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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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의 질타를 받는다. 한국교회의 각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왜 한국교회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 자문해 본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물론 일반 성도들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회의 리더십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바나바를 마음에 떠 올리면서 한국교회 리더들이 바나바를 닮을 수는 없을까 하고 소망해 본다.
첫째, 바나바는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였다. 바나바는 12사도 그룹에 속한 사람이었다. 바나바가 사울을 12사도에게 소개한 사실이나(행 9:26-30), 스데반의 일로 성도들이 흩어져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한 사실(행 11:19-26)은 이를 증거 한다. 이렇게 바나바는 12사도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12사도들이 두려워하고 교제하기를 꺼려하는 사울을 12사도와 교제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행 9:27), 그 후 다소에 은둔해 있던 사울을 복음 전선으로 이끌어 들여 동역한 사실은 인재를 아끼는 바나바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차전도 여행(행 13장, 행 14장)기간 중에 밤빌리아 버가에서 전도 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 문제를 다룰 때도 인재를 아끼는 바나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 2차전도 여행 준비를 할 때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수행할 사람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행 15:36-41). 이 때 바나바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했고, 바울은 사역 중심으로 생각한 듯하다(행 15:37-38).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옳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볼 때 마가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큰 유익을 주었다. 마가는 4복음서의 하나인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후에 바울도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썼다. 바나바가 마가를 회복시키지 않았더라면 마가가 복음을 위해 이런 귀한 기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바나바는 마가가 한 때 잘못을 했지만 그것을 게의 하지 않고 마가를 교회의 큰 재목으로 키우는데 일조를 했다.
한국 사람의 피 속에는 다른 사람을 높이고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요소가 함유되어 있는 듯하여 마음이 씁쓸하다. 정치권을 보아도 비평과 비난이 난무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까지도 사랑과 화합이 기대되는 곳에서 화합과 자기희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을 본 받아 자기  희생으로 교회의 화합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빛을 발하게 했다. 바나바는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둘째, 바나바는 두 번째 위치도 만족하는 지도자였다. 우리는 항상 첫째를 좋아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자신이 신학대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했다고 이력서에 기록하기까지 한다. 한국교회의 리더들은 항상 앞장서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바나바는 둘째 위치도 만족하는 온유와 겸손의 지도자였다. 사도행전 11장의 기록은 비록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선임자였지만 선임자의 위치를 고집하지 않은 듯하다.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온 바나바는 “둘이 교회에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행 11:26, 개역개정)되도록 함께 사역했다. 바나바와 사울의 관계는 선임자와 조력자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동등한 위치에서 사역한 관계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의 아름다운 성품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다. 교회의 상황으로 보아 바나바가 팀장이요, 사울과 마가는 협력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의 기록은 사울의 활동을 두드러지게 묘사한다. 박수 엘루마를 대면했을 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개역개정)라고 기록한 내용이나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행 13:13, 개역개정)의 표현이나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행 13:16, 개역개정)등의 표현은 바울이 활동 면에서 바나바를 앞선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는 선교 팀장인 바나바의 이름을 언급하기보다 협력자인 바울의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 마치 바울이 팀장이 되고 바나바가 조력자가 된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나바는 경쟁의식을 갖지 않고 바울과 함께 사역을 계속했다. 바나바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음과 교회에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에 바나바의 성품을 닮은 리더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밖으로는 사회의 질타를 받고, 안으로는 성장이 정체되었거나 혹은 퇴보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바나바와 같은 리더들의 인도를 통해 새롭게 전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하나님의 교회는 멸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 그의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기쁘게 사용할 바나바와 같은 리더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박형용 박사(전 합신대 총장, 현 더굳뉴스 고문)
201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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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같은 리더가 요구되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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