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Lutherdenkmal Petrus Waldus 독일 보름스의 루터 기념관 앞에 있는 페트루스 발데스의 동상-580.jpg

Lutherdenkmal Petrus Waldus 

 

이단 아닌 이단

 

황하의 흙바람이 한반도까지 밀려와 호흡기를 간질인다. 이런저런 일에 몸이 지쳤는지 열이 오르고 코가 막히고 가래를 돋우는 기침을 한다.

 

몸살을 앓으며 높으신 분이 하신 말을 되뇌어 본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를 피해자더러 그냥 대뜸 용서해주되 그 한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란다. 용서하기도 어려운데 또 그 치가 떨리는 일을 삼삼하게 기억하고 있으라니 도시 영문을 모르겠다. 어느 한 가지만 하라고 해도 여의치 않을 텐데 두 가지를 다 하라고 대통령께서 부탁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면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단 심문관이 유죄라고 판결한 죄인은 정부 당국에 넘겨져 형벌을 받았다. 그 형벌이 말뚝에 매달려 화형당하는 것일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한 끔찍스러운 형벌을 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신념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몹쓸 범죄이다. 하나님은 이단 때문에 화가 나셔서 세상에 고통을 주실 것이기에 이단들을 불태워 없애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단들이 죽은 다음에는 영원히 지옥에 빠져 신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미루어 헤아린 교권을 쥔 사람들은 이단박멸에 눈을 흡뜨고 설쳤다. 또 한 지상에서 이단들을 쓰레기 소각하듯 불태워 죽이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이단에 현혹되지 않고 영혼을 보존하도록 겁을 주기 위한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다.

 

화형 당하는 이단-web.jpg

 

이런 이야기의 가장 슬픈 부분은 교회가 어떤 경우에는 교회의 협력자들이 될 사람들을 이단으로 내모는 경우였다. 이를테면 남부 프랑스에는 피터 왈도(Peter Waldo)라고 하는 부자 상인이 있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한테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순결을 내세우는 카다리파를 교회로 되돌리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그가 신학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도를 못하게 금지 시켰다.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힌 왈도는 성직자들의 잘못된 처사에 굴하지 않고 한걸음에 로마로 달려가서 교황한테 청원을 했다. 교황 역시 여느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도토리 키재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왈도는 재차 전도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는 그런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교회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았다.

 

추종자들이 왈도한테 몰려왔다. 그는 얼마 안 있어 왈도파라고 하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알프스 고지대의 비옥한 계곡에 은신처를 구했다. 알프스에서는 지금도 왈도파 후손들이 발견되고 있다. 일단의 무리는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한때 이단으로 몰려 심한 박해를 받았던 왈도 파는 본질적으로 칼빈 주의자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단을 거스려 신앙을 지키는 더 나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교육이었다. 교회는 학교와 대학의 어머니였다. 수도사들은 교사였다. 그들은 계속 소년들과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그 가르침은 문자뿐만 아니라 생활도 관련이 있었다.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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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이단 아닌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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