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2(금)
 
Luther_at_Erfurt_-_Justification_by_Faith.jpg
 Luther at Erfurt - Justification by Faith

수도사와 어머니

봄이 성큼 온 것인지 시나브로 온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겨울이 종적을 감췄다. 나뭇가지의 움찔거림이 느껴진다. 나물 캐러 가는 처녀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른거린다. 공해로 찌든 이 거대한 도시도 봄의 기운을 받아 신선함을 풍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새 생명들이 봄빛을 받아 기지개를 펴는 때라서 이런 부질스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일까.

최초의 수도사들은 어찌나 엄격한지 힐끔거리기 일쑤인 우리와는 영판 다르게 여자는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어머니가 수도를 쌓고 있는 안쓰러운 아들을 만나러 친구들과 나들이를 했다. 그러나 수도하는 아들에게는 어머니도 여자였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말을 나누는 동안 내내 눈을 손으로 가려야만 했다. 요새 말로 여자가 뭐길래 그랬는지 모르겠다.

친구도 없고 일도 하지 않고 고행하는 까까중 마냥 이런 식으로 혼자 산다는 게 사람에게 좋을 리 없다. 말할 상대도 없고 일도 거의 하지 않는 은수사들은 마귀들이 늘상 자기를 쫓아다닌다고 상상했다. 성 안토니는 마음속에 들끓는 마귀들과 옥신각신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Lutherstadt_Wittenberg_09-2016_photo06.jpg
 Lutherstadt Wittenberg

일설에 의하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에 은둔해 있을 당시 그가 잉크병을 냅다 던져 벽에 얼룩을 남긴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를 끊임없이 붙어 다니며 괴롭히는 마귀 때문이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울컥 화가 솟구친 루터가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버럭 소리 지르며 잉크병을 던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은수사들은 혼자 동떨어져 사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교할 수 있는 상대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도시 알 수 없는데다 혼자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무서움이 그들의 정서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도원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기로 뜻을 모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족과 더불어 산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수도원에서 살았고 여자는 수녀원에서 지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 살기는 했지만 세상이 꼴 보기 싫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존재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속에서 바글거렸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전설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속세에 사는 한 사람이 세상을 멀리하고 산꼭대기에서 사는 은수사를 방문했다. 산을 오르느라 숨을 할근거리는 속세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은수사가 말을 건넸다.

“세상은 요즘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이 산더러 ‘일어나 바다로 들어가’라고 대뜸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신앙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가?”

방문객은 숨소리도 죽인 채 눈만 말똥거렸다. 움푹 패인 눈에 형형한 빛을 내며 수도사가 입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오, 산이여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리지 못하겠구나. 지금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중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대로 앉아 있으려무나.”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수도사와 속세인이 깔고 앉은 산이 훈련된 개 마냥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일화는 수도사가 어쩌니저쩌니해도 최소한 세상을 생각하고는 있었음을 나타내준다.

2021-01-02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4 - 수도사와 어머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