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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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시편Psalms
    시편Psalms은 유대인이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드리는 노래와 기도로 가득찬 찬송가집이다. 시편은 원래 서정시의 음악이나 하프에 맞춰 노래하는 시를 뜻했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도 예배 때 시편을 사용했다. 오늘날 교회의 찬송가들이나 복음송들은 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시들에 기초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시편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신 일에 대한 인간의 찬양을 표현한다. 시편은 시련의 때 하나님의 필요성과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는 인간의 믿음도 표현한다. 이런 시가 있다. 향수 _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하던가.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고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이와 같이 시편을 읽는 사람도 잃어버린 고향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절망의 한숨과 깊은 뉘우침의 눈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폭넓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이 하나님을 믿을 때 위로와 격려를 주는 하나님의 계시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편을 깊이 사랑하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 누구나 시편 저자가 삶의 체험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던 것처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나의 형편이나 감정들이 어떻든지 우리가 믿음으로 시편을 읽으면 그 속에서 나한테 성령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거나 듣거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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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9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욥기Job
    욥의 정원 욥기Job는 대부분 시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야기는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에스겔은 그의 책 14장 14절에서 20절까지에서 욥은 실제 장소에서 실제 시련들을 겪은 실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은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시련을 겪을 때 신앙을 지키는 인내자의 본보기로 욥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욥기는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난 기도했다 _작자 미상 나는 하나님에게 가장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내가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작자 미상의 시인은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기에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라고 노래한다. 이 시인처럼 욥도 그의 모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 욥기에는 세 만남이 있다. 첫째 하나님과 사탄의 만남이 있다. 둘째 욥과 친구들의 만남이 있다. 셋째 하나님과 욥의 만남이 있다. 그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납득시키려 애를 쓴다. 욥은 자신의 성실과 믿음을 타협하게 만드는 어떤 시도나 말도 거부했다. 화를 내기는 했지만 욥은 언제나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욥기에는 많은 비유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 비유들은 자연 세계의 삶과 죽음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의미를 깨우치게 해 주는 아주 귀중한 교훈이다.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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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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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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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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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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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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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7_ 대관식
    Pope Leo III, crowning Charlemagne from Chroniques de France ou de Saint Denis 대관식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처럼 교황들은 왕들에게 기름을 붓고 왕관을 씌워주었다. 프랑크족의 왕 피핀은 교회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피핀의 아들 샤를마뉴는 교회의 허락을 받아 그의 왕국을 신성로마제국이라 칭했다. view of the vatican basilica from a roof near saint Peter square. 팔백 년 성탄절 샤를마뉴는 로마로 가서 성 베드로 교회에서 기도를 드렸다. 샤를마뉴가 추위를 참으며 베드로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교황이 언 땅을 사뿐사뿐 밟고 샤를마뉴 뒤로 다가가 머리에 왕관을 털퍽 씌웠다. 기름 부음 받은 대관식 답례로 왕들은 교황한테 봉투 하나 디밀고 끝난 게 아니라 왕이나 황제 신분에 걸맞게 처신을 했다. 실례로 교황이 이탈리아에서 쑥대머리 야만인들과 곤란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되었을 때 피핀은 불원천리하고 말을 달려와 야만인들을 된통 혼을 내주고 다섯 도시를 빼앗아 그 도시의 열쇠를 교황한테 공손히 건네주었다. Harun-Charlemagne 이것이 한 왕국으로서의 교황권의 시작이 되었다. 754년부터 1870년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은 이태리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처음에 교회와 국가는 참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점차 서로의 힘이 커갈수록 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한 다툼들은 교회와 국가가 다 같이 기독교적이고 거룩하다고 말을 앞세워도 이익에 관련된 문제들이라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문제의 어려움은 교회와 국가가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데 있었다. 교회와 국가의 차이를 아주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말인즉슨 국가는 질서, 재판, 치안 등으로 땅 위 인간의 외적 생활을 다룬다. 국가는 육체와 지상 적인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말인즉슨 교회는 인간을 천국을 위해 준비시키고 양심, 경외, 마음 등으로 인간의 내적 생활을 다룬다. 교회는 영혼을 돌보아 하늘로 이르게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구분이 아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영혼이 육체와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고 하늘로 가는 길이 다시 말해 교회가 땅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 자체가 정부인데다 많은 땅의 소유주라는 사실에서는 갑절로 어려워진다. 하루해가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았다가 이제는 좀 개 꼬리만큼은 된성 부르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사람들의 여민 옷이 얇아질 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끈거린다. 영성에 차진 않지만 교회의 편린을 주절거리고 있는 이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일런가...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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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0-1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5_ 교회와 국가
    13th-century stained glass depiction of Charlemagne, Strasbourg Cathedral 교회와 국가 신학생 시절 주일 아침 서울운동장 앞에 서 있곤 했다. 천호동으로 가려면 당시는 꼭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사철 입는 단벌 회색 춘추복에 댕기를 매고 검은 가방을 들고 서 있노라면 영락없는 이방인 행색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뀐 그곳은 주일 아침이면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로 북적댔다. 그런 북새통에 나만 달랑 그러고 서 있으니 영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사당동 골짜기에 밤이면 개구리 합창에 귀가 서늘해지던 그 시절 신학생들은 눈빛만 형형했지 행색은 영양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채플 때 통성기도를 할라치면 그들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를 향해 통곡했다. 사면이 꽉 막힌 시절에 중공과 무슬림에게 나아가 말씀 전할 날을 다짐하며 서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믿음의 눈이 아니면 머리만 갸웃거릴 일이었다. 간혹가다 기숙사 식당에 특식으로 돼지 볶음이 올라오면 줄을 두 번 서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렵던 시절 기도는 즐거웠고 선교 열망은 가슴을 터칠 듯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새로운 서방 세계를 형성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교황들은 모든 북부지역들에 선교사들과 수도사들을 파송했다. 선교사와 수도사는 거친 북쪽 지역민들에게 한 신앙 그리스도교와 한 언어 라틴어를 전달했다. 유럽 전역의 모든 교육받은 사람은 라틴어를 알아들었다. 이렇듯 교회는 개화된 남부 유럽과 미개한 북부 유럽을 통합시키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Europe around 814 유럽은 현재보다 훨씬 작은 나라들로 바글거렸다. 그래서 싸움도 잦았다. 하나의 강력한 제국 로마가 사라진 후유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에 로마제국에서 누렸던 하나의 통일체를 그리워했다. 그들은 서방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로마제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헬라인들이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갔다고 생각한 것처럼 프랑크족은 로마제국이 자신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크족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신성 로마 제국을 설립했다. 이 나라는 느슨하기는 했지만 유럽의 올망졸망한 여러 나라들을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로 결속시켰다. 그러나 유럽 전체가 다 망라되었던 건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 한 번도 낀 적이 없었고 프랑스는 잠깐 딱 한 번 포함됐었다. 그러므로 중세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할라치면 한 단일한 정부를 생각할 수는 없다. 하나의 큰 덩치 속에 여러 단위가 있는 아파트 같은 형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교회와 국가는 한동안 서로 도왔다. 국가는 교회가 백성한테 동일한 신앙과 동일한 언어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와 교회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왕들은 지배할 힘이 있기에 지배자가 된 5공 시절 머리 벗겨진 사람 같은 강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들은 힘만을 의지해 통치해서는 그 통치가 너무도 힘겹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백성을 다스리도록 맡겨 주시지 않는다면 무지렁이 백성들일지라도 얼마 가지 않아 왕한테 입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었다.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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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0-05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4_ 유럽의 아버지 왕
    유럽의 아버지 왕 북한산 계곡을 흐르는 물에 큰 몸집이 잠겼다. 같이 잠수했던 청년들이 얼마 안 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푸푸 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덩치 크신 나이 든 분은 물속에 기도하듯 엎드린 채 감감했다. 주위에 섰던 사람들 얼굴에 의아한 빛이 감돌 때 거구가 부상하는 고래마냥 고개를 쳐들었다. 물속에 더 있을 수 있는데 심심해서 나왔다는 표정으로 그는 뜨거운 열기를 내리쏟는 창공을 응시했다. 얼굴에서는 계곡물이 뚝뚝 굴렀다. 물가에 서 있던 부목사, 장로들, 여름 성경학교를 마친 교육전도사와 교사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런 건강 덕이었는지 그는 92세까지 살다 며칠 전 로스엔젤레스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묘하게도 당시 부목사였던 분도 미국 공항에서 몇 달 전 천국 문을 두드렸다. The Coronation of Charlemagne, by assistants of Raphael, c. 1516–1517 샤를마뉴의 어떤 궁전 시인은 그를 일컬어 『유럽의 아버지 왕』이라고 노래했다. 그는 742년 페핀 3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이 집안은 본래 메로빙 왕조 치하에서 대신으로 봉직했다. 나중에 메로빙 왕조가 쇠약해지자 페핀 집안은 정권을 장악하고 왕조를 세웠다. 이 왕조를 샤를마뉴의 이름을 따라 카롤링 왕조라고 한다. 샤를마뉴는 아버지가 절대권과 왕권을 독점하기 위해 동생 칼로만과 치열한 싸움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 성장했다. 페핀은 골육상쟁에 지친 동생 칼로만이 수도원으로 은퇴하자 조카들을 정권에서 제거했다. 정권 장악의 길이 잘 닦여지자 페핀은 메로빙 왕조의 지배권을 빼앗고 751년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러한 찬탈 행위에 대한 정당화는 교황 자카리아스가 마련해준 교회의 승인을 통해 이루어졌다. 왕권은 신성시 되었기에 신학의 응답이 없이는 권력 찬탈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자카리아스의 후계자 스테파누스 2세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753~754년 겨울에 프랑크 왕국을 화급히 방문했다. 그것은 로마를 공격하는 롬바르드의 침입을 막아달라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샤를마뉴가 교황을 영접하기 위해 마중을 나갔었다. 롬바르드국에 대항해 맞은 프랑크 왕국과 교황 사이의 정치적 동맹은 아주 적절한 때에 이루어졌다. 페핀이 계속 전투를 벌이는 동안 샤를마뉴는 계속해서 종군했다. 이런 청년기 경험들이 샤를마뉴의 성격 형성과 목표 설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샤를마뉴는 아버지 페핀의 성격을 똑 닮았다. 권력에 대한 굽히지 않는 의지, 외부의 적에 대항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한 싸움에 대한 만반의 준비, 친척의 권리를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통치하겠다는 절대 권력욕 등에 있어서 아버지 성격을 능가하면 했지 결코 뒤짐이 없었다. 샤를마뉴는 일찍부터 세속 권력과 교회와의 밀접한 관계를 인식했다. 샤를마뉴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는 교회와 왕의 의무를 아주 존중했다. 또한 그는 교회의 충실한 신하임을 자처하면서 자신에게 위임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나님에게 책임을 져야 함을 깊이 인식했다. 즉 샤를마뉴는 자신을 하나님의 신하로 생각했다. 샤를마뉴가 지닌 인격의 힘은 신의 뜻에 일치한다는 변함없는 확신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현재의 기독교적인 유럽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진정 유럽의 아버지 왕이었다. Later depiction of Charlemagne in th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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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9-27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포로 70년 만의 귀환과 오늘의 이스라엘
    주신 말씀_ 에스라 1:1~3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포로 70년 만의 귀환과 오늘의 이스라엘 오늘날 중동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건국된 면적 약 2만㎢ 인구 860여만 명의 작은 나라로서 아직도 이집트를 제외한 인접한 아랍국가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유태계 80%의 신생국가이다. 놀라운 것은 주전 800~1,200년 전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민족이 국가건설을 열망한 끝에, 2천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 와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불과 70여 년 전인 1948년에 팔레스타인계를 몰아내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왠만한 민족들은 나라가 멸망하고 나면 수십 년 혹은 아무리 길어도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인종적 혼합으로 민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 사례인데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은 예수님 이후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갖은 수난과 박해 속에 서로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 종교를 지켜오다가 끝내 다시 뭉쳐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다. 끈질긴 민족성도 민족성이지만 생명력과 결집력은 가히 ‘기적’과 같은 일이다. 유대인들의 기구한 운명은 고대사에서도 숱한 전쟁과 멸망을 겪어 왔지만 예수님 탄생 이후 로마 시대의 종교적 박해를 받다가 근대사에 이르러 독일 나치스에 의해 5백만 명이 넘는 대학살을 겪으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오늘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지 하나님이 약속한 7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영적 감동을 받은 바사왕 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 입을 통하여 ‘칠십 년이 끝나면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라. 또한 그동안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가 결실 맺는 감격적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 탄생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스라엘의 역사로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오늘의 작은 중동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나라인가? 저들의 민족적 끈기와 강인한 결집력은 출애굽 후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맺은 선민의식에서부터 비롯되어 유대인이라는 자랑할만한 민족혼을 지켜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탄생 이후 하나님이 진정 이루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정작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임을 자처하는 저들은 바리새인들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부정하고 있으며 오직 모세 율법에 얽매여 유대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의 비극적 문제인 것이다! 저들의 지독한 완고함과 고집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그토록 ‘돌아오라’고 호소하셨던 마지막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도 사도 요한의 광야에서의 외침도 외면하고 예수님 마저 끝내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의 막장 죄악은 새롭게 택함을 받은 열방의 하나님 백성들이 역 선교 활동을 통하여 과연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이 시간도 하나님의 절묘한 섭리는 역사로 쓰여지고 있으리라...!! 아멘. 202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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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3_ 샤를마뉴
    Imperial Coronation of Charlemagne, by Friedrich Kaulbach, 1861 샤를마뉴 웬 겨울이 이리 봄날 같은지 모르겠다. 눈이 내리고 산등성이에 눈이 쌓이고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먹고 사는 건 나아졌는데 환경은 나빠졌다. 이게 우리 인간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 옛날 어렸을 적 한강이 꽝꽝 얼어 한남동에서 보광동까지 썰매를 지치며 왔다 갔다 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이제 동화 속의 사건쯤으로 돼버리고 말았다. 새해가 되니 달라진 거라곤 달력의 연도를 알리는 숫자뿐이고 모든 게 그대로다. 사기 치는 사람은 계속 속이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연신 두리번거리며 도울 일을 찾는다. 햇빛이 따사해지면 그 열기에 자극받은 종달새는 긴 잠에서 깨어나 창공을 나르며 맑은소리를 바람에 날리겠지. 사는 날까지 믿음과 소망을 간직하고 견뎌야 살맛 나는 세상을 누릴 수 있겠지. 일흔다섯이 된 늙은 선교사 보니파키우스의 얼굴이 새삼 내 망막에 어른거린다. 보니파키우스는 프리질랜드인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선교 실패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습하고 막무가내로 억척스러운 프리질랜드인들한테 돌아갔다. 이번에 그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그것을 눈꼴이 시어 못 보는 야만인들이 노기충천하여 칼을 꼬나 쥐고 보니파키우스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밀어닥쳤다. 보니파키우스의 제자들이 그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러나 늙은 선교사는 그들을 만류하며 말했다. 『싸우지 마시오. 우리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됩니다. 용기를 내시요. 몸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을 겁내지 마시오.』 이방인들은 선교사와 제자들을 죄다 죽였다. 그리고 눈이 벌게 피 묻은 칼을 들고 재물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비치는 건 성경 사본들과 성물 나부랭이들뿐이었다. 중세란 게르만이 이동하는 5세기에서 동로마가 멸망하는 15세기 중엽까지를 일컫는다. 이 시기에 걸출한 인물을 꼽는다면 신앙에 근거한 확신에 차 역사에 획 점을 크게 찍은 샤를마뉴를 빼놓을 수 없다. 샤를마뉴란 프랑스어로 발음된 이름이고 영어로 말하면 찰스 더 그레이트(Charles the Great) 찰스대제를 말한다. 그는 로마제국 이후 가장 큰 제국을 설립한 인물이다. 색슨족이라고 하는 북부 독일인들은 프랑크족의 왕 샤를마뉴를 통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신앙을 가졌다. 무력으로 전도하는 샤를마뉴 샤를마뉴는 26년간 색슨족과 싸움을 벌인 끝에 그의 신앙과 통치를 색슨족에게 먹히게 할 수가 있었다. 색슨족은 칼끝이 무서워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참된 본질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다행히 그런 전도 방법에 수긍한 그리스도인들도 더러 있었다. 색슨족이면서 샤를마뉴의 자문이 된 알쿠인(Alcuin)이라는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색슨족한테서 돈을 쥐어 짜내려고 드센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벼운 멍에를 억지로 씌운다면 그들이 세례는 받아도 신앙이 그닥 튼튼하지를 못하게 될 것이다. 선교사들은 전도자가 되어야지 약탈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Emperor Charlemagne, by Albrecht Dürer, 1511–1513 아주 다행스럽게도 칼을 앞세운 강압적인 전도 방법은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보다 부드럽고 기독교적인 방법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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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9-13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주신 말씀_ 예레미야 33:1~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한 치의 앞이 보이지 않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은 ‘내게 부르짖으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하면 응답하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여 놓으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예루살렘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부르짖으면 저들의 구원과 회복의 계획을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신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 땅에는 구원의 기적이 일어났다.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조차 없는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 여호와께... 감사를 외치는 소리(렘 33:10~11)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70년이 지나 제국이 멸망하고 3차에 걸쳐 포로민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기적과 함께 성전과 성벽이 재건축된 느헤미야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느 12:43) 할렐루야! 하나님의 크고 은밀하며 놀라우신 계획은 내 삶 속에서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이제 한국으로 귀국하여 산 지 만 3년이 흘렀다. 그동안 하나님은 내게 말 못할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나를 끌어올리시고 나를 대적한 모든 자들로부터 공의를 드러내 주셨으며... 경제적 회복은 물론 모든 법적 문제를 승리케 하셨으며... 오늘, 모든 갈등과 아픔에 종지부를 찍는 통지서를 받도록 일을 이루어 주셨다. 아멘.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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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1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2_ 선교사 보니파키우스
    Saint Boniface by Cornelis Bloemaert 선교사 보니파키우스 엄벙덤벙하는 새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게 됐다. 다가오는 새해를 마주하고 뒤돌아보면 속 쓰림이 가슴을 맴돈다. 지나온 길이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안다미로 하는 삶의 길을 걸어야겠다. 우리 역사에서 정점에 서 있다가 역사의 장으로 평가가 옮겨지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은퇴를 준비 중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은퇴를 선언했다. 한 사람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앞장서 투쟁한 공로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장군 출신 대통령으로 민주화의 기틀을 눈에 띠게 다진 공로가 있다. 묵은해를 보내며 두 사람의 공로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후계자 문제로 진통을 겪는 교회현실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귀감이다. Portrait Roi de france Clovis 게르만의 일족인 프랑크족은 본디 이교도였다. 프랑크족은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의 나라를 세우게 된다. 프랑크족이 사람답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들의 왕 클로비스(Clovis) 치하에서였다. 클로비스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클로틸라 공주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을 자기가 믿는 주님에게 인도하려고 애를 썼다. 클로비스는 들은 척도 않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전투에서 패배의 위험에 빠졌다. 그때 그는 부르짖었다. 『내 마누라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절 좀 도와주십시오. 저는 누구한테 이런 소리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도와주시어 제가 이기면 당신의 이름으로 세례받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부디 내 대적에게서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클로비스는 승리했다. 그는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세례를 받았다. 독일의 회심은 영국에서 온 한 선교사한테 힘입은 바가 컸다. 그는 이름이 영어로는 위니프래드(Winifred)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보니파키우스라고 흔히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프리즐랜드인이라는 부족 속에 들어가 사역을 했다. 그러나 프리즐랜드인은 선교사를 쫓아냈다. 그는 라인강 훨씬 위쪽으로 올라가 선교사역을 해야만 했다. 독일인은 거대한 떡갈나무를 보탄(Wotan)이라고 부르며 신으로 받들었다. 보니파키우스는 그 나무를 베어 보탄이 전혀 신이 아님을 증명하겠노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흰소리 뇌까리는 허튼수작에 신의 진노를 사 보니파키우스가 거꾸러지는 꼴을 보게 됐다고 수다들을 떨었다. 정작 선교사가 도끼를 들어 우람한 떡갈나무를 후려쳤을 때 갑작스럽게 엄청난 돌풍이 일어나 나무줄기를 네 토막으로 쪼갰다고 전설은 전한다. 보니파키우스는 네 동강 난 나무를 널빤지로 켜 판자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가르칠 요량으로 보니파키우스는 실제로 풀다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죽기 전에 그 수도원에서 4백 명에 달하는 수도사들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Schloss Fulda‎ 보니파키우스는 이제 일흔다섯이 됐다. 대주교까지 된 그는 프리즐랜드인에 대한 첫 번째 선교 실패를 스스로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마인츠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그는 프리즐랜드로 돌아가 선교사역을 하다 살해당해 순교했다. 그는 평생 하나님 나라만을 전하다 갔다.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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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9-06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주신 말씀_ 이사야 41:8~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만큼 외면당하시고 무시당하셨으며... 아무리 호소해도 말 안 듣는 백성이라면 하나님도 이제는 돌아서시고 버릴 법도 하신데 하나님은 끝내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신다고 하신다.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백성은 무던히도 깊은 죄악에 물들어 있다. 남과 북을 통틀어 몇몇 ‘다윗의 길’을 간 왕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왕들이 하나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갔고 우상을 온천지에 깔아 놓았으며... 죄악에 버무려진 장아찌같이 변하여 버렸다. 지금 저들은 앗수르 바벨론 등 외세의 침공으로 삶의 소망을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잘된 일 아닌가! 벌을 받아 마땅한 백성임에 틀림이 없는데 하나님은 또다시 저 백성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미시며... 구원의 약속을 하고 계신 것이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였다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고 정겹게 부르시며... ‘너를 괴롭히던 자들은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며... 너와 다투었던 자들을 멸망할 것’(사 41:11~12) 이라고 약속하시며... 끝내 구원해 주실 것이란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두려워 말라...’ 위 격려의 말씀은 말씀의 앞뒤 정황을 고려함 없이 내게 비추어 나의 지난 힘든 날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격려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의지였고 용기였으며... 불안을 떨쳐낸 담대함이 되었으며... 결국,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내 평생에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안 계셨으면 단연코 말하건대 지금의 나는 없었으리라! 아멘.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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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1_ 성 마르탱
    Louis-Anselme Longa, La charité de saint Martin 성 마르탱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신앙을 생각하면 장로였고 지역을 생각하면 선생이었고 아파트를 생각하면 회장이었다. 소문은 무성했다. 예상은 확실한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었는데 사람마다 말이 달랐고 공식적인 여론기관은 두리뭉실한 침묵으로 눙쳤다. 생게망게하는 중에 변화를 택해 귀중한 한 표를 찍었다. 포장 쳐진 뒤깐 같은 데서 기도까지 곁들였다. 마음 졸이며 브라운관 앞에 바싹 다가앉아 눈과 귀를 모았지만 상황은 기대를 빗나간 예상대로였다. 실로 오랜만에 국민의 뜻이 나름대로 반영된 선거였다. 꾀하는 것은 인간이 이러고저러고 하지만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 권세란 자고로 위로부터 나는 것이다. 기름 부음 받은 장로로 대통령이 된 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가 링컨처럼 억눌리고 소외받는 사람한테 혜택이 돌아가는 공의와 공평이 푸른 기와집에서 푸르른 강물처럼 흘러나오게 하고 남과 북이 합쳐지게 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도록 뜨겁게 기도해야겠다. 그를 이용해 어떤 기득권이나 편의를 늘이려고 할 때 콘스탄틴 치하에서 겪었던 기독교의 전철을 밟게 되고 말 것이다. 그에게 종교의 짐을 지우지 말고 공의의 말씀에 따라 통치하는 지도자가 되길 간절히 빌어야겠다. 프랑스는 야만인들이 끼어들기 전에 개종 됐었다. 거개의 나라가 콘스탄틴 시대 무렵에 그리스도교국이 됐다. 프랑스의 개종을 마무리화 하는데 도움을 준 선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은 성 마르탱이었다. Monument to Saint Martin of Tours in Odolanów 군인이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은 아닌 마르탱은 어느 날 거의 벌거벗은 거나 다름없는 한 사람을 만났다. 마르탱도 외투가 한 벌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외투를 칼로 두 토막 내 큰 쪽을 거지에게 건네줬다. 거지는 머리를 방아개비 마냥 연신 조아리며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며 감사를 표했다. 그날 밤 마르탱은 꿈을 꿨다. 그 꿈속에서 그는 외투를 잘라준 거지가 바로 그리스도이셨음을 알게 된다. 그 뒤 마르탱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얼마 안 있어 군대를 떠나 수도사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주교가 되었다. 마르탱을 통해 많은 이교도들이 신앙을 얻었다. 죽은 후 마르탱은 공식적인 성자로 추대되었다. 그래서 민간인들은 마르탱의 뼈다귀도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마르탱의 유물이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옮기게 되면 일부 큰일 났다 싶은 거지들은 한사코 지방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혹시 난 병이 낫고 거지 신세를 면할까 해서 말이다. Tomb of Saint Martin 그러나 마르탱의 유물 덕을 보려는 거지들은 이번 선거에 나선 여느 후보들 마냥 쓴맛을 보았다. 때아닌 대통령선거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나심을 기리는 성탄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때 선거구호 대신 자선 남비를 채워주기를 바라는 댕그렁 소리가 거리 소음을 헤치고 있다. 교회마다 치렁치렁 등을 밝히고 있다. 아이들은 성탄절 맞이를 위한 준비에 교회를 밤마다 들락거린다. 교회에 톱밥 난로가 있던 시절 우리는 교회에 나가 연극을 보고 노래를 듣고 과자 봉다리를 받는 짜릿함을 만끽했었다. 이제는 보여주고 전하고 줄 때가 된 것 같다. 그리스도처럼...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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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8-30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광야에서 오직 주만 의지하며
    주신 말씀_ 시편 63:1~4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광야에서 오직 주만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입성시키시기 전에 훈련하고 가르치시려 택하신 곳은 다름 아닌 광야였다. 오늘 본문의 시는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지은 시라 한다. 다윗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오직 영혼은 주를 갈망하며 육체는 주를 앙모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광야는 먹을 것이 없고 물을 찾기 힘든 곳이다. 그곳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쓸 데가 없고 금은보화가 많은들 소용이 없다. 오직 광야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물과 양식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다윗은 주만 갈망하며 주의 권능과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 시키시는 목적도 다윗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게 하려 하신 데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면 된다는 표징이요, 가르침이신 것이다. 이는 오늘 우리의 광야 같은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자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어떤 환경,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다윗과 같이,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영혼으로 갈망하고 사노라 보면 나도 모르는 ‘만나’로 메추라기로 먹여주시며 내가 사모하는 곳 가나안 땅 곧 새 하늘 새 땅은 어느새 눈앞에 와 있을 것이다. 아멘.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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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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