 만족하는 지도자였다. 우리는 항상 첫째를 좋아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자신이 신학대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했다고 이력서에 기록하기까지 한다. 한국교회의 리더들은 항상 앞장서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바나바는 둘째 위치도 만족하는 온유와 겸손의 지도자였다. 사도행전 11장의 기록은 비록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선임자였지만 선임자의 위치를 고집하지 않은 듯하다.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온 바나바는 “둘이 교회에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행 11:26, 개역개정)되도록 함께 사역했다. 바나바와 사울의 관계는 선임자와 조력자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동등한 위치에서 사역한 관계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의 아름다운 성품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다. 교회의 상황으로 보아 바나바가 팀장이요, 사울과 마가는 협력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의 기록은 사울의 활동을 두드러지게 묘사한다. 박수 엘루마를 대면했을 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개역개정)라고 기록한 내용이나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행 13:13, 개역개정)의 표현이나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행 13:16, 개역개정)등의 표현은 바울이 활동 면에서 바나바를 앞선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는 선교 팀장인 바나바의 이름을 언급하기보다 협력자인 바울의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 마치 바울이 팀장이 되고 바나바가 조력자가 된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나바는 경쟁의식을 갖지 않고 바울과 함께 사역을 계속했다. 바나바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음과 교회에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에 바나바의 성품을 닮은 리더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밖으로는 사회의 질타를 받고, 안으로는 성장이 정체되었거나 혹은 퇴보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바나바와 같은 리더들의 인도를 통해 새롭게 전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하나님의 교회는 멸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 그의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기쁘게 사용할 바나바와 같은 리더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박형용 박사(전 합신대 총장, 현 더굳뉴스 고문) 2015년 6월 27일
    • G.OPINION
    2015-06-27
  • 총회 측과 총신 측의 귀추
    1969년 10월 21일, 삼선개헌을 통해 국회는 헌법 제69조 3항의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대통령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로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1971년 3월 17일 민주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였다. 김대중은 2차 투표에서 이철승 지지세력을 규합하여 결국 김영삼을 누르고 최종적으로 승리하였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박정희와 맞서게 되었다. 1971년 4월 27일에 열린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헌법상의 마지막 임기를 시작한 박정희는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단행하지만, 얼마 후 "그동안 진행해오던 국책사업의 안정적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안정적 국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성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계엄령과 국회 해산을 통해 10월 유신을 선포하게 된다. 1971년 봄 대학가는 개학하자 일제히 교련 반대 시위로 들끓었다. 밤이면 적막하고 여름밤이면 개구리 울음이 드높은 사당동 골짜기에 자리 잡은 총신은 박정희가 농단하는 대한민국 시국과는 동떨어져 기도와 말씀 연구에 열심이었다. 그런 성향에 어울리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후미진 사당동 골짜기의 총신대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박희천 목사를 강사로 심령부흥회를 가졌다. 칼빈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총신생들은 공사 마무리가 안 된 천장 곳곳에 박쥐처럼 매달린 호롱불을 밝힌 예배실에서 집회를 했다. 두루마기를 입은 박희천 목사는 금식을 하며 설교를 했다. 통성기도 시간은 뜨거운 은혜의 도가니였다. 대학부 1학년 신출내기 신학생은 놀라움과 호기심에 통성으로 부르짖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두리번거렸다. 소련의 철의 장막, 중공의 죽의 장막이 걷히고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외침도 들렸다. 그 당시 세상의 온갖 문제가 총신생들의 통성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그날 밤 신학생들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했다. 1학기가 다할 무렵 학교가 팔려 경기도 광주로 옮긴다는 말이 돌았다. 사당동 학교에 오려면 흑석동을 돌아 사당동 종점에서 걸어오거나 상도동 숭실대 앞에서 언덕을 넘어 오거나 봉천동에서 봉천 시장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오거나 해야 했다. 비만 오면 땅은 질펀해져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었다. 화장실은 학교 밖에 널판의 간이식으로 되어 있었다. 온갖 불편에도 학생들은 믿음 하나로 찬송하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당동도 그 당시 시외 수준이었는데 경기도 광주라면 교단과 총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패한 교단 정치 세력의 음모였다. 그 극비 정보는 당시 스포츠 머리 스타일과 해박한 신학 지식의 달변으로 유명했던 대학부 4학년 김영우 전도사가 시무 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입수한 것이었다. 신학부 3개 학년 대학부 4개 학년 일동이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총신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인 반대활동을 위해 각 학년마다 대표 3명씩을 뽑아 21전권위원회를 선정했다. 위원장은 신학부 3학년 박도순 전도사가 맡았다. 21위원에는 전권위원회 서기였던 대학부 4학년 김영우 전도사, 대학부 2학년 이경원, 신학부 1학년 이종영 전도사, 대학부 1학년 김영배 등이 들어있었다. 당시 21전권위원회 중심에는 21전권위원회 서기 김영우 전도사가 있었다. 21전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전교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아예 집으로 돌아갔다. 독재 정권 반대나 교련 반대 데모 한 번 없던 총신 신학생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지키고 학교의 발전이나 교단의 성장에는 관심 없는 부패한 교단 세력을 막기 위해 데모를 하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교권 세력에 맞선 21전권위원회의 전국교회 순회 활동을 위한 전략과 자금은 김영우 전도사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 교단 소식에 어둡던 전국교회 목사들이 21전권위원회 신학생들을 통해 부패한 교권 세력의 음모를 알고 분노했다. 1971년 9월 23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제56회 총회(총회장 정규선 목사)에서 총회신학대학 재단이사회와 일반이사회의 개편을 결의했다. 당시 부서기가 된 이영수 목사(대전중앙교회)의 시대가 시작되고 박찬목 목사(혜성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북 세력의 시대는 마감되었다. 총회신학대학에 전기가 들어오고 콘크리트 바닥도 정리되지 않은 채 사용하던 건물의 리모델링이 시작됐다. 당시 박아론 교수의 부친 박형용 학장의 방은 콘크리트 마감이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지금의 총신 발전의 기초가 그때 마련된 것이다. 그때로부터 44년이 흐른 2015년 총회는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측과 총신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 측과 총신정관 개정문제를 놓고 총신의 주도권을 위해 대립하고 있다. 그 대립의 각이 이번 100회 총회에서 격돌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이청준은 1965년 ≪퇴원≫으로 등단한 이래 작가의 실천성으로서 그 몫이란 무엇인가를 작품의 화두로 삼고 ‘언어’와 ‘소설’의 진정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작가이다. 권력과 저항의 이중 구조를 우화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는 이청준의 ≪예언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홀 안의 다른 가면들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한 침묵 속에서 싸움의 귀추를 지켜보고 있었다. 2015-06-20
    • G.OPINION
    2015-06-20
  • 스티브 잡스 vs 전병욱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소셜 네트워크' 아론 소킨 각본, 마이클 패스벤더 & 케이트 윈슬렛 주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스티브 잡스'가 오는 10월 9일 북미 개봉을 확정 지으며, 티저 예고편을 5월 18일 전격 공개했다.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고객에게 영화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단순히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티저 광고(Teaser廣告)는 요소를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관심을 끌려고 하는 상업 광고의 한 방법이다. 이번 예고편에서는 "당신은 프로그램 개발 못 해. 엔지니어가 아니잖소"라는 남자의 말에 "연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난 차고에 앉아 미래를 창조했소"라는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예고편 영상은 "그 누구도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라는 말로 끝난다.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 청중을 바라보는 잡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라. 사람은 애초부터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냉철한 자세에서 바라볼 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쟁회사였던 IBM이 '애플은 썩은 사과(애플)'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자 애플은 다음 날 '애플은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라고 기사를 냈고, 이때부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과를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듯한 그림의 애플 회사 마크가 만들어졌다. 2005년 아직 건강할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연설을 했다.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985년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겠느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잡스는 애플의 성장을 위해 펩시 사장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할 때,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인생 끝날 때까지 설탕물을 팔겠나, 나한테 와서 세상을 바꾸겠나?"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가운데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 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 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에야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그림으로 된 화면 위의 물체나 틀, 색상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을 어떠한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를 위한 GUI(그래픽 사용자 접속기:graphical user interface)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했고, 1985년 경영분쟁으로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된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고,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던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대해 애플은 공식성명을 냈다.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이룬 사람이었다.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아주 확실하게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스티브 잡스 같은 인생 여정을 사는 목사가 있다. 전병욱 목사(田炳旭, 1963년 ~ )다. 그는 총신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다시 재수해 연세대 경영학과를 입학해 졸업했다. 목사가 되라는 할아버지의 유언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면의 꿈틀거리는 소명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한 갈망을 접고 목사가 되기 위해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총신 대학원 재학 때 신반포교회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7년을 재직하는 가운데 50여 명의 대학부를 500여 명으로 부흥시켰다. 그는 그 교회에서 이화여대 사범대 출신의 부인도 만났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삼일교회 당회는 후임 목사 청빙을 놓고 어려움을 겪던 차에 당시 신반포교회의 부목사로 청년 목회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전병욱 목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4년 세워진 삼일교회는 한때 용산 일대에서 교회당을 가진 어엿한 교회였다. 그러나 1976년 7월 16일 김영규 목사가 2대 위임 목사로 부임한 이후 90년대 들어 출석교인 80여 명의 약한 교회가 되었다. 그러다 김영규 목사가 목회보다 칼빈신학교에 전념하게 되어 1992년 사임하자 담임목사마저 1년 이상 공석이어 교회는 더욱 어려웠다. 1993년 12월 25일 그의 나이 31세 때 어려운 삼일교회의 담임이 된 전병욱 목사는 부임 당시 80여 명에 불과했던 삼일교회의 예배 참석자 수를 2008년 10월 기준으로 1만 6천여 명까지 성장시켰다. 15년 만에 200배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늘어난 교회 출석자들 중 청년층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대한민국 개신교계 청년층 목회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0년에는 2만 3천여 명까지 늘어나고 특히 20~30대 청년층이 전체 신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교회’로 우뚝 섰다. 세계에서 청년이 제일 많이 모이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 복음을 제일 열심히 전하는 복음으로 활활 불타는 교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는 목회에 있어서 모든 일에 선두에서 사도 바울처럼 먼저 모범을 보였고 교회 재정과 행정에 맑은 투명성을 실천했다. 그는 헌금의 절반 이상을 선교와 구제비용으로 사용했다. 그 자신을 위해서는 한 달 100여 권의 책 구매를 하고 카니발 승용차를 타고 설교 준비와 목회 행정에 지치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호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1년 100회 이상의 집회 강사 사례비도 교회에 전액 헌금했다. 그는 전국 미자립 1000교회에 매월 100만 원씩 후원을 위한 저수지 교회 1000억 기금 마련을 위해 단돈 10원도 아끼고 투명하게 처리했다. 그는 교회를 사임하고 홀연히 떠나는 2010년 12월 21일까지 헌금만으로 마련된 현금 252억 원이 교회 통장에 예금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청춘을 바친 교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요즘 문제 교회의 관행과는 전혀 다르게 교회세력 간의 갈등이나 재정적 다툼과 협상을 하지 않았다. 칩거하며 가족과 친척 30여 명이 모이는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숙과 회개와 기도와 묵상으로 보낸 지 1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17일 전병욱 목사는 홍익대학교 캠퍼스 근처 마포구 상수동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건물 2층에 홍대 근처의 새로운 교회,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뜻으로 홍대새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그것은 그의 메시지를 사모하는 교인들의 열망을 외면할 수 없고 목자가 없이 떠도는 그들의 안타까움을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100여 명으로 시작한 홍대새교회가 2년여에 2300명까지 성장했다가 작년 10월부터 느닷없는 삼일교회와 외부 불순세력의 준동(蠢動)에 1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삼일교회 안정과 성장을 위해 사임한 전병욱 목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2012년의 2만 3천여 명의 삼일교회가 현재는 5천 명에서 6천 명 사이의 교인들이 회집한다고 한다. 주일날 삼일교회 근처를 지나다보면 전병욱 목사 당시의 활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 여파로 근처의 집값도 떨어졌다고 한다. 전병욱 목사는 말한다. “제가 교회 이름을 홍대새교회로 정한 것은 정말 새 피조물의 새로운 교회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삼일교회 교인들이 저희 교회로 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떤 삼일교회 교인한테도 홍대새교회로 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그 사실을 고발하는 교인이 나와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지금 같이 있는 부목사도 그 교회에서 쫓겨나 갈 데가 없어 같이 있는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잘 되고 교회가 안정되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청춘을 바친 교회가 아닙니까. 그런데 엉뚱한 교회가 덕을 보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게다가 왜 요즘 복음의 은혜가 아닌 율법주의로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교회가 귀를 기울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으로 용서와 회복이 있어야 하는데 율법으로 정죄와 분열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해보니 교인 1000명만 넘으면 그 하는 일이 1000명이 하는 일이나 3000명이 하는 일이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설교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도 죽을 쑬 때가 있습니다. 준비를 해도 설교가 그렇게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취미가 자전거 타기가 아니라 독서입니다. 자전거 타기나 도보는 독서와 설교준비와 기도로 힘들 때 쉬고 재충전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저도 이제는 자연적인 나이가 들어 힘이 예전만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고 성숙해졌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50이 넘으니 늙은 겁니다.” 세계의 문화를 바꾸는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의 직관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20~30년 동안 쌓인 문제의 정의와 해결에 대한 경험의 축적에서 스티브잡스가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경영의 직관이 나올 수 있다. 결국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도전의 경험이 쌓인 50대 경영자의 사고에서 위대한 직관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해결의 경험을 쌓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인내가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20대부터 애플을 시작으로 중간에 경영권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넥스트컴퓨터, 픽사 등을 설립하며 도전의 경험을 멈추지 않았고, 다시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잡스는 인류의 문화를 변화시킨 위대한 제품인 아이폰을 그의 직관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직관의 소유자는 놀랍게도 우리의 역사 속에도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장군이 당시 다른 무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가며 이를 기록하는 습관이었다. 당대의 라이벌이라 불리웠던 원균은 이러한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과 용맹에만 의존한 원균 장군과 20년 이상의 세월을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문제 정의와 해결의 경험을 쌓은 이순신 장군의 직관의 차이는 임진왜란에서 전패와 전승이라는 기록으로 증명됐다. 인내를 통해 획득한 문제 해결의 많은 경험은 직관을 낳는다. 다시 말해 문제해결의 경험이 직관을 만들어내고 경험을 쌓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 인내를 통해 사람을 얻어 리더십을 곤고히 할 수 있고 또 그릇을 키워 승자가 되기 위한 시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이순신 모두 시대와 상황은 달랐지만 성공의 원칙은 똑같았다. 전병욱 목사 역시 이제 직관을 발휘할 나이 50대에 이르렀다. 스티브 잡스는 쫓겨난 애플에 복귀해 애플을 세계 제일의 회사로 키웠다. 전병욱 목사는 사임하고 떠난 삼일교회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지만 그의 신앙과 인내로 다져진 직관과 설교 능력은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목회 성공의 업적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볼 수 있듯이 믿음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단지 복음 전파의 사명만을 위해 살 뿐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2015-06-19
    • G.OPINION
    2015-06-19
  • 제100회 총회 선거와 안개
    6월 10일 제100회 총회를 이끌어갈 총회 임원 후보들의 등록이 마감됐다. 마감일 마감 시간이 수요일 오후 5시라 삼일예배에 마음이 바쁜 총회선거관리위원회 서기 김영남 목사는 봄노회에서 추천을 받은 16명의 후보 가운데 15명이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날 등록을 못한 후보는 부총회장 후보에 나선 강태구 목사(함남노회)였다. 누군가가 그의 총대 경력 10회 가운데 한 번의 결격 사유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2012년 제97회 총회 당시 정식으로 총대 명찰을 받고 입장을 했다. 그러나 세간과 총회를 들썩이게 한 문제의 총회장 정준모 목사가 현장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강태구 목사의 총대직을 박탈하고 퇴장시킨 기록이 너부데데하고 자식 복이 많은 강태구 목사의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그에게는 후보 등록 시 내는 적지 않은 발전기금을 절약하는 축복을 얻는 기회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만나본 후보들의 눈매는 저마다 범상하지 않게 살아온 삶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믿음으로 살아온 다양한 삶의 단면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단면에 여러 개의 나이테가 있듯이. 당연직으로 올라가는 후보들을 제외하고 새로이 투표를 받아야 하는 목사부총회장에는, 총회 정치의 달인 김선규 목사(가칭 평양제일노회), 한국교회 세계 제일의 어린이 선교와 교육의 대가 김종준 목사(가칭 동한서노회) 부흥의 작은 거인 장대영 목사(평동노회) 등이 등록했다. 장로부총회장은 장로회의 관례적인 조정을 거친 신신우 장로(전남노회)가 단독으로 나섰다. 부서기에는 법과 논리의 알밤 고광석 목사(동광주노회), 뚝심의 오뚝이 윤익세 목사(충남노회), 남다른 정치 감각을 지닌 이형만 목사(목포서노회), 서현수 목사(서전주노회)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부회록서기는 김정설 목사(인천노회)와 하재삼 목사(김제노회), 부회계는 남전도회와 장로회의 뿌리 깊은 나무 양성수 장로(서울노회)가 등록을 마쳤다.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 업적(근래 여타의 총회장들은 부정적인 인상으로 얼룩져 있다)의 산물인 총회회관 로비에서 만난 김선규 목사와 윤익세 목사의 표정은 느긋하고 밝아 보였다. 이어서 만난 막강한 선거관리위원회 심의분과 위원장 서광호 목사의 말을 아끼는 모습에서 후보 등록자들의 앞길이 안개 속에서 순탄치 않을 느낌을 받았다.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가 함께 쓴 여행지침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에 이런 글이 있다. “영국인 마이클 브라운과 케이트 로저스는 2001년 스페인의 히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수로 제노바를 예약한 상태였고, 그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알다시피 제노바는 이탈리아에 있다. 지금 밀라노 상공을 통과하고 있다는 조종사의 안내 방송을 들었을 때도 그들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걸려 있는 이탈리아 국기는 그저 아이스크림 가게 깃발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요금으로 낸 스페인 화폐 페세타를 버스 기사가 거절할 때 비로소 두 사람은 옆 승객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어느 나라죠?' 유로화가 도입된 후 휴가를 갔더라면 그들은 2주 내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어둠 속을 헤맬 때, 어둠이 한순간 탁 걷혀 시야가 밝아지는 일은 없다. 초보자에게 안개는 어둠이나 마찬가지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철학적 요소다. 즉 사람들이 인식하는 바로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자 정보가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일찍 도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어떻게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지도의 세계에서 벗어날까를 탐구한다. 우리는 가끔 익숙한 길에서도 길을 잃는다. 왜 그럴까? 잘 알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머릿속' 지도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기 때문이다. 안개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시적이고 아름답지만, 막상 내게 닥치면 까막눈이 된 기분이 될 것이다. A4용지 10장 분량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선거규정》을 비유한다면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적용하게 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규정일 것이다. 한 마디로 선거관리위원회는 밀실에서 알아서 멋대로 하고 후보자들은 안개 속에서 알아서 기어야 되는 법이 총회 선거규정이다. 빠른 시일 안에 선거규정이 일반 선거법 수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거는 시대착오적인 구슬 뽑기는 폐지하고 후보 모두의 검증된 신상을 알고 발언과 주장을 듣고 판단해 투표하는 직선이 되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의 우문현답(愚問賢答)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 총회선거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여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대리자를 뽑는 신성한 위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2015-06-18
    • G.OPINION
    2015-06-18
  • 기각과 각하 사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준세이(더케노우치 유타카)는 평생 잊지 못할 여인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녀의 이름은 아오이(진혜림). 준세이는 아오이와 한, 30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성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아오이의 소식이 준세이에게 전해진다. 아오이가 살고 있다는 밀라노로 달려가는 준세이. 이미 그녀 곁에는 다른 남자가 있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준세이는 자신이 복원하던 그림이 누군가에 의해 찢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튜디오마저 문을 닫게 되고, 준세이는 도쿄로 돌아온다. 에쿠니 가오리, 쓰지 히토나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이별한 커플 준세이와 아오이의 일상을 그리고 있으되, 이들이 얼마나 과거에 얽매어 있는지 절절하게 보여 준다.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옛 시간으로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10년 뒤의 재회’라는 거짓말 같은 약속을 믿는 커플의 이야기다. 끝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 어떻게 해야 가슴 속의 빈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 .. 나는 과거를 뒤돌아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돼. 아오이.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나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준세이는 아오이와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보지만, 장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 무렵 친구로부터 아오이가 자신을 떠나게 된 비밀을 알게 된 뒤 준세이는 밀라노에 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띄운다. 답장을 기다리던 어느 날 피렌체의 스튜디오로부터 연락이 오고, 준세이는 피렌체로 온다. 드디어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날, 준세이는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렌체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랑이란 냉정과 열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은 아닌지 냉정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열정으로 다가가는 순간에도 냉정이란 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도쿄로 다시 돌아간 '쥰세이'는 친구 '다카시'로부터 '아오이'가 겪었야 했던 아픈 과거들을 듣게 된다. 그녀의 임신과 유산. 그의 아버지가 '아오이'에게 준 정신적 상처들을 '쥰세이'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밀려오는 죄책감과 회한, 그리고 결심. '쥰세이'는 10년 전 "아오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오른다. 혼자만의 기억일지도 모르는 10년전 약속.....그 약속을 위해 '쥰세이'는 400개의 성당 계단을 올라간다. 진정한 사랑을 냉정함으로 가장했던 '쥰세이'가 "두오모 성당"에서 만난 열정은 누구일까? 지나친 사랑은 때론 독이 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워지지 않는다. 자신이 머물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 밖에 없다. '밀라노' 앙티크 보석 가게. 이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오이'. 도쿄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재원이지만 그녀는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10년의 세월 동안 잊었다고 믿었던 사람 '쥰세이'. 하지만 '쥰세이'의 편지 한 통에 '아오이'는 자신이 숨겨온 열정의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날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쥰세이를 발견하는 '아오이'.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가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오이'는 자신이 머물 곳이란 결국 '쥰세이'의 가슴 속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였다"라고 그녀의 이 짧은 고백 속에 어쩌면 기나긴 세월을 돌아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는 그녀만의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주 사랑하는 남녀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처럼 제자교회와 길자연 총장에 대해 언뜻 판단하기에 어려운 재판 판결이 있었다. 두 판결에 대한 기각(棄却)과 각하(却下) 사이의 용어 때문이었다. 기각은 법원이 소송을 심리한 결과 이유가 없거나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도로 물리치는 일이고, 각하는 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당사자나 기타 관계인의 소송에 관한 신청을, 형식적인 면에서 부적법한 것으로 하여 물리치는 재판이다. 의정부지원 고양지원은 6월 11일 전 담임목사 정삼지 측에서 “제자교회는 서한서노회”라며 제기한 [노회소속확인의소](2014가합53592)에 대해 원고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6월 12일 202호에서 오전 9시 50분에 열린 결심공판에서 원고 총신대총장 길자연 목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2014년 교육부가 길 목사의 칼빈대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총신대로 보낸데 대해 길 목사가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차례로 제기함으로 진행되어 왔다. 기각과 각하의 차이는 신청이나 청구에 흠결이 있으면 각하, 그러나 적법하지만 실체적 내용이 없으면 기각이라는 사실에 있다. 기각은 한마디로 패소, 즉 재판에서 진 거다. 각하는 절차상의 흠결, 즉 부적법으로 재판 자체를 배척하는 것이므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이다. 다시 말해 제출한 서류로는 소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결할 수 있는 재판을 할 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각하와 기각에 대하여 더 살펴보면, 각하는 ‘소장의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경우'(민사소송법 제254조) 그리고 ‘소가 부적법한 경우'(민사소송법 제219조) 법원은 각각 명령과 판결로 각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기각은 원고의 주장 자체에 정당성이 없거나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가 없을 때 판결이나 결정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제자교회 양측의 재판은 정삼지 목사 측의 [노회소속확인의소](2014가합53592)는 각하가 되었기 때문에 판결이 나지 않은 미해결의 상태이다. 그러나 총신대 길자연 총장 측의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청구는 기각이 되었기 때문에 길 목사 측의 패소로 판결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기각과 각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경계와 결정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잠언 30:18-20 2015-06-16
    • G.OPINION
    2015-06-16
  • 전병욱vs송태근
    1954년 2월 2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에서 첫 예배를 집행했고, 3월 1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같은 해 5월 용산구 청파동으로 교회건물을 이전했다. 1955년 12월 한병혁이 초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76년 7월 16일 김영규가 2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93년 12월 25일 갓 30세에 전병욱 목사(총신 84회)가 3대 위임 목사로 부임하여 80명의 신도를 15년 새 출석교인 1만6000여 명으로 200배 성장시켰다. 2008년 10월 기준이다. 본당만으로 참석자들을 수용하기가 곤란해지자 1999년 3월부터 인근의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리며, 이후 교회건물을 신축 및 매입하여(B, C관) 수용능력을 늘렸다. 숙명여자대학교 측과의 임대계약 만료로 대강당 예배를 2009년 3월 말 종료했다. 신도 중 1만 명 이상이 미혼 청년들로 교인 평균 연령이 26.9세인 교회. 교역자 12명, 장로는 7명에 불과한 교회의 담임 전병욱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이렇게 갈파했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영적으로 갈급해 하는 것은 바로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입니다. 정체성과 소통도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이 부재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 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안정시킨 시점에 다윗이 실족했던 것처럼 신자의 수가 2만2천여 명으로 치솟고, 현금만으로 마련한 예배당을 포함해 3개의 건물(A, B, C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기도원이 있고, 미자립교회를 100만 원씩 1000개 교회(전병욱 목사 재직 당시 100개 교회를 도움)를 돕기 위한 저수지 교회로서의 자금 370억 원(헌금만으로 모인 돈)을 달성한 시점에 전병욱 목사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은밀한 사실이 다윗의 밧새바 사건처럼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그 일로 청파동 언덕의 아담한 교회를 엄청나게 키워 언덕에서 평지에 우람하게 자리 잡고 군림하던 삼일교회 당회장 직을 내려놓고 이런저런 명목아 붙은 13억의 전별금을 받고 사임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일 그는 교회 내에 아무런 분규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굴욕적인 이행각서에 서명까지 한 뒤 교회를 떠났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세였고 그들은 전병욱 목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여느 목사들과 달리 교회의 안정을 위해 그들을 잠재우고 2만이 넘는 신자와 370억 원의 현금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교회를 사임했다. 삼일교회 당회(임시당회장:길자연 목사)는 2012년 5월 27일 당회를 열어 청빙위원회가 추천한 송태근 목사(총신 79회)를 청빙키로 만장일치 결의했다. 당회는 송 목사에 대해 “복음적 설교에 탁월한 은사가 있으며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지신 분”이라며 후보 선임 이유를 밝혔다. 송태근 목사가 10월 10일 삼일교회 제4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송 목사는 이날 위임목사 취임예배에서 “무언가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며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고 인사했다.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송 목사는 “상처 입고 만신창이가 된, 씻을 수 없는 오욕을 겪은 피해 자매들에게 삼일교회 공동체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밝히고, 설교단 옆에서 머리 숙여 사과 인사를 했다. 이어 송 목사는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 목사는 또 전병욱 목사 사건과 이 한 목회자의 문제이기 이전에 삼일교회 공동체와 한국교회 공동체의 문제라고 밝히고, “다시 한 번 철저히 회개하고, 재발방지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교단과 한국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13일 10시 은석교회당(김진웅 목사)에서 제175회 평양노회가 개회했다. 노회장 강재식 목사의 사회와 설교로 진행된 개회예배는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또 다른 관심사로 떠 오른 삼일교회 전 담임 전병욱 목사에 대해서는 재판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회의 시간 연장을 해가며 3시간 넘게 증경총회장 이성택 목사와 교계의 거목 길자연 목사의 권면과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후임 송태근 목사의 끈질긴 현장에서의 면직 요구와 회원들의 공방을 거친 뒤 평양노회는 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발언대에 선 원로 이성택 목사는 이미 시벌을 당해 교회사임을 한 목사를 면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이어서 길자연 목사는 이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합의도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면직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권면했다. 삼일교회 당회는 전병욱 목사의 전별금 13억 4500만원 중 퇴직금을 제외한 12억 3500만원에 대해 반환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문제가 있는 총신 84회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자는 총신 79회 송태근 목사는 삼일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안정이라도 시켰는지를 묻고 싶다. 노회 현장에서 발언에 나선 한 목사는 삼일교회 이광영 장로에게 언제는 전 목사가 별 죄가 없다며 옹호하더니 이제는 면직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물었다. 이광영 장로는 당시는 세상에 전병욱 목사만 목사였는데 현재는 전병욱 목사만 파렴치해 목사라고 할 수 없어 면직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요즈음 교회의 풍토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목사가 사임하고 나면 장로가 그 교회의 실세가 되는 게 다반사이다. 아마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는 그 교회에서 설교나 행정력에 있어서 별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총신 선배이면서 삼일교회 후임자이기도 한 송 목사가 전 목사의 면직을 고수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줄어드는 교인 때문이라면 설교와 기도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부임 때의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하는 말을 따라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졌다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들에 죽기를 각오하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장시킨 큰 교회와 많은 교인과 370억의 현금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으로 포기하고 찾기도 힘든 홍대 근처 건물 2층에서 청년 선교에 힘쓰고 있는 전병욱 목사를 비난하고 면직을 획책하는 행위는 어디에서 배우고 익혔는지를 묻고 싶다. 전병욱 목사가 개척한 것 때문에 삼일교회 교인이 반 이하로 줄었다고 생각한다면 홍대새교회를 제 발로 가서 라반처럼 확인을 해보기 바란다. 삼일교회의 교인이 줄어든 만큼 홍대새교회가 늘어났다면 1500여 명에서 1200여 명으로 줄겠는가.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삼일교회 부임 시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듯이 행여 마음속에 드는 여자 생각과 눈초리조차 조심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족처럼 덧붙여 한때 국민은행 지점장으로서 전병욱 목사의 배려의 혜택과 신앙의 가르침을 입은 나원주 장로가 훌륭한 담임으로 모시고 있는 송태근 목사가 열심히 전병욱 목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고 있음에도 얼굴을 들기 힘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전임 목사님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지 않는 행위이고 송태근 목사의 훌륭한 가르침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행태임을 알기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누가복음 6:40-44 2015-05-06
    • G.OPINION
    2015-05-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