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The return of the relics of Saint John Chrysostom to the Church of the Holy Apostles in Constantinople_580px.jpg

 

변함없는 황금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악수를 할 때 교인이 “은혜 받았습니다”를 말하며 고개를 숙이면 설교자는 으쓱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런 말을 듣지 못하는 날이면 괜스리 심사가 편치 못하다.

 

크리소스톰이 설교를 마치고 번들번들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우르르 교인들이 몰렸다. 사람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은혜 받았습니다”느니 “감명 받았습니다”느니 했다. 대머리 설교자는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의 입에 웃음을 머금고 말을 받았다.

 

“당신의 행동으로 은혜받았음을 보여 주시오”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주머니 단속을 잘 하고 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창문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갈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는 교회 안에서 소매치기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안디옥과 달랐다. 안디옥에서처럼 아무나 교회를 들락거릴 수 없었다. 교인들의 대다수가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머리 설교자는 황금의 입이었기에 변할 수 없었다. 황금의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크리소스톰에게 반드시 좋지만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크리소스톰을 몰랐다. 그래서 그가 안디옥에서 했던 것처럼 부자들 귀에 거슬리는 설교를 스스럼없이 했을 때 사람들은 입이 나올 대로 나와 툴툴거렸다.

 

그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을 비판하자 그게 생활이다시피 한 황후와 지체 높은 여인들은 샐쭉해졌다. 그럼 우린 뭘 하며 살라는 거냐며 입방아들을 호되게 찧었다. 못생긴 게 꼴값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설교를 굉장히 잘 한다고 해서 납치까지 해서 데려다 놨더니 설교를 잘 하기는커녕 심사만 뒤틀게 만든 괴이한 위인이었다. 황후가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는 옆의 동전 그림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성직자들에게도 자기처럼 엄격하게 살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성직자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 그가 없는 데서 갖은 불평을 다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밥술이나 먹고 행세깨나 하는 사람 쳐놓고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면 고개를 젓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멀리 있는 이집트 알렉산드라의 총대주교도 몸이 달아 있었다. 크리소스톰 때문에 자신이 따논 당상격인 콘스탄티노플교회를 못 맡는다고 애가 달아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통속이 됐다. 그들은 고개를 맞대고 크리소스톰을 어떻게든 몰아내기로 작당을 했다.

 

정계와 경제계와 교계가 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다. 기회를 엿보았다. 틈을 노렸다. 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탈탈 털었지만 그는 먼지 하나 나지 않았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되지를 않았다. 몸이 달대로 단 모략꾼들과 말쟁이들과 수다쟁이들은 말도 안 되는 죄를 크리소스톰에게 들씌웠다. 결국 크리소스톰은 죄를 뒤집어썼다. 4백4년 그는 다른 곳의 교회도 맡을 수 없게 중죄인으로 정죄 받아 면직과 동시 유배당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혼자 사는 수도사로서 죽었다.

 

A sculpture of John Chrysostom in Saint Patrick's Cathedral, New York City-580px.jpg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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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0_ 변함없는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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