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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Jan Hus at the Council of Constance. 개혁의 촛불 일본 자동차 공세에 밀려 맥을 못 쓰던 미국 자동차업계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이아코카였다. 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경영 철학과 경험은 세계에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 내에서의 그의 인기는 너무도 대단해서 그는 워싱턴을 넘보는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칼럼까지 동원해 미국에 필요한 것은 일류 자동차 제조업자지 이류 정치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다. 『아니 여보게들 아이아코카가 정치를 할 모양이네 정치를 안 하겠다는 말이 영판 정치인 같은 어투로 말하고 있어』 요즘 정치 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이 각 일간신문에 계속 실리고 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다. 위클리프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운동은 영국에서 별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보헤미아에서 지지를 획득했다. 그 당시 영국 왕이 보헤미아 공주와 결혼을 했었다.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인 그 나라에서 존 후스는 이탈리아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처럼 부패한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설교를 했다. 성직자들은 화려한 옷에 달린 술을 휘날리며 말을 탔고 은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곤봉으로 가는 길에 거추장스런 사람들을 쫓았다. 후스는 거침없는 비난들 때문에 이단으로 고소를 당해 콘스탄스에서 열린 공의회에 회부 되었다. 후스는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는 정죄에 대해 결코 그런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후스는 그걸 취소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후스는 눈을 껌벅거리며 도대체 결코 가르친 적이 없는 걸 무슨 수로 취소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후스는 거절했고 유죄 판결을 받아 화형당했다. 화형당하는 후스(예나 약전, 15세기 후반) 그 결과 보헤미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고 성직자들의 뺨은 디룩디룩했다. 개혁의 불빛은 아직 희미했지만 여러 구석에서 촛불들이 타고 있었다. 독일 라인강 계곡을 따라 일단의 조용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교회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수도원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접촉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그룹이 홀랜드에 있었는데 스스로를 『공동생활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늘 함께 살면서 물건을 함께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는데 보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이곳저곳에서 퍼뜨렸다. 특별히 학교와 대학교들을 통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이 그룹을 통해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처럼 읽히고 있다. 이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다. 어떤 형제가 썼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켐피스로 알려져 있다. 개혁의 촛불들이 희구하는 것은 하나님 교회의 사랑과 선의 회복이었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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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3-1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면죄부 판매 죄의 그늘 교황의 아비뇽 유배는 단지 교회의 탐욕만을 증가시켰다. 이유인즉슨 돈을 그러모으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청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교황의 오랜 부재로 토지들을 이웃 통치자들이 마구 짓밟아 못 쓰게 만들었다. 아비뇽에 자리 잡은 교황 요한 22세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옛것이든 새것이든 온갖 짓을 다 했다. 물론 세례, 결혼, 장례 등과 같은 정식 예식에 돈이 부과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둘로 나눠 두 무덤에 매장하는 것조차도 돈만 내면 교회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 어느 곳에 있든 명색이 주교이면 임지를 받을 때 1년 치 봉급을 고스란히 교황한테 바쳐야 했다. 요즈음 학교 선생이 될작시면 이런 꼴같잖은 일이 있다는데 그 옛날 교황한테서 학교 이사장들이 배운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주교직이 공석이 된다면 교황은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다른 주교를 이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주교직이 한 자리씩 비게 되어 주교들이 전부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런 뒤 교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옮긴 주교들한테서 부임 첫해의 월급을 모조리 상납받게 된다.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면죄부를 파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괴롭게 지내야 되는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교황의 허가증이었다. 그 사상은 연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성자들의 공로를 보관한 보물창고를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이 증서는 타인에게 양도도 가능했다.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요한 22세와 같은 탐욕 덩어리 교황한테 지청구를 늘어놓고 교황을 이단이라고 몰아댔을 때 분노의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교황은 화가 지글지글 끓어올라 본보기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몇을 이단 심문관에게 넘겨 화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의 교회 소유 토지를 탈취해가자 교황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 정말 힘써 그러모은 돈을 태반이나 전쟁터에서 허비했다. 교황은 교회가 교회답게 행해야 될 일에는 쓸 돈이 거의 없었다. 또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런데 쓸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70여 년 만에 로마로 돌아온 뒤 사치와 교만의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성직자들은 아주 품위 있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교회당과 그림과 책에 솔찬한 돈을 썼다. 그들은 카드놀이와 잔치에 아주 많은 돈을 활수 하게 지출했다. 그들은 값비싼 의상을 걸쳤고 예배 행렬을 화려하게 꾸몄다. 교황은 강력함을 내보이려고 멋진 의자를 군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게 했다. 평신도들은 고등종교의 신앙에서 낮은 마법의 주술적 신앙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성만찬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부적처럼 사용했다. 기독교에 만연된 치명적인 죄와 마법이 교회의 생명을 비칠거리게 했다. 사치의 죄에 빠진 교회 개혁의 외침과 시도들이 유럽 전역에서 불끈거리며 나왔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어두운 만큼 밝은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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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2-2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서방교회의 분열을 상징화한 14세기의 세밀화 죄의 교회 침범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교황권을 튼튼하게 세운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도 죽고 교회와 세상에 신선하고 감동적인 영향을 미친 프란체스코도 죽었다. 이 세상은 악인만 죽는 게 아니라 의인도 덩달아 죽기 마련이다.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 그런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쓰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거듭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텐데. 어쨌든 이노켄티우스 3세와 프란체스코가 죽은 뒤 중세는 내리막길을 마구 달렸다. 일단 지어진 대 예배당은 변함없는 매력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돌로 된 건물은 비바람으로 인한 마모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인간은 자기 특성을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교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을 침범했던 야만인들보다 훨씬 심한 피해를 교회에 끼쳤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로마인을 죄다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죄들이 교회의 모든 덕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중세의 아주 깜깜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신앙의 촛불이 최소한 깜박거리고는 있었다.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교회의 특성과 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즉 칠죄종(七罪宗: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은 오만 탐욕 사음 노여움 탐식 질투 나태 등을 이른다. 그 가운데 특별히 다섯 가지 죄가 교회를 냅다 쳐들어왔다. 이것들을 이런 모양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탐욕은 약탈 포대기를 싣고 달리는 말로 묘사된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통째로 삼키는 짐승으로 표현된다. 사치는 온갖 모양을 내느라 여념이 없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남자도 이 짓을 했다. 노여움은 연약한 처녀의 머리를 칼로 내리치려는 걸로 묘사된다. 교만은 자기 말에서 굴러떨어져 채이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약탈 포대기를 나를는 탐욕 교회의 탐욕은 국가와 아주 심하게 마찰을 빚었다. 국가도 역시 탐욕 덩어리였다. 싸움을 하면서 교회는 더욱 탐욕스러워져 갔다.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부자가 되었고 왕들은 질투로 배가 아파 몸살을 앓았다. 특별히 영국과 프랑스 왕은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고 있는 참이라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면 누구에서도 그걸 얻거나 뺏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5.6공 시절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고나 할까. 영국 왕은 교회 재산 축적에 도움을 줬고 프랑스 왕은 자기 나라의 어떤 돈도 로마로 보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이에 발끈한 교황 보니파키우스 3세는 교회의 재산을 뺏어 가는 어떤 왕도 왕한테 교회 재산을 바치는 어떤 성직자도 출교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아주 시덥잖다는 표정으로 교황을 생포해 프랑스의 한 궁벽 진 촌락으로 교황청을 이전시킴으로써 교황의 으름장에 답했다. 그 촌락 이름이 아비뇽이었다. 교황들이 7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로마에 부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305-1377) 이 시기를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 기간을 본 따 교황청의 바벨론 유수라고 한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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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2-07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ermon to the Birds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새로운 수도원 운동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시대에 새로운 종류의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바람을 탄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떨어져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수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탁발수도사(friar)니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frater에서 온 말이다. 탁발수도사들은 함께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는 프란체스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아시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 상인이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통설과 달리 프란체스코는 부자가 되기를 꺼렸다. 세상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람들이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며 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은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지고 너무 편안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 양』(Lady Poverty)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결코 가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폐 가치가 있는 선물은 어떤 것도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입을 옷과 먹을 음식만 받았다. 그는 노동을 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상의 임금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상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것을 위해서 구걸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입으려고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빌었다. 또한 그는 내일의 것이 아니라 그날에 필요한 오늘의 것만을 위해 구걸했다. 그는 몸의 건강조차도 자신의 소유에 속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들이건 도시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우리 찬송가 가사따나 아골 골짝 빈들에도 그는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본을 따라 사는 실체를 몸소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물건 소유를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소유한 부유함을 느꼈다. 프란체스코의 손과 발에 나타난 흔적들을 스티그마타 즉 성흔이라고 한다. 스티그마타(stigmata)의 복수형이다. 그 흔적들은 붉은 반점들인데 프란체스코가 그리스도의 상처들을 너무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tigmatization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는 날아다니는 새들을 앉혀 놓고 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방주 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너희한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희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둥지를 만들어 살라고 너희에게 큰 나무들을 주셨다. 너희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목화를 심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털옷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작은 자매들이여,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도록 해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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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2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논쟁하는 학자들 교회교육 언제는 쇠뜨기 풀이더니 이제는 소금이 유행이다. 건강에 소금물 복용이 그만이란다. 그것에 관한 강습회도 있고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효과를 봤다고 여기저기 퍼치는 소금 전도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개발에는 늘 잠잠하다. 정신이 저마다 건강해서인지 아니면 생명 연장에 정신건강이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네 정신건강은 실로 나쁘기 그지없다. 검사가 검사한테 잡혀가 구속당하고 목사가 목사의 고발로 구치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외출도 못하고 자기들 보호를 위해 발사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들은 부정입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돈으로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돈돈 하겠지… 아이를 체벌하는 수도사 배우고자 소년들이 선생인 수도사한테 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소년들: 선생님 저희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 배울 때 매도 맞아야 할텐데? 소년들: 무식하기보다는 매 맞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괜히 매를 때리지 않으신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어요. 선생: 너희는 무슨 일을 하니? 첫 번째 소년: 전 수도사가 될래요. 하루에 일곱 번씩 형제들하고 노래를 불러요. 그 사이에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요. 선생: 이 친구들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니. 첫 번째 소년: 농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고 소치기도 있고 사냥꾼도 있어요. 그리고 어부, 행상, 상인, 구두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선생: 농부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농부: 아주 고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새벽에 소를 몰고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합니다. 날마다 2천 평 이상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소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소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선생: 자 조용히들 하려무나. 각자 서로를 도와주어라.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사제이든 수도사이든 평신도이든 군인이든 누구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일에 힘쓰고 분수를 지키도록 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점잖게 행동해라.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서서 같은 음으로 찬송을 하고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교회는 어린 소년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학생들도 가르쳤다. 교회의 주도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교들이 설립됐다. 대학교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쳤고 우주를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도 가르쳤다. 대학교 선생들은 석사나 박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폈다. 학자의 논쟁이 줄어들고 눈치 보기만 한껏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목회자들은 괜한 일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닌다.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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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민수기 6: 24~27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화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몇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 22) 위 말씀은 가데스바데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선발된 정탐꾼 열두 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한 후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제사장 나라’ 계약을 파기하고 애굽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자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의 말씀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열 하루면 가고도 남을 가나안 땅을 40년을 돌아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은 40년간 변함없이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들의 의복을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항상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도 쉽게 믿음에서 약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생! 그는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내 인생 모든 날은 차치하고 근래 3년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적과 은혜만은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아멘.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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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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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3_ 개구쟁이 어거스틴
    Saint Augustine and Saint Monica 개구쟁이 어거스틴 찬양이 자지러졌다. 지휘자의 손놀림이 불길 삭듯 사그라지자 대원들이 슬며시 앉았다. 백발의 목사님이 설교단에 몸을 드러냈다. 눈은 형형했다. 핼쓱한 볼을 사이한 입술에서 말씀이 울렸다. 총회설립 80주년을 기리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목사 장로들의 눈을 띄우고 마음을 열게 하고 영혼을 밝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말씀을 전하는 나이든 종에게는 이제까지의 드높은 명성을 새삼 되새기게 해주는 기회였다. 80년 된 교단에 딱히 알맞는 주의 종이었다. 날마다 열매 맺는 삶을 시냇물이 흐르듯 전하는 종의 모습은 20여 년 전 삼각산 어느 기도원에서 성결교 교역자들의 심령을 말씀의 불로 희나리 태우듯 하던 그때 그 능력 있는 사자였다. 불땀 좋은 나무처럼 상기된 표정의 한 목사가 전화통에 소리 질렀다. “와 보세요. 나도 이렇게 은혜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생나무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르는 능력 있는 설교자는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종인가! 그런 종을 소속 목사로 두고 있는 교회와 총회는 그게 얼마나 큰 자랑이고 복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거스틴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 그는 자기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났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도통, 한 적이 없었다. The Conversion of St. Augustine by Fra Angelico 소년 시절 어거스틴은 동네 개구쟁이였다. 그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동네 말썽꾸러기들과 신나게 놀다가 이웃 아저씨네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린 설익은 배를 서리했다. 그것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장난삼아 하는 못된 서리였다. 그는 참회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린 배를 닥치는 대로 따 무더기로 쌓았죠. 그러나 하나도 먹질 않았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한번 깨물어 보고 돼지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건 비열한 짓이었지만 난 그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왜 그랬느냐고요? 살인자는 살인 그것만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살인자는 보복을 원하거나 자신이 죽이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싶어 하죠. 우린 전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배나무에 달린 열매를 도둑질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게 아마 나 혼자뿐이었다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죠. 집단 심리가 우리를 함께 어울려 그런 짓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야 가서 배서리나 하자'고 말했을 때 누구나가 그런 범행에서 몸을 뺀다는 걸 수치로 여겼고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할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린 과수원 주인이 배나무가 도둑맞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면서도 곤한 잠에 떨어져 자고 있을 때 그에게 입히는 못된 장난을 생각하고는 킬킬거렸습니다. 그건 참으로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걸 생각만 해도 욕지기가 치밉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늦게까지 이교도였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아들 때문에 무척 속을 썩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언제나 소망했다. 속을 태우다 못해 감독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더니 감독은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많은 눈물을 흘린 아들을 결코 잃어버릴 리가 없을게요.”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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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3-1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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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3-07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1_ 암브로시우스의 하루
    암브로시우스의 하루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웃음 짓는다. 공원마다 벚꽃이 만발해 사람들이 감탄을 내지른다. 일본인이 그 꽃을 국화라고 해서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애꿎은 꽃이 무슨 죄가 있는지..... 일본 사람이 좋아하는 생선도 다 미워해야 될 판이다. 세월이 가고 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크리소스톰도 죽었다. 안디옥 사람들도 그를 잊은 지 오래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어떤 변화 속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지킨답시고 경찰을 불러 교회 문에 경비를 세우던 목사님도 세상을 떠났고 뉴욕과 LA를 오가며 전 세계 선교가 어쩌구하던 젊은 목사도 돌연히 하늘로 차출 당했다. 어떤 손 큰 여자는 감방에서 10년을 공양드리고 나오더니 거부가 됐단다. 세상 참 재미있다. 그 여자 그 재미에 감옥 한 번 더 들어갈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돈이라면 애비 자식 간에도 싸우고 돈 때문에 재판하는 사람의 판결도 오락가락하는 판인데 말이다. 서방교회가 로마제국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야만인들 때문에 심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이야기를 좀 말해야 될것 같다. 로마인은 변경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로마는 경계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행정부를 이태리 반도 상부에 있는 밀란으로 옮겼다. 이 지역을 담당한 관리는 암브로시우스였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세례는 받은 적이 없었다. 밀란의 감독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의 교인들을 돌보아야 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했다. 삼위일체니, 아니니 하는 아리우스 논쟁이 아직 어떤 결말을 본 상태가 아니라서 니캐아 파와 아리우스파가 각기 자기파 사람을 밀란의 감독자리에 앉히려고 했기 때문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암브로시우스는 폭동을 우려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로 갔다. 그가 교회로 걸어 들어갈 때 한 아이가 외쳤다.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그러자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교인들의 소리를 가라앉힐 수 있는 말을 암브로시우스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세례와 성직자의 기초 과정을 대충 마치고 일주일 만에 감독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그는 제롬이나 크리소스톰처럼 수도사 생활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수도사들을 존경은 했었다. 어느 날 공무 수행차 교회에 들렸다가 인생행로가 바뀐 암브로시우스는 감독이 된 후 수도사들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 일에 참견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통치자들에 맞서는 데는 크리소스톰과 같은 용기를 그대로 지녔다. 그리고 그는 수도사로서보다는 행정 관리로서 더 많은 훈련을 받았던 터라 그런 일에는 어떤 성직자보다도 더 성공적이었다. 그가 맞닥뜨린 가장 큰 최초의 싸움은 유스티나 황후와 벌인 것이었다. 유스티나 황후는 아리우스파를 지지했다. 그녀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위해 바실리카예배당을 하나 밀란 시에 마련해달라고 암브로시우스에게 요청했다. 그는 일언 지하에 거절했다. 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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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0_ 변함없는 황금
    변함없는 황금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악수를 할 때 교인이 “은혜 받았습니다”를 말하며 고개를 숙이면 설교자는 으쓱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런 말을 듣지 못하는 날이면 괜스리 심사가 편치 못하다. 크리소스톰이 설교를 마치고 번들번들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우르르 교인들이 몰렸다. 사람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은혜 받았습니다”느니 “감명 받았습니다”느니 했다. 대머리 설교자는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의 입에 웃음을 머금고 말을 받았다. “당신의 행동으로 은혜받았음을 보여 주시오”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주머니 단속을 잘 하고 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창문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갈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는 교회 안에서 소매치기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안디옥과 달랐다. 안디옥에서처럼 아무나 교회를 들락거릴 수 없었다. 교인들의 대다수가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머리 설교자는 황금의 입이었기에 변할 수 없었다. 황금의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크리소스톰에게 반드시 좋지만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크리소스톰을 몰랐다. 그래서 그가 안디옥에서 했던 것처럼 부자들 귀에 거슬리는 설교를 스스럼없이 했을 때 사람들은 입이 나올 대로 나와 툴툴거렸다. 그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을 비판하자 그게 생활이다시피 한 황후와 지체 높은 여인들은 샐쭉해졌다. 그럼 우린 뭘 하며 살라는 거냐며 입방아들을 호되게 찧었다. 못생긴 게 꼴값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설교를 굉장히 잘 한다고 해서 납치까지 해서 데려다 놨더니 설교를 잘 하기는커녕 심사만 뒤틀게 만든 괴이한 위인이었다. 황후가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는 옆의 동전 그림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성직자들에게도 자기처럼 엄격하게 살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성직자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 그가 없는 데서 갖은 불평을 다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밥술이나 먹고 행세깨나 하는 사람 쳐놓고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면 고개를 젓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멀리 있는 이집트 알렉산드라의 총대주교도 몸이 달아 있었다. 크리소스톰 때문에 자신이 따논 당상격인 콘스탄티노플교회를 못 맡는다고 애가 달아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통속이 됐다. 그들은 고개를 맞대고 크리소스톰을 어떻게든 몰아내기로 작당을 했다. 정계와 경제계와 교계가 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다. 기회를 엿보았다. 틈을 노렸다. 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탈탈 털었지만 그는 먼지 하나 나지 않았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되지를 않았다. 몸이 달대로 단 모략꾼들과 말쟁이들과 수다쟁이들은 말도 안 되는 죄를 크리소스톰에게 들씌웠다. 결국 크리소스톰은 죄를 뒤집어썼다. 4백4년 그는 다른 곳의 교회도 맡을 수 없게 중죄인으로 정죄 받아 면직과 동시 유배당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혼자 사는 수도사로서 죽었다.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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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1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9_ 돈과 황금 입
    John Chrysostom confronting Aelia Eudoxia 돈과 황금 입 오토바이 모는 경찰관이 점심 먹으러 집에 가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교통 경찰관의 교통사고인 셈이었다. 시체안치실로 가족과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번들번들한 장화를 벗겼다. 물기 먹은 파란 지폐가 꼬깃꼬깃한 모습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걸 시작으로 몸의 곳곳에서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 둘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고골리의 희곡 ‘검찰관’이라는 작품에 돈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짜 검찰관 흉내를 내는 백수건달에게 뇌물을 들고 온 한 녀석이 이렇게 뇌까렸다. “돈이란 참 좋단 말이야. 떨어뜨려도 찢어지거나 깨지는 법도 없고 손에 쥐고 있으면 화끈거리기까지 한단 말씀이야.” 돈에 찌든 사람들에게 거미처럼 생긴 황금의 입 크리소스톰이 이렇게 권면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보,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 같으니라구. 아 글쎄 저 건너 집 남자 좀 보세요. 저 사람은 방울소리만 달랑거리던 빈털터리었는데 지금은 번듯하잖아요. 그는 모험두 하구 배도 탔죠. 그러더니 한밑천 벌어 부자가 됐잖아요. 부인은 보석을 있는 대로 주렁주렁 매달구선 노새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나다니는 데 당신은 배알두 없수.’” 크리소스톰은 목소리를 바꾸어 말을 이었다. “부인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남편도 이렇게 말할 겁니다. ‘돈 많고 가문 좋은 여자랑 나도 결혼할 수 있었다구. 젠장 누군 뭐 그런 걸 몰라서 안 한게 아니라구. 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을 졸졸 따라 다니다 결혼한거지. 당신도 예쁘고 얌전하고 얼마나 상냥하오. 돈이란 먹고 살 정도면 되는 게요. 저 친구야 한 밑천 잡았다지만 돈 욕심에 이웃집 녀석처럼 두 밑천 잡겠다고 뱃길 나섰다가 언제 고기밥 될런지 알 수 없는게요. 나 이렇게 건강하고 당신 보석으로 안 꾸며도 이렇게 예쁘니 얼마나 좋소.’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천국에다 소망을 두고 사십시오. 그러면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크리소스톰은 말하기 곤란한 것들도 아무런 부담 없이 말했지만 안디옥 사람들은 그의 말에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너무도 잘 알았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대머리 크리소스톰의 명성은 로마제국 전역에 퍼졌다. 그의 진짜 이름은 요한이었지만 황금의 입이라는 뜻의 크리소스톰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자리가 공석이 됐다. 총대주교라는 말은 족장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로마나 콘스탄티노플 같은 대도시의 감독을 높여 부르자는 데서 비롯됐다. 중요한 자리라 걸맞는 명성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내노라 하는 당시의 교역자들이 그곳을 맡고 싶어 몸이 달았지만 가장 주목받는 크리소스톰은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안디옥을 사랑했고 안디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느 날 보쌈을 당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권력자들은 크리소스톰을 회유하고 으르대어 총대주교에 취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축하했지만 그는 덤덤했다. 20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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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13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8_ 목회자 크리소스톰
    11th-century conch mosaic of John Chrysostom from the south-east apse of the nave of the Hosios Loukas monastery 목회자 크리소스톰 바람이 한결 더워졌다. 장로도 정치꾼도 재벌도 대통령 될 꿈에 너나없이 바쁜 시절이다. 이제 봄이 무르익었으니 평양 사람들일랑 금빛 우상 배불뚝이 김일성 형상을 광내기에 바쁠 것이다. 통일은 언제나 되는 건지. 비숍(Bishop)이란 헬라어 에피코포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감독이란 뜻이다. 교인의 생활을 돌본다는 뜻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를테면 초대 교회의 관행을 따른다면 오늘날의 목사란 감독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감독은 목사이다. 대머리 크리소스톰이 감독의 길을 택했다는 것은 목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감독으로서의 목자의 삶은 수도사로 맨땅에 잔다거나 목욕하지 않고 나다니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수도사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신경 뚝 끊고 혼자 지내면 됐지만, 감독은 끊임없이 사람을 상대하고 복닥거려야 했다. 크리소스톰은 안디옥에다 성직자의 영웅적인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가 감독하고 돌보는 교인들은 사도 시대의 활수한 관용을 굴뚝 검뎅이 마냥 까먹었다. 크리소스톰은 사도 시대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힘을 기울였다.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을 움찔거리며 황금의 입은 교인들에게 말했다. “돈이란 물과 같은 걸 명심하십시오. 물이 흐르지 않고 괴어 있으면 썩고 말듯이 돈도 그런 것이요. 금식으로 몸을 괴롭게 한 걸로 당신이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지 마시오. 당신이 금식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만일 피의 대가를 치루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런 아름다운 것들은 요구하지 마십시오.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오. 배에는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갑판을 책임진 사람, 조타수, 노를 저을 사람 등이 있어야 합니다. 배가 대양으로 미끄러져 나갑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뒤에 남게 됩니다. 상인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야만인의 땅에 가서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겪습니다. 그게 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게 다 당신이 신은 슬리퍼를 잣을 색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냄새나는 그 알량한 발을 덮을 때깔 나는 덧신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말마다 금과옥조라는 황금의 입 크리소스톰이 눈을 떼록 거리는 신자들에게 혀로 입술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당신의 돈을 아주 효용 있게 가난한 사람에게 쓰십시오. 안디옥에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5만 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1만 명이나 됩니다. 나머지는 유대인이거나 이교도들이지요. 이제 그리스도인이 물건을 가져와서 사도들처럼 서로 나누어 쓴다면 수도원에서도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가 돌보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식사가 전체를 위해서 일시에 이루어진다면 경비가 훨씬 싸게 먹힐 겁니다. 수도원에서 배우도록 합시다. 이제까지 수도원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멀쩡한 교회를 때려 부수고 수십억을 쌀자루 털듯 교인들을 들쑤셔 마련해 성전을 봉헌했던 목사님이 지금은 2층에 세를 얻어 감독 생활을 하고 계신다. 예배당 건축에 쏟는 십분의 일이라도 가난한 자와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기울인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에 허덕이지는 않을 성싶다. 일을 안 해도 땀이 솟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큰 교회와 담임목사님들은 냉방기 걱정이 앞설 것이다. 2021-02-06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06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7 - 황금입
    Johnchrysostom 황금입 세상이 변했다. 여당은 죽상이 되고 야당은 밥상이 되고 여든 가까이 먹은 부자가 만든 당은 생각보다 큰 시루떡을 쥔 아이가 됐다. 이제 마음들은 너나없이 봄기운을 따라 두둥실 떠 있다. 첩보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우편 배달부 노릇도 제대로 못한 안기부 직원들은 이제 본격적인 수사를 받을 모양이다. 그들이 아무리 모르쇠로 버텨도 알 건 다 아는 세상 사람들은 수사가 어찌 되든 별 관심을 보이질 않을 것이다. 제롬이 세상에 돌아왔을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성경을 번역하고 글을 쓰는 가운데 그는 마음의 평화와 보람을 맛보았다. 남자는 형제로 생각하게 되었고 여자는 이성이 아니라 자매로 보였다. 위대한 수도사가 또 한 사람 있었다. 그의 이름은 크리소스톰이다. 이 이름의 뜻은 황금입이다. 워낙 그의 설교가 출중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렇게 불리우게 된 것이었다. 그는 비쩍 마르고 삭개오처럼 키가 작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링컨처럼 볼은 우묵했다. 이마는 온통 찌글짜글한 주름투성이에다 머리는 엘리사처럼 대머리였다. 턱에는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이 성기게 붙어 있었고 움푹한 눈은 형형한 빛을 발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거미에 견주었다. 그는 3백 47년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안디옥 산등성이에서 수도를 닦는 형제들에 합류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에 비견되기도 하는 그의 어머니 아나투사는 손사래를 치며 아들을 말렸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들을 타일렀다. “애야 네 아버지께서 네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잖니. 널 키우기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너는 아마 모를 게다. 사업이니 세금이니 하는 걸 내가 알 턱이 있겠니. 게다가 하인들은 얼마나 망나니들인지 내 속이 다 썩었을 게다. 친척들은 눈이 벌개가지고 내 돈만을 울궈내려고 아우성들이었지.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널 위해 참고 헤쳐 왔다. 나는 이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난 널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일랑 눈꼽만치도 없다. 그러니 이 못난 에미 소원이 나 죽을 때까지만 나와 함께 있어다오. 그 뒤에 네가 무엇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하려므나” 크리소스톰은 어머니 부탁을 따라 집에 눌러 앉았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자 크리소스톰은 지체없이 수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점차 그는 보다 훌륭한 삶이 세상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사람들을 돕는 감독의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감독의 생활은 수도사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감독은 양떼를 가르쳐야 한다. 그는 나그네도 보살펴야 했다. 그는 여성들도 돌보아 주어야 하고 게으름 피울 때 꾸짖기도 해야 하고 어려울 때 다독거려 주어야 한다. 그는 남자들 가운데 사는 한 남자이기도 해야 한다. 교인들의 싸움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리우스 주의자들과 논박을 벌여야 한다. 감독은 마차경주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다. 또한 감독은 가치 있는 사람에게 성만찬을 베풀고 가치 없는 사람에게는 성찬을 못 받게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쓰잘데 없는 일에 눈을 돌릴 수 없는 목자의 업무였다. 2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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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1-30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6 - 제롬
    St. Jerome in His Study (1480), by Domenico Ghirlandaio. 제 롬 훌쩍 길을 떠나 나그네가 되고 싶은 계절이다. 바람이 산들거려서도 그렇고 세상이 온통 선거 바람으로 흔들거려서도 그렇다. 허나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아닌 바에야 길 떠난들 세상을 벗어 날 수 있으랴 싶다. 진정 세상을 떠나지 않고서야 세상을 떠나는 게 녹녹하겠는가... 가정을 돌아보고 맡겨진 일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기꺼운 하나님의 일인지 모르겠다. 고골리의 소설 외투에 나오는 주인공 아까끼아까끼예비치가 자기일과 외투를 끔찍이 생각하는 만큼이나 가슴 버겁게 뿌듯하다. 한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은 훌쩍 떠나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헌신을 깁는 신기료장수건 이 땅 저 땅 기웃거리는 부동산업자건 나름의 계기와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할진대 수도사가 된다든지 성직자가 된다든지 하는 일이 범상하게 결정되는 일은 아닐성싶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로 알려진 제롬(St. Jerome)은 지금은 유고슬라비아에 속한 스트리돈에서 347년에 난생처음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부모는 유복한 중산층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의 가정교육은 가히 모범적이었다. 그는 열두 살 나이에 가정교육에 힘입어 로마로 유학 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도시인 로마에서 학문의 기초와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라틴문학과 학문으로 무장된 어엿한 학자가 된 제롬은 지하묘지인 카타콤에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종종 참석했다. 그러다가 로마에서의 학업이 갈무리 지어갈 무렵인 366년경 세례를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무 살 청년 때였다. 로마 생활을 청산한 제롬은 20년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불혹의 나이 마흔이 돼서 인생은 뭔가하고 뭐 씹는 표정을 할 때 그는 수도원 운동에 깊이 매료됐다. 돌아다니고 돌아다닌 끝에 그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영혼의 평화를 찾아 수도사보다 한 급수 윗길인 은수사가 되었다. 그의 경륜과 학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이 있었지만, 그는 모래바람 이는 사막에다 거처를 정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사막은 그의 생각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짐승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은 로마를 활보하고 다녔다. 아리따운 여자들의 춤추는 선정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고자 하는 그의 뇌리를 휘젖고 다녔다. 미칠 지경이었다. 고개를 외로 틀어보기도 하고 절레절레 흔들어 보았지만 그럴수록 로마의 신나는 정경들이 모지락스럽게 들러붙었다. 심지어 돌로 가슴을 쳐 보았지만, 그의 생각에 또아리를 튼 망상들이 한시도 그를 놓치지 않고 괴롭혔다. 몇 년 동안 사막에서 부질없는 싸움을 엎치락덮치락 한 뒤에 사막 생활을 포기하고 속세로 돌아갔다. 이때 사자 한 마리가 그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고 한다. 그가 어디로 가든 사자는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Bernardino Pinturicchio - Saint Jerome in the Wilderness - Walters 371089 제롬은 뛰어난 학자였다. 그는 히브리어를 배워 구약성서를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고 신약성서 역시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옮겼다. 제롬이 번역한 성서를 벌게이트 성서나 불가타 라고도 한다. 불가타는 민중이라는 뜻이 있다.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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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1-17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5 - 녹옥과 주옥
    Luther vor Cajetan 녹옥과 주옥 어느 야당의 공동대표라는 사람이 연설하는 걸 들었다. 그런데 그는 정치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했고 어떻게 할 것이라는 시덥잖은 소리만 하품 나게 늘어놓았다. 요컨대 세상 정치인이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코끝도 내비치지 않았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세상이 바로 될 것인지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그 정치인은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나이 90줄을 접어든 목사님이 템플턴 상이라는 걸 받는 모양인데 그 상금이란 게 만만치가 않다. 신문 조각에 선뜻 내키지 않게 써갈겨 논 글로 보건대 종교 분야의 노벨상이니 어쩌니 한다. 아마 템플턴이라는 사람 돈푼이나 가지고 있어서 자기 이름 박힌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 만든 상인 모양이다. 옛날 좀 모자란 왕이라는 사람이 도루묵을 어떻게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 기쁨에 왜장 가또오 가요마사에게 무릎 꿇고 절했던 곳이 있다. 이제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그곳에 기거하고 계신 그분은 개신교의 온갖 일에 관심을 표명하신다. 그분은 저서라고는 설교집 정도인데 글쎄 그게 게으른 목회자들의 복사기 기능을 가진 눈과 손의 대단한 애용품이 된 지 오래이다. 독재자의 마나님이 총 맞아 죽었을 때 까까중이 되뇌는 염불 비슷한 기도를 광장에서 읊조리는 것도 서슴치 않은 이런저런 공로들을 기려 종교의 노벨상이라 하는 걸 하늘나라 상급 대신 받게 된 모양이다.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통장 한 개 없다는 말이 구호인 그는 외출 시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에 실려 전국 어디든 가고 남한산성에서도 사위 가족과 살 공간이 있고 은퇴한 그의 교회 안에도 하산 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거처가 늘 정갈스럽게 간수되어 있다. 자기 이름의 집과 통장을 가진 사람도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야 되는지 모르는 세상인데 참으로 묘한 일이다. 세상이 어렵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수도사들은 너나없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기근으로 세상이 굶주릴 때 그들은 홀연히 세상으로 돌아와서 부자들을 설득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게 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행한 어느 수도사의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 수도사는 아주 탐욕스러운 부유한 젊은 여인을 알았다. 그는 그녀에게 가서 진심이 담뿍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헐값에 보석을 사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은 오백 냥만 주시면 아주 대깔 좋은 보석을 세트로 사드리겠습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여인은 귀가 솔깃해서 어느 정신 나간 여인네들이 헌금한 보석을 처분하려나 하는 요량에 선뜻 돈을 내줬다. 그러나 그는 보석을 가져오지를 않았다. 여인이 따져 물었다. 수도사가 대답했다. “따라 오시죠. 보석을 보여드리리다. 보시고 맘에 안 드시면 돈을 환불해 드리리다.” 수도사는 여인을 어느 집으로 안내했다. “녹옥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주옥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아무려면 어때요” 그는 먼저 나환자 병동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에게 말했다. “이 나환자들이 나의 녹옥들입니다.” 다음에 그는 불구자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 불구자들이 나의 주옥들입니다. 돈을 돌려드릴까요?” 여인은 한결 누그러진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값어치가 있네요.” 20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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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1-0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4 - 수도사와 어머니
    Luther at Erfurt - Justification by Faith 수도사와 어머니 봄이 성큼 온 것인지 시나브로 온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겨울이 종적을 감췄다. 나뭇가지의 움찔거림이 느껴진다. 나물 캐러 가는 처녀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른거린다. 공해로 찌든 이 거대한 도시도 봄의 기운을 받아 신선함을 풍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새 생명들이 봄빛을 받아 기지개를 펴는 때라서 이런 부질스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일까. 최초의 수도사들은 어찌나 엄격한지 힐끔거리기 일쑤인 우리와는 영판 다르게 여자는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어머니가 수도를 쌓고 있는 안쓰러운 아들을 만나러 친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그러나 수도하는 아들에게는 어머니도 여자였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말을 나누는 동안 내내 눈을 손으로 가려야만 했다. 요새 말로 여자가 뭐길래 그랬는지 모르겠다. 친구도 없고 일도 하지 않고 고행하는 까까중 마냥 이런 식으로 혼자 산다는 게 사람에게 좋을 리 없다. 말할 상대도 없고 일도 거의 하지 않는 은수사들은 마귀들이 늘상 자기를 쫓아다닌다고 상상했다. 성 안토니는 마음속에 들끓는 마귀들과 옥신각신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Lutherstadt Wittenberg 일설에 의하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에 은둔해 있을 당시 그가 잉크병을 냅다 던져 벽에 얼룩을 남긴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를 끊임없이 붙어 다니며 괴롭히는 마귀 때문이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울컥 화가 솟구친 루터가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버럭 소리 지르며 잉크병을 던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은수사들은 혼자 동떨어져 사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교할 수 있는 상대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도시 알 수 없는데다 혼자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무서움이 그들의 정서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도원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기로 뜻을 모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족과 더불어 산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수도원에서 살았고 여자는 수녀원에서 지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 살기는 했지만 세상이 꼴 보기 싫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존재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속에서 바글거렸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전설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속세에 사는 한 사람이 세상을 멀리하고 산꼭대기에서 사는 은수사를 방문했다. 산을 오르느라 숨을 할근거리는 속세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은수사가 말을 건넸다. “세상은 요즘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이 산더러 ‘일어나 바다로 들어가’라고 대뜸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신앙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가?” 방문객은 숨소리도 죽인 채 눈만 말똥거렸다. 움푹 패인 눈에 형형한 빛을 내며 수도사가 입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오, 산이여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리지 못하겠구나. 지금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중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대로 앉아 있으려무나.”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수도사와 속세인이 깔고 앉은 산이 훈련된 개 마냥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일화는 수도사가 어쩌니저쩌니해도 최소한 세상을 생각하고는 있었음을 나타내준다. 2021-01-02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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