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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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h-century stained glass depiction of Charlemagne, Strasbourg Cathedral

 

교회와 국가


신학생 시절 주일 아침 서울운동장 앞에 서 있곤 했다. 천호동으로 가려면 당시는 꼭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사철 입는 단벌 회색 춘추복에 댕기를 매고 검은 가방을 들고 서 있노라면 영락없는 이방인 행색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뀐 그곳은 주일 아침이면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로 북적댔다. 그런 북새통에 나만 달랑 그러고 서 있으니 영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사당동 골짜기에 밤이면 개구리 합창에 귀가 서늘해지던 그 시절 신학생들은 눈빛만 형형했지 행색은 영양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채플 때 통성기도를 할라치면 그들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를 향해 통곡했다. 사면이 꽉 막힌 시절에 중공과 무슬림에게 나아가 말씀 전할 날을 다짐하며 서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믿음의 눈이 아니면 머리만 갸웃거릴 일이었다. 간혹가다 기숙사 식당에 특식으로 돼지 볶음이 올라오면 줄을 두 번 서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렵던 시절 기도는 즐거웠고 선교 열망은 가슴을 터칠 듯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새로운 서방 세계를 형성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교황들은 모든 북부지역들에 선교사들과 수도사들을 파송했다. 선교사와 수도사는 거친 북쪽 지역민들에게 한 신앙 그리스도교와 한 언어 라틴어를 전달했다.

 

유럽 전역의 모든 교육받은 사람은 라틴어를 알아들었다. 이렇듯 교회는 개화된 남부 유럽과 미개한 북부 유럽을 통합시키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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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around 814

 

유럽은 현재보다 훨씬 작은 나라들로 바글거렸다. 그래서 싸움도 잦았다. 하나의 강력한 제국 로마가 사라진 후유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에 로마제국에서 누렸던 하나의 통일체를 그리워했다. 그들은 서방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로마제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헬라인들이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갔다고 생각한 것처럼 프랑크족은 로마제국이 자신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크족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신성 로마 제국을 설립했다.

 

이 나라는 느슨하기는 했지만 유럽의 올망졸망한 여러 나라들을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로 결속시켰다. 그러나 유럽 전체가 다 망라되었던 건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 한 번도 낀 적이 없었고 프랑스는 잠깐 딱 한 번 포함됐었다.

 

그러므로 중세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할라치면 한 단일한 정부를 생각할 수는 없다. 하나의 큰 덩치 속에 여러 단위가 있는 아파트 같은 형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교회와 국가는 한동안 서로 도왔다. 국가는 교회가 백성한테 동일한 신앙과 동일한 언어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와 교회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왕들은 지배할 힘이 있기에 지배자가 된 5공 시절 머리 벗겨진 사람 같은 강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들은 힘만을 의지해 통치해서는 그 통치가 너무도 힘겹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백성을 다스리도록 맡겨 주시지 않는다면 무지렁이 백성들일지라도 얼마 가지 않아 왕한테 입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었다.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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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5_ 교회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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