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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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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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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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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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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29 - 한 머리와 세 얼굴
Russian icon of the Old Testament Trinity by Andrey Rublev, between 1408 and 1425 한 머리와 세 얼굴 ‘사랑이 뭐길래’라는 연속극이 뭐길래 사람들이 그 시간에 바보상자에 눈길을 모으고 배꼽을 잡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어제 대발인가 사발인가 하는 청년이 결혼한 데까지 이른 모양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인기작가의 엿가락 같은 이야기 늘림을 어디까지 늘릴런지 사뭇 기대가 된다. 삼위일체 논쟁으로 열 받은 교회들이 모세 앞의 홍해처럼 둘로 좍 갈라졌다. 바로를 피하기 위한 선민의 물 건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국의 통일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교회의 갈라짐이었다.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틴 황제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뒷짐을 지고 어전을 왔다갔다 했다. 제국의 통일을 공고히 해주어야 할 교회가 갈라서서 성부니 성자니 성령이니 하면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싸우다니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양상은 황제의 정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어떻게 해서 쟁취한 제국인데 도움을 엄청 주리라 생각된 교회가 오히려 여론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을 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실 콘스탄틴 황제는 삼위일체 논쟁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되는 게 별로 없었다. 측근들을 통해 설명을 몇 번 들었지만 도무지 장님 코끼리 더듬기였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를 놓고 설왕설래 하느라 눈에 핏발이 서고 목에 힘줄이 돋는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데간데없었다. 논쟁이 뭐길래 교회의 사랑까지 식혀 버리는지. 토론장에 난데없는 폭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드잡이를 하더니 급기야는 치고받았다. 형제요 자매들인 그리스도인끼리 싸우는 꼴을 나비넥타이에 콧수염 기른 김동길 교수가 봤다면 “이게 뭡니까?”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느물거렸을 것이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데 그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렵사리 마련된 제국의 안정이 교회 싸움에 깨질런지도 몰랐다. 내란이 일어나면 자신의 정치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쟁취한 제국이며 황제 자리인가!황제는 뒷짐을 풀었다. 그는 먼저 메신저를 보내 양 파 지도자한테 항의 조의 나무람을 전달했다. 황제는 말했다. “이게 뭡니까? 이 모든 논쟁은 다투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빚은 결과입니다. 말에 담긴 어리석은 차이 때문에 형제끼리 원수처럼 치고받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되지 이 무슨 망발들입니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소?” 하나님은 셋이니 둘이니 하고 밤잠을 제대로 못 자며 싸울 때 교인들 사이에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그림이 유행했다. 이 그림에서 삼위일체가 한 머리와 세 얼굴로 표현되고 있다. 이 그림의 모퉁이에 있는 날개 달린 네 피조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을 나타낸다. 이 그림은 사실 너무 단순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 현대 의학으로도 감기의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의 실체를 어떻게 인간의 말과 그림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Holy Trinity Template교회 지도자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좋아했다. 신학적인 설명이야 어찌 됐든 삼위일체는 삼위일체라고 잘 설명해주니까 말이다.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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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28 - 삼위일체와 분열
Holy Trinity, depicted by Szymon Czechowicz (1756–1758) 삼위일체와 분열 통일과 화해를 기대하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삐걱거리고 있다. 복면을 쓰고 쇠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벌건 대낮에 스스럼없이 농부의 아들이 세운 공장을 우우 몰려다닌다. 어린 백성을 정신없는 정신대로 내모는 데 일조를 했던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 하나 나섬이 없다. 대신에 섬나라 자그마한 정치 지도자가 우리 의원끼리 박터지게 싸우던 국회에 나타나 머리만 조아리다 사라졌다. 우리네 지도자들은 정말 이 겨울에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어 애국가와 찬송을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끼리 다른 문제도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의 관계를 놓고 말다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너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옥신각신 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의 육신을 지니시고 이 땅에 사셨다. 그는 실제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몸을 일으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사람들한테 새 생명을 주셨다. 그럴진대 그는 확실히 노대통령 같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더 나으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신이 두 분이 계시지 않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도 하나님이시지 않은가? 이럴 경우 신이 세 분 존재하게 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영어참고서 제목으로 채택된 바 있는 이 삼위일체 논쟁이 어느 곳보다도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뜨겁게 달구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리우스라는 이름의 연로한 성직자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인간 이상이었지만 하나님보다는 못했다고 알쏭달쏭한 주장을 점잖게 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시무하던 아다나시우스라는 부교역자가 감히 아리우스 감독의 주장이 얼토당토않다고 반론을 폈다. 근간에 위장을 덤덤하게 떼낸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는 아다나시우스 같이 바른 말하는 교역자를 좋아하신다. 아마 도망다니던 아다나시우스를 당시 이 목사님이 계셨다면 자신의 교회에 특채해서 거둬 주셨을 것이다. 아마 당신의 의견을 그가 또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Ikone Athanasius von Alexandria어쨌든 아다나시우스의 그 당시 반론은 박수는커녕 그를 밤낮으로 도망 다니게 했다. 당시에 삼위일체를 주장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 이상이셨고 하나님 이하이셨다면 기실 그는 인간도 아니시고 하나님도 아니시게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이도 저도 아닌 얼추 묘한 존재가 되시고 마는 것이다. 아다나시우스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셨다. 하나님의 실재를 완전히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실재를 더욱 풍성히 공유하도록 도와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게 된다. 성령도 완전하게 공유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한 분 안에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한 세 분이 계시다. 즉 만유의 주 성부 하나님, 땅에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 우리 영혼을 감동 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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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 Jan Hus at the Council of Constance. 개혁의 촛불 일본 자동차 공세에 밀려 맥을 못 쓰던 미국 자동차업계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이아코카였다. 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경영 철학과 경험은 세계에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 내에서의 그의 인기는 너무도 대단해서 그는 워싱턴을 넘보는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칼럼까지 동원해 미국에 필요한 것은 일류 자동차 제조업자지 이류 정치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다. 『아니 여보게들 아이아코카가 정치를 할 모양이네 정치를 안 하겠다는 말이 영판 정치인 같은 어투로 말하고 있어』 요즘 정치 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이 각 일간신문에 계속 실리고 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다. 위클리프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운동은 영국에서 별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보헤미아에서 지지를 획득했다. 그 당시 영국 왕이 보헤미아 공주와 결혼을 했었다.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인 그 나라에서 존 후스는 이탈리아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처럼 부패한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설교를 했다. 성직자들은 화려한 옷에 달린 술을 휘날리며 말을 탔고 은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곤봉으로 가는 길에 거추장스런 사람들을 쫓았다. 후스는 거침없는 비난들 때문에 이단으로 고소를 당해 콘스탄스에서 열린 공의회에 회부 되었다. 후스는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는 정죄에 대해 결코 그런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후스는 그걸 취소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후스는 눈을 껌벅거리며 도대체 결코 가르친 적이 없는 걸 무슨 수로 취소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후스는 거절했고 유죄 판결을 받아 화형당했다. 화형당하는 후스(예나 약전, 15세기 후반) 그 결과 보헤미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고 성직자들의 뺨은 디룩디룩했다. 개혁의 불빛은 아직 희미했지만 여러 구석에서 촛불들이 타고 있었다. 독일 라인강 계곡을 따라 일단의 조용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교회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수도원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접촉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그룹이 홀랜드에 있었는데 스스로를 『공동생활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늘 함께 살면서 물건을 함께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는데 보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이곳저곳에서 퍼뜨렸다. 특별히 학교와 대학교들을 통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이 그룹을 통해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처럼 읽히고 있다. 이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다. 어떤 형제가 썼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켐피스로 알려져 있다. 개혁의 촛불들이 희구하는 것은 하나님 교회의 사랑과 선의 회복이었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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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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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 면죄부 판매 죄의 그늘 교황의 아비뇽 유배는 단지 교회의 탐욕만을 증가시켰다. 이유인즉슨 돈을 그러모으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청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교황의 오랜 부재로 토지들을 이웃 통치자들이 마구 짓밟아 못 쓰게 만들었다. 아비뇽에 자리 잡은 교황 요한 22세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옛것이든 새것이든 온갖 짓을 다 했다. 물론 세례, 결혼, 장례 등과 같은 정식 예식에 돈이 부과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둘로 나눠 두 무덤에 매장하는 것조차도 돈만 내면 교회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 어느 곳에 있든 명색이 주교이면 임지를 받을 때 1년 치 봉급을 고스란히 교황한테 바쳐야 했다. 요즈음 학교 선생이 될작시면 이런 꼴같잖은 일이 있다는데 그 옛날 교황한테서 학교 이사장들이 배운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주교직이 공석이 된다면 교황은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다른 주교를 이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주교직이 한 자리씩 비게 되어 주교들이 전부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런 뒤 교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옮긴 주교들한테서 부임 첫해의 월급을 모조리 상납받게 된다.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면죄부를 파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괴롭게 지내야 되는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교황의 허가증이었다. 그 사상은 연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성자들의 공로를 보관한 보물창고를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이 증서는 타인에게 양도도 가능했다.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요한 22세와 같은 탐욕 덩어리 교황한테 지청구를 늘어놓고 교황을 이단이라고 몰아댔을 때 분노의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교황은 화가 지글지글 끓어올라 본보기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몇을 이단 심문관에게 넘겨 화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의 교회 소유 토지를 탈취해가자 교황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 정말 힘써 그러모은 돈을 태반이나 전쟁터에서 허비했다. 교황은 교회가 교회답게 행해야 될 일에는 쓸 돈이 거의 없었다. 또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런데 쓸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70여 년 만에 로마로 돌아온 뒤 사치와 교만의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성직자들은 아주 품위 있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교회당과 그림과 책에 솔찬한 돈을 썼다. 그들은 카드놀이와 잔치에 아주 많은 돈을 활수 하게 지출했다. 그들은 값비싼 의상을 걸쳤고 예배 행렬을 화려하게 꾸몄다. 교황은 강력함을 내보이려고 멋진 의자를 군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게 했다. 평신도들은 고등종교의 신앙에서 낮은 마법의 주술적 신앙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성만찬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부적처럼 사용했다. 기독교에 만연된 치명적인 죄와 마법이 교회의 생명을 비칠거리게 했다. 사치의 죄에 빠진 교회 개혁의 외침과 시도들이 유럽 전역에서 불끈거리며 나왔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어두운 만큼 밝은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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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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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 서방교회의 분열을 상징화한 14세기의 세밀화 죄의 교회 침범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교황권을 튼튼하게 세운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도 죽고 교회와 세상에 신선하고 감동적인 영향을 미친 프란체스코도 죽었다. 이 세상은 악인만 죽는 게 아니라 의인도 덩달아 죽기 마련이다.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 그런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쓰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거듭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텐데. 어쨌든 이노켄티우스 3세와 프란체스코가 죽은 뒤 중세는 내리막길을 마구 달렸다. 일단 지어진 대 예배당은 변함없는 매력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돌로 된 건물은 비바람으로 인한 마모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인간은 자기 특성을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교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을 침범했던 야만인들보다 훨씬 심한 피해를 교회에 끼쳤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로마인을 죄다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죄들이 교회의 모든 덕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중세의 아주 깜깜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신앙의 촛불이 최소한 깜박거리고는 있었다.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교회의 특성과 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즉 칠죄종(七罪宗: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은 오만 탐욕 사음 노여움 탐식 질투 나태 등을 이른다. 그 가운데 특별히 다섯 가지 죄가 교회를 냅다 쳐들어왔다. 이것들을 이런 모양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탐욕은 약탈 포대기를 싣고 달리는 말로 묘사된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통째로 삼키는 짐승으로 표현된다. 사치는 온갖 모양을 내느라 여념이 없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남자도 이 짓을 했다. 노여움은 연약한 처녀의 머리를 칼로 내리치려는 걸로 묘사된다. 교만은 자기 말에서 굴러떨어져 채이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약탈 포대기를 나를는 탐욕 교회의 탐욕은 국가와 아주 심하게 마찰을 빚었다. 국가도 역시 탐욕 덩어리였다. 싸움을 하면서 교회는 더욱 탐욕스러워져 갔다.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부자가 되었고 왕들은 질투로 배가 아파 몸살을 앓았다. 특별히 영국과 프랑스 왕은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고 있는 참이라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면 누구에서도 그걸 얻거나 뺏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5.6공 시절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고나 할까. 영국 왕은 교회 재산 축적에 도움을 줬고 프랑스 왕은 자기 나라의 어떤 돈도 로마로 보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이에 발끈한 교황 보니파키우스 3세는 교회의 재산을 뺏어 가는 어떤 왕도 왕한테 교회 재산을 바치는 어떤 성직자도 출교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아주 시덥잖다는 표정으로 교황을 생포해 프랑스의 한 궁벽 진 촌락으로 교황청을 이전시킴으로써 교황의 으름장에 답했다. 그 촌락 이름이 아비뇽이었다. 교황들이 7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로마에 부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305-1377) 이 시기를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 기간을 본 따 교황청의 바벨론 유수라고 한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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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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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ermon to the Birds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새로운 수도원 운동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시대에 새로운 종류의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바람을 탄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떨어져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수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탁발수도사(friar)니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frater에서 온 말이다. 탁발수도사들은 함께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는 프란체스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아시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 상인이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통설과 달리 프란체스코는 부자가 되기를 꺼렸다. 세상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람들이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며 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은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지고 너무 편안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 양』(Lady Poverty)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결코 가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폐 가치가 있는 선물은 어떤 것도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입을 옷과 먹을 음식만 받았다. 그는 노동을 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상의 임금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상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것을 위해서 구걸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입으려고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빌었다. 또한 그는 내일의 것이 아니라 그날에 필요한 오늘의 것만을 위해 구걸했다. 그는 몸의 건강조차도 자신의 소유에 속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들이건 도시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우리 찬송가 가사따나 아골 골짝 빈들에도 그는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본을 따라 사는 실체를 몸소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물건 소유를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소유한 부유함을 느꼈다. 프란체스코의 손과 발에 나타난 흔적들을 스티그마타 즉 성흔이라고 한다. 스티그마타(stigmata)의 복수형이다. 그 흔적들은 붉은 반점들인데 프란체스코가 그리스도의 상처들을 너무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tigmatization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는 날아다니는 새들을 앉혀 놓고 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방주 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너희한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희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둥지를 만들어 살라고 너희에게 큰 나무들을 주셨다. 너희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목화를 심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털옷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작은 자매들이여,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도록 해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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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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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 논쟁하는 학자들 교회교육 언제는 쇠뜨기 풀이더니 이제는 소금이 유행이다. 건강에 소금물 복용이 그만이란다. 그것에 관한 강습회도 있고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효과를 봤다고 여기저기 퍼치는 소금 전도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개발에는 늘 잠잠하다. 정신이 저마다 건강해서인지 아니면 생명 연장에 정신건강이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네 정신건강은 실로 나쁘기 그지없다. 검사가 검사한테 잡혀가 구속당하고 목사가 목사의 고발로 구치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외출도 못하고 자기들 보호를 위해 발사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들은 부정입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돈으로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돈돈 하겠지… 아이를 체벌하는 수도사 배우고자 소년들이 선생인 수도사한테 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소년들: 선생님 저희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 배울 때 매도 맞아야 할텐데? 소년들: 무식하기보다는 매 맞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괜히 매를 때리지 않으신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어요. 선생: 너희는 무슨 일을 하니? 첫 번째 소년: 전 수도사가 될래요. 하루에 일곱 번씩 형제들하고 노래를 불러요. 그 사이에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요. 선생: 이 친구들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니. 첫 번째 소년: 농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고 소치기도 있고 사냥꾼도 있어요. 그리고 어부, 행상, 상인, 구두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선생: 농부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농부: 아주 고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새벽에 소를 몰고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합니다. 날마다 2천 평 이상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소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소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선생: 자 조용히들 하려무나. 각자 서로를 도와주어라.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사제이든 수도사이든 평신도이든 군인이든 누구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일에 힘쓰고 분수를 지키도록 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점잖게 행동해라.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서서 같은 음으로 찬송을 하고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교회는 어린 소년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학생들도 가르쳤다. 교회의 주도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교들이 설립됐다. 대학교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쳤고 우주를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도 가르쳤다. 대학교 선생들은 석사나 박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폈다. 학자의 논쟁이 줄어들고 눈치 보기만 한껏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목회자들은 괜한 일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닌다.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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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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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 주신 말씀_ 민수기 6: 24~27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화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몇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 22) 위 말씀은 가데스바데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선발된 정탐꾼 열두 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한 후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제사장 나라’ 계약을 파기하고 애굽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자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의 말씀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열 하루면 가고도 남을 가나안 땅을 40년을 돌아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은 40년간 변함없이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들의 의복을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항상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도 쉽게 믿음에서 약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생! 그는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내 인생 모든 날은 차치하고 근래 3년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적과 은혜만은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아멘.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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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실시간 이야기 세계 교회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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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4_ 교황의 씀씀이
- Jerome and Gregory 성 예로니모(왼쪽)와 성 대 그레고리오(오른쪽) 교황의 씀씀이 인플레에 좋은 점이 있다면 돈 쓰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네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선생이 힘을 엄청 발휘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묘하게도 공산주의 나라들인 옛 소련과 중공이다. 어느 목사 한 분이 옛 소련 선교사로 파송되어 모스크바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고려인 교수에게서 요긴한 도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인사치레로만 때우지 않고 우리네 돈 30만 원에 해당하는 미국 돈을 건네 주었는데 우리에게는 별 크게 생각되지 않는 그 돈의 액수가 소련에서 그 교수로 하여금 입이 함박 만큼 벌어지게 한 모양이다. 까닭인즉슨 그 액수가 소련에서 그 교수의 일 년 치 봉급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돈의 힘은 묘해서 부자가 하는 농담은 모든 사람이 다 배꼽을 쥐게 한다고 한다. 러시아에 가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주위에는 이런저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꾀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웃기는 말을 하면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도 덩달아 낄낄거릴 게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교회를 위해 돈을 쓸 때도 있었다. 세례받을 때 입는 세례 복을 마련해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보내주었다. 시내 산에서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수도사들에게는 담요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예배당을 지을 때 요긴하게 쓰라고 통나무를 보내주었다. 이집트에 보낸 통나무가 너무 짧다는 보고서가 교황청에 접수됐다. 교황은 양미간을 좁히며 펜을 들어 답장을 보냈다. 『이것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통나무를 배 길이에다 맞추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요즈막에는 긴 배가 잘 없군요. 긴 배가 항해를 하게 되면 그때 다시 기럭지가 긴 통나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집트 교인들은 하는 수 없이 교황이 보내준 키 작은 통나무로 서까래도 짧고 기둥도 낮은 교회를 지어야 했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가끔 기분 내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내렸다. 그는 자상하게 편지까지 곁들였다. 『오리와 오리 새끼를 당신한테 보냅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날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옛날에는 정부가 행했던 종류의 일을 위해서도 돈을 썼다. 옛날에는 로마 정부가 로마 시민들의 식량을 공급해줬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교황이 밀 경작지와 화물 수송 선박들을 소유했다. 로마인이 야만인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도 속량 금을 교황이 지불했다. 로마에서 돈을 넉넉하게 가진 사람은 오직 교황뿐이었다. 교황은 야만인 롬바르드족하고도 조약을 맺곤 했다. 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교황은 이태리 반도의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교황은 이런 과업들을 스스로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교황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간여했다. 교황은 그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됐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여러 지방들, 콘스탄티노플에 자리 잡은 로마 황제, 그리고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지의 야만 왕국들하고 교제를 나누며 싫든 좋든 정치를 논해야 했다.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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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4_ 교황의 씀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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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3_ 교회와 땅
- Matthias Stom_ St Gregory 교회와 땅 세면을 하다 거울을 본다. 머리에 희끗한 서릿발이 늘고 있다. 멜라닌 색소를 생산하는 염색공장이 드문드문 휴업을 일삼는 모양이다. 가을은 깊어가는 데 사위는 어둑할 뿐 소리가 없다. 가을밤이면 섬돌에서 신나게 우짖는 귀뚜라미 합창공연이 뜨내기 약 장수 마냥 찾아보기가 힘들다. 공해 탓에 벌레들이 지구에서 발붙일 곳을 잘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머리털 짧은 수도사들이 세상을 돕는 일은 두 가지로 진행됐다. 첫째가 산꼭대기라든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 같은 안전한 곳에다 수도원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야만인들이 옛 로마인들을 막무가내로 괴롭힐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아예 더벅머리 야만인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수도원을 세워 그곳을 통해 주위의 어둠을 밝힐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거칠은 세상을 피해 기도원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세상을 위해 데모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추었다는 말이다. 우리네 신학생들은 세상을 위해 데모에 앞장서고 우리네 지도자들은 너나없이 세상을 위해 날틀(비행기)을 타고 세계를 누비기에 바쁘다. 복음의 빛을 비추기보다는 돈 모으고 나누고 하는 일들에 온통 시간을 뺏긴다. 돈이 뭔지 명색이 기름부음 받았다는 사람들의 눈이 벌겋다 못해 핏빛이다. 로마제국의 해체로 재편된 새로운 서방세계에 최초의 위대한 교황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그레고리 성가로도 드높은 그레고리우스 1세이다. 그는 그레고리우스 대제라고도 한다. 그는 로마의 마지막 위대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활약한 시대를 바로 뒤이어 A.D.590년에 교황이 되었다. 최초의 교황 그레고리 1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서방에서 되찾은 로마의 영지들은 눈 녹듯 사라졌고 야만인들이 다시 이탈리아 전역을 대부분 장악하게 됐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정부는 침략자들을 전혀 다룰 수가 없었다. 로마에 있는 정부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런 판국에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교황뿐이었다. 그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은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교회에 땅을 헌납해 왔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전해오는 한 가지 기록을 보면 어떤 농부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자기 소유의 땅과 돼지를 교회에 바치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교회는 당연히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듯이 원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겠는가! 많은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죄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할 게다. 그러니 교회가 많은 땅과 많은 돼지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교회 소유 전체 땅 넓이가 물경 백만 평이나 되었다. 그리고 거개가 그 땅이 야만인들이 손대지 못한 이태리 남부나 섬에 있었다. 이 땅에서 교회는 해마다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교황은 이 땅의 경작을 관리해야만 했다. 서기들은 회계를 담당했다. 노예들은 노동력을 제공했다. 노예란 땅에 부속된 소유물이었다. 교회는 노예를 해방시켜 줄 생각은 못하고 잘 대해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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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3_ 교회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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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2_ 로마제국의 해체
- Anastasis Pio Christiano Inv31525 로마제국의 해체 개구리가 물이 든 주전자에 들어갔다. 이제 그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아니라 주전자 속의 개구리다. 그 물이 끓는 물이었다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도약해 뛰어나왔을 게다. 뜨거움이 그에게 주전자 속은 아주 위험하다는 사실을 즉시 인식시켰을 게다. 그러나 아주 미지근한 물 속이었다면 개구리는 별 저항 없이 목울대를 움직이며 주전자 속에 멀뚱히 떠있을 게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물의 온도를 높일지라도 개구리는 팔딱 뛰어나오지 않을 게다. 그는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서서히 물이 더워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주 약하게 가스버너를 계속 켜두면 결국 물은 끓게 될 게다. 그러면 불쌍한 개구리는 삶은 개구리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서서히 변하고 더워지고 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야만족 침략의 세찬 파도가 로마제국을 서방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것조차 끊어버렸다. 소련의 해체 과정에서 역력히 볼 수 있듯이 로마제국의 멸망은 유럽에 올망졸망한 나라들이 생기게 했다. 반달족은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은 스페인에 자리 잡았다. 고트족과 프랑크족은 프랑스에 퍼질러 앉았다. 고트족과 롬바르드족은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었다.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모퉁이 땅이라는 이름의 영국에다 말뚝을 박았다. 영국(England)은 모퉁이(Angle) 땅(Land)의 축어이다. 프랑스라는 이름은 프랑크족에서 유래됐다. 상부 이탈리아는 지금도 롬바르디라고 한다. 침략자들은 로마제국 백성을 다 죽이지 않았다. 원래 주인이 자기 땅에서 종이 된 경우도 있다. 또는 땅의 일부를 빼앗기고 나머지는 그대로 간직하는 행운을 맛보는 기회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사람과 새 사람들이 뒤섞여 결혼을 하다가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인종 싹쓸이는 없었다. 라인강 남부는 로마어가 약간 변형된 형태로 계속 생명을 유지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와 아주 유사하다. 그리고 영어는 그 말의 대부분을 라틴어에서 차용했다. 침략전쟁이 전부 끝나자 지도가 다시 바뀌었다. 모하멧족은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처럼 초승달 모양의 영토를 차지했다. 북부지역에서 떼거지로 몰려온 침략자들은 묘하게도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 모양의 영토를 형성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이탈리아까지 내리뻗은 수직선과 스페인 경계선에서 독일까지 가로 뻗은 팔은 얼추 십자가 형태다. 그리스도인과 모하멧의 영토 이들 북부 야만인들을 로마의 방법과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가르치는 과업이 교회에 맡겨졌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어떤 면에서 로마제국의 계승자가 되었다. 로마 교황들은 황제의 권력과 영향에 버금가는 힘을 휘둘렀다. 서방을 차지하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교황들은 수도사들의 도움을 엄청 받았다. 최초의 수도사들은 기독교화된 세상에 너무도 욕지기가 치밀어 세상을 훌훌 털고 떠나 사막으로 도망갔다. 누구 말마따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해도 너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아주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서방교회의 수도사들은 분연히 사막의 모래를 툭툭 털고 일어나 세상을 새롭게 하고자 세상으로 돌아왔다.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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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2_ 로마제국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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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1_ 동방교회, 서방교회
- 양파형 둥근지붕의 러시아정교회 동방교회, 서방교회 귀뚜라미가 운다. 비오지 않는 날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76총회가 가고 77총회가 성큼 다가서고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한다. 유고에서는 공산주의가 물러간 대신 혈통이 다르다고 같이 살던 사람끼리 서로 씨 말리기 놀이를 펴고 있다. 우리네 노란 제복의 운전사께서는 뜬금없이 살 맛 나지 않는다고 성령화대성회가 엄청 크고 어수선하게 열리고 있는 광장에서 차에 친 사람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차로 쓰러뜨렸다. 철창에 갇힌 그를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죽거리며 플래시를 받았다. 서방교회 성직자는 면도를 해 턱이 밋밋했다. 동방교회 성직자는 수염을 더부룩하게 길러 매일 빨아야 했다. 서방교회 성직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결혼할 수 없었다. 동방교회는 주교급의 성직자까지 마누라를 둘 수 있게 했다. 양쪽 교회는 성령님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서방교회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희랍정교회 헬라인들은 신앙고백의 한 부분으로 『성자에게서』라는 말을 받아들이길 단연코 거부한다. 러시아 천년기념비에 묘사된 블라디미르 1세의 조각상 희랍교회를 통해 기독교가 불가리아인, 러시아인 등과 같은 슬라브족에게 펴졌다. 러시아는 주후 9백88년 블라드미르 1세 때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블라드미르의 할머니 올가가 그리스도인이긴 했지만 백성들을 교화시키지는 않았다. 이런 전설이 있다. 블라드미르는 어떤 종교를 국교로 정할지 망설였다. 종교는 많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도 그 당시는 로마 가톨릭과 희랍정교회 둘로 갈라져 있었다. 여러 종교와 양 교회의 메신저들이 블라드미르 궁전에 찾아와 자기들 주장을 폈다. 먼저 모하멧 메신저가 낙원의 기쁨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블라드미르는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말에 오만 상이 찡그러지고 말았다. 블라드미르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담 그건 결코 안 되겠는데. 술 마시기는 러시아인의 기쁨이거든』 그 다음에 유대인이 말했다. 그러나 블라드미르는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로마 가톨릭은 블라드미르의 할머니 올가가 로마를 통해 믿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선정 대상에서 빠졌다. 희랍정교회 메신저는 정통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받게 될 온갖 고문들과 마지막 심판의 무서운 광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블라드미르는 희랍교회를 더 알아볼 요량으로 사신을 콘스탄티노플에 파송했다. 러시아 사신들은 성 소피아 예배당으로 안내되었다. 웅장한 건물들, 수많은 성직자, 화려한 의상, 성가대의 매혹적인 선율, 향로의 감미로운 향내, 횃불을 나르는 집사들의 행렬 등의 모든 것들이 사신들의 마음을 왈칵 사로잡았다. 사신들이 보고를 장황스레하자 블라드미르의 즉답은 『어디서 세례를 받지?』였다. 러시아교회는 희랍교회의 자교회였다가 동로마제국이 터어키족에게 멸망하자 콘스탄티노플이 제2의 로마였듯이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라고 자처했다.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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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1_ 동방교회, 서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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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0_ 성상 타파 논쟁
- Byzantine Iconoclasm, Chludov Psalter, 9th century 성상 타파 논쟁 신호등이 있어도 차끼리 뒤엉키는 희한한 나라에 사는 느낌은 사뭇 꺼림직하다. 아니 남세스럽다. 그러나 어쩌리, 내 나라고 나 역시 엽전인걸. 게다가 그리스도인이니 주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되겠지. 그리고 나도 사랑을 받아야겠지. 나 역시도 꽤 까다로운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속에서 치미는 게 있는 건 어찜일까? 성직자가 될 사람을 뽑는데 부정이 있어서일까? 아님 찌뿌드한 날씨 탓일까? 옛날에 비해 상상도 못할 만큼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메울 길 없는 허기 때문일까? 그리스도교를 믿는 세계에 대한 모하멧 교인의 침략은 서방의 땅덩어리를 줄이는 것 못지않게 다른 면에서도 많은 영향을 그리스도교에 끼쳤다. 인간 모습의 어떤 신상도 금한 모하멧 교의 본보기는 교회에 범람하기 시작했던 많은 사치스러운 형상들을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밋밋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몸을 십자가에다 정교하게 새긴 십자가 고형으로 대체 됐었다. 신의 어머니라고 하는 동정녀 마리아도 많은 성상이 있었다. 성상에 대한 헬라어는 이콘(Icobn)이다. 일부 성자들도 성상이 있었다. 성자(Saint)라는 말은 본디 덕이 높은 경건한 사람을 단순히 일컫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특별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예컨대 성 바울, 성 베드로, 성 제롬, 성 어거스틴 등과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칭호로 그 말이 바뀌었다. 성자들은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훨씬 영향력이 있을 걸로 여겨졌다. 이제는 지상에 없을지라도 성자들이 그들의 성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서 기도할 수 있을 걸로 여겨졌다. 특별한 사람이나 나라를 돌보는 성자를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성자는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이다. 영국의 수호성인은 성 조지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은 안드레 성자이다. 헬라제국의 일반인은 성상들에 입을 맞췄고, 메마른 우물에 물이 생기길 바라며 성상을 우물에 처넣었고, 그리고 성상이 마술도 부린다고 믿었다. 소아시아의 이소리아 인이라고 하는 레오 황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관습들을 막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콘스탄티노플 성문에 걸린 십자가 고상을 베어 내라고 군인들에게 명했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들이 사닥다리를 올라가 십자가상을 조각내어 땅에 떨궜다. 그러자 분기탱천한 아낙네들이 대거 몰려와 사닥다리를 밀쳐내자 십자가 철거반 군인들은 졸지에 땅바닥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를 기화로 성상타파 논쟁이라고 하는 말싸움이 대판 벌어졌다. 성상 타파(Iconoclast)라는 말은 『형상』과 『부순다』라는 뜻의 헬라어가 합친 단어이다. 여자들과 수도사들은 성상을 사랑했고 성상 타파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에 견주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상에 신포도주를 머금은 스폰지를 디미는 그림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 성상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강변했다. 『성상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책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성상을 봄으로써 성상이 나타내는 의미까지 알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성상 타파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셨다고 반박했다.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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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0_ 성상 타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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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9_ 초승달
- 초승달 장마라는데 작달비나 궂은비는 없고 여우비만 오락가락한다. 누구 말마따나 갱제가 쪽을 못 쓰니 장대 같아야 될 장마비도 시무룩해진 것 같다. 어렸을 적 싸리나무 줄기 같은 장마비가 사정없이 쏟아지곤 했다. 그러면 그 어수룩하던 50년대 말에는 금새 물난리가 대한민국 수도를 휘몰아쳤다. 우리 꼬마들은 비가 멈추길 기다려 한강 둑으로 구경 나갔다. 그곳은 불어난 물살처럼 현장감이 넘쳤다. 풀더미가 떠내려가고 소가 헤엄을 치며 내려가고 흥부가 켜던 박덩이 마냥 농부가 올라앉은 초가지붕이 둥실둥실 흘러가고 양재기와 솥이 곤두박질치며 황망히 물살을 헤쳤다. 생생한 진풍경이었다.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물에 떠내려가는 것들은 급한 탁류 속에서 아우성인데 둑에선 구경꾼들은 신이 났다. 활달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세상을 떠난 뒤 서방에서 회복됐던 로마제국의 영토들은 다시 빼앗겼다. 동방에서도 영토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아라비아에서 말 달려온 사람들의 침입 때문이었다. 이 새로운 침략자들이 좋아하는 상징은 어여쁜 여인의 눈썹 같은 초승달이었다.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 아래서 그들이 부르짖는 외침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모하멧은 알라의 선지자이다였다. 이들은 모하멧 교인들이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맛(또는 모하멧)은 유대인이다. 그리스도인처럼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고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무하맛은 모세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긴 했지만 참된 대표적인 선지자는 자신뿐이라고 느물스럽게 가르쳤다. 그는 모하멧 예배당인 모스크 안에 인간 모습의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그리거나 새겨서는 안되고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모하멧 교인들은 그들 신앙의 성소가 있는 메카로 얼굴을 향하고 하루 다섯 차례씩 기도를 드려야 했다. 눈을 가늘게 뜨기를 좋아하는 모하멧은 추종자들한테 알라를 위해 싸울 것을 부추겼다. 그러면 알라께서 차디찬 생수와 우유와 꿀과 포도주가 강같이 흐르는 하늘에서 그들한테 보상해 준다고 혀로 입술을 다시며 말을 했다. 그러나 땅에서는 그들이 포도주를 마셔서는 안 되었다. 모하멧의 가르침은 코란이라고 하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기실 코란도 성경처럼 책이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알라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은 정복민에게 코란을 받아들이든지 세금을 내든지 죽든지 우리네 대학 예비고사 같은 삼지선답 형을 강요했다. 주후 6백22년에 시작된 이슬람정복 운동은 아주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까닭은 헬라황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아르메니아인, 시리아인, 에디오피아인 등이 모하멧 교인의 지배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기 때문이다. 모하멧인은 정복당한 민족이 세금만 따박따박 잘 내면 무슨 종교를 믿든 개의치 않았다. 알라의 떼거리가 팔레스틴, 이집트, 스페인 등을 휩쓸고 프랑스 문턱까지 위협했다. 정복 운동이 시작된 지 1백 년 만에 모하멧 교인들은 프랑스 문턱에서 말달리기를 멈췄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모하멧 교인이 숨 가쁘게 점령했던 땅들이 거의 초승달 형태를 띠었다. 한쪽 끝이 프랑스 하부에서 스페인 하부까지 이르고 다른 한쪽 끝은 콘스탄티노플을 질러 비엔나 경계까지 이르렀다.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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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9_ 초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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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7_ 로마 제국의 분열
- The church of Hagia Sophia was built at the time of Justinian 로마 제국의 분열 비가 오락가락한다. 날씨는 잔뜩 찌푸린 채 찜찜한 기분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 판에 목댕기를 꽉 졸라매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나 불황에 돈 막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나 강도사 고시 사정 때 여차직하면 좀 봐주십사하고 줄을 대놨다가 합격이 보류돼 눈만 껌벅거리는 사람들이 이 끈적이는 초여름의 주인공들이다. 영화뿐 아니라 주인공이란 어디서나 신나는 법이다. 그나마 이웃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덜 안쓰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영 시장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로마 제국의 분열은 북쪽에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야만족들의 침입을 야기시켰다. 로마는 옛 세계의 중심이었다. 침입을 받은 뒤 로마는 두 세계, 즉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동로마나 서로마는 거의 달걀모양이었다. 동쪽 부분을 여전히 로마 제국이라고 하고 사람들도 으례 자기들을 로마인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 사용언어는 헬라어였다. 서쪽에서는 라틴어로 말했다. 옛 로마 제국이 와해 된 후 잠시 교회는 하나의 단결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점차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로마 제국의 분열은 교회를 라틴교회와 헬라교회로 갈라놓았다. 라틴 측은 자칭 가톨릭교회(보편교회)라 했고 헬라 측은 자칭 정통교회라고 했다. 이를테면 우리네의 합동 측이니 통합 측이니 하는 식이다. 뜻은 같고 발음은 틀린 문자라고나 할까. 정통교회라는 뜻은 바른 가르침을 행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동로마제국의 교회를 한번 살펴보자. 동로마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고 사용하는 언어는 말했듯이 헬라어다. 동로마제국에는 헬라 사람들 말고도 다른 민족들도 뒤섞여 살고 있었다. 민족마다 각기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메니아인, 시리아인, 에티오피아인 등이 그랬다. 그들은 헬라인을 싫어했고 제국도 좋아하지 않았고 교회도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민족들은 미국의 한국인들 마냥 그들 자체의 별도 교회를 조직했다. 이런 달갑잖은 분쟁과 갈등은 묘하게도 한 가지 좋은 결과를 낳았다.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페르시아까지 파고들 수 있게 해주었다. 페르시아인들은 헬라 제국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헬라인이 좋아하는 종교라면 심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이 네스토리우스파라고 하는 시리아계 그리스도인들을 몰아내자 페르시아에서는 쌍수를 들어 그들을 맞이했고 그들이 많은 페르시아인들을 개종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일부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이 중국으로 밀려들어 갔다. Angel shows a mode of Hagia Sofia to Justinian in a vision 헬라 황제들은 떨어져 나간 교회들을 되찾고 서방에 주저앉아 건들거리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로마를 회복하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가장 성공을 거둔 경우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였다. 그는 짧긴 했지만, 옛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되찾아 통치했다. 그의 통치를 가장 유명하고 기억하게 만든 게 두 가지 있었다. 둘 다 그리스도교와 관계가 있었다. 그 하나가 콘스탄티노플에 자리 잡은 성 소피아 대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 제국의 법을 한군데 그러모아 정리해 편찬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다.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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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7_ 로마 제국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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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6_ 감독 어거스틴
- Saint Augustine Disputing with the Heretics painting by Vergós Group 감독 어거스틴 산다는 게 무엇인가? 삶의 숨을 거둔다는 건 또 무엇일까? 눈물의 어머니 모니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병들어 죽자 어거스틴은 처음에는 너무도 기가 막혀 소리쳐 울 수도 없었다. 그는 암브로스가 지은 찬송을 불렀다.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슬픔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돌아온 지 얼마 안 있어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이제는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진정 혼자였다. 그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수도사가 되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에서 벗어나 홀로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다. 자연과 명상과 기도와 하나님만이 그의 벗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바람조차도 여의치 못했다. 그는 히포의 감독직을 요청받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는 이제 그 어느 것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그의 바람이나 기대를 검불 날리듯 흩어 버릴지라도 말이다. 지금 이 글 가운데 서재에 앉아 있는 어거스틴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실려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상 위에 모자가 하나 있음을 알 수 있다. Saint Augustine painting by Antonio Rodríguez 사실 어거스틴이 그런 모자를 쓴 적은 물론 없었다. 이 그림은 후대에 그려졌다. 이건 중세 때 사용된 모자의 종류를 나타낸다. 또 모자를 찬찬히 뜯어보면 목동이 사용하는 구부러진 지팡이 모양의 장식이 보일 것이다. 그걸 감독 지팡이(crozier)라고 한다. 감독이나 오늘날의 주교를 양을 치는 목자로 생각한 데서 비롯된 상징일 것이다. 감독 노릇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활동하던 때는 난세였다. 공고하던 로마의 옛 체제가 무너지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야만인들이 로마 제국을 휩쓸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야만인들을 내버려 두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아리우스파 때문에 화가 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암브로스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니캐아파도 덩달아 고통당하는 까닭은 어떻게 된 일일까? 어거스틴은 더 깊은 대답을 구했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싸움은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선과 악의 세력 사이에 늘 상 벌어지는 싸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두 세력은 땅에서 일어나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로마 제국은 대개의 경우 가인과 같고 다른 민족에게서 땅을 빼앗아 컸다. 그건 인간 탐욕의 결과이다. 야만인들은 로마가 다른 민족에게 저질렀던 악행을 되갚아 주고 있을 뿐이다. 로마 제국은 지나갈 것이다. 장차 올 다른 어떤 나라가 벌써 지금 시작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 교회는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세력의 한 표현이다. 로마가 소멸될지라도 교회가 남아 있다면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거스틴이 한 말은 교회가 로마 제국을 대신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거스틴은 교회뿐만 아니라 정부도 가지길 원했지만 반드시 교회가 정부를 지도해야 했다. 나중에 교황들이 어거스틴의 꿈을 실현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설교자였다. 그는 아주 쉬운 말로 설교했다. 직공과 농부와 어부가 그의 설교를 듣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울부짖고 손뼉을 쳤다.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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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6_ 감독 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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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5_ 정원의 하루
- St. Augustine in His Study by Vittore Carpaccio, 1502 정원의 하루 사위가 어둑해진다. 창을 연다. 바람이 슬며시 들어오고 개구리의 왁자한 울음소리가 뒤따른다. 이맘때면 20년 전 사당동 골짜기의 총신이 생각난다. 해만 지면 호야 불을 밝히는 총신 교정을 청개구리나 두꺼비의 떠들썩한 외침들이 그득 채웠다. 그 시절 우리는 소금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하늘나라를 주절거리고 사시사철 양복 한 벌로 교회에 나가 전도사랍시고 꺼떡거렸다. 시집오겠다는 처녀도 드물던 질펀한 사당동 골짜기 시절이었다. 정말 그 시절 풍족했던 것은 모기와 개구리의 외침들뿐이었지 않나 싶다. 어거스틴은 울적한 심사를 달래러 홀로 정원에 나갔다. 한적한 곳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이상한데. 손더러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라면 말을 잘 듣는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에 뭔가를 시키면 도통 듣지를 않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근처에 있는 집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의 소리를 어거스틴은 듣게 되었다. 아이는 어떤 말을 싫증도 내지 않고 고무줄 노래 마냥 되풀이했다. “손에 쥐고 읽어라. 손에 쥐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의자를 하나 발견하고 엉덩이를 걸쳤다. 의자 모서리에는 신약성서 한 권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그는 그걸 집어 들고 펼쳤다. 사도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그 말씀에 거꾸러졌다. 그는 이렇게 당시를 술회했다. '나는 헐거운 멍에를 목에 걸었고 가벼운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이 모든 일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을 초월한 어떤 힘이 자신을 인도하고 있었음을 느꼈다.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하노라고 해 보지만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결국 하나님과 그의 은총에 달려 있다. ‘은총’이라는 말은 거저 주는 선물을 뜻한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및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도 어거스틴은 깨달았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였다. 그는 정원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나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심상찮은 아들의 모습에 움푹 패인 눈을 크게 뜬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시며 구원이 되신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소란스러움에 어리벙벙해진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훌쩍거렸다. 며칠 뒤 어거스틴은 아들과 함께 존경하는 밀란의 감독 암브로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제 부푼 꿈을 안고 아들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고향이 성령의 손짓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도 있는 걸까? 눈물의 어머니 모니카가 병들어 죽었다. Triunfo de San Agustín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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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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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5_ 정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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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4_ 젊은 어거스틴
- The vision of St. Augustine 젊은 어거스틴 은하수를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곳에 몸을 담그면 한 점 티끌로 사라지고 말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머리로 우주를 생각하면 그의 무한성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하늘 아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영혼을 가르는 설교 때는 졸다가 허공을 치는 설교 때는 눈을 말똥거리며 이죽거리는 일이다. 어거스틴도 나이를 먹었다. 그 나이에 걸맞게 그는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아들과 애 엄마를 부양할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고향에서 가까운 카르타고에서 학교 선생 노릇을 했다. 빌어먹지 못해 선생질을 하고보니 참으로 못해 먹을 노릇이었다. 아이들이 자기 어렸을 때 마냥 버르장머리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선생질이 로마에서는 누워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지긋지긋한 눈물과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에게는 말 한마디도 없이 아들과 동거녀를 채근해 로마로 야반도주했다. 말 그대로 로마에서 하는 선생 노릇은 한결 속 편했다. 학생들이 어쩜 그렇게 싹싹한지 카르타고 시골 애들 하고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도 있었다. 아이들이 수업료를 내야 될 날은 코빼기도 비치질 않는 것이었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아는 게 수사학 가르치는 선생 노릇뿐이니 도저히 다른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밀란으로 옮겼다. 밀란은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아들이 밀란에 있음을 알고 나는 새처럼 달려와 아들 가족과 합류했다. 밀란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암브로스였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스의 설교를 들으러 다녔다.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인지라 어거스틴은 암브로스가 손과 목소리를 어떻게 사용하며 문장을 어떻게 꾸미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어거스틴은 얼마 안 가서 우아한 손짓과 매끄러운 말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암브로스의 설교에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암브로스는 용감한 사람이었고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었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스처럼 되었으면 했다. 사실 그는 의지가 약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는 어김없이 줄행랑을 쳤다. 책임을 지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했다. 암브로스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지 어거스틴은 아직 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거스틴이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과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는 손자를 낳은 여자를 아프리카로 돌려보내고 아들이 제대로 된 양갓집 규수와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으면 했다. 모처럼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어거스틴은 눈물로 매달리는 애 엄마를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그런 다음 딴 여자를 구해 그럴듯한 핑계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그냥 데리고 살았다. 수사학 선생인지라 어느 여자인들 그의 너스레에 혹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무렵 어거스틴은 여자를 전혀 가까이하지 않고 사는 애굽의 수도사들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깜짝 놀랐으며 여자 없는 그런 삶을 이해 못 했다. The Saint Augustine Taken to School by Saint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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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4_ 젊은 어거스틴