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었고, 아크레의 기독교도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SiegeOfAcre1291BNF-web.jpg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었고 아크레의 기독교도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순결한 사람들

 

바람결에 하얀 씨앗이 눈발처럼 날린다. 왕성한 생명의 섭리는 매연 가득한 하늘을 메우며 뿌리 내릴 곳을 하늘거리며 찾는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늘 혼탁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 혹시라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금슬 좋은 부부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순결하고 순수한 카다리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달리지 않은 평범한 십자가 사용조차도 꺼렸다. 정말 순수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꽉 막혀서 그런 건지 한번 단추를 잘못 끼운 카다리파는 영판 이상한 데로 흘러갔다.

 

그들의 가장 나쁜 가르침은 자살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즉 완전한 삶에 도달한 사람들은 더 살다가 혹시라도 그들의 순결한 기록을 더럽힌다거나 어떤 잘못을 범하는 걸 막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극소수이긴 했을지라도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이 있었다. 잘못된 교리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걸 오늘날도 도처에서 실감할 수 있다. 카다리파의 행동거지는 일부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나은 점이 있었다.

 

카다리파는 근면하게 노동을 했고 아무도 속이지 않았으며 그리고 누구하고도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없었다. 카다리파는 교회 쪽에 대해서는 입이 걸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도둑놈들의 소굴이라고 하고 교황들은 베드로의 후계자가 아니라 콘스탄틴의 후계자들이라고 몰아붙인 것 때문에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카다리파의 사상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비기독교 성향이 농후했다.

카다리파가 박해받던 당시의 교황은 위대한 이노켄티우스 3세였다. 그는 카다리파에게 전도자를 보내 신앙으로 되돌이키려고 노력했다. 성 도미니쿠스가 전도자들의 새로운 수도회를 만들도록 허락을 받았다. 도미니쿠스의 이름을 따라 도미니크 수도회가 결성됐다. 도미니크 수도 회원들은 허름하게 옷을 입었다.

 

교황은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카다리파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보다 건전한 사상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불행하게도 일이 꼬였다. 전도자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북부 프랑스는 남부 프랑스를 집어 먹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시 북부나 남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였다.

 

이제 십자군 사상은 터어키족에서 이단자들 즉 『잘못된 도를 믿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십자군이 박멸하고자 하는 대상이 외부의 회교도에서 내부의 이단들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북부 프랑스는 남부 프랑스로 밀려 내려와 약탈과 살육을 저질렀다.

 

인노첸시오 3세는 알비 십자군을 통해 카타리파를 평정하였다. Albigensian_Crusade_01-web.jpg

인노첸시오 3세는 알비 십자군을 통해 카타리파를 평정하였다.

 

북부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인 동시에 불신자들을 도살함으로써 그들의 왕국을 확장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 이노켄티우스는 그런 야만적인 행위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열정의 방향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북부 프랑스는 카다리파를 뿌리째 뽑아버렸고 카다리파의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단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이단들은 흩어졌다. 특히 그들은 카다리파와 가톨릭교도 간에 결혼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스며들었다. 그것 때문에 이노켄티우스 이후로 교황들은 이단을 심문하기 위한 『이단 심문관』을 임명했다.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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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7_ 순결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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