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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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Boniface by Cornelis Bloemaert

 

선교사 보니파키우스


엄벙덤벙하는 새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게 됐다. 다가오는 새해를 마주하고 뒤돌아보면 속 쓰림이 가슴을 맴돈다. 지나온 길이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안다미로 하는 삶의 길을 걸어야겠다.

 

우리 역사에서 정점에 서 있다가 역사의 장으로 평가가 옮겨지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은퇴를 준비 중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은퇴를 선언했다.

 

한 사람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앞장서 투쟁한 공로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장군 출신 대통령으로 민주화의 기틀을 눈에 띠게 다진 공로가 있다. 묵은해를 보내며 두 사람의 공로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후계자 문제로 진통을 겪는 교회현실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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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Roi de france Clovis

 

게르만의 일족인 프랑크족은 본디 이교도였다. 프랑크족은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의 나라를 세우게 된다. 프랑크족이 사람답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들의 왕 클로비스(Clovis) 치하에서였다.

 

클로비스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클로틸라 공주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을 자기가 믿는 주님에게 인도하려고 애를 썼다. 클로비스는 들은 척도 않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전투에서 패배의 위험에 빠졌다. 그때 그는 부르짖었다.

 

『내 마누라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절 좀 도와주십시오. 저는 누구한테 이런 소리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도와주시어 제가 이기면 당신의 이름으로 세례받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부디 내 대적에게서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클로비스는 승리했다. 그는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세례를 받았다. 독일의 회심은 영국에서 온 한 선교사한테 힘입은 바가 컸다. 그는 이름이 영어로는 위니프래드(Winifred)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보니파키우스라고 흔히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프리즐랜드인이라는 부족 속에 들어가 사역을 했다. 그러나 프리즐랜드인은 선교사를 쫓아냈다. 그는 라인강 훨씬 위쪽으로 올라가 선교사역을 해야만 했다. 독일인은 거대한 떡갈나무를 보탄(Wotan)이라고 부르며 신으로 받들었다.

 

보니파키우스는 그 나무를 베어 보탄이 전혀 신이 아님을 증명하겠노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흰소리 뇌까리는 허튼수작에 신의 진노를 사 보니파키우스가 거꾸러지는 꼴을 보게 됐다고 수다들을 떨었다.

 

정작 선교사가 도끼를 들어 우람한 떡갈나무를 후려쳤을 때 갑작스럽게 엄청난 돌풍이 일어나 나무줄기를 네 토막으로 쪼갰다고 전설은 전한다. 보니파키우스는 네 동강 난 나무를 널빤지로 켜 판자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가르칠 요량으로 보니파키우스는 실제로 풀다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죽기 전에 그 수도원에서 4백 명에 달하는 수도사들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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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loss Fulda‎

 

보니파키우스는 이제 일흔다섯이 됐다. 대주교까지 된 그는 프리즐랜드인에 대한 첫 번째 선교 실패를 스스로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마인츠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그는 프리즐랜드로 돌아가 선교사역을 하다 살해당해 순교했다. 그는 평생 하나님 나라만을 전하다 갔다.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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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2_ 선교사 보니파키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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