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G.QT
Home >  G.QT

실시간뉴스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 G.QT
    • G.QT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 G.QT
    • G.QT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 G.QT
    • G.QT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 G.QT
    • G.QT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 G.QT
    • G.QT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 G.QT
    2024-03-23

실시간 G.QT 기사

  • 성경이 삶이 되다_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주신 말씀_ 열왕기상 2:2~3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모든 환난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 왕 다윗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며 다윗이 왕위를 계승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길로만 행하라’는 것이다. 아들 솔로몬에게 내린 이 유언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길이며 죽음 앞에서 내린 일생의 결론이다. 성경 속의 인물 가운데서도 다윗만큼 많은 환난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도 드물고 다윗만큼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온 정성과 열심이었던 사람도 없다.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양치기 목동을 하며 초원에서 해와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청소년기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난 후 사울의 시샘으로 그의 대적이 되어 십여 년 동안 그의 칼날을 피하여 죽음의 골짜기를 다녔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고난의 고비 때마다 좌절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오히려 깊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시편의 그의 주옥같은 하나님 찬양의 시들은 그가 그 모든 환난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사람이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겪은 환난 고통은 다윗에게 있어 장애물이 아닌 오히려 그를 더욱 굳건히 세우며 하나님께 신뢰를 얻고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이 되는 디딤돌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의 삶 자체도 수고와 아픔뿐인 연수이며 누구에게나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은 여지없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다윗과 같은 고난에 대한 대치법을 배워야 하리라. 곧 생과 사의 모든 결론은 오직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궁전과 영광만을 사모하며 시련 뒤에 따라올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믿고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멘. 2022-08-21
    • G.QT
    • G.QT
    2022-08-21
  • 성경이 삶이 되다_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주신 말씀_ 여호수아 6:20~21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여리고성은 그 둘레가 약 3~4km에 이르며 이중으로 된 성벽으로 내벽과 외벽으로 구성되었고 진흙으로 만든 토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옹벽은 무려 4~5m(12~15피트)의 높이에 달하였고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 벽돌로 된 성벽(외벽)으로 건축되었다 한다. 당시 여리고 성내 사람들은 ‘달의 여신’이라는 우상을 섬겼으며 비교적 풍족한 삶 속에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은 타락한 성문화로 약 5천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 함락을 위해 매우 독특한 방법을 지시하였다. 곧 여리고성 둘레를 엿새 동안은 조용히 하루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 번째 날에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 나팔 소리에 맞춰 온 백성이 크게 외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란 것이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믿음의 만나 세대 백성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6일 동안은 소리 없이 한 바퀴씩 그 성을 돌고 난 후 일곱째날에 가서 일곱 번을 돈 후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소리를 외치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고 성안의 남녀노소와 짐승까지 진멸시킬 수가 있었다. 완승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을 정복하는데 왜 이런 방법을 지시하신 것일까, 사뭇 궁금한 일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쟁은 숫자와 무기와 전술에 승패가 달린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실 것이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완전 정복을 위해 무수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만 믿고 따르라는 본보기의 전쟁이었다. 둘째,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도시는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요즘 방송 뉴스만 켜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여차하면 곧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이다. 연일 미국의 위정자들과 북한의 김정은은 전쟁 위기를 고조 시켜 가고 있다. 세계 언론들도 한반도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음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데 반하여 놀라운 사실은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은 나 자신부터 놀랍도록 천하태평이다. 왜일까? 나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렇다면 오죽 좋으련만 수십 년 반복되어 온 ‘전쟁 위기’ 뉴스 등에 아마도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여리고성 함락의 ‘믿음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의 있고 없음도, 승패도, 모두 하나님께 달린 것! 이 시대의 모든 믿는 자들은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멘. 2022-08-14
    • G.QT
    • G.QT
    2022-08-14
  • 성경이 삶이 되다_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주신 말씀_ 신명기 4:9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신명기는 흔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기는 간곡한 고별사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잘못된 선택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출애굽 세대에서 만나 세대로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모세는 비록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혼신을 다하여 앞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갈 만나 세대들에게 출애굽 당시로부터 광야 40년의 생활을 회상하며 저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도리에 대해 철저한 당부를 하고 있다. 참으로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명 자의 모습이자 불세출의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큰 사건과 아픔을 경험했어도 세월이 흐르고 평안 속에 묻히다 보면 지난날의 일들은 점차 잊혀 가고 당시의 감각마저 무디어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그러기에 그 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 영광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고 그 말씀을 청종치 아니했으며(민 14:22) 결국 가데스바데아의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출애굽 세대가 40년간 광야에서 모두 사망하는 동안 만나 세대는 그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치 않기 위해 모세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 등 제사장 나라의 법을 철저히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이 만나 세대에게 모세가 가장 당부하고 있는 말은 ‘눈으로 본 것을 잊지 말라’는 것과 ‘그 본 것들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후손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는 것, 그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 한 분만 인생길에 동행하여 주시면 홍해도 갈라 주시고 반석에서 물도 내어주시며 삶의 온갖 장애물을 걷어주심은 물론,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삶’도 보장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매일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노력하고 믿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최근 몇 년간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기적과 은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며 나아가서 이를 회고록(간증)과 성경 에세이로 남겨 아들과 손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아멘. 2022-08-07
    • G.QT
    • G.QT
    2022-08-07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121:1~8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이 시는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여 첫발을 달에 딛으면서 읊었었다는 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류 최초로 지구에서 동경만 하던 달을 밟으며 지구와 온 우주를 바라본 암스트롱의 감회는 남달랐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미지의 땅을 밟으며 두려움과 호기심과 공포가 같이 하였을 것이고 신비롭고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성과 위엄을 느끼며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과 적막의 고독이 깃든 삭막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찬양하고자 이 시를 노래하였을 것이다. 시인은 출애굽 시 독수리 같은 눈으로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백성을 보호 인도하시며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만나로 먹이시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노래하고 있다. 내 믿음이 지금처럼 확고하기 전 나는 한 때 나 스스로를 흠 많고 부족한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를 주님이 지켜주실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모진 풍파를 겪으며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죽자고 매달렸을 때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심은 물론 상황을 역전시켜 과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고 감격해 하였다. 과연,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며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결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사랑의 끝판왕’이시다. 아멘. 2022-07-31
    • G.QT
    • G.QT
    2022-07-31
  • 성경이 삶이 되다_ 험악했던 야곱의 인생길
    주신 말씀_ 창세기 47:8~10 9. 야곱이 바로에게 이르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험악했던 야곱의 인생길 누구나 살아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따듯하고 평탄했던 꽃길의 세월보다 험하고 고단하였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고 수고와 아픔만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을 듯하다. 사람마다 각각이 다른 삶이니 차이는 있겠으나 그 고단함과 땀 흘림의 여정은 아담 이후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이다. 오늘 창세기에 노년에 아들 요셉을 잘 둔 덕택으로 바로 앞에 선 야곱은 자신이 살아온 삶, 130여 년을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삶은 그렇게 복 받은 자의 인생 같지도 않으며 그의 삶의 방식 또한 바르고 본받을 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험악한 세월’을 살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첫째, 물질의 욕심이 많고 사랑에 집착이 큰 사람이었고 두 번째로 목적 달성을 위해 속임수와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성격 때문으로 보여진다. 형 에서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가로채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의 안수 기도를 교활한 방법으로 빼앗아 젊은 나이 때부터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 라헬에 대한 사랑의 집착으로 네 명의 부인과 열두 아들을 얻었으니 거기서 14년의 머슴살이 삶도 여자들의 질투와 시샘으로 만만한 세월이 아니였을 듯하다. 또한, 20년의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호하심과 은혜로 인하여 열두 명의 자식을 둔 생육 번성의 복을 받고 많은 재산도 축적하였으나 야반도주의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삼촌 라반의 추격에서 위기를 모면한 끝에 찾아온 소식은 형 에서의 복수심 불타는 살벌한 마중이었다. 결국, 얍복강 나루에서 20년 만에 만난 쌍둥이 형제는 역시 하나님의 또한 번의 은혜로 극적인 상봉과 화해로 모든 감정이 풀린 듯 보였으나 먼 훗날 5백 년이 지난 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세일산에 터를 잡았던 에서의 후손들은 그 앙금을 온전히 풀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형제간의 다툼은 이삭과 리브가의 편파적인 자식 사랑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으나 야곱의 삶의 방식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믿음과 순종의 의로운 삶을 따르지 않고 집착과 경쟁심을 앞세운 데에 기인하였던 듯 보인다. 그러나 야곱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기 힘든 ‘끈기’와 ‘성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위기에 처하여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죽기 살기로 매달려 기도하고 ‘날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환도 뼈에 금이 가고’ (창 32:26) 라반의 집에서는 7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여정 130년이 지난 후 마침내 아브라함과 이삭이 물려받은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고 계승하였으며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이 신뢰하는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후손들에게 베푼 ‘축복의 기도’에서 분명히 보여진다. 아무리 험한 인생의 여정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그 보호하심과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가는 것이다. 아멘. 2022-07-24
    • G.QT
    2022-07-24
  • 성경이 삶이 되다_ 큰 대제사장이 되신 우리 예수님
    주신 말씀_ 히브리서 4:14~15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큰 대제사장이 되신 우리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 성전 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마 27:51). 이는 제사장 나라의 중심이 되었던 성전이 존재 의미를 상실했음을 말하고 그 성전은 우리 몸 안으로 대 이동하였음을 증거한다. 곧 성전과 함께 대제사장의 역할이 끝났음을 확증한 것이다. 다시 말해 1년에 한 번씩 모든 백성의 죄를 대제사장이 품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던 큰 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예수님께로 옮겨졌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부활 후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늘 지성소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시면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중보하여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기도’로써 모든 문제를 주님의 이름으로 청원하고 간구하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께 아뢰시고 부여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이를 해결해 주시는 거다.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해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그 크신 은혜와 희생에 대한 도리이자 대속 받은 자의 ‘의무’인 것이다. 아멘. 2022-07-17
    • G.QT
    • G.QT
    2022-07-17
  • 성경이 삶이 되다_ 귀하신 육체로 막힌 담을 허무시다
    주신 말씀_ 에베소서 2:14~16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귀하신 육체로 막힌 담을 허무시다 세상 인간들의 삶 속에는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도 않는 담으로 둘러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일반적인 담에는 국가 간 영토 표시의 담, 네 집과 내 집의 담 등 재산과 육신을 보호하려는 경계의 담들이 수없이 설치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결코 넘을 수 없는 담 또한 헤아리기 힘들다. 높은 신분과 권력의 담, 부한 자와 빈한 자의 담, 그런 많은 담들은 사회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시대의 담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담이였고 신분 고하, 빈부, 종교, 로마를 중심으로 한 민족 간의 담도 요즘 시대 못지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담은 죄로 가리워 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이었다. 하나님의 꿈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온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 됨의 화평을 이루는 것이었으나 인간의 죄악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최악의 장벽이 되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죄가 없는 자로 죄의 값을 치르게 하여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뿐이라. 하나님은 결국, 당신이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자격으로 이 땅에 오셔서 손수 그 벽을 허무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이었다. 그 주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담을 허무는 만능의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구원의 열쇠가 된 것이다. 이를 믿고 순종하고 믿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담은 부숴지고 하나로 화평을 이룬다. 아멘. 2022-07-03
    • G.QT
    • G.QT
    2022-07-03
  • 성경이 삶이 되다_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
    주신 말씀_ 빌립보서 3: 20~21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 필리핀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미국인이나 일본, 중국 사람보다 매우 만만한 존재이다. 그렇게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첫째는 한국의 국가적 국력이 위 3개국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라 교민들에게 끼치는 국제 영향력이 신통치 않은 데 있다. 둘째는 교민간 단결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시기와 알력이 심하여 서로를 해치며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나 몰라라 하는 국민성이 저들 눈에도 우습게 보여 늘 범죄의 타킷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은 매년 열 명 이상 살해 당하고 있으나 미국인이나 일본, 중국인이 필리핀 사람에게 총을 맞았다는 뉴스는 4년 동안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인이 사고를 당하면 중국 마피아 조직인 ‘삼합회’가 나서서 잔인한 보복을 한다 하고 일본인은 자국민 보호에 국가 영향력을 필리핀 정부가 꼼짝 못하도록 행사하기 때문에 아예 필리핀 범죄자들도 미.일.중국민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뉴스에는 북한에 관광을 갔던 미국 청년 웸비어가 1년 반만에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났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전 미국이 들끓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까지도 보복을 천명하는 등 시끄럽다. 인간이 사는 지구 230여 개 나라마다 각각의 국적 즉 시민권이 있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데 국적에 따른 가치는 천자만별인게 현실이다. 이들은 누구나 미국의 시민권을 갖고 싶어 한다. 이는 우리나라 로열 패밀리들도 앞다투어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시키려함에 있어 예외는 아니다. 왜 미국시민권을 모두 다 갖고 싶어 하는것일까?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세계 제1의 국력을 지닌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미국이란 국가가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말이며 자신의 몸의 가치가 세계 제1의 귀하신 신분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아프리카 미개발 도상국가의 국민이나 중동의 내전 중에 있는 국가의 시민들은 같은 주검을 당해도 선진국 부자나라 사람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고 어느 나라 시민이냐는 신분에서 오는 가치가 천차 만별인데 하물며 천지 창조주가 계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그 신분의 가치가 얼마나 귀하겠는가? 그 하늘나라는 아픔이나 눈물이 없는 곳이요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며 오직 하나님 영광만이 빛나고 죽음이 없이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나라이다. 또 그곳은 오직 택함을 입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며 세상 사는 날 동안에도 하나님이 삶을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특권을 누리는 나라의 시민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는 이땅에 사는 동안은 나그네요 순례자의 신분일 뿐 오직 돌아가야 할 곳, 본향을 찾아가는 삶을 살뿐이다. 감사하리로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 만세 전에 나를 택하여 하늘시민 삼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속죄해 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벽을 허물어 주신 바 온전한 하늘 시민권자가 되게 하셨도다. 할렐루야, 아멘!! 2022-06-26
    • G.QT
    • G.QT
    2022-06-26
  • 성경이 삶이 되다_ 여호와는 곧 지혜이다
    주신 말씀_ 잠언 8: 22~24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여호와는 곧 지혜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 10) 사람들은 현대를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TV, 신문은 고사하고 손바닥 안에 있는 스마트폰 속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넘치는 정보가 늘 가득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 한 시각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은 정보에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담아 자신의 소견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 속의 지혜가 이 시대에도 유용한 것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결코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가 총망라되어 있는 성경과는 그 어떤 것도 비교 될 수 없는 것이다.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이며 물리학 박사이신 김영길 온누리교회 장로님은 창조의 신비를 공부하면서 모든 만물의 씨앗에는 그만이 갖고 있는 유전자 DNA가 프로그램으로 담겨 있어 콩 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이 나며 내 아들이 나를 닮고 박 씨 아들이 박 씨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기가 막힌 원리를 발견하시고 하나님의 과학적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간증이자 고백을 방송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과연 하나님의 생명과학 지식은 경이로운 것이다! 해와 달과 별 우주를 창조하신 지혜와 섭리는 또 그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어떤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인간이 만들고 쏟아놓은 모든 지식과 정보는 시간이 가면 퇴색되어 가지만 천지창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지혜는 알면 알수록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곧 지혜 자체이시며 정보와 지식의 보고이니 내가 어디서 지혜를 구하리요! 간구하면 넘치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다만 기도할 뿐이다. 아멘. 2022-06-19
    • G.QT
    • G.QT
    2022-06-19
  • 성경이 삶이 되다_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주신 말씀_ 고린도후서 5: 20~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성경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독하며 읽으면서 느끼고 감동하는 것은 단연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꿈은 오직 인류 구원이 목적이셨다. 때로는 기가 막힌 묘한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고 그 백성을 가르치고 훈련하실 때에는 모진 회초리를 드시다가도 불붙는 듯한 사랑에 매를 돌이키시며 철없는 백성이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안쓰러울 만큼 사정하시기도 한다. 이래도 안돼고 저래도 안되니 결국 하나님이 택하신 마지막 방법은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인간들의 ‘죄의 값’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 일에 대해 바울은 담담히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이야말로 나같은 미물은 도저히 깨닫기 힘든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그 일이 ‘섭리’라고 하기엔 참으로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참으심이 안타깝고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그 깊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모두가 받들어 모시고 예수님처럼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자. 그것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아멘. 2022-06-12
    • G.QT
    • G.QT
    2022-06-1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